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영혼을 훔친 노래들 - 고전시가로 만나는 조선의 풍경
김용찬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수능 언어영역에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것은 시-고전문학이다. 시는 함축적이어서 어렵고 고전문학은 생소한 단어가 어렵고. 그런데 '시조'는? 다행스럽게도 시조는 길이도 짧고 내용도 대충 뻔하다. (혹은, 그런것들 위주로 배운다) 군데군데 섞인 한자도 어렵지 않고 대개 우리말이라. 정말 '교과서'같이 뻔한 시조도 있고 비유가 재미있는 사설시조도 있고 수능문제에서 다루는 시조들은 비교적 한정된 주제라 그나마 '만만한' 고전운문이다.

초장부터 왜 '수능'을 들먹이는가. 이 책에서 다루는 시조들은 절반 이상이 '수능 언어영역'을 위해 배웠던 친숙한 작품들인데다 마치 학생들에게 설명하듯 시조의 주제와 (지은이가 있는 경우라면) 당시 시대적 상황들을 자세히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주제별로 묶어놓은 구성도 그렇고. 사실 '시'는 '해설'하려고 읽는건 아니니까 작품 하나하나마다 일정한 주제와 의미를 풀어놓는 이런류의 해설은 수능언어 말고는 접한적이 없다. 쉽게 읽혀서 좋기도 하고 ㅡ 별 새로운 것이 없어 심심하기도 하다. 특정 주제로 묶어놓다보니 입체적 해석 - 당시 배경을 고려한 '속뜻' 해석 말고 - 이 없는것도 아쉽다. 읽으면서 바로 생각했다. '고전운문 어려워하는 학생들한테 읽히면 좋겠다!'

고전 운문들이 그렇듯 '자연'에 관한 시조가 많다. 지금보다 훨씬 자연에 가까웠던 조선 사람들이 오히려 우리보다 더 자연을 그리워한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자연이 공기 좋고 물 맑고 안락한 '휴양지'라면. 그들이 그리워 하는 자연은 사람손이 닿지 않은, 사람이 들어간대도 그저 풍경중 하나로 슬쩍 끼여들 수 밖에 없는 거대한 그 무엇이다. 자연을 내게 맞추지 않고 자연과 소통하며 자연의 일부가 된다. 나의 '대상'이 아니라 동등한 '주체'다. 이런 사람들이 '대운하'를 보면 '새만금'을 보면 뭐라고 할까? 태안에 기름을 부은 '사람'보다 오히려 죽어가는 생물들에게서 동질감을 찾지 않을까?

시의 언어들은 점점 더 응결된 '결정'처럼 웅크러드는데 여기 시조들의 언어는 한자 관용어구를 빼면 일상언어처럼 너무나 구체적이다. 원래는 노래로 부르던 것들이라 하니 차라리 오늘날 '시'보단 '노래'에 비교하는게 낫겠다. '시'와 '노래'의 분리는 ㅡ 일상적인것이 특별한 것으로 바뀌어가는데 있지 않을까. 그때그때 노래/시를 지어 부를수 있던 풍류는 어디로 갔을까. 틈 날때마다 자기를 되짚어보며 '현재'를 사는 여유가 그립다. 늘 오지않은 현재/지나간 현재를 '생각하느라' 지금을 놓치고 사는 우리들이기에.

모두 20개의 주제를 다루고 있고 - 서너개씩은 연관되는 주제다. 사랑과 그리움/벗과 자연, 술, 음악 등 - 각 주제마다 한두개씩의 그림이 실려있다. 김홍도/신윤복의 유명한 그림이 많고 '친절한 조선사'에도 등장한 재미있는 그림 몇편이 있다. 반듯반듯한 글씨로 쓰여진 홍랑의 시조(묏버들 가려꺾어~) 원본과 무너지는 억장을 표현하는 듯 휘갈겨 쓴 '이응태공 부인의 언간' - 사별한 남편의 관에 넣은 편지. 1998년 안동에서 발견되었다. 그 애틋한 마음 때문인지 400년이 지났는데도 글자 한자 상하지 않았다고 한다. - 원본이 인상적이다. 이 두가지를 비롯해서 특별한 사연이 있는 사진/그림은 따로 설명을 붙였어도 좋았을 텐데. 화가 이름/사진 이름만 있고 그 밑엔 본문 내용 중 일부가 쓰여있어 따로노는듯한 느낌이다.

정치적 성격이 강한 시조에 대해선 신랄한 비판도 있을법 한데 대체로 중립적이거나 우호적으로 설명해간다. 뒤에 붙은 작가/작품 색인도 그렇고 여러모로 '청소년 도서' 분위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슬럼, 지구를 뒤덮다 - 신자유주의 이후 세계 도시의 빈곤화
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김정아 옮김 / 돌베개 / 200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닥다닥 붙어있는 표지의 판자집들. 드문드문 섞인 하늘색/붉은색의 강렬한 원색 지붕이 오히려 처량하다. 드센 바람이라도 지나갔는지 지붕 위엔 벽돌조각과 온갖 쓰레기들이 어지러이 흩날려 있다. 보기만 해도 퀴퀴한 냄새가 풍기는 듯한 이곳 역시 누군가에겐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아니, 사실은 우리가 그들을 저곳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조용히 그러나 치밀하게.

가끔 돈이 없어 하루 몇천원짜리 쪽방에서 지내다가 죽은이가 신문에 등장하지만 우리의 '일상'과 닿아있지 않다는 이유로 그렇게 지나가고, 의도된 무관심 속에 방치된 그곳엔 또 다른 사람들이 모여든다. '의료의 사각지대' 혹은 '구멍난 복지혜택' 운운 하지만 정말 그들의 존재를 모르기 때문에 방치하는 것인가? 적어도 정부차원에선 그 어떤 개인보다 그들의 실상을 잘 알고 있으리라. 달리 손 쓸 능력이 없기도 하거니와 의지도 없기에, '개인의 주거권'이니 '인간의 존엄성' 등등은 '경제적 합리성'이란 냉정한 저울대에서 언제나 뒷전이다. 그들이 어떻게든 죽지 않고 살아있는 한 착취할수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남아있으므로.

단위면적당 집세가 가장 비싼 곳은, 슬럼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곳이라는 사실. 생필품을 사는데 필요한 돈이 미국의 중산층보다 슬럼주민이 다섯배 가까이 높다는 아이러니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슬럼 내에서의 빈부격차는 또다른 착취-피착취 관계를 만들어낸다. 슬럼에서 깨끗한 물과 화장실은 주민의 권리가 아니라 좋은 이윤창출 수단이다. 그나마 형편이 나은 사람들은 수도시설을 갖춰 저렴한 수돗물을 이용하면서 상수도 설치 비용이 없는 빈민들에게 병에 담아 비싸게 팔고 그나마도 사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수가 뒤섞인 물을 마실수 밖에 없다. 몇천명이 쓰는 공용화장실은 이미 그 구실을 못하기에 유료화장실이 '각광받는 사업'이라는데 하루 1번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기본급의 10%를 지불해야 하는 곳도 있다. 국가 혹은 국제 단체에서 지원받은 돈은 대형 NGO들이 가로채거나 주택 건설 등으로 부동산 투기를 불러오기 때문에 빈민들에게 돌아가는 실질적인 혜택은 거의 없다고 한다. 인간이 '경제적 동물'이라는 말은, 타인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인식한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개인'을 강조하는 이데올로기는 ㅡ 너무 쉽게 모든것을 '개인 탓'으로 돌려버린다. 몸이 아픈것도, 일자리를 잃은 것도, 가난한 것도 모두 개인의 능력부족이거나 타고난 천성탓이다. 필요할때는 '국민국가' 어쩌고 하면서 하나로 뭉칠것을 강요하다가도 사회의 구조적 모순앞엔 입을 다물어버리는 간사함이란!  스스로 '비운의 88만원 세대'라는것을 인식하면서도 "바리케이드와 짱돌을 들라"는 선동적인 구호앞엔 현 20대를 믿지 못하는 '사회적 불신'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의 멋진 작품이다. 이 책에선 일국가 내 뿐 아니라 NGO등 국제기구를 동원해서 지역사회까지 파고드는 "부드러운 제국주의" 를 꼬집는다.

   
  NGO가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주민들 사이에 혼란을 일으키고 잘못된 정보를 흘리고 이상을 박탈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계급투쟁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NGO가 채택/선전하는 실천 방안은 억압받는 주민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깨닫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에 대한 동정심과 인도주의적 감상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외부의 호의를 구걸하는 것이다. 사실 주민들이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할 때 이들 대행업체 및 조직들이 체계적으로 개입하는 이유는 주민들이 선동적인 방식을 취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 조직들은 주민들이 거시적인 차원에서 제국주의의 정치적 해약들을 경계하게 하는 대신, 지역사회의 문제들에 매몰되어 적과 동지를 구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다. (p.107. 주택문제 활동가 P.K.Das의 말 인용)  
   

이 책에 실린 슬럼의 풍경들은 거의 상상을 초월할만큼 처절하지만 저자는 감정적 과잉 없이 열악한 슬럼환경을 묘사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착취행태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똥통 생활"이라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챕터는 배설물을 처리하지 못해 그야말로 "똥 위에서 살아가는" 가난한 도시들의 이야기다. 화장실이 없어 배설물을 봉지에 담아 골목으로 던지거나 운전자에게 인분 덩어리를 던지겠다 위협하며 통행료를 받아내는 아이들. 사람들 눈을 피해 배변하기 위해 (강간/성추행의 위험을 무릅쓰고) 새벽까지 기다려야 하는 여자들. 그리고 그 덕에 각광받고 있는 "유료 화장실 사업"과 "식수 사업". 이 모든게 지금도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다. 빈약한 재료로 지은 허름한 가옥들은 산사태/지진의 위협에서도 자유롭지 못한데 정작 가장 두려운것은 '의도적 방화'란다. (개는 너무 빨리 죽어서 안쓰고, 기름에 적신 쥐나 고양이에 불을 붙여 풀어놓는 '효과적인 방화법'이 나와있다.) 국가 행사라도 있을라치면 온갖 공권력을 동원하여 쓰레기 치우듯 빈민들을 몰아내는 주체는, 과연 누구를 위한 국가일까?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란 미명으로 그나마 있던 공공부분마저 축소되었고 ㅡ 생존을 위해 "수년 내 죽음을 보장하는" 인력거꾼이 되거나 짐스러운 아이가 "마녀"로 낙인찍히는 것을 받아들이는 부분에선 참혹하다 못해 울화가 터진다. 그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건 감정섞인 울음이나 동정이 아니라 분노다. 행동으로 이어지는 분노만이 무엇을 바꿀 수 있는 기반일테니까. (* 이 책에선 슬럼주민들의 저항보단 슬럼에 가해지는 폭력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이 책의 속편으로 "전 지구적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슬럼 기반 투쟁의 역사와 미래"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고 한다.)  

뒤에 실린 우석훈 박사의 보론도 재미있다. 경제학자답게 슬럼의 원인으로 '경제 엘리트'인 중산층의 '배신'을 꼽는다.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빈민들이 내는 부가가치세로 자기들에게 유리한 우회도로를 건설한다든지 '슬럼 지주'로서 '유료화장실'에 투자하는 중산층들은 더욱 더 열악한 환경으로 슬럼이 퍼져가도록 방조한다. 우리나라 지방도시에서 슬럼현상이 생기지 않는것은 그 주민들이 '수도권'으로 떠났기 때문이라 추측하며 ㅡ 빠른 비정규직의 증가 속도와 카지노/다단계 등 점차 커지는 비공식 경제 비중을 볼 때, 현재의 88만원 세대들은 본격적인 '슬럼 거주'의 가능성이 크다는 어두운 결론을 내린다. 중대형 아파트 건설비율이 높아지는 것은ㅡ 결론적으로 구매력이 없는 사람들의 주거환경을 더욱 열악하게 만든다는 인과관계가 잔인하다. '부익부 빈익빈'은 자본주의의 지극히 당연한 논리일 뿐일까? '탈취에 의한 축적'이라는 명제가 여기서도 되풀이 된다.

"한 사람의 이데올로기적 관점은 그가 사는 주택의 위상에 따라 형성되는 것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글쎄, "사는 주택의 위상에 따라"서만 결정된다면 오히려 변화는 쉬울지도 모르겠다. '중산층'이라는 애매한 단어는 아무나 자기가 '중산층'이라고 느끼도록 꼬드기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장치다. "어쩔 수 없다"는 그들의 논리에 속지말고, 빈곤층이 '수혜자'라며 쓸데없는데 게거품물지 말자. 자기 '존재에 적합한 의식'만 가져도 분명 세상은 변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푸하 2008-04-02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이드님의 별 다섯개를 받은 책이라니 (별점평가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기대되는 걸요. 책 읽어보고 리뷰를 봐야겠네요.

Jade 2008-04-02 03:46   좋아요 0 | URL
어라 전 별점이 후한 편이예요 ㅋㅋ 이 책은 저도 추천받은건데 좋았어요!
(사실 좋다기 보단 열받았죠 -_-;;)
 
친절한 조선사 - 역사의 새로운 재미를 열어주는 조선의 재구성
최형국 지음 / 미루나무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역사는, 어쩔수 없이 가진자들의 기록이다. 국사 교과서를 가득 채운 온갖 사건들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그분들'의 이야기가 아니던가. 하다못해 신문을 봐도 ㅡ 앞쪽을 가득 채운건 나랑 별 상관없는 '딴동네' 이야기 뿐인데. 가뜩이나 재미없는 '그들의 기록'을, '국사'과목이 선택이 되면서 부턴 정말 '내겐 너무 먼' 이야기가 되어버린 듯 하다. 다양한 사료들도 추가되고 멀티미디어 수업도 가능해서 배우는 환경은 좋아지고 있지만ㅡ '영어/수학'의 지위를 누리지 못하는 다른 과목들처럼 그저 '외울것이 많은 한 과목'일 뿐이다.

역사에 드리운 근엄한 장막을 걷어내고나면 보통 사람들의 울고 웃는 일상이 보인다. 이 책은 '역사'라는 재미없는 단어에 흥미를 붙이기 위해 이색적인 주제를 많이 다룬다. 외국 사신을 주눅들게 한 '불꽃놀이', 사람을 죽여 귀양다닌 코끼리, UFO로 추정되는 이상물체 출몰사건 등 그 당시에도 화제가 되었을 법한 사건들이 몇가지 등장한다. 세종이 남편에게도 육아휴직을 허락했던 일이나, 시력보정용 안경/흙바람차단용 안경 등을 사용한 것, 임진왜란때 흑인 용병 몇 명을 고용한 것 등은 조선에 대한 선입견을 깨 주기도. 풍랑을 만나 표류했다가 거의 동남아시아를 순회하고 돌아온 섬사람들의 이야기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아도 대단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도 곧 적응하고 마는 인간의 생명력이란! 지체높은 양반이 이런일을 겪었다면 '콜럼부스'나 '이븐 바투타'처럼 교과서에 실렸을텐데. 일개 '홍어장수'에게 너무 많은걸 바라는건가.

불꽃놀이를 중단하라는 신하들의 반대에 온갖 구실을 붙여 궁색하게 자신을 변호하는 성종이나, 쌍봉 낙타를 궁에 들였다 빗발치는 대신들의 항의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숙종의 변명을 보면 어떻게든 자기 합리화 구실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간사함은 왕이나 평민이나 똑같다. 흥선대원군의 '비장의 카드'였던 飛船 - 물에녹는 아교로 새의 깃털을 붙여서, 띄우자 마자 아교가 녹아버렸단다. - 과 무명갑옷 - 솜을 채운 열세겹 옷이라 너무 무거워서 병사들이 쓰러졌댄다. 불이라도 붙었음 어쩌려고. - 은 어이없다 못해 귀엽기까지. 얼마나 다급했으면! 사람 사는건 지나고 나면 지지부진하고 허점 투성이지만 그 당시엔 절박하고 가슴뛰는 순간들이다. 온갖 미사여구로 꾸며진 '만들어진 기록'보단 이런 인간냄새 풍기는 기록들이 훨씬 그럴듯하고 친근하다. 누구나 얼마쯤은 궁색하고 치졸하지만 나름 의미를 찾아면서 또 하루를 살아가니까. 

책의 단점은 컨텐츠가 부실한건 아니지만 소제목들이 너무 '화려'해서 정작 읽다보면 시시해진다는 것. 밋밋한 텍스트에 도발적인 이름표를 붙여놓은 느낌. '이름 없는 것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친절한 조선사'라는 컨셉에 맞춰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주제들을 선정한것은 좋지만 무언가 부풀려진 느낌이다. 옛 단위들이 많이 나오는데 지금 단위로 환산해서 적어놓았으면 좀 더 쉽게 와닿지 않았을까 싶다. 장점은 그림이 많아 지루하지 않고 설명도 쉽다는 것. 편자를 박기 위해 말의 네 다리를 묶어 눕혀놓은 그림이나 개를 끌고가는 그림은 익살맞으면서도 생생하다. 각 글 뒤에 관련되는 테마로 짧은 글들을 덧붙여 놓은 구성도 좋고. 한권의 책을 위해 여러 자료를 뒤졌을 저자의 노고가 엿보인다.

학생들에게 국사 보조자료로 읽히면 좋을것 같다. 오늘날의 상황과 관련지을 수 있는 주제들 - 조선시대의 형벌제도와 현재의 형벌제도, 육아휴직제도, 술/담배에 대한 기록 등 -  로 토론해도 재미있겠다. 재미있는 사건/테마를 중심으로 짜여져 시대적 흐름까지 잡아주진 못하지만 당시 생활상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 흔히 볼 수 없는 재미있는 그림들이 많은것도 좋다. 정치에 관한것은 거의 없는데, 사소한 일로 트집잡아 상대쪽을 공격하는 치졸한 사례가 있었으면 지금의 정치판과 비교해가며 그야말로 '산 교육'이 될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다 - 우리 시대와 나눈 삶, 노동, 희망
하종강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연한 황토색 바탕에 놓여진 목장갑. 아기자기한 글씨. 따뜻한 책 표지가 말 그대로 '희망'을 대변한다. 험한일도 많이 겪고 수년 혹은 수십년을 싸워온 사람들이 ㅡ 그리 많은것이 바뀌지않은 현실을 보면서도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원천은 무엇일까? 현실과 교과서 속 이상적인 사회와의 괴리를 알아갈수록 뛰어들기도 전에 절망하는 나같은 사람들도 많은데ㅡ 희망을 계속 만들어가기 때문이기도 하고, 역사에 대한 신뢰이기도 하겠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희망을 갖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쉽게 바뀌지 않으리란걸 알면서도,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것이 없기에ㅡ 불평과 좌절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에.

하종강씨 글은 ㅡ 인터뷰집에 수록된 것을 보았던 게 전부다. 발간된 책을 몰랐던건 아니었으나 여태 손에 잡지 않은건 순전히 '노동운동'에 대한 생소함 - 나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알량한 자기기만 때문이었다. 가끔 거리에서 벌어지는 농성를 보면 '저 사람들 고생하는게 딱하다'고 철없이 동정하다가도 지나가면 그뿐이었다. '공돌이-공순이'에 담긴 경멸을, 나는 '노동자'라는 단어에 투사하고 있던게다.

대학 1학년때인가. 내가 다니던 과는 학교를 상대로 투쟁 - 병원건립, 교수확충, 등록금 등 - 했었고 우리의 무기는 '수업거부'와 집회 뿐이었다. 당시 우리과 학생중엔 사회에서 여러 활동하신 분들이 많았고 이런 저런 일이 겹쳐 다행히 학교의 약속을 받아냈다. (물론, 그 뒤로 학교는 이런저런 핑계로 거의 아무것도 해주지 않고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우리는 모두 '승리했다'는 기쁨에 들떠있었다.) 교내에서 집회할때면 시끄러워서 수업에 방해된다며 소리지르는 교수들도 있었고, '쟤넨 뭐가 아쉬워서 저 난리야?'라며 싫어하는 타 과 학생들도 있었는데 그 순간엔 얼마나 매정하게 느껴지던지. 나중에 누가 '파업'한다고 하면 꼭 관심있게 보리라 다짐하곤 했다. 그때 '동지가' 나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을 배웠는데 가사의 의미나 배경도 모르면서 부르다가 나중에야 알았다. 불과 이십년전에 벌어지던 일, 혹은 지금도 벌어지는 투쟁들에 비하면 우리의 '거사'는 얼마나 '배부르고 귀여운'것이었나. 그나마도 귀찮아하고 '기껏 공부해서 대학와선 왜 이짓을 하고 있을까' 회의하기도 했는데.   

이 책은 하종강씨가 만난 노동자들에 얽힌 일화가 대부분이고 가족에 관한것도 있다. 멋들어지고 잘 꾸며진 문체는 아니지만 글에서 묻어나오는 '진실함'때문에 마음에 남는 글들이다.  여기 실린 얘기들은 분명 '재밌다'기보단 '슬픈'일들이지만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 보이는 소박한 진심과 일/사람에 대한 애정때문에 어느샌가 마음이 따뜻해진다. 실화는, 아무리 잘 꾸며진 소설보다 더 끈끈하다. 어디엔가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많은 사람들이 관심도 없고 혹은 존재조차 모르지만 묵묵히 그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 그것 자체가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숱한 어려움을 겪고 좌절하고 변심한대도 욕먹을 것 없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희망이라. 더욱 따뜻하다. 

오래전부터 준비해오던 글들이라는데 - 쓰인 날짜가 적혀있지 않아 예전이야긴지 요즘 이야긴지 파악이 잘 안되는 것들도 있다. 유명 제과업체 종업원 임금이 40만원이 안된다는 시절 - 설마, 이건 예전 일이겠지. - 일도 있고. 간간히 쓰인 "80년대에 벌어지던 일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는 문구가 가슴아프다. 얼마 전 인터넷 블로거 뉴스에서 의류 공장을 - 점점 낮아지는 옷 가격때문에 70,80년대와 다름없는 열악한 작업장에서 하루종일 일하는 노동자들 - 이야기하며 "싼 옷만 찾지 말고 제 값 주고 옷 사입자."는 요지의 글을 본적이 있다. 먼지 풀풀 날리는 공장 사진보다 가슴아픈건 "자본주의 경제 원리도 모르냐"."소비자 입장에서 싼 옷 찾는게 뭐가 나쁘냐"."우리가 안사주면 그나마 싼 옷 만드는 공장 망하는거 아니냐"는 감정섞인 댓글들이었다. 물론 안사는게 궁극적인 해결책은 안되겠지만 그런식의 반응밖에 할 수 없었나. 자본주의는 사람의 타고난 감수성까지 먹어치우나보다. 

포기하고 싶을때마다 "나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수십만명의 문제다"라며 마음을 다잡는 사람들이나, "농민이 망하면 결국 저임금 노동자가 되서 기존 노동자들을 옥죌텐데 남의일처럼 보지 말라"라고 말하는 농민을 보면, 세상을 제대로 보는 '지혜'는 똑똑한 머리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란 평범한 진리가 떠오른다. 자신만은 비정규직이 아닐거라 믿는 88만원 세대들도 언젠가는 깨닫겠지. 조만간 "프리랜서 의사" - 말이 프리랜서지, 비정규직 의사 - 도 등장할지 모른댄다. 유럽의 공공의료체계는 그 사람들이 '착해서'가 아니라 먹고살기 힘들어진 의료인들이 투쟁한 결과라는데 ㅡ 어쩌면 빨리 그런 상황이 되는게 나을수도 있겠다.

마지막 6장은 2006~2007년 한겨레에 실렸던 칼럼들이라 딱딱하다. 차라리 수기들만 모아놓았으면 더 나았을 것 같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8-03-31 1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신자유주의의 역사와 진실
강상구 지음 / 문화과학사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신자유주의는 ‘자유’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신장하고, 빈곤을 퇴치하며, 만인의 복지를 증진시킬 수 있는 이론이나 정책인 것처럼 여겨진다. 신자유주의를 부르짖는 자들의 근거는 오직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여기서 자유를 가진 ‘개인’이란 ‘재산을 소유한 존재’. ‘부르주아’, 곧 ‘자본가’이고 오직 이들에게만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인정하는 전통은 자유주의의 오랜 역사이다. 신자유주의는 억압받는 자들을 위한 '자유'따윈 안중에도 없다. 그들이 내세우는 '사적 소유권의 자유, 시장의 자유, 교역의 자유, 경쟁의 자유'등은 특정 계층을 위한 '특수한 자유'지만 마치 모든사람을 위한 '보편적 자유'인것처럼 세뇌된다. 사실 '신자유주의'는 '신보수주의'가 휘두르는 칼이지만, 그럴듯한 명칭을 부여함으로써 그럴듯한 속성을 가진것처럼 꾸며내는 수법이란! 이젠 거의 '상식'이 되다시피 한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노동자들에겐 '안정성'이다. '효율성'이란 이명박정부의 슬로건은 또 얼마나 그럴듯한지.

이 책은 지극히 '노동자'적인 관점에서 신자유주의의 이론을 재정의한다. 이를테면 개발도상국들이 산업 발전을 위해 끌어다 쓴 '외채'는 "노동자들이 만들어낼 '미래의 잉여가치'를 빼앗아 갈 것을 보장해주는 특출한 장치"며 IMF나 세계은행 등 국제 기구는 "제1세계 민중들이 일해서 낸 세금을 이용해 제3세계 민중들을 착취하는 장치"라는 등. 이 책의 논리에 따르면 세계화는 "초국적 자본과 헤게모니 국가들이 벌이는 자본축적 과정의 새로운 형태"일 뿐이기에, 기든스가 주장하는 "제3의 길"은 유럽자본주의를 살리기 위한 신자유주의적 대응에 불과하다. 스스로 개혁적이고 진보적이라 주장하는 대부분의 NGO들은 국가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한편으로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일 뿐이다. 

“태초에 시장이 있었다” 는 시장주의자들의 순진한 예찬과 달리, 시장의 거래는 재산권의 확립과 보호 없이는 불가능하며 시장경제의 발전은 시장의 확대와 국민적 시장의 확립을 위한 국가의 노력에 기초한 것이다. 근대 국가의 탄생은 자본주의 체제 유지를 위해 "국가 안의 사람들을 어떤 '단일한 존재'로 통합시켜 하나의 가치관, 관점, 사상으로 묶어놓는" 이데올로기 작업의 결과다. 영악한 신자유주의자들은 기업에 대한 '규제'완화를 위해 - 좀 더 직설적으로, 마음껏 착취하기 위해 - 국가의 역할 축소를 부르짖으면서도 '노동력 관리'라는 정치적 부담을 피하기 위해 그 부분에 관한 한 '강력한 국가'를 원한다. 저자는 결국 신자유주의자들이 '국가'를 '시장'으로 대체하려는 것은 국가가 '계급투쟁'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기 때문이며, 국가를 초월하는 국제기구나 지역블록은 국가의 역할을 대신하면서도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민중들의 저항이나 반발을 원척적으로 막기 위한 수단이라 지적한다.

   
  "국가 역할은 지방자치제, 소수민족, 각종 국제기구, 지역 블록, 그리고 NGO에 의해서 분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분화의 경향이 국가를 결정적으로 약화시킨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오히려 그 이면에는 국가라고 하는 기구가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성격, 계급지배의 도구이자 계급투쟁의 반영이라고 하는 두 가지 성격 중에서 자본에게 유리한 것은 살리고 불리한 것은 없애는 그런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p.369)  
   

이 책은 신자유주의 역사 - 신자유주의 이전, 불황과 신자유주의 등장, 팽창, 위기, 그리고 '세계화'라는 현대 자본주의의 특징으로 구성되어 있다. - 에 대한 강의록이다. 각 시대/국가별로 행해진 정책뒤엔 언제나 '노동에 대한 탄압'이 있었음을 밝히고 생소한 용어 - 선물, 옵션, 통화주의 헤지펀드 등 - 에 대한 설명도 쉽고 자세하다. 수치상으로 보이는 '수출증가'및 '경제성장'의 증거들이 사실은 초국적 자본으로 흘러들어간 돈이라는 지적도 명쾌하다. 아쉬운 것은 2000년에 출간된 책이다 보니 경제지표를 나타내는 자료들이 이전것들이고 최근 논의되는 쟁점들 - 지적재산권 문제 등 - 에 관한 언급이 없다는 것. '계급 역관계'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방식은 '부르주아'에 대한 반감을 일으키기엔 효과적이지만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또 다른 반감을 줄 수 있겠다. 조목조목 비판한 후에 대안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것은 허탈하기까지. 두페이지짜리 저자 후기에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과 저항들을 정리하지 못한 점을 아쉬워 하며 다소 황당한 문구로 마무리한다.

   
 

대안을 찾기 위한 노력은 그다지 이론적이지도 않고, 그다지 이성적이지도 않습니다. 현실의 변화는 너무 역동적이어서 때로는 불합리하거나 비이성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대안을 모색해야 할 공간은 바로 그곳입니다. 그 속에 희미한 길이 있을 뿐입니다. 이론적 대안을 화려하게 떠벌리는 것은 그렇게 하는 자들, 특히 '운동'을 밥벌이의 수단으로 여기는 일부 엘리트들에게나 어울립니다. 그러나 너무도 분명한 것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온몸 던져서 모순에 저항하기 위해 싸우는 삶. 그런 삶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운동. 그리고 그런 운동들이 전세계적 차원에서 힘을 합하고 강화되는 국제연대. 이것이 현재로서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점입니다.

 
   

결국. 이론이고 뭐고 그냥 "열심히 살자"라는 얘기인가?

공부 모임때문에 읽은 책인데 나름 재미있었다. 2000년에 이런 책들이 나왔건만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진것도 모라자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정권이 출범했으니 아직 진짜 '신자유주의'가 되기엔 모자란건가. 총선때문에 국민에게 굽실굽실한 '그분들'이 총선 이후엔 어떻게 변신하실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