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 9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오이디푸스 왕.안티고네.엘렉트라 내 인생을 위한 세계문학
소포클레스 지음, 이미경 옮김 / 심야책방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와 에우리피데스의 <엘렉트라>

 

 

1.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

 

클뤼타임네스트라는 악몽을 꾸고는 딸 크뤼소테미스를 보내 아가멤논의 무덤에 제주를 바치게 하지만 아버지를 애도하는 엘렉트라가 그 제물들을 내다버리라고 한다. 크뤼소테미스는 언니 엘렉트라에게 강자에게 굴복하는 지혜를 가지라고 충고하지만, 엘렉트라는 아버지의 원수인 어머니와 아이기스토스를 저주한다. 이때 클뤼타임네스트라가 나타나 엘렉트라를 꾸짖자 모녀 사이에 격렬한 언쟁이 벌어진다. 한편 오레스테스는 델포이의 신탁이 지시한 대로 죽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친구 퓔라데스와 어릴 적 가정교사와 함께 뮈케나이에 도착한다. 가정교사가 먼저 나타나 클뤼타임네스트라에게 오레스테스가 죽었다는 말을 하자 그녀는 안심하고 퇴장한다. 엘렉트라는 절망에 빠지고 혼자서라도 어머니와 아이기스토스를 죽이기로 결심할 때 오레스테스와 퓔라테스가 나타나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그리고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궁전 안으로 들어가 클뤼타임네스트라를 죽이고, 이어서 아이기스토스는 아가멤논이 살해되었던 방에서 살해되게 된다.

 

- 소포클레스의 많은 작품들처럼 <엘렉트라> 또한 위대한 인간이 가혹한 운명과 씨름하며 어 떻게 자신의 주장을 어떻게 펼쳐나가는지 보여주고 있다. 엘렉트라에게 닥친 운명은 먼저, 아버지를 죽이고 다른 남자와 동침한 어머니의 부정이다. 그로인해 자신은 학대를 받으며, 결혼도 하지 못하고 점점 쇠약해 간다. 그러면서도 위험에 빠진 남동생 오레스테스가 외국으 로 도망갈 수 있게 도와주며, 복수를 꿈꾼다. 한편 그런 엘렉트라에게 동생 크뤼소테미스는 살기위해 옳을 것을 따지지 말라고 말한다.

 

크뤼소테미스: ……옳은 것을 따지자면, 내 말이 아니라 언니의 선택이 옳아요. 하지만 자유롭 게 살자면 매사에 통치자들의 말을 들어야 해요.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두 부재하고 위험에 처할 수도 있지만, 엘렉트라는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자신이 도망치도록 도와준 오레스테스가 죽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흔들리지 않고, 혼자서 어머니를 단죄하겠다는 엘렉트라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이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외롭지만 의연한 인간의 의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2. 에우리피데스의 <엘렉트라>

 

아이기스토스는 자신에게 해가 될까봐 엘렉트라를 귀족이 아닌 늙은 농부에게 시집보낸다. 그러나 농부는 귀족의 여자에게 손을 대지 않고 정중하게 대해준다. 엘렉트라는 시골 산속에서 물을 길러 나왔다가 동생 오레스테스와 필라데스를 만나게 되고, 그가 곧 동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리타이메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에게 복수할 결심을 한다. 마침 님프 여신에게 제사를 올리기 위해 종들을 데리고 나온 아이기스트스에게 접근하여 그를 죽이게 된다. 그의 시체를 갖고 엘렉트라의 오두막으로 오게 된 오레스테스는 엘렉트라가 아들을 낳았다고 거짓말을 하여 오게 된 어머니 또한 죽이게 된다. 그리고 이때 디오스크로이 형제가 나타나 엘렉트라를 필라데스에게 주어 그의 집으로 데리고 가게 한 다음, 오이스테스는 팔라스 아테나의 성스러운 도시로 가서 판결을 받고 살아가게 한다.

 

에우리피데스의 <엘렉트라>에서는 왕비 리타이메스트라가 왜 아가멤논을 죽여야 했는지에 대한 사연이 소개된다. 복수와 살인은 그냥 일어난 것이 아니며, 그에 따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러나 엘렉트라는 어머니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딸을 위해 남편을 죽인 것이 정당하다면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를 죽이는 것도 정당하다는 말로 맞선다. 그리고 어머니를 죽이는 것에 대해 고뇌하는 동생 오레스테스를 질타하며 결국 어머니를 죽이게 한다.

 

에우리피데스는 고뇌하는 엘렉트라를 더욱 가엾게 여긴다. 어머니로부터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의 정부에 의해 목숨의 위협을 받았으며, 그로 인해 늙은 농부에게 억지로 시집가게 된 엘렉트라에게 좀더 많은 애정을 갖고 있다. 그런 그녀를 동생 오이스테스를 도와준 절친한 친구 필라데스와 결혼하게 해 주면서 그동안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보상받게 해주며, 그녀를 존중해준 농부에게도 보상해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햄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
윌리엄 세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햄릿>은 아버지 햄릿 왕의 죽음을 애도하는 덴마크의 왕자 햄릿의 비통한 모습부터 보여 준다. 햄릿 왕은 궁궐 정원에서 잠을 자다 독사에 물려 죽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왕이 서거한 지 채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삼촌 클로디어스와 햄릿의 어머니 거트루드 왕비가 혼례를 치르게 된다. 어머니와 함께왕의 자리도 삼촌의 손아귀에 들어가 버렸다. 이렇게 이중의 고통을 겪게 된 햄릿은 삶의 의욕을 잃고 크게 상심한 채 방황한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면서 어머니를 저주하게 된다.

 

햄릿 오, 너무나 더럽고 더러운 이 육신이

허물어져 녹아내려 이슬로 화하거나,

영원하신 주님께서 자살금지 법칙을

굳혀놓지 않았으며, 오 하느님! 하느님!

이 세상 만사가 내게는 얼마나 지겹고,

맥빠지고, 단조롭고, 쓸데없이 보이는가!

역겹다, 아 역겨워, 세상은 잡초투성이

퇴락하는 정원, 본성이 조잡한 것들이

꽉 채우고 있구나. 이 지경에 이르다니!

 

……

 

쓰라려 불그레한 그녀의 눈에서

가장 부정한 눈물의 소금기가 가시기도 전에

결혼했어 - 오 최악의 속도로다!

그렇게 민첩하게 상피붙을 이불 속에 뛰어들어!

이건 좋지 않고, 좋게 될 수도 없는 일.

허나 가슴아 터져라, 입은 닫아야 하니까.

                                                                                                                 p.24~25

 

 이처럼 아버지의 죽음, 삼촌과 어머니의 죽음은 젊은 햄릿 왕자에게 부정적 영향을 주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햄릿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술 마시고, 괴로워하며 어머니와 삼촌을 저주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유령이 햄릿 왕자의 친구 허레이쇼 앞에 나타나 죽음에 관한 비밀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 유령은 곧 햄릿에게도 찾아온다. 햄릿은 아버지 유령을 만난다. 클로디어스가 자신을 살해했다고 고해바친 유령은 햄릿왕자에게 자기를 복수하라 명한다. 피 끓는 분노를 느낀 햄릿 왕자는 처음엔 순순히 복수를 다짐한다. 하지만 이내 그 유령이 진정 아버지의 혼령인지, 아니면 자기를 악의 구렁텅이로 유혹하려고 나타난 지옥의 사자인지 의심한다. 그럴수록 햄릿의 괴로움은 커지고, 그 안에서 갈등은 더욱 깊어진다.

 

햄릿 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느 게 더 고귀한가. 난폭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맞는 건가, 아니면

무기 들고 고해와 대항하여 싸우다가

끝장을 내는 건가. 죽는 가--자는 것뿐일지니,

잠 한번에 육신이 물려받은 가슴앓이와

수천 가지 타고난 갈등이 끝난다 말하면,

그건 간절히 바라야 할 결말이다.

죽는 건, 자는 것, 자는 건

꿈꾸는 것일지도 -- , 그게 걸림돌이다.

왜냐하면 죽음의 잠 속에서 무슨 꿈이,

우리가 이 삶의 뒤엉킴을 떨쳤을 때

찾아올지 생각하면, 우린 멈출 수밖에--

그게 바로 불행이 오래오래 살아남는 이유로다.

 

……

 

                                                                                                                  p.94~95

 

  햄릿은 비밀을 알아버린 자였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고 있는 자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짐은 더욱 무겁고, 갈등은 배가 되었다. 고심 끝에 왕자는 클로디어스가 저지른 살인을 똑같이 재현하는 연극을 왕과 왕비 앞에서 상연하기로 결심한다. 클로디어스의 반응으로 유무죄를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햄릿은 이 연극 안의 연극쥐덫이라는 제목을 붙인다. 연극을 보고 간담이 서늘해진 클로디어스는 공연장을 황급히 떠나 버리고, 이를 본 햄릿 왕자는 그의 유죄를 확신한다. 곧이어 햄릿은 홀로 성당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는 클로디어스를 발견한다. 하늘이 준 기회였지만 햄릿은 클로디어스를 죽이지 않는다. 기도하다 클로디어스가 죽으면 그 영혼이 곧바로 천국으로 갈 것이 걱정되었던 것이다.

  햄릿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동안 결국 모든 상황은 비극으로 내닫는다. 왕비 내실 커튼 뒤에서 인기척을 낸 클로디어스는 햄릿의 칼에 맞아 죽고, 옛 연인 오필리어는 물에 빠져 죽고 만다. 오필리어의 오빠 레어티스는 순식간에 가족을 둘이나 잃고 격분하고 시시비비를 제대로 가려 주지 않는 클로디어스에게 반기를 든다. 그러나 클로디어스는 간교한 말로 레어티스를 꾀어 그의 분노와 칼끝이 햄릿을 향하게 한다. 햄릿과 레어티스의 시합 도중 무심결에 아들 햄릿의 음료를 마신 거트루드가 숨을 거둔다. 레어티스와 햄릿은 둘 다 독을 바른 검에 찔려 치명상을 입는다. 시합 동중에 칼이 한 번 바뀌었기 때문이다. 레어티스의 온 몸에도 급속도로 독이 퍼진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야 햄릿은 클로디어스를 죽인다. 영국에서 온 사신이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이 처형되었다는 소식도 전해 준다. 햄릿이 바꿔 친 편지가 효력을 발휘한 것이다. 충직한 허레이쇼는 자결하여 햄릿 왕자의 뒤를 따르려 한다. 그러나 햄릿은 그에게 살아남아 자신의 이야기를 후대에 전해 달란 부탁을 남긴다. 노르웨이의 왕자 포르틴브라스가 왕국의 새로운 영도자가 되어 피로 물든 덴마크의 질서를 바로 세운다. 덴마크는 새로운 왕과 국가의 독립을 맞바꾸었다.

  햄릿의 마지막 결단은 결국 모든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덴마크의 젊은 왕자는 아버지의 죽음, 삼촌과 어머니의 결혼으로 인해 현실에서 살아갈 의지를 잃었다. 비열하고 저속한 삼촌을 미워하면서도 저항할 힘을 기르지 못했다. 그런 햄릿 앞에 아버지의 유령이 나타나 복수를 부탁하고 사라졌다. 이젠 햄릿이 이 모든 상황 앞에서 어떻게 어려움을 떨치고 나가야 할 것인가 고민했어야 했다. 그가 고민한 것은 복수할 것인가 그냥 넘어갈 것인가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잘못된 비리를 해결하고 아버지의 억울함을 갚을 것인가 새로운 왕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힘을 키워 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아버지의 원수를 갚든 왕이 된 삼촌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아버지 유령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찾아야만 했다. 그러나 햄릿은 아버지 유령의 말과 자신의 나약함, 갈등속에 갇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죽음으로 몰고 갔다. <햄릿>은 결말은 끔찍한 비극이다. 살아남은 자 없이 모두가 칼에 죽고, 독에 죽고, 물에 빠져 죽는다.

  <아버지의 유령>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햄릿, 즉 젊은 세대는 자신의 길을 갈 수 없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안락한 환경과 지식은 젊은 세대를 편안하고 안전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새로운 길을 닦기 위해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아버지가 쌓아올린 것에서 다시 출발하는 만큼 시행착오도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유령도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 아버지의 시대가 해결하지 못한 악행과 불행이 아들의 목을 잡고 늘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아들과 그 세대를 파멸로 몰고 갈 수도 있다. 고민과 갈등은 이 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아버지의 왕관과 복수를 선택할 것인가, 삼촌을 치고 무너진 자신의 왕국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인가. 내가 선택한 사랑에 대해 책임을 지고, 앞으로 어떠한 미래를 살아갈 것인가의 고민 말이다. 그리고 선택한 삶에 대해 행동하며 나아가야 한다.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을 감당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아버지 세대의 유령과 마주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삼촌과 어머니의 결혼에 낙담하지 말아야한다. 이 시대의 햄릿은 아버지의 유령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나아가야 한다. 새로운 길을 열어나갈 때 그 길에서 만난 우리의 유령과 씨름하고 갈등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렇게 햄릿만의 왕국을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햄릿, 아버지의 유령에서 벗어나 너의 길을 걸어가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안의 책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0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오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페르난두 페소아의 책을 처음 읽게 되었습니다.
<불안의 책> 완역본 기대하면서 읽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브리데이
데이비드 리바이선 지음, 서창렬 옮김 / 민음사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나이지만 내가 아니다

에브리데이를 읽고

 

 

나는 매일매일 다른 사람이 된다. 나는 나이지만 -- 나는 내가 나라는 것을 안다. -- 또한 다른 사람이기도 하다.

늘 그래왔다.’

 

                                                                                                                                                            9.p

1. A

   나는 매일 같은 사람이자 다른 사람이다. 매일 아침 다른 사람의 몸에서 깨어나 그에게 하루라는 시간을 빌려서 살아간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는 순간이자 영원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현재만 존재한다. 과거나 미래는 나에게 허락된 시간이 아니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나의 시간은 남에게 빌린 하루가 시작이자 마지막이다. 이미 그런 삶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주어진 운명에 크게 낙담하지 않고 그럭저럭 잘 살아간다. 그런데 리애넌을 만나면서 모든 것이 변하고 말았다. 리애넌을 사랑하게 되면서 나에게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이 계속 되길 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어졌다. 그것이 리애넌을 계속 만나고 그 사랑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풀 목사가 달콤한 제안을 해왔을 때 선뜻 그것을 뿌리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훔치는 일이다. ‘살인이다. 다른 사람을 죽이고 리애넌과 행복하게 살아갈 자신이 없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나에게 자신의 몸을 빌려준 모든 사람에 대한 예의이자 내가 베풀 수 있는 선의이다. 욕심을 부리는 순간 나는 아마 괴물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지만 리애넌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세상이 텅 빈 느낌이다. 시간을 벗어나 생명을 가진 존재는 아무도 없는 우주 공간에 혼자 떠다니는 느낌이다. 영원히 세상 밖으로 쫓겨나 돌아올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외롭다. 힘들다. 억울하다, 숨이 막히고 고통스럽다. 그래도 한 사람 안에 머물 수 없다. 그래서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에브리데이를 읽으면서 A마음으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육체와 영혼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타인과 관계를 맺고 계속해서 유지해 가기 위해서는 영혼뿐 아니라 육체 또한 중요하다.

 

늘 그래 왔다

 

  A는 늘 그렇게 다른 사람의 몸을 빌려 하루라는 삶을 살아왔다. 영혼은 같으나 육체가 매일 바뀌는 삶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16년을 살아온 것이다. 그리고 5994, ‘저스틴의 육체에서 깨어난 날, 늘 그래 왔던 삶의 방식에 제동이 걸렸다. 바로 저스틴의 애인인 리애넌 때문이다. 리애넌을 사랑하게 된 순간부터 A는 소원이 생긴다.

 

나는 남아 있고 싶다.

남아 있게 해 달라고 빈다.

남아 있기를 바라며 눈을 감는다.’

 

  매일 아침 깨어나게 된 인물 속에서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으며, 조심스럽게 살아가던 A의 삶은 진짜 삶이 아니었다. 그가 하루만 살아서가 아니다. 타인의 삶을 하루 도둑질해서도 아니다. 타인의 삶을 관찰만 할 뿐 온전히 자신이 살고 싶은 세계로 뛰어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애넌을 사랑하고 난 후의 A는 진짜 자신의 삶을 산다. 육체는 잠시 빌린 것뿐이다. A는 리애넌을 만나기 위해 자신이 누구인지 계속해서 표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학교 결석을 하거나 가족끼리 떠나기로 했던 하와이 여행을 포기하기도 한다. 마리화나 중독자의 몸에서 깨어났을 땐 몸에게 지지 않기 위해 처절한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 리애넌의 이해와 사랑을 얻게 된다.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게 되면 가 아니고, 사랑에 빠진 상대방이 된다. 사랑은 그렇게 예전의 내 모습을 버리고 타인이 되게 하는 힘이 있다. A가 리애넌을 사랑하게 된 후에는 그의 시간과 공간의 모든 기준이 리애넌이 되어 버렸다. 모든 것이 그녀 중심으로 돌아간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 중심으로 지구가 도는 것이다.

 

 

2. 리애넌- ‘리애넌A를 만나게 된 후

 

   나는 어제와 오늘이 완전히 달라져 있는 저스틴 때문에 혼란스럽다. 그런 내 앞에 낯선 사람이 한 명씩 다가온다. 처음에는 전학생인줄 알았고, 그다음에는 친구의 게이 사촌인줄 알았다. 길을 묻는 남학생인줄 알았고, 농구를 좋아하는 평범한 남학생인 줄 알았다. 그러다가 그 모두가 A라는 것을 알았을 때 혼란에 빠졌다. 저스틴이었던 A가 자신의 존재와 마음을 고백한 후 나는 모습이 다른 그러나 분명 A인 섹시한 흑인 여학생, 힙합에 빠진 남학생, 뚱뚱한 남학생, 쌍둥이 농구선수 등과 사랑을 나누고, 그를 인정하게 된다. 과연 나는 그런 A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A가 멋지고 잘 생긴, 아닌 평범한 또래 남자의 모습으로 등장했을 때는 마음을 열 수 있을 것 같다. 호감을 갖고 다가가 친구에서 연인으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자아이로 나타나 사랑을 갈구하거나 받아들이기 힘든 실망스러운 모습의 A를 만났을 때는 솔직히 전과 같은 상황을 유지하기 힘들다. 흔히 진짜 사랑은 외모가 아닌 내면을 통해야 한다고 하지만, 모두가 나를 사랑하는 A라는 것도 인정하지만, 첫 눈에 들어오는 모습에 따라 마음이 달라지는 것을 나도 어쩔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외모에 따른 결정이 아닌 지속가능한 관계 속에서 사랑을 이루어 가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마음이 A를 알아보고, 받아들이고, 좋아하게 되었다고 해도 그 관계를 끝까지 유지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난 진짜 A를 좋아 하면서도 보낼 수밖에 없었다.

 

  A만큼 힘들고 괴로웠던 인물은 바로 리애넌이다. A 때문에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고, 세상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애넌이 감당해야 할 고통의 무게도 만만치 않다. 세상이 가르쳐 주지 않은 다른 존재와 삶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A를 만나 점점 성숙해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깊어진다. 사랑은 A뿐만 아니라 리애넌도 바꿔놓았다.

 

  매일 다른 사람의 몸에서 깨어나는 A의 이야기가 신선했다. 만약 내가 매일 다른 사람의 몸으로 깨어난다면 어떤 기분이 들지 상상해 보았다. 오늘 내가 살아낸 하루가 그저 그렇게 많은 날 중에 하나가 아니라 누군가가 살짝 들어와 살다간 날이었다니 두렵고 아찔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육체와 영혼이 분리된 채로는 완전한 삶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흘려보낸 시간일지라도 오롯이 내 몸과 마음이 함께 견디어 낸 하루여야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디언밥 2015-09-18 1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A 시점에서 생기는 갈등도 좋지만 리애넌의 입장도 재밌네요. 잘 봤습니당!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루끼의 소설을 읽으면 냉정하지만 따뜻한, 혹은 외로움을 감추고 있는 냉소적인 주인공들을 만나게 된다. 상처받았지만 받지 않은 듯 혼자만의 껍질을 두르고 사는,  그렇지만 자꾸 눈길이 가는 사람들. 하루끼의 10번째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서도 또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하고, 그후 그녀가 어딘가로 사라지면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잘 아시다시피) 그녀를 데려가는 것은 간교함에 도가 튼 선원들이다. 그들은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여자들을 꼬여내, 마르세유에인지 상아해안인지 하는 곳으로 잽싸게 데려간다. 그런 때 우리가 손쓸 도리는 거의 없다. 혹 그녀들은 선원들과 상관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지 모른다. 그런 때도 우리가 손쓸 도리는 거의 없다. 선원들조차 손쓸 도리가 없다."

 

                                                                                            여자 없는 남자들, p.330

 

 하루끼 열 번째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수록된 7편의 소설 모두 여자 없는, 혹은 떠나보낸 남자들이 등장한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주인공 가후쿠는 아내가 자궁암으로 세상을을 떠난 후 혼자 살아가는 중년의 연극배우이고, <예스터데이>의 기타루와 다니무라는 에리카를 좋아하지만 끝까지 다가가지 못한다. 한 번에 여러 여자들(유부녀 가리지 않고)을 동시에 사귀며 가볍고 깊지 않은 교제를 추구하던 성형외과 의사 도카이<독립기관>이는  16세 연하의 유부녀를 사랑하게 되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뒤, 결국 음식을 거절한 채 죽어간다. <셰에라자드>의 하바라는 정기적으로 자신을 찾아오는 셰에라자드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기노>의 주인공 기노는 부인과 회사동료의 정사장면을 목격하고 그대로 집을 나와 혼자 술집을 운영하며 살아간다. 모두가 한 명의 여자를 사랑했고, 그녀로 인해 자신의 존재를 되짚어 보며,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으나 그녀들이 떠나간 후 외로움과 상처를 안고 묵묵히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아간다. 그래서 여자 없는 남자들은 어딘가 춥고 외롭고 무심해 보인다. 그러면서 우리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한 사람의 세계는 또다른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넓어지고 깊어진다. 하나의 세계가 다른 세계와 합쳐지면서 더 커지게 되는 만큼 그 사람이 떠나거나 사라졌을 때의 공간은 더 커지는 법이며, 그 만큼 홀로 남겨진 사람은 그곳을 무엇으로 메어야할 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같이 길을 잃거나 방황할 수 밖에 없다. 자신을 타인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상대방에게 이해받지 못했다는 상처를 안고 말이다. 하루끼 소설 속 주인공들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 그런 점을 주인공들이 깨닫지 못한다해도 말이다. 바로 이것이 하루끼 소설속 인물들의 특징이자, 그만의 독자층을 확보할 수 있는 주요 매력이기도 하다.

 

 또한 하루끼의 소설을 읽다보면 젊은 지난 날들을 되돌아 보게 한다. 40대,  50대, 60대에게도 10대, 20대 시절의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그때의 우리가 느꼈던 고통과 상처, 시간이 흘러 그것이 각자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았는지 잊고 있었던 모습을 찾아보게 한다. 60을 넘긴 작가가 스무 살 시절을 어제의 일처럼 되살려내는 것이 놀랍고, 냉정하지만 따듯한 외로움을 불러일으키는 인물들의 이미지와 상황도 읽는 이들에게 공감을 준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다 해도 사람은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은 자기 자신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지 않은가? 그러나 이해받지 못했다해서 혹은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사랑하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 그것마저 없다면 우리의 삶은 너무나 공허하고 춥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표지에 그려진 차가운 얼음달처럼 말이다. 겨울을 견딜 수 있는 힘은 봄이 오고 있다는 희망때문일 것이다.

 

 "... 나는 대체 무엇인가, 요즘 들어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것도 상당히 진지하게 말이죠. 내게서 성형외과 의사의 능력이나 경력을 걷어낸다면, 지금 누리고 있는 쾌적한 생활환경을 잃는다면, 그리고 아무 설명도 없이 한낱 맨몸뚱이 인간으로 세상에 툭 내던져진다면, 그때 나는 대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독립기관, 140.p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존재인지 근원적인 질문에 맞닥뜨리게 되는 순간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혹은 사랑받게 될 때 찾아온다. 사람은 무엇보다  나 아닌 타인을 사랑하게 될 때 진심으로 자신의 모습과 대면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이해받으며 사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하며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그 사랑을 잃어버리면 결국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곧 남자 없는 여자들이 되는 것이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 9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