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센트 2 Medusa Collection 8
제프 롱 지음, 최필원 옮김 / 시작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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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 뒷면에 <디센트>의 책을 소개하는 몇 줄이 담겨져 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지하세계, 대륙과 해양으로 뒤럭힌 거대한 미궁에서 한때 위대했던 고대 헤이들 문명의 흔적이 발견된다. 인간의 두개골로 화환을 만들어 두른 짐승의 입, 죄악에 갇힌 인류의 모습을 담고 있는 벽화.......단테의 <신곡> 지옥편과 일치하는 유적에 사로잡힌 예수회 학자들은 지하세계로 탐사를 떠나고, 아틀란티스 만큼이나 어마어마한 문명을 마주한 순간 끔찍한 살인이 시작되는데......' 5줄의 간단한 소개글에도 알 수 있듯이 <디센트> 자체가 어마어마한 스케일을 자랑하고 있다.

책을 읽기전 커다란 스케일의 소설이라 반했고, 또 그 커다란 스케일의 책이 두려웠다. 저자는 학창시철부터 단테, H.G웰스, 보르헤스를 읽으며 꿈을 꿨다고 했는데 그가 읽을 책을 토대로 그가 에베레스트 산을 투어 가이드한 경험을 살려 한편의 작품을 작품을 완성하게 되었는데 디센트를 읽어보면 작가의 경험이 묻어져 나오는 듯한 경험들이 책 속에 그대로 나타나있다. 첫 장면인 히말라야 트래킹에서 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한 명씩 실종되는 사람들 속에 사람들의 죽음과 시체에 관한 묘사는 음습하면서도 몸이 섬짓해진다.

에베레스트 산을 이야기 하면서도 그는 가장 깊은 곳의 땅속을 이야기하는데 지하 동굴의 판타지를 이야기 하고 있는 <터널>과는 다른 더 깊은 심연의 세계를 이끈다. 요즘 한창 쥘베른의 책에 관심이 있는 터라 지하세계에 더욱더 관심이 있었는데 디센트를 쓰기전 작가가 참고한 책을 보면 그 면모가 훨씬 더 장엄하고 그 깊이가 더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을 읽다보면 그가 영감 받았던 책 속의 구절이 나오곤 하는데 그 소설 말고도 단테의 <신곡>, 밀턴의 <실락원>,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앨리스 터너 <지옥의 역사>가 그에게는 <디센트>를 쓰는데 큰 영감을 주었다.

광활한 스케일과 어두컴컴한 지하세계의 이야기를 좀 더 깊이 파고들 지식의 깊이는 얇은 책 읽기를 하는 나에게는 모티브의 원전이 되는 책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숨은 1인치를 찾아 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도 단테의 <신곡>을 모티브가 섞였던 <장미의 미궁>을 읽으면서 몇 일 고전을 했는데 이 책또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요즘들어 더욱더 SF 스릴러, 판타지 책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아마도 어릴때 판타지에 대한 재미를 느껴보지 못했던 것을 성인이 된 지금에서 그 재미를 톡톡히 느끼고 있다. 재밌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주제를 가지고도 쉬이 지나치는 것 같아 무척 아쉬웠다. 소설의 아쉬움 보다 더 그것을 느끼지 못한 독자의 큰 무지가 큰 걸림돌이라니...... 이 책을 읽고 나서 좀 더 많은 작가가 차용한 모티브가 되었던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많은 책을 접한 후에 다시 한번 차근차근 이 책을 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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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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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경희궁에서 열렸던 북페스티벌이 열렸고, 북크로싱을 통해 데려온 아이중 한명이었다. 북크로싱에서 많고 많은 책 중에 덥석 <완득이>를 집었던 이유는 친숙한 익숙함이었다. 알게 모르게 익숙하게 들려오는 풍문도 거침없이 집어오는 손길에 한 몫했다.  그렇게 왕건이를 건졌다고 데려온 아이는 한동안 책장에 박혀 있다가 이제야 주인의 시선이 온전히 받았다. 책이 완득이 같은 성격이라면 ' 주인~왜 저따위야~!! "하고 눈을 부라리고 있지 않았을까.

크크크...큭.... 읽는 내내 절로 유쾌한 웃음이 나왔다. 유쾌한 그들의 이야기는 시종일관 가볍게 경쾌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완득이>는 이주노동자, 장애인, 즉 사회의 아웃사이더들이 살아가는 애잔한 이야기를 발랄한(?) 그리고 친근한(?) 욕설로 그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통통 튀는 맛깔스런 문장이 연방 만화책을 읽듯 술술 읽혀든다. 마치 내가 살고 있는 옆집 옥탑방에서 완득이를 부르는 '똥주' 선생님의 목소리가 연상이 된다. 그러면 완득이는 투덜투덜~모른척하거나 햇반을 하나 던지겠지하는 장면이 머릿속에 박혀든다.

늦은밤, 책을 조금만 읽다 자야지 했던 나는 시원한 수박을 사각사각 베어 먹듯이 완전히 꿀꺽 삼켜 버렸다. 완득이의 유쾌함과 상쾌함, 가독성은 정말 최고다.장애인, 이주노동자의 사회문제를 가볍게 풀어놓은 소설은 이 책의 장점이자 또한 단점이다. 시종일관 크큭대며 웃는 가운데 책장을 덮고 나면 뭔가 허전하다. 사회에 대한 편견을 가볍게 터치 했을뿐 깊숙하게 날렵한 이야기가 아닌 '소재'로만 쓰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와 감동 그리고 우리 사회의 문제를 좀 더 깊이 생각할 수 책이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들지만 통통튀는 그녀의 <완득이>는 십대의 아이들의 마음같은 소설이었다. 유쾌, 상쾌, 통쾌한 이야기를 쓴 그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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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두 문학과지성 시인선 342
오규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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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쯤 몇개의 시집을 사놓았는데 이제야 그 한권을 집어들었다. 책을 살때도 시집에서 대해서는 잘 몰라서 시집을 구경하며 꽤 많은 시집을 구경하는 이가 있어서 물어보며 시집을 골랐다. 그 중에 오규원님의 시집은 내가 읽던 글 중에서 그의 시 구절이 나와 제법 친숙한 시인이었다. 시나 음악이나 여러번 보고, 여러번 듣다 보면 낯설음이 없어지는데 평소에는 접하기 힙든 분야하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마도 시가 어렵다는 편견을 갖은 것은 중고등학교때 교과서에 나온 시를 톳씨 하나 빼지 말고 외우는 건 물론이고 단어 하나하나 파악하며 시를 파헤쳐서 그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직도 시만 보면 마음의 느낌이 아니라 시의 문장을 파악해야 하나 하는 고민이 들곤한다.

<두두>는 오규원 시인의 유고 시집이라고 한다. 언어의 진경을 펼쳐 보이는 절차탁마의 세계라고 하는데 처음 읽어본 나는 아직까지 그런 느낌을 모르겠다. 눈에 보이는 모습을 그대로 표현했다고 하지만 시의 언어들 속에 사물과 사건으로 인해 파생되는 의미를 허용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말을 읽으며 마음이 가는대로 눈길이 가는 그대로 시를 읽었다.  그의 시집을 읽으면서 소설을 즐겨 읽는 만큼이나 자주 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저녁 허공을
가로질러 가다
질긴
들불의 연기 한 줄기
군용 헬리콥터
발목을 감고 가네
  



빗방울
 


빗방울이 울타리에 솝-솝-솝-솝 떨어진다 

빗방울이 어린 모과나무 가지에 롭-롭-롭-롭 떨어진다

빗방울이 무성한 수국 잎에 톱-톱-톱-톱 떨어진다

빗방울이 잔디밭에 홉-홉-홉-홉 떨어진다

빗방울이 현관 앞 강아지 머리에 돕-돕-돕-돕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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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더다의 고전 읽기의 즐거움
마이클 더다 지음, 이종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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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 읽기의 즐거움은 책을 만났을 때 늘 존재하지만 좋은 책을 만났을때의 즐거움은 그 이상의 큰 즐거움이 된다. 재미가 있고, 교훈이 있고, 나아가서는 삶의 텍스트가 되는 책과의 만남은 그 이상의 내 삶의 벗이다. 그 벗들을 만나고 싶은 이는 많지만 하루에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책이 쏟아지는 만큼 양질의 책찾기는 늘 어려운 일이다. 

자주는 아니지만 헌책방에서 책사냥에 나서면 바로 나의 한계가 찾아온다. 이를테면 헌책방에서는 내가 아는 책의 정보를 찾아 절판된책, 내공이 쌓인책들을 찾아가는 지도없는 보물섬이다. 지도없는 보물섬에 혜안이 있는 사람이라면 단박에 보석같은 책을 찾아내지만 혜안이 적은 사람은 돌로 치부하고 지나쳐 버리기도 한다. 귀한 아이템을 두고서.

앞의 헌책방이야기와 마찬가지로 고전 읽기도 이와 같다. '고전읽기' 오랜 세월이 흘러도 좋은 책, 좋은 글을 잊혀지지 않는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하나의 모티브가 여러 권의 책이 되기도 하고 영원한 모티브가 된 책들은 이미 '고전' 이라 일컫으며 장수해 나간다. 장수한 그 책들은 좋은 책들이 다 거론될 수 없으며 아는 사람만 아는 좋은 책들은 꾸준히 그 역량을 쌓아가는 사람만이 아는 습득된 정보이기도 하다. 마이클 더다는 그 역량을 쌓아간 한 사람으로서 '고전'의 '즐거움'을 함께 즐기고자 책을 냈다. '고전'이 어렵고 따분하다는 편견을 갖곤 하지만 그 편견은 '고전'의 매력을 느끼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때로는 어려운 소설도 있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고전 중에서 재미있고 환상적인 책도 있을 것이다. 끝도없는 책의 미로를 (때로는 고전의 미로) 항해를 안내자인 마이클 더다와 함께 보물찾기에 나선 책이 바로 <고전읽기의 즐거움>이다.

1부에서 11부로 나눠 각자의 테마속에 우리가 알지 못했던 작가와 작품들을 그는 소개하고 있다. 유희적인 상상력, 시대의 영웅들, 사랑의 신비, 현자들의 말씀, 일상의 마법등 각 주제에 맞게 소설에서 부터 비소설,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읽히고 읽혀서 헤진 좋은 책들을 하이라이트 부분만을 살려 이 책을 읽음으로서 또다른 책과의 만남을 그는 이어주고 있었다. 책의 목차만 봐도 얼마나 매력적이던지....아는 작가들 보다 모르는 작가가 훨씬 더 많았지만 그만큼 더 보고 싶고, 알고 싶은 작가들이 엄청났다. 책을 읽으면서 도중에 검색하여 책을 찾아보기도 했을 정도니 이 책의 매력을 말하다간 끝도 없을 것 같았다. 그만큼 마이클 더다는 간결하면서도 책의 재미의 백미들만 소개해 놓아 마치 '이 책 안보고는 못 베길껄~!' 하는 유혹의 손길을 뻗고 있다. 구구절절 고전의 즐거움을 이야기 하는 것 보다 마이클 더다의 <고전의 즐거움>을 통해 읽어보면 절로 그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아쉽게도 마이클 더다가 재밌다고 소개한 책 중에는 아직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는 번역본들이 많아 그 점이 아쉬웠다. 책의 미로속에서 귀한 보물을 찾아내듯 그가 소개한 책들은 너무도 반짝반짝 거린다. 그동안 그 반짝임을 스스로 알지 못했지만 그를 통해서 좀 더 넓고, 재밌는 책을 접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또다른 참고서가 될 <고전 읽기의 즐거움>은 나에게 큰 기쁨이자 반짝이는 책의 지표가 될 것이다. 고전읽기가 두려운 사람들, 고전을 읽고 싶은데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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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타샤
조지수 지음 / 베아르피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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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스타샤>를 읽고 나서 한동안 너무 먹먹했다. 글을 읽고 나니 오롯히 남은 그 느낌을 글로 담아서 쓰고자 했지만 얼마 못가서 나는 쓴 글을 지우고, 또 쓰다 지우고.....며칠을 그렇게 반복했다. 처음 <나스나샤>를 읽을때 몇번이나 고전했었다. 지금껏 책을 읽어보면서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들과 함께 철학적 사유가 함께 버물려진 책은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작가의 글을 호흡하기가 무척 힘이 들었다. 그렇게 힘들게 호흡을 하며 읽어나가기 시작했지만 서서히 문체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무렵 그의 나스타샤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감히 내 생에 있어 삶을 좌지우지 하는 사랑을 바라지도 않는다고.  나 또한 그렇다. 나 아닌 누군가를 사랑하는일. 내 마음 가득히 그를(혹은 그녀를) 담는 일이 마술에 걸리지 않는 한 현실에서는 없을 거라고 이야기 한다. '사랑'이라는 주제는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영원불멸의 주제로 쓰여오고 있지만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현실에서는 존재여부가 그만큼 적기때문에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했다.

사랑에 있어서 '해피엔딩'의 사랑이야기가 '완성적 사랑'이라고 믿는 때가 있었다. '영원하다'는 단어도 사물이나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하지만 지금은 모든 사랑이 행복한 결론을 끌어내며 일종의 '잘먹고 잘 살았습니다'로 끝내는 사랑은 얼마 안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꿈꾸는 사랑이 아닌 현실적으로 사람과 사람이 사랑하기가 얼마나 희박한 확률인지도. 예전 교양시간에 <여성학>을 들었는데 그때 교수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여자에게 있어 결혼의 관념은 사랑의 마법으로 인해 그 결계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사랑을 꿈꾼다.

"조지, 나는 당신하고 같이 늙는다면 저렇게 죽어도 좋아. 당신을 꼭 안고 당신 품에서 죽을 거야." - p.268

"조지, 나는 무엇도 견딜 수 있어. 조지, 나를 사랑해줘, 사랑만 있으면 나는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거야. 사랑해. " - p. 309

"나스타샤여, 멜리사와 경쟁하려 말라. 멜리사는 내게 마술이었던적이 없다. 그러나 그대는 내게 모든 것이다. 그대는 나의 아침이고 저녁이고 숲이고 호수이다. 대지의 여신이고 미의 여신이다. 내가 쉴 곳이고 내가 기댈 곳이다....(생략) " - p.335

<나스타샤>를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했던 이유는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 속에 나스타샤를 향한 무한한 그의 사랑이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혹 어떤이는 나스타샤가 조지의 희생적인 사랑에 어찌 사랑을 느끼지 못할 수 있나 하는 물음을 하는 이도 분명 있을것이다. 하지만 나는 조지 혼자서 나스탸샤를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나스타샤를 사랑한만큼 나스타샤 그녀도 그의 사랑에 주고 받았을 뿐. 낯선 타지에서 두 떠돌이별이 만나 함께 사랑을 이야기 했던 그 시간이 두 사람에게는 생애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지가 나스탸샤를 사랑한만큼 나스탸샤가 가지고 있는 아픔까지도 사랑한 그의 모습은 '사랑의 마술'은 존재하고 있음을 조지의 모습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스탸샤는 그를 더 많이 사랑했을 것이다. 두 사람이 오래오래 함께 살았으면 하는 바램도 있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오랜시간 함께 한 사랑만이 진정한 답은 아닐 것이다. 조지, 그가 살아있는 날까지 그의 심장이 뛰는 그날까지 그는 나스탸샤를 기억할 것이고 그의 가슴속에 살아있는 나스탸샤는 결코 죽은 것이 아닐테니까.

그를 둘러싸고 있는 캐나다의 생활은 그려질듯 훤히 보여주지만 그 속에서 피어난 두 사람의 사랑이 함께 했던 낯선 타지의 두 영혼이 함께했던 그 느낌은 잊지 못할 것이다. 나스타샤가 없는 캐나다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조지의 느낌만큼이나. 마음을 다해 그 사람을 사랑한 조지나 그 사랑을 사랑한 나스탸샤 두 사람은 행복한 사람들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다시 '사랑'을 꿈꾼다. '사랑'은 그저 꿈꾸는 것이 아닌 현실에 있다는 것을 조지와 나스탸샤가 '증명'해 준 그 사실을 품에 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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