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미래 - 편견과 한계가 사라지는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라
신미남 지음 / 다산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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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이라는 단어는 집안에서 애를 키우고 집안을 광채가 나도록 쓸고 닦아 눈부시게 만들어 놓고 가족을 위해 건강하고 값진 식단을 제공하고, 아이를 잘 키워 스카이와 저 멀리 아이비리그에 보내는 사람에게는 인색하다. 성공이라는 단어는 돈, 명예, 사회적 위치, 사회적 존경에 너그럽다. 하지만 누군가는 아이를 돌보아 사랑받고 상처없이 성장시켜야 하고, 누군가는 건강한 밥상을 차려야 하고, 먹고 난 음식을 모아서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린 후 요리를 한 냄비며 음식을 담았던 통이며 접시 그릇들을 닦고, 주방을 청소하고 정리해야 하며, 또 누군가는 더러운 옷들을 거두어 세탁기에 돌려 꺼집어 내어 일일히 털어 말렸다가 걷어 접어 정리하는 일을 해야 하고, 집안 바닥이나 소파에서 자신을 포함한 가족들이 뒹굴뒹굴 거릴 때 불쾌하지 않게 먼지를 빨아내고, 바닥을 닦아야 한다. 


성공한 여자들은 대개 둘 중 하나의 카테고리에 속한다. 둘다 하던지, 둘 중 하나만 하던지. 둘다 하면 슈퍼우먼이지만 둘 중 하나만 하면 엄청나게 대단하게 성공하지 않는 이상 남에게건 자신에게서건 욕을 먹는다. 이 사회가 원하는 여성, 이 사회적 구조에서 살아남기 위해 여성은 슈퍼우먼이 선호된다. 집안일도 잘하고 동시에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슈퍼우먼들. 교사들이 결혼 대상 선호도 1위가 되는 이유는 정확한 출퇴근 시간으로 이 양쪽의 일을 모두 잘 해내는 슈퍼우먼을 기대하기 쉽기 때문이다. 돈도 벌어오면서 집안일을 할 시간도 충분하다. 이런 선호도 는 의식주를 이루는 작은 일상의 연속들이 슈퍼우먼 여성의 노동력 착취에 기반함을 암묵적으로 동의함을 말해준다. 


이런 생각은 남성들을 매우 불편하게 한다. 그래서 나처럼 오랫동안 페미니즘이며, 여성의 권리며 젠더 폭력이며 이런 말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무심하게 지나가면서, 나는 사회적으로 차별받은적 없다는 믿음을 굳건히 지키며, 매 끼니 식사 준비는 가족을 위해서 내가 좋아서 하는 걸로 붙박여 놓으면 세상 공평하다.  하지만 저 밑에 숨겨진 진실을 하나씩 꺼집어내서 말하지 않는 이유는 한 마디 불평이 합리적으로 고려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반향되어 백개의 잘잘한 균열을 만들 수 있음에 동의하지 않는 여성은 없을 것이다. 친구들 카톡방에서 내가 그랬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어보라고. 어떤 친구가 나는 교사라 차별받은 적 없어. 하더라. 그래서 나는 말했다. 나는 남편한테 차별받아. 그랬더니 그 친구 왈. 나도나도 집에서는 밥순이야. 더이상 그 이야기가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우리는 아이를 다 키웠고, 다시금 생각해도 눈물 나오는 그 힘겨운 시간들을 견뎠으며. 이제 순응하는 것의 아늑함을 알게 되었다. 


두번째 카테고리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둘 중 하나만 하나만 하는 거다. 하나는 집안일은 '내팽개쳐'둔 채 사회생활에 몰입하는 경우고, 하나는 집안일에 몰입하는 경우다. '내팽개쳐'둔다는 말에 따옴표를 쓴 이유는 집안일에 소홀하고 밤이고 낮이고 성공을 위해 직장 일 혹은 자아 실현을 열심히 하는 기혼 여성들에게 돌아가는 말은 그것이 남성이건 여성이건 동료건 부모건 그 누구건 할 것 없이 '팽개치'고 다니는 걸로 쉽게 말해지기 때문이다. 


육아를 포함한 집안일을 잘 혹은 최소한 작동하게 하기 위해 선택 직장 및 자아실현을 미루고 집에 있으면 82년생 김지영이 유모차를 밀고 공원에서 커피 한 잔을 들었다는 이유로 맘충이라는 소리를 듣는 일이 비록 현실에서 자주 있는 일은 아닌 과장된 것이라 해도, 사회적 편견 혹은 불안감에서 오는 감정은 맘충이라는 말에서 전해지는 감정과 유사한 데가 많다. 가장 큰 문제는 이토록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사회적 관계망과 경력 단절을 겪는 여성의 그 고립감과 불안감을 어느 누가 무엇으로 보상해줄 것인가이다. 아무도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려 주지 않는다. 아이를 떼어놓고 눈물 흘리며 직장에 나간 엄마가 아이와 함께하지 못한 그토록 달콤했을, 절대로 다시는 되돌아 오지 않을 간난 아기와의 시간들, 아기와 함께 보내느라 모두 다 잃어버린 사회적 관계망, 경력, 직장, 사회적 위치 때로 후자는 노력으로 전문성으로 회복될 수 있다고 믿기에 오히려 전문성을 갖춘 안전한 직업을 가진 여성들이 육아를 위해 직장을 '잠시' 포기하기 쉽다. 


4차 산업사회가 만들어가는 미래의 사회는 여성이 성공하기에 유리한 사회라고 말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여성과 남성을 가르는 거 자체를 반기는 편이 아니다. 여성 전용 시트니, 여성 전용 기차니 그런 걸 만들기 전에, 그런 걸 만들 필요성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게 나은데, 그런 사회가 근대화 100년으로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았으니, 먼저 여성을 보호한다? 뭐 그건 그들의 아이디어니, 그것 때문에 여험 현상들이 더 퍼지고 있더라도 별로 상관 않겠다. 성공한 여성이 되려면 슈퍼우먼이 되어야 한다는 개념은 여성을 착취하기에 아주 찰떡궁합으로 잘 떨어지는 말이고, 보통의 개인은 그럴만한 능력도 그럴만한 체력도 되지 않는다. 대부분이 그렇다. 어떻게 그 많은 집안 일을 다 하고, 또 사회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나. 그만하자. 차라리 성공하지 말자.


사실, 책 이야기는 이게 아닌데, 내 생각이 우선했다. 그래도 앞으로는 더 나아질 거라 한다. 자신도 엄청나게 힘겹게 성공했지만, 앞으로의 사회에서 여성의 예리한 감수성과 창의력 등의 여성에게 유리한 능력이 더욱 필요해지는 사회에 진입하게 되었으니, 그런 것들에 대해 살펴볼 필요는 있겠다. 또한 자꾸 이렇게 피해의식에 있지 말고, 오히려 여성이라는 이유로 스스로에게 주었던 특권 같은 것, 힘든 일을 남성에게 미루거나 공주병 같은 거로 피해주지 말자는 그런 얘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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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사생활 - 우리는 모두, 단어 속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제임스 W. 페니베이커 지음, 김아영 옮김 / 사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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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손가락의 지문이나, 눈의 홍채 같은 물리적인 유일한 특성을 우리의 행동이나 말 표정에서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은 놀랍지 않은 사실이다. 우리는 단순히 목소리만 듣고도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어린(젋은) 친구들은 휴대폰이 나오기 전의 세상이 마치 암흑 시대처럼 느껴지겠지만, 발신자 표시 장치가 없던 그 시절에도 여보세요 하는 단 네음절만 듣고도 누가 건 전화인지를 쉽게 아 수 있었다. 그 한마디에는 목소리의 음정과 톤과 액센트, 속도, 목소리 결, 등등 그 사람에 대한 수많은 단서가 조합되어 있어, 몇 음절만으로도 즉각적으로 그 사람을 알아맞출 수 있다. 경직된 채로 찍은 여권 사진보다는 웃거나 찡그린 어떤 표정이 있는 스냅사진에서 훨씬 쉽게 얼굴을 구분해낼 수 있는 것처럼 목소리에는 수많은 특성들을 실어나를 수 있다.


말은 어떨까. 그가 자주 쓰는 말, 단어와 단어 사이의 간격, 어휘의 종류, 억양 등 수많은 종류가 그 사람을 이 세상 유일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휴대폰으로 인해 세상이 조금 달라져, 이제는 어떤 간격 만큼의 시간을 상호 독점해야 하는 소모적 통화보다는 문자나 그룹 톡 같은 형태의 메시지가 주요 통신 수단이 된 요즘에 인위적으로 설정한 사진과 닉을 통해 대상을 알려주지 않는다면, 예를 들어 익명의 폰으로 문자를 보낸다거나 한다면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 다시말해, 문자만으로 된 세상에서 나를 나이도록 하는 특별함이 존재가능할까 글도 길게 쓰면 그 사람의 스타일이 드러나고, 내가 나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특징을 발견할 수가 있을텐데, 거기에는 단연코 동의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계량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말에 비해, 측정 불가능한 복잡한 요소들이 제거되기에 글자는 훨씬 계량하기 편하긴 하겠지만, 단어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규칙에는 문법이 있고, 그 문법내에서의 변화라는 것, 비슷한 환경에서 빤한 어휘들로 이루어진 텍스트로 표현된 글에서 텍스트 이외의 정보를 찾아낸다는 것은 복잡해 보인다.


이런 아이디어가 흥미로와서 책이 나오자 마자 읽었는데, 연구자들이 깜짝 놀랐다는 내용에 독자로서는 그리 깜짝놀라지 못했다.(아래 인용 참조 - 좋은 부분이라 발췌한 것이 아님) 지난번 리뷰에 저널리스트가 쓴 책에 대한 일반적인 ‘깊이없음’에 살짝 탄식이 나왔는데, 학자가 쓴 책에 대한 내 나름의 편견 혹은 일반화에 더욱 가까이 있는 책 중 하나였다. 연구 성과가 학문적으로는 엄청 대단할 지 모르겠지만, 일반인들이 읽었을 때, 완전 깜짝놀랄만한 일이 아니라, 뭐 이런 걸 다 연구를 해서 알아냈담? 그냥 대충 알 수 있는 거 아냐? 라고 생각할 수 있을만한 요소들도 적지 않았다.


‘나’라는 대명사의 사용 빈도가 두 사람 사이의 힘의 불균형을 보여준다는 예가 흥미로 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대학원생-교수, 부모-자식, 선생-제자, 상관-부하, 고객-기업 등과 같이 갑을 관계가 존재하며, 때로 이런 관계는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동적으로 변화하는데, 이 때 쓰인 대명사 ‘나’의 빈도를 조사한다면 누가 갑질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전반적으로 어떤 세부적 단어의 사용 빈도와 조합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보다는 대명사나 지시어 같은 자주 쓰이는 단어들의 사용 빈도에 의존하여 여러가지 연구 결과를 보여주는데, 여성과 남성 사이의 대명사 사용 빈도를 비롯하여 문화적인 차이까지 여러가지 측면의 언어적 특성들을 제시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컴퓨터를 이용하여 조사하였다고 했는데, 컴퓨터가 봉이 아니다. 컴퓨터에게 뭔가를 검사하려고 시키는 일은 인간이 그 처리 절차를 알고리즘을 통해 구현하는 일이므로, 독자들에게 알고리즘의 개략적인 내용을 (물론 그것이 굉장히 설명하기 까다롭고 복잡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복잡한 수식을 알려달라는 것은 아니다.) 신뢰할만한 근거로서, 좀더 세부적인 알고리즘을 알려준다면, ‘컴퓨터가 분석해보니’ 라는  표현보다는 독자들에게 훨씬 풍부한 지적 체험을 안겨주었을 듯하다.



직원들이 내 사무실이나 내 회사라고 말 한다면 그 회사 분위기는 좋은 편이다... 하지만 우리 사무실 우리회사라고 한다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직장을 자기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더 나쁜 경우에는 저 회사 그 회사라고 부르는 사람들이다. 직원들 스스로 직업적 정체성과 자신은 아무 관련이 없다고 생각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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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할 책


예술가들이 자극과 영감을 받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림을 보고 쓴 소설들. 기대된다.














이언 매큐언의 햄릿의 재해석














지난 달에 을유출판사의 에다이야기(산문에다)를 읽었는데, 거기엔 서사만 있고 감정이 없다. 하여 찾아보니, 우리나라에 번역된 1차 사료는 유이하게  에다이야기와 이 책 둘 뿐임. 닐게이먼도 좋지만 나이값을 하자.
























요즘 하도 핫해서 미리보기 하니 그림도 많고 쉽고 재밌어 보이는데, 1편 먼저 읽고 나머지는 결정



*샀는데 읽는 중

지난 달에 산 책 중 아직 못읽고 있음, 하루키는 일단 읽기 시작하면 너무 술술 넘어가기 때문에, 오히려 속도를 줄이고 있음.







* 읽은 책













강추




92년, 2002년 2012년 생의 김지영들은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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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로머라이제
염색체 끝에 붙어 있는 긴 텔로미어는 생명의 열쇠를 쥐고 있다. 체세포 분열시마다 텔로미어가 짧아져서 한계에 이르면 분열을 멈춘다. 텔로미어를 짧아지게 하는 것은 효소 텔로머라이제의 분비가 줄어들어서이다. 텔로머라이제의 분비가 왕성하면 텔로미어가 긴 상태로 유지되지만 텔로미어가 짧아지면 노화가 일어나고 사망에 이른다. 그렇다면 텔로머라이제를 투입하면 영원한 삶을 보장받지 않을까. 하지만 텔로머라이제가 나이가 들으면 활동을 줄이는 것은 암발생을 줄이기 위해서다. 암세포는 스스로 텔로머라이제를 분비하여 세포가 죽지 않고 점점 커져간다. 텔로머라이제 생산 유전자 스위치를 켜면 텔로미어가 길게 유지되어 젊음을 유지하는 대신 암의 위험이 있고 끄면 노화가 진행된다.

시트루인
유전자는 독성물질과 세포 복제 과정에서 손상을 받는다. 시트루인은 분열중 생긴 실수로 잘못된 유전자를 교정해주는 효소다. 시트루인은 잠을 잘 때 왕성해진다. 인간이 쓸데 없어 보이는 잠을 자는 데 인생의 1/3응 쓰도록 적응헤온 이유다. 세포 분열이 왕성한 어린 아기들이 잠을 많이 자는 이유는 그만큼 유전자가 손상될 가능성이 많아 스트루인의 수요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고릿적 광고 카피도 시트루인으로 설명된다. 스트루인은 배고플 때도 생성된다. 저녁을 적게 먹고 배고픈 상태애서 오래오래 자면 노화가 늦어진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당장 실천.

체온
감기에 걸려 열이 오르면 더워야 할텐데 오히려 반대로 한기가 들고 춥게 느껴진다.땀구멍을 열어 열을 배출해서 삭혀야 되는 판국에 오히려 근육은 수축되고 더욱 열을 올리려는 몸의 이러한 기능은 체온과 면역계의 상관관계로 설명하고 있다. 체온을 0.1도에서 0.3도 정도만 끌어올려도 모든 병의 예방과 치료가 가능하리만큼 체온은 면역 기능에 중요하다. 병균이 침입하여 몸에 비상 사태에 있다는 것은 몸이 자체적으로 체온을 올려 면역계를 강화시키려는 현상이라도 한다. 체온의 기준점은 신체가 적당하다고 정한 기준 온도인데 추위를 잘타는 사람은 실제로 체온이 낮기 때문일 경우도 있지만 신체의 기준점이 높은 경우도 있다. 반대로 온도조절장치 의 시준점이 낮은 사람의 경우 정상 체온보다도 낮은 상태에서도 높다고 판단하여 땀을 흘리고 달아오르는 증상을 가질 수 있다. 전쟁과 긴장 같은 스트레스 상황이 오몀 기준점이 낮아진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따뜻한 물을 자주 조금씩 마시는 것이 체온늘 올리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된다고.

혹독한 추위에 , 몸속의 소변을 배출하고 혈액의 농도를 높여 체액이 얼어 세포가 파괴되는 것을 막도록 적응한 숲개구리의 사례를 보면 왜 추운 겨웅 노ㅔ졸중 환자가 늘어나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인간 역시 추위에 견디기 위한 방법으로 소변의 배출을 늘리고 혈액응고 물질과 고농도의 당을 고농도로 분비해 혈액의 농도를 높이는 방법으로 진화해왔다. 충분한 낭방과 먹거리로 과거 혹독한 겨울과 는 다른 환경에 처해 있음에도 과거의 유전자를 가진 우리는 이제 혹한의 추위에 대항했던 원시적 생존 전략 유전자로 인해 오히려 건강을 해치고 있다 그러므로 춥고 배고팠던 조상들처럼 덜 먹어야 한다. 특히나 겨울에는 더 덜 먹어야 한다.

비피더스
장내 세균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면서 요구르트나 유산균 보조 식품이 유행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베네수엘라의 한 원주민은 돼지에게서나 발견되는 트레포네마라는 미생물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들은 섬유질을 분해한다. 이건 내 생각인데 이들은 아마도 소나 염소처럼 풀만 먹어도 충분한 당응 섭취할 수 있으므로 먹을 걱정이 필요없겠다 문명사회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원시 세균이 거의 없고 장내 미생물은 비피더스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항생제를 먹으면 T 면역세포의 이동을 막는 물질(IL33)을 활성화시켜 면역세포가 침입자의 공격하는 걸 방해한다 . 피루미쿠데스라는 세균은 식욕을 떨어뜨리는 ‘렙틴의 기능을 무력화시키고 반대로 식욕을 촉진하는 크렘린의 분비를 촉진한다(141).‘ 비피더스가 좋다고 무턱대고 열심히 먹으면 장에 공급되는 한정된 자원으로 한두개의 미생물만 너무 많아짐으로써 전체 미생물총의 변화를 야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저자의 전공은 진화의학이다. 이 책은 알기 쉽게 풀어쓴 건강 상식 정보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 상식에 대한 근거가 진화론, 다시 말해 인간의 몸이 생존을 위해 택한 유전적 전략들을 근거로 한다. 깊이 있게 들어가면 얼마든지 복잡한 세부 원리로 설명가능하겠지만, 골치아픈 디테일을 모두 덜어내고 핵심적 원리만 단순화시켜 이야기한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납득 가능한 논리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신뢰할만한 건상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다윈적 진화론은 생명과 우주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 어제 읽은 <행복의 기원>에서도 행복이라는 철학적 개념 역시 진화적 산물로 접근을 하고, 인간의 수명과 짝짓기 방법과 시기 등도 생존방식과 적응이라는 틀 내에서 설명되면 흥미로운데, 적대적 환경에 대항하는 인간의 몸의 가장 기본적인 반응인 선강의 문제야말로 진화적 설명이 더 들어맞지 않을 없다.

어떤 사람에게 약이 되는 식품도 다른 사람에겐 독
이걸 먹어라 저걸 먹어라 하는 수도 없이 많은 건강 정보의 홍수 속에서 모든 음식은 독이될 수도 있고 득이 될 수도 있다. 건강에 그렇게나 좋다는 브로콜리의 예만 해도 그렇다. 선천적으로 갑상선 기눙에 문제가 있던 종족에게, 브로콜리의 쓴맛을 인지하는 유전자가 있었던 인구는 브로콜리의 섭취를 제한하는 식이로 이어져 브로콜리를 못먹는 인구 집단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아이들이 콩밥을 싫어하고 야채를 싫어하는 것 역시 비숫한 맥락으로 이해가능하다. 아직 충분히 소화 기관과 해독 기관이 발달하지 않았고, 다양한 장내 미생물총의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은 아이들이 충분한 해독 능력과 장내 미생물의 분에 의해서만 사라지는 독성을 품은 채소들을 싫어하는 것은 몸이 그렇게 시키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키는 몸이란 유전자와 유전자의 발현에서 기인하고, 그 유전자들은 현생 인류로 진화하면서 멸종하지 않고 생존에 성공한 도킨스가 말하는 ‘이기적‘ 유전자들의 집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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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에, 과학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나는 이 점이 좋았다. 누가 미래를 아는가. 상상력만이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 기술에 갇혀 있을 때, 즉 기술의 제약 내에서는 진정한 미래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군가 무엇인가, 현재의 기술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먼저 상상했기에 그 상상의 실현에 대한 소망이 기술을 만든다. SF 작가들 중에는 대단한 과학자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고 들었다. 한국에서 SF 작품 공모전을 할 때 유명한 과학자가 쓴 작품들도 있는데, 또한 그런 글들은 심사에서 자주 탈락된다는 말도 들었다. 기술적으로 얼마나, 어떻게, 먼 혹은 가까운 미래에 가능한 일들인지에 대해 쏟아넣는 설명과 정성보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고 그 새로운 세계에서 구축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본다면, 물론 현재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기술은 기계가 생각하는 문제보다 기계가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는 문제에 더 애로사항이 있는 듯하다. 1~2년 전 미국의 나사의 재난구조 센터에서 국제적인 로봇 대회가 열렸는데, 한국의 카이스트에서 만든 휴보가 1등을 했다. 로봇들에게 주어진 미션은 대략 스스로 차에 올라타고 앉아서 운전을 해서 재난 사이트로 이동을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서 도구를 픽업한 다음 그것으로 가스 밸브를 잠그고, 파괴된 건물의 잔해가 쌓여있는 울퉁불퉁한 바닥을 걸어가고 하는 동작 등을 포함한다. 처음에 그 경기 미션을 접했을 때 로봇 회사들의 반응은 'It's impossible!!!' 이었다.  4차 산업혁명이니, 인공지능 알파고니 하며 곧 로봇이 마치 인간을 정복할 듯 요란한 시대지만 막상 이 세계 최고의 로봇이 치르는 경기 장면을 들여다보면 답답하기 짝이 없다. 인간이라면 단 1초도 망설임없이 행해질 차에서 내리는 동작을 하기 위해, 세계 최고의 휴머노이드들은 느려터진 동작으로 앉았다 섰다를 수차례 반복한다. 영화에서 늘상 접했던 날쌔고 빠른 동작을 수년 내에 구현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휴머노이드에서 소프트웨어보다 하드웨어가 기대에 못미치는 까닭은 이렇게 설명된다. 인간의 몸을 움직이는 것은 수백만년에 걸친 진화가 신경망과 함께 정교하게 만들어낸 것이므로 소프트웨어처럼 쉽게 구현가능하지 않다. 즉, 갓 태어난 아기에게 엄마가 적당한 사랑과 함께 먹을 거만 주면 스스로 알아서 서고 기고 걷고 달리고 정교한 몸움직임이 가능하지만, 소프트웨어적인 계산과 언어, 등은 외부에서 꾸준한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즉 전자는 유전자가 하는 것이고 후자는 주입과 연습 등에 의한 것이다. 그러니까 로봇에게 생각을 주입시키는 일은 컴퓨터가 탄생한지 몇 세대만에 많은 것을 구현했지만, 로봇이 두 발로 서서 단지 중심을 잡고 걷는 일만으로도 그렇게 힘든 거였다. 그 재난로봇경진대회에 출품한 로봇들중 다수는 울퉁불퉁한 길을 걷다가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지도 못했다. 





다시 구병모의 소설로 돌아와 보면, 이 소설이 두고두고 좋은 것은, 과학은 과학에게 맡겨두고 오로지 인간과 로봇 사이의 교감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시대적 배경은 현재이고, 현재에 이렇게 세탁소 일을 돕고 자연어를 처리할만한 지능 있는 로봇이 가능한 것은 아니므로 말이 안되지만, 상관없다. 죽은 아들이 근무하던 연구소에서 만든 로봇을 받아들고, 함께 살아가는 부부와, 이 로봇과 함께 지내는 이웃들과의 관계 그 속에서 싹트는 기계에 대한 무심함과, 배운대로만 행하고 감정이 없는 기계가 주변 인물들에게 느끼는 감정을 소설 속에서 처리하는 방법이 마음을 터치한다. 


구병모는 대체로 뜸을 들이지 않는다. 시작부터가 서늘하다. 몇년 지난 일이기는 하지만, 세탁소 집 외아들이 외국에서 죽은 아들 이야기가 마치 옆집 개가 죽은 것처럼 덤덤하게 묘사되고 그 아들이 발신인으로 보낸 시체를 배송받은 명정은 곧 그것이 시체가 아니라 로봇이라는 것은 알 정도의 지식은 있다. 그 로봇은 아들이 미국에서 다니던 회사에서 개발한 소년 로봇인데 판매용이 아닌 불완전한 샘플이다. 이웃집 세주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초기 세팅을 마친 로봇에게 은결이라 이름짓고, 세탁소의 자잘한 일들을 돕고 가사노동을 도우며 명정과 함께 살아간다. 세탁소의 단골인 서로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중학생 시호와 준교 역시 들락거리며 기계인간 은결에 관심을 보이는데.


이 이야기는 시호와 준교의 사랑이야기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로봇 은결의 성장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이 시대 열심히 선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힘겨운 삶을 따스하게 비추는 작은 드라마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물론 명정 역시 은결에게 정신이란 것은 없으며 교감할 수도 없고, 무엇을 느끼거나 감각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입력된 대로 행동하는 은결에게 시호가 위험에 처해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혼란 스러운 상황에 기억을 뒤져도 해답이 나오지 않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데, 그렇게 은결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대면하는 시간은 마치 조금씩 인간이라는 한없이 불안전하고 예측불가능한 존재에 대해 알아가고 성장해 가는 것 같다.  9년이 지나는 동안, 아이들은 자라 어른이 되고, 그렇게 그들이 성장하는 동안 아이들은 자주 함께 하는 은결이 조금씩 지식을 축적하고 도우며 적응해가는 모습에서는 어떤 설명할 수 없는 교감이 전해진다. 아이들이 성장을 하는동안 어른들은 늙는다. 늙은 주인이 생을 떠날 준비를 할 때, 은결은 어떻게 되기를 원할까



이제와 하나마나한 생각이지만 처음부터 이름을 붙여선 안되는 거였다. 그 이름은 언제 까지고 펼칠 일이 없는 종이 속에 접어 두었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이름을 붙여준 것을 떠나보내는 방법에 아직도 익숙지 않다. p191


준교는 모호한 것들을 모호하게 말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그의 세계는 명료한 산술과 그 결과 안에서만 존재한다. 그럼에도 은결에 한해서는, 지나치게 오래도록 알아온 부작용이겠지만, 한번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전방 시각 카메라 너머 출렁이는 감정의 파고를 측정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드는 것이다.  p206



존재의 진실성 여부가 그것을 상상하는 사람들의 수긍과 인정에 달려 있는 것들. 잊어버린 채 방기하고 있으면 어느 순간 등 뒤에서 노크해 오거나 부지불식간에 덜미를 잡아채는 것들. 실체를 확인하고 분석하기 위해 과감히 렌즈를 들이대면 사라지는 것들. 그래서 때로 지나치게 의미가 부여되곤 하는 것들. // 그러므로 준재하기를 그만둘 게 아니라면, 차라리 이해하기를 멈춰야 옳은 것들. 은결은 그 가운데 하나의 모습으로 그의 곁에 머물러왔다.  p208


주인으로서 관찰한 바 기계적 설명이 어려우며 인간의 반응에 가깝다고 판단한 몇 가지 사례가 이어진다. 밤거리로의 목적 없는 불규칙한 산책과 방황, 선물을 받고 난 뒤 입가에 떠오른 희미한 미소,...(중략)... 어린 소녀에서 처녀애로 자라난 이웃집 여성에 대한 연심 p221


무너진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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