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그리는 여자들 - 여성 예술가는 자신을 어떻게 보여주는가
프랜시스 보르젤로 지음, 주은정 옮김 / 아트북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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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에 대한 책을 읽으며 감동받은 것이 참 오랫만이다. 미술을 좋아하기 때문에 가볍게 선택했다가 읽는 내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부딪쳤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혜택들이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지금도 '여성'이라는 프레임에서 여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기에 각 분야의 여성들이 어떻게 연대하고 힘겨운 자기만의 싸움을 이어왔는지 되돌아 볼 수 있는 책이었다.


 자화상이란 화가 자신이 스스로 그린 자기의 초상화이다. 타인이 아닌 자신의 얼굴을 그릴 때 작가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그속에 담겨진 수많은 욕망들이 한편의 그림으로 보여지는 것이 신기하다. 자세와 표정, 자신이 들고 있는 도구, 그리고 그림 속 배경을 무기삼아 '나는 이런 사람이다. 이런 삶을 살고 싶고,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여성 화가들의 끊임없는 도전은 시대의 무지와 편견, 체제와 제도를 깨고 계속 발전해 나갔다. 인간의 본성을 권력과 전통이라는 굴레로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시대와 권력은 여성들의 미술계 진입을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고 입지를 다져갔다. 그것이 개인적인 싸움이었든 아니든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고, 고정관념을 깨는 발판이 되었을 것이다. 언제나 선구적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게 바톤을 이어받은 다음 주자들은 그것을 자양분 삼아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유딧 레이스터르의 자화상은 '내게 세상이 무엇이라고 떠들든 나는 내가 원하는 세계를 걸어갈 것이다.'라고 말하며 당당하면서도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좋다. 그녀가 캠퍼스 속에 그린 악공의 그림도 익살스러움과 함께 세상을 비웃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런 여성의 자화상은 단순히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서 시대를 뛰어넘어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우리가 잘 아는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은 자기 성찰과 공개적인 발언의 자유, 자화상 연작 등을 하나로 묶어서 보여준다. 그녀의 모든 작품은 자화상이자 고통과 열정 가득한 삶의 기록이다.(215.p) 프리다 칼로 이후 아름다운 것만을 그리는 것에서 벗어나 삶을 뒤흔드는 사건들을 자화상으로 표현하며 그것을 극복해 나가려는 의지를 다졌다. 아름다운 것만이 아니라 고통도 자화상의 주제가 되었고, 그것은 여성들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메시지도 되었다.

 


'이 그림은 두려움, 도시의 밤과 관련된 여성의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그라피티를 연상시키는 채색된 흔적에는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유기된 공공장소에 대한 암시와 더불어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머리 위치의 변화에 의해 야기되는 긴장감과 혼란, 위협은 이 작품을 보다 함축적인 것으로 만든다.'(257.p)


 나는' 수전 힐러의 <한밤중, 유스턴>1983년' 그림을 보는 순간 자연스럽게 '강남역 화장실 사건'을 떠올렸다. 그 당시 많은 남성들이 억지 혹은 우연적 사고에 대한 페미니즘적 대응이라고 말했을 때 느꼈던 공포도 함께 말이다. 그런 여성의 불안 또한 자화상의 주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시민들의 생각을 모으고,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 우리가 살고 싶은 사회는 어떤 곳인지 다시 공론화할 수 있게까지 나아가게 한다. 그것은 예술의 또다른 기능이자 역할일 것이다.


 

 이 글을 옮긴 역자는 '자화상은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해 그려지는 것일까?', '자신의 얼굴을 선택하고 관찰하고 그림이나 사진, 조각 등으로 해석해 옮기는 행위의 밑바탕에는 어떤 동기가 놓여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품고 이 책을 따라갔다고 한다. 나 또한 책을 읽는 내내 그런 물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자신을 보여준다는 것은 내가 말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것을 말하는 행위의 모습이니까. 끊임없이 내가 누구인지를 묻는 것,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 과정임을 <자화상 그리는 여자들>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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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새버섯치즈빵
시간이 여유로운 날 간편한 마음으로 만들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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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이 아주 없는 건 아니잖아
황인숙 지음 / 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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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반갑고 그리운 그곳 해방촌

 

우연히 읽게 된 산문집에서 나의 어릴 적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동네가 나왔다. 여전히 사랑하는 친구들과 이웃들이 살고 있는 동네 해방촌. 해방촌은 시간이 느리게 가는 동네다. 서울 시내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으면서 남산을 자신의 뒷산쯤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곳에서 언덕과 오거리를 뛰어다니며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정일학원의 재수생들은 까마득한 어른이었다가 선배들이 되었고, 내 동기나 후배들로 변하였다가 지금은 사라지고 외국인 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얼마 전, 그 학교 앞 전봇대에 친구의 자동차 번호판이 걸려 있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 떨어졌던 모양인데 그것을 친구의 조카가 보고 전화해 주어 찾으러 갔던 일이 생각나 한참을 웃었다.



나와 친구들, 가족과 이웃들이 얽히며 살았던 동네가 또 다른 사람들의 추억과 일상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책을 읽으며 깨닫는다. 저자의 발길이 닿는 곳 구석구석, 나 또한 머물다가 간 자리들이 많다. 공간이 주는 힘은 크다. 책을 읽으며 마치 시·공간을 초월하여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떠나왔지만 지나간 과거의 한때가 남아 추억을 소환하고, 동시에 현재진행형의 시간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동네. 그곳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작가와 고양이들의 치열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그래서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이라 노래했던 시인처럼, ‘남산 길 눈송이 같은 벚꽃 흩뿌리는 사월이 되면하고 노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꽃 피면 어김없이 중간고사기간이 돌아온다는 친구의 푸념이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오늘은 두 달 만에 해방촌에 갔다. 그곳을 떠나왔지만 내가 다니는 교회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번지기 전에는 일요일마다 예배를 드리고 친구들이나 지인들과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남산을 한 바퀴 돌며 산책을 한 다음 남산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새롭게 생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집에 돌아왔다.



 

카페를 한다는 건 1365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집들이를 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한다. 사 람을 환대하는 마음이 크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 70.p



 

그 시간이 꽤 길었으니 거리를 오가며 저자와 마주쳤을 수도 혹은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각자의 오후 시간을 보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부터 해방촌 곳곳에 크고 작은 카페들이 생겨났다. 그 중에는 친구가 살던 집이었던 곳도 있다. 커피를 마시며 여기가 마루였고, 저기가 안방이었는데 하며 또 지난 과거를 떠올렸었다. 공부한다고 모여서 밤새 만화책을 읽고 수다를 떨었던 10대의 여학생들. 부모님들은 이런 우리를 아마 알고도 속아 주었을 것이다. 카페를 한다는 건 집들이를 하듯 사람들을 환대하는 마음이 커야 가능하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그러나 그 시절 나와 친구들의 부모님들은 제 집 드나들 듯이 찾아오는 철없는 우리들을 잔소리와 함께 맞아 주셨다. 그래서 지금까지 가슴 따뜻해지도록 환대받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감각적으로 체득할 수 있게 되었다. 검은 머리에 젊고 에너지 넘쳤던 우리의 엄마들이 눈에 선하다.



 

비를 맞으며 야옹이를 부르던 그리운 내 친구는 어디로 갔을까

 

이 동네에는 남산이 있어서 그런지 유독 길고양이들이 많다. 누군가 키웠다가 버린 고양이들도 많고, 그 고양이들이 새끼를 낳아서 더 많아지기도 하는 것 같다. 고등학교 때, 비가 많이 내리던 토요일 용산 도서관에 시험공부를 하러 가다가 비를 맞으며 자동차 밑을 들여다보고 있는 같은 반 친구를 만났다. 계속 야옹이를 부르는 친구를 따라 그 밑을 들여다보니 아주 작은 새끼 고양이가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참치캔을 그 밑으로 넣어주고 계속 지켜보던 친구는 야옹아, 야옹아 하고 연신 불러댔다. 친구의 눈은 이미 붉어져 있었다.

네 고양이야?”

아니. 집에 데리고 가고 싶은데 엄마한테 혼날 것 같아서 고민 중이야.”

학교에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그 친구의 얼굴에 조금 놀랐었다. 그때까지 나는 고양이가 무섭고 징그러워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했었는데 조그만 생명이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은 내 마음에도 작은 떨림을 일으켰다. 그때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친구에게 우산을 씌어 주는 것뿐이었지만 말이다. 그때 그 친구는 아직도 그 동네에 살고 있을까.



 

내 삶은 확실히 길고양이들 밥을 주기 전과 후로 갈렸다. 요점만 말하자면,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기 시작한 뒤로 나는 사람들에게 훨씬 착해졌고, 순해졌다. 유독 못난 사람들에게 유독 해코지를 당하는 고양이들을 보호하려는 이념으로 유독 못난 인간한테 참을성은 또 얼마나 많아졌는지……. 2층 세입자는 그런 걸 알 바 없으니 움찔한 것이다. - 146.p



 

책을 읽으며 고양이에 대해 모르던 것을 많이 알게 되었다. 고양이란 동물이 물을 많이 먹어야 하는 것도, 삼색 고양이 수컷이 희귀하다는 이유로 일본에서는 2천만 원이 넘는다는 것, 더불어 비둘기가 젖을 먹이는 새라는 것 까지. 내 주변에 늘 있는 존재들인데 그들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이 미안했다. 동물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은 사람과 사회에 대해 염려하고 분노하는 것에 대해서도 확실하다. 약자를 외면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 많은 사람들이 보지 못하거나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질문을 던져 준다는 것 등 말이다.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을 생명에 대한 측은지심이 들고 그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세상이 조금은 더 천천히 차가워지는 것 같다.



우리를 지켜줄 영혼의 동네를 잃어버리지 않길

 

해방촌에 살던 시절, 나는 학교, 교회 수련회나 여행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올 때 남산 타워가 보이기 시작하면 불안한 마음이 평온해졌다. 남산타워가 보인다는 것은 어느 방향에 있든지 걸어서라도 집에 찾아갈 수 있다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가끔 살면서 길을 잃거나 헤맬 때 편안하게 길잡이가 되어줄 무언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물론 지금은 그것이 남산타워는 아니지만, 사회생활에 지치고 마음이 차가워질 때 따뜻했던 무언가를 떠올릴 수 있는 자기만의 공간이 오래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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슌킨 이야기 쏜살 문고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박연정 외 옮김 / 민음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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슌킨 이야기를 읽기 전 표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표지의 그림만으로도 일본소설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 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환상적이면서도 몽환적의 느낌이 드는 것이 소설과 수수께끼를 하는 것 같았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소설은 처음 접하는 거라 어떤 내용인지 궁금했고, 표지를 보며 상상해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무엇보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는 주인공 슌킨과 사스케의 관계, 칠현금과 샤미센 가락에 대한 모든 것이 표지 그림 속에 다 담겨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설을 읽기 전에 보는 것과 다 읽고 나서 다시 표지를 보며 음미하는 기쁨 또한 이 책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표지 그림과 함께 쏜살문고의 장점은 더욱 두드러진다. 부담 없는 분량과 무게, 휴대하기 좋은 크기가 더해져 장식품 같은 느낌이 더해진다. 그래서 외출할 때 읽지 않더라도 책을 들고 나가지 않으면 조금 불안해하는 사람들에게 딱 좋다

 

 

이처럼 슌킨은 고집도 세고 제멋대로였지만 다른 고용인들에게는 심술궂게 행동하지 않았다. 유난히 사스케를 대할 때만 그녀의 심술이 심해졌는데 원래 그런 기질이 있는 데다 사스케만이 애써 비위를 맞추려 했기에 그를 가장 편하게 생각해서 그런 극단적인 행동이 나타났던 것이다. 사스케 또한 고달프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기쁘게 받아들였는데, 필시 그녀의 유난스러운 심술을 응석으로 여기며 일종의 은총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29.p

 

 

슌킨과 사스케의 관계는 평범하지 않다. 두 사람은 처음 주인과 하인의 관계에서 시작했지만, 사미센 연주를 통해 예술적 스승과 제자의 연으로 발전했다.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주인아씨의 손바닥 같은 존재였던 사스케는 여전히 슌킨에게 무시당하고 업신여김을 받지만 그것은 다른 모습의 집착과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슌킨이 다른 이들에게는 친절하나 분명한 선을 긋고, 사스케에게는 자신의 부끄럽고 민망한 일까지 모두 맡기는 것을 보며 사랑의 다른 면에 그려진 가혹함과 잔인성을 보게 된다. 그런 슌킨에 대한 사스케의 사랑은 지극하다. 그녀가 자신에게만은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 스스로 장님이 되기를 선택하는 장면에서 그의 사랑은 절정을 이룬다. 잔혹함 속에서 사랑의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그를 통해 사랑이란 이름으로 품을 수 있는 수많은 감정과 관계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을 말할 때, 대부분 여성 숭배와 육체적인 사랑, 마조히즘이나 사디즘, 예술 지상주의 등을 논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처음 표지를 보았을 때의 느낌과 맞아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결국 이 또한 정형화할 수 없는 다양한 사랑의 모습이나 인간관계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1933, 전 세계가 광란의 전쟁과 폭력 속에 휘말려 가고 있을 때, 암울하고 섬세한 작가의 떨림은 오히려 약한 것 같지만 강인한 여성과 예술에 무조건적인 굴종과 순응의 모습을 그려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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