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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텔 시절까지만해도 돈을 주고 신문을 사야 좋아하는 신문사 주필의 글을 볼 수 있었다. 중앙일보 강위석님의 글 때문에 중앙일보를 열독할 정도였다. 

 

그런데 인터넷 시대가 가속화되다 보니 이제는 각 신문사의 대표적인 칼럼들도 공짜로 보는 시대가 됐다.(인터텟시대라고 하던 99년만 하더라도 신문사 칼럼을 무료로 볼 수는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칼럼자 별로 폴더화하여 차곡차곡 파일로 스크랩할 수 있기까지 하다.

 

더군다나 각 신문사 사이트에 접속하면 외부 칼럼 기고자까지 이름순으로 파일링화 돼있어 언제든지 놓친 글들을 찾아 읽을 수가 있다. 와~ 감탄사가 나올만 하다. 이렇게 편리할 수가!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신문사 사이트를 서핑하다 보면 참으로 놀라운 걸 발견한다. 우리시대 내로라하는 논객들의 글과 정성들인 기획기사를 무료로 검색해서 읽을 수 있다는 사실(앞으로는 어떻게 될 지 모르겠지만 현재까지는 서핑자에게 공짜다).

 

그런 글들은 돈을 주고 살 정도로 아깝지 않은데 말이다(사실 오프라인 신문이나 잡지는 돈을 주고 구독해야 한다. 하지만 동일한 기사라 하더라도 온라인 기사는 무료다). 한 신문사의 주간지는 명품 기사로 소문이 자자해 논술 교재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 모든 기사가 온라인 상에서 무료다!

 

<블로그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책에 보면, 이제는 글로써 돈을 버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한다. 1인 매체 시대를 맞아 전문가 뺨치는 아마추어 글들이 쏟아져 나와 글로써 돈 버는 시대가 갔다는 것이다. 아주 수긍할 만한 말이다. 이 곳 알라딘에서도 이런 현상을 쉽게 목도할 수 있으니.

 

특히 알라딘 서재는 책을 내는 전문 작가들이 꽤 된다. 본래 직업이 교수인 분들과 작가인 분들이 이곳에 블로그를 개설해 글을 올리는 분들도 있고, 이곳에서 좋은 글들을 올려 나중에 책으로 출간하는 분들도 있다. 뭐든, 알라딘 서재에 올라오는 글들은 모두 무료로 볼 수 있다는 것.

 

돈을 주고서라도 꼭 보고 싶은 글들이 이곳 알라딘 서재에는 꽤 넘쳐난다. 그런데 무료이니 정말 아직까지는 횡재라 할만하다. (타 포털처럼 복사방지 기능도 없다!) 이 좋은 시절이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아주 좋은 글을 무료로 읽는 즐거움은 이전에 칼럼을 읽는 재미와는 비교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스마트 폰으로 언제 어디서든지 알라딘에 접속하여 이웃 서재 글을 읽으면서 미친듯이 웃으면서 글을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이 뿐인가. 어떤 광고문구도 나에게 책을 사라고 유혹하지 못한다. 하지만 알라디너의 리뷰들은 한 순간에 책 구매를 종용하고, 사야할 리스트까지 구성해야 할 정도이다.

 

뭐, 지금까지 많이도 주절거렸지만, 요점은 하나다. 값어치 있는 글들이 온라인 상의 도처에 있다는 것~


얼마전(그치만 좀 됐다) 스티븐 킹이 인터넷으로 소설을 발표하여 공전의 히트를 쳤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소설은 유료였다. 무료인터넷시대에 킹은 인터넷으로 소설을 발표해 일종의 도박을 벌였지만, 상당한 손실을 보았다고 전해진다. 왜냐하면 책을 다운받은 사람들이 비용을 끝내 지불하지 않았다고. (역시 인터넷을 사용자들은 무료에 길들여 있다!)

 

그런데, 한 신문사에서 주관하는 어느 문학상 1등 당첨금은 1억원 이었다. 그 1억원 당선작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수상작가들은 일순간에 유명해 졌다. 무명작가일수록 이 상의 위력은 상당했다. 인세 수입도 상당할 정로라니. 흠, 인터넷 시대에도 여전히 글을 써서 막대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부인할 수가 없는 듯하다.

 

그래서 <블로그가 세상을 바꾼다>는 전망은 아직까지는 완전 유효하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보면 정말 글 잘 쓰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실감한다. 무료로 공개되는 전문가 뺨치는 글들을 볼 때면(아니 어떤 글들은 전문 작가 글을 넘어서는 것도 있다!)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에 수긍이 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어쨋거나 좋은 글을 마음껏 무료로 볼 수 있는 특권이 생긴 건 사실이니까.


그런데 이상한 건 여전히 책 값은 점점 높아만 간다. 물론 그만한 가치가 있는 기획 출판물들(지금까지 번역되지 않은 유명 원저)은 이해가 간다. 어떤 번역 책은 번역을 한 분의 노고에 경외감마저 느끼게 한다. (특히 슘페터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나 움베르토 에코의 저작들) 책 뒤의 가격표에 표시된 금액을 제시할 가치가 충분하다.

 

 

 

 

 

 

 

하지만 이른바 소설책들이 그리 높은 가격에 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걸 보면 참을 수가 없다(소설을 격하시킬 의도는 전혀 없다). 이름도 듣도 보도 못한 작가의 소설들이 예쁜 책 표지에 싸여 진열대에 꽂혀있다. 가격은 1만원을 가볍게 넘는다.

 

대충 서서 읽어보아도 싸구려 사랑타령 아니면 개인적 얘기 인 걸 알게 된다. 이런 걸 1만원주고 살 사람이 있을까 하고 서점에 물어보면 꽤 잘나간다는 답변이 들려온다. 정말 지루하고 재미없으며 진부한데도 말이다!

 

대형 서점 문학 코너에 가 보면, 문단에 이름을 건 중견 작가와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신인작가 그리고 기라성 같은 작가들의 소설들이 나란히 진열되어 있다. 그리고 같은 가격대에 팔리고 있다. 문단에서 검증된 분들의 작품들은 어느 정도 그 가격을 달고 있는 게 이해가 간다.

 

하지만 신인작가들의 문단 등단을 위한 수상작이 고가에 책정된다는 게 영~ 께름칙하다. 어떻게 그들의 글이 기라성 같은 분들의 글과 동등한 가격에 책정되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김애란의 작과 윤흥길의 작이 똑같은 가격을 달고 있다!) 잘 모르는 신인 작가들의 소설을 도서관에서 대여하여 몇 번 읽어봤는데, 영~ 신통치 않다. 젊은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참신성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런 작가들이 쓴 300여 페이지 안쪽의 글이 과연 1만원의 가치가 있는 것인지 검증해 보고 싶어진다.(그런데 누가 검증하지?) 우리시대 기라성 같은 논객들과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게 하는 글, 그리고 통념을 깨뜨리는 촌철살인 같은 글은 무료인데, 왜 그저그런(?) 작가의 글은 무료가 아닐까? 분량 차이인가? 문학성 차이인가? 모르겠다.

 

분명한건 이' 글의 세계'에서 만큼은 경제학 법칙인 ‘가격의 법칙’과 ‘수요의 법칙’이 전혀 통용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어떻게 동일하지 않은 품질의 ‘소설 상품’이 동일한 가격에 팔리며, 세상을 비판하고 진단하는 뛰어난 글이 무료로 통용될 수 있단 말인가.


이 시대에 글의 값은 과연 정당하게 책정되는 것일까?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다고 수많은 경제 교과서에 서술되어 있던데, 왜 글의 시장만은 예외일까. 문학이라서? 인간의 영혼을 다루는 소설이라서?

 

그렇다면 가격을 달고 다른 상품과 똑같이 바코드가 달려 팔려나가는 이유는 뭐지? 이 시대에 문학도 분명한 상품이다. 그런데, 바로 그 상품 가격이 시장의 법칙을 따르지 않고 있다. 수요가 몰리는 책은 가격이 오르지도 않고 수요가 없는 책이 가격이 떨어지지도 않는다. (경쟁력 없는 책은 일찍 절판되는 정도??) 가치의 경중도 없이 동일한 가격에 팔리고 있다. 그리고 온라인이라는 한쪽에서는 좋은 글들이 무료로 퍼져가고 있다. 이 어찌 기막힌 역설이 아닐까.


내가 지금 끄적거리고 있는 이 글도 얼마나 하찮은지 모르겠다. '단상들'이라 글에 철판을 깔고 쓸 수 있어 다행이다.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을 읽으면서 문득 든 생각이, 신인 작가 소설들이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보다 더 비싼 값에 책정 돼 있다는 사실에 갑자기 울화가 치밀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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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3-09-24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슘페터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는 최근에 '빛나는 여러 훈장들까지 모조리 반납한' 어느 전직 대톨령이 '서슬 퍼렇게' 굴던 시절에 (삼성출판사 판으로) 읽었었는데, 그 때 정말 '이런 책도 다 있구나' 싶은 '호된 충격'을 주체하지 못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르네요.

그 당시만 하더라도 슘페터의 책들을 모조리 읽어봐야 겠다는 결심으로 '불끈' 했었는데, 그 뒤로 그를 오랫동안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yamoo님 덕분에 가까스로 알게 되는군요.

yamoo 2013-09-25 13:51   좋아요 0 | URL
아마도 고전을 즐겨 읽으시던 오렌님께서는 이미 이 명저를 읽어보셨겠지요. 다만 세월이 흘러 기억에서 잊혀졌을 뿐. 근데, 그 생각을 끄집어 내게 핸 준게 제 글이 됐다는,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저는 슘페터의 주저인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를 학부 2학년때 친구와 같이 원서로 읽어나간적이 있습니다. 헌데, 문장들이 너무 난삽하고 어려워서 중간까지 읽다가 포기했습니다. 문장 하나가 막 10줄 이상....저도 삼성출판사본으로 읽었는데, 역자였던 이상구 박사님이 그렇게도 존경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분이 번역해서 새로운 번역본이 나왔는데, 전 엔날판에 더 애정이 있습니다.
그의 주저가 좀 늦게 번역되어 나온 지라 <경제발전의 이론>은 2011년에야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근데, 번역이 그리 좋지 않더군요. 어쨋든, 제글에서 슘페터의 옛 흔적을 찾으셨다니, 정말 다행이어요^^

2013-09-25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9-25 1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3-09-25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다고 수많은 경제 교과서에 서술되어 있던데, 왜 글의 시장만은 예외일까."
- 정말 그러네요. 그런데 이 생각을 해 보지 못했어요.ㅋ

그런데 만약 이런 식으로 책값이 매겨진다면 책을 내는 사람이 많이 떨리겠네요.
그래서 자신 있는 사람들만이 책을 내게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게 좋은 현상이 될지, 나쁜 현상이 될지 모르겠네요.
자신감과 역량은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어서 말이죠.

yamoo 2013-09-25 13:57   좋아요 0 | URL
저두 잘 몰라요~ㅎㅎ 그게 좋은 현상이 될지 나쁜 현상이 될지..
베르그손은 항상 자신있는 책만 출판했다해요.

단지, 저는 요즘 젊은 한국 작가들의 소설에 실망하여 이런 투덜거림을 해봅니다.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보다 더 비싼 한국 소설들의 가격은 확실히 뭔가 문제가 있는 듯한데, 그 문제가 뭔지 확실하게 말할 수가 없어요. 책가격과 글 가격에 대한 어떤교통정리가 필요할듯 하다는 생각이 나서요. 근데, 정리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지 감히 예측을 할 수가 없네요. ^^;;

페크pek0501 2013-09-25 14:05   좋아요 0 | URL
비싼 한국 소설들의 가격은 확실히 뭔가 문제가 있는 듯한데, - 에 동의합니다.
저도 그런 생각이 든 적 있는지라... ㅋ
 

1. 오늘 지하철 무인 검색대에서 우연히 뉴스를 넘기다가 내년도 대학입시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수능에서 A/B형이 없어지고, 한국사가 필수과목이 된다고..

아, 도대체 이 나라 교육부는 뭘하는 집단인지 모르겠다. 교육은 인륜지대사라는데...그 일은 너무도 쉽게 해마다 전 뒤집 홀랑홀랑 뒤집어진다.

수능 문제를 A/B형으로 출제한다는 방침은 어떤 놈 머리에서 나왔는지 정말 궁금하다. 1년만에 없어지는 것이니, 실패한 정책인데...이를 입안한 넘과 결정한 넘은 실패한 입시정책을 내놓고도 버젖히 고위 교육공무원이라고 목에 힘주고 다니겠지. 정말 파렴치한 놈이다. 자기의 실수로 수십만명의 입시생들이 안할 고생을 사서 하고 있으니~

정책실명제가 실시 됐다고 하는데, 허울 좋은 명분인듯..

아, 정말 한국에서 대학가는 학생들이 불쌍하다.

 

2. 알라딘에 숨은 고수들이 많은 지 진작에 알았지만 또 한명의 고수를 발견하여 즐거움 반 놀라움 반인 상태다. 글이 많이 없어 알라딘에 둥지를 튼지 얼마 안된 분 같은데, 이 분은 정말 모르는 책이 업는 듯하다. 책도 엄청 많아 옥탑방에 까지 책을 보관해 놓는 듯..

얼마나 박식하신 지 포스팅 해 놓는 글은 거의 찜을 하게 된다. 이분 서재에 가면 듣도 보도 못한 책들이 주르륵 나열이 되어있는데, 페이퍼를 읽고 있노라면 책을 좋아하고 모은다는 내가 그렇게도 하찮게 여겨진다. 정말 알라딘에는 작가, 교수, 장서가들이 곳곳에 있다. 뭘 함부로 말하고 내뱉기가 너무도 조심스러워지는 공간이다.

 

3. 집에서 나는 '지랄'로 통한다. 무슨 말을 못하겠다. 말만하면 부모님으로부터 '지랄하고 자빠졌네!'라는 말을 듣는다. 헐~ 맨날 들어서 내 아호가 된 듯하다. 천안함 사건이 조작됐다고 하는데...하면 지랄!, 국정원이 정치에 개입한 정황이 너무도 명백하니 이 나라의 정치가 후퇴하는 거 같다는 말을 해도 지랄! 교회에 가기 싫다고 해도 지랄! 박근혜의 실정을 지적해도 지랄! 난 뭘 말해도 '지랄맞은 녀석'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산다. 음...난 지랄하다 죽을 팔자인가 부다..

 

4. 요즘 컬렉션화하는 책들이 늘고 있다. 정말 이 병을 어이 할 지..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르네상스>를 보니, 욕심이 생기는 거다. <30초 철학읽기>를 보니, 30초 시리즈를 또 찾게 되고, <클레시커 신화>를 손에 넣고 보니 또 컬렉션하고 싶다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이럼 안되는데...ㅜㅜ

 

 

 

 

 

 

 

 

 

5. 요즘 도서관엘 자주 간다. 보니, 김병완이라는 작가가 저자 직강을 하나보다. 궁금해서 검색해 보니, 삼성전자를 다니다가 나와 전업작가가 된 모양인데 도서관에서 기적을 만났단다. 도서관에서 1만권인가를 읽었다는데....어떤 책을 읽고 어떤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이라도 해 봐야 겠다. 검색해 보니, 10권도 넘는 책을 썼다. 흠...난 도서관하고 친해서 자주 도서관을 이용하는데, 난 왜 도서관에서 기적을 만나지 못했는지 참으로 의문이 들었다. 저자의 책을 읽고 심한 자괴감이나 들지 않으면 좋겠다.

 

 

 

 

 

 

 

 

 

 

6. 갑자기 드는 생각이....내가 참 오래도 산다는 느낌이다. 나는 빨리 생을 마감하고 싶은데, 신의 뜻은 그런 게 아닌가보다. 하루하루 사는 건 그래도 나름 재밌는데, 내일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많이 무섭다. 아마도 이상의 작품을 본게 부작용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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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싸리 2013-08-27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누구인지 알려주시면 감사!
그래도 오래 사셔야죠. 세상엔 수집해야할 책이 무궁무진 하잖아요. 읽을 책도 그렇고요. ㅎㅎ

yamoo 2013-08-28 08:41   좋아요 0 | URL
그렇겠지요..ㅎ 수집해야 할 책과 읽어야 할 책 때문에~^^
감사합니당~~~

곰곰생각하는발 2013-08-27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생각해도 알라딘은 고수가 많습니다. 전 철새라서 각종 인터넷 서점을 다 돌아다녔으나
그나마 리뷰가 가장 알찬 곳은 여기더라고요. 워낙 유명하신 분들도 많고..
대부분 그분들 평가 보고 책을 고르고 있습니다.

yamoo 2013-08-28 08:43   좋아요 0 | URL
음...전 겔러서 각종 인터넷 서점을 돌아다녀 리뷰를 읽지 않습니다. 오~곰발님으로부터 좋은 정보를 얻네요. 이곳의 리뷰가 가장 알차다니...우왕~~~ 저두 여기 리뷰만 보고 책을 골라요...다른 덴 어떤 리뷰가 있는지 몰룬다는...
흠...리뷰 전문 인터넷 서점 알라딘 정도 되겠는데요~ㅎ

야클 2013-08-27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초절정 고수가 누구신지 저도 참 궁금하네요.
무협지에서는 무림대회가 열리면 끝물 쯤에 나타나 천 년 전에 실전된 무공을 펼치며 고수의 실체를 드러내는데요... 그 고수가 은거해있는 서재동굴은 어딜까요? ㅋㅋ

yamoo 2013-08-28 08:49   좋아요 0 | URL
그쵸....무림대회에서 끝에 쯤에 홀로 나타나 실전 비급 무공을 실현하고 유유히 사라지는..ㅎㅎ 천룡팔부의 단예 육맥신검..영웅문 사조영웅전 장무기 건곤대나이신법, 소오강호 영호충의 독고구검 등이 야클님께서 예를 든 초절정 무림고수가 아닐까 합니다~ㅎㅎ

2013-08-29 15: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9-02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3-09-01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2번 동감.
4번도 동감.
6번은 반대. 저는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어요. 가늘고 길게... 킥킥~~

yamoo 2013-09-02 12:00   좋아요 0 | URL
아....그러시군요. 페크님은 건강하게 오래오래~~~

얼릉 문제를 해결하고 맘을 정리하셔서 조속히 서재에 복귀를 해 주시길!

사마천 2013-09-18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amoo님께 선물을 하나 드리려고 합니다. http://www.ustream.tv/recorded/35294179
김병완 저자가 북포럼에서 이야기한 토크입니다. ^^ 날 목소리, 생얼굴을 보시면서 즐거운 시간 되시기를..

종이달 2022-06-11 0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지난 주 카페에서 있었던 일이다. 신림역 모 카페에서 빙수를 먹고 있었는데, 나와 같은 교회를 다니는 한 무리의 고등학생들이 와서 앉았다.

 

교회 티셔츠를 입은 학생 중 하나가 아는 척을 한다. 낯이 익은 학생이라 반갑게 인사를 받아줬다.

 

그 학생 보고 방학이 끝나 아쉽겠다고 하니, 그렇다고. 그러면서 그래도 오늘(8월 15일) 노는 날이라 좋다고. 그래서 오늘 왜 노는 날인지 물어보니, 모른단다~ 옆에 있는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역시 모르는 표정. 그냥 쳐다만본다.

 

내가 정말 모르냐고 묻자, 한 아이만 빼고 모두 모른다는 대답. 광복절이라고 대답한 학생에게 그 날의 의미를 물으니 해방된 날이라는 건 아는데, 그게 몇 년도 인지는 전혀 모른다.

 

어익쿠야~! 그래서 노파심에 4대 국경일은 아냐고 하니, 아는 학생이 아무도 없었다. 5명 모두 몰랐다. 그러면서 자기네들은 국사 공부를 하지 않아 그런 거는 전혀 모른다고.

 

일본에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기는 이유도 몰랐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언제 일어났는지 전혀 몰랐으며(심지어 삼국시대라는 대답도 나옴), 6,25가 언제인지, 왜 남북한이 나뉘어졌는지 모르고 있었다.

 

무인시대가 언제인지, 조선이 몇 년간 지속 됐는지 몰랐고, 심지어 어떤 학생은 학원에서 조선 왕의 계보를 7명만 알려줘서 태종태세문단세 까지만 암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선은 7대왕에서 끝났냐고 물었다.

 

이 어처구니 없는 물음에 참 난감했다. 학생들은 모두 고2~고3 학생들이다. 고3 학생 두명은 내신 2등급에 서울에 있는 대학을 목표로 공부한단다. 고2들도 모두 범생이들 같다. 그런데도 한국사 지식은 초등학교 수준도 안 된다.

 

정말 기가 찼다. 대통령도 노무현 이후만 알고 있었다. 4,19혁명이 1960년도라고 하니 그렇게 오래된 이야기냐고 놀라는 표정들.

 

난, 지금 그들의 처음 듣는 다는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학교 교과서 이외에 아무도 가르쳐 주는 사람들이 없고, 학교에서도 수업 듣기 싫으면 안들어서 모른다고. 천진난만하게 말하는 그 학생들에게 따끔한 충고 한 마디도 해 줄 수 없었다.

 

뭐, 내년부터 한국사 수업을 강화하겠다고 하는 소리를 뉴스에서 듣기는 했지만, 학생들의 기본 역사 상식이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설대를 준비하는 애들 빼고는 자기 학교 학생들이 자기들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는 말은 결국 역사 교육이 잘못됐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자기 나라 역사가 단지 암기할 게 많고 지루하다는 이유만으로 교육에서 외면 받는 실상은 우리 기성세대들이 후세를 잘못 가르친 탓이다.

 

교육개혁이라고 해마다 뜯어 고치는 교육정책이 결국은 역사의식도 없는 학생들을 마구 양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30대가 되고 40대가 되는 때를 생각하니 참으로 암담하다.

 

국영수만 잘하는 기능인이 돼서 돈 잘 벌고 편안하게 사는 것만 암암리에 가르치고 있는 현실이니 더 말해서 뭘할까. 연예인, 판검사, 의사 등이 되는 걸 인생목표로 하는 학생들에게 역사는 안중에 없는 과목일 것이다.

 

타치바다 타카시는 오래 전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라는 책에서 교양과 기본지식이 없는 도쿄생들을 '바보'라고 질타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학생들은 일본의 학생들보다 더 바보일 거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적어도 일본의 고등학생들은 독도가 타케시마라고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전부 배워 알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독도의 실상을 아는 건 한국 근대사를 아는 하나의 큰 축이다)

 

4대 국경일도, 그리고 4,19 혁명도 모르는 고등학생들을 키운 건 누구의 책임인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개념도 모르고 온통 모든 시간을 영어와 수학 공부에 열을 올리는 입시생들에게 어느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들을 그렇게 키운 건 바로 부모세대다.  반성하고 또 반성해야 한다고 본다. 사태는 말할 수 없이 심각하다. 진보와 보수 진영의 책임론을 떠나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정말로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세울 때인 듯하다.

 

정말 우리 나라 교육 정책에 대해서 개탄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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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 2013-08-20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는데 정말 고등학생들이 이정도일줄이야 너무 놀랍고 안타깝고 슬프네요

yamoo 2013-08-21 09:0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미라다님^^
저두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한국사 교육이 강화되야 될듯합니다~
사회과목 전부는 아니더라도 몇 과목은 확실하게 가르쳐야 할듯..
이 나라 교육은 계속 이상한 방향으로 가는 거 같아요~

세실 2013-08-21 0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정도로 심각하군요.
고2 딸내미는 한국사 시험본다고 열공해서 그래도 낫네요.

yamoo 2013-08-21 09:07   좋아요 0 | URL
정말 심각합니다. 한국사를 준비하는 학생들과 서울대를 준비하는 학생들만 공부하는 과목이 한국사가 됐지요. 한문도 마찬가지더군요. 한자능력시험 준비하는 학생들과 아주 일부 학생만 공부를 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역시나 대한민국도 못쓰는...

근데, 세실님 딸내미는 정말 기특하군요! 와우~

saint236 2013-08-21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고등학생들에게 종교개혁에 관한 설명을 하는데 아무도...그녀석들 왈 "저희는 세계사 안배워요...." 그저 웃지요

yamoo 2013-08-22 11:27   좋아요 0 | URL
요즘 고교생들하고 대화해 보면 그렇더군요. 툭하면 안 배워서 모른다고. ㅎ 선택과목 아니라서 모른다고..저두 그냥 웃고 넘어가는데...뭔가 잘못돼간다는 느낌입니다..에휴~

지나다 2013-08-21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교육 정책도, 현실도 개탄스럽지만 그 정도 나이를 먹었으면 어린 것도 아닌데, 그래도 생각이라는 게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게나 아무 것도 모르면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게 더 심각한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TV는 누가 시켜서 보고, 게임은 누가 가르쳐서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어른들이 부족하고 많이 잘못하고 있는 건 맞는데 아이들 스스로 바보가 되지 않으려는 자발적인 노력이 없으면 별 소용 없지 않을까 싶군요. 어떤 것이든 본인이 필요성을 깨닫고 할 생각이 있어야 수박 겉핥기 식의 공부라도 머리에 남는 게 있을 테니까요.
어른들의 잘못으로 인해 빚어진 현상인 것은 분명하지만 죽어라 공부하라고 닥달하고 시킨다고 다 공부하는 것도 아니건만 요즘 아이들이 그 수준이라니, 정말 기가 막힐 뿐이군요.

yamoo 2013-08-22 11:31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생각있는 학생들은 스스로 공부하시요.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나 한자능력검정시험도 척척 공부하지요. 요는 생각있는 학생들이 그리 많지 않고 학교에서 잡아주지 않으면 거의 공치는 녀석들이 아주 많다는 겁니다. 이런 학생들은 학교에서 놔두면 하나도 공부를 하지 않지요. 타율적으로라도 공부를 하게 해야 기본적으로 끄적거리는 녀석들입니다. 예전 학창시절만 돌이켜봐도 스스로 공부하는 학생들은 별로 많이 없습니다.
모르는 것을 학생 자신에게만 돌리는 건 뭔가 좀 잘못된 거 같습니다. 입시에서 한국사가 빠진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불능이거든요~ 그러니 많은 학생들이 입시 부담이 큰 한국사 공부를 하지 않는 거지요. 교육정책이 학생들을 많이 좌우하는 거 같습니다. 어쨌든 관심 감사합니다~^^
 

전문가. 우리는 이 타이틀을 단 사람에게 어떤 문제 해결을 원하거나, 값어치를 치루고 전문적인 카운셀링을 받을 준비가 돼 있다. 아니, 지금까지 우리의 생활 경험상 종종 도움을 받아왔다. 

 

쉽게 생각하자.  의사, 변호사, 공인회계사, 변리사 등등을 떠올리면 된다. 몸이 아픈 사람은 병을 고치기 위해 의사를 찾아가고, 권리를 침해당하여 억울한 사람은 변호사를 찾아간다. 세금 문제로 고민이 있는 사람은 회계사나 세무사를 찾는다.

 

그래서 전문가는 권위를 갖게 된다. 이들의 권위는 해당 분야의 국가 자격증으로부터 나온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문가들은 국가가 주관하거나 혹은 어떤 공식적인 단체가 인증하는 시험을 통과하여 그 자격을 획득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전문가가 아닌 일반 사람들은 전문가의 권위를 존중하며, 정당한 서비스 가격을 지불하여 전문가들이 보유한 전문 서비스를 공급받는다.

 

이는 매우 상직적이고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식이 인문학이라는 학문의 장으로 넘어오면 아주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다. 일반인들이 사회에서 값어치를 치르고 전문가의 서비스를 받는 것과는 아주 판이하다.

 

예컨대 백화점을 비롯한 무슨 무슨 문화센터나 무슨 강연회에서 어떤 인문학 강좌가 열린다고 치자. 보면 몇 강에 얼마 하는 식으로 프로그램이 열거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심지어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공공 도서관에서 인문학 책읽기 강좌도 열린다)

 

<처음 만나는 인문학>, <OO와 함께 읽는 들뢰즈>,<OO를 위한 철학강좌> , <쉽게 읽는 고전>,  등은 꽤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인문학 강좌들이다.

 

인문학 책들은 또 어떤가? 심지어 경제학과 경영학에까지 '인문학'타이틀을 붙여 출간한다. 인문학이 죽었다고 하는데, 몇 년전부터 인문학 르네상스가 도래한 것 같다. 도서관과 대형서점에서 저자 출간 인문학 이벤트를 안하는 곳이 없을 정도이니.

 

그런데 도처에 열리는 인문학 강좌와 세미나는 과연 전문성을 보장하는가? 하나의 사례를 상정해 보자. 한 대학의 영문학 교수(그냥 K교수라 하자)가 라캉을 통한 소설 읽기라는 주제로 책을 낸다. 그 교수가 이번에는 라캉의 이론으로 영화를 분석하는 단행본을 낸다.

 

그런 다음 그 분석틀을 갖고 사회를 비평하는 에세이를 출간하다. 그리고 나서 각종 대형 서점을 위주로 저자 강연회에 나선다. 이후에 그는 각종 TV 프로그램에 종횡으로 나오면서 문화비평을 한다. 문화비평서와 영화비평서의 잇따른 출간을 계기로 그는 논객으로서 대접받는다.

 

이렇게 문어발 식으로 지식을 확장하는 K 교수의 전공은 현대 영미 소설이다. 영국 OO대학에서 헨리 제임스의 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게 이 교수의 전공이다.

 

이 사람은 현대 영미 소설, 그것도 헨리 제임스에 관해서는 확실히 전문가 이다. 제임스의 소설 문체나 그의 소설기법을 배우기를 원하면 K교수에게 값어치를 내고 배우면 된다. 그는 제임스 연구에 권위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K교수가 이번에는 영화비평을 넘어 사회 비평을 한다. 과연 그는 영화비평과 사회비평의 전문가인가? 매스컴에서 또는 강연회 소개에서 그는 전문가로 소개받는다. 인문학은 한 분야에서 전문가이면 두루 전문가인가 보다. 그가 제임스 전문가를 넘어 사회비평 전문가로 행세하는 것은 내과 의사가 법률전문가라고 강연회를 다니면서 강의료를 받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도대체 인문학에서는 전문가가 누구인가? 적어도 우리는 학문 분야에서 그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을 그 학문 분과의 전문가라고 인정해 준다. 대학 교수이건 초등학교 선생이건 그가 박사학위 소지자라면 그는 그 분야에서 전문가다.

 

비록 초등학교 선생이라도 그가 들뢰즈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면 어떤 곳에서건 요청받은 곳에서 혹은 필요에 의해 강좌를 열어 소정의 값어치를 받고 들뢰즈 문외한들에게 필요한 지식을 전달해 줄 수 있다.

 

이게 우리가 전문가에게 해당 지식을 배우는 상식이자 기본이다. 하지만 현실의 대한민국에서 일반 대중을 상대로 인문학을 강의하는 해당분야 전문가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보자. 현재 가장 인기있는 인문학자는 단연 지젝과 들뢰즈다. 들뢰즈는 인기가 좀 식었지만 지젝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지젝과 지젝에 관련된 도서가 20권도 넘게 출간되고 있다.

 

여기 저기서 세미나가 개최되고 지젝을 통해 이름을 알리려는 지식인들이 도체에 있다. 그런데 나는 지젝의 사상을 열심히 전파하고 있는 사람 중에 지젝으로 논문을 써서 학위을 받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물론 들뢰즈 연구로 학위를 받아 그를 소개하는 인문학 강좌를 들어본 적도 없다. (내가 전에 열심히 참가 했던 미술모임에서는 들뢰즈로 학위를 받은 분이 와서 들뢰즈에 대한 미학이론 강의를 해 준 적이 있다.) 대개가 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관심 영역을 넓혀 지젝의 저서를 전방위로 읽은 정도 뿐이다.

 

지젝의 사상을 연구하고 그에 대한 문제점과 그를 넘어서는 비판적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없는 것 같다. 관련 논문들이 별로 없으니. (물론 내가 미학이나 영화 또는 문학 논문을 뻔질나게 찾아보는 열성분자는 아니다. 그런면에서 우물안 개구리일지도 모른다) 

 

누가 있는가? 지젝을 연구하여 연구 논문을 써서 교수사회에서 검증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가 내는 책은 모조리 사 볼 의향이 있으며 심지어 어느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면 찾아가 청강이라도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전문가가 낸 책이나 강연은 정말 쉽고 핵심을 청중의 수준에 맞게 풀어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사실을 입문서에서 확인하곤 한다. 대개 개론서나 입문서는 그 분야의 권위자나 전문가가 쓰는 책이 쉽고 알차다. 이런 대표적인 인문학 개론 총서 중 하나가 살림문고에서 펴내고 있는 [e시대의 절대사상]시리즈이다.

 

이 시리즈 책중에 김용환 교수가 쓴 홉스의 <리바이어던>이 있다. 홉스 사상의 핵심이 키워드와 주제를 중심으로 아주 간결하게 소개되어 있다. 놀라운 것은 홉스의 심오한 철학 사상이 매우 평이한 설명 속에 녹아 있다는 점이다. 고등학교 윤리교과서 정도의 수준으로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정리하고 있다. 이건 정말 그 분야에서 오랜 공력을 쌓은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전문가의 공력을 확인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책이 있다. 서민 교수의 <기생충 열전>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출간되기 전에 네이버에 연재되었는데, 우연히 연재 글 한 꼭지를 읽었다. 그리고는 이전에 쓰인 글을 모조리 찾아 읽어야 했다. 이름도 희한한 기생충에 대한 얘기가 너무 웃기고 재미있어 소설을 읽듯 단숨에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알라딘 서재에서 마태우스라는 필명으로도 유명한 이분의 글을 읽어보면 기생충을 다루는 학문이 매우 전문적인 분야인데도 불구하고 전문적인 내용을 너무도 쉽게 알려준다. 심지어 웃기기까지 하다. 기생충에 대한 내용이 말이다!

 

위 두 책의 사례에서 보듯이 전문가는 어려운 내용의 핵심을 아주 쉽게 전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문외한이 전문가로부터 무지를 깨우치고자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전문가들의 책과 강연이 있으면, 그 나라 국민의 교양이 향상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 지론이기도 하다.

 

그런데,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인문학 세미나와 강좌에서는 넘쳐난다. 왜 윌리엄 제임스를 전공한 사람이 '문화'에 대한 강좌를 여는가? 그 사람이 왜 들뢰즈에 대해서 전문가인냥 말하는가? 그가 문화와 들뢰즈에 대한 논문으로 학계에서 검증을 받았는가?

 

논문도 쓰지 않고 잡문인 단행본 몇 권을 내고 전문가 행세하는 건 대중을 기만하는 행태아닌가? 인문학이 하나에 전문가이면 여러 분야를 넘나들 수 있는 전문가이자 권위자라는 걸 보장해 주는 학문인가? 그렇다면 위 제임스 전공 교수가 하는 행태는 지극히 정상적일 것이다.

 

인문학이 인간에 대한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지만, 적어도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라면 제임스 소설 전문가가 문화 분석 전문가가 아닌 것쯤은 대번에 알 수 있다. 그런데 작금의 대한민국에서는 하나의 학위를 받은 전문가가 인문학의 여러 영역에서도 당연히 전문가로 통용될 수 있는지 정말 미스테리다.

 

위에서 예를 든 제임스 전공교수 사례는 극단적 사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수도 아닌 사람들이, 아니 박사학위도 받지 않은 사람들이 여러 학분 분야에 걸쳐 인문학의 전문가로 회자되는 현 실태가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서 페이퍼를 통해 이 현상을 짚어보고 싶었다.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대중 지식의 첨병이 될 때 그 나라의 인문학적 교양의 토대는 매우 척박해 질 것이다. 이것이 내 우려이고, 이 페이퍼를 쓰는 목적이다.

 

 

덧붙임

현재 우리나라나라에서 들뢰즈나 지젝, 그리고 프랑스 현대철학 이론을 수입해 소개해 주는 인문학자는 많아도, 들뢰즈나 지젝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학문적 한계점을 논하는 인문학자들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 학자가 쓴 들뢰즈 비판이나 지젝 비판서를 본 적도 없다. 그냥 외국의 신 이론틀로 무장하여 그들이 해 놓은 인식의 틀로 생각하고 말하고 있는 인문학자만 넘쳐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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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3-08-16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리학자가 나와 정치평론을 하고 어설픈 정치토론을 하는 나라인데요. ㅋㅋ
그나저나 이 무더위에 '멋지게 살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잘하시는 일 하시면서. ㅎㅎ
갑자기 지난번 페이퍼가 생각나서요.

yamoo 2013-08-17 10:20   좋아요 0 | URL
심리학자가 나와 정치평론하는 건 참을 수 있는데요...전문가 아닌 사람이 개론이나 입문강좌를 하는게 더욱 문제인 거 같다는..

네, 그런대로 재밋게 잘고 있습니다. 너무 더워서 헥헥 거리는 거 빼고는요^^

oren 2013-08-16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한계점을 너무 제멋대로 넘어서는 게 결국 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이런 비판글을 쓰는 일조차도 아무나 할 수 없는데 yamoo님의 글은 답답하고 가려운 데를 얼마간 '박박 긁어주는' 맛이 납니다. ㅎㅎ

yamoo 2013-08-17 10:26   좋아요 0 | URL
늘 좋게 봐주시는 감사합니다~^^

자신의 전공을 심화시키면서 관심영역을 넓혀가면 좋은 데, 자신의 전공은 도외시하고 대세인 학문을 연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행태가 좀 어이가 없어서 이 글을 쓰게 됐습니다. 특히 인문학에서요. 좀 민감한 주제인데, 아무도 비판하는 사람이 없어 좀 무모하게 시도해 봤습니다. 좀더 생각을 정리해서 글을 썼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경험상 글을 쓰질 않아 그냥 저질러 버렸네요..

2013-08-16 2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13-08-17 10:40   좋아요 0 | URL
드팀전님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제 글이 물론 드팀전님이 비판 하는면으로 보여질 수도 있겠지요. 인정합니다. 구획이 좀 미묘한 지점이라서요..

촘스키 책에 보면 나오죠. 코미사르와 전문성게임이라고..
코미사르 진영에서 정치적 발언을 하는 촘스키에게 말하죠.
"선생님께서는 제가 기억하기에는 언어학자이시지 훈련받은 정치 경제학자는 아니시지 않습니까?"
촘스키가 반격하지요. "대단히 재밌는 공격이군요. 그 말은 정의와 진실에 관해 말하기 위해 어떤 특별한 자격이 있어야 된다는 말씀이군요. 그 자격 시험에 통과한 후에나 사회 비판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요?"

저는 드팀전님이 제기하신 문제는 제가 인용한 전문성 게임을 말씀하시는 거 같습니다. 제가 페이퍼에서 하고싶었던 말은 전문가가 입문 강좌나 개론 강좌를 하자는 겁니다. 사실 인문학에서 전문가는 박사학위를 받지 않아도 자기가 그 분야에서 오랜 훈련을 갈고 닦으면 전문적인 지식을 보다 쉽게 초보자에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살림 지식 총서를 보면 대번에 알 수 있죠. 총서의 저자들은 박사학위를 받지 않은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자기가 공부해온 분야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아주 쉽게 알려주는 역할을 하죠.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면 그렇게 쉽게 전달할 수 없는 내용을 알려줍니다.

도처에서 열리는 인문 강좌나 세미나도 이런 전문가가 강의해 줬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글을 쓴 것이지 어떤 엘리트 주의적인 자격을 구획짓기 위해 쓴 것은 아닙니다.
정치 평론을 하는 것과 개론수준을 을 가르치는 것은 좀 많이 다르지 않을 가 하는 생각입니다!

고견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saint236 2013-08-16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그런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자신이 전공한 분야와는 전혀 다른 기초 과목을 강의하셨죠. 아마도 그분이 짬이 안되셔서 맡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책을 읽어 주다 나가시더군요. 내심 깔보는 마음이 있었는데 몇년 후 대학원에서 그분 전공 수업을 듣다가 깜짝 놀랬습니다. 과거의 그 분이 이 분과 동일인인가 싶어서요. 석박사라는 타이틀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자기 전공분야를 강의하지 않는다면 왠만한 독서가들보다 밀린다는 것을 가끔은 잊고 사시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yamoo 2013-08-17 10:44   좋아요 0 | URL
자기 전공분야를 심화시키는 와중에서 관심영역을 넓혀 나가는 건 권장할만한 일입니다. 헌데 우리나라는 어쩐 일인지 자기 전공은 도외시하고 인기 있는 학문에 발을 뻗는 학자들이 많은 거 같습니다. 세인트님이 말씀하신 교수가 제가 문제삼는 교수 유형 같습니다. 많이 안타까운 일이지요~ 에휴~

VANITAS 2013-08-17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을 안 누를 수 없군요.

yamoo 2013-08-17 10:45   좋아요 0 | URL
감싸합니다! 논조에 공감하신다니!!

아, 그러고 보니 바니타스님은 제 서재에서 첨 뵙는 거 같네요. 반갑습니다~ 꾸벅~^^

2013-08-29 0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생존 신고 겸 겸사겸사. 본격적인 서재 활동은 아무래도 올 하반기에나 가야 될 듯싶습니다. 잠수하기 전에 공지를 해야 했는데.... 본의 아니게 잠수 아닌 긴 잠수가 돼어버렸네요.^^;; 페이퍼를 써서 기억해야만 일이 있기에. (이 사건도 한 달 전 일이군요..하하~)



오래전부터 지속되어온 모임이 사단이 났다. 회원 수가 급증하다보니 생긴 일인데...어처구니가 없는 것이, 회원이 싫다고 모임 운영자가 스스로 관뒀다는 거...


회원을 자를 수 있는 타당한 근거가 없는데, 자기는 그 회원과 모임에서 공존하기 싫으니,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 듯하다. 참 안타깝다. 책으로 이루어진 인간이 책을 통해 모임에서 즐거움을 누렸는데...


내 뒤를 이어 모임을 2년여 이끌어와 준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같이 읽었거나 나중에 읽었던...엄청나게 사랑해 마지않는 책들을 기억하기 위해 이 페이퍼를 쓴다.


아, 이 책들을 읽었다는 것에 무한한 애정과 자부심을 느낌과 동시에, 이 목록 중에서 특히 문학리스트를 선정해 준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51회부터 110회까지 진행됐던 사랑스런 고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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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5-22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야무님 아니십니까. 소이진도 안녕합니다. 야무님께서 하도하도 글이 없길래 무슨 일인가 했습니다. 좋은 클럽인듯 보이는군요. 아, 저도 독서나 책 관련 모임을 하나 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책과 접할 수 있을텐데. 안타깝네요.

양철나무꾼 2012-05-22 17: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야무님 아니십니까. 안녕하셨습니까.
저는 안녕합니다. 리스트를 보니 본 책들 보다 보아야 할 책이 즐비하네요. 하하 X3

정말 정말 반가워요~^^

프레이야 2012-05-22 1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야무님 아니십니까 4.^^
올려주신 책, 상당하네요. 저걸 다 읽고 토론하시고 부럽습니다.
저도 읽어야할 책들이 더 많아 뿌듯합니다.^^

감은빛 2012-05-23 15: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야무님 아니십니까. 안녕하셨습니까. *5 ^^
저도 한동안 뜸했고, 지금도 그리 활발하지는 않지만,
야무님도 제법 오랫동안 안보이셨던 것 같아요.

어마어마한 책들이군요.
하나하나 제목과 표지를 살피며 절망감이 듭니다.
저는 읽은 책이 거의 없네요. ㅠ.ㅠ

더운 여름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oren 2012-05-23 2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 오랜만이네요. yamoo님. 저토록 좋은 책들을 함께 읽고 토론하던 모임도 결국 충분히 오랫동안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는가 봅니다. 저는 yamoo님만 보면 괜히 앙리 베르크손의 책『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을 빨리 읽어야 될 것 같은 의무감에 종종 시달리는 것을 의식할 때가 있는데, (최근에 몇달째 하이데거의『존재와 시간』이라는 어려운 책을 붙들고 씨름하면서, 그 책의 절반쯤을 넘기고 나면서 문득 느끼게 된 것이지만) 베르크손의 책은 어쩌면 좀 더 쉽게 붙들고 읽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존재와 시간』처럼 어려운 외국의 철학책을 한글 번역으로 읽는 건 정말 고역이라는 걸 새삼 절감하면서 yamoo님이 추천해 주신 베르크손의 책 마지막의 인상적인 구절 하나를 덧붙여 봅니다.
* * *
요약하면, 자유에 관한 모든 해명의 요구는 생각지도 않게 다음과 같은 물음으로 환원된다. 즉, <시간과 공간에 의해 충분히 표상될 수 있는가?>-거기에 우리는 대답한다. 흘러간 시간에 관한 것이라면 그렇지만, 흐르고 있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라면 그렇지 않다고. 그런데 자유로운 행위는 흐르고 있는 시간에서 일어나지, 흘러간 시간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자유는 하나의 사실이며, 사람들이 인정하는 사실들 중에 이보다 더 명확한 것은 없다. 문제의 모든 난점들과 문제 자체는 지속에서 연장성과 동일한 속성을 찾으며, 계기를 동시성으로 해석하고, 자유의 관념을, 그것을 번역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한 언어에 의해 번역한다는 것으로부터 탄생한다.

카스피 2012-05-23 2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학모임을 하신다니 넘 부럽네요.제 주변에는 책과 원수진 사람만 있는지 당최 책을 읽지 않네요ㅜ.ㅜ

루쉰P 2012-11-20 1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야무님 저 살아 돌아왔습니다. 근데 야무님도 어디에 가 계시는군요. ^^ 이번엔 제가 기다릴 차례이군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