뭇 산들의 꼭대기
츠쯔졘 지음, 강영희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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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 책으로 선정돼서 읽게 된 책인데 읽고 난 후의 느낌이 좋아서 이렇게 글로나마 읽은 느낌을 대신하려 한다.

중국 소설은 처음이기도 하거니와 노벨상 수상작으로 유명한 가오싱젠의 <버스 정류장>과 모옌의 <개구리>는 고사하고 인기에 힘입어 영화로까지 제작된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도 읽지 않았기에 나에게 중국 소설은 캄캄한 벽이나 다름없었다. 이번 츠쯔젠의 소설을 읽으면서 왜 중국 소설에 발을 담그지 않았을까? 란 자책감이 몰려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책으로 가서 <뭇 산들의 꼭대기>는 총 17장으로 구성된 소설이고, 470쪽의 분량으로 봐서 중편 이상의 장편소설로 봐도 무방하겠다. 소설은 1장부터 몰입도가 장난 아니게 진행된다. ‘룽잔진’의 도축업자인 ‘신치짜’의 이력을 소개하면서 소설은 시작되는데 사고 뭉치이자 속된 말로 동네 양아치인 그의 아들 ‘신신라이’가 그의 엄마인 ‘왕슈만’을 천마도를 휘둘러 살해하고, 룽잔진의 신화이자 신령으로 추앙되는 난쟁이 ‘안쉐얼’을 강간하고 도망가면서 소설은 시작되고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이렇게 도망간 신신라이를 추격하고 잡는 것이 소설<뭇 산들의 꼭대기>의 주된 내용인데 그 내용을 파고 들어가 보면 중국이라는 넓고 넓은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 소수민족의 사랑과 애환이 이 소설에 녹아들어 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룽잔진에서 도축업을 하며 살아가는 신치짜의 가족과 룽잔진의 진장(요즘의 이장이나 면장)을 맡고 있는 ‘탕한청’의 가족들, 칭산현의 실세인 ‘천진구’ 가족들과 창칭현 사법경찰대 대장을 맡으면서 룽잔진에서 영웅 대접을 받는 ‘안핑’의 가족 등 중국 내 여러 가문들이 이 소설에 등장하고 그들 가문이 중국 사회에 속해있는 상징성과 역할 속에서 오해와 이기심이 여러 인간들을 어떻게 몰락시킬 수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이라 생각한다.


“인간 세상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본문 229쪽 中)


연속적인 사건들을 통해 이야기의 흐름이 빠르고, 갖은 오해와 상처들 속에서 싹트는 안핑과 리쑤전의 사랑 이야기, 천사의 가면을 쓴 탕메이의 실체가 밝혀지는 장면들, 오해는 또 다른 오해를 낳고 그 오해들 속에서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신카이류와 신치짜, 신신라이의 삼대 이야기, 온갖 부정을 통해 부를 축적했지만 가족의 사랑을 얻는 데는 실패한 천진구 집안 이야기 등 이 소설을 읽다 보면 극적이면서 재밌는 설정이 너무나도 많고, 사형제도의 변화와 장례방식의 변화를 통해 인간의 이기적인 면이 적나라하게 묘사되는 장면에서는 실소가 나오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소설 중간중간에 풍습이나 미신, 설화, 신화 등의 의미들을 부여해서 이야기의 흥미를 유발한 것과 흐름의 끊김이 없는 유려한 번역 또한 이 소설이 주는 재미다. 반면에 40여 명의 등장인물 속에서 그들의 이름을 외우기가 쉽지 않아서 읽다가 흐름이 끊기는 경우도 발생했고, 작가가 설정한 가상의 마을인 ‘룽잔진’ 이외에는 시간적 배경을 소설에 나오는 묘사를 통해 유추해야 했기에 읽다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요즘의 단어들(BMW, PC방, 문자 메시지 등)에 약간 거북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거북함을 뒤로하고 인간의 이기적인 속성과 이타적인 면들의 거리낌 없는 묘사, 등장인물의 설정과 구성의 면에 있어서《뭇 산들의 꼭대기》의 쯔츠젠은 중국의 이야기꾼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 시기에 룽산 산꼭대기에 서서 뭇 산들에 눈을 돌려 온통 물든 숲들을 바라보면 산속 모든 나무가 하룻밤 사이에 꽃나무가 되었다고 착각하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서리가 만들어낸 찬란함은 아름다운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그 머리와 꼬리를 얼마 흔들지 못하듯 오래가지 못했다. 세찬 가을바람에 결국에는 나뭇잎들이 떨어지고 마지막에는 벌거벗은 잔가지만 남아 파란 하늘을 마주할 터였다.(본문 455쪽 中)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란 말이 있다. 츠쯔첸의 <뭇 산들의 꼭대기>도 마찬가지다. 룽산 산꼭대기에서 룽잔진을 바라보면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할 것이다. “룽잔진은 정말 아름답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마을이라고”, 하지만 룽잔진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배신과 오해가 난무했고, 인간의 막장을 볼 수 있는 그런 잔인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 막장 속에서 인간들의 천태만상을 흥미로운 필체의 힘으로 끝까지 묘사한 츠쯔첸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이에 더해 이처럼 치밀한 구성과 웅대한 서사로 무장한 <뭇 산들의 꼭대기>를 여러분들께 살포시 권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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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밀리언 특별판) - 20년 연속 와튼스쿨 최고 인기 강의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지음, 김태훈 옮김 / 8.0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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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목적지에 빠르게 가기 위해 자동차를 개발했고, 질병과 맞서 싸우기 위해 신약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화석연료(원자력)의 대체재를 찾기 위해 신 재생에너지 개발에 무한한 노력을 하고 있다. 개개인들은 또 어떤가? ‘성공’이라는 명분을 위해 시험공부에 매진하고, 회사에서는 남보다 일찍 승진하기 위해 온갖 잡무에 시달리면서 말 그대로 회사를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모 책에서 말한 [R=VD]란 공식처럼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을 위해 생생하게 꿈꾸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가 않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그렇게 쉽게 우리에게 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꿈이 현실이 되기 위해 생생하게 꿈꾸고 바란다고 해서 내 바람이 현실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고, 또 노력해도 정규직의 틈은 보이지 않고, 그렇게 열심히 회사에 충성해도 뒷배경에 밀려 승진에서 미끄러지고 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까? 정말 원하는 것을 원하면 얻어질 수 있는 것일까?


우연한 소개로 읽은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교수의《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란 책을 통해 내 인생은 180도 바뀌었다. 이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나로 나누어보자면 이 책을 읽기 전엔 이 세상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나만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는《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에서도 설명하고 있듯이 중요한 방식이자 태도다. 하지만 ‘연습과 끈기’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하나의 기술이자 방법론일 뿐이다. 여러 방법들 중에서 하나의 방법만 고수한다면 하나의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겠지만 여러 상대방을 만족시키기 위해선 더 많은 협상력과 기술력이 필요한 것이다. 훌륭한 협상가가 되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연습과 끈기’는 하나의 충분조건이지 필요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훌륭한 협상가가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스튜어트 다이아몬드의《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란 책에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20년 연속 와튼스쿨의 최고 인기 강의이자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강의를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다는 건 어찌 보면 우리에게 행운이자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평생을 함께 하는 솔메이트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세계 최고의 MBA에서 강의한 내용이기에 책 내용이 어렵진 않을까 생각했는데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들이 책 속에 들어 있어서 놀라웠고, 실생활에 접목할 수 있을 정도의 풍부한 성공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어서 읽기가 정말 편했다. 그 편함 속에 우리들이 생활하면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책을 통해 간접경험할 수 있었다는 게 이 책이 내게 준 큰 기쁨이었으니깐. 스튜어트 다이아몬드란 화가가 그린《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란 그림 속에 열두 가지 핵심 전략으로 밑바탕을 칠하고, 표준과 프레이밍을 통해 열매도 그려 넣고, 서로 다른 문화적 차이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전체적인 그림의 윤곽을 완성하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협상 모델을 활용해서 그림의 화룡점정을 찍는,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는 비밀들을《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란 그림을 통해 알았을 떄 느꼈던 희열을 여러분들도 느꼈으면 좋겠다. 책 내용을 조금 더 부연하자면 책에서는 <통상을 뒤엎는 원칙들>과 <원하는 것을 얻는 비밀>이라는 큰 주제를 통해 확장형의 소주제들이 등장하고 그 소주제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능력을 우리들에게 상기시킨다.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며 상대가 원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거기에 맞는 방법으로 대처했을 때 본인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론을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열두 가지 핵심 전략을 기본 프레임으로 해서 여러 도구들(관계, 의사소통, 표준과 프레이밍, 가치의 교환, 감정, 문화적 차이, 협상 모델, 협상 전략)을 사용해서 협상에 임한다면 그 협상은 분명 성공할 것이라는 게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교수의 확신이고, 그 확신의 결과물이 바로《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이다.


얼마 전 나는 바리스타 2급과 1급이라는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 취득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남들보다 수월하게 자격증을 딸 수 있었던 건 바로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교수의《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를 읽었고, 자격증 취득에 이 책에서 배운 기술을 잘 활용했기에 쉽게 딸 수 있었다고 확신하면서 그 방법론을 여러분들께 소개한다. 바리스타 1급 실기 과정은 에스프레소 4잔, 카푸치노 4잔을 감독관에게 제출하면 끝나는 시험이다. 그 과정 속에는 내가 추출하는 원두의 종류를 에스프레소의 맛과 향만으로 맞춰야 하고, 원두의 분쇄 입자를 본인 스스로 조절해서 에스프레소가 정해진 시간(20~30초) 안에 정량(30ml)이 나와야 하며, 카푸치노 4잔엔 라테아트(로제타, 3단 튤립)가 포함되어야 하고, 우유 거품과 에스프레소가 적절히 배합돼서 제출을 해야 합격하는 시험이다. 하지만 나는 카푸치노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우유 스팀 과정에서 우유 거품이 넘치는 상황을 두 번이나 경험했다. 정해진 시간에 스팀을 3번 한다는 건 우유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카푸치노의 라테아트를 만드는 데 있어서 모양이 잘 나오지 않아 실격을 할 수도 있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이런 순간에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교수의《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에서 소개한 <원하는 것을 얻는 협상 모델>이 생각났고, 열두 가지 핵심 전략을 베이스로 삼아서 바로 협상 모델을 바리스타 1급 실기시험에 접목시켰다.


 <문제 파악과 목표 수립>

 : 먼저 우유 거품이 넘치는 원인을 파악 → 스팀 노즐을 우유 컵에 너무 깊게 담갔고, 손목에 힘이 들어가 경직이 돼서 손 움 직임이 많이 부자연스러움


 <상황분석>

 : 우유스팀을 다시 하지 않으면 실격이 유력시되기에 우유 스팀 다시 시도하기로 결정!(스스로 상황을 분석하고 판단함.)


 <옵션 선택과 리스크 대처>

 : 우유 스팀 포기로 인한 실격보다는 시간이 부족하더라고 우유 스팀을 다시 함으로 인해 실격은 면하고자 판단(시간 초과 로 인해 감정은 되지만 실격은 되지 않기에 가능.)


 <행동>

 :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나 자신에게 불어넣은 후 손목에 힘을 빼고 우유 노즐을 다시 적정 깊이로 집어넣고 스팀 시작 → 손목에 힘을 빼자 우유를 스팀하고 혼합하는 과정이 전보다 자연스러워졌고, 우유 거품이 카푸치노에 맞게 잘 만들어짐


이렇게 <원하는 것을 얻는 협상 모델>을 통해 시간 초과에 대한 감점은 있었지만 바리스타 1급 실기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고, 그 당시의 상황을 생각하면 지금도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교수의《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에 고마울 따름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자격증 시험에서 시도한 <원하는 것을 얻는 협상 모델>이란 방법이 거의 모든 상황에서 접목해 쓸 수 있고, 또한 상대방과 협상할 때뿐만 아니라 본인 스스로 곤란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란 점에서 <원하는 것을 얻는 협상 모델>이란 도구를 많은 분들께 소개하고 싶었고, 여러분들도 이 방법을 여러 상황에서 사용하시라 권해드리고 싶다.


우리는 매번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애쓴다. 노력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는 사람도 있고, 얻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력의 유무를 통해 결과를 결정짓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력보다 더 중요한 건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을 만나도,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게 해주는 최고의 해결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 해결법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받지 않을 수 없었다. 회사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가격을 흥정하는데 있어서, 한 사람의 마음을 얻는데 있어서, 자녀교육을 시키는데 있어서, 한 회사로부터 원하는 서비스를 얻는데 있어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자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지혜로운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원하는 것을 얻고 싶은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교수의《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를 읽고 그 방법을 실천해보라. 여러분이 삶의 주인공이 되는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아는 걸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지금 배운 걸 일상생활에서 시도해보세요. 오늘 당장!”

(책 17쪽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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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세트 - 전2권
한차현 지음 / 도모북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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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가수의 노랫말처럼 젊은 날엔 젊음을 왜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왜 보이지 않았을까?

미숙했다는 말이 맞을 듯 싶다. 풋풋한 스무 살, 대학이라는 낯선 곳에서 나에게 처음으로 주어진 자유를 만끽하기 위한 객기에 젊을을 바쳤고, 처음 해보는 사랑은 많이 서툴렀겠지. ‘젊음’이라는 무기를 내가 아닌 우리들에게 맞추다 보니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을 것이고, 지금에 와서는 8~90년대의 기억들이 아련한 추억이 되어 그들의 가슴 깊은 곳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때를 살아간 사람들과 8090의 추억을 간직한 사람들이 읽으면 반가울 책이 바로 한차연 작가의《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1, 2》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본문 293쪽 中, 1권)


이 소설은 얼마 전 크게 히트를 친 응답하라 시리즈 중 1988의 소설 버전이라고 생각해도 좋겠다. <응답하라 1988>이 덕선과 정환의 사랑이야기 속에서 1980년대 대한민국의 전반적인 사회상황을 잘 묘사한 드라마라면《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1, 2》는 스무 살 대학생 새내기 시절에 만난 차연과 은원의 사랑이야기 속에 8~90년대의 사회상황과 문화, 그 당시의 생활상이 비교적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는 소설이다. 솔직히 대한민국의 1980년대는 정말 우울함의 정점을 찍던 시대가 아니었나? 독재정권에 반대하며 하루가 멀다 하고 시위가 벌어졌고, 그 시위의 끝물에 태어난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들은 피폐해진 우리들의 영혼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IMF라는 거대한 암초도 만났었고, 새로운 문화의 사라짐과 나타남의 연속성 속에서 우리들은 자라났고, 지금의 대한민국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소설 중간 중간에 내가 아는 노래가사가 나오면 흥얼거리면서 음악도 찾아서 들어봤고, 대학생들의 MT장소로 환영받았던 장소가 나오면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에 메모도 해가면서 읽었다. 또 내가 차연이라면, 내가 은원이었더라면 저 상황에서 저렇게 행동했을 텐데, 행동하지 않았을 텐데...를 되내며 내 자신이 소설 속에 동화돼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었다. 다만 시대적 상황이 1980~1990년대라 시각적 효과를 분명하게 전달한 드라마와 달리 글로 시대적 상황과 그 당시의 문화를 전달해야 하는 한계성을 예쁘게 봐줄는지는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 두는 게 좋겠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문제, 누군가와 사귀는 문제에 한해서는 어떤 경우건 예의를 찾을 필요가 없다는 거야. 어떤 경우건 양심과 염치를 찾을 필요가 없다는 거야. 왜냐하면 사랑은 원래 예의 없는 거니까. 비양심적이고 염치없는 놈이니까.” 

(본문 72쪽 中, 2권)


총 2권, 800여 페이지에 가까운 소설을 읽는다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한차연 작가의《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1, 2》는 술술 읽을 수 있는 소설이라 분량에 대한 부담감은 접어 두고, 추억에 대한 아련함을 마음 속에 간직한 분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8~90년에 향수를 가지고 계시거나, 그 당시의 노래나 문화에 대해 추억이 있다면 이 소설을 읽는데 더 큰 재미를 느낄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차연과 은원의 10년 동안의 연애에서 사랑을 지킨 것은 2할의 ‘의리’와 8할의 ‘권태’라는 그들의 사랑에 대한 결말이 어떻게 끝이 날 것인지는 이 소설을 통해 독자 여러분들이 직접 확인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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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도 있는 사람
전민식 지음 / 답(도서출판)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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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식 작가의 《알 수도 있는 사람》을 읽고 제일 먼저 생각난 소설이 은희경 작가의 <마이너리그>였다. 소재와 내용은 물론 달랐지만 유신시대와 현재의 팍팍한 시대를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너무나 비슷했으니까. 거기에 메이저리거가 되고 싶어도 마이너리그에서 벗어날 수 없는 등장 인물들의 모습에서 ‘포기’라는 말보다 ‘체념’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그렇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2017년 9월의 대한민국은 바로 메이저가 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지만 결국엔 마이너밖에 될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빅리그에 진출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보다도 어려운 세상이 돼버린 것이다. 누가 대한민국을 이렇게 마이너리거들의 천국으로 만들어버린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는지는 모르겠으나 전민식 작가의 소설《알 수도 있는 사람》을 읽고 나면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으리라.


드라마나 뉴스를 보면 새벽에 외제차들이 모여 레이싱하는 모습을 간간히 볼 수 있다. 서로의 배기량을 뽐내며 새벽의 고요함을 부셔버리는 그들의 갑질이 레이싱에서도 그대로 묘사된다. 이 소설에서도 밤마다 의문의 거리 레이싱이 펼쳐진다. 전자와 다른 점이 있다면 배기량 2,000cc 이하의 국산 차만 참가 가능하고, 그 레이싱에 참가하는 선수들 또한 사회에서 갑질을 하는 사람이 아닌, 갑질을 당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그리고 1위에게만 주어지는 상금을 통해 그들 현재의 삶을 연명해 나가려는 마이너리거들의 레이싱이라는 것이다. 그 레이싱을 통해 그 누군가는 하루를 연명하고, 다른 참가자들은 후일에 펼쳐질 레이싱을 위해 하루 하루를 연명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비밀 말해줄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실은 비틀즈의「헤이 쥬드」야. 슬픈 노래일지라도 즐겁게 불러보세요. 내가 이 노래 좋아한다는 거 아무도 모를 거야. 고통을 느낄 때, 쥬드여, 무리하지 말아요. 세계를 짊어져서는 안 돼요. 슬픈 노래일지라도 즐겁게 불러보세요.’(27쪽 中)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왜 SR(Street Racing)에 참여했는지를 쫓아가 보는 것도 이 소설을 읽는 소소한 재미다. 객원기자로 생활하는 용주에게 기삿거리는 방세를 내기 위해서라면 표절도 서슴지 않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고, 카센터를 운영하는 기성의 삶은 신분의 격차 속에서 방황하는, 낡디 낡은 스페어 타이어의 삶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의류회사에서 영업을 하는 영미는 구조조정이라는 덫 속에서 실적에 따라 자신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하루살이 삶을 살아가고 있었고, SR(Street Racing)을 만든 수인은 자신의 기구한 운명 속에서 옛사랑의 추억에 빠져 사는 인물로 묘사됐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하나같이 내 주위에 고개만 돌리면 만날 수 있는 회사동료이자 친구들이었다. 사회나 회사에서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외면당하고, 갑질 당하는 아웃사이더의 삶 속에서 SR(Street Racing)은 그들에게 지금의 지리멸렬한 삶에서 탈출하는 해방구이자 도피처가 아니였을는지 모르겠다.


이 소설의 마지막은 수인, 기성, 용주, 영미가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사하라 랠리에 참여하기 위해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다. 지금까지 참가했던 SR과는 다르게 사하라 랠리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경기이고, 자신이 지금까지 벌었던 전 재산을 투자해서 참가하는 경기이기에 그 위험부담이 상당함에도 그들은 사하라 랠리에 힘찬 발걸음을 내디딘다. 1등을 한다는 보장도 없이 사하라 랠리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출사표를 던진 그들의 의중이 궁금했다. 돈 때문에? 아니면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고픈 욕구 때문에? 그것도 아니면 죽음을 담보로 달리는 레이싱이 그냥 좋아서였을까?


네 사람은 철저하게 모래사막에 고립되었다.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가늠되지 않는 사막의 지평선이 네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꿈과 희망은 물론 절망마저도 집어 삼켜버린 뜨겁고 빨간 사막 위로 아지랑이 기둥이 커튼처럼 드리워지고 있었다.(310쪽 中)


사람들 누구에게나 가슴 절절한 사연 하나씩은 감추면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그 사연을 감추고 싶은 4명의 주인공들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살았던 과거를 잊기 위해 죽음을 담보로 랠리에 참가를 한다. 그러면서 새 출발을 위해 대한민국을 떠나면서 이 소설은 끝을 맺는다. 랠리에 참가한 주인공들이 사막 한 가운데서 창밖으로 그들의 이름을 외치는 순간 마음 한쪽이 한없이 아려왔다. 희망으로 들려야 할 환호가 그들의 아픔을 대변하는 절규이자 아우성으로 들렸다. 꼭 불구덩이에 죽으러 가는 사람들처럼 그들의 모습이 사막 한가운데서 점점 희미한 점들로 오버랩되면서 내 마음을 마구 흔들었다. 그들의 새출발을 힘차게 응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이 미웠고, 그 미움 속에서 대한민국은 새로운 수인, 기성, 용주, 영미들을 만들어낼 거라는걸 알기에 더 마음이 아팠는지 모르겠다. 대한민국에서 메이저의 횡포에 고개 숙이며 살아가는 이 시대의 마이너들에게 이 소설이 주는 울림이 전해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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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비처럼 - 시처럼, 만화처럼 세미콜론 툰
권혁주 지음 / 세미콜론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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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만화가 만나서 그려내는 세상은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요? <옴비처럼>을 통해 그 상상의 세계를 안내해 드릴게요.
시와 만화의 컬라보가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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