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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알라딘 인기책 1위는 가네시로 가즈키의 <레볼루션 No.0>이다. 하지만 몇 주 전만하더라도 장정일의 신간인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2>이 계속 1위였다. 지금은 순위가 계속 밀리고 있는 중인데, 장정일 책을 사기 위해 둘러보던 중 빵가게재습격님이 올리신 리뷰에 시선이 멈춰졌다.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의 p168 인용 부분이다.  

글쓰기의 가짓수는 무척 많고, 교양이란 매우 폭이 넓은 세계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글쓰기 하면 곧바로 시나 소설을 떠올리고, 그걸 읽는 게 교양의 다인 양 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양한 글쓰기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특정 장르의 문학이 글쓰기의 피라미드 가장 높은 꼭대기에 좌정하고 있으면서 그 외의 글쓰기를 억압하는 사회, 고작 시집이나 소설 몇 권을 읽는 것으로 교양인 행세가 가능한 나라는 가망이 없다.  BBK같은 사건이 터졌을 때 제대로 된 사회에서라면, 거의 반년 안에 스무 권이 넘는 논픽션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 그 가운데 어느 한 종이 100만부 이상 팔리고 그 사건이 시중의 화제가 되고 칼럼에 오르내리는 사회가 <엄마를 부탁해> 같은 소설이 100만 부나 팔리는 사회보다 훨씬 바람직할 수 있다. 소설 <도가니>도 그렇다. 청각장애자 학교에서 일어났던 성폭력 사건을 유명 작가가 논픽션으로 썼다면, 사회적 파급력은 상당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영향으로 진실이 발본되고 미비한 법들이 고쳐질 확률도 높으나, 문학이 너무 강한 사회는 온갖 사회적 의제와 다양한 글감을 문학이란 대롱으로 탈수해 버린다. -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p168

이 대목을 읽고 장정일의 말에 백번 공감했다. 그런데, 과연 해당 사건을 논픽션으로 출간해서 사회적 파급력을 기대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이슈화가 잠깐 되기는 하겠지만 미비한 법과 제도들이 고쳐질 확률은 그리 높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하튼 그건 그렇고, 나의 궁금증을 증폭시킨 것이 우리 사회에서 교양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궁금해서 미치겠다>처럼 호기심을 채우고자 백과사전을 읽어내는 것이 교양인가? 이것이 교양이라면 ‘교양=지식’인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흠, 생각에 빠지다 보니, 예전의 일례가 스쳐지나간다.

지인 중에 결혼을 하고 싶어 환장한 사람이 있다. 40이 됐는데도, 계속 선만 보고 있는 중이다. 헌데, 이 분은 선만 보고 오면 투정을 해댄다. 여자가 이쁘면 교양이 없다고 하고, 교양이 있으면 외모가 아니란다. 두 개 중에 하나를 포기하면 금방 결혼할 거 같아, 빨리 결혼 하고 싶으면 하나를 포기하라고 했더니, 절대 그럴 수 없단다. 책도 안 읽는 여자와 어떻게 살며, 더군다나 외모가 딸리는 여자와 어떻게 같이 다니냐는 것이다. 난 이분이 둘 중 하나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3년 내에 결혼하기 힘들 거라 말해줬다. (이분은 그 해에 꼭 결혼을 해야 된다고 비장하게 말하곤 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분이 ‘책 안 읽는 여자’를 ‘교양 없는’여자로 단정한데 있다. 이것은 우리가 참 많이도 듣던 말 중 하나의 변주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이 교양이 있으려면 책을 좀 읽어야해'라거나, '책도 안 읽고 무식한 소리 하는 것 좀 봐라'라는 말은 우리가 꽤 많이 들어오던 격언(?)이다. 이 말 속에는 ‘책=교양=지식’이라는 관계가 암묵적으로 전제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말 속에 말이다.

이를 종합하여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린다면 교양은 곧 지식이나 책으로 귀결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베이컨의 ‘아는 것이 힘이다’는 명제는 교양의 의미를 규정짓는 제1의 선언쯤 되는 것 같다. 현재 우리나라의 각종 입사시험에 ‘교양 시험’ 내지 ‘일반 상식 시험’의 구성을 보면 이를 뒷받침하기 충분하지 않을까. (어떤 사람은 지식 위주의 교양이라는 것을 비판하고, 자신에게 충격을 주는 것이 곧 교양이라고 하는데, 이는 교양의 일반적 논의를 무시한 생각인 듯하다.)

그런데, ‘지식(책)은 곧 교양인가?’ 라는 물음에 단호히 위의 잠정적 결론처럼 ‘그렇다’라고 잘라 말하기에는 꺼림칙한 뭔가가 발목을 잡는다. ‘도대체 어느 정도의 지식이 교양의 범주에 포함되는가?’란 의문 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교양의 의미를 확인하고자, 나도 백과사전을 찾아봤다. 두산백과사전에 올라 있는 교양의 의미를 살펴보면 좀 거창하다 싶다.

교양을 뜻하는 영어 'culture'의 원뜻은 '경작(耕作)'이고, 독일어의 'Bildung'은 '형성'이라는 뜻임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여기에는 인간정신을 개발하여 풍부한 것으로 만들고 완전한 인격을 형성해 간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은 시대마다 일정한 문화이념에 입각해서 이루어지므로 교양의 내용은 시대 또는 민족에 따라 달라지는데, 적어도 유럽문화권에 있어서는 이제까지 그리스·로마적인 교양의 이념이 일관하여 계승되었다. 고전 그리스에서의 '파이디아(paideia:교육)' 이념이 헬레니즘을 거쳐 그리스도교 세계로 계승되어 '그리스도교'라는 새로운 교양이 확립되었다고 보는 관점도 있다.
근대 유럽에서의 교양은 로마시대에 형성된 후마니타스(humanitas:인간성)의 이상을 다시 일으키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술의 우위가 결정적인 현대에서는 이것과는 다른 새로운 유형의 교양이 요구되기 시작하고 있다.


줄친 부분을 보면 교양이 무엇이고 어떤 걸 공부해야 하는지 좀 막연하다. 그렇다고 추상적인 설명이라고 해서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인간정신을 개발하고 완전한 인격을 형성해 가는” 방향으로 공부 방향을 잡아야 하는 것은 분명한 것 같지만 말이다.

헌데, 교양의 내용은 시대와 민족에 따라 달라진다니 환장할 노릇이다.

좋다, 교양이 무엇인지 그 실체(?)에 접근해 보도록 하자. 일단 <교양>이라는 이름을 달고 출간된 책들의 내용을 살펴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본다. 도대체 어떤 내용으로 채워져 있는지. 책을 보면 ‘교양’이라는 실체가 잡힐 수 있지 않을까?

일단 교양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책을 검색한 이후 논술과 학습에 관련한 것들(고전을 소개한 책 포함)제외하고 교양의 사전적 정의에 근접한 내용을 담은 책을 찾아보니 4권을 추릴 수 있었다.

홍세화, 21세기를 바꾸는 교양(7인7색), 한겨레, 2004
교양으로 읽어야 할 절대지식 세트(절대지식, 세계명작, 중국지식); 1권으로 침.
또 다른 교양, 에른스트 패터 피셔
디트리히 슈바나츠, 교양, 들녘, 2006
 

 


 

 

 

홍세화&박노자  씨의 책은 7인의 시론을 모아 놓은 것으로 ‘교양’이라 이름 붙이기에는 너무도 지엽적이다. <절대지식 세트>는 고전과, 문학, 그리고 중국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어 이 역시 ‘교양’의 내용 중 상당 부분이 빠져 있다. 주로 고전의 소개에 그치고 있다. <또 다른 교양>의 경우는 부제가 ‘교양인이 알아야 할 과학의 모든 것’이다. 이 교양서는 현대 과학의 주요 분야들을 종횡무진으로 넘나드는 책이다. 역시 ‘과학’, 그것도 ‘현대 과학’의 성과만을 중점적으로 다루어 너무 지엽적이다.

이로부터 보건데, 현재 ‘교양’이라는 내용을 구경할 수 있는 가장 그럴듯한 책은 디트리히 슈바나츠의 <교양>이 유일할 듯싶다. 책의 내용을 보면 사람이 알아야할 거의 모든 것을 다 갖추어 놓은 듯하다. 이 책에 대한 유시민의 추천을 보면, 더욱 신빙성이 더해진다.

“교양인을 만드는 기본요소는 슈바니츠가 강조하는바 역사와 철학, 문학과 예술에 대한 이해이며, 사회를 자기의 내면에 비추어봄으로써 사회를 결속시키는 도덕적 구속력을 생성해내는 유연하고 자성적인 정신인 것이다. 이러한 교양의 기초가 없는 전문가는 한 뼘도 안 되는 전문영역에 갇혀 평생을 살아야 한다. 그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그는 길을 잃고 만다. 평지에 높이 솟은 돌기둥 위에 서 있는 사람처럼 불안하다. 이런 사람들은 <교양>의 마지막 구절을 작업실 컴퓨터 모니터에 붙여 두면 좋겠다. 잃어버린 교양의 세계를 그리워하는 ‘배운 사람들’이 언제나 가슴에 담아두어야 할 잠언이기 때문이다.

-교양은 정신의 몸, 그리고 문화가 함께 하나의 인격체가 되는 형식이며, 다른 사람들의 거울 속에 자기를 비추어 보는 형식이다.-


유시민의 추천사에서 보듯이 <교양>에는 유럽의 역사(고중근세), 기독교, 종교개혁, 계몽주의, 현대(19, 20세기), 유럽의 문학, (서구)미술의 역사, (서구)음악의 역사, 철학과 철학자들, 성 논쟁의 역사, 언어, 책과 글의 세계, 지역학, 지능과 창조성, 성찰적 지식 등 실로 서양 문화의 기반이 되는 모든 것을 766페이지 속에 담고 있다.

이 책은 ‘교양’에 가장 근접한(?) 내용을 담은 책이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이 책을 보고 교양을 안다는 것은 반쪽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것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우리 것만 없느냐? 가만 보면 자연과학에 관계된 많은 것들이 빠져 있다.

위에서 두산백과사전의 교양에 대한 설명에서도 보았듯이 교양은 시대와 민족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시대 우리나라의 현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교양은 슈바니츠의 책에 ‘우리 것’과 '과학 분야'를 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역사(고대, 중세, 근세, 근대, 현대), 유교 불교 도교, 한국 문학, 한국의 철학과 철학자들, 한국 미술의 역사, 한국 음악의 역사, 민주화, 우리말 바로 알기 등이 추가되고 여기에 자연과학을 더 얹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교양이라는 것은 한 권의 책을 통해서 함양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인 것 같다. 모르는 것보다야 낫지만 뭔가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그런지 유명한 출판사들은 다투어 ‘OO교양신서’같은 총서 류나 ‘지식’ 시리즈를 기획한다. 이런 총서 류를 보면 백과사전의 주제별 묶음 쯤 돼 보인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비롯한 선진국들의 고등교육(교육은 교양에서 정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이 지향하는 교양은 훨씬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것 같다. 그곳이란 어디일까? (개인적 생각인데) 나는 그 높은 곳이 ‘교과서’라고 생각한다.

일전의 어느 에세이에서 유시민은 ‘교과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유시민에 따르면 자기가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교과서에서 배웠다고 했다. 이 말에 천만 배 공감한다. 중고등학교 때 배웠던 교과서뿐만 아니라 대학에서 배웠던 교과서는 전문가를 빼놓고 알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알려준 것 같다.

고교 시절 배웠던 기초 과목과 일명 암기과목들, 즉 국어, 수학, 문학, 정치, 경제, 세계사, 사회문화, 지리, 물리, 화학, 지구과학, 생물, 음악, 미술 등이 이른바 교양이라는 것의 가장 밑에 위치할 것이다. 이는 디트리히 슈바나츠의 <교양>을 훑어 봐도 대번 알 수 있다. 이 기초 교양 과목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에 더하여 대학에서 개설하고 있는 교양과목(이 대학 교양과목들도 기초 교양 과목들의 연장선에 지나지 않는다)들, 예컨대 철학개론, 문학개론, 사회학 개론, 자연과학 개론, 경제학 개론, 법학 통론, 한국사, 경제사, 세계문화사, 논리학, 경제수학입문, 경제학 원론, 행정학 개론, 복식문화사, 언어학 개론, 정치학 개론, 미술사, 음악사, 심리학 개론, 경영학 개론 등을 읽고 이해한다면 위에서 말한 ‘교육이 지향’하는 ‘교양’ 수준에 도달하지 않을까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교양이란 백과사전적 지식 보다는 체계가 잡힌 보편적 지식의 덩어리들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따라서 교양은 곧 ‘지성의 역사(=지성사)’의 일반적 표현인 듯싶다.

헌데, 이렇게 열심히 나름대로 찾은 ‘교양’이 ‘교양’이 아니라면, ‘교양’이란 대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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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교양이 무엇인지 무척 궁금했다. 읽고 있는 교양 신서가 어떤 의도로 기획된 건지도 의심스러웠고. 그래서 <교양이란 무엇인가>라는 단행본 책을 찾아 봤다. 헌데, 없었다! 교양을 논한 비슷한 책을 찾았는데, 대부분 교양에 대한 두루뭉술한 서술 뿐이었다. '교양'이 무엇인지 답답했다. 개인적으로 좀 중요한 화두라고 나름 생각하는데, 직접적인 소개서가 없다는 것이 좀 이상하다. 그래서 좀 생각을 해 봤는데, 시원스런 답변은 못 찾은 것 같다. 혹시 교양을 논한 책을 알고 계신 알라니너 분들이 계시면, 무지한 야무에게 깨우침을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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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8 0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08 1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08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09 0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09 1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빵가게재습격 2011-09-08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야무님 꽤 유쾌하시네요. 생각없이 들렀다가 글 잘 읽고 갑니다.

아는 건 없지만 어디선가 읽은 몇 구절 조합해서 덧붙이자면, 제가 아는 한 '교양' 독일의 'Bildung' 은 본질적으로 '근대성'에 대한 '속성과외' 목록입니다. 빌둥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18세기인데, 이때 독일은 강력한 통일국가도, 법치적 분권도, 본격적인 자본주의의 시행도 이뤄내지 못한 '후진국' 이었죠. 자본주의, 통일국가, 법의 분권화를 진작 이뤄내고 식민지 경쟁에 뛰어든 영국과 프랑스에 비해 독일은 수많은 나라로 쪼개진 후발주자에 불과했으니까요. 이를 만회하기 위해 배우고 익혀야 할 특정 목록을 '갱신'하게 되는데, 이게 소위 '빌둥'입니다. 그리고 이 목록을 배우는 목적으로 '인간다운 삶과 세계에 대한 총체적 이해' 운운이 붙었을 것이고요. 이렇게 말하면 목적을 감추기 위해 근사한 '타이틀'을 붙였다는 감이 있지만, 실은 당대 독일 지식인들은 '인간다운 삶'과 '근대성'을 명확히 구분할 수 없었으리라고 생각해요. 민족주의를 인간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속성으로 생각한 구한말 우리 지식인들과 동일하게요. 어째건, 이 '빌둥'은 '근대성'을 빨리 습득해야 할 일본에서 한 번 더 반복됩니다. 서양을 쫓아 근대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요구에 쫓기고 있던 일본은 '근대성'을 학습하기 위해 '서양근대국가의 정수'라고 생각되는 목록을 만들어서 책을 통해 습득하고자 하는데요. 이게 소위 '교양'입니다. 다만 이 때 세워진 교양 즉 '다이쇼 교양주의'는 철학/역사/문학등을 중심으로 리스트들이 만들어졌고, 이게 인문쪽에 치중되어 있는 '교양'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낸게 아닌가 싶어요.(사실 인문쪽에 치중되어야 할 필요도 있었습니다. 근대성은 과학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할 것인가라는 인문적 전망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요컨데 '교양'은 '속성과외'리스트입니다.^^ 최근에 교양에 과학기술이 추가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이런 교양의 특성을 그대로 받아 안는 것입니다. 교양이란 근대성 또는 쓸만한 지식의 집합으로 정의된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런데 근래 들어 '교양'의 문제가 언급되고 대학밖 '교양' 강의가 활발한 이유는 '교양'의 이런 역사적 과정과 무관하게 '교양' 자체가 내세웠던 근본적인 질문, '인간답게 사는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이 늘어난 것에 기인합니다. 전에는 '속성과외' 리스트에 따라 열심히 공부하면 나라도 부강해지고 나도 잘 살고 이랬는데, 이게 한계에 부딪친거죠. 동시에 물질적 풍요가 보편화되면서 단지 '학습기계'로 살아던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의미를 찾기 시작한 측면도 크고요. 강유원 선생의 강의가 큰 의미로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배경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이 이런 의문을 채워주지 못하고 '죽어버렸기' 때문에 대학밖에서 호응을 얻었다는게 대단히 아쉬운 측면이 있지만, 동시에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대중화의 열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싶어요.

교양에는 속물적 성격도 대단히 내재하고 있는데, 이는 베블런이 신랄하게 밝혀 놓았습니다. 베블런이 정의한 '교양'이란 상류계급이 자신을 '일반대중'과 분리하여 나타내기 위해 익히는 '쓸모없고 시간 많이 걸리는 사치스런 항목'에 불과하죠. 저는 이걸 읽으면서 대단히 웃었답니다. 서양에서 사람들과 대화하려면 교양이 필요하다 운운은 이런 측면이 가미되어 있을 겁니다.

교양에 대한 정의도 많고 접근방법도 다양하지만, 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정의를 꼽으면 가다머가 제시한 '교양'입니다. 가다머는 비코를 인용해 교양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타자의 입장에 서 보는 것' 그런데, 이 단순한 말에는 여러가지 함의가 들어있죠. 타자의 입장에 서 보려면 자신을 객관화 할 줄 알아야 하고, 자신과 타자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필요로 합니다. 교양은 이런 걸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죠. 그 수많은 리스트와 공부시간과 열의를 통해 기껏 얻는다는 지점이 '타자의 입장에 서 보는 것'이라니 그야말로 맥빠지는 결론이 아닐 수 없지만, 뒤집어서 '인간다움'이란 그런 소박한 것이면서도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인간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 라는 통찰도 담고 있는 듯이 보이고요. 너무 인생 목표를 거창하게 잡지 말라는 '쾌락주의'의 결론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사설이 길었습니다. 공자님 앞에서 문자쓴게 아닐까 걱정되기도 하고요. 난삽한 댓글 줄입니다.^^

yamoo 2011-09-08 20:01   좋아요 1 | URL
아, 빵가게님 정말 감사합니다. 첫단락은 제가 미처 몰랐던 사실입니다! 프린트 해서 봐야 겠어요~ 빵가게님께서 교양에 대한 적절한 논의들을 모아주셨군요! 비코의 책과 가다머 그리고 베블런의 책들은 이미 봤습니다만...설렁설렁 봐서 그런지, 아니면 제가 본 책이 빵가게님과 달라서 그런지 제가 본 책에서는 교양에 대해 언급한 걸 보지 못했네요~

교양에 대한 긴 댓글은 정말 제게 매우 많은 도움이 됐네요. 교양의 범주를 어디까지 잡아야 할지 매우 답답했는데, 어느 정도는 가닥을 잡은 것 같습니다! 긴~글, 정말 감사합니다!

cyrus 2011-09-09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양의 의미에 한번쯤은 생각해본적이 있는데 이것이 교양이다라고 딱히 뭐라고
정의내리기에는 여러가지 생각이 요하는 문제인거 같아요. 저는 아직 교양이
이런 것이다라고 정의를 못 내리겠어요. 생각하기에는 제가 아직 거기까지 생각하기에는
너무 부족한거 같고요 ^^;;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올바른
윤리적 가치를 형성하는데 필요한 것이 교양이라고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정말로
제대로 된 교양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고요.. 나름 저는 그렇게 생각이 드네요.

yamoo 2011-09-13 20:46   좋아요 0 | URL
교양이란 무엇인지 딱히 정의 내리기 힘들지만 누구나 두루 사용하는 개념이기 때문에...한 번쯤은 개론서가 출간됐으면 합니다.

시루스님두 교양과목을 들으시면서 한 번 생각을 정리해 보시고...저한테 좀 알려주시길~ㅎㅎ

2011-09-10 1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13 2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09-13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amoo 님. 오랜만입니다. 추석 연휴는 잘 보내고 계시지요?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책만 생각해본다면 그보다는 데이비드 덴비의 책을 한 번 살펴보시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교양이라는 건, 참 어떻게 정의를 내리기가 어려울 듯 싶은데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교양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생각해 보기엔 괜찮은 것 같습니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371601


^^. 이미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yamoo 2011-09-13 20:4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바람결님~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영부영하다보니, 벌써 명절 마지막날이네요..ㅜㅜ 하두 돌아다녀서 발만 아푸구...아흐~

덴비의 책은 두 권 모두 갖고 있다가 친구 선물로 줬습니다. 그 책두 고전 감상문 모음집(소개서)에 포함되는 책이라서 살짝 제외하게 되었어요~ 이런 류의 책이 좀 많더라구요..ㅎㅎ 그래서 전 절대지식 세트3권으로 대체했다는^^

저도 많이 궁금해 하는 분야라..교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개론적인 책이 한 권 나오면 좋겠습니다~
 

 

국어사전에 보면 취향을 "하고 싶은 마음이 쏠리는 방향"이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용례로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다'란 표현이 있는데 우리는 이 표현을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합니다. 그래서 취향이라고 하면 아주 가볍게 생각하거나 취미와 비슷한 것으로 우리에게 인식되고 있습니다. 특히 어떤 주제로 피 튀기는 논쟁을 하다가도 결과적으로 ‘그건 취향의 문제이다’라고 말을 하면. 거기서 논란 종결입니다. 개인의 취향이라는데 더 말해서 뭘 할까요~

일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취향이라는 건 일종의 방어벽으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자기의 성향을 특징짓는 ‘어떤 것’으로 작용합니다. 뭐랄까, 좀 가벼운 것이라 할까요. 잡담 속에 섞여 간간히 표출되는 ‘그런 것’ 말입니다. “어떤 취향을 갖고 계세요?” “취미는요?” 뭐, 이런 물음들은 초면의 사람을 알기위해, 또는 친밀함을 나타내기 위해 인사치레로 하는 시시콜콜한 탐색의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취향’이라는 개념이 어떤 힘 있는 사람에게 귀속될 경우 무시무시한 괴물로 변화됩니다. ‘권력’이라는 괴물이 말입니다. 특히 권력자의 취향이라는 건 절대적이라서 하나의 ‘현상’을 낳습니다.(여기서 권력자는 정치가 뿐 아니라 사회의 어떤 특권층일수도 있습니다)

일명 법관이나 변호사 그리고 검사로 대변되는 법조인들은 어떤 사건을 받았을 때 그 사건을 분석하여 그에 맞는 가장 적합한 법적 해석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개인의 취향이 우선한다고 합니다. 취향에 맞게 이론과 해석을 짜맞춘다나요. 그래서 모든 판결문을 보면 그 판결문을 쓴 법관의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러이러한 사건에 더 적합한 저러한 법이 있는데, 왜 이런 가당치 않는 법으로서 요렇게 해석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법관의 취향이 성적으로 보수적이라면 미성년자성범죄자는 이중처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간통죄나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한 판결은 바뀔 것(사실 근래 바뀌었음)이며 사회의 ‘경향’을 좌우할 것입니다.

어떤 문학상 시상식은 어떨까요? 어떤 권위자의 취향은 그 선택의 절대성을 부여합니다. 아무리 독특하게 잘 쓴 작품이라도 심사위원의 취향에 맞지 않으면 사장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는 어떤가요. 전직 대통령은 코드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취향의 정치를 하다 가셨습니다.

결국 취향은 가벼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브르디외의 <구별과 취향의 사회학>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매우 많은 사회제도와 문화가 어떤 특권층의 취향이 반영된 결과물인 것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에 말입니다.


 

  

또한, 취향은 논리적이지도 않습니다. 다분히 감각적이고 충동적이며 무의식적입니다. 그래서 충분히 선입관이 개입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어떤 현상을 바라보는 진실된 시각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자본주의가 판을 치는 이 사회에서는 말이죠. 개가 꼬리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꼬리가 개를 흔드는 현상. 이것이 우리 사회의 실상이 아닐 런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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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 대한 남성의 성적 폭력을 우리나라만큼 남성 우월적 시각에서 다루는 선진국은 없는 듯합니다. 그도그럴것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취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범죄에는 매우 관대하다는 것을.  

성희롱 파문으로 논란이 됐던 몇몇 국회의원들이 다시 활발히 활동을 하고, 부장검사가 간통한 사실이 현장에서 발각되었는데도 유유히 사표를 쓰고 처벌에서 빠져나가는 나라.  

명백한 강간임에도 불구하고 여자가 헤퍼서 그렇다고 소문을 내고 돌아다니는 고대의대 가해자들의 부모.  

참~ 취향한번 독특하군요! 그런 취향이 여성들을 죽이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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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9-02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문과 상관없는 댓글이지만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번에 온 책 보니까 420쇄여요.
정말 어마어마하네요.^^

yamoo 2011-09-03 22:12   좋아요 0 | URL
커헉! 제가 본것이 2백 몇 쇄였는데....와~ 또 몇 달 사이에 배를 찍었군여! 정말 놀랍습니다..저도 한 번 봐야겠는데, 도서관에 맨날 대출중이니...서점에서 죽치고 앉아 보는 수밖에 없겠어요..ㅎㅎ

cyrus 2011-09-02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요즘 세상 돌아가는 보면.. 아무래도 생각해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인거 같아요. ^^;;

이 역시 본문과 상관없는 덧글 내용이지만.. 420쇄라니.. 대단하네요.

yamoo 2011-09-03 22:13   좋아요 0 | URL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대한민국...--;;

시루스님과 같은 대학생을 위해 쓴 책이니 한 번쯤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해요..전 서점에 가서 읽다 오려구요^^

프레이야 2011-09-03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피해자 여학생이 학교로 돌아와 오히려 제2, 제3의 상처를 받게되다니요
이건 무슨 취향도 아니고 선입견도 아니고 폭력이에요.ㅠ
상대적으로 권력있는 자의 취향,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yamoo 2011-09-03 22:14   좋아요 0 | URL
완전 폭력이죠...권력을 가진 자의 취향은 정말 폭력으로 변하는 것 같습니다. 취향과 폭력과의 관계를 논한 책이 나오면 좋을 텐데요. 꽤 재밌을 것도 같습니다^^

루쉰P 2011-09-05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취향이라는 것은 결국 자신도 모르는 무의식의 영역일텐데 그것이 권력과 결합하며 진실을 가리는 마개가 된다는 것이 참 무섭네요. 사실 취향이라는 것은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참 많은데 그것이 권력과 붙을 때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지고 온다는 것 그것은 결국 인간을 위한 사상이 없는 존재들이 사회적 권력을 가지고 있기에 그런 것 때문이지 않을까란 생각을 합니다. 여성에 대한 취향도 그렇구요. 말이 안 되는 현실이죠. 그만큼 천박한 취향을 반영하는 것이지 않나해요.
야무님의 글을 읽으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그것을 파헤치고 그것과 연관되는 것을 찾아내고 하는 그런 글이라 읽으며 너무 재밌네요. 퇴근하기 전에 잠깐 들려서 읽고 가요. 이것도 제 취향일까요? 퇴근하기 전에 서재 들어오는거요. ㅋㅋㅋ

yamoo 2011-09-05 20:14   좋아요 0 | URL
취향이라는 것은 좀 깊게 들어가면 충분히 사회학의 주요 연구 테마가 될 듯합니다. 일부 사회학자들이 이 문제를 연구한 것을 일부 보긴 했습니다만...아직까지 활발한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은 듯 합니다. 단행본으로 나온 책도 별로 없는 것을 보면 말이지요..

좋게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
 


캐이블 TV에서 우연히 습관에 대한 다큐를 보게 되었다. 오랜 전 다큐의 재방송이었다. 채널을 돌리려다가 피터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라는 책 소개 때문에 채널을 고정했다. 왜냐하면 난 오래전부터 이 책을 갖고 있었지만 여전히 읽지 않고 있었기에.


 

내용 자체는 뭐, 뻔했지만 습관에 대해서 관심을 환기시키기에는 충분했다. 난, 조금 다른 측면에서 궁금한 점이 생겼지만.

습관이 중요하다고 하는 자기계발서들은 꽤 많이 구경했다. 아주 대표적인 책이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일 게다. 이 책의 열풍은 정말 대단해서 이후 비슷한 책들이 쏟아졌다.


 

대체로 습관을 다룬 대부분의 처세용 책들의 요점은 단 하나로 수렴한다. 그것은 ‘습관은 자신을 바꾸는 힘이다’라는 것. 습관이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는다고 한다.

요컨대, 좋은 습관을 기르면 좋은 행동이 형성되고, 나쁜 습관이 들면 나쁜 행동으로 나타나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는 점이다. “행동을 뿌리면 습관을 거두고, 습관을 뿌리면 성격을 거두고, 성격을 뿌리면 운명을 거둔다.”는 G. D. Boardman의 경구는 이를 뒷받침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유명한 사람들은 모두 좋은 습관을 가졌다는 주장은 좋은 습관을 갖지 않은 유명인사가 소개되지 않는 한 계속 타당한 위력을 떨칠 것 같다.

헌데, 과연 습관이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는지는 좀 더 많은 논의를 필요로 할 것 같다. 아니, 논의의 차원이 아니라 철학적 성찰이 필요한 부분 같다. 이 점이 내가 관심을 갖는 지점이다.

그래서 ‘습관’에 대한 철학책을 찾아봤지만 전무했다. 심리학과 자기계발서에 관계된 책만 잔뜩 있었다. 전옥편 <이기는 습관>, <습관부터 바꿔라>, 김경모 <습관-나를 변화시키는 힘>, 브라이언 트레이시 <백만불짜리 습관>, 양창순의 <마인드 포스>, 이시형의 <세로토닌하라> 등등.

집에서 가까운 대형 서점에 나가 살펴 보았지만, 전부 자계서 뿐이었다. 왜 습관에 대한 철학적 분석서는 없는지....의구심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그 흔한 철학적 잠언서도 없다니~

이런 생각에 집에 있는 책들도 뒤적거려 봤지만, 역시 관련 책이 있을 턱이 없다. 책은 없었고, 습관에 관해서 내가 찾은 유일한 논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9장 “행복은 학습이나 관습에 의하여 얻어지는 것인가, 혹은 신이 보내주시는 것인가, 또 그렇지 않으면 우연히 얻게 되는 것인가”가 유일했다. 흠, 하나는 발견했다. 책은 아니지만.. 



에라~ 모르겠다, 포기하고 읽던 책이나 읽기 시작했다. 그제부터 읽고 있는 책은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 베르그송의 원 저작에 입문하기에는 이 책부터 시작하는 것이 최고라는 전문가의 말에 읽기 시작했다.

‘역시, 베르그송은 천재야’라는 감탄사를 연발하다가, 무심코 책장 하단에 눈길이 가게 되었다. 그 칸은 현대의 지성 시리즈를 모아놓은 곳이다. 내가 언제 사 놓았는지 모르는 <베르그송 연구>란 책이 거기 꽂혀 있었다.

도대체 이 책을 언제 샀는지 기억에도 없거니와, 내가 이 책을 왜 샀는지 기억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현대의 지성시리즈라서 그냥 덥석 구매한 모양이다. 물론 지금까지 들춰보지도 않았었다.

베르그송의 주저들을 읽기로 결심했으니, 구경이나 할 겸 펴들었는데, 나는 이 책으로부터 2번 놀라게 되었다.

타이틀만 보고 중요 부분만 훑었는데도, 저자 김진성은 완전히 베르그송을 꿰뚫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명료한 언어로 베르그송의 핵심 사상을 체계적으로 건저올리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그가 37세에 요절했다는 것이고, 이 책이 김남두 교수에 의해 유고집으로 출간된 책이라는 점이다.

김남두 교수와 동료 교수들이 그의 죽음을 매우 애석해할만 하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짧은 논문 10여 편을 모아 놓은 유고집이었지만 정말 대단한 연구 성과로 비쳤기 때문이다.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베르그송의 사상체계를 한눈에 파악할 정도다)

아마도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세계적인 헤겔 전문가인 임석진 교수에 버금가는 베르그송 연구의 대가가 되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그런데, 또 한 번 놀란 건, 이 책의 7번째 소논문 때문이다. 이 소논문은 <현대 프랑스 철학에서의 습관에 대한 고찰>이다. 여기에는 내가 의구심을 가졌던 바로 그 내용들이 논문의 첫머리부터 펼쳐져 있었다.

“습관이 과연 철학의 문제가 될 수 있는가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법하다. 존재․이성 또는 본질과 같은 철학적 개념에 익숙한 사람은 이 대수롭지 않은 심리적 사실이 갖는 철학적 의미를 쉽게 이해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철학사를 조금만 꼼꼼히 살펴보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습관과 덕의 관계를 논한 이후로 데이비드 흄에 이르러 습관이 인과율의 성립근거로 제시되기까지, 그것은 인식론, 형이상학, 윤리 등에서 중요한 철학적 주제였음을 알 수 있다.
습관의 문제는 발(J. Wahl)이 정확히 지적하듯 특히 프랑스 철학에서 주목의 대상이었다. 데카르트, 루소, 파스칼, 비랑, 라베송, 부트루, 베르그송 그리고 현대의 리쾨르에 이르기까지 습관은 여러차원에서 다각도로 검토되고 있다. 예컨대 파스칼은 습관에서 상상력과 함께 가장 커다란 오류의 원리를 찾는다. 순수한 감정을 이성보다 높이 평가한 루소 역시 습관을 부정적으로 보았다. 습관은 감정의 신선한 유출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는 <에밀>에서 “어린이에게는 오직 하나의 습관만을 갖도록 해야 한다. 습관을 갖지 않는 습관을”이라고 선언한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이들의 철학은 습관론에 근거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비랑, 라베송, 베르그송 철학에서 결정적인 의의를 갖는다. 이 논문은 이들, 특히 베르그송에 있어서의 습관의 문제를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pp154-155)

 

있었다! 습관에 대한 철학적 논의들이. 아쉽게도 ‘습관’이라는 타이틀을 단 책은 아직까지 없었지만 주요 철학자들의 ‘논의’들은 있었다. 저자의 소개대로 흄의 책 <정념에 관하여>를 펼쳐보니 제3부 제5절에 ‘습관의 영향력에 관하여’라는 부분이 있다. 헌데, 2페이지 분량밖에 안 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주요 철학자들이 ‘습관’에 대해 논의했다는 점이다. 아쉬운 것은 주요 저작 속에 절이나 세항목 속에 포함되어져 있기 때문에 저작을 읽지 않으면 철학자들이 ‘습관’을 다루었는지조차 모른다는 사실. 이 점이 참 아쉽다.

물론 무식한 소치의 원인은 바로 나에게 있지만 <습관에 대해서>라는 편집된 책 1권만 출간돼 있었더라면 이런 의구심은 조금 더 일찍 풀렸지 않나 하는 푸념을 하게 된다.

뭐, 이런 쓰잘때기 없는 생각 때문에 김진성이라는 대단한 철학자도 알게 되고, 흄의 저서를 다시금 들춰보는 수확도 얻을 수 있었으니, 그렇게 쓸데없는 생각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이런 상념 때문에 귀중한 휴가의 하루가 날라간 것은 되돌릴 수가 없구나~

*****
혹시 ‘습관’을 논한 철학책을 아시는 분은 무지한 야무에게 알려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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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1-09-01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습관'에 관한 가장 유명한 경구 가운데 하나가 아마도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은데("우리가 반복적으로 행하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 된다. 뛰어남이란 행위가 아니라 하나의 습관이다."), 그 경구는 제가 알기로『니코마코스 윤리학』이라는 책 속에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 책도 사 두기만 하고 읽지 못하고 있는데, yamoo님께서 소개해 주신『베르그송 연구』라는 책은 언감생심일 것 같고, 데이비드 흄의 책들도 읽고는 싶은데 참 그게 쉽지 않네요.

다만, 데이비드 흄의 경우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깊이 천착한 인물이니만큼 '습관'을 다룬 부분이 (yamoo님께서 찾아낸) 2쪽으로 그치치는 않았겠다 싶고, 또 그와 '절친'이자 그로부터 심대한 영향을 받았던 아담 스미스 역시 그의 주저인 『도덕감정론』에서 '습관'에 대해 깊은 철학적 성찰을 한 것도 당연하다 싶습니다. 그래서, 아담 스미스가 그의 철학책(도덕감정론)에서 '습관'에 관해 살펴본 내용이 그나마 yamoo님께 조금이나마 참고가 될 것 같아 '길게' 덧붙여 봅니다.

* * *

제5부 습관과 유행이 도덕적 시인과 부인의 감정에 미치는 영향(365쪽∼398쪽)


그들 자신의 결핍과 필요가 너무나 절박하기 때문에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 많은 배려를 해 줄 수 있기 위해서는 우선 먼저 우리 자신이 어느 정도 편안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우리 자신의 비참한 상황이 우리 자신을 극도로 괴롭히고 있다면, 우리는 이웃들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일 여유를 갖지 못한다. 모든 미개인들은 그들 자신의 결핍(缺乏)과 필요가 너무나 절박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결핍과 필요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미개인은 그의 고통이 어떤 성질의 것이건 간에, 이 고통에 관하여 그의 주위 사람들로부터 어떤 동정(同情)도 기대할 수 없고, 이런 이유로 남들에게 자신의 약함을 조금이라도 눈치 채이게 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그의 격정이 아무리 거칠고 난폭하다고 해도, 그것이 그의 표정의 태연함 또는 그의 행위 및 태도의 침착함을 어지럽히는 것은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우리가 들은 바에 의하면, 북아메리카의 미개인들은 어떤 일을 당해서도 완전히 무관심한 듯한 태도를 취하며, 그리고 만약 그들이 어떤 점에서라도 애정이나, 비탄이나, 분개의 격정에 의해 압도된듯이 보인다면, 그들 자신의 품위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담대(膽大)함과 자기 통제는 이런 면에서는 거의 유럽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나의 생각)
'울지마 톤즈'에 나왔던 톤즈 사람들(아프리카 미개인)이 생각난다. 그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좀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애정에 약하다는 것

신분(身分)과 재부(財富)에 있어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수준에 있는 나라(즉, 야만상태)에서는, 남녀 간의 상호간의 애정만이 결혼에서 고려되어야 할 유일한 사정이며, 그리고 이 애정은 어떤 종류의 구속도 받지 않고 향유(享有)될 것으로 기대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나라에서는 모든 혼인이 예외 없이 부모들에 의해 결정되며, 그리고 만약 어느 한 청년이 한 여성에 대해 조금이라도 다른 어느 여성보다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또는 자신이 어떤 때 어떤 인물과 결혼해야 할지에 관해서 완전히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그는 이 일에 대해 평생 동안 부끄럽게 생각한다.

인간애와 정중함이 존중되는 시대에는 사람들은 애정에 잘 빠지는데, 애정에 약하다는 것은 미개인들 사이에서는 가장 용서할 수 없는 연약한 행위로 간주된다. 심지어 결혼한 후에도 양 당사자는 성욕에 기초한 관계를 부끄러운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함께 살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 남들 몰래 만날 뿐이다. 그들은 계속 각자 자기 부모의 집에서 생활한다. 그리고 다른 모든 나라에서는 공공연히 허용되고 있는 남녀의 동거생활은 거기에서는 가장 추하고 가장 남자답지 못한 호색(好色) 행위로 간주된다.


죽음과 고문에 대한 경멸

모든 야만민족은 아주 어릴 때부터 이와 같은 가공할 종말(終末)에 대한 준비를 한다고 한다. 그들은 이를 위해서 소위 죽음의 노래(the song of death)를 만든다. 이 노래는 자기가 적들의 손에 붙잡혀서 적들의 고문을 받아 죽어갈 때 부르려는 노래이다. 이 노래는 고문자들에 대한 모욕으로 가득 차 있으며, 죽음과 고통을 극단적으로 무시하는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 그는 이 노래를 모든 특별한 경우에 부른다. 즉, 전장에 나갈 때에도 이 노래를 부르고, 전장에서 적과 마주쳤을 때에도 이 노래를 부르며, 혹은 자신ㅇ느 이미 가장 무서운 불행을 만났을 때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음을, 그리고 인간에게 일어나는 어떤 큰 사건도 자신의 결심을 흔들거나 자신의 최초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음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할 때마다 그는 이 노래를 부른다.

죽음과 고문에 대한 이러한 경멸(輕蔑)은 기타 모든 야만민족들 사이에서도 똑같이 지배적이다. 아프리카 해안에서 온 흑인들은 모두, 이런 측면에서, 탐욕으로 더러워진 그들의 주인의 감정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넓은 아량을 지니고 있었다. 운명의 여신이 인류에 대한 그녀의 절대적 지배권을 가장 잔인하게 행사한 것은, 저 영웅적인 아프리카 민족들을 유럽의 감옥에서 나온 쓰레기들에게, 자신이 떠나온 본국의 미덕도 자기가 찾아온 나라의 미덕도 전혀 갖고 있지 않은 인간쓰레기들에게, 굴종(屈從)하게 만들었을 때이다. 이 인간쓰레기들의 경박함, 잔인함, 천박함은 그들에게 정복당한 자들의 경멸을 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한 마디 말만 남긴다고 한다

문명한 민족은 천성(天性)을 존중하고 그 요구에 따르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이러한 민족은 솔직하고 개방적이고 성실하다. 반대로 야만인은 각종 격정이 밖으로 표출되지 못하도록 억누르고 감춰야만 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거짓을 말하고 위장(僞裝)하는 습관을 획득하게 된다.

아시아나 아프리카 또는 아메리카의 야만민족들의 사정에 정통한 사람들의 관찰에 의하면,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이해하기 어려우며, 그리고 그들이 진실을 숨기려는 마음을 가질 때에는 아무리 알아내려고 해도 그들로부터 진실을 알아낼 수 없다고 한다. 그들은 가장 교묘한 질문에도 넘어가지 않는다. 고문을 하더라도 그들이 말할 마음이 없는 것을 고백하도록 할 수는 없다. 야만인들의 격정 역시, 비록 이 격정들이 외부로 드러나는 어떤 감정으로 표출되는 일은 없고, 그의 가슴 속에 숨겨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격분(激憤)은 최고조에 도달한다. 그가 분노의 어떤 징후를 보이는 일은 매우 드물지만, 그러나 그가 복수하려는 마음을 품고 이를 실천하려고 할 때에는, 그것은 항상 살벌하고 가공할 만한 것이다. 아주 작은 정도의 모욕도 그를 자포자기로 몰고 간다. 그의 용모와 말투는 정말로 아주 냉정하고 침착하며, 마음의 가장 완전한 평정 이외에는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지만, 그의 행동은 흔히 매우 격렬하고 난폭하다.

북아프리카인들 사이에서는 가장 감수성이 예민할 나이의 여성이 그 어머니로부터 단지 가벼운 질책을 받았다는 이유로 물에 빠져 자살하는 일이 드물지 않은데, 이런 경우에도 그들은 아무런 격정의 표현도 어떤 말도 하지 않고 다만 "당신의 딸은 더 이상 없습니다"라는 한 마디 말만 남긴다고 한다.

yamoo 2011-09-01 15:47   좋아요 1 | URL
우와~! 감사합니다...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에서도 습관이 다루어졌었군요! 이런 책을 읽지 않으면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좋은 습관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 오렌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어제 sbs 정의에 대한 다큐 2부작을 보면서 한 없이 암담했다. 정말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살아온 서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체제가 공정한 사회가 지향하는 바인가?

사회의 각종 체제가 기득권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힘 없는 사람들에게 평등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나라가 공정을 외칠 수 있는 국가인가?

2주에 걸쳐서 방영된 이 다큐는 이러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이 프로그램이 의도한 것은 마이클 샌덜의'정의'에 대한 한국적 상황의 자기검증 이었다. 



 

 

  

방영된 사례들은 모두 비상식적이고 억울한 사건의 단면들이다. 부산 저축은행 사건, 아파트 지역 이기주의, 임용고시 축소 1인 시위 노량진녀, 미국에서 대박을 터뜨린 청년 벤처 사업가, 소상인을 죽이는 대형마트의 행태, 대기업으로 인해 공장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 재래김 사장님 등.

이들 사례들을 통해 프로그램은 대한민국이 얼마나 비상식적이고 폭력적인 행태가 만연한 사회인지 고발하고 있다.

특히 2부에서 보여주는 사례들은 자본주의 해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소위 덩치가 산만한 형님이 쪼그만 동생이 먹는 아이스크림까지 홀랑 빼앗아 먹는 사회. 이게 바로 2011년 8월 대한민국이 보여주고 있는 풍경이다.

소위 '근본있는(돈 있고 빽 있는)' 놈들이 근본 없는 사람들의 기회까지 빼앗아 가고 있다. 하지만 정말 통탄할 노릇은 이것을 감시할 국가의 감시체제가 근본있는 놈들에게 봉사하도록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완전히 힘이 지배하는 사회. 약육강식이라는 정글의 법칙이라는 표현이 교과서에만 있는 딴다라 상황인줄로만 알았는데, 그 현실을 완벽히 구현하고 있는 사회가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수십억을 들여 초일류 기술을 개발한 중소기업 사장님. 그 원천 기술의 개발은 사장님의 하루하루의 집념과 성실의 열매였다. 하지만 대기업 농간에 하루 아침에 사업체와 전 재산을 잃었다. 법에 호소해 봤지만 싸울수 있는 링에 오를 수조차 없었다. 왜냐하면 대기업이 서류조작으로 소송 자체를 사전에 철저히 막았기 때문이다.

고대 의대 동기 여대생을 집단 강간하고, 사진까지 찍은 의대생 3명. 이들의 부모는 피해자에게 '너 때문에 우리 아들 앞길을 망쳤다'망언을 서슴없이 퍼부었다고 한다. 죄를 짓고도 큰소리 뻥뻥쳐대는 가해자의 부모들은 로펌 고위관계자를 비롯한 소위 '근본있는 놈들' 이었다. 이들은 법조계의 인맥을 동원해 가해자에게 불리한 조건과 상황들을 원천봉쇄하고 피해자가 법의 링에 오를 수 조차 없게 했다. 피해자는 병원에서 나날이 정신이 쇄약해져 가고 있다.

이 두 사례는 몇 달 전, 삼성 전자 공장에서 근무하다가 백혈병으로 죽은 아들 때문에 삼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건과 그 구조가 완벽히 일치한다. 이 부모가 소송을 제기하고 이 사건을 이슈화 시킨 의도는 비슷한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이 생겨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작은 시도였다. 하지만 이후에도 같은 피해는 계속되고 있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감시 시스템은 계속 눈을 감고 있다.

중소기업 사장님과 강간 피해 여학생 그리고 삼성에 아들을 잃은 부모는 모두 돈이 없고 빽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사회의 기득권층에게 피해를 입었고, 이 부당을 국가 감시체계에 호소했지만 감시체계가 사회 기득권층에 의해 무력화된 사례다.

프로그램 말미의 사례는 국가가 '근본있는' 놈들에게 얼마나 관대한지 하나의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 몇 년 전 도미한 기자출신이 운영하는 국가비밀정보제공 사이트. 이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분의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위계층이 수십년 전 외국으로 빼돌린 재산이 어마어마 하단다. 그 자신도 매우 놀랐다니, 액수가 천문학적인가 보다.

그런데 그 정보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누구든지 수집할 수 있는 공개된 정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국가가 이를 발견하기는 매우 쉽다고 한다. 문제는 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의지의 문제라고. 결국 '근본있는'놈들의 불법은 눈감아 주는 것이 국가감시체계였다.

위 중소기업 사장님과 재래김 공장 사장님은 마지막에 울먹이면서 말했다. 공정한 사회체제를 믿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살았는데 그 댓가로 나에게 돌아온 것은 절망이었다고. 이 사실이 미끼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변호사 박원순은 인터뷰에서 기득권 층이 의도적으로 잘못한 것이 있으면 재기하지 못할 정도의 패널티가 가해져야 하는데, 그런 제도가 없으니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됐다고.

다큐를 보는 내내 공정한 사회를 지향하는 지표들은 하나도 볼 수 없었다. 내가 TV화면을 통해서 본 대한민국의 모습은 조폭국가와 다르지 않았다. 현대입헌주의 국가라면 당연히 각종 불의한 차별로부터 국민을 최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하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게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헌법 제11조 제1항(평등권)과 제34조 제1항(인간다운 생활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헌법 조항이 제대로 해석되고 기능하지 않는 국가라면 조폭국가라 불러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1998년 지만원은 한국 사회의 각종 문제점을 지적하는 <국가개조35제>, <시스템을 통한 미래경영>을 출간하고 2000년<한국호의 침몰>등 여러 사회비평서를 출간한 바 있다. 특히 <한국호의 침몰; 이대로가면 망한다>의 요지는 공정하지 않은 시스템을 고치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정도 이다.

지금 지만원을 언급한 이유는 책에서 지적한 '상식을 벗어난 체제들'이 현재도 여전히 진행중이라는 사실이며, 여기에 더하여 '근본없는' 자들이 활게칠 수 있게끔 체제가 길을 열어주고 있는 중이라는 점이다.

진짜 위로부터 변하지 않는 이상 조폭국가는 지속될 것이며, 아마도 재수없으면 살아 생전에 진짜 '침몰하는 한국호'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헌법 11조 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헌법 34조 1항: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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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8-29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가진 자의 세상이고, 그렇기에 우리는 무엇이든 가지려고
이렇게 발버둥치나 봅니다...... 아, 몸살약 먹어야겠어요, 지난번에 먹고 남은. ㅠㅠ

yamoo 2011-08-29 22:15   좋아요 0 | URL
이거 보면서 디게 열받았다는..--;;

아뉘, 몸살걸리셨나보군요! 감기는 초기에 확~ 잡으시길!^^
 

어제 친구 녀석한테서 전화를 한 통 받았다. 그냥 안부 전화였으면 좋았을 텐데, 주요 요지는  자기가 드디어 네이버 지식인 '신'등급에 올랐다는 자랑질 이었다. 

내, 첫 반응은...헉, 정말이냐?? 라는 것.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네이버 지식인을 한창 하고 있을 때 난 고수를 달리고 있었고, 이녀석은 초수도 아닌 시민 계급에 있었으니, 속으로 은근히 부러워하고 있었나 부다..ㅎㅎ  

(난 영웅 등급에 등극하기 바로 직전에 난 지식인을 그만뒀고, 그 내공으로 네이버 음악들을 사는데 써버렸다.)
 

혹시, 네이버 지식인을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지식인 등급을 소개해 본다. 체계는 다음과 같다. 제일 처음은 내공0인 시민 계급으로 시작~

초수  1,501  
중수  3,001  
고수  7,001   

영웅   15,001 
지존   35,001   

초인   65,001  

식물신   100,001
바람신   130,001
물신   170,001
달신   230,001
별신   300,001
태양신   400,001 

알라딘 서재지수와 좀 비슷한 구석이 있긴하다. 아마도 서재 달인정도가 식물신 이상 등급에 대응되는 것 같다. 친구 녀석이 자랑질한 신등급은 식물신부터~ 1년 반 정도 활동해서 신등급에 올랐다니, 정말 대단한 녀석이다. 얼마나 많이 질문에 답을 한 것인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ㅎ 

네이버 지식인을 하면 솔직히 은근히 재미 있다. 나의 빈약한 지식을 나눠준다라는.. 어떤 얄팍한 나눔의 '봉사'(?) 기능도 있고, 자신이 어떤 지식을 구축하고 있는지 쌓아가는 재미도 있다.  

네이버가 처음 내걸은 의도도 신선했고...헌데, 어느 순간 네이버로부터 지식인 지원금을 준다는 멜을 받았다. 고수 이상 등급에 200만원까지 지원하고 해당 프로젝트를 지식인에 올려달라라는 것. 

그 멜을 받고 난, 당장에 지식인을 때려쳤다. 이것들이 드디어 지식으로 장사를 하는구나...뭐,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 시기가 그렇게 빠를 줄은 몰랐고, 대놓고 일정 등급이상 공모를 할 줄은 몰랐다. 계획서를 제출해서 선별한다는데...뭐, 사업계획서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당시 여행 좋아하는 사람들은 신나했다. 보조비 받아 여행하고 그 댓가로 그 지역에 대한 새로운(?)사실을 작성하여 네이버 지식에 올리기만 하면 됐으니...그들에게는 1석 2조의 이벤트였던 것 같다. 

그들은 알기나 할까? 자기들의 행위가 돈을 받고 지식을 팔아넘긴다는 사실을. 네이버가 노렸던 것은 네이버 지식인의 내용이 전문성에 위협을 받자 그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돌파구 였다. 헌데, 그 돌파구가 돈을 주고 지식을 사는 행위였다니... 이게 과연 정당한 일인지 난 여전히 모르겠다. 단지 난 아직까지도 네이버의 행위가 괘씸하다고 생각하는 1인이다. 

그런데, 어제 이곳 알라딘에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알라딘이 저번달 파워블로그를 공모한 모양이다. 지원금도 주는 모양인데...파워블로그 정책과 네이버 지식인 퀄러티 향상 정책...이거 본질적으로 같은 거 아닌가.. 

아...모르겠다. 그런데, 알라딘 파워블로그에 선발되면 책 기사 쓰는 일간지 기자 정도 되는건가? 그래서 출판사에서 신간이 나오자 마자 기사 써달라고 보내주는 그런 것인가?  흠...알라딘 파워블로그가 뭔지 모르지만...정책금을 준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전화 한 통에, 또 흥분했구나...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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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1-08-27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무님. 알라딘에서는 파워블로그를 공식적으로 공모받고 지원금을 준 적이 없는 걸로 아는데요. 예스24와 헷갈리시거나 지난달 정부기관에서 진행한 것과 혼동하시는게 아닌가 싶어요.

yamoo 2011-08-27 22:40   좋아요 0 | URL
아...그렇군요..제가 혼동했나봅니다. 그게 예스24였군요~
잘 알겠어요, 정확한 정보로 일깨워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마늘빵 2011-08-27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워블로거는 정부 출판 관련 기관에서 하는 거에요. ^^ 뭐 특정 책을 줘서 읽고 홍보글을 쓰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하던대로 알아서 책과 관련된 글을 월 다섯 개만 올려라, 그런 거니 개인에게 자율적이라고 보는 게 맞겠습니다. 그런 제도라면 오히려 권장할 만하지 않을까 싶어요. ^^

yamoo 2011-08-27 22:43   좋아요 0 | URL
네~~~제가 혼동했습니다..^^;; 그런 정부정책이라면 정말 권장할 만한 일이지요~ 여기저기 파워블로그가 있으니 정말 헷갈리네요..무지를 깨우쳐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프님께도 감솨~~

양철나무꾼 2011-08-27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하는 거 말씀하시는 거 아닌가요?

작년엔 한달에 몇 권 책을 선정해서 그 책의 리뷰를 올린 사람 중에서 당선작을 내고 상금을 주고 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근데, 그 선정 책조차 홍보가 되지 않고 해서...나중엔 흐지부지했었죠.

올해는 파워블로거에게 책을 사보라고 지원금을 주고 리뷰를 한달에 다섯개 올려라,,,로 바뀐걸로 알고 있습니다.

전, 블로그라면 알라딘 서재 하나로도 버거워 하는 족속인지라~
네이버로는 못 쫒아가요~ㅠ.ㅠ

암튼, 제게는 yamoo님이 누구 못지않은 파워블로거 이십니다~!

yamoo 2011-08-27 22:47   좋아요 0 | URL
전, 그런 좋은 제도를 왜 몰르고 타사의 파워블로그만 안 것일까요??
보니, 이 정부제도를 저만 몰른것 같습니다..ㅜㅜ
근데 디게 재밌네요...지원금을 주고 의무적으로 다섯개 올려라~~ 명령이네요..ㅋㅋ 진짜 어떻게 신간 5권을 올린데요~~ 정말 대단하다는! 전 하라도 못하겠네요..ㅎ

거참, 그런 말씀을 하시단...나무꾼님은 정말 알 수 없는분이에요...예, 저로써는 정말 불가사이합니다..예~ 불가사의해요..^^;;

순오기 2011-08-27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알기에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공개모집했고
알라딘에서 유일하게 글샘님이 선정되셨답니다.
글샘님 서재에 가면 관련 글 볼 수 있습니다~~~ ^^

yamoo 2011-08-27 22:48   좋아요 0 | URL
예, 제가 무지해서 타사 블로그 정책과 혼동했습니다.
알라딘에서는 글샘님이 선정되셨군요!
무지를 깨우쳐주시니, 넘넘 가사합니다. 글샘님 서재에 가서 확인해 볼께요..아우, 감사합니다~~

꿈꾸는섬 2011-08-27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만 글을 올리는 저로서는 이곳저곳 섭렵하고 계신 님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yamoo 2011-08-27 22:50   좋아요 0 | URL
이곳저곳 섭렵한게 아니라, 엔날일이에요..ㅋㅋ 알라딘 이전에는 블로그를 3개씩 했는데, 모두 폐쇄하고 이곳에서만 놀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