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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교수가 그랬다. 한국에는 근대가 없다고. 그래서 우리 철학은 서양의 존재론(개인의 탄생)과 같은 철학이 없다고. 그 위대한 다산의 사상조차도 민본이 왕도정치를 구현하기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역설한다.

우리는 서양과같은 철학(일명 서구의 근대철학)을 발전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근대를 맞이하여 우리는 서양의 근대를 배울수밖에 없다고.

개인적으로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학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여러번 곱씹어 봤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일제가 우리에게 식민사관을 세뇌시킬 때 그렇게도 마르고 닳도록 말해왔던 거와 대동소이하다.

 

그런데 과연 우리 철학에서 근대는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나? 그 교수는 매우 확신에 찬 목소리로 그렇게 잘라 말했다. 그렇기에 자기는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고. (독일이나 프랑스 영미 등 서구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박사를 받고 돌아온 학자들이 이 교수와 비슷한 논조의 말을 하곤 했다.)

 

일제에 의해 단절된 우리의 자생적 근대가 없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조선 후기 이앙법과 광산업의 발달로 인해 축적된 자본은 근대자본주의의 맹아였다.

 

이에 발맞춰 사상면에서도 우리는 주체적으로 서양의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세계 기독교 포교사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선교사에 의해 교구가 확립되지 않은 나라였다.

 

뿐만 아니라 빅지원이나 박제가 그리고 최한기 같은 철학자들은 당시 실학(후대에 붙여졌지만)이라는 학풍 속에서 우리 나름대로 근대의 맹아적 사유를 하고 있었다.

 

물론 체제(왕정)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근본적 사유는 프랑스 혁명 이후의 민본 사상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프랑스혁명 이후 나폴레옹 시대는 전제시대 였다. 그 시대에 전개된 근대적 사상이 제정 시대라서 한계가 있다는 논리는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유독 다산 사상을 말하면서는 전제 시대의 한계 운운한다. 물론 다산이 주장하는 왕도정치가 유학의 범주 내에 있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사상은 시대의 산물이다. 어찌 됐건 한 개인은 그 시대의 개념으로 사고해야 하는 숙명을 타고났다. 그렇기에 그 한계 내에서 한계를 넘어서려고 하는 시도는 그래서 중요하다.

 

다산은 왕도정치 내에서 서구 근대 자유민주사상에 가장 근접한 사유를 한 사상가였다. 방점이 어디에 놓이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나는 다산이 왕도정치 내에서 개혁정치를 구상한 한계보다는, 그 한계 내에서 백성에 근본을 두는 정치 체계를 설계한 것 자체의 의의가 크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다산의 <원목>과 <탕론>에 다산 정치철학의 핵심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사상의 핵심이 왕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민(民; 백성)에 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서구로 유학갔다온 학자들은 다산의 한계로써 항상 그 사상의 한계를 왕도정치에만 둘까.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항상 근대의 부재를 들먹이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근대 부재를 논하는 책들과 논문을 보면 대체로 위 교수와 비슷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듯하다. 개인이 부재하니 항상 대동과 집단을 논한다고.

 

그래 맞는 거 같다. 그런데 우리는 정작 우리의 앞선 시대에서 근대의 맹아를 찾는 시도를 얼마나 했는지 묻고 싶다. 우리가 부지불식 간에 쓰고 있는 각종 기본적인 개념들은 유학, 도학 그리고 불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다음과 같은 개념어 들이 그 예이다. '찰나(刹那; ksana)'는 인도어가 불교 용어로 굳어지고 우리의 일상어에 그대로 흡수된 단어다.  

 

'수유(須臾)',  '신독(愼獨)', '중화(中和)'는 <중용>에 나오는 매우 중요한 개념어 들이다. '귀신(鬼神)'은 <논어>, 여음(餘音)’은 <예기·악기>, '자연(自然)'은 <도덕경>에 있다.

 

도올 김용옥의 동양 고전 역서들을 보면 이런 중요 개념어를 현대에 맞게 잘 풀어 설명해 주고 있다. 이정우의 저서 <개념-뿌리들>은 동양 원전에서 이들 개념어들을 뽑아 사전식으로 편집한 책이다.

 

 

 

 

 

 

 

 

 

 

 

 

 

 

 

    

도올의 동양 고전 역해서들을 읽어보면 우리가 부지불식 간에 쓰는 이들 용어들이 과거로부터 우리의 삶 속에 면면히 이어져 온 것들임을 알 수 있다. 매우 현재적이고 얼마든지 현재의 철학적 성찰을 끌어낼 수 있다.

 

서구 사상의 근본적 개념어들이 헬라어나 라틴어에 있듯이 우리 사상의 근본이 저 유, 불, 도의 경전들에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들 과거 개념으로부터 근대의 사고를 끌어내려하지 않았다. 한국적 사고로 망국의 설움을 맛보아서 그런지 없애버려야 할 구시대의 사유로 치부했다. 대신 새 시대에 어울리는 사상으로 서구의 근대사상을 여과 없이 수입해다 우리 것인 양 사용했다.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이 한국적으로 체화되면 한국의 칸트가 되는가? 서구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그렇다고 한다. 들어보면 얼추 타당한 것도 같다. 칸트를 얼마든지 한국적으로 수용할 수 있고, 이때의 칸트는 독일이 아닌 한국이 체화한 칸트란다.

 

뭐, 듣고 보면 그럴들하다. 하지만 나는 이런 논리에 동의할 수 없다. 적어도 칸트가 한국의 칸트가 되려면 기층민들 대다수가 이해하는데 부침이 없어야 한다. 생활속 사고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칸트의 연구 업적이 과연 우리 일반인들에게 부침없이, 거부감없이 수용되될 수 있는 수준인가? 일단 '비판'이라는 단어를 이해하는 데도 매우 불편하고 어렵다. 칸트가 자기 이론을 전개하면서 자기가 붙인 명칭에 대한 번역어도 우리말의 개념에서 찾지 못하고 있다.

 

나는 바로 이것이 되야, 다시 말해 서구 중요 개념에 대응하는 우리 개념어(번역된 말) 찾을 수 있을 때에야 그 서양의 철학이 바로 우리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적절한 번역어를 찾을 수 없다면 외래 사상일 뿐 '한국적으로 수용된' 우리 것일 수 없는 것이다.

 

좀더 쉬운 예로 데리다의 '차연'이라는 번역어를 보자. 이 단어는 불어 디페랑을 번역한 것인데, 데리다 전문가들 왈, 데리다가 창안한 이 개념에 완벽히 부응하는 우리말은 없다면서 '차연'이라 번역했다. 어떤 사람은 불어 그대로를 쓰고 있다.

 

데리다 연구가 아무리 쌓여도 이런 상태에서는 데리다의 한국화는 요원하다. 쉽게 말해서 우리에게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은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자. 서구 개념에 대응하는 우리 번역어를 찾을 수 없다면 차라리 번역하지 말자.

 

 

 

 

 

 

 

 

 

요즘 프랑스 철학에 빠져든 사람들을 보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해 주는 프랑스 사상가들의 독창적인 사상의 전개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 사상가들이 해 놓은 틀로 문학과 영화를 분석하니, 이전에 말할 수 없는 부분을 건드릴 수 있어 자위에 빠진 듯하다.

 

 

 

 

 

 

 

 

그리고는 이의 연장선으로 사회를 분석하고 진단하는 것까지 나아간다. 한국과 동양 사상은 말할 수 없는 것에는 말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가 <논어>의 '귀신'에 대한 논의일 것이다.

 

우리에게 근대가 없다고 하고, 그런 자괴감에 서구로 눈을 돌려 서구 철학을 연구한 우리 학자들. 광복 이후 70여 년이 흐른 현재 우리 학문은 주체적으로 서구를 수용하지도 못하고 전통 사상으로부터 현대를 이루는 근대의 기본 사상을 끌어내지도 못했다.

 

원효 이후 우리의 전통 사상 속에 근대의 맹아가 담긴 개념들이 분명히 있었음에도불구하고 우리의 노력 부재로 현대화 하지 못했다. 서구 철학을 연구하는 목적이 전통과 단절된 근대를 잇는 노력이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런 시도를 하지 않았다.

 

계속 우리에게는 서구의 근대 개념에 부응하는 '개인'이 없기에 서구의 근대가 없다는 타령만 한 것이다. 물론 전통 사상에서 '개인주인'에 기반한 서구의 근대적 사상은 없었다. 하지만 그네 들이 간과한 좋은 것을 우리는 갖고 있었다.

 

서구 개인주의에 근간한 발전의 결과로 환경 오염과 비인간화 문제가 대두된 건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 발전시켰다면 우리는 현 문제를 최소화시켰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근대가 없었다는 것은 오리엔탈리즘의 산물이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서구의 근대에 대응하는 우리만의 근본 사상을 갖고 있었다. 단지 일제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그 연구의 맥이 끊어졌을 뿐이다.

 

요즘 도올의 저서들을 다시 보면서 전통 사상이 얼마나 현대적일 수 있는지 새삼 깨닫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서구철학을 연구하는 방향성에 있었다. 서구의 눈으로 우리 것을 재단하려고 하면 절대 우리 사상에서 현대적인(근대적인) 면을 끌어 낼 수 없다. 

 

<논어 한글역주1>이나 <중용 인간의 맛>을 보면, 서구 철학을 어떻게 공부해야할 지 그 방향성이 보인다. 우리 전통 사상에서 단절되고 계승되지 못하거나 간과했던 부분을 서구 철학을 통해 보충하고 그 의미를 새롭게 다지는 작업. 바로 그것이다. 우리에게 근대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우리의 전통 사상이 현재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서구철학을 통해 입증해 가야한다. 우리에게 근대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의 노력이 부족했음을 직시하고 공부 방향을 제대로 정해야 한다. 그래야 학문의 식민지화(우리에게 근대가 없다는 담론)를 멈출 수 있다.

 

 

 

[덧]

참 두서없이도 썼다. 하지만 김덕영 교수(위의 어떤 교수가 바로 김 교수다)의 말을 다시 상기하는 과정에 이르니 다시 욱하는 감정이 고개를 들어 이성을 조금 잃었다. 그냥 우리에게도 근대가 없었던 게 아니라 있었다..라는 정도만 어필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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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12-04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대가 없었다기보다는 서구 사회에 비해 근대가 짧았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근대가 없다고 하는 것과 근대가 서구 사회에 비해 기간이 짧다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인데 말이죠. 근대가 없이 진행되었다는 말은 진중권도 말했던 것 같은데.. ( 확실한 건 아닙니다만.. 그냥 들은 것 같은... )

yamoo 2014-12-05 12:59   좋아요 0 | URL
근대가 매우매우 짧았지요. 근대라고 명명할 시기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우리에게도 서구에서 말하는 근대라는 개념을 논한다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지식인들이(서구 학문을 전공한 지식인들) 암묵적으로 전제하는 면이 강하여 문제제기를 해 본 것이에요. 곰발님의 생각도 저와 다르지 않은 거 같습니다. 이건 분명히 잘못된 사실을 매우 정설로 지식인들이 생각하는 거 같아...곰발님 정도의 필력을 가진 분들이 제대로 문제제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쉽싸리 2014-12-04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에서 설혹 근대가 없었으면 그게 어떠냐는 거죠. 서구의 개념으로만 볼 문제는 아니지 않느냐는 겁니다. 작금의 세계에서 서구 민주주주의 등 그 잘난 서구사상이 이루어 놓은게 뭐가 있느냐 하는 질문도 해야 되고요. 서로 인정하고 가능하다면 통합해서 가자는게 도올 선생의 한결같은 주장이지 않나 싶습니다. 독창적이고 뛰어난 한반도의 사상은 분명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yamoo 2014-12-05 13:01   좋아요 0 | URL
어이구야, 이게 누구십니까, 쉽싸리님 아니십니까! 이렇게 서재에서 쉽싸리님의 댓글을 보니 무쟈게 반갑습니다.

독창적이고 뛰어난 한반도의 사상....이것을 우리 후학들이 좀 밝혀 주었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cephas 2019-08-01 13:44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작금의 세계에서 서구 민주주주의 등 그 잘난 서구사상이 이루어 놓은게 뭐가 있느냐 하는 질문도 해야 되고요˝ -> 네가 누리는 대부분의 것.
 

하나!

 

고전파 경제학 이론 중에 '세이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프랑스 경제학자 장 폴 세이가 주장한 이론으로 '공급이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는 거다. 경제학의 다른 이론들에 비해서 아주 간단하고 심플한 이론이랄 수 있다.

 

그런데 이 이론은 대영제국이 번창하던 시대에 적합했던 이론으로, 이후 마르크스와 케인즈에 의해 신랄한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주류 경제학에서 케인즈 시대가 도래한 이후 세이의 법칙은 거의 사장되다시피했다. 교과서의 한 귀퉁이에서나 볼 수 있는 정도였다.

 

그도그럴 것이 이 이론은 제국주의 경제로부터 나온 것이에 그렇다. 영국이 해가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던 시절 영국이 생산한 모든 생산물은 해외 식민지에서 모조리 팔렸다. 공급은 해외 식민지에 대한 수요를 끊임없이 충족시켰으며(개쳑했으며), 경제 전반에 과잉 생산은 있을 수 없었다. (일제시대 일본의 생산물이 조선에서 죄다 팔린 걸 상기하면 쉽다)

 

그런데, 경제학에서 화석화 됐다고 여겨졌던 이 이론이 21세기들어 다시금 힘을 얻고 있다. 확실히 요즘 디자인되고 있는 제품들은 공급이 스스로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는 세이의 법칙을 입증해 주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아이폰일 것이다. 기존의 전화기를 단숨에 손 안의 컴퓨터로 버꿔놓았다. 애플이 공급하는 소프트웨어는 전 세계의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세이의 법칙은 사장된 게 아니었다! 아마도 기존 경제학 교과서는 세이를 새롭게 조명해 봐야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둘!

 

송나라에 저공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원숭이를 좋아하여 키웠는데, 원숭이 수가 늘에남에 따라 원숭이 양식을 구하기 쉽지 않았다. 당시 원숭이 주식은 도토리였다. 그래서 저공은 키우는 원숭이들을 모아놓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토리 가격이 올라 구하기 쉽지 않으니) 이제부터는 도토리를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를 주겠다"

 

그러자 원숭이들은 개지랄을 떨기 시작했다. 마구 가슴을 치고 소리를 꿱꿱 질러댔다.

이런 지랄에 저공은 할 수 없이 이렇게 말했다.

 

"아, 알겠다. 그럼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주겠다!"

 

그러자 원숭이들은 좋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지 출처 ; <고사성어랑 일촌 맺기>(2010. 서해문집)

 

 

위 이야기는 朝三暮四(조삼모사)로 널리 알려진 고사다. 보통 이 고사에 대한 해설을 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눈앞에 보이는 차이만 알고 결과가 같은 것을 모르는 어리석음을 비유하거나 남을 농락하여 자기의 사기나 협잡술 속에 빠뜨리는 행위를 비유하는 고사성어 (두산백과)

 

고사의 핵심은 원숭이들이 어리석다는 거다. 근데, 정말로 원숭이들은 어리석은가? 현대경제학, 특히 행동경제학 이론에서는 오히려 원숭이들이 매우 합리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현재를 미래보다 더 좋아하는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나. 뭐, 현시선호이론이란 것도 그래서 나왔나보다. 그래서 현재 1000원이 미래의 1만원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거.

그렇기에 우리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이익을 포기하는 대가로 이자라는 걸 받는다. 거금을 빌리면 시간단위로 이자를 내야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시간할인율로 중간 거래를 하는 사람도 있다고하니, 앞으로의 몇 시간은 경제학적인 면에서 상당한 가치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말 그대로 시간은 금인것이다.

따라서 과거에 멍청하다고 생각했던 원숭이들의 행위는 절대 멍청한 행위가 아니었던 것이다. 단지 시대가 단순해서 원숭이들의 경제학적 사고(경제학적 시간 개념)를 간과하고 있었던 거다. 

케인즈가 그랬다지.. 미래에 사람들은 모두가 죽는다고. 그래서 그는 미래를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쨌든 조삼모사 고사에서 원숭이들은 재평가를 받아야하지 않을까?!

 

 

셋!

여름 한철에 베짱이는 나무 그늘에서 놀며 노래부른다. 그 아래 개미들은 열심히 일하여 먹이를 저축한다. 드디어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온다. 날씨가 추워지자 여름에 땀흘려 일한 개미들은 모아 둔 먹이를 먹으면서 겨울을 잘 지낸다. 하지만 베짱이는 거지가 되어 동냥을 다니다가 쓸쓸하게 죽는다.

 

이게 개미와 베짱이 우화의 주된 줄거리이다. 이 우화의 교훈은 분명하다. 현재의 재미를 포기하고 미래를 위해 열심히 노동하라는 거. 너무 교조적인 색깔이 강하다. 현재 자기 삶을 희생하고 미래의 안락을 위해 일하라는 이 메시지는 누가 언제 무엇을 위해 고안해 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소박한 이야기 속에 노동을 착취하기 위한 자본가의 고단수가 숨어 있다는 거다. 도대체 베짱이와 개미를 왜 비교하는가? 개미는 곰과 뱀처럼 동면을 하며 겨울을 나는 곤충이다. 그에 반해 베짱이는 한 해살이 곤충이다. 봄에 태어나서 겨울에 죽는 운명을 타고난 곤충이다.

 

그런데 각 곤충의 생애주기를 무시하고 저 따위 우화를 만들어낸 건, 달리 생각할 수가 없다. '딴 생각하지 말아라. 미래를 위해 현재 열심히 일을 해야 네 노후가 평안하단다. 네가 좋아하는 걸 추구한다고? 재밌게 지낸다고? 베짱이를 봐, 겨울에 굶어 죽자나!'

이걸 무의식중에 주입시키려 '개미와 베짱이' 우화는 탄생한 거 같다.

 

남을 위해, 미래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삶이 과연 올바른 삶인가?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자기 재능이 뭔지도 모르고 계속 야근을 지속하고 있는 샐러리맨들. 거대한 착취구조 속에서 알량한 복지와 월급으로 하루하루를 사는 게 사람들이 일해야 하는 숙명인가? 그렇다면 메트릭스 속에 안정적으로 생활하고 있는 네오와 별반 다를게 없어 보인다.

 

'개미와 베짱이' 우화는 아이들에게 읽혀서는 안 될 우화가 아닐까?!

 

 

 

덧.

이런 생각이 발칙한 생각일까? 흠, 그럼 새로나온 <군주론>이나 다시 읽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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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출판사들이 기획 총서로 발간하고 있는 인문학 총서 시리즈들. 이들 중에서 입문격인 책들이 학자 이름을 달고 꾸준히 출간되고 있다. 하지만 요즘 보니, 이 기획 시리즈도 거의가 절판되어 가고 있다. 이와 비슷한(학자 이름을 내걸거나 명저를 해설한) 새로운 인문학 해설서 총서가 몇 군데에서 나오고 있긴 하지만 손에 꼽을 정도다.

 

살림 출판사의 [e시대의 절대사상] 시리즈는 32권으로 완간됐고, 김영사의 [인문학의 생각읽기]시리즈는 현재 7권이 발매중이다. 세창미디어의 세창명저산책은 현재 26권이 나와있다. 현암사의 [우리시대 고전읽기 질문총서]도 5권 정도가 발간되어 있다. 대형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는 인문학 해설 총서는 이쯤 된다. 아, 아직 절판되지 않은 [하룻밤 지식여행]과 [HOW TO READ] 시리즈의 몇몇 권도 찾을 수 있겠다.

 

 

 

 

 

 

 

 

 

이전 인문학 입문서 시리즈 목록을 봐도, 현재 나오고 있는 해설서 총서들을 봐도 들뢰즈나 데리다 등은 꽤 많이 출간됐고, 칸트나 헤겔 역시 지속적으로 출간되어 왔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이 하나 있다. 베르그손과 막스 베버는 거의 없다. 지금은 절판된 인문학 해설 총서에도 없고, 살림이나 세창에서도 발견할 수가 없다. 일부 베르그손과 베버 전공자가 단행본으로 낸 것은 있지만 총서 일부로 발간된 건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아주 오래 전에 [지성의 샘] 시리즈에서 <베르그송>이 포함되긴 했었다. 그런데, 이 시리즈 판본이 시공사 시공로고스 총서로 넘어가면서 동양철학자와 서양철학자 몇 명이 뼈졌는데, 그때 <라이헨바하>와 <베르그손>이 제외되었다.(아, 메를로퐁티도 제외 됐었지) 이후 인문학 해설 총서에서 베르그손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다만 송수영 교수에 의해 <베르크손>이 홍경실 교수에 의해 <베르그손의 철학>이 각각 단행본으로 발간됐을 뿐이다.

 

베버도 마찬가지. 1980년대 학문과사상사에서 현대사상선서 시리즈로 <막스 베버>(프랭크 파킨, 1985)가 발간된 적이 있다. 80년대 막스 베버  인기는 현재의 들뢰즈 인기 쯤 됐던 거 같다. 하지만 그때도 베버 연구서나 베버에 대한 저작 번역물은 많았지, 베버에 대한 조망을 해 주는 입문서는 이 책이 유일했던 것 같다. (이 책 외에는 정말 기억나는 게 없다. ㅜㅜ)

 

프랭크 파킨이 지은 <막스 베버>는 입문자가 원하는 '사상가 해설서'의 표본과도 같다. 막스 베버의 주요 저서들을 그가 연구한 주제별로 간결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주요 이론들 중 일부분이 새로운 시각에서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얇지만(200페이지도 안 된다.) 저자의 내공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수준 높은 막스 베버 입문서다.

 

그런데, 현재 이 정도 수준의 막스 베버 입문서가 단 한권도 없다는 사실이다. (베르그손은 송수영 교수가 거의 비슷하게 작업을 해 낸 게 <베르그손>이다.) 전공자인 김덕영 교수의 막스 베버가 있지만 이건 뭐, 읽기가 민망할 정도로 베버를 예찬하고 있으니, 입문서로는 적절치 않아 보인다. 마리안느 베버의 책은 베버의 전기다.

 

 

 

 

  

 

 

 

 

과거나 현재나 입문 해설 총서에서 베르그손과 베버가 빠져있는 상황이 정말 이상하다. 현재 베르그손은 거의 잊혀진 철학자같다. 들뢰즈에 의해 논의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출간되는 게 거의 없다. 베버는 양적으로는 많은 논문이 있고 여러 연구서들과 그의 저작들이 줄기차게 번역되고 있는 것에 비해 교양 입문서가 없다는 게 불가사의할 정도다.

살림지식 총서에서도 아직까지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플로티누스, 아도르노, 마르쿠제, 후설이 출간 된 것을 보면 기대감은 든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지식'을 모토로 하는 살림지식 총서에서도 아직까지 베버와 베르그손은 만나 볼 수 없다. 책세상 문고 고전시리즈에서도 베르그손 주저들이 번역되지 않고 있다!

 

해당 전공자들은 꽤 있는 것 같은데, 총서 기획위원들이 이들을 간과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전공자들이 집필을 고사하고 있는 건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명성과 빼어난 저작물들에 비해 이들의 입문서가 하나도 없다는 점이 이상하고 아쉬울 뿐이다.

 

의심이 깊어지다 보니, 아직까지 인문학 해설 총서에 베버와 베르그손이 없다는 사실로부터 나는 다음과 같은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입문 시장에서는 이들로(베버와 베르그손) 재미를 볼 수 없어서 그런가?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사상가들인가? 정말?

-달라이 라마를 아는 것이 이들을 아는 것보다 더 유익한가?

 

뭐, 여기에 대한 답은 인문 교양 해설서를 내는 출판사만 알겠지. 에휴~ 이런 걸 이상하게 여기는 내가 이상한 건지 아니면 출판사가 이상한 건지.. 어쨌든 이상한 건 분명하다는 거..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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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완 작가. 그가 또 신간을 냈나부다. 도서관에 포스터가 붙어 있다.

 

이 사람의 책들. 도서관에서 저자의 책이 나올 때마다 선전한다. 삼성전자 다니다 나와서 3년 간 책 1만권을 읽고 50여 권의 책을 쓰면서 제2의 인생을 사는 사람...어쩌구 저쩌구..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기에 3년 간 1만권의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수치는 뭔가가 이상하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일하면서 책만 줄기차게 읽을 때도 1년에 1천권을 읽을 수 없었다. 그것도 상당수는 발췌독이었다. 뭐, 내가 읽었던 책들이 거의가 사회학이나 철학, 자연과학 이론서들이었기에 그랬을 수는 있다.

 

하지만 아무리 얄팍한 자게서 위주로 읽는다 쳐도 3년 간 1만권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저자가 자신의 책들에서, 자신이 독서훈련이 되어 있지 않아 처음 1년간은 매우 고생했었노라고 고백한 부분이 있어서다. 상당히 공감하면서 읽은 기억이 있다.

 

나도 책을 처음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후레쉬맨 시절, 독서 이력이 전무했기 때문에 잡고 읽는 책마다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고, 읽는 속도도 너무 느렸다. 당시 내 소박한 소원은 어떤 책이라도 좋으니 읽으면서 술술 이해하면 좋겠다는 거였다.

 

김병완 작가도 회사를 때려치고 독서를 하기 시작한 때, 그 독서 수준이 내 후레쉬맨 시절과 거의 같았다. 그런데, 그는 이런 시행착오를 아주 단번에 뛰어넘어 3년에 1만 권이란다. 자기 고백은 9천 몇백권이라는데, 난 이것도 믿을 수 없다!

 

왜냐구? 내가 한달 동안 밥만 먹고 책만 읽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뭔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했는데, 그걸 내가 맡은 적이 있다. 내가 때를 써서 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덤탱이를 썼다. 그때 대표가 준비할 한 달 간의 시간을 줬다. (이런 케이스는 거의 없는데, 시간을 안 주면 일 때려 치겠다고 했기에)

 

그래서 내가 한 일이란 것이 필요한 책을 쌓아 놓고 줄창 책을 읽는 거였다. 출근해서 정해진 분량의 책을 가열차게 읽고 보고서 비슷한 걸 만들어 발표하는 거였다. 쓰는 건 이틀이면 됐기에 책을 읽는 작업이 매우 중요했고 가장 많은 시간을 필요로했다.

 

난, 고시공부를 한 이력이 있기 때문에 앉아서 책보는 거는 너무도 익숙하고 내가 그나마 잘하는 몇 가지 일 중 하나라서 신나게 프로젝트를 완료한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내가 읽었던 책들은 대부분 두꺼운 하드커버의 이론서들로 400페이지 ~ 600페이지 정도의 책 500여 권이었다.

 

아침 8시에 출근해서(아침 10시까지 출근이었지만) 새벽 1시까지 밥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모조리 독서에 할애했다. 그냥 읽는 게 아니라 내가 정리해 가며 읽어야 하기 때문에 무척 집중하여 읽어야 하는 그런 독서였다. 물론 완독한 책은 정확히 28권이었다. 나머지 책들은 전부 발췌독이었다.

 

 

600 페이지가 넘는 책(예컨대 <다산선생지식경영법>)을 하루에 본다는 건, 정말 말이 쉽지 피말리는 작업이었다. 기한이 정해져 있는 독서란 집중해서 좋긴 한데, 압박감 때문에 재미가 반감되는 단점이 있다. 그래도 <다산선생지식경영법>은 아침부터 시작된 독서가 밤 9시 정도가 되서야 끝을 볼 수 있었다. 중요 부분에 줄을 치며 집중하면서 초스피드로 읽은 덕택이다. 물론 흥미진진한 내용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머지 완독한 28권의 책들은 새벽1-2시가 되어서야 완독할 수 있는 책들이었다. 당시 읽은 책들의 목록 일부가 지금도 생각나는데, <전략의 본질>, <의사결정의 원칙>, <게임이론>, <이타적 인간의 출현>, <의사결정의 함정>, <매킨지식 전략 시나리오>, <로지컬 싱킹>, <유쾌한 딜레마 여행>, <자유주의>(미제스),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실용논리학>, <선택의 논리학>, <세상을 바꾼 30가지 심리 실험> 따위의 책이었다.

 

 

 

 

 

 

 

 

 

 

 

 

 

 

 

 

 

 

대부분 심리학, 경영 전략, 경제이론, 논리학 등에 관한 이론서들이었다. 자게서로 분류되는 책은 거의 없었고, 굳이 꼽자면 <의사결정의 원칙> 정도 있겠다. 하지만 <핑>이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와 같은 책은 아니다. 비즈니스의 경영 사례로부터 올바른 의사결정을 훈련하는 실용서이기에 쉬운 책은 아니다.

 

거의 고시 공부하다시피 읽은 책들이라, 신났지만 매우 힘겹게 읽었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서 영화도 보고 놀이도 하면서 집중했던 머리를 식혀줬다. 아무리 책을 좋아하지만 이런 류의 책들을 1년 내내 읽는다면, 그것도 곤욕일 거라 생각했다. 청명하고 좋은 날씨에는 놀러 가는 게 독서하는 것보다 이롭다.

 

 

 어떤 사정으로 인해 그런 독서를 한다손치더라도 1년이면 365권이다. 3년을 수인처럼 책만 읽는다하더라도 1천여 권 정도 뿐이 안된다. <안나 카레리나>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잡는 순간 1년 365권은 도달할 수 없게 된다. 분권된 것을 한권씩 셈해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한 권의 분량이 하루만에 읽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무리 속독법을 배워서 읽은들 무리다. 아니, 이런 류의 책들은 속독으로 읽을 수가 없다. 문장마다 비수처럼 꽂히는데 어떻게 휘딱 읽을 수 있을까? <안나 카레리나>를 속독으로 읽는다? 그건 바보같은 독서다. 적어도 도스토옙스키나 톨스토이의 작품들을 읽는 데에 있어서는.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감히 단언한다. 김병완 작가가 말하는(적어도 항상 광고지에서 책선전 하는) 3년 간 1만권은 완전 뻥이라고! 1만권을 읽기 위해서는 아주 얄팍한 책들 위주로 쉴새 없이 읽어야한다. 하루 10권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읽어야 3600권이다. 그래야 3년간 1만권에 도달한다.

 

근데, 이게 가능한 일일까? 수인(囚人) 생활을 하면 가능할 지 모르겠다. 주로 자게서를 읽어야 하루 10권을 채울 수 있다. 발췌독이라도 보통일이 아니다. 일단 <안나 카레리나>와 같은 장편소설을 잡는 순간 하루 10권은 절대 채울 수가 없다. 살림문고 10권이라도 정말 빠듯하다. <살사>나 <초콜릿 이야기>와 같은 쉬운 책을 3권만 읽어도 7시간은 족히 간다. (시간 재고 읽어봐서 안다.)

 

 

 

 

 

 

 

 

더욱이 김병완 작가는 <나는 도서관에서 기적을 만났다>(아템포, 2013)에서 처음 직장 때려친 1년 간은 읽는 행위가 어려웠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 하루 10권은 어림도 없다. 도서관에서 책쌓아 놓고 한 권에 10여 페이지씩 발췌독 한 걸 모두 읽은 권수에 넣는다면 모를까.

 

아마도 내 생각엔 김병완 작가가 하루종일 도서관에서 살았다고 하니, 하루 1-2권 정도는 완독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를 넘는 권수는 분명 발췌독한 것과 이리저리 넘겨 본 걸 모두 합산했을 거다. 비슷한 주제를 갖고 읽어 나가면 훑어본 것도 대충 읽은 거라 생각이 들기에. 그래도 미심쩍긴 매한가지다.

 

왜냐? 도서관은 적어도 한 달에 4번 휴관한다. 그리고 빨간날은 죄다 논다. 도서관 휴관이 매달 4일 이상은 족히 된다. 이런 날 집에서 도서관처럼 생산적인 읽기를 하기도 힘들 거다. 김 작가는 결혼도 했기에, 여러가지 경조사나 집안 일로 어른들을 만날 일이 꽤 될 것이다. 이런 걸 모두 제껴두고 책만 읽는다는 건 상황상 이해가 불가하다. 

 

고시공부와 같은 어떤 중차대한 목표가 있으면 가족 모두가 그런 수인생활을 감내해 준다. 근데, 김병완 작가는 그런 것도 아닌, 자기가 뭔가를 이루기 위해 자발적으로 책을 읽은 거 아닌가. 아무리 심지가 굳은 사람도 공부라는 목표가 없으면 쉽지 않다.

 

뭐, 그래 이 부분은 공감해 주자. 김 작가가 투철한 목표의식을 3년간 지속했다라는 걸. 그런데, 언제나 그렇지만 환경은 자기가 콘트롤할 수 없다. 3년 간 한번도 아프지 않아야하며, 어떤 가족의 대소사에도 전혀 참여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수인생활을 3년 간 지속해야 1만 권에 도달한다. 하루라도 삐끗하면 그 다음날 20권이 쌓이고 이틀이면 감당할 수가 없게 된다.

 

난 적어도 비슷한 생활을 해 봤기 때문에 하루 분량을 넘기면 어떻게 되는지 감이 잡힌다. 그런데, 김병완 작가가 저걸 가뿐히 해치웠다는 데에 못된 심술이 도진거다.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해 줄 수가 없다. 그가 이전에 계속 직장을 다니면서 독서이력을 쌓아 왔다면 어느 정도 공감해 줄 수도 있었을 거다. 속독력과 이해력이 높아지니.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전혀 아니었다.

 

그건, 그의 책 몇 권을 읽어보니 확실했다. 그는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생활을 하자면서, 자본이 주는 안락함의 힘을 예찬하고 있었다. 인용한 책들도 대부분 자게서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인용부분도 여러 권을 쓸 때 알차게 중복 활용하는 것 같았다. 나는 확신했다. 그는 절대 <안나 카레리나>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그리고 <레미제라블>같은 책은 읽었을 리가 없을 거라고. (읽는 순간 목표량을 채울 수가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강연을 다니면서 독서의 대가처럼 말하고 다닌다. 난, 이게 싫은 거다. 거짓말 같아서. <기적의 고전 독서법>이니 <기적의 인문학 독서법>같은 책을 내고 전문가인양 가이드해 주는 걸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위에서 지적했다시피 그는 고전을 읽어 본 적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국가>를 하루만에 처음 읽는다?!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어느 정도 독서 이력을 쌓아서, 그래서 책을 겁나게 빨리 쓰는 재주를 가진 건 정말 부러운 재능이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책 한권 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더군다나 내는 책마다 책이 팔리고 어느 정도 이름이 나고 강연을 다니는 걸 보면, 그냥 상황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는 게 인지상정이지 않을까. 환경이 자기를 택해 주었다는 것에 대해서. (난 환경결정론자라 항상 이리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근데, 그는 오로지 자신의 우월한 능력 때문에 그리 된 줄 착각하고 있는 듯보인다. 독서 전문가라고 활게치고 다니는 현재 그의 행태가 그렇다. 자신이 정말 독서전문가로 인식받고 싶으면 1만권을 어떻게 읽었고, 중요 책들의 리뷰라도 정리해서 책을 내는 것이 순리리라.

 

3년 간 1만권은 우스운 숫자가 아니다. 책을 낼때마다 계속 우려먹고 있는데, 1만권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헤아려보시길. 그의 책을 사서 보는 독자들도 생각해 보시길! 1만권을 읽고 쓴 그의 책들을 읽어 보니, 깊이는 커녕 이율배반적인 얘기를 자기도 인지하지 못하고 쓰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의구심이 들어 이런 글을 쓰게 됐다.

 

물론, 그가 천재여서 그가 말한 게 모두 사실일 수도 있다. 내가 오버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히 그는 자기 책에서 자기의 평범성을 대놓고 강조하고 있었다. 자기도 일반 대한민국 사람들과 같다고. 그의 책에서 그런 내용을 공감하고 보니, 책좀 읽는 나로서는 당연히 의심을 가질만 했고, 책 1만권의 무게가 어떤 것인지 좀 헤아려보자는 의도에서 이 페이퍼를 쓰게 된 것임을 밝혀둔다.

 

마지막으로 난, 그에게 엇가 심정이 없다. 단지, 3년 간 1만권을 읽었다는 거에 태클을 걸고 싶었던 것일 뿐! 도서관에서 다시 김 작가의 포스터를 보니 본의 아니게 울컥하여 생각해 두엇던 것을 페이퍼로 쓰게 되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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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감는새 2015-01-09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예전에 지나가는 길에 읽고 오늘은 구글링해서 겨우 이 글 찾았네요.
좀 퍼가도 되겠습니까?
격하게 공감되는 글입니다.

yamoo 2015-01-15 22:5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마음껏 퍼가시길^^

요롤레이요 2015-12-21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크...아직 대학교 1학년 학생이지만 전 하루에 책 한권읽기도 벅차네요..

전공은 공학이지만 주로 심리학이나 사회과학 경제학 역사학관련 서적을 읽는데 아직 1일 1권은 힘들더군요. 이번 방학 70일간 50권읽는것이 목표입니다 ㅋㅋ

yamoo 2015-12-27 19:01   좋아요 0 | URL
사회과학, 역사, 경제학 서적은 하루만에 읽기가 무지 힘듭니다. 낼 셤에 책에서 시험 낼꺼라고 하지 않는 이상 1권 읽기는 정말 무리입니다~ 300페이지 교양 경제학 책만 일독한다고 하더라도 10시간 이상은 집중해서 봐야되지 않을까 합니다~

AARRR 2017-11-15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 내용을 이해하고 요약하고, 기억하고, 실제로 평상시에 적절한 타이밍에 무리없이 떠올릴 수 있는 수준의 정독으로는 아무리 뛰어나도 최대치는 연 200권 정도라고 봅니다. 실제 다독가들이 말하는 얘기들도 종합 해 보면 최대치가 보통 연 200권입니다. 일을 하고 생존에 필요한 시간을 제외하고 남는 시간 거의 전부를 책을 읽어도 연 100권쯤이 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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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인사동 한 카페에서 충격적인 말을 우연히 들었다. 외국인과 한국인들이 섞여 있는 무리 옆에 앉아 있었다. 약간 소란스런 와중에 러시아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에게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영어가 유창하지 않은 러시아인이 천천히 말해서 알아들을 수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 요지는 “너희는 주체성 있는 나라냐?”라는 거였다. 그냥 소리가 날아와 귀에 꽂힌 거였다. 헌데,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했다. 외국인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은 그 한국 친구는 어땠는지 모르겠다. 뭐라고 대답하던데, 소리가 작고 울려서 못알아들었다. 아마도 역사 공부를 하는 모임같았는데, 카페에서 이런 말을 들을 지는 꿈에도 몰랐다. 이 질문은 내가 오래 전부터 생각해 오던 문제의 화두여서 더 놀랐다. 이 단상은 아주 오래 전에 탁석산의 <한국인의 주체성>과 신채호 선생의 <신채호 문집>을 보고 끄적거렸던 내용을 생각나는 대로 살을 붙여 마구잡이로 쓴 글이다. 논의가 다소 거칠고 체계가 없더라고 양해 바란다.

 

 



 

 

 

 

 

 

 

 

 

 

 

 

1


역사서를 읽는 주요 이유 중 하나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볼 수 있고 과거에서 교훈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역사를 볼 때면 항상 답답한 그 무언가가 마음을 누른다. 그것은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에 놓일 때까지 주권국가로서 반만 년의 전통을 가진 나라라고 자랑하는 일이다. 하지만 외국인이 지적했듯이 탁 깨놓고 말해서 우리나라가 중국의 속국이 아니었던 때가 언제인지 반문하고 싶다.


그래서 우리나라 일부 학자들과 외국 학자들 상당수는 흔히 우리역사를 가리켜 ‘사대주의의 역사’였다고 논평한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진행하면서 우리 역사를 왜곡할 때, 그리고 일본의 식민사관이 우리역사를 재단할 때도 언제나 ‘사대주의 역사’라고 주장한 것을 본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형식적 책봉관계 운운하더라도 우리역사에서 사대주의는 분명히 존재했고 또 그것이 우리가 남의 나라에 자랑할 만한 역사가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역사가 사대주의의 역사라고 하였는데, 그러면 우리 역사상 주체성을 가진 움직임은 전혀 없었는가 하면, 그건 아니라고 힘주어 말하고 싶다. 우리철학 사상의 토착화과정만 봐도 우리가 얼마나 창조적이고 주체적으로 외국사상을 우리체계에 맞게 흡수했는지 알 수 있다. 원효의 불교사상은 한국불교사상의 원형을 이룸으로써 그 초석을 놓았다. 중국 주자학은 한국에 도입돼 퇴율 철학의 논쟁 속에서 독자적인 한국 성리학의 토대를 닦았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주체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문자생활의 지평을 피지배층으로까지 확대했다. 우리는 15세기에 독창적인 문자를 갖는 나라가 되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의 활약은 어떤가. 왕 이하 모든 대소신료들이 조선을 도우러 온 명의 행패를 보고만 있었을 때 이순신 홀로 잘못된 점을 비판하며 명의 장수를 나무랐다. 워낙 추상같고 바른 지적이었기에 명의 장수 진린은 그런 이순신을 흠모하기까지 하여 자신의 실수를 뉘우쳤다고 역사는 전하고 있다. 난중일기를 토대로 한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 그려진 이순신은 그렇게 통쾌할 수 없었다. 확실히 우리의 주체적인 모습이라 할 만 하다.


하지만 이러한 주체적인 움직임은 장구한 우리의 역사 속에서 자주적으로 계승되지 못하고 단절되었다. 우리 역사에 면면히 이어져 온 것은 다름 아닌 큰 나라를 섬기는 사대였다. 특히나 조선은 어처구니없게도 그 사대주의를 천명한 대표적인 나라였다. 오죽했으면 소중화(小中華)라는 표현을 스스럼없이 했겠는가.


이 사대주의 역사가 치욕스럽다면 그 원인은 어디서부터인지 소구해보는 건, 그래서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역사가 오직 사대주의로만 일관된 건 아니었다는 반론 또한 만만치 않으니 그 점 또한 간과할 수 없겠다.

현 시점에서 우리에게 ‘너희가 주체성 있는 민족이냐?’고 묻는 외국인들에게 정확히 답하기 위해서라도 사대주의의 역사적 소구 작업은 필요할 듯하다. 역사적 성찰을 통해서 적어도 작금에는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다.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나라는 미래가 없기에.


2


사대의 역사, 즉 ‘사대’란 말은 ‘이소사대(以小事大)’의 줄임말이다. 풀자면, 약하고 작은 것이 크고 강한 것을 섬긴다는 의미. 그러니까 한마디로 정리하면, 소국이 대국을 종주국으로 섬긴다는 거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러한 사대주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이의 시초는 (거칠게 잡아도)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듯하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3국은 모두 중국의 책봉 관계 속에 편입되어 제후국으로 봉해졌다. 물론 이러한 관행은 중국 중심의 세계관이 반영된 형식적인 관계가 강하긴 했다. 역사를 보면 당시 중국이 3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일은 거의 없었던 걸 보면 형식적 관계가 강했다.


이러한 관계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 한 이후에도 그리 달라지지는 않았다. 당을 끌여들여 미흡한 통일을 완성했지만 중요한 것은 당의 한반도 지배야욕을 막아 냈다는 점이다. 당시 신라는 어쨌든 전쟁으로 당의 세력을 이땅에서 몰아냈다. 신라 초기는 그래서 당과 적대 관계였지만 이후 체제가 안정되자 역시 무역을 위해 중국의 책봉제제를 받아들였다. 이후 신라는 당에 형식적인 사대의 예를 다한 것으로 보인다. 당과의 무역은 신라에게 매우 이로운 일이라 조공 관계는 그리 손해 볼 일은 아니었다. 단지 외부에서 봤을 때 형식적으로 중국 세계에 편입된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신라가 망하고 후삼국의 통일을 마무리한 고려는 처음에는 고구려의 기상을 이어받아 북진정책을 추진했다. 고려 전기를 보면 중국과의 항쟁이 주를 이룬다. 이는 당시 동아시아의 패권국가였던 거란 족이 3차에 걸쳐 고려를 침입한 사건으로 알 수 있다. 전쟁을 해서 고려는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고 거란으로부터 자주국가로 인정받았다. 광종이 독자적인 연호를 썼던 것은 중국과 대등한 황제 국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어쨌든 고구려 광대토왕 이후 우리 역사에서 드물게 황제 국가로서의 위신을 선포한 때였다.


하지만 이는 오래 가지 못하고 결국 거란의 연호를 쓰기로 결정했지만 당시 동아시아 3국의 세력은 팽팽하여 안정된 국면을 맞이했다. 고려도 형식적인 책봉관계를 받아 들였을 뿐 중국을 받드는 사대외교는 이때까지 출현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2세기 들어오면서 한반도 북쪽 만주지역에 살던 여진족이 강성하여 나라를 세우게 된다. 화북 지방까지 세력을 떨친 여진족은 금을 세운 뒤 연운 16주를 차지했다. 이후 송을 남쪽으로 몰아내는 정강의 변(1126~1127년)으로 화북지방을 송두리째 빼앗으며 송을 신하의 나라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는 다음 공격 목표를 고려로 정했다.


사실 여진족은 고려 초기부터 우리나라 북쪽 국경선에 살면서 고려에게 식량과 농기구를 구걸하다시피하며 생활 했다. 수렵으로 잡은 동물의 가죽 등을 갖고 와서 먹을 것과 교환해 갔다. 무역을 거부하면 애걸복걸하면서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섬겼다. 실록과 각종 역사서에 보면 나오는 얘기다.

 

그런데, 이런 보잘 것 없던 미개한 여진족이 고려 중기 이후 송을 남쪽으로 밀어낸 것이다. 화북지방을 차지한 금은 과거에 부모의 나라로 섬겼던 고려에 대해서 형제국의 예를 맺자고 사신을 보내온다. 쉽게 말해서 자기들을 고려가 형님으로 대접해 줬으면 좋겠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서 고려 조정은 발칵 뒤집힌다. 무례한 놈들이라고 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금나라를 손봐줄 생각은 좀처럼 하지 못한다.


이때 묘청이라는 승려가 나와 금의 콧대를 꺽어버리자고 일갈한다. 처음에는 왕 이하 조정대신들이 솔깃했지만, 당시 정세상 금의 군사력은 동아시아 최강이었다. 묘청과 정지상을 중심으로 한 서경파(북진의 전초세력들)는 우리의 자주를 위해 금의 되먹지 못한 요구를 깨부수려고 천도까지 계획한다. 이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낀 왕과 대신들은 묘청의 이러한 행동을 제한한다. 거기까지만 하라는 것이다. 그냥 전쟁 없이 금을 형님 대접해주면 모든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는 논리였다.

 

이에 대해 묘청 일파는 불합리한 정치적 결정이라 생각하고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킨다. 이것이 유명한 고려시대를 뒤흔든 ‘묘청의 난’이다. 묘청은 나라의 자주를 위해서는 전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호를 ‘대위’ 국호를 ‘천개’라 하며, 금 정벌을 대의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안타깝게도 김부식으로 대변되는 개경파에게 진압되고 말았다.

 

1135년에 있었던 이 사건의 이름은 사건을 평정한 사람들의 사관이 투영되어 '난'으로 기록되었다. 김부식은 묘청을 잔혹하고 정권의 욕심이 아주 많은 인물로 그려 그를 폄하했다. 왕과 백성을 혹세무민한 대역죄인이라 평했다. 정권을 잡은 개경파의 사관이 투영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김부식의 평가는 후대에 새롭게 평가받기에 이른다. 이후에는 '서경천도 운동'이라 명명하며 금에 대한 우리의 자주의식을 천명한 사건으로 기록하기도 했다.

 

특히 신채호는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을 우리나라가 사대를 하기 시작한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했다. 그는 이 사건을 ‘우리 역사상 제일대 사건(조선 천년 제일대 사건)’으로 보았다. 개경파와 서경파가 나뉘어서 정권을 놓고 싸운 게 아니라 아주 중요한 역사의식의 심각한 충돌로 해석한 것이다. 우리가 자주의식을 잃고 사대로 일관한 것은 묘청이 김부식 일파에게 패한 바로 그때부터 시작됐다고 신채호는 평가하고 있다.

 

모든 역사책과 기록에서 묘청과 서경파에 관계된 자료와 사서들은 제거 되었고, 이후 개경파의 역사의식이 투영된 <삼국사기>가 우리 역사 최초의 정사 기록으로 남게 되었으니,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삼국사기>는 금에 대한 사대의 예를 다한 김부식의 투철한 유교적 역사의식이 고취되어 있는 사서이다.

 

이로부터 시작된 우리의 ‘사대주의의 역사’는 유구한 시간을 갖고 내려오면서 우리의 의식을 지배했다. 사대의 유전자는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잉태되었다. 고려의 저 묘청의 사건은 이후 매번 다른 상황의 옷을 갈아입고 역사에 종종 출몰하게 된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얼마 안 있어, 명은 멸망했다. 조선에 파병한 군사력의 손실로 인해 청나라의 공격을 막지 못했던 것이다. 명을 멸하고 청 왕조를 세운 민족은 금나라의 후신인 여진족이다. 중원의 패권을 장악한 청은 금나라가 그랬던 것처럼 고려의 후신인 조선에 형제의 맹약을 맺자고 소식을 전해온다. 이 사건이 정묘호란이다.

 

정묘호란은 꽤 심한 반발이 있긴 했지만 일단 형님으로 대접해 주는 선에서 타협을 보고 사건은 마무리 된다. 하지만 정묘호란이 있은 지 얼마의 시간이 흐르지 않아 전세는 변하여 이번에는 청이 군신의 예를 맺자고 소식을 전해온다. 이에 조선 조정은 발칵 뒤집힌다. 미개한 무리들의 요구를 물리치고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무리와 전쟁 없이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선에서 그치고 그 사이 우리의 힘을 기르자는 무리로 나뉘어졌다. 두 파로 나뉘어 서로 싸우는 와중에 결론은 나지 않고, 청 태종은 직접 조선을 정벌하러 내려오는 사태가 벌어진다.

 

1636년 청 태종이 조선을 정벌하러 온 이 사건을 일컬어 병자호란이라 한다. 병자호란이 발발하기 전, 김상헌을 비롯한 척화주전파는 청과 싸워 장렬히 전사하는 한이 있어도 오랑캐에게 굴복할 수는 없다고 일갈한다. 이에 대해 최명길로 대변되는 실리주의의 주화파는 우리의 힘이 청에게 상대가 되지 않으니, 일단 청의 요구를 들어주고 이후 힘을 길러 우리의 자주성을 찾자고 주장한다.

 

이 싸움에서는 고려와 달리 천화주전론이 승리하여 청과 싸움을 하지만, 이건 전쟁이 아니라 그냥 농성에 그치고 말았다. 남한산성에서의 40여일의 기록이 이때의 상황을 전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전쟁의 결정이 우리의 자주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의명분에 있었다는 점이다.


명을 받든 소중화(小中華), 다시 말해서 조선이 명을 대신해 복수하여 중화사상을 회복한다는 거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조선의 자주성을 회복하자는 논의는 아이러니하게도 최명길의 입장에서 나온다. 어쨌든 소중화를 자처하고 행한 청과의 전쟁에서 인조는 삼전도의 굴욕을 맛보고, 깍듯하게 청에게 사대의 예를 다하게 된다.


시간은 흘러흘러 세도정권이 끝나고 세계 열강들이 이양선을 타고 우리 근해에 나타나는 시대가 도래 한다. 일명 구한말의 시기. 일본과 미국 그리고 프랑스와 러시아가 조선과 무역을 하기 위해 배를 타고 나타났다. 이 중에서 제일 열심인 나라는 일본. 일본은 치밀한 계획 하에 조선을 개항하여 청에 대한 종주권을 부인케하고 조선을 독립시켜 자신들의 속국으로 만들 시나리오를 계획하고 있었다. 강화도 조약으로 시발된 이 시대에는 자주와 사대의 싸움이 개항과 척사의 옷을 입고 재등장하게 된다.


조선후기에 등장한 개화와 척사의 대립은 일제시대 이후 ‘선 독립 후 실력양성파’와 ‘선 실력양성 후 독립파’로 갈려진다. 선 독립 주창자들은 위정척사의 의식을 갖고 자주를 지켜온 자들의 생각을 대변한다. 그들은 독립을 위해 끝까지 최후의 한 사람까지 대일전쟁을 할 것을 맹세한다. 후자인 독립보다 실력양성이 우선이라는 자들은 곧 인조대의 실리파와 궤를 같이 한다. 이들은 독립을 하기위해 일본의 좋은 점을 받아들여 실력을 키운 후 독일을 하자고 주장했다. 일제 36년 간 무장독립 투쟁과 애국계몽 운동은 자주와 사대(실리)의 또 다른 표출이었다. 어떤 것이 더 옳다고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실력양성 측인 애국계몽운동을 한 많은 인사들이 친일 행각을 한 것으로 보아, 현재의 우리는 무장독립투쟁파가 더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평가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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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러한 대립 양상은 냉전체제로 분단국가가 되고 6.25를 겪으면서 복잡하고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하고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출발한 대한민국 정부는 반공을 국시로 삼았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와 맞물려 우익의 세상이 된 이승만 정권은 친일파를 정재계에 고루 등용하여 친일파가 권력을 잡는 빌미를 제공했다. 이승만과 박정희를 거쳐 노태우 정권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를 지배한 이들은 친일파의 후예들(작금의 보수이자 우익)이었다.


이들은 구한말 개화파, 그것도 일본의 세력에 빌붙은 후손들이다. 자주국가 건설과 무장 독립투쟁을 외쳤던 민족지사들은 대부분 공산주의를 받아들여 해방과 함께 북으로 넘어갔다. 이것이 남한의 비극이자 나라의 주체성이 없어진 결정타였다. 비록 소수의 자주 계열이 남한에 남아 있긴 했지만 박정희 정권 하에서 독립투사들의 후예와 함께 빨갱이로 몰려 완전히 몰락했다.


작금의 진보 대 보수의 갈등은 전통적인 자주 대 사대의 도식으로 볼 수 없는 복잡한 양상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의 진보는 영미의 진보 개념이 아니며, 역시 보수도 영미의 보수 개념이 아니다. 우리의 보수 진보 논쟁은 색깔 논쟁을 넘어 종북이냐 아니냐로 확대되고 있다. 국가의 자주적인 국부를 위해서는 그 어떤 관심도 없는 게 현 정치권의 세태이다.


우리는 주한 미국의 주둔과 보호 속에 국방의 자주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며 각종 이권을 미국에게 빼앗기고 있다. 한미 FTA뿐만 아니라 차세대 전투기 사업을 둘러싼 잡음들 역시 한국의 기득권층이 이권을 미국에 넘겨주기 위해서라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현재의 외교 노선은 그야말로 미국에 대한 현대판 사대로 일관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외교역시 소극적이고 국가의 영토적 환경적 이익에서 할 말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이 시시때때로 외치고 있는 독도 영유권에 대해서는 본질적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외교는 구한말과 비교해 결코 나아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정권 초기에 미국에서 윤창중 사건이 터진 외교에 그 어떤 기대를 할 수 있을까? 일본 원전 사고로 방사능 유출수가 쏟아진다고 해도 일본산 해산물을 안전하다고 수입하는 나라다. 우리나라 국익과 자주를 위해 어떤 외교적 성과가 있는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친일을 정당화하고 일본의 한국지배를 정당화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파동은 이 나라 우익의 실체가 무엇인지 명확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우리는 얼떨결에 사대주의도 모자라 친일 정권을 우리의 집권 정당으로 가진 나라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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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우리에게 “너희가 주체성 있는 민족인가?”라고 물으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고려 김부식의 금에 대한 사대당이 조선의 소중화 사상을 거쳐 개화파로 그리고 친일파로 내려온, 이 기득권의 역사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만일 우리가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저 외국인의 물음 앞에 반성을 하고 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현재의 우리는 주체성 있는 민족이 아니기에 그렇다. 가슴에 손을 올리고 생각해 보면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반성하고 행동할 때 저 묘청의 자주 정신은 되살아 날 날이 올 것이다. 나는 이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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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3-01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사람이 쓰는 한국말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한국사람다운 한국말을 쓰는지 알 길이 없곤 해요. 그러나, 누구나 한국말을 쓴다 하더라도 한국말이 어떤 한국말인지 제대로 들여다보는 사람이 거의 없지 싶어요.

말부터 말답게 쓰지 못하니, 역사도 역사답게 헤아리지 못하고, 문화도 문화답게 가꾸지 못하고, 정치도 정치답게 지키지 못하고...... 모두들 똑같이 흐르지 싶습니다.

외국사람이 한국사람더러 '너희는 진짜 한국말을 쓰는 사람인가?' 하고 묻는다면. 국어사전 만드는 일을 하는 저조차도 '아니다' 하고밖에는 할 말이 없기도 합니다.

2014-03-03 1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