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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평점 :
한국사는 필수교육과정이고, 특히 근현대사는 말 그대로 근래에 있었던 역사적인 사건들이 소개되는 만큼 아주 옛날 일들에 비해 사료가 훨씬 많아서 자세히 파악하기 쉬운 편입니다.
김훈 작가의 '하얼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제가 알고 있는 어줍잖은 근현대사 지식들과 별다를게 없는 다큐멘터리적 소설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예상과 전혀 다른 쪽으로 포커싱이 맞춰져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고 읽어내릴 수 있어서 좋았네요.
저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라는 커다란 주제에 포커싱을 맞추는게 아니라, 그러한 결단을 내리고 순국하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안중근'이라는 인물 자체를 전지적인 시점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이렇게 개개인에 초점이 맞춰지는 작품인 만큼 암살대상이었던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서사들과 심리까지 묘사되어 있는데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소설로 집필할 경우 등장인물들의 명분이나 의도가 희석이 되어 그 작품을 읽는 독자들에게 의구심까지 들 수 있을 정도의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데 김훈작가는 이토 히로부미를 세탁의 여지가 없는 제국주의 그 자체로 덤덤하게 묘사하고 있어 부여된 개성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서 역시 대단하다 생각들었네요.
이토 히로부미는 역사적으로도 이미 하얼빈 의거 이전에 암살위협을 받은 전적이 있어서 대중에게 사진이 뿌려지는 것을 극히 경계했다고 알고 있는데, 거기에서 오는 안중근 의사의 부담과 고뇌까지 연계해 표현한 점이 아주 와닿았습니다.
"탄창에 네 발이 남았을 때, 안중근은 적막에서 깨어났다. ……나는 이토를 본 적이 없다…… 저것이 이토가 아닐 수도 있다……"
천주교인으로써의 고뇌도 엿볼 수 있다는 점도 매우 놀라웠습니다. 안중근 의사와 동료들은 본인들의 처지 안에서 최선의 판단을 내려 결국 암살을 완수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어서 굳건한 결의와 함께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된 것이 아닌가 하는 제 착각을 완벽하게 깨줄 정도로 그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과 다르지 않게 윤리적인 고민을 하였다는 것이죠.
저도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고 순국을 하였을 때와 그리 차이가 없는 나이여서 그런지 정말 이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더욱 가슴이 먹먹했네요.
사형 당하기 전의 두 신부님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죄를 덜어주려는 선의와 교회의 안위를 걱정한다는 역설이 맞물려서 절로 '이것이 정말 현실이 맞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과정들까지도 너무 씁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냥 단문으로 역사공부를 할때는 동경심이 우선이었지만 지금은 '청년'으로써의 안중근을 여러가지 복잡한 감정으로 바라볼 시야가 생겨서 책을 접한게 아주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비단 안중근 의사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애쓴 많은 분들의 마음 속 이야기를 알아가고 싶어 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