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잡이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
니콜라이 레스코프 지음, 이상훈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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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유모는 그후에 이 일을 어떻게 견뎌냈어요?˝

니콜라이 레스코프 <분장예술가>중에서.

나는 이 문장을 만나기 위해 이 소설을 읽었던 것 같다.
그후에 남은 시간을 견디는 것은 개인의 몫이니까.
이승우 소설의 문장이 생각났다.

‘그러니까 세상을 견딘다는 것은 나를 견딘다는 뜻이기도 했다.‘

견딜수 있다면, 견디기 위해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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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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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간을 태우다>를 다 읽고 후배에게 읽어보라고 권해주었다. 유아인이 현재 찍고 있는 영화의 원작이라는 말과 함께.

단편이라 그런지 한 시간 동안 소설에 푹 빠져 읽어 내려간 후배는 내게 소설이 너무 어렵다고 말했다.


"소설이 너무 어려워요. 결국 그 사람의 헛간이 여자였나요?"

"글쎄?"


 무엇이라고 콕 집어 이야기 해 줄 수 없지만 나는 <헛간을 태우다>를  읽고나서 남자가 태우고 싶다는 헛간이 무엇인지 알것 같았다. 나만의 해석일 수 있겠지만,  지워버리고 싶은 순간, 하지 말았어야 했던 말과 행동들, 할 수만 있다면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서 없애버리고 싶은 모든 일들이 우리에게는 너무 많다. 그것이 태우고 싶은 헛간이 아니었을까. 너무나 가까이 있고, 깊이 숨겨져 있는 나만의 헛간들 말이다,


 '마지막 헛간은 건널목 옆에 있었다. 약 6킬로미터 지점이다. 정말이지 완전히 버려진 헛간이다. 선로를 향해 펩시콜라의 양철 간판이 걸려 있다. 건물은 - 그런 것을 건물이라고 불러야 할지 자신이 없지만 - 거의 무너져가고 있었다. 그것은 확실히 그가 말한 대로, 누군가 태워주기를 가만히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75.P)


 때로는 내 의지가 아닌 타인에 의해 불태워지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은 누군가 내게 먼저 다가와 손 내밀어 주기를 바라게 된다. 누군가 나의 의지를 꺾고 내 안의 나를 꺼내주기를 바랄 때가 있다. 나만의어두운 헛간을 태워주기를 말이다.


 그건 그렇고 정말 그 남자의 헛간이 바로 그 여자였을까?

 그 여자는 어디로 갔을까?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려 생각해보니 섬뜩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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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루시 바턴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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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을 살아가다보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잠시 멈추어야 할 때가 있다. 시기만 다를 뿐이지 그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그러면 그때서야 우리는 지난 삶을 돌아보기도 하고, 옆에서 함께 걸어준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내 이름은 루시 바턴> 또한 9주 가까이 병원에 입원하게 된 주인공이 병원에 누워있으면서 기억을 통해 소환해 낸 어린 시절과 가족 이야기로 진행된다.

 

이제는 꽤 지난 일이 되었지만, 내가 구 주 가까이 병원에 입원해야 했던 때가 있었다.’

 

  첫 문장 때문에 나는 이 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이 갖는 일종의 동질감과 힘내라고 격려해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나는 퇴원하면 보도를 걸을 때 나도 그렇게 걷는 사람 중 한 명이라는 사실에 감사하는 마음을 절대 잊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 여러 해 동안 정말로 잊지 않았다. ―― 병실 창문에서 내려다보았던 풍경을 떠올리며 내가 그 보도를 걷고 있음을 다행으로 여겼다.’ 10,p

 

  나도 골절 사고로 2주 동안 병원에 입원하고, 집에서 쉬는 동안 가을이 지나갔었다. 그때 처음으로 햇빛이 기우는 방향을 따라 책을 읽기도 했고, 가족과 친한 지인들은 물론이고, 생각지도 못했던 분들에게 위로와 힘을 얻었다. 그로 인해 나는 작은 일에도 고마워하고, 감동하며,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일에도 자연스러워졌다. 돌아보면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다. 그것을 인식하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중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고, 그래서 더 잊을 수 없는 것은 유년시절 가족일 것이다. 주인공 또한 멀리서 자신을 위해 찾아온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지난날을 되돌아본다.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 비참했던 어린 시절이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어제 일처럼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숨기고 싶은 아픈 기억과 가족들, 부끄럽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고, 앞으로도 변화 시킬 수 없는 내 모습이 과거와 오늘, 내일의 나에게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지금은 나는 그동안 살아온 내가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니까. 무엇보다 지난 날 아프고 힘들고 창피했던 모든 일들이 현재의 자신을 만들어낸 요소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된 지금, 지식을 쌓고 경제적으로 좋아졌지만, 여전히 헤매고 좌절하고, 외로움에 허우적거리거나 슬퍼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겠지만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만 있다면 우리는 각자의 삶의 꽃이 될 것이다. 빛깔과 향기, 모습은 다르겠지만 가슴속에서 싹을 틔워 손과 발 위에서 꽃을 피우는 아름다운 삶 말이다. 루시 바턴이 어린 시절 외로움과 가난 속을 걸어온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고,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해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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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가지 이야기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지음, 최승자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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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샐린저의 <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 <아홉 가지 이야기>중에서

 

- “……그놈들은 바나나가 잔뜩 들어 있는 구멍 속으로 헤엄쳐 들어가지. 구멍 속으로 헤엄 치고 있을 때는 보통 물고기처럼 보이지만,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돼지처럼 굴어. 나는 바나 나가 있는 구멍 속으로 헤엄쳐 들어가서 자그마치 일흔여덟 개의 바나나를 먹어치우는 바나 나피시를 알고 있어.”

그렇게 뚱뚱해진 뒤에 그 물고기들은 당연히 구멍에서 도로 나올 수가 없어. 구멍 입구에 몸이 맞질 않으니까.”

그놈들은 어떻게 되는데요?”

바나나피시.”

그렇게 많은 바나나를 먹은 뒤엔 그 물고기들이 바나나 구멍에서 나올 수가 없을 거란 말을 하고 싶은 거지?”

그래요.”

……시빌, 네게 얘기해주긴 싫다만, 모두 죽는단다.”

왜요?”

글세 바나나 열병에 걸려서. 무시무시한 병이야.”

저기 파도가 와요.”

우린 그걸 무시해야 돼. 밀쳐버리는 거지.”

둘 다 시큰둥해하는 거야.”

 

샐린저의 <아홉 가지 이야기>를 펼치면 다음과 같은 화두가 써져 있다.

두 손바닥이 마주치는 소리쯤은 모두 알고 있다.

그러면 한 손바닥으로 치는 소리는 어떤 것일까?

 

작가가 화두를 잡고 쓴 소설들이니 그 화두를 붙잡고 소설을 읽었다.

 

  이 소설은 대부분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엔 젊은 남자와 집을 떠난 딸과 엄마의 대화가 시작되고, 또 해변에서 젊은 남자와 어린 여자아이가 바나나피시를 잡으며 대화를 나눈다 마지막 부분 엘리베이터 안에서 젊은 남자와 낯선 젊은 여자가 몇 오간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호텔방으로 들어온 남자는 옆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이 ‘1948년 정신적 매춘부라고 부르는 여자를 바라보며 권총자살을 한다.

  소설을 읽는 동안 이들은 도대체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저히 소통이 되지 않고 있는 것 같아 답답했다. 독자를 무시한 채 작가가 혼자 허공에 대고 손바닥을 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한 손바닥으로 치는 소리는 답답함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하고  서평들을 읽다가 샐린저 세계대전과 나치강제노동수용소를 목격하고 그가 알게 된 사실을 무시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 젊은 남자에 대한, 어쩌면 샐린저의 이야기를 쓴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을 알고 다시 읽으니 소설이 다시 읽혔다. 여기저기 샐린저가 숨겨 놓은 힌트도 많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의 은유적 표현들이 마음에 들었다. 한 손바닥으로 나는 소리는 그 손바닥이 무엇과 마주치느냐에 따라 다양한 소리들을 내게 될 것이다.  오늘은 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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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로 돌아가고 싶어
이누이 루카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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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부터 나는 새해가 되어도 희망찬 계획을 세운다거나 이루고 싶은 소망들이 무엇인지 가늠해보는 일들을 하지 않는다. 그보다 현재의 일들이 틀어지지 않고 잘 진행되기를,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기를 더 바라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새해 첫 달 이누이 루카<그날로 돌아가고 싶어>를 읽었다. 과거와 미래보다 현재 삶에 더 충실하기를 바라며 살아가는 나에게 이 책은 마음을 울리는 순간이란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작거나 크게 삶을 변화시키고 마음의 울림을 남긴 순간의 시간이 있다. 물론 그 시간을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것이다. 살아온 인연의 퍼즐조각을 찾아 맞추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다보면 뺨을 스치는 따듯한 봄기운을 느낄지도 모른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밤의 냄새가 났다. 어딘가 비밀스러운 냄새였다. …… 그 후로 나에게는 한밤중 몰래 집을 빠져나와 동물원에 간다는 비밀이 생겼다. <한밤의 동물원> 28, 39

 

  비밀을 간직한 사람은 다른 세계를 마음에 품은 것과 같다. 반 친구들의 폭력에 시달리면서 힘겹게 학창시절을 보내던 엔도 다다시’. 자신의 괴로운 마음도 모른 채 학원에 보내려는 부모님과 싸우게 된 날 밤, 집을 나온 그가 우연히 발견한 곳은 주홍불빛을 뿜어내고 있는 동물원이었다. 무작정 집을 나와 길을 헤매던 엔도 다다시에게 동물원의 불빛은 비밀을 만들어주었고, 삶을 변화시킨 첫 순간이 되었다.

 

이름이란 신기하다. 원래는 개인을 나타내는 기호에 지나지 않았지만, 때로는 부르는 것만으로 서로를 단단히 이어주는 힘을 지닌다. 서로 이름을 아는 것은 가장 초보적이고도 중요한 인간관계의 구축이다. …… 내가 잊어버렸을 뿐, 어디서 만난 적이 있는 걸까?

<그날로 돌아가고 싶어> 116, 117

 

  양로원에 자원봉사 나온 젊은 이시바시 가요는 그곳에서 완고하기로 소문난 이름이 똑같은 이시바시 노인과 친구가 된다. 노인은 숲속 호수가 있었다는 곳을 바라보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수생식물 소나가 자라고 있는 그 호수에 아내가 빠져 죽은 그날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랐던 노인은 결국 병으로 죽고 만다. 그리고 는 노인의 아내가 죽던 날, 자신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물론 모든 것이 우연의 일치이지만 자신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노인과 친구가 된 것은 그가 내 이름표를 바라본 순간 시작되었다.

  벌써 20171월이 끝나가고 있다. 이미 평생 기억될 한 순간이 지나갔을 지도 모른다. 앞으로 몇 번 더 다가올 수도 있고. 어쩌면 내일, 살아 있길 잘했다고 말 할 수 있는 순간이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불안하기도 하지만 살아있다는 것이 기대되고 좋다.

 

어째서 내일이 나쁜 날일 거라고 단정하니?

아무도 모르는데.

어쩌면 내일, 역시 살아 있길 잘했다고 생각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밤산책>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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