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알랭 드 보통 지음, 이강룡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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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알랭 드 보통의 러브스토리는 세권 모두 원제와 번역본 제목이 다르다. 가장 유명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On love', '우리는 사랑일까'는 'The Romantic movement', 그리고 이책은 'Kiss & Tell'- 원래 'kiss & tell'은 유명한 인물과 맺었던 밀월 관계를 언론 인터뷰나 출판을 통해 대중에게 폭로하는 행위라 한다. - 이다. 이 책은 '이사벨'이라는 어떤 여자의 전기 - 그러나 전형적 문구로 미화되지 않은, 일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솔직한 전기 - 이자, 관찰자의 심리묘사까지 곁들인, '사랑'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사실적 풍경들로 가득찬 에세이다.

사랑에 빠져드는 과정은, 타인에게서 내가 보고싶은 면들을 찾아내는 것부터 시작된다. 내가 알고싶지 않았던, 혹은 보고싶지 않았던 면모들까지 그 사람의 일부라는 것이 때로는 사랑을 흔드는 장애물이 되기도 하지만 대개 오랫동안 지속되는 사랑은 그런 삐걱거림까지도 받아들인 후에 가능하다. 이 책은 보통의 로맨스와 달리 사랑의 대상이 미화되지 않고 오히려 '관찰'을 통해 '분석' - 결국 이사벨이라는 특정 개인을 정형화 시키는 것에는 실패하지만! - 된다. '사랑'이 주는 달콤한 행위는 거의 없고 - 사실 이사벨을 관찰하는 남주인공과 이사벨이 '사랑'하는 관계라는 증거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 '내'가 관찰하기로 한 '이사벨'의 일상생활과 '나'와 '그녀'의 대화를 통해 그녀가 어떤사람인지 담담히 그려낼 뿐이다.

서로 이해한다는 것. 타인에게서 내가 닮고싶은 모습을 보고 또 그와 닮아가고 싶어하는 건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공통된 갈망이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100% 이해한다는 건 언제나 힘든 일이다. 열렬히 사랑하는 연인들과 심하게 부딪히는 건 정치적 견해 차이나 환경오염에 대한 의견 등 무겁고 외부적인 화제가 아니라, 치약짜는 방식이나 컵을 두는 방식 등 소소한 일상습관인 경우가 많다. 이사벨이 말하듯 혼자일땐 아무렇지 않았던 것들이 사적인 것으로 바뀌는 미묘한 지점들을 - 누군가의 머리카락을 보는것과 욕실에서 발견하는것의 차이, 물을 마실때마다 새 컵을 쓰는 남자와 낭비라고 생각하는 여자의 차이 - 하나씩 발견하고 공유해 가는 긴 과정을 거쳐야, 비록 동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차이를 존중해 줄 수 있다면 비로소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것이다.

드 보통의 소설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보바리부인', '안나 카레리나'같은 소설과 등장인물이 자주 거론된다. - 이 책엔 특히 이사벨의 어린시절 회고가 많이 등장하기에 프루스트적 요소 -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물들을 매개로 예전 이야기로 빠져드는 - 가 많다. - 아쉽게도 이 책에 거론되는 많은 소설이나 음악, 지명에 대해 아는게 거의 없어서 비유의 내용을 모른 채 대충 짐작만으로 읽은 구절이 많다. 그동안 소설을 등한시 해 온 벌을 받은건지.

드 보통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재밌게 읽어볼 만 하다. 단,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와 같은 마법같은 로맨스 - 사랑에 빠진 영혼이 겪게되는 절절한 심정 - 를 기대하지는 말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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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15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랭드 보통은 이번에 나온 행복의 건축을 통해 만나게 되었습니다. 여행의 기술과 불안을 덤으로 얹어줘서 정말 기뻣다는..ㅋ 자기만의 색깔이 뚜렷한 작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책도 나중에 꼭 찾아봐야 겠군요.^^

Jade 2007-07-15 03:05   좋아요 0 | URL
알랭 드 보통 글이 마음에 드시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꼭 읽어보세요 ^^ 저도 평소 소설을 잘 안읽는데 그책은 정말 재밌었어요. 다른사람에게도 읽어보라고 권하게 되고 ^^
 

미학 오디세이 세트 - 전3권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3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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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궁금해서 보게되는 책이 있고, 저자의 유명세 때문에 보게되는 책이 있다. 사실 '미학'이란 학문은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주제는 아니기에 - 약간은 현학적 냄새도 나고 - 여러번 마주쳤지만 선뜻 손이가는 책은 아니었다. 그러다 저자의 신간 '호모 코레아니쿠스'를 보고 책 내용보다는 저자에 대해 알고싶어졌다. 이름부터 딱딱한 '미학'에 대해 세권이나 되는 적지않은 분량을 대체 어떤 내용으로 채워 놓았을까. 사실 '내용'보다는 말을 풀어나가는 작가의 말솜씨가 궁금했던건지도 모른다.

철저한 구어체. 인터넷이 생활이 된 지금에야 낯설지 않은 문투지만 책이 처음 나왔을 94년엔 상당히 충격적이었을것 같다. 내용은 전혀 가볍지 않지만 무거운 얘기를 적당한 유머를 섞어 무겁지 않게 풀어내는 방식은 - 요즘에라면 분명 장점이지만 - 한편으론 비판받지 않았을까. 뭐 어쨌거나 94년에 찍힌 책이 아직까지 꾸준히 읽히는 걸 보면 - 총 판매부수를 볼때 전혀 적지않은 양으로! - 이 책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는건 명백한 사실이지만.

어떤 학문에 대한 '오디세이' - 원래는 고유명사지만 어떤 긴 여행등을 가리키는 말로 일상화 된 - 는 학문 전체에 대한 개괄적이고도 간결한 설명을 요구한다. 분야에 상관없이 시중에 나온 개론서들은 대개 갓 입문한 사람들은 생소하기만 한 어려운 단어들을 동원해 장황한 각론들을 요약해 놓은 듯한 느낌을 주곤 한다. 이 책이 상대적으로 쉽게 읽히는 이유는 기나긴 미학의 역사를 - 안에 담긴 철학까지 포함해서 - 어설프게 축약하지도, 또 지리하게 부연설명하지도 않으면서 중간중간 적절한 삽화들로  부족한 공백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또 처음 읽는 사람을 당황하게 만드는 특이한 구성 - 큰 틀로는 시간순으로 전개되지만 각각 독립된 챕터들, 잊을만 하면 등장하는 플라톤/아리스의 대화, 그리고 각 권의 큰 주제를 담당하는 세 명의 화가의 세계 - 역시 신선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독한 후, 이어진 각 부분들끼리 따로 읽어보면 또다른 재미를 준다. 마치 챕터마다 각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소설처럼.

전시회 등에서 무심히 마주쳤던 그림들이 내포한 당대의 철학적 논쟁거리나 작가가 고민했던 부분들에 대한 설명을 보면 불현듯 전시회에 가고싶어진다. 혹은 쟁점이되는 철학논쟁부분에 관심이 쏠려 관련 철학서적에 손이 가기도 하고. 일상성을 깨뜨린 마그리트의 세계를 들여다 보고 있으면 갑자기 주위의 사물들이 낯설어지는 짜릿한 경험을 하게 되기도. 여러면에서 볼 때 독자에게 다양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선물상자 같은 - 함께 온 작가노트도 작은 선물같다! -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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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npix 2007-07-13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부터 정말 많이 들어본 책이라, 언젠가 읽어야지만 하고 있었는데, 이 리뷰를 보니 더 읽고 싶어지네요. 으.^^

Jade 2007-07-14 00:06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세권이고 '미학'이다보니 처음엔 잘 안읽히는데 1권을 무난히 읽으면 2,3권은 술술 읽히는거 같아요 ^^
 
요즘 무슨 고민 있으세요?
천 개의 공감 - 김형경 심리 치유 에세이
김형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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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생각이나 감정을 타인과 공유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는 것이다. '천개의 공감'이란 단어는 무엇을 뜻하는 걸까.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는 상담자에게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보다 그 사람의 감정을 인정해 주는게 우선이다. 불합리해 보이는 생각과 행동들은 다 있을 수 있는 일이라 말해주는 '공감'이 이 책이 갖는 '치유'적 힘이다. 

왜 정신분석의가 아닌 작가에게 상담을 할까. 상처받은 사람들이 원하는 건 난해한 이론으로 무장한 '분석'이 아니라 '공감'과 '인정'이다. 물론 김형경 작가가 개인적으로 심리치료를 받고, 또 많은 공부를 했기에 중간중간 정신분석적 용어들 - 주로 프로이트 이론 - 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상담에 대한 답변은 대개 따뜻하고 정감있는 문장들로 채워져 있다. 작가는 분명 정신분석학에 대해 아웃사이더지만 주변부는 - 중심에서는 가질 수 없는 - 도발적 시선으로 접근할 수 있어 때로는 더 창의적이다. 가끔은 아웃사이더들이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집어내듯이. 순수하게 정신분석적 측면에선 이 책이 형편없을 수도 있지만 실제 고통받는 사람들에겐 작가의 감수성으로 빚어낸 공감의 말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강압적이지 않게 넌지시 제시하는 치유의 길 역시.

작가는, 정신분석은 '사랑 앞에서 좌절하는 사람들을 위한 학문'이라고 말한다. 남녀의 사랑이든, 부모의 사랑이든, 친구와의 사랑이든 인간이 맺는 관계는 기본적으로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마음을 전해가는 '사랑'과정이다. 그러나 모든 사랑은 자신을 위한 행동이기에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바탕이다. 책에 실린 수많은 사례들과 답변을 아우를 수 있는 한가지는 "자기자신을 믿어주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다.  얼룩덜룩하고 울퉁불퉁한 불완전한 내면까지도 그대로 인정해주는것. 과도한 나르시시즘이 아닌 건강한 자기애를 가져야 비로소 다른사람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 상대방의 결점까지도.

책을 읽다보면 작가의 답변에 동의할 수 없는 사례들도 많지만 나는 김작가의 글을 - 그녀가 삶을 사랑하는 방식들을 - 사랑한다. 지나치게 프로이트 이론에 끼워맞추려 한다며 그녀의 글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차피 정신분석 이론 공부하려고 작가의 치유에세이를 읽는것은 아니니까. 동의할 수 없는 답변들마저도 두세번 읽다보면 삶에대한 작가의 애정이 묻어나와 스스로에게 무심했던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늘 상처받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건 내 감정에 귀기울이고 인정해주는 자신과의 공감이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도 내 인생의 작은 전기들이 내 앞에 펼쳐지고 있다."                                      (알랭 드 보통,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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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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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에 대해 전혀 문외한인 내가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드 보통의 눈이 무엇을 포착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늘상 존재하지만 마음을 열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하는 달콤한 풍경과 사물이 속삭이는 말들.

옮긴이의 후기처럼 드 보통의 글의 중심엔 늘 "나"가 있다. 소설이든, 에세이이든 그의 글은 늘 "나"의 입장에서 타인 혹은 세상이 어떻게 다가오고 해석되는지 세세하고 재치있게 풀어놓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선 "나"를 중심으로 건축을 바라보기 보다는 "나"와 "건축"사이의 "관계"에 주목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일정시간 머무르는 어떤 공간적 구조물로서의 건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나"에게 속삭이는 - 우리의 시선을 붙잡는 외관, 손과 발에 닿는 벽면과 바닥의 감촉, 코끝에 스치는 나무냄새, 그리고 우리를 짓누르거나 붕 뜨게 만드는 전체적 분위기 - "주체"로서의 건물을 이야기한다. 나를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만드는 건축물과의 만남은 내가 마음을 열어놓는 한 끊임없이 변하는 "관계"로서 다가오게 된다.

"...고립된 개별자로서의 나는 그 자체로서는 결코 주체가 될 수 없다. 그 때 나는 그냥 존재자요 실체일 뿐이다. 내가 주체가 되는 것은 오직 내가 너와 함께 우리가 될 때이다. 여기서 '우리'는 개별자들이 결속하여 이룬 합성물 같은것을 가리키는 이름이 아니라 다만 나와 너의 만남의 현실성을 표현하기 위한 이름이다.....만남은 언제나 관계로서 활동으로서 일어나는 것이지, 결코 실체나 속성으로 현전하는 것이 아니다." (김상봉. 서로주체성의 이념. 도서출판 길. 2007)

책에 실린 많은 흑백사진들을 그에 대한 드 보통의 해석 - 적절한 시공간속에 위치하여 엄숙한 감동을 준다든가, 보는사람을 지루하게 만든다든가, 전통과 현대가 사이좋게 손을 맞잡고 있다든가, 소통 불가능 앞에 체념하여 공존에 의미를 둔 듯 한다든가 등등 딱딱한 분석이 아닌 서정적 감수성으로 마치 문학작품을 평가하듯 건축물의 인상을 묘사한다 - 과 함께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건축물 - 혹은 건축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 이 속삭이는 말이 들리는 듯 하다. 침묵으로 일관하며 땅에 세워진 큰 덩어리가 아니라, 자신도 일정한 시공간을 차지하고 세계를 이루고 있는 일원이라며 가만히 우리를 응시하는. 어떤 "생명체"같은 느낌으로.

"The architecture of Happiness" 라는 원제는, 사실은 "우리에게 행복을 선사하는 건축물"에 대한 설명만은 아니다. 건축물이 차가운 '사물'이 아니라 우리에게 행복이나 우울을 안겨줄 수 있는, 우리와 상호작용 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 우리의 이상과 희망을 '표현하는' 대체물이자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상과 희망을 '안겨주는' 주체일 수 있다는 것. 실용성과 외관만을 강조한 건축물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는지 - 르 코르뷔지에의, 류머티즘과 폐렴을 불러일으킨 건축물을 예로들어 - 담담히 서술하며 건축과 인간의 상호관계에 대해 말한다.

책 내용 외에 외형적 면에서 덧붙이자면, 먼저 플라스틱으로 표지를 두른것이 신선하다. 단순 하드커버가 주는 답답함이 없으면서도 표지의 각은 살려주는, 또 큰 사이즈임에도 '가볍다'는 느낌을 주는 장점이 있다. - '건축'의 다양한 소재들이 주는 효과와 일맥상통한다! - 아쉬운 점은 같이 실린 건축 사진들이 페이지의 일부분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한 페이지, 혹은 양쪽 면을 다 채우는 것이었으면 더 좋았을것 같다는 것이다. - 귀퉁이의 사진은, 위아래에 쓰여진 글들이 건축물에 집중하는것을 방해한다. 한 면을 채우는 사진을 가만 보고있으면 잠시 책에서 빠져나와 딴 곳에 가있는듯한 효과를 준다.

드 보통의 글은, 읽는 사람에게 일상의 감각이 트이는 예민한 짜릿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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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뒤흔드는 소설
봄날 1
임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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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광주에 다녀왔다. "화려한 휴가" 개봉이 얼마 안남아서일까. 불현듯 망월동 묘지에 가고싶었다. 새 소리마저 구슬프던 그곳.

1985년생인 나는, 부끄럽지만 대학교 2학년때까지 1980년의 광주를 알지 못했다. - 물론 지금도 책이나 사진등을 통해 아주 조금 알 뿐이지만 - 수능에 매진할 때 임철우의 '사평역'은 알았지만 '봄날'은 그 존재조차 모를정도로.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같은 책을 보면서도 사실 광주의 참극은 파란만장했던 현대사의 여러 사건과 크게 다르지 않게 여겨졌었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 - 똑같은 텍스트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천양지차로 다가온다 -이 그토록 실감나게 다가올 줄이야. 지도해 주시는 선생님이 지나가듯 물어본 "'봄날'은 읽어 봤냐?"  그때부터 광주는 역사속 사건이 아닌 어떤 실체로서 다가왔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을 읽으며 어떻게 이럴수가 있느냐고 분개하기도 하고 소위 지도층이란 집단에 대해 비난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 일들은 나와는 거리가 먼, 이미 지나간 일일 뿐이었다. 그러나 광주를 알게되면서는 무관심했던 나 자신에게 화가났다. 채 30년도 지나지 않은 일인데. 그 일을 겪어낸 사람들이 아직 살아있는데. 살아남은 사람들은 - "화려한 휴가"라는 작전명을 받았던 공수부대원들조차 그 경험의 충격으로 정상적으로 생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 오히려 더 고통받고 있는데 어쩌면 이리도 몰랐을까.

인간은 이성적 설득보다 감성적 충격에 더 극적으로 변한다고 한다. 딱딱한 역사서에서 만나는 광주와 구체적이고 생동적인 장면으로 만나는 광주는 간접경험의 스케일이 다르다. 이 책은 일종의 다큐멘터리 형식처럼 - 대부분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면이 읽는 사람을 더 슬프게 하지만 - 구체적 인물과 사건들의 집합체로서 그 날을 묘사한다. 잔혹하지만 차마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책. 여느 슬픈 드라마에서 느끼는 마음의 동요가 아니라, 냉정한 현실앞에 슬픔마저 침묵하는, 오히려 가슴에 불을 지펴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드는 책. 

2005년 처음 망월동을 찾을 땐 텅 빈 묘지가 을씨년스러워 씁쓸함을 느꼈었다. 다시 찾은 망월동은 어쩐일인지 차려입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무슨 기념촬영을 하는듯이 보여서 무슨 날인가 했더니, 그날 법무부장관을 비롯하여 17대 대통령 후보자들의 참배예정이 잡혀있었다. '님을 위한 행진곡'과 함께 참배식이 거행되는데 어떤 의미에선 저번보다 더욱 씁쓸했다. 꼭 기자들과 측근들을 대동하고 보란듯이 참배해야 하는건가. 혼자 조용히 와서 먼저 가신 분들을 위해 눈물흘리면 안되는 건가.

내 또래의 대학생들은, 많은 경우에 1980년의 광주를 잘 알지 못하고, 안다고 해도 어떤 '역사속 사건'으로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 아직 대학의 노래패들은 '님을 위한 행진곡'을 배우지만, 그 노래의 엄숙하고 장중한 분위기와는 달리 엉뚱한 장면에서 불리기도 한다 - 아직도 어떤 인터넷 사이트에선 광주를 "남파간첩"들의 폭동이었다고 묘사해 놓는다. 그리고 아직 그 일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자라고 나서서 사죄하는 사람이 없다.

영화 "오래된 정원"을 보고 원작 소설을 읽으며 80년대의 분위기가 어땠는지, 386세대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젊은 시절이 어땠는지 알고싶었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억압과 통제속에서도 6월항쟁 및 여러 운동으로 많은 것을 바꾸고자 했던 사람들의 노력에 나도 무언가 해야하지 않을까 라는 의무감 같은것을 느끼기도 했다. "화려한 휴가"를 보고나면 어떨까. 나같이 어린 관객이라면 충격적 영화한편으로 그치지 않고 이 소설도 읽고 광주에 대해 더 공부하게 되길, 그리고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서 무언가 느끼는 것이 있길. 무언가 달라지는 계기가 되길

신영복 선생님 글의 문구가 떠오른다.

"The longest journey for anyone of us is from head to heart.                                          

Another longest one is from heart to f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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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7-09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rom heart to feet! 새길 문구입니다.
마음을 울리는 과장되지 않은 리뷰에요^^

2007-07-10 0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09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10 0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