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실 비치에서
이언 매큐언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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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최고의 로맨스 소설이라는 찬사를 들어 해서 펼쳐 보게 되었다. 광고 카피였다면 그냥 넘어갔겠지만, 지인이 어느 온라인 북카페의 리뷰를 보고, 일독 한 후 동감한다며 권해줘서 내키지 않는 책을 받아들 수밖에 없었다.

<체실 비치에서>라는 이상한 제목의 소설. 작가 이름을 보니 이언 매큐언이다. 아하~ 이 작가는 이름 하나로도 기본은 한다. 최소한 시간 낭비는 아니겠거니 하는 어느 정도의 마지노선이 있었기에 읽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뻔 한 스토리에 별로 맛깔스럽지 않은 번역투의 문장이 소설을 읽는 맛을 삭감시켰지만 추천해준 분의 얼굴을 보아서 꾸역꾸역 주말을 할애하여 완독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언 매큐언 작가의 책은 항상 마지막이 좋았다.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감동을 이미 경험 해 봤기에 끝까지 책을 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물론 추천한 분이 소설의 끝을 보고 책을 다시 보게 되었다는 말에 현혹된 것도 부인하지 않겠다) 헌데 <이노센트>와 <속죄> 등 여타소설들에서 마지막에 제대로 홈런을 쳤던 이언의 대미가 이 작품에서는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여기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있다. 소도시 출신의 역사학도 에드워드와 대도시 상류층의 바이얼리니스트 플로렌스. 남자는 다소 과격한 면도 있지만 대체로 단순하면서도 심플한 성격의 소유자이고, 여자는 우아하지만 다소 까다로운 성격의 전형적인 영국 미인이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너무도 이질적인 이 두 사람은 열정에 이끌려 서로에게 반한다. 약간의 스킨쉽과 더불어 이들의 감정은 무르익고, 서로가 필요한 존재로 느낀다고 생각한 순간에 결혼에 이른다.

신혼 첫날 밤. 서로의 불협화음을 예의와 배려로 덮어왔던 두 사람은 드디어 문제의 본질에 직면한다. 당연히 여자의 몸을 원했던 남편과 그것을 거부한 아내는 체실 비치의 한 호텔에서 말다툼 끝에 서로에 대한 불협화음의 이면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너무 예의 발랐고, 너무 경직됐고, 너무 소심했고, 까치발을 든 채 서로의 주위를 빙빙 돌며 중얼거리고 속삭이고 부탁하고 동의 했다. 그들은 서로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고 그럴 수도 없었다. 침묵에 가까운, 사교적인 배려라는 담요가 그들을 결속하는 만큼이나 그들의 차이를 덮어버리고 그들의 눈을 멀게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제나저제나 의견 차이가 날까봐 두려워했다.” (pp174~175)

드디어, 신혼 여행지인 세실 비치에서 그들은 결혼과 앞으로의 삶에서 아주 중요한 의견 차이에 직면하게 된다. 남편을 너무도 사랑하지만 섹스는 자기에게 필요 없는 것이고, 생각조차 하기 싫어하는 아내와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섹스가 꼭 필요한 남편의 입장은 올곧게 평행선을 달린다.

이 갈등 상황에서 아내는 이해할 수 없어 하는 남편에게 해결책을 제시한다. “솔직하게 말할게. (섹스 없이) 난 단지 당신 곁에 있으면서 당신을 돌보고 당신과 함께 행복해하고, 사중주단과 일하고 언젠가 위그모어 홀에서 모차르트처럼 아름다운 곡을 그런 곡을 당신을 위해 연주하고 싶을 뿐이야.” (p184)

자조 섞인 푸념이었지만 플로렌스의 말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하지만 세실 비치에서 갓 남편이 된 에드워드는 이 제안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고, 마지못해 떠나는 그녀를 잡지 않았다. 결국 그들의 사랑은 거기서 끝났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이 해안에서의 사건이 평생의 회한으로 남게 된다.

소설의 줄거리는 너무도 진부하고 간단하다. 소설이 여기서 그치면 완전히 3류 통속 소설로 전락하겠지만, 매큐언은 나름대로 작품성을 담보하고자 결혼에 이르게 된 각 개인사를 지루하게 들춰나간다.

성장 과정과 가족 관계 그리고 가족의 분위기에서부터 시작해서 성격과 취미 생활 등 두 사람이 만나기까지 그 남자의 역사와 그 여자의 역사를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개인사를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읊은 이유가 서로 전혀 다른 사람이 만났다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서다.

이 작품에서 주제의 진정성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이 지루한 서사가 필요하긴 했다. 왜냐하면 사랑에 빠진 남녀는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결코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그들에게 불편한 감정과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묻는 것은 일종의 무례함으로 치부되기에.

결국 신혼여행에서 첫날밤의 이 사소하지만 절대 간과할 수 없었던 사건은 두 사람이 전혀 다른 사람이었고 눈의 콩깍지가 벗겨진 이후 서로를 가식 없이 보고 직면해야 할 최초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전혀 성숙하지 않았던 두 사람은 역시 성숙하지 않은 대화 끝에, 마음에도 없는 말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돌이킬 수 없는 서로의 길을 가게 된다.

작품의 후반부는 주인공 에드워드가 플로렌스를 이해하지 못하고 알량한 자존심에 그녀를 떠나보낸 것을 후회하는 것으로 점철돼 있다. 노년의 에드워드에게 체실 비치 해안에서의 사건은 중대한 인생의 분기점 이었다.

체실 비치에서 에드워드가 잃은 것은 너무도 컸다. 그의 회한과 그 이후의 생을 보면 그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그의 사랑은 체실 비치 해안에서 끝났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노년이 되어서도 '체실 비치에서 그녀를 잡을 수도 있었고 다시 새로운 인생을 살 수도 있었을 거'라는 자조 섞인 후회를 한다. 그리고 끝이다.

이언 매큐언의 결말 치고는 아주 밋밋했다. 이 소설의 주제는 무엇일까? ‘단 한번 사랑하고 평생을 그리워한 젊은 연인들의 슬픈 운명’이라고? 전혀 그렇지 않다. 화성 남과 금성 여처럼 완전히 다른 두 존재가 이해의 커뮤니케이션에 성공하지 않는 이상 사랑과 결혼은 요원하다는 거. 다시 말해서, 사랑이라는 눈의 콩깍지가 벗겨진 후에도 계속 사랑을 키워가기 위해서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소설은 일단 주제를 보편적으로 전달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작품 속에서 에드워드와 플로렌스로 대변되는 어설픈 사랑의 진행을 보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내용이다. 모든 사랑의 실패와 이혼은 본질적으로 체실 비치에서의 사건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감동적이지 않다. 진부한 주제를 특별하게 하게 하는 ‘생의 근원적 통찰’이 거의 없다. 적어도 마지막 장에서 이것을 기대했는데, 너무 미약했다. 리뷰를 쓴 사람이 무엇을 보고 최고의 로맨스 소설이라 썼는지 심히 의아하다. 이 작품은 사랑을 하는 남과 여에 대한 그 어떤 참신한 통찰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덧붙임]

소설을 읽고 많은 생각을 했더랬다. 섹스없는 사랑은 공허하고, 사랑 없는 섹스는 맹목이라는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특히나 다음과 같은 부분을 만났을 때는 이렇게 묻고 싶다. 만약 아래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책을 읽은 당신은 어떻게 했을 것인가?

신혼 첫날 저녁 신부인 플로렌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당신을 사랑해. 아주 많이. 그리고 나도 당신이 날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어. 그건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어. 당신이랑 함께 있는 게 좋고, 내 평생을 당신과 함께 보내고 싶어. … 하지만 이 모든 사랑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엉망진창이야. 모든 게 내 잘못이야. 내가 심하게 불감증이라는 것. 섹스에 있어서는 완전히 구제불능이라는 거야. 섹스를 잘하지 못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 내겐 섹스가 필요 없는 것 같아. 섹스는 나의 일부가 아니야. 난 그게 싫고, 또 생각조차 하기 싫어. … 난 그게 바뀔 거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어. 그리고 지금 내가 이 말을 하지 않으면 … 당신이나 나한테 많은 불행을 가져다 줄 거야.” (pp181~182)

“솔직하게 말할게. (섹스 없이 평생) 난 단지 당신 곁에 있으면서 당신을 돌보고 당신과 함께 행복해하고, 사중주단과 일하고 언젠가 위그모어 홀에서 모차르트처럼 아름다운 곡을 그런 곡을 당신을 위해 연주하고 싶을 뿐이야.”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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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메를 읽는 7가지 방법 - Pop Culture 21 - 1
박정배 외 지음 / 미컴 / 198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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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진짜 아니메 초보자에게 강추하는 책. 그리고 무엇을 보아야 할 지 망설이거나 이전에 보았던 작품들을 총정리하여 나름대로 아니메에 대한 인식을 체계화하고 싶은 분들에게 적격인 책이다.  

키워드, 역사,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 스튜디오, 엔딩 타이틀 등 7가지 주제로 아니메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다.  

특히 제3장 작가로 읽는 아니메와 제5장 작품으로 읽는 아니메가 이 책의 압권. 3장인 작가로 읽는 아니메는 데츠카 오사무, 오토모 가츠히로, 토미노 요시유키, 오시이 마모루, 안노 히데야키, 가와지리 요시아키, 데자키 오사무, 마츠모토 레이지, 다카하타 이사오, 야마가 히로유키, 다카하시 료스케, 가와모리 쇼지, 기타주메 히로유키 등 일본 주요 감독들에 대한 작품세계와 그들의 필모그라피를 소개해주고 있어 아니메 정보에 굶주린 분들에게 환영받을만 하다는 게 주관적인 평가. 

정치학과 영문과를 전공한 저자들이 애니에 대한 열정으로 열매 맺은 책 답게 그 열정을 책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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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네 1
전경린 지음 / 생각의나무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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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린의 소설을 읽으면 걷잡을 수 없는 우울에 빠지곤 한다. 정말 죽어버리고 싶은 충동...그리고 그녀가 소설 속에서 써 갈긴 주관적 생각에 ‘아니야~’를 수십 번 외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여전히 행간에 집중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뭐라고 단정지울 수 없는 마력이 전경린의 글에는 있는 것 같다.

<내 생에 단 하루뿐일 특별한 날> <열정의 습관> 단편 <환과 멸> 등을 읽고 전경린의 무시무시한 마력을 이미 경험한 바 있어, 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그녀의 작품을 예의 주시하게 된다. 새 번째 작품으로 <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네>를 펴 들은 거 역시 전경린의 몽환적 마력에 다시 한 번 빠지고 싶어서였다.  

정말 그녀는 바람대로 나를 깊은 우울의 수렁으로 밀어 넣었다. 주말 모두를 전경린의 마력에 홀려있었다. 책장을 덮고 전경린의 그 처절한 존재의 글쓰기에 존경을 표했다. 그녀가 작가 후기에 “나는 내 글에 육체가 느껴지기를 바라며 글을 쓴다”고 했는데, 그리고 자기 소설에 ‘육체성을 완벽히 부여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자조석인 어조로 토로했는데, 나에게 전경린의 모든 소설들은 하나의 완벽한 육체를 입고 다가온다.

언제나 한 문장 한 문장이 얼마나 어렵게 잉태 되었는지 느낄 수 있고 그녀가 얼마나 ‘행복한 불행’(그녀 자신의 표현이다)의 시간을 살아왔는지 그녀의 글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더 우울한지 모르겠다.  (솔직히 전경린의 글은 작가 유미리와 매우 비슷하다.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유아기의 결핍이 소설속에 형상화되어 있어 그녀의 행복한 불행을 예감하게 한다.)

25살의 김은령을 통해 전경린이 얘기하고자 하는 것들...그것은 전작들의 여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어떤 잘못된 굴레에 저항하는 일종의 일탈이다. 난 이것을 저항이라 이름 하지 않고 일탈로 명명하고 싶다. 왜냐면 저항이라 하기에 작품들 속에서 보여지는 주인공들의 행태는 퇴폐에 가깝기 때문이다.

<열정의 습관>의 미홍이 그랬고 <내 생에 꼭 하나뿐일 특별한 날>의 미흔이 그랬다. <유리로 만든 배>의 주인공 은령처럼 그녀 작품들의 주인공들은 불합리한 제도에 반기를 든 자유를 꿈꾸지만 그 자유를 일탈에 맡겨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은령이 경멸하던 안락을 버리고나서 선택한 이진의 안락한 품은 본질적으론 같은 것이다. 그런데 전경린은 그걸 애써 양분하고 있다. 이것은 모순 아닐까? 모순이 아니라면 은령은 이진에게  섹스의 대가로 돈을 받지 말아야 했다. 결혼을 매개로 돈을 받고 남편을 위해 봉사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이것을 자유라고 포장하기에는 너무도 어설프다.

이 소설의 여 주인공 김은령은 두 남자, 27세의 문유경과 40이 넘은 이진 사이를 오가는 양다리 연애를 하고 있다. 그 둘이 줄 수 있는 것을 한 남자는 결핍하고 있기에, 그녀는 그 둘을 오가는 위험한 외줄을 타는 게 이 소설의 주 내용이다. 불륜은 아니지만 전형적인 삼각관계. 하지만 이 소설을 단순한 로맨스소설로 분류하기엔 하기엔 꺼림칙한 뭔가가 발목을 잡는다. 

이 작품은 결코 말랑한 연애 소설이 아니다.  ‘사랑에 관한 전경린식의 고찰’이라 해두고 싶은 심정이다. 그녀는 말한다. ‘사랑은 없다’라고. 그래서 유경은 끊임없이 은령에게 “나를 사랑하냐?”라고 묻는다. 은령은 그렇다고 대답하고 바로 유경에게 “자기를 사랑하냐”고 되묻는다. 하지만 유경은 항상 거기에 대한 답이 없다.

은령은 이진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가 주는 안락과 쾌락이 그녀가 그에게서 원하는 전부다. 그녀는 이진에게 ‘자기를 사랑하냐’고 묻지만 대답은 유경이 은령에게 하는 반응과 대동소이하다. 이것이 은령이 두 사람의 외줄을 타다가 떨어지는 본질이자 전경린이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사랑의 실체다.

“...그들의 진실이 어디에 있든 그 시간 동안 나는 사랑에 빠져 있었다. 그토록 이상한 관계속에서 사랑을 했다고 주장하다니, 사람들은 나를 무도덕하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사랑이 전에 없었다고 해서, 상처를 주고 아무런 결과도 맺지 못했다고 해서 나의 사랑이 의심받을 수는 없다. 실제로는 이렇게 불쾌하고 의혹에 가득 찬 숱한 사랑들이 침묵속으로 가라않는 다는 것을 나는 안다.” (2권 p195)

백번 이 말에 동감한다. 하지만 은령이 보여준 이진과의 관계는 사랑이라 할 수 없다. 돈을 받고 갖는 관계라면 그것이 어떤 감정이든 난 비난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이 작품의 여 주인공은 명백히 돈을 받는 안락한 사랑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사랑에 있어 자유의 쟁취는 그런 것과는 다른 것이다. 자유는 타협과는 양립할 수 없기에...

전경린은 작가 후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이 소설은 스물다섯 살을 정면으로 다룬 것은 아니다. 앞으론 어떻게 될지 몰라도 나는 소설이 일반화되는 것을 늘 피해 왔다. 상식 내에서의, 체제 내에 편승하면서 동시에 냉소하거나 갈등을 빚거나 비판적인 주인공들에게는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비주류적 주인공의 아웃사이드적인 궤적을 통해 저항하면서, 일탈하면서, 무심한 척하면서, 갈등의 배경을 심리적으로 드러내는 방법을 나는 선호해 왔다.”

이 말을 되새김질 해 보면서, 은령을 대리해 독특한 사랑관을 설파하는 작가에 대해 막연하게나마 그려 본다. 주류에 편승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로서 그 울분을 저항과 일탈 그리고 무심한 척 하는 문체로 삭이는 모습에서 마르크스가 떠오른다. 마르크스가  대영박물관에 틀어박혀 체제에 대한 울분을 논리적이고 실체적인 <자본론>에 쏟아 부었던 것처럼.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전경린이 쇼펜하우어를 읽었다면 글이 더 철학적으로 풍부해졌을 거라는 점이다. 소설의 한축은 욕망을 말하고 있다.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생에 대한 의지가 삶을 결정짓는다고 했다. 욕망은 생의 의지로부터 생기고 쇼펜하우어의 철학의 출발점이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전경린이 말하고자 했던 생의 욕망....이진을 통해서 말하려 했던 그것을 좀 더 소설 속에 형상화 시키지 못했던 게 못내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었다.

전경린의 소설들은 항상 불편하다. 그리고 나에게 심한 우울감과 상실감을 안겨 준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더욱더 전경린의 글을 찾는 거 같다. 평범한 주제도 전경린이 쓰면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 전혀 새로울 게 없는 이 삼각관계의 사랑 타령이 이렇게 깊은 상실감으로 다가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전경린의 ‘글의 힘’이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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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 조선왕조실록
이성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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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에 관계된 책은 꽤 많이 읽었다. 국사교과서에서부터 시작해서 한영우님의 <다시찾는 우리역사>까지. 수십권에 이른다. 그 중에는 한권으로 읽는 왕조실록 씨리즈(몇년전까지 베스트 셀러였다)가 기억에 남는다. 한영우 교수의 다.찾.사는 매우 심각하게 읽었던거 같고 재일사학자 강재언님이 쓰신 <한국 근대사>는 전율하면서 읽은 기억이 있다. <예날에도 일요일이 있었나요>와 같이 현직 고교 교사가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은 '몰랐던 역사'적 지식을 많이 알 수 있게 해 준 책도 있었다.(솔직히 이 책이 가장 한국사 지식을 넓히는데 일조 했다)

<엽기, 조선왕조실록>은 <옛날에도 일요일이 있었나요>와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을 합쳐놓고거기다가 개그드라마를 썪어놓은 퓨전역사서라 할 만 했다. 하도 웃어서 도서관에서 읽기가 민망할 정도. 그도 그럴것이 계속 키득거리니 신경안쓸레야 안쓸수 없었을 것이다. (역사책이 이렇게 웃기고 재미있다니...)

 물소 뿔로 계속 우릴 등쳐 먹겠다는 명나라. 왜 조선시대 물소를 수입해야 했는지...왜 조선조 200년 동안 대명회전의 한 줄을 고치지 못해 그렇게 안달볶달 했는지...왜 궁궐에는 화장실이 없는지.. 왜 신문고는 아무나 울리지 못하는지...조선왕조사상 가장 긴 재위기간에 있었던 왕은 누군지...그 왕치세하에 왜 관료들은 죽을 맞이었는지..국모는 어떻게 간택되는지...숙종이 절대 여자에 휘둘린 왕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 엽기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낄낄거리는 웃음과 함께.

 하지만 엽기로 일관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 나름대로 정사인 실록을 꼼꼼히 확인하고 여러 문헌들을 확인해 개그드라마로 상황을 재현해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이 점이 이 책의 최대 강점이자 저자의 노력의 흔적이다. 친절하게도 교과서적인 격식을 차린 서술은 매 애피소드가 끝나는 절에 한 두 페이지씩 할당하여 결코 부실한 역사책이 아님을 입증하고 있다.(끝에 실린 참고문헌의 수를 봐도 저자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전혀 엽기적이지 않다.)

 이 책의 엄연한 제목이 조선왕조실록이다. 그래서 웃기지만 결코 야사가 아니란점을 부각하고 싶다. 고교생들은 국사교과서와 같이 읽으면 더욱 풍부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 좋고 일반인들은 재미와 교양의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어 좋다. 어디가서 여기 실린 이야기만 풀어놓아도 청중의 이목을 쉽게 잡을 수 있을것이다.  

한마디로 여기 수록된 이야기를 하면 어디가서 빠지지 않는다. 책이 그런식으로 돼 있으니...'너 그거 알어'하면서 얘기하면..백발백중이다. (나도 읽고 써먹는 중이다. ㅎㅎ) 생전 첨 듣는 다는 반응과 함께 모두가 재미있어한다. 꿩 먹고 알 먹는 독서가 아니겠는가.. 아직 재미난 이 세계를 경험하지 못한 여러 분들에게 강추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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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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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의 소설들을 읽고서, 그리고 대형 서점 가판대의 그 많은 작품들을 구경하면서 그녀가 왜 많이 읽히는지 좀 의아했다. 작품들이 그저 그런데...

한 번 더 보고 판단하기 위해 가장 대표작 중 하나라고 하는 <당신의 주말은 몇 개 입니까>를 펴들었다.

엇! 소설인줄 알았는데 신변잡기적 에세이다. 그것도 신혼 보고서쯤 되는. 서간체 형식의 글들의 모음. ‘나 지금 결혼 3년차 주부인데 행복하다’는 다소 진부한 에세이.

일하는 여성의 고뇌나 자신감 또는 자기예찬~, 이런 거 전혀 없는, 단지 한 여자로서의 ‘행복감’이란 것을 작가 나름대로 표출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그녀의 삶은 쿨하다는 느낌. 전형적인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본 신혼의 삶이다.

뭐랄까...괜히 읽었다는 느낌? 읽다가 중간에 그만둬도 아쉬울 거 없는 그런 글.

아직까지 그녀의 작품들 중에서 <호텔 선인장>을 능가하는 것은 없는 듯. 아직까지는~

뭣에 대한 에세이인지 타이틀만 들여다보자. 공원/ 비/ 외간여자/ 월요일/ 밥/ 색/ 풍경/ 노래/ 벚꽃 드라이브와 설날/ 혼자만의 시간/ 자동판매기의 캔 수프/ 방랑자였던 시절/ 고양이/ 어리광에 대해서/ 킵 레포트

그저 그런 글들인데, 다음의 글을 보는 순간 책값은 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우리는 같은 장소에서 전혀 다른 풍경을 보고 있다. 생각해보면 다른 풍경이기에 멋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났을 때, 서로가 지니고 있는 다른 풍경에 끌리는 것이다. 그때까지 혼자서 쌓아올린 풍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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