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 2 - 7月-9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편은 1편에 비해 스토리의 진전이 큰 폭으로 이루어진다. 무엇보다도 알쏭달쏭했던 장르적 모호함도 개어졌고,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이 더 명확해지고 애틋해지면서 동시에 어린 소녀와의 섹스라는 충격적 장면을 거부감없이 판타지적으로 잘 배치하였다. 의문의 사건은 조금씩 개연성을 갖게 되고 산만했던 여러 줄기들이 조금씩 교차점을 갖는다. 공기 번데기와 리틀 피플에 대한 은유도 마음속의 그림자가 도터와 마더라는 상징성을 통해 판타지화되는 과정도 흥미롭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덴고와 아오마메의 아주 먼 기억 어릴 적에 가졌던 따스한 느낌에서 구체화되는 사랑에 대한 묘사가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 낸다. 계속되는 반전의 묘미, 스릴러적인 감각, 사랑, 섹스, 판타지 정말 많은 걸 다루고 있다.

 

이번에 노부인의 지시에 따라 죽이게 될 사람은 종교단체 선구의 리더로, 이 일의 수행은 매우 큰 위험부담을 가지고 실행한다. 일이 성공하게 될 가능성도 충분하지 않고 만일 성공하게 되더라도 그들의 포위망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어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이름과 성 얼굴 모습 과거 등의 모든 자신의 아이덴터티를 버리고 아주 먼 곳에 가서 살 것을 계획하고 해야 하는, 목숨을 내건 일이다. 선구의 리더는 초경도 치르지 않은 10세 전후의 아이들을 종교 의례로서 상습적으로 성폭행해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성폭행 대상 아이들 속에는 자신의 친딸 마저 포함시켜온, 죽어 마땅한 이유가 있는, 아니 목숨을 걸고서라도 죽여 없애 버려야 하는 인물이다. 한편 자신이 전문 킬러라는 일을 수행함에 있ㅇ니 경찰 친구를 두는 일이 비윤리적이고 불편한 일임을 자각한 그녀는 만에 하나 아유미가 이 일에 휘말리게 되거나 화가 미치게 될 것을 염려해  일부러 거리를 두지만, 몇일 후 한 러브호텔에서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뉴스로 접하고 오열한다. 모든 준비가 된 그녀는 작업 수행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권총 자살까지 세심하게 준비하고, 마침내 리더를 만난다. 그러나 리더를 만난 이오마메는, 그에게서 리더는 본인이 암살 계획을 스스로 세웠으며 자신은 그 수단에 불과하다는 뜻밖의 사실을 암시받는다. 20 여년 간을 한결같이 마음속에 비밀스레 간직하고 있던 덴고의 존재까지 알고 있던 그녀는 알 수없는 리더의 신비한 능력에 이끌리게 되어 마지막 순간 실행을 주저하게 된다. 그러나 덴고가 위험에 처해 있으며 자신이 리더를 죽임으로써 그를 구할 수 있다는 제안에 동의하고, 그의 뜻에 따라 그를 암살한다. 그러나 덴고를 살리기 위한 그 암살 미션에는 그녀의 목숨이라는 댓가가 있었다.  리더를 살해한 그녀는 준비된 임시 거처에 숨어 지내며 어릴 적 부모의 뜻에 따라 증인회 종교활동을 하며 또래들에게서 따돌림 당하던 자신을 따스한 시선으로 감싸주던 덴고를 회상한다.

 

한편 후카애리가 사라진 동안 덴고는 그녀로부터 자신이 안전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지만 자신의 주변에 이상한 일이 생기는 것을 경험한다. 편집자가 2주 이상 연락을 끊고 매 주 빠짐없이 방문하던 연상의 유부녀 걸프랜드에게도 소식이 없던 중 그녀의 남편으로부터 그녀가 영원히 상실 되었다는 전화 한통을 받는다. 그리고 우사카와 라는 이상한 남자부터 의문의 지원금을 받아둘 것을 제안받데, 그 과정을 통해 사라진 두사람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겼음을 감지하는 한편 어릴 때 자신의 손을 확신에 어린 눈빛으로 잡아 주었던 아오아메의 존재를 확인한다. 한편 자신이 한 살때 어머니와 다른 남자가 섹스하는 장면을 기억하고 있는 그는 태생의 비밀을 캐기 위해 치매로 요양원에 있는 아버지를 만나러 가고, 아버지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자신의 친부가 아니었음을 확신하게 된다. 일본 문단에 혜성같이 나타난 아름다운 후카애리는 언론의 주목을 받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지만, 몇주 후 언론에서 잊혀질 무렵 덴고를 찾아와 함께 산다. 덴고는 미성년자와 함께 사는 것을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달리 갈 곳도 없는 그녀를 받아주게 된다. 아오마메가 리더를 살해하던 날 천둥 번개가 치던 날 덴고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완전히 무기력한 상태에서 어린 소녀와 동침하게 되는데, 소녀는 이것을 액막이라고 한다. 이후, 그 곳이 아오마메의 임시 거처와 아주 가까운 곳이라는 힌트를 후카에리에게서 듣고 아오마메를 애타게 찾지만 찾을 길을 발견하지 못한다. 또한 자신의 소설속에서 자신이 구체적으로 창조한 두 개의 달, 공기 번데기와 같은 비현실적인 존재들이 현실이 되어 나타나는 것을 발견하고, 두 개의 달을 찾기 위해 찾은 놀이터에서, 우연히 아오마메의 눈에 띄게 된다. 그러나 아오마메가 그를 발견하고 뛰어나갔을 때는 그는 이미 자리를 뜬 상태. 아슬아슬하게 둘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고. 아버지가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요앙소를 찾은 덴고는 아버지가 누었던 침대에서 아오마메의 도터를 품은 공기 번데기를 발견하지만, 그것은 곳 사라져버린다. 

 

책 속에서

 


252
설명을 듣지 않으면 모른다는 건 설명을 들어도 모른다는 것이다.

 

258
일정 나이를 넘으면 인생이라는 것은 여러가지 것을 상실해 가는 과정의 연속에 지나지 않게 된다. 중요한 것이 하나 하나 빗살 빠지듯이 손에서 빠져 나간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 사람 또 한 사람,  주위에서 사라져간다.

 

516
나 하나의 생명의 무게를 견디고 나 하나의 고독을 견뎌내는 데도 이토록 허덕이는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라카미 하루키. 한 15년 전쯤? 상실의 시대를 읽은 후 작가에게 매료되어 그의 모든 번역서를 찾아 읽었다. 대개 단편들이었다. 시간이 꽤 흘렀을 때 친정집 책 꽂이에 꽂혀있던 그의 장편을 보고 반가워 단숨에 읽었는데, 큰 감흥도 없는 몇시간만에 읽어버린 그냥 한 권의 소설일 뿐이었다. 어떤 작가의 뛰어난 대표작을 뛰어넘는 후속작은 별로 없다. 어쩌면 내가 하루키를 좋아했던 알 수 없는 이유들,   어둡고 쓸쓸하지만 무심하고 순진한 그 염세적인 사유를 더 이상은 추종하지 않을 만큼 내가 변했을 수도, 그 깊은 우물의 세계를 더 이상은 공감하고 싶지 않았었을 수도 있다. 지금은 제목도 모르는 몇시간 잘 읽고 기억속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 소설 이후 하루키는 그냥 한국의 소설 시장의 주류인 젊은 여성들의 지적 허영 욕구를 적당히 채워주는 돈 잘버는 베스트셀러 작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느날 피폐해진 정신을 수습할 겸 책꽂이에 꽂혀있던 상실의 시대를 폈다. 때때로 우물 같은 그의  은유를 잘 이해하지도 못하면서도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는 녹초가 된 내 현실 속 피폐해진 마음에 이상하게 작은 위로가 되었다.


이 책을 버리지 않아 다행이야. 그의 책을 읽고 있는 중엔 그가 만들어 낸 인물과 비슷한 말투로 생각하고 비슷한 문체로 글을 쓰게 된다. 따라하게 되는 거다. 난 그런 종류의 여운이 좋다. 그런 여운은 강렬하지만 곧 사라지기 때문에 여운을 주는 작가의 책은 아껴서 아껴서 천천히 읽는다.

 

2013년 8월 베스트셀러 목록에 하루키의 소설이 떴다. 색채가 없는 어쩌구. 1q84는 상실의 시대를 다시 읽으면서 피폐해진 마음 에 나만의 우물을 파고 그 여운을 되새김질 했던 이후 다시 일고 싶던 책이었다. 색채가 없는 을 읽으려면 전작을 몇개 더 읽어야 겠어서 시작했다. 연작은 잘 안 읽는 편이다. 3편이 끝인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저걸 언제 다 읽나 하는 마음 반 또 그 만큼의 기대 반 으로 세권을 쌓아놓았다.

 

책 속의 주인공 사유에 빠지다 보면 줄거리를 잊어버린다. 비소설류를 빠르게 읽는 편인데 비해 소설류는 문장을 음미하는 편이라 3편까지 다 읽으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테고 일단 줄거리를 정리해보자.

 

아오마메는 전문 킬러이다. '노부인'에게 지령을 받아 쥐도 새도 모르게 자연사처럼 처리한다. 그녀가 죽이는 사람은 무자비한 폭력으로 아내를 괴롭혀온 죽어야 마땅한 사람들이다. 어느날 그녀의 세계가 무언가 아구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가 알고 있는 시간 1984년의 어딘가가 묘하게 꼬여 그가 알지 못한 세계와 섞인 두개의 달을 가진 세계. 그녀는 그것을 1q84라고 명명했다. 스포츠 클럽에서 일하는 그녀는 자신의 유일한 친구가 남편의 폭력으로 자살한 뒤 그를 죽인 경험과 한 돈많은 노인과의 인연으로 남자들을 죽이는 전문 킬러가 되었다. 그녀의 마음 속엔 열살 때의 첫사랑 덴고가  있다. 어릴 적 부모에 의해 선택의 여지도 없이 증인교인이 되어 평범한 또래 아이들과는 다른 격리되고 돌출된 행동으로 놀림을 받음과 동시에 외토리로 지내던 중 자신의 편이 되어준 덴고와의 작은 인연을 마음에 품고 살게 되었다. 부모로부터 벗어났지만 어릴때 받은 깊은 상처와 기억으로 그녀는 누구에게나 거리를 유지하고 클럽에서 픽업하는 대머리 중년들과의 원나잇 섹스에 성욕을 해결한다.

 

작가 지망생 덴고는 학원 선생으로 생업을 하며 한 출판사와 인연을 맺고 이런 저런 출판 관련일과 신인상 응모작품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 연상의 유부녀가 섹스 파트너이다. 어느날 문학지 신인상 응모작들의 예심 알바를 하던 중 엉망의 문장으로된 수작을 발견하고 알 수 없는 작품의 힘에 이끌려 그 작품의 문장을 고쳐 합작품을 본심에 내자는 출판사의 제의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작품의 원저자 후카에리는 난독증에 본인이 직접 글조차 쓰기 어려운 소녀. 그 작품도 그녀의 말을 다른 사람이 받아 적어 낸 것이었다. 한편 그는 또래의 싱글 이성과 원만한 관계를 갖지 못하고 연상의 섹스 파트너와 매주 한번씩 관계를 갖고 그녀가 이끄는 대로 따르면서 성욕을 해결하는 동시에 번거로운 이성관계를 회피한다. 후카애리의 작품이 성공적으로 본심에서 우승하고 미소녀의 첫작품에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그녀를 7년동안 키우고 보살펴왔으며 그녀의 딸에게 애리의 이야기를 받아 적어 문예지에 응모하게 한 에비스노는 그 나름대로 그녀를 노출함으로써 그녀의 아버지, 한 때 좌익세력의 지도자였으며 시골 마을에서 농업공동체 코뮨을 만들어 세력을 유지하다가 일부 행동파 여명을 평화롭게 분리하고 다시 코뮨을 선구 라는 종교단체로 바꾸어 폐쇄적 집단으로 만든 배경에서 잠적한, 그녀의 아버지를 추적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결국 후카애리는 사라지고 언론과 경찰은 후카애리의 배경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책을 마지막 장을 덮기까지 이 소설의 장르가 무엇인지 아직 모른다. 애리의 소설을 통해 언급되는 리틀 피플은 판타지적인 요소를 갖지만 어릴적 상처를 지닌 두 주인공은 점차 어떤 사건에 휘말리고 그것은 걷잡을 수 없이 점점 확대된다. 어린 시설 두 주인공은 강제적인 부모의 학대로 인해 고립되고 방치된 채로 사회에 노출되었고 그 황폐한 세상 속에서 둘 사이에 생긴 공감과 따스함은 서로의 부재 속에서도 불구하고 성인이 되었을 때까지 비밀스럽게 간직된다. 3권 중 한 권을 다 읽었음에도 아직 전개가 끝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점점 흥미로워지고, 속도가 붙는다. 십여년이 흘렀지만, 하루키의 가슴 속엔 아직 결핍과 상실을 말하고 있다.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있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흔들리지 않고 휘둘리지 않고 담담하게 - 류노스케 스님의 평상심 수업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유윤한 옮김 / 21세기북스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종교적 믿음의 속성 중 가장 강력한 것은 초월적 체험이 아닐까.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증명할 수도 없는, 어쩌면 인류 역사와 함께 눈덩이처럼 뭉쳐 자라온 거대한 생각 덩어리에 불과할 지도 모를 종교가 때론 핍박 속에서, 때론 지배자의 사상적 논리로 이용되며 굳건히 인류 문화의 핵심적 행동 패턴으로 자리잡아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그 증거할 수 없음 때문에 더욱 신비함 속에 휩싸인 어떤 초월적 체험 때문일 지도 모른다. 영적 체험은 세계의 모든 종교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다른 이름으로 드러내면서 신앙의 확산에 또한 기여한다. 기도의 힘이 신체적 고통이나 질병으로부터의 완쾌를 주거나 명상으로 철학적 깨달음과 마음의 평온을 주는 것들 말이다.

일본의 류노스케 스님이 쓴 [흔들리지 않고 휘둘리지 않고 담담하게]는 불교적 가른침을 통해 평상심을 유지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영적 체험에 대해, 류노스케는 명상 중 "의식을 집중해서 계속 바라보면 긴장감이 서서히 줄어들고, 어느 순간 깨끗이 사라지고 격한 기쁨이 치솟으며 온몸이 에너지로 가득한 느낌이 든다"고 적고 있다. 어쩌면 선택받은 자만이 아닌, 누구나 연습을 해서 어느 경지에 이르게 되면 도달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닐까. 다른 명상 서적에서도, 다른 곳에서도 비슷하게 일반인들에게 명상의 효능(?)에 대해 비슷한 설파를 하고 있으나, 단 1%의 가능성도 나에게선 없다고, 믿지 않았던 내게 조금은 가깝게 다가왔다. 책의 내용이 자신과, 자신을 둘로싸고 있는 모든 환경과 상황을 있는 대로 받아들임으로써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인 종교적 수행에 들어가고 그럼으로써 평안함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절이나 명상원을 찾아 가지 않아도 책에서 지시하는 대로 그대로 따라 마음을 조절하기만 가진다면  비종교적 생리를 가진 사람도 대단하다고 알려진 그 초월적 경지에 도달할 수도 있게 될 것도 같다. 그런 초월적 경지가 주는 기쁨, 세라토닌이 가득한 상태라면 물질적 추구나 관계적 집착으로부터 완전 자유로와질 것, 육체적인 한계나 노화, 질병 같은 절망에도 차분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아픈 속으로 의식을 들여보내 그대로 받아들이면 어느새 아픈 느낌과 마음이 일체화 되어 편안한 느낌을 얻을 수 있다 p.145

이 구절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 또한 특별한 목적없는 단순한 행동에 의식을 집중하는 방법으로 걷기 명상이 있는데 이 때는 발바닥에 의식을 집중시킴으로써 불안한 기분이나 긴장을 완화 시키는데 효과적이라고 한다.  운동도 되고 심적 평안도 찾고, 일석이조다.

이 책은 불교적 가르침에 충실하면서도 어려운 철학적 질문보다는 쉽게 명상적 실천과 마음가짐으로 불교적 수행이 어떤 것인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인도한다. 백팔번의 절을 하지 않아도 접근하는 생각만으로, 평정심을 갖고 자아에 집착하거나 뭔가를 추구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메타자아로서 들이다 봄으로써 수행하는 방법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검은 피부, 하얀 가면 - 전면개정판
프란츠 파농 지음, 이석호 옮김 / 인간사랑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프란츠 마농의 원서가 출판된 지 대략 60년이 지났다. 이제 미국의 대통령은 흑인이다. 흑인 대통령. 이제 우리의 머리 속에, 미국인과 전세계인의 머리 속에 오바마는 그냥 미국의 대통령인가 미국의 흑인 대통령인가 자문해볼 차례다. 최근 10~20년 전까지만 해도 한 민족이라는 종교에 가까운 민족적 정체성에 대의와 정의를 대입하던 우리는 갑작스레 조금 검고, 조금 더 강렬한 인상의, 찬란했던 고유 문화를 뒤로 한 채 비슷한 식민 역사를 가진,  비슷하면서도 다른, 결정적으로는 경제적 오리지낼리티가 열세한 동남아인들과의 공존을 맞닥뜨렸다. 우리 나라 땅에서 살지만 언어가 서투르고 생김새가 다르다. 다름을 우열로 규정하던, 그리고 학교 교과서를  다민족 국가로 고쳐쓴 지 한참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 다름을 우열로 규정하고 있는 편견에 가득한 우리. 우리들  메타포 속에는 스스로가 백인인가? 


그렇다면 백인이 우세하고 흑인이 열세하고 그밖의 많은 민족들이 각자가 정해놓은 편견의 틀 안에서 불협화음을 내며 섞이어 있는 미국을 보는 시선 중 오바마 대통령은 무엇일까? 훌륭한 즉석 연설과 설득력, 카리스마, 외모까지 갖춘 미국 대통령에게 아직 찬사이던 비하이던 흑인이라는 머리표를 붙인다면 우리는 아직 자신의 문화적 기원을 말살하고 앤틸리스에서 식민모국으로 건너와 , 자신의 흑인성을 부정했던, 프란츠 파농의 자학적 비판의 그 시대에 머물러 있는거다. 그것은 파농의 흑인에 대한 지적처럼  스스로를 백인화하고 백인 이외의 인종에 대한 자기 우월화를 표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렇게 천천히 읽히는 책은 오래간만이다. 문장이 안매끄러워서가 아니라, 문장에서 뜻을 해석해 내는데 걸리는  시간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 우리의 통치자, 과거 우리의 선교사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검둥이를 숭배하거나 검둥이를 혐오하거나 사실 우리에겐 마찬가지로 역겹기 때문이다. " 


책의 들어가는 부분에서 있던 말이다. 같은 생각이다. 용서하지 말아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버킷리스트 넘버 원! 세계일주
박유찬 지음 / 나무자전거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염장질이다. 맹목적인 무모함마저도 용서되고 수용되는, 일년을 놀아도 지치지 않는 체력을 가진 빛나는 청춘이 아니라면 꿈조차 꾸기 어려운 세계 여행. 학업, 경력, 스펙, 육아, 수도 없이 많은 종류 의무와 책임이 씨실과 날실처럼 촘촘하게 짜여진 일상에 매몰된 일반인들에겐, 단 7박 8일 짜리 단체 관광 마저 사치인 평범한 직장인들과 주부들에겐 이 책 염장질이다.

누구에게나 청춘은 오고 청춘은 간다. 오롯이 나만 생각하고 나만 잘 살면 되고, 내 미래를 누구의 희생이나 헌신을 담보로 하지 않아도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찰라처럼 지나가는 청춘의 한 가운데 어느 지점을 누구나 통과한다. 거기 서서 이처럼 나만의 브레이크를 갖는다는 것은 이미 저만치 떠나 버린 청춘의 그림자만을 붙들고는 부러워하는 일 밖에는 달리 할 일이 없는, 청춘 이후의 인생인 책임과 의무의 삶을 사는 일반인들에게는 그저 꿈같은 이야기다. 그래. 그랬었지. 나도 젊었을 때가 있었지. 내 나머지 인생을 걸고 무모하게 어디든 뛰어든 큰 전환기는 결혼 이외에는 없었지만 그것은 책임과 구속을 안정과 맞바꾼 일종의 은밀한 거래였으므로 제외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회는 있었지. 졸업후부터 결혼전까지. 직장과 연애가 전부였지만 그래도 만일 내가 원했다면 직장보다 연인보다 더 소중한 것을 찾으러 삶에 브레이크를 걸고 1년간 떠나려고 했다면 그 때는 지금보다야 열악한 환경이지만 세계일주라는 꿈같은 계획을 만일 가졌다면 나도 그 짧은 자유와 체력과 경제력과 미래를 스스로 저울질할 수 있는 결정권과 모든 것을 가졌던 때가 있었지. 그러나 그 때에도 그러지 않았고, 되돌아 간다고 해도 그러지 못할 것이다. 세상에는 세계일주를 꿈꾸고 실천하는 사람과 꿈꾸던 꿈꾸지 않던 세게일주를 실천하지 않는 사람 이렇게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그리고 나는 언제고 후자이고, 대부분의 지구인들이 후자일 것이다. 

작년 여름 말레시아 쿠알라룸프르에 8박 9일간 여행을 했다. 널널한 일정으로 도심 구석 구석 걸어다닐 수 있는 곳은 다 걸어다니며 역사, 문화, 인종,종교에 대한 견문을 넓힐 수 있었다. 마데르카 광장 부근의 전철역에서 커다란 베낭을 짊어진 독일 말투의 여대생들이 KL센트럴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냐고 길을 묻는다. 이런 허당 베낭족 같으니라구. 내가 관광객 차림이었고 지도 한장을 열심히 들이다 보면서 다니는데도 나에게 묻는 것도 한심하지만 여태 베낭 메고 뭘 하고 다녔길래 쿠알라룸프르의 허브 KL 센트럴 가는 법을 숙지하지 못했던 건지. 졸지에 잘난척을 하며 5번 빨간색 라인을 타고 라왕 방면으로 가라고 오버 친절을 떨며 얘기해 준다. 그리곤 기분이 좋아졌다. 여행객에게 다른 여행객은 동질감을 준다. 비록 베낭을 멜 수 있는 청춘은 아니지만, 유스호스텔에서 아무하고나 섞여서 자고 친구를 만들고 함께 다니고 하는 개방성과 모험심은 가지지 않았지만 어쩐지 나도 그렇게 걷고, 길을 묻고, 지도를 보고, 찾고, 다른 여행자와 보이지 않는 유대감을 형성하고, 그런 행위들을 통해 저멀리 달아나는 청춘의 끈 한가닥을 살짝 놓지 않고 버텼다고나 할까.

여행의 무엇을 즐기는가? 왜 여행을 가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개인마다 다르다. 그러므로 여행을 계획하려면 왜 가는지, 보기 위해 간다면 무엇을 보고 싶은 건지, 그 시간과 돈과 노력과  바꾼 그동안에 추구하는 것인지를 대략 생각해야 한다. 대개 짧은 여행을 갈 수 밖에 없는 일반인들에게 여행은 휴식과 체험(?)일 것이다. 그래서, 비용대비 좋은 호텔 좋은 구경거리를 찾아 나선다. 그러나 1년간의 여행이라면, 1년간의 다른 기회의 비용과 맞바꾸는 여행이라면 무엇을 위해서 어디를 가려는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냥 막연히, 보고 싶다? 무엇을. 세계를? 노우. 세계라는 말은 추상명사다. 모든 걸 포함한다. 세계의 문화, 역사, 지리, 날씨, 음식, 예술, 그 모든 걸 다 보려면 내가 세계인의 숫자만큼 세계의 역사만큼 많아야 하고, 세계의 부를 다 가져야만 한다. 그래서, 무얼 볼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친구는 세계 각국의 여행하는 사람을 만나고자 했고, 그러기 위해 서반어 등 외국어 공부를 미리미리 준비했고, 가고 싶은 도시와 지역을 꼼꼼하게 체크하여 루트를 정했고, 많은 문화를 체험을 접했다.

이 염장질의 책은 저자의 1년간의 세계 여행담이다. 세계 여행을 계획하는 독자에게는 경험으로부터 듣는 도움말과 충고만큼 값진 게 없다. 책을 읽는 내내 부러웠다. 더럽고 냄새나고 위험한 골목을 걷을 수 있는  용기, 안나푸르나를 올라갈 수 있는 체력, 여러나라 여행자와 여행을 통해 교감하고 사귈 수 있는 싱글 여행자의 마땅한 권리..

아아 청춘은 나를 떠났지만 나는 청춘을 떠나보내지 아니 하였습니답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