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호밀밭의 파수꾼>/J.D.Salinger

문학작품 속 미워할 수 없는 찌질이 TOP5중 한 사람,
홀든 콜필드

그의 말투와 행동을 따라 가다보면 짜증이 나지만, 무게 잡는 인간들을 비웃어 줄 땐 짜릿하기도 하다.

우울하다고 끊임없이 외치고 있는 그가 안쓰럽고 불안하지만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는 콜빌드를 응원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 늙은 여자 - 알래스카 원주민이 들려주는 생존에 대한 이야기
벨마 월리스 지음, 짐 그랜트 그림, 김남주 옮김 / 이봄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과 서문을 읽으며 두 늙은 여자가 어떤 고난을 당하였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였는지 궁금했다. 고난 극복의 열쇠를 자기 부족에게만 전수해 준 것 같아 호기심이 생겼고, 다 읽고 나면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나의 생각은 바뀌었다. 다른 사람의 고통과 아픔을 통해 고작 지혜나 배우겠다는 자세는 잘못된 것이었다. 부족과 가족의 배신을 견디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했던 처절한 몸부림이 삶에 경외감을 느끼게 했다. 무엇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멋있는 말을 스스로 증명해 준 두 여인이 고마웠다. 그리고 포큐파인 강과 유콘 강이 합쳐지는 둑 위 텐트 속에서 어머니의 말을 듣던 딸의 고백처럼 나도 그렇게 강인하게 늙고 싶다고 생각했다.

 

  <<두 늙은 여자>>는 알래스카 인디언이 들려주는 생존에 대한 이야기이다. 알래스카라는 말만 들어도 몸이 오그라들고 강추위와 매서운 바람, 하얀 설원이 떠오른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디언들은 살기 위해 이동하고, 사냥을 한다. 생명을 가진 모든 생명체는 살기 위해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죽이고, 먹을 수밖에 없다. 특히 추운 겨울은 식량도 부족하고 기후와 상황이 더욱 열악해져 건강한 사람들도 쓰러지기 쉽다. 부족을 책임지고 이끌어야 할 족장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자기 부족 사람들을 굶기지 않고 겨울을 나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가장 힘없고, 나약하며 돌봄을 필요로 하는 두 늙은 여자-칙디야크와 사-를 버리고 떠나는 것이다.

 

- 그러니까 사람들도 생존을 위해 이따금 짐승의 방식을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젊고 힘센 늑대들이 늙어서 힘이 없어진 옛 우두머리를 달가워하지 않는 것처럼. 19.p

 

  혹독한 고통과 시련 앞에 사람들은 다양한 선택을 한다. 선택한 것에 대해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평가할 수 없다. 각자의 입장에서는 선택한 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부족의 젊고 힘 있는 다수의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잉여라고 생각한 두 늙은 여자를 버렸고, 버려진 두 사람은 자신들의 앞날을 놓고 또 다른 선택을 해야만 했다.

 

-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야 할 때는 아직 멀었어. 하지만 그저 여기 앉아서 기다리기만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죽고 말 거야. 사람들에게 우리의 무력함을 증명하게 될 거라고. 28.p

 

- 그래, 사람들은 우리에게 죽음을 선고했어! 그들은 우리가 너무 늙어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여기지. 우리 역시 지난날 열심히 일했고,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을 그들은 잊어 버렸어! 그래서 지금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거야. 친구야. 어차피 죽을 거라면 뭔가 해보고 죽자고.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게 아니라 말이야. 29.p

 

  두 사람은 살기를 선택했다. 가만히 앉아 죽는 것은 그들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뭔가 해보고 죽자는 여인의 말에 눈물이 났다. 어쩌면 그들이 무언가를 한다고 해도 살아남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그래도 살기 원한다면 사는 쪽을 선택하고 살기 위한 방법들을 생각해야 한다. 그동안 살아온 경험을 떠올리고, 현재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

 

  다른 이의 경험을 듣고 그들의 삶의 의지에 대해 박수를 보내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 고난을 당한 주체가 내가 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배신감과 추위, 배고픔, 두려움과 외로움이란 괴물이 달라붙어 하루하루 힘든 싸움을 해야 하며 버텨내야 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 고통은 누구의 책임일까.

 

  버려진 사람들도, 무거운 침묵 속에 그들을 버리고 떠나야만 했던 부족 사람들도 모두 행복하지 못했다. 아니 더 깊은 절망과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져 방황하고 주저앉아 죽음을 생각해야만 했다. 모두 다시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잘못 선택했던 순간으로 돌아가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며, 또 다른 선택을 해야만 하는 순간이다. 더욱 신중해야 하고 그만큼 선택한 것에 대한 강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 이 책에서 벨마 윌리스는 말한다. 삶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해야 할 바를 성취하는 데에는 사회에서 평가하는 능력이나 나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능력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이가 왜 안 중요하겠는가. 마흔 개의 여름이 어떻게 여든 개의 여름을 이기겠는가. 마흔 살에게 마흔한 번 째 봄은 미지의 시간이지만 여든 살에게는 무엇으로도 쓸 수 있는 단단한 기억인 것을.

시간이란 길이의 문제가 아니라 깊이의 문제이고, 그림을 그림이게 하는 것 역시 원근이 아니라 깊이(메를로 퐁티)라는 것을 칙디야크와 사가 그들이 본 여든 한 개의 여름과 일흔 여섯 개의 가을로 확인해준다. - 171.p

 

  저자의 말이 무엇보다 마음에 와 닿는 요즘이다. 지난 역사를 보며 묻고 배울 수 있게 되기를. 1919411일 임시정부수립을 기준으로 본다고 해도 백 개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오천 여개의 사계절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겸손한 마음으로 5천여 번의 사계절에게 묻고 또 물을 수밖에 없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엇이든 가능하다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게 선물처럼 다가온 순간은 무엇인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선물>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제목이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일이지만 그 문장만으로 위안을 주었기에 호기심을 갖고 더 다가갈 수 있었다. 게다가 <<올리브 키터리지>>,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의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이라니……타의적으로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 고마웠다. 그리고 선정해준 마지막 단편 <선물>부터 읽기 시작했다. 하나의 단편으로도 훌륭하지만 앞의 8편의 소설은 물론이고 작가의 다른 작품과도 조화롭게 연결되어 있어 친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최근 나에게 선물같은 순간은 무엇이었나?

 

  흘러가는 시간은 붙잡을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에 그는 잠시 가슴이 먹먹했다. -   315.p

 

  어렸을 때부터 한 동네 살면서 매우 친했던 친구에게 추석 명절을 겸하여 안부전화를 했다. 멀리 떨어져 살면서 1년에 한두 번 만나게 되고, 가끔 오해도 생기면서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생각하며 지내왔다. 그러다 예전에 살던 동네에 갈 일이 생겼고, 어렸을 때가 생각나 전화를 걸었다. 우리는 다시 옛날 어린 아이처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전화를 끊기 전 인사를 할 때, 친구는 내게 먼저 전화해 주어서 고맙다고 말했다. 친구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는 건 어색한 말투로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말할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마음이 꽉 차고 먹먹했다. 우린 다시 아무 걱정 없이 뛰어놀고, 시험을 핑계로 밤을 새며 만화책을 보거나 라디오를 들을 수는 없지만, 같은 추억을 간직하고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선물이라는 것을 안다.

 

  에이블에게는 링크 매켄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 선물이었을 것이다. 그와의 대화가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게 했고, 가난하고 어려웠던 순간 속에서도 함께 시간을 보내고, 현재의 자신을 지켜봐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해 주었기 때문이다. 아내와 딸, 그 딸의 자녀들과 우아하고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지금의 모습 속에 숨겨 둔 잊고 싶었던 진짜 자신을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을 갖지 못했다면 에이블은 바쁜 일상 속에서 진짜 자신의 모습 중 반은 잃어버리고 살다가 죽었을 것이다.

 

 에이블에게 삶이 수수께끼인 부분은, 사람들은 많은 것을 잊어버린 후에도 그것을 지닌 채 살아간다는 사실이었다. - 335.p

 

 

 그는 링크 매켄지에게 덕분에 멋진 시간 - 너무나도 터무니없어서 오히려 절대적인 해방감을 주는 - 을 보냈다고, 누가 봐도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 346.p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문장은 덤덤하고 일상적이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하고 각자의 자리로 나갔다가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듯 그녀의 작품도 일상적이다. 그런데 힘이 있고, 삶이 주는 끈적끈적한 불쾌감 속에 보석처럼 빛나는 한 순간을 찾아내게 된다. 현재의 내가 되기까지 수많은 상황과 부딪치고 견디고 깨지고 성장하며 지금에 이른 나와 주변의 사람들을 소환하게 만든다. 가장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도 손을 내밀고 잡아준 이들이 있었기에 우리의 삶이 무엇이든 가능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어쩌면 그 미소가 그들에게는 고통에 찬 찡그림으로 보였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는 지금 그들을 남겨둔 채 초록빛 콩밭을 지나며 아주 가볍게 훌훌 -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 날아 있었다. 그에게 친구가 생겼다는 더없이 아름다운 사실을 가슴속에 지닌 채 말을 할 수 있었다면 그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스노볼을 사랑하는 어여쁜 소피아처럼 에이블에게도 친구가 생겼다고. 하지만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선물이 그런 시간에 그를 찾아올 수 있다면 무엇이든 …… 그가 눈을 떴고, 그래, 바로 거기 있었다. 온전한 깨달음이 누구에게나 무엇이든 가능하다. - 347.p

 

  어제 태풍으로 인해 비가 많이 온다는 일기예보를 듣고도 엄마와 언니들과 아빠의 산소에 다녀왔다. 무섭게 퍼부었던 빗줄기도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이기지 못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지난 날 추억을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며 웃었다. 돌아가신 아빠에 대해 이야기하며 웃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어릴 적 친구도 돌아가신 아버지도 현재의 내 삶이 가능했던 이유다. 선물 같은 가을이 깊어간다. 태풍 피해가 매우 적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지 소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6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로셀로나의 골목을 거닐고 있을 때 성당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일요일 아침과 수요일 오후, 온 동네로 울려 퍼졌던 교회 종소리. 그 소리가 나면 교인들은 동네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던 교회로 모여왔다. 특히 수요일 오후, 부동산을 운영하던 친구 엄마도 겉옷을 챙겨 입고 교회로 갔고, 한의원과 내과를 운영하던 원장도 가운을 벗고 교회로 갔다. 서울 한복판에 교회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나는 파란색 성경책을 들고 친구들과 교회로 몰려가기도 했었다. 청각이 어린 시절을 소환한 사실에 놀랐다. 소설도 그럴 것이다. 더 이상 종소리는 울리지 않는다. 어린 시절 언제부터인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종은 울리지 못하게 되었고, 차츰 내 머릿속에서도 잊혀갔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외국의 낯선 도시를 여행하다 그 소리를 들었을 때 저절로 떠오른 것은 종소리가 울리던 그때의 동네 모습과 사람들, 재미있게 읽었던 어린이 잡지와 만화책 등등 이었다. 사람 안에 축적되어 있는 수많은 감각과 추억은 어느 정도일까. 그것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얼마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일까.

 

 

 앨리스 먼로의 <거지 소녀>를 읽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중학교 때, 선생님 몰래 친구들과 돌려 읽었던 하이틴 로맨스. 지금 생각해 보면 표지를 벗긴 영어 사전만한 작고 얇은 로맨스 소설을 교과서 사이에 두고 반 친구들과 돌려 읽었던 그 짜릿했던 순간에 어린 소녀들이었던 우리 마음속에 로즈와 같은 상상은 시작되었던 것 같다. 거지 소녀가 품은 당당함과 무지에 가까운 자신감은 규율과 형식 속에서 살아온 왕의 마음을 훔칠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가진 젊음과 힘으로 얼마든지 거대한 존재를 상대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은 저마다 모습만 달리 한 채 각자의 가슴에 자리했다. 처음에는 그 마음으로 로즈를 따라갔다. 가난하지만 성적이 우수하여 장학금을 받으면서도 강한 자존심때문에 습관적으로 순종이 몸에 밴 다른 가난한 장학생 그룹에 끼지 않으려는 로즈.

 

 

 그런 자신을 좋아해 주는 패트릭이 백화점을 운영하는 부잣집 아들인데다 주변 여자들과 고향 사람들까지 자신을 질투하고 부러워하고 있다는 마음에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혼을 하게 된다. <코페투아 왕과 거지 소녀>속 왕은 소녀의 어떤 모습에 이끌려 왕관을 버리겠다고 결심하게 되는 것일까? 마찬가지로 패트릭은 로즈의 무엇에 이끌리어 그녀를 사랑하고 삶을 바꾸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하고 결정한 일에 절대적 자신감을 드러낸다. 나는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내가 실수를 하더라도 선택한 그와 무언가가 그것을 보상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앨리스 먼로의 간결하면서도 세밀한 문장과 섬세한 묘사, 독자의 마음을 빨아들이는 흡인력 있는 심리와 서사는 쉽게 다가가 갔다가 그 자리에서 가슴을 건드리고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인생은 내가 결정한 대로 흘러가는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때로는 이유도 조짐도 없이 행복이, 행복의 가능성이 나타나 그들을 놀라게 하곤 했다는 의미다. 그런 때 그들은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다른 외피를 두른 것 같았고, 눈부시게 상냥하고 순결한 로즈와 패트릭이 각자의 평상시 자아의 그림자 속에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그때, 그에게서 자유로워진 상태로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열람석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 그녀가 본 사람은 바로 그 패트릭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때 그를 내비뒀어야 했다.

178.p <거지 소녀> 중에서.

 

 

 눈앞에 정확한 그림이 그려져 있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렇게 바라볼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이 어리석은 길이라고 해도, 혹은 내 힘으로 얼마든지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 확고한 상황에서는 어떤 일이 닥칠지 몰라도 달려가 부딪쳐봐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로즈도 그런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눈앞에 파도가 몰려오는 것을 보고 감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 파도 속으로 달려가 온몸이 흠뻑 젖도록 파도를 타는 사람이 있는데 로즈는 후자에 속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가 만들어 낸 인생 속에서 얼마 정도는 그런 로즈 같은 삶을 지나온 사람이기도하다.

 

 

  앨리스 먼로의 거지 소녀속에 나오는 <장엄한 매질>부터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까지 작품들 한 편 한 편이 완성도 높은 단편이면서도 로즈와 그 주변의 사람들과의 삶을 한 올 한 올 촘촘하게 짜내어 삶이란 연작으로 만들어냈다.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내고 견뎌가는 가운데 인생이란 긴 시간을 만들어낸 것처럼 말이다. 그 속에서 로즈와 우리는 돌아가면 다시는 하지 않을 부끄럽고 후회스러운 일들을 벌이기도 했고, 무모하고 어리석은 선택을 통해 삶을 뒤죽박죽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모두 우리가 했고 그래서 힘들었지만 그로 인해 조금씩 인생에 연연해하지 않게 되었던 순간들. 때로는 서글프고 씁쓸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지금. 그런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그리고 앨리스의 소설이 참 아름답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명할 수 없지만 인간과 삶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은 문학이 주는 위로고 힘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미스 해티가 로즈에게 했던 질문을 계속해서 곱씹는다.

 

 

네가 시를 잘 외울 수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고 생각해선 안 돼.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

자신이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것이 로즈에게 평생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사실은 그전에도 단조로운 징소리처럼 자주 귓전을 울리던 말이었기에 그녀는 그 말에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제야 미스 해티가 가학적인 선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353.p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중에서

 

 

  좋은 질문이다. 다만 좋은 대답을 찾기에 오래 걸릴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무덤에 묻힌 사람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마거릿 밀러 지음, 박현주 옮김 / 엘릭시르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도 얼마 전에 기분 나쁜 꿈을 꾸었다. 친구와 여행을 갔을 때, 잠결에 문득 이빨 가는 소리에 잠을 깼다가 다시 잠이 들었는데 아래 이빨이 쑥 빠지는 것이었다. 어른들이 이빨이 빠지면 누군가 죽는 꿈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서 번뜩 정신이 들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아침에 친구가 기분 나쁜 꿈을 꾸었다며 점심 시간이 지나면 알려준다고 말했다. 친구의 꿈은 물건을 모두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아마도 우리는 여행 중 느낀 피로와 긴장때문에 좋지 않은 꿈을 꾸었나보다.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숙소를 나서기전 우리는 잠시 기도를 했다. 마음이 편해지길 바라면서 말이다. 프로이트는 꿈은 우리 소원의 성취라고 했다. 우리가 바라는 일이 꿈을 통해 나온다고.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이 꿈을 통해 나타나거나 순간 스치고 지나갔던 장면 혹은 들었던 소리가 무의식 속에서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이 묻힌 무덤을 꿈속에서 보게 된 데이지 베이비는 그 꿈때문에 일상이 깨어지지만 호기심과 알 수 없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끝까지 그 꿈을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탐정 피나타가 데이지에게 힘이 되어 준다. 주인공 데이지는 남편의 뜻대로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연극을 할 수도 있었지만 결국 꿈을 통해 나타난 자신의 존재와 근원을 찾아가는 모험을 하게 된다.


"좋은 결혼 생활에는 일정 부분 역할극이 포함되어 있어요."    - 63.p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행복하게 살 것인가 아니면 고통스럽더라도 나의 진짜 모습을 찾아갈 것인가의 선택에서 데이지는 후자를 선택한 것이다. 결혼이 연극이 아니듯이 평생 맡은 역할만 하면서 살 수 없는 것이니까. 꿈은 아무 힘이 없지만 그것을 풀이하고 해석해 나가는 사람에 의해 인생은 다르게도 펼쳐질 수 있는 일이다.


"난 그날을 잃어버린 게 아니에요. 잃어버리진 않았죠. 그날은 아직도 어딘가에 있어요. 여기저기. 오래전에 썼던 어딘가에요. 그 날은 아직도 그대로 있어요. 그래요. 숨어 있긴 하죠. 하지만 잃어버리진 않았어요."  -  91.p


 살다보면 감추고 싶은 것이 많을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든 아니면 자녀나 타인들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우리는 누구가 가지고 있다. 할 수 있다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일들이 벌어졌던 시간과 장소로 돌아가고 싶겠지만 그런 일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불행한 일들이 벌어지고 그것을 무마시키기 위해 또 다른 일들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과 만나게 되고, 우리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인연이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일어난 일은 반드시 원인과 결과가 있고, 그로 인해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댓가를 치루며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잃어버렸거나 잊어버렸다고 생각해도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니까.


 그래서 생각한다.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러나 설사 후회할 일이 발생하였어도 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데이지의 부모나 남편 짐이 그녀를 독립된 존재로 보았거나 자신과 동등한 입장에 서 있는 부인으로 인정하였다면 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진짜 삶에서도 이런 부모와 남편들이 꽤 많이 존재하기에 그녀의 선택과 행동을지지했다. 이제 진짜 자신의 인생을 시작할 선에 서 있는 데이지를 응원하면서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