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내가 써온 글들을 제대로 된 서평이라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다. 서평이라는 말의 뜻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책을 평가하는 것인데, 내가 평가할 수 있을만큼 저자를 능가하는 경우란, 형편없는 책일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런 형편없는 책들에게 내가 시간과 애정을 쏟아서 글을 쓸 필요를 느낀적은 서평단 이벤트에 응모해서 책을 받아 읽고는 먹튀할 수가 없는 경우일 뿐이었는데, 그 형편없다는 사실 역시 객관적인 사실이라기보다는, 내 주관적인 생각이다. 내 주관적인 내 생각에서 볼 때, 그 책의 이러저러한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거나 읽기가 힘들었거나 사실과 다른 내용을 싣고 있거나 빤하고 진부한 내용이거나 아무튼 내가 그렇다고  느낀 것들 뿐이었다.


그런데 만일 서평은 객관적인 것이며, 주관적인 의견이 배제되어야 한다 라고 누군가가 정의를 하고 거기에 따라서 서평을 쓰자, 그렇게 쓰는 서평에게 당선작을 주자 라는 운동이 일어난다면, 일단, 객관적인 글을 어떻게 쓰느냐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그러면 그 객관성을 내가 혼자서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까지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가는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 이제껏 한 2년 넘게 꾸준하게 책을 읽고 그 책이 내게 생각하게 해준 것들을 적어왔지만, 그것이 서평의 조건에 부합하는지 안하는지에 대해서 제대로 성찰해보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서평이벤트니 서평대회니 하는 행사에 참가할 때 조차도, 그리고 그런 행사에 참가해서 당첨이 되었을 때조차도 서평의 객관성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렇게 따져보니, 그렇다면 객관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대략 그게 뭔지는 알지만, 예를 들어, 그건 네 생각일 뿐이야 라는 말을 들을 만한 발언을 한다면 그것은 주관적일테고 모두가 동의한다면 그게 객관적인걸까. 그렇다면 내 느낌이 공감을 적었을 때 그 느낌이 글로 연결되어 다른 독자들과 많은 공감을  이끌어냈을 때 그 느낌을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므로, 감각적으로 혹은 감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객관적은 아니라는 것은 알겠다. 네이버 한자사전에 찾아보면 객관은 이렇다. 


客觀

객관단어장 추가
①인간()의 생각 밖에 존재()하며, 그 생각에는 의존()하지 않은 외부()의 세계()  ②어떤 사건()과 관계() 없는 제3자()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뭐 비슷하다.

[명사]

  • 1.자기와의 관계에서 벗어나 제삼자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거나 생각함.
  • 2.<철학>주관 작용의 객체가 되는 것으로 정신적ㆍ육체적 자아에 대한 공간적 외계. 또는 ...
  • 3.<철학>세계나 자연 따위가 주관의 작용과는 독립하여 존재한다고 생각되는 것.


그러니까 서평을 만일 객관적으로 쓴다면 내 생각 밖에 있는  내용을 전달하라는 건데, 책에 대한 내용 중 생각 밖의 내용이라는 것을 기술하는 것은, 인문 과학 실용 분야의 책의 경우, 책에 어떤 내용이 실려있다라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과, 작가에 대해 조사해서 그 작가가 혹은 작품이 가진 해당 분야에서의 의의 정도를 내 생각이 아닌 이미 한 학문 혹은 무엇이든간에 어떤 한 분야로서 형성되어 있는 위치로서 소개하면 된다. 이렇게 따지면 서평에 내 생각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뜻은 책을 읽지 않고도 읽은 척하며 서평을 쓸 수 있다는 의미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대신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서평하는 법>은 훨씬 쉬워진다. 목차가 있으므로, 목차대로, 이 책은 이런 내용이다 라고 쓰고, 또 책날개에 소개된 저자를 글자 순서만 대충 바꿔서 쓰면 된다. 거기에 내 의견이 들어가면 그건 객관적이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좋은 서평이 아니다. 라는 게 아니라 이런 연역이 가능해진다.  


사람들이 책 구매 페이지에 있는 매우 매끄럽게 잘쓴 소개글 대신 개인 블로그의 두서없고 형편없는 글을 읽고 공감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웃간이라든가 뭐 교류관계 이런 것 말고 모르는 글에 아무 이득 없이 공감을 남기는 이유는 그 글을 진짜로 공감하기 때문일 거라고 나는 믿는다. 나 역시 남들과 마찬가지로 처음에 알라딘에 글을 올렸을 때, 아무도 찾지 않았고, 그렇게 황량한 무플지대가 지속되던 어느 날 <예감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에 공감이 십여개가 갑자기 눌려진 것에 대해 기적적인 경험이라고 느꼈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간간히 올리던 글은 나만을 위한 글이었고, 마찬가지로 처음의 <예감은..>글도 나만을 위한 글이었지만, 작은 변화가 어떤 시점을 계기로 티핑포인트에 이른건지, 혹은 순전히 우연에 의한 발견이었는지 알 길은 없지만. 그 기적과도 같은 공감 갯수는 글쓰기의 태도를 변화시켰다. 아 나의 생각이 어떤 누군가의 전혀 얼굴도 이름도 아무것도 모르는 또다른 한 인격적 개체와 어떤 공감을 형성했구나 라는, 아마도 처음으로 어쩌다 서너 개의 공감이 눌려졌을 테고, 그러다가 메인 홈에도 떴을 테고, 그러다가 당선작평가단의 눈에도 띄었을 테고, 그러그러 저러저러해서 처음으로 당선작이 당첨되었던 기억. 그 기억에 의지해서 그렇게 변함없이 내 생각이 누군가와 아주 작은 행위, 손가락으로 마우스를 띡 누르는 그 하찮은 행위를 매개로 익명의 누군가와 연결되는 행위가 내가 책을 읽고 소통하는 한 방법이었다. 


서너줄 쓰려고 했는데. 이렇게 길어지다니.. 다시 수습하자면, 나는 객관적인 글을 쓸 수 없다. 소설에 대한 글을 쓸 때, 인용문 없이 어떻게 객관적인 글이 가능한지 현재 내가 가진 지식 수준으로는 알 길이 없다. 좀 더 공부를 하면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전문 서평가가 아니므로, 당분간은 내가 쓸 수 있는 한계내에서 더 잘(객관적으로) 쓰려는 노력 없이, 오자나 탈자 비문도 악착같이 고칠 생각 없이, 그대로 쓰게 될 것 같다. 가끔 상품에 목을 매고 기를 쓰고 쓴 내 주관적인 글이 공식적인 서평대회에서 인정받을 때도 있으므로 나의 글을 서평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좋고, 서평이라 말해도 상관없다. 나는 그것과 상관없이 글을 썼고, 내 형편없는 글이 당선작에 올라가서 당선작이 저질이라는 구설수에 올라간다는 말을 듣더라도, 그것들이 대개 익명을 향해 하는 말이지만, 행여 혹시라도 내 글을 향해 하는 것임이 명백하더라도, 모르는 체 하고 해맑게 지나치게 될 거 같다.  2만원의 당첨금에 목숨걸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걸 회수해가라고 유별을 떨거나, 아 당선작이 저질이라는 건 아마도 나를 저격하는 걸거야 나는 주관적인 글 밖에 못쓰자나. 나는 상처받았어 하고 커뮤니티를 떠나느니 마느니 하는 미숙한 행동을 하지도 않겠다.  반대로 내 주관적인 견해로 형편없다고 생각되는 글들로  당선작 페이지가 도배되더라도, (아마도) 겉으로는 쿨하게 지나갈 거 같다. 


이건 순전히, 평가단 도서<카인>을 재밌게 읽었는데 서평쓰기가 싫어져서, 이런 책은 그냥 재밌게 읽고, 우왕 짱 재밌었어, 너무 웃겨 너도 읽어봐 하는 수준으로 지나가고 싶은 책인데, 책을 받아먹었으므로 서평을 써야 하는 순간을 미루기 위해 쓰는 글.... 인거 같음. 그런다고 평가단 운영자가 안써도 됩니다 라고 쪽지줄 것도 아닌데 순전히 뻘짓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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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5 19: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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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5 20: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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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5 21: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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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5 21: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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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5 21: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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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5 22: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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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5 22: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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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5 22: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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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5 22: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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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5 23: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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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5 23: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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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6 00: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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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어느날,  일이 손에 안잡히기에 이벤트 페이지를 들어가서 아예 날을 잡아 적립금 이벤트에 죄다 응모를 했다. 몇 줄 적으면 적립금 주는 이벤트들이다. 얼마 되도 않는다. 1000원씩, 많으면 2000원, 혹은 500원.. 당첨된 것들이 많아 찔끔찔끔 1000원씩 2000원씩 들어오는데 유효기간이 하루 이틀인지, 들어오는 것만큼 빠져나간다. 그저께  2000원 빠져나가고 어제 1000원 빠져나가고 오늘 날짜로 빠져나간다고 경고하는 임박 적릭금이 또 1000원 있다. 뭐라도 살까 하다가 관뒀다. 싫컷 줬다 뺏었다 줬다 뺏었다 하라지. 한 번 속지 두 번 속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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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5-12-02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어제 Y때문에 뭔가 심사가 꼬여 있었는데, 여기서 이벤트 적립금 주길래 바로 쓸려고 책 주문했어요. 그런데 오늘 아침 재고 없다고 문자와서 대범하게 참을인을 새기며 취소 했더니 1,000적립금도 같이 없어지더군요. 나참...뭔가 계속 짜잘한 일들이 짜증을 부르네요. 아~~ 대범해야쥐....

CREBBP 2015-12-03 08:04   좋아요 0 | URL
ㅋㅋ 응24 는 뭘로 짜증나게 했는데요? 그게 궁금해. 적립금 유효기간 하루 이틀짜리 찔끔찔끔 주는 거 정말 짜증나는게 들어오자마자 사라는 건가요. 가뜩이나 택배도 많아 경비실에 미안헌데 쩝.

2015-12-03 1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03 1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1. 이승우 《에릭직톤의 초상》

시간이 검증한 한국 작가의, 시간이 검증한 작품을 첫 번째 소설로 꼽는다. 지난 달, 두 권의 장르 소설을 읽느라 끝날때까지 긴장하느라, 뇌가 한쪽으로 쏠려 피곤했다. 소설 속 하나의 문장으로서만으로도 책읽기의 유희가 될 수 있는 이승우님의 책은 무엇을 들어도 만족스럽지만, 위대한 작가의 청춘의 고뇌가 고스란히 엿보이는 단 하나의 자전적 소설은 언제라도 누구의 작품이라도 실망한 적이 없다.


2. 아모스 오즈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 1, 2

이스라엘의 우파 시온주의자 배경인 작가가  현대 이스라엘 건국과 중동전쟁을 겪었으면서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 공존을 주장하는 사상을 갖는다면 어떠한 스토리가 나올까. 나탈리 포트만 주연의 영화로 나왔다는데, 영화화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서사 자체가 재미있다는 소리인데, 많은 문학 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니 기대된다. 사실과 허구가 어우러진 자전적 소설.


3. 앤타일러 《파란 실타래

《종이시계》로 퓰리처상 수상작가의 소설. 파란 원색 실타래가 커다랗게 놓여있는 표지가 강렬해서 봤는데, 마침 퓰리처상 작가였다는, 출판사의 책소개가 부실해서, 읽기 전까지는 무슨 내용인지 파악하기 어려울 것 같지만, 대중성과 예술성을 겸비하였다니 기대충만이다. 

 

4. 백민석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에이바님과, Breeze님의 동시 추천으로 약간의 검색질을 해보았는데 2003년 인터뷰 기사를 발견했다. ‘의도된 괴팍함’을 즐겨 사용하는 특이한 작가, 전반적으로 ‘엽기적’이고 끔찍하며, 근친상간, 집단성교, 동성애, 수간, 납치, 살해, 암장 등 제도화 된 권위를 파괴하는 문학적 장치가 작품 곳곳에 등장한다는 서울대 2003년 대학신문 기사의 한 대목이 눈에 띈다. 절필과 복귀에 담긴 사연은 잘 모르겠으나, 이 작가의 세계가 더욱 궁금해졌다.

 

5. 나나 게오르게 《종이약국》

정말 좋은 아이디어다. 어디가 아픈데, 어떤 책을 읽으면 그 책으로 치유를 할 수 있다는 발상.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책이 소재가 되고, 책이 배경이 되는 책들에 대해서 쉽게 매료된다. 그래서 무조건 고






































한 달 쉬는 바람에 놓친 책들.


 힐러리 맨틀 《혁명극장 1,2》

이상하게 페이퍼가 별로 없어 확인해보니 10월 출간. 아쉽아쉽. 다시 뺀다. 여성 최초의 맨부커상 수상자, 최초의 두 번의 맨부커상 수상자가 쓴 역사소설. "세 명의 젊은 혁명가 로베스피에르, 당통, 데물랭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로베스피에르가 오랫동안 믿고 사랑했던 친구이자 혁명 동지인 데물랭과 당통을 단두대로 보내는 파국의 순간까지를 다룬다"는데, 이보다 더 매력적일 수가. 


**  잭 캐루악 《다르마 행려》

아니 이 책도 10월 출간. 아쉽아쉽. 대표작인 길위에서를 읽지 않은 상태에서 신간을 반가와 한다는 게 웃기지만, 비트 세대의 감각을 체험하자는 의미에서. 더욱이, “케루악을 끊임없이 방황하게 했던 문학적.종교적 고민들과, 훗날 전설처럼 남은 그의 문체와 집필 방식, 자신의 세대와 신과 인생에 대해 느낀 경외감을 진솔하고 유쾌하게 써내려간 이 작품은, 삶의 불빛이 서서히 꺼져가기 시작하는 작가가 남긴 눈부신 시절의 기록이다.”라는 소개가 작품속으로 손짓한다. 아 나는 왜 방황이라는 말이 자주 설레는가.


 

***. 필립로스의 《죽어가는 짐승

필립 로스의 책이 요 몇년간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데, 아니 왜 그동안은 안나왔던 건가 의아하지만, 어쨌든 나올 때마다 신간평가단에 선정되었었다. 포트노이드의 불평을 읽은 사람들은 별점도 짜게 주고 포트노이처럼 불평이 많았지만, 나는 좋았다. 마리다리외세크의 가시내와 포트노이가 둘이 만나면 잘 맞는 한 쌍 일듯한 느낌인데, 둘이 다른 시대를 살았구나. 포트노이드의 불평의 계보를 잇는다기에 빼놓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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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5-12-01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작품은 이렇게 읽고 싶은 목록 올리면 수준높아 보이고 느낌 좋은데 역사쪽을 이렇게 올리면 뭔가 우중충하고 오타쿠같아요...^^

CREBBP 2015-12-01 23:14   좋아요 0 | URL
역사라는 게 원래 좀 우중충한 구석을 캐야 뭐가 나오니까 그러는 거 아닐까요. 그래도 역사 쪽은 인문중에서도 가장 광범위한 오타쿠들을 결집시킬수 있지 않나요
 















이 책에는 특히 책 얘기가 많이 나와요. 고3 아이의 성장소설인데, 배경은 70년대말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고3이 공부는 않고 작가가 되겠다고 매일 책만 읽어요. 그런데도 당시 특기생 수시모집 같은 제도가 있었는지 대학 공모전 같은 곳에 글을 써서 당선이 되어 대학에 들어갑니다. 화두처럼 던져진 책은 권터 그라스의 양철북과 헤르만헷세의 데미안입니다. 세상과 타협하고 싶지 않아 자라기를 포기한 난장이가 양철북을 그렇게 두드리는 것, 알에서 깨고 나오는 것의 의미를 되짚습니다. 

















작품의 내용은 성장소설이면서, 로드무비같은 느낌을 주는데, 묵언정진을 했던 스님이랑 같이 다녀요. 이 스님은 고무신 대신 백구두를 신고 다닙니다. 주인공 양철북이 방학 때마다 글쓰고 책읽고 하면서 머물던 암자에 도보고행성이 들어왔다가 인연을 맺고 함께 다니게 된 거죠. 둘은 죽이 잘 맞는 한 쌍입니다. 책을 많이 읽은 철북이가 책에서 주워섬긴 말들을 늘어놓으면, 무슨 책이든 더 잘 알고 있는 스님은 매번 철북의 뒤통수를 칩니다. 걸쭉한 부산 사투리를 구사하는 그 둘은 말도 거칠고 술과 고기를 먹는 등 행동도 거칠어요. 


두 사람이 맨 처음 만나는 장면에는 최인호의 소설《광장》이 있어요. 철북의 이름을 모르는 스님이 《광장》을 읽고 있는 철북을 보자, 어이 까까머리 광장 하고 소리칩니다. 험한 말도 잘 받아치는 철북이에게 스님은 니가 서북청년단이냐고 묻는데, 이 때 철북은 서북청년단을 어디서 봤더라 라며 곰곰히 생각하다가 아 맞다 관촌수필과 순이삼촌에서 봤다는 걸 기억해냅니다. 


























광장을 다 읽은 철북이는 가장 인상 깊은 구절 하나를 메모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인민의 적이며 자본가의 개이며, 제국주의의 스파이다."

 


《광장》을 읽은 후 철북이 읽은 책은 샤르트르의 《구토》와 카뮈의《이방인》입니다. 동시대를 살아간 사상가이자 문필가였죠. 그러나 알제리 독립을 두고 두 사람의 행보는 달랐습니다. 샤르트르는 알제리 독립을 지원했고, 카뮈는 반대했습니다. 철북은 두 소설의 주인공을 바꿔봅니다. 구토의 주인공인 로캉텡을 뫼르쏘로 억지로 바꾸어본다는 거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우연히 《씨알의 잡지》라는 잡지책을 뒤지다가 뫼르쏘의 총알이 '피압박 민족에 대한 제국주의의 무의식적 횡포'라는 요지의 백기완 선생 해설을 보고 놀랍니다. 






















스님을 따라다니며 시다바리라고 불리다가 문득 철북은 중학교 3학년 시절을 회상합니다. 가세가 기울자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가구 공장에서 일했던 고단하고 어두운 시절입니다. 추운 겨울 마른풀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안톤 체홉스의 단편소설들을 떠올립니다. 그의 소설은 "그리고 죽었다"로 끝나는 것이 많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춥고 어두운 시절과 고별하기 위해 사모은 세코날을 공장에서 친동생처럼 아껴주든 도색작업반 아저씨가 훔쳐 먹고 자살한 사건을 겪습니다. 






 















일행은 섬진강과 화개장터를 지납니다. 철북은 김동리의 《역마》와 박경리의《토지》를 떠올립니다. 월선이 평생 운명적인 불륜의 사랑을 나누던 이용의 품에 안겨 죽어가던 가슴 저미는 장면을 회상하죠. '불륜도 섬진강의 여울처럼 격렬하고 애절할수록 눈부시고 찬란해 지는지 몰랐다'는 생각을 하지요. 열아홉살 소년의 운명적 사랑에 대한 환상은 이런 비련한 것들로 포장되어 있기 쉽지요.


















백운동 계곡에서 스님과 철북은 또 티격태격합니다. 공비와 빨치산에 대한 용어. 같은 대상에 대해 정부에선 공비로  일반 국민들은 빨치산으로 불렸고, 그걸 어찌 알았냐는 질문에 이병주의 《지리산》을 들이대지요. 열아홉 소년이 지리산을 읽은 느낌은 '이놈 피하니 저놈 나타나고, 저놈 피하니 또다른 나타나는게 인간사라지만, 막상 당하는 처지에서는 얼마나 징글징글하겠는가'였어요. 지리산에서 보광당을 만들어 일본과 죽도록 싸우며 독립운동을 하고 나니 8.15 해방이 되었는데도 해방이 안됐다고 이번엔 미국과 이승만을 대상으로 또 죽도록 싸워야 했던 사실을 알게 됩니다. 



















지리산 암자에서 만난 두 스님의 이야기 속에  시인 김지하가 나오자, 그는 다시 헌책방을 드나들던 과거를 회상합니다. 그는 헌책방에서 만난 점원이, 자신이 추천하는 '사회과학'서적들을 읽으면 원하는 책 2권을 공짜로 빌려주겠다는 제안을 받습니다. 이렇게 해서 헌책방 점원과의 인연으로 많은 '불온'서적들을 보게 되고, 학교 사서 선생님을 10년형을 살 수도 있는 불온서적 소지죄로 걸릴 아슬아슬한 위기로 몰기도 하지요. 이렇게 해서 폭풍 책소개가 나오는 대목이 있는데, 찾아보니 절판 된 것이 많습니다. 학교 다닐 때 돌 좀 던지던 분들은 눈에 많이 익은 책들일 거에요. 




첫날은 철북이가 보고 싶은 김수영의 시집 《거대한 뿌리》와 조세희의 소설《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그리고 황세용 점원의 추천서인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빌려왔다. 며칠 뒤에는 정현종의 시집《고통의 축제》와 카프카의 소설《변신》, 그리고 유동우의《어느 돌멩이의 외침》, 그 다음에는 고은의 시집 《문의마을에 가서》와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율리시즈》, 그리고 장준하의《죽으면 산다》, 또 그 다음에는 보를레르의《악의 꽃》과 에밀 아자르의 콩쿠르상 수상 소설 《자기앞의 생》 그리고 송건호의《해방전후사의 인식》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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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미 2015-10-16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놓기만 하고 못읽었는데, 당장 책을 펼쳐야겠어요^^

CREBBP 2015-10-16 23:13   좋아요 0 | URL
로드무비 식이라.. 큰 사건 없이 그냥 덤덤한 편이이요..
 
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1 불안의 책 
길지 않은 기간 동안 2012년부터 세 개의 다른 출판사에서 번역 출간하였다 는 사실부터 문제작임을 알 수 있다. 2012와 2013에 나오는 책들은 각기 독일어판과 이태리판의  중역본이다. 사후 남겨진 산더미같은 원고둘 속에서 편집 출간되있기에 여러 다른 버전들마다 색다른 맛이 있을 것 같으나 이 책이 원전를 직접 번역한 것이고 완역본이라 두껍다고 한다. 각기 머리 속에 들어 있는 수많은 인격들 만들어 낸각기 다른 필명으로 쓴 글들이라것. 포르투갈 최고의 시인. 국민작가로 추앙받은 페소아의 작품을 만나보고 싶다. 에이바님의 탁월한 리뷰 강추.



2.꿈꾸는 책들의 미로

시리즈물의 중간단계의 최근 시리즈가 이슈가 될 때는 첫 책을 아직 접해보지 않은 경우 심리가 묘하다. 우선 이전 내용이 궁금해서 덥석 읽기가 망설여진다.  전편 먼저 읽어야지 라는 생각.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전 버전을 먼저 찾아읽기보다는 먼저 열기에 편승해서 일단 올라 타서 신간을 먼저 읽어보고 내스탈이면 전편을 읽어야지 하는 생각도 같이 드는 것이다 . 하퍼 리의 파수꾼이 막 출간되었을 때는 부랴부랴 앵무새죽이기부터 읽었고 만일 파수꾼부터 읽었다면 앵무새 죽이기를 찾아 읽지 않았을 것이다. 해리 홀레 시리즈의 마지막 편을 읽었는데 읽은 후 전편을 찾아 읽지 않았다. 시리즈 세트가 미니북으로 나와 있어서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러면 또 책이 2권 겹쳐서 생각이 복잡해지기에 일단 후퇴. 이책은 전편부터 읽어 보고 싶다 전편은 꿈꾸는 책들이 도시. 사전 정보 없이 읽고 싶어 자세히는 안살펴봤다. 출판사 소개글에서 아 주목한 키워드는 유머 언어유희 등.

두개 모두 알라딘신간평가단에서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누고 싶은 소설이라 당첨률을 높이기 위해 딱 2개만 추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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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5-10-04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서평단 들어가기 되게 어렵네요 ㅋㅋ

CREBBP 2015-10-04 20:16   좋아요 0 | URL
지난 번애 선정됐는대 뭐 맘애 안든다고 툴툴거리지 않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