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 살로메 - 자유로운 여자 이야기 삶과 전설 7
프랑수아즈 지루 지음, 함유선 옮김 / 해냄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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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루 살로메. 김선우 시인 산문집에서 처음 알았고, "니체가 눈물을 흘릴때"에서 니체를 쥐락펴락 했던 그녀의 당당함이 조금은 낯설었다. 알고보니 니체 뿐 아니라 프로이트, 릴케 등 당대의 석학들에게 천재적 지성을 자극했던 "대단한 여인"이랜다. '자유로운 여자', '한시대를 풍미했던 여자', '뛰어난 지성의 소유자'. 살로메 앞에 붙는 수식어는 화려하기만 하다. 대체 어떤 여자이길래!

당당함과 날카로운 지성으로 한순간에 사람을 매혹시키곤, 잡힐 듯 말 듯 줄다리기를 하다 어느순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매몰차게 돌아서곤 했던 루. 당대의 사회적 통념을 깨고 남자에게 종속되지 않고, 성적인 접근도 허용하지 않으며 오직 지적 충만감만 허락했던, '까칠했던' 여인. - 서른다섯에 비로소 "여자"로서 남자와 "관계"맺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어떤 연유로 돌변한건지 전기 작가들사이에 논란이 많은가보다. 남들에겐 "당연한" 일상들이, 그녀에겐 "특별"했던 까닭은 뭘까. - 전기 작가는 조심스럽게 근친상간의 가능성을 꺼내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책을 가득 채운 파란만장한, 화려한 그녀의 경력과 재능엔 왠지 마음에 들어오지 않고, 돌연 열등감, 혹은 컴플렉스에 관한 짧은 생각을 해본다. 연인을 쉽게 떠나는 그녀의 행동은, "또다시" 상처받기를 두려워하는 어린아이의 방어기제였을거란 나름의 추측에 빠져.

어떻게 자신에 목매다는 - 심지어 실제 자살했던 사람들도 있다 - 사람들을 매몰차게 떠날 수 있었을까 라는, 케케묵은 도덕적 잣대로 그녀를 평가하고 싶진 않다. "사람이기에"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고, 그녀가 떠나지 못할 아무 이유도 없었다. 내가 궁금한건, 왜 그녀는 그들처럼, 그네들을 사랑할 수 "없었"을까다. 사랑은 엄연히 동사고, 사랑"받음"보다 사랑"함"이 훨씬 더 충만한 마음의 기쁨을 준다는 것 - 모든것을 쏟아부었던 사랑이 떠나고 나면 열병처럼 무섭게 앓기도 하지만, 그래도 사랑하지 못하느니보다 열렬히 사랑하고 버림받는쪽을 택하겠노라, 김선우 시인은 말한다. - 이, 수천년에 걸쳐 경험자들이 말하는 사랑에 대한 진리며 전부다. 적어도 이 책 속의 루는, 많은 연인들과 더불어 사랑받음을 즐기고 지적 유희로 충만하지만, 사랑의 안타까움으로 눈물짓거나 가슴앓는 '인간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쿨"한 여인일 뿐.

적어도 의학적 관점으로는, 일체의 섹슈얼한 접촉을 거부했던 루는, 강박증 환자거나 신체이상자다. 인간, 특히 여성은 다달이 변하는 정교하고 복잡한 호르몬체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흔히 말하는 노처녀 히스테리는 적절한 시기에 적절하게 공급되지 못하는 호르몬불균형인 경우가 많다. - 히포크라테스시절엔 히스테리 치료 처방으로 임신이 내려지기도 했다나! - 프로이트의 제자였던 빌헬름 라이히는 오르가슴을 통한 오르곤에너지의 방출이 생명의 원천이라고도 주장했는데, 루의 성에 대한 '강박관념'은 평범하다고 보기엔 도가 지나치다. 하긴 전에 어딘가에서 고승들이나 고매한 수행자들이 느끼는, 정신적 깨달음에서 얻는 엄청난 희열을 "non-sexual orgasm"이라고 표현한것을 본적이 있긴 하다. 지성이 너무 뛰어났던 나머지, 천재들과 지적 유희를 즐기는 것으로도 이미 충분했던건지. 흠.

글쎄. 왠지 그녀가 행복했으리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분명 책엔 당당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행복한 그녀의 모습이 가득하지만, 평전임에도 불구하고 루의 심리묘사는 거의 없다. 루는, 자신이 쓴 편지나 자신에 대한 글 - 릴케가 쓴 에로틱한 시 등 - 을 상당수 없애버렸다고 한다. 그녀의 일기에도 소소한 일상 - 지적 자극을 주지않는 관계, 예를들어 남편, 평범한 의사였던 체메크 등 - 은 거의 등장하지 않고 심지어 고의적으로 추정되는 두번의 유산에 관해서도 언급조차 없댄다. 그녀는, 스스로에게도 페르소나가 너무 강했던것은 아닐까. 혹은 스스로 고매한 영혼이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려 일종의 '분열증' 상태였거나. 똑똑하고 섬세한 사람들이 우울증에 잘 걸리는 이유는 바로 "평범함의 부재"란다. 자신이 평범하다는 걸 인정하지 못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는, "비현실성"에 갇혀버리기 때문에. 혹 루의 강박관념도 그런 경우는 아니었을까. 어쩌면 그녀는, 마음속 깊숙히 채워지지 않은 고독감으로 고통스러워 했을지도.

얼굴한번 보지 못한 사람에게, 너무 혹독한 말을 많이도 늘어놓는다. 글쎄.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단한 여인"이 일견 멋져 보이는 건 사실이다. 슬픔에 고립되지 않고 늘 당당했으니까. 하지만 난 오늘도 사랑에 울고 웃고 좌절하는 평범한 여인네들에게 어쩐지 더 애정을 느낀다. 평범함 속에서 의미를 찾는, 지리멸렬한 일상속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찾는, 그런 소박한 행복을 꿈꾸는 사람들. 아마도 내가 루 처럼 뛰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책 곳곳에 등장하는, 사랑에 눈멀고 서서히 죽어간 니체와 릴케의 시구들이, -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 루의 화려한 에피소드보다 더 깊숙이 마음속에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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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1 09: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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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1 13: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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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1 23: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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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2 00: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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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2 00: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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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 알랭 드 보통의 유쾌한 철학 에세이
알랭 드 보통 지음, 정명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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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랜만에 알랭 드 보통의 책을 펼쳤다. 앞서읽은 책들이 사랑과, 여행/건축에 대한 그 자신의 생각이라면, 이 책은 유명한 여섯 철학자의 이야기다. 인간이 겪어야 할 숙명적 고뇌에 대해, 각 철학자들의 주장을 근거로 넌지시 위로를 건넨다. 괜찮아. 이걸 이렇게 생각했던 사람들도 있다구!

드 보통의 글은, 우리가 마음속으로 '느껴만 왔던' 생각들을 조목조목 명쾌하게 풀어놓는 맛이 있다. 일전에 상담받을때, 자신의 생각을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는것과 구체적 언어로 표현하는것은 하늘과 땅 차이란다. 생각을 글이나 말로 전달하는 과정중에 뭉뚱그려진 감정들을 날카롭게 분리시키고, 전혀 다른것들을 꿰뚫는 하나의 원칙을 발견해가면서 스스로 자신을 경계짓고 또 변화시킨다나. 하여 글이든 말이든 자신을 표현하는 것은 대단한 사회적 행위이자 치유의 시작이란다. 설령 듣는 사람이 없는, 스스로의 독백일지라도. 그런 의미에서 보면, 드 보통의 글은 읽는 사람이 자신의 생각에 이름표를 붙일 수 있게 세심하게 도와주는 친절함이 배어있다.

음, 사실 나에게 있어 이 책은 다른 사람의 주장을 풀어놓다보니, 그전 책들에서 느꼈던 즐거움은 많지 않았다. 물론 보통 특유의 어법으로 - 적절한 해설과 비유, 많은 사진등을 곁들여 - 철학개론서에서 봤으면 전혀 다가오지 않았을 말들을 좀 더 친근하게 던져주기는 한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에서처럼 단락마다 번호를 붙여 - 짧은 단락들마다 다른 관점에서 - 써내려간 곳이 많다. 쇼펜하우어 부분에선 한토막 소설을 던져놓고 - 마치 "다음 글을 읽고 분석하시오"라는 논술문제의 답변처럼 - 그 철학자의 입장에서, 때론 관찰자의 입장에서 조목조목 글을 풀어간다. 주제별 철학자들 이야기는 서사적 흐름을 가진 장편소설같기도 하고, 일정한 주제로 묶인 단편소설집 같기도 하고 한권의 책 안에 여러 서술방식이 공존한다. 이사람, 어려울 수 있는 주제를 쉽게 쓰는 재주는 확실하다!

책은 총 여섯가지 고뇌에 대한 위안 - 인기없음에 대한 위안(소크라테스), 충분한 돈을 갖지 못한데 대한 위안(에피쿠로스), 좌절에 대한 위안(세네카), 부적절한 존재에 대한 위안(몽테뉴), 상심한 마음을 위한 위안(쇼펜하우어), 곤경에 대한 위안(니체). - 들이다. 인간을 다룬 책이라면 - 소설이든 철학책이든 칼럼이든 - 어디서나 나올법한 보편적 주제들이기도 하고, 바꿔말하면 우리가 늘상 마음에 품고 있는 고민이기도 하다. 글쎄, 사람은 자기가 처한 상황을 벗어날 수 없어서일까. '삶의 간절함'이 화두인 나에겐, 철학자들의 답변들이 모두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한 방법"들로 여겨진다. 우리가 '좌절'이라고 부르는 것들에 함몰되지 않기 위하여, 해답없는 문제에 틀어박혀 시간을 소진하기 보단, 더 '온전하게' 살기 위한 해결책들로 보인다. 지독한 염세주의자였던 쇼펜하우어는, 사실은 희망이 이루어지지 않을때의 좌절에 빠지지 않기 위해, 헛된 기대가 주는 낙심을 피하기 위해 삶에서 환상을 벗겨낸것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겪는 고통이, 사실은 삶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고통의 바다에 뿌려진 한방울의 빗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고통의 존재를 인정함으로써 오히려 고통과 벗삼아 '온전히'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어린아이에게는, 자기 앞에 놓여진 생의 무거움을 감당하기 위해, 그 불안과 공포를 이겨나가기 위한 신뢰감 구축이 가장 중요한 반면, 성인은 앞으로 맞이할 죽음 - 여태까지 한번도 스스로 겪어본 적 없는 낯선 대상 - 앞에 자신이 지나온 날들과 화해하는 통합과정이 중요하다고 한다. 똑같은 경험이라도 어렸을적 경험이 인생 전체를 짓누르는 큰 상처가 되기도 하는 것은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지 못해, '그 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뚝 떼내어진 '실체'로 보기 때문이란다. 그 ' 실체'는 자신으로 통합되지 못해서 오히려 삶을 억누르지만, 그것이 내면화 되면 -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의미에서 - 오히려 그것과 더불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댄다. 인간은 숙명적으로 혼자일 수 밖에 없고 - 아무리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도, 나와 똑같을 순 없다. "和而不同" - 누구나 자기 나름의 고뇌를 안고 살아가겠지만, 고뇌를 없애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그 한가운데로 들어갈 수 있다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해결책이 되지 않을까. 융은, 인간은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쉽게 와닿지 않지만 - 특히, 가슴으로는 - 천천히 곱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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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2007-08-09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이부동, 저도 좋아하는 말입니다.

Jade 2007-08-09 11:28   좋아요 0 | URL
참 똑같은 단어라도 쓰이는 상황에 따라 와닿는 정도가 다른것 같아요~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처음 봤을 땐 정말 건조한 단어였는데 ^^;;

2007-08-09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09 16: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09 22: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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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0 0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7-08-09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통씨는 제가 좋아라하는 유일한 외국'작가'에요. 아직까지 다른 작가들을 많이 접해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근데 최근에 나온 <행복의 건축>은 아직 못 읽었습니다. 다른 것들에 치여서. -_-

Jade 2007-08-09 16:33   좋아요 0 | URL
ㅎㅎ 전 여친이랑 헤어진 친구가 추천해줘서 보기 시작했는데, 이 사람 글 은근 중독성 있어요 ㅎㅎ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 근대 망령으로부터의 탈주, 동아시아의 멋진 반란을 위해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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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 선 사람이, 중심부에선 볼 수 없는 핵심을 꿰뚫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시야가 닫혀있지 않기 때문일까. 박노자의 글을 읽으면, '당연한'것들이 순간순간 낯설어 진다. 새로운 것을 깨치는 즐거움보다, 머릿속에 이미 자리잡은 것들을 옮기느라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런 아픔(!)을 겪으면서도 그의 책은 - 관심사 밖의 주제라도 - 나오는 종종 읽게되니, 확실히 중독성 있는 글이다.

고등학생때, 역사를 보는 두 관점 - 사실의기록, 현재의 반영 - 에 대해 배우며 '그냥 그런가 보다' 흘겼던 기억이 난다. 더 정확히는, "다음 중 역사에 대한 관점이 다른 하나를 고르시오"라는 뻔한 문제유형에 길들여져, 역사서술의 의미에 대한 어떤 심각한 고민도 없었다. 아니, 그 당시의 나에겐 역사는 그저 배우기 위한 역사였을 뿐.    

'짐은 이것을 역사라 부르리라'는, 열등감을 극복하고자 역사를 "새로 썼던" 여불위에 대한 소설이다. 이 책이 단순히 허구의 소설인지, 진실에 근접한 역사물인지는 제쳐두고 잠시 역사의 "효용"에 대해 생각해본다. 역사가 '목적'이 아니라 '도구'로 이용된다면 사람들의 집단적 무의식을 제한할 수 있는, 뒤집어 보면 근원을 알수없는 열등감이나 우월감을 심어줄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다. 특히 판단능력이 부족한 어린시절부터 주입된 역사라면.

이 책은 초등학교 교과서부터 등장하는 주요 "애국자"들의 "다분히 친일적"인 이면에 대해 폭로하기도 하고 - 아직도 기억난다.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에 만화로 나와있던 '이준'열사. 비분강개로 인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던 "열사"가 사실은 친일파였다니! 중고등학교 국사 시험에 주관식문제로 출제되던 '장지연'과 '민영환'역시! - 교과서에 등장하지 않는 이름모를 - 하지만 당대에는 꽤 중요한 일들은 한 - 운동가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호국불교"라는 이름으로 각종 전쟁시 칼을 들고 나선 승려들이, 사실은 울며 겨자먹기로 끌려나갔다는 등 '민족주의'과 '애국'의 이름아래 당연하게 '생각하도록' 배워왔던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던진다. 이쯤 되면 머릿속이 핑핑 돌면서 아득해진다. 대체 내가 배워왔던 것들이, 당연히 '사실'이라고 믿던 것들이 어디까지가 진실인거야!! 아니, 어떤 목적으로 그렇게 배워왔던거지?

요즘은 '국사'가 수능 필수과목이 아니라서 딱히 관심있는 학생이 아니면 한국사에 대해 잘 모를거다. 인물과 갈등관계 중심의 사극에 길들여져 어떤 아이콘이나 영상물로 표현되는 역사를 배울테고. 갑자기 늙은이같은 노파심이 든다.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서 어떤 '깨임'의 과정을 겪는다면 얼마나 많은 진통을 겪어야 할까. 물론 아는것은 상처받는 것이라 했지만. 또 아는거 없긴 나도 다를바 없지만, 갑자기 왜 이런 건방진 염려가 드는건지.

여담이지만 어제 두번째로 "화려한 휴가"를 봤다.  감독은 역사의 무게에 눌리지 않고 '사람'을 다루려 했다고 한다. 정치적 의미는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관객이 궁금하면 찾아보게 되어 있다고. 주인공 '민우'는 윤상원 열사를 모티브로 출발했지만 민초의 힘을 표현하고자 바꾼것이라 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 어쨌든 200만을 훌쩍 넘어섰으니 "광주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리는" 목적은 달성한 것 같다. 이제 남은건, 광주를 '알게 된' 사람들이 영상물에 표현된 것에 국한되지 않고 스스로 찾아보길 바랄수밖에.

 "언론의 '숨은 의제'를 파헤쳐 언론이 강요하는 세계관을 거부할 줄 알아야만 체제의 거짓에 그대로 놀아나는 '선량한 국민'의 처지에서 벗어나 상식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p.351)

문득 '상식'을 회복하기에도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눈으로 들어온 텍스트들이 곧바로 각인되지 않게 열심히 물고 뜯어 에둘러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머리는 "쓰라고" 있다는 진부한 진리를 곱씹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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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의 아름다움
필립 시먼스 지음, 김석희 옮김 / 나무심는사람(이레)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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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간 친구 녀석이, 마음 못잡고 헤매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책 한권을 추천했다.  항상 제 또래보다 어른스럽고 싶어하는 녀석이라 마치 삶의 의미를 통달이라도 한 냥 끄적거렸길래, 대체 무슨 책인가 호기심 반 의심(!)반 집어든 책.

극한 상황이나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서 굴하지 않고 꿋꿋히 역경을 헤쳐나가는 주인공들의 영웅담은, 진실을 포장한 가식의 가벼움때문에, 감동을 '조장하는' 진부한 수식 때문에, 그 속의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상당수가 '그런 종류의 책'으로 치부되곤 한다. 저자가 루게릭병으로 인해, 서른 다섯의 젊은 나이에 "찻숟가락으로 한숟갈씩 생명을 덜어내는"고통을 겪으며 지은 책이라길래, 약간은 반감이 들었다. 하루하루가 축복이라 여기는 저자의 참 마음과 관계없이, 그런 고통을 모르는 나에겐 그냥 그런 뻔한 스토리로 다가오진 않을까. 혹은 다른사람의 고통에서 내가 이 사람보다 더 나은 상태라는 위안을 얻는다는게 잔인해서. 혹은 책 읽는 순간의 감동들이 책을 덮음과 동시에 같이 책상속으로 깊숙히 꽂혀버릴까봐. 삶에 대한 통찰력은, 그것을 얻기위해 보냈던 수많은 밤을 모르는 사람에겐, 늘 어디선가 들었던 경구 쯤으로 잊혀지고 만다. 특히 나처럼 가슴으로 읽지 못하고 머리로만 얕게 읽는 '가련한 독자'에겐.

다행스럽게도 이 책은, 독자에게 어떤 교훈이나 깨달음을 주려고 강하게 주장하지 않는다. 그저 병을 얻고 나서 변화되는 자신의 모습들과 심리상태에 대해 나지막하게 중얼거릴 뿐. 5년이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으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삶을 살아가게 될까. 분노 체념 절망 상실감...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많은 경우에 '죽음을 남일처럼 모른체 하는'사람들에 비해 삶에 대한 애정이 깊다. 저자역시 '불치병'때문에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되지만, '병'을 대상화하진 않는다. 누구나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자신이 겪는 병은 보편적 현상의 특수한 형태일 뿐. 조금씩 근육들이 마비되고 이젠 거의 손을 쓸 수 없지만 그는 그 모든 결핍과 상실을 사랑한다. 자연의 모든것들은 태어나고, 변화하고, 소멸한다는 당연한 진리속에 기꺼이 들어가 온몸으로 눕는다.

다른책에서도 많이 언급되는 말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과거 혹은 미래만 있다. 현재는 과거의 찬란한 미래였지만, 숨쉬고 있는 지금은 어떤 미래를 위해 달려가는 과정일 뿐이다. 모든것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고 했던가. 저자는 시간이 영원하다면 우리가 숨쉬는 매 순간순간을 충실히 살아냄이 곧 영생이라 말한다. 틱낫한 스님의 말 "그릇을 깨끗이 하기 위해 설거지 하지 말고, 설거지 하기 위해 설거지 하라"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이것저것 따져보거나 지나간 일들을 곱씹으면서 현재를 보내는 것은,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 결국 모든 순간들에! - '살지'못하는 것이다.

죽음이 실체로 다가오지 않는 나에겐, 이 책의 진지함이 충분히 스며오진 않았지만 적어도 이 책을 읽는동안엔 책 속에 빠져들었음에 위안을 삼는다. 의사들의 예측을 벗어나 7년째 생존하고 있는 저자가, 앞으로도 많은 순간들을 '살아있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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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 2007-08-03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추천하고 갑니다.^^

metta 2019-11-13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 필립 시먼스는 2002년 7월에 루게릭 합병증으로 세상을 떴다고 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여름방학 중 아이들과 읽어 볼 ..
신도 버린 사람들
나렌드라 자다브 지음, 강수정 옮김 / 김영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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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 버린 사람들. 제목이 참 자극적이다. 분명 내용은, 카스트라는 천형을 극복한, 분명 희망적인데. 신을 믿는 이유는 -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 절망속에서 희망을 얻고자 함인데, 도리어 신에게서 버림받았다니. '버림'받는다는 것은 '버리지 않는다'라는것을 전제로 함과 동시에 뒤의 목적어가 '버림받을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것을 함축한다. 신'도' 버렸다는 것은, 그 전에 사람에게서 버림받았다는 말인데, 신은 사람을 '버릴'수 있는 존재인가. 그렇다면 그 신은 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걸까. 짧은 머리로 여러가지 생각을 해본다.  

불가촉천민. 어렸을 적 세계위인전집에서 '간디'를 읽으며 처음 접했던 단어인것 같다. 닿을 수 없는 사람과 닿을 수 있는 사람. '닿는'다는 것의 의미가 새삼 생소하게 다가온다. 인도 역사나 문화에 문외한인지라 어디에서 기원한건지는 알 수 없지만 애초에 왜 닿을수조차 없는, 같이 숨쉬는 것조차 꺼려지는 계급을 만든걸까. 같이 생활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사람들이 '불결한'존재라면, 극단적으로 말해서 애초에 아주 멀리 쫓아내 버리고서 '닿을 수 있는'사람들끼리만 구성된 '깨끗한' 사회를 만들면 되지 않나. 결국 자신들이 꺼려하는 일들을 그 사람들에게 맡겨놓고서는 - 뒤집어 말하면, 그 사람들이 없으면 자신들의 생활이 유지되지 않는데 - 돌아서선 그들때문에 땅과 물이 더렵혀진다며 마을로 들어오지 못하게 쫓아내고 경멸하다니! 카스트 역시 인도 전통이라고, 바깥사람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할수도 있겠지만, 그럼 과연 전통이란게 뭔지, 또다시 흐리멍텅해진다.

인도의 풍습이나 - 신상을 집에 두고 매일 기도드린다든지, 태어나자마자 힌두교인으로 살아간다든지 등등 - 생활사에 무지해서 책 곳곳의 풍경들은 낯설기만 하다. 하다못해 이름과 애칭의 연관관계역시 헷갈리니까. 왜 이책을 읽기 시작했을까. 온갖 역경을 딛고 '자수성가'한 사람의 인생사를 들여다보며 용기와 감동을 얻고싶었던건 아니었다. - 이 책은 그런 '감동'면에서는 오히려 떨어진다고 해야할지도 모른다. 눈물을 자아내는 극적묘사나 감상적 문구들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당시의 정황설명이다. '다무'와 '소누' (나렌드라 자다브의 부모) 의 회상이라 주인공들의 감정이 드러나긴 하지만, 대부분 남 얘기하듯 딱딱 끊어진다. -  사실 부끄럽지만 아직까지 카스트 제도가 지속되고 있는지도 몰랐다. 노예가 없어진것처럼, 카스트도 어느순간부터 없어졌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없어졌지만 아직까진 출신계급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말에, 왠지 모르게 책을 읽고싶어졌다. 잘못 알고 있었다는 부끄러움과, 이제라도 알아야겠다는 어떤 의무감 때문이었을까.

마하트마 간디는 위대한 현인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와 바바사헤브(달리트의 권리를 위해 헌신한, 나중엔 자신들을 버린 힌두교를 '버리고' 불교로 개종한 사람)와 대립각을 세웠다는 사실은 난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위대한 사람은 모든 방면에서 위대할 것이라는 순진한 착각 때문에, 아마 이 책이 아니었으면 무심결에 '간디가 옳다'라고 했을것이다. 아무생각없이. - '무지'는 죄가 아니지만 '무지'상태에서 어떤 결정이나 판단을 내린다면 '죄'가 될수도 있다! - 간디와 바바사헤브가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대립한건지, 또 양쪽은 각각 어떤 입장이었는진 모르니 뭐라 말할 순 없지만 어쨌든 달리트들에게 있어서는 간디보다 바바사헤브가 훨씬 더 위대한 현인이리라.

바바사헤브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지만, 그들을 버린 힌두교를 똑같이 '버린' 용기는 대단하다! 한순간에 버림'받는'객체에서 '버리는' 주체로 상황을 엎어버렸으니 - 물론 '버리다'는 표현히 적절하지 않다는 건 알고있다. - 확실히 그는 '삶의 주체'로 살았으리라. 이 책의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누구나 자기 삶을 갖고 태어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자기 삶을 '사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타고난 굴레때문에, 환경때문에, 뜻대로 되지 않는 운명때문에. 난 운명은 '선택'하는 것이라 믿는다. '타고난 사주'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는, 각각 타고난 천성에 따라 어느정도 삶의 윤곽이 잡힌다는 것을 전혀 믿지 않는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속박되지 않을 용기는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한다. 단, 뒤에 따르는 시련과 고난을 어느정도 감당할 수 있는지 결정하는것도 개인의 '선택'이라는 전제하에. 고난도 삶이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삶을 사랑하고 온몸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있어 인생은 '잉여'가 없는, 하루하루가 소중한 새 날들일테니. 물론 말이 쉽지 실제 고통스러운 상황이라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은 안다. 하지만 '어쩔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이라 생각하거나, 혹은 어떤 절대자가 있어 내 앞날을 주무른다 생각하며 무력하게 살아가는것보다는, 어떤 상황이든 그것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는 순전히 자기 선택에 달려있다 믿는게 훨씬 희망적이지 않은가! 수많은 달리트들이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지만, 순응하는 사람과 반항하는 사람이 나뉘는 건, 그들의 천성이나 운명보다는 그들 각각의 선택이라고 보고싶다. 바바사헤브가 바란건 높은 카스트들의 동정이 아니라 달리트들의 자유였으니까.

책 뒷면엔 '신조차 내 꿈을 빼앗지 못했다"라는 문구가 있다. "나는 내 꿈을 포기하지 않길 선택했다."라 바꾸고 싶은 충동이 든다.

책 중간중간 끼어있는 사진들은, 글 만으로 쉽게 떠오르지 않는 인도의 세세한 풍경들을 전해준다. 이국적 향취를 느끼며 동봉된 엽서에 편지를 써 보내고 싶다. 주위의 '심리적 달리트' - 운명과 상황을 원망하는 사람들 - 들에게 보내고 싶다.  - "당신의 삶을 선택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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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7-29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제목 보고 이 책인줄 알았어요. 찜해놓은 책인데 괜찮은 선택인가 보군요. :)

Jade 2007-07-29 13:50   좋아요 0 | URL
ㅎㅎ 뭐랄까 저는 원체 인도에 대해 아는게 없었던 터라 나름 재미있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