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코드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올해 초인가 진중권씨의 "호모 코레아니쿠스"를 보고 알라딘을 뒤적뒤적 하다 얼결에 이 책을 주문했다. 강준만이라는 이름은 - 이 책이 처음 접한 그의 저서인 내게는 - 그때나 지금이나 낯설어 한동안 책장에 고이 모셔두고만 있다 알라딘 서재 곳곳에서 강준만이라는 이름을 발견하고, 또 그의 글을 읽다 근 6개월만에 집어들었다. 처음 접한 책이 쉽게 읽히는 글이라  참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한권만 읽어도 대충 개인의 특징이 드러나는 저술가도 있지만, 글쎄 이 책만 봐서는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나는 - 아직 머리가 덜 자라서 - 기존의 의견들을 잘 정리해 놓은 책보다는, 새롭고 신선한 시각을 던져주는 책을 선호하는 편인데, 유난히 인용문이 많은 - 어떤 '사실'에 대한 인용문이 아니라 개개인의 '의견'에 대한 인용문이 많다 - 이 글은, 담고있는 내용의 진실성 여부를 떠나 솔직히 썩 맘에 들진 않았다. 하긴 집필 의도부터가 이론보다는 "생활속의 생생한 이야기들을 소개"함으로써 한국/한국인의 특징을 살펴보는 것이었으니. 다른 책들과 달리 일간지나 주간지, 월간지 등 정기간행물에서 따온 인용문이 대부분이다. 나같이 전문적 식견이 없는 사람들에겐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뒤집어 보면 별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 적어도 내가 '듣고 본'바에 의해서는 - 저자가 결코 물에 술탄듯 술에 물탄듯 맹숭맹숭한 사람은 아니기에, 이 책이 고유의 '특징'이 없는것은 아니다. 분명 비판적 관점에서 날카롭게 접근하지만, 흔히 부정적으로 비춰지는 특징들 - 냄비근성, 가족주의 등 - 에서도 '장점'을 찾아내는 입장들을 고루 포진해 놓았다. 소위 '지식인'들이 대중들의 '어리석어 보이는' 행동들에 대해 날카롭게 쏘아대는 경우가 많은데 - 얼마전 있던 '디 워'논쟁 처럼 - 이 책은 사회가 그렇게 흘러왔으니 그럴수 밖에 없지 않냐며 일단 긍정하는것도 인상적이다. 모순되는 행동을 두고 이중적이라며 비판하기 보단, 모순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 - "역설"의 경지! - 하는 것이다.

"...한국인들의 경제적 보수성은 한국 경제의 본질이다. 해외의존도가 70%가 넘고 늘 위태롭다. 사회복지는 박약하고 자녀교육은 살벌한 계급전쟁이다. 경제적 보수성은 생존권 차원의 문제다. 김대중/노무현 열성 지지자들조차 보수신문을 열심히 구독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붓뚜껍 누르는 일에선 정치적 비주류를 지지할망정 신문 하나 보는 일이라도 경제적 주류 근처에 가까이 가고 싶은 그들의 심정을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정치야 어차피 직업 삼을 일이 아닌 이상 큰 의미는 없는 것이다" (p.292 맺음말 중에서)

나는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시각을 던져주는 말들, 혹은 가슴에 와닿는 문구가 있으면 여지없이 밑줄을 긋곤 하는데, 특이하게도 이 책엔 저자의 말보다 인용구들에 더 밑줄이 많다. 초반부엔 극단적으로 말해서 "짜집기 책"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새로운 것을 발견해 내는것만 "창조"가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흩어져 있는 사항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꿰어내는 것 역시 "창조"다. 더욱이 요즘처럼 온갖 정보들과 각자의 관점에서 쓰인 "정당한" 논리들이 판치는 때라면 오히려 후자가 더 의미있을지도.

본문에서 여러 인용문들을 통해 "객관적"접근을 중시했다면, "맺음말"만큼은 - 리영희씨와 노무현 정권이라는 구체적 화두를 놓고 - 저자의 의견을 마음껏 피력한다. 치우친 의견이라 말 할수도 있겠지만, 저자 자신의 고민의 흔적이 묻어나는 것 같아 쫙쫙 밑줄그은 구절이 많다. (개인적으로 옳건 그르건 자신의 주장이 강한 글에 매력을 느끼는 지라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챕터를 꼽으라면 단연 맺음말이다.)   

개인의 저술이지만 동일한 현상을 두고 여러 사람의 엇갈리는 입장을 많이 실어놓은지라 '중립적 분석'이라는 느낌이 남는 책이다. 다작으로 유명한 작가라던데, 다른 책들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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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8-31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준만 썼네. 내가 관심갖는 사람들 다 나온다아. :)

Jade 2007-08-31 16:00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게요. 어쩌다 보니 요즘 읽는 책들이 아프님과 코드가 맞나봐요 ㅎㅎ 사실 이번에 학벌사회/감염된언어/김선우산문집 등등 주문했는데..ㅎㅎ

마늘빵 2007-08-31 18:02   좋아요 0 | URL
와. 나두 멜기님 이벤트 책으로 김선우꺼 사달라했는데.
나두 이런거 읽고픈데 지금은 -_- 안되겠고, 3-4개월 뒤로 미뤄야지. 한번 빠지면 다른 책들만 계속 보기 때문에, 책을 안 볼지언정 다른 책들은 건드리지 않기로.

Jade 2007-09-03 09:05   좋아요 0 | URL
김선우 산문집 읽는데 '루시드 폴' 얘기가 나서 얼결에 음반도 주문했다는....^^;;;
 
기자로 산다는 것
시사저널 전.현직 기자 23명 지음 / 호미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시사저널을 처음 보기 시작한 건 2004년이었다. 갓 대학에 입학해 어리버리하던, 그러면서도 알고싶은 욕심만 많던 내게 누군가 추천했었다. 주간지라는게, 게다가 별로 알고싶지 않은 정치 이야기가 가득한 잡지는 썩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왠지 안보면 허전했던지라 어떤 의무감(!)으로 거의 1년을 꼬박꼬박 사보곤 했다. 그렇게 시사저널에 익숙해질때쯤 소위 "진보적"이라는 성향에 이끌려 한겨레21로 전향했는데 처음엔 편집디자인이며 약간은 과격하고 치우친듯한 기사가 낯설어 한동안 적응하느라 애먹었었다. (사실 그 낯섬이 쉽게 가시지 않아 꽤 오랫동안 홍세화, 박노자, 김정란, 그 외 몇명의 고정칼럼만 열심히 읽었다.)그 땐 논조의 차이겠거니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단순히 "관점의 차이"만은 아니었던것 같다. 1년이라는 짧은 시기였지만 나름대로 "시사저널식 글쓰기"에 익숙해져 "눈"이 높아졌던게다.

알라딘에 친숙해지면서 좋은점 한가지는, 여러 서재지기님들의 정성들인 페이퍼와 리뷰 덕에 내가 굳이 찾으려들지 않던, 혹은 관심없던 소재를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는 거다. - 지금은 집에 TV가 없어 뉴스를 안보고, (하긴 뭐 TV가 있었을때도 한달에 한두시간 볼까말까 했으니), 신문도 잘 안읽고, 인터넷 뉴스도 안보니 내가 관심갖던 분야는 전공과 관련된 극히 협소한 영역이었다. - "시사저널 사태"가 일어났던 그 6월에 난 매주 밀려드는 시험에 지친 본과1학년이라는 핑계로 세상과 거의 담을 쌓고 살았고, 시험의 압박감에서 풀려날 때 쯤엔 개인적 고민으로 인한 폭음으로 또 혼자만의 세계에 살았다. 7월 얼떨결에 가진 알라디너들과의 모임에서 시사저널 관련 1인시위를 하신다는 승주나무님을 만났고, 그 뒤 시사in 창간식에 관한 여러 페이퍼들을 읽으며 조금씩 궁금해졌다. 시사저널이 좀 대단하긴 했었나보네! 난 왜 못느꼈지? -_-;;

기사란, 신문이든 주간지든 어떤 fact전달이 목적일 뿐 문장 자체가 고급일거란 생각은 미처 못했던 어리석은 나였다. 그쪽 방면엔 원체 아는게 없어 그저 학교에서 배웠던대로 육하원칙에 따라 건조하게 서술하는게 전부라 여겼던 탓에, 난 소위 글 잘쓴다는 기자들은 취재만 잘 하면 어떤 기사든 술술술 잘 써내려가는줄 알았다. 물론 취재의 질이 높으면 기사 쓰기가 수월한 건 사실일테지만 세상에, 당대의 문장가들에게까지 검열받은 기사였다니! 그런 "명품 기사"를 놓고도 시큰둥하던 내가 부끄럽다. - 하긴, 그 땐 잘쓴 문장과 조악한 문장을 가려내는 "눈"이 없었을 때니까. - 하여간, 이 책을 보면 그간 만들어진 시사저널을 위한 치열함이 뚝뚝 묻어난다. 영화든 책이든 기사든 혼신의 힘을 다한 명품은 보는 사람도 혼신의 힘을 다해서 봐야 하는데, 3000원이라는 사비를 털었단 알량한 이유로 소 닭보듯 쓱 훝었던 기사들이 떠올라 책 읽는 내내 민망했다. 꼭 시사저널에 국한된 얘긴 아니다. 선생님 한분이 말씀하시길 "펴는 즉시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좋은 책'들도 물론 있지만, 그런 수준이 아니라도 돈 만원 들여서 몇 개의 insight만 얻을 수 있대도 그정도의 가치는 하는거 아니냐". 아 과연 나는 text를 통해 무얼 얻으려 했던걸까. 쓰는 사람의 노고만큼 열심히 읽었던 적이 얼마나 있었나. 눈에 한번 "스쳤"다는데서, 혹은 책장 한켠을 채운 부피감만으로 "소유"의 만족에 빠졌던 건 아닐까.

솔직히, 이 책을 읽기 전에 알고있던 이름은 소설가 "김훈"뿐이었다. 이제보니 기자 한명 한명이 쟁쟁한 인물들인것 같다. 왠지 앞으로 이 사람들이 책을 낸다면, 전직 시사저널 기자라는 이유만으로 선뜻 집어들지 않을까 싶다. 책 가득 시사저널이 얼마나 '품격있는'주간지였는지 칭찬들 일색이지만, 그만큼 자신있다는 당당함으로 비춰지기에 거부감이 없다. - 사실 불편함이 없는건 아닌데, 생생한 빨간 표지와 장 구별 속지는 눈을 괴롭힌다. 빨간색을 싫어하는것은 아닌데, 형광느낌이 나는 이런 색(그것도 단색으로!) 표지로 쓴 책은 거의 본적이 없다! 강렬한건 좋지만... - '시사저널 기자로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되서인지 9월 15일에 나온다는 시사in 창간호가 사뭇 기다려진다. 이번엔 꼭꼭! 혼신의 힘을 다해서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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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9 0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29 0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29 0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Jade 2007-08-29 13:11   좋아요 0 | URL
ㅋㅋ 한번 맞춰보시죠
 
음향과 분노
윌리엄 포크너 지음 / 북피아(여강)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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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여기 몰락해가는 한 가문이 있다. 한때 장군도 있었고 정치가도 있었으며 부유한 지주도 있었으나 지금은 울음으로밖에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33살 백치 벤지와 누이 캐디를 사랑해서 자살한 하버드생 퀜틴, 누이의 사생아를 괴롭히고 양육비를 가로채는 수전노 제이슨, 그리고 어머니 캐디와 비슷하게 방탕하게 놀아나는 사생아 퀜틴이 있을뿐이다. 주인공들의 아버지는 변호사이자 알콜중독자로 아들의 자살을 뒤따르고 어머니는 늘 곧 죽는다는 말과 눈물을 달고사는 중증 우울증환자다. 한때 번성했던 콤프슨 가는 운명이라는 올가미에 죄여 서서히 파멸의 길로 치닫는다. 그러나 독자를 압도하는 것은 음습한 줄거리가 아니라 뒤섞인 퍼즐조각같은 서술방식이다. 주변묘사와 주인공들의 독백은 시공간을 마구 뛰어넘는다. 특히 첫장부터 순전히 연상에 의존한 백치 벤지의 서술은 100여페이지를 읽는 동안 독자를 공황상태에 빠뜨린다. 대체 말하려는게 뭐야!

나는, 여간해선 곧바로 재독을 하지 않는데 이 책은 처음부터 곧 다시 읽겠다는 강렬한 욕구가 들었다. 추리소설을 읽는 기분이랄까. 문맥과 상관없이 불쑥불쑥 끼어들었던 장면들은 모두 어떤 사건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책의 구성은 1928년 4월7일 (벤지), 1910년 6월 2일 (퀜틴, 자살한 날), 1928년 4월 6일 (제이슨), 1928년 4월 8일 총 4부분으로 각각의 날들을 묘사하지만 연상으로 이어지는 회상을 통해 1900년 즈음부터 중간중간 끼어있는 줄거리를 알 수 있다. 게다가 책 뒤엔 소설엔 등장하지 않는 콤프슨 가의 가계도 및 인물설명까지 있다. 마치 실존했던 가문의 연대기를 보여주듯. 한번 읽어서는 도저히 알 수 없고 두번째 읽을때도 모든 연결고리를 다 파악하기는 힘들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알아도 장면의 전환이 각각 어떤 날인지가 더 궁금해 또 다시 읽어보라 유혹한다. - 1970년에 펭귄출판사에서 나온 영문판에는 "Richard hughes"가 쓴, 좌절하지 말고 적어도 두번이상 읽어보며 마치 새로운 책을 읽는듯한 발견의 즐거움을 누리라는 격려(!)문이 있다. - A4 의 삼등분쯤 되는 크기의 500여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낑낑대며 두번 읽었건만, 아직 성에 안차(!) 영문판을 집어들었다. 어려울 걸 알면서 괜한 승부욕(!) 때문에.

먼저 쓰여진 알라딘 리뷰를 보니 전부 책 가득한 오타이야기 뿐이다. 내가 구입한 책은 2006년 4월에 2쇄로 발행된 책인데 다행이 얼마간 수정한 모양이다. 곳곳에 띄어쓰기나 맞춤법 오류가 간간히 보이고 더러는 해석이 어색하거나 한 단락이 반복되는 등의 오류가 있긴 있지만 이전 리뷰에서 지적했던 "창녀리 언덕(원래는 갈보리 언덕)"이나 "qkek거북(바다거북)"같은, 어처구니없는 오타는 보이지 않는다. 사실 번역소설을 읽을 땐 - 더욱이 포크너처럼, 장황하게 상황을 묘사하는 작가의 작품은 - 번역이 자연스럽지 않아 짜증날 때가 많은데, "qkek거북"같은 오타까지 수두룩하다면 정말 책 읽을 맛 안나겠다. 그나마 다행이지만 다시 수정본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사실 난 문학에 문외한이라 몰랐지만) 포크너는 20세기 미국 문학의 금자탑이라 일컬어질정도로 '대단한' 작가라는데. 나처럼 선뜻 영문판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정도 수고는 필요하지 않을까.

화자가 바뀌며 달라지는 인물묘사도 뛰어나지만 어쨌든 이 작품의 묘미는 '발견의 쾌감'인듯 하다. 소설에서 지적 도전을 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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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27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워쩌면 요로코롬 리뷰를 잘쓴당가!
^^/

Jade 2007-08-27 11:27   좋아요 0 | URL
앗 부끄러워요 ^^;;

2007-08-27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27 1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27 16: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27 2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평화의 얼굴 - 총을 들지 않을 자유와 양심의 명령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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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평화롭지 않다. 평화는 전쟁중이다."

적어도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평화"라는 단어는 아무 분쟁도 없고 오직 사랑으로 가득찬, 모든 정치적 이념에서 벗어난 피안의 세계에나 어울릴 법한 느낌을 준다. 평화라는 단어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단어가 있을까.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엔 평화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누구나 존중하고 찬양하는 그런 깨끗한 단어인줄만 알았다. 아는것은 상처받는 것이라는 말은 이럴때 쓰라고 있는것일지도. 정적인 이미지로서의 "평화"라면 모를까, "평화로움"를 추구하는 일은 여느 전쟁 못지않게 수많은 상처를 내포한다. 부시 대통령처럼 자신의 이익 추구에 스리슬쩍 "평화"를 끼워넣는 경우라면 더욱더.

나는 기독교인도 아니고 병역의 의무도 지지 않는 여성이기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 대해 이렇다 할 입장이 없었다. 아니, 관심이 없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일지도. '여호와의 증인'에 대해선 - 의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선 쉽게 납득되지 않는 - '수혈거부'라는 교리가 깊이 각인되어 "이상한 집단" 혹은 "사이비 종교"라고까지 생각했었다.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면 좋을걸 뭘 그렇게 힘들게 사는걸까 비아냥거리기도 하고. 그러다 박경철 의사의 에세이에서, 여호와의 증인 교인인 어느 인턴에 관한 에피소드를 보고, 아주 잠시 생각했던적이 있다. 이 사람들도 나와 같이 사는 사람인데 이 사람들의 주장에도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하는게 아닐까. '수혈거부'를 비난할 게 아니라 같이 다른 해결책 - 인공혈액 등 - 을 찾아봐야 하는게 아닐까. 등등. 사람은 '객관적'인 사실을 두곤 관대하지만 자신의 경험과 관련된 일에 관해선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 예를들어, 자신이 누구보다 수학을 못한다는 것은 인정하면서, '디워'를 둘러싼 논쟁에선 다른 사람의 입장을 수용하지 못하는 것처럼. - 자신이 옳다고 믿어온 것과 타인이 옳다고 믿는것이 왜 꼭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어떤 주제에 관해 "잘 아는" 사람은 글을 쉽게 쓸 수 있다. 이 책은 기독교나 병역거부자에 대해 거의 아는게 없는 독자들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부드럽고 겸손한 구어체와 적절한 예시들. 소수의 입장을 대변하는 책은 공격적 어투인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관심이 없던 독자들도 귀 기울이게끔 자분자분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하지만 읽는 내내 마음은 편하지 않다. 그들이 자신이 믿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평화로움"을 위해 인생을 두고 고민했을 때 나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나 자신도 내가 믿는 어떤 이념을 위해 용기있게 소수의 길을 선택할 수 있을까.

몇십년, 길게는 몇천년 전 부터 세계 곳곳에서 평화를 위해 집총을 거부한 사람들과 온갖 이유를 내세워 전쟁을 정당시 하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모순을 보고 있노라면 "평화"의 의미는 뭘까 곰곰히 생각하게 된다. 저자는 분명 사회적으로 소수인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옹호하지만 그들이 옳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르다는 이분법으로 결론짓지는 않는다. 분명 모두가 행복한 "평화로움"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스스로 어떤 길을 택하느냐는 자신의 신념에 달린 것이기에. 오히려 이 책은 독자 개개인이 "평화"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이끌고 더 나아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역설"의 경지로 이끈다. 모순과 역설의 차이는, 전자가 대립되는 상태에 그친것이라면 후자는 상반되는것이 공존하며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는 것 - 이것이 모순되는것이 통합된 '만돌라'의 치유능력이란다 -  이다.

책을 읽다 문득 겹쳐지는 풍경 하나. '일해공원' 이름을 바꾸려는 사람들과 '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사람들'간에 작은 충돌이 있었댄다. 그 시대를 살지 않은 나에겐 이해되지 않지만 적어도 '전사모'들에겐 그 시절이 자신이 지켜내야 할 '이상향'이자 '종교'인가 보다. "광주에서 일어난 것은 폭동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광주 사람들은 적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는데 합천사람들은 고맙게 생각한다"라고 소리쳤다는 어떤 노인이 떠오른다. 사실 유무를 떠나서, 실제 광주가 "폭동"이었으면, 그렇게 마구 죽이고 유린해도 좋다는 말인가. 아무리 전쟁의 '정당성'을 역설한 들, 전쟁터에서 자행되는 민간인 학살과, '소모품'처럼 죽어가는 군인들의 생명까지 덮어줄 수 있는 '정당함'이란 것이 있을까.

책의 대부분은 종교적 신념에 의해 병역을 거부한 특정 교인들의 사례에 집중되어 있지만, 곳곳에 종교와 상관없이 "생명의 존엄성"이란 신념으로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또 '정당한 전쟁'을 주장하는 사람들에도 '진짜 정당한 전쟁론'을 펴는 사람들 - 대부분의 전쟁은 정당하지 않으므로 결과적으로 평화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 의 주장도 곳곳에 배치되어 '평화'와 '전쟁', 더 나아가 생명 전반에 대한 첨예한 대립각 속에서 자신만의 해답을 찾도록 이끌어낸다. 기독교인이 아닌 내겐 생소한 성경구절과 '예수님'을 찬양하는 문구들이 약간 껄끄럽긴 하지만 "생명"에 초점을 둔다면 무난히 읽을 수 있고, 반대로 다른 시각으로 기독교인들을 볼 수 있게 해준다. 때문에 비기독교인에게 더욱 추천하고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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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8-25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인지, 필연(?)인지, 내 인생의 책에 등장하는 책들이 주루룩 나오는걸 보고, 너무 기뻐하고 있어요. ^______^

Jade 2007-08-25 13:45   좋아요 0 | URL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ㅎㅎ 다음 리뷰가 "서로주체성의 이념"이라면 좋아서 기절하시겠어요 ㅋㅋ

마늘빵 2007-08-25 23:26   좋아요 0 | URL
이야. 내가 완전 사랑하는 책들만 줄줄이. ㅠ-ㅠ (<-이거 오랫만에 써보는데)

Jade 2007-08-26 08:11   좋아요 0 | URL
ㅎㅎ 하지만 사실 "서로주체성의 이념"은 도저히 엄두가 안난다는 거 -_-;;

프레이야 2007-08-25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이드님, 정말 뜻깊은 독서를 하셨군요. 저도 담아두겠어요^^

Jade 2007-08-26 08:12   좋아요 0 | URL
^^ 제가 아는 식견이란게 좁고 얕다 보니 새로운 관점을 던져주는 책들이 너무 많아요~~ ㅎㅎㅎ 혜경님도 의미있는 독서 되시길 ^^

웽스북스 2007-08-26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너무 좋아요 ^^ 김두식 교수님의 글쓰기, 생각 모두모두 좋아하는 아가씨랍니다 제가 ㅋㅋ

Jade 2007-08-26 08:10   좋아요 0 | URL
ㅎㅎ 사실 웬디양 님 리뷰읽고 봐야겠다 생각해서 지른거랍니다. ^^
 
도덕교육의 파시즘 - 노예도덕을 넘어서 프런티어21 1
김상봉 지음 / 길(도서출판)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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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리 멀지 않은 학창시절. 교과서들은 대부분 재미없고 딱딱하지만 특히 도덕교과서는 유난히 지루하고 따분했었다. 뻔한 얘기들. 유치한 사례. 시험때도 도덕 문제의 절반은 '평범한 상식을 가진 학생'이라면 누구나 맞출 수 있는 뻔한 문제였고 나머지는 특정 용어의 암기였던 것 같다. 친구들과 '도덕선생님은 하나도 안 도덕적이야"라며 킬킬거리기도 하고. 요즘 시험 기간에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시험 전 정리를 해주다가 가끔 다음날 수학과 같이 보는 과목을 물어보곤 하는데 그 과목이 '도덕'인 경우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외울게 너무 많아요~"울상이다. '기술가정'처럼 도덕도 하나의 암기과목인 셈이다.

흔히 고지식하고 원리원칙적인 사람을 보면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사람같다'라고 말하곤 한다. 우리가 배우는 도덕교과서는 그런 '답답한' 사람을 양성하기 위한 것일까. 두꺼운 교과서엔 너무 뻔하거나 현실세계와 동떨어진 이야기가 가득하다. 하지만 차라리 그 얘기들이 너무 당연한 진리여서 배울 필요가 없는 것이었으면 나을걸. 우리가 '당연하다고 배워왔던 것들이' 불순한 의도성 아래 치밀하게 짜맞춰진 특정 논리라면. 그걸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왔는데, 사실은 진리가 아니라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 간극은 어떻게 메워야 하나.

道와 德은 한자문화권에서 두루 쓰이는, 유교적 색채가 짙은 단어다. 세상을 아우르는 큰 진리 혹은 바람직한 인간상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무난하지만 실제론 시대마다 또 사상가들마다 '도'와 '덕'에 담는 의미는 다르다. 예를들어 노자의 '도덕경'은 공자 혹은 맹자가 화두로 삼은 '도'와 '덕'과는 성격이 확연히 다르고, 후자 역시 후대로 내려오며 시대마다 조금씩 다른 색채를 띤다. 어떤 보편적 진리가 존재한다고 해도 시대에 따라서 늘 똑같이 적용되는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가 배우는 '도덕'교과서는 적어도 현 시대에는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를 가르치는게 목표일텐데 그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너무 추상적인 말만 반복하거나 혹은 '도덕'이라는 미명 아래 슬그머니 전혀 보편적이지 않은 특정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거나

이 책에선 먼저 박정희/전두환 시대를 거쳐 '온순한 국민'을 양성한다는 목표에 걸맞게 '도덕 교과서'에 주입된 '파시즘'적 요소들을 쏙쏙 집어낸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보편적 가치와 행동의 예로 '새마을 운동'을 든다거나, 갈등은 무조건 없어야 좋다는 식의 논조,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전제로 한 예절의 강조, 국가에 대한 맹목적 충성 등. 후반부로 갈수록 철학 얘기가 덧붙여져 나처럼 철학에 문외한인 사람에겐 점점 읽기가 힘들어지나 첫장만큼은 잘 읽힌다. 아마 후반부에 비해 구체적인 예로 설명하기에 더 잘 와닿는지도. - 여담이지만, 논술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 '일상적인 것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키워주는' 읽기 자료로 읽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 나는 중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기에, 당연히 도덕시험도 늘 100점에 가까웠고 시험때면 밑줄을 그어가며 달달달 암기했던 '성실한(!) 학생이었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슬그머니 화가 난다.  정말 도덕교과서에서 주장하는 것들은 '진리'인줄만 알았었는데. "이건 순 교과서가 학생들에게 사기치는 거잖아!"

후반부로 가면서 지금의 피상적이고 왜곡된 도덕교육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도덕'이 올바른 인간을 양성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스스로 '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실제 생활에서 일어나는 도덕적 딜레마들을 두고 '뻔한 도덕적 해답'말고 자신만의 '해답'을 생각해보도록, 궁극적으로는 철학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솔직히 말하면 후반부로 가면서는 책을 '이해'했다기 보다는 저자의 주장에 따라가기도 버거웠다. '철학적' 쟁점을 이해 혹은 비판하려면 나 스스로가 그만한 식견을 갖춰야 하는데, 하다못해 도덕 교육의 딜레마에 대해 고민이라도 해봤어야 할 터인데, 언제 한번 교과서가 왜곡되었을거라 - '민족의식'이 강한 국사교과서도 아니고 하물며 도덕교과서가! - 고민해 봤어야 말이지. 그저 저자가 던진 화두를 놓고 짧은 머리로나마 생각해 보는 것 밖에.

기억나는 에피소드 하나. 나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때, 그것이 수학이든 과학이든 사회든 최대한 주변적인 설명을 덧붙여 '이해'시키려고 애쓰는 편이다. 5지 선다형인 경우 답이 안되는 것은 왜 맞는지/틀린지 하나하나 말해보라고 하기도 하고. 얼마 전 중1 사회를 가르치다 마주친 대목. "플랜테이션은 유럽인의 자본과 원주민들의 노동력, 열대 기후를 이용해서 대규모의 열대 과일을 재배하는 것. 원주민들의 생활 수준향상에 기여함"이라나. 휴. 답답한 마음에 한 20여분간 유럽인들의 '착취'에 대해 설명했지만 중 1 아이들이 과연 얼마나 이해할 수 있었을까.

에피소드 둘. 서남 아시아와 동아시아의 종교적 분쟁에 대해 설명하는데 한 아이가 묻는다 "근데 왜 종교 때문에 싸워요?" 할말이 없다. 십자군전쟁은 중 2나 되야 배울텐데. 어디까지 설명해줘야 할지. - 어찌 보면 인간 본성에 대한 '성선설'적 입장보단 '성악설'적 입장에서 도덕 교육을 시작하는게 더 효과적일지도 모르겠다. 인간본성은 많은 부분이 도덕적이지 않으니 모두 행복하게 살기위해 의식적으로 도덕적으로 살기위해 애써야 한다는. - 이것저것 횡설수설 설명하다 다시 아이에게 되묻는다. "아프간 샘물교회 피랍자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물론 아이들의 대답은 예상대로다. '불쌍하다', '무고한 사람들을 가둬놓으니 나쁜 사람들이다' 등등. 그래서 거친 비유를 한마디 던진다. "샘물교회 사람들이 선교하고자 아프간에 간 행동은, 일종의 '성전'을 수행하고 있는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일제시대 일본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한국 사람들에게 우리 같이 일본 천황을 모시자고 으리으리한 신사를 지어놓고 참배하는 행동과 비슷한거다." 순간 아이들의 표정에 어이없음이 묻어난다.

에피소드 셋. 휴가나온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 하다가 사뭇 정치적인 얘기까지 나왔다. 그 친구놈은 뭐랄까. 스스로 '정의로운' 사람이라 여기는 아이다. 내가 묻는다 "근데 요즘 길거리에 노숙자들이 부쩍 는 것 같아. 그 사람들 다 사연이 있을텐데. 사회에서 뭔가 해줘야 하는거 아닌가?" 친구 왈  "그런 사람들 대부분이 일 할 능력이 있는데도 안하는 사람들이야. 서울역 가면 멀쩡하게 생긴 아저씨들이 접근해선 '어이 거기 군인, 나 라면사먹게 500원만 줘봐' 이런다니까. 그런 사람들까지 일일이 먹여살려줘야 되냐?" 흠 정말 주변에서 '일하지 않으면서 남의 도움을 받아 살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많이 들었다. 하지만, "일하지 않는 사람"은 도와줄 가치가 없는 건가. "열심히 일하는 것이 미덕"인 것은 분명 청교도적 색채가 강한 말인데. 언제부터 그게 '진실'이 되어버린 걸까. 같은 시공간에 존재하는 타인에게 어떤 '책임감'을 가지면 큰일이라도 나는건지.

저자의 말대로 "스스로 생각하고 너와 더불어 주체로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을 길러내는 도덕교육이 이루어 지기엔 현실이 너무 갑갑하다. 답이 정해진 시험으로 어떻게 '생각'을 키워낸단 말인가. 이 책은 도덕교육에서 시작하지만 사실은 교육 전반에 대한 쓴소리다. 소위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는 입시체제에 허덕이는 고3 아이들과, 좋은 대학을 위해 중3때부터 고등학교 수1, 수2를 공부하는 아이들을 보면 무섭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저자가 바라는 교육은 아직 먼 이상향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어쩌랴.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 '우공이산' 되길 바라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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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8-20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뒤로 갈수록 힘들었을텐데 수고했네. 그만큼 생각하는게 많았던 책이었길. 이러니까 꼭 내가 사준거 같다. -_-

멜기세덱 2007-08-20 23:26   좋아요 0 | URL
나도 이 책 읽고 싶어요....ㅎㅎㅎㅎ 이러니까 꼭 사 달라는 거 같다.-_-
근데, 두 분이 언제부터 다정한 오누이처럼 말 트기로 하셨어요? ㅎㅎㅎ 부럽게시리....ㅋㅋㅋ

Jade 2007-08-20 23:37   좋아요 0 | URL
글쎄요. 전 말 트기로 한 적 없는것 같은데...ㅎㅎ 그럼 저도 반말해도 되는건가요? ㅋㅋㅋ

dalpan 2007-08-21 00:58   좋아요 0 | URL
"악법도 법이다"를 말그대로 해석케했던 우리의 도덕교육이 공자왈 맹자왈에 지배이데올로기이 슬쩍 덧붙이기에 얼마나 능수능란했던가요? 다 배운사람들이 그리 만든거란 생각에 더 난감해지죠. 추천들어갑니다.

건그렇고...뭐야 이거? 다 트는거야? 그런거야?

마늘빵 2007-08-21 08:13   좋아요 0 | URL
그게 말하다보니 반말이 됐다는... -_-;; 음. 제이드님 다시 존대모드로?

Jade 2007-08-21 08:17   좋아요 0 | URL
ㅋㅋ 왜요? 전 반말하고 싶었는데..ㅋㅋㅋㅋㅋ

Jade 2007-08-21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정치나 사회 교과서 등에서 "악법도 법이다"는 주로 '법'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사람들을 속박하기 위한 구실에 많이 붙어있던 기억이 나요... 수능 끝난 후 논술 준비 하면서 이런저런 관점들 접하면서 어찌나 어지럽던지...생각있는 선생님들도 학교에서 왜곡된 가치들에 대해 일일이 설명해주거나 아이들 개개인의 생각을 키워주긴 어려울 거 같고, 결국 어렸을 때 부터 이런저런 책을 많이 읽거나 가정에서 잡아줘야 할 텐데요. 영어/수학 공부에 치여 사는 요즘 같은 때에 어려운 말이겠죠..

ㅋㅋ 아프님의 말 한마디에 "야자타임" 시작되는 분위기...ㅎㅎ

웽스북스 2007-08-21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공감합니다 제이드님, 관심이 가는 책이네요 ^^ 다음 번 구매할 때 참고해야겠어요 감사합니다 ^^ (땡스투 기능이 이래서 생겼나봐요 ㅋㅋ)

Jade 2007-08-21 16:16   좋아요 0 | URL
ㅎㅎ 좀 어려워서 저도 뒷부분은 이해 잘 못했지만, 읽어보라고 권해드리고는 싶어요 ^^

누에 2007-08-21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학교에 워낙 맺힌게 많아 추천! ^^ 특히 '악법도 법이다' 정말 뜨악! ㅠ.ㅠ


Jade 2007-08-22 00:02   좋아요 0 | URL
ㅎㅎ dalpan님은 정말 꼭꼭 찝어서 잘 말씀하신다니까요~ ㅎㅎ 추천 감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