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의 경제학 - 왜 부족할수록 마음은 더 끌리는가?
센딜 멀레이너선 & 엘다 샤퍼 지음, 이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저번 주 한 권의 주문 메시지가 도착했다. 내가 올 봄에 사서 중고도서로 올려놓은 <결핍의 경제학>을 누가 주문한 것이다. 자주 그렇지만, 주문이 들어오고 나서 그 책을 훑는 습관이 있다. 촉이 오면 팔지 않고, 촉이 오지 않으면 그대로 주문을 접수받고 발송하는 방식. 이게 내가 알라딘에서 중고책을 파는 나만의 방식이다. ‘무조건 최저가’로라는 건 암묵적 전제.

 

 

어쨌거나 나는 <결핍의 경제학>(RHK, 2014)을 올 봄 무렵 굿윌스토어 신정점에서 2천원에 구매했다. 매우 저렴하게 구매해서 그런지 아무렇지도 않게 중고책 판매 목록에 올려뒀었다. 상당한 시간이 흘러 주문 때문에 책을 열어 봤는데, 참으로 괜찮은 책이 아닌가! 그래서 그냥 읽기로 했다.

 

 

베르그손의 주저들을 읽는 와중이라, 이 책은 이동 중에 아주 집중하여 보기로 했다. 책의 초반 내용은 매우 흥미진진했다. 이 책의 공동 저자들은 2차 세계대전 때의 ‘굶주림에 관한 연구’에서(이후 미네소타 대학의 실험에서) 배고픔이 어떻게 사람의 정신 맨 위에 위치하는지를 아주 새롭게 해석해냈다.

 

 

재밌는 사실은 두 저자가 서로 전공이 다른데, 센딜 멀레이너선은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이고, 엘다 샤퍼는 프린트턴대 심리학 교수이다. 센딜과 엘다는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행동경제학으로 해결하기위해 의기투합하여 이 책을 썼다는 사실(어디까지나 내 추측). 왜냐하면 이들은 여러 사회문제를 행동경제학적 설계를 통해 해결하기 위해 ‘아이디어42’라는 비영리조식을 공동설립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들이 해석해 낸 것은 아주 새로운 결과였다. 미네소타 대학의 굶주림 실험(실험 참가 인원 36명)을 통해서 저자들은 다음과 같은 아주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다.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의 변화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거였다.

 

 

지역 식당에 있는 메뉴판이나 요리책에 집착하는 현상을 보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 신문 저 신문을 비교하면서 채소와 과일의 가격을 살피느라 몇 시간씩 보내기도 했다. 또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을 계획을 세운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은 식당 주인이 되겠다는 꿈을 꾸었다. …… 실험 이전에는 학자가 되겠다던 사람도 이제는 요리책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도 음식이 나오는 장면에만 집중했다. p18

 

 

실험의 결과를 통해서 저자들이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였다. ‘결핍’(배고픔; 음식에 대한 결핍)이 사람의 행동을 바꾸어 놓는다는 것. 이 실험의 결과로부터 저자들은 경제학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희소성의 법칙’을 ‘결핍’으로 환원한다. 결핍 이론으로 인간의 다양한 행동을 설명하고자 하는 의도가 이 책의 목적이다. 이는 35페이지에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기도 하다.

 

 

이 책은 ‘형성중인 미완성의 어떤 과학’을 설명한다. 이는 결핍의 심리적 토대를 드러내고 아울러 이 지식을 이용해서 다양한 사회적·행동적 현상을 알아보고자 한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은 대학교의 심리실험실, 쇼핑몰, 그리고 기차역에서부터 뉴저지의 무료급식소, 인도의 사탕수수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환경에서 진행된 독창적인 연구 조사에서 비롯되었다.  p35

 

 

결핍을 빈곤과 연결해서 설명한 부분에서는 무릎을 치고 고개를 주억거리게 했다. 하지만 조직 행동을 설명하기 위한 ‘시간의 결핍’을 사례와 함께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뭔가가 이상했다. 모든 것을 결핍으로 환원해서 실험의 결과를 유의미하게 끌어내려고 하는 저자들의 원대한 의도가 좀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

 

 

음식의 결핍으로부터 인간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낸 것처럼, 저자들은 조직에서 인간이 행동이 변하는 동기를 시간의 결핍으로부터 도출하고자 한다. 전혀 다른 이 두 사례가 타당성 있게 설명되면, 이후 일상 속에 숨겨진 각종 결핍에 대한 사례가 무리 없이 연결될 수 있다. 한 마디로 ‘결핍 이론’은 강력한 이론적 도구가 된다는 거. 거의 모든 인간 행동을 ‘결핍 이론’으로 환원할 수 있다니, 얼마나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겠나.

 

 

그래서 나에게는 ‘음식의 결핍’이 ‘시간의 결핍’과 동일한 환원 구조를 갖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었다. 이 두 양상이 저자들이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것처럼 같은 정도의 유비라면, 인간 행동의 당양한 양상을 ‘결핍’으로 환원하여 깔끔하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시발점이 된 부분은 51페이지에 설명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의 굶주림 연구에서 배고픔이 배고픈 사람의정신의 맨 꼭대기에 음식을 올려놓았던 것처럼 마감시한(회사에서 회의나 프리젠테이션)은 현재 진행하고 있는 과제를 정신의 맨 꼭대기에 올려놓는다. 회의 시간이 몇 분 남지 않았든 혹은 대학생활이 몇 달 남지 않았든 간에 마감시한은 매우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 해당 과제에 좀더 많은 시간을 투여하고 온갖 산만한 생각들에는 덜 빠져든다. 써야 할 원고의 마감시한이 코앞일 때는 한가하게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지 않는다. 회의가 막 끝나려고 할 때는 대화가 안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시간이 부족할 때면 사람들은 그 남은 시간에서 좀 더 많은 것을 얻어 낸다. 우리는 이것을 ‘집중배당금(focus dividend)’이라고 부른다. 이것이 바로 정신을 사로잡는 결핍이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결과이다. p51

 

 

내가 베르그손의 인식론에 빠져 있어 그런지는 몰라도. 위 부분을 읽으면서 든 의문을 떨치지 못하겠다. ‘음식의 결핍’과 ‘시간의 결핍’은 완전히 다른 양상인데, 저자들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같은 차원에 놓고 아무 거리낌 없이 설명하고 있다.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사람이 배가 고파지는 현상은 매우 자연스러운 거다. 음식을 먹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배가 고파지게 마련. 배가 고픔에도 먹지 못하는 상황은 시간이 좀 더 지나 시장기가 더 강화된 상황이다. 책에 나와 있는 미네소타 대학의 실험에서 보인 굶주림이란 이런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전제된 것은 무엇인가? 그건 바로 사람이 시간의 지속적 흐름 속에 있다는 거다. 꿀물을 마시려면 꿀이 물에 녹는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 사람이 굶주린 상황에 처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음식의 결핍이 있기 위해 사람의 몸은 일정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말이다. 이 상황은 매우 물질적(신체적)이다.

 

 

이 물질적 상황이 사람의 행동을 바꾸어 놓는다. 이런 경험(굶주림)을 통해 사람의 행동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에 딴지를 걸 마음은 없다. 신체적 상황이 정신을 지배할 수 있다는 점을 실험으로 입증한 것만으로도 신선했으니까.

 

 

헌데, 2시간 동안 회의를 하거나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상황은 어떤가? 모두 인위적으로 시간을 막아 두고 있다. 여기서 느끼는 시간의 결핍은 가공된 것이다. 생존의 차원이 아니라 부수적인 차원이다. 무엇보다 이 행위들은 정신적 활동이다. 회의를 하거나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행위는 아무리 소박하게 생각해도 정신 작용의 일환이지 신체 작용에 따라 이루어지는 활동은 아니다.

 

 

‘무언가의 결핍’으로 묶기에는 차원이 너무 다르다. 전통적인 철학적 도식으로 구분해 보면, ‘음식의 결핍’은 물질의 영역이고, ‘시간의 결핍’은 정신의 영역이다. 이를 같은 선상에 인위적으로 놓고, ‘음식의 결핍과 시간의 결핍은 인간 행동을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라고 주장하는 건 매우 우스꽝스러운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전자의 도식을 후자에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 봐도 무리라는 걸 알 수 있다. ‘결핍’으로 모든 것을 환원하고자 하는 욕구가 너무 강한 나머지, 저자들은 각 실험 사례들의 유비적 엄밀성을 따지는 데 실패한 듯하다.

 

 

물론 이 책이 결핍을 가난으로 연결하여 사람들의 선택과 행위를 분석한 면은 상찬 받아 마땅하다. 더군다나 경제학의 ‘희소성’을 ‘결핍’으로 재정립하여 경제학의 외연을 확장하고 있는 점에서는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다만, 물질의 영역(개인)과 정신의 영역(조직인)을 엄밀히 따지지 않고, ‘결핍’으로 환원하기 위해 같은 선상에 놓고 적용했다는 점은 학문적으로 재점검 해 봐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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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08-04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어요. 저는 뭐 경제학은 좀...
어디 휴가는 다녀오셨습니까?^^

yamoo 2016-08-07 22:51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스텔라님^^

휴가는 6월 중순에 이미 갔다 왔습니다요~ 일찍 갔다와서 좋긴 한데, 넘 더워서 하루하루 보내기가 괴롭네요..^^;;

스텔라 님은 잘 지내시는지...휴가는 어디로 갔다 오셨는지 궁금하네요~

cyrus 2016-08-04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생 때 책을 많이 사지 못했던 일이 많이 아쉬워서 그런지 책을 많이 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일단 책을 가지고 있어야 마음이 편해져요. ^^;;

yamoo 2016-08-07 22:52   좋아요 0 | URL
흠...그 병에 걸리면 클납니다..ㅎㅎ
돈이 남아나질 않아요...ㅎㅎ

그림책에 많은 욕심을 내실거 같다는^^;;
 
온전히 나답게 - 인생은 느슨하게 매일은 성실하게
한수희 지음 / 인디고(글담) / 201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그냥 가만히 <베르그손>의 주저들을 독파할 생각이었다. 그저그런 책들은 이제 더이상 읽고 싶지 않다. 6월부터 계속 다른 책들을 열어보고, 넘겨보고 했지만 책을 선택해서 읽지는 않았다. 내게는 현재 <물질과 기억> 한 권으로도 벅차다.

 

6월1일부터 지금까지 총 3회독. 가장 어려운 1장은 6회독 쯤 한 듯하다. 읽을수록 번역으로 인해 열불이 나곤 한다. 이 더위에 진짜 이 뭔 쌩 지럴인지 모르겠다. 아, 더워도 너무 덥다. 이 높은 불쾌지수에 기름을 붙는 번역본이라니, 썅 소리가 절로 나온다~

 

간만에 퍼스에 대한 책을 검색하는 와중에(9월 이후 읽기 위해서) <온전히 나답게>(인디고, 2016)란 책이 관심을 끌었다. '나'를 온전히 살기 위해서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물질과 기억>이다. 그래서 이런 류의 책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겠다.

 

어떤 책인지 살펴나 볼 겸 맛보기 몇 페이지를 넘겨봤는데, 이건 뭐 시덥지 않은 에세이라는 인상이 짙었다.프롤로그와 304페이지에 있는 글을 보면서 이 책이 어떤 책인지 감을 잡을 수 있었고, 나는 이 책을 사서 보면 안 될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하찮은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인생이 된다는 것. 하찮아 보여도 그게 인생이라는 것. 그 하찮음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인생이 즐거워질 수도 비참해질 수도 있다는 것. 그런 것들을 나는 살아가면서 배웠다. 그래서 그런 일들에 대해 쓰고 싶었다. 그런 일들에 대해 쓴 것들을 모으니 온전하게,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한 사람의 인생이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이런 제목의 책이 되었다.  -프롤로그

 

인생이 하찮은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되는 것인가? 삶이란 하찮은 일과 의미있는 일이 뒤섞이고, 희로애락이 시간 속에서 몸과 기억에 새겨지는 과정이다. '하찮음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인생이 즐거워질 수도 비참해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삶을 전혀 온전히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

 

인생의 즐거움과 비참함은 '하찮음을 다루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즐거움'과 '비참함'이라는 감정은 현재가 기억의 파편 속에서 순간 순간 만나 스펙트럼처럼 펼쳐지는 과정의 단면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생을 살아가는 과정속에서 무수히 맞딱뜨리는 감정이다.

 

이런 감정은 살아가면서 교훈을 통해 배우는 것처럼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다. 직관적으로 시간속에서 단숨에 느끼는 거다. '하찮음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인생이 즐거워질 수도 비참해 질수도 있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배웠다'는 건 시간과 기억 그리고 감정을 나누어 지성화(공간화)했다는 거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써 모으면 그것이 온전한 자기가 된단다. 화석화 되고 조작화된 기억이 '온전히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한 사람의 인생으로 보인다'니, 더이상 말해 뭘할까.

 

아주 러프하게 생각해도, '나답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밝히고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제데로 된 에세이다. 이런 중요한 전제가 빠진 채 한 권의 책을 쓴 다는 자체가 참으로 대단해(?) 보인다. 왜냐하면 허술한 전제로 어떤 얘기를 펼치든지 무리수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304페이지를 보면 이 책의 성격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나는 버스를 세 번,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좋아하는 카페를 기어이 찾아가는 타입의 여자다. 내게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일할 대는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다. 나는 언제나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남편은 아무도 없는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는 타입이다. 그에게 장소는 별 상관이 없다. 어제보다 더 나아지는 데도 관심이 없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자신이면 그저 족하다. 어쩌다 그런 여자와 그런 남자가 마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이나 낳았다. 그 아이들은 어떤 사람으로 자라게 될지 궁금하다.

 

저자에 따르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 분위기 좋은 곳을 찾아 버스를 세 번,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좋아하는 카페를 기어이 찾아가는 것"이다. 이게 '온전히 나답게'사는 지표 중 하나다. 그러니 '하찮은 것들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하겠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임종국은 누추한 방안에서 끼니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까지 <친일문학론>을 완성했다. 그에게 삶은 단 하나, 역사에 가려져 있는 친일 문학자를 세상에 드러내는 거였다. 온갖 회유와 탄압 속에서, 살아 가는 것조차 버거운 현실 속에서, 그가 실현하고자 했던 것을 성취하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욕망. 그게 바로 '온전히 나답게' 산다는 것일 게다.

 

이런 취지를 생각하고 펴들 예정이던 <온전히 나답게>는 아주 적은 페이지만 봤지만 함량미달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뭐, 에쿠니 가오리의 <당신의 주말은 몇개입니까?> 류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냉큼 읽어도 문제는 없겠다~

 

 

[덧]

1. 구입해서 읽지도 않을 책에 대한 리뷰라니 참 거시기 하다.

2. 나처럼 어떤 기대감을 갖고 읽어볼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책선택의 도움이 될까해서 리뷰란에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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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8 1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31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8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역시 야무 님이십니다. 왜 그동안 뜸하셨습니까. 자주 글 좀 올려주십시오..

yamoo 2016-07-31 11:23   좋아요 0 | URL
ㅋㅋ 감사합니다!ㅎ
곰발 님처럼 부지런해야 하는데, 제가 좀 겔러서요~ㅎ 베르그손 책을 완독(삼독 사독)할 때마다 번역에 대해 투덜거려 보겠습니다!ㅎ

2016-08-03 1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03 2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06 2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07 2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셔츠 매뉴얼 - 남자의 패션: 기본부터 완성까지
태인영 지음, 안웅철 사진 / 안나푸르나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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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 매뉴얼>(안나푸르나, 2015). 작년 여름에 반디 서점에서 들었다 놨다 했던 책이다. 가격에 비해 두깨가 하도 얇아(189쪽) 도서관에서 빌려보기로 했다가 잊힌 책이다. 근데 저번주 도서관에서 눈에 띄어 빌려 보았다.

 

 아, 근데 이거 구매해서 읽었으면 심하게 자책할 뻔 했다. 책이 부실해도 이만저만 부실한 게 아니라는 거. 15,800원이면 다른 책을 사서 보는 게 10배 낫다. 이 책은 매우 부실하다.

 

도대체 저자가 왜 이런 책을 냈는지 심히 의구심이 들 정도다. 저자는 외국어 고교 출신(불어 전공)에 학부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대학원에서는 정외과를 전공하고나서 94년부터 방송 진행과 방송 출연을 해 오고 있단다. 국제 행사 전문 MC, 국제협상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세계를 누비고 있다고.

 

그냥 세계를 누비면서 협상 전문가로서의 이력이나 넓힐 일이지, 이런 책은 왜 냈나 싶다. 남성 패션, 그것도 '기본에서 완성'까지 안내해 준다는 사람이 책을 쓰면서 공부한자 하지 않고 자기 느낌대로만 내용을 채우면 뭐 하자는 건지. 남성 패션이 그렇게도 만만한 모양이다.

 

저자는 패션관련 업계에 있어본 적도 없고, 패션 관련 전공을 하지도 않았다. 미술 전공에 정치외교학과 대학원 나와 국제협상 이력을 가진 것이 전부다. 그렇다면 남성 패션에 관해서 전문가는 아닌 거다. 이력에서 한 눈에 드러난다.(책 날개에 이력이 나와 있음)

 

그런데 그런 사람이 전문가의 입장에서 남성 패션을 코칭한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문외한이 이런 책을 쓰려면 적어도 공부를 해야한다. 그래야 기본은 간다. 더군다나 여자는 남성복을 입어 본 적도 없고 입어 볼 계획도 없지 않나.

 

어디서 보고 들은 건 많아가지고 이렇게 입어라 저렇게 입어라 하는데, 내가 볼 땐 아마추어의 어설픈 지적에 지나지 않는다. 그냥 남자에게 자기가 입히고 싶은 옷을 입히려고 습작한 스타일 연습장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저자는 남성복의 기본을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 비즈니스 웨어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조언하는 코디는 모래사장에다 글씨를 예쁘게 쓰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이 책 어디에도 비즈니스 웨어의 본질이 무엇인지 나타나 있지 않다.

 

왜냐, 타이틀이 <셔츠 매뉴얼>이기 때문이다. 셔츠는 남성 비즈니스 웨어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든 사람은 누구나 기대한다. 이 책이 캐주얼 웨어에 대한 안내가 아니라 비즈니스 웨어에 대한 안내서가 되리란 것을.

 

더군다나, 타이틀이 <셔츠 매뉴얼>이다. 그러면 적어도 책의 2/3는 셔츠 관련 내용으로 채우고 수트 코디와 엑세서리는 부차적으로 언급해야 책의 균형이 맞다. 헌데, 이 책은 셔츠에 관련된 내용이 50페이지도 안 된다. 189페이지 중에서 말이다.

 

나머지는 타이, 팬츠, 수트, 코트, 캐주얼, 악세사리에 관련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것도 그냥 느낌의 나열이다.) 그냥 남성 패션에 대한 토탈 안내서 인듯한데, 왜 타이틀을 저따위로 붙였는지 모르겠다.

 

셔츠에 관한 내용도 별로 전문적이지 않다. 셔츠 카라만 해도 10여 가지가 넘고, 커프스 종류도 7가지가 넘는데, 이 책에서는 달랑 카라 3개와 커프스 2개만 언급했다.

 

셔츠 각 부분의 명칭도 없고, 하이엔드 셔츠와 기성 셔츠의 차이점도 없다. 목 둘레와 팔길이가 맞지 않아 고민이 많은 남자들에게 맞춤 셔츠와 기성 셔츠의 차이점과 특장점을 비교해 주는 것은 기본이다. 이런 정보, 물론 없다. 그냥 여성 잡지책에 나오는 수준에다 자기 기호를 더하여 내용을 구성한 게 전부다.

 

남성 클래식 스타일에서 수트 라펠의 넓이와 셔츠 카라의 조화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트를 입은 인상이 여기서 결정적으로 갈리기 때문이다. 얼굴이 큰 사람과 마른 사람에 따라 조합이 달라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중요한 정보가 빠져있다.

 

그런데, 이런 건 애교로 봐주고 넘어갈 수 있다. 중요한 건 앞에서도 지적했다시피 저자가 비즈니스 웨어의 본질이 뭔지 모른다는 거다.  이는 코디로 제시한 스타일 사진에서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보면 화사하고 밝고 예쁘다. 데이트 룩이면 금상 첨화인 스타일이다. 매우 트렌디하고 패셔너블하다.

 

다시 강조하건대 비즈니스 웨어는 패셔너블한 옷이 아니다. 유행과는 철저히 유리되어 있기에 펑크 룩과 같은 안티-패션에 가까운 스타일이다.  그 이유는 수트가 전투복으로부터 유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질 자체가 보수적이고 유행과는 거리가 멀다. (남자들의 군복 이미지를 떠올리면 쉽다!)

 

그래서 비즈니스 웨어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색상을 추천해야 한다. 절대로 핑크색 셔츠나 노란색 치노 팬츠를 권하면 안 된다. 비즈니스 전장에 나가는 사람에게 데이트 룩을 추천한다는 건 TPO에 맞지 않는 스타일이다.

 

뭐, 요즘은 비즈니스 캐주얼이 대세라 이런 차림새가 대세인줄 아는 모양인데, 이도 기본을 무시하면 안 된다. 전통적인 클래식 복장의 기본(트렌드에 민감하지 않다는 것)을 준수하면서 약간의 포인트를 주는 선에서 그쳐야지, 트렌드를 따르는 것이 남성복의 대세인양 호도하지 말자.

 

이 책은 여기에 그쳤으면 저자의 개성이 너무 강해서 그렇거니 하고 넘어갔을 거다. 하지만 서술 내용의 부실함은 책의 함량 미달로 이어져 저자를 불신하게 하는 결정적 요소였다. 책의 내용을 잠깐만 소개해 보겠다. 영국산 원단을 설명한 내용이다.

 

 

"영국산 원단은 힘있고 뻣뻣하지만 체형을 보완해 주고 내구성과 원형 보존 등 장점을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양복을 맞춘다면 영국산 원단에 도전해 봅시다. 처음에는 불편하다고 느끼다가도 몸을 바로 잡는 느낌을 받으면 그 마력에서 절대 헤어나지 못할 겁니다"(p105)

 

여자 스타일리스트들이 남성 스타일을 안내하는 책에서도 종종 보는 내용이다. 남자가 전투복으로써 양복을 맞출 때 가장 중요한 요소로 살피는 것이 원단이다. 영국산 원단이면 원단 브랜드가 나와야 한다. 하지만 여성들은 이런 걸 취급하지 않는다. 그냥 '영국산 원단'이면 끝이다.

 

영국산 원단이 힘있고 뻣뻣한 것은 차고 습한 영국의 기후 때문이다. 그래서 영국은 따뜻하고 내구성이 강한 원단을 생산한다. 대표적으로 허더스필드 클로쓰와 찰스 클레이튼 그리고 도멜 회사에서 생산되는 무게 250~350그램 정도의 원단이 내구성과 원형 보존 등 장점을 두루 갖춘 좋은 원단이다.

 

하지만 단점은 이 원단이 겨울용으로만 적합하다는 거다. 가을과 겨울을 제외한 나머지 계절에는 입을 수 없다. 이럴 때에는 이테리 원단인 에르메네 질도 제냐나 우리나라 제일모직의 슐레인 급 원단으로 양복을 맞춰야 한다.

 

양복에서 가장 중요한 원단에 대한 정보가 쏙 빠진 내용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 더군나다 그것이 맞춤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런 공허한 내용은 계속된다.

 

책에 설명되어 있는 3가지 수트 스타일에 대한 내용이다. 브리티쉬 스타일과 프렌치 스타일을 설명한 부분을 보자.

 

브리티쉬 스타일

"전형적인 군복에서 모티프를 따온 수트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몸을 반듯하게 세워주는 느낌의 딱딱함과 불편해 보이리만큼 꽂꽂한 등선을 자랑합니다. 그냥 딱딱한 갑옷이에요. 불편해 보이지만 단단한 가슴과 바른 자세로 자신감을 부각시키는 스타일이죠. 수탉이 울기 전에 가슴을 부풀리는 상상해 보세요. 깃이 넓고 재킷 좌우를 깊게 겹치고 두 줄로 버튼을 나란히 단 더블 브레스트 수트도 떠오릅니다."

 

프렌치 스타일

긴 설명 안 하겠습니다. 지리적으로 영국과 이탈리아 중간쯤에 있는 만큼, 스타일도 중간쯤이라고 해 두죠. (p107)

 

수트 스타일을 설명하면서 어깨와 허리 그리고 포켓과 벤트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저자가 남자의 수트에 대해 문외함임을 나타낸다. 수탉 운운 하는 지점에서는 헛웃음이 절로 난다. 많은 설명을 한답시고 했지만 브리티쉬 스타일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려주고 있지 않다.

 

브리티쉬 스타일의 특징을 아주 짧게 설명하자면 4가지만 언급하면 된다. '군복을 연상시키는 각진 어깨', 타이트하게 피트되어 긴장감이 느껴지는 허리', '체인지 포켓과 슬랫 포켓', '사이드 벤트' 정도면 끝.

 

프렌치 스타일을 설명한 부분에서는 그냥 빵 터졌다. 모르면 공부라도 하고 책을 쓰던가. 사진 이미지를 서술한 부분을 잘 보면 알겠지만, 절반 이상이 주관적인 느낌의 나열이다. 참으로 함량 미달이다.

 

할 말이 더 많지만, 이쯤에서 줄이는 게 좋을 듯싶다. 너무 길어지고 이 정도만 언급해도 이 책에 대한 촌평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스타일에 고민이 많은 비즈니스맨들이 볼까 우려하여 좀 장황하게 썼다. 뭐, 자유업에 종사하는 분들은 봐도 무방하겠다.

 

하지만 이 책을 보느니 차라리 <맨즈웨어 도그>(RHK, 2015)를 추천드린다. 캐주얼에서 전투복까지 이미지만으로도 어떻게 입을 지 충분한 가이드가 된다.

 

<셔츠 매뉴얼>은 지금까지 내가 본 남성 스타일 안내서 중에서 최악으로 꼽는 몇 권의 책 속에 속한다. 절대 사서 보시지 마시라! 별 하나라도 준 건 안웅철 사진 작가의 멋진 사진 이미지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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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수 - 전2권 세트 - 다가오는 전쟁
김진명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에서 김진명, 이원호, 김종성 작가들의 작품은 상당한 지명도를 갖고 있다. 이들이 출간한 책은 수십종에 이르며, 발행부수도 상당하다. 대중소설, 더 좁히면 이른바 장르소설로 분류되는 이들 중 김진명은 단연 톱이다. (아, 이 평가는 지극히 개인적으로 나의 어머니의 평이기도하다. 어머니가 무척 김진명 작가를 좋아하여 그의 책을 도서관에서 모두 대출할 정도이니..)

 

그도 그럴 것이, 김진명 소설 중 상당 수는 영화화 됐다. 사실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 전개는 그래서 김진명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지 오래다. 그가 얼마나 대중에게 어필하는 작가인지는 구립 도서관 서가에만 가 봐도 알 수 있다. 가는 도서관 마다 비치되어 있는 작가의 소설들은 하도 많이 봐서인지 거의 다 너덜너덜 한 수준이다.

 

내 어머니가 광적으로 좋아하고, 대중이 지극히 사모해 마지 않는 김 작가의 소설을 나도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더랬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정말 재밌게 본 기억이 있다. 그리고 몇 작품 더 보았지만, 움베르토 에코에 환장하면서부터 내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 그러더니 밀란 쿤데라를 만나고 칼비노 류의 세계문학 작품들을 만나면서 그의 작품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게 되었다.

 

하지만 김진명 작가를 외면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언젠가 김 작가가 인터뷰를 한 걸 본 적이 있었는데, 그게 결정적이었다. 그 때 그가 말하길, 자기의 작품은 완벽한 문헌 고증과 철저한 사실 조사를 바탕으로 심혈을 기울여 탄생한 작품이기에 가치가 있다는 논조였다. 더군다나 표절은 있을 수도 없다고 일갈했다. 이 인터뷰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고 이휘소 박사의 유고로부터 작품을 쓴 OO작품을 표절했다는 당시 언론 기사들에 대한 작가의 항변이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여러 정황상 나는 김 작가가 표절을 했다고 확신을 했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그런 확신을 갖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여튼 이 사건이후 나는 김진명 작가를 멀리했다. 아니, 자연스럽게 세계명작을 읽으면서 멀어져 갔다.

 

그러던 것이, 몇 년 전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해 우리나라 사학계가 발칵 뒤집힌 후 논쟁이 잠잠해 질 때 <살수>가 출간돼었다. 20005년 출간 당시 <살수>의 책 광고는 대대적이었는데, 인터넷 서점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김 작가의 책을 소개했다.

 

김진명의 신작 장편소설. 고구려 역사는 물론이요, 한민족 역사 이래 최고의 영웅이면서도 남아 있는 자료가 빈약하여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영웅 을지문덕을,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근거하여 복원시키고, 거대한 수나라에 맞서 싸운 고구려인의 웅혼한 정기와 지략을 보여줌으로써,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동북공정’에 의한 중국 정부 차원의 한반도 역사 왜곡에 대해 당당히 맞서고 있다.빼앗긴 역사속의 고독한 영웅 을지문덕과 난국을 헤쳐나가는 고구려인의 웅혼한 기상이 살아숨쉬는 대역작!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2005년 6월 29일자 신문에서도 '고구려는 중국 고대 소수민족 정권'이라는 보도를 하여 다시 한번 중국의 역사 왜곡은 현재진행형임을 인지시켰다. 김진명의 장편소설 '살수'는 고구려 역사는 물론이요, 한민족 역사 이래 최고의 영웅이면서도 남아 있는 자료가 빈약하여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영웅 을지문덕을,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근거하여 복원시키고, 거대한 수나라에 맞서 싸운 고구려인의 웅혼한 정기와 지략을 보여줌으로써, ‘동북공정’에 의한 중국 정부 차원의 한반도 역사 왜곡에 대해 당당히 맞선다.

[네이버 책소개]

 

역시, 김진명 작가의 위상에 걸맞는 대단한 격찬이다. 요즘 보니 김 작가의 신간인 <고구려>가 1권부터 5권까지가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었다. 보건대 김진명의 고구려사에 대한 애착(대하 소설로서의)은 <살수>에서부터 시작된 듯하다. <고구려>에 대한 인기로 이전 작인 <살수>가 덩달아 잘 나간다는 전언. 그래서인지 도서관에 새 판본이 꾸준히 유입되면서. 독자들이 지속적으로 읽고 있는 듯하다. 알라딘에서도 역시 리뷰가 많다. 오~ 근데 역시 찬사 일색이다. 어떤 면에서 찬사를 보내는지 몇 개만 거들떠 보자.(알라딘 리뷰를 작성하신 분들에게 미리 사전 동의를 구하지 못하고 퍼 온 것에 사과를 드린다~ 퍼온 분의 아뒤는 생략)

 

OO님

비록 문과이긴 하지만 국사에 별 관심이 없던 나는 을지문덕이 엄청난 전술로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것만 알았지 자세한 상황은 생각도 해보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이 한권의 책이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소설인데도 실제처럼 여겨지는 이 책은 지루하지않지만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다. 동북공정으로 북한을 집어삼키고 우리나라의 역사인 고구려를 없애버리려고 하는 중국에 대항하여 이 책은 이나라를 짊어지고 갈 청소년들이 읽기에 적합한 책이다. 김진명이라는 작가에 반해버려서 ....

 

&&님

작가의 이름만으로 신뢰할 수 있는 작품!

 

@@님

저자의 소설을읽게되면 마치타임머신을 타고 있는것 같다. 첫장을 열고서 마지막 책을 덮을때까지 아무것도 할수 없고책위에만 시선을 고정시킨다.나는 과거에 있었고, 책을 덮는 순간현실로 돌아와 있다. 물론작가와 독자도 궁합이 맞아야겠지만 김진명의 소설은 적극 추천하고 싶기도 하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 몰랐던 역사를 알수도 있고, 내 조국, 대한민국의 역사에 자부심이 생기기도 한다.

 

##님

김진명작가의 중국을 겨냥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반영하여 현재의 우리나라의 중국에대한 감정을 제대로 반영하여 보여준 작품으로 생각된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비꼬면서 우리나라의 조상 고구려의 멋진 기상과 기개를 멋지게 잘 표현하여서 중국의 동북공정을 비꼬는 멋진 글이다.

 

**님

과연 아무런 생각도 없이 읽었더니 너무너무 재미났다..  마치 삼국지 분위기로 흘러 들어가공... 중국풍이 좀 심하게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의 리뷰들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너무너무 감동에 벅차올랐다..

 

 

흠....그만하자. 충분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읽어보니, 이 작품은 함량미달의 작품이었다. 작품을 쓸 때 풍부한 사실 자료를 확보하지 않으면 작품 발표를 하지 않는다는 그에게 이 작품은 자료가 부실해도 너무 부실했다. (그도 이 사실을 알아 챘는지 뒤늦게 작가의 말에 '자료 부실'운운하며 슬며시 끼워넣었다. 내가 읽었던 건 초판인데, 그런 언급이 전혀 없었다.)

 

아쉽게도 이 작품은  [네이버 책소개]처럼 '웅장한 고구려의  기상'이 살아숨쉬는 대작이 절대 아니다. 작가의 말처럼 (위대한?) '<삼국지> 대신 이 책 <살수>를 읽는게 우선'이냐. 내가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그건 아니다!'라고 힘주어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이 소설은 동북공정에 대한 그 어떤 대책도, 또한 고구려 역사에 대한 그 어떤 웅대한 스펙터클도 제시해 주고 있지 못한 졸작이기에.

 

을지문덕이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는지 우리는 여전히 모를 뿐더러(이 책을 읽고 난 후에도!) 그가 어떻게 역사의 전면에 나타나게 되었는지 일말의 단서조차도 없다.

 

완전히 3류 무협지처럼 한 청년이 홀연히 등장하여 보통사람이 생각하는 모든 상식과 통념을 뛰어넘는 수퍼맨질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래놓고 일반독자들에게 을지문덕도 모르면서 무슨 역사운운하냐며 따진다.

 

어처구니가 없다. 적어도 그렇게 말하려면 상상력을 동원해 어린시절의 비범함을 부각시키면서 성장 과정을 개연성있게 전개시키든지, 아니면 을지문덕이 정계와 군계에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 배경을 어느 정도 보여주든지 해야 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이 통째로 빠져 있다. 무늬만 역사소설이지 3류 무협지와 다를 게 하나도 없는 작품이다.

 

소설은 급조된 느낌이다. 사건의 개연성도 플롯의 전개도 3류 인터넷 소설처럼 조악하기 그지 없다. 스토리는 탄탄하냐? 수 문제와 양제의 고구려 침공을 을지문덕 혼자 원맨쇼로 막아냈다는게 전부다.

 

여기서 웃기는 건 을지문덕이 수113만 대군을 아주 우습게 돌려보냈다고 하는 점이다. 그는 제갈공명을 넘어 슈퍼맨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건 김용의 그 유명한 무협적 과장을 아주 우습게 넘어 서고 있다.

 

고구려 역사를 통째로 먹으려는 중국에 대한 대응으로 역사소설을 썼다는 그에게, 미안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데 내놓기에는 너무도 허접하다. 솔직히 창피하기까지 하다.

 

애국심과 민족주의를 부추기기 위해 간간히 열혈적 역사의식을 보여주지만 <시경> '학현편'을 인용한게 전부다. 관련학과를 나오거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내용이다. 너무 똥폼잡고 허풍을 떠는게 아닌가 싶다.

 

<살수>어디에도 을지문덕에 대한 우리의 무지를 깨우쳐 주는 곳은 없다. 다~ 고교 국사교과서에 있는 수준이다. 교과서와 다른 점은 그가 혼자 수의 대군을 아주 우습게 물리쳤다는 가공할만한 무용담을 담은 페이지 수밖에 없다.

 

진짜 을지문덕이 그렇게 싸웠을까? 그가 전투하는 장면은 무협소설의 과정과 진배없다. 그가 어떤 전술을 갖고 어떻게 병사들을 진두지휘했으며 전투에 임하는 자세와 고뇌는 어떠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이건 나폴레옹을 주제로 한 몇 권의 소설을 읽어 보면 대번 비교가 가능하다. 나폴레옹을 주제로 한 역사소설들을 읽어보면, 나폴레옹이 전투에서 어떻게 병사들을 운용하여 전쟁에서 연전 연승했는지 알 수 있다. 그의 비범함을 알기에 충분하다는 말이다. 비록 을지문덕에 대한 사료가 부족하면 상상력으로 충분히 개연성 있게 매꿀 수 있어야 역량있는 작가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어디 왕이 전시에 한낯 장수에 불과한 을지문덕에게 고개를 숙여 나라의 운명을 맡기는가? 당시 고구려 왕의 품격이 그 정도밖에 안되었는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어떤 사료를 보고 집필했는지 의아스럽다. 아, 소설이라고? 그럼 몰랐던 부분을 그럴싸하게 알려주든가.

 

무엇보다 심각한 건, '진짜 수가 113만 대군을 파견했을까?'라는 문제이다. 솔직히 도서관에서 관련 논문이나 사료를 조금만 들춰보더라도 그 당시 113만 이란 숫자는 침공의 과장일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이 역사학계의 다수설이다. (당시 인구 대비로 그 숫자가 동원될 수 없단다) 그런데 당연한 듯 써내려간 김진명의 그 똥폼은 무엇인지. 언제나 작품 내기 전에 사실적 고찰을 완벽히 한다고 언제나 당당했던 그 기질은 '아집'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아주~ 실망스런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여-수전쟁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없거니와 그 당시 전쟁에 대한 나름의 시각도 없다. 역사소설을 빙자한 삼류무협소설밖에 안되는 졸작이라 평하고 싶다.

 

 

 

[덧붙임]

요즈음 한국 사회는 역사 인식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대학 입시에서 한국사 필수 선택 문제와 교학사본 교과서 역사왜곡 문제 그리고 국사편찬위원장의 자질 문제가 그렇다. 그래서 김진명의 이 소설도 많이 읽히는 것 같은데, 이 작품은 완전 함량미달이다. 본작은 을지문덕에 대해서 우리가 모르는 그 어떤 지식도 알려주지 않거니와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그 어떤 대안도 고구려 역사에서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그냥 열렬적 민족의식에 불타 오버하는 일갈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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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2 1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3-10-22 17:52   좋아요 0 | URL
잘 읽고 갑니다. ^^

2013-10-25 1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장 폴 사르트르 지음, 방곤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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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말도 안되는, 그리고 겁대가리를 상실할 정도로 미쳐버리지 않고는 타이틀로 내 걸 수 없는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사르트르, 방곤 역, 1999). 이 빌어먹을 책은 실존주의에 대한 사르트르의 변명이다.(실존이 휴머니즘과 양립할 수 있다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책이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측에서 그리고 여타 문학가와 사상가들에게 맹렬한 공격을 받은 실존철학을, 자신만의 거만한(?) 언어로 복잡하고도 현학적이게 강연한 그 대본이 바로 이 책이다. (간결한 팜플릿이라는 느낌은 거의 못받았다. 역시 번역의 문제인가..)

  1981년에 
문예출판사에서 출간한 이 책은 50쪽 분량의 본문과 사르트르의 실존철학 강연에 반대하는 피에르 나빌르 교수와의 <토론>, 그리고 1952년 프랑스 <현대>지에 게재된 사르트르와 까뮈의 알고싶지 않은 둘 만의 싸움을 비화한 <반항과 혁명>을 함께 수록하고 있다.


거기다가 뭘 말하겠다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꽤 현학적인 이 논쟁을 확대시킨 장송은 지금까지 알고싶어하는 사람들만의 관심을 끌어온 것 같다. 개인적으로 둘의 싸움에 제 3자가 끼어들어 교통정리하는 모양새가 여간 보기 불편한게 아니었다. (아, 그 본질은 무슨 말인지 정황파악이 안되서 였다..)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는 실존주의의 도덕관으로 행동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비비 꼬아서 논증하고 있다. (시튜아시옹과 기투의 개념을 잘 이해해야 한다) 읽고 있으면 한 없는 미로를 걷게 된다. 실존주의의 본질을 매우 난해하고 불투명하게 논하면서(번역이 한 몫 했을 수도 있다), 여기에 더해 자유와 책임의 문제까지 건드려, 실존을 해야 자유로운것인지 아니면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현존재의 가능태가 실존인지 헷갈리게 한다.

 그럼으로써 (적어도 나에게는) 실존주의 보급을 목적으로 했다는 이 해설서의 취지를 무색하게 했다.

 헌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빌어먹을 헛소리를 늘어놓고 투덜거리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번역을 한 방곤이라는 역자때문이다. 글을 읽는 게 여간 곤욕이 아니었다. 비문 투성이에다가 가독성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문체는 원작을 망쳐놓은 느낌이다. 이 사람이 문학을 전공한 사람인지 심히 의아했다.

그리고 제발 전공자가 번역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실존주의 제 1 원칙인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를 이 사람은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고 써놓고 있다. 물론 다른 판본에서도 보인다. 실존과 존재의 개념적 차이를 알면 이러한 실수(?)도 피해갈 수 있지 않았을까? 뉘앙스 차이라고 보기에는 개념적 차이가 너무 크다. 

 이러한 개념적 어휘 선택은 책 전체에서 넘쳐난다. 그래서 행간을 멈추어 생각을 해 봐야 한다. 모든 페이지가 다 그모양이다. 제발 개념을 탑재하고 번역해 주길 간절히 바랄뿐이다~

번역만 제대로 됐다면 아마도 실존주의 보급을 목적으로 사르트르의 본래의 취지는 성취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고전모임 주제도서라서 읽기 했는데, 하여간 읽느라 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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