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존엄을 넘어서
B.F.Skinner / 탐구당 / 199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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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초반 미국의 저명한 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21세기는 심리학의 시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심리학은 부지불식간에 우리 곁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조직관리에서부터 소비에 이르기까지 심리학의 응용분야는 나날이 늘어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급기야 몇 년 전에는 경제학에서 심리학을 접목시킨 이론으로 사이먼과 카너먼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이기적 유전자>와 <만들어진 신>이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 책들의 저자인 리처드 도킨슨은 진화심리학의 계열에 속한 학자입니다.

더군다나 서점에 가면 교양 심리학 책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을 점유하고 있음을 볼 때 심리학의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거 같습니다.


여기 심리학의 시대를 열 개 한 1권의 책이 있습니다. <자유와 존엄을 넘어서>(탐구당, 1994; 2008년 부글북스에서 재간행)는 20세기를 충격으로 뒤흔든 3권의 저서 중 한 권이라는 평가를 받는 문제의 저작으로서, 스키너를 심리학자를 넘어 사회사상가로 격상시켜준 기념비적인 책입니다.

스키너는 자신의 실험을 바탕으로 기존의 인간관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인간은 자유롭고 존엄한 존재가 아니라 단지 환경의 조작을 통해 바꿀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주장했습니다. 스키너의 이런 생각은 수많은 작가(특히 헉슬리)와 사회과학자들의 비판과 찬사를 동시에 받았습니다. 이 한 권의 책만큼 끊임없이 논란이 되어 온 저작도 드물 것입니다.

<자유와 존엄을 넘어서>는 스키너 철학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닙니다. 책은 상당히 짜임새 있게 갖추어져 있습니다. 전반부는 자유와 존엄에 대한 일반적 가치관에 반대하는 기본적 입장을 개진(1장~3장)한 다음 행동주의 심리학의 이론들의 개념들이 이를 대체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4장~5장).

그리고 문화 재구성에 대한 주장을 펼치면서 사실과 가치를 구별짓는 오랜 철학적 관례에 반기를 듭니다. 가치판단을 행동과학의 영역에 속할 수 있는 하나의 주제(6장~8장)로 보았습니다.
후반부에서는 특히 조작적 조건화에 기반한 문화설계를 가능하게하는 지점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스키너는 마지막으로(9장) 이 문화설계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인간이 자유롭고 존엄한 존재라는 사상을 버리라고 말합니다. 인간이 조작적 조건화에 따라 강화받는 유기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일찍 깨달아 알때만이 진정한 자유를 획득할 수 있다는 부분으로 그의 철학적 대미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스키너에 따르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반복되는 것은 바로 행동의 원인을 의지나 성격, 정신 등과 같은 심리적인 내적상태에 돌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자유롭고 존엄한 존재라는 사고방식을 버리고 환경에 따라 어떻게 적응해 가는지 그 작동기제를 이해할 때만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인간의 행동이 바뀌려면 가치 교육을 강화시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바꾸는 그 강화조건을 통제할 때만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스키너의 생각은 심리학과 교육학에서 뿐만 아니라 여타 학문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의 조작적 조건화와 그의 이론을 기반으로 한 사회공학적 설계는 사회를 변혁시키고 사람들을 변화시키며 환자를 치료하는데 탁월하게 응용되고 있습니다. 스키너의 이론은 그냥 알고서 넘어가는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는 것이 각종 실험을 통해 증명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키너 사상을 인간 사회를 변화시킨 4대 혁명적 사상으로 보는 학자들이 꽤 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에서부터 시작해서 프로이트와 마르크스를 지나 마지막으로 스키너를 그 위치에 넣습니다. 스키너가 과연 그런 평가를 받을 만한 학자인지 책을 통해 확인해보는 것도 흥미로는 일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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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저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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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루키 작품을 꼭 읽어 보라고 신신 당부하는 사람이 있었다. 왠지 <상실의 시대>는 읽기 싫었고 <해변의 카프카>는 분량이 넘 많았다. 그러던 중 눈에 띈게 <어둠의 저편>이었다. 순전히 아주 멋진 하드커버 책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타이틀도 멋지다. 어둠의 저편이라니...책 타이틀 맨 위에 "세계적인 작가로 떠오른 무라카미 하루키 데뷔 25주년 기념 작품"으로 돼있다. 순전히 책 선전인 줄 알면서도 특별함을 부여했다. 내가 접하는 하루키의 첫 작품이니.. 그리고 읽기시작했다. 첫장을 편지 5시간 동안 꼼짝않고 마지막 장을 덮었다. 별 내용은 없는거 같은데 뭔가가 발목을 잡는다. '지금 거기에 있는 나'랄까..
 
먼저 눈길을 끄는게 독특한 구조적 형식이다. 오후 11:56부터 다음 날 오전 06:52사이, 약 7시간의 서로 다른 공간을 하나의 시간 축과 하나의 카메라 시선을 통해 연결시키고 있다. 중요한 것은 7시간이 밤이라는 사실. 밤은 수면 시간이다. 잠들어 있어야 할 시간에 우리의 주인공들인 아사이 마리, 아사이 에리, 다하하시 테쯔야, 시라가와, 카오루 등은 서로 얽힌 관계속에 공허한 담론을 쏟아내고 있다. 그들에게 밤은 부조리를 쏟아내는 안식처였다.
 
<어둠의 저편>은 서로 다른 공간속에서 동일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용이 전게되고 있다. 서로 다른 공간은 마리와 테쯔야가 머무는 어둠의 도시 그리고 언니 에리가 잠든 어둠의 방이 이분화 되어 교차하고 있다. 하루키는 카메라 영상기법을 도입하여 어둠의 방과 어둠의 도시를 번갈아 보여주고 있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우리는 어둠의 도시에서의 낯선 사건들은 아사히 에리가 꿈꾸는 도시라 보아도 무방하겠다. 


2. 

밤에 잠을 안자고 활보하는 인간들은 어떤 족속들일까? 직업이 없는 한량이거나 시간이 남아도는 대학생, 아니면 조폭 그도 아니면 야근하는 샐러리맨들 그리고 러브호텔을 찾는 인간 군상일 것이다. 정상에서 벗어난 사람들.(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다음 날을 위해 잠을 자야 한다.) 밤은 일탈을 부추긴다. 밤은 모든 사악함과 부조리를 어둠으로 덮는다. 나약한 인간들은 그 어둠속에서만 잠시나마 위안을 찾는다. 

<어둠의 저편>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는 나약한 인간들이다. 자기의 약점을 감추고 근근히 살아가는 사람들. 에리에게 깊은 외모적 열등감을 갖는 동생 마리, 유명한 잡지 모델인 언니와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 채 어둠속에서 방황한다. 다카하시 테쯔야, 전과자 아버지와의 불편한 관계와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음악에 침잠한다. 밤에 주로 연습하는 도중 아사히 에리를 만난다. 카오루, 전직 여자 프로레슬러. 돈에 대해 밝지 못해 궁지에 몰리게 되고 결국 러브호텔 알파빌에서 지배인을 하는 심야형 인간. 알파빌에서 중국인 소녀 접대부를 폭행하고 그녀의 모든 소지품을 빼앗아간 야누스적 인물 시라가와.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 시스템설계자 이자 이 소설에서 사건을 일으킨 유일한 장본인. 그외 아픔을 간직한 요모기와 아오모기. 이렇듯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밤이 필요한 인간들이다. 그들은 밤에 활동하고 말하며 증폭된 에너지는 폭행을 가할정도로 넘쳐난다. 하지만 아침이 밝아올수록 그들의 에너지는 고갈되고 이야기는 소원해지며 관계는 절연된다. 아침이 올수록 밤의 사건은 기억의 저편을 사라지고 추억이 된다. 아침을 맞는 인간은 밤의 추억-어제의 기억 으로 삶의 의지를 얻는다.
  

  
3.


 인간에게 있어 밤은 생의 절반이다. 꿈을 꾸건 밤새워 일을 하건 술을 마시든 밤은 밝아오는 아침과 함께 과거가 된다. 생의 절반인 밤은 순간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어둠의 저편'은 '밝음의 이편'과 함께 사라져가는 '기억의 저편'이다. 아침에 일어난 나는 모든 기억을 <어둠의 저편>에 묻어두고 온 나이다. 나는 나이되 어제와 똑같은 나는 없다. 나는 힘차게 '밝음의 이편'을 살것이고 그리고 나서 밤을 맞을 것이며 밝음의 세계의 부산물을 어둠의 저편에 쏟아낼 것이다. 나의 나약함, 증오, 좌절, 번민, 집착 등의 부조리. 어둠은 나의 부조리한 모든 것을 덮고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다시 아침이 밝아오고 밤과함께 이전의 나는 <어둠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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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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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소설의 여주인공 강진희라는 인물이 있다. 직업은 대학교수. 시간과 돈이 남아도는 인물. 소설속에서 그녀가 경제적으로 고통받는 건 도통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고 시간에 쪼들려 사느냐. 그렇지도 않다. 3명의 애인을 만나고 다닐정도로 시간이 남아돈다. 시간에 쪼들릴 때는 학생들 레포트와 시험 채점을 하는 순간 뿐이다. 전형적인 도시의 인텔리이다.

소설은 강진희라는 여자의 부조리한 내면적 불행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어떻게 보면 절절하기 까지 하다. 하지만 나는 이 여자를 위로하고 픈 마음이 조금도 없다. 그 이유는 그녀가 택한 삶의 태도 때문이다. 그녀는 계속 삶의 한 쪽 면만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단면의 우울함을 삶 전체로 확대시킨다. 우울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녀가 선택한 삶의 방식은 '가볍게 살자는 것'.

가볍게 사는 그녀에게 믿어야 할 대상은 전혀 없었다. 아니, 어떤 것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사랑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웃기는 건 사랑에 대한 그녀의 신조이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사랑은 배신으로 완성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은 허망한 말이다. 왜냐하면 배신은 믿음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믿지 않는 그녀에게 있어 배신으로 완성되는 사랑이란 완전한 모순이다. (사랑을 어떻게 정의 내리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은희경은 사랑이 자기애의 표현이라 했다.)

그녀의 삶이 멋있어 보일지는 모르지만 결론적으로 그녀의 삶은 부조리하다. 항상 3명이 애인이 그녀의 주위에 있지 않을 것이다. 40대가 오고 50대가 올것이다. 아름다움이 꺼진 때가 왔을 때 여전히 그녀 옆에서 애인이 되어줄 남자가 있다는 건 불확실 한 일이다. 불확실한 일에 하루하루를 걸며 살아가는 것은 부조리한 삶이 아닐 수 없다.

강진희는 <행복한 죽음>의 주인공 뫼르소와 닮아있다. 넘쳐나는 시간에 질식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모습. 순간의 허망함을 타게하기 위해 일시적 사랑에 목메는 모습이 비슷하다. 두 인물 모두 부조리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뫼르소는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많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그가 바라는 것은 행복한 삶이었으며 행복하게 죽는 것이 그가 꿈꾸는 것이었다. 뫼르소의 삶의 과정은 부조리했지만, 그는 '바라는 것'을 죽음으로써 얻을 수 있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자각하는 순간 뫼르소는 이미 행복한 사람이 된 것이다.

반면에 강진희는 인생의 목표가 없었다. 뫼르소와 똑같이 방황하는 삶이었지만 뫼르소처럼 인생에 있어서 바라는 바가 없었다. 행복해 지고 싶지 않았고 어떤 것을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문제의 본질로부터 도망가려고 했다. 그녀는 시간이 가는대로 기분 가는 대로 살 뿐이었다. 삶의 목표가 행복하게 죽고 싶은 사람과 아무 목표도 없이 사는 사람의 차이는 지극히 크다. 목표를 이루는 삶은 죽는 순간에도 행복할 수 있지만 목표 자체가 없는 삶은 인생의 어떤 것으로부터도 구원받을 수 없다. 끝없이 방황하다가 거꾸로 지는 인생. 어찌 안타깝지 않을 수 있을까.

허망한 강진희의 삶. 그 어떤 것도 강진희의 삶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없어보인다. 자신이 만든 굴레를 끊임없이 도는 악순환의 업을 깨뜨릴 만한 내면적 의지 같은 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술과 담배와 섹스에서 삶의 위안을 찾는다. 부조리한 삶이 아니라고 어떻게 항변할 수 있겠는가. 이런 여자는 피곤하다. 그 어떤 것에도 설득되지 않는다.

교수면 충분히 멋지게 살 수도 있다. 더군다나 3명의 애인을 쉽게 만들 수 있는 여자라면 더욱 그렇다. 시간도 넉넉하고 물질적으로도 부족함이 없는 교수가 사랑에 실패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믿지 않으려는 태도는 유아론적이다. 그녀는 남아 도는 시간에 자기가 추구하는 삶이 뭔지 충분히 성찰하지 못했다. 그랬다면 가볍게 살고 싶다는 소리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볍게 산다는 건, 전경린이 말한대로 창녀가 아니면서 결혼한 유부남을 사랑임네하고 주장하는 그런 여자의 삶을 산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가볍게 사는 게 삶의 목표인가? 이것처럼 부조리하고도 허망한게 또 있을까. 넘어져 무릎에 피를 흘려도 그녀가 전혀 안쓰러워 보이지 않다. 아무리 개인적인 삶의 원칙을 존중해주고 싶어도 강진희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에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 그녀가 갖고 있는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을 누리기 위해 모든 시간을 다 바쳐 아등바등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 것들이 무의미하다고 하는 그녀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 지 난감하다.  

뭐, 사랑에 빠져 모든 것을 내팽게치고 삶이 무의미하다고 한다면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강진희의 삶은 사랑 때문에 귀중한 것들이 무의미하다고 일갈하는 게 아니지 않는가. 그 무의미한 그것을 얻기 위해 시간을 채우는 나의 행위는 또 무엇이란 말인지...

강진희는 말한다. “나는 희망 을 갖는 게 두려워...희망을 갖는다라는 건 뭔가를 믿는다는 거야.....그 결과가 무엇이라 생각해? 삶은 믿으라고 있는 게 아니야. 배신을 가르쳐주기 위해 있는 거야."(pp259-260)
“나는 인생에 자신이 없어. 그래서 가볍게 살고 싶은 거야....희망을 가지면 난 약해져."(260p)

이 말은 푸쉬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두려워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는 말과 블로흐의 '희망의 철학'을 무안하게 한다. 희망을 갖는게 두렵고 믿음에 부정적이고 인생에 자신이 없어 가볍게 산다는 그녀에게 삶의 의미 운운하는게 우스울지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자. 그녀는 안정과 지루함이 두려운 것이다. 그녀가 원하는 건 외로움을 채워주고 긴장감 있는 섹스가 필요한 것 뿐이다.

결국 그녀는 삶의 문제에 정면으로 무딪쳐 보기보단 포기하는 쪽을 택했다. 가볍게 살고 싶다고 한게 바로 그것이다. 가볍게 사는 사람에게 자유는 없다. 용서도 없고 연민도 없다. 희망은 조롱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희망을 갖지 않는 삶은 죽은 삶이다. 죽은 삶은 더러운 땅에서 질척거릴 뿐이다. 무슨 얼어 죽을 춤인가. 진흑탕 속에서 질척거림만 있을 뿐이다.

부인도 아니고 창녀도 아닌, 독립된 여성으로서 '사랑입네'하는 여자들의 대표 강진희. 그녀의 마음은 공허하다. 그 공허함은 남자가 있어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끊임없이 남자를 찾을 것이다. 불륜이라고 해서 그녀에게 해될 건 없어 보인다. 맞다. 그녀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본질은 비켜갈 수 없다. 방정식의 풀이 과정은 복잡해보여도 해는 곧 문제의 본질을 밝혀주기 때문이다.

불륜의 방정식이라는 게 있다. 윤성희의 단편 제목이기도 하다. 항상 3이라는 숫자와 함께 있어야 안정감을 느끼는 불륜의 대명사 강진희. 그렇기에 그녀의 불륜의 방정식은 'y=3x', ' y=3x의 제곱', 'y=3x의 3승'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무래도 그녀에게 가장 어울리는 불륜의 방정식은 'y=3x의 3승'이 가장 적당할 것 같다. 극대점과 극소점을 갖는 3차방정식. 정점에 올랐다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구조. 미분을 해도 나락에 있기는 마찬가지다. 극소점인 진흑탕에서 영원히 질척거릴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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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
마치다 준 지음, 김은진 옮김 / 삼인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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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양이 독재국의 두더지 각하와 족제비 잭 장관, 그리고 다수의 고양이들이 그려가는 코믹 풍자극~ 
책은 지극히 얇고 우습게 보인다. 한 시간도 채 안돼서 읽을 수 있는 만만한 책 같다. 겉으로는 진짜 우습게 보인다. 읽으면 진짜 우습기도 하다. 빙그레 웃으면서 그림과 글 속에 담겨있는 것을 보노라면 여러 편의 정치 칼럼을 보는 느낌이다. 간결하고도 함축적인 그림들은 정말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순전히 책의 표지 그림에 반해서 이 책을 갖고 있는 지인을 졸라서 빌려 본 책이다. 두더지 각하와 고양이 그리고 족제비 잭 장관의 그림이 너무도 귀엽고도 재미나게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책에는 ‘실없는 날들의 기록’이라고 돼 있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만큼은 전혀 실없지 않다.

짧은 그림 긴 생각. 잊혀질 수 없는 에피소드가 너무 많다.


2

국가 경제가 결딴났다고 호들갑떠는 잭 장관이 내놓는 새 화폐 발행 안. 인쇄한 돈의 1/3은 국고로, 1/3은 시장에 그리고 나머지는 두더지 각하의 소유로 하자는 안은 결국 10냐옹이 100,000각하로 교환되는 결과를 빚는다. 여러 독재국가에서 해 왔던 악습의 폐혜를 너무도 간결히 표현해 주고 있다. 화폐개혁이라는 명목 하에 한밑천 챙기는 독재자들, 그리고 심한 인플레를 너무도 해학적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불안>이라는 에피소드를 보면 ‘각하의 목숨을 노리는 암살단’은 다름 아닌 도처에 있는 고양이 주민들. 갑자기 날아오는 총알에 혼비백산하는 각하의 모습이 너무도 재밌게 그려져 있다. 식탁 밑에 숨어서 잭 장관은 능청을 떤다. “괜찮습니다. 각하. 저건 우리 첩보요원입니다. 적을 교란시키기 위해 위장공작을 펼치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하는 잭에게 “멍청한 놈”이라고 핀잔주는 두더지 각하. 잭 장관을 멍청하다고 하는 각하는 그 자신이 멍청한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 에피소드에 그려진 그림이 아주 귀엽다~

<쿠데타>에서 잭 장관은 어물어물 하면서 두더지 각하에게, ·····사실은···어젯밤····쿠데타가···· “뭐야!” 놀라는 각하 앞에서 “쿠데타가 일어나는 꿈을 꾸었는데, 수면 부족인가 봅니다”로 각하를 놀리는 잭 장관. 매를 벌지만 항상 그러한 잭이 있어 재밌다.

<명화>를 보다 보면 다음과 같은 장면도 대하게 된다. “정말 감동적인 그림이군!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받친 영웅의 죽음인가. 이봐 가까이 가서 이 그림의 제목을 읽어보게.” 그림은 무수히 날아오는 총탄을 맞고 죽어가는 두더지 각하를 그리고 있다. “저····독재자에게 죽음을! 이라고 써 있는 데요.”

잭의 촌철살인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호심탐탐 각하의 동상을 없애고 자신의 동상을 멋있게 보호하거나 새로 건립하려는 잭 장관. 그런 동상이 각하의 눈에 띄지 않을 리가 없건만 잭의 그럴듯한 동상을 보고 “어이, 저건 뭐지”라고 묻는 추궁에 “네? 각하, 전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몸이 허하신가 봅니다. 헛것을 다 보시고.”라고 능청을 떤다.

무엇보다 이 책의 압권은 <시선>과 <형무소>를 표현한 두 에피소드이다. <시선>은 잭 장관과 고양이 주민들이 짜고 두더지 장관을 암살하려는 시도를 재미있게 묘사한 곳이다. 테러리스트의 대책에 대해서 연설하던 두더지 각하는 앉아 있는 고양이 시민들이 시선을 따라 그곳을 바라보지만 테러리스트로 변장한 한 고양이 시민은 그 반대쪽 무대 커튼에서 각하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다. 다시 반대편 쪽을 예정된 연기로 연기하는 두더지 시민들. 반대편에 뭐가 있는지 각하의 고개가 돌아가는 순간 반대편으로 가 있던 고양이 테러리스트는 각하를 향해 총탄을 발사하고 그제야 속은 것을 알고 두려움에 떠는 각하와 잭 장관. 그 장면을 앉아서 즐기는 우리의 고양이 시민들.

<형무소>를 시찰하는 각하. 어딜 가나 형무소는 만원인 것을 본 각하는, 죄수들이 묘하게 즐거워 보인다고 한다. 길거리에는 아무도 없다. 그 이유가 모두 체포되어 형무소에 있다는 것을 은연히 말하는 잭 장관. 사람들이 없어 쓸쓸하니 형무소에 들어가서 지내자고 제안하는 각하.  

 

 3 


귀여운 캐릭터를 등장시켜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이 책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그런 우스운 책이 아니다. 모든 에피소드들은 독재국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기가막히게 풍자하고 있다. 각하가 멍청할수록, 잭이 각하를 골탕먹일수록, 잭과 각하가 계획한 것이 항상 어긋날수록 풍자의 강도는 높아진다.

어느 독재국가도 여기있는 애피소드들의 내용을 피해가지 못할 것이다. 더군다나 독재자를 경험했던 사람들은 여기서 묘사된 각하와 장관 그리고 고양이 시민들의 모습에서 여러 나라가 경험한 독재의 악습을 의미 있게 반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바로 우리들에게 어필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두더지 각하와 같은 지도자를 지겹게도 가져왔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 정치를 유쾌하게 풍자하는 작가의 역량이 담긴 놀라운 책이다~ 본래 이런 종류의 책은 돈을 주고 사기가 무척 아깝지만(너무 빨리 봐서) 이 책만큼은 절대 아깝지 않을 것이라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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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 김훈 世設, 첫 번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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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글은 날선 검과 같아서 내 무딘 신경을 자르고도 남음이 있다.  

산문의 진수가 과연 어떤 것인지 김훈은 읽은 이로하여금 온 몸으로 느낄 수 있게끔 한다.  

거시적 담론은 거기에 맞게 묵직한 소리를 내고, 일상의 소소한 것에는 깊은 의미를 부여한다. 운동하는 물체조차 존재의 의미를 갖고 날아간다.  

그가 보는 사물은 그냥 거기에 있는 사물이 아니라 김훈에 의해 재창조된 의미있는 사물이 되고, 인간에게 깨달음을 주는 매개체가 된다.  

결코 빨리 읽을 수가 없다. 문장이 너무 아름답고 그가 하는 말이 너무도 심오하여 행간에서 멈추고 그 의미를 반추하게끔 한다.  

고종석님의 <코드훔치기>와 같이 읽었더랬다. 고종석님과 같은 글을 좋아하고 그와 같은 글을 언제나 동경해왔는데, 김훈의 글은 단번에 이런 내 생각에 파문을 던져주기 충분했다.  

매 문장하나하나 멈춰서 음미할 수밖에 없었다. 가슴 깊은 곳에 울림을 주는 글의 힘이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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