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의심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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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울의 추를 관장하는 심판의 이야기


 그의 작품이 나오면 눈여겨 보게 되고, 읽다보면 묘하게 매혹된다.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 늘, 낯설게 느껴지지만 그가 그리고 있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낯설지 않아 또 그의 이야기를 바라보게 된다. 차근차근 읽다보면 습자지에 먹이 베이는 것처럼 인물들간에 벌어지는 사건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데, 이번에 나온 작품은 여타의 다른 작품들과 다른 결을 갖고 있다. 작가 도진기라는 이름 앞에는 늘, 판사의 이력을 갖고 있는 그의 프로필이 먼저 소개가 되는데 이번에 그가 본격 법정물을 갖고 왔다. 판사대신 변호사라는 직함이 바뀌어지고, 그동안 썼던 미스테리 소설이 아닌 저울의 추를 관장하는 심판의 이야기다.


사람들과 우스개 소리로 병원과 법원, 경찰서를 멀리 해야하는게 좋다고 농담을 주고 받은 적이 있다. 가까이 하기에는 껄끄럽고, 어딘가 불편하거나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도진기 작가는 <합리적 의심>에서 사건을 풀어가는 재미 보다 검찰측을 대변하는 검사와 피의자를 대변하는 변호사 사이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심판해야 하는 세사람 중 가장 우위를 점하고 있는 판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법의 의미'에 대해, 때때로 서민의 감정과 다른 법의 판결에 대해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시스템에 대해서 역설하고 있다보니 '판사'라는 직업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법원하면 우리는 억울한 사람들에 대해 '법'의 잣대로 판단하되 정의로운 판결로 무고한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는 제도라고 생각하지만 판사는 정의를 수호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회는 사적인 보복을 금지한 대신 판사라는 직업을 만들어놓았다. 그에게 피해자를 대신해서 유무죄를 판단하도록 맡겨놓았다. 그러고 보니 판사 너도 못 믿겠다, 너가 어떤 인간인 줄 알고 전부 맡긴단 말이냐, 해서 말도 못하게 엄격하고 거미줄같이 촘촘한 룰을 같이 만들어놓았다. 네 맘대로, 주관적 정의감이 가리키는 대로 판단하지 말고 법이라는 이름의 룰에 다라서만 재판을 하라는 것이다. '최악을 수반하는 최선' 대신 '덜 위험한 차악'을 선택한 것이다. 인간에 대한 불신이 낳은 시스템이다. - p.145


도진기 작가는 마치 자신의 분신이라도 되듯 부장판사인 현민우를 통해 판사의 고충과 어려움을 그려낸다. 그와 함께 우배석 판사와 좌배석 판사를 대동하며 일년 전에 재판한 일명 '젤리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어느 날 연인 사이인 두 남녀가 모텔에 체크인을 하고 들어갔으나 몇 시간 후에 여자가 급하게 달려온다. 119에 신고해 달라며 요청했다. 남자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다가 그가 먹었던 젤리가 목에 걸려 숨을 못 쉰다고 했다.

구급차에 실려간 남자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내 죽었고, 남자의 들었던 보험금이 가족이 아닌 여자친구에게 3억의 보험금이 지급되었다. 검찰에서는 그녀가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일부러 죽였다고 하고, 피의자인 그녀는 남자친구가 먹은 젤리 때문이지 자신은 아무런 죄가 없다고 한다. 그렇게 여러번 사건을 회기하며 재판을 벌이지만 추측이 아닌 입증으로 남자가 죽은 사인에 대해 밝혀지지가 않는데...


"여러분은 납득할 결론을 향해 꾸물꾸물 나아가는 달팽이 같은 존재를 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법에는 행선지가 없습니다. 무한궤도를 무심히 도는 톱니바퀴 같은 존재인 거죠. 법은 정의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규칙 속에서 예측 가능하게 돌아가는 체제의 유지가 우선 목표입니다." - p.184 


심증은 있어도 물증이 없는 경우도 그렇지만 합리적 의심은 따르지만 보여지는 결과가 뒤따르지 않는 경우는 어쩔 수 없이 피의자의 법적 책임을 물지 못한다. 한 사람의 재량이 아닌 좌우의 배석 판사를 두는 이유도 한쪽에만 시선을 두고 간과하지 말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그들도 사람이기에 사람을 심판하는 일이 쉽지 만은 않고, 특히 위 아래, 옆의 눈치를 보지 않는 뚝심있는 판사 또한 자신의 소신을 지켜나가는 것이 쉽지 않다. 권선징악의 결과를 뚜렷하게 내는 것이 법원이 할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요즘 많은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의외의 결과가 나온 것처럼 법을 관장하는 이들이 갖는 무게와 수고로움은 지난한 것을 넘어 많은 것들이 얽혀 있었다.


법정물이라 하면 법정에서 정적인 동시에 그들이 주고 받는 말이 동적일 정도로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묘미가 있는데 <합리적 의심>은 가장 정적이면서도 수면 위와 아래를 관할해야 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밑바탕에 깔려져 있어 재미를 더한다. 작가의 말대로 검사와 변호사가 공격수라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는 자리라면 판사는 가장 공정하며 근엄하며, 정의로운 판단을 내려야 하지만 이 마저도 쉽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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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지도
앤드루 더그라프.대니얼 하먼 지음, 한유주 옮김 / 비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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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매혹의 땅 위에서


 소설을 읽는다는 건 누군가의 통로를 향해 걸어가는 것이다. 머나먼 철길을 항해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길을 하염없이 걸어간다.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우리는 작가가 인도하는 기차를 타고 그들의 여정과 같은 걷고, 타기를 반복하며 한 사람의 생애를 여러번 반복해서 오르내린다. 작가가 비춰내는 인물에 포커스를 맞추지만 때때로 우리는 소설 속 많은 인물들 중에서도 작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 기억에 남기도 하고, 때때로 작가의 의도대로 작품 속 비중을 가장 크게 차지하고 있는 주인공에 이입되기도 한다. 그들의 생각과 행동, 그를 가리키는 묘사들이 잔잔히 비춰내고 있다.


한동안 책을 펼칠 때는 작가가 의도한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 여러번 반복해 책을 읽기도 했다. 오독을 하지 않기 위해 중의적인 표현들을 풀어내려고 애썼으나 앤드루 더 그라프와 대니얼 하먼의 <소설&지도>를 읽고 접하면서 '오독'이야말로 또다른 문학적 길이 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 많은 길 가운데 항상 가는 길만 가는 것이 아니라 샛길도 가보고, 조금 돌아서 큰 길도 가보면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길이 펼쳐져 있다. 누군가에게는 정도에 벗어난 길이 최고로 위험한 길이 될 수 있으나 이 매력적인 땅 위에서 하염없이 길을 잃어도 미지의 세계 속 어느 곳에는 또다른 이야기가 피어날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들었던 책이다.


 

 

이름만 들었다 하면 눈이 휘둥글어질 호메로스, 웰리엄 셰익스피어, 대니얼 디포, 제인 오스틴, 찰스 디킨스, 프레더릭 더글라스, 허먼 멜빌, 에밀리 디킨슨, 쥘 베른, 마크 트웨인, 프란츠 카프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셜리 잭슨, 랠프 엘리슨, 사뮈엘 베케트, 플래너리 오코너, 매들린 렝글, 리처드 애덤스, 어슐러 K. 르 권의 이야기가 한 장 혹은 여러 장의 지도로 작품을 대변하고 있다. 작가 옆에 작품을 써놓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대표작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이름 앞에 수록된 작품들 중에서도 낯선 이름도 있기에 책을 꼭 펼쳐보기를 바라는 마음에 거론하지 않았다.

 

무수히 들어봤던 작품들을 여러장의 지도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꼴깍 삼켜낼 수 있다니 보는 내내 눈이 즐거웠던 책이다. 초기 저자는 이 책을 기획 할 때 50권의 책을 지도로 만들려고 했으나 작품을 그리면서 50권의 책이 어마어마한 숫자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한다. 작품 마다 일괄적이지 않는 소설 속 지도는 한눈에 봐도 어마어마한 여정의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담았다. 지도란 원래 짧고 명확하면서 정확하게 가고자 하는 길을 찾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기에 본분을 다한다면 군더더기 없이 작품을 표현해야 한다. 소설 속 이야기를 어떻게 한 눈에 내다볼 수 있게 그려낼 수 있을까.


 

 

읽고 보는 내내 이미 읽었던 작품은 작품대로, 처음 접하는 소설은 소설대로 이야기 고유의 색채와 색감이 동시에 묻어났다. 특히 이미 읽었지만 다시금 책을 펼치게 만든 지도는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허먼 멜빌의 <모비딕>이다. 언제 읽어도 늘, 여러 해석이 붙은 작품인 동시에 시공간을 뛰어넘어 변주가 가능한 작품이었다. 지도는 때때로 그들의 걸었던 발걸음을 색색깔의 선으로 표기한다. 언제 읽었는지 가물가물 기억이 안나는 책은 당연히 고개를 갸우뚱하며 서가로 가서 다시 책을 펼치게 된다. 이런 작품도 있었어 하는 작품은 프란츠 카프카의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다. 그의 작품은 모던한 동시에 생각할 거리를 언제나 남겨주는데 미처 만나지 못한 작품이어서 그런지 새로운 책 소개가 반가웠다.


 

 

소설을 만날 수 있는 여러갈래의 길이 이리 반가울수가. 늘, 가는 길만 가고, 다른 길로는 돌아가지 않는 나에게는 이런 낯선 경험이 너무나 좋았다. 소설에 있어서만은 그 어떤 경계없이 이야기를 즐기고 있기에 보물지도 만큼이나 매혹적인 땅의 이야기를 자유자재로 그리는 저자의 작품 속에 쏙 빠져들었다. 커다란 판형의 작품 속에서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소설속 이야기를 지도로 통해 볼 수 있는 문학적 지도는 언제든 환영이다. 계속해서 많은 작품들이 그들의 손에 들어가 계속해서 다른 문학적인 지도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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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위대한 이야기에서 그렇듯, 모퉁이마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나 애먹이는 건 사람이고 사람들은 대부분 땅 위에 있다. 그러므로 강 위의 삶은 "자유롭고 편하고 아늑"하다. 가는 길마다 오아시스를 만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짝패가 카이로를 지날 때, 남북전쟁 이전 시대의 미국 남부를 무지한 자와 제정신 아닌 사람이 넘펴나는 일종의 정신병원으로 보지 않기란 어렵다. 둘은 가는 곳마다 강제로 물건을 파는 사람, 인종주의자, 광신자, 귀족을 자처하는 심술궂은 사기꾼, 어리석은 바보를 만난다. 톰 소여는 허크가 상상력이 부족하다며 몰아세운 적이 있는데, 허크가 맡은 회의론자 겸 중재자 역할은 작품과 주변 인물을 돋보이게 한다. 그는 늘 두 사람 사이에서 고심하면서 중립을 지킨다. 그는 자신만의 도덕을 규정하고, 자기만의 길을 만들고, 계속해서 나아간다. - p.73


프란츠 카프카를 아동 친화적인 작가라고 하는 이는 없겠지만 그의 작품은 아동도서와 공통점이 상당히 많다.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시각을 보여주며, 대체로 유머를 통해 정서적 효과를 나타낸다. 하지만 카프카의 작품은 단편이건 장편이건 우리가 누구이며 진정한 본성이 무엇인지에 관한, 중요하면서도 본질적으로는 유아적인 질문에 종종 몰두한다. (생략) 이 작품은 노골적인 부분까지 낱낱이 드러내는 생존 이야기다. 지칠 대로 지친 페터가 갖은 모욕을 받으며 우리에 갖혀 있는 동안, 그가 아는 것이라고는 "탈출구가 없다"가 전부다. 물리적인 축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페터는 신랄한 어조로 "자유"라는 단어를 거부한다.) 하지만 살고자 하는 의지는 누구에게도 반하지 않는 방식으로 "무엇이든" 찾도록 이끈다. (생략) 허나 그는 새로 생긴 고유한 관점에서 무엇을 성취해왔는지 돌아볼 수 있다. 그리고 아담과 이브가 그랬듯 페터도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는 말한다. "출구가 필요하다면 배웁니다. 모든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배웁니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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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영어회화 : 주토피아 (스크립트북 + 워크북 + MP3 무료 다운로드) - 30 장면으로 끝내는 스크린 영어회화 시리즈
강윤혜 / 길벗이지톡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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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후기후기!


영어공부를 시작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저번주 마지막 공부를 마치고 공부에 대한 총평을 남기게 되네요. 다른 때 같으면 시작점을 넘어 중후반쯤 가면 지겨울만도 한데 <스크린 영어회화 주토피아>는 정말 재밌게 공부한 영어책이었어요. 이야기를 읽고, 보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자연스레 이야기를 읽어가고픈 마음도 생기고, 더불어 어떤 이야기인지 궁금해 자꾸만 스크립트북과 워크북을 공부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초반에는 이미 애니메이션으로 봤던 겨울왕국으로 할 걸 하는 후회도 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아는 애니메이션 보다 모르는 이야기가 더 호기심을 자극해 공부를 하게 만들더라구요. 더욱이 주디와 닉의 이야기는 찰떡궁합이라 이야기가 쫄깃해서 나중에는 막 신나서 영어공부를 했던 것 같아요.
 

 

듣기는 책에 수록된 CD로 많이 들었고요. 나중에는 핸드폰에 넣어다니면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이 들었어요. 혹, 주디의 목소리나 닉의 목소리가 나오는 건 아닐까 하며 틀었지만 성우 목소리가 아닌 예쁜 선생님 목소리라 거기에 맞춰 집중 했습니다.

 

 

워크북도 좋았지만 저는 책을 마주 할 때마다 스크립트북이 참 좋았어요. 전체적으로 이야기가 다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고, 박스 안에 간단하면서도 요약적으로 설명해 놓은 부분이 간결해서 좋더라구요. 오히려 박스 칸에 문장들을 집중해서 공부하다 보니 영화를 볼 때 귀에 쏙쏙 들어오는 문장들이 많았어요.

 

노트에 적고, 또 적고. 처음에는 간단하게만 적으려 했는데 나중에는 모르는 단어도 적고, 밑줄치며 공부했어요.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라면 바로 요 구간의 이야기들라지요. 쫄깃했거든요. 주디와 닉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는 장면이었는데 이 장면 공부 할 때가 가장 하이라이트였던 거 같아요. 매 시간 집중해서 공부를 할 때도 있었고, 때때로 공부하는 시간이 부족 할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스크립트북과 단어는 꼭 외우려고 노력했어요. 가장 기본적이기도 하고 단어를 알아야 문장이 읽히기 때문인지 그 전보다 많이 들리더라구요.


영화를 볼 때도 자막만 집중해서 봤는데 요즘에는 자막을 읽은 대신 될 수 있으면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많은 부분이 크게 향상 된 부분이라면 영어를 어렵게 느끼지 않고 친근하게 대할 수 있다는 점과 듣기가 전보다 나아졌어요. 계속해서 듣기와 단어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스크린 영어회화 시리즈로 계속 영어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야기를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알면 아는 대로 재밌게 공부 할 수 있는 책인 것 같아 공부하는 내내 흡족했던 시간이었어요.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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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이웃 - 박완서 짧은 소설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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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삶의 정취.

​ 한동안 번역서만 읽다가 오랜만에 박완서 작가의 <나의 아름다운 이웃> 읽었다. 외국소설이 좋아서 읽는 것도 있지만 같은 시대에 살아가는 작가들의 글 속에서 허를 찌르는 칼날이 느껴지지 않았다. 르포인지 다큐인지 모를 이야기들만 그려져 있어 자연스럽게 한국소설을 멀리하게 되었다. 그러다 만나게 된 책이 박완서 작가의 단편집이다. 48편의 짧은 이야기들이 오목조목하게 들어가 있는데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고가구처럼 삶의 정취가 물씬 느껴진다. 우리와는 같은 듯 다른 삶을 살았던 시대의 이야기는 지금과 바라보는 세상이 다르게 느껴졌다.
가부장적이면서도 동시에 아이를 낳아야 하는 여자들의 고된 삶이 드러난다. 아이를 낳아도 여자가 아닌 남자아이를 낳아야 하고, 낳지 못하면 다른 여인을 데려와 아이를 낳아야 한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폭력적인 삶이 까슬까슬하게 느껴진다. 학력과 재력, 성품 모든 것을 가진 이들의 허세와 남녀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도 거칠거칠하면서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 무엇보다 제 눈의 안경인 인연의 고삐들을 각기 남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보니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지만 박완서 작가의 톡쏘는 글맛이 일품이다.
그럼에도 이 글에는 1970년대의 전경이 눈앞에 그려진다. 예전에 출간된 것을 다듬어 새 옷을 입었다 하더라도 예전의 고풍스런 이야기와 주제,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시대를 거스르지 않는다. 지금과는 다른 느낌의 풍경화지만 이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정겹고도 고압적으로 느껴졌다. 50년도 안된 시대의 이야기는 마치 오래된 시대를 넘어가는 만큼이나 큰 간극이 느껴진다.
 


할머니의 세대, 엄마의 세대, 현재 나의 이야기들이 어찌나 그렇게 다른 페이지의 느낌으로 다가오는 걸까. 결혼적령기에 결혼을 하려는 이들과 아들을 둔 엄마의 마음이나 결혼 후에 예전에 구애했던 남자와의 이야기등 그 시대의 멋과 허세, 관계의 이질감이 드러난다. 웃지 못하는 웃픈 상황 속의 이야기의 재밌었고, 착한 시어머니를 연기하는 시어머니의 대처법에도 작가는 칼날을 드리운다. 그것이야 말로 최선이었을까? 오래되지 않았지만 살았던 이들의 정취를 돌아보면 어느새 시간은 그 시간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관찰하고 있다.


한 수 더 나아갔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의 자리는 다시 두어칸 뒤로 가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겠지. 지나간 시간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정겹지만 정겨운 시간 속에서 걸쳐왔던 억압과 많은 시대의 유물들로 인해 우리는 시간의 갭을 느끼고야 만다. 48편의 다양한 단편집을 통해 박완서 작가의 다채로운 색채를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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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의 대화 - 윤덕현의 영혼의 인터뷰
윤덕현 외 지음 / 김영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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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

 불모지에 아무 것도 없다면 우리의 몸에 피가 돌듯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게 된다. 쌓고, 올리는 작업이 계속 하다보면 어느새 훤히 아래가 내려다 보이는 마천루가 생기기 마련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물자와 교통, 과학기술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대에서는 모든 것이 자연친화적일 수 밖에 없었다. 지금처럼 버튼 하나만 누르면 어느 것을 먹어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으며 물자가 귀해 아끼는 것이 답이었던 시대가 있었다. 빛이 있다면 그늘도 있는 법. 시대가 지나 많은 것이 지난 시대보다 물질적으로 발달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건강한 삶에서 빗겨가게 된다. 요즘 한창 먹방이 유행하고, 해외투어를 하며 지적인 것과 동적인 삶을 일깨우고 있다.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 사이에서 눈은 호강하고 있지만 때때로 그것이 피로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예전에는 외식하는 것이 소원일 때가 있었는데 요즘은 식당에서 밥을 먹는 거 보다 만들어 먹는 가정식을 더 좋아한다. 조미료를 넣지 않고 자연의 재료로 맛을 내어 먹기도 하고, 물을 담아 놓는 용기는 꼭 유리병을 쓰며, 일회용 컵을 쓰기 보다는 유리컵에 따라 마시고, 텀블러를 이용한다. 될 수 있으면 플라스틱과 종이컵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필요에 따라 쓰기 편하고, 들고 다니기 편할 수 있지만 나중에는 누구에게나 피해가 갈 쓰레기에 대해서도 될 수 있으면 음식물 쓰레기를 비롯해 쓰레기의 양도 최소한으로 내다 버리곤 한다.

개인적으로 요즘은 무엇이든 과잉의 시대인 것 같아 내가 조절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선을 넘어 버린다. 자신이 주체적으로 생각하거나 행동하지 않으면 유행의 파도에 휩쓸려 버리거나 돈이든 물건이든 저울의 추가 한쪽으로 무너져 내린다. 그런 점에 있어서 다큐멘터리 감독인 윤덕현이 만난 12인의 치유가들의 인터뷰를 담은 <가슴의 대화>는 무공해 같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12명의 인터뷰어들은 각기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음식, 사랑, 동물의 마음, 가족, 죽음, 식사법, 오라 에너지, 호흡 명상, 밥상, 평화의 언어, 진실의 이야기를 담아 그들이 치유하고, 치유받는 삶의 이야기를 나눈다.

인간은 때때로 오만하고, 자신과 같은 종이 아니면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착각 할 때가 있다. 지구의 중심에선 인간이라. 영화나 드라마, 책에서 늘, 인간이 갖는 오만에 대해 교훈을 던져주지만 이 교훈의 여운이 오래가지 않는다. 우리가 먹는 음식, 우리와 함게 하고 있는 동식물들, 자연이 주는 재료들로 정성껏 지은 밥, 조용히 눈을 감고 손을 무릎에 두고 명상을 하고 있으면 절로 자연의 내음과 소리, 나의 몸으로 하여금 느껴지는 숨소리가 느껴진다. 우리가 하는 말,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에너지. 이 모든 것이 그들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 무엇을 하나 하더라도 맑고 경쾌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삶의 빛의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는 인터뷰는 기린한약국 원장 이현주의 이야기와 에너지 힐러의 사은영씨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다.

부족한 것도 문제이지만 너무 과해서 생기는 문제점도 자주 발생되다 보니 어떻게 하면 마음을 비우고, 몸을 비우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운동을 하러 가기 전에 차를 타는 대신 걸어가면서 명상을 하면서 조금 더 나에 대해, 생각의 깊이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다. 책과 더불어 유튜브에 가슴의 대화를 치고 그들의 이름을 적으면 그들의 인터뷰 영상이 고스란히 보여진다. 더불어 그들이 추천한 책과 음악, 영상이 더해져 그들의 가슴의 대화가 더 풍성해진다. 하루아침에 깨우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당장 실행을 할 수 없어도 '무소유'의 삶, '건강한 삶'의 주제를 놓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들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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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략) 표면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한 번 그렇게 말을 뱉으면 내가 의식하지 않은 부분이 움직이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평소에 하기 힘들었던 말들을 이제는 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드네요.
- 언어가 정보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의식을 만들어 나가기도 하거든요. 언어가 우릴 끌고 가요. - p.112

자기 안에 남아있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보게 될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처음엔 일기 쓰기처럼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연습부터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일단 내가 스스로한테 솔직해지면 많은 부분이 해결되거든요. 여러 사람한테 진실해지고 솔직해지라는 게 아니라 자신한테 먼저 솔직해지면 되는 거예요. 내 감정은 실시간으로 변해요. 지금 내가 불안한지, 두려운지, 기쁜지, 행복한지 한 번씩 체크해 주는 거죠. 일기라고 하면 왠지 형식을 갖춰야 할 것 같고, 잘 써야 할 것 같아서 부담이 느껴지기도 하죠. 하지만 낙서를 하셔도 좋고 그냥 그림을 그리셔도 돼요. 그냥 지금 나의 감정을 통해 오가며 흐르는 것들을 표현하기만 하면 되거든요. 핵심은 내 솔직한 감정들이 손을 통해서 빠져나가는 행위인 거예요.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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