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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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유정 작가의 소설은 처음 읽었다. 다른 작품들을 읽을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아마 나도 모르게 인간 내면에 잠재하는 에 대하여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방송에 출연한 작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2년 동안 집에서 소설 집필에만 몰두했던 시간들과 인간 속에 존재하는 선과 악에 대하여. 작가의 노력과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궁금해졌다. 소설은 주관적 장르이기에 정신의학적 지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선과 악을 오가며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문제적 인간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또 다른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준다. ‘오늘 밤은 1부까지 읽고 자야지.’라고 했던 다짐이 첫 장을 읽는 동안 불면 속으로 사라졌다. 몇 년 만에 밤을 새어 날이 밝아올 때까지 소설을 읽었다. 다 읽고 났을 때의 질문과 물음표가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돈다. 선과 악은 우리 안에서 어떻게 시작되고 자라나는지, 그것은 어떻게 작용하고 갈라지는지. 그런 면에서 인간은 영원한 수수께끼이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제목처럼 행복하기를 꿈꾸며 각자만의 행복을 찾아 나아간다. 그러나 과정 속에서 완전한이란 단어를 붙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인간 자체가 완전하지 못한 존재이기에 우리가 완전한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완전한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떨어져 나가고 희생되어야 했던 많은 사람들과 사건들을 떠올리며, ‘완전이란 단어가 불행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해석되었다. 그러나 최초의 인간인 아담이 금지되었던 선악과에 손을 댄 후로 인간은 계속해서 완전한 경지에 이르기 위해 도전하고 좌절한다. 바로 그 때가 악한 본성이 우리 안에서 신이 될 수 있다고 꿈틀대는 순간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신으로 삼고, 그 속에 매몰되어 타인을 죽음까지 끌고 가는 악력이 무서웠다.

 

-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는데? 한번 구체적으로 얘기해봐.”

……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

나는 그러려고 노력하며 살아왔어.” 112~113.p

 

 

  행복에 대하여 묻는 남편의 질문에 모든 사건을 끌고 나가는 유나의 대답이 소름끼친다. 완전한 행복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는 것. 자신은 그러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다고. 그녀는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데 일말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면 가차 없이 제거하며 살아 왔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르시시스트이면서 사이코패스인 유나가 밉지 않았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어린 시절 부모와 떨어져 지내야 했던 시간은 그녀에게 치유될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겼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러한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본인 또한 피나는 노력을 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형성된 그녀 안의 광기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부터 괴롭히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정해진 순서대로 유나와 그들은 불행해졌다. 자신을 떠나려고 하는 사람들, 자신을 거부하고 거절하는 사람들을 향한 분노가 유나 안에 잠재된 악한 본성에 불을 붙였을 것이다. 거기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은 가장 친밀하고 약한 여섯 살 먹은 딸 지유이다.

 

 

- 엄마는 규칙을 정하는 사람이었다. 규칙을 어기면 벌을 주는 사람이기도 했다. 엄마에겐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았다. 용서를 빈다고 용서해준 적도 없었다. 지유는 가차 없이 벌을 받아야 했다. 고아가 되는 벌이었다. 31.p

 

 

  엄마라는 이름으로 얼마든지 어린 딸을 조정하고 움직일 수 있었을 테니까.

 

 

  만약에 유나가 아닌 언니 재인이 할머니 집으로 보내졌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었을까. 부모와 떨어진 어린 손녀에게 할머니가 엄격하게 다루지 않고, 무조건적인 사랑과 연민의 정을 더해 키웠다면 유나의 성격은 달라졌을까. 왠지 잘 모르겠지만 상황에 대한 경중이 다를 뿐 유나의 악한 본성은 사라지지 않고, 감정의 찌꺼기가 되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을 것 만 같았다. 그것은 유나를 통해 들여다 볼 수 있는 나와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했으니까

 

 

  유나가 완전한 행복을 위해 가차 없이 뺄셈을 하는 동안 어린 지유는 공포와 불안에 시달렸다. 지유의 영혼이 점점 가늘어지다가 어느 새 텅 빈 채 사라지고 말 것 같아서 불안했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어린 영혼을 감싸주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옆에서 격려하고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오롯이 그 길을 살아내는 것은 자신뿐이다. 그런 면에서 어린 딸 지유는 타인이 자신을 향해 베푼 사랑과 따뜻한 선의에 대해 공포와 두려움을 무릅쓰면서도 결코 외면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악한 본성에 비해 선한 본성이 절대로 약하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작가는 우리에게 개인은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점에서 고유성을 존중받아야 함과 동시에 누구도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 또한 인정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고 믿는 순간, 개인은 고유한 인간이 아닌 위험한 나르시시스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말이다. 그동안 자의든 타의든 우리 모두는 각자 세상의 중심이자 특별한 존재라고 주문을 걸며 살아왔다. 그렇기에 무시 받거나 인정받지 못하면 괴로워하거나 분노했다. 그 에너지가 어느 쪽을 향해 나아갔는지 알 수 없지만.

 

 

 이쯤에서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나 자신, 현재 살아 숨 쉬는 소중한 존재이나 언젠가 한 줌 흙이 되어 이 세상에서 사라질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 너무 완전해 질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편하게 내 주위를 마주한다면 조금은 나 자신과 세상에,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관대해 질 수 있을 것 같다. 악한 본성만큼 우리 내면에 자리한 선한 본성도 힘이 세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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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번째 파도
최은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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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읽는 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 작품을 읽는 내내 생각했던 질문이다. 차를 타고 달려가면 금방 나올 것 같, 바다를 품고 있는 도시 척주’. 그곳에 가면 여전히 보건소에서 일하고 있는 송인화와 그의 동료들을 만날 것 같다. 또 그들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가운데 불쑥 떠오르는 사람들 때문에 아파하는 모습도 떠오른다. 작가의 필력과 끝까지 밀고 나가는 문장의 힘에 의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가 울컥거리며 올라왔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작가가 펼쳐놓은 세계 속으로 들어가 그 속의 인물들과 함께 숨 쉬고 방황하며 같은 체험을 하고 돌아오는 것인가 보다. 왜 공장이나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는 시간이 흘러도 반복되는 것일까? 우리 주변에서 수없이 일어나고 있는 사고들이 소설 속 아버지들의 목숨을 앗아간 시멘트 공장의 사고들과 겹쳐졌다. 그 안을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인간의 끊임없는 탐욕과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소설 속 평안해 보이는 소도시 척주에서도 인간의 탐욕과 사익을 위한 음모와 비밀들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사람들을 덮는다. 탄광과 시멘트 공장이 있었던 마을답게 나이 많은 사람들은 신경통과 알 수 없는 병에 시달린다. 그들에게 남은 것이란 완치될 수 없는 병과 불안한 마음뿐이다.

 

 

-약물 오남용은 듣던 것보다 심각했고 약에 대한 노인들의 집착은 집도 부술 것 같았다. 그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무언가에 서서히 중독되거나 세뇌 당해온 사람들 같았다. -134.p

 

 

- 지병이 없는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몸이 아픈 사람들이 하는 생각은 하나였다. ‘안 아팠으면 좋겠다.’

 

 

-인간을 가장 손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 것도 약이었고 순간적으로 구원할 수 있는 것도 약이었다. 척주 땅에서 시멘트보다 강하고 시멘트보다 독한 것. 완치 가능성 없는 인간들의 비명을 길들일 가장 강력한 진통제. - 274.p

 

 

  이렇게 약해진 사람들의 마음을 이용한 사이비 종교의 교주, 자본가, 정치가의 암약은 척주시의 사람들을 둘로 갈라지게 만든다. 그 중심에 송인화가 있다. 시멘트 회사에 다녔던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녀의 삶은 척주와 멀어졌다가 가까워지기를 반복한다. 육지와 바다사이에서 밀려왔다가 멀어지는 파도처럼 말이다. 그것은 송인화의 옛 연인이었던 윤태진이나 사랑하게 된 공익근무원 서상화도 마찬가지이다. 척주는 그들을 놓아주지 않는다. 묶여있는 매듭을 풀기 전까지. 그들은 척주시를 휘감고 돌아가는 과거와 현재의 정치적 상황과 아픈 가족사를 좇으면서 사랑을 잃고 만나게 된다. 살아가다보면 처연한 아픔과 사랑을 느끼게 된다. 자신들을 향해 무섭게 돌진하고 있는 불행의 파도를 뻔히 바라보면서도 사랑하고, 연약한 어깨를 내어주며, 손잡아 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끝까지 나아가게 된다.

 

 

- 세상은 이런데 마음 기댈 데가 없잖아요. 누가 나만 믿어하고 확 끌어주면 눈물 날 것 같아요. - 175.p

 

 

- “상황이 만만치 않겠지만 마음 약해지지 마.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그 사업이 얼마나 필요한지. 여차하면 내가 보건소장이든 시장이든 찾아가서 드러누울 테니까, 밀고 나가.”

송인화는 은남 바다를 배경으로 앉아 있는 하경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인생의 고비마다 옆에 있어준 사람이었다. 밀고 나라가는 말. 송인화는 하경희한테 그 말을 들으려고 은남에 온 것 같았다. -193.p

 

 

  힘들고 불행한 일이 찾아와도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편이 되어 준다면 힘을 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그 한 사람들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다. 최은미 작가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대해 쓰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진심을 다해 인물들을 사랑할 수 있었고 그들의 고통을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었던 시간에 대해 말했다. 소설의 힘은 지금, 당장,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책을 읽은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요즘 문득 척주시의 사람들과 사건들이 떠오르는 것을 보니 말이다. 나라면 한 직장에서 살갑게 따랐던 동료와 정치적 반대편에 서서 갈등하게 될 때 어떻게 할까. 아무리 애를 써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의 인식과 싸우며, 강도 높은 일과를 감당해야 한다면 어떻게 버티어 낼 수 있을지 자주 생각하게 된다.

 

 

 누구나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아홉 번째 파도를 맞이하게 되겠지. 그전에 짜잘한 파도에 맞서 부딪치고 넘어지며 파도를 타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도망가지 않고 그 파도 위에 올라탈 수 있도록. 파도에 맞서지 않고 그 위에 올라타는 상상만으로 마음이 조금 가벼워 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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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8-06 17: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서니데이 2021-08-06 1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hope&joy 2021-08-06 1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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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프라맹스를 찾아내려면 디테일에 집착해야 합니다. 인간은 항상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무한한 잠재력도 갖고 있으며, 매우 대중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매우 개인적입니다. 예측하기 어려워서 매력적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소비자의 특성이라서 앵프라맹스를 찾는 일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렇더라도 그 출발점은 바로 ‘사람‘입니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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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심장 - 교유서가 소설
이상욱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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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읽었다. 첫 페이지에 입이 왼쪽으로 뚫린 물방울 모양의 우주선이 그려져 있었다. 이상욱의 단편집 기린의 심장에 실린 첫 번째 소설 <어느 시인의 죽음>에 나오는 우주인 가브족이 타고 온 우주선이다. 처음에는 뭐 이런 소설이 있나 그랬고 읽으면서 재미있는데 라고 했다가 마지막엔 살짝 마음이 찡했다.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이상욱만의 소설이었다.

 

 

아저씨가 보기에도, 저에겐 미래가 없는 것 같나요?”

 

 

그때, 미래가 있냐고 나에게 물었지? 매일매일 그 질문에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모르겠어. 아마 지금껏 그런 걸 가져본 적이 없어서겠지. 그런데 오늘, 나는 난생처음으로 미래라고 할 만한 걸 얻었다. 바로 이 통장이야. 이 숫자가 보이니? 넌 이게 믿어지니?” 33

 

 

  <어느 시인의 죽음>을 읽으며 는 아직도 우리의 미래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조금 모양이 빠진다 해도 어른은 어른다워야 한다. 미래를 죽여서 과거를 유지할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어른다움이란 무엇일까.

 

 

  과학이 발달하여 육체를 동기화하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베타인 와 알파인 고객이 하나로 설정되면 기간이 도래할 때까지 동기화를 멈출 수 없다. <라히이나 눈>의 나오는 성재는 여섯 명의 알파와 동기화 되어 있다가 발목 염좌로 죽었다.

 

 

식혜를 담아주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아빠와 삼촌이 왜 싸우는 거냐고.

그림자 때문이지.

그림자 속엔 어두운 마음이 숨어 있거든. …… 저 나이가 되면 누구나 그림자에 쫓기며 사니까. / 저도 그림자에 쫓기게 되나요? / 그렇게 되겠지. / 무서워요. 할머니.

도망치는 방법이 하나 있지. …… 열심히 달리면 된단다. 달리는 동안엔 발에서 그림자가 떨어지거든. 어두운 마음이 아무리 손을 휘저어도 발목을 잡지 못한단다. 41

 

 

라히이나 눈(Lahaina Noon)'은 하와이어다.

그림자가 없는 세상이라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50.p

 

 

  인간의 욕망은 측정 불가능한 빠른 속도로 어디쯤 닿지도 않고 계속 나아가기만 한다. 그 욕망은 멈출 수 없기에 누군가 사라져주어야만 하겠지. 그림자 없는 세상이라니. 그곳을 찾아 떠나려고 했던 성주의 삶이 불안했다. 달리기를 멈추었을 때 그들의 그림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그들이 도망치지 않기를 바랐다. 또한 우리 모두 각자의 그림자를 안고 세상을 통과하기를 기원했다. 어둠도 세상의 일부이니까.

 

 

왜 하필 기린의 심장일까? ……

목이 길잖아요. 시야가 넓어서 먼 곳에서 다가오는 위협을 빠르게 인지하죠. 다리도 길어서 작정하고 달리기 시작하면 꽤 빨라요. 그야말로 최적이에요.”

최적이라니?”

뭔가를 숨기기에 기린만한 게 없다는 뜻이죠.” 98

 

 

…… 인간은 절대로, 기린의 심장을 이길 수 없다네. 입으로는 누구나 마음이 소중하다고 말하지. 말로는 뭘 못하겠나. 발가벗겨진 인간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기린의 심장을 구걸하는지 여러 번 봐왔다네.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지. 이 계집을 보게. 어머니의 병? 기린의 심장으로 얻으려던 게 고작 그것뿐이었을까? 116

 

 

  경찰관 K는 경찰서에 오게 된 소설가 에게 자신이 겪었던 기린의 심장에 대하여 들려준다. K의 이야기는 딱딱하고 차가운 경찰서에서 환상의 동물원으로 독자를 빨아들인다. 너무 피곤해서 버스 안에서 잠깐 졸았을 뿐인데 왜 이토록 낯선 세계로 와 수수께끼 같고 괴기스러운 상황에 처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단지 관리인의 요구대로 기린의 심장을 훔치러 온 소녀를 죽여야만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 소설을 읽다보면 동화 속으로 빠져들었다가 다시 환상 속으로 이동하는 느낌이 든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소설을 읽으며 작품속 인물에게도 작가에게도 묻고 또 물었다.

 

 

  나는 <<기린의 심장>>에 실려 있는 아홉 편의 소설이 다 좋았다. 소설은 신기하고 묘하면서도 유머스럽고 괴기했다. 그리고 작은 알맹이 하나 마음에 박히게 만들었다. 소설 속 세상은 작가의 상상력과 노력 속에 새롭게 잘 버무려졌고, 읽는 독자에게도 거부감 없이 다가온다. 소설이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보다 늦게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문장과 문장이 밀고 나가는 무게와 감동은 무겁고,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인간의 어두운 마음을 들여다보게 해준다. 그런 면에서 소설이 주는 힘은 크다. 오랜 시간 일상을 열심히 살면서 밤마다 자신만의 세계로 들어가 열심히 글을 썼다는 작가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그가 열심히 써놓았던 소설들은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 날아가 또 다른 세상이 되겠지. 나도 그 세상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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