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의 경제학 - 왜 부족할수록 마음은 더 끌리는가?
센딜 멀레이너선 & 엘다 샤퍼 지음, 이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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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주 한 권의 주문 메시지가 도착했다. 내가 올 봄에 사서 중고도서로 올려놓은 <결핍의 경제학>을 누가 주문한 것이다. 자주 그렇지만, 주문이 들어오고 나서 그 책을 훑는 습관이 있다. 촉이 오면 팔지 않고, 촉이 오지 않으면 그대로 주문을 접수받고 발송하는 방식. 이게 내가 알라딘에서 중고책을 파는 나만의 방식이다. ‘무조건 최저가’로라는 건 암묵적 전제.

 

 

어쨌거나 나는 <결핍의 경제학>(RHK, 2014)을 올 봄 무렵 굿윌스토어 신정점에서 2천원에 구매했다. 매우 저렴하게 구매해서 그런지 아무렇지도 않게 중고책 판매 목록에 올려뒀었다. 상당한 시간이 흘러 주문 때문에 책을 열어 봤는데, 참으로 괜찮은 책이 아닌가! 그래서 그냥 읽기로 했다.

 

 

베르그손의 주저들을 읽는 와중이라, 이 책은 이동 중에 아주 집중하여 보기로 했다. 책의 초반 내용은 매우 흥미진진했다. 이 책의 공동 저자들은 2차 세계대전 때의 ‘굶주림에 관한 연구’에서(이후 미네소타 대학의 실험에서) 배고픔이 어떻게 사람의 정신 맨 위에 위치하는지를 아주 새롭게 해석해냈다.

 

 

재밌는 사실은 두 저자가 서로 전공이 다른데, 센딜 멀레이너선은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이고, 엘다 샤퍼는 프린트턴대 심리학 교수이다. 센딜과 엘다는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행동경제학으로 해결하기위해 의기투합하여 이 책을 썼다는 사실(어디까지나 내 추측). 왜냐하면 이들은 여러 사회문제를 행동경제학적 설계를 통해 해결하기 위해 ‘아이디어42’라는 비영리조식을 공동설립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들이 해석해 낸 것은 아주 새로운 결과였다. 미네소타 대학의 굶주림 실험(실험 참가 인원 36명)을 통해서 저자들은 다음과 같은 아주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다.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의 변화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거였다.

 

 

지역 식당에 있는 메뉴판이나 요리책에 집착하는 현상을 보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 신문 저 신문을 비교하면서 채소와 과일의 가격을 살피느라 몇 시간씩 보내기도 했다. 또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을 계획을 세운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은 식당 주인이 되겠다는 꿈을 꾸었다. …… 실험 이전에는 학자가 되겠다던 사람도 이제는 요리책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도 음식이 나오는 장면에만 집중했다. p18

 

 

실험의 결과를 통해서 저자들이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였다. ‘결핍’(배고픔; 음식에 대한 결핍)이 사람의 행동을 바꾸어 놓는다는 것. 이 실험의 결과로부터 저자들은 경제학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희소성의 법칙’을 ‘결핍’으로 환원한다. 결핍 이론으로 인간의 다양한 행동을 설명하고자 하는 의도가 이 책의 목적이다. 이는 35페이지에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기도 하다.

 

 

이 책은 ‘형성중인 미완성의 어떤 과학’을 설명한다. 이는 결핍의 심리적 토대를 드러내고 아울러 이 지식을 이용해서 다양한 사회적·행동적 현상을 알아보고자 한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은 대학교의 심리실험실, 쇼핑몰, 그리고 기차역에서부터 뉴저지의 무료급식소, 인도의 사탕수수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환경에서 진행된 독창적인 연구 조사에서 비롯되었다.  p35

 

 

결핍을 빈곤과 연결해서 설명한 부분에서는 무릎을 치고 고개를 주억거리게 했다. 하지만 조직 행동을 설명하기 위한 ‘시간의 결핍’을 사례와 함께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뭔가가 이상했다. 모든 것을 결핍으로 환원해서 실험의 결과를 유의미하게 끌어내려고 하는 저자들의 원대한 의도가 좀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

 

 

음식의 결핍으로부터 인간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낸 것처럼, 저자들은 조직에서 인간이 행동이 변하는 동기를 시간의 결핍으로부터 도출하고자 한다. 전혀 다른 이 두 사례가 타당성 있게 설명되면, 이후 일상 속에 숨겨진 각종 결핍에 대한 사례가 무리 없이 연결될 수 있다. 한 마디로 ‘결핍 이론’은 강력한 이론적 도구가 된다는 거. 거의 모든 인간 행동을 ‘결핍 이론’으로 환원할 수 있다니, 얼마나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겠나.

 

 

그래서 나에게는 ‘음식의 결핍’이 ‘시간의 결핍’과 동일한 환원 구조를 갖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었다. 이 두 양상이 저자들이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것처럼 같은 정도의 유비라면, 인간 행동의 당양한 양상을 ‘결핍’으로 환원하여 깔끔하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시발점이 된 부분은 51페이지에 설명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의 굶주림 연구에서 배고픔이 배고픈 사람의정신의 맨 꼭대기에 음식을 올려놓았던 것처럼 마감시한(회사에서 회의나 프리젠테이션)은 현재 진행하고 있는 과제를 정신의 맨 꼭대기에 올려놓는다. 회의 시간이 몇 분 남지 않았든 혹은 대학생활이 몇 달 남지 않았든 간에 마감시한은 매우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 해당 과제에 좀더 많은 시간을 투여하고 온갖 산만한 생각들에는 덜 빠져든다. 써야 할 원고의 마감시한이 코앞일 때는 한가하게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지 않는다. 회의가 막 끝나려고 할 때는 대화가 안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시간이 부족할 때면 사람들은 그 남은 시간에서 좀 더 많은 것을 얻어 낸다. 우리는 이것을 ‘집중배당금(focus dividend)’이라고 부른다. 이것이 바로 정신을 사로잡는 결핍이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결과이다. p51

 

 

내가 베르그손의 인식론에 빠져 있어 그런지는 몰라도. 위 부분을 읽으면서 든 의문을 떨치지 못하겠다. ‘음식의 결핍’과 ‘시간의 결핍’은 완전히 다른 양상인데, 저자들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같은 차원에 놓고 아무 거리낌 없이 설명하고 있다.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사람이 배가 고파지는 현상은 매우 자연스러운 거다. 음식을 먹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배가 고파지게 마련. 배가 고픔에도 먹지 못하는 상황은 시간이 좀 더 지나 시장기가 더 강화된 상황이다. 책에 나와 있는 미네소타 대학의 실험에서 보인 굶주림이란 이런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전제된 것은 무엇인가? 그건 바로 사람이 시간의 지속적 흐름 속에 있다는 거다. 꿀물을 마시려면 꿀이 물에 녹는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 사람이 굶주린 상황에 처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음식의 결핍이 있기 위해 사람의 몸은 일정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말이다. 이 상황은 매우 물질적(신체적)이다.

 

 

이 물질적 상황이 사람의 행동을 바꾸어 놓는다. 이런 경험(굶주림)을 통해 사람의 행동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에 딴지를 걸 마음은 없다. 신체적 상황이 정신을 지배할 수 있다는 점을 실험으로 입증한 것만으로도 신선했으니까.

 

 

헌데, 2시간 동안 회의를 하거나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상황은 어떤가? 모두 인위적으로 시간을 막아 두고 있다. 여기서 느끼는 시간의 결핍은 가공된 것이다. 생존의 차원이 아니라 부수적인 차원이다. 무엇보다 이 행위들은 정신적 활동이다. 회의를 하거나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행위는 아무리 소박하게 생각해도 정신 작용의 일환이지 신체 작용에 따라 이루어지는 활동은 아니다.

 

 

‘무언가의 결핍’으로 묶기에는 차원이 너무 다르다. 전통적인 철학적 도식으로 구분해 보면, ‘음식의 결핍’은 물질의 영역이고, ‘시간의 결핍’은 정신의 영역이다. 이를 같은 선상에 인위적으로 놓고, ‘음식의 결핍과 시간의 결핍은 인간 행동을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라고 주장하는 건 매우 우스꽝스러운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전자의 도식을 후자에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 봐도 무리라는 걸 알 수 있다. ‘결핍’으로 모든 것을 환원하고자 하는 욕구가 너무 강한 나머지, 저자들은 각 실험 사례들의 유비적 엄밀성을 따지는 데 실패한 듯하다.

 

 

물론 이 책이 결핍을 가난으로 연결하여 사람들의 선택과 행위를 분석한 면은 상찬 받아 마땅하다. 더군다나 경제학의 ‘희소성’을 ‘결핍’으로 재정립하여 경제학의 외연을 확장하고 있는 점에서는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다만, 물질의 영역(개인)과 정신의 영역(조직인)을 엄밀히 따지지 않고, ‘결핍’으로 환원하기 위해 같은 선상에 놓고 적용했다는 점은 학문적으로 재점검 해 봐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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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08-04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어요. 저는 뭐 경제학은 좀...
어디 휴가는 다녀오셨습니까?^^

yamoo 2016-08-07 22:51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스텔라님^^

휴가는 6월 중순에 이미 갔다 왔습니다요~ 일찍 갔다와서 좋긴 한데, 넘 더워서 하루하루 보내기가 괴롭네요..^^;;

스텔라 님은 잘 지내시는지...휴가는 어디로 갔다 오셨는지 궁금하네요~

cyrus 2016-08-04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생 때 책을 많이 사지 못했던 일이 많이 아쉬워서 그런지 책을 많이 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일단 책을 가지고 있어야 마음이 편해져요. ^^;;

yamoo 2016-08-07 22:52   좋아요 0 | URL
흠...그 병에 걸리면 클납니다..ㅎㅎ
돈이 남아나질 않아요...ㅎㅎ

그림책에 많은 욕심을 내실거 같다는^^;;
 
온전히 나답게 - 인생은 느슨하게 매일은 성실하게
한수희 지음 / 인디고(글담)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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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가만히 <베르그손>의 주저들을 독파할 생각이었다. 그저그런 책들은 이제 더이상 읽고 싶지 않다. 6월부터 계속 다른 책들을 열어보고, 넘겨보고 했지만 책을 선택해서 읽지는 않았다. 내게는 현재 <물질과 기억> 한 권으로도 벅차다.

 

6월1일부터 지금까지 총 3회독. 가장 어려운 1장은 6회독 쯤 한 듯하다. 읽을수록 번역으로 인해 열불이 나곤 한다. 이 더위에 진짜 이 뭔 쌩 지럴인지 모르겠다. 아, 더워도 너무 덥다. 이 높은 불쾌지수에 기름을 붙는 번역본이라니, 썅 소리가 절로 나온다~

 

간만에 퍼스에 대한 책을 검색하는 와중에(9월 이후 읽기 위해서) <온전히 나답게>(인디고, 2016)란 책이 관심을 끌었다. '나'를 온전히 살기 위해서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물질과 기억>이다. 그래서 이런 류의 책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겠다.

 

어떤 책인지 살펴나 볼 겸 맛보기 몇 페이지를 넘겨봤는데, 이건 뭐 시덥지 않은 에세이라는 인상이 짙었다.프롤로그와 304페이지에 있는 글을 보면서 이 책이 어떤 책인지 감을 잡을 수 있었고, 나는 이 책을 사서 보면 안 될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하찮은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인생이 된다는 것. 하찮아 보여도 그게 인생이라는 것. 그 하찮음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인생이 즐거워질 수도 비참해질 수도 있다는 것. 그런 것들을 나는 살아가면서 배웠다. 그래서 그런 일들에 대해 쓰고 싶었다. 그런 일들에 대해 쓴 것들을 모으니 온전하게,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한 사람의 인생이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이런 제목의 책이 되었다.  -프롤로그

 

인생이 하찮은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되는 것인가? 삶이란 하찮은 일과 의미있는 일이 뒤섞이고, 희로애락이 시간 속에서 몸과 기억에 새겨지는 과정이다. '하찮음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인생이 즐거워질 수도 비참해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삶을 전혀 온전히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

 

인생의 즐거움과 비참함은 '하찮음을 다루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즐거움'과 '비참함'이라는 감정은 현재가 기억의 파편 속에서 순간 순간 만나 스펙트럼처럼 펼쳐지는 과정의 단면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생을 살아가는 과정속에서 무수히 맞딱뜨리는 감정이다.

 

이런 감정은 살아가면서 교훈을 통해 배우는 것처럼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다. 직관적으로 시간속에서 단숨에 느끼는 거다. '하찮음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인생이 즐거워질 수도 비참해 질수도 있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배웠다'는 건 시간과 기억 그리고 감정을 나누어 지성화(공간화)했다는 거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써 모으면 그것이 온전한 자기가 된단다. 화석화 되고 조작화된 기억이 '온전히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한 사람의 인생으로 보인다'니, 더이상 말해 뭘할까.

 

아주 러프하게 생각해도, '나답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밝히고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제데로 된 에세이다. 이런 중요한 전제가 빠진 채 한 권의 책을 쓴 다는 자체가 참으로 대단해(?) 보인다. 왜냐하면 허술한 전제로 어떤 얘기를 펼치든지 무리수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304페이지를 보면 이 책의 성격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나는 버스를 세 번,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좋아하는 카페를 기어이 찾아가는 타입의 여자다. 내게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일할 대는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다. 나는 언제나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남편은 아무도 없는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는 타입이다. 그에게 장소는 별 상관이 없다. 어제보다 더 나아지는 데도 관심이 없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자신이면 그저 족하다. 어쩌다 그런 여자와 그런 남자가 마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이나 낳았다. 그 아이들은 어떤 사람으로 자라게 될지 궁금하다.

 

저자에 따르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 분위기 좋은 곳을 찾아 버스를 세 번,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좋아하는 카페를 기어이 찾아가는 것"이다. 이게 '온전히 나답게'사는 지표 중 하나다. 그러니 '하찮은 것들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하겠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임종국은 누추한 방안에서 끼니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까지 <친일문학론>을 완성했다. 그에게 삶은 단 하나, 역사에 가려져 있는 친일 문학자를 세상에 드러내는 거였다. 온갖 회유와 탄압 속에서, 살아 가는 것조차 버거운 현실 속에서, 그가 실현하고자 했던 것을 성취하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욕망. 그게 바로 '온전히 나답게' 산다는 것일 게다.

 

이런 취지를 생각하고 펴들 예정이던 <온전히 나답게>는 아주 적은 페이지만 봤지만 함량미달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뭐, 에쿠니 가오리의 <당신의 주말은 몇개입니까?> 류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냉큼 읽어도 문제는 없겠다~

 

 

[덧]

1. 구입해서 읽지도 않을 책에 대한 리뷰라니 참 거시기 하다.

2. 나처럼 어떤 기대감을 갖고 읽어볼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책선택의 도움이 될까해서 리뷰란에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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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8 1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31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8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역시 야무 님이십니다. 왜 그동안 뜸하셨습니까. 자주 글 좀 올려주십시오..

yamoo 2016-07-31 11:23   좋아요 0 | URL
ㅋㅋ 감사합니다!ㅎ
곰발 님처럼 부지런해야 하는데, 제가 좀 겔러서요~ㅎ 베르그손 책을 완독(삼독 사독)할 때마다 번역에 대해 투덜거려 보겠습니다!ㅎ

2016-08-03 1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03 2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06 2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07 2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나!

 

시이소님 페이퍼를 보면, 정말 한 달에 30권을 넘어 40권을 넘게 읽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정말 신기하다. 리뷰를 쓰면서도 그렇게 읽을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시이소님 자신은 누구나 백수면 그리 읽는다고 하시지만, 그런 가열찬 독서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더 실감할 뿐이다.

 

하, 난 지난 달에 몇 권이나 읽었나? 이것 저것 여러 권 집적거려 봤지만, 완독한 책은 6권을 갓 넘겼을 뿐이다. 근데, 이건 순전히 명저 번역을 엉터리로 한 역자들 때문이다. 이들 불량 역자들 때문에 가독률이 현저히 떨어져, 책을 집어 던지고 다른 판본을 집어드는 지럴을 지속했에. 썅 소리가 절로 난다! 

 

특히 지만지고 출판사의 책들은 비싸기는 우질나게 비싼데, 번역은 별루다. 개중에 최악의 책을 만나면, 진짜 뚜껑이 열려버린다. 보드리야르의 <사물의 체계>는 몇 페이지를 읽다 말았다. 번역본이 지만지고 본밖에 없는데, 가격 대비 번역의 불량이 매우 심하다. 대형 서점에서 서서 봤기에 망정이지 일단 구매했다면 화가 정말 많이 났을 거 같다.

 

이런 경험이 많이 쌓이다 보니, 책 시장의 유통 구조가 참으로 요상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대표적으로 책 값 비싸며 번역이 매우 안 좋은 출판사가 한길사다. 한길 그레이트 북스의 책들은 나름 진짜 그레이트한 책들인데, 번역은 정말 형편없다. 2만원 이상 나가는 책들은 그야말로 고급 장정에 책을 소장하고 싶게 한다.

 

하지만 페이지를 열면 번역기 돌린 듯한 문장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이런 불량 번역 제품은 교환도 환불도 안 된다. 번역이 안 좋아 서점에 환불하러 가면, 읽은 흔적 때문에 안 된다다. 자세히 읽지 않으면 번역이 불량인지 아닌지 알아 내기 힘든데, 이 모든 책임을 소비자에게 떠넘기고 불량품을 양산한 출판사와 저자는 항상 면제부를 받고 있는 모양새. 진짜 천불나는 상황이다.

 

내가 읽어본 한길사 그레이트 북스 번역본들은 불량 번역이 대부분이다. 들뢰즈의 <의미의 논리>, 제임스의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키에르케고의 <죽음에 이르는 병>, 화이트헤드의 <관념의 모험> 등은 읽다가 집어던지다가를 반복했던 책들이다. 특히나 <의미의 논리>와 <관념의 모험>은 진짜 심했다. 이런 번역본이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창피한 일이다. 그 나라의 지식 수준을 알려주는 척도이기에.

 

 

 

 

 

 

 

헌데 독서계에서는 이런 문제점을 별로 제기하지 않는 듯하다. 난 이게 정말 이상하고 궁금하다. 불량 번역본이 두루 돌아다니고 있는데, 리콜하는 출판사는 없고, 그 불량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 활발한 논의가 있었으면 한다.

 

 

둘!

 

시이소오 님 페이퍼를 보다가 사이토 다카시의 <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에 나오는 한 대목을 보고 쾌재를 불렀다. 다름이 아니라 사이토 다카시가 조언하는 바를 이전부터 행하고 있었기 때문.

 

이 책에서 새로운 가르침을 얻었다면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꽂은 작은 책장을 만들어라    

 

흐흐흐, 나는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꽂은 책장을 여기저기에다가 만들어 놓고 있다. 그 중에서도 내 마지막 궁극의 리스트는 베르그손과 비트겐슈타인이다. 이들 책들을 제외하고는 점점 솎아 내어 처분할 계획이다.

 

  [내 궁극의 리스트]

 (이 사진의 책들 이외에 비트겐슈타인의 책들은 10여 권이 더 있다. 다른 책꽂이의 아래 칸에 있어 현재로서는 손이 닿지 않늗다. 여튼, 이 베르그손과 비트겐슈타인 원저들은 죽을 때까지 계속 읽을 예정임)

 

 

셋!

 

오늘로서 사데크 헤다야트의 <눈먼 부엉이>(문학과 지성사, 2013)를 완독했다. 책이 얇고 작아서 주로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읽곤했다. 구입하기는 지난 3월엔가 한 듯한데, 오늘에서야 다 읽었다.

 

내가 전혀 모르는 작가라 그냥 출판사의 네임 밸류만 믿고 구입한 경우인데, 다 읽고 나니, 괜히 읽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물론 읽는 중간 중간 책을 던지고 싶은 충동이 일곤했다.

 

하지만 '염세주의 미학의 절정을 보여주는 이란의 카프카'란 책 뒤의 사탕발림에 넘어가 끝까지 책을 잡고 있었던 거다. 염병할, '염세주의 미학의 절정'은 무슨 얼어죽을 찬사란 말인가.

 

그냥 찌질이가 아주 괴기하게 헛소리만하다가, 40페이지 정도에 끝나버려도 하등 이상하지 않을 내용을, 174페이지까지 끌고 가는 그 기이한 힘이라니! 뭐, 중간 중간 끝내주게 아름다운 시적인 문장들 때문에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배수아 씨가 번역을 하여 우리 작품 읽는 것처럼 술술 읽을 수 있는 것 또한 무시못할 장점)

 

하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전체적인 소설의 느낌이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아우라>와 좀 유사한 면이 있어, 계속 읽어갈 동력은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작가가 너무도 심하게 의식의 흐름(망상) 쪽으로 경도된 듯하여 실망이 컸다.

 

 

 

 

물론 작가가 어떤 성향인지 모르고 덥석 책을 잡은 내 잘못이 크겠지. 자칭 실재론자인 내가 이런 소설을 좋아할 리가 없잖은가.

 

그나마 위안인 것이, 이 책과 함께 읽고 있었던 베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한 동안 버닝할 태세를 마쳤기 때문이다. 아, 어찌 모든 문장들이 그리도 줄을 치고 음미하게 하는지, 참으로 읽는 맛이 난다는 말이지. 빌어먹을 부엉이, 것두 <눈먼 부엉이> 따위가 시간을 갉아 먹게 하다니.

 

아, 물론 작가 지망생에게는 <눈먼 부엉이>가 매력적일 수 있다. 환상문학과 유미주의 문학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도 절대적인 추앙을 받을 만한 작품이 아닌지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뭐, 난 '부엉이'보단 '불안'같은 작품이 100배 좋다. 그나저나, 다음부턴 절대로 책 표지의 사탕발림에 넘어가지 말아야겠다~~~~

 

 

넷!

 

처분할 책들이 쌓이고 있다. 예전같으면 악착같이 소장할 책들인데, 이제는 미련없이 처분을 하려고 한다. 공간, 내겐 더 중요한 책들을 들여놓을 공간이 필요하다!!! 발품 팔아가며 모은 책들인데... 아쉽긴 하다. 그치만 내겐, 현재...공간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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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6-01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대방이 몇 권을 읽든 적게 읽든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예전에 저도 권수에 집착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책 읽을 마음도, 글 쓸 마음이 생기지 않더라고요. ^^

지만지 출판사 쪽에 일하는 분이 제가 독서모임을 통해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진짜 그 분 때문에 지만지 출판사를 믿었습니다. 그런데 고리키 단편선집 보고 크게 실망했습니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은 출판사 책에도 불량 책이 많이 있을 거예요. ㅠㅠ

yamoo 2016-06-03 10:56   좋아요 0 | URL
상대방의 몇 권을 읽는지 신경쓰지 않으려고 해도, 정말 기이할 정도로 많이 읽고 리뷰 쓰는 분들을 보면 자괴감이 밀려오곤 합니다. 이건 현재로선 어쩔 수 없다는...감내하는 수밖에요..

뭐, 책 값 비싸도 비싼 만큼 퀄러티를 보여준다면 불평을 좀 덜하겠습니다만...책 값은 일반 책의 2배 이상을 받고도 불량품을 양산하고 있다면, 이는 정말 심각하다 하겠습니다..ㅎ

시이소오 2016-06-01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진의 탐구가 가장 탐나네요^^

yamoo 2016-06-03 10:58   좋아요 0 | URL
흠, 고진을 좋아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네요! 시이소오 님두 고진을 좋아하시는군요! 뭐, 고진은 우리나라에서 인문학계의 하루키랄까....전 그런 느낌이 들곤 합니다만..ㅎ

stella.K 2016-06-01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저기 이석원의 책이 보이는군요.
그때 제가 읽지 마시라고 적극 뜯어 말렸어야 했는데...
베르그손이나 비트겐슈타인을 좋아하시는 분은 절대 못 읽을 책이죠. 암요...ㅠ
이제 절대로 야무님 앞에서 무슨 책 괜찮다고 절대 말 안할 꼬예요.

근데 이 페이퍼를 보니 야무님 때문에 우리나라 번역 수준이 언젠간 좋아질 거란 믿음이
마구마구 생깁니다.
자꾸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아야 그 분야가 좋아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말을 안하면 지네들이 잘하는 줄 안다니까요.^^

yamoo 2016-06-03 11:01   좋아요 0 | URL
네...저 책을 처분하려고욤..ㅋ 읽기 다 읽었습니다만...강위석이나 고종석 작가의 에세이들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읽기 힘들더군요. 말리셨어도 책이 엄청 인기 있어 한 번쯤 봤었을 겁니다요..ㅋㅋ

그래두 극찬하는 책들 중에서 그런 평가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책들이 있기 땜시, 그런 판단은 자제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걍 줄기차게 계속 까댈라구욤...ㅋㅋ 그럼 언젠가는 좋아지겠죵~ㅎ

수연 2016-06-01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스 비평사_ 바흐찐_ 탐나는걸요. :)

yamoo 2016-06-03 11:04   좋아요 0 | URL
헐~ 야나 님 은근 문학 비평집 좋아하시는 것 같다는!

첨엔 이들 프랑스 비평에 관한 책들과 철학서들을 마구 사들였지만, 거의 읽을 수 없는 수준의 번역들이라 전부 처분하고 마지막 남은 것이 저기 있는 책들과 아직 손이 미치지 않은 곳에 있는 20여 권의 책들....

속이 쓰립니다..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6-01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의 70% 정도는 베란다에 박스로 저장해서 쌓아놓고 있습니다. 이게 시바... 뭔짓인지.. 지금까지 책 절반 넘게 버린 것 같은데.. 결론은 집이 넓어야 한다는 점. 뼈저리게 느낌닙니다. 저도 시이소이님 보면서 독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1독 1페이퍼라... 쉬운 열정이아님..
저보십시오. 리뷰는 쓰지 않고엄한 소리만 하고... 또 읽은 책의 90%는 리뷰를 안쓰고 있습니다.
읽고 쓰고 읽고 쓰고를 반복한다는 것은 굳은 결심이 아니면 실천하기 힘듬.. 일단 술을 안 마셔야 함.. 전 틀렸어요. 알콜중독자가 아닌가 의심을 슬슬 할 때가 되었씁니다.

yamoo 2016-06-03 11:08   좋아요 0 | URL
책은 버리기 보단 처분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게 낫더이다~ 버리면 그냥 쓰레기가 되지만, 이걸 누구에게 주면, 또는 기부를 하면 나름 어떤 가치있는 일을 했다는 뿌듯함이 있습니다. 버리는 것 보다야 훨씬 낫습니다..ㅎㅎ

시이소오 님은 정말 특화된 분입니다. 그런 분 따라가려다가는 그냥 한 방에 휙~ 갈거 같더군요..ㅎ

뭐, 곰발 님이야 리뷰보다야 그 엄한 소리가 더 쫄깃하니깐요..ㅎ 그거 기다리는 분들 알라딘에서 많지 않습니까..

흠, 근데, 일단 저도 금주 하시는 거에 한 표!ㅎ

감은빛 2016-06-01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
번역 문제는 출판계에서 아주 고질적이고, 만연한 문제입니다.

두 가지 이슈가 있는데,
하나는 번역자가 원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직역위주로 번역을 했고,
편집자 역시 이해하지 못했으면서
(혹은 대략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만 하다고 판단하고)
여러가지 이유(주로 출간 일정에 쫓겨)로 제대로 고치지 못하고 출간하는 거죠.

두번째는 번역자와 편집자가 번역투의 문장,
우리말 어순이 아닌 원문의 어순으로 나열한 문장 등 난해한 글을 두고
문제를 느끼지 못하거나 오히려 그게 올바른 번역이라고 느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그 출판사에 일하는 편집자와 주로 계약하는 번역자가 그대로이기 때문에,
그 출판사의 책은 계속 엉망일 확률이 높습니다.

번역과 관련해서 기억나는 재미있는 사례가 둘 있습니다.
하나는 스티브잡스 전기 번역 오류 지적에서부터 파생한 번역배틀입니다.
이덕하라는 분과 노승영 번역가의 배틀이었는데,
진행과정만 지켜보고 정작 결과를 알지 못해 궁금하네요.
두번째는 한참 출판계에서 이슈가 되었던
새움 출판사에서 낸 까뮈의 [이방인] 번역본 논란입니다.
출판사 대표가 번역자로 밝혀지고, 수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그 사건이요.

개인적으로 저도 출판사에 있을 때,
번역본 교정교열 작업을 세 번 했습니다.
세 번 모두 번역 경험이 거의 없는 분
(이건 비용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이었죠.
정말 말도 못할 정도로 어이없는 단어나 문장이 많았습니다.
평소 다른 원고 작업에 비해 서너배 이상 많은 시간과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어떤 챕터는 아예 글 자체를 제가 다시 쓴 경우도 있었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번역투에 비문이었으니까요.)
이런 경우 글은 제가 다시 썼지만, 번역자는 그래도 그 사람이니까,
책 정보에 번역자 이름이 실리지만, 제 이름은 판권 페이지에 작게 들어가지요. ㅠㅠ

한번은 도저히 글에 손을 댈 수 없을만큼 엉망이어서,
번역료가 조금 아깝긴 했지만 아예 그 원고를 버리고,
새로 다른 번역자에게 번역을 의뢰한 적도 있습니다.

번역 문제가 그만큼 쉽지 않다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네요.
(뭐 이미 잘 알고 계시겠지만요.)


yamoo 2016-06-03 11:11   좋아요 0 | URL
와우, 이런 비사가 있었다뉘!! 얼추 예상은 했지만 실상을 들으니 참으로 참담하군요. 말씀하신대로라면, 좋은 번역본이 나올 가능성은 당분간은 요원하다는 건데...아, 이거 이슈화해야 되는 거 아닌지...

어쨌거나, 알고 싶은 점을 정확히 알려주셔서 넘 감사합니다~ 다음번 페이퍼 쓸 때 참고하도록 하겠슴다!

감은빛 2016-06-01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둘!
좋아하는 책들을 꽂은 책장 만들기라 좋네요!
저는 지금 책장 정리를 하지 않은지 몇 년이 지나서,
이사를 하지 않는 이상 도무지 손을 댈 수 없는 상황입니다.

셋!
저는 읽히지 않는 책은 과감하게 포기하는 편입니다.
재밌는 다른 책도 많은데,
재미도 없는 책을 붙들고 있는 시간이 아까워서요.
그래도 배수아 작가의 번역이라니 어떤 책인지 궁금하네요.

넷!
가라타니 고진의 탐구가 눈에 띄네요! ^^

yamoo 2016-06-03 11:13   좋아요 0 | URL
저도 원래는 읽히지 않는 책은 던져버리는 건데....거참, 맛깔난 문장이란게 거, 무시못하는 듯해요. 꾸역꾸역 읽게 된다는...

역시 고진은 알라딘 통네에서 인문학계의 하루키인거 같습니다. 많이들 좋아하시는 거 같다눈^^

루쉰P 2016-06-02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고 계시죠? ㅋ 책을 쌓아놓고 있는 걸 보니 너무 잘 지내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번역이고 출판이고 전 우리나라 출판계에 별로 좋은 감정을 품고 있지는 않아요. ㅋ 정말 읽고 싶은 작가들의 번역이 너무나 안 되어 있다는 게 좀 속상하거든요. 일본은 번역이라는 것이 무지갛게 잘 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 체계가 없어요...

베르그송이라 ㅋ 저도 정말 열심히 읽었던 사람인데 ㅋ 서재에 꼽힌 그 책이 눈에 띄네요 ㅋ <불안의 책>이 그렇게 좋나요?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지금 항상 불안해서 말이죠 ㅋ

yamoo 2016-06-03 11:14   좋아요 0 | URL
어이구! 이게 뉘 십니까! 루쉰님 아니십니까! 도체 어디계시다가 나타나셨는지..

무쟈게 반갑습니다. 이제 서재활동 하시는 건지요~

루쉰 님 리뷰 읽었던 게 엊그제 같습니다그려~^^

oren 2016-06-02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르그송이 쓴 책들뿐만 아니라, 베르그송에 관한 책들도 많은 게 흥미롭네요. 오래전에 저도 눈으로 구경만 했던 삼성출판사의 책등에 박힌『시간과 자유의지』라는 제목도 여기서 다시 보니 정말 반갑네요. 저는 그 책이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의 영어번역판 제목인줄 훨씬 나중에서야 알았답니다.

그나저나 번역에 관한 yamoo 님의 거듭된 문제 제기를 접하고 보니, 우리나라의 열악한 사정은 도대체 언제쯤이면 좀 더 나아지려나 싶은 암담한 생각도 좀 드네요. 원저자의 뛰어난 걸작품을 졸지에 졸작으로 만드는 건 `일종의 배신`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구요...

* * *

젠장맞을, 대체 왜 그런단 말인가? 저자가 gehen이라고 했으면 왜 `가다`라고 하지 않는가? 역자 선생들이여, 제발 우리를 함부로 주물러 대지 마시오!
- 밀란 쿤데라, 『배신당한 유언들』

yamoo 2016-06-03 11:21   좋아요 0 | URL
네, 베르그손에 관한 책들도 눈에 띄는 대로 데려오고 있습니다.ㅎ 요즘 보니 비트겐슈타인에 관한 책들도 대거 출판되고 있는데...10년 전에는 거의 없던 일이 불과 몇년 사이에 전공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인가 봅니다.

헌데, 베르그손은 아직까지 좀 감감합니다. 앞으로 비트겐슈타인에 관찬 책만큼 베르그손에 관한 책들도 쏟아졌음 좋겠습니다~ 더군다나 주저 번억본이 타출판사에서 제대로 나와줬음 하는 바람입니다.

저는 시론을 보고서 알았어요. 시론이 시간과 자유의지라는 걸...근데, 미국 원서도 시간과 자유의지라고 타이틀을 단 책드이 대부분인거같아요~

감은빛 님이 댓글을 보니 더 암담합니다. 이런 불량품 번역 관행이 아주 굳어진 거 같아서요. 단기간에 고쳐지긴 매우 힘든 구조인 듯합니다.

배신을 하도 당하다 보니, 분노를 넘어 그냥 포기하게 됩니다. 출판사들이 좀더 각성을 했으면하고, 소비자들의 어떤 운동 비슷한 걸 해서 이 나쁜 관행을 타파해야 할 거 같습니다. 그나라의 지식 척도가 아주 밑바닥이니, 이건 정부차원에서 어떤 대책을 마련해야 할 듯한데....아무도 이 문제에 대해 그리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듯해서 좀 거시기 합니다.

밀란 쿤데라의 배신당한 유언들에 인용된 말이 참 재미나네요^^

transient-guest 2016-06-03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보기엔 읽는 건 그래도 쉬운데, 리뷰를 잘 쓰는 것이 어렵네요.ㅎㅎ 전 쉬운 책을 위주로 보면 좀 빨리 많이 읽고, 고전은 아무래도 더딘 편입니다. 번역문제는 심각한데요, 한길그레이트도 그랬다니 놀랍니다. 책값도 비싸고 제본도 훌륭해서 소장하고픈 시리즈인데 말이죠...

yamoo 2016-06-08 14:51   좋아요 0 | URL
제겐 읽는 게 너무 힘듭니다. 특히 소설의 경우 처음 십여 페이지에서 완독 여부가 결정되는 거 같아요..ㅜㅜ

인문 및 고전 번역서는 개같은 번역 때문에 가독률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얇은 책도 몇 일이 걸리니..--;;

리뷰 잘 쓰기 힘들죠..^^;; 누구나 이건 어쩔 수 없는 거 같다는..ㅎ

한길 그레이트 북스...이거 좋은 번역, 아주 손으로 꼽습니다. 100권도 넘게 발간됐는데, 거의 쓰레기 번역이 대부분인거 같아요. 골라서 읽는 책마다 그러니....시리즈 전체를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만..^^;;

고양이라디오 2016-06-03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시이소오님이 부럽습니다ㅠㅠ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책읽을 시간이 많이 부족하네요ㅠ

yamoo 2016-06-08 14:51   좋아요 0 | URL
직장생활은 독서 생활을 방해하는 쥐약 쯤 되지욤..ㅎㅎ
그래두 출퇴근 시간을 활용해 읽는 분들 보면, 대단합니다~

보슬비 2016-07-06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5월에 60권 읽었어요. 하지만 반은 만화예요. ㅎㅎㅎㅎㅎㅎ
그리고 리뷰도 잘 안쓰고, 독서일기는 밀리고.......... ^^;;

yamoo 2016-06-08 14:52   좋아요 0 | URL
헉! 만화책이라두 그렇지....오우~ 능력자 이십니다. 영어 원서도 달마다 꼬박꼬박 읽어주시는 거 같은데...

뭐, 리뷰 쓰는 거야 누구나 다 밀리고 있는 상황이니 .. ^^;;

팔루스의 기표 2016-06-18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amoo씨는 직업이 책에 관련된 일을 하십니까??
뭐 이렇게 책이 많아요?

yamoo 2016-06-21 13:20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ㅎ 책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는데, 못하니 계속 책을 사재기 하나 봅니다..ㅎㅎ

이 알라딘 동네에서 저는 아주 미미한 존재입니다만..^^;; 책이 많은 분들에 대하면 암것두 아니지요~ㅎ

팔루스의 기표 2016-06-21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amoo씨는 출판업이나 도서관쪽 일도 아닌데 이렇게 책을 많이 가진 것 보면 결론은 딱하나입니다. 부자이십입니다...전 집이 좁아서 놔둘때가 없어서 못사는데.ㅎㅎ 즐독하세요.

yamoo 2016-06-22 10:11   좋아요 0 | URL
ㅎㅎ 재밌는 추론을 하셨네욤^^ 물론 그런 생각이 일반적이겠지요. 하지만 저는 월급을 타면 거의 책을 사기 때문에 책이 많은 거고, 전혀 부자가 아니라서 공간 때문에 책을 처분하고 있습니다..ㅎ 임제어록님이 저보다 부자일 확률이 높을 것이라고 감히 추정해 봅니다~^^

팔루스의 기표 2016-06-22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에...독서를 사랑하는 진짜 애독인이네요.좋네요. 특히 비트겐슈타인과 베르그송 책이 눈에 띄네요. 저도 중관불교와 비트겐슈타인, 유식불교와 베르그송을 연관지어서 책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두 서양 철학자를 좋아하시니 반갑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6-22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트겐 어렵던데.. 전 포기.... 비트겐 책 이렇게 많은 분은 처음 봅니다. 사람들 대부분 비트겐 한 권 읽다 포기하는 바람에 다들 한 권만 가지고 있던데..ㅋㅋㅋㅋ

팔루스의 기표 2016-06-22 13:19   좋아요 2 | URL
힌트드릴께요..무조건 비트겐슈타인 저서를 한방에 다 사세요.그럼 그 돈이 아까워서 입문서 해설서 몇권사고 ....그러다보면 비트겐슈타인 책이 많아져요.ㅎㅎ

양철나무꾼 2016-07-28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머~, 이게 얼마만이래여?(버선발로 호들갑 중~^^)
잘 지내신 겝니까?

너무 오래 적조하셨다고 하려고 보니,
저와 비껴 가셨을뿐 뜨문뜨문 글은 올리셨네요.

책에 대해서 뭐라고 코멘트 하고 싶지만,
여전히...제겐 범접할 수 없는 세계입니다.

우연히 들렀다가,
언제던가 더운 여름 날 드셨다던 복숭아맛 아이스 티가 생각나 몇 자 끄적여 봅니다.

참, 책은 나왔나요?
광고 하시면, 사 읽겠습니다~ㅅ!

yamoo 2016-07-31 11:33   좋아요 0 | URL
양철 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저는 그럭저럭 지냅니다. 잘 지내면 오죽 좋겠습니까?!ㅎ

뭐, 적조했다고 하면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양철 님의 리뷰는 올리시는 글 마다 보는 편입니다만, 이상하게도 제가 뭐라 드릴 말씀이 없는 책만 읽으시는 거 같아 댓글달기가 좀 거시기 했습니다. 몇 번 쌓이니, `적조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한 거 같습니다.ㅎ

책은 나왔지만, 별로 만족스럽지가 않아 광고하지 않았슴다~ 좀더 좋은 책을 쓴 다음 광고하겠어요!ㅎ

그나저나 정말 오랜만이고 반갑네요~ 더위에 건강 유의하시길!^^
 
읽기이론 이론읽기 - 라깡, 데리다, 크리스떼바
마이클 페인 지음, 장경렬 외 옮김 / H.S MEDIA(한신문화사) / 1999년 7월
평점 :
품절


정말 아주 웃긴 일이긴 합니다만, 책을 처분하기 위해 선별하는(책 읽는) 작업에서 의외로 대어를 낚는 경험을 하곤 합니다. 처분할 책 더미(물론 이 책들은 전에 읽을 만하다고 생각해서 사들인 책이지만)에서 책을 빠르게 훑고, 발췌독을 하면서 진짜 처분할 책인지 그렇지 않으면 읽고 소장할 책인지 마지막 점검을 합니다.

 

 

대개는 그냥 처분해야 할 더미에서 처분할 박스로 담기지요. 하지만 개중에는 간간히 처분하면 큰 일 날 뻔한 책들을 발견하곤 합니다. 조세희 작가의 <침묵의 뿌리>(열화당, 1985)가 그랬고, <곰에서 왕으로>(동아시아, 2005)가 그랬습니다.

 

 

 

 

모두 헌책방에서 너무도 저렴하게 구입한 책(2000원 씩)이라, 그리고 평소 즐겨 읽던 분야가 아니라 처분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알아보고, 넘겨보고, 발췌독 해 보니 이건 소장해야 될 책이라는 걸 직감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살아남은 책들입니다.

 

 

어제와 그제 다시 한 번 솎아낼 책을 정리하다가 정말 대어를 낚았습니다. (인문학의) 좋은 책들이지만 번역이 좋지 않거나 앞으로 읽을 가능성이 희박한 분야(평론 분야)를 정리하는 와중에 만난 책입니다. 모리슈 블랑슈의 <미래의 책>, 만프레드 파랑크의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그리고 롤랑바르트의 <텍스트의 즐거움>을 과감히 처분할 박스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뒤따라 오는 마이클 페인의 <읽기이론/이론읽기>(한신문화사, 1999)이란 책을 감별하려고 손에 들었지요. 겉 표지도 없어 보이고(디자인이 매우 구립니다), 개인적으로 읽을 일이 없겠다 생각하고 있는 라깡, 데리다, 크리스테바와 관계된 책이었습니다. 이들 세 학자의 텍스트를 심도 있게 해설하고 비평하는 책이라 시큰둥하게 넘겨보았지요.

 

 

아, 근데 이 책은 책장을 넘겨 읽어 갈수록 처분해 버리면 안 될 거 같은 예감을 받았습니다. 라깡의 <에끄리>, 데리다의 <기록학에 관하여>, 크리스테바의 <시적 언어의 혁명> 등 각 텍스트를 아주 심도 있게 해설해 주고 있는데, 문외한인 제가 봐도 바로바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번역이 탁월했습니다.

 

 

라깡과 데리다의 책들을 읽어 본 결과 번역 때문에 관심이 확 줄었는데, 번역만 좋다면 그 사상에 빠져들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매력적인 이론들이었습니다. 왜 황당한 번역으로 명작들을 망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바르트의 <텍스트의 즐거움>(동문선, 1997)이 그런 사례지요.

 

 

어쨌든, 라깡 추종자들과 데리다 추종자들이 괜히 많았던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줬습니다. 문외한인 저로서는 각 텍스트를 살짝만 맛본 상태였지만 이 책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고, 이 텍스트들이 왜 중요한지 단번에 알 수 있었을 정도였으니까요.

 

 

제가 지금까지 읽어 본 프랑스 철학 번역서 중에서 <들뢰즈-존재의 함성>과 함께 최고의 가독률을 자랑한 책이었습니다. 읽으면서 바로바로 이해되긴 처음~

 

 

물론 단일 역자가 번역한 게 아니라 3인(장경렬, 이소영, 고갑히 공역)이 책의 3부분을 나눠 번역했기에, 아쉬운 역자도 있었습니다. 라깡 <에끄리>를 번역한 이소영 씨 번역이 가장 떨어졌지만, 그래도 읽을 만 했습니다. 데리다와 크리스테바 부분에서 이상한(?) 문장이나 단락으로 인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없었으니까요.

 

 

무엇보다 이 책으로 인해 포우의 <도둑맞은 편지>를 다시 펴 볼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1장에 소개된 ‘라깡의 <도둑맞은 편지>에 관한 세미나’는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왜 문학자들이 텍스트 비평에 매달리는지 보여주는 시금석과 같았다 랄까요.

 

 

1956년 당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문학 해석에 관한 가정을 수정하도록 요구한 그 시도가 바로 이 세미나였다는 군요. 현재는 이미 문학 비평의 대세로 자리 잡은 모양새라 이 땅에서 라깡의 위세를 실감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깡의 주저인 <에끄리>는 번역되어 있지 않은 현실이지요. 그래서 간접적으로나마 이런 라깡의 텍스트를 다룬 비평서나 해설서에서 라깡의 이론을 접해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책에서는 몰라도 이 책에서는 아주 쉽고 명확하게 라깡의 가치를 알 수 있지요. (물론 저는 라깡이 수학식으로 도배하기 시작하는 그 시점부터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는 편견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이 책은 라깡만 다룬게 아닙니다. 번역 때문에 골치를 앓는 데리다의 텍스트도 쉬운 번역으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기록학에 관하여>는 아직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있지 않은데, 마이클 페인은 상당한 분량으로 <기록학에 관하여>를 분석/비평 해 주고 있습니다. 데리다가 루소, 워버튼, 비코, 콩디악 등의 텍스트를 어떻게 읽고 차용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페인이 난해하기 이를 데 없는 라깡과 데리다를 쉽게 이해하여 쉬운 영어로 써서인지, 아니면 역자들이 우리말 구사 능력이 뛰어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정말 쉽게 이해됩니다. 사실 라깡과 데리다에 관계된 논문이나 해설서를 이렇게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매우 이례적인 듯합니다.

 

 

크리스테바의 <시적 언어의 혁명>도 라깡과 데리다의 텍스트 연장선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크리스테바가 여러 저서들을 내 왔지만, 이 책이 가장 중요하고 빼어나답니다. 크리스테바의 국가박사 학위 논문이기도 하다는 군요. 반갑게도<시적 언어의 혁명>은 번역본이 나와 있습니다. 페인의 이 책과 크리스테바의 <시적 언어의 혁명>을 같이 읽으면 긍삼첨화 일듯합니다.

 

 

 

 

<읽기 이론 / 이론 읽기>를 소장하기로 하고, 알라딘에서 검색을 해 보니 이 책에 대한 리뷰가 한 건도 없군요. 우리나라에 라깡과 데리다의 추종자들이 그리도 많은 거 같은데,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쓴 사람이 없다는 게 많은 의구심을 자아내게 합니다. 도서관에서 라깡과 데리다 관련 코너의 입문 책들은 전부 많이 빌려본 흔적이 뚜렷하여, 그만큼 인기를 실감하게 하는 데 말입니다.

 

 

라깡, 데리다, 기호학, 프랑스 철학, 문학 비평 이론서나 입문서 등을 보면 하나같이 번역 때문에 내용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태반이라 그냥 책을 손에 들었다가 던지게 됩니다. 그만큼 이 분야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이 매우 한정돼 있다는 거겠지요.

 

 

제가 본 바로는 내용이 어려운 게 아니라 비문을 쏟아내어 원문을 암호화한 역자들 때문입니다. 제대로 번역되어 만나는 프랑스 철학자들의 주저들은 읽어 이해 안 될 내용이 없습니다. 이미 <들뢰즈-존재의 함성>을 보고 경험 해 봤습니다.

 

 

마이클 페인의 <읽기 이론 / 이론 읽기>는 좋지 않은 프랑스 사상 역서계(譯書系)에 단비와도 같은 책입니다. 이런 좋은 책이 왜 널리 읽히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유명한 라깡, 데리다, 크리스테바를 다룹니다! 그럼에도 술술 읽을 수 있습니다. 입문자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구요!

 

 

적어도 라깡, 데리다, 크리스테바가 어떤 주저를 썼고, 그 책이 다루는 핵심 내용이 뭔지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입문서로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읽어서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암호문은 없으니까요.

 

 

라깡, 데리다, 크리스테바의 주요 핵심 사상이 뭔지 알고 싶으신 분은 이 책을 읽으세요.

라깡, 데리다, 크리스테바의 관심사가 뭐였는지 알고 싶으신 분 역시 이 책을 선택하세요.

라깡, 데리다, 크리스테바가 어떤 이론적 관련을 맺고 있는지 알고자 하는 분 역시 이 책을 잡으세요.

 

 

후회하지 않고, 알고 싶은 것을 성취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더군다나 기호학으로 그림을 분석하는 ‘그림 읽기’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문학 비평을 위한 이론적 도구로 그림을 읽을 수 있는 방식을 보여 줍니다. 그림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도 유익할 것입니다.

 

 

여기에 <라깡이 이용한 프로이트의 독일어 용어들>과 <크리스테바의 용어들>이 부록으로 첨부되어 있습니다. 이들 학자에게 관심 있는 분들에게는 분명히 도움이 되는 자료들이겠지요.

 

 

근래에 보기 드문 좋은 번역서인데, 리뷰도 없고, 100자 평도 없기에, 저라도 리뷰를 부가 해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리 소문 없이 절판될 듯해서요.

 

 

덧.

다음이나 네이버 책 검색 사이트, 그리고 교보에도 뜨는 책 이미지가 왜 알라딘에는 없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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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5-30 2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팔기 전에 신중하게 정리하면서 분류해야합니다. 팔았던 책이 중고가가 높게 나오는 희귀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면 땅을 치게 됩니다. ㅎㅎㅎ

yamoo 2016-05-30 21:4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정말 신중하게 잘 분류해야지요..ㅎ 그래서 팔기 전에 희귀본을 잘 골라 내어 후회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ㅋㅋ 사이러스 님 몬가 좀 아시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5-31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곰에서 왕으로.. 시리즈 가지고 있습니다. 총 4권으로 된...
이 책 재미있습니다..ㅎㅎ 반갑네요. 여기서 보다니.. 후후..

yamoo 2016-06-01 15:40   좋아요 0 | URL
호~ 이 시리즈를 갖고 계시군요! 2권 있었는데, 한 권은 처분하고 이 한권을 마저 처분하려다가 관뒀지요. 재밌다니, 4권을 모두 기대하면서 소장해야 겠습니다..ㅎㅎ

2016-05-31 15: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01 15: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6-01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바주 시리즈라고 해서 책장 보니 5권이 한 세트네요.. 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의외로 재미있었어요. 생각하지 안ㄶ았는데 말입니다..

yamoo 2016-06-01 17:31   좋아요 0 | URL
헐~ 5권이나 된단 말입니까!! 흐미~~ 5권을 언제 모은다냐..--;;

열매 2017-01-03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리다의 《기록학에 대하여》는 그 유명한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라는 책을 말하는 것입니다.한국어판으로는 김웅권(동무선), 김성도(민음사) 2개의 번역본이 있구요.몰라서 그렇게 번역한 건 아니고 gramme이라는 문자/기록의 의미를 최대한 살리려는 고민이 것 같습니다. 그라마톨로지라는 조어가 더 낯서니까요..
 

보드리야르의 마지막 유작 <사라짐에 대하여>를 보고, 참으로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이 책은 정확히 지금으로부터 4년 전 교보에서 보고 책값이 너무 비싸 사지 않고 구경만 한 책이다. 물론 넘겨보지도 않았다. 예쁘게 만들어 책값만 터무니없이 올린다고 생각했었다.

 

 

도서관에서 이 책이 눈에 띤 김에 빌려봤다. 도대체 민음사는 무슨 생각으로 책을 이따위로 편집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냥 짧은 소논문 한 편 정도의 분량을 100페이지 넘게 편집해 놨다. 정말 놀라운 것은 왼 편을 아예 비워 버리고 줄 간격을 아주 시원스럽게 떨어뜨려 100페이지 단행본을 만드는 편집 기술! 정말 경탄할만하다. 그리고 편집의 승리를 자축하듯, 하드커버 장정에 가격을 1만 원으로 찍는다~

 

 

 

 

 

 

사실 가격에 비해 번역이 좋은 것도 아니다. 역자는 프루스트를 번역한 하태환 씨 인데 번역 문장들이 디지게 난삽하다(좋게 말해서! 나쁘게 말하면 개 X같다). ‘~적’을 매우 많이 남발한다. 물론 비문도 간간이 섞여 있다. 번역된 본문을 잠깐 옮겨 본다.

 

 

나는 유일 세상의 자동 기록일 수 있는 어떤 이미지를 꿈꿔 본다. 그 유명한 비잔틴의 논쟁 속에서 성상 파괴주의자들이 꿈꿨던 바로 그런 이미지 말이다. 그들은 예수의 얼굴이 새겨졌다는 베로니카 베일처럼, 신성이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이미지만 진정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것은 사진 필름의 음화와 유사한 일종의 데칼코마니로서, 인간의 손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신성한 얼굴의 자동기록이었다. 반대로 그들은 인간의 손으로 제작한 모든 아이콘을 격렬하게 거부했다. 그들에게는 그것들이 신성의 시뮬라크르에 불과했다.

반대로 사진적 행위는 어떤 면에서는 ‘인간의 손이 게임되지 않은’ 것이다. 현실과 현실의 생각을 거치지 않은, 빛의 자동 기록인 사진은, 따라서 이런 자동성에 의해 인간의 손으로부터 해방된 세상 그대로의 원형일 것이다. 극단적 환상으로서, 순수한 흔적으로서, 그 어떤 시뮬레이션도 없이, 인간의 개입도 없이, 세상은 스스로를 생산하고 있는데, 그것은 특히 진실로 귀착해 버리지 않는다. 인간 정신에 의해 만들어진 최고의 인위적 생산물, 그것은 바로 진실이고, 객관적 현실이기 때문이다. pp66~67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저런 문장들이 나열된다. 해당 소 챕터(이 책은 5개의 소 챕터로 돼 있다)를 3번 정도 읽으면 대충 이해할 수 있지만, 처음 책을 펼쳐 쭉쭉 읽어 나가면 도대체 뭔 소린지 맥락을 잡을 수 없다. 물론 내가 지하철에서 주로 읽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집에서 정독 해 본 결과 이건 매끄럽지 못한 번역 문장 탓이 크다는 걸 어느 정도 확신하게 됐다.

 

 

줄친 부분을 위주로 봐 보면, 역자는 우리말 통사구조를 아주 우습게 초월(?)하고 있다. ‘유일 세상의 자동 기록’ 이라니. ‘자동 기록’이 ‘사진’을 가리킨다 하더라도 이를 형용하는 구로 ‘유일 세상의’라니, 이건 뭐 영어 문장 해석 시간인가..

 

 

밑에 ‘사진적 행위’는 어떻고. 짜증의 파고가 오를 찰나 ‘인간의 손이 게임되지 않은’이 연결 된다. ‘썅~’ 소리가 절로 나며, 첨 읽을 때 책을 던져버릴 뻔했다. 이걸 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번역했다? 하하, 그러고도 민음사는 1만원의 책값을 쳐 받는단 말인가?

 

 

마지막 두 문장은 매우 난해하다. 줄친 문장의 주어는 ‘세상은’이다. ‘세상은 특히 진실로 귀착해 버리지 않는다.’ 당췌 어색하다. 물론 반복해서 읽으면 어떤 의미인지 대략 알겠다. 아마도 이런 의미이겠지. 사진 렌즈에 비친 세상은 인간의 개입 없이(사진가의 의도가 있는 ‘찰칵’ 찍는 행위 없이) 존재하지만 진실이 아니라는 거. 진실은 인간에 의해 구현된 ‘사진(인위적 생산물)’이기에. 이 내용을 위처럼 번역해 놓은 거다.

 

 

처음 읽으면 맥락을 놓치기 일쑤다. 쉽게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을 매우 난해하게 번역하는 게 이 번역자의 특기인가 보다. 물론 보드리야르의 문장 자체가 난해하고 수사적 기교가 현란해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렇지만 그건 번역자의 몫이다. 보드리야르가 자국의 고등교육을 받는 프랑스인들이 한 번 읽어 무슨 소린지 모를 문장으로 책을 쓰지는 않았을 거다. 내가 기억하기론, 보드리야르는 글을 어렵게 쓰는 사상가가 절대 아니었다. 아무래도 이건 역자가 우리말 표현 능력이 딸려 읽기 힘들게 번역한 탓이 크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은 매우 간단하다. ‘시뮬라르크가 구현하는 세계의 극단은 어떨까’라는 것. 세상이 과학적으로 발달할수록, 세상이 객관화될수록 인간이라는 주체는 점점 제거되어가다가 마침내 소멸된다는 게 이 책의 핵심 요지이다. 읽고 나니, 이 책을 다 읽을 필요도 없었다. 첫 소 챕터인 ‘아르키메데스의 점’에서 아주 명확하게 정리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명명되고 나면, 필히 기울기 시작한다. 하나의 사물이 명명되고, 재현과 개념이 그 사물을 포박하는 순간은 바로 사물이 그 에너지를 상실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그러다 결국엔 하나의 진실이 되거나 이데올로기로서 강제되고 만다. 프로이트에 의한 무의식의 발견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하나의 사물은 그 개념이 나타나면 사라지기 시작한다. (중략) 그러니까 실재는 개념 속에서 사그라진다. 그러나 그 반대의 움직임은 더욱 역설적이어서, 개념과 생각도(물론 환상, 유토피아, 꿈과 욕망도) 그 실현 속에서 사그라진다. 모든 것이 현실성 과도로 인해 사라지면, 그리고 인간이 무제한의 기술 전개 덕분에,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자기 가능성의 극단에 이를 수 있게 되면, 그러면 인간은 자신을 추방하는 인위적 세상에 자리를 넘기면서 사라진다. 어떤 의미에서는 최고단계의 유물론적 성과에 자리를 넘긴다. 그 세상은 완벽하게 객관적이다. 왜냐하면 더 이상 세상을 바라볼 사람이 아무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pp18-19

 

 

내가 좀 수고를 들여 본문을 인용한 것은 바로 위 부분이 이 책에 담겨 있는 핵심 사상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소챕터들, 즉 [사라짐의 예술], [헤게모니와 디지털에 대하여], [이미지에 가해진 폭력], [이중성] 등은 이 총론적 주장의 각론 쯤 된다. 이를 요약하면 이렇다.

 

 

예술 자체도 사라짐의 기초 위에서만 존재하고, 모든 현실의 갈등은 디지털화된 이미지의 세계 속에서 사라진다. 이미지에 가해진 컴퓨터 합성의 폭력으로 인해 인간 고유의 이중성은 인간을 버린다. 그러면 인간 고유의 이중성은 사물들 속으로 옮겨 가고, 모든 비평적 사유가 사라진다. 모든 것의 소실점이 완성되고, 모든 것은 침묵한다.

 

 

 

원래 이렇게 친절하고 자세한(?) 리뷰를 작성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 번역도 그리 좋지 않으면서, 가공할(?) 편집 능력을 발휘해 책을 비싸게 내놓는 민음사를 성토할 생각으로 글을 시작했다. 하지만 능력도 안 되면서 이 책의 핵심을 요약한 것은 독자들을 위해서다. 보드리야르의 마지막 유고라는 유혹으로 이 책을 구입하지 말라는 거다. (아, 품절인가. 불행 중 다행이다!) 읽지 않으면 더욱 좋고!

 

 

번역이 매우 x같이 돼 있어, 읽으면 혈압이 오르고 신경질이 도진다. 이것도 이해하지 못하다니, 내가 바보가 아닌가, 하는 심한 자괴감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당신이 이해 못해서가 아니라 번역이 거지같아서 그런 거다. 번역에 대한 짜증은 위에서 이미 언급했다. 헌데 번역 문제는 민음사의 ‘편집 장난’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다.

 

 

정말 심한 빡침을 감내해야 했다. 물론 내가 책을 구입해서 읽지는 않았지만, 출판사의 이런 관행은 정말 없어져야 하는 악폐 중 하나다. 독자들이 나서 박멸할 의지를 천명하지 않으면 출판사는 이런 만행을 서슴지 않고 지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줄곧 이를 경험해 오고 있으니..

 

 

사실 2007년에 갤브레이스의 마지막 유고 <갤브레이스에게 듣는 경제의 진실>을 읽고 매우 빡쳤었다. 왜냐, 이 책이 A4 30장을 채울 수 없는 분량이었기에. (열 받아 내가 그냥 본문을 타이핑 해 봤다.) 그리고 책값은 1만원이나 쳐 받았다. 물론 나는 서평 도서로 받았다. 하지만 빡침을 억누를 수 없었다.

 

 

아, 근데 <사라짐에 대하여>는 정말 쌍 욕이 절로 나온다. 글자 수를 헤아려 보니, 이 책의 총 자수는 약14,154자 정도 된다. 오차 100자 범위 내. 얍삽한 편집이라, 일반 인문서와 비교를 해 봐야 민음사의 만행이 드러난다. 내가 요즘 읽고 있는 삼성출판사의 <죽음에 이르는 병>(오래 전 출간된 책이다. 1990년판)과 비교해 보면 정말 경악할 수준이다.

 

 

삼성출판사의 ‘세계의 사상’ 시리즈는 빡빡하게 편집돼 있는 걸로 정평이 나 있는 책이다. 한 페이지에 33줄. 한 줄당 약 30자. 자수를 비교해 보면 <사라짐에 대하여>는 <죽음에 이르는 병>의 14페이지(단7장) 분량밖에 안 된다. 이를 1만원에 판다? 출판사가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편집으로 책을 판단말인가.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겠지만 새우깡을 1만원에 파는 격이랄까.

 

 

(저 분량을 1만원에 팔고 있는 민음사의 <사라짐에 대하여>)

 

 

그냥 제대로 편집해서, 하드커버 말고 페이퍼백으로 40페이지 분량으로 편집해서 5천원만 책정했어도 이런 성토는 하지 않겠다. 이건 출판사 양심의 문제다. 더 이상 이런 페이지 늘리기 식 편집은 독자를 우롱하는 짓이라는 걸, 출판사가 꼭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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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맥(漂麥) 2016-05-27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 또 공감!!!

yamoo 2016-05-30 13:53   좋아요 0 | URL
공감하신다니, 저와 같은 출판사의 만행을 겪으신 거군요~^^
출판사의 저런 편집 만행은 없어져야 합니다!

cyrus 2016-05-28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량이 많지 않은 책에 터무니없이 가격을 높게 책정하면, 불 보듯 뻔합니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1만 원이라면 독자들이 지갑을 열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현실을 그렇지 않죠. ^^;;

yamoo 2016-05-30 13:54   좋아요 0 | URL
도서관에서 1차적으로 사 주니, 저런 만행을 저지르는 거 같아요. 도서관용으로만 적은 부수 인쇄해서요. 일반 독자가 사려면 진짜 열받지요. 제발 저런 편집 만행은 없어졌으면 합니다~

oren 2016-05-28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0쪽이 넘고 가격도 1만원이나 하는 책이지만, 여느 다른 책들처럼 빽빽한 편집으로 바꿀 경우 고작 14쪽 분량에 불과하다니 정말 `편집 기술`이 놀랍네요.

그나저나 삼성출판사에서 나온 ‘세계의 사상’ 시리즈를 정말 오랫만에 실물로 다시 보니 너무 반갑네요. 제가 20대 초반에 주로 읽었던 책들이 바로 삼성출판사에서 나온 저 시리즈였거든요. 지금은 실물로는 단 한 권도 가지고 있질 않으니, 그 책의 모습만 봐도 감개무량입니다. 그 당시에 저 책들에 코를 박고 책을 읽던 시절에 맡았던 `향기로운 책냄새`가 제 코끝을 다시 스치는 듯한 착각마저 생길 정도로요.. 그 사라진 책들과 냄새들이 너무 그립네요...

yamoo 2016-05-30 13:56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시리즈를 차근차근 한 권씩 모아서 이제 시리즈 전집을 다 구비했습니다. 그러니 이 책 판본의 역사가 들어오더군요. 세로쓰기에서부터 시작해서 하얀 바탕에 파란 색 표지, 하드 커버에 이르기까지 4종류 이상이나 되는 거 같습니다.

읽어보니 지금도 당시 번역이 상당히 괜찮았던 걸로 생각하고, 지금도 찾아 읽고 있는 와중에 있습니다^^

노너 2016-10-17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한 편집과 디자인에 대해서는 백번 동감합니다. 다만 분량과 가격에 대한 의견은 동의하기 어렵네요. 중세시대처럼 책을 근수 달아서 파는 것이 아니고, 저로서는 이론서나 문학서 중에서도 고도로 짜인 책과 짜깁기 책이 있다면 전자가 몇배 비싼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책 가격에 대한 저항이 너무 높아요. 무엇보다 이 책의 원서는 물론 한국어판처럼 `코드`로 한쪽을 채우는 짓은 안했고 `브로셔` 시리즈로 나왔지만 9.6유로입니다.

yamoo 2016-10-19 20:56   좋아요 0 | URL
책을 근수달아서 파는 곳도 있습니다~ --;; 신개념 헌책방으로 제가 많이 구매하고 있습니다. ㅎㅎ 중세가 아니라도 책을 근수로 파는 곳도 있음을 알려드립니다..ㅎ

9.6유로 정도에 맞게 제대로 만들면 좀 비싼 책이구나 하겠지만 편집이 저러니, 욕을 할 수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