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키오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6
카를로 콜로디 지음, 김양미 옮김, 천은실 그림 / 인디고(글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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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작가 카를로 콜로디 원작의  피노키오는 1881년부터 1883년 사이 어린이 신문에 연재된 동화이고, 원제는 피노키오의 모험이다. 인디고의 명작 시리즈는 성인을 위한 동화책이나, 원작 자체가 어린이를 위한 동화이니만큼 교훈적이며 모험적이고, 동화적이다.

 

원작에서 말썽꾸러기 피노키오는 그 탄생 배경부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디즈니판과는 조금 다르다. 그는 땔깜에 불과한 나무토막일 때부터 이미 생명을 가지고 있었으며, 아이들의 악의적 특성 중 못된 장난꾸러기의 본질을 태생부터 지니고 있었다. 책에는, 그 나무토막은 어디에서 왔는지, 그 애초의 생명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밝히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무도 모른다'고 못박는다. 인류의 탄생 만큼이나 불확실한 못된 짓을 골라하는 어린 나무 인형. 피노키오는 그 나무가 인형이 되고,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의 본성인 게으름, 못됨, 어리석음들을 조금씩 깨우치는 과정의 모험 이야기이다.  

 

제페토가 피노키오가 인형이기 이전이던 시절 살던 버찌 영감 집에 꼭두각시 인형을 만들 나무토막을 구하러 갔을 때부터,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한갖 나무토막은 남을 골탕먹이고 못된짓을 하는 본성을 드러낸다.  이름 없는 나무토막은 두 노인을 놀리고 때려  싸우게 만들더니, 제페토가 집으로 가져와 눈과 코 입 다리 발을 차례로 만드는 족족 눈을 굴리고 코를 늘리고 깔깔거리고 쪼로록 달려나가 도망쳐 버린다.

 

피노키오의 행동은 개구진 아들을 키워 본 엄마라면 질리게 경험한 갖가지  7살 미운짓 못된짓을 내내 반복한다. 그러면서 또한 7살 어린 아이들이 곧잘 잘못을 뉘우치고 애정을 갈구하고 엄마와 화해하는 그 달콤한 과정 또한 반복한다. 원문의 피노키오가 계속 유혹에 현혹되어 못된짓을 하면서 곤란에 빠지고 후회하고 다시 반복하는 과정은 디즈니 버전보다도 더 험난하고 더 많다. 어쨌거나  아이가 자라 성인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숱한 유혹들과 닮아 있다.

 

중역인듯 보였지만, 인터넷에 영어 원작이 있어 몇군데 비교해보니 한두번 등장하는 고양이 여우등의 이름을 빼버리고 바로 장님 고양이, 절름발이 여우로 지칭이 바뀐 거 말고는 완역에 가까워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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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 연대기 - 은유, 역사, 미스터리, 치유 그리고 과학
멜러니 선스트럼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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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총 442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레퍼런스만 30쪽 가까이되는 이 책은 미국의 저술가 멜라니 선스트럼이 자신이 가진 통증을 매개로 하여 통증에 관한 역사적, 철학적, 문화적, 종교적, 의학적, 신경과학적 해석을 엮은 책이다. 책이 가진 지식과 정보의 가치 자체로도 유용하지만, 개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자아의 성찰이 통증이라는 매기변수를 만났을 때 겪는 내면의 변화와 혼동을 똑 부러지는 문체와 문학적 감수성으로 잘 버무려 놓았다. 교양서적을 읽는 것인지, 의학서적을 읽는 것인지, 체험적 수기 소설을 읽는 것인지 혼동스러울 때도 있다. 어려운 단어와 철학적인 문장도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읽기 불편한 부분 없이 번역도 좋았다.

 

 

 

통증은 통증 자체로 질병이다. 통증은 극단적 주관성을 가지며 사람들이 저마다 통증이라고 일컫는 것의 성격을 규정하려는 시도가 무익하다. 최근 임상의사 사이에 통증은 "통증을 경험하는 사람이 통증이라고 말하는 것이 통증이며, 그가 통증이 존재한다고 말할 때 통증이 존재한다. -매캐프리 "로 정의된다. 감각, 정서, 인지의 세원이 교차하는 알쏭달쏭한 교집합이 통증이다.

 

내가 이 책에 관심을 가진 건, 물론 내가 가졌던 통증에 대한 기억, 내가 지금 가진 통증, 내가 미래에 갖게 될 통증 때문이다. 나는 나 스스로 그리고 외부 사람들에게 엄살이 심하고 통증에 대한 민감도가 높다고 평가받는다. 아이를 낳을 때에 경험한 통증은.. 그 때 우주를 보았다. 우주가 어떤 까만 색의 블랙홀 같이 휘몰아치는 고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도 계속해서 두통과 피곤을 몸에 달고 살고 있는데, 두통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머리아파. 라고 말하면 그 말을 아무도 공감하지 못한다. 공감을 바라지도 않는다. 단지 내가 머리가 아프니 약먹고 잘 것이니 내게 말을 시키거나 일을 부탁하거나 밥을 달라고 하지 말라는 뜻으로 하는 말이다. 통증이 은유일 때에는 마음이 아픈 만큼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가 있다. 그러나 마음이 아픈 것과 실제적인 통증은 다르다. 그 아픔은 자아를 야곰 야곰 갉아먹고 자신을 부순다. 통증을 타인과 공유할 수도 전달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 그 물리적 아픔은 소외이고 파괴이다. 병이 무서운 건 죽음이 아니라 죽음을 피하기 위해 몸에 가해져야 할 지도 모를, 무지막지한 기계에 의해 손상되는 신체 조직과 그로 인한 통각을 수용하는 감각적 인지적 정서적 작용이다. 통증도 무섭지만, 통증과 맞닥뜨리게 될 쪼그라진 자아가 두렵다.

 

이 책이 통증에 대한 정보를 주었지만, 실제적인 통증을 가진 환자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듯하다. 다만 통증에 대한 인식, 통증 그 자체로도 하나의 질병으로 보는 그 인식이 보편화되어, 통증을 어느 질병의 증상으로서가 아닌 그 자체로서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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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노래 - 2013년 제44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이승우 지음 / 민음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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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후.

p40

박중위가 주는 라면을 받아먹지 않았다면.. 연희 누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태풍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문제 될 것이 없는 사소한 현상들이 태풍이 일어났기 때문에 태풍을 유발한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결과가 무작위로 원인들을 소환하는 이 시스템은 심리학적 요인에 의해 지원받고 강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예컨대 인간 심리의 무규칙성과 돌발성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을 세상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과 인과적으로 관련지을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낸다.

 

 

 

p115

헤브론 성이 그에게 도피성인 것은, 그가 세상에서 범한 과거의 죄로부터 그를 보호해 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앞으로 범할 죄로부터 그를 보호해 주기 때문에 더 그랬다.

 

 

 

p313

학대받음으로써 얻게 될 구원에 대한 도착된 소망이 그의 내부에서 커 가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 (중략) 그는 자기 고난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적어도 영광에 이를 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더럽고, 아직 더럽고, 여전히 더러웠다. 그는 자기가 얼마나 더 치욕을 겪고 고통을 받아야 깨끗해질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치욕은 거통과 더러움을 씻어 주첬지만 충분히 깨끗해지지는 않았다. 치욕과 고통으로부터 그가 부단히 확인한 것은 그의 더러움이었다.

 

 

 

한정효

p169

선글라스를 벗은 한정효는 선글라스를 쓰고 있을 때의 한정효와는 달랐다. (중략) 그의 눈앞에는 동원될 억지 논리와 무리한 기획과 희생자들과 시끄러워지고 혼란스러워질 세상이 보였다. 그러나 그는 그것들을 막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의 무력함이 그를 고통스럽게 했다. "못쓰겠다"라고 선언되었으므로 그는 더 이상 쓰이지 않을 것이었다.

 

 

 

p291

저 굉장한 말씀들은 애초에 이 세상을 이길 힘이 없어요. 세상은 크고 무섭고 힘이 세요. 언제나 그랬어요.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에요. 그에 비하면 말씀은 무력하기 짝이 없어요. 그건 말씀이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씀이 가진 힘이 다른 힘이기 때문이에요.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말씀은 세상에게 능욕당하고 옷 벗기고 채찍질당하고 창에 찔리고 못이 박히고 죽을 수밖에 없어요. 다른 힘이기 때문에 그래요. 하찮은 것이 자주 위대한 것을 이겨요. 예수님이 어떤 분이었는지 생각해 봐요. 그분은 땅의 법칙에 철저히 무력했어요. 예수님은 '나의 나라는 이 땅에 있지 않다'라고 했어요. 세상 권력에 대한 철저한 무능력. 그것이 그분의 진짜 능력이었어요. 그분이 무능한 것은 그분의 능력이 땅의 법칙 저 너머에 있기 때문이에요. 말씀들의 위대함도 땅의 법칙 너머에 있는 위대함이에요. 말씀들이 이 무자비하고 막무가내의 현실을 무너뜨리고 이기고 지배하리라고 기대하지 마요. 말씀이 굉장한 것은 현실을 이기기 때문이 아니라 현실을 넘어서기 때문이에요. 현실에서의 철저한 무능이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말씀의 능력을 역설적으로 증거하는 거예요.

 

 

 

 

 

 

p292

그는 세상을 떠나지 않은 채 세상과 상관없이 사는 일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다. 세상과 상관없이 살려면 세상을 떠나야 한다.. 세상을 떠나지 않으려면 세상과 상관해야 한다. 세상을 떠나지 않고 세상과 상관없이 살려고 하는 자는 세상으로부터 오는 상처와 굴욕을 각오해야 한다. 각오한다고 해서 상처가 나지 않거나 굴욕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상처와 굴욕을 각오해도 상처는 나고 굴욕은 견디기 힘들다. 그러나 그 상처와 굴욕이 곧 패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는 상처입고 굴욕을 당함으로써, 그 상처와 굴욕으로 승리했다.

 

 

알듯.. 말듯..

 

인간 내면의 세계를 그 깊고 미로 같은 보이지 않는 추상 속을 구석구석 탐험하고 해부학적인 언어로 기술한 대가의 작품이다. 책을 덮은지 몇 일 되었는데 아직 여운이 길다. 어쩌면 종교에 기대(?)를 이제는 포기하고 그냥 이해하는 입장에서 바라봐야 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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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선 그대가 꽃이다 - 시들한 내 삶에 선사하는 찬란하고 짜릿한 축제
손미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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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와 낭만을 연결시키는 고리의 실체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만 각인된 어떤 상징화된 사건이나 강렬한 스토리가 있는 걸까? 아니면 전세계 모두에게 파리는 낭만의 도시라는 의도된 도시 이미지 마케팅이 쌓이고 쌓여 어느순간 하나의 대명사처럼 낭만의 도시 파리가 되어 버린 걸까? 파리 위드 러브 니 로마 위드 러브 같은 제목의 영화들까지 나와 있는 걸 보면 딱히 우리나라에서만 보편화된 인식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어딜 가나 낭만을 결정하는 것은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이다. 세느 강변을 걷는다고 푸른눈의 백마 왕자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몽마르트 언덕에서 차를 마신다고 해서 서늘한 외모의 지적인 예술가와 사랑을 속삭일 것도 아니고, 에펠탑이 코앞에 있다고 해서, 르브루 박물관 앞에서 바게트를 들고 다닌다고 해서 그들의 역사와 문화가 통채로 내 것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유럽을 꿈꾼다. 그 꿈에는 파리나 로마나 바르셀로나 같은 역사적인 유럽의 도시에서 그들이 "되어" 그들의 역사와 문화 속으로 깊이 들어가고 싶은 경우도 많다.  이 책의 저자 손미나가 그랬다. 그는 단지 파리지앵이 되어 보고 싶은 것 외에는, 그리하여 그 느낌을 글로 쓰고 책을 낸다는 부차적인 이유 말고는 별다른 목적 없이 파리로 날아갔고, 에펠탑이 보이는 고풍스런 석조 건물의 아파트를 렌트하고 관광객들과 노인들 틈에 섞여 에펠탑 주변의 공원을 산책하고 노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미술관을 구경하면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그러나 꿈같은 낭만과 활기로 가득차 있을 줄로만 기대했던 파리는 우울하고 불친절 했고, 그녀에게 적대적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파리지앵들을 사귀면서 결혼과 사랑에 대한 그네들의 가치관을 엿보기도 하고 따뜻한 인간적인 속내를 느끼기도 한다.

 

이 책은 막연한 파리지앵의 꿈을 가진 청춘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고, 누추한 현실의 껍데기를 훌훌  벗어던지고 떠나고 싶은 영혼에 작은 위로를 준다. 마치 파리에서 살다 온 친한 친구의 모험담을 듣는 것처럼 가볍고, 신변잡기적이다.   여행서라기엔 정보가 부족하고 산문집이라기엔 깊이와 사유가 부족하고, 화보 역시 대개 지인들의 인증셧 위주이다.  파리에서 지내면서 생겼던 자잘한 일화들에 자신의 생각과 파리인에 대한 일반화를 덧붙이는 방식의 글이 대부분인데, 개인적으로는 크게 감동적인 것도 없고 재미있지도 않지만 한 때 스타였고 TV에 얼굴이 알려진 사람의 사생활과 마음속 끝 생각들을 낱낱이 엿본다는 면에서는 부족함이 없고 솔직하다. 책을 써 낸다는 것이 글 속에 들어있는 자신의 지식과 가치관과 때로는 인격까지도 은연 중에 드러낼 수 있는 것이라, 타인의 시선 안에 비칠  자신의 모습을 실제 자신의 모습보다 미화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솔직하게 읽힌다. 문장은 평이하고 어휘도 무난해서 부담없이 볼 수 있는 책이다.

 

파리인과 한국인의 중산층의 조건에 대한 부분은 이미 인터넷에 수도 없이 돌던 내용인데다가 자국민에 대한 자학적인 성격인 게, 한국인의 중산층의 조건은 말 그대로 경제적인 정의에 해당하지만 파리인의 조건이라는 것은 중산층이 대체적으로 가진 삶의 자세나 태도 같은 걸 적어 놓았다.  여행서가 대개 그렇지만 객관적인 정보와 작가의 지적 경험적 한계 속에서 일반화시켜 놓은 것을 잘 구분해야 한다. 몇몇 사람들의 생각이 그 나라 사람, 파리 사람들을 대표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인데, 이젠 서구문화에 대한 환상, 한 물 가지 않았는가. 그런 측면에서 봤을때, 조국을 잃은 홍세화의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를 통해  시대적 비극과 개인적 비애들을 함께 통감했던 지가 거의 20년이 다 되어 가고, 그동안 빠르게 진행된 세계화와 여행의 대중화를 통해 파리는 더 이상 그리 먼 곳도 그리 꿈꾸는 곳도 아닌 지금,  이런 류의 에세이는 조금 시대착오적인 느낌도 든다. 별 목적도 없이 가서 그리 놀다 오는 거, 손미나 작가로서야 이미 네임드 밸류를 가진 작가이자 전직 아나운서이기 때문에 노는 것 자체가 여행 글쓰기의 목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허용되는 예외이지만 모든 청춘이 사대 사상에 오염되었을 지도 모를 허황된 꿈을 쫓아 파리로 날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일반인에게 허황된 꿈은 그냥 망상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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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선 1
필립 마이어 지음, 임재서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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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에서 시작해서 루트 66을 타고 건축 대학과 미술관이 있는 주요 도시들을 들러 들러 텍사스까지. 

 

 지난 해,  보름 동안 지루한 사막을 가로질러 알버커키와 산타페를 들러 도달했다가  바로 밑 샌안토니오로 내려와, 멕시칸 국경선과 자주 맞닿은 도로를 타고, 미국에서 가장 더운 도시들을 들러 뜨거운 여름을 달려 돌아왔던 그 길. 그 길 위에서..

 

 구석 구석 숨어 있는 인디안 자치 구역과 박물관, 그들을 기념하는 자잘한 관광지들을 거치면서 나는 그들이 아직까지 지키려고 하는 그 초라한 명분인 보존과 전통이라는 것이 한없이 슬펐다. 국가와 자본주의와 밤에도 불빛이 넘치는 도시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를 때, 그 때 용감한 전사가 되어 죽고, 면역 없이 수천만년을 살아온 그 땅에 무지막지한 수의 백인 인구가 전파한 전염병들에 의해 죽고, 한 겨울 배반과 능욕으로 얼룩진 땅에서  쫓겨나면서 기아와 추위에 죽어, 그렇게 죽고 또 죽고 계속 죽어, 이제 겨우 100만의 인구수로 명맥만 잇고 있는 그들.  차라리 좀 더 적극적으로 백인들과 동화되고 그들의 개가 되었다면, 그처럼 고립된 채로 스스로 패배자의 상처를 팔아 연민을 구하고 삶을 연명하는 비루한 인생으로서,  자신들 스스로 국가 없이 지켜왔던 수천년 역사의 피날레를 그렇게 슬프게 장식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를텐데.. 라는 생각마저 들었었다.

 

 자치구역에서 파는 조잡한 액세서리들. 맛없고 비싼 음식들. 80%에 육박하는 높은 실업률과 그들의 삶에 대해 내가 아무 것도 모르더라도 피폐한 그들의 삶의 언저리를 여행 중 어디에서곤 발견할 수 있었다. 숱한 역사 박물관을 거치면서 보았던 개척민들의 인디안 정복의 역사가 실은 전대미문의 인류 학살과 다를 것도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여정의 하나였음이 그것도 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그래서 결국은 즐거움을 찾는 그 과정 중의 하나였음이 불편하였고, 앵글로 색슨의 후예들이 판매하고 또다시 그들이 소비하는 인디안 컨텐츠들이 못마땅했다.

 

 지배자의 반성과 자성의 전시는 씻을 수도 , 돌이킬 수도, 용서될 수도 없는 것이지만, 역사는 늘 승리자를 위해 다시 쓰여졌다. 짧은 미국의 역사는 그 시작 자체가 원죄에 가깝다. 그들이 "위대한 개척" 정신으로 포장한 살육과 약탈 행위는 "미개하고 야만적인" 어메리칸 인디안들에게로만 한정되지 않았다. 인디언들과도 미국인들과도 평화롭게 섞여지내던, 그곳에서 미국인들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서구 문명"을 일구고 커다란 저택과 화려한 가구를 소유하고 이웃이 되어 함께 살아온 멕시코인들의 터전에 잔인하고 몰인정하게 뿌린 피의 댓가도 함께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책을 통해 짐작할 수 있었다.

 

 100 여년 동안의 폭력과 정복의 서사를 다루는 필립 마이어의 두번째 소설 더 선은 석유재벌 매컬로 가문의 연대기를 서로 다른 시간과 서로 다른 세 사람의 시점을 통해 재현한다.

 

 19세기 말,  아직 코만치 인디언이 세상 물정을 깨닫기 전, 가족을 몰살한 인디안에게 잡혀간 어린 엘리(대령)의 시선에서 써내려 간, 코만치 인디안들의 생활. 묘사는 치밀하고 섬세하지만 담대하고 서늘하고 거침이 없다.  이렇게 디테일이 담긴 당시 코만치 인디안의 생활과 가치관을 생생하게 그려낸 책이 또 있을까. 거의 절반 이상이 당시 코만치들의, 잔인하고 야만적인, 그러나 그것이 삶이었던, 습격으로 점철된, 배타적이면서도 개방적인 그들의 삶을 밀도 높게 그려져 있다. 엘리는 자신의 가족을 잔혹하게 학살했음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처음에는 살기 위해 그리고 점점 더 열성적으로 코만치 인디안이 되어 간다. 정체성에 대한 혼동이나 백인으로서의 자의식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다. 독자의 몫이다. 엘리는 코만치들에게 쉽게 동화되고 인정받음으로서 자신의 삶을 성공적으로 이끈다. 적어도 1편에서까지는.

 

 엘리의 아들 피터는 자신의 아버지와 가족과 백인이 한 때 이웃이고 사이좋게 지내던 멕시칸 가르시아 가족을 몰살하고 검은 돈으로 땅을 차지하는 과정을 일기장에 쓰고 있다.  피터는 자신의 가족을 둘러싼 모든 잔인하고 불합리한 과정에서 가장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는 사람이다. 양심과 가족의 이익 사이에서 고민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역시 가족의 일부이고, 그 모든 살육의 한 가운데를 지나가고 그로 인한 혜택을 누린 사람이다. 

 

 20세의 나이에 혼자서 살아 남은 피터의 손녀 진은 몇대째 지켜 내려온 그 가족의 거대한 목장을 지키며 석유 재벌이 되는 과정 속에서 가족의 과거를 미화시키는 일련의 사건들을 3인칭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진 앤의 스토리는 1부에서는 그냥 도입과 전개에 머무르고 있어서 그닥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막대한 땅을 상속받은 채로 고아가 되었고, 그녀의 땅에서 석유를 캐기 위해 노리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2부가 기대된다.

 

 상념이나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그래서 건조 하지만 세 사람의 서로 다른 시대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의 연결을 따라가다 보면 거대한 서사의 줄기가 잡히고 책을 덮고 잠시 쉬어가야 한다. 그래야만 독서와 독서 사이 그 여운에서 잡히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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