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빌라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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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를 견디게 해준 모든 이름, 사랑

                    여름의 빌라, 사랑 밖의 모든 말들, 시선으로부터,

 

 

1. 여전히 우리가 기다리고 기대하는 것은 사랑 - 여름의 빌라/백수린

 

 

  언젠가 읽었던 그림책 주인공 프레드릭, 귀여운 생쥐 프레드릭은 곧 닥치게 될 추운 겨울을 견디기 위해 자연의 색깔과 소리, 바람의 흔적과 향기 등을 모았다. 내가 해야 할 일도 그런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코로나19로 인해 세상과 단절되고 갑자기 주어진 시간을 견디기 위해 소설을 읽으며 꿈꾸고 상상했다. 거리두기와 멈춤을 반복하면서 춥고 어두운 겨울을 견디고 있는 요즘, 다른 사람들은 지리멸렬한 일상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8편의 단편을 담고 있는 백수린의 여름의 빌라속 인물들은 나이도 처해있는 상황도 다양하지만 나름대로의 사랑을 시작하거나 진행 중에 있다. 사랑 속에는 달콤한 것만 있지 않다. 결혼한 옛 애인을 잊지 못하는 주재원이 있고, 임용되지 못한 채 대학가를 떠돌다가 아내의 친한 친구들과 언쟁을 버리는 대학 강사가 있는가 하면, 어린 딸을 남겨둔 채 이혼을 하고 다른 남자를 따라 미국으로 떠나는 비정한 엄마도 있다. 산다는 것이 고통과 상처주고받기의 연속처럼 느껴진다. 그런가하면 한 동네에 살면서도 앞으로 서로 다른 계층으로 살아가게 될 것을 감지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프랑스에서 혼자 고독한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노년의 여인도 있고, 바쁜 육아와 살림에 지쳐 상실감에 빠진 주부의 아픔도 뒤따른다. 일상을 살아낸다는 것은 어쩌면 평범함과 안온함을 가장한 불안한 줄타기 같은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사랑은 그런 사람들의 일상을 관통하며 각자의 삶을 버티게 해준다. 작가는 유유히 흐르고 있는 시간과 상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삶이 계속 되는 가운데 반짝 하고 빛나게 해 주었던 사랑의 순간을 포착한다. 그래서 겉으로 보여 지는 일상의 반복과 당연한 듯 바쁘게 움직이던 순간에도 가슴 설레며 우리를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던 것 중에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환기 시켜준다. 그러고 보면 사랑도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무엇이 아닌가 싶다. 지금 현재의 상황도 지나고 나면 무엇인가가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할머니는 점점 더 늘어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어떻게 채웠을까?

-예상치 못했던 일이 주는 즐거움. 계획이 어그러진 순간에만 찾아오는 특별한 기쁨. 다 잃은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어느 새 한여름 유성처럼 떨어져 내리던 행복의 찰나들. 그리고 할머니는 일어나서 브뤼니에 씨와 함께 탑 위에 각설탕 하나를 더 쌓았다.

-이별의 순간에야 처음으로 잡은 남자의 주름투성이인 손은 따뜻해서, 할머니는 생각한다. 그것은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던가 하고. 노인의 삶이 사지가 마비된 뇌졸증 환자의 것과 다르지 않다니. 이렇게 살아서, 할머니의 몸은 이렇게 살아서 이 모든 것을 생생히 느끼고 있는데.

- 여름의 빌라/<흑설탕 캔디>중에서

 

 나또한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던 10대를 지나, 풋풋한 첫사랑의 감촉을 느낄 수 있었던 20대도 이미 떠나보낸 지 오래다. 다른 사랑을 꿈꾸었던 30대를 건너 현재에 이르렀지만 사랑에 대한 기대는 식지 않는다. 사람들이 추억하고 꿈꾸는 것은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 속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또다시 찾아올 여러 모양의 사랑일 것이다.

 

 

 

 

 

 

2. 작가는 글로 말하고 독자는 읽기로 응원한다 - 사랑 밖의 모든 말들/김금희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을 읽다보면 문장과 문장 사이 보이지 않는 행간의 여백 속에 작가의 눈물과 한숨, 그리고 더 단단해 지기위한 노력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이 안타까웠지만 또 한편으로는 묵묵히 글을 쓰면서 앞으로 걸어갈 길을 만들어 내는 작가임을 믿고 응원할 수 있었다. 김금희 작가가 그동안 몸으로 체험하고 마음으로 느끼며 사색과 글쓰기로 이만큼 치열하게 걸어주었던 것처럼.

 

 

  올해 나는 김금희 작가의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아팠고, 그녀의 이름으로 나온 책은 대부분 구입해 읽으며 말없이 응원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던 것에 대하여 거절을 표현하고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는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에 시대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흐르는 물줄기를 억지로 막을 수는 없지만,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누군가 용기를 내주어야 한다. 김금희 작가가 아니었다면 인지도 있는 유명한 상이 그런 불합리한 방식으로 계약을 맺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작가들이 전면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보다 자기를 가리고 작품으로 이야기하는 내성적인 직업군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행동한 일에 대한 결과와 파급의 시간을 견디는 것이 매우 힘들었을 것을 느낀다. 그러나 또 그만큼 자신의 삶에 대하여 성찰하고 깊어 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 창작자가 자신의 창작물을 만들어내면서 고유하게 생기는 권리를 저작권이라고 하고, 작가에게 그것은 생계와 자신의 존엄 그리고 이후의 노동을 반복할 수 있는 힘이다.

 

 

- 사랑의 문제가 사랑 이외의 모든 문제를 다루게 되는 것이다.

/사랑 밖의 모든 말들 중에서

 

 

 소설가의 소설이 아닌 산문은 작가의 내면을 드러내는 글이다. 허구의 주인공이 보여주는 세상이 아닌 우리가 함께 살고 겪으며 공유하고 있는 현실의 삶에 대한 생각이 펼쳐지는 글이기 때문에 작가 입장에서는 오히려 소설보다 더 조심스러울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대중 앞에서 벌거벗고 있는 느낌도 들 것 같다. 그럼에도 산문이 주는 감동은 현재 여기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있다.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은 그녀가 소설가로서 소설을 쓰기 위해 소설이란 무엇인지를 나아가 자신은 누구인지를 끈질기게 추적하고 사유했는지 느낄 수 있게 해준다.

 

 

  현재 많은 사람들처럼 작가도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겠구나. 가장 사랑하는 것을 계속 해 나가기 위해 사랑하는 것 이외의 문제로 힘겨워 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길고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 과정이 힘들어도 우리는 각자 그 시간을 견디는 방법을 알고 있다. 사랑하는 것에 대한 끝없는 바람과 그 끈을 놓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지금의 자신을 더 단단하게 해줄 것을.

 

 

-소설의 시간이라는 것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종결을 피하거나 지연시키면서 견뎌야 이야기가 된다. 연속에 대한 신뢰가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버틴다는 감각도 없이 그저 사라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동안 의외의 것에서 삶은 동력을 얻고 이어지며 종결을 피한다. 덩그러니 쓰인 한 문장은 그 하나이외에 언제라도 연속된 문장들이 있음을 지시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나도 계속 쓸 수 있지 않을까.

 / 사랑 밖의 모든 말들 중에서

 

 

  작가가 사라지지 않기 위해 버티는 줄도 모르고 한 단어, 한 문장을 계속 이어나가듯이 우리도 각자의 시간 속에서 삶을 지키고 버티기 위해 오늘도 애를 쓴다. 그 속에서 새로운 동력이 만들어지고 우리도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만들어 낼 것을 믿으면서 말이다. 작가가 글로 계속 쓰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독자가 읽기로 끝까지 응원하듯이.

 

 

 

 

  

3. 강인한 사랑의 힘- 시선으로부터,/정세랑

 

 

 

 나는 동사와 명사 혹은 명사와 고유명사가 겹치는 단어를 좋아한다. 그런 면에서 심시선 여사로부터 시작된 가족의 역사와 끈질기게 이어온 삶에 대한 열정이 마음에 들었다. 소설 속에서 시선의 삶과 목소리는 주로 생전의 인터뷰나 강의, 강연, TV토론, 축사, 편지 등을 통해 전해진다. 시작도 시선의 인터뷰부터이다.

 

 

  진행자와 그녀는 제사 문화에 대해 토론 중이었는데 시선은 제사 문화에 대한 강경한 반대 발언과 함께 자녀들에게도 자신의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시선의 10주기를 맞이하여 그녀의 가족들은 하와이에 가서 딱 한 번 처음이자 마지막 제사를 지내기로 결정한다. 왜 하필 하와이였을까. 하와이는 시선이 6·25때 가족을 잃고, 사진 속 신부가 되어 떠나간 곳이었다. 어린 시선의 삶이 다시 시작된 곳이자 불행과 고통의 불씨가 된 마티아스 마우어를 만나게 된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후손들은 시선을 추억하고 기억할 수 있는 각자의 제수(祭需)들을 준비한다. 하와이와 제사, 모계를 중심으로 한 가족사 등 거시적인 역사와 문화를 개인적인 한 여인의 역사와 함께 묶어 풀어나간 작가의 노력이 빛난다. 맨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은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다.’라고 표현했다.

 

 

  역사는 통계와 수치, 공적인 기록으로 남아 후세에 전해지지만, 감동과 여운은 주지 못한다. 한 사람의 작은 인생 속에 커다란 역사가 담겨있지만 그것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전체 속에 파묻혀 생생하게 전달되지 못한다. 우리가 역사 속 사실을 체온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개인의 삶을 통해서이고, 문학이 감당해야 할 역할이기도 하다. 그것은 사랑을 기반으로 한 인간에 대한 존엄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뿌리를 내린 나무의 가지들은 바람에 흔들리고 떨어져서 사라지지만 다시 그 나무에 거름이 되고 가지가 되어 꽃으로 피어난다. 그것을 각자의 세밀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공감할 수 있다면 지나간 시간을 살다간 사람들과 또 과거가 될 현재 우리의 삶도 슬프지만은 않을 것 같다.

 

 

  소설을 읽는 동안 조금은 달라져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시선의 가문을 이룬 다양한 자녀들의 삶을 통해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던지고 바라보았던 여러 모양의 폭력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서울에서 하와이로, 하와이에서 독일까지 70년에 가까운 시간을 오가며 나약할 것만 같았던 한 여성의 삶이 끊어지지 않고 면면하게 이어져 내려 올 수 있었던 것은 생명력 위에 더해진 강인한 사랑이 밑바탕 되었기 때문이다.

 

 

-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 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시선으로부터, 중에서

 

                              

사랑은 우리가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줄 만큼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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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역사
니콜 크라우스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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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역사>>를 읽을 수 있어서 10월이 의미있는 달이 되었다.

문학의 역할이란 사건이 아니라 인간을 보여주는 것, 그로 인해 숨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쁜 역사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그것 역시 사람에 의해 위로받고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란 역사는 현재에도 끝나지 않았음을, 시대를 넘어 피해자가 또다른 민족이나 타인에게 가해자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해준 작품이었다.

 슬픈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죽음과 노년의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솔직하게 보여주는 레오 거스키와 브루노, 친구의 소설을 표절했다는 죄책감을 죽을 때까지 간직한 즈비 리트비노프,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에 서슴치 않고 당돌한 행동을 이어가는 앨마까지 삶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 인물들과 아름다운 문장들이 끝까지 소설을 읽는데 힘이 되었다.

 좋은 문장이 너무 많아서 다 올릴 수가 없지만, 거의 마지막 부분(354.p)에 나와 있는 짧은 글이 마음에 남는다.

 

 

 

 

 

 그렇다고 내 삶이 거의 끝났다는 것은 아니다. 인생에 관해 가장 인상 깊은 점은 그 변화 능력이다. 어느 날 우리는 사람이었는데 다음날 그들은 우리가 개라고 한다. 처음에는 견디기 힘들었지만, 한참 지나면 그것을 상실로 여기지 않는 법을 터득한다. 심지어 짜릿한 흥분을 느끼며 깨닫는 때도 있다. 변함없이 유지되는 것들이 아무리 적어도 우리는, 달리 적당한 표현이 없어서 '인간으로 살기'라고 칭하는 노력을 여간해서는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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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렌드 무궁화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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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 가는 이때 마시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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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없는 꽃의 삶 피오나 스태퍼드 식물 시리즈
피오나 스태퍼드 지음, 강경이 옮김 / 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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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은 사람들의 마음을 황홀하게 만든다. 아름다운 모양뿐만 아니라 꽃이 가지고 있는 나름의 향기 때문에 한순간 삶의 방향을 바꾸게 하기도 한다. 한때 꽃꽂이에 몰두했던 시기가 있었다. 퇴근 시간 사람들이 가득 탄 버스 안에서 지친 몸을 겨우 다잡으며 손잡이를 잡고 서 있을 때, 프리지아 꽃향기가 스쳐지나갔다. 그 순간 고단하고 힘들었던 육체에 힘이 생기며 눈을 번쩍 뜨이게 했던 경험이 나를 꽃의 세계로 이끌었다. 사람들은 연약하고 아름다운 것을 보면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한편으로는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을 품게 된다. 꽃은 그런 인간의 욕망을 가장 극대화 시키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꽃은 인간의 욕망에 호락호락 응해주지 않는다. 꽃의 속성이 사시사철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우리 곁에 머물러 주지 않는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결국 한 계절 최고의 절정기를 이루다가 사라진다. 아름다움은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처럼 말이다

 

 

 꽃에 관한 많은 책들 중에서 피오나 스태퍼드의 덧없는 꽃의 삶에 눈길이 간 것도 제목 때문이었다. 꽃의 인생을 정확하게 대변해준 제목이다. 그러나 그 덧없는 것을 알게 되는 것도 한순간 찬란하게 피었다가 제 몫을 다하고 사라진 시간이 있어야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꽃처럼 황홀하고 향기로웠던 순간에 함께 했던 사람과 추억을 가슴속에 간직하며 때때로 힘겹고 어려운 일상을 견디며 살아간다. 저자가 나는 이파리와 꽃잎으로 내 삶의 마디마디를 가늠할 수 있다.”고 고백한 것처럼 우리 또한 그러하다. 어린 시절 그녀의 가족이 어디를 가든지 꽃과 함께 한 것처럼 우리도 삶의 한 페이지마다 꽃과 향기가 함께 하였을 것이다. 소유하지 않았어도 내가 버스 안에서 프리지아 향기를 맡고 힘을 냈던 것처럼 말이다.

 

 

 

  저자가 언급한 많은 꽃 중에서 자신의 추억과 연결된 꽃을 찾아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재미중 하나이다. 영국 곳곳 마을 길가의 지루한 초봄 풍경에 수선화가 드문드문 반짝이기 시작해 결국 도로변이 선명한 레몬빛으로 타오른다.’는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제주도의 대정 추사 유배지에 피어있던 수선화를 생각했다. 제주도에서 쓸쓸한 유배생활을 했던 추사 김정희에게 위한을 주었던 수선화는 내가 이곳을 찾았을 때도 하얀 꽃잎 속에 노란 알전구 같은 꽃잎을 품고 피어 있었다. 초록색 줄기와 잎사귀가 안정감 있게 꽃잎을 바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든든해 보였다. 무엇보다 향기가 짙어서 꽃무리 옆을 지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꽃들은 모습뿐만 아니라 향기로 말을 건다. 나는 수선화 때문에 제주도의 추사 유배지를 기억한다.

 

 

  장미도 마찬가지이다. 장미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동시에 상징적 의미가 가득한 꽃이라 기록된 의미에 맞게 사용하기보다 개인적인 경험과 연결시켜 자신만의 의미를 두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장미하면 고등학교 1학년 때, 여름방학이 끝나고 아침 일찍 자율학습 시간에 맞춰 등교한 후, 교실 책상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던 일이 생각난다. 우리 반 교실이 1층에 있었는데 창밖 화단에 주먹보다 훨씬 컸던 붉은 장미들과 눈빛을 교환했었다. 아직 이슬이 채 사라지지 않은 장미꽃은 아름답다기보다 씩씩하고 당당해 보였다. 세상이 흉내 낼 수 없는 붉은빛을 머금고 아침을 시작하는 우리에게 힘을 내라고 응원하는 것 같았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고 장미꽃이 붉게 물들 때쯤이면 반팔 티셔츠 아래로 차가운 아침 공기가 스미면서 좁쌀보다 더 작은 소름이 돋았다. 나는 그때의 차가운 기운이 좋았다. 지금도 가끔 여름이 끝나갈 때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차가운 기운을 느끼고 싶어질 때가 있다

 

 

 작년 봄에 돌아가신 아버지 장례식에 진한 꽃향기가 가득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향냄새가 아닌 꽃향기로 아버지를 기억하게 되었다. 한식날 쯤 사촌 동생들이 깨끗하게 벌초를 한 선산을 찾았을 때, 아버지 산소에는 엉겅퀴가 자리를 잡고 보라색 꽃을 피우고 있었다. 뜯어낼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오후 햇살이 구름에 가려 그늘이 지면서 모처럼 아빠 산소 앞에서 엄마, 언니들과 조카랑 웃으며 지난 추억을 이야기했다. 꽃의 일생이 덧없는 것처럼 인간의 인생도 덧없는 것 같지만 추억을 나누고 함께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행복했다. 꽃들도 그러할 것 같다. 추상적인 삶이라는 커다란 시간 속에 꽃은 우리에게 다가와 각자만의 또 다른 꽃이 되어 주었다. 그것 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아름다워질 수 있다.

 

 

https://blog.naver.com/goodivy0311/222112969808

 

#덧없는꽃의삶 #출판사클#꽃책#식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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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0
오라시오 키로가 지음, 엄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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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제목대로 키로가의 작품 속에는 사랑, 광기, 죽음으로 가득하다.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섬뜩한 단어들이 마치 한 몸처럼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소름끼친다. 그러나 사랑과 광기는 누구나 한번은 마주대할 혹은 마주하고 싶은 매혹적인 단어이며, 죽음이란 우리가 결국 맞이하게 될 최종 목적지가 아닌가. ‘오라시오 키로가라는 작가의 이름이 낯설었던 것과 맞물려 기괴하고 묘한 분위기를 풍겼던 그의 작품들도 생소했다. 세밀하고 복작한 감정과 음침한 분위기가 작품마다 스며들었고, 그것은 내가 이 소설을 읽어 내려가는 데 원동력이 되었다. 어두운 음지 속에서 가느다랗지만 강렬한 한 줄기 빛이 세어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라시오 키로가가 그려내는 사랑은 대부분 힘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소설 속 연인들이 나누는 사랑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읽고 느끼지 않으면 다가서기 힘들다. <뇌막염 환자와 그녀를 따라다니는 그림자>에서 사랑이 이루어졌다고 하나 그 과정은 이해하기 힘들고 복잡하다. 사랑만큼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이 또 있을까. 40도가 넘는 고열 속에서 어떻게 한 사랑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그 사람의 손을 잡고 강렬한 눈빛을 보낼 수 있는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왔던 것일까. 사랑은 알 수 없는 경로로 찾아와 뿌리내리고 마음속에서 점점 커지게 된다. 마치 병처럼. <사랑의 계절>의 네벨과 리디아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리디아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봄날 꽃처럼 금방 사라졌고, 두 사람의 순수한 사랑은 서로의 가슴속에만 남게 된다. <엘 솔리타리오>에서는 사랑하는 아내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보석을 세공하는 남편, 주문받은 다이아몬드를 탐낸 아내의 욕망을 통해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은 집착과 광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다른 의미에서 광기나 저주일 수 있다.

 

 

  사랑과 함께 소설의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은 광기이다. <목 잘린 닭>에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백치로 태어난 네 명의 아들들을 생각하게 한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하루 종일 벤치에 앉아 담벼락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들이 바라보는 담벼락 너머에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었을까. 오랜 시간 조용히 앉아 있기만 했던 그들 가슴속에 한 순간 광기를 심어준 것은 하녀의 손에 의해 붉은 피를 흘리며 잘려지고 있던 닭들의 목이었다. 하얀 머릿속에 붉은 피가 솟아오르는 이미지가 잔인한 불행을 불러올 것만 같다. 그런가 하면 <사람들을 자살하게 만드는 배>에서 망망대해에 혼자 떠다니는 유령선의 기운은 음산한 기운을 일으킨다. 사람 내부에서 발현된 광기가 아니라 자연이 뿜어내는 견딜 수 없는 고요함의 광기 같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설명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하다. 그 일들이 우리 주위를 유유히 떠다니고 있지만 바쁜 현대인들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다양한 모습을 하고 찾아온 사랑과 광기의 두 손이 우리의 목을 조르고 죽음으로 끌고 갈 수도 있다.

 

 

  <멘수들>의 카예와 포델레이는 벌목장에서 계약을 맺고 고된 노동을 하는 인부이다. 힘든 노동을 한 후 받은 돈을 품고 포사다스에 가서 며칠 동안 여자와 환락, 사치를 벌이다가 다시 끌려가듯 벌목장으로 돌아간다. 그들이 보여주는 일상을 보면 개미지옥 같다. 값싼 임금을 받고 노예처럼 계약을 맺고 노동에 시달리다가 다시 짧은 환락을 맛보고 또다시 끌려 올라가는 삶의 반복. 그 속에서 병에 걸려도 병원에 가기보다 싸구려 약에 기대 계약된 노동을 채워야 한다. 주인들 몰래 도망도 가보았지만 소용이 없다. 그렇게 시간이 쌓이게 되고, 희망을 갖지 못하게 되면 멘수들 또한 병든 몸을 끌고 벌목장으로 돌아온다. 다시 주인들과 계약을 하고 배를 타고 환락의 거리로 기어들어가는 것이 반복될 뿐이다. 탈출구가 없다. 노역과 굴종과 짧게 주어지는 쾌락과 다시 고된 노동이 기다리는 벌목장의 반복이다. 이곳에서 탈출하는 것은 결국 죽음뿐이다.

 

 

  삶을 직시하지 못하고 바쁘게 살다 보면 진실을 외면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다 문득 현실 너머 일그러지고 추악하게 변해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고 경악하게 되는데 키로가가 그려낸 사랑 광기 죽음은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싶어한 공포의 다른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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