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짜르트가 살아 있다면
김미진 지음 / 민음사 / 1995년 3월
평점 :
품절


 

1.

아주~ 오래 전에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이다. 책을 읽은 지가 너무 오래 돼서 기억도 가물가물 하다. 다시 기억을 되살려 이 리뷰를 남길 수 있게 한 동력은 지하철에서 한 처자가 이 책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제 저녁에 퇴근 후 없는 약속을 만들어 코엑스로 향했다. 신림에서 지하철을 탔는데, 내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처자가 열심히 책을 읽고 있었다. 무슨 책을 그리 열심히 읽나 봤더니, 아...예전에 내가 읽었던 김미진의 <모차르트가 살아있다면>(민음사, 2000)이다.

어!? 이 오래된 책을 아직도 읽는 사람이 있다니! 넘 반가워 처자를 유심히 봤다. 엄청 집중해서 읽고 있다. 음...재밌나 보다... 맞다, 이 책은 실로 우아한 흡입력을 갖고 있는 김미진의 첫 장편소설이다.


2.

집에 와서 얼른 <모차르트가 살아 있다면>을 찾아 쭉~ 훑어 봤다. 역시 열심히 읽은 티가  팍팍 난다. 꽤 감동적으로 읽었나보다. 밑줄도 여러 개 쳐져 있고, 단상들도 여백에다가 마구 적어 놨다~ (나에게 김미진이라는 소설가를 각인 시켜 준 작품이다.)

중간에 보니 찢겨진 대학 노트에 뭘 써놨는데, 이 책에 대한 단상이다. 하도 날려 써서 무슨 내용인지 글씨를 뚫어지게 쳐다봐야 파악이 됐다. 이 리뷰는 7년 전 내 단상의 그림자다.  

 


3.

“마지막 한 문장이 이 소설을 살렸다.” 작가 조성기가 이 소설을 평한 말이다. 솔직히 이 작품을 읽기 시작한 것은 이 말을 검증해 보기 위해서였다.

개인적으로 여류소설가라는 분들의 책을 꽤 읽어왔다. 오정희, 신경숙, 김정란, 서하진, 하성란, 최윤, 공지영, 김형경 등등...

문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그녀들의 소설은 이상하게도 다 읽고 나면 막 반박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친다. 그리고 뭐랄까, 답답하다고나 할까. 뭐, 그런 느낌을 종종 받았다.

하지만 김미진의 이 소설은 그런 느낌이 전혀 없다. 시선은 생각을 유보하게 하고, 다음 장면을 위해 활자를 찾아 헤맨다.

비슷한 시기에 최윤의 <하나코는 없다>란 단편을 읽었더랬다. 이 소설의 주제는 ‘만나고 헤어짐’에 대한 ‘문학적 성찰’ 비스무리 한 거였고, 논평도 그런 쪽에 호평을 쏟아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작품으로 최윤은 그해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그냥 평범한 독자의 입장에서 똑같은 주제를 놓고 봤을 때 김미진의 작품이 최윤의 작품보다 훨씬 더 ‘만남과 헤어짐’이라는 주제를 감각적인 문체로 잘 담아낸 것 같다.

헌데, 한 작품은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하고, 한 작품은 문단에서 그리 깊은 조명을 받지 못했다. 요상했다. 김미진의 작품이 상을 받기에는 진짜 그저 그래서 그런가..

<모차르트가 살아있다면>은 ‘점’, ‘선’, ‘면’ 그리고 ‘보이지 않는 풍경’이라는 4부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각각의 부는 쌍, 지후-글라스, 윤-쿠키, 지니-류 등의 인물을 축으로 각자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단편으로 봐도 무방한 각 부의 독립된 에피소드들은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볼티모어의 어느 미술학교로 수렴한다. 그리고 4명의 주인공들은 서로 미묘하게 얽히고설키면서 그들 간의 '관계'를 드러낸다.

작품의 주제는 위에서 말했듯이 최윤의 <하나코는 없다>와 유사하다. 하지만 그 구성과 표현방식 그리고 전체적인 내용에서 사람 간의 만남과 헤어짐으로 인한 상처가 좀 더 감각적으로 다가온다.

각 부가 단편인 듯 보이지만 느슨하게 연결되어 장편소설이 되고, 끝은 마지막 문장으로 인해 처음과 연결되면서 ‘뫼뷔우스의 띠’구조를 완벽하게 구축한다.

이만한 작품이 문단에서 주목을 받지 못한 이유가 계속 궁금했더랬다. 헌데 책 말미에서 이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작가가 미국물을 너무 많이 먹어서 어휘력에 상당한 제한을 받았다나 뭐라나... 작가 조성기의 비평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봤을 때 그런 사소한 것보단 소설의 완성도를 더 주목해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이 작품은 어휘력에 제한을 받지도 않았거니와(그런 것 못 느꼈다!)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흡입력이 엄청나다. 빠른 사건 전개와 감각적 문체 그리고 수체화처럼 뿌려지는 묘사는 독자를 볼티모어의 쓸쓸한 겨울풍경에 그대로 데려다 준다.

“마지막 한 문장이 이 소설을 살렸다.”라는 조성기의 이 말은 “마지막 한 문장으로 인해 작가는 새로운 소설의 지평을 열어젖혔다” 정도로 바뀌어져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결국, 소설가의 수준을 만드는 건 평론가의 취향이라는 건가? 정말 그런 것인가?..라는 씁쓸한 생각을 막을 수 없었다.


[덧붙임]
쳇, 아무개 소설가는 김미진보다 훨씬 더 프랑스물 먹은 것을 소설 속에다가 자랑질 해 놨는데.. 평론가들은 거기에 대해서는 일언 반구도 하지 않고 왜 김미진만 걸고 넘어졌었는지 도통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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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9-04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품절작을 이렇게 멋지게 소개해 놓으시면...이건 얄미운 짓!

yamoo 2010-09-04 21:46   좋아요 0 | URL
헛~ 거의 실시간 덧글을...@_@

품절이라 안타깝고, 김미진 작가가 이 때의 포스를 발휘해 주기를 바라는 염원에서..ㅎㅎ 이후 2작품을 더 봤는데..재밌긴 하지만 좀 실망스러웠구요..
리뷰를 남긴 것은 순전히 지하철에서 봤던 그 처자때문이었습니다..ㅎ

전 이상하게 읽은 대부분의 책들이 품절이나 절판된 책이더군요..ㅎㅎ 저도 신작을 읽고 리뷰를 쓰고 싶은데...그게 잘 안되네요..

그냥 발로 쓴 리뷰를 좋게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비로그인 2010-09-05 00:15   좋아요 0 | URL
발로 쓴 리뷰가 이 정도면 손으로 쓴 리뷰 좀 보여줘봐요~
읽고 좀 까무러치게~~

yamoo 2010-09-05 22:18   좋아요 0 | URL
아...저는 항상 손으로 쓰지만 항상 끝에 가서는 발로 쓴 글이 됩니다..거참 이상하지요~~
저두 손으로 쓴 리뷰를 쓰고싶다고요~~~-ㅜ

마녀고양이 2010-09-05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마지막 한문장이 뭐예요?
난 그게 궁금해여~~
좋은 리뷰입니다!

yamoo 2010-09-05 22:20   좋아요 0 | URL
음...마지막 한 문장은 디게 평범합니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아, 쌍이라고 당신은 모르는 사람이야." 입니다..
요 문장 때문에 끝의 에피소드가 처음과 연결되고 있습니다..ㅎ

좋게 봐주셔서, 감솨~!

하루 2010-09-05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대체 이 책은 어떻게 구해서 읽어야 하는겁니까!!!!!!!

yamoo 2010-09-05 22:22   좋아요 0 | URL
음...헌책방에 가면 구하실 수 있구요..
도서관에 가도 비치되어 있습니당~~^^
제가 읽은 여류소설가들 작품 중에서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멋진 작품입니다~
일독하시길 강추드릴게욤~ㅎ

양철나무꾼 2010-09-06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제목이 멋지구리 해서 읽었었던 기억이 나는데,내용은 가물가물 하다는~
이래서 리뷰라는 게 필요한가 봅니다~^^

yamoo 2010-09-06 00:30   좋아요 0 | URL
오~~이 책 읽으셨군요! 저두 가물가물 해서 이렇게 정리를 했습니다요..ㅎㅎ

근데, 진짜 모차르트 얘긴 하나두 없더라구요..ㅋ

차좋아 2010-09-06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무님 저 이거 샀어요^^(알라딘 중고방) <은밀한 생>도 다음달 살 예정이에요 ㅎㅎㅎ
<은밀한 생> 목차를 봤는데 간심이 가더라고요. 야무진 추천입니다 ㅎㅎㅎ

yamoo 2010-09-07 22:55   좋아요 0 | URL
앗! 그렇군요~^^ 와~~ 읽고 리뷰 남겨주셔욤~~^^

은밀한 생...정말 대단한 책이에요..일반 소설이라고 볼 수 없지만...밑줄을 그을 수 밖에 없는 대단한 문장들...
저 이 책 3번 읽었는데, 넘 좋았어여~ 차좋아님두 일독하시구 얼른 리뷰 올려주세염~~

달쓰별쓰 2010-09-07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책 제목이 멋지네요!
막 읽고 싶어지는 책입니다ㅋㅋ 아마 학교 도서관에 있을 거 같네요~
한번 빌려서 읽어봐야겠어요ㅋㅋㅋ

일단 방학을 한 뒤에......- ㅠ

yamoo 2010-09-08 09:39   좋아요 0 | URL
학교 도서관에 분명히 있을 거에요~^^ 방학을 한 뒤에 시간이 여유로우시면 꼭 일독해보세여~ㅎ
음...지하철용으로도 괜찮습니다만..ㅎㅎ
 
윈터스쿨 상
이석범 지음 / 살림 / 1996년 11월
평점 :
절판


휴가 마지막 날, 이사를 하고 책장을 들여놓은 이후 처음으로 책을 정리했다. 아무렇게나 꽂혀져 있는 책을 이리저리 구색에 맞춰 배열했다. 이리저리 하도 움직여서 발바닥이 아플 정도였다.

분주히 옮기는 와중에 어딘가에서 툭 책이 떨어졌다. 어디서 떨어졌는지 모르겠지만, 책을 보니 <윈터스쿨>(살림, 1996)이다.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이다. 상상문학상 수상작이라는데, 이 문학상이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헌데, 분명히 기억하기론 당시 이 책을 무지 재밌게 읽었더랬다. 어디서 떨어졌는지는 모르지만 그냥 무심코 책을 폈다. 아, 그런데 끝까지 읽게 되었다. 책이 널부러져 있는 상태에서 그냥 죽치고 앉아 읽어 내려갔다. 눈을 들어보니 밖은 그새 어둑어둑 해 져 있었다. 

예전에 정운찬 전 총리가 설대 총장하던 시절, 학벌철폐와 설대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정 총장은 포퓰리즘이라고 매도했었다. 당시 그 발언을 듣고 정 총리가 미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었는데, 총리직을 수행했던 정운찬을 보니 그 생각이 그리 틀리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우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이 설대 전 총장이었다는 것! 

정 총리의 당시 발언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신문이 있었다. 그 신문에 연재되었던 시리즈 가운데 ‘수평사회를 만들자’라는 기획기사를 꽤 관심 있게 본 기억이 있다. 기사의 요지는 ‘설대 중심의 사회를 재편성하자’라는 것. 신문은 얼마나 많은 사회의 요직을 설대 출신들이 차지하는 지 각종 지표로 보여줬다. 기사는 대충 이랬다.

『사회의 모든 기득권 세력의 60퍼센트 이상이 설대출신들이 독차지하고 있다. 각 방송국의 핵심 자리 70%, 정치가의 70%, 법조계의 85%(특히 헌법재판소 재판관9인중 8인이 대법관14인중 12인이 설대출신), 경영 쪽의 50%이상이 바로 설대출신 이다. 그 밑으로 일명 명문 사학이 차례로 지분을 차지한다.』


이 사실은 바로 강준만 교수가 그의 책 <서울대의 나라>에서 멋지게 파해쳤던 게 아닌가? 시간이 꽤 흐른 지금도 역시 사회에서 설대 출신 비율은 변하지 않고 있다. 얼마 전 MB정부의 인사만 봐도 이 나라는 ‘서울대의 나라’임을 다시금 입증하고 있다. 

이 소설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걸작 중 걸작이다. 우리 교육의 신랄한 비판서이자 우리 사회의 변혁을 요구하는 문제작이다. 겉잡을 수없이 책에 빠져들었던 이유도 아직까지 하나도 바뀌지 않은 우리나라의 실상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수능이 100일도 안 남았다. 수많은 학원과 과외, 경시대회 그리고 각종 시험의 얽게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학생들과 그 불쌍한 학생들을 등쳐먹는 과외선생들. 부장검사가 자식의 과외를 위해 사표를 써야하는 이 나라의 현실이 소설속의 상황과 맞아 떨어져 메가톤급 재미를 선사한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찌도 이리 판에 박은 듯 똑같은지..) 

한번 손에 들면 절대 놓을 수 없는 마력. 작가 양귀자가 해야할 일을 까마득히 잊고 이 소설 읽기에 몰두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게 하는 책이다. 

이런 작품이 왜 소리 소문 없이 잊혀졌는지 모르겠다. 한국 사회의 현실을 너무도 리얼하게 소설화켜서 그런가? 아님, 예언서라서? 여튼, 이 책은 강준만 교수의 역작 <서울대의 나라>의 소설본이다. 아쉽게도 지금은 절판이니, 도서관에서라도 빌려보길 강추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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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08-24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10대였을때 읽었던 기억이~

yamoo 2010-08-25 00:1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매버릭꾸랑님..반갑습니다~^^

10대 때 읽었다면, 이 책을 읽었다면 더 재밌었을지도...전 졸업하고 읽었는데도, 무쟈게 재밌더라고요..강준만 교수의 <서울대의 나라>를 넘 재밌게 읽고 난 후 이 책을 봐서 그런지 완전 쌍둥이 같은 내용을 담고 있어서 더 재밌게 봤는지도 모릅니다. 두 책의 비판의 타겟은 완전히 동일했습니다..이런 정도의 작품이 잊혀지는 게 안타깝군요~ㅎㅎ

마녀고양이 2010-08-25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대 갈 정도의 머리도 실력도 안 되는 저는,,
소위 서울대 출신들과 일을 하면 어렵더군요.

일단 머리 회전이 빠른 것도 따라가기 힘들고,
어려운 용어 써대는 것도 따라가기 힘들고,
자신의 머리 회전에 맞추어 상대의 속도는 무시하고 진행하는 것도 힘들고,
제일 힘든 것은.... 우월 종족답게 자신의 주장이 너무나(!) 확고하다는거죠.
대화가 어려우니, 타협 및 해결도 어렵고. 솔직히 같이 대화하기 싫어서 피하게 되고.

물론 저의 편견입니다만!
그리고 우월한 분들끼리 뭉쳐서 정치와 법과 행정을 하게 되면 아마 잘 하리라 생각합니다. ㅋ

yamoo 2010-08-25 09:54   좋아요 0 | URL
저두 설대 출신 분들하고 일해봐서 압니다만...마고님이 경험하신 것과 거의 동일한 경험을 했는지라.. 그 마음 잘~압니다요 ^^

그 우월한 분들끼리 뭉쳐서 정치와 법 그리고 행정을 하니...나라 꼴이 산으로 올라가는 것 같습니다...ㅋㅋ 전 패거리 정치라는 게 딴대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같은 대학 출신이 많은 집단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현상 같습니다. 뭐, 국가의 상층부도 거의 설대 동문회는 뭐...ㅎㅎ

stella.K 2010-08-25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판된 책이네요.
이해는 하겠는데, 서울대 자체가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사실 우리나라에서나 서울대 알아주지 세계에 나가면 100위에도 들어가지 않는다잖아요. 그게 또 필리핀의 마닐라 대학이나 중국의 유수한 대학과 쨉이 안된다는군요.
그거 생각하면 우리나라도 세계에 필적할만한 적어도 100위 안에 드는 대학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중요한 건 사람의 자질의 문제겠죠. 서울대 나왔다고 모든 면에서 뛰어날거다란 이 맹신이 문제인 것 같아요. 우리가 못 먹고 못 살던 세월이 너무 길다보니...
하긴, 내가 이 책을 읽지도 않고 뭐라 말하는 건 그렇긴 하다...ㅜ
저도 서울대 사람 무조건 좋아하는 건 아니고 친하게 지낼 마음은 없는데, 서울대 사람 중 나름 인상 좋은 사람도 있더라구요.

yamoo 2010-08-25 16:13   좋아요 0 | URL
넹~ 절판된 책입니다. 그치만 아직도 도서관에서는 건재하지요^^

저는 회사다니는 동안 설대 출신들에게 하도 많이 당해서 어떤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어제는 일때문에 한 분을 만났는데, 설대 출신의 양과를 패쓰한 교수분 이었습니다. 그 분이 얼마나 겸손하고 인간미가 좋은지...태어나서 그런 분은 첨 만나봤습니다. 설대 나오신 분들 중에 그런 분도 있더군요. 정말 존경할 만한 분이었습니다.

위의 글은 뭐, 일반적인 것이구요..성급한 일반화일수도 있지만 개인적인 경험이 많이 담겨 있기에 가감해서 보시면 될 것입니다~ 스텔라님이 마지막에 말하신 '설대 사람 중 나름 인상 좋은 사람도 있더라구요'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70일간의 수학 여행 - 70일간의 여행 시리즈 6 70일간의 여행 시리즈 9
새터교육도서개발팀 엮음 / 새터 / 199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일명 교양수학책들로 분류하는 책들이 꽤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근래에 들어 알았다. 학교 다닐 때 그렇게 싫었던 수학이 학교를 졸업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관심이 생기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한 번 필이 꽂히면 물불을 안 가리고 파고드는 성격상, 교양수학책이라면 눈에 띄는 대로 많이 구해서 읽어 보았다. 첨엔 하나같이 참신했고 재밌었다. 그래서 마구마구 읽어 재꼈는지도 모른다.

헌데, 좀 보다보니 모든 교양 수학책들이 대동소이 했다. 수학이 현실생활에 이렇게 접목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부류와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문제들로 수학적 사고를 훈련시키는 부류. 딱 이 2가지 부류로 나뉜다.

후자 쪽은 좀 심하다 싶게 문제위주로 채워져 있다. 수학 공식을 외우지 않아도 풀 수 있는 문제들로 채워져 있는데, 문제 출처도 없고 그냥 문제들로만 채워져 있는 책들이 많다. 일부는 문제의 난이도도 무시한 책들도 있고 심지어 해설이 틀린 책도 허다했다.

아무래도 ‘교양 수학’, 하면 전자 쪽이다. 수학이란 학문이 왜 기초학문이며, 실생활에 얼마나 유용하고 응용이 많이 되는지 친절하게 알려주는 책들이다. 가장 대표적인 책이 박경미의 <수학 콘서트>다.

<수학 콘서트>는 교양 수학책 중에서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린 책 중 하나이다. 지금은 3편 까지 나왔는데, 누가 봐도 책이 매우 유용하게 잘 쓰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최고 강점은 수학의 원리를 일상에서 쉽게 도출해 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많이 쓰이는 계산 문제의 수학적 출처와 조형물들 속의 수학적 원리를 이야기 속에 잘 녹여 내었다.

예를 들어서 부르스 윌리스가 주연한 영화 다이하드에 나오는 눈금이 없는 물통에 물을 나누어 담는 문제는 여기저기서 많이 나온 문제인데, 이 문제의 본질이 최대공약수와 최소공배수의 문제라는 사실을 알려준 건 이 책이 처음이다.

이렇게 영화와 일상에서 활용되고 있는 수학의 사례들을 문제와 그림으로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 책은 현재 교양 수학책에서 <수학 콘서트>가 가장 돋보인다. 쉽기까지 하다.

성인 뿐만 아니라 중고등학생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데, 아마도 저자가 고등학생에서 대학 초년생을 주 독자로 생각하고 집필해서 그런 모양이다.

헌데, 우연찮게 읽기 시작한 책 중에서 <70일 간의 수학여행>(새터, 1995)이라는 책이 있다. ‘70일 간의 여행 시리즈’의 6번째 책인데, 이 시리즈의 책들은 퍼즐, 음악, 추리, 세계사 등 고교생들의 교양을 높이려는 목적에서 기획한 책들이다. 대부분 감수한 분들이 고교 선생님들이다. 이 책을 엮은 새터교육도서개발팀은 청소년들의 교양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다.

어쨌든, <70일 간의 수학 여행>은 <교실밖의 수학여행>과 유사한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그냥 문제들로만 채워져 있는 여타 문제 위주의 교양수학책과는 그 질적 수준이 현격히 다르다.

책에 수록된 문제와 분류 기준을 보면 알 수 있는데, 문제를 나눈 기준이 정말 절묘하다. 기하, 대수, 도형과 같은 수학의 일반적 영역들에 대한 문제 중에서 문제의 기원과 수학적 원리를 동시에 깨우칠 수 있는 문제들을 선별하여 싣고 있다.

그런데, 아무렇게나 문제를 싣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분류 기준을 갖고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있다. 근데, 그 분류기준이 아주 이색적이고 절묘하다.

이런 식이다. 책의 첫 장을 펼치면 차례가 나온다. 책은 10주에 독파할 수 있게끔 구성돼 있는데, 하위 목차가 아주 재밌다. 첫 주(제1장)의 하위 목차를 보면 이렇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백문이 불여일견 /까마귀 열두 소리에 하나도 좋지 않다.

10주까지 이렇게 분류돼 있는데 유유상종, 설상가상, 인과응보 등 사자성어와 속담 속에 담겨 있는 수학적 사고를 일반적인 수학 문제와 연결시켜 수학이 결코 현실과 유리된 학문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학의 역사도 덤으로 알려준다.

어떻게 이러한 내용이 가능한지 책의 내용을 소개해 보겠다. 이 책의 넷째 주 3절을 보면 소제목이 ‘바늘가는데 실이 간다’이다. 이 속담을 수학에 어떻게 담아냈을까? 집필자들은 말한다.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은 서로 따른다는 의미이다. 말하자면 어느 한쪽이 이동을 하면 다른 한쪽도 따라서 이동을 한다는 뜻이다. 항상 함께 어울려 다니는 단짝 친구들을 가리킬 때 이 표현이 자주 쓰이고 있다. 굳이 사람이 아니더라도 실과 바늘과 같은 단짝 친구들의 예를 우리는 주위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p131)

“ ‘바늘 가는데 실이 간다’는 말 자체는 단순히 단짝 친구를 가리키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필요도 있다. 우리는 때로는 ‘OO문제는 XX의 말을 따르면 무난하다’는 표현도 쓰고 있지 않은가? 수학에서도 역시 ‘문장으로 제시된 문제는 그림을 그려 활용하라’는 교훈이 있다. ‘함수는 반드시 그래프를 그려볼 것’이라는 교훈 역시 그 적절한 예일 것이다.” (p132)

다시 말해서 이 넷째 주의 3절에서는 문장으로 출제되어 무척이나 어렵게만 보이는 문제를 그림으로 명쾌하게 풀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예를 든 문제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수학 책인 이집트의 <아메스 파피루스>에 수록된 3700년 전의 문제이다.

고대의 이집트 수학책에 수록된 문제는 어떤 것이고 얼마나 어려웠을까? 이런 물음에 엮자들은 문제로 이 의구심을 잠재운다.


다음과 같은 조건이 만족되도록 100개의 빵을 5사람에게 나누어 주어라

① 각 사람의 몫이 등차수열을 이룬다.

② 많이 가진 순서대로 3사람 몫을 합하면 그 양의 1/3이, 적게 가진 2사람 몫의 합과 같아진다.

이 [예제](p137)가 바로 3700년 전의 문제이다. 쉬워보이는가? 엮자들은 “만일 문제를 풀지 못한다면 그것은 3700년 전 사람보다 못하다는 결과가 된다”는 자극적인 꼬드김으로 이 문제에 도전하게끔 한다.

헌데, 놀라운 것은 등차수열이란 개념이 3700년 전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고등학교에서 배운 ‘수열’은 최신 수학의 반영인 줄 알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완전히 잘못된 생각임을 알 수 있었다.

역시 문장으로 출제되어 어려워 보이는 문제이지만 그림으로 그려보면 의외로 쉽게 풀린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답만 아는 것이 아니라 푸는 과정이 매주 쉽고 재밌었다. 수학의 수열 공식을 몰라도 등차수열이라는 기본적인 개념을 그림으로 저절로 알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문제였다.

이렇게 책은 쉬운 고사성어나 속담 속에 담겨져 있는 기본적인 사고를 수학에 연결시키고 있다. 정말 참신하다. 어떻게 보면 좀 억지스런 측면도 있어 보이지만 사고 자체를 확장시킨다는 시각에서 보면 아주 좋은 접근방식인 것 같다.

여튼 도형과 방정식 문제뿐만 아니라 알쏭달쏭한 퀴즈 문제까지 수많은 유형의 문제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그 문제의 수학적 기원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어,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저절로 수학적 사고를 터득하게끔 돕고 있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수학콘서트>와 <교실밖의 수학여행>의 장점만을 모아 놓은 책이다. 개인적으로, 교양 수학에서 다루어야 할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개발한 팀의 노고가 페이지마다 고스란히 담겨 있다.

좋은 책인데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에 서평을 쓰게 됐다. 수학에 관심이 있거나 적성시험에 대비하고자 하는 분들, 그리고 아이의 사고력을 신장해 보고자 하는 학부모에게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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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08-10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야가 정말 두루두루 다양하시군요~
제가 좋아하는 분야와 이렇게 저렇게 겹치기도 하구요.
다시 한번 반갑습니다~^^

yamoo 2010-08-10 20:36   좋아요 0 | URL
관심있는 분야는 많아서 여기 기웃 저기 기웃거리다가...말았습니다..ㅎㅎ 그래서 깊이가 거의 없죠~ 한 우물을 계속 파야하는데, 팔 때 쯤이면 또 다른 분야가 재밌을 거 같고..뭐, 그렇게..ㅎㅎ 근데, 나무꾼님이 좋아하는 분야는 어떤 거에요?~^^

마녀고양이 2010-08-10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재미있겠는데요.. 저는 수학을 잘하지 못 했지만,
그래도 TV 오락프로에서 공공연히 수학을 왜 배우냐 하면서 희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야무님의 의견에 동의하네요~

yamoo 2010-08-10 20:38   좋아요 0 | URL
문제를 풀면서 확실히 재미는 있습니다. 재미와 논리를 추구하신다면 <논리트레이닝>이 아주~ 좋습니다. 저도 학생 때 그리고 수학을 몰랐을 때는 도대체 필요도 없는 것을 왜 배우는지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수학은 가르침이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수학을 왜 배우냐 하면서 희화하는 것은 정말 슬픈 현실 입니다~

pjy 2010-08-10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평균이하의 IQ과 평균이하의 인내심을 가지고 있어서 수학은 고전 인문학이고 그래서 고리타분하고~ 재미없고, 사실 재수없지만, 그래도 여전히 쓸모있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ㅋ
넘버스라는 미드가 생각나서 재밌습니다~

yamoo 2010-08-10 20:40   좋아요 0 | URL
앗! 넘버스라는 미드가 재밌나요?? 수학과 관계 있는 건가요?? 뭔 내용인지 좀 알려주세요. 재밌으면 얼릉 구해서 보게요~~ㅎ

pjy 2010-08-11 12:45   좋아요 0 | URL
형제는 용감했다는 드라마죠ㅋ 형은FBI고 동생은 천재?수학자인데 그런 연분으로 사건해결하는 대부분을 수학으로 진행하고 막 어려운 공식 등장하고 매트릭스비스므레 화면그래픽이 나오기도 하고,,
이를테면 은행강도의 다음목표를 그동안의 데이타를 바탕으로 수학이론으로 예측하는 막 요런~~~ 재미납니다^^

마녀고양이 2010-08-11 15:45   좋아요 0 | URL
ㅇㅇ, 넘버스 나름 잼나져.. ^^

yamoo 2010-08-11 18:11   좋아요 0 | URL
지금 막 구했습니다..ㅎㅎ 무쟈게 재밌을 거 같네욤..근데 5기까지 나와서 볼라믄 꽤 오랜 시간이 걸릴듯해요^^
 
전날의 섬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11월
평점 :
품절


 

1

찌는 듯한 폭염과 열대야 현상이 일주일 이상 지속되어 심신을 지치게 하고 있다. 활자 속에 파묻혀 잠시나마 더위를 잊는 것 말고는 정말 다른 대책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예전에 읽다가 지루해서 포기했던 몇 권의 책 중에서 골라낸 것이 움베르토 에코의 <전날의 섬>(열린책들, 2001)이다.

에코의 책들 대부분이 그렇지만 이 책 역시 초반 100여 페이지 까지는 읽는 이로 하여금 상당한 인내를 요하게 한다. 그 지루함으로 인해 뒤에 오는 지적 충격과 놀라움을 맞보지 못한 독자가 얼마였던가? 나 역시 <푸코의 추>를 읽다 포기한 경험이 있기에 이 말을 하려니 좀 머쩍은 감이 있다.

어쨌든 나는 소설을 많이 읽지 않는 편인데, 에코의 소설들은 꼭 찾아서 읽는 이유가 하나있다. 바로 남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작가 이문열은 언젠가 교양주의로 표현했다. 소설을 읽고 나면 남는 것이 있어야 한다 것! 에코의 작품들은 이것을 충족시켜주고도 남음이 있다.

그의 소설들을 읽고 나면 한없는 지식의 계보를 산책한 무한한 즐거움이 있다. 넘치는 기지와 절묘한 복선, 의외의 상황설정, 퍼즐을 맞추는 듯한 이야기들. 그리고 그 속에서 빛나는 철학적 언명들!

난 <전날의 섬>을 다시 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줄을 치면서 보았다. 무거우면서도 고소를 금치 못하게 하는 에피소드들 속에 녹아 있는 철학적 사색의 흔적을 만날 때면 줄을 치지 않고는 책장을 넘길 수가 없었다.

한편, 이 소설은 장르구분을 무색케 할 정도로 너무나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구구절절한 사랑을 전하는 연애소설이고, 심오한 철학을 쉽게 소설화한 철학소설이며, 성경을 과학적이고도 논리적으로 분석한 종교소설이기도 하다.

또한 실타래처럼 얽힌 사건 하나하나를 풀어가는 추리소설이며,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자아성찰 소설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거대한 이야기 구조를 이루고 있다.


2

에코는 중세에 대해서 주로 얘기한다. 그가 토마스 아퀴나스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중세 전문가이기도 하지만 중세를 통해 오늘을 재조명해 보고자 하는 그의 창작의도에서도 연유한다. (그래서 <포스트모던인가 새로운 중세인가>라는 에세이를 썼는지도..)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 역시 갈릴레이 시대(17세기)의 중세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 시대의 학문적 풍토를 대변하는 황당한 학설이 매우 많이 나온다. 지금의 과학적 지식과 논리적 사고로 생각하면 엉터리 같은 이론들 이지만, 그 당시는 진리였다.

과거에는 진리였던 것이 현재 쓸모없는 지식으로 폐기 처분 된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었던가? 지금 우리가 따르고 추종하는 진리와 학문이 다가올 시대에 황당한 허구로 남을지도 모른다는 입장에 선다면 상당히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된다.  

 

어쨌든 소설 속의 상황에선 그와 같은 일련의 이론들이 진지한 이론체계로 논의된다. 그런데 그 중요한 논의 중의 하나가 ‘영원’이라는 시간관념이다.

주인공 로베르토는 경선의 비밀을 찾고 있다. 경선이 무엇인가? 우리는 적어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이 단어와 그 의미를 알고 있을 것이다. 지구과학 시간에 하품을 하면서 배웠던 경도와 위도의 측정, 표준시, 그레고리력, 율리우스역, 대척점 따위의 개념들 말이다.

지학시간에 배웠던 이런 개념들은 사실 지구의 공전과 자전으로 인한 우주의 원리 속에서 변하지 않는 표준을 찾으려는 인간의 끊임없는 노력의 산물이었다. 이와 동시에 이 속에는 너와 나 그리고 현재와 미래의 엄청난 비밀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에코는 바로 이런 노력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소설의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중세의 경도 측정은 엄청나게 어려운 첨단 작업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지금은 컴퓨터와 인공위성으로 그 값을 간단히 산출해 낼 수 있다.  

 

하지만 갈릴레오 시대에는 경도 값을 계산해 내기 위해서 해와 달의 움직임, 지구의 자전과 공전, 밀물과 썰물 등 천문학을 연구해야만 알 수 있는 고도의 기술이었다.   현재 간단히 구할 수 있는 경·위도 측정의 이론적 토대는 바로 이 시대에 로베르토와 같은 사람들의 모험적 노력의 산물이었음을 깨달았다.

경선은 지구상의 표준시를 측정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토대요 출발점이다. 이 출발점이 확정되면 적어도 이 지구상에는 시간체계라는 진리의 표준이 성립된다. 서울에서, 뉴욕에서 그리고 사모아제도에서의 시간 차이를 논리적이고도 수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게끔 만드는 '영원한' 진리체계를 도출하게 된다.  그렇기에 경선의 비밀을 밝히는 것은 무엇이 진리의 기준인가를 찾는 시도였다.  



3

시간 속에서 ‘나란 무엇인가’를 되돌아보는 자전적 성찰의 소설인 <전날의 섬>은 책을 끝까지 다 읽은 사람만이 이 절묘한 제목의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주인공 로베르토는 사모아 제도 근처의 좌초된 배 다프네 선상에서 한 미지의 섬을 바라보고 있다. 그 배와 섬 사이에는 날짜변경선이 가로지른다. 그러므로 로베르토 앞에 있는 동시간대의 그 섬은 날짜변경선에 의해 어제의 섬이 된다.

어제란 무엇인가? 과거다. 그런데 그 다프네 선상에서 섬을 보고 생각의 나래를 펴는 로페르토의 의식은 이미 그 섬에 도착해 있다. 즉, 날짜 변경선을 두고 대치하는 섬과 다프네 선상은 현재와 과거가 동시에 존재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로베르토는 전날의 섬을 바라보면서 그의 지난 날들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다프네 선상에서 펼쳐진 그의 생각들은 전날의 섬과 함께 항상 자기의 시선 앞에 있게 된다.

너무도 절묘하다. 생각하고 인식하는 로베르토의 존재는 섬과 함께 전날이 되고, 다프네에 묶인 육체는 현재에 있다. 동일한 공간에 날짜변경선을 사이에 두고 시간의 의미와 무게가 어떤 것인지 로베르토를 통해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에코의 이 작품은 우리에게 시간의 관념과 그 속에서의 인간사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오늘의 나의 위치를 생각해 보게 한다.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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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08-09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이윤기님이 옮기면서 말이 많았었죠~
솔직히 제겐 너무 어려운 책이었는데,이렇게 일목요연한 리뷰까지~
존경의 표시루다...추천 한방~^^

yamoo 2010-08-10 09:47   좋아요 0 | URL
초판도 갖고 있는데요..번역에 대해서 말들이 만긴 많았죠..그런데, 에코의 소설이 번역된게 어딘데요..에코의 소설들이 이윤기님에 의해 번역된 다음 새물결에서 조형준님의 번역으로 에코의 에세이들이 나왔습니다. 당시 번역을 해준 분들에게 감사해야죠~ 번역의 질을 따질 상황이 못됐다는..ㅎ 에코가 얼마나 현란하게 문장을 쓰는지 전문번역가들도 혀를 내두르는 상황에서 이윤기님은 꾸준히 에코의 소설들을 번역해 주셨죠~ 정말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날의 섬은 푸코의 추보단 읽기 괜찮습니다. 개인적으로 에코의 소설들 중에서 가장 재밌게 본 작품이에요~ 초반 100여 페이지만 어렵고 그 다음부터는 줄거리만 따라가도 무척 재밌게 읽을 수 있습니다..누구에게나 에코의 책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만..그래두 한 번 다시 도전해 보심이...저도 에코의 책은 읽다 말다 읽다 말다 하다가 완독하곤 했답니다^^

양철나무꾼 2010-08-10 17:47   좋아요 0 | URL
그쵸~^^
하지만,'로아나'의 '이세욱'님을 보면 세련된 변명이지 싶습니다.

이윤기님 심지어'비밀의 계절'이라는 책 역자서문에서 드러내 놓고,버벅거렸다 실토하시더군요~
어쨌든,감사해야할 필요는 있는 거겠죠~^^

yamoo 2010-08-10 20:46   좋아요 0 | URL
이세욱님 번역이 세련되긴 했지만, 그래두 어려운 부분은 좀 건너띠고 했다는 군요(저는 잘 모르는데 에코 전공하신 분이 그래서 ㅎㅎ)..오역할 바에야 차라리 건너끼고 번역하는 것이 훨씬 나은 것 같습니다. 이세욱님이 번역하기 훨씬 전에 에코의 작품을 번역하신 이윤기님의 노력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대단한 거 같습니다. 지금이야 이윤기님 번역이 있어 나중에 번역하신 분들이 뭐가 잘본됐는지 번역본이 있어 훨씬 쉽죠. 난해한 책은 처음 번역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거..슘페터의 주저인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도 아직 30년 넘게 재번역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에코의 저서는 어땠을지 짐작을 해 봅니다. 전 이윤기님이 너무도 고맙습니다.

따라쟁이 2010-08-11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언젠가 이야기 했지만, 최근 에코님은 저의 읽기에 있어 최고의 과제를 떠안긴채로 유유히 떠났습니다. 백페이지.. 그것이 그리도 더디답니까? ㅠㅠ(갑자기 막 눈물이 ...)

yamoo 2010-08-11 18:12   좋아요 0 | URL
잡으셔요~~따라쟁이님, 잡으셔야 해요~~ 에코님을 그렇게 떠나보내시면 아니돼옵니다~~~ㅎㅎ
 
그 사람의 첫사랑
배수아 지음 / 생각의나무 / 1999년 12월
평점 :
절판



도대체 그녀는 왜  항상 소설의 결말을 그따위로 마무리 하는 걸까? 도저히 모르겠다. 실컷 흥미진진하게 읽고 나서도 이 작가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종잡을 수가 없다는 말씀~. 제발, 해설이라도 달아주지. 작가후기는 왜 또 그렇게 이상한 암호문처럼 써 놓았는지...

소설집 <그 사람의 첫사랑>(생각의 나무, 1999)은 내가 배수아의 책을 처음으로 사서 본 책이기 때문에 배수아의 그 어떤 저서보다도 애착이 가는 책이다. 첫 배수아 소설집을 접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었다. 이렇게 쓰니 이 작가는 절대로 이상문학상 대상은 못탈거라고.

그래, 배수아는 자기 스타일을 버리지 않는 한 절대 이상문학상 대상은 수상할 수 없을 것 같다. (지금까지 못탔다!) 이상문학상 수상집에 간간히 우수 소설작으로 선정된 몇 작품을 접한 이후 그녀의 소설들을 찾게 되었다. 우연히 들른 헌책방에서 냉큼 입수하게 되었다.

그녀의 첫 소설집이, 내가 대하는 그녀의 첫 번째 책이라는 것에 대해 묘한 기대감을 갖게 했다. 더군다나 <그 사람의 첫사랑>에는 내가 전에 접했던 단편 작품이 두 개나 수록되어 있어 너무 반가 왔다.

그러나 역시, 배수아의 글들은 이해할 수가 없다. 특히 수상록이라 할 수 있는 <에세이스트의 책상>은 더더욱 그렇다. (이 책 읽고 난 다음 구입한 책인데 정말 최악이었다~) 제발 독자도 생각해 주는 센스를 발휘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아~ 근데, 이 여자는 그런 배려를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이 책의 말미에 실린 작가 후기에서 횡설수설(적어도 내가 보기에)하다가 마지막에 그래도 이런 글을 계속 쓰겠다는 말을 남긴 걸로 봐서는....

일단 수록된 작품만 거들떠보자.

병든 애인, 은둔하는 북의 사람, 허무의 도시, 그 사람의 첫사랑, 200호실 국장, 와이셔츠, 징계위원회, 다큐채널 수요일 자정, 차가운 별의 언덕, 개종 등 10편의 단편 소설을 싣고 있다.

이중에서 ‘은둔하는 북의 사람’과 ‘200호실 국장’ 그리고 ‘징계위원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긴장감 있는 플롯에 뭔가 있는 듯한, 헌데 끝은 썰렁한...전형적인 배수아식 글쓰기가 물씬 풍기는 작품들이다.

한편 ‘다큐채널’은 내가 배수아 소설을 읽은 것 중 가장 실망스런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짜증 만빵~ 전체적인 색채는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와 최인호의 <깊고 푸른 밤>에 가깝다. 하지만 매우 무미건조하다. 뭘 말하려고 하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는 작품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배수아의 소설들은 헌책방에서 잘 구할 수가 없다. 그만큼 매니아층이 두터운 듯하다. 이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우연히 ‘TV 책을 말하다’ 후속편인 ‘책 읽는 밤’에서 배수아 작가를 볼 수 있었는데, 내가 '다큐채널'을 읽으면서 느낀 ‘짜증 만빵’의 글쓰기에 매료된 고정 팬이 꽤 된다는 사실에 좀 놀랐다. 우째, 그런 일이 있을까 하고 계속 생각했다~

[덧붙임]
배수아 작가는 안티 팬을 꽤 많이 거느린 작가다. 배수아 작가의 안티 팬들은 그녀가 글을 딴나라 언어로 쓴다는 사실을 타박한다. 사실 전통적인 소설가와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글쓰기인데 이게 소설 같지 않다고 많이 공격을 받는 듯하다. (그도 그럴것이 배수아 작가는 그 흔한 습작기간을 하나도 안 거치고 처음 그냥 내리 쓴 글이 작품으로 당선되어 소설가가 돼었다고 한다~)
배수아는 '책 읽는 밤' 프로그램에 나와서 자신의 작품은 새로운 글쓰기이기에, 좀 그렇게 봐달라고 하는데, 글쎄다~ 라는 생각이다. 사실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는 두 번째로 본 배수아의 장편소설 작품인데, 개인적으로 꽤 재밌게 봤다. 통통 튀는 생각과 쿨한 주인공이 꽤 매력적이었는데, 이 작가는 이거 빼고는 장점으로 내세울만한 것이 없어 보인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인데, 좀 보편적으로 작품을 써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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