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 - 우리는 동물이 얼마나 똑똑한지 알 만큼 충분히 똑똑한가?
프란스 드 발 지음, 이충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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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다르다. 참으로 모순적인 말이다. 어느 동물이 다른 동물과 같은가. 우리 인간 입장에서 느끼기에 다른 동물들끼리의 차이에 비해 인간-다른동물 사이의 차이는 두 생명체가 완전히 별개로 동떨어져서 각자 진화한 것처럼 생각되리만큼 크다. 우리 중 일부는 한 때 진화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여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는건가 하기도 했다. 

어쨌든 원숭이와 유인원은 다르고 유인원과 인간 사이에는 태고적 공통 조상이 있었고 서로 다른 환경에 살던 그들이 환경에 적응하며 조금씩 진화하다가 후세를 낳을 수 없을 만큼 달라졌다. 그 공통조상들이 살던 시간에서 더욱더 까마득한 시간을 뒤로감기 해보면 원숭이들과도 그 공통 조상들 사이의 또다른 공통 조상이 있었을 것이며 그들 역시 환경에 적응하여 한쪽은 원숭이들의 공통조상이 또 한쪽은 유인원과 인간의 공통조상이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기원을 타고 올라가면 마지막 단계에서 최초의 단세포 원시 생물 혹은 단백질 비슷한 이상한 화학 유기물 같은 곳에 도달한다. 

그렇게 모든 생명은 같은 39억년의 시간동안 진화하며 생존하여 살아남았다. 그러니까 모든 생명체들 중 인간만이 특별하다는 생각을 잠시 잊어 본다면, 모든 생명은 다 특별하다. 왜냐하면 지금 여기 멸종하지 않은 채, 살아 남아 있으니까. 수도 없이 많은 생명체가 변화하는 환경에서 멸종하는 동안, 기어이 유전자를 변형하고 적응하여, 살아남았기에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는 특별하다. 

그럼에도 인간이 더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인간이 유일하게 사고하는 종이라는 보편적 믿음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 의하면 사고 외에도 철학자들은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특별함을 다각도로 규정했고 자연과학은 번번이 그 특별함들이 인간만의 특성이 아니라 다른 동물도 지니고 있는 증거를 찾아내었다. 사고는 단지 그 중 하나뿐이다.

한 때 도구의 사용은 인간만이 가진 능력인 줄 철썩같이 믿어졌던 시기가 있었다. 증거도 없이 철학적 상상에서 비롯되었을 그 허황된 믿음은 종교보다도 커서 우리 때는 교과서에 실렸고 그 틀린 정보를 잘못알고 있으면 작은 실패자가 되있다. 가령 까마귀가 막대기로 구멍을 파서 먹이를 먹는 걸 아는 시골 학생이 오 이건 자신있어 확실해 라며 시험 문제의 답에 도구의 사용이 인간만의 고유 특성이 아니었다고 적었다면 한 개인을 좌절에 빠뜨렸을 것이다. 이렇겨 획일적 교과서는 획일적 지식의 통일적 확산에 기여한다. 그것은 진실이건 진실이 아니건 관심없다. 교육은 인간의 계량이 목적이니까. 하지만 이젠 안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 중 인간만이 도구를 쓸 줄 아는 건 아니라고. 도구를 얻기위해 또 다른 도구를 쓰는 수준높은 유인원의 예를 제외하더라도 동물은 많은 경우 도구를 이용한다.

이 책이 동물의 도구에 대해서 말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인간만의 특성이라고 여겨왔던 많은 정신적 행위들을 동물 또한 지니고 있음을 연구하고 증명한 과학적 사실을 다룬다. 도구는 그 중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다. 언어, 인지, 거울 인식과 자기 자신의 인식, 시간 인식, 덧셈 뺄셈을 비롯한 수학 계산 능력, 빠르고 긴 기억력 등 인간 인지의 모든 영역에서 동물은 인간이 가진 능력을 따로 혹은 같이 진화시켜왔다. 

비트겐슈타인은 우리가 사자와 서로 말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사자를 이해할 수는 없다고 했다. 우리 자신의 경험은 사자와는 아주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문화권의 삶을 이해하는 데에 따르는 어려움과도 비슷하다. 사실상 인간이 다른 인간의 내면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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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가 된 독자 - 여행자, 은둔자, 책벌레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양병찬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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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길지도 않은데, 사자마자 읽기 시작했지만 어제밤에야 끝낼 수 있었던 건, 마음에 안드는 부분에서 덮어버린 후 잊었었기 때문이다. 사실 책 내용은 그림 빼면 굉장히 짧다. 그래도 그림이 간간히 있는 게 좋긴 한데, 망구엘의 명성에 비해 이런 종류의 인문학 책이 얇으면 상대적으로 내용도 빈약해 보일 수 있다. 종이책으로 192쪽인데 전자책에는 두께 개념이 없는지라, 읽으면서 긴지 짧은지를 대략적으로 느끼는데, 이 책은 갑자기 역자 후기가 나와서, 어디가 짤렸나  벌써 끝났나 의아했다. 



앞에서 마음에 안든 대목이 있어 읽다 내버려뒀었다고 말했는데, 그건 전자책에 대한 저자의 독단적인 견해였다. 내가 이 책을 전자책으로 읽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혹독하게 전자책 문화를 호도하다니, 알고 쓴 건가 그냥 적응하지 못함에 대한 불평을 지적으로 보이게 말한 건가. 내가 웬만하면 세계 최고의 독서가(출판사 소개)이자 대단한 지성인이 쓴 내용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은데,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 앞에서는 할 말을 잃는다. 프랑스의 전자공학 전공자가 한 논문에서 종이책과 전자책을 여행에 비교하여, '종이책을 읽는 독자는 해안을 바라보며 항해하는데 전자책을 보는 독자는 우주 여행을 떠나 까마득히 먼 곳에서 지구를 한 눈에 바라본다'는 말을 인용하며, 이를 반박하는데, 핵심은 이렇다. 



나는 정반대로 생각하는데,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종이책을 들고 읽으면 물리적 특징과 물적 존재를 의식할 수 있으므로, 현재 읽고 있는 페이지를 다른 페이지, 심지어 다른 책과도 연관시킬 수 있다. 둘째, 논점과 캐릭터를 마음속에서 재구성할 수 있다. 셋째, 광대한 정신 공간에서 아이디어와 이론들을 연결할 수 있다. 반면 전자책을 읽을 때 우리는 대체로 미로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맨다.



프랑스 '전자공학'자들이 어떤 컨텍스트 속에서 저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기에, 저 인용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의향은 조금도 없지만, 저자의 견해는 저렇게 확고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납득할만한 이유는 찾아볼 수 없다.  한 예로, '전자책 같은 기술장치 사용법이 엄격하고 세부적으로 마련되어 있어, 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수시로 제한을 받거나 불편을 겪'는다고 하는데 대체 뭘 말하는 건지, 파워를 켜고 끄고 손가락을 눌러 페이지를 누르는 일이 그토록 불편하고 제한을 받는다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연세가 있으시니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여행자'라는 독자의 은유에서 여행자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생각은 '은유가 된 독자'라는 주제를 다루는 인문적 성격의 책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세계 최고의 독서가' 답게 자유분방하게, 시대와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수많은 책들의 내용을 인용하며, 책을 읽는 독자에게 쓰인 은유를 탐구한다. 그 첫번째 비유가 앞에서 말했듯이 여행자로서의 독자다.  책을 읽는 일은 정말로 인생길의 여행과 딱 들어맞는 비유다. 망구엘은 이 '여행자' 은유의 기원을 <길가메시 서사시>와 <단테의 신곡>, <일리아스> 등에서 찾는다. 



오, 작은 배를 탄 그대여,    

내 이야기를 간절히 듣고 싶어    

풍악을 울리며 항해하는 내 배를 뒤따라왔구려.    

넓은 바다로 들어서지 말고    

고향의 해안으로 뱃머리를 돌리시오.    

자칫하면 나를 잃고 길도 잃을 수 있으니. (주 Dante Alighieri, Commedia, Paradiso II : 1-6)



독서가를 지칭하는 또다른 은유인 '상아탑'은 부정적인 이미지와 긍정적인 이미지가 혼재해 있는데, 이 은유의 유래를 초기 기독교 인들의 은둔적 명상과 고립에서 찾고 있으며, 이러한 상아탑 속의 지식이 현실과 조화 혹은 불화를 이루는 여러 종류의 문학을 탐험한다. 특히, 세익스피어의 여러 작품들 그 중에서도 햄릿을 비중있게 재해석한다. 상아탑적 이미지의 은유는 책벌레와 책바보라는 은유로 심화 분화되고 <돈키호테><마담 보봐리><안나 카레리나>로 이어지며, 책과 현실을 경계를 넘나든 주인공들의 심리를 재해석한다. 특히 플로베르의 엠마를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보다도 더욱 비현실적인 사람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돈키호테는 또렷한 직관을 이용하여 현실과 환상의 차이를 절충하며, 때로 판타지가 의식을 압도하는 바람에 개고생을 하지만 때로는 판타지 속에서도 정신 줄을 놓지 않는 반면, 엠마는 책에 나오는 낭만적 플롯을 자신이 욕망을 불태우는 세계와 동일시했다는 것이다. 즉, 돈키호테가 현실과 픽션을 구분할 줄 알았던 것에 비해, 엠마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 이에 비해 안나 카레리나는 '타인의 삶을 상상하는 것을 언짢게 여기고, 자신의 삶을 살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러나 그중에는 자신의 삶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게 아무것도 없으므로, 그녀는 작은 손으로 책갈피를 연신 옮기며 독서에 열중한다.'



너무 많은 지식이 깊이 없이 나열되는 듯한 느낌도 들었고, 여러 작품들의 재해석 부분은 흥미를 느끼려고 할 때 끝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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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8-06-07 1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돈키호테가 일을 하지 않는 자의 낭만이라고 생각했죠. 물론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긴 했지만요. 생각해보면 언급한 인물들이 독서에 탐닉하는 건 일을 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르죠..

전자책 좋아합니다. 얼마나 편한대요.. 물론 여전히 종이책을 더 좋아하지만, 전자책만의 매력이 있어서 참 좋습니다. ㅎㅎ

서평 잘 봤습니다^^

CREBBP 2018-06-12 07:44   좋아요 1 | URL
답글이 늦어서 죄송해요. 워낙 조용한 곳이라, 이제야 봤지 뭐에요. 꼬마요정님. 돈키호테도 그렇고, 소설 속의 인물들은 모두들 독서에 탐닉하죠. 독서를 좋아하는 작가의 취향이 반영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싶기도 해요. 방문 감사드려요.
 
호숫가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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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설이 안그렇겠냐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들은 대개 주제 의식이 뚜렸하다. 내가 소설을 통해 뭘 가르치려 드는 걸(왜 설명충이라는 말이 생겼는지 알겠다)  싫어하는 터라 히가시노 게이고와 잘 안맞는 경우도 많은데 이 소설은 그게 뒤늦게 드러나기 때문에 추리소설로서의 호기심과 긴장을 비교적 끝까지 유지시켰다. 한마디로 끝내주겨 잘읽히고 간간히 코믹한 요소와도 잘 배합을 했다. 더욱이 같이 공범이 되어 시체처리를 하고 시체 훼손을 한 순스케가 호숫가 오두막 살인사건의 진짜 범인을 추리하며 사건의 본질을 캐는 과정이 아이러닉한 게, 초반부터 그는 부부동반 모임에까지 내연녀를 끌어들이는 가장 비윤리적 인간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그는 실제로 비윤리적인 인간이다. 아이를 데리고 재혼한 와이프를 속이고 바람을 피울뿐 아니라 자기는 바람피우면서 아내를 의심하여 내연녀여게 아내의 뒤를 캐게하였으니 말이다.

여기 나오는 어른들은 부모의 재력으로 아오들을 사립중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엄청난 정보력을 확보한 사람들이다. 호숫가 별장에 모인 사람들은 겉으로는 아주 친한 사람들의 평범한 부부모임 같지만 아이들의 과외 수업 그룹의 부모들로 아이들의 사립 중학교 입학을 위한 워크샵에 따라왔다. 아이들은 별채에서 과외 선생에게서 교육을 받고 어른들은 몇기의 숙소에 나뉘어 헤쳐모여 하며 어른들만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때 순스케의 내연녀가 부탁한 서류를 가지고왔다는 핑계로 찾아오고 서둘러 내보냈지만 그룹의 다른 부부와 우연히 벤치에서 말을 섞다가 초대되어 다시 다소 모임에 들어온다. 난처해진 순스케는 서둘러 인근 호텔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제발 거길 떠나줄 것을 바라지만 약속 시간에 온갖 핑계를 대고 호텔 로비로 찾아갔을 때는 나타나지 않는다. 거짓말은 한 번 시작하면 계속 그 거짓말을 뒷받침하는 거짓말을 계속해야 한다. 바람맞은 채로 다시 또 거짓 핑계를 대고 숙소로 돌아가려 전화했더니 와이프가 아 왜 갔다가 다시오냐고 싫어하는 눈치다. 서둘러 숙소에 갔을 때는 아내에게 내연녀가 살해되었는데 그것을 목격한 부부가 사회적으로 명망있는 자들이 살인사건에 연루되고 폐쇄적인 과외모임이 외부에 알려지게 되면 곤란할 것을 염려해 살인사건을 눈감아주기로 했다고 그들과 함께 시체처리를 돕겠다고 한다.

내연녀가 죽었음을 슬퍼할 새도 없이 증거를 없애고 입을 맞추고 치밀한 계획을 세우면서, 살인사건을 눈감아줄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협조적이고 모든 일의 처리를 제 일처럼 여기고 처리해주는 그들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살해된 내연녀가 몰래 찍어둔 사진뭉텅이를 발견하는데 곳곳에서 이들 과외그룹의 부모들이 포착된다. 그는 이게 단순히 치정에 의한 살인 사건이 아님을 의심하게 되고 차곡차곡 쌓이는 단서들을 가지고 범인을 찾기 시작하는데, 드러나는 진실이 가리키는 곳은 어디인가. 어른들은 어른들의 시각으로 사건을 해석하지만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립중학교 입학도 뭐도 아닌 아버지라는 존재였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스케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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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당신도 고칠 수 있다 - 치매 진단과 치료, 예방법까지 상세히 다룬 치매 길잡이!
양기화 지음 / 중앙생활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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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60대의 젊은 나이에 뇌졸증으로 쓰러지신 후, 마지막 몇년간은 치매를 앓으셨다. 하루하루 약해지시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슬프고 고통스럽다. 멀리 있어 더욱 애틋한 당신이었지만, 뇌졸증 이후 전화로 듣는 소식은 한번도 더 나은 것 희망적인 것이 없었다. 걱정할까봐 제대로 잘 알려주지 않기에, 돌아가시던 마지막 해에는 고속버스러 5~6시간 거리를 두어달에 한번씩 가야 했다. 갈때마다 상태는 조금씩 조금씩 나빠질 뿐이었다. 희망이 없는 삶. 그것이 치매이고, 그것이 뇌질환이다. 돌아가시고 나면 잊힐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면 남의 슬픔이 씻길줄 알았는데, 갑자기 돌아가신 할머니에 비하면 오랜 동안 조금씩 고통받던 모습에 늘 죄책감이 들고, 나의 먼 미래가 아닐까 두렵다. 


엄마가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는데, 다행히 뇌졸증이나 심장마비는 아니었다. 아직도 원인을 찾고 있는 중인데, 기억이 많이 흐려셨다. 함께 병원을 다니면서 엄마가 많이 늙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매건 뭐건 예방이 제일이라는데, 블로그 이웃님께서 책을 내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주문해야지 주문해야지 생각만 하고, 하지 못했다. 이번 기회에 읽어보려고 샀다. 받는 순간, 어머 이 책을 왜 진작 읽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흔히들 방송과 소문을 타고, 이런 건 치매래 저런건 치매가 아니래 하는 자가 진단도 하고 우스개 소리도 많이 하는데, 나처럼 노인을 가족으로 둔 사람들은 꼭 비치해놓고, 수시로 부모님들의 상태를 살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과 얘기하다보면, 부모님들 연세가 있으셔서 여러 형태로 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치매에 여러 종류가 있고, 원인과 결과도 다르다. 그러므로 연로하신 부모님을 둔 경우라면, 코딱지만한 상식으로 섣불리 자가 진단을 하며 괜찮다 괜찮다 했다가 시기를 놓치는 것보다는, 치매에 대한 상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좋겠다. 치매에 대하여 궁금했던 모든 것들이 상세하고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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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9 0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07 0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넛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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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덴마크 왕자 햄릿>은 이미 선왕인 아버지가 죽은 후 삼촌이 왕위를 계승받은 상태에서 아버지의 죽음이 삼촌이었음을 알게 뒤는 과정, 복수의 칼날과 삼촌의 또다른 음모와 계략,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 등이 반전을 거듭하며 발생하는 복잡한 플롯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큐언의 현대적 재해석은 복잡한 플롯과 다수의 등장인물이 생략된 채 살인 사건의 진행에 집중한다. 존과 별거중인 트루디와 존의 동생 클로드가 벌이는 존 살해 사건을 태아의 시선으로 잡았다. 세익스피어의 대본이 살해 사건 후에 일어나는 아들의 복수극과는 달리, 이 소설은 핵심 내용으로만 보자면 햄릿의 현대판 프리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 햄릿의 가장 큰 주제인 '살해당한 아버지의 복수'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모든 것을 목격한 아들이 태아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의식이 생겨나려면 뇌가 여러 감각기관에 의해 자극을 받아 뇌신경이 이렇게 저렇게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태아가 받는 자극이라고는 이해할 수 없는 태외 세계의 소음과 땅콩껍질같이 자신을 둘러싸고 가둔 자궁 뿐이다. 어머니의 혈액을 통해 공급되는 영향 성분들도 태아의 상태에 얼마간 영향을 줄 것이다. 햄릿의 재해석답게 태아는 배속에서도 생각이 많다. 의식이 생겨나기 전의 상태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차원의 추리와 상상력과 느낌은 성인의 언어로 대변하지만, 실제로 태아의 경험과 희미한 의식은 출생과 동시에 전혀 새로운 환경을 맞닥뜨리면서 망각 혹은 다른 차원의 의식 속으로 증발할 것이다. 전생의 기억(만일 있다면)이 잊혀지고, 이승과 저승 사이에 망각의 강이 흐르듯 태아적 의식이 우리가 알 수 없는 형태로 존재한다 해도 그것은 우리가 알수 있는 형태로 표현할 수 있는 세계로 빠져나옴과 동시에 연속성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언어로 쓰여진 태아의 현재 상황에 대한 인식은 그 언어를 이해하는 독자들을 위한 것이며 태아의 출생후 스스로의 사고와는 유리될 것이다. 


세익스피어의 햄릿을 돌이켜본다면 선왕 사후의 햄릿만큼 목숨이 위태로운 자리가 없다. 왕을 죽이고 왕좌를 차지한 자가, 선왕의 자식이 살아있을 동안 마음 편할 수 없다. 수양대군이 단종을 유배시키고 교살한 것도 다 이유가 있지 않은가.  단종은 존재만으로도 수양대군의 왕권을 위협한다. 햄릿 역시 마찬가지다. 선왕의 유일한 적통 적자이며, 추종자들은 늘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햄릿이 설사 선왕 살해사건의 진실을 알지 못한다 해도 왕권장악의 음모와 실행은 햄릿을 죽여야 완성될 것이다.


트루디와 클로드가 노리는 것은 존의 재산이다. 대저택을 소유한 시인 존은 트루디와 별거할 때 집을 양보했지만 아내를 여전히 사랑하며 집으로 돌아오기를 원한다. 그러나 존의 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젊은 아내 트루디는 형의 동생 클로드와 연인 사이이고, 어서 그 낡아빠진 저택을 처분하여 현금을 차지하고 싶다. 현대의 과학수사 시대에 둘이 꾸미는  흉계는 치밀하지도 않고 실행력과 스피드만 갖췄다.  태아는 뱃속에서 그 모든 것을 목격한다. 이미 삼촌과 같은 배를 탄 어머니가 아버지와는 다시 합칠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이 무사히 태어나 보살핌을 받게 되려면 어떤 쪽이 유리할지 곰곰이 생각한다. 그는 어머니도 아버지도 클로드도 태아의 출생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음을 알고, 살해 계획이 성공했을 때, 그리고 체포되어 구속되었을 때 등의  모든 상황을 상상한다. 넛셀 속의 태아는 무능할 뿐이다.


아버지의 상실과 클로드와 어머니의 역겨운 관계에 좌절한 태아는 탯줄로 목을 감아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죽고자 하는 의식은 의식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고 의식이 빠져나가면서 자살하고자 하는 의식도 함께 사라진다. 그래서 자살이 힘든거다. 죽고자 하는 의식을 살아 있는 의식이 붙잡아야 하는데, 의식이 죽으면서 죽고자 하는 의식마저 함께 죽으니 탯줄로 스스로 목을 조이는 일은 실패한다. 태아는 앞으로 출생 후 둘 중 하나의 운명이 됨을 알고 개탄한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져 어디론가 보내지던가, 어머니와 함께 감옥에서 태어나 감옥에서 유아기를 보내게 되던가. 그 무엇도 원치 않은 일이지만, 태어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한다. 영겁의 우주 속에서 순간적으로 반짝였던 80 평생 자신의 삶이 쓰게 될 책을 읽을 권리가 있다는 거다.


전체 사건이 태아가 듣고 느끼는 시각으로 조명되었기에, 세 사람 모두의 마음이 무엇인지는 단지 태아가 감지하는 마음으로만 알 수 있다. 만삭이 된 어머니는 낡아빠진 대저택을 돼지소굴처럼 만들고, 썩은 냄새를 피우고 집안을 엉망으로 한 채, 만삭의 상태로 클로드와 섹스를 한다. 어머니가 즐겨 듣는 팟캐스트와 뉴스를 통해 세상을 아는 태아는 그럴 때마다 목숨의 위협을 받는다. 종반의 긴박한 상황으로 치닫자, 그 절망적 상황에서 태아가 할 수 있는 일, 배 속에서,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일이 있음을 깨닫...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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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3 1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18-05-25 21:11   좋아요 2 | URL
그런데 희안하게도 고대 중국에서는 선양이 미덕이었대잖아요? 존경받기 위해서 선양하고 거절하고 이러기를 몇차례씩 하는 허세가 중국인의 의식 속에 있는동안 왕권을 빼앗을 명분을 만드는 일도 참 피곤했겠어요 ㅋ

AgalmA 2018-05-25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면 이상한 게요. 모성이야 몸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유대를 느끼기 쉽지만 부성 거기다 아버지를 위한 복수 감정을 태아가 가진다는 게 논리적으로는 이해가 안 됩니다. 라캉 거울단계를 거쳐 자아 인식을 뚜렷이 가지는 게 인간인데...

CREBBP 2018-05-25 21:13   좋아요 1 | URL
ㅋㅋㅋ 이상한 거는 소설 자체가 이상하죠. 대체 태아가 의식이 있다는 설정부터 말도 안되니까요. 더더군다나 세살 돌아가는 소식도 다 알고 지식도 많죠. 저렇게 바깥 소식도 다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채로 태어나면 뭐 초중고 교육은 필요도 없겠죠 ㅋㅋㅋ

AgalmA 2018-05-25 21:15   좋아요 0 | URL
책을 읽어야 작가 논리에 동의할지 말지 결론나겠군요ㅎㅎ

CREBBP 2018-05-26 12:22   좋아요 0 | URL
이게 읽을 때는 태아의 시각이라 뭔가 좀 답답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뱔점을 낮게했었는데 돌이켜 보니 정말로 낯선 방식의 새로운 시도였다는 생각과 함께 오 작가가 대단해 이런 생각이 더 강해지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