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어느덧 여기에 (대굴대굴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책에 관한 리뷰라기 보단 내 삶에 대한 리뷰</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Fri, 09 Oct 2026 19:45:07 +0900</lastBuildDate><image><title>대굴대굴</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045771444334901.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대굴대굴</description></image><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같은 문 앞에 몇 번을 서든, 여는 손은 매번 다른 손이다, AI</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62261</link><pubDate>Fri, 09 Oct 2026 09: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62261</guid><description><![CDATA[한때 난 매번 똑같은 상황에 직면한 적이 있었다. 삶이 도돌이표 같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반목과, 그때그때를 넘기는 미봉책과, 다시금 쏟아지는 불만과…. 그런 것들이 쌓여 딱딱하게 다져지면 그곳에서 분노와 두려움이 자라났다. 분노는 충돌을, 두려움은 회피를 낳았고, 돌고 도는 순환의 끝에 설 때면, 나는 항상 같은 생각과 마주쳤다. 우린 어떻게 해야 하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방법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면, 그 해결책은 누구를 위한 것이지?<br>그 답은 지금도 모른다. 시간이 질문을 묻었고, 날뛰던 감정도 바람결에 날리듯 흩어버렸다. 그 시절, 뱅뱅 돌며 떠밀리듯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생각해 보면 내 감정의 자리는 언제나 달랐다. 어리둥절함에서 연민과 당혹으로, 분노와 혐오로, 아득한 막연함으로. 자리가 바뀔 때마다 질문을 대하는 내 태도도 바뀌었다. 하지만 결론은 항상 똑같았다. 할 수 있는 게 없구나. 답을 얻지 못한 난 또다시 쳇바퀴를 돌아야만 했다. 무한히 돌 것만 같던 그 쳇바퀴도 이젠 시간에 녹슬어버렸다.<br>고양이를 뒤쫓는다. 그렇게 악착같이 쫓지는 않는다. 고양이가 멈추면 다가가고, 다시 움직이면 또 쫓는다. 그러다 보면 내 무릎도 이제 녹이 슬어간다는 걸 깨닫곤 한다. 고양이는 곧 멈출 것이다. 그럼 서너 번에 걸쳐 귓속을 닦아줄 거고. 이걸 하기 싫어서 녀석은 나를 꼬리에 붙이고 온 집안을 돌아다닌다.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방문을 닫아본 적이 없다. 화장실 문을 제외하곤 항상 열려 있어서 그냥 아무렇지 않게 들락날락한다. 이제 와 든 생각이지만, 언제나 질문에 가로막혔던 나는, 그럼에도 해결책을 알고 있었던 나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문을 이미 열어젖혔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열었다고 해서 꼭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삶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안방 문 앞에 서서 가만히 있자, 방 안에서 고양이가 무슨 일인가 싶어 빤히 쳐다본다. 그 시절, 방 안에 있던 건 고양이가 아니었다.<br>AI가 제시한 문장 :&nbsp;같은 문 앞에 몇 번을 서든, 여는 손은 매번 다른 손이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돈봉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60323</link><pubDate>Thu, 08 Oct 2026 09: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60323</guid><description><![CDATA[명절 전이었다. 조카에게 카톡으로 질문을 던졌다. 너희 엄마, 뭐 필요한 거 있어 보이든? 돌아온 답은 예상대로였다. 엄마 까다로워. 뭘 사줘도 맘에 안 들어 해. 사실이다. 예민하고 까탈스럽다. 곧이어 추가 답변. 그래서 오히려 편해. 그냥 돈으로 담아 드리면 되거든. 그래, 취향이 까다로운 사람한텐 돈을 주고 알아서 사게 하는 게 더 좋은 방법이긴 하다. 봉투에 돈을 담는다. 사실 이미 예상했던 터라 봉투도 미리 준비해 뒀었다. 그냥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br>컴퓨터를 켜지도 않았는데 책상 앞에 앉아 고민 중이다. 스마트폰 검색 내용을 살피면서 아래로 스크롤 하는데 고양이가 의자 밑으로 지나가더니 급식기 앞에 선다. 깔짝깔짝. 한입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만 나를 쳐다본다. 사료가 먹고 싶은 게 아니다. 까까를 먹고 싶어서 나를 떠보는 중이다. 녀석과 마주 보던 눈을 매몰차게 돌린다. 가서 자라, 잘 시간이다. 다시 스마트폰에 집중. 화면엔 자동 화장실과 관련된 후기들이 쭉 떠 있다. 적당한 가격대와 적은 소음과 낮은 오작동 빈도와 편리한 AS, 마지막으로 아이의 배변 행위에 걸맞은 작동 방식까지. 제품 하나를 정했고, AI에게 질문해서 비교·분석까지 했다. 사실 이미 두어 달 전에 끝냈다. 그리고 지금 또 고민 중이다.<br>고양이가 터덜터덜 문밖으로 걸어가더니 캣타워로 들어간다. 까까는 포기한 모양이다. 저 녀석한테 돈봉투를 건넬 수는 없고. 이걸 사면 저 녀석이 써 줄까? 그동안 돈 들여 샀지만, 그 제품이 담겨온 박스만큼도 사용해 주지 않은 상품들이 느닷없이 마루를 행진한다. 숨숨집, 장난감, 물그릇, 전기방석(온), 또 전기방석(냉), 입맛에 맞지 않는 간식들. 열린 베란다 창문으로 하나씩 하나씩 밑으로 떨어진다. 이번에 사는 건 무게나 비용 모두 묵직해서 타격감이 꽤 클 텐데. 내년에 맘 편히 여행 다녀오려면 이 녀석이 이 제품을 써 줘야 하는데. 걱정을 한가득 품고서 녀석을 살피니 방석에 머리 박고 잠을 청하는 모양이다. 저 얄미운 녀석. 봉투에 돈을 담아서 머리통을 한 대 갈기고 올까? 참자. 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더불어 녀석이 우리 집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날이다. 조그맣고 귀엽고 모든 걸 좋아했던 녀석. 그러고 보니, 나 사기당했네, 사기당했어.]]></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운명과 우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58528</link><pubDate>Wed, 07 Oct 2026 08: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58528</guid><description><![CDATA[이날은 유난히 미적거렸다. 산에 가야 하는데. 누가 등 떠미는 것도 아닌데 왜 가야 하는 걸까? 지난주는 고관절이 아파서 운동을 쉬었고, 지지난주는 산에 갔었는데 모지리를 못 봤다. 모지리를 꼭 봐야 하나? 그래도 잘 있는 거 보면 좋잖아. 어기적대다가 어차피 쓰레기도 버려야 해서 꾸역꾸역 길을 나섰다. 다른 때보다 늦은 시각이었다.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서니 아파트 단지 후문 앞쪽 신호등이 막 빨간불로 바뀌는 게 보였다. 후문 쪽으로 가는데 왼쪽에서 승용차 하나가 나온다. 후문은 오전 출근 시간대만 차량이 통행할 수 있어서 이 시각엔 차가 다닐 수가 없다. 그래서 이 차가 진행할 방향은 내가 걸어 나오던 길뿐이다. 먼저 지나가라고 길옆으로 물러섰는데 차도 멈춰서 움직이지 않는다. 차 안이 잘 보이지 않아서 잠깐 주저하다가 내가 먼저 차 앞을 가로질러 지나친다. 그 순간 경적 소리. 아주 짧게. 나한테 그런 건가 싶어 차 쪽을 뒤돌아 봤지만 별 반응이 없다. 햇빛이 창에 반사돼서 내부가 보이지도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다시 제 갈 길을 간다. 후문을 벗어나 건널목 앞에 섰는데 다시 짧게 빵. 내 시야에선 담에 가려 차가 완전히 보이지 않는다. 주변에 있는 누굴 부르는 건가 싶어 잠시 두리번거린다. 그 주변이 마침 그늘에 벤치들이 있는 자리라 어르신들과 아파트 주민들이 주르륵 앉아 쉬고 계시는 곳이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도 다들 두리번. 어르신들도 두리번. 뭔가 이유가 있겠지 싶어 관심 끄고 신호등을 바라본다. 모지리 보러 가야지.<br>그리고 쿵. 충돌하는 소리, 아니면 넘어지는 소리. 이어 브레이크 밟는 소리. 걸음을 옮겨 소리가 난 쪽을 봤더니 오토바이 한 대가 땅에 쓰러져 있었다. 아까 그 차는 우회전한 상태로 멈췄고, 조금 전 내가 서 있던 자리보다 조금 더 앞서 있었다. 소리가 한 번만 났던 걸로 봐서 둘이 부딪쳤다기보단 오토바이가 차를 피하다가 미끄러져 넘어진 듯하다. 다친 사람은 오토바이 운전자 한 명뿐인 거 같다. 불행 중 다행인 게 쓰러진 오토바이가 벤치 쪽을 덮치진 않았다. 많이 다치진 않았으면 좋겠구나. 몸이 재산인데.<br>길을 걸으며 생각한다. 내가 집에서 1분만, 아니 몇십 초만 늦게 나왔으면 저 상황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내가 똑같은 경로를 걸었다면, 차도, 오토바이도 나를 보고 멈췄거나 방향을 바꿨을 테니 아예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예 내가 그 사고에 포함되었을 수도 있다. 미끄러져 넘어진 오토바이가 후문을 나가려던 나를 덮쳤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애초에 난 왜 미적거렸지? 다른 때처럼 나왔다면 이 상황을 아예 몰랐을 거다. 2주간 모지리를 못 봤고, 지난 주엔 고관절이 불편해서 운동을 쉬었다. 고관절 쪽이 불편한지는 한 달 정도 되어 간다. 가까이 벌어진 현상으론 이런 것들 때문에 산에 갈지 말지 고민했었다. 그런데 따지고 들어가면, 오른쪽 고관절이 불편한 건 내 무게 중심이 오른쪽으로 쏠린 자세 탓이고, 십몇 년 동안 장사하면서 같은 자세로 서 있을 때가 많았던 탓이다. 모지리가 신경 쓰이는 건 작년 9월 이후에 봤던 고양이 중 유일하게 이 녀석만 자리를 지킨 탓이고, 더 멀리는 내가 고양이를 입양하면서 고양이에 대한 관점이 바뀐 탓이기도 하다. 내가 저 사고에 포함되었더라면, 이 모든 것들이 켜켜이 쌓여 기반을 다진 꼴이 되나? 세상에나, 줄줄이 낚여 올라오는 생각에 숨 막혀 죽겠다. 이래서 ‘운명’이란 단어가 신비하고 모호하고 매력적인 거구나. 이래서 ‘우연’이란 단어가 삶에 숨통을 틔워주는 거구나. 에라, 모르겠다. 걷자. 목표는 산 정상. 중간에 뭐가 있든 내 알 바 아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두리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56828</link><pubDate>Tue, 06 Oct 2026 09: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56828</guid><description><![CDATA[오른손을 쫙 피고 들여다본다. 올해 들어서 오른쪽 손가락 관절 일부가 통증을 호소하곤 한다. 청소하거나 무언가 무거운 물건을 나를 때처럼 일정 시간 이상 힘이 가해지면 그렇다. 그럴 때마다 손가락을 쫙 펴보지만, 축 처진 어깨처럼 금방 오그라든다. 하아, 세월 진짜. 아직 다섯 살인 고양이가 높은 곳에 올라앉아 바닥에 있는 나를 내려다본다. 언젠가 고양이도 예전 같지 않을 텐데, 그때가 되면 나처럼 무심한 세월에 투덜댈까?<br>오른손을 쥐락펴락 해본다. 움직일 때마다 감각이 느껴진다. 내 모든 감각은 나를 정의한다. 정의한다고? 그보단 인식한다는 표현이 맞겠다. 나를 인식하고, 고양이를 인식하고, 그 너머 세상을 인식한다. 세월이 흘러서 죽음과 맞닥뜨리면, 무(無)가 된다면, 대상을 인식하던 나는 증발하듯 단절되는 걸까? 누구나 몸의 퇴행을 겪으며 육체의 소멸은 당연하게 여기지만, 정신의 소멸은 그만큼 확신하지 않는다. 물질의 영역을 넘어서 종교나 철학, 또는 미지의 영역이라 그러겠지. 지금 나를 인식하고 있는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는 완전히 지워질까?<br>오른손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뒤집어본다. 이 모든 걸 인식하는 나는 태어나기 전엔 무엇이었을까? 아니, 사실 그건 별로 궁금하지 않다. 죽음 이후가, 완전한 무(無)가 된다는 게 가장 궁금하다. 그러고 보니, 이 의문에도 내 이기심이 들어가 있는 모양이다. 이전에 무엇이었든, 이후에 무엇이든, 지금의 내가 완전히 지워지듯이 사라지는 게 살짝 억울한 거 보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이전의 내가 있었을까?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후의 내가 존재할까? 생각 속에서 방향을 상실하면 언제나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또 나뿐이다. 계속 나를 쳐다보는 고양이에게 묻는다. 고양이, 너는 이 막막함과 이 또렷함이 뒤섞인 이질감을 어떻게 생각하니?<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고양이 일기</category><title>고양이 일기_19</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55044</link><pubDate>Mon, 05 Oct 2026 08: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55044</guid><description><![CDATA[*** 고양이를 입양하고 나서 가장 많이 집을 비웠던 시간이 53시간이었던 듯싶다. 2박3일 일정의 일본 여행이었지만 느낌상 1박2일 같았던 교토 구경. 내년 계획 중인 여행은 그보다 10시간 정도 더 길듯한데. 여러모로 고민이다. ***<br>아저씨가 사라진 지 삼 일째. 밤이 두 번 지나갈 동안 간식을 못 먹었다. 해가 세 번째 아침 인사를 건넸는데 아직도 변기 물이 안 내려가고 있다. 내내 켜져 있는 마루 전등불이 두 번이나 기세를 잃었는데도 사냥놀이 한 번 하지 못했다. 이, 이 형편없는 복지를 내 절대로 잊지 않으리라. 화장실을 하나 더 만들었을 때, 커다란 가방을 등에 둘러맸을 때, 두세 배나 길게 열심히 빠이빠이를 할 때, 난데없이 간식을 퍼줄 때, 알아챘어야 했다. 이 멍청한 고양이 같으니. 까까에 히죽대던 과거의 난 얼마나 바보 같았던가. 앞으론 절대 까까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고양이별에 연락해서 감시 모드를 암살 모드로 바꿀 수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돌아오기만 해 봐라. 자고 있을 때 명치를 꾹 밟고 지나갈 테다. 냥, 까까 먹고 싶다. 밥통이 무미건조하게 비명을 내지르며 밥알을 내뱉는다. 하루 세 번. 이 좁은 세상에 나를 생각하는 건 밥통뿐이구나. 미안한데, 밥통아, 밥 말고 까까를 뱉어주면 안 될까? 이런! 이런! 미안하다니! 고양이가 미안하다니!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감정을. 내가 미쳐가는 중인가? 아악, 집고양이가 어떻게 밥만 먹고 살 수가 있냐고!]]></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핑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52400</link><pubDate>Sat, 03 Oct 2026 15: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52400</guid><description><![CDATA[집안은 비교적 단조롭다. 공간은 변함없고, 가구는 굳건하다. 까만 고양이와 마른 집사가 간혹 투닥대지만, 그 역시 5년이나 지속되었던 일이라 소란스러운 고요에 가깝다. 계절의 변화도 이 안에선 다채롭지 않다. 드나드는 바람이 시원해진 이후론 더욱 그렇다. 남아 있는 여름의 흔적이라곤 내 옷차림과 여름용 홑이불과 그 이불을 덮고 잠들었다가 잠결에 저 멀리 내치는 내 행동 정도. 그걸 제외하면 가을의 영역이 폭넓게 여름의 뒤꽁무니를 뒤덮고 있다. 지루하다. 바깥보다 안을 좋아하는 나는 무덤덤함에 익숙하지만, 간혹 발작적으로 투덜댈 때가 있다. 아무 생각이 안 나!<br>컴퓨터 앞에 앉아 쓸데없이 머리만 굴리다가 고양이의 동태를 슬쩍 살핀다. 캣타워에서 방석에 머리를 기대고 자는 중이다. 이제 곧 내려와 까까 내놓으라고 보챌 시각이다. 점심 먹고 한 시간이 넘게 모니터와 눈싸움을 벌였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여름이 몽니를 부린 것일까? 잠결에 이불을 걷어차는 내 발길질에 차이기라도 했을까? 이 집구석에서 유일하게 활기찼던 내 상상력을 함께 데리고 간 모양이다. 네가 그걸 어디에 써먹으려고! 에잉, 오늘은 뜨거운 김치찌개나 끓여서 가을이나 반겨야겠다. 어이 고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여름이 손잡고 창문 틈으로 끌고 나가는 애 있으면 좀 챙겨둬라. 걔 없으면, 나 너무 심심해서 안 되거든.<br>꼬리말) 정말, 정말 여름이 간 거 같다. 이 글을 쓴 뒤로 며칠 사이에 이불과 나는 새벽녘, 떨어질 수 없는 한 몸이 됐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돌아오지 않는 길도, 걸었다는 사실만은 남는다, AI</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50139</link><pubDate>Fri, 02 Oct 2026 08: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50139</guid><description><![CDATA[내 부모님은 두 분 모두 1920년대생이다. 큰누나는 50년대, 누나는 60년대, 나는 70년대에 태어났다. 부모님과 세대 차이는 말할 것도 없고 자식끼리도 세대 차이가 있다. 큰누나는 어린 시절을 다른 곳에서 보냈지만, 누나와 나는 어머니의 극진한 보호 속에서 컸다. 과보호의 피해는 이후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돌아갔지만, 누나의 타격이 가장 컸다고 해야겠다. 나는 누나를 반면교사 삼았으나 누나는 그럴 대상조차 없어서 몸소 부딪히고 깨져야 했으니까. 큰누나는 일찍 결혼해서 출가한 탓에 그 혼돈을 직접 겪진 않았다. 그래도 웬만한 과정을 다 듣거나 지켜봤고, 일이 왜 이렇게 됐는지 충분히 판단할 수 있었다. 그러니 큰누나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었다.<br>하지만 큰누나는 어머니가 했던 것처럼 자식들에게 똑같이 집착했다. 특히 아들에게. 세부적인 사건·사고는 달랐지만, 어머니와 누나와 내가 휩쓸렸던 혼란에 큰누나 역시 휩쓸리고 말았다. 달랐던 점이라면, 내가 빠진 혼란은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마무리됐고, 큰누나의 혼란은 큰누나가 직접 선을 그으면서 정돈했다는 거. 큰누나가 한 성격 하거든. 다만 뒤에 남은 서운함은 부모 처지에서든, 자식 처지에서든 어쩔 수 없는 일.<br>우린 살면서 항상 어딘가로 향한다. 가다가 가다가 계속 갈 수도 있고, 흠칫 놀라 되돌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되돌아왔다고 해서 그 자리가 처음과 같은 자리일 리도 없다. 어떤 경험을 했다면 사람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을 받고 변했을 테니까. 그런데 이렇게 변한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까? 희한하게도 우린 같은 방향으로 다시 전진하고 또 흠칫 놀라 돌아온다. 당사자가 이 모양인데 그걸 지켜본 타인이 다 알면서도 같은 방향으로 가는 건 사실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러니까 우린 살면서 항상 어딘가로 향한다. 삶의 굵직한 방향성을 따라 어떤 대로를 따라 걷다가 벽에 부딪혀 다른 길로 되돌아와서 멈춰 선다. 잠시 망설이다 다시 비슷한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하지만 이전에 갔던 길은 아니다. 우리 발자국은 언제나 한 방향만 향한다. 삶의 모든 길은 일방통행일지도 모르겠다.<br>꼬리말) 글의 제목이 AI가 내놓은 문장이다. 듣자마자 ‘함흥차사’가 떠올랐지만 바로 고개를 저었고, 다음엔 다소 추상적인 이미지의 ‘길’을 생각해 봤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복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48411</link><pubDate>Thu, 01 Oct 2026 08: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48411</guid><description><![CDATA[대공원 그 아저씨가 하루 입원을 할 일이 있었다. 흔히 볼 수 없는 엄청난 두 자릿수 주식 수익률(단, 마이너스)에 너무나 감동한 나머지 두어 달에 걸쳐 매주 주말마다 일본 여행을 다녀오더니 평일엔 쉬지 않고 일에 매진하는, 그야말로 치열한 삶을 7월부터 살았다. 그러다 팔꿈치 쪽에 기스가 나는 불상사가 발생했고, 그는 마지못해 하루만 병원 신세를 지기로 했다.<br>6인 병실. 중국인 노인분이 유튜브를 크게 틀어놓고 병실 생활을 참아내고 있었다. 베트남 환자분은 애인이 간병을 담당하며 알콩달콩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나라 노인 한 분은 아내가 간병을 맡았는데, 환장의 티키타카로 말씀들을 쏘아 올리며 세월을 감내하는 중이었다. 대공원 그 아저씨는 꾹 참으며 조용히 밤을 기다렸다. 미안하고 조심스러운 마음 같은 건 진작에 사라졌다. 드디어 밤이 왔고, 조용히 누워 눈을 감았다. 편안한 마음으로.<br>내 경험에 따르면, 대공원 그 아저씨의 코골이는 가히 예술의 경지다. 듣는 이의 신경을 들었다 놨다 하는 스펙터클한 높낮이와, 심장을 덜컥 하게 만드는 폭풍전야 같은 무호흡과, 정신을 혼미하게 할 정도로 쉼 없이 휘몰아치는 들숨 날숨의 향연은 정말이지…. 복수의 밤이 지나갔고, 그의 모험담은 내게 전설이 됐다. 아, 좀, 적당히 좀 살자, 이 아저씨야.<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비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45104</link><pubDate>Wed, 30 Sep 2026 09: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45104</guid><description><![CDATA[새벽엔 서늘하고 낮엔 살짝 덥고. 일교차가 벌어지며 환절기 느낌의 계절로 들어서면 여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다. 나처럼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 사람이 많은 집 밖에선 아는 체도 하지 않지만, 집 안에선 철썩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조심조심 들러붙어 간질이듯 얼쩡대다가, 불현듯 존재감을 폭발시킨 후 눈물 콧물 쏙 뺄 만큼 매콤하게 내 온몸을 휘감는다. 어찌나 영악한지 먹을 때와 잘 때는 잠시 뒤로 물러난다. 먹고 자게는 해 줘야 맘껏 괴롭힐 수 있으니까.<br>알레르기 비염이 찾아왔다. 반갑지도 않은 것이 꼭 때가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덮치곤 한다. 재채기와 콧물이 상승 작용을 일으키고, 종일 시달리다 보면 어깻죽지에 머리까지 지끈거릴 정도로 아프다. 어떤 일에 집중하기도 어렵고, 코를 간질이는 재채기 전조 증상에 어쩔 줄 몰라 하면 고양이도 저만치 도망을 간다. 못된 녀석 같으니. 언제 기침만 해 봐. 그땐 나도 저만치 도망가 버릴 거야! 5일째 시달리는 중인데, 어제는 일하고 들어와서 오늘 아침까지 무려 12시간을 잤다. 쌓이는 건 신경질과 무력감과 코를 푼 휴지 무더기.<br>다행히 최악은 아니다. 최악이라면, 주어진 상황에 따라 나를 파괴하고 싶을 만큼 좌절과 분노에 사로잡힌다. 덕택에 인간의 이성이 이토록 나약한 것이었던가를 깨닫기는 했지만. 오늘은 병원에 가봐야겠다. 코를 풀 때마다, 재채기할 때마다 한 꺼풀씩 내가 사라지는 느낌이다. 그러다 날것의 내가 나타나면…. 흠, 브루스 배너도 알레르기 비염이 있었을까?]]></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42849</link><pubDate>Tue, 29 Sep 2026 09: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42849</guid><description><![CDATA[아침에 얼굴을 때리는 햇살 때문에 눈을 뜬다. 쓰다듬는단 표현을 쓰고 싶었지만, 미련이 남은 여름은 심술을 가득 담아 아직도 햇살을 휘두르는 중이다. 화끈함에 벼락같이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캣타워 해먹 안에서 나를 살피는 눈과 마주친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했던가. 오래 같이 지내다 보니 고양이의 눈도 똑같다는 걸 알게 됐다. 이제 일어날 거냐? 기대와 의문이 눈을 통해 철철 흘러나오고 있다. 그래, 일어난다. 물을 마시고 사람 화장실 갔다가 고양이 화장실로. 어느새 뒤따라온 고양이는 부지런히 앞서 달려가더니 빗이 있는 곳에 멈춘다. 이번에 눈에 담긴 감정은 조급함. 빨리 빗질하고 간식 내놔라. 고양이 너도 내 나이 되면 알겠지만, 아침에 막 일어났을 땐 온몸이 뻣뻣하거든. 좀 천천히 하자, 응?<br>아침 일과를 무사히 마쳤다. 청소를 끝내고 고양이 식기 다 닦고 간식 급여까지. 간식 먹은 침을 열심히 얼굴에 펴 바르던 녀석이 갑자기 마루 베란다 안쪽으로 자취를 감춘다. 따라가 보니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수납공간 앞에 앉아 있다. 수납공간 문을 열어보란다. 양쪽 문을 하나씩 천천히 연다. 안에 쟁여뒀던 빈 상자를 하나씩 꺼내 썼더니 지금은 제법 틈이 보인다. 녀석도 그걸 안다. 그래서 틈 너머 안쪽으로 들어가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문이 열리자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녀석. 문에 찍힌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지 두 눈엔 두려움과 호기심이 섞여 있다. 하지만 박스를 두 발로 짚고 우뚝 선 녀석의 눈엔 호기심과 의지만 한가득이다. 나 역시 사심 가득한 눈빛을 쏘아 보내며 녀석의 머리통에 뽀뽀를 날린다. 안 그러면 녀석은 점프해서 박스 너머로 들어갈 거다.<br>뱃살을 만지작거리는 내 손과 머리통을 짓누르는 내 입술에 진저리를 치며 녀석이 물러난다. 슬쩍 뒤돌아보는 녀석의 눈에 짜증과 체념이 담겨 있다. 덤벼라, 고양이. 언제든 상대해 주마. 내 눈엔 아마도 자신감과 의지가 넘쳐흐르다 못해 광기가 엿보일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교훈. 마음을 열고, 빈틈을 보이고, 어떤 의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일방적이거나 과도하다면, 관계는 실패한다. 하지만, 머리통에 갈기는 뽀뽀는 내가 참을 수가 없지. 흐흐흐.<br>꼬리말) 딱 일주일 전에 썼던 글이다. 이번 주 아침 햇살은 기세가 많이 꺾였다. 갈수록 여름의 흔적을 가을이 지워내는 중이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고양이 일기</category><title>고양이 일기_18</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40898</link><pubDate>Mon, 28 Sep 2026 10: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40898</guid><description><![CDATA[*** 사회화에 실패하고 나서 월이는 나 빼고 모든 사람을 무서워한다. 손님이 오면 어딘가 숨어서 절대 나오지 않고, 인터폰에서 벨 소리만 울려도 낮은 포복 자세로 순식간에 사라진다. 핸드폰으로 통화를 해도 도망, 관리실에서 방송이 나와도 도망, 어떤 기계에서든 목소리만 들려도 줄행랑을 쳤다. 그나마 요즘은 핸드폰이나 방송에선 실제 사람이 출현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는지 자리를 지킨다. ***<br>(초겨울 어느 날)<br>(벽에 부착된 스피커 관찰 중) 내가 말이지, 눈에 보이거나 기척이 느껴지는 귀신은 하나도 안 무서운데... 이 집구석은 어떻게 된 게 보이지도, 냄새가 나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귀신이 있단 말이지. 저 위쪽 벽에 붙어있는 네모났고 구멍 숭숭 뚫린 거! 가끔 관리사무소 어쩌고 하면서 느닷없이 뭐라고 하는데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구.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br>“이제 날이 제법 춥네. 보일러를 켜야겠다.”<br>내가 둔해졌나? 고양이 체면이 말이 아닌데...<br>(기계음) “보일러 설정이 완료됐습니다.”<br>아이, 깜짝이야! (후다닥) 뭐냐, 뭐냐? 이 여자는 또 누구냐? 어디야, 어디?<br>“야, 겨울에 한두 번씩 나오는 보일러 언니잖아? 뭐가 무섭다고 소파 밑으로 들어가냐? 아우, 쫄보 자슥.”<br>(여름 어느 날)<br>“새 에어컨이 좋긴 좋구나. 바깥에서 핸드폰으로 조작할 수도 있고, 전기요금도 덜 나오고.”<br>(뒹굴) 시원하네. 여기가 천국이네. 천국은 고양이별보다 더 좋나? 에라, 모르겠다. (뒹굴)<br>“아직 초여름이니까 밤에는 좀 끄자.”<br>(기계음) “AI 모드로 0.2kW를 절약했습니다.”<br>우와, 우와! (후다닥후다닥)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야?! 아무 기척도 없었는데...<br>“겁나 빠르네, 자슥. 침대 밑으로 갔냐? 이제 이 목소리 여름엔 매일 들을 거야. 에어컨 언니니까 너무 놀라지 마라.”<br>아니, 무슨 기척 없는 언니들이 이렇게 많아! 이러니까 아저씨가 예전에 맨날 가위눌렸지!<br>“3D로 사람이 튀어나오게 만들면, 저 녀석 제명대로 못 살겠네, 에휴. 옛날 &lt;링&gt; 영화가 무섭긴 했는데...”<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길은 걸을 때마다 다시 쓰인다, AI</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37842</link><pubDate>Sat, 26 Sep 2026 16: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37842</guid><description><![CDATA[“저것들은 맨날 져야.”<br>어머니는 프로야구 기아 타이거즈 팬이다. 화면을 슬쩍 봤더니 1:1이다. 엄마, 동점인데. 어차피 저것들은 질 거야. 내가 잘못 알고 있던 건지도 모른다. 안티 팬이었을까? 겉옷을 챙겨입고 나오자, 어머니가 묻는다. 어디 가게? 동네나 한 바퀴 돌려고요. 나도 같이 가자. 야구 안 보시구요? 어차피 져. 아무래도 안티다. 옷을 챙겨입고 나오다 얼른 돌아서더니 카네이션을 가슴에 단다. 그걸 달고 가시게요? 우리 아들이 사준 거니까 달고 가야지. 배시시 웃으시며 신발을 신는다. 이날, 어버이날이었다.<br>아파트 단지의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어머니가 묻는다.<br>“너는 결혼 안 할래?”<br>이대로가 편한데. 사람들이 그러는데 나 요즘 얼굴이 좋아졌대요. 별말씀이 없다. 어쩌면 그냥 습관적으로 하는 질문. 얼마 걷지 않았는데 숨이 차는지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무뚝뚝한 아들내미는 옆에 함께 앉았을 뿐 별말이 없다. 다시 산책 시작. 오르막을 올랐으니 이젠 내리막이다. 아파트 뒤편 한적한 곳에 계단이 있다. 어머니는 한 손으로 내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론 난간을 붙잡은 채 힘겹게 걸음을 옮긴다. 그저 타박타박. 세월에 겨워 힘겨운 발걸음 소리와 숨이 찬 호흡소리를 들으며 나란히 길을 걷는다. 그 목걸이는 항상 걸고 있어야. 엄마는 그 꽃 왜 달고 나왔는데?<br>“우리 아들이 사준 거니까.”“나도 엄마가 해준 거니까.”<br>한동안 저 길을 다시 걸을 수 없었다. 혼자가 되고 나서 저 길을 걸으면 너무 아플 거 같았다. 그러다 수년이 지난 후, 이젠 웃음으로 다른 감정들을 대신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다시 거닐었다. 오르막과 벤치와 계단과 공원을. 계단이 좀 더 길었더라면, 어머니 손을 더 오래 잡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내가 살가웠다면, 사람 없는 공원에서 어머니와 알콩달콩 이야기를 오래 나눌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일어서려는데 문득 옷깃이 무겁다. 어머니의 손길이 끝으로 머물렀던 곳.<br>시간이 아주 많이 흘렀다. 툴툴 일을 털어내고 오랜만에 아파트 단지 안을 돌아봤다. 일부러 산책길도 다시 찾았다. 아파트 뒤로 들어가는 길 초입은 비둘기 똥으로 군데군데 얼룩져 있었고, 빛이 들어오지 않아 어둑어둑했다. 계단은 무척이나, 생각보다 많이 짧았다. 공원은... 뭔가 삥뜯기 좋은... 하아. 살찐 고양이 한 마리가 슬쩍 얼굴을 내밀더니 나를 살폈다. 너구나, 여기서 삥뜯고 사는 게. 주변을 둘러보다 걸음을 옮겼는데 반대편 문이 잠겨있어 다시 되돌아 나와야만 했다. 오지 말아야 했나? 이 정도면 다시 쓰인 게 아니라 아예 다른 길인데?<br>AI가 제시한 문장 : 길은 걸을 때마다 다시 쓰인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달과 고양이 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36045</link><pubDate>Fri, 25 Sep 2026 10: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36045</guid><description><![CDATA[밤 10시쯤 침대에 누워 전자책을 읽는다. 자기 전 패턴인데 그럴 때면 고양이는 침대 바로 옆 창틀에 놓아둔 원목 받침대에 자리 잡고 바깥 구경을 하거나 나를 구경한다. 내가 고개를 돌리면 녀석과 눈높이가 딱 맞아서 간혹 눈이 마주치곤 하는데 솔직히 이 녀석 무슨 생각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날도 책을 보다 고양이 한번 보다, 창밖을 보다 나를 한번보다 그러고 있었다. 자야지 싶어 핸드폰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는데, 다른 때보다 묘하게 은은한 빛이 눈꺼풀 너머로 감지됐다. 뭐지?<br>눈을 뜨고 창밖을 보니 둥근 달이 보인다. 음력 보름이 아니니 보름달은 아닐 텐데 왜 하필 오늘 내 감각을 자극했을까? 고양이는 아직도 창틀에 있다. 나와 달리 달엔 관심도 없다. 대각선 방향에 있는 아파트 불빛 사이 움직임과, 간혹 외부 창에 들러붙는 벌레와, 배수구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시커먼 녀석, 낭만이라곤 몸 구석 어디에도 없는 모양이다. 달을 올려보다 문득 소원을 빌어본다. 우리 어둑어둑한 고양이, 착하게 건강하게 살다가 고양이별로 가게 해주세요. 고양이가 일어나서 기지개를 켜더니 나를 가로질러 자기 잠자리를 찾아간다. 야, 너도 소원 빌고 가라. 퉁, 퉁, 퉁. 발판을 순서대로 밟고서 삼층장 꼭대기로 올라간다. 발판 밟는 소리가 흥, 칫, 뿡으로 들리는 건 내 착각이었을 거다.<br>다시 달을 본다. 생각해 보니 보름달이 아니라 내가 빈 소원은 안 들어줄 거 같다. 이렇게 사람들이 바라는 소원으로 둥글게 차오르다가 완벽한 둥근 달이 될 때 그 순간 도달한 온전한 문장만이 달의 기운을 다 가져가는 건지도 모른다. 바로 그다음에 도달한 소원으로 둥근 달이 터지면서 기운을 독식한 문장이 세상에 뛰쳐나와 그 대상을 찾아가는 걸 수도. 적어도 누군가 한 명은 한 달에 한 번 소원을 이루겠네. 치사하게 정월 대보름과 추석에만 들어주려나? 흥, 칫, 뿡이다. 꿈속에서 커다란 고양이나 되어서 저 녀석이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봐야지.<br>꼬리말) 8월 31일에 쓴 글인데 최근 쓴 글들에 이래저래 밀리다 이제야 올린다. 어제는 반가운 사람들을 보느라 달을 볼 생각을 못했다. 오늘은 날이 흐려서 달이 안 보일 수도 있겠고.&nbsp;]]></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걱정 한 움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34378</link><pubDate>Thu, 24 Sep 2026 07: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34378</guid><description><![CDATA[새벽에 일어나서 고양이 화장실 치우고 까까를 챙겨준 후 소파에 드러눕는다. 솔솔 부는 선풍기 바람에 잠이 기웃거리다 스쳐 지나가는 검은 그림자에 놀라 그대로 멈칫한다. 고양이가 캣타워 중간쯤 선반에 뛰어올라 꼬리를 살랑거리면서 창밖을 바라보는 중이다.<br>♬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까까를 주면은 코로 받지요<br>저기 앉은 고양이 뒤태는 영락없는 코끼리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꼬리가 아니고 코를 흔들흔들. 나도 모르게 동요 한 구절을 마음속으로 흥얼거린다. 고양이를 보니 이번엔 자세를 바꿔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내 노랫소리가 들렸나? 고양이, 화장실 갔다 와라. 이따 아침에 괜히 뛰어다니면서 나 깨우지 말고. 속으로 생각한 말이었는데, 알아들었는지 툭 뛰어내리더니 화장실로 향한다. 착한 녀석. 귀신 같은 녀석.<br>자세를 돌려 옆으로 눕자, 소파의 등받이가 바로 코앞에 있다. 밝은 베이지색. 내가 밤마다 누워 자는 자리는 어두운 베이지색으로 변하지 않을까? 그러면 안 되는데. 침이라도 흘리면 얼룩 생기지 않을까? 그러면 안 되는데. 내 발이 닿는 부분은 까매지지 않을까? 생각해 보니, 고양이가 캣타워에서 소파로 뛰어내리면서 딛는 부분은 벌써 거뭇거뭇해졌구나. 참, 걱정도 팔자다. 이렇게 걱정을 머리에 이고 몸에 덮고 등에 지고 살아서 살이 안 찌는 건지도 몰라. 고양이가 야옹 하고 크게 한 번 부른다. 어이구, 쉬야 했어. 자알 했어. 내가 깨어있는데 자기가 화장실 다녀온 걸 알은체해주지 않으면 꼭 저렇게 한 번씩 광고를 한다. 낮에는 고양이와 아저씨의 한바탕 뜀박질이 있었겠지만, 새벽엔 이 정도로 마무리.<br>다시 똑바로 누워 자세를 잡는데 고양이가 캣타워 상단 아크릴 해먹에 들어가 잠을 청한다. 한 다리는 모서리에 걸쳐서 바깥쪽으로 뺀다. 건방진 녀석. 내가 잘못 교육을 했어. 어디 가서 욕먹지 말아야 하는데. 또 무슨 걱정거리가 있던가? 멈칫거리던 잠이 고양이를 피해 다시 달려든다.<br>걱정은 내일 아침에 하지 뭐.]]></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곤충의 세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32288</link><pubDate>Wed, 23 Sep 2026 09: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32288</guid><description><![CDATA[가끔 아무것도 하기 싫어 마루에 벌렁 드러누워 창밖을 보면 곤충들이 근처에 머물다 갈 때가 있다. 매년 찾아오는 것도 있는가 하면, 올해 처음 그 모습을 드러낸 존재도 있다. 앞으로 지나가거나 배회하는 존재들을 제외하고 꼽아보자면, 일단 나방류. AI에 따르면 흰띠명나방이다. 엄지손톱만 한 크기에 짙은 밤색. 나방은 야행성 아닌가 싶지만 이 종은 낮에도 잘 돌아다닌단다. 워낙 자주 나타나다 보니, 이젠 고양이조차도 관심 밖이다. 간혹 창에 붙어 조금씩 움직일 때만 시선을 주지 바로 눈앞에 있어도 그 흔한 냥펀치조차 날리지 않는다.<br>두 번째 손님은 노린재. AI에게 물어보니 소나무허리노린재라고 한다. 색깔은 낙엽 색깔. 소나무의 즙을 빨아먹고 산다는데 근처 산에서 날아온 듯하다. 한동안은 고양이 채터링의 주 대상이었으나 먹는 거 빼곤 관심의 유효기간이 며칠에 불과한 고양이 덕에 요즘은 편안히 방충망에 붙어 쉬었다 간다. 나 역시 길바닥 낙엽 보듯 무시하고 있다.<br>세 번째 손님은 말벌. 화려한 색에 한 체급 하는 데다 절대 가만있지 않은 움직임으로 고양이의 열렬한 관심 대상이다. 다만 뚫어지게 쳐다볼 뿐 채터링을 하거나 섣불리 냥펀치를 날리지 않는다. 나 역시 뚫어지게 쳐다볼 뿐이다. 간혹 윗집 에어컨 실외기 안쪽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움직임을 보여서 잔뜩 긴장 중이다. 벌집 같은 거 만들 생각 마라. 119에 신고할 거다.<br>마지막 열외로 딱 한 번 등장해서 기겁하게 했던 사마귀. 방충망 위쪽에 초록색 무언가가 강렬한 날카로움을 뽐내고 있길래 다가갔더니 몸길이가 15cm도 넘을 거 같은 사마귀 한 마리였다. 얼마 전 TV에서 절에 사는 새끼 고양이가 자기 얼굴 길이의 사마귀를 우걱우걱 씹어 먹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우리 집 고양이는 캣타워에서 자는 중이다. 저 녀석은 물리적, 물질적으론 도무지 도움이 안 된다. 막대기를 하나 들고 와 톡톡 건드렸더니 앞발을 방충망 안으로 쑥 집어넣는다. 아니 아니, 그건 반칙이지. 손님, 무기를 집안에 들이밀면 안 되죠! 나, 가서 고양이 집어 들고 온다! 그럼, 손님 잡아먹을지도 몰라...요! 비현실적으로 작은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긴 다리로 성큼성큼 한쪽으로 이동한다. 어우 야, 그 덩치, 그 모양새로 그렇게 움직이면 무섭잖아요! 방충망 안쪽에서 다시 막대기로 툭툭 건드린다. 빨리 떨어져라. 막대기와 앞다리의 몇 번에 걸친 티키타카 후 사마귀는 자리를 뜬다. 날개를 퍼덕거리며 바람을 타고 건물 옆으로 빨려 들듯 사라지는 사마귀를 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 난리를 쳤건만 고양이는 캣타워에서 눈도 뜨지 않고 잔다. 이렇게 둔한 녀석이 아닌데. 의심 가득한 눈으로 뚫어지게 쳐다보지만, 고양이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 자슥 이거...<br>꼬리말) 한동안 창문을 찾아오는 곤충들이 없었는데 요며칠 간혹 한 마리씩 때늦은 방문을 하곤 한다. 질척거리는 여름에 곤충도 헷갈려하는 중.<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질척거리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30365</link><pubDate>Tue, 22 Sep 2026 09: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30365</guid><description><![CDATA[몸을 씻는다. 따뜻한 물이 몸을 따라 흘러내리는 게 반갑고 편안하다. 얼마 전만 해도 시원한 기운이 몸을 감싸지 않으면 씻는 거 같지 않았는데. 물의 온기에 몸을 맡기다 엄지손톱에서 전해지는 쓰라림에 낯을 살짝 찌푸린다. 낮에 일을 하면서 무언가를 뜯을 일이 있었는데 손가락이 미끄러지면서 왼손 검지가 오른손 엄지 끝을 훑고 지나갔다. 그러면서 엄지손톱 한 귀퉁이가 살짝 들렸던 모양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잊었는데 물이 들어가면서 통증을 되살렸다. 되살린 건 통증뿐만이 아니다. 그때의 서두름과 심지어 이러다가 다칠 텐데 하는 조바심까지. 알면서 다쳤으니 내가 멍청한 거지. 오른손을 흘러나오는 물 밖으로 빼고 다시 평온함을 찾아본다. 하지만. 어색하게 든 오른손은 따뜻한 물의 온기 밖에서 과거의 나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바보.<br>샤워를 마치고 나와 바닥에 앉는다. 따뜻한 물을 너무 오랫동안 맞았나? 덥다 정도의 느낌은 아닌데 몸에서 살짝 열기가 느껴진다. 선선한 공기가 내 피부를 공략해 보지만 역부족이다. 이런, 샤워를 하면서 여름을 뒤집어쓰고 나오다니. 정말 쪼잔하게 이런 식으로 질척거리기냐? 쿨하게 떠나라. 나중에 가을한테 엉덩이 세게 걷어차이고 후회하지 말고. 하긴, 아쉬울 만도 하겠다. 작년은 9월까지 더워서 에어컨을 얼마간 사용했던 걸로 기억한다. 올해는 더위가 빨리 끝나긴 했다. 왜 서둘렀을까? 아니지. 내가 지금 남의 사정까지 챙길 때가 아니다. 이번 여름에 서두르고 조급해서 낭패를 본 건 나였으니까. 아우 씨, 주식. 마룻바닥의 시원함이 엉덩이부터 조금씩 열을 식히다가 주식에서 촉발된 열기에 밀려난다. 후끈. 오른쪽 엄지손톱의 얼얼함이 계속 신경 쓰인다. 난 실수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기는 하는 걸까? 이 나이 먹고도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나? 바보. 빨리 가라, 여름아. 추석 오기 전에.]]></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고양이 일기</category><title>고양이 일기_17</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28657</link><pubDate>Mon, 21 Sep 2026 09: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28657</guid><description><![CDATA[***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물그릇에 담가 놓을 때가 종종 있다. 어렸을 땐 꽤 자주 그랬고, 요즘은 어쩌다 한 번씩. 이유를 추측해 보자면, 내 관심을 끌려고. 내가 집에 없을 때, 내가 잠들어 있을 때 저런 행동을 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물그릇 주변에 끈 같은 게 있으면 그걸 물어서 물그릇에 넣거나, 놀다가도 물그릇 주변을 지나갈 때면 간혹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걸 저기다 처넣을까? 고양이 마음을 어떻게 알겠나? ***<br>(아깽이 시절 그냥 커다란 유리 물그릇일 때)<br>오오, 빛이 반사되어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저 삐까번쩍함! 우와, 멋지다! 흔들흔들, 번쩍번쩍. 혹시 저것이 신 앞에 떠 놓고 소원을 빌 때 썼다던 정화수(정안수)라는 것인가? 잠깐, 그렇다면! (두리번, 후다닥) 이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너구리 꼬리 장난감인데... 이거 줄 테니까 신님아, 내 소원 좀 들어주라. 야웅, 야웅... 야웅, 야웅...<br>“야, 너 그걸 왜 또 담그는 건데! 물 방금 갈았는데 또 씻어야 하잖아!”<br>아 씨, 어디 있다 귀신같이 나타나가지고.<br>(자동 급수기로 바꾼 후)<br>물이, 물이 졸졸졸 흘러나오는데?! 아니, 어디서? 주변에 강이나 시냇물도 없는데? 오, 이것은 신이 축복한 물줄기인가? 그렇다면! (두리번, 후다닥) 이거, 내가 아직도 제일 좋아하는 너구리 꼬리 장난감인데... 너무 오래 가지고 놀아서 반 토막뿐이지만, 이거 줄 테니까 신님아, 내 소원 꼭 들어주라. 야웅, 야웅... 야웅, 야웅...<br>(현관문 여는 소리, 일 끝내고 돌아온 아저씨 등장) “야 인마, 또야! 아니, 왜 그러는 건데? 물통 또 씻어야 하잖아! 니가 닦아, 이눔의 자슥아!”<br>아이, 참, 어떻게 알고 들어왔대? 귀신이네, 귀신.<br>(그날 밤)<br>아저씨는 침대에 누웠지? OK. 그렇다면... (슬금슬금) 너구리 꼬리를 이렇게 놓고. 신님아, 이번에는 동작 좀 빨리빨리 하자, 알겠지?<br>야웅, 야웅... (나랑 놀아주지도 않고 먹을 것도 팍팍 안 주는 저 아저씨...) 야웅, 야웅... (살 좀 찌고 넉넉해서 마음이 여유로운 새 아저씨로 바꿔 주세요...) 응? (고개만 빼꼼 내밀고 쳐다보는 아저씨와 눈 마주침) 으악!<br>“이 개눔의...”<br>(후다닥. 소파 밑으로 피신) 진짜... 귀신인가?]]></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2026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2026 제17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25660</link><pubDate>Sat, 19 Sep 2026 15: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2566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802638985&TPaperId=1752566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018/61/coveroff/e80263898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802638985&TPaperId=1752566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2026 제17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a><br/>김채원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04월<br/></td></tr></table><br/>&lt;별 세 개가 떨어지다&gt; /김채원<br>사는 게 명확했으면 싶다. 이거는 이거고 저거는 저거고. 이리 가면 이게 나오고 저리 가면 저게 나오고. 이름표나 도로 표지판처럼. 하지만 그런 삶은 많지 않다. 관계를 맺으면 맺을수록 삶은 복잡해지고 돌변한다. 그렇다고 혼자 울타리를 둘러치고 살 수는 없다. 그러면 그 사람은 안으로, 안으로 파고들다 끊임없이 상처를 헤집을 거고, 자신을 또는 타인을 용서하지 못할 테니까.<br>그러니 우리 삶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게 가장 먼저여야 할지도 모른다. 다시 시작할 수도 있고, 다시 시작해서 기쁠 수도, 슬플 수도 있고, 그냥 보다 보면 알게 될 수도 있고, 이래서도 괜찮고 저래서도 괜찮을 수 있는. 알고는 있지만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원칙 아래에 모든 것은 우연과 찰나의 연속일 수도 있음을 수긍해야 한다. 그러면 버겁도록 환하고 무거운 개별적인 삶에서 우린 조금이나마 힘을 뺄 수 있을 것이다. 하나하나 다 소중하지만, 모두가 별이 되어 어딘가 고정된 채 환히 빛나야 할 이유 또한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br>&lt;추도&gt; /길란<br>가난이 맹목적으로 이 땅을 휩쓸던 때가 있었다. 어디에나 가난이 널려 있어서 그저 처절함을 즐기면 그만이었던 시기. 사람들은 자기 자식들에게만큼은 이 가난을 대물림할 수 없다고 여겼다. 누군가는 밤을 새우고 누군가는 저 멀리 타국까지 가서 자신의 시간을 불태웠다. 그렇게 해서 가난은 점차 설 자리가 좁아졌다. 가난은 시대가 변했음을 깨달았다. 휘적휘적 다니며 길거리 돌멩이처럼 발에 차이는 처절함은 더 이상 일상적이지 않았다. 가난은 조용히 기다리며 살폈다. 풍요 속 빈곤의 시대를 지나며 가난은 드디어 기회를 잡았다. 허영과 욕심을 두 축으로 판을 다시 짰다. 진짜 가난한 자는 생존을 위해, 가난하지 않은 자는 투자란 이름으로, 부자인 자는 차별화를 위해 가난을 끌어들였다. 풍요 속 상대적 빈곤의 시대. 가난은 다시 세상을 휩쓴다.<br>2026년.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가 열리려고 한다. 그럼에도 모두가 가난한 우린 많은 것을 잃었고, 더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며, 가장 중요한 것을 언제든 놓아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 가난은 진심을 담아 우리에게 댓글을 남기는 중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꼭 죽어야만 죽은 건 아니다.<br>&lt;나는 야구를 사랑해&gt; /남의현<br>필드에 가만있는 사람이 많다. 필드에서 나가는 사람이 많다. 공을 노려보고 쫓다 한 사람이 잡는다. 공만 보고 뛰다 부딪혀 다칠 수도 있다. 몰랐다.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야구가 어떤 삶을 대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작가의 말까지 다 읽고 그의 삶이 반영됐을까를 생각했다. 그러다 고개를 흔들었다. 아이구야, 현실이든 허구든 자기 삶을 함께하기가 미안한 삶으로 규정하기까지 얼마나 지난한 과정을 거쳤을지 상상하기도 싫구나.<br>이야기에 묻어있던 많은 감정들을 돌이켜 본다. 희망? 오기? 집념? 그 어떤 것도 핵심은 아닌 거 같다. 무엇이라도 붙잡겠다고 하는 것이라면 셋 모두 가능하겠지만, 내가 느낀 건 어떤 절망이었다. 절망 앞에 ‘어떤’이란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온전한 절망이 삶의 동력이 될 수 있나 하는 의문 때문에. 동력도 필요 없고, 그저 관성이었던 걸까? 등장인물인 ‘나’가 자신을 잘 돌봤으면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삶은 관성에 따라 흐를 뿐이다.<br>&lt;히데오&gt; /서장원<br>아파봤던 사람이 타인의 상처를 더 이해하기 쉽다. 히데오는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보냈다. 당시 히데오는 어머니가 한국인이란 이유로 또래 아이들에게 맞아 코뼈가 부러졌고, 그 일로 인해 그의 일본 생활은 끝을 맺는다. 대한민국에 와서 한국 이름으로 성장하지만, 그 또한 쉽지 않았을 것이다. 대학에 입학하고 연극 오디션에 지원한 그가 지원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자신도 사람을 때려 주고 싶었다고.<br>분하고 억울했을 거다. 어디에도 완벽히 속하지 못하고 차별받아야 한다는 게. 현실이 아닌 연극에서나마 그 마음을 해소하고 싶었던 거겠지.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그는 사람들에게 조금씩 받아들여질 거고, 소설의 이야기는 아마도 여기까지인 듯. 그런데 인정받지 못해서 그 분하고 억울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씩 쌓인다면? 그래서 상처를 잘 아는 자들이 모여 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오히려 타인의 상처를 들쑤신다면? 우린 앞으로 수많은 히데오, 수많은 차별과 맞닥뜨릴 거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끔찍한 광경을 목격할 수도 있다.<br>&lt;귀신이 없는 집&gt; /위수정<br>옛날 교토에 코요라는 귀족 집안 여성이 있었다. 총애를 받았으나 모함으로 추방되었고, 유배된 시골 마을에서 능력을 발휘해 그 마을을 번성케 했다. 사람들은 코요를 귀녀라 부르기 시작했다. 정부는 코요를 위험한 인물로 판단하고 그 마을을 토벌하기로 한다. 코요는 서른셋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고, 그 마을은 그 후 ‘귀신이 없는 마을’을 뜻하는 기나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br>우리는 한때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며 모든 것을 바칠 듯 절실히 매달릴 때가 있다.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든 삶이 안정되면, 그 간절함과 절실함은 절대 예전 같을 수가 없다. 자연스럽게 관심 밖으로 밀려날 수도 있겠지만, 종종... 어쩌면 상당수가 그것을 변질시킨 채 간직한다. 날것 그대로의 감정은 사라지고, 내 삶에 유용하게, 추하지 않고 번듯하게 가꾸고 누리려 한다. 그러다 보면, 공감대는 사라져 오직 자신만의 무언가가 되고, 덩그러니 혼자 남은 자신을 발견한다. 그나마 스스로 발견하면 다행이다. 깨닫지도 못하고 남은 생을 살아가는 게 대부분일 테니.<br>작가에 따르면, 첫 번째 단락에 적은 일화를 기반으로 단편의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귀신이 없는 마을. 코요가 없는 마을. 알맹이가 없는 마을. 우린 이런 일들을 많이 접한다. 기득권이 된 정치인들의 이념, 기득권을 쥔 중년 남성들이 외치는 여성 평등, 넉넉한 자들이 외치는 사회주의. 옳고 그름의 문제를 넘어 진정성과 정당성까지 복잡하게 얽혀 꼬여버린 갈등들.<br>“여기엔 아무도 없네요. 사람도. 귀신도.”- &lt;귀신이 없는 집&gt; 중에서<br>난 이 이야기를 다 읽고 나서 한참 동안 제목을 &lt;귀신‘도’ 없는 집&gt;이라 착각하고 있었다.<br><br>&lt;일일야성/一日野性 &gt; /이미상<br>내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할 때가 있다. 단순히 비교하거나 아니면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방식으로. 경수는 흐릿해지는 자신의 남성성을 보상받기 위해 아내인 운주의 격을 떨어뜨린다. 같잖은 남편의 변화가 어이없지만, 한편으론 권태기와 함께 가라앉는 자신과 다르게 변화를 꾀하는 경수가 여러모로 달리 보이기도 한다. 운주는 중고등학교 때 놀던 시절을 함께 한 선숙에게 연락하고 추억에 빠져들어 분위기를 바꿔보려 한다.<br>이후 운주가 맞닥뜨린 건 자신이나 선숙도 결국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서로를 끌어들였었다는 사실. 그나마 선숙은 현재 자기 직업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하는 듯 보이지만 운주는 그조차도 아니다. 게다가 권력관계가 명확했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행동들은 운주를 계속 현실로 끄집어낸다. 돈과 폭력과 계급이 만들어내는 층위와 그것을 넘나드는 선망은 사람들로 하여금 때론 자존감을, 때론 모멸감을 선사하기도 하는 법이다. 경수는 남성성을 상실한 대신 아내를 낮춤으로써 자신을 높였고, 선숙은 육체노동으로 건강을 잃었지만 윤주를 통해 최고 의사에게 디스크 수술을 받을 기회라도 넓혔다. 상대방을 이용해 자존감을 얻는 이 게임에서 운주는 무엇을 건졌을까? 깨달음? 삶에서 얻는 깨달음은 보통 씁쓸하던데.<br>“산세가 깊어 캠핑 스폿으로 유명한 모 지역은 군의 슬로건까지 바꾸었다. J군에서 보내는 일일야성. 문명이 지워낸 나를 다시 찾는 하루.”- &lt;일일야성&gt; 중<br><br>&lt;적들이 산에 오를 때&gt; /함윤이<br>"즐거울 테고, 아주 아름다울 거예요. ... 그 말에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었다. 어머니는 노아가 이름을 바꾸고 싶다고 말할 때마다 불현듯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노아의 양손을 쓰다듬곤 했다. 그러면서 몇 번이나 한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네 이름은 더 낫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모두를 인도하는 이름인걸. 그 새로운 세상에선 모두가 배부르고, 즐겁고, 따뜻할 테고..."- &lt;적들이 산에 오를 때&gt; 중에서<br>내가 지금껏 살아온 세상에선 '믿음'이란 단어는 종교와 가장 밀착되어 있었다. 물론 어디에나 쓰일 수 있는 단어지만, 단짝을 찾으라고 한다면 믿음과 종교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믿음의 단짝이 정치로 바뀐 거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게 맞다! 옳소! 그리고 내달린다. 넌 틀렸다! 옳소! 역시 내달린다. 확신에 찬 소리가 양쪽에서 울려 퍼지고, 거칠게 충돌하며 울리는 파열음이 사방으로 흩어진다.<br>이 소란 속에서 정말 모두가 즐겁고 배부를 수 있는 세상이 다가올까? 확신은 나와 우리를 견고하게 둘러싸고, 그 외부는 불신과 혐오가 넘친다. 믿음과 손을 잡은 정치는 아이러니하게도 불신과 의심을 휘두르며 사람들을 포섭한다. 내게로 오라. 저들을 물리쳐 우리가 즐겁고 배부른 세상을 만들어보자. 적들을 만들어내고 믿음을 강탈한 세상. 도대체 저 문장 어느 구석에서 '좋은' 세상이 나올 수 있을지 궁금하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018/61/cover150/e80263898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0186141</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기억은 도시의 지도이고, 잊음은 그 지도의 여백이다, AI</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23298</link><pubDate>Fri, 18 Sep 2026 08: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23298</guid><description><![CDATA[친구랑 저녁을 먹고 느긋한 마음으로 거리를 걷는다. 다른 때 같았으면 이 친구의 일 끝나는 시각이 9시 전후라 늦은 식사에 두어 시간 보낸 후 후딱 헤어졌겠지만, 이날은 다행히 우리 모두 쉬는 날이었다. 이 동네는 내가 대여섯 살부터 20년을 넘게 살았던 곳이다. 동네를 떠난 후 다시 20년이 넘게 지났지만 여전히 익숙한 무엇이 존재하는 장소. 우린 모처럼 함께 다녔던 초등학교를 찾아간다. 그땐 ‘국민학교’였고, 특이하게도 대학 캠퍼스 한쪽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은 아예 다른 곳으로 옮겼고, 대학의 다른 건물로 사용 중이다. 학교 건물을 지나 당시 옆문으로 불렀던 조그마한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친구와 보조를 맞추며 걷던 내 발걸음이 조금씩 느려지며 그 옛날 어느 시절의 풍경 속으로 뒷걸음질 친다.<br>80년대 중반. 아마 4학년쯤. 학교에서 대절한 버스에서 내린 남자아이는 이제 집으로 가면 된다는 홀가분한 마음에 젖어있었다. 전체 학교 학급 임원들을 모아 어딘가에 견학을 갔다 온 후였다. 그런데 선생님과 인사하고 일행이 모두 흩어지고 나서도 남자아이는 자리를 뜨지 못했다. 같은 반 여자아이가 자기를 집에 데려다 달라고 해서다. 부탁을 거절할 만큼 똑 부러지지 못했던 남자아이는 그러자고 하며 발길을 떼었다. 대학 건물 뒤쪽의 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고, 옆문을 통과했다. 이성에 일찍 눈뜬 여자아이와 이성을 감도 잡지 못했던 남자아이. 어른들이 그때 그 광경을 봤다면 피식 웃었겠지만, 당사자 둘은 나름 심각했었을 시간이 흘렀다. 기대감에서 초조함으로, 당황함에서 더 큰 당황함으로. 같은 길을 걷는 발걸음에 다른 감정이 스며들었다. 남자아이에겐 아주 긴 시간이었다. 여자아이가 대문 뒤로 사라지자, 남자아이는 의문을 가득 품고 무작정 집으로 뛰기 시작했다. ‘아니, 쟤가 갑자기 왜 저런데?’<br>내가 이곳에서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친구가 뒤를 돌아보며 묻는다. 왜, 다리 아파? 아니, 여기 많이 변했네. 그러게, 예전엔 단독주택이 많았는데 지금은 다 연립으로 바뀌었어. 그랬다. 외형이 변했다. 심지어 길도 변했다.<br>5학년. 남자아이는 여전히 이성에 둔감했지만 한 학년 많은 어떤 선배 누나를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알았다. 그땐 몰랐다. 그 감정의 정체를 깨달은 건 한참이 지나서였으니까. 작년 짐 정리를 하면서 초등학교 앨범을 뒤적였다. 무심코 기억을 더듬던 나는 선배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처음엔 알아보지도 못했다. 짝사랑이란 감정에 얽힌 추억이 현실을 지나치게 미화시켜 놓은 탓이다. 세상에나. 건물도, 길도 변해버린 장소에서 기억은 잊지 않고 추억을 더듬는다. 하지만 추억이란 건 보정 작업을 거친 기억과 같은 것. 그 너머를 살피지 않는다면, 시간의 흐름에 따른 기억의 여백을 주의하지 않는다면 과거는 내가 만들어낸 가상 현실일지도 모른다. 친구가 말한다.<br>이 시간에 이렇게 걸어보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br>현실은 확고한 것. 우리 발걸음을 통해 지금 이 길에 어떤 감정이 스며들지 알 수 없으나, 네가 있어서, 내가 있어서, 그렇게 우리가 여전히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br>꼬리말) 이번에 AI가 던진 문장은, ‘기억은 도시의 지도이고, 잊음은 그 지도의 여백이다.’ 지난번 썼던 &lt;도시는 걷는 속도로만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gt;의 연장선에서 나온 문장인 듯하다. 한동안은 이런 식으로 꼬리를 물며 과거를 헤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단 생각이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서비스업</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21198</link><pubDate>Thu, 17 Sep 2026 05: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21198</guid><description><![CDATA[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서비스업의 영역은 밑바닥에 자리 잡았다.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이고 굽신거리는 일. ‘손님은 왕이다’란 문구를 널리 퍼뜨린 업종. 90년대 어느 시점, 친구와 농담 삼아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고객으로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버르장머리를 이 꼴로 만들어 놓은 건 다 백화점 때문이라고. 지금이야 그때와 다르지만, 무조건 손님이 옳다는 서비스 마인드가 최우선이었을 때가 있었다. 그때와 다른 건 이뿐만이 아니다. 서비스업의 영역은 이제 업종을 가리지 않고 위아래 총망라해서 펼쳐진 상태다. 변리사, 변호사, 세무사 등 법과 관련된 직업부터 의사에 이르기까지. 경쟁과 생존을 위해 많은 직업이 서비스업을 자신에게 이식시켜야만 했다.<br>시대가 바뀌고 흐름이 바뀌면 그에 맞춰 변화를 가져가는 게 맞다. 그럼 정치는 어떨까? 존재하는 많은 나라가 엄청난 구조적 모순을 떠안고 있다. 그 모순을 해결하려면 결단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누구도 오래 기다릴 생각이 없다. 광범위하고 근원적인 정책은 모호하고 뜬구름 잡는데다 제대로 될 거라는 확신도 없다. 게다가 정책의 주체가 하필이면 그 모순에 기대 꿀을 빨거나, 모순을 외면하던 세대다. 이러니 어떤 정치인, 어떤 정당이 정권을 잡든 일관성은 말할 것도 없고 추진력도 얻기 힘들다. 효과가 빠르고 명확한 정책은 포퓰리즘으로 인식되거나, 아니면 특정 계층, 부류, 직업군에만 혜택을 준다. 이런 상황이라면, 아무래도 이념이나 신념만으로 정치를 하는 시대는 아주 완전히 끝장이 난 거 같다. 트럼프가 괜히 두 번이나 대통령이 된 게 아니었다. 정치인도 이제 서비스업 종사자다. 소비자의 취향과 변화를 빨리 잡아내고 원하는 바를 즉각 제공하면서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어야 한다. 그렇게 소비자의 지갑을 열 듯 유권자의 마음을 가져가야 한다.<br>그런데 이 글은 현실일까? 조롱일까? 원래는 ‘정치가 이렇게 변하고 있는 듯하다’라는 관점에서 출발했는데 쓰다 보니 모르겠다.<br>“안 할 거야? 어? 안 할 거야? 어? 안 할 거야? 어? 어? 어? 어? 어버버버. 어버버버.”<br>꼬리말1) 최근 가장 많이 본 쇼츠는 과거 코미디빅리그에 나왔던 조수봉 캐릭터. 글의 마지막은 버퍼링 걸린 조수봉이다. 쇼츠를 보며 한참을 웃었는데 이 글을 이렇게라도 마무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br>꼬리말2) 이 글은 한참을 묵혔다. 쓰다 보니 조롱처럼 느껴졌고,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조롱하는가란 의문을 떠올렸지만 그 대상을 특정할 수 없었다. 정치인, 유권자, 시대, 세대. 어쩌면 싸잡아서 욕하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는 건 그저 배설의 욕구를 해소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걸 잘 알기에. 멈춰 서서. 더 살피고. 더 생각하기. 그러니까 지금은 마지막 인용부호 안의 문장들과 두 개의 꼬리말만 추가한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남 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19391</link><pubDate>Wed, 16 Sep 2026 09: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19391</guid><description><![CDATA[토요일은 출근하려면 일찍 일어나야 한다. 새벽 5시. 여느 때처럼 부스스 일어나서 고양이 화장실 치우고, 고양이 빗질한 후 고양이 간식을 준다. 바깥이 짙은 어둠은 아니지만 이젠 제법 어두워서 불을 켠다. 얼마 전만 해도 불을 켤 필요가 없었는데. 고양이 관련 업무를 마치고 커피에 빵으로 아침을 해결하고서 세수. 아, 일하러 가기 싫다. 일주일 내내 일하다가 주 5일 일하고, 이제 이틀만 일하는데 이것도 하기 싫어진다. 조만간 놀겠구나. 곧 일어나기도 싫어서 무덤 파고 들어갈 생각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일하기도 귀찮은 판에 당장 집 청소를 시작해야 한다. 돌돌이로 마루를 밀다가 욱해서 고개를 번쩍 든다. 고양이 녀석 털만 아니었어도 내가 이렇게 매일 청소할 필요 없는데! 지금 고양이는 캣타워 아크릴 해먹에 들어가 자는 둥 마는 둥 나를 살피고 있다. 한 다리 바깥에 척 걸치고서. 건방진 저 녀석이 털 청소만 해줘도 내가 이렇게 매일 청소할 필요 없는데! 에잇! 불을 탁 끄고 보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득 담아 획 돌아선다.<br>응? 처음엔 식탁 위 불이 켜져 있는 줄 알았다. 밝은 베이지 계열 벽지가 주황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주변에 무드등이나 백열전구가 은은한 빛을 뿜어내는 분위기다. 뒤를 돌아봤다. 홀린 듯 걸어 베란다 창 앞에 서서 한참을 쳐다봤다. 이런 강렬한 이미지는 처음 보는 거 같은데. 핸드폰을 가지고 오다가 시야에 들어온 건방진 고양이. 야야, 봐라 봐, 태양도 열 받아서 불을 뿜잖아. 하는 일도 없으면서 허구한 날 얼쩡대다가 비만 뿌린다고 구름한테 짜증이 머리끝까지 난 모양이네. 활활 타겠다, 타겠어. 고양이는 ‘그래, 짖어라, 짖어’ 뭐, 그런 느낌. 내 경우는 뜬금없이, 수시로 욕받이로 등장하는 강아지 탓에 고양이랑 함께 개도 입양했던가, 하는 그런 느낌. 내가 또 진 거 같은 느낌에 얼른 옷 갈아입고 빠이빠이 손 흔들고 집을 나선다.<br><br><br>아파트 공동 현관문을 나서는데 뜻밖의 환대에 놀라 얼른 뒷걸음질 친다. 비가 온다고? 비가 내린다. 땅바닥이 빗방울의 파편으로 점점 색이 진해지고 있었다. 불구덩이 같던 사진을 찍은 게 10분이나 됐을까 싶은데. 아니, 이 양반이 아까는 얼굴을 그렇게 붉히며 야단법석이더니 이게 뭐 하는 짓이래? 무슨 가스레인지 불이야? 스위치 돌리면 바로 꺼지게? 속으로 꿍얼대며 우산을 꺼내다 조금 전 열심히 고양이에게 손을 흔들고 나온 내 모습이 떠오른다. 흠. 까만색 우산이 머리 위로 펼쳐진다. 우산을 다른 색깔로 바꾸든지 해야겠어. 지체된 발걸음을 서둘러 본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916/pimg_639251474483317855.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19391</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기싸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17313</link><pubDate>Tue, 15 Sep 2026 09: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17313</guid><description><![CDATA[오, 덥다. 습도는 어제보다 덜하지만 뜨거움은 오늘이 더 심하다. 요즘 산길은 강아지풀 기세가 등등하다. 부숭부숭한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길 양옆에 도열한 채 들썩들썩한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때마침 힙합이라도 흘러나오면 건들건들 리듬을 타는 힙합 소년들처럼 보인다. 귀엽구나. 그래, 강아지풀은 귀엽기라도 하지. 이름 모를 수많은 수풀은 여름을 등에 업고 내 어깨높이까지 자라서 맞짱을 뜨려 한다. 어이, 아저씨, 어딜 지나가려고? 이봐, 아저씨, 여기 지나가려거든 날 밟고 가야 할 걸? 길바닥에 드러눕다시피 한 풀을 피해 다리를 높이 드는데 메뚜깃과 곤충 한 마리가 내 손을 징검다리 삼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건너간다. 실례. 엉겁결에 발판 신세가 된 억울함에 버럭 화를 내본다. 이 자슥이! 몇 발짝 떼기도 전에 이번엔 갑자기 등장한 참새들이 내 앞을 지나간다. 날아간 것도 아니고 내 앞길을 막고 총총 뛰어서. 마지막 한 마리가 나를 쳐다본 거 같다. 실례. 느닷없는 등장에 소스라쳐 놀랐다가 욱해서 외친다. 아니, 이것들이!<br>집에서 고양이한테 무시당하니 이젠 산에 와서도 온갖 무시를 당한다며, 근거 없는 불만을 가득 품고 산에 오른다. 바위 무더기들을 낑낑거리며 오르다 잠시 쉬는데 말벌 한 마리가 주위를 빙빙 돈다. 피하는 게 상책이다. 조금 더 위에 올라가서 쉬자. 하지만 벌이 쫓아왔다. 아, 좀 쉬자고! 에잇, 더러워서. 간다, 가! 천년만년 여기서 썩을 때까지 잘 살아라! 무병장수하란 덕담을 퍼붓고 악에 받쳐 꼭대기에 도달하자, 성벽 구멍에 앉아서 이쪽을 살피던 모지리가 툭 튀어나와 내 쪽으로 온다. 모지리, 네가 웬일이냐? 나를 단번에 알아보고. 헤벌쭉. 불만 같은 거, 악 같은 거 금방 잊는다. 남자는 나이 들면 애가 된다던데. 갈수록 단순해지는 거 같다는 생각을 얼른 성벽 너머로 날려버린다.<br>닭가슴살과 간식 먹고 배부른 고양이와 단순명료해진 아저씨가 산 정상에 함께 있다. 모지리는 식곤증으로 나른해져 성벽 구멍에서 잘 채비하고, 아저씨는 그 구멍들을 통해 불어 들어오는 바람으로 땀을 식힌다. 몸을 돌려가며 땀을 식히는데 바싹 시든 나뭇잎 하나가 공중에서 바람개비처럼 돌며 부유하는 게 보인다. 휙휙휙. 완벽한 회전이다. 한들한들. 흠잡을 데 없는 가벼움이다. 사뿐. 이루 말할 수 없이 부드러운 착지다. 10점! 무언가 이룬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게 여유였던가? 착잡함이 한여름 태풍처럼 짧고 강하게 할퀴고 지나간다. 모지리와 눈인사를 나누고 발걸음을 돌린다.<br>하산하는 길. 부쩍 늘어난 잠자리 중 한 마리가 길 앞을 막아선다. 왜? 왜 쳐다보는데? 한참을 눈싸움 벌이다 잠자리가 날아간다. 나도 모르게 곤충과 눈싸움하고 나서 순간 뻘쭘해져 한 소리 한다. 저 자슥이! 눈알 많다고 자랑하냐! 좋겠다, 눈깔 많아서! 마음의 여유는 무언가 이루는 것과 상관없는 모양이다.<br>꼬리말) 8월 26일에 썼던 글. 지금은 여름에서 가을로 건너가는 중. 웃자란 풀들도 다 잘라내고 가지치기한 탓에 건들거리던 강아지풀은 어느 순간 다 사라졌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고양이 일기</category><title>고양이 일기_16</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15285</link><pubDate>Mon, 14 Sep 2026 10: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15285</guid><description><![CDATA[(고양이 채터링)새 : 오늘은 전할 말이 뭐냐, 짹?<br>내가 비밀 하나 얘기해 줄까?<br>새 : 무슨 비밀?<br>나, 욱하면 헐크로 변한다. 헐크가 뭔 줄은 아냐?<br>새 : 나 안다, 헐크. 녹색 덩치. 근데 어쩌다 그렇게 변했냐?<br>병원 갔는데 선생님이 자꾸 여기저기 찔러대서 순간 욱하고 정신줄 놨다.<br>새 : ... 화가 난 게 아니고 무서워서 그런 거 같은데.<br>에헤, 무섭다니! 내 사전에 무서움이란 단어는 없다! 내가 선생님을 뒷발로 뻥 차버리고 그대로 미친 듯이 뛰어다니다가 이동장으로 쏙 들어갔다. 아저씨가 그러더라.<br>새 : 무서웠던 거 같은데.<br>이 새대가...(꿀꺽) 아니... 내 눈을 봐봐! 초록색이잖아! 이 눈 어디에 겁대가리 같은 게 있겠냐?<br>새 : 온몸이 초록색으로 변했냐?<br>털은 그대로였을걸. 어쩜 피부가 변했을지도.<br>새 : 힘이 세졌냐?<br>뒷발로 선생님 물리쳤으니까 조금 세지지 않았을까?<br>새 : 성질만 지랄맞아진 거 아니고?<br>... 너, 많이 컸다. 말도 제법 잘하고.<br>새 : 조두의 전성시대가 왔으니까. 뭐, 말만큼 힘이 세졌다고 해줄게, 짹.<br>말 본 적 있냐? 말이 어떻게 생겼냐?<br>새 : 헐크는 아는데 말은 모르냐?<br>TV에서 본 적이 없거든.<br>새 : 말은 네발 달리고 얼굴이 길고 덩치가 큰 짐승이다. 한동안은 사람을 등에 태우고 달리느라 등골이 휠만큼 힘들었다더라. 가끔 뒷발질하는 데 무척 위력적이다.<br>뒷발질은 왜 하는데?<br>새 : 이불킥 같은 거다. 옛날에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나 부끄러움에 하는 거.<br>옛날에 왜? 무슨 일이 있었는데?<br>새 : 태곳적에 발이 빠른 네발짐승들 몇몇이 모여 겁도 없이 신께 대든 적이 있다. 그때 저주받아서 말은 달려야만 자기 존재를 증명할 수 있게 됐다.<br>오, 또 저주냐? K-pop도 아니고 한때 엄청 유행했구나.<br>새 : 시간 많으면 공부 좀 해라.<br>고양이는 공부 같은 거 안 한다. 근데, 그러면 사람은 무슨 저주를 받았냐?<br>새 : 그건 들어본 적 없다.<br>날아다니면서 공부 좀 해라.<br>(푸드덕)<br>삐졌냐? 그래, 가라, 가!<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좋겠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11567</link><pubDate>Sat, 12 Sep 2026 15: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11567</guid><description><![CDATA[장마가 끝나고 산에 올랐을 때, 그리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산 정상에서 만난 고양이는 모지리 하나뿐이다. 다른 고양이들은 성장하면서 영역 개념이 뚜렷해지자 자리를 옮겼을 가능성이 높다. 애초 다들 어린 고양이 중심이었으니까. 그게 아니라면 여전히 주변에 머무르고 정상에도 나타나지만 내가 못 보는 것일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자연적인 현상일 테다. 하지만 새끼 고양이들과 어미 고양이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그들이 자리 잡은 곳 한쪽으론 경사가 심한 지형이라 주요 등산로에서 접근하지 못 하게 굵은 밧줄을 가로질러 통행을 막아놓았다. 그런데 그 밧줄 일부가 잘려져 있던 날이 있었다. 그날, 모지리는 가장 먼 쪽 성벽 구멍에 앉아 있다가 내가 다가가자, 쏙 피해서 다신 나타나지 않았다. 새끼랑 어미를 한꺼번에 구조했을까? 비가 오는 동안 새끼들의 건강 상태가 안 좋아졌을 수도 있다. 뭐가 됐든 구조되었다면 살아서 좋은 곳에 정착했으면 좋겠다. 구조된 게 아니라면 자연의 품에서 그들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br>작년 9월 말 아니면 10월쯤에 산고양이들을 처음 봤으니까 거의 1년이 되어 간다. 더위가 시작되기 전까지 개체수가 두 배 이상 늘었지만 내가 정을 줬던 건 삼색이와 모지리다. 삼색이의 첫 등장이 너무 강렬했고, 모지리의 어수룩함이 너무 어이없었다. 둘 다 정상에서 쭉 지냈으면 좋았으련만. 그럼, 유난히 희멀건한 저 모지리가 외로워 보이지 않을 텐데. 그래도 어쩌겠나 싶다. 그들이 내린 선택이거나 그들이 맞이해야 할 운명일 테니. 9월이 지나면 난 이 산으로 지금처럼 발걸음을 자주 하지 않을 거다. 처음 마음먹었던 1년이 지나면, 이들을 만나기 전에 그랬듯이 이 산에도 갔다가 저 산에도 갔다가 그러겠지.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은 가 볼 생각이다. 항상 그렇듯 모지리는 ‘내가 아는 사람인가, 아닌가?’ 싶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살피겠지만, 그 어리숙한 매력을 정상에서 계속 건강하게 뿜어냈으면 좋겠다. 그래, 뭐든, 그랬으면 좋겠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도시는 걷는 속도로만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AI</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08783</link><pubDate>Fri, 11 Sep 2026 08: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08783</guid><description><![CDATA[어린 시절, 아마 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을 거다. 어른 걸음으로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그 또래들 몇몇이 어울려 간 적이 있었다. 항상 엄마와 함께 가던 시장을 넘어서 한참 먼 거리까지 분위기에 휩쓸려 몰려갔다. 그리곤 덜컥 겁에 질렸다. 여기가 어디지? 놀이가 끝날 때쯤 정신이 번쩍 든 나는 불안함에 어쩔 줄 몰라 했지만, 일행 중 두 살 많던 사촌 형은 집으로 가자며 아무 일 아니라는 듯 길을 걷기 시작했다. 집들이 연이어 있다가도 느닷없이 커다란 공터가 나오고 빈집처럼 보이는 폐가도 보였다. 이윽고 등장한 낯익은 환경에 아득하게만 느껴졌던 그 먼 길을 안내한 형이 대단해 보였다. 좁디좁은 내 삶의 공간, 그 너머 미지의 불안한 영역. 그게 처음으로 인지한 내가 살던 동네였다.<br>20대, 재수를 거쳐 대학에 들어가면서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언제부터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내 기본 걸음은 무척이나 빠른 편이었다. 길에서 걸을 때면 내 앞에 있는 모든 사람을 제치면서 걸었다. 그래서 누군가 그랬다. 길에서 동계 스포츠 종목인 쇼트트랙하냐고. 길을 걷는 걸 좋아했다. 종로에서 영화를 보고 집까지 걸어오기도 했고, 청계천 세운상가에 들러 게임 CD를 사고 집으로 무작정 걷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내 걸음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종로에선 ‘얼굴에서 밝은 기운이 뻗어 나오네요.’라며 접근하는 일명 ‘도를 아십니까?’ 아, 네. 후다닥. 청계천에선 ‘좋은 거 있는데 한번 볼래요?’라며 밀착하는 불법 비디오, 잡지 판매상들. 아니요, 아니요. 허겁지겁. 도시는 자기 민낯을 그렇게 불쑥 들이밀곤 했다.<br>30대의 길은 내겐 모순이었다. 걷기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시간을 늦추기 위해서 길을 걸었다. 아니, 헤맸다. 10대 후반부터 매캐한 냄새를 풍기던 삶은, 20대에 불구덩이를 선사하더니 30대엔 모든 것을 그을렸다. 집에 가기 싫어서 어떻게든 걷는 시간을 늘렸다. 하지만 그곳에 내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있었기에, 그 존재를 혼자 둘 수 없었기에 걸음은 무척이나 빨랐다. 시간을 늦추고 싶지만 빨리 걸어야만 했던 길은 그 모습 그대로 내 삶이었다. 다 포기하고 싶지만, 아무것도 버릴 수 없었던 시간들. 이 시기의 도시는 내겐 공간이 아니었다.<br>40대에 이르러서야 난 소원을 이뤘다. 내 삶은 내 뜻대로 하겠다는. 거무튀튀한 그을음을 벗겨내기 시작했고, 의도적으로 걸음의 속도를 떨어뜨렸다. 지쳐버린 심신으로 시야는 여전히 좁았지만, 시간 속에서 포효하며 떠돌던 생각들을 공간으로 가라앉힐 수 있었다. 현재의 나를 차분히 바라보게 되면서 미래를 기대하고 과거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고양이가 들어왔다. 뒤틀리던 시공간을, 흔들리는 도시를 아무렇지 않게 마주할 수 있게 됐다.<br>20년 넘게 이 집에서 살았지만, 집 말고는 아는 게 없었다. 걸어서 갈만한 거리에 조선의 궁들이 있다는 것을, 뒷산 꼭대기에 봉수대가 있다는 것을, 저만치 앞산에는 한양도성이 꼭대기까지 이어져 있다는 것을 일을 놓아버린 50대가 되어서야 알았다. 산길을 헤매고 골목길을 누볐다. 엉뚱한 곳으로 내려와 다시 산으로 들어가고, 지붕이 내 키보다 낮은 집들 사이를 허둥지둥 빠져나오기도 했다. 아파트마저도 그 느낌이 달랐다. 사람들이 일하러 빠져나가 인기척이 없는 세련된 유령도시 분위기의 아파트부터, 힘겨워 벤치에 앉아계신 노인분들 너머로 어린이집의 고함소리가 흘러넘치는 아파트까지. 내가 보고자 했더니 도시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의 면모를 드러내는 중이다. 아마도 다 못 읽겠지만, 50년을 살고 나서야 차분하게 도시를 읽어보려 한다.<br>꼬리말) 이 글의 제목은 AI가 내게 제시했던 문장이다. 간혹 이렇게 글을 써볼까 한다. 떠오르는 문장 아무거나 하나 말해보라고 AI에게 부탁한 후, 그 문장에서 비롯된 내 생각을 표현하는 식으로.]]></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텅 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06691</link><pubDate>Thu, 10 Sep 2026 09: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0669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895224056&TPaperId=175066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483/50/coveroff/e89522405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잠이 깼다. 정확히는 정신이 들었다. 하지만 몸은 아직 내 통제 밖이다.<br>이런.<br>가위에 눌린 상태다. 말이 입 밖으로 나올 리 없지만 욕을 해본다. 습관이다. 밤이 무섭고 자는 게 두려울 때, 가위에서 풀리면 그렇게라도 해야 했다. 너무 무서워서. 그 정도로 심각한 상태는 극복했지만, 간혹 가위에 눌린 상태로 정신이 돌아오면 반사적으로 욕을 하고 투덜댄다.<br>또냐? 적당히 좀 하자. 니미.<br>몸의 끝부분,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움직여서 가위를 풀어내라고 하지만 내 경우는 고개를 좌우로 돌려서 푼다. 이것도 습관이다. 맨 처음 가위에 눌렸을 때 목을 돌리면서 풀어냈거든. 그 탓에 목에 힘을 주는지 풀리고 나면 목이 뻣뻣해서 고개를 살살 돌려줘야 한다. 이 정도면 양반이다. 매일 같이 가위와 벗 삼을 땐 풀린 뒤에도 그 우정에 짓눌려서 눈조차 뜨지 못했다.<br>뻣뻣한 목 근육을 풀고서 누운 채로 주변을 둘러본다. 있다. 내 허벅지 옆에 검은색 자취가 보인다. 팔다리 위아래로 쭉 펼친 자세로 세상 모르게 널브러져 자는 중이다. 입양한 지 3개월 정도 된 아기 고양이. 나도 다시 잠을 청한다. 가위눌린 흔적 같은 건 더 이상 없다.<br> &lt;가재가 노래하는 곳&gt;을 읽다가 썬데이 저스티스라는 고양이를 만났다. 반가웠다. 그리고 카야를 이해했다. 난 요즘도 아무 이유 없이 잠에서 깨면 습관처럼 주변을 둘러보며 고양이를 찾는다. 어딘가에서 나를 시야에 두고 있을 고양이를. 어둠보다 더 짙은 그 어두운 색채에 악몽도, 가위도 발을 내딛지 못한다.<br>‘카야는 옷 입은 채로 그 자리에 누웠고 둘 다 아늑하게 자리를 잡았다. 카야는 고양이가 잠자는 모습을 지켜보다 따라서 잠이 들었다. 더는 화들짝 소스라쳐 깨어나지 않고, 마침내 아무것도 없이 텅 빈 평온 속에 표류했다.‘- 델리아 오언스 &lt;가재가 노래하는 곳&gt; p358]]></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483/50/cover150/e89522405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4835081</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염세주의자의 목록</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04332</link><pubDate>Wed, 09 Sep 2026 08: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04332</guid><description><![CDATA[* 우리가 잃은 것<br>1. 심장&nbsp;- 공감 능력을 잃었다.&nbsp;- 다른 존재의 고통에 무감하다. / 분업의 영향일까? 사냥하지 않고 죽음에 직접 관여하지 않으면서 우린 죽음과 너무 동떨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nbsp;- 아이언맨의 심장이 필요하다. / 그렇다고 해결될 거 같진 않다. 핵심은 심장이 아니라 우리 그 자체니까. 심장만 얻으면 블립으로 나머지 반까지 날려버릴 수도.&nbsp;<br>2. 청각&nbsp;-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nbsp;- 타협을 죄악시한다.&nbsp;- 데어데블의 귀가 필요하다. / 그렇다고 해결될 거 같진 않다. 더 미쳐버릴 수도.<br>3. 균형 감각&nbsp;- 내가 있는 자리가 옳다.&nbsp;- 단순하다. / 이거 아니면 저거. 이거를 선택했다면 저거는 악이다. 이거, 저거 말고 그거, 요거 등이 있다는 사실을 신경도 쓰지 않는다. 복잡한 사회상의 부작용인 모양이다.&nbsp;- 스파이더맨의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 그렇다고 해결될 거 같진 않다. 익명성 뒤에 숨지만, 은근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 해서.<br>4. 여유&nbsp;- 무엇인가를 당장 원한다. / 조삼모사. 아침에 무조건 네 개.&nbsp;- 닥터 스트레인지의 마법이 필요하다. / 그렇다고 해결될 거 같진 않다. 속도가 문제가 아니다. 욕심이 문제지.<br><br>* 우리가 얻은 것<br>1. 편리함&nbsp;- 말해 무엇하겠나.<br>2. 뻔뻔함&nbsp;- 말해봤자 안 믿을 거다.&nbsp;- 최근엔 자본주의의 뻔뻔함을 스승으로 삼은 듯.<br>3. 확신&nbsp;- 유구무언<br>더 있을 거 같긴 한데 고양이가 맡겨놓은 거 찾으러 와서 여기까지만.<br>이 자슥, 너 나한테 간식 맡겨놨냐? 너무 당당하잖아!야옹! 야~옹!기다려라! 누굴 닮아서 그렇게...&nbsp;<br>그런데... 고양이는 DC 캐릭터 아닌감? 블랙팬서가 고양이과던가? 헤, 아서라, 벌레도 제대로 못 잡는 녀석이 무슨.야아~옹!]]></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숨 막히게 희망찬 이야기 - [일주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02170</link><pubDate>Tue, 08 Sep 2026 09: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0217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342539891&TPaperId=175021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294/71/coveroff/e34253989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342539891&TPaperId=1750217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일주일</a><br/>최진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09월<br/></td></tr></table><br/>"나는 매일매일 확인했다. 돈을 내는 자의 무례와 경멸을. 수치심까지 짓뭉개는 뻔뻔함을. 더 많은 것을 손에 쥐고서도 불공평이나 역차별이란 단어를 무기처럼 사용하는 사람들을. 나는 알 만큼은 안다고 생각했고 더 알아야 할 것들이 두려웠다."- &lt;일주일&gt; 중 &lt;일요일&gt;에서<br>2010년쯤 됐을까? 남자 고등학생을 주말 오후 알바로 채용한 적이 있다. 용돈을 벌고 싶다고 했다. 그 나이 또래 남자아이들처럼 어른과는 대화보단 대답을 했고, 무덤덤한 듯 조금은 뚱한, 흔히 볼 수 있는 청소년이었다. 한 달이나 일했을까. 손님과 마찰이 생겼다. 기억은 안 나지만 사소한 문제였다. 손님이 본사로 클레임을 제기했고, 내게로 넘어와서 CCTV를 확인해 보니 근무자의 불찰이 분명했다. 아마 그 자리에서 근무자가 사과했다면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근무자는 사과 대신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선택을 했다. 아이에게 상황을 설명하자 잘못을 인정했고, 고객이 찾아오면 함께 사과드리기로 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하지만 끝나지 않았다. 다시 연락해 온 고객은 진정한 사과를 바란다고 했다. 근무자가 무슨 생각을 하며 일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어서 골머리를 앓던 나는 이 고객의 말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진정한' 사과라니. 배를 할복하는 일본 사무라이의 이미지가 떠올라 순간 고개를 흔들었다. 아이에게 무릎이라도 꿇으라는 얘긴가. 이 문제로 몇 주를 끌었던 거 같다. 결국 나는 그 고객과 언성을 높여야만 했고, 결과적으로 서로 보지 않는 걸로 흐지부지 마무리됐다.<br>오래전 일이라 완벽한 기억은 아니다. 아마 저 근무자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만뒀지 싶다. 내가 사람을 새로 구할 때까지만, 또는 앞으로 2주 후까지만 일해달라고 말했을 가능성이 크다. 해당 고객이 매장 근처에 사는 사람이었으니까. 저 일을 겪으면서 많이 답답했다. 나와 다른 청소년기를 보내는 아이를 내 경험으론 유추할 수가 없어서. 청소년에게 필요 이상의 책임을 요구하는 어른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br>최진영 작가의 &lt;일주일&gt;은 고등학생의 이야기를 담은 세 개의 단편으로 구성된다. 너무 전형적인 틀에 가두는 게 아닐까 하는 작가의 걱정처럼 각 캐릭터는 무미건조한 듯하면서도 자기만의 개성을 드러낸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무미건조하면서도 개별성이 있는 존재 아니던가? 문제라면, 우리 사회는 청소년들의 개성이나 개별성을 다양성의 관점에서 보는 게 아니라 경쟁의 차별화 수단으로만 파악한다는 점. 그래서 어느 위치에 서든 아이들은 차별화를 위해 발버둥을 쳐야만 한다.<br>"돈과 명예 말고, 우리가, 또 다른 가치를 가져야만 해? 사랑, 희생, 정의, 존엄 같은 것을 중요하다고 생각해버리면 삶이 복잡하게 꼬일 것만 같았다. 그런 가치를 추구하느니 조롱하는 편이 쉬웠다."- &lt;일주일&gt; 중 &lt;수요일&gt;에서<br>어쩌다가 우리는 그 발버둥의 결과만 가지고 사람을 판별하게 됐을까? 왜 우리는 수직으로 늘어선 위치에서 벗어나려 하는 시도를 불손하다고 여기는 걸까? 우리는 무엇을 위해 아이들이 원하는걸, 찾으려는 걸 막아가면서 이 숨 막히는 사회의 축소판에 그들을 욱여넣고 있는 걸까? 온통 질문뿐이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그게 편하니까. 답도, 원인도 내심 짐작되지만 해결할 순 없으니까. 흐지부지.<br>난 그때 그 아이에게 더 물어봐야 했을까? 참견이나 간섭이라 여겼을 것이다. 고맘때의 나도 그랬었다. 필요한 건 배려와 공감과 기다림과... 이런, 숨 막힌다. 어쩌겠나. 어른들이 이렇게 만들어놓은 세상이니 모두가 함께 숨 막힐밖에. 같이 숨이라도 막혀줄 수밖에.<br>"당신이 거기 잘 있으면 좋겠어."- &lt;일주일&gt; 중 &lt;사사롭고 지극한 안부를 전해요&gt;에서<br>갑갑한 &lt;일요일&gt;에서 시작해 충격적인 &lt;수요일&gt;을 거쳐 희망적인 &lt;금요일&gt;을 지나면 작가의 에세이가 나온다. 언제나 그렇듯 작가는 안부를 전하고, 그 안부에 깃든 걱정과 잔잔한 고집을 뒤로하면, 진짜 청소년의 에세이가 버티고 있다. 움켜쥔 그 희망에 맘을 담뿍 담아 응원을 보낸다.<br>"짧은 생에 다 품기엔 무겁다 싶을 때마다 넓게 보고 많이 사랑할 것이다. 쫓기는 삶이 안정될 때까지 가끔은 도망치면서 살길. 이 결심에 죄책감은 느끼지 않기로 했다."- &lt;일주일&gt; 중 &lt;지금 도망칠 준비가 되면&gt;, 박정연]]></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294/71/cover150/e34253989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2947160</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고양이 일기</category><title>고양이 일기_15</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99675</link><pubDate>Mon, 07 Sep 2026 08: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99675</guid><description><![CDATA[*** 건강검진과 스케일링을 받고 깨어난 월이는 아주 멀쩡해 보였다. 마취에서 깬 후 일정 시간이 지난 뒤 사료를 줘야 했는데, 그사이 먹을 걸 내놓으라고 엄청 눈치를 주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틀 후, 녀석은 먹는 걸 거부했다. 사료든 간식이든 먹을 때가 되면 쪼르르 달려왔다가 입에 넣어보고 곧장 뱉어냈다. 스케일링 후유증이었다. 가뜩이나 예민한 녀석인데 치아 감각이 이상해지니 아예 먹는 걸 참기로 한 거다. 그날부터 3일 동안 녀석은 츄르만 먹었다. 내 속은 걱정으로 썩어 들어갔고. ***<br>아고, 힘 없어라... 세상이 노랗구나. 내 눈은 초록색인데... 계속 츄르만 먹어서 그런가... 아, 씨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상하네. 입속이 왜 이러지? 지난번 선생님이랑 있다가 정신 차려보니 이렇단 말이지. 이거, 이거, 나를 굶겨 죽이려는 속셈인가? 내가 아저씨를 감시하려는 걸 막으려고?<br>(아저씨는 걱정돼서 고양이 주변을 끊임없이 얼쩡대고 있음) “왜? 왜 그렇게 계속 쳐다보는데? 배고파? 먹을 거 줄까?”<br>아무리 봐도 딱히 대단해 보이지 않는 아저씬데. 그건 그렇고 3일간 츄르만 먹었는데 배가 안 고프겠냐, 이 아저씨야. 이렇게 생각 없는 아저씨 감시하는 걸 막으려 할 리는 없고. 냥, 내가 뭘 놓친 게 있나?<br>(아저씨, 계속 고양이 주시 중) “왜? 왜 그렇게 게슴츠레 축 처져 있는데? 힘없어?”<br>3일간 츄르만 먹었는데 힘이 남아돌겠냐, 이 아저씨야. 에잇, 모르겠다. 화장실이나 갈란다.<br>(터덜터덜. 쉬와 응가. 응가는 설사로 작렬) 앗, 아저씨, 응가가 노란색이다! 나 이러다가 죽는 거 아니냐? 아까는 하늘도 노란색이었다!<br>(요란한 모래질에 뒤따라 들어온 아저씨, 오묘한 표정으로 화장실을 살핌) “츄르가...”<br>그러고 보니, 아까 옛날 장면들이 머릿속으로 쭈욱 흘러갔다. 이런 걸 주마등이라고 하지 않냐?!<br>“더 이상 안 되겠네. 바꿀 때가...”<br>헉, 나 고양이별로 돌아가야 하냐?! 너무... 짧은데...&nbsp;<br>“이리 와 봐.”<br>(터덜터덜) 아저씨, 내가 고양이별에 돌아가거든 아저씨는 좋은 사람이라고 얘기해줄 거다. 청소도 열심히 하고, 화장실도 잘 치우고, 밥도 시간 맞춰 잘 주고, 어엉엉.<br>(부스럭) “그만 웅얼대고 이거 한 번 먹어보자. 아저씨가 잘게 부쉈으니까 먹기 편할 거야.”<br>(날름) 엉엉. 쩝쩝. 어라, 입안 아픈 게 좀 낫네?<br>“이제 좀 괜찮아? 먹을만해?”<br>(날름) 쩝쩝. (날름) 쩝쩝. (입에 들어갔다가 덩어리째 바닥에 흘림)&nbsp;<br>“... 이거 먹어라. 새 거다.”<br>내 침 묻었다. 입에 들어갔다 나온 건 안 먹는다.<br>“이 자슥이...”<br>그냥 간다? 확 안 먹어버린다?<br>“오구, 오구, 잘 먹는다. 그래, 그렇게라도 먹어라. 그게 어디냐.”&nbsp;기분 나빠지려고 하는데... 고양이별 얘기는 취소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스파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95966</link><pubDate>Sat, 05 Sep 2026 15: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95966</guid><description><![CDATA[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볕이 마루에 경계를 만든다. 그 경계 너머, 그러니까 햇볕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내가 있고, 경계 안쪽에 고양이가 있다. 나는 도끼눈을 뜨고서 째려보는 중이고, 고양이는 고양이 눈을 뜨고서 노려보는 중이다. 서로를 마주 보는 자세지만 둘은 서로를 보고 있진 않다. 나는 조금 전 발을 내디뎠다가 여전히 뜨거운 햇볕에 놀라 심통이 났고, 고양이는 내가 옆에 팽개친 장난감이 못내 아쉽다. 뭔가 묘한 대치 상태를 깬 건 고양이. 목이 간지러웠는지 뒷발로 아래에서 위로 긁어대기 시작했는데 햇볕을 배경으로 털이 분수처럼 솟구쳐 오른다. 내 도끼눈이 햇볕을 놔주고 고양이를 포착한다. 저 자슥이. 이제 털 가지고 분수 쇼를 하냐? 가지가지 한다, 진짜. 고양이는 네가 뭔 상관이냐는 듯, 잠시 멈췄던 행위를 재개한다. 긁긁.<br>어제 오후 늦게 산에 오르면서 여름이 떠날 채비를 하고 있음을 알았다. 수풀은 더욱 무성해지고 뜨거움은 여전했지만, 사소한 변화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물을 꽁꽁 얼려서 가곤 하는데 지난주만 해도 이 물을 남김없이 다 마셨다. 그런데 집에 돌아올 때까지 얼음도 다 녹지 않았다. 또 하나. 산 정상에 있는 모지리 활동 반경이 넓어졌다. 귀신같이 시원한 곳이나 따뜻한 곳을 찾는 게 고양이인데, 고양이가 어떤 자리를 고집하지 않고 돌아다닌다는 건 더위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다는 얘기. 여름이 가는구나. 집에선 잘 때 선풍기조차 틀지 않았고, 새벽에 깨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가기까지 했다. 드디어.<br>햇볕은 뜨거웠지만 적어도 집안에선 그 바깥에 있거나, 그 영역 밖에서 움직여도 땀이 나지 않는다. 여름이 다른 곳에 정신 팔린 게 분명하다. 근질근질한 입을 꾹 다물고 고양이를 보는데, 녀석이 터덜터덜 햇볕이 없는 쪽으로 가더니 철퍼덕 소리가 나게 바닥에 눕는다. 그리곤 냅다 뒹굴 쇼 투척. 뒹굴뒹굴. 연이은 고양이 쇼에 나도 모르게 입이 헤 벌어지고 그 사이로 참았던 말이 삐져나온다.<br>고양이, 여름이 이제 가나보다.<br>화들짝. 아, 말하면 안 되는데. 짐을 싸던 여름이 이 말을 듣고 ‘어림없지’ 하며 다시 돌아올 것만 같다. 이번 여름,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요놈의 입이 방정이다. 너 이 자슥, 여름이 보낸 스파이였냐? 고양이를 째려보지만, 알 바 아니라는 듯 배를 까고 누워서 뒹굴뒹굴한다. 고양이, 여름이 다시 고삐를 조이면 다 너 때문이다.]]></description></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