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
다시 로크먼 지음, 정지호 옮김 / 푸른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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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읽은 남자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내 이 생각 뿐이었다. 정말 너무 궁금했다. 반박 의견을 달까? 그럼 어떤 말을 할까? 이 책 속에 있는 어마어마한 참조 문헌들을 조목조목 반박할 의견들이 어떤 걸까??

우리 외갓집은 할머니가 아들을 낳는 사람에게 200만원을 주겠다고 '상금'을 걸만큼 가부장적이다. 80 넘는 할머니가 엄청난 양의 밥을 해도 삼촌들은 까딱도 하지 않는다. 움직이는 건 엄마와 이모들 뿐이다. 아주 어렸을 때는 삼촌, 아빠, 이모부들과 따로 밥 먹은 적도 있다. 그때는 그게 자연스러웠다. 근데 참 사람이 배우고 읽고 보는 게 많아지니까 진절머리가 나서 이제는 그런 '꼬라지'를 보기 싫어 교류한지도 벌써 15년 가까이 된다.

도대체 그놈의 고추가 얼마나 귀하길래. 엄마는 여자인 나를 낳아서 '아들도 못낳는다'며 외할머니와 친할머니에게 구박을 당했다. 나는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할머니에게 칭찬을 들어본 적이 없다. 항상 '저게 고추를 달고 태어났어야 했는데'의 연속이었다.

나만 그런게 아니었다. 내 친구들도 똑같은 대접을 받고 자랐더라. 징글징글했다.

사실 이런 가부장적인 풍습 (문화라고 하기도 싫다)은 아시아권에서 강하게 나타나는 줄 알았다. 서구권은 남녀평등이 조금 더 앞서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꼭 그런 건아니더라. 그냥 한국이랑 똑같았다. '아들이 중요해'라는 것만 없을 뿐 양육의 문제는 모두 어머니의 차지였다. 그리고 어머니들은 양육에 가담하지 않는 남자들을 향해 '남자가 그렇지 뭐'라는 체념을 했다.





'자기가 잘 하는 방식으로 양보를 하는 거죠'

바로 그거였다. 한국이든 서구권이든 ㅋㅋㅋㅋ 남자들은 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게 아니라 '내 시간을 쪼개서 양보'를 한다는 것.

항상 이 부분에 대해서 명확한 정의가 뭘까 생각했는데 바로 핵심은 '양보'였다. 결혼 생활에서 함께가 아니라 양보하는 삶이라니. '먼저 들어가세요', '아닙니다. 레이디 퍼스트죠.', '호호 감사합니다.' 이런 양보라니!!!!!!!!!

도대체 그게 말이 되는 건가? 양보는 나보다 약자에게 하는건데 ㅎㅎㅎ






이부분도 흥미로웠다.

정작 동성부부, 그것도 여자 동성부부에게서는 다른 이성부부, 남성 동성부부와 다른 점. 이걸 보면 정말 성염색체가 다 한건가 싶기도 하고






이건 너무 슬펐다.

여자라는 이유로 남에게 친절을 베풀었을 때 그게 남자들에 비해서 칭찬도 없고 감사도 없다는 거. 사람이 살아가는 데 누군가에게 힘을 얻기 위해 해주는 격려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성별 때문에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게.

사람 살아가는 모습은 다 다르지만 성 역할에 대해서는 완전 평등한 나라가 없다. 이 사실이 너무 괴롭다. 과연 내가 이 진실을 알고도 너무 사랑해서 결혼을 할 수 있을까. 결혼을 한다면, 아이를 낳게 된다면? 이 지식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나마 찾은 최선책이 이 책을 내가 결혼할 상대에게 읽어보라고 하는 게 더 빠를 수도 있겠단 생각과 그래도 변하지 않을 것들이 있다는 게 분명하다는 걸 알게 된, 유용하고 슬픈 하루였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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