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하게 그리고 우아하게 - 운명의 지도를 뛰어넘은 영국여자들
김이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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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술술 잘 읽히는 책을 읽으니 머리 속 꼬여 있던 나사들이 요즘말로 힐링이 되는 느낌이다. 김이제 교수가 만난 영국의 대표 여성 10인은 이름만 들어도 엄청난 형용사의 결합이 또다른 명사의 형용사가 되는 꼬이고 꼬인 복합 문장이 떠오르는 복잡한 여성들이다. 박인환 님의 시 속에서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에게  '한 잔 술을 마시고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각인된 버지니아 울프의 삶은 얼마나 격정적이었던가. 잘 알려진 제인 구달 , 애거서 크리스티, J.K. 롤링 모뿐만 아니라, 나에게는 생소한 트레이시 에민, 도린 에린스 등도 쉬운 문장으로 써내려갈 수 있는 삶을 살지 않았다. 김이재가 만난 그들은 대개 18세기, 빅토리아 시대 긴 인류의 역사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바닥을 치고 있을 때 태어나, 영국에서 처음으로 참정권을 요구했던 1913년 격정의 세대를 어머니로 둔 여성들이었다. 그들은 대개 고등 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모두 이혼을 했다. 그들은 모두 제도와 관습의 틀에 맞서 싸웠으며, 나락으로 떨어지는 몇몇 인생의 고비들을 맞기도 했다.  이룩하고 성취하는 과정은 제각기 달랐으나 그들은 결국 인생의 후반기에는 큰 성공으로 엄청난 부를 획득했고, 그 부의 최종 귀착지는 대개 환경과 소외계층을 위해 쓰여졌다.

 

바디샵의 창시자, 애니타 로딕은 동물 실험에 반대하는 슬로건을 바디샵의 최고 가치로 삼아 브랜드를 키우고 영국의 동물 학대 반대 운동에 기여했으며 , 아프리카와 오지의 숲에서 나는 천연 재로들을 화장품의 재료로 이용함으로써, 숲을 살리고 척박한 환경에 놓인 원주민들의 삶을 개선시켰다. 영국의 생가가 있는 본머스에서보다 우리나라에 더 잘 알려진 침팬치들의 어머니 제인 구달은 학술 논문보다는 대중강연을 통해 침팬지의 삶을 이해시키고 보호의 필요성을 확산시켰다. 결혼 실패와 숱한 염문 끝에 스물 다섯살의 연하와 결혼하여 20년간 해로하고 있는  열정의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스코트랜드와 영국적 전통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세계적으로 성공한 디자이너이자, 정치적, 사회적, 환경적 이슈에 목소리를 높이는 운동가이기도 하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100년 전 홀홀 단신 동쪽 끝 한국 땅까지 여행을 와 <한국과 그 이웃나라>라는 책을 써서 베스트 셀러에 올려 놓은 베스트셀러 여행작가이다. 사랑스러운 르네 젤위거가 출연한 미스 포터 라는 영화로 그 삶이 우리에게도 알려진 베아트릭스 포터는 100여년 이상 유아 동화 캐릭터의 대명사가 되어 온 피터래빗의 작가이다. 부자집에서 태어났지만, 어린시절 이복 형제들로부터의 성폭력과, 우울증, 정신이상 등 불행으로 점철된 생을 살아온 버지니아 울프는 사건이 아닌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 소설을 전개하는 '의식의 흐름' 기법을 실험한 <댈러웨이 부인>을 탄생시켰고,  뉴스위크가 선정한 세계 50대 문학작품 7위의 위치에 자신의 작품 <등대로>를 올렸던 세계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103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10억부 이상 판매하여 기네스북에 등재된 위대한 작가, 애거사 크리스티는 자신의 일상에서 관찰한 모든 대상과 지식을 매우 전문적이고 현실적이게 추리 소설 속에 녹여 내어, 폭력적인 묘사 없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공포와 긴장을 만들어냈다. 언론에서 미혼모의 궁핍한 삶이 훨씬 더 많이 알려진, 해리 포터의 창조자 J.K.롤링은 사실 천상 글쟁이었다. 그녀가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없었던 이유는 마치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되다'에서 처럼 상상의 세계 속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게이트를 현대 미술 중심지로 부상시켰다는 트레이시 에민은 음주, 낙태, 섹스, 자위 행위 등 자신의 모든 경험을 솔직하게 그대로 다 보여주는 현대 미술가이다. 런던 올림픽의 마지막 성화 주자였던 도린 로렌스는 1997년 아들이 인종차별주의자에 의해 살해된 후 차별과 맞서 싸운 투지의 여성으로, 용의자들은 도린 로렌스와 그녀를 후원하는 단체들의 노력으로 19년 만에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영국의 인습적 인종차별 반대 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책의 첫 장은 마가렛 대처 전 수상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세상 부러울 것 없던 철의 여인 대처는 11년간 영국을 통치하면서, 빈부격차와 지역갈등을 심화시켰고, 소통의 기회를 축소시켰고, 효율이란 명목으로 수많은 노동자 농민 실업자 싱글맘들을 탄압하고, 오만과 독선으로 일관하다가 초라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녀는 남자의 부를 이용하여 권좌에 오르고 워킹맘과 주부라는 코스프레를 통한 거짓 서민적 이미지를 만들어 대중을 선동한 권력지향형의 인물로, 영국에서는 이제 만나는 사람 마다 그녀에 대해 물으면 치를 떠는 존재가 되었다. 저자 김이재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강하고 유능한 이미지만 강조된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를 가장 앞에 소개하면서, 실제로 빅토리아 시대에 차별의 벽을 박차고 나와 세상을 바꾼 진짜 위인들 10인의 모습을 대조시켰다. 그리고 그들과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짧게 만났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인물의 느낌과 감정이 마치 자서전과 같은 문장으로 기술되어 있는데, 그에 대한 자료의 출처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많은 여행과 자료 수집을 통해 쓰여진 글이니만큼 그 신뢰성의 바탕이 될 수 있는 참고 자료의 미표기가 아쉽다. 대부분의 한국 책들이 다 마찬가지다.  

 

영국에 거주할 당시 Lake District 라는 지역에서 휴가를 보내면서 그 잘 보존된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적이 있는 나로서는 베아트릭스 포터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베이트릭스 포터는 자신의 캐릭터를 일찌감치 저작권 등록하고 캐릭터 상품으로 만들어 동화책 수입 이상의 수입을 벌어들였다. 그녀는 버는 족족, Lake District 의 땅을 사들였다. 그 지역이 상업화되고 개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당시 그곳 주민들은 포터의 이러한 부동산 사재기가 지역 개발을 막는다고 반발이 심했다고 한다. 설악산이 유네스코 자연유산에 등재되면 개발이 어려워질까봐 지역 주민들이 길길이 반대해서 영구 등재 불가 상태가 되었다고 들었는데, 결국 지구촌 어디서건 보통 사람들에겐 실질적 이득이 다른 어떤 가치보다 앞선다는 거다. 그녀들이 위대한 건 땅을 투자와 투기로 바라보는 보통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죽을 때 그 거대한 호수 지방의 모든 땅은 National Trust라는 문화/자연 유산 보호 단체에 기부했다. 베아트릭스 포터가 보존한 그 땽을 밟았을 때 힘덜었던 기억 하나가 있다. 가파른 오르막의 왕복 1차선의 산길을 주행하다가 반대쪽에서 오는 차량을 만나면, 두 차가 교차해서 지나갈 충분한 공간을 만날 때까지 한 쪽에서 양보하여 계속 후진해야 한다. 호수지역 자체가 워낙 넓고 대개 오전엔 상행차량이 오후엔 하행 차량이라 이런 일이 드물긴 했지만 수동 기어를 가진 낡은 차에 아기까지 태우고 있을 때에는 그런 순간이 아찔하다. 태초의 원시적 황량함 속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 꼭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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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 가는 것들에 대하여 - 인생의 끝자락에서 만나게 되는 뜻밖의 행운
윌리엄 이안 밀러 지음, 신예용 옮김 / 레디셋고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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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청춘이었을때 최대 고민이었던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청춘이 지나고 나면 노후에 대한 대책없는 막막함을 포함하게 된다.  아직 미래의 일이고, 닥치지 않은 일이지만, 부모 세대와 조부모 세대들의 늙고 병약해지는 신체적 정신적 특징들을 목격하는 것만으로 자신에게 투영된 그 아직 다가오지 않은 시간들이 두렵다. 이 두려움은 퇴직연금과 노후 보험과 같은 경제적 준비로 단단하게 방어되지 않는다. 우아하고 품위있고 여유로운 노후에 대한 소망이 노력한다고 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노년에는 기억력, 인지 기능, 이성적 판단 능력 등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정신적 활동과 관련된 전반적인 기능도 함께 퇴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노년과 함께 오는 모든 퇴화는 준비한다고 준비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만의 독백이 흐르는 사해를 따라 떠내려가며 주제에서 벗어나는 것은 노년기의 전형적인 신호이다. p31

 

노년이란 이런 것이다. 미시간 로스쿨 월리암 이안 밀러 교수는 <Losing it>이라는 원제의 이 책 첫 페이지 첫 구절을 이렇게 시작한다. 그리고, 문장은 계속해서 노년기에 흐려지는 뇌의 정신적 활동에 대하여 얘기한다

 

노년의 특성은 분별력이 흐려지는 현상이다. p31

 

그리고 범위를 넓혀 노년기의 전반적이고 실질적인 육체적 정신적 특징을 열거한다.

 

노년기는 쇠퇴, 비열함, 탐욕,비겁함, 까다로움, 성미급함, 침울함, 징징거림, 노안, 코흘리기, 난청, 성마른 기침, 대머리, 이빨 빠짐, 악취 성욕 상실, 처진살, 망각,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수다로 설명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것은 2000 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확히 들어맞는 해석이다.p73

 

한 치 틈도 없이 실날하다. 

 

이 책을 들고 서울대병원 파스쿠치에서 커피를 주문하려고 기다리던 조금전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좁은 줄 사이로 한 호호 할머니가 마시던 커피를 카운터로 가져와 탁 놓더니 버럭 화를 내고 가지는거다. "써서 어떻게 마셔!!  이따위로 할거야?!!" 종업원과 손님들이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할머니는 돌렸던 발길을 다시 뒤돌아 버럭 소리를 더하고 사라지셨다. "마셔봐!!"  노년을 받아들일 수 없는 노년기 여성의 염색술 덕에 요즘은 귀해진 은빛의 백발에 통통히고 귀여운 완전 호호 할머니였다. 환불의 권리가 소비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에게는 미덕이 된 세상에 다다라 있다는 걸 알지 못한 호호 할머니는 3천5백원이나 하는 아까운 커피를 써서 마시지도 못한채 노인을 희롱했다는 생각에 발끈한 채 버려두고 가신 듯했다. 노인들의 이런 문화적 소외 현상은 그 커피의 신선한 향과 쌉싸름한 맛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종이잔 속의 카페인이 주는 위로를 향유하는 세대에게 그저 웃음거리일 뿐이다. 어르신의 이 작은 행동은 위에서 언급한 노년의 정신적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쇠퇴, 까다로움, 성미급함, 고립..

 

나의 할머니는 생전에 플라스틱 이라는 말을 플라티스 라고 발음하셨다. 우리들은 그 단어를 말할 때마다 깔깔거렸고 할머니는 망할 년들이라며 욕을 하셨다. 난 그 욕이 좋았다. 망할년들. 그리 성성한  할머니의 기운이 아직 노년의 끝쪽에 있지 않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런 작은 일상의 기억에도 불구하고 내가 크고, 내가 결혼을 하고, 또 며느리가 할머니가 될 때까지 점점 늙어가며, 살이 빠지시고 말귀가 점점 어두워지시고 떠나기 마지막 몇주전 급기에는 우리들을 알아보지 못하시던 그 암울한 기억을  끝으로 사라져가던 생명의 끝은 노년의 최후를 결국은 두려움과 잔인함으로 인식하게한다.

 

윌리암 이안 밀러는 방대한 고대 신화, 아이슬랜드 사가와 유대인의 성경,  문학 작품 속의 등장 인물과 사건들을 통해 노년의 특징을 매우 풍자적이고도 위트있게 사유한다.  그는 노년의 특징을 설명하는 주요 키워드로  공포, 지혜, 불평, '은퇴 복수 그리고 재산', 감정, 구원의 6개의  속성을 제시하고 이 속성에 따라 책의 각 부를 구성하였다. 이러한 노년의 특성을 접근하는 방식은 역사와 신화, 그리고 문학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다윗, 요압, 베어 울프, 리어왕, 안스가르, 그리고 아이슬랜드 사가에 등장하는 수많은 노인들의 모습에서 본질적 노년의 모습을 찾았다.

 

1부 공포에서는 노년과 더불어 찾아오는 두뇌의 손상과 그에 따른 노년의 모습을 다룬다.2부에서는 지혜라는 것의 참모습을 해부하고 3부 불만 편에서는 노인의 가장  볼성 사나운 특징이라 여기는 불만이 실은 인간의 본성적이라는 점을, 심지어 종교적 형태로 행한 숱한 '신성한' 의식마저 일종의 신에 대한 불만으로 간주하는 통찰력을 통해 보여준다.

 

노인은 노년이나 노년의 특성 그 자체에 대해 불평한다. P136

 

모든 인간이 불평하며, 불평은 때로 삶의 통찰에 신릴한 유머가 가미된 인간의  보편적 본질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울 수 있다. 불평이란 것은 대개는 지루한 일상적 화재이지만 노인의 불평에는 합법적 기능이 따르지 않으며, 불평을 멈추고 쓴웃음이나 지으며 긍정으로 빠져든다면 그 노인들은 더 이상 잃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다 잃은 것이라는 것, 그리고, 떼를 쓰는 노인은 불평할때는 대체로 무시당하고 불평하지 않는 노인은 왼전히 무시당한다는 것이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노인들의 생존 전략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4부 '은퇴, 복수, 그리고 재산'  편에서는 사가를 비롯한 중세시대 속 인물들을 통해 좌절감에 젖은 노인들이나 연장자들의 마지막 선택, 비루하게 복수에 굴복하는 대신 침상에 들어가는 완벽한 시나리오로  복수 자체를 포기하는 힘, 사후 세계까지 재산과 명예와 권력을 끌어안고 가려 했던 사례들을 분석한다.

 

은퇴의식 안에는 나이가 들며 생기는 일반적인 무능함과 쇠퇴에 따르는 슬픔과 분노에 좌절과 수치심이라는 감정을 정교하게 다룬 다양한 의미로 가득 차 있다.208


그리고, 5부와 6부에서 이어지는 감정과 구원에 대한 주제도 그의 철학적 위트는 변하지 않는다. 서문에서 밝히고 있지만, 밀러 교수가 이 책을 노년기의 자기 성찰, 자기 계발 혹은 노년을 준비하는 어떤 정신적 지침서로서  쓴 것은 아니다. 노년에 도달한 작가의 자조섞인 정신적 육체적 쇠퇴에 대한 기술은  간간히 뿌려진 양념이지만, 책 속에는 밀러 교수의 삶을 추적할 수 있는 방대한 양의 지식과 예리한 통찰이 집대성되어 있다. 곳곳에 포진된 아일랜드 사거와 구약의 인물과 신들은 목사님의 설교보다 훨씬 살아있는 캐랙터로 독자앞에 유머러스하게 등장한다. 구약이나 사거, 그리고 책에서 언급하고 분석하는 고대 중세 문학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는 독자라면 더 즐길 수 있었을텐데 내 경우 이해 못하고 넘어간 걸 제외하고라도 앞뒤 설명 없이 갑자기 맞닥뜨리는 신화 속 이야기들의 위트있게 꼬여있는 문장들과 생소한 인물의 이름들이 가독성을 떨어뜨려  문단을 몇번씩 읽어야 제대로 유머를 이해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뒤로 갈수록 흥미로워지는 이유는 앞에서 제시한 사가의 인물들이 계속 등장하므로 나중에는 점점 밀러 교수가 분석하는 인물들과 친밀해지게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책을 시작한지 한동안 흥미를 가지고 집중하기 어려웠다는 소리다. 제목과 표지 광고에서 암시하는 내용과 다른 전개 때문이었다. 이 책을 제목 그대로 늙어가면서 상실하고 있는 것에 대한 상념으로 알고 읽는다면 한동안은 그야 말로 책 속에서 길을 잃을 지경이다. 띠지의 광고처럼 지혜롭게 나이들고 인생을 즐기는 방법을 탐구하기 위한 자기계발서로 알고 읽는다면 아마도 내 생각에는 책을 끝내기 어려울것이다. 언제 본론으로 돌아갈지, 자조적인 어조로 스스로 강조했던 것차럼 박식한 노년의 지적 독백처럼 들릴수도 있다.

 

이 책은 오히려 노년을 대표하는 키워드를 주제로 신화와 문학의 경계에 선 고대 중세의 성서와 사가에 대한 깊고 날카로운 꼬임으로 빚어진 유쾌한 비평서에 가깝다.  부제를 내 맘대로 지어본다면 '노년의 특성으로 보는 유쾌한 성서 비평.  쯤 해두었다면, 독자의 원성을 받을 일이 없었을 듯하다. 즉   이 책에서 노년을 맞기 위한 자아성찰이나 심리학적 탐구를 기대하지 말 것. 노년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과학적 팩트들을 찾으려 하지도 말 것. 그러나 집중해서 읽다 보면 자연적인 현상의 하나로서 노년을 이해하고 두려움을 떨칠 수 있으며, 유쾌한 마음으로, 그러니까 파스쿠치에서 커피가 쓰다며 버럭 소리지르는 미래의 나를 젊은이들이 의아해하며 키득거리는 종류의 해학적 모습으로 바라볼 수도 있게 된다.

 

역사를 탐구하고 뒤돌아보는 것은 우리가 전체적 맥락에서 현재를 잘 이해하지 믓하고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과거 속에서 지혜를 얻고자 함이다. 인류 역사 속에서 찾아본 노후의 모습은 우리에게 닥칠 노후와 그리 다르지 않다. 우리는 조금 더 지혜로와질 지 모르고, 우리는 불만에 가득차 누군가에게 보상을 요구하고 끊임없이 불평하는 일상을 살게 될 것이고 은퇴와 더불어 침상에 누우며 비굴하지 않은 방법으로 모든 종류의 복수를 포기하게 될 것이며 결국에는 모든 감정을 정리하고 구원이라는 추상적인 세계를 바라보며 그렇게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모든 만물이 그렇게 생로병사를 반복했던 것처럼.. 그렇게 자연의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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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다는 것의 과학 - 뇌과학이 밝혀낸 믿음의 비밀
앤드류 뉴버그 외 지음, 진우기 옮김 / 휴머니스트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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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어야 하는가? 믿어도 되는가?

그렇다면 믿지 않는가?

믿지 않는 것에 대해 편안한가?

불가지론자인가?

죽기 전엔 결정해야 되는 거 아닌가?

 

[신은 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가]에서 다양한 민족의 다양한 신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보여준 앤드류 뉴버그가 Born To Belive(믿는다는 것의 과학)으로 돌아왔다. 재밌는 건 동일한 그의 이전 연구가 종교가와 무신론자를 비롯한 회의론자들에게 동시에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는 데 이용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번에는 그동안 발전된 뇌과학과 뇌 활동 사진의 발전으로 더욱 과학적으로 더욱 신경학적으로 종교, 더 나아가 믿는다는 것의 본질에 대해 탐구한다.

 

그는 내적 종교 활동 중 깊은 몰입의 단계에서 경험하는 강렬하고 초월적인 경험을 통해 종교와 믿음이 가진 본질을 과학적으로 파헤친다. 기도의 끝에서 신과 만나는 경험을 하는 수녀, 오랜 수행의 끝에서 해탈의 경지를 경험하는 불교인, 그리고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만 명상을 통해 우주와 만물이 조화롭게 하나가 되는 초월적 경지에 이르는 무신론자 세 사람이 보여주는 그들만의 신, 혹은 믿음. 그것을 발달된 과학이 예술처럼 빚어낸 뇌 사진 fMRI를 통해 드러난다.

 

 

 

 

명상할 때의 신경학적 변화는 지각과 감정 언어에 대한 일반적인 처리 과정을 중단시켜서 그 체험을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경이롭고 통합적인, 지워지지 않는 현실로 만든다. 실제로 이런 상태의 체험이 주는 강렬함음 수행자에게 세상에 대한 평범한 자각을 넘어서 특별히 높은 단계의 현실이 존재한다는 의식을 주기도 한다.

 

방위 영역이라고 부르는 두정엽은 주위 환경을 3차원으로 창조해내는 방식으로 감각 정보를 해석 한다. 만약 두정엽에서의 활동을 의식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다면 아마도 자각의 일시적인 정지나 상실을 느끼게 될 것이다. 수녀와 불교도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결과는 이들이 명상하는 동안 두정엽 활동을 자유롭게 감소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전두엽은 열 명의 사람들이 같은 지각 경험을 하고서도 열가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게 만든다. 수녀들에게 명상동안의 사진은 그들의 뇌에서 신의 사진을 찍은 것이었다. 반면 불교도들에게는 그들의 수행이 존재의 실상을 알 수 있는 순수한 자각의 경지에 도달하게 해 준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생각했다. 내적 평화의 사진을 찍은 것이었다.

 

시상은 유입되는 감각 정보를 뇌의 여러 부분ㅡ 전두엽에 있는 고도의 인지 처리 중추를 포함ㅡ으로 다시 내보낸다. 명상을 하면 일상적인 지각은 변하기 시작하고 그러면서도 시상은 정상적인 체험을 계속해서 만들고 있다. 개인에 따라 달라지는 이러한 해석은 대부분 이런 체험을 하기 전부터 개인적으로 발전시켜온 믿음 체계에 근거한다.

 

우리가 특정 믿음이나 대상에 초점을 맞춰서 명상을 할 때 편도체는 이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말하고 자율신경계가 가동 되기 시작하면 시상은 모든 것이 실제로 느껴지도록 해 준다. 이 정보는 전두엽으로 돌려 보내 주고 거기서 의식에 인지된 후 우리의 믿음에 알맞게 재해석된다. 해마는 그 경험을 장기적인 감정 기억으로 깊이 새겨진도록 돕는다.


각기 다른 종교나 믿음의 가치관을 가진 세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된 시상활동의 비대칭는 그들이 현실을 독특하게 지각 하고 있으며 명상을 할때나 안할때나 시상이 끊임없이 활동 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가장 주목해볼만한 사실은 이 두 종교인과 비슷한 뇌사진 결과가 무신론자의 무아의 경지 경험 과정 중에서도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종교인들의 영적 체험이 뇌의 특정한 신경 처리 과정일 수 있으며 그런 경험을 세속인을 포함하여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것임을 제시하였다.  누구에게나,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않는 나의 영역이 안에 있다.

 

이 밖에도 믿음에 대한 뇌신경학적 근거를 찾기 위해 뇌의 각 부분과 인간의 본성에 대해 많은 철학적 성찰과 과학적 고찰을 함께 담아 내고 있다.

 

뇌는 원인과 결과를 두개의 요소로 나눠 만일 ~하면~ 한다의 각본으로 단순화해 인지한다. 단순화 일반화 하는 신경 처리 과정은 생물학적 특성이다. 하나의 대립쌍이 성립되면 뇌는 쌍을 이루는 양자 모두에 감정적 편견을 부여한다. 대상이나 사람 관념을 이분법으로 나누어 놓으면 하나는 선호하고 다른 하나의는 반감을 갖게 된다. 우리는 본래 생물학적으로 사람들을 집단으로 나누고 그들을 분류하고 정형화하며 그런 다음엔 그들을 차별적이고 편파적인 방식으로 평가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무의식 수준에서 안면 인식 같은 처리 과정은 뇌의 전체론적 기능에 크게 의존한다. 전체론 적으로 생각할 때는 믿음을 분석하고 비교하고 계량하고 정당화 할 필요를 그다지 느끼지 못한다. 그저 옳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전체론적 사고는 언어에 기초하지 않기 때문에 신은 측정할 수도 부분으로 환원할 수도 없다. 고대 히브리어로 문헌에 따르면 신은 명명할 수도 없다. 신을 명명하지 않는 것은 세상의 모든 대상에 이름을 붙이려는 뇌의 추상화 기능과 충돌할 수 밖에 없다. 만일 무엇인가를 지각할 수 없다면 그것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신의 능력이 불가사의한 방식으로 작용한다면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우리는 기적을 찾거나 다른 증거를 찾아 다닌다. 적어도 뇌가 정상으로 기능하는 한 미지의 것을 무조건 믿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다른 뇌과학 관련 책에서도 많이 다루는 내용이어서 그리 새롭지는 않지만, 기억과, 잠재의식의 처리 과정, 뇌가 발달하는 시기에 받은 영향에 대한 글 다시 새겨 읽게 된다.

 

많은 경우 기억에서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이야기에서 기억이 만들어진다. 기억은 서로 뒤섞여서 혼동되기도 하고 가끔 세부적으로 잘못된 내용을 포함 시키기도 한다.  이런 잘못된 정보의 조각들이 새 기억속으로 부호화되고 후에 다시 회상되면서 재차 변화되어 마침내 더 정확하게 지각했던 이전의 기억을 대체하게 된다.

 

아이의 뇌에는 특히 논리와 이성 의식 통제를 담당하는 전두엽은 물론 도처에 과잉생산된 뉴런들이 있다. 이 뉴런들의 과도한 연결은 괴물과 요정 수많은 상상이 존재들에 대한 환상과 관련이 있다. 권위에 독점적이고 교리에 엄격한 근본주의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다른 집단의 사람들에 비해 독선적 편파적 성향을 보였다고 한다. 자비롭고 관대한 신에 대한 믿음이 아이들에겐 낙천성과 안정감을 주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선과 악의 추상적 양 극단 사이에 존재하는 도덕 연속성의 어딘가에 살고 있다.

 

전두엽이 손상되면 추론과 감정 처리가 불가능 하다. 이런 상태에 환자는 감정적으로 과도하게 반등 하거나 전혀 반응 하지 않거나 둘중 하나이다. 어떤 사람이 도덕적으로 잘못을 저질렀을 때 수치심 보다는 죄책감이 행동 교정을 위한 의지를 강화 한다.

 

어떤 결정을 내렸을 때 그것은 의식하기 몇 밀리세컨드 전에 뇌 안에서 전기 활동이 일어난다. 그것은 인간이 곧 갖게 될 생각에 대해 잠재의식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는 어떤 일이 우리의 의지로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오히려 의식은 이전에 일어난 사건들을 녹화한 비디오 테이프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당신들의 의식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 차리기까지 약 0.5초가 소요 된다.

 

* 이 글의 많은 부분은 책에서 무단 인용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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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 박범신 장편소설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세 아버지가 등장한다.  가족들이 행사에 있었는지 없었는지조차 완전 존재감 없던 실종된 아버지이자, 가족을 버리고 전혀 다른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 이 책의 주인공인 아버지, 자식의 교육을 위해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고집스레 염전을 일구다가 땡볕에 스러져버린 그 아버지의 아버지, 작은 땅콩밭을 일구며 욕심 없이 살아가는 것 마저 너무나 사치여서 결국은 몰락해 가는 항구 도시로 내몰려 나약한 몸으로 온갖 수모를 참으며 부두 하역 작업 일을 하다 끝내 비명횡사한 화자 [나]의 아버지. 마지막 두 아버지들은 척박한 시대에 태어나 온 몸 마지막  뼛속 뼈 마디마디가 모두 고갈될 때까지 후대의 광명을 자식에게 걸고 소처럼 일하다 스러져갔다. 

 

아버지의 아버지 세대의 희생은 노동이고 아버지의 희생은 소외이다. 죽을때까지 일해야 했던 아버지의 아버지들은 그 대신 가장으로서의 권력을 가졌다. 염전과 가족이 걱정되어 100리길을 걸어온 중학생 어린 아들을 매질하여 돌려 보냈고,  적응하기 힘든 부두 하역 작업의 스트레스는 술에 쩔어 던지고 부수고 아내를 때리는 행동도 보상받았다. 염전에서 스러져간 자신의 아버지의 염원대로 일상의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한 아버지는 시대의 역군이 되어 사막에서 일하고 회사에서 희생하여 예쁜 세 딸과 화려한 아내 최상류층적 물질적 행복을 누리지만, 그의 목소리는 결코 자신의 벽을 넘어가지 않는다.

 

꿋꿋하게 버티어 과실을 나누어 주는 배롱나무처럼 아버지의 존재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생계 라는 어깨 가득 무거운 짐을 짊어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로부터 소외되고 노쇠한 한국의 아버지들에 대한 소설이다. 은교가 노인과 늙어감에 대한 성찰을 주는 소재를 다루었다면 이 책은 조금은 불편하리만큼 가족 내에서의 아버지들의 위치와 의무를 희생물로 삼는다. 실종된 아버지에 대한 묘사가 내게는 조금은 억지스럽게 비쳐지지만 시류에 떠밀리다보니 어쩌다가 권위와 존경은 사라지고 강요받은 가장으로서의 의무감만 남게 되었으니 자신의 꿈은 희미하지만 달콤했던 옛 사랑의 기억처럼 휘발되어 버린 채, 존재감도 없이 살아가는 개인으로서 읽는 것이 무난하다고 보여진다. 한국 남자들이 다 그렇게 불행하다면 한국 여자들이 다 그렇게 이기적이고 물질적이라면 전혀 희망이 없을 것이므로.

 

배롱나무가 잔잔하게 흐르는 배경 음악처럼 흐르고 산처럼 쌓인 염전과 새하얀 소금이, 달칙하게 발효된 젓갈이 지면 곳곳에서 효과를 낸다. 누군가는 아버지 버전의 [엄마를 부탁해] 라고도 했다. 실종된 아버지를 찾아 나서는데 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점, 사라진 아버지는 가족을 위한 희생과 가족으로부터의 소외를 버텨 왔다는 점, 가슴 깊은 곳 쓸쓸함 어딘가에 이룰 수 없었던 꿈과 연인을 간직해 왔던 점 등을 볼때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와 많이 닮았다. 어쩌면 이제는 한류의 한 현상이기까지 했던 [엄마를 부탁해]의 오마주일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의 존재는 아버지의 부재로부터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아버지가 함께 있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딸들과 아버지를 무시하는 어머니는 아버지의 부재와 동시에 아버지의 존재를 인식한다. 반면 어머니는 거대 자본의 상징처럼 가족을 압도하고 소비를 주도한다. 어머니의 지론은 세상은 무너지는 사람을 붙잡아 주지 않는다 것이었다.

무너지는 사람을 보면 더 밀어 버리고 싶어 하는 것이 세상 인심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설령 죽을만큼 배가 고파도 뱃속 허기가 내는 비명 소리를 헛기침으로나마 단호히 감출 것이며, 외로워도 눈물 나도 사람들과 눈 마주치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웃어 단속해야 할 것이고, 화가 머리 꼭대기를 뚫고 솟아도 오늘과 내일을 고려한 business 전략을 버려서는 안된다고 어머니는 가르쳤다. 그런 어머니가 아버지의 부재 1시간만에 이성을 잃기 시작한다.  시우와 그녀의 언니들이 제일 제일 큰 충격을 받은 것은 기실 분식 회계에 따른 파산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실종 이후 어머니가 보여주는 급격한 자기 몰락이었다. 이제까지 그녀들이 보고 들은 바에 따르자면 아버지 실종은 어머니를 더욱 옹골차게 만들었어야 옳았다. 설령 아버지가 없어진다 해도 어머니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 같았던 어머니가 아버지의 실종 이후 마치 폭풍 속의 허수아비처럼 단숨에 무너졌다.

 

화자이자 시인인 [나] 역시 그 사라진 아버지의 딸이 아버지를 찾는 과정에 관여하면서 자신을 위해 일구던 땅을 버리고 쇠퇴해가는 항구에서 스러져가던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린다. 어떻게 해서든 나를 대학까지 가르쳐야 한다는 어머니 신념만 없었다면 금강 변의 척박한 모래 땅을 일구고 때로는 노래나 들으면서 풍족하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아버지는 세상의 평화로운 한 모퉁이를 잘 돌아 나갔을 아버지. 그는 아버지가 그립다.  아버지의 희생이 안스럽다.

 

젊었을 때 우리는 배우고 늙었을 때 우리는 이해한다는 잠언은 틀린 말이었다. 젊은이들이 화려한 문화의 중심에서 만원씩 하는 커피를 마시 때 늙은 아버지들은 첨단을 등진 변두리 어두컴컴한 작업장 뒤편에서 인스턴트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들고 있는게 우리네 풍경이었다. 문제의 잠언은 젊을때 소비하고 늙을 때는 밀려난다고 바꿔야 마땅했다.

 

그리고 겨우 작은 술집 마주 앉은 마주 앉은 그녀, 아버지를 잃은 그녀 뿐인 세상에게 말한다.

과실을 따 올때 겨우 아버지 아버지 하는 거라고. 불러 봐. 아버지가 번 돈으로 술마시는 쟤네들 머리속에 지금 들어가는 아버지들이 들어 있겠어?

 

실종된 아버지는 물질 지향의 삶속에서 아내와 아내를 정신적으로 잃고 자신을 통장 같이 취급하는 가족, 그 황폐함 속에 놓여 있었다. 죽어라 일한 대가로 늘어난 연봉과 늘어난 잉여 재산이 자식들을 소비괴물로 만들었고 아내와의 사랑 역시 서로 빨대를 꽂아 빠는 기능적 관계로 변모시켰다.

 

나는 여기에서 슬슬 이렇게 끝 갈 데까지로 자신을 내 몬 그 가출한 아버지가 짜증나기 시작했다. 작가는 작가라면 시대를 비판할 줄 알아야 한다지만, 자본주의와 결합한 저급한 물질 만능주의를 탓하기엔 아버지 개인이 모자랄 만큼 비주체적인 삶을 살았다. 물론 가족의 생계를 책임 지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아늑하고 포근한 더 나아가 화려하고 만족스러운 소비의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이 50대 아버지들을 소외되고 혹독한 찬 공기 속으로 내몰고 있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이 삶이다. 누구에게나 가지 않은 길이 있고, 가지 않았기에 이루지 못한 꿈이 되었고, 가질 수 없었기에 아쉽게 삶의 언저리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누군가가 가슴 한 가운데는 있는 것 뿐이다. 생계의 덫에서 벗어나고자 했다면, 자유로운 삶을 꿈꾸었다면, 처음부터 아내의 유혹에 강하게 맞설 용기가 있어야 했고, 아버지의 헌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땡볕 아래 소금 밭에서 죽어가던 아버지에게 처음부터 맞서야 했고, 무엇보다 자신이 가족 내에서 빨대로서의 기능만을 하지 않고자 했다면 가정의 경제와 소비에 적절히 관여했어야 맞다. 그게 단순한 세상의 이치다. 다들 자식새끼들 키우기 위해 돈벌어 오느라 힘들지만 그 대가에 1/100에라도 상응하는 보상을 추구한다. 실종된 아버지는 그래서 상식 밖으로 가족 내에서 스스로 무능력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원치 않던 삶에 대한 자학으로서, 알게 모르게 자신을 그 가족 내에서 스스로 소외시킨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족을 버린 그가 얻은 자유.

인생은 두 개의 단 맛이 있어. 하나의 단맛은 소비의 단맛이고, 다른 하나는 참된 자유를 얻어서 몸과 영혼으로 느끼는 해방감의 단맛이야. 그는 마침내 그 자신이 강물이 됐다고 느꼈다.

아버지를 찾아 하루 150리가 넘는 길을 걸었던 그리하여 멀고 흰 강의 꿈을 꿨던 오래 전부터 시작된 잠재적인 욕망의 실현이었다. 끝까지 읽은 나는 좀 멍 해졌다. 참 먼 길을 걸어왔지만, 그가 소비와 자본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가 버리고 온 엄밀히 말하면 어쩌다 버리게 된 그 길 그러니까 이미 거쳐왔던 그 여정이 없었다면 도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첫사랑도 마찬가지이다. 막상 가출 후 자유로와졌을 때는 평생 마음에 품고 살던 그 사람이 생각나지 않았다.

 

 

누군가와 불멸의 관계를 맺고 싶다면 관계를 맺지 말게. 그 수밖에 없어. 사랑이 훼손되지 않으려면.

 

이 소설이 오래 도록 가슴을 때린 건 생뚱맞게도 바로 저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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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사기꾼 - 높은 지능과 낮은 도덕성을 가진 얄미운 그들의 속마음
스텐 티 키틀 & 크리스티안 제렌트 지음, 류동수 옮김 / 애플북스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내가 일생을 살면서 사기를 당한 적은 두번 있다. 그 중 하나는 생활이 어려워진 지인에게 빌려주고 받지 못하는 돈이니 언젠가는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사기는 아니지만, 어려운 상황이 지났을지도 모르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언제 갚겠다는 말도 없이 갚지 않고 있으니 즉, 본인이 돈을 빌린 사실을 스스로 부정하거나 계속해서 어려운 상태임을 가장하는 중이라면 사기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 번은 전형적인 사기꾼이 아주 작정을 하고 친 사기에 걸려들어 당시 나에게는 매우 큰 돈을 사기 당했다. 하프프라이스라고 하는 인터넷 구매 사이트에서 모든 물건을 반값으로 판매하여 횡재했다며 모여드는 , 당시 인터넷으로 빠른 정보를 획득하던 IT 계통 사람들이 대거 당했다. 반 값이라는 터무니없는 가격에도 불구하고이 의심 없이 사이트를 믿고 선뜻 선불을 지불한 이유는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전형적인 사기 수법임에도 불구하고, 그 때로서는 믿음의 자기 합리화에 빠져 군중 심리에 휩싸였던 것이다.   우선 주변에서 너도나도 앞다투어 물건을 주문하는 모습에 동요되었다. 게다가 그 사이트는 잘나가는 tv 드라마에 협찬 및 광고까지 하고 있었다. 매체에 대한 이미지가 그 사이트의 권위까지 조작하고 있었던 것을 몰랐던 것이다. 나는 막차를 탔다.  초창기에 값비싼 물건을 반값으로 판매하여  얻은 신뢰를 바탕으로 하프프라이스는 초기판매의 손실을 그 다음 소비자에게 받은 선금으로 메우고 그렇게 계속 다음 소비자에게 그 전 판매의 손실을 전가했다.  4사주가 되어도 물건이 배송되지 않는다는 불만이 게시판을 가득 메우고, 진상조사카페까지 만들어질 즈음에도 사기꾼 사장은 계속해서 거짓말과 자신만만한 큰소리처를 뻥뻥 쳤고 주문이 이어 졌다.


동료 한 명은 단체 소송자들과 함께 하루종일 몰려다닌 덕분에 환불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그러하지 않았다. 돈이 안아까워서가 아니라 빨리 잊고 새출발 하는 게 더 남는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새 물건을 반값에 산다는 것은 나머지 반값 만큼을 별 노력도 없이 이득을 보냈다는 심사이다. 공짜는 없다는 교훈을 두고두고 새겼다. 그래도 여전히 공짜는 좋지만  이유 없는 호의는 늘 부담스럽게 때문에 그게 빚이 되지 않도록 빠른 시일내에 되갚아 neutral 상태로 만드는 게 마음 편하고, 그도 저도 안되면 더 주고 잊는 편이 낫다. 그런데 호의를 받게 되면 받은 것보다 대개는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애초부터 아예 안 받는 게 좋다. 작은 립스틱 샘플 하나 받으면 원지도 않는 화장품 세트를 사야 되고 밥 한 끼를 얻어 먹으면 이상한 서류에 계약서를 써야 될지도 모른다. 사기꾼은 이러저러한 사람의 심리를 잘 이용한다. 


사기꾼이 사용하는 도구는 거짓말이다. 신정아의 거짓말은 본인이 실제로 만천하에 자신의 사기(?) 행각이 낱낱이 밝혀지고 치욕적인 감옥문을 나와서까지 계속되었다. 이 책은 몇 세기에 걸친 희대의 사기꾼과 그 사기 행각들을 유형별로 소개하고, 사기에 바탕이 되는 사기꾼의 심리와 사기를 당하는 인간의 심리를 파헤친다. 로버트 차일디니의 설득의 심리학을 통해 이제는 널리 알려진 '문 안으로 발넣기' 기법은 사기꾼들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사람들은 일단 한 번 결정을 내린 다음에는 그 결정을 지지하고 계속 그 방향으로 가는 경향을 보인다. 황우석이 사기꾼인지 아닌지는 내 판단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그의 지지자들은 황우석이 미디어에서 하는 말의 대체 어느 부분이 거짓말이 아닌지를 판단할 수 없는. 그러니까 입에서 나오는 족족 거짓말임이 밝혀진 상태에서도 끝까지 그를 지지하고, 언론을 공격했으며, 모든 것이 음모라고 했다. 끊임없는 자기 합리화, 자신의 결정에 대한 지지, 긍정성. 이런 것들이 피해자로 하여금 마지막 순간까지도 피해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만들고, 그 마지막 순간에도 계속해서 거짓말을 하는 사기꾼들의 거짓말이 통하도록 한다. 어떤 사람이 두 가지 긍정적 성품을 보여주면 상대는 자기도 모르게 다른 긍정적 성품을 받아들일 자세가 된다. 사기꾼들은 자신의 본래의 문제 즉, 관계를 유지하는데 무능력하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의 자신감을 다지기 위해 강박적으로 늘 새로운 희생자를 찾아 감정적으로 끝까지 빨아먹는다. 사기꾼들은 대개 한 두 가지 긍정적 인상을 바탕으로 큰 사기를 친다. 


사기에는 애정 사기꾼이 있다.  사랑을 빙자해서 등골을 빼먹는 유형의 인간이다. 다 나쁘지만. 애정 사기꾼에 의한 피해는 피해자를 정서적으로 한 번, 물질적으로 한 번 더블 확인사살을 한다는 점에서 더욱 치명적인 듯하다.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요소는 개방성, 다정함,친절함,활기,카리스마,넘치는 자신감 같은 특징이다.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자기를 지키기 위해 상대의 결정을 제대로 보지 않는 것이다. 파트너에게 정서적 의존관계 및 그에 상응하는 불안감을 불러 일으키는지 성공하면 사기꾼들은 기생적 존재 양식을 더 오래 더 거리낌없이 누리며 결국에는 피해자들을 경제적 정신적으로 완전히 파멸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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