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계와 인간의 대결에서 기계에 지고도 인간이 할 말은 많다. 그 중에서 인간이 기계에게 가장 우월한 점은 기계는 주어진 어떤 한 가지만을 잘하지만 인간은 만능이라는 점이다. 모든 기계들은 인간의 특정 능력을 모방할 때 각각의 기능은 인간보다 뛰어나지만 총체로서 인간 개체 하나를 능가하는 기계는 아직 없다. 인간의 손 인간의 발 인간의 눈 인간의 코 그 각각의 감각 기관을 흉내내는 각종 센서들로 움직이는 기계는 그 센서들이 인간의 능력을 훨씬 능가하지만 인간의 아주 작은 어떤 특정한 지적, 신체적 능력의 아주 일부 기능을 하나씩 정복해 나가고 있다.
체스 기계(알고리즘)가 체스 시합에서 인간을 이긴다. 바둑 기계가 이제 바둑 시합에서 인간을 이긴다. 기계가 음악을 작곡하고 그림을 그린다. 기계가 제퍼디의 우승자를이긴다. 들쑥날쑥하게 자연상태로 주어진 자료를 바탕으로 논리를 가진 일련의 이야기를 기계가 만들어내고 그것을 쓰는 속도가 인간보다 수백배나 빠르고 문법적 오류가 전혀 없다. 기계가 한 사람의 뇌 용량에 갇힌 경험과 기억의 감옥에서 탈옥한 무한한 지식의 바다에서 의사가 되어 정확한 진단을 내린다. 기계가 무한에 가까운 자원과 용량을 지불해 자연과학의 법칙을 발견한다. 아인슈타인의 통찰보다 무작위의 시도와 우연적 발견이 만날때까지 반복해서 알아낸 자연법칙이 뛰어나다면 인간은 더 이상 천재들을 필요로 하지 않을까.
인공지능 분야는 20세기 초 이래로 여러 번 가장 과대평가되어왔고 또 과소평가되어 온 분야이기도 하다. 때로 우리는 우리가 현재 너무나 광범위한 세계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는 기술마저도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었던 반면 당연히 현재 시간쯤이면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리라 생각했던 부분은 어떤 바틀넥 같은 상황에 막혀 한 세기전에서 단 한발작도 나가지 못하기도 했다.
1930년데쯤 쓰여진 SF 단편들 중 로봇과 관련된 소설 몇 개를 읽어보았다. 그 때 미래였지만 지금은 현재 혹은 과거가 된 시점에서 혹은 먼 미래에서 가까운 미래가 된 시점에서 오래전에 상상한 로봇은 실제 모습과 많이 다르다. SF에서 로봇은 대개 다정다감하거나 무미건조한 모습으로 복종하지만 자주 섬뜩한 반전을 보여준다. 인간이 스스로 창조해낸 로봇이 인간의 지적 능력 이상으로 진화해가면서 더 이상 세계는 우리가 알고 있고 상상가능한 세계가 아닌 전혀 다른 완전한 다른 곳이 될 것이라는 믿음(혹은 이론)이 특이점이다 이 특이점은 때로 새로운 종교처럼 받아들여져 많은 추종자들과 이색적 동교 의식을 낳기도 하고 사이비 과학이라는 비난을 듣기도 하지만 IT의 거물들 중에는 이를 믿는 사람이 많다 콕 찝어서 삼사십년 이내에 그 특이점이 올 것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에서부터 그것에 대한 교육과정이 탄생되기도 했다.
특이점이 언제 올지, 혹은 오지 않을지 모른다. 확실한 것은 모른다는 점 뿐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일반인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모든 차들이 스스로 운전한다면 레알자동차라고 불러야 할까. 그 무어라 부르던 그런 시대가 오면 운전이라는 고강도의 노동은 필요없어지고 운전을 해서 생계를 꾸려가던 많은 직업적 운전사들이 뭔가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우리는 이제까지 기계가 인간을 대신함으로서 사라진 수많은 일자리들을 차고 넘치게 보아왔다. 대체로 사라진 일자리들은 새로운 일자리가 그 사라진 일자리들의 생활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자동화에 따른 자동생산에 따라 사람들은 풍족해졌고, 이제 물건을 만들던 사람들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무언가 정신적이거나 육체적인 것을 해주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다. 서비스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단연코 서비스 제공 인간이 서비스 수혜자 즉 돈을 지불하는 사람에게 없는 많은 지식을 가지고 합법적으로 그 지식을 제공할 수 있는 사회적 자격증 같은 것들이 있을 때이다. 변호사, 교수, 의사, 작가, 예술가 등등. 그런 직업이 늘어나고, 점점 더 전문화된 분야에 지식을 쌓은 사람들이 더욱 전문화된 서비스를 종사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 로봇이나 자동화기기에 일자리를 빼앗길 일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곤 했다. 인공지능 분야의 발전은 IT의 다른 분야에 비해 지지부진 했고 매번 벽에 부딪혔고, 특히나 인간의 뇌나 뭐 그런 걸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로봇이 고작 흉내내는 것은 인간의 뇌의 지극히 일부분일 뿐이고 그것 역시 인간에 의해 프로그램되어야 한다고 믿어졌다. 그리고 여러 번의 침체기 끝에서 바라보니 참으로 많은 것이 변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 인공지능은 IBM의 왓슨이 퀴즈 프로그램 제퍼디에서 우승한 이후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형국이다.
의사는 의료지식이라는 아주 오랜 기간의 시간 투자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을 부여받았지만 왓슨은 단순히 이제까지 인간이 이룩하고 쌓아놓은 모든 지식에 단순히 접속함으로써, 단번 및 의사 보조자가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들쑥날쑥한 데이터베이스에서 문맥을 찾아 환자의 증상과 맞는 병명을 찾아내고, 가장 적당한 의료 행위를 추천하고, 약을 처방한다. 이렇게 되면 한 사람의 의사에게 갇혀있던 경험과 지식이라는 한계에서 숱한 실수와 경험 부족에 의한 실수들은 사라지고, 지구상의 모든 의사들에게서 나온 지식에 접속해서 가장 근접한 병명을 알아내어 가장 적당한 치료법을 알려주는 한편 용량과 부작용에 따른 인적 의료사고는 거의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사는 무엇을 하면서 먹고 살 수 있을까. 시술 수술과 같은 물리적 의료행위들은 이미 로봇에게서 많은 자리를 내어주고 있으므로 의사들의 역할은 줄어들 것이고 시간이 많이 필요로되는 환자 면담과 같은 일들은 의사 자격이 없고 월급이 적은 단순히 컴퓨터 조작만을 함으로써 로봇에 의한 진료가 가능해지게 된다는 것이다. 원격진료와 같은 형태로 이미 도서지역 등지에서 시행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상상하는 SF 소설을 읽을 때에 우리는 그 상황을 두 가지 다른 시점이에서 성찰할 수 있다. 과거에 예견된 미래가 이미 도래했거나 지나갔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던 비관적 상상이었기에 안심하거나 아직 닥치지 않은 먼 미래의 일이기에 상상력의 차원에서만 체험하는 일이어서 걱정 역시 허구가 되거나다. 로봇이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걱정은 오래전부터 해 왔지만 여전히 사람이 필요한 곳은 있었고 서비스업은 더욱 세분화되어왔다. 그래서 그러는 동안, 응 로봇은 바보야. 단순 노동 밖에는 할 수 없거든 한가지 기능말고는 행 수 없거든. 사람을 대신해주지는 않을거야. 이렇게 믿는 사이에 로봇의 기능은 아주 조금씩 조금씩 야금야금 로봇의 기능은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있었다.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길건가 인간지능 이세돌이 이길거냐의 문제가 주는 알레고리는 인류의 미래에 적신호를 주고 있는걸까. 예상을 깬 로봇의 승리는 앞으로 벌어질 인간과 로봇의 대결에서 로봇의 승리라는 상징성을 예고하는 것일까. 완전한 승리 대신 허를 보인 한번의 패배가 완전한 인간의 패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이 대결은 인간과 로봇의 미래를 보는 것 같다.
두 책은 IT 기술과 경제 라는 두 가지 면을 동시에 매우 심도있게 다룬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로봇시대,인간의 일>이 <로봇의 부상>보다 훨씬 잘 읽힌다. 그리고 국내 상황을 반영한다. 국내 저자의 책이 질적으로 아마존에서 판매하는 글로벌 책에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구본승 저자의 책이 더 좋은 면이 있는데, 더 중립적이고, 좀 더 사색적이라는 점이다. 로봇의 부상이 미래의 직업에 대해 비관적이라면 로봇시대 역시 비관적이기는 마찬가지지만 기술문명의 폭발적이고도 혁명적 발전에 수반되는 윤리적 사회변화에 대해 더욱 통찰력있는 자신의 시각을 제시한다. <로봇의 부상>을 읽고, 아 어떻게하나 우리의 예쁜 아들 딸들은 미래에 뭘 해먹고 살건가 라는 걱정 밖에 안드는데, <로봇의 시대, 인간의 일>은 그 변화 과정에서 나타나게 될 흥미로운 현상들을 생각해보는 유익한 시간이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다.
분명 차가 스스로 운전하는 것은 멋진 신세계다. 그 멋진 신세계가 실현되는 동안, 세계의 몇 퍼센트에 해당하는 모든 운전자들은 모두 직업을 바꾸어야 하는 사실을 마지막에 섬뜩하게 제시하는 <로봇의 부상>에 비해 <로봇시대, 인간의 일>은 그와 더불어 그러한 자동차가 스스로 데리러 와서 데려다 주는 동안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그러한 신세계가 가져올 위협, 원격 해킹으로 인한 차량 통제권 상실 혹은 서버의 오류로 인한 대형 사고, 사고에 대한 책임 소재의 문제, 무엇보다도 위험한 상황에서 누구를 희생시킬 것인가 하는 도덕적 윤리적 문제 등과 같이 우리가 미처 생각지 않고 무턱대고 좋은 기술을 받아들였을 때 생기게 되는 문제점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가장 큰 차이는, 빠른 로봇의 발달로 인한 일자리의 현황과 전망에 대한 데이터가 국내 데이터를 기반으로 했으므로 더욱 현실성이 있다는 점이다. 미국을 알면, 곧 한국을 알게되겠지만, 디지털 정보의 독점화가 가져오게될 가속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 역시 한국이 미국보다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덜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도 변함은 없지만, 그래도 한국과 미국은 다르다. 사회 구조가 다르고, 서비스 산업의 양상이 다르고, 아이들이 추구하는 것이 다르고 생활방식도 다르다. 한국 사회를 보려면 국내 책을 선도하는 미국을 통해 글로발한 양상을 보려면 미국책을. 하지만 둘 다 다보는 것도 좋다.
IT 기술이 가져올 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해 말할 때, IT 기술 자체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하는 경우는 드문데, 두 저자들은 여러가지 분야의 인공지능들이 어떤 원리로 동작하고 있는지 그 기술적 동작 방식에 대해서도 상세히 말함으로써 독자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었다. 대개 인공지능이 미래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장미빛 전망을 하는 것과 달리 두 책 모두 매우 어둡게 미래를 전망하고 있다. IT 분야 단독으로만 보면 장미빛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경제와 실업, 일자리 같은 부분과 함께 통찰될 때, 기술이 가져올 어둡고 두려운 전망이 도사린다.
자동화된 생산 설비로 척척 차가 만들어지는 장면을 보고 포드사의 사장 포드가 노조 위원장에게 거만하게 말한다. 이 로봇들은 월급을 줄 필요도 없고, 파업도 하지 않을 거라고, 노조위원장은 말한다. 이 차들을 이 로봇들에게 팔 수 있을 거 같나교. 소비가 가능한 사람들의 집단이 있어야 경제가 돌아가는데, 현재의 거대 자본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지 않은채 로봇과 인공지능 알고리즘들에게 일을 시키게 된다.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실제로 통계에 의하면 전세계의 일자리는 수십년동안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으며, 실업률은 높아가고, 또한 가계 소득 역시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부자들의 부의 편중 현상이 심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결국 장미빛으로 다가오는 이 모든 자동화, 로봇, 인공지능이 자신도 모르게 달려가고 있는 곳은 어디일까. 거대 자본이 이 아름다운 알고리즘과 인공지능과 로봇을 차지하게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그리 달갑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구본승은 <정보의 유효기간이 단축되는 지식반감기>라는 멋진 소제목의 챕터를 통해, 우리의 미래를 살아가게될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지식의 수용에 대한 현실적 인식을 제시한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계속 학습하지 않으면 이내 낡은 지식과 권위에 의존하는 구세대가 된다. 이는 우리의 아재 세대들을 통해 이미 학습된 터이다. 모든 정보는 절대지식이 될 수 없고 유효기간과 반감기를 지닌 가변적 지식이라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 직업에 관련해서, 오래전 이미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없어졌지만, 로봇이 약사, 변호사, 의사 등의 전문가의 일까지 대체하기에 최적화된 시대에 한 분야의 지식을 십여년간 교육받아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평생 직업이라는 개념도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