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의 일 (양장)
이현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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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호수의 일
이현
창비

돌아갈 장소의 부재,
그럼에도 고여있어야 하는 나.

내 의지가 아닌, 부모에 의지에
하루 아침에 나라는 세계가 바뀌어버리는
학창 시절, 

내 안의 호정
호정 안의 내가 되어
학교를, 아이들 사이를, 어른들 사이를
달리다 숨차 멈추고 다시 걸었다.

호정은 호수
얼어붙은 호수의 밑바닥에
웅크려 있었다. 그 누구도 나의 마음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무심함으로 채워버렸다.
학교는 호수, 가정도 호수.
호정의 숨, 그저 숨 하나로 모든게
금이가고 깨져버리는 호수가 되었다.

사람이라는 호수
환경이라는 호수

호수의 일은
인과관계 아닌 관계 속에서
무한의 탐색도 심오한 집중도
할 수 없이 힘한 외로움과 시끄러운
속을 껴안고 매일을 살아가는 십대와
마주한다.

괜찮지 않음을 모르고
괜찮다 이야기하지 못했던
아픈 나,

돌이킬 수 없었던 사실이
작은 점에서 시작해버린
거침없이 커져버린,
엉키고 설킨 실타래의 끝

지금은 멈추고 찬찬히 감아볼 수 있지만
그때는 엉킨 실의 뭉치, 커져버린 검은 마음
그 앞에서 어쩔 줄 몰라 그저 멍하니
자신을 탓하며
흐르는 시간 속에 멈춰 아니 얼어붙었던
나를 만났다.

나는 하지못했던
호정은 했던 그 말

스스로에게
상처입은 누군가에게 했던
마지막 말


"나 사실은......좀 아팠어. 그치만 괜찮아지노 있어. 괜찮아지려해. 너도........
.......너도 그랬으면 좋겠어."

이 말을
그 때의 또다른 은기인 나에게
지금의 덜 커 있는 나에게
해 본다.

📑지울 수 없는 그래서 기억하려하는 책 속 문장


내 마음은 얼어붙은 호수와 같아
나는 몹시 안전했다. p7

다 털어놓을 생각은 없다.
물을 비워 버린 호수는 호수가 아닐 것이다.  P9

그 때의 나는 어떤 아이였을까.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대체되는 게 아니다. 하지만 다른 사랑으로 채워지기도 하는 거라서 할머니의 사랑이 외로움을 따듯하게 달래 주었다. 구체적인 기억은 없지만 내 마음의 어딘가 그 온기를 기억하고 있다. P135

서운하다는 건, 누군가를 위해 마련해 둔 자리에만 생겨 나는 마음이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서운해지기도 하는 일인 모양이다. P175

너무 많은 질문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말의 모양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나는 그 마음들의 이름을 몰랐다. 나는 그저 아팠다. P260

온 학교가 고요에 잠겨 있었다. 깊은 호수에 잠겨든 것처럼. 차갑고도 어두운 호수에,  얼어붙은 호수에.p264

나래의 세계와 내 세계가 다를 뿐. 학교가 아니었다면 우리 둘이 친구가 되는 일이 있었을까? 하지만 우리는 친구다. 우리에게는 아파트와 빌라의 차이에 비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P319

내 마음은 얼어붙은 호수와 같아 나는 몹시 안전했지만, 봄이 오는 일은 내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었다.
P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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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거인 - 어린이 책을 고르는 어른들을 위하여 바깥바람 10
최윤정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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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엄마와 아버지로 불리는 순간부터 아이는 나의 정체성의 일부가 된다. 날마다 내 눈앞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 그 아이와의 관계는 나의 실존이기도 한 것이다.
아이라는 거울이 되비추는 내 모습을 동화 속에서 다시 한번 음미하는 작업, 혹은 아이와 더불어 자라는 일, 아이를 낳고 기르고 가르치지 않았더라면 모르고 지나쳤을 내 안의 슬픈 거인을 만나는 일, 행복해지려면 죽을 때까지 성장해야 하는 숙명을 타고난 인간에게 그것은 정녕 행운이다. p14

책을 읽기 전 기대를 했었다.
초등학교 들어간 내 아이를 위한 책들,
양질의 책을 고르려 이 책을 선택한 부모들,
좋은 책이 좌라락, 부모들에 대한 칭찬 좌라락 나올거라는 기대.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칭찬아닌 혼쭐이 났다.

부모가 원하는 것과 아이가 원하는 것은 다르다.
먼저 아이에게 "진정 네가 원하는게 무엇이야?"라
물어본 적이 있는지 의문을 던진다.

아이를 양육하고 보호하려고 한 나머지
아이의 의사, 자기 삶을 살고 있는 아이의 권리를
무시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아이를 위해 고르는 어린이 문학
아이가 잘되길, 아이에게 도움이 될 책들을 고르며
과연 부모인 나는 그 어린이 문학을 확인하는 작업을
거쳤는지 되돌아보았다.

그저 재미,
그저 교훈,
그저 추천,
그저 수상 그런게 아닌

문학속에 서술된
어린이라는 세계의 본질과
아이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끌어와
내 아이에게 대입해 보았는지 떠올려보았다.

사실
나는 어린이 문학을 즐겨 읽는 독자였다.

어린이 문학 속의 아이를 통해
아픈 내면 아이를 무감각의 갑옷으로 입힌 만났고,
되고 싶었던 나를 만났고, 미웠던 사람들을 용서하고,
또다른 세상을 탐험했다.

슬픈 거인을 만났었다고 자만했었다.
슬픈 거인은 안녕 하고 충만한 거인만 있다고.

그러나
책을 읽어가면 갈수록 스스로가
오스카 와일드의 <정원의 거인> 속 거인
같았다.

시끄럽다고
정원의 어린이들을 쫓아내고,
겨울이 왜 끝나지 않고
봄이 오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거인.

거인의 옆
책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이 문학으로 내 안의 어린 나를 어루만지지만
정작 내 품의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어린이의 세계를
걷고 있는 슬픈거인 같았다.

제대로 만들어진 책
어린이라는 과정의 교집합
그리고 웃음

봄이 오지 않은 이유를 깨달은 거인이
바로
아이들을 초대한 것 처럼

세가지의 도구를 가지고
아이들을 어린이 문학이라는 정원,
엄마와 뛰놀 수 있는 정원에서 놀아야겠다.

봄이 오는 골목에서 서 있는 저자.

저자의 봄이 무엇인지
책을 통해 알았다.

슬픈 거인이
더 이상 슬프지 않고
따스하고 다정한 거인으로 거듭날 존재.

어린이

그 어린이에게
제대로 된 책을 줄 권리를
돌려줘야겠다. 따로 또 같이 읽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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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세상 끝 아파트에서 유령을 만나는 법 + 얼음 속의 엄마를 떠나보내다 + 클락워크 도깨비 - 전3권 고블 씬 북 시리즈
정지윤.남유하.황모과 지음 / 고블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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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은하철도 999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기계의 몸으로 무한한 삶을 가진 메텔이 바라보고 있는 대상. 영혼의 몸으로 유한한 삶을 살았던 과거의 자신. 유한과 무한, 영원과 찰나의 양가적 감정이 떠올라, 그리고 좋아하는 작가이기에 망설임없이 펀딩에 참여했고, 선택은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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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얼굴들 - 빛을 조명하는 네 가지 인문적 시선
조수민 지음 / 을유문화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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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얼굴들 에서
나는 조수민 작가에게 묻는다.

"빛이 뭐에요?"
"세상을 바라 보세요.
그러면 답을 찾을 수 있을거에요"

1년 간 매일 만보 이상 걸었다.

나의 얼굴은
시간과 함께
아래에서 정면으로,
정면에서 위로 향하게 되었다.
시선과 함께
시야로 많은 것들이 비추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부조화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살아있는 것들이.

좋아하는 시간과
좋아하는 색깔도 생겼다.

해가 뜰 무렵과
해가 질 무렵,

세상을
환타빛으로 가득채우는 새벽에서
세상을
보라해로 만드는 황혼까지

내 얼굴과
빛의 얼굴이 마주하는 경험을 했다.

내가 아침과 낮의 빛의 얼굴을 만났다면
나의 두 아이는 밤의 빛의 얼굴과 만났다.

삼층, 창으로 비추는 밤의 빛을 본다.
밤의 색의 다양함, 빛 사이로 흐르는 달과 구름,
강약중간약의 리듬과 속도를 자기들끼리
두런두런 거린다.

우리가 빛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명확하다.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이 사물과 공간이기 이전에 '빛'이기 때문이다. P20


빛의 얼굴들에서
형태를 다루지 않는 디자이너라는
이색 타이들의 저자 조수민은
1.빛에 대한 오해 2.빛과 사람
3,빛과 공간 4.빛과 사회
네가지의 시선으로 빛을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가 대상을 본 것이 아닌
우리에게 대상이 보인 것이다.
빛에 의해서.
나와 대상 사이에 존재하는 빛,
빛이 있기에
우리는 물들여지고 채워지는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직선광과 천공광이라는 태양의 빛을
담기 위해 노력하고
태양의 빛을 대신하기 위해
실내의 빛, 조명에 신경을 쓴다.

우리 삶의 공간과 자연의 빛이 만날 때 그 빛은 우리에게 에너지와 풍요로움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말랑말랑한 감성을 이끌어내기도 하고, 편안한 시환경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그와 반대로 잘못된 빛의 사용은 우리의 눈을 부시게 하여 불편함을 이야기하고, 비효율적인 에너지 사용을 만들어내며. 심지어 우리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기까지 한다. 이처럼 자연의 빛과 인공의 빛을 공간과 삶에 녹여 내는 것, 삶에서 빛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더 나은 빛 환경을 만드는 모든 행동을 진정한 조명 설계라 할 수 있을 것이다.p148

노란빛으로
붉은빛으로
분홍빛으로
파란빛으로
단풍이 물들 듯
"사물의 색은 서로에게 묻게 되어 있(p159)"다.

단풍처럼
염색한 나의 머리카락처럼

나와 사람의 관계 만큼
나와 사물의 관계
나와 자연의 관계도 그러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빛을 품고 있기에
품은 빛에 따라 색깔을 뿜고 있기에.

공간과 사물은 빛을 받아 반사함으로써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모든 사물은 각자 존재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빛 안에서 서로 상호작용 하고 있다. 마치 따로 또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처럼. P166

태어났기에 혼자될 수 없는 존재.

그렇기에
사람은
실내의 빛에서
공간의 빛으로
마을과 도시의 등불이자
삶의 등대로 서로를 비추고
좋은 영향력을 묻고 묻히는 사이여야 할 것이다.

내일은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을 통해
그들이 보고 느끼고 만졌던 빛의 얼굴들을
느껴야겠다.

관계 속의 빛을 모아
인생의 하얀 도화지를 멋지게 수놓을
빛그림을 그리는 시간,
즐거운 미술시간 마술시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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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상처받았나요? - 상처 입은 사람에게만 보이는 술 빼고 다 있는 스낵바가 문을 연다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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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상처받았나요?
상처 입은 사람에게만 보이는 술 빼고 다 있는 스낵바가 문을 연다.
마스다미리
이봄

아무도 모른다.
오늘 나에게 어떤 일이 있었고,
오늘의 나의 마음이 안녕한지 그렇지 못한지.

나 외에.
아니 나 또한 나를 모를 때가 많다.

무리 속에 있지만
결국 혼자인 존재.

바쁘고 외로운 현대인들,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7년 만에 나온 마스다 미리의 신작
<오늘도 상처받았나요?>를 읽었다.

전작들과는 느낌이 달랐다.

9인(스낵바 딱다구리의 도코는 제외)은 처음엔
앞면은 예쁘게 옷도 입고,  표정도 미소 띄지만
뒷면은 아무것도 없는,  평면의 종이인형들 같았다.

아이들이 골목 끝
'전천당'이라는 다 있는 과자 가게를 발견하듯

8명의 성인들과 1명의 청소년은
'스낵바 딱다구리'라는 술 빼고 다 있는 바를
발견한다.

상처 입은 사람에게만 보이는 가게.

스낵바 딱다구리의 주인 도코가
술을 못 마신다는 이유로
술은 팔지 않는 곳.

주문을 받은 도코,
친절하지도 그렇다고 불친절하지 않는
주인 도코는 손님의 주문을 받으며
한마디 더 건넨다.

"오늘도 수고 많았어요."

도코는 손님들에게 제안한다.

노래부르기
연탄곡 연주하기
에어기타 연주하기
탭댄스 추기
소나기 바라보기

그녀의 황당한 제안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홀리듯 함께하며
스스로
자신의 상처를 보고, 만지고, 치유한다.

평면에서 입체로
백지였던 뒷모습이 저마다의 색과
저마다의 꽃으로 수 놓아졌을 듯 하다.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혼자가 되지만
실컷 울고 난 후
아무도 없어 약간은 서럽고 외로워 질 때

멀치감치
다 울기를 기다린
나를 기다린 존재가 있다면.

9인의 곁에서
함께 해 준 도코.

오히려 일면식 없는 선량한 타인
말 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

여백을
노래로, 낭독으로, 춤으로
같이 채우며 스스로 마음을 챙길 수 있는
스낵바 딱다구리 같은 공간이
지금은 물론 미래에 더 절실히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스낵바 딱다구리를 열어야 하나?^^)

내리는 소나기처럼
일직선으로 살고 싶어도

장애물로 인해
상처입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상처의 연속임에도

지금 여기 있는 나를 아는 것,
그저 오늘도 그런 나를 한발 앞으로
가게 하는 것, 그것이 가치있는 인생임을
얘기한다.

텅 빈 스낵바 딱다구리에서
도코는 홀로 노트를 펼치고
무언가를 적는다.

무엇을 적을지
궁금하다.

내가 도코라면
나의 상처와 내가 목격한 나의 사람들의 상처를
적을 것이다.

후에
나의 삶의 궤적을 증명해 줄 빛나는 증거가 될 상처들을 말이다.

'우리는 어쩌면 서로 작은 상처들로 연결되어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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