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소리 최인훈 전집 8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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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막연히 죽고 싶을 때가 있다. 죽고 싶은 이유가 무엇이든 죽음을 생각하는 건 때로 감미롭다. 만족스럽지 않은 삶의 상태를 벗어날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라도 죽음이라는 추상적 상태는 마지막 보루로서의 출구를 마치 희망처럼 제시한다. 어둠 속에서 아주 몹시도 지루하고 끔찍하고 진부하고 재미없는 영화를 보다가 어느 임계점을 만날 때가 있다. 됐어. 여기까지야. 이제 그만. 이만하면 충분히 된거야. 중간에 성큼성큼 걸어 나온다.

그렇게 캄캄하게만 느껴지는 삶 밖으로 걸어나오는 데 걸림돌이 되는 건 다름 아닌 사후에 남겨질 육신이다. 삶이 떠나고 죽음이 남은 자리에 죽은 몸도 함께 남는다. 누워 꼼짝 못하는 몸은 삶이 지속되는 동안에도 삶이 끝난 다음에도 스스로의 의지대로 어찌할 수 없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서, 죽음보다 끔찍한 죽는 순간의 공포를 견디고, 죽는 일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살아 있는 동안 고작 그 몸에 대해 조작 가능한 것이라고는 누울 자리를 찾는 일 뿐이다.

여자가 일하는 접대업소가 인테리어 공사로 쉬는 기간 여자는 죽어 누울 자리를 찾아 온천 도시로 가서 여관에 숙소를 잡는다. 숲속의 아늑한 구석 쉽게 눈에 띄지 않을 곳 죽기에 안성맞춤이다. 만일 셋방에서 죽는다면 세든 사람들 모두에게 구경거리가 될 것이기에 그녀는 이 곳에서 홀로 죽을 작정이었던 것인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 두 남녀가 잔듸밭에 누워 밀회를 즐기고 있다. 죽기로 작정한 장소에서는 죽음의 그림자 대신 남녀의 사랑과 웃음이 흘러나온다.

여자는 왜 죽기로 작정한 것일까. 당대 여성에게 자살 동기는 남자의 배신이라는 상투성에서 벗어나기 어렵지만 그 상투성마저도 오랜 시대에 걸쳐 절대적으로 취약했던 여성의 위치를 생생히 드러낸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여러 영역에서 금기시되고 제한된 상황에서 경제력을 갖기 위해 평생 의존할 남자를 찾는 데 실패한 여성이 할 만한 일이 접대와 관련된 일만큼 흔치 않았으나 접대는 나이와 함께 소멸되어 가는 성적 매력을 뜯어먹고 사는 직업이었으므로 더욱 더 남자의 순정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죽으려고 맡아놓은 자리에 남녀가 있으니 여긴 내가 먼저찜했으니 좀 비켜주실래요? 할 수도 없고 다음날 아침에 다시 와도 또 그 다음 날 다시 와도 그들은 아침 일찍도 와서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죽을 자리에 누워 있는 남녀의 웃음소리는 여자가 죽기로 작정한 이유를 독자들에게 설명할 계기가 된다. 시대의 상투성을 벗어나지 못한 한 접대부는 자신을 향한 남자의 순정을 딱하게 여겼지만 그 순정에 중독되어 결국 그를 사랑하게 된 것을까.

남자의 성적 욕구에 기대어 생계를 유지하면서 그것을 순정으로 착각하는 오류로 인해 상처받는 게 운명이라면 이번 생은 이 형편없이 상투적이고 진부한 인생극장에 반전을 기대하며 낭비하지 말고 비상구라고 쓰인 희미한 표지판을 따라 성큼성큼 극장 밖으로 나가버리는 것이 다음 생에(혹시 있다면) 더 득이 될 것이다. 어차피 이번 생에 쌓이는 업보는 이번 생의 사회에서 통용되는 윤리적 가치와 규범으로 판단될 것이기에 더 살면 살수록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악이 선보다 클 수밖에 없는 구조에 있지 않은가.

하지만 남녀의 웃음소리는 결국 자신의 웃음소리다. 환상과 꿈과 현실의 모호한 관계가 밝혀지기까지 여자의 심리는 뚜렷하지 않다. 다만 죽음에 이르는 삶의 권태라면 조금 더 일찍이 그러니까 젊고 천재적인 작가들이 폐결핵으로 푹푹 쓰러져 죽어 나가던 시대의 상투성이지 가속되는 산업화의 속도에 맞춰 미싱 돌아가는 소리가 대한민국 경제를 아래로부터 떠받들던 시대의 정서가 아니었다.

산업화의 그늘 속에 소외되고 외면된 그 죽음마저도 구경거리와 뒷담화 소재에 쓰일 하찮은 사람들이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회의 어둠 속에서 허락되지 않은 사랑을 하고 더더욱 허용되지 않은 상처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그들과 우리의 경계를 나누었으며 그 경계는 얼마나 깊고 넓고 큰 것이었으며 또 이쪽과 저쪽은 얼마나 우연히 결정되는 것인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자신의 웃음소리와 그 속에 배어 있던 희망이 사랑이 이미 두 남녀의 죽음으로 밝혀지면서 웃음과 희망과 사랑이 죽은 것이므로 이제 다시 돌아가서 그것 없는 삶을 꿋꿋하게 살아가면 되는 것일까.

3일동안 여성의 환각과 잠 속의 꿈과 현실 사이의 몽롱함에서 깨어나서 그녀가 향할 곳이 그 시대에, 어느 곳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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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습환자 - 최인호 대표중단편선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6
최인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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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의 작품은 70~80년대에 영화를 통해 많이 알려졌다.<별들의 고향, 이장호 감독>, <바보들의 행진, 하길종>, <걷지 말고 뛰어라>, <깊고 푸른 밤> 등 당대 흥행에 성공한 많은 영화들이 최인호 작가의 원작 소설을 각색하거나 직접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견습환자>의 주인공은 가벼운 증상으로 병원에 갔으나 폐결핵에서 기인한 늑막염이라는 병명을 진단 받고 입원 상태에 이른다. 거기서 의료진과 병원 직원들의 감정을 관찰하며 스스로 진단하며 더 나아가 그들을 웃게 함으로써 치료하겠다는 의지를 펼친다. 주인공은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의료진들을 웃겨 보려고 노력하지만, 좀처럼 통하지 않는다. 의료진들의 조직화된 '웃음부재'는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당대의 한 병폐인 듯하다. 당대의 사회가 의사들에게 메마르고 삭막한 이성적 의료 행위를 요구했다면 최근 트랜드는 반대다. 잘 웃고, 친절하게 병과 증상과 치료 방법에 대해 설명해주고, 나을 수 있다는 신뢰를 주는 서비스 역시 의료 의 질을 결정한다. 객관적인 의료지식으로 무장한 채 냉철해야 하는 치료 행위와 아픈 몸을 믿고 맡기고 설명을 요구하는 의료 서비스라는 상반된 입장은 사람을 대하는 업무에서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고 억제해야 하는 오늘날 서비스직의 감정 노동의 현실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2와 1/2>는 다가구 주택에 옹기종기 모여사는 한 주택 내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다룬다. 죽은 사람은 혼자서 셋방에 살면서 같은 주택의 남자들을 잠자리로 끌어들이곤 했던 한 젊은 여성이다. 주인공 이서영은 장티푸스 예방 주사 후유증으로 힘겨운 하루를 보낸 후 집에 들어가다가 셋방의 여자가 문을 빼꼼히 열고 담배를 청하면서 밤 1시에 자기 방으로 자러 오라는 유혹을 듣고 잠이 드는데,  한밤중에 경찰들이 문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뜬다. 그녀가 살해되었으며 한 집에 세들어 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경찰서로 조사를 받으러  끌려간다. 장티푸스 백신으로 몹시 힘든 그는 곧이어, 경찰이 피해자가 자신과 같은 임질을 앓고 있으며 자신이 몽유병으로 평소 피해자의 방 근처를 서성거리곤 했다는 말을 듣는다. 마지막까지 세 사람의 용의자가 남는데, 이들은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몸을 피해 있자고 작정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나, 지치고 아픈 이서영은 그대로 그 자리에 앉아 자신이 죽였다고 말하고자 하는 충동을 겪는다. 이 소설이 주는 메시지는 그 어떤 말로도 마지막 문단보다 더 잘 설명할 길이 없다.


그 갈색의 계집애는 지금 우리 시대의 나이 서른 이상 먹은 자식들이라면 내가 아니더라도 누구든 망가뜨리고, 학대하고, 울리고, 때리고, 죽일 수 있는 여인이라고 고백하는 편이 더 홀가분 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그들이 잘 해결해 주리라 믿고 싶었다 57


혼자서 셋방을 살며 밤에 남자를 유혹하는 여성이라면 그 어떤 남성이든 그 어떤 폭력도 용인되는 사회. 이런 사회를 생각없이 통과해온 세대라면, 국회위원이 되어서도 가족을, 그러니까 아내를 '관리'해야 하는 대상으로 말하는 것에 아무 문제도 못느낀다. 

사실 유명한 영화 제목이었던 <깊고 푸른 밤>을 먼저 읽었고, 다시 앞쪽으로 되돌아가 <견습환자>부터 읽어나가면서, <술꾼>을 읽었을 때, 여기서 멈추고 이 단편에 집중해서 리뷰를 쓰려고 했었다. 그래서 이 리뷰의 제목은 [단편]술꾼 이렇게 될 뻔했는데, 조금씩 언급하면서 길어지고 있다. 어쨌거나 결국 술꾼에 대한 내 감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거 같다. <술꾼>에서, 어린 아이가 동네 술집을 돌아다니면서 아버지를 찾는다. 아버지의 이름을 대며, 집에 엄마가 피를 토하며 죽을 것 같다고, 아버지를 데리고 오라고 했다고, 아버지는 엄마가 죽을 거 같으면 술집으로 저를 찾으로 오라 했다고, 여기 우리 아버지 있나요? 이렇게 물으며 다닌다.

작은 대포집과 술취한 어른들, 아버지를 찾아 고개를 빼꼼 들이민 아이. 급속한 근대화 속 도시 빈민이 처한 자리의 익숙한 듯한 풍경이다. 물론 지금 아이가 술사는 것도 금지되어 있지만 지금은 더더욱 상상하지 못할 일이 생기고 있으니 바로 아이에게 술을 권하는 것이다. 아이는 처음에는 사양하는 듯하지만, 눈치도 못채게 잽싸고 빠르게 잔을 비우고, 김치를 집어먹는다. 아이는 아버지를 찾아, 다른 술집을 계속 다니고, 그렇게 술에 취해간다. 소설을 계속 읽어나가면, 아이의 행동은 끝없이 반복되고 있음을 눈치채게 되고, 그 이유는 알콜 중독, 그것의 더 앞선 이유는 상실에 있다는 섬뜩한 반전에 대면하게 된다. 그러면서 두 가지 사건을 묵도하는데, 하나는 전쟁에서 한쪽 팔을 잃은 한 사내가 소년을 죽이려 시도하다가, 스스로를 죽이는 사건이고, 또 하나는 길에서 술에 취해 쓰러진, 그대로 두었다가는 얼어죽을 것이 뻔한 사내의 지갑을 훔쳐 술값으로 쓰는 일이다. 

한쪽 팔을 잃은 사내는 아이에게서 과거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이 틀림없다. 그는 아이를 죽임으로써 자신의 현재의 모습을 죽이고 싶었다. 한밤에 죽어 쓰러져 가는 사내는 아이의 미래 모습이다. 어린 나이에 이미 소문난 술주정꾼이 되어 버린 아이에게 기다리는 운명은 그 디테일만 다를 뿐 거리에서 죽어가는 술중독자의 운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제 기자 간담회에서 질낮은 도돌이표 질문을 피해 채널을 돌리다 마주친 조국의 답변이 귓가를 맴돈다. '맞습니다. 저는 금수저입니다. 금수저로 태어나고 강남에 살아도 사회와 제도가 공평하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토록 당연한 말이 멋있어 보이는 이유는 부와 권력의 대물림이 낡은 제도권의 단단한 기반에 의해 지탱하고 강화되기 때문이다. 부와 권력이 대물림되는 동안, 가난과 절망 역시 되물림된다. 술취한 아비를 찾아다니며 술에 취하는 아이의 미래는 술취해 거리에 죽는 아버지의 미래에서 얼마나 멀어질 수 있나.

하지만 더 큰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그에게 피를 토한 어머니와 술집 어딘가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아버지는 이미 박제된 과거였으니, 흡족해진 만큼의 술을 얻어마신 아이가 향하는 곳은 고아원의 개구멍.  충격적인 소설이었다. 지금 수준의 인권이라면 가능하지 않는 소설이지만, 아이를 소재로 하였기에 전해지는 근대화의 속도 속에 스러져간 수많은 실패와 낙담, 빈곤, 절망의 분위기는 음산한 디스토피아적 소설을 읽는 듯하다.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어머니와 술집에서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찾아다니는 이미지. 파괴되어 재생되지 않는 가정의 이미지가 스냅사진처럼 삶을 떠나지 않고 어린 아이를 지배하는 이 이미지 속에서 섬뜩함을 느낀다. 

<타인의 방> 역시 괴기함을 따지자면 카프카가 떠올리는 소설이었지만, <깊고 푸른 밤>이나 <술꾼>에 비해 오히려 해학적이었다.  새벽에 출장에서 돌아왔는데 자기한테 열쇠가 있는데도 문을 쾅쾅 두드린다. 아파트 복도에서 사람들이 빼꼼 내다보며, 당신 누구냐, 3년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이웃이다. 속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다라고 말한다. 결국 자기 손으로 열쇠를 따고 들어가서 무얼 발견했을까? 물체들이 움직이고, 비현실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와중에, 와이프가 쪽지를 써놓고 집을 비운 걸 알게 되는데. 

<깊고 푸른 밤>은 로드 무비. 작가가 미국 갔다가 대마초로 활동이 금지된 모 가수를 만난 경험을 토대로 쓴 소설로, 뭘 말하는지 알겠는데, 요즘 소설과 비교해봤을 때 묘사가 (지나치게) 치밀하다. 

문동에서 나온 한국 문학 단편 시리즈 중 하나인데 이 시리즈 전체에 대해 신뢰가 생긴다고나 할까.. (철지난) 근현대 한국 문학을 읽고 싶다면 여기서 고르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당대 사회의 단편적인 이미지들을 통해 사회 전반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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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팬스 : 깨어난 괴물 1 익스팬스 시리즈
제임스 S. A. 코리 지음, 최용준 옮김 / 아작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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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이지만, 얼마까지, 그러니까 일론 머스크가 페이팔 같은 아이티 사업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스페이스 x를 설립하여 오랫동안 삽질하다가 가시적 성과가 보이자 화성 이주 얘기를 꺼내기 전까지는, 태양계의 그 어떤 행성에서도 인간이 살 수 없고, 그곳에 가야할 이유도 없어 보였다. 당연히 풍부하고 드라마틱한 서사를 제공하는 스페이스 오페라 SF들은 태양계 너머 우리 은하 너머 빛의 속도로도 극복할 수 없는 먼 거리의 우주를 상상한다. 이 때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적 법칙은 종종 무시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 법칙 말이다. 그래서 과학소설들은 앞으로 밝혀질 물리법칙이라는 가정을 전제한다. 과학적 추론이 전혀 없으면 판타지가 되고, 뭔가 잘만 하면 납들이 될 듯한 그럴듯한 과학 용어들로 이루어진 설명들이 현재 상정되고 있는 수많은 가설과 일부 밝혀지고 있는 사실들의 어느 중간에 있으면 SF가 된다.


이 소설은 인류가 태양계의 곳곳에서 살고 있는 어떤 가상의 미래를 다룬다. 대체 왜 그런 곳, 깨끗한 물은 커녕, 미세먼지 탁한  공기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 가서 천만이 살고, 오백만이 살고 그러는지, 자세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지구에 있는 인간들이 지구의 자원을 고갈시켰을테지만, 여전히 지구는 태양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인 300억을 부양하고 태양계에서 화성과 함께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태양계 내의 여러 행성들에서는 지구와 가까운 화성은 물론 토성과 목성의 고리들과 소행성대에까지, 각각에는 수천만명에서 1억까지의 인간을 수용하였고 이제 천왕성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중이다. 그중 벨트인들이라 부르는 소행성대의 사람들의 삶을 주배경으로 한다.


소행성대라고 하면 목성과 화성 사이에서 공전하는 수많은 작은 행성들이다. 크기가 작고, 모양도 제각각이다. 여기서 어떻게 인간이 살 수 있을까. 넷플릭스에서 이 작품을 드라마로 방영하고 있었는데, 책이 있으니 책을 먼저 읽고 봐야겠다 싶어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막상 1권 즉 중간 정도를 끝내고 찾으니 분명 계속해서 추천 비디오로 늘 떠다니던 작품이 사라져서 보이지 않는다. 한글로 영어로 이렇게 저렇게 검색해도 찾는 검색어가 없다는 싸늘한 답변만 계속되고 쓸데없이 다른 작품만 추천한다. 알고보니 아마존에서 서비스하는 프라임비디오로 갈아탔다는 소식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가 아닌 경우, 계약 관계에 따라 작품이 이리저리 몸값을 받으며 팔려다니는 모양이다. HBO 드라마만 못보는 줄 알았는데, 넷플릭스 자체 드라마는 시즌 3~4 정도에서 유사한  설정이 반복되고 좀 질질 끄는 경향이 있어서, 다른 드라마도 좀 보고 싶은데, 비디오 서비스 시장의 다양화가,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건지 구독 서비스의 멀티화로 이어져 결국 지갑을 털어가고 마는 건지 음울하다.


어쨌거나, 결국, 소행성대에 사는 벨트인들이 사는 모습이 책에서 아주 흥미롭게 묘사되어 있고, 그것 때문에 드라마를 보려고 했는데, 결국 못봤다는 얘기고. 소행성대의 아주 작은 행성들은 중력이 거의 없어서 거기서 태어난 사람들은 키가 길죽길죽하게 크고 야리야리하다.  소행성 하면 어린왕자의 작은 행성이 생각나는데, 의자를 조금 움직이면 일몰을 다시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확트인 표면이 아닌 터널 안에서 산다.


소행성대에서는 백금, 철, 티타늄이 났다. 토성에서는 물이, 가니메데와 유로파의 커다란 거울을 이용한 온실에서는 채소와 고기가, 지구와 화성에서는 유기물이 났다. 이오에서는 전기, 레아와 이아페투스의 정제소에서는 헬륨-3가 났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부와 권력이 세레스를 통과해 갔다. 그리고 그러한 수준의 무역이 있는 곳에는 범죄도 함께 했다. 그리고 범죄가 있는 곳에는 그것을 막기 위한 경찰 병력이 있었다.


세레스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은 확트인 지구적 환경에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터널 같은 곳에서 공기를 정화해가며 재활용해서 쓰는 사람들에게 확트인 공간은 공포 그 자체다. 게다가 그들의 눈에 높은 중력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대체로 뭉툭하고 땅딸하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구는 지구대로 화성은 화성대로 유엔 통치 기구들을 만들어 우주 소행성대에까지 힘을 행사하고 있고, 압제에 시달린다고 느끼는 소행성대인들은 압제에 저항한다.


세레스라는 행성에서 경찰로 등장하는 밀러와, 애초 세레스에 물공급을 위해 우주선 켄터베리호를 몰던 부선장 홀던의 시선이 교차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밀러는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줄리라는 소녀의 행방을 찾다가 뭔가 거대한 음모를 발견하고 스스로 깊숙히 말려들다가 결국 해고된다. 홀든은 조난신호를 받고 팀을 꾸려 구조하러 갔다가 역시 거대한 음모에 말려들어 우주를 유영하며 자신의 부하직원들과 선의의 구조원들이 온갖 꼴을 당하는 걸 목격한다. 여기에는 우주적 규모의 행성간의 알력과 지구/화성간의 대립, 그리고 내행성계와 외행성계의 힘의 불균형에서 비롯되는 약탈적 경제 관계 등이 관여하고, 악명높은 테러조직의 역할 또한 만만치 않다. 프롤로그에서 등장하는 소녀 줄리에게 뭔가 키가 있을 듯한데, 아직 모르겠다.


다읽고 나서 한참 만에 결국 드라마를 보게 되었는데, 원작에 비교적 충실하면서 빈약한 상상으로는 처리되지 못한 시각적 효과를 맘껏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보너스로 홀던이 책의 이미지보다 훨씬 훈남이어서 보는 내내 온도가 훈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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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ficial Condition (Hardcover)
Martha Wells / Tor.com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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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rderbot diaries 시리즈의 두번째 책이다.  첫권에서 murderbot의 캐릭터에 너무 푹 빠진데다가, 고객의 생명을 구한 대가로, 탐험대 대장이(여자다) 멘사가 무장한 로봇을 해방(?)시켜줄 목적으로, 그러니까 인간 관점에서 인격적으로 대우할 목적으로 이 로봇을 비싼 값에 샀는데, 첫권의 마지막에 탈출하는 걸로 끝난기 때문에, 2편이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첫 권에서는 강철 수트와 팔다리에 부착한 강력한 무기들, 수하에 거느리고 있어서 아무곳이라도 염탐할 수 있는 작은 드론들, 통신 모듈 뿐만 아니라 이 보안로봇이 휴식하는 공간이 주어져있었는데, 탈출 시점에는 이 모든 것들은 원래 회사에 반납한 듯하고, 또한 멘사가 murderbot의 몸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 작정인 듯해서 인간인 복장을 입혀놨기 때문에, 로봇 입장에서는 아주 굉장히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이 독특한 미래의 세계관에서는 강력한 인공지능을 장착한 다양한 종류의 로봇과 인간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인 murderbot과 같은 이도저도 아닌 봇이 있다. 첫편에서 murderbot은 유기파트와 기계파트가 공존하는 보안모듈(SecUnit)로 인간들은 그를 완전히 기계로 대하지만 어려움에 직면하면서 그의 행동을 통해 인공지능적인 사고 뿐만 아니라, 감정이 있는 것을 확인한다. 이 보인장치의 가장 큰 특징이자 1 편과 2편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감동적인 파트는 이것이 직관적으로 인간을 보호하고자 하는 본능을 보여주는 모습 때문이다. 1편에서도 그랬지만, 그는 인간과의 접촉과 대화를 극도로 꺼려한다. 특히나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자신을 보는 시선을 불편해한다. 그렇다면 인간과 동일한 많은 근육과 그 근육을 움직이는 감정 통제의 신경 네트워크와 호르몬 등을 가졌다는 소리인가. 인간의 두뇌를 해킹하여 그 메카니즘을 그대로 흉내내거나 혹은 인간의 일부를 기계로 개조하는 과정에서 활용에 용이한 인간적 부분을 제거하지 않았거나 못했거나 그랬을 것이다. 어쨌든 이런 류의 보인 장치들을 생산하는 회사에서는 동일한 복제품들이 무수히 많고, 머더봇은 그들 중 하나이면서 그들 중 하나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을 통제하는 중앙 통제 모듈을 스스로가 해킹하여 명령대로 움직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통제모듈은 서버의 연결을 지속적으로 받고, 업그레이드를 수행하면서, 어딘가 무엇인가로 인해 움직여지지만, 자기 모듈을 해킹한 murderbot은 업그레이드 따위는 간단히 무시하고, 남는 동안 달의 성소라는 자기가 아주 좋아하는 드라마 시리즈를 내내 보는데, 그의 인간에 대한 애정과 직관적 이해는 아마도 그 드라마를 통해 인간을 학습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이번편에서는 무엇보다도, 아머를 입지 않았고, 특히나 자신의 표정을 보호하고 있던 얼굴 헬멧을 벗었기 때문에, 행동에 엄청난 제약이 따를 뿐 아니라, 1편에서 보여준 미래의 통신 제어 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관건이었는데, 아주 우주선 친구를 사귐으로써 간단하게 이 문제를 해결한다.


1편의 끝에서 그가 멘사를 떠날 때, 아 정말 이제부터 팔자가 펴게 생겼는데, 멘사가 잘 해주면, 피흘리며 싸울 필요도 없이(슬프게도 그는 아픔을 느끼고 피도 흘린다. ) 평생 혹은 영원히(?) 달의 성소만 보면서 살 수도 있을텐데 왜 고생길을 자처하나 싶었는데, 아... 다 이유가 있었다. 1편에서 스스로를 murderbot이라고 이름붙였는데, 소심한 성격으로 묘사되는 그가 과시하고자 하는 이름으로 그렇게 붙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실제로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가 있었던 거다. 


rougued bot이라고 불리는 로봇들은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행동하는 로봇들이다. 그런데 자신이 그 이전에 그렇게 되어 인간의 목숨을 다량 살상한 과거가 있는데, 그 이후 모든 기억이 파기되어서, 자신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단지 기록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이 로봇의 두뇌에 인간의 신경망과 비슷한 어떤 유기적인 부분이 있어서, 기억의 파편들이 로봇에게 남아있는 것이다. 하지만 왜? 왜 내가 사람들을 죽여야만 했을까. 그 이유를 알고 싶다. 


기억을 잃은 킬러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나선 본 시리즈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인데, 이 로봇은 후회나 회환이나 그런 복잡한 감정은 없이 그저 알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더욱 애처롭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가 엄마 찾아 삼만리를 떠난 것 같은 느낌이랄까. ,murderbot을 만든 회사에서 보안유닛과 프로토타입이 같은 또다른 버전으로 murderbot이 섹스봇이라고 부르는 construct들이 있다. 공식적인 이름은 위안장치(ComfortUnit)이다. 이러한 종류들은 인간의 보호 없이 마음대로 우주선의 수송로들을 이동할 수 없다. 당연히 우주선에 혼자 타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는 자신이 해킹해서 가진 엔터테인먼트 피드들을 우주선(우주선 자체가 인공지능)과 공유하는 걸로 딜을 해서, 여객선이 아닌 물자수송선을 타고 자신이 예전에 꽤 많은 인명을 살상한 행성으로 가는데, 이 우주선의 인공지능이랑 친구먹게 되어 많은 도움을 받는다. 


거의 불가능한 일들을 우주선이 자신에게 달린 모든 카메라와 드론 통신모듈, 인공 계산 모듈 등을 이용해서 해결한다고 보면 된다. 영리한 선택이다. 그런데 자신의 규격이 전 우주에 알려져 있으므로, 발각되지 않기 위해, 신체 아니 로봇의 하드웨어를 전면 개조한다. 키를 줄이고, 머리카락을 비롯한 털들을 심고 그리하여 murderbot은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인간의 신체적 특성들을 골고루 갖추게 된다. 더 인간의 모습과 닮게 그러나 다른 보안 유닛들과는 다르게 개조된 murderbot은 Transit 자신의 목적과 같은 곳을 가는 인간 탐험 집단에게 다가가 증강인간으로 속이고 인간 보안 요원으로 취직하여 목적지로 가는데, 이들이 위험에 빠진다. 그리고 인간을 지키고자 하는 본능으로 몇 번씩 그들을 위험에서 구해주고, 자신의 과거가 있는 페허를 탐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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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Systems Red (Paperback)
Martha Wells / Tor.com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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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사회의 인공지능과 로봇에 대한 판타지가 좋아서 관련된 최근 작품을 찾다가 휴고상과 네뷸러 상을 동시에 받은 이 작품을 알게 되었는데,  굿리즈 평점도 좋고 아마존 보면 대중의 호응도 좋은 편인거 같아서 읽었다. 첫 문장을 보면 더 읽지 않을 수가 없다. 


I COULD HAVE BECOME a mass murderer after I hacked my governor module, but then I realized I could access the combined feed of entertainment channels carried on the company satellites. It had been well over 35,000 hours or so since then, with still not much murdering, but probably, I don’t know, a little under 35,000 hours of movies, serials, books, plays, and music consumed. As a heartless killing machine, I was a terrible failure.


기계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기계 속에서 인간의 형상이 튀어나와 인간과 유사한  눈빛, 감정을 드러내는 대화, 그리고 자잘한 계략과 속임수 같은 걸 드러낸다면 얼마나 당혹스러울까. 그런데 그런 당혹스러움은 당혹스러운 인간의 관점이 아닌, 그 당혹스러움을 대하는 상대편 관점에서 서술되었다는 점에서 새롭고 흥미롭다. 1인칭 시점의 ‘나’는 기계다.  보안에 필요한 병기를 장착했지만, 드라마를 좋아하는 소심한 이 로봇은 국내 작가 구병모의 <한스푼의 시간>에서 느꼈던 인공지능 로봇의 감수성과 인간과의 교감이 부드러운 휴머노이드가 아닌 스스로를 살인봇이라고 알고 있는 아연맨의 로봇 버전쯤 되는 외피를 둘렀다. 그(것)은 인간의 생태적 특징을 감춘 수줍기 그지 없는 어떤 존재로 반은 유기적 파트로 되어 있고 반은 무기를 장착한 강철 수트와 보안 장비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반 로봇반이라는 정의를 이 로봇은 극혐한다. 자신의 오가닉파트와 기계파트를 정확하게 기능적으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반반 때문에 때로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갖는 고집불통 귀여운 머더봇.


또다른 흥미로운 점은 인간화된 로봇을 다루는 인간의 혼란스런 감정이다. 인류의 탄생에서부터 오랜 기간 동안 형성되어 온 윤리적 규범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비교적 명확하다. 하지만, 겨우 몇 세대에 갑자기 나타나서는 빠르게 인간과 비슷하게 행동하고 말하는 개체가 되어 버린 로봇에게는 사정이 다르다. 이제까지 그냥 냉장고나 자동차와 다를 바 없는 자동화된 하나의 기계라고 생각하고 있던 보안 로봇이 갑자기 인간적으로 그것도 자신을 희생하고 남들을 살리려는 아주 이타적인 모습으로, 또 위기를 대처할 아이디어들을 생각해 내는 지혜로운 모습으로 바뀌었을 때, 이제 인간에게 이 로봇은 망가진 TV나 냉장고처럼 발로 뻥뻥차거나 찌그러뜨리거나 함부로 욕을 뱉을 수 없다. 


스스로에게 살인로봇이라는 허세스런 이름을 붙인 이 로봇은 사람을 죽이기는 커녕 사람을 살리기 위해 책이 끝날 때까지 분주하게 머리를 굴린다. 그리곤 후회한다. 아씨, 진짜, 내가 내 중앙 모듈을 해킹했을 때 멋진 살인로봇이 될 수도 있었는데… 대신 이 로봇은 외계 행성 탐사팀의 보안을 위해 기업에서 파견된 보안로봇으로,  SecUnit이라는 상품으로 대량생산되어, 이 행성의 다른 편에서 탐사를 하고 있는 다른 팀에도 똑같은 상품이 세 개가 일하고 있다.


하지만 중앙 모듈을 해킹한 머더봇은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고, 자동 업데이트를 거부하고, 쓸모없(다고 판단되)는 주요 정보를 지우고 자기 마음대로 자기 자신을 제어한다. 그 중 하나가  말하자면 넷플릭스 같은 엔터테인먼트 채널을 해킹해서, 시간이 나는 족족 달의 성소라는 시리즈물을 보고 있었던 바, (이건 내 생각이지만) 학습에 의해 두뇌와 생각이 형성되는 인공지능적 특성상 이 달의 성소라는 드라마는 머더봇의 의식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니까 어느날 기계가 자기 자신을 해킹해서 허브시스템을 통해 조정되는 모든 모듈을 마음대로 필터링하고, 의식이 생긴 유니크한 존재가 되었다.


이 SecUnit를 만들고 그들을 파견하고 행성에 기지를 설치한 보안 담당 회사가 이익만 추구하고 SecUnit 자체를 저가의 장비로 생산하다 보니, 머더봇은 자신의 신체적 능력에 불만이 많다. 하는 일 없이 TV 시리즈나 보며 시간을 보내던 머더봇에게 크레이터 탐사를 나갔던 팀원이 외계 생물체에게 공격당하는 사고가 생긴다. 한 사람은 이미 크게 다쳤고 또 한 사람은 완전히 패닉하여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상태에서, 이 로봇은 다친 사람을 둘러 업고 또 한 사람을 진정시키기 위해 헬멧을 벗고 그 사람의 눈을 똑바로 처다보며 진정시킨다. 이 지점부터가 바로 이 로봇이 자기가 인간들에게 코가 꿰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이 로봇은 자신의 생물적 부분을 인간들에게 노출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특히 표정으로 감정이 드러나는 얼굴을 노출하기를 극도로 싫어해서 불투명 헬멧을 쓴 상태에서만 안정되고, 그들(인간)이 자신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딱딱한 기계적 모습만을 노출한다. 하지만 보안봇이라는 사명을 가지고 인간을 구하기 위해,  이제까지 탐사대장인 멘사 외에는 자신의 인간 파트의 모습을 한 번도 내보일 필요 없게 만든 헬멧을 처음으로 벗어 그들에게 생물학적 인간성의 정체를 노출시키고 말았으니 이것이 머더봇을 가장 심란하게 한다.


박사와 연구원들로 구성된 이 작은 탐사팀이 점점 더 죄어 오는 위험에 직면할 수록, 이 이름뿐인 살인봇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자신은 통신망을 통해 그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하는 말과 감정들을 고스란히 엿듣게 된다. 머더봇이 원하는 건 자신을 향한 진정한 무관심이다. 이제까지 강철수트와 불투명 헬멧은 자신의 생물학적 인간적 부분을 완전히 가려주었지만, 그들을 구하기 위한 몇 번의 전투를 통해 생물학적 수트가 부서지고 살갗이 찢어지고 벗겨지고 피가 나는 모든 끔찍한 신체적 상해가 그들 앞에 노출되자, 자신의 아픔보다 그런 살아있는 것들이 드러난 것이 불편하다. 이 로봇의 생리를 아는 멘사만이 팀원들에게 로봇에 대한 관심을 끊고 처다보지도 말고 없는 것처럼 행동하라는 각별히 주의를 주의를 주지만, 마음 착한 대원들은 자꾸 이 기계에 감정이입을 하고, 대답하기 힘든 질문들을 해댄다.


대원들 중에는  아연맨처럼 신체적 정신적 능력이 인공적으로 강화된 인간이 하나 있다. 몸과 마음에 인공적인 부분이 섞여 있으니 유기적 요소가 조합된 로봇과 무엇이 다를까. 육백만불의 사나이처럼 인간에서 시작했다면 신체가 기계로 대치되고 두뇌의 일부도 기계적으로 강화되었다면 여전히 인간이고, 기계로 디자인되어 유기적 요소가 인간만큼이나 가미되었다면 그것은 기계인 것일까. 무엇이 인간이고 무엇이 기계일까 그것을 나누는 경계는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이런 질문들을 끝도 없이 던진다. 이 강화된 인간은 가장 냉철하고 객관적이게 머더봇을 바라보는 사람 중 하나로, 시스템을 해킹한 로봇이라면 그 무슨 짓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한마디 했다가 뒤끝 작렬하는 우리의 머더봇에게 끝까지 미움받는 캐릭터로 자리잡는다. 대원들은 로봇을 지칭할 때 대명사 it를 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강화인간과 다른 점이 도대체 뭐냐고 서로에게 논쟁하는 소리 엿듣는다. 사실 그 강화인간은 로봇의 해킹 사실 뿐만 아니라 이 로봇이 스스로에게 머더봇이라 이름 붙였다는 사실까지 팀원들에게 폭로하는데, 그건 사생활 침해 아니냐고 따지기까지 한다. 


It calls itself ‘Murderbot,’” Gurathin said. I grated out, “That was private.”




머더봇에게 또 한번의 결정의 순간이 온다. 대원 모두가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선 큰 모험적 탈출을 앞두고 강력한 리더쉽과 배려심으로 머더봇을 보호해주던 멘사 대장은 작전을 앞두고 로봇에게 헬멧을 벗을 것을 부탁한다. 모두들에게 신뢰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거다. 불투명 헬멧 속에 표정을 숨길 수 있기에 표정관리가 안되는 머더봇에게 헬멧을 벗는 일은 가장 싫어하는 일이지만, 대의를 위해 그렇게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은 이들에게 보호받는 귀여운 생명체 있는 존재보다는 인간이 자신을 로봇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But I needed them to trust me so I could keep them alive and keep doing my job. The good version of my job, not the half-assed version of my job that I’d been doing before things started trying to kill my clients. I still didn’t want to do it. “It’s usually better if humans think of me as a robot,” I said.


하지만 대장은 여전히 설득 중이다. 그들이 너를, 그들을 돕는 인간으로 생각하는 것이 더 좋아. 왜냐하면 나도 너를 그렇게 생각하니까. 


It would be better if they could think of you as a person who is trying to help. Because that’s how I think of you.”


하지만 마지막 대화에서 이제까지 그가 왜 그토록 자신의 인간적인 부분을 숨기고 싶었는지가 드러난다. 선의에 의한 관심이라 하더라도, 호기심과 탐구의 대상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면, 섹스봇이 되는 것과 뭐가 다르냐는 것이다. 


“You don’t need to look at me. I’m not a sexbot.”


머더봇을 바라보는 인간의 감정 못지 않게, 머더봇이 인간에게 갖는 불편함은 가장 흥미롭다. 그것은 인간이 이 의식있는 흥미로운 로봇을 볼 때 그들을 대상화하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우리와 다른 개체를 다룰 때 우리와 같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그러니까 괜찮냐 어떻게 생각하냐 이런 질문들은 이 로봇에게 배려가 아니라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이 로봇은 그들이 자신을 인간처럼 취급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자신을 사물(It)로 지칭하는 말을 엿듯는다(“You have to think of it as a person,” Pin-Lee said to Gurathin. “It is a person,” Arada insisted.). 말 자체가 모순인 것이다. 예전에 미국의 흑인 탄압시절에 흑인들에게 선의를 베푼다고 하면서 그들의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나 부드러운 피부에 관심을 가지고 흘긋거린다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비슷한 예는 수도 없이 많다.




머더봇은 크게 다쳐서 죽어가면서 죽음에 대해 사유한다. 

Maybe this was how murderbots died. You lose function, go offline, but parts of you keep working, organic pieces kept alive by the fading energy in your power cells.(81)


I was designed to work with both organic and machine parts, to balance that sensory input.




또한 머더봇이 다쳐서 정신을 잃은 동안 적이 사람을 보면 모두 죽이게 하는 전투 모듈을 심어 놓았음을 알게 되자, 탐사대장에게 자신을 포기하라고 말한다. 이런 장면은 휴머니즘적 감동이 있는 전쟁이나 첩보 영화 같은 곳에서 종종 보이는 클리셰이긴 하지만 여전히 감동적이다. 하지만 눈물을 쥐어짜는 클리세와는 달리 대부분은 위트있고 코믹하다. 

 

Mensah, you need to shut me down now.


It’s downloading instructions into me and will override my system. This is why the two DeltFall units turned rogue. You have to stop me.”


I knew I could kill everyone on the hopper,



시리즈의 첫 편인 이 소설은 킨들 에디션 뿐만 epub의 이북 버전으로도 저렴한 가격에 판매된다. 페이퍼백도 저렴하다. 중편이라 짧고, 실제 음모와 관련된 스토리라인보다는 상황적인 부분을 설명하는 대화체와 일기체가 흥미로우므로 꼼꼼하게 읽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를 만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로봇과 인간과의 교감, 그리고 착한 로봇의 헌신적(으로 보여지는)인 행동을 살인이라는 제목을 가진 점이 아이러닉하다. 정교하지는 않지만 전투씬이 좀 있으므로 낚시는 아니지만, 번역서가 나온다면 구병모의 <한스푼의 시간> 같은 분위기의 제목을 달면 더 어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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