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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출판사들이 기획 총서로 발간하고 있는 인문학 총서 시리즈들. 이들 중에서 입문격인 책들이 학자 이름을 달고 꾸준히 출간되고 있다. 하지만 요즘 보니, 이 기획 시리즈도 거의가 절판되어 가고 있다. 이와 비슷한(학자 이름을 내걸거나 명저를 해설한) 새로운 인문학 해설서 총서가 몇 군데에서 나오고 있긴 하지만 손에 꼽을 정도다.

 

살림 출판사의 [e시대의 절대사상] 시리즈는 32권으로 완간됐고, 김영사의 [인문학의 생각읽기]시리즈는 현재 7권이 발매중이다. 세창미디어의 세창명저산책은 현재 26권이 나와있다. 현암사의 [우리시대 고전읽기 질문총서]도 5권 정도가 발간되어 있다. 대형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는 인문학 해설 총서는 이쯤 된다. 아, 아직 절판되지 않은 [하룻밤 지식여행]과 [HOW TO READ] 시리즈의 몇몇 권도 찾을 수 있겠다.

 

 

 

 

 

 

 

 

 

이전 인문학 입문서 시리즈 목록을 봐도, 현재 나오고 있는 해설서 총서들을 봐도 들뢰즈나 데리다 등은 꽤 많이 출간됐고, 칸트나 헤겔 역시 지속적으로 출간되어 왔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이 하나 있다. 베르그손과 막스 베버는 거의 없다. 지금은 절판된 인문학 해설 총서에도 없고, 살림이나 세창에서도 발견할 수가 없다. 일부 베르그손과 베버 전공자가 단행본으로 낸 것은 있지만 총서 일부로 발간된 건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아주 오래 전에 [지성의 샘] 시리즈에서 <베르그송>이 포함되긴 했었다. 그런데, 이 시리즈 판본이 시공사 시공로고스 총서로 넘어가면서 동양철학자와 서양철학자 몇 명이 뼈졌는데, 그때 <라이헨바하>와 <베르그손>이 제외되었다.(아, 메를로퐁티도 제외 됐었지) 이후 인문학 해설 총서에서 베르그손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다만 송수영 교수에 의해 <베르크손>이 홍경실 교수에 의해 <베르그손의 철학>이 각각 단행본으로 발간됐을 뿐이다.

 

베버도 마찬가지. 1980년대 학문과사상사에서 현대사상선서 시리즈로 <막스 베버>(프랭크 파킨, 1985)가 발간된 적이 있다. 80년대 막스 베버  인기는 현재의 들뢰즈 인기 쯤 됐던 거 같다. 하지만 그때도 베버 연구서나 베버에 대한 저작 번역물은 많았지, 베버에 대한 조망을 해 주는 입문서는 이 책이 유일했던 것 같다. (이 책 외에는 정말 기억나는 게 없다. ㅜㅜ)

 

프랭크 파킨이 지은 <막스 베버>는 입문자가 원하는 '사상가 해설서'의 표본과도 같다. 막스 베버의 주요 저서들을 그가 연구한 주제별로 간결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주요 이론들 중 일부분이 새로운 시각에서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얇지만(200페이지도 안 된다.) 저자의 내공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수준 높은 막스 베버 입문서다.

 

그런데, 현재 이 정도 수준의 막스 베버 입문서가 단 한권도 없다는 사실이다. (베르그손은 송수영 교수가 거의 비슷하게 작업을 해 낸 게 <베르그손>이다.) 전공자인 김덕영 교수의 막스 베버가 있지만 이건 뭐, 읽기가 민망할 정도로 베버를 예찬하고 있으니, 입문서로는 적절치 않아 보인다. 마리안느 베버의 책은 베버의 전기다.

 

 

 

 

  

 

 

 

 

과거나 현재나 입문 해설 총서에서 베르그손과 베버가 빠져있는 상황이 정말 이상하다. 현재 베르그손은 거의 잊혀진 철학자같다. 들뢰즈에 의해 논의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출간되는 게 거의 없다. 베버는 양적으로는 많은 논문이 있고 여러 연구서들과 그의 저작들이 줄기차게 번역되고 있는 것에 비해 교양 입문서가 없다는 게 불가사의할 정도다.

살림지식 총서에서도 아직까지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플로티누스, 아도르노, 마르쿠제, 후설이 출간 된 것을 보면 기대감은 든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지식'을 모토로 하는 살림지식 총서에서도 아직까지 베버와 베르그손은 만나 볼 수 없다. 책세상 문고 고전시리즈에서도 베르그손 주저들이 번역되지 않고 있다!

 

해당 전공자들은 꽤 있는 것 같은데, 총서 기획위원들이 이들을 간과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전공자들이 집필을 고사하고 있는 건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명성과 빼어난 저작물들에 비해 이들의 입문서가 하나도 없다는 점이 이상하고 아쉬울 뿐이다.

 

의심이 깊어지다 보니, 아직까지 인문학 해설 총서에 베버와 베르그손이 없다는 사실로부터 나는 다음과 같은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입문 시장에서는 이들로(베버와 베르그손) 재미를 볼 수 없어서 그런가?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사상가들인가? 정말?

-달라이 라마를 아는 것이 이들을 아는 것보다 더 유익한가?

 

뭐, 여기에 대한 답은 인문 교양 해설서를 내는 출판사만 알겠지. 에휴~ 이런 걸 이상하게 여기는 내가 이상한 건지 아니면 출판사가 이상한 건지.. 어쨌든 이상한 건 분명하다는 거..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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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완 작가. 그가 또 신간을 냈나부다. 도서관에 포스터가 붙어 있다.

 

이 사람의 책들. 도서관에서 저자의 책이 나올 때마다 선전한다. 삼성전자 다니다 나와서 3년 간 책 1만권을 읽고 50여 권의 책을 쓰면서 제2의 인생을 사는 사람...어쩌구 저쩌구..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기에 3년 간 1만권의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수치는 뭔가가 이상하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일하면서 책만 줄기차게 읽을 때도 1년에 1천권을 읽을 수 없었다. 그것도 상당수는 발췌독이었다. 뭐, 내가 읽었던 책들이 거의가 사회학이나 철학, 자연과학 이론서들이었기에 그랬을 수는 있다.

 

하지만 아무리 얄팍한 자게서 위주로 읽는다 쳐도 3년 간 1만권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저자가 자신의 책들에서, 자신이 독서훈련이 되어 있지 않아 처음 1년간은 매우 고생했었노라고 고백한 부분이 있어서다. 상당히 공감하면서 읽은 기억이 있다.

 

나도 책을 처음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후레쉬맨 시절, 독서 이력이 전무했기 때문에 잡고 읽는 책마다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고, 읽는 속도도 너무 느렸다. 당시 내 소박한 소원은 어떤 책이라도 좋으니 읽으면서 술술 이해하면 좋겠다는 거였다.

 

김병완 작가도 회사를 때려치고 독서를 하기 시작한 때, 그 독서 수준이 내 후레쉬맨 시절과 거의 같았다. 그런데, 그는 이런 시행착오를 아주 단번에 뛰어넘어 3년에 1만 권이란다. 자기 고백은 9천 몇백권이라는데, 난 이것도 믿을 수 없다!

 

왜냐구? 내가 한달 동안 밥만 먹고 책만 읽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뭔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했는데, 그걸 내가 맡은 적이 있다. 내가 때를 써서 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덤탱이를 썼다. 그때 대표가 준비할 한 달 간의 시간을 줬다. (이런 케이스는 거의 없는데, 시간을 안 주면 일 때려 치겠다고 했기에)

 

그래서 내가 한 일이란 것이 필요한 책을 쌓아 놓고 줄창 책을 읽는 거였다. 출근해서 정해진 분량의 책을 가열차게 읽고 보고서 비슷한 걸 만들어 발표하는 거였다. 쓰는 건 이틀이면 됐기에 책을 읽는 작업이 매우 중요했고 가장 많은 시간을 필요로했다.

 

난, 고시공부를 한 이력이 있기 때문에 앉아서 책보는 거는 너무도 익숙하고 내가 그나마 잘하는 몇 가지 일 중 하나라서 신나게 프로젝트를 완료한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내가 읽었던 책들은 대부분 두꺼운 하드커버의 이론서들로 400페이지 ~ 600페이지 정도의 책 500여 권이었다.

 

아침 8시에 출근해서(아침 10시까지 출근이었지만) 새벽 1시까지 밥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모조리 독서에 할애했다. 그냥 읽는 게 아니라 내가 정리해 가며 읽어야 하기 때문에 무척 집중하여 읽어야 하는 그런 독서였다. 물론 완독한 책은 정확히 28권이었다. 나머지 책들은 전부 발췌독이었다.

 

 

600 페이지가 넘는 책(예컨대 <다산선생지식경영법>)을 하루에 본다는 건, 정말 말이 쉽지 피말리는 작업이었다. 기한이 정해져 있는 독서란 집중해서 좋긴 한데, 압박감 때문에 재미가 반감되는 단점이 있다. 그래도 <다산선생지식경영법>은 아침부터 시작된 독서가 밤 9시 정도가 되서야 끝을 볼 수 있었다. 중요 부분에 줄을 치며 집중하면서 초스피드로 읽은 덕택이다. 물론 흥미진진한 내용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머지 완독한 28권의 책들은 새벽1-2시가 되어서야 완독할 수 있는 책들이었다. 당시 읽은 책들의 목록 일부가 지금도 생각나는데, <전략의 본질>, <의사결정의 원칙>, <게임이론>, <이타적 인간의 출현>, <의사결정의 함정>, <매킨지식 전략 시나리오>, <로지컬 싱킹>, <유쾌한 딜레마 여행>, <자유주의>(미제스),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실용논리학>, <선택의 논리학>, <세상을 바꾼 30가지 심리 실험> 따위의 책이었다.

 

 

 

 

 

 

 

 

 

 

 

 

 

 

 

 

 

 

대부분 심리학, 경영 전략, 경제이론, 논리학 등에 관한 이론서들이었다. 자게서로 분류되는 책은 거의 없었고, 굳이 꼽자면 <의사결정의 원칙> 정도 있겠다. 하지만 <핑>이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와 같은 책은 아니다. 비즈니스의 경영 사례로부터 올바른 의사결정을 훈련하는 실용서이기에 쉬운 책은 아니다.

 

거의 고시 공부하다시피 읽은 책들이라, 신났지만 매우 힘겹게 읽었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서 영화도 보고 놀이도 하면서 집중했던 머리를 식혀줬다. 아무리 책을 좋아하지만 이런 류의 책들을 1년 내내 읽는다면, 그것도 곤욕일 거라 생각했다. 청명하고 좋은 날씨에는 놀러 가는 게 독서하는 것보다 이롭다.

 

 

 어떤 사정으로 인해 그런 독서를 한다손치더라도 1년이면 365권이다. 3년을 수인처럼 책만 읽는다하더라도 1천여 권 정도 뿐이 안된다. <안나 카레리나>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잡는 순간 1년 365권은 도달할 수 없게 된다. 분권된 것을 한권씩 셈해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한 권의 분량이 하루만에 읽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무리 속독법을 배워서 읽은들 무리다. 아니, 이런 류의 책들은 속독으로 읽을 수가 없다. 문장마다 비수처럼 꽂히는데 어떻게 휘딱 읽을 수 있을까? <안나 카레리나>를 속독으로 읽는다? 그건 바보같은 독서다. 적어도 도스토옙스키나 톨스토이의 작품들을 읽는 데에 있어서는.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감히 단언한다. 김병완 작가가 말하는(적어도 항상 광고지에서 책선전 하는) 3년 간 1만권은 완전 뻥이라고! 1만권을 읽기 위해서는 아주 얄팍한 책들 위주로 쉴새 없이 읽어야한다. 하루 10권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읽어야 3600권이다. 그래야 3년간 1만권에 도달한다.

 

근데, 이게 가능한 일일까? 수인(囚人) 생활을 하면 가능할 지 모르겠다. 주로 자게서를 읽어야 하루 10권을 채울 수 있다. 발췌독이라도 보통일이 아니다. 일단 <안나 카레리나>와 같은 장편소설을 잡는 순간 하루 10권은 절대 채울 수가 없다. 살림문고 10권이라도 정말 빠듯하다. <살사>나 <초콜릿 이야기>와 같은 쉬운 책을 3권만 읽어도 7시간은 족히 간다. (시간 재고 읽어봐서 안다.)

 

 

 

 

 

 

 

 

더욱이 김병완 작가는 <나는 도서관에서 기적을 만났다>(아템포, 2013)에서 처음 직장 때려친 1년 간은 읽는 행위가 어려웠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 하루 10권은 어림도 없다. 도서관에서 책쌓아 놓고 한 권에 10여 페이지씩 발췌독 한 걸 모두 읽은 권수에 넣는다면 모를까.

 

아마도 내 생각엔 김병완 작가가 하루종일 도서관에서 살았다고 하니, 하루 1-2권 정도는 완독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를 넘는 권수는 분명 발췌독한 것과 이리저리 넘겨 본 걸 모두 합산했을 거다. 비슷한 주제를 갖고 읽어 나가면 훑어본 것도 대충 읽은 거라 생각이 들기에. 그래도 미심쩍긴 매한가지다.

 

왜냐? 도서관은 적어도 한 달에 4번 휴관한다. 그리고 빨간날은 죄다 논다. 도서관 휴관이 매달 4일 이상은 족히 된다. 이런 날 집에서 도서관처럼 생산적인 읽기를 하기도 힘들 거다. 김 작가는 결혼도 했기에, 여러가지 경조사나 집안 일로 어른들을 만날 일이 꽤 될 것이다. 이런 걸 모두 제껴두고 책만 읽는다는 건 상황상 이해가 불가하다. 

 

고시공부와 같은 어떤 중차대한 목표가 있으면 가족 모두가 그런 수인생활을 감내해 준다. 근데, 김병완 작가는 그런 것도 아닌, 자기가 뭔가를 이루기 위해 자발적으로 책을 읽은 거 아닌가. 아무리 심지가 굳은 사람도 공부라는 목표가 없으면 쉽지 않다.

 

뭐, 그래 이 부분은 공감해 주자. 김 작가가 투철한 목표의식을 3년간 지속했다라는 걸. 그런데, 언제나 그렇지만 환경은 자기가 콘트롤할 수 없다. 3년 간 한번도 아프지 않아야하며, 어떤 가족의 대소사에도 전혀 참여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수인생활을 3년 간 지속해야 1만 권에 도달한다. 하루라도 삐끗하면 그 다음날 20권이 쌓이고 이틀이면 감당할 수가 없게 된다.

 

난 적어도 비슷한 생활을 해 봤기 때문에 하루 분량을 넘기면 어떻게 되는지 감이 잡힌다. 그런데, 김병완 작가가 저걸 가뿐히 해치웠다는 데에 못된 심술이 도진거다.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해 줄 수가 없다. 그가 이전에 계속 직장을 다니면서 독서이력을 쌓아 왔다면 어느 정도 공감해 줄 수도 있었을 거다. 속독력과 이해력이 높아지니.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전혀 아니었다.

 

그건, 그의 책 몇 권을 읽어보니 확실했다. 그는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생활을 하자면서, 자본이 주는 안락함의 힘을 예찬하고 있었다. 인용한 책들도 대부분 자게서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인용부분도 여러 권을 쓸 때 알차게 중복 활용하는 것 같았다. 나는 확신했다. 그는 절대 <안나 카레리나>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그리고 <레미제라블>같은 책은 읽었을 리가 없을 거라고. (읽는 순간 목표량을 채울 수가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강연을 다니면서 독서의 대가처럼 말하고 다닌다. 난, 이게 싫은 거다. 거짓말 같아서. <기적의 고전 독서법>이니 <기적의 인문학 독서법>같은 책을 내고 전문가인양 가이드해 주는 걸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위에서 지적했다시피 그는 고전을 읽어 본 적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국가>를 하루만에 처음 읽는다?!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어느 정도 독서 이력을 쌓아서, 그래서 책을 겁나게 빨리 쓰는 재주를 가진 건 정말 부러운 재능이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책 한권 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더군다나 내는 책마다 책이 팔리고 어느 정도 이름이 나고 강연을 다니는 걸 보면, 그냥 상황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는 게 인지상정이지 않을까. 환경이 자기를 택해 주었다는 것에 대해서. (난 환경결정론자라 항상 이리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근데, 그는 오로지 자신의 우월한 능력 때문에 그리 된 줄 착각하고 있는 듯보인다. 독서 전문가라고 활게치고 다니는 현재 그의 행태가 그렇다. 자신이 정말 독서전문가로 인식받고 싶으면 1만권을 어떻게 읽었고, 중요 책들의 리뷰라도 정리해서 책을 내는 것이 순리리라.

 

3년 간 1만권은 우스운 숫자가 아니다. 책을 낼때마다 계속 우려먹고 있는데, 1만권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헤아려보시길. 그의 책을 사서 보는 독자들도 생각해 보시길! 1만권을 읽고 쓴 그의 책들을 읽어 보니, 깊이는 커녕 이율배반적인 얘기를 자기도 인지하지 못하고 쓰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의구심이 들어 이런 글을 쓰게 됐다.

 

물론, 그가 천재여서 그가 말한 게 모두 사실일 수도 있다. 내가 오버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히 그는 자기 책에서 자기의 평범성을 대놓고 강조하고 있었다. 자기도 일반 대한민국 사람들과 같다고. 그의 책에서 그런 내용을 공감하고 보니, 책좀 읽는 나로서는 당연히 의심을 가질만 했고, 책 1만권의 무게가 어떤 것인지 좀 헤아려보자는 의도에서 이 페이퍼를 쓰게 된 것임을 밝혀둔다.

 

마지막으로 난, 그에게 엇가 심정이 없다. 단지, 3년 간 1만권을 읽었다는 거에 태클을 걸고 싶었던 것일 뿐! 도서관에서 다시 김 작가의 포스터를 보니 본의 아니게 울컥하여 생각해 두엇던 것을 페이퍼로 쓰게 되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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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감는새 2015-01-09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예전에 지나가는 길에 읽고 오늘은 구글링해서 겨우 이 글 찾았네요.
좀 퍼가도 되겠습니까?
격하게 공감되는 글입니다.

yamoo 2015-01-15 22:5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마음껏 퍼가시길^^

요롤레이요 2015-12-21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크...아직 대학교 1학년 학생이지만 전 하루에 책 한권읽기도 벅차네요..

전공은 공학이지만 주로 심리학이나 사회과학 경제학 역사학관련 서적을 읽는데 아직 1일 1권은 힘들더군요. 이번 방학 70일간 50권읽는것이 목표입니다 ㅋㅋ

yamoo 2015-12-27 19:01   좋아요 0 | URL
사회과학, 역사, 경제학 서적은 하루만에 읽기가 무지 힘듭니다. 낼 셤에 책에서 시험 낼꺼라고 하지 않는 이상 1권 읽기는 정말 무리입니다~ 300페이지 교양 경제학 책만 일독한다고 하더라도 10시간 이상은 집중해서 봐야되지 않을까 합니다~

AARRR 2017-11-15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 내용을 이해하고 요약하고, 기억하고, 실제로 평상시에 적절한 타이밍에 무리없이 떠올릴 수 있는 수준의 정독으로는 아무리 뛰어나도 최대치는 연 200권 정도라고 봅니다. 실제 다독가들이 말하는 얘기들도 종합 해 보면 최대치가 보통 연 200권입니다. 일을 하고 생존에 필요한 시간을 제외하고 남는 시간 거의 전부를 책을 읽어도 연 100권쯤이 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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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인사동 한 카페에서 충격적인 말을 우연히 들었다. 외국인과 한국인들이 섞여 있는 무리 옆에 앉아 있었다. 약간 소란스런 와중에 러시아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에게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영어가 유창하지 않은 러시아인이 천천히 말해서 알아들을 수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 요지는 “너희는 주체성 있는 나라냐?”라는 거였다. 그냥 소리가 날아와 귀에 꽂힌 거였다. 헌데,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했다. 외국인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은 그 한국 친구는 어땠는지 모르겠다. 뭐라고 대답하던데, 소리가 작고 울려서 못알아들었다. 아마도 역사 공부를 하는 모임같았는데, 카페에서 이런 말을 들을 지는 꿈에도 몰랐다. 이 질문은 내가 오래 전부터 생각해 오던 문제의 화두여서 더 놀랐다. 이 단상은 아주 오래 전에 탁석산의 <한국인의 주체성>과 신채호 선생의 <신채호 문집>을 보고 끄적거렸던 내용을 생각나는 대로 살을 붙여 마구잡이로 쓴 글이다. 논의가 다소 거칠고 체계가 없더라고 양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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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를 읽는 주요 이유 중 하나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볼 수 있고 과거에서 교훈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역사를 볼 때면 항상 답답한 그 무언가가 마음을 누른다. 그것은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에 놓일 때까지 주권국가로서 반만 년의 전통을 가진 나라라고 자랑하는 일이다. 하지만 외국인이 지적했듯이 탁 깨놓고 말해서 우리나라가 중국의 속국이 아니었던 때가 언제인지 반문하고 싶다.


그래서 우리나라 일부 학자들과 외국 학자들 상당수는 흔히 우리역사를 가리켜 ‘사대주의의 역사’였다고 논평한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진행하면서 우리 역사를 왜곡할 때, 그리고 일본의 식민사관이 우리역사를 재단할 때도 언제나 ‘사대주의 역사’라고 주장한 것을 본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형식적 책봉관계 운운하더라도 우리역사에서 사대주의는 분명히 존재했고 또 그것이 우리가 남의 나라에 자랑할 만한 역사가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역사가 사대주의의 역사라고 하였는데, 그러면 우리 역사상 주체성을 가진 움직임은 전혀 없었는가 하면, 그건 아니라고 힘주어 말하고 싶다. 우리철학 사상의 토착화과정만 봐도 우리가 얼마나 창조적이고 주체적으로 외국사상을 우리체계에 맞게 흡수했는지 알 수 있다. 원효의 불교사상은 한국불교사상의 원형을 이룸으로써 그 초석을 놓았다. 중국 주자학은 한국에 도입돼 퇴율 철학의 논쟁 속에서 독자적인 한국 성리학의 토대를 닦았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주체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문자생활의 지평을 피지배층으로까지 확대했다. 우리는 15세기에 독창적인 문자를 갖는 나라가 되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의 활약은 어떤가. 왕 이하 모든 대소신료들이 조선을 도우러 온 명의 행패를 보고만 있었을 때 이순신 홀로 잘못된 점을 비판하며 명의 장수를 나무랐다. 워낙 추상같고 바른 지적이었기에 명의 장수 진린은 그런 이순신을 흠모하기까지 하여 자신의 실수를 뉘우쳤다고 역사는 전하고 있다. 난중일기를 토대로 한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 그려진 이순신은 그렇게 통쾌할 수 없었다. 확실히 우리의 주체적인 모습이라 할 만 하다.


하지만 이러한 주체적인 움직임은 장구한 우리의 역사 속에서 자주적으로 계승되지 못하고 단절되었다. 우리 역사에 면면히 이어져 온 것은 다름 아닌 큰 나라를 섬기는 사대였다. 특히나 조선은 어처구니없게도 그 사대주의를 천명한 대표적인 나라였다. 오죽했으면 소중화(小中華)라는 표현을 스스럼없이 했겠는가.


이 사대주의 역사가 치욕스럽다면 그 원인은 어디서부터인지 소구해보는 건, 그래서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역사가 오직 사대주의로만 일관된 건 아니었다는 반론 또한 만만치 않으니 그 점 또한 간과할 수 없겠다.

현 시점에서 우리에게 ‘너희가 주체성 있는 민족이냐?’고 묻는 외국인들에게 정확히 답하기 위해서라도 사대주의의 역사적 소구 작업은 필요할 듯하다. 역사적 성찰을 통해서 적어도 작금에는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다.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나라는 미래가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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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의 역사, 즉 ‘사대’란 말은 ‘이소사대(以小事大)’의 줄임말이다. 풀자면, 약하고 작은 것이 크고 강한 것을 섬긴다는 의미. 그러니까 한마디로 정리하면, 소국이 대국을 종주국으로 섬긴다는 거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러한 사대주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이의 시초는 (거칠게 잡아도)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듯하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3국은 모두 중국의 책봉 관계 속에 편입되어 제후국으로 봉해졌다. 물론 이러한 관행은 중국 중심의 세계관이 반영된 형식적인 관계가 강하긴 했다. 역사를 보면 당시 중국이 3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일은 거의 없었던 걸 보면 형식적 관계가 강했다.


이러한 관계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 한 이후에도 그리 달라지지는 않았다. 당을 끌여들여 미흡한 통일을 완성했지만 중요한 것은 당의 한반도 지배야욕을 막아 냈다는 점이다. 당시 신라는 어쨌든 전쟁으로 당의 세력을 이땅에서 몰아냈다. 신라 초기는 그래서 당과 적대 관계였지만 이후 체제가 안정되자 역시 무역을 위해 중국의 책봉제제를 받아들였다. 이후 신라는 당에 형식적인 사대의 예를 다한 것으로 보인다. 당과의 무역은 신라에게 매우 이로운 일이라 조공 관계는 그리 손해 볼 일은 아니었다. 단지 외부에서 봤을 때 형식적으로 중국 세계에 편입된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신라가 망하고 후삼국의 통일을 마무리한 고려는 처음에는 고구려의 기상을 이어받아 북진정책을 추진했다. 고려 전기를 보면 중국과의 항쟁이 주를 이룬다. 이는 당시 동아시아의 패권국가였던 거란 족이 3차에 걸쳐 고려를 침입한 사건으로 알 수 있다. 전쟁을 해서 고려는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고 거란으로부터 자주국가로 인정받았다. 광종이 독자적인 연호를 썼던 것은 중국과 대등한 황제 국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어쨌든 고구려 광대토왕 이후 우리 역사에서 드물게 황제 국가로서의 위신을 선포한 때였다.


하지만 이는 오래 가지 못하고 결국 거란의 연호를 쓰기로 결정했지만 당시 동아시아 3국의 세력은 팽팽하여 안정된 국면을 맞이했다. 고려도 형식적인 책봉관계를 받아 들였을 뿐 중국을 받드는 사대외교는 이때까지 출현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2세기 들어오면서 한반도 북쪽 만주지역에 살던 여진족이 강성하여 나라를 세우게 된다. 화북 지방까지 세력을 떨친 여진족은 금을 세운 뒤 연운 16주를 차지했다. 이후 송을 남쪽으로 몰아내는 정강의 변(1126~1127년)으로 화북지방을 송두리째 빼앗으며 송을 신하의 나라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는 다음 공격 목표를 고려로 정했다.


사실 여진족은 고려 초기부터 우리나라 북쪽 국경선에 살면서 고려에게 식량과 농기구를 구걸하다시피하며 생활 했다. 수렵으로 잡은 동물의 가죽 등을 갖고 와서 먹을 것과 교환해 갔다. 무역을 거부하면 애걸복걸하면서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섬겼다. 실록과 각종 역사서에 보면 나오는 얘기다.

 

그런데, 이런 보잘 것 없던 미개한 여진족이 고려 중기 이후 송을 남쪽으로 밀어낸 것이다. 화북지방을 차지한 금은 과거에 부모의 나라로 섬겼던 고려에 대해서 형제국의 예를 맺자고 사신을 보내온다. 쉽게 말해서 자기들을 고려가 형님으로 대접해 줬으면 좋겠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서 고려 조정은 발칵 뒤집힌다. 무례한 놈들이라고 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금나라를 손봐줄 생각은 좀처럼 하지 못한다.


이때 묘청이라는 승려가 나와 금의 콧대를 꺽어버리자고 일갈한다. 처음에는 왕 이하 조정대신들이 솔깃했지만, 당시 정세상 금의 군사력은 동아시아 최강이었다. 묘청과 정지상을 중심으로 한 서경파(북진의 전초세력들)는 우리의 자주를 위해 금의 되먹지 못한 요구를 깨부수려고 천도까지 계획한다. 이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낀 왕과 대신들은 묘청의 이러한 행동을 제한한다. 거기까지만 하라는 것이다. 그냥 전쟁 없이 금을 형님 대접해주면 모든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는 논리였다.

 

이에 대해 묘청 일파는 불합리한 정치적 결정이라 생각하고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킨다. 이것이 유명한 고려시대를 뒤흔든 ‘묘청의 난’이다. 묘청은 나라의 자주를 위해서는 전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호를 ‘대위’ 국호를 ‘천개’라 하며, 금 정벌을 대의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안타깝게도 김부식으로 대변되는 개경파에게 진압되고 말았다.

 

1135년에 있었던 이 사건의 이름은 사건을 평정한 사람들의 사관이 투영되어 '난'으로 기록되었다. 김부식은 묘청을 잔혹하고 정권의 욕심이 아주 많은 인물로 그려 그를 폄하했다. 왕과 백성을 혹세무민한 대역죄인이라 평했다. 정권을 잡은 개경파의 사관이 투영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김부식의 평가는 후대에 새롭게 평가받기에 이른다. 이후에는 '서경천도 운동'이라 명명하며 금에 대한 우리의 자주의식을 천명한 사건으로 기록하기도 했다.

 

특히 신채호는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을 우리나라가 사대를 하기 시작한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했다. 그는 이 사건을 ‘우리 역사상 제일대 사건(조선 천년 제일대 사건)’으로 보았다. 개경파와 서경파가 나뉘어서 정권을 놓고 싸운 게 아니라 아주 중요한 역사의식의 심각한 충돌로 해석한 것이다. 우리가 자주의식을 잃고 사대로 일관한 것은 묘청이 김부식 일파에게 패한 바로 그때부터 시작됐다고 신채호는 평가하고 있다.

 

모든 역사책과 기록에서 묘청과 서경파에 관계된 자료와 사서들은 제거 되었고, 이후 개경파의 역사의식이 투영된 <삼국사기>가 우리 역사 최초의 정사 기록으로 남게 되었으니,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삼국사기>는 금에 대한 사대의 예를 다한 김부식의 투철한 유교적 역사의식이 고취되어 있는 사서이다.

 

이로부터 시작된 우리의 ‘사대주의의 역사’는 유구한 시간을 갖고 내려오면서 우리의 의식을 지배했다. 사대의 유전자는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잉태되었다. 고려의 저 묘청의 사건은 이후 매번 다른 상황의 옷을 갈아입고 역사에 종종 출몰하게 된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얼마 안 있어, 명은 멸망했다. 조선에 파병한 군사력의 손실로 인해 청나라의 공격을 막지 못했던 것이다. 명을 멸하고 청 왕조를 세운 민족은 금나라의 후신인 여진족이다. 중원의 패권을 장악한 청은 금나라가 그랬던 것처럼 고려의 후신인 조선에 형제의 맹약을 맺자고 소식을 전해온다. 이 사건이 정묘호란이다.

 

정묘호란은 꽤 심한 반발이 있긴 했지만 일단 형님으로 대접해 주는 선에서 타협을 보고 사건은 마무리 된다. 하지만 정묘호란이 있은 지 얼마의 시간이 흐르지 않아 전세는 변하여 이번에는 청이 군신의 예를 맺자고 소식을 전해온다. 이에 조선 조정은 발칵 뒤집힌다. 미개한 무리들의 요구를 물리치고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무리와 전쟁 없이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선에서 그치고 그 사이 우리의 힘을 기르자는 무리로 나뉘어졌다. 두 파로 나뉘어 서로 싸우는 와중에 결론은 나지 않고, 청 태종은 직접 조선을 정벌하러 내려오는 사태가 벌어진다.

 

1636년 청 태종이 조선을 정벌하러 온 이 사건을 일컬어 병자호란이라 한다. 병자호란이 발발하기 전, 김상헌을 비롯한 척화주전파는 청과 싸워 장렬히 전사하는 한이 있어도 오랑캐에게 굴복할 수는 없다고 일갈한다. 이에 대해 최명길로 대변되는 실리주의의 주화파는 우리의 힘이 청에게 상대가 되지 않으니, 일단 청의 요구를 들어주고 이후 힘을 길러 우리의 자주성을 찾자고 주장한다.

 

이 싸움에서는 고려와 달리 천화주전론이 승리하여 청과 싸움을 하지만, 이건 전쟁이 아니라 그냥 농성에 그치고 말았다. 남한산성에서의 40여일의 기록이 이때의 상황을 전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전쟁의 결정이 우리의 자주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의명분에 있었다는 점이다.


명을 받든 소중화(小中華), 다시 말해서 조선이 명을 대신해 복수하여 중화사상을 회복한다는 거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조선의 자주성을 회복하자는 논의는 아이러니하게도 최명길의 입장에서 나온다. 어쨌든 소중화를 자처하고 행한 청과의 전쟁에서 인조는 삼전도의 굴욕을 맛보고, 깍듯하게 청에게 사대의 예를 다하게 된다.


시간은 흘러흘러 세도정권이 끝나고 세계 열강들이 이양선을 타고 우리 근해에 나타나는 시대가 도래 한다. 일명 구한말의 시기. 일본과 미국 그리고 프랑스와 러시아가 조선과 무역을 하기 위해 배를 타고 나타났다. 이 중에서 제일 열심인 나라는 일본. 일본은 치밀한 계획 하에 조선을 개항하여 청에 대한 종주권을 부인케하고 조선을 독립시켜 자신들의 속국으로 만들 시나리오를 계획하고 있었다. 강화도 조약으로 시발된 이 시대에는 자주와 사대의 싸움이 개항과 척사의 옷을 입고 재등장하게 된다.


조선후기에 등장한 개화와 척사의 대립은 일제시대 이후 ‘선 독립 후 실력양성파’와 ‘선 실력양성 후 독립파’로 갈려진다. 선 독립 주창자들은 위정척사의 의식을 갖고 자주를 지켜온 자들의 생각을 대변한다. 그들은 독립을 위해 끝까지 최후의 한 사람까지 대일전쟁을 할 것을 맹세한다. 후자인 독립보다 실력양성이 우선이라는 자들은 곧 인조대의 실리파와 궤를 같이 한다. 이들은 독립을 하기위해 일본의 좋은 점을 받아들여 실력을 키운 후 독일을 하자고 주장했다. 일제 36년 간 무장독립 투쟁과 애국계몽 운동은 자주와 사대(실리)의 또 다른 표출이었다. 어떤 것이 더 옳다고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실력양성 측인 애국계몽운동을 한 많은 인사들이 친일 행각을 한 것으로 보아, 현재의 우리는 무장독립투쟁파가 더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평가하고 싶을 뿐이다.


3


그리고 이러한 대립 양상은 냉전체제로 분단국가가 되고 6.25를 겪으면서 복잡하고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하고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출발한 대한민국 정부는 반공을 국시로 삼았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와 맞물려 우익의 세상이 된 이승만 정권은 친일파를 정재계에 고루 등용하여 친일파가 권력을 잡는 빌미를 제공했다. 이승만과 박정희를 거쳐 노태우 정권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를 지배한 이들은 친일파의 후예들(작금의 보수이자 우익)이었다.


이들은 구한말 개화파, 그것도 일본의 세력에 빌붙은 후손들이다. 자주국가 건설과 무장 독립투쟁을 외쳤던 민족지사들은 대부분 공산주의를 받아들여 해방과 함께 북으로 넘어갔다. 이것이 남한의 비극이자 나라의 주체성이 없어진 결정타였다. 비록 소수의 자주 계열이 남한에 남아 있긴 했지만 박정희 정권 하에서 독립투사들의 후예와 함께 빨갱이로 몰려 완전히 몰락했다.


작금의 진보 대 보수의 갈등은 전통적인 자주 대 사대의 도식으로 볼 수 없는 복잡한 양상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의 진보는 영미의 진보 개념이 아니며, 역시 보수도 영미의 보수 개념이 아니다. 우리의 보수 진보 논쟁은 색깔 논쟁을 넘어 종북이냐 아니냐로 확대되고 있다. 국가의 자주적인 국부를 위해서는 그 어떤 관심도 없는 게 현 정치권의 세태이다.


우리는 주한 미국의 주둔과 보호 속에 국방의 자주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며 각종 이권을 미국에게 빼앗기고 있다. 한미 FTA뿐만 아니라 차세대 전투기 사업을 둘러싼 잡음들 역시 한국의 기득권층이 이권을 미국에 넘겨주기 위해서라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현재의 외교 노선은 그야말로 미국에 대한 현대판 사대로 일관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외교역시 소극적이고 국가의 영토적 환경적 이익에서 할 말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이 시시때때로 외치고 있는 독도 영유권에 대해서는 본질적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외교는 구한말과 비교해 결코 나아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정권 초기에 미국에서 윤창중 사건이 터진 외교에 그 어떤 기대를 할 수 있을까? 일본 원전 사고로 방사능 유출수가 쏟아진다고 해도 일본산 해산물을 안전하다고 수입하는 나라다. 우리나라 국익과 자주를 위해 어떤 외교적 성과가 있는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친일을 정당화하고 일본의 한국지배를 정당화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파동은 이 나라 우익의 실체가 무엇인지 명확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우리는 얼떨결에 사대주의도 모자라 친일 정권을 우리의 집권 정당으로 가진 나라가 된 것이다.



4


외국인이 우리에게 “너희가 주체성 있는 민족인가?”라고 물으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고려 김부식의 금에 대한 사대당이 조선의 소중화 사상을 거쳐 개화파로 그리고 친일파로 내려온, 이 기득권의 역사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만일 우리가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저 외국인의 물음 앞에 반성을 하고 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현재의 우리는 주체성 있는 민족이 아니기에 그렇다. 가슴에 손을 올리고 생각해 보면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반성하고 행동할 때 저 묘청의 자주 정신은 되살아 날 날이 올 것이다. 나는 이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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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3-01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사람이 쓰는 한국말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한국사람다운 한국말을 쓰는지 알 길이 없곤 해요. 그러나, 누구나 한국말을 쓴다 하더라도 한국말이 어떤 한국말인지 제대로 들여다보는 사람이 거의 없지 싶어요.

말부터 말답게 쓰지 못하니, 역사도 역사답게 헤아리지 못하고, 문화도 문화답게 가꾸지 못하고, 정치도 정치답게 지키지 못하고...... 모두들 똑같이 흐르지 싶습니다.

외국사람이 한국사람더러 '너희는 진짜 한국말을 쓰는 사람인가?' 하고 묻는다면. 국어사전 만드는 일을 하는 저조차도 '아니다' 하고밖에는 할 말이 없기도 합니다.

2014-03-03 1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며칠 전 체홉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열린책들, 2005)을 매우 인상깊게 읽었다. 지하철 안에서 멍하니 그냥 가는 것보단 나은 것 같아 읽기 시작한 소설집. 작년과 올해 통틀어서 유일하게 읽은 소설집이다. 단언컨대 내가 올 해 다시 소설책을 찾아 읽을 수 있도록 해 준 원동력은 바로 체홉의 이 소설집이다.

 

 

지하철에서 단 1편의 작품, 그것도 5페이지에 불과한 소설을 읽었지만 정신적 감흥은 꽤 오래갔다. 그가 단편소설의 천재 작가임을 단박에 알 수 있는 그런 작품들이었다. 소설에서 나에게 이런 정도의 포스를 느끼게 한 건 키냐르의 <은밀한 생> 이후 처음이었다.

 

체홉의 소설들을 얼마나 재밌게 읽었던지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읽은 후 감동은 더 말해서 뭣하랴. 체홉의 유머 단편집도 있어 찾아 봤는데, 그건 또 얼마나 웃기던지. 작품들을 읽으며 찬탄해마지 않았다.

 

그의 작품들을 읽고 있으면 "체홉은 반드시 읽어야 할 작가이다. 그는 우리를 정신적으로 성숙하게 만들어 주는 예술가이다."라는 수전 손택의 말이 계속 머리를 멤돌게 한다. 정말 고개가 끄덕여지며, '암, 그의 작품을 읽으면 정신적으로 성숙해지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도 그럴것이, 간결한 문체 속에 녹아 있는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유머와 위트 이면에 '인간의 가치'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단순하고 짧은 이야기 속에서 체홉이 잡아 내는 인간에 대한 통찰은 놀라울 정도이다. 그래서 그의 단편들을 읽으면 내가 정신적으로 성숙해 지는 느낌이 마구 들게 된다.

 

그런데, 어제부터 '정신이 성숙한다'는 말이 계속 생각나는 거다. 그러면서 의문점이 계속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정신이 성숙한다는 게 도채체 어떤 의미일까?'라는 물음. 그리고 여기에 완전히 사로잡혀 버렸다. 걸을 때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사우나에서도, 도무지 생각을 멈출수가 없다. 조금만 짬이 나면 이 생각이 튀어나온다.

 

계속 생각을 하다 보니, '정신이 성숙해진다'는 게 아주 이상한 표현이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당연한 것도 자꾸 생각하면 이상하게 보이는 것처럼, 내가 미쳐가고 있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긴했다.

 

하지만 분명해 보였던 건 '정신은 성숙할 수 없다'는 명제였다. 헤겔이 말위에 탄 나폴레옹을 처음 보고 '저기 절대정신이 있다'고 외친 것처럼 정신은 있는 것이지 성숙하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 실례로 '시대 정신'이 있는 것이지, '시대 정신'이 성숙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내친김에 더 나아가 보기로 하자. '정신은 성숙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인간이 정신적인 존재라는 건 확실해 보인다. 어떤 이상을 추구하고, 소설을 즐기는 면을 보면 말이다. 더군다나 먼 옛날부터 형이상학이라는 이론을 정초해 낸 것을 보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어떤 고귀한 능력'이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을 듯하다.

 

비슷한 맥락으로 '천부인권 사상'이라는 것도 있지 않나.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불가침(남에게 침해받지 않을)의 기본적인 권리를 갖고 태어난다는 사상 말이다. 생명권, 자유권, 평등권과 같은 기본권 등등.

 

그러니까 인간의 '정신'은 '천부인권 사상'처럼 인간이면 누구나 갖고 태어나는 고귀한 능력이다. 그렇다면 분명해 진다. 천부인권이 성숙한다? 이건 너무 이상하고 말이 되지 않는다. 뭐가 성숙하는가? 천부인권은 성숙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드러나는 정도에 있다. 사회의 발전 상황에 따라 완전히 드러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 정신은 성숙하는 게 아니다. 단지 각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잘 발현되지 못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기쁘게도, 나의 이런 생각은 약 200년 전 혜강(1783~1877) 최한기 선생의 철학에 닿아있다. 혜강은 자신의 기(氣)철학을 펼치면서 아주 명쾌하고도 설득력 있는 설(說)을 내 놓았다. 그게 바로 기일분수(氣一分殊)론이다. (사실 기일분수론은 거슬러 올라가면 서경덕 임성주 등의 기철학자에게서도 볼 수 있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복잡하니, 뼈대만 보도록 하자. 상황을 현대적으로 설정해 보면 이렇다. 다섯 개의 물이 든 비커에 각각 투명한 구슬을 넣는다. (순서대로 1번부터 5번까지) 그리고 1번을 제외하고 2번 비이커부터 먹물을 단계적으로 떨어뜨린다. 마지막 5번 비커의 구슬이 안보일때까지.

 

그러면 다섯 개의 비커는 처음 맑고 투명한 비커에 담긴 비커부터 마지막 5번 비커까지 먹물의 농도에 따라 배열된다. 1번 비커는 아주 투명하여  구슬이 선명하게 보인다. 2번 비커부터 4번 비커까지는 먹물의 탁함 때문에 구슬이 선명히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보인다. 4번 비커는 잘 안보이지만 5번 비커와 비교하면 그래도 비커에 구슬이 담겨져 있는 형태는 볼 수 있다. 5번 비커는 물이 너무 시커멓게 되서 구슬조차 볼 수 없다.

 

혜강 선생의 설명에 따라 해석해 보면, 여기서 구슬은 인간 정신이고 먹물의 탁함 정도는 개인의 기질 차이다. 1번 비커는 기질에 나쁜 것이 전혀 섞이지 않아 본연의 인간 정신이 모두 발현되는 예이다. 그에 비해 5번 비커의 상황은 기질이 너무도 탁하여 인간 본연의 정신이 하나도 드러나지 못하는 예이다. 2번부터 4번 비커의 상황은 기질의 탁함 정도에 따라 인간 정신이 발현되는 정도가 다른 예들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인간의 정신은 성숙하는 게 아니다. 단지 개인의 기질에 따라 단계별로 드러나는 정도가 다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인간의 정신이 성숙한다'는 생각을 문제의식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서양 사상에 기반한 지성의 산물 때문인 듯하다. 베르그손이 말한대로(<창조적 진화> pp305-306) 지성은 항상 지성과 맞아 떨어지는 '어떤 느낌'을 찾는다.

 

그 '어떤 느낌'이 정신이 될 때 우리의 지성은 정신에게 명백한 공간 표상을 암시해 준다. '성숙'은 당연히 '미성숙'을 전제한다. 미성숙과 성숙의 이 간극, 다시 말해 정신은 단번에 공간을 획득하고 그 속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일단 공간의 형식을 소유한 정신은 우리의 필요에 따라 개념을 재단한다. 그러하기에 '정신이 성숙한다'는 이 비유는 지성에게 너무도 자연스럽게 수용될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위에서 지적했다시피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정신을 공간적으로 구획할 수도 없거니와 이로부터 확장(또는 연장)되는 인격화는 더욱 문제점을 심화시키기 때문. 다시 강조하지만 정신은 성숙할 수 없다. 오로지 발현될 뿐이다.

 

그런 고로 우리가 문학 작품들을 읽고 감동을 느끼는 행위는 우리의 정신이 성숙해 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외물에 휘둘려 드러나지 않았던 고귀한 정신이 비로소 문학을 만나 그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는 과정인 것이다.

 

 

 

덧.

1. 그럴듯한 말일수록 의심해 보는 깜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되는... 설날의 깊어가는 밤이다.

2. 하반부에서 베르그손의 <창조적 진화>(아카넷, 2005) pp305-306 부분을 나름 이해하여 논의 전개 과정에 적용시켜 봤는데,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쓴 것인지 심히 우려된다. 번역본이 너무 좋지 않아 '지성성과 물질성'부분을 10번 이상 읽었는데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정말 이해 할 수 없을 정도의 비문이 넘쳐났다. 본문에 해석된 베르그손의 이론이 오독이라면, 이는 순전히 번역자(번역의 질이 현저히 떨어졌음)때문이다. 나는 나름대로 이해하기 위해 10번 이상 읽고 고 박홍규 교수의 <창조적 진화>강독도 참고 했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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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2-01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amoo 님 덕분에 저 책 ..장바구니에 바로 넣었습니다..~~

"정신은 성숙할 수 없다..오로지 발현될 뿐이다.."

자주 꺼내보게 될 것 같은 문장입니다

yamoo 2014-02-03 17:11   좋아요 0 | URL
새벽숲길님 반갑습니다!

혹시 체홉의 소설을 아직 만나지 못하셨다면 이 기회에 읽어보심 좋을 듯싶습니다. 저는 재작년에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만, 일 때문에 읽지 못하다가 몇일 전에야 읽게 되었습니다. 늦게 만났지만 그래도 지금쯤이라 안도됩니다^^

페이퍼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페크pek0501 2014-02-02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홉의 작품에 반하셨군요? 행복한 일입니다.
저도 어떤 작품에 매료될 때마다 저의 행복지수가 올라가는 것만 같아요.

"인간의 정신은 성숙하는 게 아니다."
- 아, 어려워라...
생각해 보겠습니다. ^^

yamoo 2014-02-03 17:13   좋아요 0 | URL
네^^ 반했어요.ㅎ 그쵸, 즐거운 일입니다. 앞으로 체홉의 작품이 번역되면 낼름 사 볼 예정입니다..ㅎ

흠...생각해 보시고, 나름 답을 내시면 알려주세요.^^
 

개인적으로 중국 제자백가 사상 중에서 <장자>를 제일 좋아합니다. 그 이유는 우화 형식으로 돼 있지만 내재해 있는 철학적 사유가 매우 심오하기 때문입니다. 우화의 내용은 대부분 모순적인 상황을 발생시킵니다. 그리고 우화의 끝에 이르면 언제나 지혜에 대한 깨달음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역설의 미학이라고 할까요. 뭐, 노자 <도덕경>이나 자사의 <중용>을 읽어보면 비슷한 사유의 흔적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화 속의 특유한 '논리' 구조*는 제자백가 사상 중 <장자>에서 가장 두드러집니다. <장자>를 읽는 재미와 묘미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어쨌든, 이 ‘역설’의 논리는 서구의 변증법적인 방법과 비슷해 보이지만 음미해 보면 선불교에서 말하는 ‘공안’의 논리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런지 직접 <장자>가 하는 말 몇 대목을 들여다 보는 게 좋을 듯합니다. (제가 소장하고 있는 <장자> 판본은 여러 개인데, 아래 글은 윤재근 씨가 편저한 <장자> 중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1990년 판이라 2013년 판본과 페이지 수가 달라 페이지는 생략 했습니다.)

 

 

 

 

 

 

 

 

 

 


“사물은 이건 아닌 것이 없고 저것 아닌 것이 없다. ~ (중략) ~ 이것이 저것이고 저것이 또한 이것이다. 저것도 하나의 시비이며 이것도 하나의 시비이다. 과연 저것과 이것이 있다는 말인가 없다는 말인가. 저것과 이것이 서로 대립을 없애는 경지를 도의 중심이라고 한다."


“손가락을 가지고 손가락이 손가락 아니라고 하는 것은, 손가락 아닌 것을 가지고 손가락이 손가락이 아니라고 하는 것만 못하다.”


“한쪽에서 보면 분열이고 다른 쪽에서 보면 합침이다. 한쪽에서의 합침은 다른 쪽에서의 파괴이다. 모든 사물은 합침이든 파괴이든 다 같이 하나이다.”


“저 텅 빈 것을 잘 보라. 텅 빈 방에 햇빛이 비쳐 밝지 않은가. 행복은 텅 빈 곳에 머문다.”


“삶을 죽이는 자에게 죽음이란 없다. 삶을 살려고 하는 자에게 삶이란 없다. 이것이 도이다. 도란 모든 것을 보내고 모든 것을 맞아들이며 모든 것을 파괴하고 모든 것을 이룩한다.”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 근심과 한탄, 변덕과 고집, 아첨과 거만, 개방과 꾸밈 이것들이 없으면 내가 있을 수 없고 내가 없으면 그것들이 나타날 데가 없다.”


<장자> '내편'에서는 위와 같은 어록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말장난처럼 보이는 대목도 있고 아포리즘과 같은 대목도 있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모든 어록이 평면적인 말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제자백가 사상 중, 가장 논리적이고 역설적인 서술이 많은 텍스트가 <장자>인 듯합니다.


<장자> '내편'에서는 주로 장주가 직접적으로 말하지만, '외편'에서는 논리를 중시하는 명가의 공손룡과 혜시(장주의 친구)가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외편을 읽는 재미가 내편을 읽는 재미보다 낫습니다.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대화가 많습니다. 대구로 되어 있어 주거니 받거니 합니다.  '외편'도 좀 들여다 보겠습니다. 


혜시 : 하늘은 땅만큼 낮고, 산은 못만큼 낮다.

[이것은 사물과 그 속성을 포괄하는 논리적 문제이다. 우리는 ‘하늘’과 ‘산’이 높은 것을 가리킨다고 생각하지만, 혜시는 산의 저상 아래로 보이는 구름의 경우와 산의 정상에 높이 있는 못의 경우를 예로 든다.]

장자 : 이 세상에서 털 끝보다 더 큰 것은 없으며, 태산은 작다.

[이 역설은 예상되는 표준에서 벗어나는 특이한 예외를 인용함으로써 위의 혜시의 경우가 아닌, 만물의 ‘동일성과 나눌 수 없음’의 차원인 형이상학적인 해결을 보여주고 있다.]


혜시 : 정오의 해는 지는 해이고, 태어난 생명체는 죽어가는 생명체이다.

장자 : 생명이 있는 곳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다.


이 대화에서 보듯이 혜시는 장주에게 먼저 논리적인 공격을 가하지만 번번이 장주의 논리에 결정타를 먹고 사라집니다. '외편'을 읽어 나가다보면 혜시와 공손룡은 예외 없이 위의 대화처럼 장주에게 논리적으로 무릎을 꿇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매우 못마땅한 부분이 있습니다. 본 페이퍼를 쓰는 이유도 바로 이 부분에 어떻게든 딴지를 걸어보고 싶어서 입니다. (하아~ 서설이 너무 길었습니다.) <장자>를 읽다보면 '외편'의 '추수편'에서 다음의 유명한 대화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제가 시나리오 형식으로 편집해 봤습니다.)


장주(장자)와 혜시(혜자)가 호수의 다리위에서 한가하게 거닐고 있었다.

장주 : (물고기를 보면서) 하, 참 그놈들 한가롭게도 헤엄치고 있네. 이게 물고기의 즐거움이렸다.

(이 말을 들은 혜시)

혜시 : 자네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가 즐겁다는 것을 안다는 말인가?

장주 : 자네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가 즐겁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는 말인가?

혜시 : 나는 장주, 그대가 아니니까 물론 자네를 알지 못하네. 마찬가지로 자네는 물고기가 아니니까 물고기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은 확실한 거라네.


이 대목은 <장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출간된 거의 모든 책에서 다음의 내용과 동일하게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


「장주가 말하기를 “자, 이야기를 처음으로 되돌려 살펴보세. 자네는 나에게 ‘자네가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에 대해서 아는가?’ 라고 물었는데, 그것은 그대가 이미 나의 앎에 대해서 알고 있기 때문에 나에게 그렇게 물은 것이라네. 나 역시 호수 다리 위에서 물고기의 즐거워함에 대해서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이것이 물고기의 즐거움’이라고) 말한 것이네” 라고 하였다.」


이에 대한 주석 또한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합니다. <장자> 해설서 중에서 가장 빼어난 책 중 하나라고 하는 박이문 교수의 <노장사상>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박이문 교수는 책에서 "장주가 혜시의 논변에 자가당착(自家撞着)의 요소가 있다는 것을 이미 간파했다"라고 몰아갑니다. 계속된 논의를 따라가 보면, 혜시의 “사람은 자기가 아닌 타자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나는 장주가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장주에 대해서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장주도 자기가 아닌 물고기에 대해서 알 수 없다’는 것을 나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부분이 모순을 범했다는 겁니다.

 

모순을 범했기에 장주는 혜시의 모순을 딛고 서서 자기주장의 논리적 타당성을 변증 설파한 것이라고 하면서 박이문 교수는 장주의 변증 설파 부분(장주의 마지막 대화)으로 글을 맺고 있습니다.

“자네가 처음에 나에게 ‘자네가... 어떻게 물고기가 즐겁다는 것을 안다는 말인가?’ 라고 물은 것은, 자기가 아닌 나, 즉 타자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나 역시 호수 다리 위에서 혜자, 자네의 전제대로 타자인 물고기가 한가롭게 노닐고 있는 것을 보고 물고기의 즐거움을 안 것이다.” 



아, 그런데 이 대화의 이러한 결론에 저는 도저히 동의 할 수 없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혜시는 장주에게 논리적으로 완승을 거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혜시는 논리학파로서 순수하게 장자의 말에 논리적인 모순점을 지적하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위에서 장주의 마지막 말은 혜시의 날카로운 반격에 관계없는 제3의 요소를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자네가 어떻게 물고기가 즐겁다는 것을 안다는 말인가?'라고 했지만 그것은 이미 내가 안다는 것을 알고서 그렇게 물은 것이라네.”라는 장주의 말은 논리를 넘은 말입니다.

 

장주가 처음 “하, 참 그놈들 한가롭게도 헤엄치고 있네. 이게 물고기의 즐거움이렸다.”라고 말한 것은 이미 물고기의 즐거움을 안다는 전제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논리를 중시한 혜시는 이를 재빨리 캐치해서 이 숨어 있는 전제를 공격한 것입니다.


마지막 문장에서 다시 돌아가 이 문제를 혜시에게 환기 시키는 것은 (논리적으로 볼 때) 정말 가당치 않습니다. 물고기의 즐거움을 안 것처럼 말한 사람은 장주 자신입니다. 혜시가 문제 삼은 것은 이미 ‘네가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느냐’이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는 장주를 알고서  혜시가 그렇게 물은 것이 아닙니다. (혜시는 논리학파이기에 너무도 당연한 문제제기 였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자> '추수편'의 이 대화는 형식논리학적 관점에서 다시 조명해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이상, 허접한 야무의 딴지 걸기였습니다.

 

[덧]

* <장자> 텍스트의 특유한 논리 구조는 이미 여러 편의 논문들에서 다루어져 온 내용입니다. 동양 철학 텍스트에서 서구 논리학에 가장 근접한 사유 구조를 보이는 것은 공손룡을 위시한 '명가'학파였습니다. 하지만 <장자>텍스트 속의 논리 구조는 텍스트가 구성될 시 불교 철학의 사유 구조가 상당부분 흡수되어 편집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자백가 중 독특한 논리구조를 보여주는 텍스트가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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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3-11-13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해주신 문장만으로도 읽기에 좋습니다. 행복은 텅 빈 곳에 머무른다는 말, 이것과 저것에 대한 사유 등 덧붙여주셨듯 불교철학과 통하네요. 또 한가지 즐거운 자극 받고 그냥 가려다 오늘은 몇 자 남겨요. ㅎㅎ 어제 근교 유명한 절 입구 단풍길을 걸었는데 이것이 있어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어 이것이 있다,라는 글이 새겨진 돌이 세워져있더군요. 장자 사상과 통하나요? 그곳은 내원사 들목이었습니다. 바람에 팔랑대는 나뭇잎이 어찌 황홀한지 한참 올려다보았어요. 막바지 가을 즐거이 보내시길요.^^

yamoo 2013-11-17 16:23   좋아요 0 | URL
장자에는 불교철학과 통하는 논리과 꽤 되는 것 같아요. 칸트를 읽으신 다음 <장자>를 읽어보세요. 우화형식으로 돼 있어서 쉽게 읽으실 수 있습니다. 특히 유재근 씨의 장자 편역이 아주 쉽습니다. (물론 번역에 대한 비판은 있지만 제일 쉬운 거 같다는^^;;)

프레이야님두 막바지 가을 만끽하시길!^^

곰곰생각하는발 2013-11-14 0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항상 동양철학 고전 읽기에 실패했는데 장자'로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ㅏ.
전 서양철학서보다 동양고전이 정말 어렵더라고요. < 벽암록 > 읽다가 뭔 소리인지도 잘 모르겠고. 자괴감만 들고... ㅎㅎㅎ. 장자 읽어봐야겠군요...

yamoo 2013-11-17 16:27   좋아요 0 | URL
헛! 의외네요~ 곰발님께서 동양 고전 읽기에 실패하셨다니..
흠...<벽암록>은 좀 어렵지요. <근사록>은 어떠신지...

어찌되었든 곰발님께서 동양고전 철학을 다시 읽으신다면 <제자백가>부터 읽으시길 강력히 추천드립니다~ 아님, <채근담>도 좋구요...

<장자>는 뭐, 원전이 아닌 윤재근 씨 편역을 읽으면 아주 쉽게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곰곰님의 서재에서 동양철학 고전에 대한 페이퍼도 볼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ㅎ

페크pek0501 2013-11-15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장자의 글을 인용한 적이 있어요. 복사 붙이기 하면 이렇게...

물고기가 정말 즐거운 것인지 장자가 모르는 것처럼 혜자 역시 타인인 장자에 대해 확신할 수 있는 게 없다. 사실 우리는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이 즐겁게 노는 것인지, 좋아하던 짝과 헤어져 슬퍼서 이리 저리 방황하는 것인지, 먹이를 먹고 난 뒤에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운동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저 우리 맘대로 해석할 뿐이다. 어디 물고기뿐이랴, 참새가 짹짹거리는 것도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 새들의 소리인지, 짐작은 할 수 있어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이에 비해 서로 언어로써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물고기’나 ‘참새’에 비해 훨씬 쉬워 보인다. 그런데 사실은 연인의 관계에서 서로의 진실을 알기란 헤엄치는 물고기나 짹짹거리는 참새의 기분을 헤아리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

오랜만에 <장자>를 보니 반갑네요. 님의 글을 읽으니 헷갈립니다. ㅋ

yamoo 2013-11-17 16:35   좋아요 0 | URL
인용하신 글은 아마도 장자의 해설서 내용과 비슷합니다. 네~ 대부분 비슷해요.
제가 문제제기 한 것은 형식논리학적인 시각에서 혜시의 비판은 무척 타당해 보인다는 거에요.
물론 장주의 마지막 말로 인해 논리적 딜레마를 벗어나는 철학의 묘미를 맛볼 수도 있지만 혜시의 문제제기는 자가당착이 아닌 장주 말의 모순점을 정확히 짚었다는 데 그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인용해 주신 글과 덧붙이신 글 감사합니다. 제가 인용한 추수편 글과 같이 보니, 아주 의미심장하군요!^^

oren 2013-11-15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amoo님의 글을 읽으니 철학자다운 고민 한 대목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저 또한 이 글을 읽고 yamoo님의 '딴지 걸기'에 대해 공감은 할 수 있으나 거기에 제 자신의 '의견'을 적을 엄두는 차마 내지 못하겠군요. 결국 어떤 사물을 어떻게 인식하느냐 하는 '인식이유'가 참 어려운 철학적 문제이긴 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보게 되고, (뜬금없이) 쇼펜하우어가 '데카르트의 혼동'과 '스피노자의 기교'를 비판한 대목을 떠올려 보게도 됩니다.

* * *

데카르트의 혼동

데카르트는 《제일 철학에 관한 성찰》의 ' 두 번째 반박에 대한 답변', 공리 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원인에 의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이 허용될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신에게조차 이 물음이 허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신이 존재하기 위해 어떤 원인을 요구하기 때문이 아니라 신의 본성인 무한성이 곧 원인 혹은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은 존재하기 위해 아무런 원인도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신의 무한성을 신이 아무런 원인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도출하는 인식이유라고 말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이 둘을 섞었고, 그래서 우리는 그가 원인과 인식이유 사이에 놓여 있는 큰 차이를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그러나 데카르트가 이 둘을 혼동한 것은 원래 그 자신이 의도한 바이다. 말하자면 그는 인과법칙이 원인을 요구하는 여기서 원인 대신에 인식이유를 슬쩍 써넣는다. 왜냐하면 인식이유는 원인이 그렇듯이 또다시 계속 찾아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데카르트는 바로 이 공리를 통해 신의 현존에 대한 존재론적 증명의 길을 개척한다. (25쪽∼26쪽)

* * *

스피노자의 기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는 그 사물을 존재하게 하는 특정한 원인이 있다는 사실이 주목되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사물을 존재하게 하는 원인은 존재하는 사물의 고유한 본성과 정의 안에 포함되어 있거나, (그 원인은 그 사물이 존재하려는 본질 자체에 속하므로) 사물의 외부에 주어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주목되어야 한다."(《에티카》1부 정리8 주석2). 후자의 경우에서 스피노자는 다음에 밝혀지듯이 하나의 작용하는 원인을 의미한다. 반면 전자의 경우에서 그는 단지 하나의 인식이유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는 이 둘을 동일시하고 이를 통해 신을 세계와 동일시하려는 자신의 의도를 위한 사전작업을 한다. 하나의 주어진 개념의 내부에 놓여 있는 하나의 인식이유를 외부에서 작용하는 원인과 혼동하고 이 원인과 동등하게 만드는 것은 언제나 스피노자의 기교이다. 그리고 그는 이 기교를 데카르트에게서 배웠다. (29쪽∼30쪽)

* * *

아리스토텔레스의 말

말하자면 데카르트가 오직 관념적으로, 오직 주관적으로, 즉 오직 우리를 위해, 오직 인식을 목적으로, 즉 신의 현존에 대한 증명을 목적으로 제시한 것을 스피노자는 실재적이고 객관적으로 신과 세계의 현실적인 관계로서 받아들였다. 데카르트에 있어서는 신의 개념 안에 존재가 놓여 있고, 따라서 이것이 신의 현실적인 현존을 위한 논증이 된다. 스피노자에 있어서 신은 그 자체로 세계 안에 숨어 있다. 그에 따라 데카르트에 있어서 단순한 인식이유였던 것을 스피노자는 실재이유로 만든다. 데카르트는 존재론적 증명에서 신의 본질로부터 신의 존재가 도출된다고 가르쳤고, 스피노자는 그것으로부터 자기원인을 만들고 그와 함께 대담하게 자신의 윤리학을 시작한다. "'자기원인'으로서 나는 그것의 본질이 현존을 자신 안에 포함하는 것을 이해한다." 그는 "존재는 사물의 본질에 속하지 않는다"고 소리쳐 경고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인식이유와 원인에 대한 가장 명백한 혼동을 본다. 그리고 신스피노자주의자들(셸링주의자, 헤겔주의자 등등)이 언어를 사유로 보는 것에 익숙하여 이 자기원인에 대한 경건한 경탄에 자주 몰입한다면, 나로서는 '자기원인'에서 단지 형용모순을, 이후의 것인 이전의 것을, 무한한 인과 고리를 절단하는 거만한 권력의 명령을 볼 뿐이다. 자기원인은 끈으로 고정시킨 자기 머리 위의 모자에 브로치를 달기에는 손이 충분히 높이 닿지 않아서 의자 위로 올라간 그 오스트리아인과 유사하다. 자기원인의 적절한 상징은 바로 뮌히하우젠이다. 그는 물에 가라앉는 자신의 말을 다리로 꼭 껴안고 머리 위에서 앞으로 향한 자신의 땋은 머리로 자신의 말과 함께 공중으로 끌어 당기면서 그 밑에 "자기원인 Causa sui"이라고 서명했다. (31쪽∼32쪽)

- 쇼펜하우어, 『충족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中에서

yamoo 2013-11-17 16:40   좋아요 0 | URL
철학자 다운 고민이라니요..@_@ 그냥 객기지요. 객기..^^;; 천편일률적인 내용에 딴지를 걸어보고 싶어 페이퍼를 썼고, 또 형식논리학적으로 생각해볼 꺼리가 충분한데 이상하게 논의가 없는게 아쉬워 그냥 문제제기를 해 본 거에요.

인용해 주신 글은 나남출판사의 김미영 역자본으로 읽어봤어요~ 다시 오렌님에 의해 갈무리된 내용을 보니 새롭게 다가옵니다. 멋진 인용 감사합니다.

아, 근데, 오렌님께서는 책을 읽고 인상깊었던 부분을 타이핑해서 갈무리 해 놓는 가 봅니다. 전 너무 갤러서 엄두를 못내는데....존경스럽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