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사이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그림을 감상하고 한국 화가들을 공부하면서 그림 소장욕구가 심해집니다. 이제는 돈이 없어 헛물만 켜고 있죠. 3작품 정도만 구입해도 월급 잔고는 썰물처럼 빠져나갑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이었을 거에요. 나만의 작품을 남기고픈 욕구가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치만 내가 '추상미술의 역사'를 읽지 않았다면 그림을 그리는 시도는 아마 못했을 겁니다. 원래 저는 그림에는 잼병이었거든요. 학창시절 미술시간은 너무도 싫었고 내 성적은 양미간에 걸쳐 있었습니다. 실기는 양가였지만 필기 점수로 간신히 가를 면할 수 있었죠.
그랬던 내가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하다니...첨으로 아이러니하고 아주 이상한 '짓거리'리였죠. 스케치북을 사서 몇 점을 그려 동생에게 보여주니, 좋다고 계속 해보랍니다. 그래서 다른 걸 모두 제쳐두고 요즘 시간날때마다 열심히 그리고 있어요.
사실 내가 그림을 그리게 된 강한 동기는 순전히 추상미술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때문이었어요. 어느날 잭슨 폴록의 N.5를 보고 추상미술은 무의미하다는 투로 어느 글에 댓글을 달았어요. 근데 다른 분이 추상미술 작품은 보는 사람마다 의미가 다양해져서 작가의 처음 의도와 그 의미는 중요한게 아니라는 식으로 대댓글을 달았습니다.
첨에는 그런 의미의 다양성은 무의미 한 거라 생각했는데, 그리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이처럼 자유롭고 열린창작 행위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상황 하에서 읽게 된 <추상미술의 역사>. 여기서 칸딘스키가 추구했던 단 하나의 생각이 저를 그림을 그리는 행위로 인도했습니다. 컨딘스키는 색이모든 것을 말하고, 색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없다라는 생각을 가졌어요. 대상의 모사와 재현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이었죠. 그래서 나도 해보자....라는 생각이 행동으로 발전한 것이에요.
그리하여 내 생애 첫 미술 작품이 탄생하게 됩니다. 캔버스 6호 크기의 작품으로 나름 평소에 색채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던 걸 표현해 봤습니다.

(파랑을 관통하는 오렌지, 캔버스에 복합, 2022)
베르그손 저작에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시간속에서 색이 색을 관통하는 순간을 표현해 보고자 했습니다. 파랑과 오렌지는 다차원적 의미를 갖고 있지만 파랑은 보통 고귀함 또는 힘과 관계된 기호로 표시되곤 합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파랑을 주류사회를 표상하는 색으로 여기고 있고(삼성의 로고가 파랑임을 상기하면 쉽습니다), 오렌지는 열등한 색으로 여기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오래 전부터 이런 생각에 반대를 해 오는 입장이고, 패션계에서 오렌지는 포인트되는 색깔로 널리 활용되어 왔습니다. 어떤 영감을 주는 색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 권위에 도전하는 방식으로 파란 바탕에 오렌지색 삼각형을 표현해 봤습니다. 6호 크기의 캔버스에 파란색 아크릴 물감을 백칠하고 캔버스에 틈을 내어 오렌지 색지를 활용한 것이죠. 단순한 작업이었지만 평소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를 찾았다는 사실에 매우 의미 있는 작었이었다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색이 색을 관통할 수 있다는 걸 글로 표현하기에는 매우 힙듭니다. 하지만 미술 작업을 통해 이를 감각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아주 매력적이더라구요. 그래서 계속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스케치북으로 그림을 그리는 건 또다른 재미의 차원이 열리는 문이더군요.
어쨌거나 첫 작품을 만들어 봤습니다. 만드는 족족 여기에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