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얼굴 - 총을 들지 않을 자유와 양심의 명령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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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남의 의심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자기 믿음을 다른 사람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폭력을 동원하는 것도 불사합니다.-7쪽

아무리 험악한 상황이라도 일단 사람과 사람이 솔직하게 이야기를 시작하면 많은 것이 바뀌게 마련입니다.... 용서와 화해의 가능성 자체를 부인하는 순간,세상에는 오직 폭력에 의한 정의만 남게되니다. -79쪽

"이 기쁜 소식을 가져온 자는 그가 살아온대로, 그가 가르쳤던 대로 죽었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죽었다. 그가 인류에게 남겨놓은 것은 바로 실천이었다." - 니체-117쪽

앞으로도 정당한 전쟁 이론을 살려내려는 노력은 끝없이 계속 될 겁니다. 예수님이 평화에 별 관심이 없으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노력과 함께 말이지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전쟁을 정당화해야 할 현실적인 필요성 때문입니다.-155쪽

추상적으로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나 쉽습니다. 고상하게 평화를 이야기하면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습니다. 차라리 자기가 말하는 평화의 의미를 제대로 모르는 것이 속 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평화를 실천하기 시작하는 순간, 여러분은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전쟁을 거명하며 반대하기 시작하면 모든 사람이 여러분에게서 등을 돌릴 것입니다. 위선적인 세상은 진심으로 평화를 실천하려는 사람을 결코 용납하지 않습니다.-221쪽

우리가 누군가를 죽이려 할 때 우리 대신 그 일을 수행할 살상 전문가를 뽑아 그들에게 그 일을 맡긴 뒤 잊어버리는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되며, 언제나 우리 자신이 그 현장에 개입하여 직접 그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248쪽

라인홀트 니버 같은 정당한 전쟁론자는 집단이나 국가가 평화주의르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개인 차원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기독교인의 윤리적 선택일 수 있음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니버 자신은 어쩔수 없이 전쟁 참여를 용인하지만, 자신의 입자이 지닌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위험성을 잊지 않기 위해서 비록 입장은 달라도 전쟁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329쪽

서구 사회는 끔찍한 종교전쟁을 겪으면서 관용을 배웠습니다. 다른 생각에 대한 관용이 사회 전체의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임을 알게된 것입니다.-3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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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얼굴 - 총을 들지 않을 자유와 양심의 명령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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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평화롭지 않다. 평화는 전쟁중이다."

적어도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평화"라는 단어는 아무 분쟁도 없고 오직 사랑으로 가득찬, 모든 정치적 이념에서 벗어난 피안의 세계에나 어울릴 법한 느낌을 준다. 평화라는 단어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단어가 있을까.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엔 평화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누구나 존중하고 찬양하는 그런 깨끗한 단어인줄만 알았다. 아는것은 상처받는 것이라는 말은 이럴때 쓰라고 있는것일지도. 정적인 이미지로서의 "평화"라면 모를까, "평화로움"를 추구하는 일은 여느 전쟁 못지않게 수많은 상처를 내포한다. 부시 대통령처럼 자신의 이익 추구에 스리슬쩍 "평화"를 끼워넣는 경우라면 더욱더.

나는 기독교인도 아니고 병역의 의무도 지지 않는 여성이기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 대해 이렇다 할 입장이 없었다. 아니, 관심이 없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일지도. '여호와의 증인'에 대해선 - 의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선 쉽게 납득되지 않는 - '수혈거부'라는 교리가 깊이 각인되어 "이상한 집단" 혹은 "사이비 종교"라고까지 생각했었다.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면 좋을걸 뭘 그렇게 힘들게 사는걸까 비아냥거리기도 하고. 그러다 박경철 의사의 에세이에서, 여호와의 증인 교인인 어느 인턴에 관한 에피소드를 보고, 아주 잠시 생각했던적이 있다. 이 사람들도 나와 같이 사는 사람인데 이 사람들의 주장에도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하는게 아닐까. '수혈거부'를 비난할 게 아니라 같이 다른 해결책 - 인공혈액 등 - 을 찾아봐야 하는게 아닐까. 등등. 사람은 '객관적'인 사실을 두곤 관대하지만 자신의 경험과 관련된 일에 관해선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 예를들어, 자신이 누구보다 수학을 못한다는 것은 인정하면서, '디워'를 둘러싼 논쟁에선 다른 사람의 입장을 수용하지 못하는 것처럼. - 자신이 옳다고 믿어온 것과 타인이 옳다고 믿는것이 왜 꼭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어떤 주제에 관해 "잘 아는" 사람은 글을 쉽게 쓸 수 있다. 이 책은 기독교나 병역거부자에 대해 거의 아는게 없는 독자들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부드럽고 겸손한 구어체와 적절한 예시들. 소수의 입장을 대변하는 책은 공격적 어투인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관심이 없던 독자들도 귀 기울이게끔 자분자분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하지만 읽는 내내 마음은 편하지 않다. 그들이 자신이 믿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평화로움"을 위해 인생을 두고 고민했을 때 나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나 자신도 내가 믿는 어떤 이념을 위해 용기있게 소수의 길을 선택할 수 있을까.

몇십년, 길게는 몇천년 전 부터 세계 곳곳에서 평화를 위해 집총을 거부한 사람들과 온갖 이유를 내세워 전쟁을 정당시 하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모순을 보고 있노라면 "평화"의 의미는 뭘까 곰곰히 생각하게 된다. 저자는 분명 사회적으로 소수인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옹호하지만 그들이 옳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르다는 이분법으로 결론짓지는 않는다. 분명 모두가 행복한 "평화로움"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스스로 어떤 길을 택하느냐는 자신의 신념에 달린 것이기에. 오히려 이 책은 독자 개개인이 "평화"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이끌고 더 나아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역설"의 경지로 이끈다. 모순과 역설의 차이는, 전자가 대립되는 상태에 그친것이라면 후자는 상반되는것이 공존하며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는 것 - 이것이 모순되는것이 통합된 '만돌라'의 치유능력이란다 -  이다.

책을 읽다 문득 겹쳐지는 풍경 하나. '일해공원' 이름을 바꾸려는 사람들과 '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사람들'간에 작은 충돌이 있었댄다. 그 시대를 살지 않은 나에겐 이해되지 않지만 적어도 '전사모'들에겐 그 시절이 자신이 지켜내야 할 '이상향'이자 '종교'인가 보다. "광주에서 일어난 것은 폭동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광주 사람들은 적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는데 합천사람들은 고맙게 생각한다"라고 소리쳤다는 어떤 노인이 떠오른다. 사실 유무를 떠나서, 실제 광주가 "폭동"이었으면, 그렇게 마구 죽이고 유린해도 좋다는 말인가. 아무리 전쟁의 '정당성'을 역설한 들, 전쟁터에서 자행되는 민간인 학살과, '소모품'처럼 죽어가는 군인들의 생명까지 덮어줄 수 있는 '정당함'이란 것이 있을까.

책의 대부분은 종교적 신념에 의해 병역을 거부한 특정 교인들의 사례에 집중되어 있지만, 곳곳에 종교와 상관없이 "생명의 존엄성"이란 신념으로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또 '정당한 전쟁'을 주장하는 사람들에도 '진짜 정당한 전쟁론'을 펴는 사람들 - 대부분의 전쟁은 정당하지 않으므로 결과적으로 평화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 의 주장도 곳곳에 배치되어 '평화'와 '전쟁', 더 나아가 생명 전반에 대한 첨예한 대립각 속에서 자신만의 해답을 찾도록 이끌어낸다. 기독교인이 아닌 내겐 생소한 성경구절과 '예수님'을 찬양하는 문구들이 약간 껄끄럽긴 하지만 "생명"에 초점을 둔다면 무난히 읽을 수 있고, 반대로 다른 시각으로 기독교인들을 볼 수 있게 해준다. 때문에 비기독교인에게 더욱 추천하고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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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8-25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인지, 필연(?)인지, 내 인생의 책에 등장하는 책들이 주루룩 나오는걸 보고, 너무 기뻐하고 있어요. ^______^

Jade 2007-08-25 13:45   좋아요 0 | URL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ㅎㅎ 다음 리뷰가 "서로주체성의 이념"이라면 좋아서 기절하시겠어요 ㅋㅋ

마늘빵 2007-08-25 23:26   좋아요 0 | URL
이야. 내가 완전 사랑하는 책들만 줄줄이. ㅠ-ㅠ (<-이거 오랫만에 써보는데)

Jade 2007-08-26 08:11   좋아요 0 | URL
ㅎㅎ 하지만 사실 "서로주체성의 이념"은 도저히 엄두가 안난다는 거 -_-;;

프레이야 2007-08-25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이드님, 정말 뜻깊은 독서를 하셨군요. 저도 담아두겠어요^^

Jade 2007-08-26 08:12   좋아요 0 | URL
^^ 제가 아는 식견이란게 좁고 얕다 보니 새로운 관점을 던져주는 책들이 너무 많아요~~ ㅎㅎㅎ 혜경님도 의미있는 독서 되시길 ^^

웽스북스 2007-08-26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너무 좋아요 ^^ 김두식 교수님의 글쓰기, 생각 모두모두 좋아하는 아가씨랍니다 제가 ㅋㅋ

Jade 2007-08-26 08:10   좋아요 0 | URL
ㅎㅎ 사실 웬디양 님 리뷰읽고 봐야겠다 생각해서 지른거랍니다. ^^
 
두 글자의 철학 - 혼합의 시대를 즐기는 인간의 조건
김용석 지음 / 푸른숲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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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탄생에서 소멸에 이르기까지 그와 연관한 행위는 폭력적일 수 있기 때문에, 생명에 관한 모든 행위에서 세심한 주의와 배려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28쪽

유혹은 기술과 전략 이전에 생명력의 발현이다. 밀고 당긴다는 것 자체가 생명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건강하지 못한 생명은 지속되는 밀고 당기기의 긴장을 견뎌내지 못하고 빨리 결말을 내려 하거나 손쉽게 포기한다.-64쪽

'유혹 당하기'는 곧 '욕망 채우기'와일치한다. 유혹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는 수동적으로 보이지만, 유혹이 곧 욕망을 실현하는 기회라는 점에서는 매우 능동적이다.-67쪽

유혹한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인간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되고, 유혹 당하기는 단순하게 수동적 행위가 아니라 '유혹을 받아주는' 지혜를 발휘하며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행위가 된다.-69쪽

"고통을 명백히 들추어내고자 하는 필요성이 모든 진실의 조건이다" - 아도르노-75쪽

"고통은 인간 본성에 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 없이 괴로워하지는 않는다. 아니 적어도 그런 희망이 있기 때문에 괴로워한다." - 카사노바-76쪽

희망을 현실로 극복하는 에너지로 내세울 때마다 우리는 그 진지함을 저울질해보아야 한다. 아울러 희망의 이름으로 바라는 바가 실현될 가능성이 설득력있게 제시되는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다짐과 조언으로 연명하는 삶은 자칫 더욱 절망스럽기 때문이다.-86쪽

혼자 있는 영혼은 그 지평을 무한히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그래서 고독한 사람은 엄청난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것이 또한 고독한 사람의 낭만성이다.-116쪽

후회는 과거를 향한 것이고, 희망은 미래를 향한 것일 뿐, 둘 다 현재에 없는 시간에 대한 감정이다. 후회는 '이미'일어난 일들에 대한 감정이고, 희망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한 감정이다. 이런 점에서 둘은 상반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재에 없는 그 무엇에 대한 감정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그러므로 이 두 감정은 '허전함'이라는 공간에서 만난다.-179쪽

순수는 순간으로 존재하지만, 그것은 우리 삶에 영원히 남는 감성적 경험이 된다. 여기에 순수의 존재적 의미가 있다. 순수는 감성적 경험의 순간으로 존재한다.-201쪽

진짜 소신을 중요시하는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생각해오던 것과 믿어오던 것을 수정할 줄 안다. 소신을 내세우고 지키며 굽히지 않는 것 이상으로 소신을 관리할 줄 안다......진정으로 소신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소신에 귀 기울이고 그것이 부각되도록 하며, 그것이 지켜지도록 배려한다. 이것이 소신 있는 사람의 겸허함이다...결국 소신의 종합적인 차원은 타자를 배려하는 것이다. 얼른 보아 소신은 매우 개인적이고 독자적인 차원을 갖는 것 같지만, 사실 무엇보다도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 덕목인 것이다. -264쪽

포기는 상대의 힘을 아는 것인 반면, 체념은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쩔 수 없이 포기하지만, 알아서 체념한다. 포기는 힘에 꺾이는 것이지만, 체념은 힘을 거두는 일이다. 그러므로 '쉽게 포기한다'는 말은 맞아도 '쉽게 체념한다'는 말은 맞지 않는다 깨달음을 얻는 일에 용이함이란 없기 때문이다. 체념은 '그만두고 거두는 일'에도 공을 들인다.
-274쪽

소외된 자들의 삶은 쓸쓸하고 괴롭지만 삶의 진정성마저 상실한 건 아니다. 그들은 투박하고 누추한 생활환경 속에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고 있다. 마치 이 세상에 완전한 순수도 없지만 순수의 완전한 상실도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2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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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교육의 파시즘 - 노예도덕을 넘어서 프런티어21 1
김상봉 지음 / 길(도서출판)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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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멀지 않은 학창시절. 교과서들은 대부분 재미없고 딱딱하지만 특히 도덕교과서는 유난히 지루하고 따분했었다. 뻔한 얘기들. 유치한 사례. 시험때도 도덕 문제의 절반은 '평범한 상식을 가진 학생'이라면 누구나 맞출 수 있는 뻔한 문제였고 나머지는 특정 용어의 암기였던 것 같다. 친구들과 '도덕선생님은 하나도 안 도덕적이야"라며 킬킬거리기도 하고. 요즘 시험 기간에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시험 전 정리를 해주다가 가끔 다음날 수학과 같이 보는 과목을 물어보곤 하는데 그 과목이 '도덕'인 경우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외울게 너무 많아요~"울상이다. '기술가정'처럼 도덕도 하나의 암기과목인 셈이다.

흔히 고지식하고 원리원칙적인 사람을 보면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사람같다'라고 말하곤 한다. 우리가 배우는 도덕교과서는 그런 '답답한' 사람을 양성하기 위한 것일까. 두꺼운 교과서엔 너무 뻔하거나 현실세계와 동떨어진 이야기가 가득하다. 하지만 차라리 그 얘기들이 너무 당연한 진리여서 배울 필요가 없는 것이었으면 나을걸. 우리가 '당연하다고 배워왔던 것들이' 불순한 의도성 아래 치밀하게 짜맞춰진 특정 논리라면. 그걸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왔는데, 사실은 진리가 아니라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 간극은 어떻게 메워야 하나.

道와 德은 한자문화권에서 두루 쓰이는, 유교적 색채가 짙은 단어다. 세상을 아우르는 큰 진리 혹은 바람직한 인간상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무난하지만 실제론 시대마다 또 사상가들마다 '도'와 '덕'에 담는 의미는 다르다. 예를들어 노자의 '도덕경'은 공자 혹은 맹자가 화두로 삼은 '도'와 '덕'과는 성격이 확연히 다르고, 후자 역시 후대로 내려오며 시대마다 조금씩 다른 색채를 띤다. 어떤 보편적 진리가 존재한다고 해도 시대에 따라서 늘 똑같이 적용되는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가 배우는 '도덕'교과서는 적어도 현 시대에는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를 가르치는게 목표일텐데 그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너무 추상적인 말만 반복하거나 혹은 '도덕'이라는 미명 아래 슬그머니 전혀 보편적이지 않은 특정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거나

이 책에선 먼저 박정희/전두환 시대를 거쳐 '온순한 국민'을 양성한다는 목표에 걸맞게 '도덕 교과서'에 주입된 '파시즘'적 요소들을 쏙쏙 집어낸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보편적 가치와 행동의 예로 '새마을 운동'을 든다거나, 갈등은 무조건 없어야 좋다는 식의 논조,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전제로 한 예절의 강조, 국가에 대한 맹목적 충성 등. 후반부로 갈수록 철학 얘기가 덧붙여져 나처럼 철학에 문외한인 사람에겐 점점 읽기가 힘들어지나 첫장만큼은 잘 읽힌다. 아마 후반부에 비해 구체적인 예로 설명하기에 더 잘 와닿는지도. - 여담이지만, 논술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 '일상적인 것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키워주는' 읽기 자료로 읽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 나는 중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기에, 당연히 도덕시험도 늘 100점에 가까웠고 시험때면 밑줄을 그어가며 달달달 암기했던 '성실한(!) 학생이었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슬그머니 화가 난다.  정말 도덕교과서에서 주장하는 것들은 '진리'인줄만 알았었는데. "이건 순 교과서가 학생들에게 사기치는 거잖아!"

후반부로 가면서 지금의 피상적이고 왜곡된 도덕교육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도덕'이 올바른 인간을 양성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스스로 '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실제 생활에서 일어나는 도덕적 딜레마들을 두고 '뻔한 도덕적 해답'말고 자신만의 '해답'을 생각해보도록, 궁극적으로는 철학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솔직히 말하면 후반부로 가면서는 책을 '이해'했다기 보다는 저자의 주장에 따라가기도 버거웠다. '철학적' 쟁점을 이해 혹은 비판하려면 나 스스로가 그만한 식견을 갖춰야 하는데, 하다못해 도덕 교육의 딜레마에 대해 고민이라도 해봤어야 할 터인데, 언제 한번 교과서가 왜곡되었을거라 - '민족의식'이 강한 국사교과서도 아니고 하물며 도덕교과서가! - 고민해 봤어야 말이지. 그저 저자가 던진 화두를 놓고 짧은 머리로나마 생각해 보는 것 밖에.

기억나는 에피소드 하나. 나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때, 그것이 수학이든 과학이든 사회든 최대한 주변적인 설명을 덧붙여 '이해'시키려고 애쓰는 편이다. 5지 선다형인 경우 답이 안되는 것은 왜 맞는지/틀린지 하나하나 말해보라고 하기도 하고. 얼마 전 중1 사회를 가르치다 마주친 대목. "플랜테이션은 유럽인의 자본과 원주민들의 노동력, 열대 기후를 이용해서 대규모의 열대 과일을 재배하는 것. 원주민들의 생활 수준향상에 기여함"이라나. 휴. 답답한 마음에 한 20여분간 유럽인들의 '착취'에 대해 설명했지만 중 1 아이들이 과연 얼마나 이해할 수 있었을까.

에피소드 둘. 서남 아시아와 동아시아의 종교적 분쟁에 대해 설명하는데 한 아이가 묻는다 "근데 왜 종교 때문에 싸워요?" 할말이 없다. 십자군전쟁은 중 2나 되야 배울텐데. 어디까지 설명해줘야 할지. - 어찌 보면 인간 본성에 대한 '성선설'적 입장보단 '성악설'적 입장에서 도덕 교육을 시작하는게 더 효과적일지도 모르겠다. 인간본성은 많은 부분이 도덕적이지 않으니 모두 행복하게 살기위해 의식적으로 도덕적으로 살기위해 애써야 한다는. - 이것저것 횡설수설 설명하다 다시 아이에게 되묻는다. "아프간 샘물교회 피랍자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물론 아이들의 대답은 예상대로다. '불쌍하다', '무고한 사람들을 가둬놓으니 나쁜 사람들이다' 등등. 그래서 거친 비유를 한마디 던진다. "샘물교회 사람들이 선교하고자 아프간에 간 행동은, 일종의 '성전'을 수행하고 있는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일제시대 일본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한국 사람들에게 우리 같이 일본 천황을 모시자고 으리으리한 신사를 지어놓고 참배하는 행동과 비슷한거다." 순간 아이들의 표정에 어이없음이 묻어난다.

에피소드 셋. 휴가나온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 하다가 사뭇 정치적인 얘기까지 나왔다. 그 친구놈은 뭐랄까. 스스로 '정의로운' 사람이라 여기는 아이다. 내가 묻는다 "근데 요즘 길거리에 노숙자들이 부쩍 는 것 같아. 그 사람들 다 사연이 있을텐데. 사회에서 뭔가 해줘야 하는거 아닌가?" 친구 왈  "그런 사람들 대부분이 일 할 능력이 있는데도 안하는 사람들이야. 서울역 가면 멀쩡하게 생긴 아저씨들이 접근해선 '어이 거기 군인, 나 라면사먹게 500원만 줘봐' 이런다니까. 그런 사람들까지 일일이 먹여살려줘야 되냐?" 흠 정말 주변에서 '일하지 않으면서 남의 도움을 받아 살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많이 들었다. 하지만, "일하지 않는 사람"은 도와줄 가치가 없는 건가. "열심히 일하는 것이 미덕"인 것은 분명 청교도적 색채가 강한 말인데. 언제부터 그게 '진실'이 되어버린 걸까. 같은 시공간에 존재하는 타인에게 어떤 '책임감'을 가지면 큰일이라도 나는건지.

저자의 말대로 "스스로 생각하고 너와 더불어 주체로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을 길러내는 도덕교육이 이루어 지기엔 현실이 너무 갑갑하다. 답이 정해진 시험으로 어떻게 '생각'을 키워낸단 말인가. 이 책은 도덕교육에서 시작하지만 사실은 교육 전반에 대한 쓴소리다. 소위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는 입시체제에 허덕이는 고3 아이들과, 좋은 대학을 위해 중3때부터 고등학교 수1, 수2를 공부하는 아이들을 보면 무섭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저자가 바라는 교육은 아직 먼 이상향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어쩌랴.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 '우공이산' 되길 바라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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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8-20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뒤로 갈수록 힘들었을텐데 수고했네. 그만큼 생각하는게 많았던 책이었길. 이러니까 꼭 내가 사준거 같다. -_-

멜기세덱 2007-08-20 23:26   좋아요 0 | URL
나도 이 책 읽고 싶어요....ㅎㅎㅎㅎ 이러니까 꼭 사 달라는 거 같다.-_-
근데, 두 분이 언제부터 다정한 오누이처럼 말 트기로 하셨어요? ㅎㅎㅎ 부럽게시리....ㅋㅋㅋ

Jade 2007-08-20 23:37   좋아요 0 | URL
글쎄요. 전 말 트기로 한 적 없는것 같은데...ㅎㅎ 그럼 저도 반말해도 되는건가요? ㅋㅋㅋ

dalpan 2007-08-21 00:58   좋아요 0 | URL
"악법도 법이다"를 말그대로 해석케했던 우리의 도덕교육이 공자왈 맹자왈에 지배이데올로기이 슬쩍 덧붙이기에 얼마나 능수능란했던가요? 다 배운사람들이 그리 만든거란 생각에 더 난감해지죠. 추천들어갑니다.

건그렇고...뭐야 이거? 다 트는거야? 그런거야?

마늘빵 2007-08-21 08:13   좋아요 0 | URL
그게 말하다보니 반말이 됐다는... -_-;; 음. 제이드님 다시 존대모드로?

Jade 2007-08-21 08:17   좋아요 0 | URL
ㅋㅋ 왜요? 전 반말하고 싶었는데..ㅋㅋㅋㅋㅋ

Jade 2007-08-21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정치나 사회 교과서 등에서 "악법도 법이다"는 주로 '법'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사람들을 속박하기 위한 구실에 많이 붙어있던 기억이 나요... 수능 끝난 후 논술 준비 하면서 이런저런 관점들 접하면서 어찌나 어지럽던지...생각있는 선생님들도 학교에서 왜곡된 가치들에 대해 일일이 설명해주거나 아이들 개개인의 생각을 키워주긴 어려울 거 같고, 결국 어렸을 때 부터 이런저런 책을 많이 읽거나 가정에서 잡아줘야 할 텐데요. 영어/수학 공부에 치여 사는 요즘 같은 때에 어려운 말이겠죠..

ㅋㅋ 아프님의 말 한마디에 "야자타임" 시작되는 분위기...ㅎㅎ

웽스북스 2007-08-21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공감합니다 제이드님, 관심이 가는 책이네요 ^^ 다음 번 구매할 때 참고해야겠어요 감사합니다 ^^ (땡스투 기능이 이래서 생겼나봐요 ㅋㅋ)

Jade 2007-08-21 16:16   좋아요 0 | URL
ㅎㅎ 좀 어려워서 저도 뒷부분은 이해 잘 못했지만, 읽어보라고 권해드리고는 싶어요 ^^

누에 2007-08-21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학교에 워낙 맺힌게 많아 추천! ^^ 특히 '악법도 법이다' 정말 뜨악! ㅠ.ㅠ


Jade 2007-08-22 00:02   좋아요 0 | URL
ㅎㅎ dalpan님은 정말 꼭꼭 찝어서 잘 말씀하신다니까요~ ㅎㅎ 추천 감사요 ^^
 
도덕교육의 파시즘 - 노예도덕을 넘어서 프런티어21 1
김상봉 지음 / 길(도서출판) / 2005년 10월
품절


국가가 소중한 것은 그것이 나와 너, 즉 우리의 서로주체성의 실현태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국가는 그 이상적 의미에서 볼 때 나의 자유와 주체성 그리고 너의 자유와 주체성 그리하여 우리 모두의 자유와 주체성의 지평이요 실현태인 한에서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이다.-46쪽

교과서는 자신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파업한다는 입장과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면서 파업하는 것은 나쁜 일이라는 입장을 대립시킨 다음, 이 두 입장을 절충하여 "자신들의 권익을 향상시키기 위해 시민생활에 불편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마지막 수단으로서 파업하는 행위는 나쁘지 않다"는 원칙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는 파업을 하지 말라는 말과 같다. 어떤 파업이 시민생활에 불편을 주지 않고 수행될 수 있는가? 모든 파업은 직접 간접적으로 시민생활에 불편을 끼친다. 그리고 파업의 효력은 바로 그런 불편에서 나오는 것이다.....모든 파업이 원칙적으로 시민생활에 불편을 끼침에도 불구하고 성숙한 시민사회가 그것을 용인하는 까닭은 우리 모두가 언제라도 마지막 수단으로서 파업에 호소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56쪽

교과서는 반론을 피하기 위해 자명한 것처럼 보이는 명제들을 애호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런 명제가 동시에 아무런 내용도 없는 추상적인 명제라는 것을 의미한다.-79쪽

도덕적으로 사유하고 행위한다는 것은 삶에서 부딪히는 개별적이고 일회적인 문제들을 할 수 있는 한 보편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대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데 도덕성이란 사유와 의지의 보편성에 존립하는 것이다.-103쪽

이 땅에서 진보의 가장 큰 적은 무지이다. 그리고 수구집단의 가장 큰 무기도 무지이다. 무지와 싸우는 것이야말로 이 나라에서는 사회적 진보를 위한 가장 중요한 실천적 투쟁에 속한다.-113쪽

우리는 오직 스스로 자신의 삶을 전체로서 조감할 수 있을 때 온전한 의미에서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119쪽

진리는 단순한 발견과 습득의 대상이 아니라 언제나 해석의 대상이다.-133쪽

생각은 폐쇄적으로 고립된 마음의 일이 아니라 언제나 있음과의 만남으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바르게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생각의 형식 논리적 규칙들을 습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존재
또는 현실과 올바르게 만나는 법을 익힐 때 비로소 달성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136쪽

스스로 생각하고 더불어 생각하는 것도 마지막에는 현실과 온전히 만나기 위해서이다.-140쪽

반성은 대화이다. 그것은 일차적으로는 자기와의 대화이며 보다 근원적으로는 타인과의 대화이다....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에 대한 시금석은 사물 자체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홀로주체의 사유와 반성 속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나와 너의 만남 속에서 최종적으로 규정되는 것이다.-178쪽

주체성이 실천적 의미에서 참된 만남과 감사에 존립하는 한에서, 도덕의 과제는 한편에서는 참된 만남의 추구요, 다른 한편에서는 참된 감사의 의식이다.-195쪽

이념으로서의 세계는 오직 종합을 통해 가능하다. 하지만 도덕적 이성이 도덕적 판단력과 다른 까닭은 이성이 선과 악이 얽힌 도덕적 문제항황을 삶의 총체성 속에서 생각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241쪽

욕망이 절제되기 위해서는 먼저 표출되어야 한다. 표출되기도 전에 억압된 욕망은 반드시 일그러진 얼굴로 다시 돌아오게 마련이다. 그럴 경우 욕망을 통제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다. 우리는 먼저 학생들이 자기들의 욕망을 정직하게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욕망 앞에 똑바로 마주서도록 해주어야 한다.-252쪽

분노해야 할 일에 대해 분노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도덕교육의 중요한 과제이다. 이를 위해 먼저 교사는 자연스럽게 분노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그는 학생들 앞에서 올바르게 분노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281쪽

박정희나 전두환에 대해 분노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참된 도덕성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살인자들에게도 분노할 때조차 그들 개인에 대한 맹목적 증오에 빠지지 않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애써 추구해야 할 정신의 긍지일 것이다.-283`쪽

오직 사랑이 있는 곳에서만, 그것도 보편적 사랑의 이념이 효력을 가지는 곳에서만 그 이념의 구체적 규정으로서 당위규범이 효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당위규범의 질료적 뿌리는 나 자신이 강요 없이 느끼는인간에 대한 보편적 사랑의 감정이다. -287쪽

자본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생명이 어떻게 도구화되는지를 이해하게 함으로서 현대 자본주의 문명의 근본적인 반생명적 경향에 대한 비판적 안목을 기르게 해야한다. ...내가 내 마음속에서 인간에 대한 보편적 사랑을 스스로 느끼고 그 사랑에 이끌려 마땅함으로 나아가고 그 마땅함의 의식이 도덕적 규범과 법칙에 대한 존경심과 의무감으로 나타날 때, 비로소 인간의 도덕성은 타율적 강제가 아니라 참된 의미의 자기강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289쪽

저항할 줄 아는 사람만이 자유인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저항해야 할 때 저항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도덕교육이 소홀히 할 수 없는 과제인 것이다.-292쪽

정의는 이념적 의미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게 대하는 것이지만, 구체적인 현실에서 그것은 약자 편에 서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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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8-20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다 읽은거?

Jade 2007-08-20 13:12   좋아요 0 | URL
일단 일독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