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렌드 동백꽃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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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에서 나는 꽃향기 궁금합니다. 눈속을 뚫고 올라오는 힘차면서 은은한 향기가 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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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 이야기 1
김은성 지음 / 애니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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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색 판화로 그려진 만화가 왜 이렇게 아름답고 눈물이 나는 걸까? 아마 작가의 엄마와 그 엄마의 엄마 목소리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함경도 북청 사투리에 담겨 전해졌기 때문인가 보다. 80대 엄마의 이야기를 40대 딸인 작가가 10년 걸쳐 만화로 만들어냈다니 그 자체가 위대한 역사가 된다. 이제 작가의 엄마는 90대가 되었고, 이야기를 끌어낸 작가는 50대가 되었겠지. 호호할머니가 된 엄마도 아기였고, 부끄럼 많은 소녀였던 적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자주 잊어버리곤 한다.

 

 

새집에 다시 고양이가 살기 시작한 것처럼 엄마와 나도 다시 힘을 내서 살아보기로 했다. 이제 엄마는 엄마 일, 나는 내 일을 하면 된다. 엄마는 1927년생으로 팔십 년의 삶을 되짚어보고 있고, 나는 그런 엄마를 만화로 그리기 시작했다. 엄마의 고향은 물장수로 유명한 함경남도 북청이다. 38.p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어른들은 아이들을 아주 많이 낳았다. 우리 부모님의 형제도 양쪽 모두 8남매이다. 삼촌, 고모, 이모가 골고루 있다. 우리 엄마는 나를 포함해서 네 명의 딸을 낳았다. 장남인 아빠와 큰딸이었던 엄마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은 지방에서 올라온 친척들이 머물다 떠나갔다. 가깝고 길게는 삼촌들과 이모들, 멀고 짧게는 아빠의 사돈의 팔촌의 동생 등등 까지 말이다. 우리의 할머니들과 엄마들은 이 많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사랑을 나누어 주었을까. 어렸을 때는 우리 가족만 오붓하게 사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어느 덧 시집 간 언니들과 돌아가신 아빠를 빼고 엄마와 나, 동생, 이렇게 세 식구만 남게 되었다.

 

 

  이제 나와 우리 엄마도 작가가 이야기를 시작한 때와 같이 80대와 40대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아주 어렸을 적, 천안이 고향이었던 외갓집 식구들과 전주가 고향인 친가 쪽 삼촌들이 우리 집에서 천안 북일고와 군산상고의 고교야구를 보며 싸우던 모습이 떠올랐다. 둘째 언니 출생신고가 다르게 되어 있어 학교 들어갈 때, 아빠가 동사무소 직원들에게 얼마를 주고 칼로 긁어 고쳤다는 것과 월남전에 가 있는 셋째 외삼촌에게 또 입영통지서가 나왔다는 엄마 얘기는 항상 쌍으로 등장했다. 나이가 들어 좋은 점은 어른들의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낄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 것과 같다고 했지만, 도서관은 너무 작다. 하나의 세상이 사라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만화 곳곳에서 웃음과 눈물이 나지만 내 마음속에 깊은 감동을 준 곳을 꼽으라면 세 장면을 들 수 있다. 제일 먼저 대마씨를 갈아서 만든 국수를 먹고 온 가족이 두둥실 떠오른 장면이다. 부모님과 놋새, 숙자, , 강아지, 삽과 죽부인까지 모든 것이 하늘 높이 둥실 떠서 웃고 있다.

 

  

 

 

! 냉국이 있다! 촌에서는 삼을 키우잖아. 삼씨가 맺히도록 뒀다가 그걸 베어 도리깨질을 해. 그러면 삼씨가 녹두알만한 기 나오거덩. 그걸 볶아서 디딜방아로 찧어. 그걸 첼루 치면 가루가 나와. 그 삼가루를 새암물 질어온 디다 옇고, (오이)를 썰어 옇고 소금 간을 해서 냉국을 풀어. 그걸 먹으면 속이 이상하게 시원해. 삼씨라는 기 먹어서는 아이 될 물건이야. 그걸 먹고 나면 심이 나고, 속이 편안하고 화다분한 기 기분이 얼매나 좋은지 몰라. 123.p

 

 

  이 장면을 읽으며 혼자 깔깔 거리며 웃었다. ‘삼씨라는 기 먹어서는 아이 될 물건이야.’ 정확한 말이다. 가난하고 힘든 그 당시 삶에서 한 번 웃고 넘어갈 수 있는 해프닝이었지만, 먹거리가 부족한 그때, 모든 것이 음식이 되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 너무나 힘든 삶을 살아야 했던 우리 민족의 아픔을 노래한 시인 이용악의 <<그리움>>이란 시와 함께 눈이 내리고 기차가 달리는 장면이다. 그 기차가 달리게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 땅의 사람들이 혹독한 노동에 시달렸을까.

 

 

느릿느릿 밤새워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 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174.p

 

 

  눈이 내리고 기차는 달려가고 작가인 나는 글을 쓰고, 그 시대를 온 몸으로 통과해 온 엄마는 아무것도 모른 척 원래 그랬던 것처럼 자를자를 재봉틀만 돌린다. 교과서에서 배운 몇 줄의 시와 역사는 엄마의 재봉틀 박는 소리로 인해 살아난다. 참 힘든 시간을 살아온 우리의 엄마들은 그렇게 역사가 되고, 자식들을 든든히 떠받치고 있는 사랑이 된다.

 

 

죽을 뻔한 엄마가 다 낫자 너무 좋아서. 동네마다 새로 사논 밭을 엄마 손을 꼭 잡고 도던 기억이 나. 그렇기 좋아하던 엄마였는데222.p

 

  <<내 어머니 이야기>>1권의 맨 마지막 문장이다. 그리고 그림의 두 모녀는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고 끝이 난다. “엄마!!”, “엄마가 그렇게 좋니야? 결혼하면 신랑이 더 좋아. 우리 놋새도 이제 시잡갈 때가 됐구나이.” 그렇게 두 사람이 멀어지고 작가와 놋새였던 엄마가 똑같은 대사를 나눈다. 엄마는 부르는 것만으로도 참 좋고, 그리운 존재이다. 놋새는 그렇게 좋아하는 엄마를 똥개 같은 전쟁 때문에 하루 아침에 잃게 된다. 똥개 같은 전쟁!!

 

 

  1권만 읽었는데 2~4권에서 놋새가 겪어야만 할 아픔과 고통이 저절로 떠올랐다. 살아가다 보면 똥개 같은 일들이 너무 많다. 그래도 엄마는 그 똥개 같은 일들에 지지 않고 살아간다. 그리움은 가슴에 묻고 계속 살아간다. “나 같은 사람을 그린 것도 만화가 되냐?”고 말한 어머니들의 삶은 계속 이어지고, 이 땅의 역사가 되고, 사랑이 되어 그게 뭔지도 모른 나 같은 사람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정말 아름답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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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이야기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9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고봉만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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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무엇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충성할 수 있을까? 자신을 알아주는 한 사람에게 전 생애를 걸고 따르는가 하면 종교적 신념에 따라 세상의 부귀영화를 내려놓고 신의 발자취를 따르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예술, 꿈과 야망에 일생을 걸기도 한다. 주인공 펠리시테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며 사랑한 존재는 오뱅 부인과 그의 가족, 그리고 앵무새 룰루였다. 그들은 펠리시테의 전부였다. 비록 적은 돈의 보수를 받고 하녀의 삶을 살았을지라도 그녀의 헌신은 아름답고 고결하다.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분과 동체이신 귀한 분이시다. 그런 신의 아들이 인간이 되어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와 사람들의 발을 씻겨 주었고, 인간의 몸과 영혼을 구원했으나 외면당하고 배척당했다. 인간들은 신의 아들을 조롱하고 죽였다. 그런 가운데 순전한 영혼의 목소리처럼 펠리시테의 질문이 전해진다.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마구간 짚더미 위에서 태어나고자 하신 그 착한 분을, 사람들은 왜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을까? 26.p

 

 

  펠리시테는 폴이 떠나자 그리워했지만, 비르지니가 성당에 가서 교리 교육을 받는 동안 함께 동행 하며 시중을 든다. 그리고 자신도 비르지니처럼 교리를 외우고 신앙고백을 영적인 환희까지 느낀다. 그런 경험이 그녀를 기쁘게 만들었다. 인간 세상에서는 몰락한 귀족집의 가난한 하녀이지만 신 앞에서는 귀족도 그녀도 별반 다르지 않은 귀한 존재이다. 예수는 귀족인 비르지니뿐만 아니라 가난하고 천한 펠리시테를 위해서도 인간이 되어 죽음을 선택했던 것이다. 신 앞에서는 두 사람 모두 소중한 존재였다.

 

 

  그런 펠리시테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소유라 할 수 있는 앵무새가 생긴다. 그녀는 앵무새에게 룰루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룰루는 자신을 버리고 미국으로 떠나버린 라르소니에르 부인과 오벵 부인에게는 귀찮고 버려진 존재이지만, 펠리시테에게 만큼은 가장 소중하고 귀한 존재이다.

 

 

고독한 그녀에게 룰루는 자식이자 애인이나 마찬가지였다. 48.p

 

 

  살아가는 동안 외롭고 힘들었을 그녀에게 룰루는 위로와 힘이 되어준 존재였다. 그녀의 사랑은 인간을 지나 앵무새에게까지 뻗어 간다. 그리고 사라진 룰루를 찾기 위해 자신의 몸이 병드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중에 룰루가 병에 들어 죽자 박제를 만들어 매일 아침 애도를 넘어 숭배하기까지 이르는데 그만큼 룰루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깊고 뜨거웠다. 다른 사람들 눈에 볼품없고 낡아버린 박제된 룰루였지만, 그녀에게는 한없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인 것이다. 온통 벌레가 슬고, 한쪽 날개가 부러져 있는 초라한 룰루의 모습과 그녀의 모습은 닮아있다. 그러나 룰루는 임시 제단위에 세워졌고, 펠리시테는 그녀의 세상에서 가장 성스럽고 아름다운 순간에 눈을 감는다.

 

 

푸른빛 향연이 펠리시테의 방까지 올라왔다. 그녀는 코를 벌름거리며 신비로운 쾌락에 휩싸인 채 향내음을 맡은 후 눈을 감았다. 그녀의 입술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마치 샘이 말라 없어져가듯. 메아리가 사라지듯. 심장박동이 차츰차츰 약해지다 아주 잦아들었다. 마지막 숨을 내쉴 때, 그녀는 반쯤 열린 하늘에서 그녀의 머리 위를 활공하는 거대한 앵무새 한 마리를 본 것 같았다. 60.p

 

 

  고통 받고 힘겨웠던 삶을 위로하듯 그녀의 마지막은 평안하고 아름다웠다. 하녀로서의 삶은 가난과 고통, 눈물로 이루어진 듯 보이나 마지막 그녀의 모습은 성녀로 느껴졌다. 다만 이것이 귀족이었던 플로베르의 하층민들을 향한 위로였는지 혹은 순종과 교화로서 작용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펠리시테의 모습에서 거짓과 꾸밈이 없는 순수한 인간의 마음을 볼 수 있었다. 작고 초라한 인간이기에 누구라도 사랑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펠리시테가 되고, 룰루가 되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신이 인간에게 불어 넣어준 순박한 마음을 가지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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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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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한지혜의 <<참 괜찮은 눈이 온다 나의 살던 골목에는>>

 

내가 뛰어 놀았던 골목

 

  <<참 괜찮은 눈이 온다 나의 살던 골목에는>>을 읽었을 때 내 마음속에는 참 따뜻한 단어들이 떠올랐다. 골목, , 엄마, 아빠, 떡볶이, 놀이터, 나무, 소풍, 촛불, 광장 뭐 그런 단어들이었다. 작가의 산문이 나의 어린 시절을 소환하고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중 제일 마음에 남는 것은 골목에서 놀던 날과 아빠였다. 어렸을 때 우리 동네 골목은 모든 소식이 모이는 곳이자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차가 다닐 수 있는 큰길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크고 작은 골목들이 많았다. 그 골목 곳곳에는 집이 있었고, 적어도 두 가구 이상 모여 살았으며, 그런 집에는 어김없이 5~10명 정도의 아이들이 있었다. 주인집이나 세를 사는 사람들이나 각 가정의 대소사에 기뻐하고 안타까워 해주는 이웃이었다. 어느 집이나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부모님께 혼나는 소리가 담을 넘었다. 같은 골목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들었으며, 상대방에게 곤란한 내용들은 모른 척 티를 내지 않았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어렸을 때부터 암묵적인 배려를 배웠다.

 

  길 건너 내 친구(아들만 넷이던 집의 셋째였다.) 집 앞에는 골목이라고 말하기엔 쑥스럽지만 10여명 정도의 아이들이 모여서 고무줄 하기에 적당한 공간이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엄청나게 뛰어 놀았다. 우리가 주로 즐겼던 놀이는 당연 고무줄 놀이였다. 세 명만 모여도 개인전으로 고무줄놀이를 했다. 인원이 많을 때는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이 편을 나누어 검은 고무줄을 사이에 두고 목청껏 노래를 부르며 뛰고 또 뛰었다. 그 노래 속 가사에는 이순신도 있고, 통일도 있고, 개나리와 엄마도 있었다. 내 친구는 고무줄을 끊지 않았으나 다른 곳에 가서 놀라고 참견을 했고, 우리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따로 운동을 하지 않았지만 매일 뛰어 놀았던 덕분에 우리들은 건강했고, 무럭무럭 자랐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학원에 다닌다 해도 고작 피아노나 주산 학원 정도였다. 공부하는 시간보다 노는 시간이 더 많이 차지했다. 만약 지금 우리 집 앞에서 동네 아이들이 모여 시끄럽게 뛰어논다면 나는 참아낼 수 있을까. 솔직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나는 눈 한 번 휘두르면 끝이 보이는 넓은 길에서 오히려 막막하다. 꿈마다 내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너무 좁아 담벼락이 어깨를 스치는 바로 그 길이다. 걸을 때마다 길 위에서 길이 그리워 나는 더러 눈물이 나기도 한다. (42.p)

 

 

  그러고 보니 경제적으로 부족하고 불편한 생활을 하였지만 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시간이 내 마음속에 숨어 있다가 가끔 오후 3~4시쯤 태양이 반짝 빛을 발하며 눈앞의 모든 것들을 황금빛으로 비출 때, 진한 그리움을 동반하며 떠오른다. 특별한 대상이나 시절에 대한 것은 아니다. 어떤 날은 서울 사는 사촌오빠들과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외갓집에 갔던 일을 생각나게 했고, 방과 후 집에 먼저 가지 않고 친구네 놀러 갔다가 엄마한테 혼날까봐 걱정하며 돌아오는 날이기도 했다. 가끔 책상에 앉아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고 창밖을 보며 멀리 어디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날 같기도 하다. 그 햇살의 기운과 빛은 여전하다. 내가 뛰어 놀았던 골목은 사라졌다. 작가와 마찬가지로 내가 놀던 곳도 재개발이 되었고, 함께 놀던 친구들도 다른 곳으로 떠나갔다.

 

 

아빠, 사랑하는 우리 아빠

 

 5월에 우리 아빠가 돌아가셨다. 폐렴 때문에 병원에 입원했다가 담낭에 이상 소견이 있어 정밀검사를 받았을 때, 담낭암 말기라는 말을 들었다. 우리 가족은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친할머니가 100세를 앞두고 살아 계셨으며,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도 모두 90대 후반의 나이에 돌아가셨다. 젊은 의사는 만약 우리 아빠가 자기 할아버지라면 항암치료를 하지 말고 드시고 싶은 것 마음껏 드시며,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시라고 말할 것이라고 했다.

 

  아빠는 두 번의 항암 치료를 받으시고 그만 두셨다. 그리고 엄마와 우리 네 자매, 때때로 조카들까지 데리고 맛집을 찾아 다녔다. TV에서 60세를 맞이한 여자 연예인들이 자전거를 타고 남해 여행을 하는 것을 보고 처음으로 우리들에게 저곳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동안 배낭여행이며, 산티아고 순례길까지 모두 걸었던 나는 아빠와 제대로 여행 한 번 가지 못한 것이 죄송했다. 시간은 흘러갔고, 음식을 못 드시게 된 아빠는 한 달 동안 호스피스 병실에 입원해 계시다가 엄마와 봉사하시는 분들이 깨끗하게 목욕을 시킨 다음날 돌아가셨다.

 

…… 내일 당장 어떤 상황이 생긴다 하더라도 오늘 하루의 자존과 존엄과 일상을 잃지 말아야 했다. 환자도 그렇지만, 그 옆을 지키는 가족은 더더욱 그러해야 했다. 웃고 울고, 휴가를 즐기고, 일상을 살아야 했다. 슬픔과 고통은 어떠해야 한다고 당사자도 아닌 타인이 만들어놓은 매뉴얼 따위는 신경쓰지 말아야 했다. (129.p)

 

 

  결혼보다 너 하고 싶은 일 실컷 하며 살라고 말하던, 요즘 젊은이들보다 더 세련되고 앞서갔던 아빠였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 우리는 물론이고 손자들과 카톡으로 대화하려고 밤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연습하고, 스타벅스가 뭐하는 곳인지 궁금해 들어갔다가 주문하다말고 내게 전화를 걸었던 아빠였다. 딸만 넷을 키우면서 보수적인 생각을 버리고 보다 진보적이고 여자들 편이었던 멋진 아빠. 당신에게 시간이 6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러면서도 내게 1년 전부터 약속해 두었던 해외여행을 다녀오라고 말하고, 할머니의 백수 잔치가 끝날 때 까지 견디고 웃음을 잃지 않았던 아빠가 책을 읽는 동안 내내 그리웠다. 오늘 하루의 자존과 존엄과 일상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아빠는 우리 가족을 끝까지 지켜주었고, 그리움만 남기고 떠나셨다.

 

  내가 뛰어놀았던 골목도, 산 같던 아빠도 이젠 없다. 그러나 앞으로 나는 예전보다 조금은 더 열심히 살아갈 것을 안다. 조금은 착한 일도 하고, 불의한 일에 목소리도 내며,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그래도 더 살만하다고 말하며 살아갈 것이다. 물론 문득 보고 싶은 얼굴 때문에 눈물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럴 수 있는 힘은 내가 믿는 신에 대한 믿음과 그리운 시간들, 또 그 시간을 만들어준 사람들, 그것을 간직하고 있는 내 마음 때문이리라. 내 삶에도 참 괜찮은 눈이 왔다가 사라졌다. 그렇지만 또 내릴 것을 안다

 

 

아프고 괴롭고 불안하고 막막한가. 그렇다면 그것은 당신의 삶이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다. 도망치지 마라. 원래 희망은 아프다. 그래서 꽃이 피는 것이다. (28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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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100호 - 2019.가을
문학동네 편집부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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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진은 어렵게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영화감독으로 살아간다. 그녀가 놓지 못하고 있는 감독으로서 더 이상 보여줄 수 있는 그녀만의 이야기가 아직은 없다. 아니 팔 수 있는 것이 없다.

 

미진은 남자 프로그래머의 얼굴을 뜯어봤다. 그녀는 앞에 서 있는 이 사람의 표정을 기억하고 싶었다. …… 이제 더 팔 게 없겠네요.” …… 뭘 팔아요? 미진은 되묻지 못했다. 대신 그를 따라 희미하게 웃었다. 85.p

 

그녀가 계속 팔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미진은 자신이 선택한 삶의 경계선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지만 타협할 수 없기에 힘들게 버티고 있다. 그런 미진의 일상을 따라 그녀가 들려주는 지난 시간을 들여다본다. 얼마나 많이 좌절하고 우울했을까. 무엇이 그녀의 발목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을까. 예수는 사람이 빵으로만 살 수 없다고 했지만 역설적으로 빵이 인간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말해 주었다.

 

미진은 돈을 벌지 않았다. 그녀는 당분간 아무것도 팔지 않기로 했다. 살아가는 데에 그리 큰돈이 들지 않았다. 살아졌다. 86.p

 

실은 영화를 제쳐두고, 어디에서든 일을 한다면 어머니에게 빌붙지 않고 최소한의 사람 노릇을 할 수 있을 터였다. 물론 그것도 뭐든 팔 게 있을 때나 가능할 테지만…… 87.p

 

가난한 예술가는 사람 노릇을 할 수 없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러나 그것은 팔아야 할 것을 더 이상 찾지 못 했을 때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예술가는 가난할 수 있어도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무언가를 찾아내야 하고, 찾아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예술가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자기 자신과 싸워 강해질 수 있어야 한다. 지난 시간 동안 자신도 모르게 쌓아 놓았던 위선과 거짓을 벗어내도록 애쓰지 않으면 안 된다. 진실한 자신과 마주할 수 있을 때까지 싸우고 견디고 이겨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힘들지라도.

 

젊지도 늙지도 않은, 그렇다고 아마츄어도 번듯하게 내세울 수 있는 필모그래피를 쌓은 프로도 아닌 애매한 중간 어디쯤에 서있는 예술가에게 타인과 현실은 냉혹하다. 그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끝까지 견뎌내야 하는 것은 오로지 그들의 몫이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상처받을 것이다. 우리가 사랑했던 아름다움으로부터…… 90.p

 

그래서인지 이 두 개의 문장이 유독 가슴이 와 닿고 아프게 한다. 사람은 각자 타인과 다른 자신만의 고유한 존재이며, 다양한 재능을 갖고 있다. 저마다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나게 만드는 분야도 다르다. 마음을 들뜨게 했던 것을 쫓아가다가 어느 순간 다른 이들과 너무 멀리 왔고,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을 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남아있을까. 그때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계속 가라고 말하고 싶은데 선뜻 입에서 그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상처받을지라도 사랑했던 아름다움이 존재했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될 수 없을까. 태어나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하고, 갖지도 못한 사람들이 더욱 많을 테니까. 그것으로 퉁 치면 안 되는 것일까.

 

나는 아마 내 멋대로 살다가 죽겠지.”

포기하는 기분으로 아무 말이나 중얼거렸는데, 이상하게 힘이 났다.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이 지겨운 것들 중 소중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105.p

 

몽골을 여행했을 때, 태양과 가까운 고산지대라 식물이 양지가 아닌 음지에서 자라는 것을 보았다. 뜨거운 태양이 그것들을 태우기 때문이었다. 의심하지 않았던 상식이 한순간에 깨졌다. 고단하고 지친 일상 속에서 많은 예술가들에게 위로를 받으며 살아왔다. 음지처럼 차갑고 어두운 곳에서도 생명은 힘이 있어 자라게 되어 있다. 그들이 서 있는 자리가 그런 곳일지라도 그들 멋대로 자기답게 살다가 죽어가길 간절히 바란다. 예술가의 삶만큼 모든 이들의 삶도 고단하고 힘이 들긴 마찬가지이니까. 그 말이 힘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문장과 가난한 예술가의 회피할 수 없는 현실, 그럼에도 꿋꿋하게 아무것도 팔지 않고, 아무에게도 밥을 차려주지 않는 인생을 살아 갈 것이라고 말하는 캐릭터를 품은 작품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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