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컬렉션
베르나르 키리니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베르나르 키리니의 세계 속으로

<아주 특별한 컬렉션>-우리의 시대(1) ‘사후에

 

 

  베르나르 키리니의 소설은 처음 읽는다. 국내의 소개된 첫 문장 못 쓰는 남자』 『육식 이야기, 목마른 여자들에 이어 네 번째 소설집이 아주 특별한 컬렉션이니 역으로 그의 작품을 읽어갈 가능성이 높다. 이 책의 세 기둥은 <아주 특별한 컬렉션>, <열 개의 도시>, <우리의 시대>이다. 개성 있는 구성이며, 분량이 비교적 짧기 때문에 전철을 타고 오가는 동안 읽을 수 있었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징검다리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이것 또한 문학적 장치라는 느낌이 들었다. 통찰력 있는 질문을 던져가며 재미있게 소설을 읽는 동안 길게 여운이 남았고, 책을 덮고 나서도 자꾸만 생각나게 만드는 것이 여러 특징 중 하나이다. 그중 <우리의 시대>(1)사후에는 죽음을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 볼 수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이번 생에서는 ~ 하는 걸로와 같은 화법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라면 인류는 어떤 모습으로 바뀌게 될까?

 

 

이제 두 번의 생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존재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았고, 더는 생에 이전과 같은 가치를 두지 않게 되었다. 죽음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아니라면 왜 죽음을 두려워하겠는가? (36.p)

 

 

  ‘부활 전염병이 창궐한 가운데 한 번 죽고 또다시 살아나 두 번째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사람들의 반응과 생각, 행동은 다양하다. 부활을 재앙이라 생각하는 이들과 다시 한 번 삶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는 사람들 사이에 수많은 문제와 쟁점들이 발생한다. 사회는 혼란에 빠지고 기존이 가치와 존재에 대한 사유는 더 이상 무용지물이 되었다.

 

 

  <우리의 시대> 첫 문단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언젠가부터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든 것이 더는 순조롭지 않다. 매일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매주 우리 사회는 더한층 미쳐 돌아간다.’ 미쳐 돌아간다는 문장 뒤에 집단적 부활을 시작으로 우리 시대의 다섯 가지 모습이 등장한다. 여섯 작품 모두 문학적 장치를 통한 대단한 통찰을 보여준다. 그 중에서도 현대 문명이 아무리 급속하게 발전했고, 그 속도가 더욱 빠르게 진행된다고 해도 죽음만큼은 인간 밖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삶과 죽음이 무의미해지고 더 이상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나 두려움 없이 한없이 주어지는 많은 것 중 하나가 된다면 그야말로 미쳐 뱅글뱅글 돌아가다가 결국은 죽음을 갈구하는 사회가 될 지도 모른다. 부활하지 않고 한 번만 살다간 사람을 제일 복 받은 사람이라 부러워하는 사회, 그것이야말로 신의 저주가 아닐까. 삶이 있어 희망을 품고 앞을 향해 걸어가다가 좌절과 고통에 괴로워하기도 하지만, 생명 곁에 한 몸처럼 붙어 있는 죽음이 있어 추억과 그리움이라는 소중한 보석을 마음 어딘가에 품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죽음 없이는 삶이 더욱 부조리하다는 것을 알았고, 죽음이 절대적이고 쉽고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던 호시절을 못내 아쉬워하게 되었다. 요컨대 죽는 것이 안심이 되었던 그때 그 시절을. (39.p)

 

 

  이 작품을 읽으면서 트리갭의 샘물(나탈리 배비트(저자)/대교출판)에 나오는 한 장면이 생각났다. 영원히 사는 샘물을 마신 아저씨가 총에 맞아 죽은 시체를 부러운 눈으로 하염없이 바라보는 모습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에드 맥베인.로런스 블록 외 지음, 오토 펜즐러 엮음, 이리나 옮김 / 북스피어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강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새벽, 마지막 단편
<이름이 뭐길래>를 끝으로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을 다 읽었습니다. 긴긴 겨울밤 한 편 한 편 읽다보면 곧 봄이 올 것 같습니다. 지금도 뉴욕 워런 가 58번지 미스터리 서점에서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겠죠.^^
밤이 긴 겨울, 침대 위에 놓고 읽다보면 꿈속에서 미스터리 서점과 오토 펜즐러씨를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겨울의 일주일
메이브 빈치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 겨울 매서운 한파가 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간 친구는 집 밖을 나가기가 무섭다고 매일 밤 소식을 알려 왔다. 겨울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꽁꽁 얼게 만든다. 나는 겨울이란 단어를 들으면 저절로 어깨가 움츠러들고 실내에서도 한기를 느끼곤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언가 은밀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 같은 호기심이 생기기도 한다. 꽁꽁 얼어버린 차가운 바람에 맞서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따뜻한 세상과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사람들. 아일랜드 스토니브리지에 있는 스톤하우스를 호텔로 만든 치키, 리거, 올라 그리고 미스 퀴니가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이 작품의 목차는 모두 사람들의 이름으로 채워져 있다. 그러니까 작품 속 인물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난 사람들과 겪은 일들이 쌓여서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삶이란 결국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신의 축복과 은총도 사람을 통해 오고, 불행과 시련도 사람을 통해서 온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엮여진 사연들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희극인지 비극인지 알 수 없다. 비극 같은 인생 속에도 순간순간 우리를 찾아온 천사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치키, 리거, 올라는 각자 다른 이유로 고향 스토니브리지를 떠났다가 또 각자의 사연을 안고 돌아와 스톤하우스를 호텔로 만드는 일에 합류한다. 그 중심에는 오하라 집안에 자신의 스톤하우스를 빼앗길 수 없다는 미스 퀴니의 의지가 있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사람들의 재능과 능력을 알아보고 그것을 꿈꾸게 한 그녀의 혜안이 스톤하우스를 살리고 다른 사람의 삶에 생기와 아름다운 일상을 만들어내게 했다. 물론 최후의 결정은 개인의 몫이었지만.

 

 

너는 이곳을 특별한 곳으로 만들 거야. 너 같은 사람들을 위한 장소로 말이지.”

저 같은 사람은 없어요. 저처럼 유별나고 사연 많은 사람은요.”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면 놀랄걸. 치키. …… 그러니까 지금 결정해야 해. 그래야 우리가 스톤하우스를 다시 아름답게 만들 계획을 세울 수 있을 테니까.”

                                                                                    

                                                                                                                                                 33~34.p 

      

  만약에 치키에게 캐시디 여사와 미스 퀴니가, 리거에게 외삼촌과 치키가, 올라에게 데일리 선생님이 없었다면 그들은 이 힘겨운 인생의 고비를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을까? 각자의 주위를 돌아보면 우리가 만난 사람들 중에 분명히 천사가 숨어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아일랜드의 작가 메이브 빈치의 마지막 작품이다. 내가 읽은 책은 티저북으로 치키, 리거, 올라의 이야기까지 나와 있다. 이제 그녀들이 개장한 호텔로 찾아온 손님들의 이야기가 남아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그리고 문득 우리가 그 호텔로 찾아갈 손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쯤 그녀가 떠난 아일랜드는 매우 추운 겨울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남긴 작품을 읽으며 따뜻한 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베트의 만찬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이자크 디네센 지음, 추미옥 옮김, 노에미 비야무사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생 필리파를 사랑했던 예술가 아실 파팽은 노란 집에 사는 두 자매에게 위험에 처한 바베트를 도와달라고 편지한다. 그의 편지는 바베트를 살리기 위한 간절함과 함께 감추어진 축복이 담겨져 있었다. ‘바베트는 요리를 할 줄 아오.’ 두 자매가 진정한 요리사이자 예술가인 바베트의 손을 잡아주었을 때, 노란 집은 점점 따뜻하고 축복이 머무는 집으로 변해 갔다. 두 자매 또한 가난하였지만 그들이 함께 살아가는 동안 배고프지 않았고, 춥지도 않았으며, 서로를 좋아하고 존중해주는 등 마음의 풍요를 경험한다.

 

  바베트는 부지런했고 검소했으며, 사람들의 몸과 영혼을 채워줄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 냈다. 그런 그녀에게 행운이 찾아온다. 복권이 당첨되어 만 프랑을 받게 된 것이다. 두 자매는 자기들보다 부자가 된 바베트를 축복한다. 안타깝지만 그녀가 자기 집을 떠날 때, 기꺼이 고마워하며 보내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두 자매의 생각과 달리 바베트는 자신의 행운으로 죽은 목사의 생일 날, 사람들에게 만찬을 베풀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한다.

 

마님들은 매일 같이 기도하시죠. 기도할 것이 없는 사람의 마음이 어떤지 상상할 수 있으세요? 바베트가 뭘 위해 기도하겠어요? 아무 것도 없어요! 오늘 밤 저는 진정으로 기도할 것이 있어요.

35.p

 

  그녀는 자신의 돈으로 재료를 사고, 초대받은 사람들을 위해 직접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며, 그것으로 인해 진정한 기쁨을 느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것이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예수님의 산상수훈 중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는 말씀이 생각났다. 기도는 어떤 사람들이 할 수 있을까? 갈급하고 겸손하며, 낮은 마음으로 은혜를 구하는 자들이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행위가 기도라고 생각한다. 그런 바베트의 기도는 만찬이 베풀어지는 저녁 시간에 이루어졌다. 친절한 마음으로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음식을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그들은 과거 서로에게 잘못했던 일들에 대하여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며, 감사의 찬양을 부른다. 식탁은 점점 더 풍성해지고, 아름답게 변해 갔다. 두 자매를 위한 가난한 시골 사람들의 배려는 그들을 세상에서 가장 세련되고 교양 있는 사람들로 만들어 주었다. 그날 밤 눈이 내렸다. 우리의 죄가 가리우지고 사해지는 것처럼.

 

함박눈이 내립니다

함박눈이 내립니다 모두 무죄입니다 <고은의 순간의 꽃중에서>

 

  바베트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으로 음식을 만들어 사람들을 대접했다. 그리고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며, 더 큰 행복을 누렸다. ‘바베트는 요리를 할 줄 아오.’ 다른 사람의 재능을 인정해 주고 칭찬해 주는 것, 또 자신이 가진 달란트로 자기는 물론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요 가장 행복한 선물이다. 신의 은총이다. 자기 삶의 진정한 예술가만이 가질 수 있는 보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에논
폴 하딩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사람은 마음에 항상 살아있어요

                             

 

  노란 책표지를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초판 인쇄 날짜를 확인했다. 마지막 페이지에 2016310일이라고 찍혀 있었다. 마음이 아팠다. 몇 해 전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은 친구가 엄마는 돌아가셔도 사라지지 않고 가슴에 영원히 남는다고 말했다. 내게도 언젠가 닥칠 일이겠지만 내가 어떻게 견딜 수 있을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팠다. 딸 케이트를 교통사고 잃은 아빠 찰리의 고통은 극에 달한다. 철저하게 자신을 파멸로 몰아놓고, 죽음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삶을 시작한다. 슬픔을 밑바닥까지 내려가야만 다시 올라올 수 있는 것이 애도라는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오랜 시간 슬픔과 고통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이제 할 만큼 했으니 그만 슬퍼하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그런 말들을 해왔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아빠가 어렸을 때 여기 오래된 오두막이 있었어. 케이트.” 문지방이나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덤불을 발로 긁어보면서, 나는 소리 내어 속삭였다. 그런데 없네. 그냥 사라졌어.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66

 

  책을 읽는 내내 찰리의 이 독백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태어나 13년을 함께 살면서 찰리에게 기쁨과 삶의 소중함을 안겨준 케이트는 이제 세상에 없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딸 케이트를 잃고, 슬픔에 젖은 아내를 고향으로 떠난 보낸 상처 입은 가엾은 아빠 찰리만 남아 있을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 두 사람이 떠나고 혼자 남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슬퍼하는 것뿐이다. 혼자 살아있다는 사실이 미안하고, 같이 죽지 못한 것과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 등 모든 것이 쌓여서 가장 커다란 슬픔이 된다. 그 슬픔을 덜어내기 위한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본인만이 알 수 있다. 자신을 망가지게 하고, 약과 술에 육신과 정신을 모두 바쳐도 삐죽삐죽 뚫고 올라오는 딸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은 남아있는 자의 시간을 지옥을 만든다. 그리고 그 강을 건너야 한다는 것을, 슬픔의 바다를 건너 다시 태어나야 하는 애도의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하며, 주위 사람들은 그 시간을 기다려 주어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애도의 시간이 유통기한처럼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케이트가 내 삶에 기쁨을 주었다. 나는 그 아이를 전적으로 사랑했고, 내가 그 아이를 사랑하는 동안 세상은 사랑이었다. 내 딸이 죽고 나니 세상은 페허에 불과한 곳, 온통 괴물들만 나오는 연기 매캐한 꿈에 지나지 않은 곳임이 드러난 듯했다.”

315

 

  딸은 잃은 아빠의 고통이 바늘 끝에 찔린 것처럼 깊숙이 들어왔다. 얼마 전 방영된 드라마처럼 과거로 돌아가 이제는 세상에 없는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난다면 어떨까? 여자 주인공이 엄마를 만지고 따라다니는 장면을 보면서 내 친구는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나 엉엉 울었다고 말했다. 아빠 찰리를 통해 내가 배운 것은 슬픈 사람들이 충분히 울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과 견뎌주는 것, 그리고 지금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