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0
오라시오 키로가 지음, 엄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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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제목대로 키로가의 작품 속에는 사랑, 광기, 죽음으로 가득하다.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섬뜩한 단어들이 마치 한 몸처럼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소름끼친다. 그러나 사랑과 광기는 누구나 한번은 마주대할 혹은 마주하고 싶은 매혹적인 단어이며, 죽음이란 우리가 결국 맞이하게 될 최종 목적지가 아닌가. ‘오라시오 키로가라는 작가의 이름이 낯설었던 것과 맞물려 기괴하고 묘한 분위기를 풍겼던 그의 작품들도 생소했다. 세밀하고 복작한 감정과 음침한 분위기가 작품마다 스며들었고, 그것은 내가 이 소설을 읽어 내려가는 데 원동력이 되었다. 어두운 음지 속에서 가느다랗지만 강렬한 한 줄기 빛이 세어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라시오 키로가가 그려내는 사랑은 대부분 힘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소설 속 연인들이 나누는 사랑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읽고 느끼지 않으면 다가서기 힘들다. <뇌막염 환자와 그녀를 따라다니는 그림자>에서 사랑이 이루어졌다고 하나 그 과정은 이해하기 힘들고 복잡하다. 사랑만큼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이 또 있을까. 40도가 넘는 고열 속에서 어떻게 한 사랑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그 사람의 손을 잡고 강렬한 눈빛을 보낼 수 있는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왔던 것일까. 사랑은 알 수 없는 경로로 찾아와 뿌리내리고 마음속에서 점점 커지게 된다. 마치 병처럼. <사랑의 계절>의 네벨과 리디아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리디아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봄날 꽃처럼 금방 사라졌고, 두 사람의 순수한 사랑은 서로의 가슴속에만 남게 된다. <엘 솔리타리오>에서는 사랑하는 아내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보석을 세공하는 남편, 주문받은 다이아몬드를 탐낸 아내의 욕망을 통해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은 집착과 광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다른 의미에서 광기나 저주일 수 있다.

 

 

  사랑과 함께 소설의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은 광기이다. <목 잘린 닭>에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백치로 태어난 네 명의 아들들을 생각하게 한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하루 종일 벤치에 앉아 담벼락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들이 바라보는 담벼락 너머에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었을까. 오랜 시간 조용히 앉아 있기만 했던 그들 가슴속에 한 순간 광기를 심어준 것은 하녀의 손에 의해 붉은 피를 흘리며 잘려지고 있던 닭들의 목이었다. 하얀 머릿속에 붉은 피가 솟아오르는 이미지가 잔인한 불행을 불러올 것만 같다. 그런가 하면 <사람들을 자살하게 만드는 배>에서 망망대해에 혼자 떠다니는 유령선의 기운은 음산한 기운을 일으킨다. 사람 내부에서 발현된 광기가 아니라 자연이 뿜어내는 견딜 수 없는 고요함의 광기 같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설명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하다. 그 일들이 우리 주위를 유유히 떠다니고 있지만 바쁜 현대인들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다양한 모습을 하고 찾아온 사랑과 광기의 두 손이 우리의 목을 조르고 죽음으로 끌고 갈 수도 있다.

 

 

  <멘수들>의 카예와 포델레이는 벌목장에서 계약을 맺고 고된 노동을 하는 인부이다. 힘든 노동을 한 후 받은 돈을 품고 포사다스에 가서 며칠 동안 여자와 환락, 사치를 벌이다가 다시 끌려가듯 벌목장으로 돌아간다. 그들이 보여주는 일상을 보면 개미지옥 같다. 값싼 임금을 받고 노예처럼 계약을 맺고 노동에 시달리다가 다시 짧은 환락을 맛보고 또다시 끌려 올라가는 삶의 반복. 그 속에서 병에 걸려도 병원에 가기보다 싸구려 약에 기대 계약된 노동을 채워야 한다. 주인들 몰래 도망도 가보았지만 소용이 없다. 그렇게 시간이 쌓이게 되고, 희망을 갖지 못하게 되면 멘수들 또한 병든 몸을 끌고 벌목장으로 돌아온다. 다시 주인들과 계약을 하고 배를 타고 환락의 거리로 기어들어가는 것이 반복될 뿐이다. 탈출구가 없다. 노역과 굴종과 짧게 주어지는 쾌락과 다시 고된 노동이 기다리는 벌목장의 반복이다. 이곳에서 탈출하는 것은 결국 죽음뿐이다.

 

 

  삶을 직시하지 못하고 바쁘게 살다 보면 진실을 외면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다 문득 현실 너머 일그러지고 추악하게 변해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고 경악하게 되는데 키로가가 그려낸 사랑 광기 죽음은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싶어한 공포의 다른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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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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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를 향해 가는 사회에 던진 희망의 메시지

                                  조지 오웰의 1984

 

 

 

 

  조지 오웰의 소설 1984화창하지만 쌀쌀한 4월의 어느 날이었고, 시계는 13시를 치고 있었다.’로 시작한다. 주인공 윈스턴은 무엇을 하기 위해 그날의 날씨와 시간을 제일 먼저 내세웠을까. 바로 일기 쓰기였다. 집안에서까지 개인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 당하는 가운데 텔레스크린의 눈을 피해 그는 자신의 감정을 일기 속에 담으려 애썼다. 초등학교 시절 내가 가장 하기 싫어했던 숙제가 일기 쓰기였지만, 선생님이 마지막에 달아 주었던 문장들이 좋아서 계속 썼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나는 그 문장들을 통해 선생님과 나만의 은밀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일기 쓰기는 가장 사적인 정신 활동으로 자기고백과 자아성찰이 이루어지는 고차원적인 행위이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삶의 흔적을 남기고 힘을 구축하려는 글쓰기는 인간의 본능적인 행동이다. 당은 과거보다 현재가 더 풍요로워졌으며, 전쟁은 늘 승리한다고 말하지만, 그 주장과 현실 사이에 커다란 괴리감을 느낀 윈스턴은 소극적인 저항으로 일기 쓰기를 시작한다. 그것은 목숨을 건 행동이었다. 소설 속 영국사회주의(영사)의 당과 빅 브라더는 텔레스크린, 마이크로칩, 사상경찰 등을 내세워 모든 것을 감시하고 통제한다. 당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침실 깊숙한 곳의 비밀은 자녀들을 통하여 고발하게 만든다. 개인의 모든 것을 철저하게 통제하려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사색을 하며, 글을 쓰고,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나아가 당과 반대편에 설 것을 맹세한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아주 작은 희망을 걸고 통제 사회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인상 깊으면서도 두려웠던 것은 언어를 없애고 줄이는 일이었다. 풍부한 언어는 사고체계를 조작하고 왜곡하는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낱말들을 매일 같이 수십 개 혹은 수백 개씩 폐기하고 있는 거야. 언어를 뼈만 남기고 깎아 내는 거지. 11판에는 2050년 이전에 없어질 낱말은 한 가지도 수록하지 않았다네. …… 말을 없앤다는 건 멋진 일이야. 물론 제일 쓰레기 같은 건 동사와 형용사들이지만.

 

 

  단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인간의 사고의 폭을 좁히고, 지혜롭지 못하게 우매한 인간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 ‘동사란 무엇인가. 우리가 생각하고 활동하며 무언가를 추진할 수 있는 힘이다. 사람은 먼저 어떻게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 뒤,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다. 그 출발선이 동사이다.

 

 

 ‘걷고 싶다’, ‘공부하다’, ‘뛰다’, ‘먹다등등 동사를 수반하여 움직이고 이루고 성취한다. 만약에 언어에서 동사를 최대한 줄이거나 버리게 된다면 우리는 로봇이나 기계에 불과하다. 파워버튼을 누르고 끌 때까지 한두 가지 일만 반복하는 인간기계 말이다.

 

 

  ‘형용사도 마찬가지이다. 형용사는 건조한 세상에 활기를 불어 넣어주는 품사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단어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자연과 사랑, 감정 등 사람에 대하여 생기를 머금고 아름답고 풍요롭게 표현해 줄 수 있는 것은 형용사가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모든 사물과 자연 속에서 각각의 색깔을 빼고, 회색 도시로 이미지화 된 것은 형용사를 빼고, 언어의 확장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자유란 개념이 없어진 세상에서 자유는 굴종이란 슬로건이 있을 수 있을까? 사랑이란 단어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우리가 감정을 무엇으로 표현하고 확장시킬 수 있을지 두렵고 무섭다. 당은 사람들의 성본능을 말살시키려 했으며, 만약 말살되지 않으면 그때는 그것을 왜곡하거나 추한 것으로 만들려고 했다. 인간의 본능까지 조작하려는 세상이 두렵다.

 

 

  조지 오웰은동물농장을 통해 공산주의에 대한 환상을 경고하며, 스탈린 체제의 공포와 억압을 풍자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6, 피를 토하며 온 힘을 다해1984를 완성했다. 그는 소설 속에서 혹시 도래할지도 모를 미래 사회의 국민 지배 감시 환경에 대해 경고한다. 그가 상상력으로 써내려간 미래 사회는 권력의 장악과 통제 시스템 속에서 끔찍하게 살아가야만 하는 세상에 대해 그 또한 두려움과 섬뜩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2020년을 살고 있는 나도 그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몸의 모든 감각으로 느끼고 있다.

 

 

  현재 내가 걸어 다니는 거리와 골목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CCTV와 자동차들의 블랙박스는 그나마 통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감시 시스템이다. 나도 모르게 찍히는 사진이라 동영상, SNS에 올라간 사진의 도용과 개인번호의 유출은 무방비 된 삶 속에 어떤 위협이 될지 모른다. 인간의 좋은 의도는 과학의 비인간성과 비윤리적인 팽창 안에서 점점 처음 의도와 다르게 변질되어 간다. 코로나 19바이러스로 인한 휴대폰 프로그램은 사생활 침해 논란을 끊임없이 일으키고 있다.

 

 

  그렇다고 불안과 두려움 속에 하소연과 불평만을 늘어놓을 수 없다. 조지 오웰은1984을 통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국가의 지배 권력이 개인의 자유보다 우선 될 수 있을까.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될 때 무조건 복종해야 할까 저항하고 질문해야 할까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권력층에 대한 국가 정책과 사회가 흘러가는 방향에 대해 깨어 있으며, 각자의 자리에서 지혜를 추구하는지,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자유의지와 감정에 대해 마음껏 표현하고 제대로 느낄 수 있는지 우리는 생각하고 해답을 찾아가야 한다

 

 

 어쩌면 각자의 가장 나약한 부분이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끝까지 생각하고 고민하며, 행동하는 것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소중한 자기 자신을 지키고 삶을 향유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면 전쟁은 평화가 아니라 끝없는 고통이자 죽음이며, 자유는 굴종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숭고한 가치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무지가 힘이 아니라 지혜가 힘이라는 것을, 무지는 곧 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지혜롭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할 책임이 있다. 1984를 읽으며 우리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다고, 시간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간절한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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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법칙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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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이 있어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편혜영의 선의 법칙

 

 

 

 편혜영의 선의 법칙을 읽었을 때, 제일 먼저 눈이 간 것은 표지였다. 하얀 바탕에 감고 있는 한 쪽 눈. 짙은 속눈썹들이 가지런히 뻗어있고 그 아래로 눈물을 흘리듯 선의 법칙이란 제목과 함께 삶은 언제나 상상 이상으로 깊었다. 어느 바닥까지 내려 갈 수 있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라는 두 개의 문장이 쓰여 있었다. 가느다란 속눈썹도 나란히 세로로 놓인 두 문장도 선()처럼 느껴졌다. 사전을 찾아보니 의외로 선()의 의미가 다양했다. 그 중 가장 마음에 남은 것은 다른 것과 구별되는 일정한 한계나 그 한계를 나타내는 기준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가슴에 와 닿았다.

 

 

  소설은 윤세오와 신기정에게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이 마치 하나의 실처럼 엉키고 뭉치다가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지면서 시작되고 진행된다. 사람들은 자기만의 선을 그어놓고 넘어 오지 말라고, 넘어 올 거라면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외치는 것 같다. 그러나 마음대로 다른 사람들의 영역으로 넘어 간 사람들은 서로에게 상처와 고통을 주고 끊어지다가 사라진다.

 

 

어떤 일이 벌어지기까지 여러 가지 일들이 얽힌다고 생각한 것은.

윤세오도 그렇게 생각했다. 한 가지 일이 아니라 몇 가지 일이 연쇄되어 아빠와 157번지에 나쁜 운수를 구축해나갔고 그 결과로 사고가 일어났다.’ (44~45)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타인과 엮이고, 다양한 인연을 맺으며 살아간다. 그 인연들이 삶을 지탱해주는 안전망 역할을 해 줄때도 있지만, 때로는 불행의 길로 끌고 가는 앞잡이 노릇을 하기도 한다. 어떻게 삶의 함정에 빠졌는지 알 수 없어 타인을 원망하지만 결국 그것은 자신이 결정한 일이다. 이렇게 우리가 살아가는 길에는 너무나 힘겹고 암담한 일들이 곳곳에 놓여있다. 피하고 싶고 도와달라고 외치고도 싶지만, 쉽게 손을 내밀수도 잡아 줄 수도 없다. 그 과정 속에서 어떤 사람은 삶을 포기하고, 어떤 이들은 그럼에도 삶을 계속 해 나간다.

 

 

무엇이 동생은 살아남는 데 실패하게 하고 윤세오와 부이는 성공하게 했을까. 어떤 사람에게는 절망이 삶의 끝이 되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어째서 절망이 또다른 시작이나 그저 일상이 되는 것일까. (208)

    

 

 그들 또한 희망이 있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포기한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계속 살아간다고 해서 나아지거나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삶을 선택하고 살아간다. 나 또한 너무 힘들어 못 살 것 같은 상황이라 말하는 이들에게 아직 포기하지 말고 살아보라고 말하고 싶다. 긴 인생의 여정 속에서 우리들에게 가해지는 불행과 고통이 애가 끊어질 것 같은 아픔을 겪게 한다고 해도 끝까지 가보자고 말하고 싶다. 그것 말고는 방법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선의 법칙은 이미 암담하고 슬픈 상황 속에 처해 있거나 그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전체를 엮어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소설을 읽는 동안 답답하고 마음이 무거웠지만 그래도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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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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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리를 내린 나무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

 

 

  

  비가 쏟아지던 오후, 잡혀있던 약속이 취소되었다. 앞 시간에 다른 일을 보고 카페에 도착한 나는 그냥 집에 돌아가기 싫었다. 가방 안에는 보라색 표지의 파란색 보석이 박혀 있는 것 같은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가 들어 있었다. 책을 펼치니 심시선 가계도가 나왔다. , 가족사 소설이구나. 두 번의 결혼 이력과 그 안에서 뻗어 나온 3대까지의 후손들을 보며, 세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부계가 아닌 모계를 중심으로 펼쳐진 가계도도 좋았다. 나는 동사와 명사 혹은 명사와 고유명사가 겹치는 단어를 좋아한다. 그런 면에서도 이 소설은 마음에 와 닿았다. ‘시선이란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자신이 살아온 삶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는지 문장들을 따라가면서 알고 싶어졌다. 그리고 나는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집에 가지 못했다.

 

 

  소설 속에서 시선의 삶과 목소리는 주로 생전의 인터뷰나 강의, 강연, TV토론, 축사, 편지 등을 통해 전해진다. 시작도 시선의 인터뷰부터이다. 진행자와 그녀는 제사 문화에 대해 토론 중이었는데 시선은 제사 문화에 대한 강경한 반대 발언과 더불어 자녀들에게도 자신 사후에 절대로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그녀의 자녀들은 시선의 10주기를 맞이하여 엄마의 당부를 어기고 하와이에 가서 딱 한 번 처음이자 마지막 제사를 지내기로 결정한다. 왜 하필 하와이일까. 하와이는 시선이 6·25때 가족을 잃고, 마지막 사진 신부로 떠났던 곳이다. 시선의 삶이 다시 시작된 곳이자 불행과 고통의 불씨가 된 마티아스 마우어를 만나게 된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후손들은 시선을 추억하고 기억할 수 있는 각자의 제수(祭需)들을 준비한다. 하와이와 제사, 모계를 중심으로 한 가족사 등 커다란 역사와 문화 속에 작은 여인과 그의 역사를 하나로 묶어 풀어나간 작가의 노력이 빛난다. 작가는 맨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은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다.’라고 표현했다.

 

 

  소설을 읽으며 나는 제사(祭祀)문화에 대해 생각했다. 국어사전에 제사란 신령에게 음식을 바치며 기원을 드리거나 죽은 이를 추모하는 의식을 지칭하는 용어라고 나와 있다. 우리에게는 주로 죽은 이를 추모하는 의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쪽인데  이 명사가 ‘~하다와 만나면 타동사나 자동사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타인을 위해 혹은 타인에 의해서 하는 것과 자신을 위해, 자신에 의해서 하게 되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나는 그것을 올 봄에 경험했다.

 

 

  개인적으로 이번 5월, 작년에 돌아가신 아빠의 첫 제사를 지냈다. 참고로 우리 아빠는 집안의 장남이었고, 딸만 넷을 두었다. 부모님과 달리 기독교를 믿는 우리 자매들에게 아빠는 할아버지 제사를 지낼 때도 절하기를 강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할아버지보다 음식을 차리는 엄마를 생각해서 설거지 정도를 도왔을 뿐이다. 40년대 생인 엄마에게는 며느리로서 의무감이 더 컸을 것이다. 그러나 아빠의 1주기를 지낼 때 엄마와 우리 네 자매는 그렇지 않았다. 엄마를 도와 생전에 아빠가 즐겨 드셨던 음식을 손수 준비하면서 지난 추억을 이야기하다가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생전에 아빠 제삿날 모두 모여서 너희 방식대로 기도하며 우애 있게 살라던 유언을 우리는 즐겁게 지켰다.

 

 

 제사는 자주 만나고 싶어도 그렇지 못하는 가족이나 친척들이 고인을 통해 한 자리에 모여서 지난 추억을 이야기하고, 친교를 가지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을 통해 가족의 결속력은 강해지고, 고인과의 추억은 애도가 된다. 그러니 전통과 풍습으로 묶어 놓은 채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한쪽에만 물질과 노동을 강요하는 제사문화는 고통과 갈등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 우스운 소리로 자기 부모의 제사는 자기가 지내는 걸로라는 말이 생겨난 것도 그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남성들보다 여성들에게 더 치우쳤던 문제였기에 여성중심의 서사로 소설이 진행된 것이 더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 무조건 제사문화를 비판하기에 앞서 보다 다양한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소설속 인물들도 엄마이자 며느리, 장모, 외할머니인 시선과의 추억을 생각하고, 그녀를 애도할 것들을 찾아 나선다. 그것은 음식이기도 했고,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무엇이기도 했으며, 시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의지의 확인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시선과의 추억을 통해 자신들의 지난 시간을 떠올리고 움직이며 즐거워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가족들을 마주하면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고통의 사건들을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했으며, 시선의 과거 때문에 다양한 비난과 비웃음을 견디어야 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가족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결속력이 되었다.

 

 

 통계와 수치, 교과서 속의 기록으로 남아있는 역사는 우리에게 사실을 알려줄 수는 있지만, 여운은 주지 못한다. 우리가 역사 속 사실을 체온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개인의 삶을 통해서이다. 그것은 역사책이 줄 수 없는 부분이며, 문학이 감당해야 할 역할이기도 하다.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 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331.p

                                                                 

 

 

 한 사람의 작은 인생 속에 커다란 역사가 담겨있다. 뿌리를 내린 나무의 가지들은 바람에 흔들리고 떨어져서 사라지지만 다시 그 나무에 거름이 되고 가지가 되어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그것을 각자의 세밀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공감할 수 있다면 지나간 시간을 살다간 사람들과 또 과거가 될 현재 우리의 삶도 슬프지만은 않을 것 같다.

 

 

 정세랑 작가의 소설은 재미있다. 무엇보다 소설을 펼치고 읽기 시작하면 놓지 않게 만든다. 그녀가 만들어 놓은 세계 속으로 깊이 쏘옥 들어갔다가 나오면 조금 부끄러워질 때도 있다. 그 세계를 통과하기 전의 나와 그 후의 나는 조금 달라져 있는 것도 같다. 나를 포함하여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고 바라보았던 시선 속에 많은 폭력이 담겨 있다는 것도 드물게 깨닫기도 하고 말이다. 서울에서 하와이로, 하와이에서 독일까지 펼쳤다가 접었다가 하면서 70년에 가까운 시간을 오가게 한 그녀의 소설을 읽으며, 앞으로 나올 소설들에 기대감이 들었다. 정세랑 작가의 소설이 계속 점점 깊어지고 아름다워지면서도 재미있어지기를 바란다. 계속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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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강화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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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단편들이 많고, 보급형으로 착한 가격의 책이라 좋아하고 매년 구입하는 책이다.
올해는 김봉곤의 《그런, 생활》로 인한 문졔가 터져나왔고, 작가와 윤리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개인과의 사적인 대화를 그대로 소설속에 집어넣은 것은 재능보다 앞선 양심과 작가로서의 자존심을 내버린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독자들은 물론이고 함께 수록된 작품의 작가들에게도 큰민폐를 끼친, 오점을 남긴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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