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대한민국 개조론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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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고를때 대부분 제목과 내용을 보고 집어들지만 가끔 작가이름에 끌려서 사게되는 책이 있다. 사실 대한민국을 어떻게 '개조'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보다 유시민이란 사람이 쓴 글이 궁금했다. 그에대해 아는건 거의 없지만 - 신문이나 주간지에 가끔 등장하는, 신랄한 '독설가'로서의 이미지 밖에 - 그가 쓴 '항소이유서'를 보고 갑자기 알고싶어졌다. 이 사람. 무슨생각을 하는 사람일까.

'사회투자국가'라는, 이름도 생소한 그의 희망사항을 두고 좋다 나쁘다의 평은 하고싶지 않다. - 못한다는게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어떤 국가가 이상적이라는 판단기준이 없는, 정말 아는게 없는게 나의 처지니까 - 하지만 '둥근 네모'라는 비판을 받아도 현실적인 대안을 찾고싶어하는 마음만큼은 100% 지지해주고 싶다. 사실 정당에서 내거는 공약을 두고 그것이 현실가능한 대안인지 - 주로 비용면에서 - 꼼꼼하게 따져서 분석해준 경우 - 신문이든 사설이든 - 는 별로 보지 못해서 '이래야한다'는 당위성만으로 판단한 경우가 많으니까. 보수와 진보 양 편에서 '선택'을 하기보단, 서로 존재를 인정하며 공생할 수 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대안은 - 매일 한쪽에 대한 비판과 조롱이 난무하는 글들보다 - 오히려 신선하다.

책을 읽다보면, 정책과 관련된 비용문제가 정말 많이 나온다. 그만큼 예산확보가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낭비되는 돈이 많다는 말이기도 하다. 의료급여제도 얘기를 하다가 등장하는 할머니 일화 - 1종 수급자로 기침이 나고 목이 아파 여섯군데 병원을 돌아다니신 - 는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한번에 낫지 않으니 나을때까지 다른병원을 찾는 건 당연하지만, 만약 병원비나 약값이 무료가 아니라 자기돈이었으면 어땠을까. 하지만 돈때문에 병원을 가지 못하면 안되지 않나. 평소대로라면 '정부가 너무 야박하게 군다. 고의로 병원쇼핑하는것도 아닌데'라고 생각했을테지만, 그런식으로 낭비되는 재정때문에 다른 국가사업이 지장받고, 결국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또 마음이 달라진다. 난 사회 경험도 없고 아는것도 없어서 같은 일을 두고도 조금밖에 보지 못한다는걸 새삼 실감하면서.

FTA협상을 두고 유시민 전 장관은 지킬것은 지키며 얻을만큼 얻어낸, 나름 만족스런 협상이었다고 말한다. FTA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협상문을 두고 '퍼주기'라고 말하는 글 만을 접해왔다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찬성하는 글을 읽으니 또 새로운 기분이다. - 물론 여전히 FTA반대라는건 변함없지만 - 찬성하는 쪽 근거는 무언지, 또 반대의견에 대해 어떤 논리로 반박하는지 공부해보지도 않고 한쪽말만 듣고 그런가보다 쉽게 판단했던것이 부끄러워진다. 박정희 전 대통령때부터 이미 수출통상국가쪽으로 국가 방향이 결정되었기 때문에 FTA는 필연적이라는 주장이 사실인지는 - 아는게 없어 - 판단할 수 없지만 '안티테제로는 현실을 주도할 수 없다는 말에서 실제 정책수립자들의 고민 - 현실과 이상과의 괴리 - 이 느껴져 새삼 모든게 다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도.

25일만에 집필한 책이라 한다. 국책에 관련된 이야기들이라 딱딱하고 무거운 내용이 많지만 친근한 구어체로  적절한 '비꼬기'까지 섞어가며 풀어놓아 술술 잘 읽힌다. 홈페이지에 올려놓는 자료들에 무심한 국민들에게 탄원하는 형식의 '질타'에 한두개 신문 머릿기사를 보고 욕을 해댔던게 떠올라 새삼 부끄러워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아니 '공부'해야겠다는 새로운 결의가 생긴다.  겉으로 객관적인척 하는 신문기사들보다 인간적 고충이 가득 담긴 '주관적'인 이 글에 더 애정이 가는건 아직 내가 어려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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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시민의 단성소, 유시민의 궤변
    from 하민혁의 통신보안 2007-07-22 01:40 
    허.허. 유시민이 공개한 '<대한민국개조론>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를 읽으면서 먼저 터져 나온 것은 저 허탈한 웃음이었습니다. <대한민국개조론>의 서문을 통해 유시민은 이 책이 국민께 보내는 단성소라고 말합니다. 히틀러를 뽑은 국민에게 직소하기 위해 쓴 책이라고 합니다. 하도 얼척없는 얘기를 듣고 있으려니 웃음밖에 안 나옵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주장을 펴기 위해 차용하고 있는 궤변에 가까운 논리를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유시..
 
 
BACH2138 2007-07-21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리뷰 잘 보았습니다. 술술 넘어가듯 쓰시는 글이 굉장히 친근합니다. 이글 제 블로그에 스크랩해가도 될지 문의드립니다.^^

2007-07-21 17: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CH2138 2007-07-21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그러세요. 바흐 좋아하다보니 굴드를 좋아하게되고, 굴드 좋아하다보니 형탁이네님의 집에 자주 가는 편입니다. 근데, 이런 경우를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요. 기분좋은 연결고리 같네요. 다시 와서 한번 들러보니 다른 글들도 참 좋군요. 저는 유시민과 진중권 둘 다 좋아합니다. 한쪽은 지성, 한쪽은 감성을 공급하는 명사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중권씨 미학 오디세이 리뷰글도 같이 옮겨 놓고 싶습니다. 아니, 이참에 Jade님이란 항목을 제 블로그 항목에 설치해 놓고 님의 글을 제 블로그에 게재하고 싶습니다. 다시 한번 외람되지만 문의드립니다.^^

2007-07-22 0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김소형의 귀족피부 만들기 - 한방 피부 전문가
김소형 지음 / 넥서스BOOKS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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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피부관리에 관한 책은 많다. 일례로 피부과 의사 정혜신의 책도 있고

요즘은 한의원에서도 '피부관리'를 많이 한다. 때문에 한의사가 쓴 피부관리 책이라 양방적인 것과는 또다른 무언가를 기대했었다.

딱 잘라 말하면 별다른건 없다. 한의학적 원리에 입각해 체질별 피부관리법을 설명한다지만, 대개 여성잡지에 나올법한, 얕은 정도의 분류와 관리법이다. 한약재를 이용한 관리법은 팩 위주로 되어있는데, 이정도는 왠만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정도다.

책값에 비해 큰 기대는 하지 말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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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알랭 드 보통 지음, 이강룡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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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의 러브스토리는 세권 모두 원제와 번역본 제목이 다르다. 가장 유명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On love', '우리는 사랑일까'는 'The Romantic movement', 그리고 이책은 'Kiss & Tell'- 원래 'kiss & tell'은 유명한 인물과 맺었던 밀월 관계를 언론 인터뷰나 출판을 통해 대중에게 폭로하는 행위라 한다. - 이다. 이 책은 '이사벨'이라는 어떤 여자의 전기 - 그러나 전형적 문구로 미화되지 않은, 일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솔직한 전기 - 이자, 관찰자의 심리묘사까지 곁들인, '사랑'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사실적 풍경들로 가득찬 에세이다.

사랑에 빠져드는 과정은, 타인에게서 내가 보고싶은 면들을 찾아내는 것부터 시작된다. 내가 알고싶지 않았던, 혹은 보고싶지 않았던 면모들까지 그 사람의 일부라는 것이 때로는 사랑을 흔드는 장애물이 되기도 하지만 대개 오랫동안 지속되는 사랑은 그런 삐걱거림까지도 받아들인 후에 가능하다. 이 책은 보통의 로맨스와 달리 사랑의 대상이 미화되지 않고 오히려 '관찰'을 통해 '분석' - 결국 이사벨이라는 특정 개인을 정형화 시키는 것에는 실패하지만! - 된다. '사랑'이 주는 달콤한 행위는 거의 없고 - 사실 이사벨을 관찰하는 남주인공과 이사벨이 '사랑'하는 관계라는 증거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 '내'가 관찰하기로 한 '이사벨'의 일상생활과 '나'와 '그녀'의 대화를 통해 그녀가 어떤사람인지 담담히 그려낼 뿐이다.

서로 이해한다는 것. 타인에게서 내가 닮고싶은 모습을 보고 또 그와 닮아가고 싶어하는 건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공통된 갈망이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100% 이해한다는 건 언제나 힘든 일이다. 열렬히 사랑하는 연인들과 심하게 부딪히는 건 정치적 견해 차이나 환경오염에 대한 의견 등 무겁고 외부적인 화제가 아니라, 치약짜는 방식이나 컵을 두는 방식 등 소소한 일상습관인 경우가 많다. 이사벨이 말하듯 혼자일땐 아무렇지 않았던 것들이 사적인 것으로 바뀌는 미묘한 지점들을 - 누군가의 머리카락을 보는것과 욕실에서 발견하는것의 차이, 물을 마실때마다 새 컵을 쓰는 남자와 낭비라고 생각하는 여자의 차이 - 하나씩 발견하고 공유해 가는 긴 과정을 거쳐야, 비록 동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차이를 존중해 줄 수 있다면 비로소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것이다.

드 보통의 소설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보바리부인', '안나 카레리나'같은 소설과 등장인물이 자주 거론된다. - 이 책엔 특히 이사벨의 어린시절 회고가 많이 등장하기에 프루스트적 요소 -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물들을 매개로 예전 이야기로 빠져드는 - 가 많다. - 아쉽게도 이 책에 거론되는 많은 소설이나 음악, 지명에 대해 아는게 거의 없어서 비유의 내용을 모른 채 대충 짐작만으로 읽은 구절이 많다. 그동안 소설을 등한시 해 온 벌을 받은건지.

드 보통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재밌게 읽어볼 만 하다. 단,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와 같은 마법같은 로맨스 - 사랑에 빠진 영혼이 겪게되는 절절한 심정 - 를 기대하지는 말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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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15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랭드 보통은 이번에 나온 행복의 건축을 통해 만나게 되었습니다. 여행의 기술과 불안을 덤으로 얹어줘서 정말 기뻣다는..ㅋ 자기만의 색깔이 뚜렷한 작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책도 나중에 꼭 찾아봐야 겠군요.^^

Jade 2007-07-15 03:05   좋아요 0 | URL
알랭 드 보통 글이 마음에 드시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꼭 읽어보세요 ^^ 저도 평소 소설을 잘 안읽는데 그책은 정말 재밌었어요. 다른사람에게도 읽어보라고 권하게 되고 ^^
 

미학 오디세이 세트 - 전3권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3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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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궁금해서 보게되는 책이 있고, 저자의 유명세 때문에 보게되는 책이 있다. 사실 '미학'이란 학문은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주제는 아니기에 - 약간은 현학적 냄새도 나고 - 여러번 마주쳤지만 선뜻 손이가는 책은 아니었다. 그러다 저자의 신간 '호모 코레아니쿠스'를 보고 책 내용보다는 저자에 대해 알고싶어졌다. 이름부터 딱딱한 '미학'에 대해 세권이나 되는 적지않은 분량을 대체 어떤 내용으로 채워 놓았을까. 사실 '내용'보다는 말을 풀어나가는 작가의 말솜씨가 궁금했던건지도 모른다.

철저한 구어체. 인터넷이 생활이 된 지금에야 낯설지 않은 문투지만 책이 처음 나왔을 94년엔 상당히 충격적이었을것 같다. 내용은 전혀 가볍지 않지만 무거운 얘기를 적당한 유머를 섞어 무겁지 않게 풀어내는 방식은 - 요즘에라면 분명 장점이지만 - 한편으론 비판받지 않았을까. 뭐 어쨌거나 94년에 찍힌 책이 아직까지 꾸준히 읽히는 걸 보면 - 총 판매부수를 볼때 전혀 적지않은 양으로! - 이 책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는건 명백한 사실이지만.

어떤 학문에 대한 '오디세이' - 원래는 고유명사지만 어떤 긴 여행등을 가리키는 말로 일상화 된 - 는 학문 전체에 대한 개괄적이고도 간결한 설명을 요구한다. 분야에 상관없이 시중에 나온 개론서들은 대개 갓 입문한 사람들은 생소하기만 한 어려운 단어들을 동원해 장황한 각론들을 요약해 놓은 듯한 느낌을 주곤 한다. 이 책이 상대적으로 쉽게 읽히는 이유는 기나긴 미학의 역사를 - 안에 담긴 철학까지 포함해서 - 어설프게 축약하지도, 또 지리하게 부연설명하지도 않으면서 중간중간 적절한 삽화들로  부족한 공백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또 처음 읽는 사람을 당황하게 만드는 특이한 구성 - 큰 틀로는 시간순으로 전개되지만 각각 독립된 챕터들, 잊을만 하면 등장하는 플라톤/아리스의 대화, 그리고 각 권의 큰 주제를 담당하는 세 명의 화가의 세계 - 역시 신선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독한 후, 이어진 각 부분들끼리 따로 읽어보면 또다른 재미를 준다. 마치 챕터마다 각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소설처럼.

전시회 등에서 무심히 마주쳤던 그림들이 내포한 당대의 철학적 논쟁거리나 작가가 고민했던 부분들에 대한 설명을 보면 불현듯 전시회에 가고싶어진다. 혹은 쟁점이되는 철학논쟁부분에 관심이 쏠려 관련 철학서적에 손이 가기도 하고. 일상성을 깨뜨린 마그리트의 세계를 들여다 보고 있으면 갑자기 주위의 사물들이 낯설어지는 짜릿한 경험을 하게 되기도. 여러면에서 볼 때 독자에게 다양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선물상자 같은 - 함께 온 작가노트도 작은 선물같다! -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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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npix 2007-07-13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부터 정말 많이 들어본 책이라, 언젠가 읽어야지만 하고 있었는데, 이 리뷰를 보니 더 읽고 싶어지네요. 으.^^

Jade 2007-07-14 00:06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세권이고 '미학'이다보니 처음엔 잘 안읽히는데 1권을 무난히 읽으면 2,3권은 술술 읽히는거 같아요 ^^
 
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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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에 대해 전혀 문외한인 내가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드 보통의 눈이 무엇을 포착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늘상 존재하지만 마음을 열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하는 달콤한 풍경과 사물이 속삭이는 말들.

옮긴이의 후기처럼 드 보통의 글의 중심엔 늘 "나"가 있다. 소설이든, 에세이이든 그의 글은 늘 "나"의 입장에서 타인 혹은 세상이 어떻게 다가오고 해석되는지 세세하고 재치있게 풀어놓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선 "나"를 중심으로 건축을 바라보기 보다는 "나"와 "건축"사이의 "관계"에 주목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일정시간 머무르는 어떤 공간적 구조물로서의 건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나"에게 속삭이는 - 우리의 시선을 붙잡는 외관, 손과 발에 닿는 벽면과 바닥의 감촉, 코끝에 스치는 나무냄새, 그리고 우리를 짓누르거나 붕 뜨게 만드는 전체적 분위기 - "주체"로서의 건물을 이야기한다. 나를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만드는 건축물과의 만남은 내가 마음을 열어놓는 한 끊임없이 변하는 "관계"로서 다가오게 된다.

"...고립된 개별자로서의 나는 그 자체로서는 결코 주체가 될 수 없다. 그 때 나는 그냥 존재자요 실체일 뿐이다. 내가 주체가 되는 것은 오직 내가 너와 함께 우리가 될 때이다. 여기서 '우리'는 개별자들이 결속하여 이룬 합성물 같은것을 가리키는 이름이 아니라 다만 나와 너의 만남의 현실성을 표현하기 위한 이름이다.....만남은 언제나 관계로서 활동으로서 일어나는 것이지, 결코 실체나 속성으로 현전하는 것이 아니다." (김상봉. 서로주체성의 이념. 도서출판 길. 2007)

책에 실린 많은 흑백사진들을 그에 대한 드 보통의 해석 - 적절한 시공간속에 위치하여 엄숙한 감동을 준다든가, 보는사람을 지루하게 만든다든가, 전통과 현대가 사이좋게 손을 맞잡고 있다든가, 소통 불가능 앞에 체념하여 공존에 의미를 둔 듯 한다든가 등등 딱딱한 분석이 아닌 서정적 감수성으로 마치 문학작품을 평가하듯 건축물의 인상을 묘사한다 - 과 함께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건축물 - 혹은 건축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 이 속삭이는 말이 들리는 듯 하다. 침묵으로 일관하며 땅에 세워진 큰 덩어리가 아니라, 자신도 일정한 시공간을 차지하고 세계를 이루고 있는 일원이라며 가만히 우리를 응시하는. 어떤 "생명체"같은 느낌으로.

"The architecture of Happiness" 라는 원제는, 사실은 "우리에게 행복을 선사하는 건축물"에 대한 설명만은 아니다. 건축물이 차가운 '사물'이 아니라 우리에게 행복이나 우울을 안겨줄 수 있는, 우리와 상호작용 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 우리의 이상과 희망을 '표현하는' 대체물이자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상과 희망을 '안겨주는' 주체일 수 있다는 것. 실용성과 외관만을 강조한 건축물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는지 - 르 코르뷔지에의, 류머티즘과 폐렴을 불러일으킨 건축물을 예로들어 - 담담히 서술하며 건축과 인간의 상호관계에 대해 말한다.

책 내용 외에 외형적 면에서 덧붙이자면, 먼저 플라스틱으로 표지를 두른것이 신선하다. 단순 하드커버가 주는 답답함이 없으면서도 표지의 각은 살려주는, 또 큰 사이즈임에도 '가볍다'는 느낌을 주는 장점이 있다. - '건축'의 다양한 소재들이 주는 효과와 일맥상통한다! - 아쉬운 점은 같이 실린 건축 사진들이 페이지의 일부분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한 페이지, 혹은 양쪽 면을 다 채우는 것이었으면 더 좋았을것 같다는 것이다. - 귀퉁이의 사진은, 위아래에 쓰여진 글들이 건축물에 집중하는것을 방해한다. 한 면을 채우는 사진을 가만 보고있으면 잠시 책에서 빠져나와 딴 곳에 가있는듯한 효과를 준다.

드 보통의 글은, 읽는 사람에게 일상의 감각이 트이는 예민한 짜릿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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