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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전.
저와 아주 절친한 분의 막내 자제가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 양주분들...
궂은 일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팔을 걷어 붙이시고 거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정 많고, 신망이 두터운
분들이셨고,  
고인 역시 부모에게는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었고,
주위 사람들에게는 훈훈한 미소를 선사하는 아주 건실한 청년이었는데...

아! 그런데 이런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황당한 일이 어찌 그 분에게...
그 자제에게...?
내가 마치 꿈을 꾼 듯 황당한데, 그 분 심정은 과연 어떠할꼬?
천붕지괴가 이와 같을까?

하아~! 어째 이런 일이...

기왕 부모에게 한을 심어 주고 가는 걸음이거니,

부디! 저 세상에서...부디 열락하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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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5-17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는데 순서가 있었지만
가는데 순서가 없는 이 절대적 법칙이 때로는 걷어차고 싶습니다.

stonehead 2005-05-17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 여우님...
부모 앞서 가는 그 걸음이 참으로 떨어지기가 쉽지 않았겠지요.
올해 33세인 참으로 건실한 청년이었는데...
석사과정를 혼자 힘으로 마치고, 박사과정에 들어 갈려고 했다는데...
정말로 가슴이 아프답니다.
파란 여우님. 방문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만물이 생장하는 5월에 즈음하여
가정을 생각해 봅니다.
와인오토는 "결혼은 책임있는 사랑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책임있는 부부의 역할과 부모 노릇 즉 `'올바른 가정 세우기'를 하지 못하는
가정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탄의 훼방과 세속적인 문화유산으로 인해 획득되는 그릇된 삶의 원리와 가치관들의 소용
돌이에 휩쓸려, 중심을 잃고 표류하다가  끝내는 난파되어 버리는 가정이 대략 40%에 육박
한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깝고도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참담하고도 우울한 현실을 청량함으로 씻어준 보도가 며칠전 있었지요.
톱연기자로서의 신성일·엄앵란씨의 리마인드 결혼식기사...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참으로 의미있고도, 신선한 기사이었습니다.
사실 톱연기자로서 그들이 함께 한 40여년의 인생역정은 모르긴해도 감내하기 힘든 역경의
연속이 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앞에 놓여진 여름의 거센 폭풍우, 가을의 공허함,그리고 겨울의 세찬 한파와 눈보라...
그러나 그들은 시작할 때의 사랑과 뜨거운 열정으로 모든 시련과 좌절을 극복하고, 오늘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여름의 푸르름과 싱그러움을 거쳐, 가을의 천자만홍으로 인생을 만개하고,이제 여생을 삶
의 의미와 향기가 짙게 배인 낙엽이 될 준비를 기꺼이 하겠지요.
강한 바람이로되, 전혀 그 무게를 느낄 수 없는 사랑의 훈풍이 가득한 가정을 굳건히 세우고
말입니다.
사실 가정이란 모든 공동체의 가장  원초적이며, 기본적인 단위세포입니다.
가정이 건강하지 못하면 지역·국가·세계공동체는 말할 것도 없고,신앙공동체인 교회 역
시 온전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런 남편과 아내라는 두 개의 기둥으로 세워지는 가정의
중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이런 무가지보(無價之寶)인 가정은 그러면 어떤 토대위에 세워야 합당할까요?
가정의 근본을 성경에서 찾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기를 원하는 '기독가정'은 영원한
 반석이신 주님의 말씀의 토대위에 가정을 세워야 합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곁을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2:24)"
첫째.결혼한 부부는 당당히 부모곁을 떠나야 합니다.(육체적, 심리적, 경제적...)
둘째.남편과 아내는 서로 연합해야 합니다.
       연합한다는 것은 부부이외의 모든 것(자식, 부모, 친구, 물질)으로부터 완전 분리해야
       함을 일컫습니다. 부부지향적(신혼시절)-->가족지향적(자식의 출산과 양육)-->
       부부지향적(자식들 成家後의 노년시절)의 변천을 흔히 목격하게 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부부지향적이 가족지향적에 우선하는 가치가 되어야 합니다.
       신혼때 잠시 입고, 수십년을 장롱속에 쳐 박아 두었다가 노년에 다시 꺼내 입는 먼지
       투성이의 다 낡은 부부관계가 되어서는 결단코 안됩니다. 케익을 잘라 자식들에게 모
       두 넘겨주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자식교육을 위해 '기러기 아빠'됨을 기꺼이
       자청하였지만,외로움에 몸부림치다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끝끝내 가정 또한 파
       탄으로 결말이 나는 사례를 메스컴을 통해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세째.결혼한 부부는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일단 결혼하게 되면 남편과 아내는 더 이상 두 사람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같이 자기 몸을 주
       장하지 못하고 오직 아내가 하나니(고전7:)"
       성(姓)은 3자와 공유할 수 없는 독립적 상호소유이며 제7계명도 실천적 약속입니다.
       이는 육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영과 혼을 통틀어 하나됨을 의미합니다.
네째.절대 나뉘어서는 안됩니다.
곃    결혼은 사회계약이 아니고, 하나님의 경륜안에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짝지워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마19:6)"
       많은 이들은 결혼생활을 영위하다가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이혼을  결심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혼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다섯째.부부는 서로의 불완전을 메꾸어 완전한 인격체로 변모시키는 관계입니다.
       오늘날 남존여비니, 여성상위이니, 성 차별이니, 남녀평등이니 등등  남녀 특히 부
       부의 관계를 대립의 개념으로 주장하고  있으나, 분명 성경적은 아닙니다.
       부부란 협력하고, 상호 보완하여 온전히 거듭나는 관계인 것입니다.
여섯째.가정과 교회는 동일한 제도이며,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복종과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에서 두 가지 제도를 만드셨는데, 구약에서는 가정이요 신약에서
       는 교회입니다. 가정의 연속이 교회이고, 교회의 원천은 가정인 것입니다.
       엡 5:22-25에 보면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고, 아내의 머리되는
       남편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주신 것
       같이 아내를 사랑하여야 합니다.
일곱째.남편과 아내는 각각의 책임과 역할에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창3:16-19 말씀과 "젊은이는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서 훼
       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기원하노라.(딤전5:14)"
       여자는 최초의 범죄후, 출산의 수고과 자식양육의 역할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러나 여자의 출산은 저주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배려입니다.
       자녀를 고통스럽게 낳으므로 생긴 모성애는 자녀를 양육하고,그 장래를 염려하는데
       전념케하여, 여러 시험을 극복하게 합니다.
       남편 역시 저주받은 땅위에서 종신토록 노동으로 가족을 부양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 또한 저주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일하지 않는 남자(불로소득:로또, 실직상태...)는 타락과 방종으로 흐를 위험이 있
       습니다. 땀 흘리며 수고하는 자는 탈선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범죄에 대한 정죄함속에도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하심을 깨닫고, 삶이 힘이
       들고 고통스럽더라도 새 힘을 얻어 더욱 열심리 살아야 겠지요.
여덟째.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하나님의 축복과 사명(자식양육...)과 유업을 같이 할 동반
       자로 인식해야 합니다.

이런 말씀의 토대 위에서 서로 노력할 때, 모든 가정은 분명 행복해질 것이고, 부부관계 또한건강하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침은 서로 격려하는 말로 시작하고, 저녁밥상에선 서로의 노고를 칭찬하고, 잠자리에
들기전에 두 손을 마주잡고, 감사의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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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사유가 우아한 곡선으로가 아니라, 계단 계단을 밟음을 통해 발전한다는
그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사유의 기저를 지배하며 끝없이 분출되는 도전.
--->어쩌면 우리의 성장과 발전을 바라는 신의 축복이자, 선물일지도...

아무튼 이런 하나의 `도전`을 종결 시킬 때마다,
우리에겐 다음 계단을 밟을 자격이 주어지게 되고,
심화된 화두의 또 다른 도전은 `단계의 유혹`으로 우리를 부를 것입니다.

이런 도전을 해결하려는 우리의 부단한 노력을 통해,
우리의 사유은 단계 단계의 `도전과 종결`이라는 과정을 거쳐 성숙 발전될 것이고,
어쩌면 존재의 본질(신의 진정한 뜻)을 살짝 엿볼 수 있는 행운이 주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영혼의 심연에서 분출되는 이 근원적인 도전을 외면하고, 회피한다면
이 녀석은 태생적인 속성상 영원한 지속성으로 우리를 괴롭힐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 두려워 하거나 귀찮아 해서는 절대 안될 것입니다.

성숙에는 필연적으로 고통이 수반되는 법이므로 당연 감내해야 겠지요.
 
우리는 개개의 도전을 종결시키기 위해서 참으로 의연하고도 당당한 모습으로 그것에 직면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의 관문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자위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사유의 발전`의 한 방법으로 우리는 흔히 독서(특히 철학,인문서적)를 선택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해서 획득된 지식의 편린들을 기억이란 저장탱크 속에 단순한 조각모음으로 담는 경우를 흔히 목격하게 됩니다.--->물론 어떤 특수목적을 가진 독서는 제외이지만

단순한 조각모음이란 측면의 독서는

외적으로는 장식적인 지식의 배열을 통한 자기현시와 
내적으로는 배타적인 속성으로 기인한 혼란을 야기시킬 것이며

결과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부적절한 인간군을 양산하게 될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세월이 흐르고, 기억이 희미해지면 나와는 무관한 관계로 전락해 버리는 참으로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것이 되고 말것입니다.

독서를 통해

인생관, 가치관, 전인격이 변화되는 독서야말로
시간과 노력과 돈을 투자하여도 아깝지 않은 진정 가치있는 독서라 할수가 있겠습니다.
 
이런 독서를 통해 획득된 지식들이

끝없는 사유와 통찰의 밑거름이 되고, 또 새로운 화두(도전)로 거듭나는 순환과 상승작용으로 나타난다면,
우리의 내면은 활활 불 타오르는 뜨거운 용광로가 될 것입니다.
 
부적절하고, 불순한 지식들은 선별하여 폐기하고, 성질이 다른 가치있는 것들은 용융시켜 완전히 하나가 되게 만들 것이며,

우리의 삶의 존재의미는 확연히 드러나게 하고, 가치관을 변화시키고,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자아로 거듭나게 만들 것입니다.
  
마치 일곱가지 빛의 색깔이 일체화 되어
하나의 흰 빛으로 드러나는 것 처럼 진정한 의미의 동일화를 만들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1차적 깨달음(정신의 깨달음)에 지나지 않지요.

 
`지대한 지적 호기심과 이해능력`, `뜨거운 열정`, `혼신의 힘`을 다한 사유, 신의 감동으로서
이러한 깨달음에 이를수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유를 통한 깨달음을 보다 심화시키고 활성화 시키고자 한다면
현실 속에 있는 우리들의 삶과의 연계가 필연적이지요.

삶을 배제한 지식, 사유, 깨달음...지적유희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賓客이 아닌 主體意識의 실현...

그 지식과 깨달음이 자신속에서 호흡하고, 자신의 일부가 되는
`2차적 깨달음`(육신의 깨달음)인 손과 발이 바삐 움직이는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삶과 연계된 진정한 의미의 독서는,
칠흑같은 어두움 속을 헤매는 우리 영혼에게 빛을 제공할 것이며,

사유를 계단을 한 걸음 한 걸음 밟아 올라가게 하여
궁극으로 향하는 사다리를 놓는데 크게 일조를 하겠지요.

끝으로 황금가지에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입니다.

땀 흘리며 수고하여
참으로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열매를 맺게 하여,
그 자신은 물론이요 타인과도 열매를 공유하는 아름답고도 광휘로운 삶을 살았다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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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핑핑 돌 정도로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디지탈 시대에 즈음하여

정통가치관이 시류에 의해 퇴색되어 버리고.
아이들의 재능과 성격은 각양각색이요, 천차만별인지라.

으~음!
학문에 왕도가 없듯이
자식교육에도 왕도가 없는 것 같습니다.

상황에 따라 Case by case로 대처를 해야 하는 방법외에는...

이것이 참으로 고민스럽고, 지난(至難)한 것임은
자식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쉬이 느낄 수가 있을 것입니다.(제 경험에 비추어도...)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욕심인지는 모르지만

내 자식만은 높고 높은 이상을 가지고
자신을 갈고 닦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

이 사회를 선도하는 일꾼으로 성장해주기를
바랄 것이고,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땀흘려 씨를 뿌리지 않은 자는 추수할 자격이 없듯이...

자식의 장래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 미래가 찬란하게 빛이 나기를 바라는 부모라면...

응당 자신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그 역할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다시말하면

`자식의 거울로서의 부모,
선험적 지식을 지닌 인생 동반자 또는 가이드로서의 부모.

그 부모로서의 자격이 과연 내게 있는가?`에 대한 `내적 비판`과
자식의 앞날을 비추어 주는 부모란 이름의 거울을
정성스레 닦아가는 엄숙한 마음가짐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혀가 짧아 바담풍 하더라도, 너희는 바람풍해라"는 말은
이 글귀가 유행하던 시절의 아이들에게는 통했겠지만,
오늘날은 분명 아닐 것입니다.

비록 수술을 해서라도
어거지라도 바람풍을 발음해 주어야만,
요즈음 아이들은 마지못해 따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시대에 우리들은 자식을 키우고 있으며,
소망을 함께 키워 가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힘이 들고, 어렵지요.
그러나 힘이 든 만큼 보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큰 놈이 ㅇㅇ대학 영화과에 재학중 군에 갔습니다.

녀석이 말하기를
나중에 `아버지`란 제목의 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그 때에.

아버지가 아들을 안고 앞만을 바라보며 묵묵히 걸어가는 모습을
엔딩장면으로 설정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장면을 클로즈업시켜,
동행자로서의 아버지가 걸어온 길(아버지의 영광스런 발자취)을
아들이 끊임없이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 모습을 나타내고 싶다고 하더군요.

아버지란 존재의 삶이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 주겠다는 말이지요.

저의 짧은 소견으로는
`각론적인 것들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대처하더라도,
원론적인 윤곽과 밑그림은 그려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나`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ㅇㅇ아!
너는 이 세상에 왜 왔니?,
앞으로 너는 무엇을 하며 살고 싶니?

아이가 대답하면/

`그 일이
너도 좋아하고, 엄마아빠도 좋아하고,  친구 누구누구도 좋아하고,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 하는 일인 것 같니?`라는 질문을 던져
어릴 때 부터
인생에 대한 원론적이며, 개략적인 윤곽과
상대를 배려하고, 더불어 사는 삶을
은연중 교육시키는 것이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예를들어

ㅇㅇ아!
`화단의 꽃들은 누가 심었니?
너는 꽃들이 왜 핀다고 생각하니?
그리고 꽃을 심은 사람은 왜 심었을까?`라고
질문을 던지고

` 꽃들 아빠가 심었지? 그리고 그 때
우리 ㅇㅇ이가 물도 부어 주고, 아빠를 참 많이 도와주었지.
그리고 그 때 아빠는 ㅇㅇ이가 자랑스럽고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

그리고

` 꽃을 심을 때는 아주 힘들었는데...꽃이 피니, 아주 이쁘지 않니?
그리고 와! 냄새가 정말 좋네!
사실 아빠가 ㅇㅇ이와, 엄마, 할머니, 네 친구 ㅇㅇ와
그리고 이웃집 아저씨 아주머니...
우리 모두 기분좋게 할려고 땀 흘리며 심었거든...`

그리고

`우리 ㅇㅇ이 생각하고, 아빠 생각이 어쩜 이리 똑같지!
역시 ㅇㅇ이는 아빠 아들이라 아빠와 생각이 똑 같은게 당근이지`라고
호감을 끌면서

꽃의 존재목적이 심은 자의 목적이고,
심은자의 목적은 꽃과 향기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데 있다는 개략적인 윤곽(진지한 삶과 더불어 사는 삶)을
아이의 마음판에 자연스레 새겨지게 했으면 합니다.

아이로 하여금 홀로 사색하게 하고,
진위를 떠나 스스로 결론을 내리게 하여
능동적이며, 적극적이며, 깨어있는 의식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교육이 아니겠는지요?

책상 위에 놓인 시계를 예로들어 또 같은 질문을 해봅니다.
시계의 존재목적(장식용, 정확한 시간...)

이런 깨어있는 의식을 가진 아이들은
자연스레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실현하고픈 꿈과 더 높은 이상을 품게 되겠지요.

그리고
이런 꿈과 높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능력(지적능력, 품성, 체력, 인내력, 용기, 지도력....)을 기를 것입니다.
`소년이로 학난성, 일촌광음 불가경`
촌음의 시간이라도 아껴 쓰고,
피와 땀과 눈물을 투자하여 정진에 힘을 쏟고,
가편하고, 절차탁마하고, 간난신고하여 일로 매진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얻은 능력으로 꿈과 이상을
반드시 현실의 세계에서 꽃을 피울 것입니다.

흔히들 "과정이 중요하지, 결과가 뭐 그리 중요한가?"라고들
말들을 하지만
결과없는 과정, 성취없는 진행은 안코없는 찐빵이 아니겠는지요?

기독교 예를들어 대단히 죄송하지만.

예수께서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대망을 품고
성육신(Incarnation)하시어,

공생애 3년을 위해
30년의 삶을 자신을 갈고 닦는데
즉 장차 있을 십자가의 고난을 이겨내는데 필요한 능력을
기르는데 바치시고,

마지막에 십자가를 지는 결과로 말미암아
기독교인들에게 메시아로 추앙을 받음.

만약 십자가를 지는 결과가 없었더라면...
아마 신앙의 대상이 아닌 인간 예수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깨어 있는 의식(존재목적에 대한 끝없는 추구, 구도자의 정신)을
지닌 자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징표라 생각합니다.
.........................................................................................................

사명적인 인간이 되기를 원한다면

3A를 소유하라고 아들 녀석들에게 늘상 이야기합니다.

첫째 /꿈, 이상, 대망(Ambition)을 품으라!

둘째 /대망를 성취하기 위하여 능력(Ability)을 길러라!

셋째 / 그 능력으로 결과를 남겨라. 즉 성취(Achievement)를 해라!

..............................................................................................................................................

알라딘에 가입한 후  첫 글입니다.

과객으로 남길 원했는데, 바람구두님의 엄명으로 한 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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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04 1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onehead 2005-03-04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
지니엉아..누구신지는 몰라도 그 분 구두님에게 엉아 호칭을 받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엄청 행복하겠군요. 흐흐흐

이 몸도 어디 어디에 가면 큰 엉아로 통하는디...ㅠㅠ. 클 클 클

바람구두 2005-03-04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동기 머리 올리듯은 못 되지만...
그래도 이렇게 서재에 글도 올리고 하시니 좋네요.
글보니 그간 괜히 부족한 저를 놀리시느라 그러신 듯하여 민망하여이다.
앞으로 좋은 글 많이 보여주세요.
아, 그리고 비밀글로 올린 글에서 상대의 닉을 공개해버리시면 안 됩니다.
제 프라이버시 문제도 있지만, 제가 언급한 그 분의 프라이버시 문제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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