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웃의 식탁 오늘의 젊은 작가 19
구병모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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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출산우대정책으로 세자녀 출산을 조건으로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12세대 실험공동주택에 입주한 은오와 요진은 먼저 입주한 세 가정에서 마련한 조촐한 환영식에 초대된다. 사람들이 처음 만날때 으례 묻고 답하는 질문, 은오와 요진은 이 질문이 편치 않다. 먼저 선수를 쳐 자신이 집안 일을 하고 아내가 돈벌러 나간다는 말에 앞으로 서로 도우며 한가족처럼 살아가게 될 이웃들은 아 그렇구나로 만족하지 못하고 간만의 차이로 미리 입주하여 이미 누군가의 주도로 형성된 친목과 분위기의 권력을 이용하여 교활한 방법으로 남의 아픔을 집요하게 캔다. 첫만남에 밝히고 싶지 않은 사정이 있는 거고 ‘제가 능력이 안되다 보니 아내가 출근을 합니다’ 라고까지 했으면 더는 캐지 않는 게 예의지 이런 거 물어도 되나 모르겠네 라고 하면서도 어디 다니냐고 묻고는 결국 약국에서 카운터보는 일로 세 식구 먹고 살아야 하는 누추한 속살을 캐내고야 마는데, 그 와중에서도 이웃의 직업적 품평회는 그치지 않는다.

어떤 모임이든 사람들의 그룹에는 좋게 말해 리더, 일반적으로는 자기 주장이 강한 한두 사람이 전체를 자기 편한대로 주무르는 사람이 종종 있는데 여기서 홍단희가 바로 그 역할을 한다. 무례하게 사생활을 캐는 일을 자연스럽게 여기면서 자신의 주장으로 몇 안되는 세대가 만든 그 규칙이란 걸 앞세워 사사건건 자기 뜻대로 공동체를 이끄는데, 이 인간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도 생생하고 현실에서 막 튀어나올 것 같은 전형적 인간 군상이어서 답답했다. 입주 환영이랍시고 조리돌리듯 새 입주민의 사적인 질문을 퍼붓는 자리에 상낙의 아내 효내가 불참했다고 아이 혼자 데리고 나타난 그 집 남편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시어멈들처럼 잘도 지껄이는 인간도 홍단희다. 젖먹이 다림이를 키우며 집에서 아기를 키우며 프리랜서라는 허울좋은 커리어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분투하는 불참자 효내의 사정은 문자 그대로 눈물겹지만 경력을 지키고 싶은, 대한민국 모든 기혼모 여성의 이야기지만, 차라리 한 편의 서늘한 잔혹극에 더 가깝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일 그렇다고 보수가 제때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집안을 돼지 소굴처럼 내팽겨치고 밤을 새며 그려도 마감을 맞출 가능성도 알 수 없는 그림을 그리는 효내는 시도 때도 없이 홍단희의 침입을 받는다. 이번엔 다 같이 하기로 한 재활용품 수거에 불참했다는 거.

이 입주민들은 역시 홍단희가 주축이 되어 어린이집 대용의 공동양육 프로그램을 짜고 네 가정의 집사람들 함께 식사 및 여러 프로그램을 담당하여 진행하기로 한다. 이와 관련해서도 여러 일화가 생기지만 작품에서는 직접적으로는 언급하지 않은 각 가정의 이해득실을 계산해보았다. 신재강ㅡ홍단희의 아이들은 남자아이 둘로 3살 5살, 고여산ㅡ강교원의 아들 4살 젖먹이 세아 외에 새 입주민 요진과 은오의 딸 시율이는 어린이집에 다니기에는 나이가 많은 6살 그리고 효내는 아직 젖먹이이다. 결국 서너살 남자 아들 사이에서 시율이는 정당한 케어를 받기는 커녕 어른을 대신하여 아이들을 돌보는 역할을 맡고 시간이 부족해 발을 동동 구르는 효내는 아기가 잠든 새 짬을 내 일하는 시간마저도 박탈당한다. 결국 제일 부산하고 가장 손이 많이 가는 두 사내 아이를 가진 홍단희네가 이 공동 양육 시스템에서 가장 큰 파이를 가져가고 있지만 아무도 그걸 문제 삼지 않는다.

홍단희의 남편 신재강은 그 중 제일 번듯한 직장을 가진 듯한데 마침 차가 고장나자 당사자인 요진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남편 은오가 선심쓰듯 카풀을 제안하고 거절할 틈도 없이 얼씨구나 얍싸빠르게 기름 넣어주라고 홍단희가 거들어 카풀을 하는데 조수석에 외간 남자를 태운 요진은 영 불편하고 어색한데 재강이 자연스레 대화를 잘 트는 듯하더니만 무슨 자동차 수리를 몇날 몇일씩 하는지 일부러 그러는지 카풀을 하는 기간은 길어지고 시간이 갈수록 신재강의 태도는 딱잘라 작업이다라고는 말할 수 없는 낌새의 불편한 작업성 멘토가 시작되고 이것은 점점 더 노골적이면서 집요하게 변해간다. 그러나 이를 문제 삼기에는 신재강이 너무 고단수이며 아무 뜻 없이 선의로 혹은 농담으로 치부해 버리면 자기만 예민하거나 정신병자 취급받을 행동에서 멈추는 것이다. 급기야는 약국까지 찾아오고 홍단희가 없는 틈을 타서 저녁 약속까지 혼자 잡아놓고 집요하게 문자를 보내는 그를 더는 참을 수 없어 남편에게 말하려 집으로 들어갔는데 홍단희네가 짜진 틈을 타 남편은 아이들을 데리고 시내에 나가 피자며 햄버거 같은 걸 사주고 키즈 카페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온 것 까지는 좋은데 그 돈을 자기 카드로 긁어 생생을 내고는 아이들은 돌조지고 않은 채 강교원과 미장센이 어쩌고 하며 영화 얘기에 빠져 낄낄거리고 있다. 급하게 아이가 있는 곳으로 가니 사내 애들 틈바구니에서 고통을 겪던 시율이가 엄마를 보자 울며 달려 들어 자기를 여기서 데려가 달라고 한다.아이가 그동안 어떤 환경에 내몰렸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공동체는 어떻게 될까. 애초 외벌이에 세자녀 출산이 이런 출산장려용 공동주택의 저럼한 임대와 같은 방법으로 가능한 거였다면 우리나라 출산률이 1.1프로를 기록하고 있진 않을 거였다.여러 버전의 <72년생 김지영>의 사연을 보다 생생하게 내 일 내 이웃의 오늘 일어나고 있는 일처럼 묘사한 이 소설은 구병모 특유의 판타지를 기대했던 내게 처음 부분은 실망스러웠다. 이건 소설이 아니야 오늘이라도 당장 엘리베이터에서 무심코 건네는 이웃의 똑같은 현실의 일부야 싶어 읽어나가기 싫어졌었다. 하지만 곧 구병모의 치열한 언어로 직조된 다양한 삶 속에서 혼자서 감내해야 하는 조용한 고통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곰곰 생각하게 한다. 단순히 공동체라는 허상을 보여주는 것 만은 아니다.각기 다른 곳을 보면서 쫓기듯 내몰린 개개인의 삶이 무심코 휘두른 작은 권력에 얼마나 폭력적으로 취약한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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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아무 일 없던 사람보다 강합니다 - 변화하고 싶다면, 새롭고 싶다면, 다시 시작하고 싶다면, 김창옥의 인생특강
김창옥 지음 / 수오서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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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와 어쩌다 어른에서도 본 것 같은데, 미국 사는 친구 하나가 눈물까지 뚝뚝 흘리며 열심히 들었다는 강연을 카톡으로 주소를 보내주곤 해서, 일삼아 듣고 있을 시간은 없고 해서, 책으로 읽었다. 물론 책의 내용은 여기 저기서 한 강의 내용을 엮은 것으로, 강연체이고 많지는 않지만 중복적 내용도 눈에 띈다.


저자가 TV에서만 강연을 하는 게 아니라 전국 방방곳곳을 누빈다. 스타 강사의 몸값이 엄청 비쌀텐데, 차로 1년에 지구 두바퀴 거리인 7만 킬로를 이동한단다. 이렇게 일하면서도 10년 동안은 모텔에서만 자다가 한 번은 강의했던 호텔에서 제공해주는 호텔에서 자고난 이후로 호텔에서 쾌적하게 잠을 자기 위해 호텔에서 자기 시작했다고 한다.


강연은 남에게 뭔가를 가르치는 건데, 그게 전문 지식이면 간단하지만 자기계발적인 텍스트라면 각기 다른 삶을 다른 가치관과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청중에게 무엇을 얘기해야 할지 참으로 막막할 거 같다. 김창옥은 그 일을 누구보다도 성공적으로 잘해내고 있는 것 같다. 책을 읽으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진정성을 보여주는 데는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내보이고 소통하는 게 제일 잘 통한다. 현재 잘 나가는 강사지만, 한 때 좌절했던 순간이 있고, 여러 종류의 힘든 고비가 인생의 마디 마디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김중혁 작가가 작가들에게 있어서 어린 시절의 경험이 평생 뜯어먹어도 언제나 새롭게 푸릇푸릇 다시 자라는 풀밭이라고 했던 것처럼, 힘겹게 지나온 시간들은 직업적 강사에게 새로운 깨달음과 영감을 준다.


딱히 힘겹거나 괴로운 경험이 아니더라도 일상의 많은 사건에서 강연의 소재와 영감을 찾는다. 대부분의 강연은 저자의 경험이나 누구누구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누군가와 나눈 짧은 대화, 스치며 지나간 짧은 단상 같은 것들 말이다. 1시간 짜리 강연을 하려면 20시간을 준비해야 한다던 친구 말이 생각나는데, 강연을 할 때마다 매번 내용이 다른 강연을 하고, 다른 전문 강사들처럼 자료 준비를 남에게 시키지 않고 본인이 직접 한단다.



앞서 강의 시작한 지 10년이 지나서야 호텔에서 자기 시작했다고 했는데, 그 에피가 재밌다. 호텔에서 자고난 후에는 비치된 샤워젤 같은 물품들을 매번 가져왔었는데, 1~2년이 지난 어느날 자신이 이제 어느정도 부유해졌으니 이런 걸 가져가지 말아야 되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글에서 고백하기를 자신이 아직 냉장고에 비치된 물과 맥주를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몇십만원 하는 호텔비를 결재하면서 왜 몇천원하는 물은 못마시지라고 생각했다는 거다.


아무리 고급 호텔이라도 물은 그냥 주지 않던가? 나는 저 분처럼 부자도 아니지만 여행 중 호텔 가서 1회용 비치품을 챙겨오지는 않는다. 이게 가치관의 차이인데, 예전엔 간혹 예쁜  것들을 기념품 삼아 가져와봤지만 뒹굴리는 것도 지긋지긋해서 안가져온다. 하 지만 마찬가지로 냉장고 안의 맥주 같은 걸 마셔 바가지쓰지는 않는다. 들어올 때 편의점 같은 데 들러서 사온다. 그래서 그 강연의 내용은 뭐냐 하면 누구나 자기에게 아낌없이 쓰는 부분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게 있다는 거다. 당연한 말씀, 외식하거나 술마시는 데는 몇만원 몇십만원도 안아까운 사람이, 화장실 불 켜고 다닌다고 잔소리질 하는 거 보면 그렇다. 옷 사고 명품 가방 들고 좋은 화장품 쓰고 그렇게 자기 자신을 꾸미는 데는 재벌딸처럼 쓰다가도 밥한끼 안사는 얌체족도 다 친구가 있는 거 보면 그 친구는 소박하게 꾸미면서 절대로 밥값을 내지 않는 친구와 같이 밥먹고 커피 마시는데 쓰는 돈은 아깝지 않은 친구가 있기 때문일 거다.


이 분 강연을 들으면 굉장히 재밌고 뭉클한데, 책으로 읽으면 뭔가 강연에서 느껴지는 아우라가 안느껴진다. 목소리 톤과 강연 분위기 같은 것이 크게 좌우하는 것 같다. 책 자체가 강연체인 습니다 체로 쓰여있어 가볍게 읽히는 면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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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3 1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18-07-13 20:57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그런데 말도 잘하면서 글도 잘 쓰는 사람 막 생각났어요. 유시민이요. ㅋ

양철나무꾼 2018-07-13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저는 강의 몇 개를 다시 듣기로 들었는데,
청중과 대화 형태로 고민 상담하는걸 보고 이 분 강의를 들어봐야겠다 싶었어요.
말을 쉽게 편하게 막 하는 것 같은데,
그 청중이 얘기를 할때 일단 어느 정도 다 들어주더라구요.
듣기를 통해 알아낸 정보를 적용시키는 과정을 보고,
사람들이 김창옥 김창옥 하는 이유를 알겠다 싶었어요.

이제는 강의를 본인이 혼자 준비하지는 않고 준비해주시는 두명의 직원이 있다고 하는 걸 들었어요.
그래도 청중과 고민 상담 하는 건 그때 끄때 이루어지는 듯,
누가 따로 준비해줄 수 있는 영역이 아니지 싶었습니다.

또 한가지, 그게 강의이고 강의에서 보여주는 쇼맨쉽이 되겠지만,
좀 과장되다 싶었었습니다, 전.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

CREBBP 2018-07-13 20:59   좋아요 1 | URL
저도 강연을 몇개 듣긴 했는데 참 재밌게 하더라구요. 청중들을 까르륵 넘어가도록 웃기고 또 눈시울 붉히게 만들고. 저는 저 책에서 김창옥 어머니가 했었던 말인가가 생각나요. 얼마나 애썼겠냐고 걱정하면서..
감사합니다
 
전쟁터의 요리사들
후카미도리 노와키 지음, 권영주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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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은 공수 사단만만 참여한 전쟁도 서부전선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노르망디와 네덜란드에서만 벌어진 싸움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간적 시간적 배경과 그것들의 배치와 동선 심지어 등장인물들의 시선까지도 밴드오브브라더스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중대만 다를뿐 실제 존재했던 101 공수사단 전투원들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해당 드라마와 이 책이 같기 때문이다. 


밴브의 주요 볼거리인 전투신이 빠지고 대신 미스터리와 추리 드라마가 대신 채워졌다. 낙하산 사건만 제외하면 그 미스터리 추리 드라마들이 밴드오브브라더스와 공간적 시간적 배경이 같아야만 생겨날 수 있는 얘기가 아닌데, 하고 많은 전투 중에서 왜 하필이면 그토록 유명한 드라마에서 배경을 그대로 가져왔는지도 이해불가다. 요리사라는 제목에서 차별성을 두었지만, 요리가 주가 되는 것도 아니다. 전쟁터의 조리병을 실감나게 다루려면, 이 책에서도 밝혔듯이 조리병과 일반병의 역할 구분이 크지 않은 공수부대보다는 해군이나 보병 같은 다른 부대의 전문 조리병들을 선택하는 편이 훨씬 요리사들의 이야기거리가 풍성했을 텐데 말이다. 빗발치는 화포 속에서 이 공수부대의 요리병들이 요리를 할 기회가 별로 있지도 않고, 또 제목처럼 요리병이라는 특성이 주제로서 크게 부각되지도 않는다.

밴브에서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본 에피소드가 의무병 유진 로의 얘기였는데 그는 싸우는 대신 부상병 응급처치만 하는데도 그 어느 전투병사 못지 않게 용감하게 쏟아지는 빗살을 뚫고 돌아다녀야 한다. 당연하게도 다친 병사가 '메딕!!!'을 다급하게 외치는 장소가 바로 전장에서 죽음이 쏟아져 나오는 곳, 화염이 가장 치열하고 가장 위험한 장소 아닌가. 쉴틈없이 불러 대는 '메딕!!' 소리에 귀기울여 달려가던 의무병의 내면은 그의 독백을 통해서가 아닌 그의 눈빛과 행동에서 읽을 수 있다. 의연함 속에 숨은 두려움과 절망과 또 짧은 인연속에 싹텄던 사랑까지.. 이 책에서도 특수병의 이야기를 다루기에 이런 감동을 기대했지만, 화염을 뚫고 밥을 하거나 먹을 것을 전달하는 치열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미스터리를 처리하는 방식은 애드라는 천재 조리병의 추리에 전적으로 의지한다. 추리라기보다는 추측이다.  우연적 추측은 추리로 포장되어 '전모'로 밝혀지는 작위적 설명이 뒤따르는데,  거기에는 전쟁터에서 숨겨졌던 다양한 삶과 사연이 욕망, 두려움과 함께 드러난다.  이 천재 추리(아니 추측) 반장은 화자인 주인공의 우상이다. 주인공은 그를 애틋한 만화적 감성으로 바라보고, 독자 역시 그들의 우정에 이입된다. 밴드오브 브라더스에서 멍청한 중대장 대신 투입된 스피어스와 약간 비슷한 카리스마와 매력이 상기되는 인물이다. 

이미 밴브의 팬으로서 보기에, 이미 밴브에서 화려하고 감동적인 시각 효과와 함께 깊이 있게 각인된, 너무 많은 잘잘한 일화가 책에서 장황한 설명만 덧붙인 식이다. 훈련소에서 시작해서 전쟁 이후 등장인물들의 간략한 삶을 전해주는 에필로그로 끝나는 전체적 구성과 순서까지 그대로 밴드오브브라더스와 흡사하다. 아류 정도가 아니라 구성과 배경을 그대로 가져와서 자세한 설명과 해석을 추가하고 몇몇 개연성 없는 미스터리를 추가한 밴드오버브라더스 보조 콘텐츠 정도로 밖에는 보여지지 않는다. 그런 것들 많지 않나. 영화나 드라마의 시각적 매체라는 특수성 때문에 다 표현하지 못한 것들 혹은 덕후들의 팬심을 달래주기 위해 제작된 콘텐트들.. 

제목을 보고 기대되는 '전쟁터에서 조리병'이라는 특수한 임무 수행에 따른 알려지지 않은 내용은 거의 전무하며  요리병들은 요리 대신 추리를 주로 한다. 굳이 책 제목에 요리사가 붙은 이유가 궁금할 정도다. 전에 스베틀리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를 읽었을 때 나온 조리병들 이야기가 오히려 짧지만 생생하고 긴장감 넘쳤다. 무수히 많은 지난 끼니들이 다가오는 한 끼니에게 유효하지 않다던 김훈의 <칼의 노래>에서 전하는 한 문장이 오히려 전장에서 식생활이라는 것의 실제를 훨씬 더 절실하게 느끼게 해준다. 

<밴브>와의 내용의 유사성도 크다. 노르망디에서의 착륙씬은 거의 드라마를 평면적으로 글로 옮겨놓고 해설을 붙인 정도였고 나무에 걸려 죽은 병사의 시체씬 착륙후 헤매다 서로 만나는 씬 등 수도없이 많은 장면이 드라마에서 나온 씬이다. 특히 유대인 수용소를 발견하는 씬은 거의 통으로 복사해서 붙여넣기 한 것처럼 분위기마저 유사하다.

2차 대전에 추축국으서 독일과 같은 편에 섰던 침략국 일본이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전쟁을 소재로 하여 글을 쓰고 싶기에 제 3국인을의 전쟁이 소재다.  거기까지는 뭐 구제불능 일본에 대한 일말의 기대도 없으니 그런 나라에 사는 소설가들에게 뭘 기대하겠나 싶어 그러려니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등장 인물은 미국인인데 작가가 일본인이다 보니, 작중 등장인물의 정서와 행동들(좋게 말해 신중하고, 소심한) 소설속 일본인스럽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미국사람들이 미국사람들 같지 않고 일본사람들 같아 처음부터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뭔가 가짜를 읽는 느낌, 아 뭐 소설에 진짜와 가짜가 있느냐고 말하면 할말이 없지만판타지 웝소설이 아니고 이 정도 분량에 제법 자국 문단에서 수상 내역까지 있는 작품(?)이라면  고증이 된 역사 소설을 기대하는 것처럼 뭔가 전하는 진실을 기대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첨엔 전쟁터에서 그것도 역사상 유래가 없던 공수부대의 그 치열한 삶과 죽음의 현장을 사소한 감정에 집착하고 잘잘한 일들의 해석과 설명에 몰두하는 계몽적 일본식 정서로 입혀져 있어서 그 거부감 때문에 읽던 책을 덮고 <서부전선 이상없다>를<읽고 <밴드오브 브라더스>를 완주했다. 작가가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을 작품을 먼저 읽거나 접하는 게 순서라고 보아서다. 읽히기는 술술 잘 읽혀 완독하기에는 무리가 없는 소설이었지만, 이 책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당연하게도 밴드오브 브라더스도 보았을 가능성이 큰데 왜 아무도 이 점을 짚고 있지 않은지, 내가 뭘 잘못 알고, 잘못 이해하고 있는건지  잘 모르겠다. 

엉뚱하게도 남남 커플(실제로 커플이란 건 아님)의 케미가 돋보였고 재미았었다. 예전의 학원물을 보는 것처럼 에드는 우상의 대상으로서 완벽한 캐릭터를 뿜어내는데 주인공은 또 이 친구에게 완전히 반한 상태다. 밴드오브브라더스와의 차별성이라면 두 사람의 전우애가 드라마에서 자주 보여지는 것처럼 거칠고 남성적이기 보다는 좀더 학원물같은 섬세한 감정 개인에 대한 관심 이런걸로 드러난다는 점이다. 그래도 이 책이 나한테 제일 잘 한 건 <밴드오브브라더스>를 첨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완주하게 보게 만든 거 같다. 참 잘 만든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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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8 1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18-07-08 12:06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래서 요리사들이라는 제목이 어거지라는 거죠. 그래도 약간의 조리가 가능한 경우가 생기긴 합니다만, 그걸 요리라고 할 수는 없죠. 도시 하나 접수하고, 민간인 가택을 접수하면 나름 요리할 기회가 생기기도 했던 것 같은데 가만 생각하니 그건 밴브에서 본 거 같군요. 그 깡통 나눠주고 하는 걸 여기 ‘요리사‘들이 하더라구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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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앤찬 외 지음 / 비타북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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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의 마더앤찬, 판교의 소중한 식사, 옥수동의 셰프찬, 송도의 킴스레시피, 반찬 가게의 위치와 이름이다.이 반찬가게에서 만들기가 무섭게 완판되는 반찬들을 골라 조리법을 공개하는 컨셉의 요리책이다. 실제로 그런 반찬집이 있는 것도 맞는 거 같고, 가게에서 가장 잘 팔리는 반찬을 골라, 레시피를 공개한 것도 맞는 것 같다. 마법의 가루 같은 비밀 레시피는 있다고 해도 공개되지 않았다.


반찬가게에서 파는 반찬들이, 저렴하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드는 간단한 반찬이나 국 찌개로, 낯설지 않고, 특별하지도 않은 반찬들이다. 여기 소개된 반찬들도 대부분 그렇다. 일반적으로 집에서 늘상 해먹는 반찬에 약간의 변형을 주었다고 보면 된다. 명란 치즈 달걀말이는 내가 요리책 보고 따라한 반찬 들 중에서 우리집 최고 인기 메뉴가 되었다. 달걀말이 할 때 가운데에 명란을 김밥 속처럼 넣고 둘둘 말아 김밥처럼 단단하게 만다. 내 경우 명란과 달걀의 조합이 맛있어서 주로 계란 찜할 때 넣는데, 그럴 때마다 명란이 밑으로 가라 앉아, 위에는 싱겁고 밑에는 명란만 있는 불상사가 있었는데, 이런 간단하고 훌륭한 아이디어라니, 첫 반찬부터 맘에 든다. 


<마더앤찬>에서 소개하는 반찬 베스트 10은 달걀말이 외에도, 멸치 볶음, 진미채 볶음, 새우아욱된장국, 어묵볶음, 메추리알 장아치, 순두부찌개, 두부조림, 우엉조림, 미역줄기 볶음이다.  이 중에서 내 손으로 안 해본 반찬은 없지만 내 손으로 진짜 맛있게 해서 남기지 않고 다 먹은 반찬도 몇 개 없다. 이런 기본 반찬의 조리법은 인터넷이나 요리책에 수도 없이 떠돌지만 대부분 같은 내용이 복사되어 돌고 도는 방식이어서 진짜 식당서 주거나 반찬집서 주는 것만큼 맛있게 안되는 경우가 많은데, 전문 반찬집에서 자신들이 사용하는 레시피라고 하니 믿음이 간다. 


<소중한 식사>에서 내놓은 베스트 10 레시피는 코다리 조림, 더덕 무침, 강된장찌개, 가지나물, 꽈리고추찜, 순두부 달걀국, 바지락 냉이 된장국, 산고추무침, 김자채볶음, 꽈리고추, 곤약조림이다. <세프찬>의 베스트10은 감자조림, 간장돼지불고기, 유니짜장, 성게미역국, 통우징어구이샐러드, 치즈함박스테이크, 닭복음탕, 옛날사라다, 콩비지찌개, 연어스테이크다. <킴스레시피는> 미역국, 된장찌개, 삼치구이, 뱅어포,, 버섯장조림, 닭곰탕, 조갯국, 달걀찜, 오리부추샐러드, 밀푀유나베다.


베스트 10 외에도 각 반찬집에 약 20여개의 레시피가 더 수록되어 있다. 대부분은 조리법이 복잡한 대단한 요리가 아니라 주재료와 부재료 1~2가지가 조합되어 조리거나 찌거나 볶음 요리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내 경우) 집에서 하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그 차이가 맛있는 반찬집의 완판 신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세상 가장 흔한 요리라 할 수 있는 세프찬의 베스트1 감자조림의 경우 나박 썰어 튀긴 후 양념장에 졸이다가 꽈리고추를 넣어 숨을 죽이는 방법으로 조리한다. 양념장도 특별할 게 없다.간장 물 물엿 들기름 통깨가 다인데, 간장과 물엿의 비율이 5:10(큰술)이다. 여기에 물도 2컵이나 들어간다. 역시 상업용 반찬은 달달한 맛으로 승부를 거는 듯하다. 그나마 설탕은 안들어간다. 


소중한 식사 베스트1인 코다리조림은 내가 하는 조리법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사진에서 보면 일단 국물도 자작하고 훨씬 맛있어 보인다. 역시 양념장의 비율 배합이 중요한 거 같다. 요리책을 전자책으로 사면, 검색 기능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고, 책을 주방에 가져와서 물과 양념을 묻쳐 더럽히지 않아도 된다. 더욱이 차에서 뒤적거려 메뉴를 정한 후, 마트에 들려 필요한 재료를 사갈 수 있어 용이하다. 다만, PDF 파일이어서, 휴대폰으로는 엄청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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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8-07-06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1권을 가지고 있는데,
조리과정이 생략이 많이 되어,
저처럼 요리 똥손이 따라하기엔 어려움이 좀 있었습니다.
님의 리뷰를 보니 2권은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한번 구입해 볼까요?^^

CREBBP 2018-07-06 16:34   좋아요 0 | URL
저는 이북 도정제 전에 이북으로 구입했는데, 잘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 책도 과정샷은 별로 없어요. 책으로 나온 요리책은 지면이 한정되어 있어서 그게 좀 흠인 것 같아요. 그렇긴 하지만, 워낙 간단한 반찬들이어서 퇴근할 때 휴대폰으로 대략 읽고 머리속에 담아뒀다가 대충 하면 되더라구요. 손쉬운 요리인데 아주 작은 과정의 변화와 조합이 맛을 크게 좌우하는 것 같아요. 저는 좋았어요. (그런데 별점을 너무 많이 줬더라구요. ㅋㅋㅋ 생각없이 막 눌렀던 것 같아요. 덕분에 수정)
 
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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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들은 소중한 것들을 잃거나 결핍을 경험하는 중이다. 자식을 잃는 일은 상실 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상실이다. 남편이거나 부모의 경우라 해도 정신적 좌절감은 극복해야 할 어려움이다.   현대 사회에서 대부분의 갑작스런 죽음은 우연한 사고에서 발생한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복수의 칼을 갈 여지가 있다면 죽음과 상실이 불러온 체념적 감정에 몰입할 여유가 없어질까.


<입동>에서는 다섯살 짜리 아이를 유치원 차가 후진하면서 치었다. 유치원과 자동차 보험회사에서 보상이 나오고 유치원은 인솔 교사를 자르는 선에서 마무리했지만 아이를 잃은 피해자가 겪는 고통을 그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게다가 마을에서는 아이 아빠가 보험회사 직원이란 이유로 흉흉한 소문이 돈다. 아이를 잃은 엄마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바깥 출입을 하기도 꺼려하고 직장까지 그만두고 집에 틀어박혀 지낸다. 

작가는 이 작품집의 다른 단편에서도 이렇게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는 주변인의 태도와 그로 인한 피해자 혹은 논란의 대상이 겪는 불편한 심경을 다룬다. < 건너편 > 에서는 오랫동안 공무원 시험에 계속 실패하고 있는 이수가 친구 결혼식 술자리에서 다른 친구들 특히 불운한 친구들의 뒷담화를 하면서 자기 근황도 그런 식으로 돌았을지 모른다고 짐작한다. ‘걱정을 가장한 흥미의 형태로, 죄책감을 동반한 즐거움의 방식으로 화제에 올랐을 터였다. 누군가의 불륜, 누군가의 이혼, 누군가의 몰락을 얘기할 때 ..’ 그러면서 자신도 그런 식의 관심을 보이며 경박해 보이지 않으려 적당한 탄식을 섞어 안타까움을 표한 적 있었다. <가리는 손>에서는 노인 폭력에 연루된 중학생 아들이 동남아 혼혈 아동이라 구설수에 오르는 대화가 나온다. < 풍경의 쓸모> 에서는 지방으로 대학 강의를 나가는 정우가 버스 옆좌석에서 시끄럽게 남을 헐뜻는 소리에 주목한다. 그들의 헐뜻음은 타인이 아닌 자신의 도덕성에 상처 입은 얼굴을 한 놀란 듯한 즐거움이며 자신도 잘 아는 즐거움이라기 생각한다.

이렇게 타인의 고통이 오락의 한 형태로 소비되고 말이 말을 통해 전달되고 누적되며 왜곡되는 과정에서 괴로움은 더욱 커진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타인의 관계 속에서만 자신을 찾을 수 있을 테지만 사고와 같은 불운이 사회적 관계망을 통해 위안이 되기 보다는 숙덕거림의 형태로 혹은 동정어린 눈빛이나 호기심어린 질문 따위로 더욱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개인적으로 재밌게 읽은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서 교사였던 남편을 잃은 명지는 사촌언니의 배려로 그들 부부가 비운 에딘버러 집에서 묵는다. 유학중인 동창 현석에게 전화를 희서 만나는데 아직 남편의 죽음을 알지 못하는 현석에게 사실을 숨기고 자신은 출장중이라고 속인다. 동정어린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그렇게 한 선택이지만 갑자기 남펀에게 전화를 하자는 통에 난처해져서 사실을 말할 기회를 얻지만 헤어졌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다. 이 일로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술도 돕고 해서 둘은 썸이 생길뻔 하지만 바로 다음날 티켓을 바꿔 귀국해 버린다. 다른 소설과 구조가 비슷했지만 재밌게 느꼈던건 역시 아슬아슬한 남녀 로맨스가 비껴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학생을 구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쓴 남편에 대한 원망이 풀리는 계기를 세련되게 처리했기 때문인거 같다. 

침묵의 미래 역시 사라져가는 것들 잃어버리는 것들을 범 지구적 차원의 메타포로 구성한 소설로 내게는 다소 실험적으로 보였지만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전세계의 희귀 언어를 수집하여 박물관에 전시하는데 전시 대상은 그 마지막 말들의 화자들이다. 화자들에 의해 발화되어야 싱립하는 게 말이므로 말 자체가 어떤 형태를 가질수 없겠지만 소설에서는 화자가 아닌 말 자체가 소설의 화자가 된다. 소설 동주에서도 사라진 언어 이누시어에 대해 다루는데 함께 읽으면 좃을 듯하다. 

전체적 분위기는 죽음과 상실을 깊이 삶속에서 맞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인지라 다소 어둡지만 어둔 동굴을 천천히 빠져나가는 계기가 오며 그것은 아주 작은 진실의 재발견에 의해 이루어진다. 삶은 멈추지 않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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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18-07-05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우울한 분위기라 아직 읽을 엄두를 못 내고 있었는데 마음의 준비가 되면 꼭 한 번 읽어 보고 싶어 졌습니다.

CREBBP 2018-07-06 11:18   좋아요 1 | URL
우울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소재가 살인이나 폭력같은 것은 아니고, 소소한 일상에서 머물기에 읽을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