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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우리는 이 타이틀을 단 사람에게 어떤 문제 해결을 원하거나, 값어치를 치루고 전문적인 카운셀링을 받을 준비가 돼 있다. 아니, 지금까지 우리의 생활 경험상 종종 도움을 받아왔다. 

 

쉽게 생각하자.  의사, 변호사, 공인회계사, 변리사 등등을 떠올리면 된다. 몸이 아픈 사람은 병을 고치기 위해 의사를 찾아가고, 권리를 침해당하여 억울한 사람은 변호사를 찾아간다. 세금 문제로 고민이 있는 사람은 회계사나 세무사를 찾는다.

 

그래서 전문가는 권위를 갖게 된다. 이들의 권위는 해당 분야의 국가 자격증으로부터 나온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문가들은 국가가 주관하거나 혹은 어떤 공식적인 단체가 인증하는 시험을 통과하여 그 자격을 획득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전문가가 아닌 일반 사람들은 전문가의 권위를 존중하며, 정당한 서비스 가격을 지불하여 전문가들이 보유한 전문 서비스를 공급받는다.

 

이는 매우 상직적이고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식이 인문학이라는 학문의 장으로 넘어오면 아주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다. 일반인들이 사회에서 값어치를 치르고 전문가의 서비스를 받는 것과는 아주 판이하다.

 

예컨대 백화점을 비롯한 무슨 무슨 문화센터나 무슨 강연회에서 어떤 인문학 강좌가 열린다고 치자. 보면 몇 강에 얼마 하는 식으로 프로그램이 열거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심지어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공공 도서관에서 인문학 책읽기 강좌도 열린다)

 

<처음 만나는 인문학>, <OO와 함께 읽는 들뢰즈>,<OO를 위한 철학강좌> , <쉽게 읽는 고전>,  등은 꽤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인문학 강좌들이다.

 

인문학 책들은 또 어떤가? 심지어 경제학과 경영학에까지 '인문학'타이틀을 붙여 출간한다. 인문학이 죽었다고 하는데, 몇 년전부터 인문학 르네상스가 도래한 것 같다. 도서관과 대형서점에서 저자 출간 인문학 이벤트를 안하는 곳이 없을 정도이니.

 

그런데 도처에 열리는 인문학 강좌와 세미나는 과연 전문성을 보장하는가? 하나의 사례를 상정해 보자. 한 대학의 영문학 교수(그냥 K교수라 하자)가 라캉을 통한 소설 읽기라는 주제로 책을 낸다. 그 교수가 이번에는 라캉의 이론으로 영화를 분석하는 단행본을 낸다.

 

그런 다음 그 분석틀을 갖고 사회를 비평하는 에세이를 출간하다. 그리고 나서 각종 대형 서점을 위주로 저자 강연회에 나선다. 이후에 그는 각종 TV 프로그램에 종횡으로 나오면서 문화비평을 한다. 문화비평서와 영화비평서의 잇따른 출간을 계기로 그는 논객으로서 대접받는다.

 

이렇게 문어발 식으로 지식을 확장하는 K 교수의 전공은 현대 영미 소설이다. 영국 OO대학에서 헨리 제임스의 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게 이 교수의 전공이다.

 

이 사람은 현대 영미 소설, 그것도 헨리 제임스에 관해서는 확실히 전문가 이다. 제임스의 소설 문체나 그의 소설기법을 배우기를 원하면 K교수에게 값어치를 내고 배우면 된다. 그는 제임스 연구에 권위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K교수가 이번에는 영화비평을 넘어 사회 비평을 한다. 과연 그는 영화비평과 사회비평의 전문가인가? 매스컴에서 또는 강연회 소개에서 그는 전문가로 소개받는다. 인문학은 한 분야에서 전문가이면 두루 전문가인가 보다. 그가 제임스 전문가를 넘어 사회비평 전문가로 행세하는 것은 내과 의사가 법률전문가라고 강연회를 다니면서 강의료를 받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도대체 인문학에서는 전문가가 누구인가? 적어도 우리는 학문 분야에서 그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을 그 학문 분과의 전문가라고 인정해 준다. 대학 교수이건 초등학교 선생이건 그가 박사학위 소지자라면 그는 그 분야에서 전문가다.

 

비록 초등학교 선생이라도 그가 들뢰즈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면 어떤 곳에서건 요청받은 곳에서 혹은 필요에 의해 강좌를 열어 소정의 값어치를 받고 들뢰즈 문외한들에게 필요한 지식을 전달해 줄 수 있다.

 

이게 우리가 전문가에게 해당 지식을 배우는 상식이자 기본이다. 하지만 현실의 대한민국에서 일반 대중을 상대로 인문학을 강의하는 해당분야 전문가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보자. 현재 가장 인기있는 인문학자는 단연 지젝과 들뢰즈다. 들뢰즈는 인기가 좀 식었지만 지젝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지젝과 지젝에 관련된 도서가 20권도 넘게 출간되고 있다.

 

여기 저기서 세미나가 개최되고 지젝을 통해 이름을 알리려는 지식인들이 도체에 있다. 그런데 나는 지젝의 사상을 열심히 전파하고 있는 사람 중에 지젝으로 논문을 써서 학위을 받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물론 들뢰즈 연구로 학위를 받아 그를 소개하는 인문학 강좌를 들어본 적도 없다. (내가 전에 열심히 참가 했던 미술모임에서는 들뢰즈로 학위를 받은 분이 와서 들뢰즈에 대한 미학이론 강의를 해 준 적이 있다.) 대개가 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관심 영역을 넓혀 지젝의 저서를 전방위로 읽은 정도 뿐이다.

 

지젝의 사상을 연구하고 그에 대한 문제점과 그를 넘어서는 비판적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없는 것 같다. 관련 논문들이 별로 없으니. (물론 내가 미학이나 영화 또는 문학 논문을 뻔질나게 찾아보는 열성분자는 아니다. 그런면에서 우물안 개구리일지도 모른다) 

 

누가 있는가? 지젝을 연구하여 연구 논문을 써서 교수사회에서 검증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가 내는 책은 모조리 사 볼 의향이 있으며 심지어 어느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면 찾아가 청강이라도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전문가가 낸 책이나 강연은 정말 쉽고 핵심을 청중의 수준에 맞게 풀어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사실을 입문서에서 확인하곤 한다. 대개 개론서나 입문서는 그 분야의 권위자나 전문가가 쓰는 책이 쉽고 알차다. 이런 대표적인 인문학 개론 총서 중 하나가 살림문고에서 펴내고 있는 [e시대의 절대사상]시리즈이다.

 

이 시리즈 책중에 김용환 교수가 쓴 홉스의 <리바이어던>이 있다. 홉스 사상의 핵심이 키워드와 주제를 중심으로 아주 간결하게 소개되어 있다. 놀라운 것은 홉스의 심오한 철학 사상이 매우 평이한 설명 속에 녹아 있다는 점이다. 고등학교 윤리교과서 정도의 수준으로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정리하고 있다. 이건 정말 그 분야에서 오랜 공력을 쌓은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전문가의 공력을 확인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책이 있다. 서민 교수의 <기생충 열전>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출간되기 전에 네이버에 연재되었는데, 우연히 연재 글 한 꼭지를 읽었다. 그리고는 이전에 쓰인 글을 모조리 찾아 읽어야 했다. 이름도 희한한 기생충에 대한 얘기가 너무 웃기고 재미있어 소설을 읽듯 단숨에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알라딘 서재에서 마태우스라는 필명으로도 유명한 이분의 글을 읽어보면 기생충을 다루는 학문이 매우 전문적인 분야인데도 불구하고 전문적인 내용을 너무도 쉽게 알려준다. 심지어 웃기기까지 하다. 기생충에 대한 내용이 말이다!

 

위 두 책의 사례에서 보듯이 전문가는 어려운 내용의 핵심을 아주 쉽게 전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문외한이 전문가로부터 무지를 깨우치고자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전문가들의 책과 강연이 있으면, 그 나라 국민의 교양이 향상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 지론이기도 하다.

 

그런데,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인문학 세미나와 강좌에서는 넘쳐난다. 왜 윌리엄 제임스를 전공한 사람이 '문화'에 대한 강좌를 여는가? 그 사람이 왜 들뢰즈에 대해서 전문가인냥 말하는가? 그가 문화와 들뢰즈에 대한 논문으로 학계에서 검증을 받았는가?

 

논문도 쓰지 않고 잡문인 단행본 몇 권을 내고 전문가 행세하는 건 대중을 기만하는 행태아닌가? 인문학이 하나에 전문가이면 여러 분야를 넘나들 수 있는 전문가이자 권위자라는 걸 보장해 주는 학문인가? 그렇다면 위 제임스 전공 교수가 하는 행태는 지극히 정상적일 것이다.

 

인문학이 인간에 대한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지만, 적어도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라면 제임스 소설 전문가가 문화 분석 전문가가 아닌 것쯤은 대번에 알 수 있다. 그런데 작금의 대한민국에서는 하나의 학위를 받은 전문가가 인문학의 여러 영역에서도 당연히 전문가로 통용될 수 있는지 정말 미스테리다.

 

위에서 예를 든 제임스 전공교수 사례는 극단적 사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수도 아닌 사람들이, 아니 박사학위도 받지 않은 사람들이 여러 학분 분야에 걸쳐 인문학의 전문가로 회자되는 현 실태가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서 페이퍼를 통해 이 현상을 짚어보고 싶었다.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대중 지식의 첨병이 될 때 그 나라의 인문학적 교양의 토대는 매우 척박해 질 것이다. 이것이 내 우려이고, 이 페이퍼를 쓰는 목적이다.

 

 

덧붙임

현재 우리나라나라에서 들뢰즈나 지젝, 그리고 프랑스 현대철학 이론을 수입해 소개해 주는 인문학자는 많아도, 들뢰즈나 지젝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학문적 한계점을 논하는 인문학자들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 학자가 쓴 들뢰즈 비판이나 지젝 비판서를 본 적도 없다. 그냥 외국의 신 이론틀로 무장하여 그들이 해 놓은 인식의 틀로 생각하고 말하고 있는 인문학자만 넘쳐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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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3-08-16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리학자가 나와 정치평론을 하고 어설픈 정치토론을 하는 나라인데요. ㅋㅋ
그나저나 이 무더위에 '멋지게 살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잘하시는 일 하시면서. ㅎㅎ
갑자기 지난번 페이퍼가 생각나서요.

yamoo 2013-08-17 10:20   좋아요 0 | URL
심리학자가 나와 정치평론하는 건 참을 수 있는데요...전문가 아닌 사람이 개론이나 입문강좌를 하는게 더욱 문제인 거 같다는..

네, 그런대로 재밋게 잘고 있습니다. 너무 더워서 헥헥 거리는 거 빼고는요^^

oren 2013-08-16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한계점을 너무 제멋대로 넘어서는 게 결국 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이런 비판글을 쓰는 일조차도 아무나 할 수 없는데 yamoo님의 글은 답답하고 가려운 데를 얼마간 '박박 긁어주는' 맛이 납니다. ㅎㅎ

yamoo 2013-08-17 10:26   좋아요 0 | URL
늘 좋게 봐주시는 감사합니다~^^

자신의 전공을 심화시키면서 관심영역을 넓혀가면 좋은 데, 자신의 전공은 도외시하고 대세인 학문을 연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행태가 좀 어이가 없어서 이 글을 쓰게 됐습니다. 특히 인문학에서요. 좀 민감한 주제인데, 아무도 비판하는 사람이 없어 좀 무모하게 시도해 봤습니다. 좀더 생각을 정리해서 글을 썼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경험상 글을 쓰질 않아 그냥 저질러 버렸네요..

2013-08-16 2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13-08-17 10:40   좋아요 0 | URL
드팀전님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제 글이 물론 드팀전님이 비판 하는면으로 보여질 수도 있겠지요. 인정합니다. 구획이 좀 미묘한 지점이라서요..

촘스키 책에 보면 나오죠. 코미사르와 전문성게임이라고..
코미사르 진영에서 정치적 발언을 하는 촘스키에게 말하죠.
"선생님께서는 제가 기억하기에는 언어학자이시지 훈련받은 정치 경제학자는 아니시지 않습니까?"
촘스키가 반격하지요. "대단히 재밌는 공격이군요. 그 말은 정의와 진실에 관해 말하기 위해 어떤 특별한 자격이 있어야 된다는 말씀이군요. 그 자격 시험에 통과한 후에나 사회 비판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요?"

저는 드팀전님이 제기하신 문제는 제가 인용한 전문성 게임을 말씀하시는 거 같습니다. 제가 페이퍼에서 하고싶었던 말은 전문가가 입문 강좌나 개론 강좌를 하자는 겁니다. 사실 인문학에서 전문가는 박사학위를 받지 않아도 자기가 그 분야에서 오랜 훈련을 갈고 닦으면 전문적인 지식을 보다 쉽게 초보자에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살림 지식 총서를 보면 대번에 알 수 있죠. 총서의 저자들은 박사학위를 받지 않은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자기가 공부해온 분야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아주 쉽게 알려주는 역할을 하죠.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면 그렇게 쉽게 전달할 수 없는 내용을 알려줍니다.

도처에서 열리는 인문 강좌나 세미나도 이런 전문가가 강의해 줬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글을 쓴 것이지 어떤 엘리트 주의적인 자격을 구획짓기 위해 쓴 것은 아닙니다.
정치 평론을 하는 것과 개론수준을 을 가르치는 것은 좀 많이 다르지 않을 가 하는 생각입니다!

고견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saint236 2013-08-16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그런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자신이 전공한 분야와는 전혀 다른 기초 과목을 강의하셨죠. 아마도 그분이 짬이 안되셔서 맡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책을 읽어 주다 나가시더군요. 내심 깔보는 마음이 있었는데 몇년 후 대학원에서 그분 전공 수업을 듣다가 깜짝 놀랬습니다. 과거의 그 분이 이 분과 동일인인가 싶어서요. 석박사라는 타이틀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자기 전공분야를 강의하지 않는다면 왠만한 독서가들보다 밀린다는 것을 가끔은 잊고 사시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yamoo 2013-08-17 10:44   좋아요 0 | URL
자기 전공분야를 심화시키는 와중에서 관심영역을 넓혀 나가는 건 권장할만한 일입니다. 헌데 우리나라는 어쩐 일인지 자기 전공은 도외시하고 인기 있는 학문에 발을 뻗는 학자들이 많은 거 같습니다. 세인트님이 말씀하신 교수가 제가 문제삼는 교수 유형 같습니다. 많이 안타까운 일이지요~ 에휴~

VANITAS 2013-08-17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을 안 누를 수 없군요.

yamoo 2013-08-17 10:45   좋아요 0 | URL
감싸합니다! 논조에 공감하신다니!!

아, 그러고 보니 바니타스님은 제 서재에서 첨 뵙는 거 같네요. 반갑습니다~ 꾸벅~^^

2013-08-29 0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생존 신고 겸 겸사겸사. 본격적인 서재 활동은 아무래도 올 하반기에나 가야 될 듯싶습니다. 잠수하기 전에 공지를 해야 했는데.... 본의 아니게 잠수 아닌 긴 잠수가 돼어버렸네요.^^;; 페이퍼를 써서 기억해야만 일이 있기에. (이 사건도 한 달 전 일이군요..하하~)



오래전부터 지속되어온 모임이 사단이 났다. 회원 수가 급증하다보니 생긴 일인데...어처구니가 없는 것이, 회원이 싫다고 모임 운영자가 스스로 관뒀다는 거...


회원을 자를 수 있는 타당한 근거가 없는데, 자기는 그 회원과 모임에서 공존하기 싫으니,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 듯하다. 참 안타깝다. 책으로 이루어진 인간이 책을 통해 모임에서 즐거움을 누렸는데...


내 뒤를 이어 모임을 2년여 이끌어와 준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같이 읽었거나 나중에 읽었던...엄청나게 사랑해 마지않는 책들을 기억하기 위해 이 페이퍼를 쓴다.


아, 이 책들을 읽었다는 것에 무한한 애정과 자부심을 느낌과 동시에, 이 목록 중에서 특히 문학리스트를 선정해 준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51회부터 110회까지 진행됐던 사랑스런 고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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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5-22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야무님 아니십니까. 소이진도 안녕합니다. 야무님께서 하도하도 글이 없길래 무슨 일인가 했습니다. 좋은 클럽인듯 보이는군요. 아, 저도 독서나 책 관련 모임을 하나 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책과 접할 수 있을텐데. 안타깝네요.

양철나무꾼 2012-05-22 17: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야무님 아니십니까. 안녕하셨습니까.
저는 안녕합니다. 리스트를 보니 본 책들 보다 보아야 할 책이 즐비하네요. 하하 X3

정말 정말 반가워요~^^

프레이야 2012-05-22 1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야무님 아니십니까 4.^^
올려주신 책, 상당하네요. 저걸 다 읽고 토론하시고 부럽습니다.
저도 읽어야할 책들이 더 많아 뿌듯합니다.^^

감은빛 2012-05-23 15: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야무님 아니십니까. 안녕하셨습니까. *5 ^^
저도 한동안 뜸했고, 지금도 그리 활발하지는 않지만,
야무님도 제법 오랫동안 안보이셨던 것 같아요.

어마어마한 책들이군요.
하나하나 제목과 표지를 살피며 절망감이 듭니다.
저는 읽은 책이 거의 없네요. ㅠ.ㅠ

더운 여름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oren 2012-05-23 2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 오랜만이네요. yamoo님. 저토록 좋은 책들을 함께 읽고 토론하던 모임도 결국 충분히 오랫동안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는가 봅니다. 저는 yamoo님만 보면 괜히 앙리 베르크손의 책『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을 빨리 읽어야 될 것 같은 의무감에 종종 시달리는 것을 의식할 때가 있는데, (최근에 몇달째 하이데거의『존재와 시간』이라는 어려운 책을 붙들고 씨름하면서, 그 책의 절반쯤을 넘기고 나면서 문득 느끼게 된 것이지만) 베르크손의 책은 어쩌면 좀 더 쉽게 붙들고 읽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존재와 시간』처럼 어려운 외국의 철학책을 한글 번역으로 읽는 건 정말 고역이라는 걸 새삼 절감하면서 yamoo님이 추천해 주신 베르크손의 책 마지막의 인상적인 구절 하나를 덧붙여 봅니다.
* * *
요약하면, 자유에 관한 모든 해명의 요구는 생각지도 않게 다음과 같은 물음으로 환원된다. 즉, <시간과 공간에 의해 충분히 표상될 수 있는가?>-거기에 우리는 대답한다. 흘러간 시간에 관한 것이라면 그렇지만, 흐르고 있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라면 그렇지 않다고. 그런데 자유로운 행위는 흐르고 있는 시간에서 일어나지, 흘러간 시간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자유는 하나의 사실이며, 사람들이 인정하는 사실들 중에 이보다 더 명확한 것은 없다. 문제의 모든 난점들과 문제 자체는 지속에서 연장성과 동일한 속성을 찾으며, 계기를 동시성으로 해석하고, 자유의 관념을, 그것을 번역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한 언어에 의해 번역한다는 것으로부터 탄생한다.

카스피 2012-05-23 2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학모임을 하신다니 넘 부럽네요.제 주변에는 책과 원수진 사람만 있는지 당최 책을 읽지 않네요ㅜ.ㅜ

루쉰P 2012-11-20 1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야무님 저 살아 돌아왔습니다. 근데 야무님도 어디에 가 계시는군요. ^^ 이번엔 제가 기다릴 차례이군요. ㅋ
 
50년간 지속된 이야기, 광장

 최인훈의 <광장>이 100쇄를 기록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구입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마도 98년 쯔음인가 생각이 된다.  조세희의 <난소공>과 더불어 100쇄를 넘었다는 건 당시 내게는 상징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왜냐하면, 두 책은 일반 소설책이라기보다는 이념서나 사회비판서에 가까웠기 때문에 100쇄 돌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실, 최인훈의 <광장>을 처음 접했던 건 고등학교 교과서 작품 해설집에서였다. 입시용 텍스트로 읽어서 인지 무척 우울했다. 우울한 책을 입시용 텍스트로 읽으니 죽을 맛이었다. 주인공이 마지막에 자살로 삶을 마감해서 후유증은 좀 오래갔다. 

당시에는 어려서 이 책의 깊이를 좀처럼 실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국현대사를 공부하고,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에 관한 책과 KBS다큐멘터리 10부작 <한국전쟁>을 보면서, <광장>의 깊이를 새삼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의 표식들. 155마일의 휴전선, 비무장지대 그리고 53년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회의를 하고 있는 중립국감시단의 모습 속에서, 나는 모순과 비극, 통증과 그리움을 함께 느꼈다. <광장>은 휴전선이 없어지지 않는 한 끊임없이 우리들에게 이 아픔을 되새겨 줄 것이다. 

"....나는 12년전 이명준을 삶의 바닷속으로 내려보냈다. 그는 '이데올로기'와 '사랑'이라는 암초에 걸려 다시는 떠오르지 않았다. <광장>은 안내없이 삶의 바다로 내려간 용사들에 대한 묘비명이었다.    -1973년 7월 개정판 서문

"...이 작품이 발표되지 30년, 주인공이 세상을 떠난지 40년이 흘렀다. 나는 이명준이 살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정치적 구조 속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1989년 4월 개정판 서문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여전히 이명준이 살았던 것과 비슷한 이념적 테두리에 갖혀서 사는 느낌이다.  지난 50년 동안 이 소설이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면서  지속적으로 사랑받아 오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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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11-10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최인훈의 <광장>도 100쇄 돌파파니,, 사실 <난쏘공>처럼 분명 의미있는
기록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우리나라가 소설 속 내용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여전히 읽혀지고 있다는 사실로 본다면 씁쓸하기도 하네요.

yamoo 2011-11-10 23:24   좋아요 0 | URL
100쇄 돌파가 2000년 이전이니, 지금은 150쇄를 넘었겠죠~ 서점가서 확인을 해 봐야 겠어요~

그래요..저도 좀 씁쓸하답니다^^

이진 2011-11-10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독서토론회 도서로서 [광장]을 읽었는데, 죽는 줄 알았습니다! yamoo님과는 다른 이유로요... 아직 저의 수준에는 맞지 않을정도로 힘든 내용이었습니다. 결국엔 포기하고 토론회에서 제대로 활동을 하지 못했죠...

100쇄 돌파라니 다시 한 번 내용을 음미하며 제대로 읽어봐야겠군요

yamoo 2011-11-10 23:26   좋아요 0 | URL
이게 젊은 시절에 읽으면 많이 어렵더라구요. 저도 그랬어요. 시간이 해결해 주더군요. 해방이후의 한국현대사를 공부하면 그래도 잘 읽히지 않을까요?^^

지금은 100쇄보다 훨씬 많이 찍었을 거에요. 저도 서점가서 확인해 보려구요~

아이리시스 2011-11-11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광장] 너무 최고예요. 읽을 때마다 다른 의미로다가. 그래서 함부로 어느 편에도 속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영부영 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공정하자는 의미로요. 저는 [무진기행]이랑 같이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한국문학은 다들 의미가 있지만(우리 것이니까요) 서정적인 면과 미래에 대한 고민 같은 것들이 살아숨쉬고 있어요. 그러고보면 한국문학들을 졸업하고는 거의 접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막상 현대문학사 같은 것들을 공부하며 들었던 학생 때는 구식이라며 지겨워했고 말이죠. 다 때가 있는 거겠죠.

yamoo 2011-11-11 22:57   좋아요 0 | URL
김승옥의 무진기행...명작 중 명작이지요. 무진기행, 강산무진, 요하시집 등 한국문학 토론회를 한 때가 엊그제 같습니다.

아, 아이리시스님은 한국문학 전공이시랬죠~ 작품 많이 읽으셨겠어요~~
졸업하시구는 외국문학쪽으로 섭렵하셨겠군요! 언제 한국문학에 관한 페이퍼도 올려주세요~^^
 

현재 방영되고 있는 인기 드라마들을 보니(사극을 제외하고), 결혼 얘기가 빠짐없이 등장합니다(애정 만만세, 일천 번의 입맞춤 등). 예전에도 한결같이 등장했던 소재이지만, 요즘에는 좀 다른 것이, 이혼녀-초혼남 커플의 결혼이야기가 부쩍 많아졌습니다.

이혼 건수가 해마다 늘어가니, 드라마도 사회의 트렌드를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드라마 내용을 들여다보면, 결혼을 할 때에는 결혼을 하니, 마니로 난리 버거지를 피우고, 결혼을 해서는 또 무슨 갈등이 그리 많은지 맨 날 싸웁니다. 시청자들은 이걸 재밌다고 봅니다. 결혼은 우리 각자의 ‘현실’ 문제라서 감정이입이 잘 잘 되나 봅니다.

이제 제 주위에도 결혼을 안 한 싱글보다 결혼을 한 분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결혼 3년차 이내의 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아이 얘기밖에 안합니다. 결혼 7년차 이상 분들은 애들 키우기가 힘들다는 푸념과 함께 결혼 안한 싱글들에게 될 수 있으면 결혼 하지 말라고들 충고합니다. (특히 남자 분들이~^^;;)

뭐가 옳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제 한 모임에서 지인의 결혼관이 귀를 맴돕니다. 어떤 분이 물었습니다. 결혼을 왜 안하냐고. 그랬더니 그 분 왈, “그런 미친 짓을 왜합니까?”라는 화끈한 발언~ 이후 상황은 썰렁해지는 분위기~

‘아, 결혼은 미친 짓인가?’ 이 물음이 계속 귓전을 때립니다. 그리고 생각의 나래를 펴봅니다. 예전에도 이만교 작가의 소설 <결혼은 미친 짓이다>가 나왔을 때 한 번 거들떠나 보자는 심정으로 구입을 했는데, 지금까지 들춰보지도 못했습니다.

 

 

 그 외 결혼 관련 책도 몇 권 있는데, 역시나 박스에 담겨져 처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기회에 귀에서 맴도는 발언의 실체를 좀 더 고민해 보기로 했습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명제에 대해서요. (진짜 미친 짓일까?..라는 의구심과 함께)

헌데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문장이 명제가 되려면 참 거짓을 판별할 수 있어야 하기에 생각해 봤습니다. 과연 명제일까.

음, 일단 경험칙 상 각 개인은 이 문장의 진위를 분명히 말할 수 있기에 명제라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막 우겨봅니다..ㅎ)

이제, 결혼의 사전적 의미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봅니다.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음”이라 돼 있습니다. 같은 말인 혼인도 찾아보니 “남자와 여자가 부부가 되는 일”로 풀이돼 있습니다.

좀더 전문적 의미를 찾아보니 “남녀 두 사람이 사회적으로 인정된 성적 및 경제적으로 결합하는 행위”라고 나옵니다. ‘성+경제=결혼’이라는 등식이 성립하군요.^^;;

그런 다음 ‘미친 짓’의 의미도 명확히 해 봅니다. 먼저 위 명제의 뉘앙스를 좌우하는 ‘미치다’라는 형용사를 찾습니다. 역시 국어사전에 다음과 같이 풀이 돼 있습니다.

미치다 : 정신에 이상이 생겨 말과 행동이 보통 사람과 다르게 되다.

아하, ‘미쳤다’는 것은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뜻하며 보통 사람이 믿는 것과는 반대로 믿거나 말하는 사람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짓’은 몸을 놀려 움직이려는 동작을 말하는 순 우리말 입니다. 그런데 ‘미치다’와 ‘짓’이 결합된 ‘미친 짓’이라는 의미는 주로 좋지 않은 행위나 행동에 쓰인다고 국어사전에 나와 있습니다.

특히 ‘미친’이라는 관형어가 그렇더군요. 용례도 좀 부정적입니다. ‘미친개가 날 뛴다’, ‘미친 거 아냐’, ‘미친놈은 어디가 달라도 달라’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안 좋은 의미로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명제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한 명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이 명제의 진위 판명만 남은 것 같습니다. 위의 사전적 의미를 넣어서 이 명제를 다시 쓰면 다음과 같이 됩니다.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관계를 맺는 것은 제정신이 아니다.” 정도가 될 듯하군요.

흠...그러면, 제정신이 아닌 것은 보통 사람이 믿는 것과는 반대로 믿고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기 때문에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관계를 맺는 것’은 ‘보통사람이 믿는 것과는 반대로 믿고 말하는 것’이 됩니다.

결혼을 하면, 미혼자들이 믿는 것을 반대로 믿거나, 미혼자들이 말하는 것을 반대로 말한다는 것인데, 주위의 기혼자들 중 이런 사람을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풍문으로 듣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건 완전히 헛소리에 불과하군요!

이런~! 지금까지 저는 완전 헛소리를 지껄였던 것입니까?! 그런 건가요? 흠, 그런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에휴~ 더 미치기 전에, (요즘 나온 신간을 읽고) 얼른 결혼이나 해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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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1-11-09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대와 30대, 혹은 40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화려한 싱글'의 삶을 즐기는 사람들에겐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주장도 어느 정도는 맞는 말처럼 보입니다만......

제 주위에 가끔씩 실존하는 60대 노총각, 50대 노총각, 40대 중후반의 노총각과 노처녀들을 보면 '안쓰럽기 짝이 없는' 느낌도 많이 듭니다.

한편, 올 가을엔 유독 저와 가까운 주위 사람들(고교 동창생,초등학교 동창생, 손위처남, 이종사촌 형님 등등)이 '사위'를 많이 보는 바람에 유달리 '결혼식'에 자주 가는 편인데, 20대 중후반에 일찌감치 '서둘러' 결혼하는 신랑신부가 (제 개인적인 생각에는) 보기에 좋더라구요.

yamoo 2011-11-09 22:52   좋아요 0 | URL
흠..결국 나이먹으면 안쓰러운 신세로 전락하는군요~

말씀하신 걸 보면 일찍 결혼하는 게 장땡인거 같습니다. 20대 중후반이면, 우와~ 엄청 어리네요.
갑자기, 뭘 모를 때 하는 게 좋은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ㅎㅎ

이진 2011-11-09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결혼 전 물어야 할 한가지라는 책이 정말 재밌다고 하더라구요..!
저도 결혼 파이팅! 응원하겠습니다 ㅋㅋ

yamoo 2011-11-09 22:54   좋아요 0 | URL
저책이 정말 재밌나보죠? 서점에가서 구경좀 해보고 재밌으면 구매해야 겠는 걸요~ㅎ

결혼은, 파이팅 한다고 되는게 아닌 거 같아욤..ㅎㅎ

감은빛 2011-11-09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은 미친짓까지는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권할만한 일도 아니라고 봅니다. 특히 우리 사회처럼 여성에게 지나치게 불공평한 관념이 통용되는 곳에서는 바른 생각을 가진 남성도, 여성도 피곤하고 힘듭니다!

yamoo 2011-11-09 22:57   좋아요 0 | URL
아~~그렇군요.
남성과 여성 모두 공히 피곤하게하고 힘든게 결혼이군요~! 하하,

아이와 관계된 모든 것이 비싸다는군요~
특히나 여성에게 지나치게 불공평하다니 하기도 뭐하고 안하기도 뭐하고, 참~ 답이 없네요..

2011-11-09 2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09 2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11-11-10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 먹은 뒤에도 흔들리지 않고, 잘 가꿔서 스타일 나게 살 수도 있겠지만, 점점 이게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 결혼은 마음은 편할 거 같고, 곁에 누가 있다면 든든할 것 같지만, 또 '생활인'이 되기 쉽다는 난점이...

yamoo 2011-11-10 11:08   좋아요 0 | URL
흠, 결론은 나이 먹은 뒤에도 흔들리지 않고 스타일 나게 살 수만 있으면 되겠군요~ 결혼 안하고 이렇게 살기가 힘든가 봅니다. 이렇게 살수만 있다면 저도 결혼을 안하고 싶습니다만^^
 

 요즘 <뿌리깊은 나무>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습니다. 원작으로도 유명한 이 작품을 보면,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위대함을 알 수 있습니다. ‘위대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창제의 근본정신이 백성을 사랑하는 왕의 마음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입니다.

 

한 나라의 왕이, 백성이 글을 몰라 자기 의사를 표현할 줄 모른다는 사실을 불쌍히 여겨 글자를 만들었다는 것은 세계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이라고 합니다. 세계적인 언어학자들이 하는 얘기죠.

한데, 이 위대한 한글을 우리들이 마구 훼손하고 업신여기고 있습니다. 요즘 말과 글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학생이건 지식인이건 매한가지입니다. 다음 상황들을 보면, 참으로 가관입니다.

상황1. 작년 이맘 때. 여고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하교 길에 하는 말.
“아씨, 존나...무슨 말인지 모르게써~” “그러게 말야, 씨바~” “아, 존나 담임 설명하는 거 봤냐. 지도 모르는 거 같던데..” “마저, 마저 ㅋㅋㅋ” “OO 하고, OO는 무슨 차이지?” “아씨~ 존나 짱나~” “하나 두 모르게써, 씨바~ 무슨 설명을 그렇게 어렵게 하냐? 시험에 나오믄 어떡케하지?” “아~씨, 그냥 찍어! 찍어!”  

-> 이럴 수가, 거의 욕이군요!

상황2. 모 대학 경영학과 교수의 TV 대담
"코스트를 세브하여 리스크를 다운시키는 것이 인터내셔널 컴페티브니스를 드라이브하는 것이다. 어쩌구 저쩌구, 마케팅 포지셔닝의 석세스한 포인트는 클라이언트들의 너버스를 클리어하는 것인데, …  

-> 황당합니다, 그냥 영어로 말하지 교수들은 왜 단어만 영어로 바꿔서 말할까요?

상황3. OSEN 2011.10 기사
시크한 패셔니스타들은 베이지 톤의 트렌치코트와 함께 브라운과 베이지컬러가 매치된 머플러로 포인트를 준다. 좀 더 모던한 느낌을 주려면 내추럴한 캐주얼룩에 브라운 컬러 슈즈로 포인트를 주어 웨어러블한 룩을 완성할 수 있다. 런웨이 모델이 초이스한 트렌치코트는 질스튜어트 뉴욕 제품으로 하드할 수 있는 트렌치코트에 레더소재가 디테일로 더해져 위트있는 디자인.....  

-> 패션계의 언어는 어느나라 말인가요?

상황4. 어느 음반 평론가의 글
70년대 중흥을 누렸던 프로그레시브, 소위 아트록 그룹이 가장 많이 포진되어 있는 그야말로 예술적인 문화 환경을 자랑한다. 지금은 얼터너티브와 테크노 물결에 밀려 예전처럼 아트록이 강세를 보이지 못하지만 (중간 생략) 이후 90년대 초를 거쳐 멜로딕 스피드 메탈은 잉베이 맘스틴의 여향을 받은 바로크 어프로치를 첨가하면서 '심포니 X'같은 밴드들을 중심으로 바로크 메탈과 자연스럽게 융합한다.  

-> 평론가들의 외국 개념의 나열들. 뭔소린지 도통 모르겠군요!

상황5. <권리를 위한 투쟁>, 루돌프 폰 예링, 범우사, p65
분쟁에서 권리주체자의 단순한 이익, 법규가 구체화된 개별적인 관계, 법규라는 순간적인 광성에 붙잡혀서 고정된, 법규 자체와는 만나지도 못하고 파괴되고 훼손되는, 내가 말한 사진이 문제될 뿐만 아니라, 법규 자체도 경시당하고 유린당하는 것이다.  

 

-> 교수가 번역기가 됐군요~ 어떻게 이런 번역이 버젓이 유통되고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군요~

정말 어의를 상실할 정도입니다. 우리 스스로 말과 글을 비천하고 열등하게 만들고 있다니,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네요. 지하에 계신 세종대왕께서 통곡할 것입니다~

제발, 우리말 공부 좀 하고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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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 2011-11-06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상황들 정말... 상황 1의 이럴 수가, 거의 욕이군요! 하는 말씀이 너무 와닿는데요ㅎㅎㅎ 두번째 상황과 네번째 상황은 정말.. 어떤 교수는 우리나라말로 단어를 바꾸면 영어로 하라고 ㅋㅋㅋ 막 그러는 경우도 있었구... 저도 정말 동감하는데 네번째 상황은 진짜 뭐라 할 말이 없지만 두번째 상황은 그래도 굳이 굳이 감싸준다면 .. 아무래도 영어를 쓰는 국가에서 학문이 더 발달한 경우가 많구ㅠㅠㅠ 교수들이 그런데 가서 배워오는거라서... 우리나라말로 완전히 그 뉘앙스 등등과 쓰이는 상황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런 황당하다면 황당한 영한 혼용문[...]이 버젓히 쓰이고 있는 것 같아요.

yamoo 2011-11-06 16:29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 학생들이 욕하는 횟수를 조사한 보고가 TV 뉴스에 소개된 적이 있는데요..한 학생당 2분마다 욕을 한다는 군요. 학교에서도 어쩔수없다나요..ㅋㅋ 학생들 얘기하는 거 들어보면, 위 상황1하구 완전 똑같습니다. 심각한 문제같아요. 뭐, 나머지도 대략난감한 상황이구요. 어떤 운동이라도 해야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비로그인 2011-11-07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 읽다가 짜증나서 한숨 쉬었어요 ㅠㅠ
저도 나름 한글을 지키려고 노력은 한다지만, 이 글 보면서 다시 한 번 한글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네요. 문자 보낼 때 띄어쓰기 철저하게 하고 맞춤법 정확하게 지키는 걸 자랑으로 삼는 사람으로서(이 얘기하면 다들 웃더군요 ㅋㅋ), 한글의 소중함을 잊지 말아야겠어요.

yamoo 2011-11-07 21:59   좋아요 0 | URL
한글은 정말 위대한 거 같아요. <한글의 탄생>이란 책도 보면 얼마나 좋은 문자인지 정말 소중히 아끼고 발전시켜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우리 자신을 보면서 매우 화가 나기도 합니다.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에요~

그래요, 소중함을 잊지 않기 위해서도, 우리말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겠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5-30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성일 글을 보면 이 양반 참... 한글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는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