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어느덧 여기에 (대굴대굴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책에 관한 리뷰라기 보단 내 삶에 대한 리뷰</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ue, 23 Jun 2026 11:00:07 +0900</lastBuildDate><image><title>대굴대굴</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045771444334901.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대굴대굴</description></image><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고양이 일기</category><title>고양이 일기_4</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48816</link><pubDate>Mon, 22 Jun 2026 13: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48816</guid><description><![CDATA[*** 중성화수술을 마치고 선생님이 지나가는 말처럼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껏 붕대를 이빨로 다 뜯어낸 고양이를 딱 한 번 봤었다고. 그러니까 별문제 없을 거라고. 살짝 불길했었는데 이 녀석이 두 번째 고양이였다. 같이 산 지 5년. 새벽에 불을 켜고 마주한 녀석의 표정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붕대를 찢어놓고 그루밍을 하면서 자랑스러워하던, ‘나 잘했지?’라며 칭찬해달라는 그 표정. 표정뿐이겠나? 이후 이틀은 사진처럼 뇌 속에 각인된 이미지들이 수두룩하다. 옷을 입혀 놨더니 그것도 뜯겠다고 등 쪽을 물고 바닥을 구르지 않나(서커스단에서 탈출한 고양이인 줄), 앞발 하나를 빼서 목이 들어갈 자리에 집어넣고 걸어 다니질 않나, 앞발을 옷 밖으로 꺼내질 못해서 세 발로 나타나질 않나. ***<br>어제 중성화 수술이란 걸 했다. 하늘색 옷 입은 무서운 사람이 목덜미에 뭘 찔렀는데 갑자기 정신이 뿅 사라졌다. 눈 떠 봤더니 집. 오오! 고양이별에 있을 때 미리 얘기를 들어서 그렇지 안 그랬음 바보 될 뻔했다. 그런데! 배에 둘둘 감아놓은 이 하얀 거! 너무 불편하다! 가만있어봐라. 이거, 요기를 물어뜯으면…. 에잇, 뜯어져라, 뜯어져! (뒹굴뒹굴) 아우, 어지러워라. 먹은 것도 부실했는데 힘을 썼더니만…. 이봐, 아저씨! 생각이 있는 거냐? 잠만 자지 말고 까까를 내놔라! 냥. 아니야. 일단 이것부터 벗겨내고. 배를 감고 있어서 먹다 체하겄어.<br>자, 다시 침착하게. 요렇게 요렇게. 이이잇. 냥! 뜯어졌다! 랄랄~ 이쯤은 포장 뜯긴 츄르 먹기지. 응? 아저씨, 일어났냐? 이거 봐라, 내가 다 풀어 헤쳤다, 잘했지?<br>야! 너 뭐 한 거야!<br>아우, 깜짝이야! 왜 소릴 지르고 그래? 애 떨어지게. 냥, 애는 어차피 못 가지는구나. 아니, 아니, 다시 감으면 안 되지! ... 히히, 내가 확실하게 물어뜯어 놓아서 다시 안 감길 거야.<br>아 진짜. 옷을 입혀야겠네. 붕대를 이렇게 해놓으면 어떡하냐.<br>옷? 뭐냐 이건 또? 어라, 왜 뒤로 간다니? 이거 당장 벗겨라! 몸이 고장 난 거 같다! 왜 가고 싶은 방향으로 움직여지질 않냐? 아저씨, 고양이는 이미 털코트 입고 있는 거 몰라? 이거 치워라, 답답하다! 고양이에게 자유를 달라! 아파트 주민들, 여기 보시오! 삐쩍 마른 아저씨가 고양이를 잡소! 그냥 가냐? 야, 이 아저씨야, 생각이 있는 거냐! 두고 봐라, 너. 내가 아저씨랑 다시 놀아주면 고양이가 아니다!<br>어디 보자…. 몸통을 감싼 상태에서 머리랑 발들이 구멍으로 빠져나와 있네. 그럼 앞발을 하나 끌어당겨서 안으로 넣고…. 아 씨. 아 씨. 아이 씨이! 냥. 냥. 저기, 아저씨. 앞발 하나가 안으로 들어가서 안 빠지는데 이것 좀 어떻게 해주면 안 될까? 발 세 개로 걸으려니까 고양이답지 않아서 말이지. 아니, 그렇게 째려보지만 말고. 내가 놀아달라고 한 것도 아니잖아.<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622/pimg_7045771445161516.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48816</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아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47234</link><pubDate>Sun, 21 Jun 2026 18: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47234</guid><description><![CDATA[지난 토요일(5월 16일).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집안 온도가 예사롭지 않다. 낮 기온이 30도를 넘은 건 며칠 됐지만 밤에는 선선했는데 이날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밖은 시원했는데 집안이 그렇지 않았다. 고양이도 축 처져서 한여름 자태를 내보이는 걸 보면 나만 더웠던 건 아닌 게 분명했다. 내가 취한 조치는 딱 하나뿐. 부엌 쪽 자그마한 창을 열어놓는 거였다. 그렇게 월요일(18일)까지 버텼다.<br>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부엌뿐 아니라 마루 쪽 창문까지 열면 바람이 시원하게 가로지를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상식을 가로막는 게 하나 있었다. 집 앞에 공사 현장이 있었는데, 요즘 마무리 단계로 보도와 차도를 새로 만드느라 먼지가 말도 못 하게 많았다. 그게 이유였다. 내가 마루 쪽 베란다 창을 열지 않는. 그런데 그게 불합리한 생각이라는 걸 나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머릿속에서 각종 이유를 만들어내기 시작했거든. 집수리 중인 윗집에서 난방을 확인하느라 난방을 켜놓은 게 아닐까? 윗집에 사람이 없어서 환기를 안 하니까 낮 동안 가열된 열기가 우리 집으로 내려오는 게 아닐까? 몇 가지 이유를 만들어가며 마루 베란다 창을 열지 않는 내 선택을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월요일 밤. 큰누나 집에 다녀오면서 현실을 직시했다. 선선했던 거리와 에어컨이나 선풍기 없이도 시원했던 누나 집. 내가 틀렸음을 알았다. 아니, 진작에 알고 있었다. 집에 와서 마루 베란다 창문을 살짝 열었다. 바람이 통하는 게 느껴졌다. 얼마 안 있어 집안 공기가 변했다. 그러니까 내가 바보였다.<br>쓸데없이 고집을 부릴 때가 있다. 신념이나 믿음을 위해 그러기도 하지만 자존심과 귀찮음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선 타인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그럴 때도 있다. 어떤 이유든 살면서 한 번쯤은 그래봤을 거다. 고집이라면 그나마 다행인데, 아집이라면. 아무리 잘났어도,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올바른 선택만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승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43119</link><pubDate>Fri, 19 Jun 2026 07: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43119</guid><description><![CDATA[난 한 번 선택하면 잘 바꾸지 않는다. 낯설거나 모르거나 어색한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성향 탓이 크다. 한때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 가곤 했었는데 그때마다 점심은 딱 한 군데 가던 곳에서만 먹었다. 동네 식당 가는 곳은 두 군데, 직장 근처는 그나마 세 군데. 그곳들이 사람이 많거나 하면 그냥 집에 들어와 먹는다. 배달은 피자, 치킨, 중국 음식 세 종류만. 20대 초반에 가입했던 통신사를 지금까지 쓰고 있고, 어렸을 때 다니던 은행을 여전히 이용 중이며, 얼굴에 바르는 스킨로션류는 30년 가까이 한 상품만 쓴다. 뭐가 더 있을까 생각하다 갑자기 두려운 마음에 생각을 멈춘다. 나, 정상이 아닌가? 다행이다. 얼마 전 가전 브랜드를 싹 다 바꿨는데. 집에 무려 GOLDSTAR란 상표가 찍힌 제품도 있었으니까….<br>어이, 고양이! 니가 아무리 하던 것만 하고 가던 길만 간다고 해도 나만 하겠냐? 넌 아직 멀었다 이눔아.<br>한 번은 저 녀석을 이겨보고 싶었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냥장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41260</link><pubDate>Thu, 18 Jun 2026 08: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41260</guid><description><![CDATA[산 초입부터 심상치 않다. 근처에 절이 있고 산으로 이어지는 언덕이 있다. 그 언덕배기에 고양이가 있었다. 항상 봤던 건 고등어 한 마리. 그런데 오늘은 무려 세 마리다. 고등어, 젖소, 삼색이. 질식할 거 같은 초록색 안에 팔딱거리는 고등어, 묵직한 젖소, 새침한 삼색이. 이 산은 아무래도 요 세 종류 유전자가 강세인 모양이다.<br>산 중턱. 어라, 또 세 마리다. 또 같은 조합이다. 고등어, 젖소, 삼색이. 아마도 젖소와 삼색이는 정상에 자리 잡은 고양이들보다 한 세대 앞선 형제, 자매들이거나 부모일 가능성이 크다. 체격도 크고 정상의 꼬맹이들이 나타나기 전부터 있었다. 절벽이나 등산로 가까이에 앉아서 햇볕을 쬐거나 잠을 잔다. 이 위치에선 사람들이 쉬기만 하지 먹지는 않아서 고양이들도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오진 않는 편이다. 그나저나 저 고등어. 원래 정상에 있던 그 고등어 아닌가? 체격도 그렇고, 졸린 듯한 표정도 그렇고. 너 혹시 위쪽에서 조그만 고등어에 밀려났니?<br><br><br>산꼭대기. 헉, 영어다.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영어다. 얼른 발걸음을 옮기는데, 성곽 구멍 안에 젖소가 웅크리고 있다. 너도 영어가 무섭구나? 동질감에 닭가슴살 하나 투척. 뿌듯한(?) 마음에 몸을 뒤로 돌리는데 어라! 고등어다! 거의 3주 만이다. 너, 배가 홀쭉한 거 보니 그때 불룩했던 배는 똥배였어? 반가운 마음에 닭가슴살을 건네다가 손가락 물릴 뻔했다. 지난번에 소극적이었던 건 배가 불러서였구나. 젖소가 뭐 떨어진 거 없나 다가오자, 고등어가 으르렁댄다. 이 녀석, 맹수다. 체구는 작은데 펄떡거리는 게 진정한 활어다. 고등어가 왔어요, 고등어가. 싱싱한 고등어가 왔어요! 닭가슴살을 하나씩 더 줬는데 젖소는 물고서 저만치 도망간다. 너는 덩칫값을 좀 해야 하지 않겠니? 조그만 고등어가 무섭냐? 고등어가 다시 으르렁댄다. 한 걸음, 아니 반걸음 살짝 나도 모르게 물러난다. 이 녀석, 걱정 안 해도 되겠다.<br><br><br>닭가슴살 두 개씩 먹고 휴식 시간. 고등어는 땅바닥에 철퍼덕 누웠고, 젖소냥이는 바위 쪽으로 슬금슬금 가더니 나비를 노린다. 세상에나. 그림책에서나 보던 장면을 직접 보게 되다니! 사사삭. 조심스럽고 빠르게 다가가지만, 나비는 훨훨. 첫 번째 시도 실패. 나비 다시 착지. 사삭, 사삭. 착. 앞발 공격. 나비는 또 훨훨. 바로 폴짝. 나비는 더 훨훨. 젖소는 근처 철제 가드에 충돌. 최종 실패. 소리 내어 비웃어 주고 싶었지만, 근처에 사람들이 있는 관계로 조용히 미소로 마무리. 젖소야, 넌 역시 멍... 갑자기 코에 벌레를 붙이고 못 찾는 녀석이 생각나 마지막 단어를 꿀꺽 삼킨다. 막상막하인가.<br>내려가려고 발길을 돌리는데 삼색이가 나타나 한쪽에 편하게 앉아 있다. 젖소 쟤, 네 남동생이지? 오빠일 리 없어. 쟤 좀 어떻게 해 봐라. 젖소 망신 다 시키고 있다. 냥글냥글. 평화롭게 하루가 저무는 중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618/pimg_7045771445157071.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41260</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대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39417</link><pubDate>Wed, 17 Jun 2026 08: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39417</guid><description><![CDATA[날이 참 좋은 날이었다. 하늘색 하늘과 쨍한 햇빛과 하얀 구름. 구름의 존재감이 어느 때보다 도드라지는 날씨. 남자는 베란다 창을 통해 고양이와 함께 밖을 내다보는 중이다. 그때 비둘기가 창 바로 앞을 지나 윗집 에어컨 실외기 받침대에 앉는다.<br>까각 까각 까가가각 (고양이 채터링 소리. 솔직히 그 소리를 뭐라고 적어야 할지 모르겠음)오오! (남자가 놀라는 소리)<br>고양이가 앞발로 베란다 창을 짚으며 몸을 일으킨다.<br>아서라, 고양이. 벌레도 못 잡는 게 무슨 비둘기를. 쪼인다, 쪼여.냐아웅.<br>연이어 비둘기 두 마리가 바로 앞을 지나 옥상 쪽으로 사라진다.<br>냐아옹, 냐아웅.오오! (남자가 또 놀라는 소리)<br>남자는 돈 냄새를 맡고 이때다 싶어 말을 내뱉는다.<br>너 인마, 이 정도면 돈 내고 봐야 하는 거 아니냐?... (무시)<br>고양이, 양심이 좀 있어봐라. 그럼, 나 없는 동안 바닥 청소라도 좀 해놓던가.... (또 무시)<br>너는 내 말이 들리기는 하니?... (그냥 무시)<br>남자는 생각해 본다. 아무래도 오늘 옷을 잘못 입었어. 이런 옷을 입고 고양이한테 투덜대봤자지.<br>날씨 참 좋네, 그치?<br>(옷에 프린팅된 고양이와 글씨)]]></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617/pimg_7045771445156240.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39417</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고양이 일기</category><title>고양이 일기_3</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35684</link><pubDate>Mon, 15 Jun 2026 08: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35684</guid><description><![CDATA[*** 고양이는 울 때, 정확히는 아니더라도 대략 ‘야옹’이란 발음으로 운다고 생각했었다. 그 기대는 이 녀석을 입양한 순간 무참하게 깨졌다. 녀석은 울 때 앞에 ‘응’이 붙는다. 간혹 ‘야아옹’이라고 우는데 그건 내게 불만이 있거나 원하는 게 있을 때다. 고양이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르던 초보 집사 시절이었다. ***<br>아~앙. 오~옹. 이건 아닌 거 같은데, 냥. 으~응. 역시 이게 제일 낫지? 고양이라고 꼭 ‘냐옹’, ‘야옹’이라고 딱 부러지게 울 필요는 없지 않겠어? 으~응. 그래, 그래, 이거야. 입 벌릴 필요 없이 소리도 낼 수 있고. 이게 딱이지. 아저씨도... 앗, 벌레, 벌레! 에잇, 받아랏! 킁킁. 어라, 어디 갔대? 내가 코를 들이밀 때까지만 해도 여기 있었는데. 내 눈을 피할 수 있을 거 같냐? 냥. 없네. 쩝. 그러니까... 뭘 하고 있었더라?<br>아! 아저씨가 은근 저 소리를 좋아하더라구. 까까 줄 때 나도 모르게 응응응응 소리를 내며 쫓아갔는데 그때마다 헤벌쭉한 걸 보면, 확실히 좋아해. 지난번 하수구 뒤졌을 때도 으응, 으응 몇 번 했더니 웃으면서 넘어갔거든. 어차피 사고는 계속 칠 거고. 아깽이가 사고를 안 치면 고양이 명예에 똥칠을 하는 거지, 그럼. 그니까 어떻게든 혼나지 않고 넘길 방법을 찾았다 이거야. 으~응. 응깡! 응응응응응. 자, 울음소리는 이만하면 됐고.<br>이젠 자세! 배를 보이며 오른쪽으로 뒹굴. 다시 왼쪽으로 뒹굴. 오른쪽으로 갈 거 같다가 왼쪽으로 뒹굴. 사정없이 비비 꼬고. 삐삐삐삐삑~ 오, 밥 나오는 소리닷! 밥을 먹자, 밥을 먹어, 냠냠냠. 냠냠냠. (쿵!) 아우 씨, 깜짝이야! 여긴 어떻게 된 게 사방팔방에서 소리가 들려? 자, 밥 먹었으니까 몸단장 좀 하고, 또 연습을 합시다.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와, 집고양이로 사는 게 쉽지 않네. 다 때려치울까? (찰칵, 열쇠 돌리는 소리) 어, 캔따개... 아니, 아저씨다!<br>월아, 아저씨 갔다 왔다! 집에서 뭐 하고 있었어? 아저씨 보고 싶었어?<br>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알면 깜짝 놀랄걸? 모르는 게 좋아. 그건 그렇고, 받아랏, 내 애교를! 으~응. 으~응. 뒹굴. 뒹굴. 까까 주라! 그럼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는 얘기 안 해 줄게!]]></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닭이 먼저, 달걀이 먼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32560</link><pubDate>Sat, 13 Jun 2026 17: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32560</guid><description><![CDATA[소비의 시대다. 내 부모님 세대는 살기 위해서 소비했다. 먹거리를 사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맸다. 소비는 곧 생존이었다. 그 자식 세대에게 소비는 사치이자 여유였다. 아등바등 먹고 살지만 그래도 좀 쓰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냐는 사고방식이다. 그것이 합리적 소비란 모순적인 단어 조합으로 이어지고, 현재 30대부터는 소비가 필수인 시대가 되었다. 살기 위해 소비하는 게 아닌, 소비하기 위해 돈을 벌고 살아가는, 어찌 보면 내 부모 세대보다 더 전투적인 삶의 방식. 소비하지 않으면 내 존재를 드러낼 수 없는 시대다.<br>물건만 소비하는 게 아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소비 대상이다.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 게다가 빠르고 압축된 세상의 흐름은 그 모든 소비를 짧고 강렬한 이미지로 남긴다. SNS의 사진들, 짧은 영상들, 썸네일을 통해 지식, 정보, 역사 등이 그 무겁고 가벼움을 떠나 몽땅 찰나의 순간에 액기스처럼 짓뭉개진다. 사람들은 원래 선배들(거인들)의 어깨를 밟고 서서 세상을 변화시켰다. 발밑에서 느껴지는 건 불안함과 안정감, 둘 모두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저 팔랑팔랑. 순간에 압축된 강렬함은 휘발성마저 강해서 밟고 설 어깨조차 없는 듯하다. 공중에 나부끼는 비닐봉지처럼 안정감도, 불안함조차도 없다.<br>얼마 전(벌써 한 달 전), 스타벅스로 인해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1980년 5월의 광주를 난 모른다. 국민학교도 입학하기 전, 아버지는 광주에 사는 작은 아버지와, 광주에서 1시간쯤 떨어진 곳에 사는 큰아버지를 걱정하며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셨다. 내가 기억하는 장면이라곤 그뿐이다. 다행히 내 친척들은 그 시기를 무사히 넘겼다. 그리고 스타벅스 소동이 있기 몇 주 전, 큰누나로부터 광주에 사는 작은아버지 딸이 술을 마시고서 그때의 얘기를 주정처럼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남자는 돌아다니면 다 잡혀간다면서 오빠나 동생이 아닌 자신이 밖에 나가야 했다고. 얼마나 무서웠고 얼마나 서러웠는지 아냐고. 난 그 무서움과 서러움 역시 잘 모른다. 하지만 그게 상처라면 굳이 건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쯤은 안다. 우리 주변엔 단순한 신세 한탄이 아닌, 삶을 뒤흔들 만한 상처를 받은 자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아직 50년도 지나지 않았다.<br>실수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 시대가 모든 걸 가볍게 소비하게 만드니까. 하지만 그 실수를 틈타 정치 논리를 빌미로 조롱과 혐오를 이어가는 건 뭘까? 단순히 정치와 이념이 우리 사회를 특정 방향으로 몰아간다고 봐야 할까?<br>계산대에서 인사를 한다. 누군가는 눈을 마주치면서 그 인사를 받지만, 대부분은 그냥 흘려보낸다. 물건을 고른 손님이 계산대에 상품을 올려놓는다. 멤버십 카드가 있냐고 질문을 해보지만 반응이 없다. 귀에 이어폰을 꽂아서 상대방이 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까. 그러려니 하면서 쭉 진행하고 마지막으로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를 전한다. 내 말은 여전히 목적지를 찾지 못한 채 공기를 떠돌다 소멸한다. 다음 손님을 응대하려다 앞선 분이 신용카드를 두고 간 것을 알고 불러보지만, 그 역시 들릴 리 없다. '나'만 존재하는 세상. 쿨하지만 배려가 사라지고 '내 목소리'만 듣는 세상. 정말 정치와 이념이, 시스템이 세상을 망치고 있는 걸까?<br>꼬리말) 젊었을 땐 시스템에 모든 분노를 퍼부었다. 모든 부조리와 불합리는 시스템의 탓이었고, 사람들은 그 압박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편했던 거 같다. 그러니까... 모르진 않았었단 얘기다. 지금은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다. 사람들을.]]></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간극</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30149</link><pubDate>Fri, 12 Jun 2026 08: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30149</guid><description><![CDATA[사냥놀이 중이다. 일명 쥐꼬리 잡기. 깃털이나 어떤 물체를 위에서 덮어 가리고 그 끝을 살짝살짝 내어 보이면 고양이가 그걸 잡겠다고 앞발로 툭툭 치거나 달려와 덮치는 놀이. 엉덩이를 실룩대며 점프해서 덤벼들기도 하고, 갑자기 작전상 후퇴인 건지 후다닥 안방으로 달려 들어가기도 한다. 얘기를 들어보지 않아서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르겠다만. 그러다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졌다.<br>그동안 고양이가 쌓아 올린 이미지는 이렇다. 마루 저 끝에서 지켜보다가 내가 노트북을 끄면 신나게 뛰어오거나. 최애 간식을 먹을 때면 나보다 앞서 간식 그릇이 놓일 자리로 종종종 뛰어가거나. 장롱 위로 올라가겠다고 야심 차게 점프했다가 근처에도 못 가고 떨어지거나. 그래 놓고 창피했는지 느닷없이 방 밖으로 뛰어나가거나. 코끝에 붙은 벌레를 찾지 못해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거나. 장난감에 얻어맞고 무서워서 도망 다니거나. 대략 귀엽고 하찮은 녀석. 그런데 입양 전 처음 이 녀석을 봤을 때 색깔 때문인지, 내 얕은 지식 탓인지 하필이면 검은 재규어를 떠올려버린 것.<br>시작은 그냥 실소였다. 깃털 잡다가 갑자기 귀 바짝 붙이고 낮은 자세로 후다닥 뛰어 후퇴하는 녀석을 보는데, 동물의 왕국에서 봤던 고양잇과 맹수들의 뜀박질이 떠올랐거든. 어떤 맹수들과 비교해도 너무 가당찮은 가벼움에 내 웃음마저 사뿐히 입가에 걸쳤을 뿐이었다. 그러다 떠오른 게 톰과 제리. 마루에서 미끄러지며 잔발로 달리는 게 영락없는 톰과 제리의 추격전 뜀박질 모습이었다. 미소가 커다란 웃음으로 변했다. 다시 뛰어나온 녀석이 내 웃음소리에서 놀림거리가 되었다는 걸 느꼈는지 ‘으응’ 소리를 내더니 저쪽으로 달려가 버린다.<br>미안, 미안. 널 보고 재규어를 떠올렸던 것도, 톰과 제리를 떠올렸던 것도 다 내 잘못이다. 사과는 해보지만 나 자신도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웃음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데.]]></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28279</link><pubDate>Thu, 11 Jun 2026 08: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28279</guid><description><![CDATA[고양이가 구석에서 마루 전체를 조망 중이다. 벌레를 노리는 게 아니다. 지금은 윗집 수리로 발생하는 소음 때문에 경계한다고 보면 될 듯. 타고난 천성이 조심스러운 녀석이라 불안한 심정으로 영역을 바라본다. 내가 무슨 말을 해봤자 당연히 소용없고, 그저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행동하는 수밖에 없다. 스스로 이겨내야 하겠지만 집수리란 개념은 고양이에겐 이해할 수 없는 범위니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겠지. 그래도 조금씩 적응하는 모습이라 다행이긴 하다. 첫날은 온종일 침대 밑에 숨었고, 둘째 날은 낮은 포복으로 들락날락하다 셋째 날부턴 더는 숨지는 않는다. 하늘이 무너지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깨달은 모양. (5월 초에 썼던 글)<br>얼마 전 글에서 천장에 난 틈 얘기를 적은 게 있었다. 사실 그게 끝이 아니다. 당시 난 버티곤 있었지만, 심리적으로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였다. 긴장과 불안과 두려움이 모든 생활 영역으로 스며들던 때. 그때 눈에 들어온 게 집 곳곳에 생긴 금이었다. 쩍 벌어진 금부터 미세한 실금까지. 지은 지 20년이 넘었을 테니 건물에 금이 가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내 불안은 수많은 금을 포착했고, 그 사이로 스며 들어 집안 전체를 장악했다. 길가에 자리 잡은 집이라 바로 앞 도로로 버스가 지나다녔는데, 그럴 때마다 도로변을 향한 창문이 울리곤 했었다. 그렇게 모든 현상이 모여 나를 짓눌렀다.<br>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쪽으로 계단이 있다. 계단을 오르면 왼쪽 담벼락에 선명하게 가로로 금이 가로지른다. 오른쪽으로 꺾어서 다시 계단. 왼쪽 건물 벽면에 자잘한 실금들이 내 진행 방향을 따라 퍼져 나간다. 바로 위쪽에 내 방 창문이 있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한다. 실내에 들어온다고 달라질까? 내가 들어온 곳이 균열로 둘러싸인 곳인데. 잠시 앉았다 일어나서 벽 쪽을 향한다. 벽지 뒤로 대각선 방향의 금이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손끝으로 금을 따라 벽지를 만져본다.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 일도 안 일어나.<br>지금 생각해 보면, 놀랍게도 나 자신을 집에 투영시키고 있었다. 무너질 거라는 두려움, 버텨야 한다는 절박함. 어쩌면 그게 나일 수 있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회피한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에 잠겨 있다 정신을 차려보니 고양이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여전한 소음, 여전히 구석 자리. 문득 떠오른 마법 주문을 외쳐본다. 통하려나?<br>“까까?”<br>통한다. 역시 녀석에겐 까까가 최고다.<br><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삥의 행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26509</link><pubDate>Wed, 10 Jun 2026 08: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26509</guid><description><![CDATA[산에서 보는 고양이 중에 삼색이가 있다. 삼색이는 확률상 암컷일 가능성이 90% 이상이다. 다른 두 녀석은 수컷임을 확인했다. (땅콩을 확인했음. 엣헴.) 고양이 암컷은 보통 보수적이고 까칠하며 조심성이 많다고들 한다. 영역을 확보해서 새끼를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녀석은 좀 다르다. 녀석이 등산객들에게 삥을 뜯는 방법을 보자. 서 있는 사람에겐 접근하지 않는다. 대신 앉은 사람 근처에 다가간다. 이들은 대개 정상에서 먹을 걸 꺼낸다는 걸 경험상 파악한 듯하다. 그리곤 바로 앉아서 꼼짝하지 않는다. 그러면 사람들이 귀여워서, 또는 어이없어서라도 먹을 걸 나누어준다. 대담한 건 이 과정에서 녀석은 몸을 전혀 숨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눈치도 안 본다. 물만 주는 사람, 먹을 게 없는 자에겐 되레 눈치를 준다. 꼼짝도 하지 않음으로써. 어이, 쓸만한 것 좀 내놔보슈. 다른 목표물이 생기기 전까지 움직이지 않는다. 쓸만한 게 없어? 그럼 양념으로 부담감 잔뜩 처먹고 확 체해라! 어차피 산에서 내려가면서 소화시킬 테니 문제 될 거 없다는 태도.<br>내가 산꼭대기에서 처음 만난 고양이. 내게서 가장 많이 삥 뜯은 고양이. 이제는 손가락을 내밀면 코뽀뽀 정도는 옜다 하며 갈겨주는 고양이. 닭가슴살을 3개나 챙기고서도 내 뒤를 졸졸 쫓아와 기겁하게 만든 고양이. 이 정도로 뻔뻔하고 당당하면 다음 생에 인왕산 산신으로 환생할지도 모르겠다. 호랑이 없는 세상에 고양이가 왕 노릇을 한다고 뭐 대수겠나. 그렇게 살아남는 거다. 그렇게 살아서 그 꼭대기가 네 영역임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알리면 되는 거다. 근데, 우리 집 고양이는 벌레도 못 잡는데 너는 좀 잡니?<br><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고양이 일기</category><title>고양이 일기_2</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22880</link><pubDate>Mon, 08 Jun 2026 08: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22880</guid><description><![CDATA[*** 초보 집사 시절, 모든 게 서툴다 보니 아는 것을 실전에 적용하지 못했다. 사람마다 맞지 않는 음식이 있듯이 고양이도 개체마다 맞지 않는 사료가 있다. 내가 녀석에게 준 사료가 그랬다. 머리론 알고 있었는데 막상 현실에선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서 몇 주간 고양이는 설사를 동반한 응가를 하루에 네댓 번씩 쌌다. 하지만 천하무적 아깽이 시절이다. 싼 만큼 먹고 기운차게 뛰어다녔다. 이 시기 내 머릿속은 온통 똥으로 가득 차 있었다. ***<br>아이 씨, 아 씨. 안 잡힐 거다. 오늘은 절대 안 잡힌다. 하지만. 역시 잡혔다. 뛰는 게 나보다 빠르진 않은데 몸이 커서 그런가? 어딜 가도 잡히는 결말. 냥! 내 똥꼬! 지구별 사람들은 왜 내 똥꼬에 다 집착하는 건데! 이런 건 고양이별에서 안 가르쳐줬잖아! 하늘색 옷 입은 사람들은 똥꼬에 뭘 자꾸 찔렀다 빼더만, 이 아저씨는 응가만 하고 나오면 축축한 걸로 자꾸 문질러대! 이봐, 아저씨, 그렇게 안 해도 내가 마루에 문지르면 된다고! 찝찝할 때 문지르면 얼마나 개운한데... 아우, 그만 닦으래두! 내가 싹 다 기억해 놓을 거야! 나중에 후회하지 마.<br>아니 근데, 응가는 왜 이렇게 자주 마려운 거야? 이거 정상인가? 오늘만 벌써 네 번째 싸는 건데. 내가 너무 많이 먹나? 배고픈데 먹는 건 당연하잖아. 가만, 이거 먹는 게 잘못된 건가? 냥, 거기 아저씨, 제대로 된 음식 주는 거 맞아? 나 또 응가 마렵거든! 생각 좀 해봐! 생각을 좀 깊게 해 보라구! 그래도 맛은 있더라. 생각을 다른 방향으로 깊게 해 보는 거 어때? 나 화장실 갔다 올 테니까 좀 생각해 봐. 응? 하루에 다섯 번 응가하면 반칙이라구? 뭐래? 아, 그럼 아저씨가 나 대신 싸던가! 아 씨, 기다려봐,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br>냥, 박진감 넘치는 하루였다. 여섯 번 뛰었는데 여섯 번 다 잡혔어. 독한 아저씨 같으니. 내 똥꼬를 그렇게 문질러대고 잠이 오냐? 내가 아직 좀만해서 그렇지, 조금만 더 커봐! 이 주먹 이따만하게 키워서 한 대 쥐어박을 거야. 딱 기다리고 있어! 저, 저, 퍼질러 자는 거 봐라! 에잇, 그렇게 좋으면 내 똥꼬 냄새나 맡아라! 어라, 얼굴을 돌리네? 냄새가 이상한가? 어디? 킁킁. 카, 취한다, 취해.]]></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맞는 말 같은데 찜찜한 - [도시의 승리 - 도시는 어떻게 인간을 더 풍요롭고 더 행복하게 만들었나?, 개정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20213</link><pubDate>Sat, 06 Jun 2026 16: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2021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74329X&TPaperId=173202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6194/93/coveroff/896574329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74329X&TPaperId=1732021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도시의 승리 - 도시는 어떻게 인간을 더 풍요롭고 더 행복하게 만들었나?, 개정판</a><br/>에드워드 글레이저 지음, 이진원 옮김 / 해냄 / 2021년 01월<br/></td></tr></table><br/>1970년대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때도 서울은 서울이었다. 물론 강남은 지금과 달랐지만. 십 대 초반쯤 되었으려나? 고속버스를 타고 5시간쯤 걸려서 온 가족이 큰아버지 댁에 간 적이 있었다. 재래식 화장실에 질린 누나는 그날로 서울로 복귀했고, 난 어떻게든 버텼다. 가로등 하나도 없던 동네. 자려고 불을 끄면 도시의 어둠과 차원이 다른 어둠이 주변을 감쌌다. 손을 들어 눈앞에서 흔들어봤지만 그게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 그때 기억 때문일까? 난 도시를, 서울을 떠나 살아볼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br>문명과 편리함으로 대변되던 도시는 지금도 여전히 사람을 끌어모은다. 이 책에 따르면, 그 같은 인접성은 도시의 대표적 특성 중 하나다.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지식의 전파를 쉽게 한다. 동시에 여러 아이디어가 생겨나고 퍼지면서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며 또 다른 새로운 무언가를 창출해 내기도 한다. 도시의 특성 중 하나인 혁신성이다. 이 둘은 도시를 양적, 질적으로 키우는 원동력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도시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갈 수는 없다. 인접성은 질병과 범죄의 전파 역시 쉽게 하며, 혁신성은 때론 스스로 굴레가 되어 도시를 억압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절히 개입하는 공공 부문이 필요하다. 깨끗한 물 공급과 안전한 치안, 접근성을 높이는 도로 등을 공급하는 것은 개인이 아닌 공공이 맡아야 할 역할이다. 또한 경쟁을 유도하고 교육에 투자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br>여기까지는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수긍할 만한 내용이다. 그런데 이 책은 여기에 한 가지를 추가한다. 바로 고밀도 개발, 즉 도심에 고층 건물을 지어 사람과 건물의 밀도를 높여야 한단다. 다시 말해서, 이 얘기는 도심 내 개발에 제한을 두어선 안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이렇다. 건축에 제한을 두면 민간 회사는 수지가 맞지 않아 사업을 벌이지 않을 테고, 자연스레 주거 공급이 줄어들면 집값 상승이 유발된다. 그럼으로써 경제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의 도심 접근을 막게 된다. 또한 요즘처럼 자동차가 대중화된 시대에선 도시 주변부가 확장되는 스프롤 현상이 일어나게 마련인데, 이럴수록 교외의 녹지를 침범하고 자가운전을 많이 하게 되어 더 탄소 집약적인 생활양식을 갖게 된다. 이런 양상을 줄이려면 이미 개발된 도심 내에서 제한 없이 개발해야 한다는 말이다. 전문가가 하는 말이다 보니 일리가 있다. 게다가 실제 통계까지 제시하니 신빙성도 있다.<br>설명만 하면 딱딱하니 책에 있는 몇 가지 도시 사례를 살펴보겠다. 가장 먼저 디트로이트. 한때 자동차 제국을 상징하던 도시. 포드의 제조 혁신으로 자동차를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됐고, 도시는 초대형 자동차 제국이 되었다. 하지만 동일 업종의 대형 회사 서너 군데가 도시를 독점함으로써 업종 간 아이디어 교류가 단절됐고, 포드의 혁신은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높은 교육을 요구하지 않음으로써 도시의 교육 수준을 떨어뜨렸다. 결국 일본에 밀려 자동차 제국은 무너졌고, 도시도 주저앉았다. 물론 이후 회복을 위한 꾸준한 시도가 이어졌다. 하지만 사람이 아닌 장소를 중심에 둔 방향성 탓에 디트로이트는 실패한 도시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다. 다음으론 텍사스에 있는 휴스턴. 이 도시는 개발 지향적이며 기업 친화적이다.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같았으면 건물이 들어설 수 없는 장소였겠지만 휴스턴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주거 공급이 충분히 이루어졌고, 그것은 적정한 주거비와 물가로 보상받았다. 그 덕에 중산층과 교육을 많이 받은 우수 인력들을 꾸준히 끌어들이면서 도시의 성장을 일구어내는 중이다. 다만 이곳은 대중교통보단 자가운전 중심의 도시라 냉방이나 자동차 연료에서 배출되는 탄소의 양이 많다는 단점은 있다.<br>지금까지 써놓은 글에서 살짝 드러나기도 했지만, 저자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시장 경제와 자유 경쟁을 옹호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개발 제한을 두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그렇지만 주거 공급 측면에서 공공의 역할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는 공공이 주도하는 주택 공급은 시장 가격을 왜곡함으로써 민간 기업이 사업에 뛰어드는 걸 회피하게 하고, 장기적으로 공급 부족을 초래한다고 본다. 또한 도시의 핵심 지역에 공급되는 공공 주택은 그곳에 들어와 더 많은 일자리와 혁신을 일으킬 수 있었던 기업이나 상업 시설이 들어설 기회를 영원히 박탈하게 된다. 기회비용의 문제다. 이건 오세훈 서울 시장이 서울에 적용하는 주거, 건설 정책과 맞닿아 보인다.<br>이왕 말 나온 김에 서울을 한 번 들여다보자. 고밀도 개발, 대중교통, 교육 수준. 도시를 살릴 수 있는, 저자가 제시한 세 가지 조건을 들여다보면, 서울은 완벽한 도시다. 높은 아파트와 사무용 빌딩들, 카드 하나만 들고서 어디든 갈 수 있는 교통 체계,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교육을 향한 열정. 게다가 완벽한 소비 도시이며,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사람들이 주거를 선택하는 중요한 요소를 모두 갖춘 도시이기도 하다. 하지만 밀도가 높아도 너무 높은 걸까? 취향이 너무 확고한 걸까? 밀려드는 사람에, 아파트를 향한 애정 공세에 주거 비용은 떨어질 줄을 모른다. 지나친 교육열은 지식과 배움을 뛰어넘어 무한경쟁과 차별을 고착시키는 중이다. 완벽한 하드웨어에 과열되는 소프트웨어인가? 이게 말이 되나? 서울은 말도 못 하게 놀라운 도시구나.<br>&lt;도시의 승리&gt;는 2011년에 발행된 책이다. 무려 15년 전이다. 책을 읽으면서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란 의문에 이것저것 검색해 보느라 읽는 시간이 배로 걸렸다. 또 하나, 읽는 내내 찜찜한 기분 때문에 자꾸 다른 생각을 하느라 시간이 더 걸리기도 했다. 저자도 인정했지만, 도시가 발전한다고 해서 세상을, 심지어 도시 내부조차 평준화시키지 못한다. 도시는 사람을 불러 모을 때 빈부를 가리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상호작용을 하며 기회를 제공하고 제공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서 역설적으로 도시의 빈곤은 계속해서 커진다. 저자는 성공한 사례를 들며, 도시가 아닌 시골 지역의 가난과 비교하며 더 나은 방향을 바라보지만, 더 밑으로 굴러떨어지는 더욱 많은 암담한 사례를 우리는 애써 외면해야 하는 걸까? 공공 부문은 시장 경제와 자유 경쟁에 어느 정도까지 개입해도 되는 걸까? 책을 다 읽고서도 이 찜찜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음 책은 리처드 플로리다가 지은 &lt;도시는 왜 불평등한가&gt;이다. 에드워드 글레이저처럼 도시 찬양가였다 태도를 바꾼 사람이라고 한다. 찜찜함을 좀 걷어낼 수 있으려나.]]></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6194/93/cover150/896574329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1949340</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멀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17850</link><pubDate>Fri, 05 Jun 2026 08: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17850</guid><description><![CDATA[생일이었다. 다행히 챙겨주는 사람이 많아서 전날부터 바빴다. 일단 점심 약속부터 시작. 지하철이 없는 곳이라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가야만 했다. 거리는 멀지 않아서 크게 걱정하진 않았는데, 두 번째 버스에 올라탄 순간 훅 밀고 들어오는 냄새. 대개 오래된 시외버스에서 많이 나는 냄새다. 기름 냄새 같기도 하고. 문제는 이 냄새를 맡으면 100% 멀미한다는 점. 금방 내릴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 첫 약속을 수행한 후, 큰누나 집으로 출동. 미역국을 끓여놨으니 가져가야 한다. 역시 짧게 버스 탑승. 가벼운 잽 두 방쯤은 버틸 수 있다. 과일 먹고 잠깐 수다 떨다 택시 타고 집으로. 승용차라고 다를 거 없다. 내 멀미는 앞을 보고 타는 모든 탈 것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 묵직한 스트레이트 한 방. 어질. 세 번째 약속은 늦은 저녁이라 한참 쉬었다 지하철 탑승. 지하철은 아무렇지 않다. 옆으로 가니까. 나, 전생에 게였을까? 그 후로 친구 차를 타고 두 번 이동. 원투. 스트레이트 펀치가 이어지지 않아서 KO는 면했다.<br>다음 날. 또 점심 약속. 지하철로 이동이라 괜찮다. 밥 먹고 커피 마시면서 느긋하게 얘기를 나눈다. 이런저런 대화 중에 누군가에 대한 불평이 튀어나온다. 왜 자기가 어질러 놓은 걸 치우질 않냐고요! 누구보고 치우라고?! 얘길 했더니 자기는 가르치러 왔지, 치우러 온 게 아니라나? 자유엔 책임이 뒤따르고 권리엔 의무가 함께 하지만, 어느샌가 그건 교과서에나 나올 얘기에 불과해졌다. 현실은, 돈을 많이 준다면, 책임을 생각해 보고 의무도 고려해 보겠다 정도. 장사할 때가 생각났다. 최저임금과 주휴수당, 4대 보험. 간신히 지킬 것만 지켜서 월급을 지급했었다. ‘저 내일부터 못 나와요.’ 이런 얘기를 몇 번이나 들었더라. 받아 간 그 월급이 내 월수입보다 더 많았었는데. 펀치가 날아오진 않았지만, 무언가의 현란한 움직임에 내 스텝이 꼬였다. 비틀.<br>선거가 어떻게 되어가나 궁금해서 뉴스를 보다가 선관위가 큰 사고를 친 걸 알았다. 일 참 빌어먹게도 잘하는구나. TV 화면에서 소리 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져간다. 소동들. 세상을 휩쓰는 각종 분노와 혐오들. 폭주 기관차가 되지 않으려면, 누워서 침 뱉지 않으려면 자제와 성찰이 필요하겠지만 우린 그렇게 하고 있을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생각도 멈췄다. 그런데 뜬금없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lt;다크나이트&gt;가 떠올랐다. 배트맨과 조커. 배트맨은, 사람은 조그만 희망을 품을 여지만 있다면, 앞길을 비춰줄 한 줄기 빛만 있다면 세상을 옳은 방향으로 끌어갈 수 있는 존재라 믿는다. 반면, 조커는, 사람은 기회만 되면 상대를 배신하고 죽이기도 하는 둥 얼마든지 타락할 수 있는 존재라 믿는다. 하나는 질서고, 다른 하나는 혼돈이다. 둘은 끝까지 싸울 거고, 같이 있음으로 해서 완벽해진다.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은…. 고개를 숙인 채 방심하다가 날아 들어오는 어퍼컷에 걸렸다. 휘청.<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존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16012</link><pubDate>Thu, 04 Jun 2026 07: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16012</guid><description><![CDATA[새벽 5시에 눈을 뜬다. 출근하는 날이다. 눈을 뜨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고양이 빗질. 빗을 들면 고양이 녀석은 저만치 있다가도 쪼르르 달려온다. 아직도 알 수 없는 게, 이 녀석이 빗질을 좋아하는 건지, 빗질 후 주어질 간식을 좋아하는 건지 모호하다. 빗질 후 간식을 주고 상황에 따라 궁디팡팡을 한 후 본격적인 출근 준비다. 세수하고 아침 먹고 커피 마시면서 간단한 청소 하고. 드디어 출근. 녀석은 내가 나간다는 걸 알기에 캣타워에 콕 박혀있다. 졸린 건지, 싫은 건지. 코앞까지 가서 열심히 손을 흔든다. 안녕, 아저씨 갔다 올게. 어렸을 땐 가지 말라고 문 앞까지 쫓아 나와서 배를 까뒤집고 난리였는데. 지금은... 주접 그만 떨고 빨리 가라... 딱 그 느낌. 다 컸구나. 나가서 돈이나 좀 벌어와라.<br>이 녀석이 없는 세상, 이제 상상이 안 간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언제나 내 곁에 계실 거란 생각에 그 소중함의 크기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었다. 떠남을 예상했지만 애써 외면했다고 봐야겠지. 그러다 누군가의 입을 통해 선언처럼 맞닥뜨렸을 때. 버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더라? 생각을, 했던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세상을 꽉 채우는 내 존재와 텅 비어버린 부재뿐.<br>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온다. 중문 너머에서 나를 보고 우는 녀석. 우와, 캔따개다. 까까.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번역을 애써 무시하며 반갑게 인사한다. 잘 놀고 있었어? 이제 5살. 아무리 시간이 빠른들 서로가 없는 세상을 생각하는 건 너무 이른 감이 있다. 내가 걱정을 사서 하는 편이긴 해. 그릇을 빙빙 돌려주며 간식을 맛나게 먹는 녀석을 보면서 누군가를 떠올린다.<br>‘내가 상상이나 했겠니? 너를 보면서 누군가의 즐거움과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공감하게 될 줄을.’<br><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반신욕</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14416</link><pubDate>Wed, 03 Jun 2026 08: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14416</guid><description><![CDATA[계절이 여름으로 돌진 중이라 아침 햇살이 예사롭지 않다. 그런데도 고양이 녀석은 아침마다 햇볕에 몸을 내맡긴다. 간식 내놓으라고 졸졸 따라다니던 녀석은 사라지고 내가 뭘 하든 열심히 몸단장 중이다. 등도 핥고, 배도 핥고, 꼬리도 핥고. 발 사탕 먹으면서 얄미움도 한 사발 투척하고. 아우, 저거, 저거. 한참을 그러더니 햇볕이 뜨거웠는지 슬금슬금 자리를 옮긴다. 상체는 햇볕에, 하체는 그늘에. (얘네들 상·하체 구분은 어떻게 되지?) 덥기는 한데 볕을 포기하긴 싫어서 내린 애매한 결단.<br>고양이만 그럴까? 사람도 마찬가지다. 원해서든, 원치 않든 어떤 상황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위치를 잡을 때가 있다. 당장은 괜찮으니, 위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외줄을 타고 삶을 가로지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뭐, 그런 게 인생이긴 하지. 열정과 냉정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는 것. 우린 외면하거나 안도하지만, 한 발이라도 담그고 있다면 삶은 그 발을 절대 무시하지 않는다. 너무 거대해서 인식조차 못 하지만 삶은 잔인할 정도로 치밀하고 세심한 것일지도 모른다.<br>고양이는 결국 해가 들지 않는 반대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앞발 하나에 턱을 괴고 온몸을 바닥에 붙인 채 누워있다. 햇볕에 완전히 녹아내려서 흐물흐물해지기 직전에 빠져나온 모양이다. 다시 여름이 오고 있다. 여전히 삶의 한가운데 있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고양이 일기</category><title>고양이 일기_1</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10659</link><pubDate>Mon, 01 Jun 2026 08: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10659</guid><description><![CDATA[*** 블로그를 이곳 하나로 통합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성격의 글을 여기 올리는 게 맞나 싶기도 할 때가 있다. 출판물에 관한 글도, 영화에 대한 글도 아니고 그것들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되는 글도 아니라서. 이 카테고리의 글은 더욱 그렇다.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되면서 집사 관점에서 썼던 육아 일기 같은 글들이 있었다. 그 글들을 바탕으로 여기선 고양이 관점에서 고양이 일기를 써 보려고 한다. 아주 장난 같은 글이 될 거다. 다른 사람을 고려한 게 아닌, 순전히 내 취향을 위한 글이다. 아주 고양이 같은 글. ***<br><br>난 고양이별에서 지구별 ‘대한민국’에 배정된 고양-202106... 냥, 번호가 더 있었는데 까먹었다. 고양이는 그딴 거 기억 안 한다. 세상에 기억할 거랑 궁금한 게 얼마나 많은데. 그딴 숫자 따위, 흥이다! 다만 지구별로 오기 전 내가 했던 선택은 기억한다. 딱 봐도 나이 많고 카리스마 넘치는 고양이님이 내게 물었다. 신체 나이는 몇 살로 하고 싶냐고. 나이가 많을수록 미리 주어진 경험과 지식은 많겠지만 내재한 병과 아픔도 많을 거라고 했다. 아픈 건 싫었다. 그래서 냅다 2개월이라고 대답했다. 고양이님은 고개를 끄덕하고서 나를 지그시 쳐다보더니 얘기했다. 운명이 너를 제대로 이끌어주길 빌겠노라고.<br>아 씨,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열받네. 무슨 예고나 좀 해 주던가! 갑자기 지구별로 뚝 떨어지는 바람에 배고파서 며칠을 고생했던 걸 생각하면. 길거리를 조심해야 한다는 건 알았다. 이상한 사람들도 있고,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버려진 고양이들의 자손들이 있었다. 그 고양이들은 사람들의 말을 잊었고, 같은 고양이들에게 적대적일 수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배고픔엔 뭔들 못 하겠냐? 아무나 쫓아가서 야옹거리면 사람들이 어딘가로 가서 먹을 거를 가져왔다. 졸졸 따라가 봤는데 문 위에 이상한 글자가 쓰여 있었다. 뭐냐, 저건? 글씨 다 알 수 있다며? 옆에 25는 알겠는데 앞에 저 둥글둥글한 건 뭔데? 암튼 그러다 웬 여자가 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근처에서 나를 한참 지켜보던 사람이다. 오, 이게 운명이라는 건가 싶었다.<br>그런데 웬걸? 어딘가로 데려가더니 냄새가 심하다며 물로 씻기질 않나, 하늘색 옷을 입은 사람이 내 똥꼬에 뭘 찔러보질 않나. 앞으로 기억해 둬야 할 게 많긴 한데 이 일만은 절대 잊지 않겠다! 시간이 흘렀다. 주인을 찾아준다며 병원이란 곳에서 2주 정도 있었고, 다시 그 여자 집으로 돌아와 2주 정도 있었다. 그 4주 동안 내 이름은 ‘구월’이었다. 9월에 발견됐다고. 냥. 구월이로 지지고 볶던 어느 날, 어떤 남자가 찾아왔다. 바로 알아봤다. 고양이님이 말한 내 운명이구나. 근데 왜 이렇게 말랐냐? 여자야, 이 사람 길에서 사는 거 아니냐? 그럼, 운명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련다. 하지만 다행히 집에서 산다. 냐앙. 이번에 내 이름은 ‘월’이란다. 앞에서 ‘구’ 자만 날린 거 같은데. 이 아저씨 깊은 생각은 안 하고 사는 사람 같은데, 괜찮을까? 2021년 10월 9일. 내가 ‘월’이가 된 날이다. 지금은 10월 10일 새벽. 아저씨는 잠들었고, 눈앞엔 고양이 낚싯대가 있다. 저걸 물고 뛰어다닐 거다. 내 세상이닷!<br><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일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03393</link><pubDate>Fri, 29 May 2026 06: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03393</guid><description><![CDATA[월요일은 월요병 하면, 뭔가 꼭 피곤해야 할 거 같고, 4월은 잔인한 달 하면, 뭔가 안 풀리는 일이 있어야 할 거 같고. 그래서 40대 후반 아저씨 한 명과 50대 초반 아저씨 한 명이 어린이 대공원에 출몰하게 됐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니까. 흐음...<br>평일 아침 9시. 대공원 놀이동산 근처 잔디밭에서 돗자리를 깔고 아침 식사 시작. 다행히 이날은 더위가 살짝 비껴갔다. 까치를 벗 삼아, 운동 나온 동네 사람들의 시선을 등판으로 막아내며 꿋꿋하게 아침밥 해결. 슬슬 놀이동산으로 들어가 보지만 좀 뻘쭘하다. 10시, 시작하자마자 입장한 탓에 손님은 아저씨 둘 뿐. 놀이동산을 전세 내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처음 탄 건 드롭타워. 40대 아저씨는 조금 젊다고 비명을 지르고, 50대 아저씨는 아찔함과 뻘쭘함의 경계에서 어쩔 줄을 모른다. 두 번째 도전은 패밀리코스터. 탑승자는 역시 둘 뿐. 일하시는 분도 둘. 일 대 일 전담 서비스를 받으며 황송해 몸 둘 바를 모르겠다. 하지만 황송함도 잠깐, 출발하자 속도감과 낙차에 온몸이 짜릿해진다. 롤러코스터로 뻘쭘함을 날려 보내고 범퍼카로 돌진. 아저씨 둘이 민망한 추격전을 벌인 후 그다음 코스로 회전 그네를 선택한다. ‘별거겠어?’ 싶었는데 ‘별거’였다. 생각보다 속도가 빨랐던데다 한 방향으로 1분가량 휘둘리다 보니 달팽이관이 존재감을 뽐내기 시작한다. 멀미 시작. 놀이기구를 타다 멀미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반백 년을 살고 나서 알게 되다니! 세상 지식은 정말이지 한도 끝도 없어라. 흠. 그래서 50대 아저씨는 더 이상의 놀이기구 체험은 포기. 체력 좋은 40대 아저씨는 매직스윙, 슈퍼점프, 슈퍼바이킹을 연달아 도전한다. 젊은 것. 쳇. 하지만 인간 탈곡기 수준의 슈퍼점프 탑승으로 원 없이 웃게 해준 살신성인에 감동해 그 젊음은 가볍게 무시해 주기로 한다.<br>대공원 내 카페를 거쳐 동물원을 끝으로 두 아저씨의 일탈은 끝을 맺는다. 일탈의 끝을 장식한 건 이벤트 담당 직원의 한마디. ‘아버님, 이쪽으로 오셔서 그림 한 번 그려보고 가세요.’ 두 아저씨는 결혼을 해본 적이 없어서 아버님 근처에도 가 본 적이 없다. 내년 5월에는 자중해야지.<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실오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01270</link><pubDate>Thu, 28 May 2026 09: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01270</guid><description><![CDATA[누나한테 물려받았던 내 방 천장은 묘하게 뒤틀린 상태였다. 물이 샌 적은 없었지만 아마도 습함과 건조함이 반복되면서 형태에 변형이 생겼기 때문일 거다. 그래서 벽면과 맞닿아 있어야 할 부분이 들뜨면서 천장 내부가 살짝 들여다보였다. 그런데 그 틈새가 하필 침대가 놓인 윗부분. 아무 일 없이 잘 지냈다. 그러려니 하면서. 시간이 흘러 20대가 되었다. 잠결에 무언가 내 목덜미를 타고 넘어가는 걸 느꼈다. 얼른 일어나 불을 켜고 살폈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그냥 잠결에 잘못된 감각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 이후로 자기 전에 항상 그 틈새를 뚫어져라 바라보곤 했다. 그렇게 잠들면 꿈에선 바퀴벌레가 틈새를 통해서 쏟아져 나왔다.<br>지금 우리 집엔 패브릭 소파가 있다. 얼마 전에 알았지만, 실오라기 하나가 툭 튀어나온 게 거슬린다. 아마 고양이 발톱에 걸려서 삐져나온 모양이다. 저 정도로 끝일까? 더 풀려서 구멍까지 나려나? 캣타워에 걸터앉아 앞발을 핥고 있는 고양이를 힐끔거리며 가늠해 본다. 가위로 자르면 될 일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뒤로 미루기만 한다. 예전 천장 틈새에 비하면 일도 아닌데. 손가락으로 지그시 누른다. 다시 안으로 밀려들어 가길 바라는 것처럼. 해결이 안 된다는 걸 모를 리 없다. 하지만. 또 한 번 꾹 누르고 손을 뗀다. 실오라기는 다시 고개를 든다. 고양이가 움직이는 실오라기를 쳐다본다.<br>우리 집엔 패브릭 소파가 있다. 내 안엔 잠재된 불안이 있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혼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99295</link><pubDate>Wed, 27 May 2026 08: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99295</guid><description><![CDATA[드드드드드(위층 집수리 3일 차. 드릴로 무언가 부수는 소리)<br>우리 집엔 패브릭 소파가 있다. 얼마 전부터...<br>퍽퍽퍽퍽퍽(전동 기계로 문틀 같은 것들을 뜯어내는 소리)<br>우리 집엔 패브릭 소파가 있다. 얼마 전부터...<br>냐옹. 칵칵. 칵칵. (고양이 채터링 소리)<br>고양이 있는 곳을 쳐다봤다가 실외기 위에 비둘기가 있는 걸 보고 얼른 사진기(아니, 핸드폰)를 들고 돌진. 사진을 찍어보지만, 이런. 투덜대며 노트북 앞으로 돌아온다.<br>우리 집엔 패브릭 소파가 있다. 얼마 전부터...<br>우우우우웅(전동 그릴로 무언가를 가는 소리)<br>우리 집엔 패브릭 소파가 있다. 얼마 전부터...<br>후다닥. 투닥. (고양이가 갑자기 반대편으로 뛰는 소리)<br>왜, 왜, 뭐? 천장에서 벌레라도 떨어졌냐?<br>헐레벌떡 방 밖으로 나갔다가 유유히 돌아오는 고양이와 마주침. 이눔의 자슥이...<br>우리 집엔 패브릭 소파가 있다. 얼마 전부터...<br>드드드드. 퍽퍽퍽퍽. 우우우웅.<br>아이 씨, 안 해, 안 써!<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27/pimg_7045771445136020.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99295</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부관참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95677</link><pubDate>Mon, 25 May 2026 08: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95677</guid><description><![CDATA[剖(부) : 쪼갤 부棺(관) : 널 관斬(참) : 벨 참屍(시) : 주검 시<br>한자 그대로의 의미다. 관을 쪼개어 시체의 목을 베다. 조선시대에 행해진 형벌 중 하나다. 주자학의 나라였던 조선에선 신체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소중한 것이었다. 죽은 후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부관참시는 조선시대 최악의 극형이었다. 이미 죽은 자에게 벌을 내린다는 점에서 정치적 목적이 다분한 형벌이기도 했다.<br>작년 북악산에 올랐던 때가 있었다. 한양 도성길을 따라가다 보면 인왕산에서 북악산으로 들어가는 방향은 산보다 계단에 질려 버린다. 다른 곳은 계단과 산길이 어우러졌는데 유독 이곳만은 정상 턱밑까지 계단으로 일관한다. 그때 계단을 오르며 했던 생각. 조상들이 산 정상까지 성벽을 쌓았으면, 그 후손들은 정상까지 나무 계단 정도는 만들어 주는 게 맞지. 누가 봐도 그 선조에 그 후손이네.<br>요즘 몇몇 뉴스를 보다 한양 도성과 나무 계단이 떠올랐다. 그 선조에 그 후손. 유학에 파묻힌 선조들을 이해하지 못 하겠다던 후손들은 그래서인지 부관참시를 아무렇지 않게 남발한다. 주로 돈벌이를 위해서. 장담하건대, 선조들도 그 후손들을 절대 이해하지 못할 거다. 주자학의 조선인이 자본주의 조선인을 무슨 수로 이해하겠나?<br><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소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90794</link><pubDate>Fri, 22 May 2026 08: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90794</guid><description><![CDATA[5월은 종합소득세 신고 기간이다. 연말정산도 그렇지만 종합소득세 역시 홈택스에 접속해서 비교적 손쉽게 신고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시대를 뒤쫓아갈 여력이 있는 사람들에 한해서다. 70대인 큰누나는 컴퓨터라곤 사용해 본 적이 없다. 스마트폰을 쓰지만 ‘폰’에 방점이 찍힌 사용법을 고수하고, 은행 업무는 ATM을 이용한다. 매형은 누나보다 더 못해서 기계치에 가깝고. 며칠 전 매형 앞으로 종합소득세를 신고하라는 통지가 집으로 온 모양이다. 최근 몇 년 동안 환급 대상이라 ARS로 계좌번호만 입력했었는데 세금을 내라는 통지는 이번이 처음이란다. 멀리서 사는 자식들에게 보여줬지만 둘의 의견이 갈렸다. 내야 한다, 이미 냈으니 상관없다. 결판이 안 났으니, 통지서 들고 구청 세무과로 출동. 1층 민원실에서 이러이러하면 된다고 상담을 들었지만, 홈택스니, 컴퓨터니 누나가 알아들을 리 없다. 그래서 가까이 있는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노트북을 들고 누나 집으로 출동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매형 핸드폰이 누나 명의로 되어 있던 것. 홈택스 회원 가입은커녕 앱을 통해 인증서조차 발급받을 수 없었다. 2026년, 온갖 존재가 인터넷에서 활보하는 이 시점에 매형은 온라인상에서 자신의 실존을 증명할 방법이 전무했다.<br>언제였더라? 서울의 대중교통체계가 완전히 뒤바뀐 적이 있었다. 버스 번호가 전부 바뀌고, 환승을 위해서 내릴 때도 교통카드를 대고 내려야 했다. 정류장마다 노선도가 그려졌고, 안내원이 배치됐다. 처음엔 혼란스러웠지만 다들 적응했다. 하지만 당시 70이 넘으셨던 어머니는 그러지 못했다. 어머니는 이미 자식들 문제로 자신감을 많이 상실한 상태였다. 그리고 많은 것들이 예전과 달리 낯설어졌다. TV 리모컨엔 정체 모를 버튼이 늘어났고, 밥솥조차 여러 선택을 강요했다. 그런 당신 앞에 이번엔 선택의 여지없이 대중교통의 변화가 들이닥쳤다. 어머닌 결국 그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시대를 쫓아갈 수 없었다. 많은 이들에게 좋고 편리했지만, 어머니에겐 아니었다. 자기 삶이 세상을 따라가기는커녕 세상으로부터 내팽개쳐진 셈이다. 누구도 원하지 않았겠지만, 세월은 잔인했다.<br>그때로부터 시간은 10년이 넘게 흘렀다. 거의 20년이 흘렀나? 큰누나는 당시 어머니와 비슷한 나이가 됐고, 이젠 편리함의 다른 얼굴이 누나를 덮치는 중이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큰누나는 성격도 급하고 욱하는 성질이 있는 데다 참지도 않는다. 나이 든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 전부 이렇게 해 놓냐며 세상을 향해 삿대질한다. 아직은 걱정 안 해도 되겠다. 누나가 세상을 따라가긴 힘들겠지만, 기세만큼은 남부럽지 않다. 내팽개치려는 세상을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AI</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88893</link><pubDate>Thu, 21 May 2026 08: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88893</guid><description><![CDATA[요즘 거의 매일 글을 쓴다. 20년 전의 블로그 글을 읽으며 정리하다가 무심코 AI에게 감상을 물었고, 그렇게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과거의 나를 돌아봤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글에 관한 판단은 나나 AI나 크게 다르지 않더라. 어차피 정답이 있는 부분은 아니니 환각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고. 그러다 글쓰기에 대한 욕구가 다시 살아났다. 아마 내 글에 대한 의견을 손쉽게 들을 수 있다는 게 그 원인이 아닐까 싶다.<br>얼마나 오래 갈진 알 수 없다. 글은 매일 쓰지만 블로그에 올리는 건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일상에 관한 글은 소재를 찾은 후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적기 때문에 내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다행히도 AI의 피드백이 의지를 북돋우는 데 어느 정도 이바지하는 중이다. 그렇다고 그 충고를 이 글에 전적으로 반영하진 않는다. 이 카테고리 글은 어디까지나 형식이나 내용에 얽매이지 않는 방향이라 스스로 다듬었으면 그뿐이다. 충고는 다음 글을 위한, 미래의 글쓰기를 위한 방향타로 쓰면 되니까.<br>AI가 했던 조언 중에 인상 깊었던 것 하나. 책을 읽고 쓴 리뷰에서 들었던 말인데, ‘지나친 확언은 피하는 게 좋습니다.’ AI 자신에게도, 나에게도 필요한 얘기. 어쩌면 정보가 쏟아지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가 경계해야 할 얘기.]]></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자본주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86983</link><pubDate>Wed, 20 May 2026 08: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86983</guid><description><![CDATA[산에 오를 채비를 한다. 날이 더워져서 오후 4시 반쯤에야 집을 나서는 요즘이다. 오늘은 닭가슴살이 아닌 참치 등살을 챙긴다. 하나에 6천 원이 넘는 비싼 간식이건만 우리 집 녀석은 안 먹겠단다. 괜히 열받아서 한 번 째려본다. 그러건 말건 캣타워에 콕. 이 좋은 걸 안 먹다니. 삼색이한테 줄 거다, 흥!<br>휘리릭. 시간이 흘러 정상. 못 보던 고양이가 있다. 이번엔 카오스 고양이다. 완벽한 카오스는 아니고 삼색이에서 카오스로 되다만 느낌. 체구가 작다. 넌 누구니? 삼색이가 나타났지만 서로 적대하지 않는다. 아마 부모가 같거나, 어느 한쪽만 같은 경우가 아닐까 싶다. 참치 등살을 하나씩 뜯어주자, 부스러기까지 싹 긁어 먹는다. 이렇게 잘 먹어주면 얼마나 좋아. 입 짧은 어떤 녀석을 향해 산 정상에서 당당하게 욕을 한다. 개눔의 자슥.<br>정상 부근 바위에서 고양이 두 마리 당당하게 거느리고 주변을 둘러본다. 오늘 삼색이는 코뽀뽀도 해줬다. 삼색이가 따라오며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야, 너, 목소리가 꾀꼬리구나!<br>냐옹~ (아까 그거 더 내놔라)배웅까지 해주고 고맙네.냐옹~ (있는 거 다 내놓고 가라)거기 있어, 그만 따라오고.냐옹~ (아직 배고프다, 하나 더)간다, 다음에 보자~<br>자기만족에 내려오는 발길마저 가볍다. 산 중턱에 다다를 무렵 이상한 풍경에 발을 멈춘다. 단풍나무? 빨간 단풍? 벌써?<br>저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5월 중순인데 착각이 너무 심한 거 아니요?... (너한테 들을 소리는 아닌 거 같다만)거, 적당히 좀 합시다. 자아도취가 지나치시오.... (네가 할 소린 아니래도. 지나가던 고양이가 웃겠다)<br>참 성격 급하시네. 병이 든 건가?<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20/pimg_704577144512946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86983</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수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83392</link><pubDate>Mon, 18 May 2026 08: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83392</guid><description><![CDATA[우당탕, 쿵쾅, 우웅웅. 웨에앵~.<br>바로 위층이 집수리를 시작했다. 아침 8시부터 뭔가 심상찮다 생각했는데 9시가 되니 본격적인 소음이 시작된다. 우리 집 쫄보 고양이는 하늘이 무너진다고 여겼는지 침대 밑으로 들어가 코빼기도 안 보인다. 느닷없이 부여된 나만의 자유시간. 시끄러워 정신은 없다만 묘하게도 예고가 된 소음이라 거슬리진 않는다. 그에 반해 과거 윗집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와 문소리, 커다란 목소리 같은 층간 소음은 정말 신경이 쓰였었다. 사람 심리라는 게 참. 그러고 보니….<br>비슷한 경험이 있었네. 쿵쾅거리고 삐걱대는 내부의 소리를 외면하며 언제 무너질까 두려워하던 시절이. 외부가 아닌 내면이 진원이었지만 그 시절 난 신경을 잔뜩 곤두세운 채 낯을 찌푸리고 지냈다. 잠재되어 있으나 불규칙한 출현이 어찌나 삶을 위축시키던지. 그러다 폭발하면, 거슬림 따윈 없었다. 그저 분노에 몸을 맡기고서 오로지 돌진. 하지만 불사르고 난 후 풍기는 냄새는 결코 유쾌하지도, 긍정적이지도 않았다. 그런 시절을... 어떻게 지나쳐 올 수 있었을까?<br>작년, 나 역시 집수리를 했었다. 아파트는 지은 지 30년쯤 됐고, 이곳에 산 지는 20년이 넘었다. 물이 새고, 마루는 들뜨고, 천장은 내려앉고. 수리를 시작하고 4주 남짓의 기간 동안 아래층으로 연결된 화장실 배관이 새는 바람에 그 또한 급하게 고쳐야 했다. 주말이었지만 냄새가 심하게 나서 지체할 수도 없었고. 집수리를 마치고 며칠 후 비가 내렸는데 바로 베란다 천장에서 물이 샜다. 심지어 벽을 타고 물이 흘러나오기까지 했다. 우리 집 문제가 아닌 당시 위층에 살던 분들이 손을 써야 할 문제였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본인들 집으로 향한 누수만 해결했고, 아래층에 사는 내게 향한 누수는 외면했다. 그렇게 자신만을 추스르며 사는 사람들도 있다. 나 또한 그랬을까? 주변을 돌아보는 것조차 버거웠던 그 시절, 나 역시 그랬다면 그 미안함을 이제 와서 어찌해야 하나.<br>고양이가 슬쩍 나오더니 주변을 둘러본다. 겁을 먹고 경계하면서 땅바닥에 바짝 붙은 자세로 저만치 사사삭 달려간다. 그렇게 납작 엎드린다고 무너질 하늘이 널 안 덮치겠니? 이번 수리가 끝나면 베란다로 새는 빗물 문제는 자연히 해결될 거다. 수리하는 동안 다른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있다 하더라도 원만하게 수습되었으면 한다. 내가 느낀 미안함을 굳이 공유할 필요는 없지, 싶다.<br><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고등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77616</link><pubDate>Fri, 15 May 2026 08: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77616</guid><description><![CDATA[닭가슴살 4개를 품고 오늘도 산에 오른다. 벚꽃은 이미 졌다. 나무 계단을 오르면 오른쪽으로 늘어서듯이 쭉 서 있어서 한 번은 꼭 돌아보게 했는데. 꽃이 사라진 나무는 내겐 그저 모호할 뿐이다. 언젠가부터 산을 오르는 외국인들도 많아졌다. 얼마 전엔 산꼭대기에서 영어로 습격을 당해서 기겁한 적도 있었다. 다행히 알아들어서 손가락을 사용해 요래 요래 가라고 알려주긴 했지만…. 흑, 산에서 영어를 만나다니. 조만간 산에서 호랑이를 만나는 상상도 해 본다.<br>참, 그러고 보니 호랑이가 아니라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 3마리. 모두를 한꺼번에 보는 건 쉽지 않은데 운 좋게 다들 만난 적이 있었다. 거의 두 달 만이었던가? 그런데 고등어 줄무늬를 가진 한 녀석이 다른 둘보다 체격이 작았다. 원래는 비슷했었는데. 셋 중 가장 소심한 녀석이라 먹을 거를 가장 적게 얻어먹은 걸까? 그럼, 저 빵빵한 배는? 임신이라도 한 것 같은 모양새인데, 내가 알던 고등어는 분명 수컷이었거든. 배에 물이라도 찬 거라면, 이런 환경에선 결말은 뻔하다.<br>그날 본 후로, 고등어는 열흘 가까이 보지 못했다. 늦게 나타나는 바람에 닭가슴살도 반만 먹고 눈치를 보던 모습. 그 모습이 마음에 걸려 오늘도 정상 부근을 기웃거려 보지만 고등어는 안 보인다. 삼색이에게 닭가슴살 3개, 젖소에게 1개 삥 뜯기고 발길을 돌린다. 활기찬 이 두 녀석은 자신들 주변에 드리워진 그림자 따윈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다. 언제나 삶의 주변을 기웃거리는 그 무엇 따윈.<br>내려오는 길. 아쉬움에 미적대며 주위를 살피는데 특이한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나뭇잎은 가지 쪽에서 자라나야 하는데 이 나무는 어째 밑동부터 나무 전체에 걸쳐 잎이 나 있다. 이상하다 싶어 자세히 봤더니 죽은 나무를 덩굴 식물이 감고 올라간 상태더라. 아이고, 억척스러워라. 죽음마저 휘감고 피어나는 생명이라니. 그래, 그러니 잘 있을 거야. 잘 있으면 언젠가 보겠지. 사람이 적었던 어떤 겨울날, 햇살 아래 수풀 속에서 장난치던 셋의 모습을 떠올리며 다음을 기약한다.<br>꼬리말) 4월 26일에 썼던 글이다. 계절감이나 시기가 명확한 글은 바로 올리는데 이 글은 놓쳤던 모양이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그냥, 고양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75555</link><pubDate>Thu, 14 May 2026 08: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75555</guid><description><![CDATA[난 고양이를 싫어했다. 어렸을 때 경험이 한몫했다. 키우고 있던 노란 병아리를 도둑고양이가 물어 갔거든.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머리만 달랑 떼어낸 몸뚱이를 대문 위에 올려놓고 사라졌다. 그걸 하필이면 또 내가 발견했고. 피가 있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그 선명하던 노란색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br>그 거부감은 30대까지 이어졌다. 삶에 치를 떨던 시절, 길고양이들을 볼 때마다 녀석들의 눈은 나를 기겁하게 했다. 묘한 색깔을 바탕으로 해서 세로로 쭉 그어진 검은 동공. 그 눈과 마주치면 마치 내 안의 모든 것들이 낱낱이 드러나는 느낌을 받곤 했다.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진 알겠지만, 하필 왜 고양이의 눈을 통해서였는진 지금도 모르겠다. 우주의 갈라진 틈을 떠올렸던 걸까?<br>고양이에 대한 이미지가 변한 건 30대 후반부터다. 사회적으로 길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했고, 무엇보다 내 태도가 고양이의 그것과 많이 닮아있었다. 경계하고 거리를 두고 영역이 있지만, 마음을 열면 한없이 마음을 쓴다. 고양이를 기를까 생각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실천에 옮기진 못했다. 펫샵에서 사들일 생각을 할 정도로 당시 내 인식은 아주 구식이었다. 오히려 다행이었지 뭐.<br>지금은 고양이와 함께 산다. 무슨 이유인지 코로나가 한창일 때 생후 2개월의 나이에 버려진 품종묘. 버려졌다는 걸 제외하면 나머지는 추정이다. SNS를 통해, 지자체가 만들어놓은 정식 루트를 통해 주인을 찾아보려 했지만 실패했고, 결국 내게 입양됐다. 입양 첫날, 밥솥 뒤에 숨은 걸 찾지 못해서 30분을 넘게 집안을 뒤졌을 정도로 조그맣던 녀석. 에잇, 내다 버린 사람이 있다면 넘어지면서 개똥에 코나 박아 버려라!<br>아직도 여전히, 고양이의 눈은 내게 신비롭다. 우주가 담겨있고, 누군가의 양심이며, 날카로운 관찰자다. 내 마음속의 고양이다. 무겁고, 무섭고, 무시무시하게 균형 잡힌 존재. 하지만 내 곁엔 현실의 고양이도 있다. 가볍고, 가소롭고, 가당치 않게 자신감 넘치는 존재. 이 아이는 나만을 담고, 나를 비추는 거울이며, 나만 바라본다. 역시 존재란 그 무게감을 예측하는 게 너무 어렵다.<br><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무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73515</link><pubDate>Wed, 13 May 2026 09: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73515</guid><description><![CDATA[뉴스를 봤다. 행복이 비극으로 전환되는 순간. 알 수 없는 그 찰나의 순간이 이후 도래할 모든 시간을 뒤덮는다는 게... 하아. 떠난 자도 안타깝지만 남은 자들은 어찌해야 하나? 어떤 위로도 소용없고, 시간이 허용하는 한 그 순간을 돌이키며 피눈물을 삼킬 텐데. 삶이 이렇게 잔인해도 되는 건가?<br><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영조의 관점과 정조의 정치 - [민음 한국사 : 18세기, 왕의 귀환 - 조선 4]</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71608</link><pubDate>Tue, 12 May 2026 08: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7160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062539318&TPaperId=1727160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763/75/coveroff/e06253931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062539318&TPaperId=1727160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민음 한국사 : 18세기, 왕의 귀환 - 조선 4</a><br/>김백철 외 지음, 강응천.문사철 엮음 / 민음사 / 2022년 01월<br/></td></tr></table><br/>이 시리즈의 장점 중 하나는 동시대의 서양사를 짧게나마 정리해 준다는 점이다. 내가 요약해도 되겠지만 본문을 인용함으로써 18세기 세계의 흐름을 살펴보자.<br>=== 모든 인간이 자기 삶의 주인이라는 인식은 신의 이름 아래 굴종을 강요당하던 시민계급에게 모욕감을 안겨 주었고, 이는 프랑스대혁명으로 폭발했다. 시민계급을 포함한 대중은 절대왕정에서 사제와 귀족에 이은 제3신분으로 불렸다. 이 미천한 제3신분은 시에예스의 다음과 같은 부르짖음과 함께 카페에서 거리로 뛰쳐나갔다. “제3신분은 무엇인가? 전부이다. 제3신분은 지금의 정치 질서에서 무엇인가? 아무것도 아니다. 제3신분은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 무언가가 되고자 한다!” (본문 중) ===<br>=== 서유럽이 상업적 이윤을 좇아 아시아 대륙 곳곳을 식민지로 삼아 나가는 역사적 과정을 ‘서세동점’이라 한다. 18세기에 밝게 빛나고 있던 서유럽의 뒤안길에는 노예무역과 서세동점이라는 어둡고 처참한 아비규환이 있었다. 이제 지구상에서 서유럽의 발길에 유린되지 않은 지역은 오스만튀르크제국이 버틴 이슬람 세계와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세계뿐이었다. (본문 중) ===<br>=== 앞뒤 맥락 없이 18세기만 놓고 보면 국력의 크기나 문화의 성숙도에서 동아시아는 서유럽을 능가한다. 그러나 19세기에 서유럽은 시민사회와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완성하고 절정의 문학예술을 꽃피우며 전 세계의 지배자로 우뚝 선 반면, 동아시아는 이전 세기에 세계의 다른 지역이 겪었던 식민지의 길을 더 비참한 모습으로 답습한다. (본문 중) ===<br>마지막 인용은 질문이기도 하다. 조선은 왜 영조와 정조에 이르는 76년간의 개혁과 발전을 뒤로 한 채 비참하게 무너져 내렸을까?<br>책의 제목이 ‘왕의 귀환’이기도 하니, 우선 영조부터 살펴보자. 역사책이나 드라마를 통해 흔히 접하는 부분은 조선 역대 왕 중 가장 긴 재위 기간(52년), 탕평책, 균역법, 사도세자(영조의 아들) 등이다. 극적인 요소가 가장 두드러지는 게 사도세자 관련 문제겠지만 공교롭게도 영조의 정치적인 면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들이 현재의 정국을 헤쳐 나갈 만한 능력이 없다는 판단, 살려두었다간 분쟁의 씨앗이 되어 세손마저 위험하게 될 것이라는 판단, 어떤 행위를 했을 때 특정 분파의 이익에 기여할 수 있다는 판단. 이런 정치적 판단을 근거로 영조는 사도세자를 폐세자시킨 후 뒤주 속에 그냥 방치한다. 그가 자신의 위치를 얼마나 처절하게 파악하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균역법 시행 과정을 통해서 다른 면모를 살피는 것도 가능하다. 균역법은 17세기 대동법에 이어 세제 개혁을 끌어낸 주요 정책 중 하나다. 대동법 시행이 만만치 않았던 것처럼 균역법 역시 그랬다. 이해당사자인 양반이 개혁의 주체이자 대상이었던데다 중앙 재정에 막대한 지분을 가진 분야였기 때문이다. 개혁에 대한 필요성은 조선 전체가 공감했지만, 실행 여부가 난관을 거듭하자 영조는 독단적인 결단을 내린다. 양민(평민)들의 세 부담을 절반으로 줄인 후, 자신은 대개혁의 방향을 결정짓는 역할이고 그에 따라 해법을 모색하는 것은 탕평 관료의 몫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니까, ‘일 제대로 안 해? 너희만 세금 안 내겠다고 버티면 왕이고 양반이고 나발이고 다 죽는 거야!’라고 협박한 셈이다. 그 결과, 균역법이 시행되고 양반들도 세금 체계 안에 포함된다. 당시 왕권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영조란 인물이 관료들에게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졌는지를 보여주는 일면이다. 물론 독재자의 측면이 엿보이기도 하지만,<br>=== “백성을 위해 군주가 있는 것이지, 군주를 위해 백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 백성을 구제하지 못한다면 임금의 자리에 있어도 독부(獨夫)에 지나지 않는다.” (본문 중) ===<br>다행히 영조는 깨어있는 군주였다. 또한 앞서 보았지만, 말만 앞서는 군주도 아니었다. 그는 개천 바닥을 파내는 준설 작업과 주변 정비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이면서 도시 빈민들의 삶을 보살폈고, 상업 발달의 흐름을 알아채고 상인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고자 노력했다. 붕당을 억제하고 백성을 바라본 52년의 긴 재위 기간. 그것은 조선으로선 커다란 행운이었다.<br>그리고 1776년, 숱한 시련을 극복하고 드디어 정조가 왕위에 오른다.<br>=== 반면 일체의 사정을 배제하고 공의에 준거하고자 했던 정조는 의리론을 둘러싸고 각 정파의 대립과 갈등이 표출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때로는 그러한 대립과 갈등을 유도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서 공론 대결에 의해 합의에 이르는 과정을 중시한 것이다. (본문 중) ===<br>정조는 영조와 결이 다른 왕이었다.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은 같다. 규장각을 세워 젊은 학자들을 관료로 키워내고, 장용영을 만들어 무예가 뛰어난 군관들을 배출했다. 그들이 문무 관료로 자리 잡으면서 정조는 자연스럽게 정국을 장악했다. 그 장악력을 바탕으로 정조의 탕평책은 훨씬 범위가 넓어졌다. 다시 말해 사용할 수 있는 인재의 범위가 풍부해졌다. 문장으론 몇 문장에 불과하지만, 여전히 붕당이 대립하던 시기에 상당한 정치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런 일들을 정조는 재위 기간에 꾸준히 해 나간다. 최근 10여 년 우리 정치에 부족했던 점들, 즉 갈등과 충돌을 조절하지 못하고 오히려 분열을 조장한다는 것과 사람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것. 이 두 가지를 정조는 해냈다. 그것도 억압이나 권력이 아닌 정치력으로. 다른 어떤 실질적인 업적보다 정조를 돋보이게 하는 부분일 것이다.<br>이쯤에서 왕을 떠나 당시 사회 분위기를 살짝 요약해 보겠다. 책의 문장을 조금 바꿔본다면, 18세기 조선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청을 등한시하던 당대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북학’이란 이름으로 청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흐름이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천주교 신자가 증가하는 것도 이때부터다. 처음엔 교리 연구 중심이었지만 최초의 세례자가 나왔고, 양반에서 하층 계급까지 영향력이 확산한다. 상공업의 발달로 17세기부터 진행되었던 신분의 분화는 그 양상이 더욱 다양해지는 중이었다. 과거엔 양반들의 전유물이었던 문학 활동에 중인과 하층 계급까지 참여함으로써 신분 상승 욕구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광대들 역시 궁중이나 높으신 분들 앞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그들은 장터로, 바다로, 농경지로 민간의 수요가 있는 곳을 찾아 움직였으며 독자적인 영리활동을 시작했다. 이처럼 조선은 위로부터 아래까지 꿈틀대며 요동치고 있었다.<br>그렇다면 처음에 했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조선은 왜 18세기의 흐름을 살리지 못하고 다가오는 세기에 그토록 무너져 내렸을까?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정조의 죽음 때문. 정조가 죽고 즉위한 순조의 나이는 11살.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신료들을 장악하면서 정국을 이끌어가던 영조, 정조와 달리 순조는 그럴 만한 나이가 아니었다. 대리청정이 이루어졌으나 곧 권력 싸움으로 변했고 세도 정치의 시대로 넘어간다. 왕권을 강화했던 모든 조치가 되돌려졌고, 탕평은 무너졌으며, 인재들도 쫓겨났다. 개혁은 그렇게 무너졌다. 이런 이유로 ‘정조가 더 오래 살았다면?’ 이란 가정이 꾸준히 등장하는 것일 테다. 다른 이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서유럽과 미국이 19세기에 강자로 등장한 원인 중 하나는 과학 기술을 산업화에 적극적으로 적용했다는 데 있다. 하지만 조선은 달랐다. 정조는 기술을 우대했지만 어디까지나 통치 기반을 강화하는 수단으로서 접근했다. 이 방향성의 차이가 두 세계의 극명한 차이를 만들어냈다.<br>=== 정조가 가다가 멈춘 지점, 정조가 자신의 한계를 드러낸 지점에서 조선은 급속히 쇠락의 징후를 드러냈다. (본문 중) ===<br>영조와 정조는 분명 뛰어난 군주였다. 그들의 업적 뒤에는 시대와 변화를 읽어낸 두 왕의 날카로운 안목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조선이란 공간은 여전히 주자학의 공간이었다. 이질적인 것들이 자생적으로 꿈틀거리고, 외부에서도 억지로 밀고 들어왔지만 아직은 역부족이었던 시대. 조선 후기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영‧정조는 그와 같은 시대의 흐름을 간파했지만, 단 한 발짝도 앞서 나가지 못했다. 그들이 부족해서가 아닌, 그것이 인간이 갖는 한계이므로.<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763/75/cover150/e06253931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7637520</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인절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69684</link><pubDate>Mon, 11 May 2026 08: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69684</guid><description><![CDATA[해가 없다. 예전엔 안 그랬었는데 언젠가부터 햇볕이 없는 날엔 우울해진다. 20대엔 이런 날씨를 오히려 좋아했다. 난 어둠의 아이야. 그런 낯간지러운 생각도 했던 거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객기 같아서 픽 웃게 하지만, 그 객기 또한 현재의 나를 있게 한 일부분이라 무시할 수만은 없다. 이런 날은 나만 우울한 게 아니다. 햇볕을 좋아하는 고양이 역시 축 늘어지기 일쑤다. 괜히 힘이 없고 오갈 데 없어 보인다. 흑임자 인절미처럼 바닥에 촤악 퍼져 있다. 맹수라며 객기를 부리던 녀석인데 이럴 때 보면 하찮기 그지없다. 녀석이 흑임자 인절미라면 나는 뭐가 되면 좋을까? 그런데 하필 그 타이밍에 고양이의 하얀 각질이 눈에 들어온다. 건조해서 올라온, 검은 털 위에 하얀 가루 같은. 불현듯 떠오르는 한 가지. 콩고물. 인절미엔 콩고물이지. 고양이가 인절미면 집사는 콩고물이지.<br>...갑자기 더 우울해지는 건 왜일까?<br><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시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64137</link><pubDate>Fri, 08 May 2026 08: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64137</guid><description><![CDATA[가장 좋아하는 누나는 나보다 스무 살이 많다. 남편이 벌어온 돈으로 자식들 키우고 예금이나 적금이 유일한 투자 수단이었으며 느지막하게 자기 집을 마련해 삶을 꾸려왔다. 알뜰하게 아끼고 필요한 것만 지출하면서 허리띠 졸라매며 살아온 세대다. 그 자식들은 이제 40대. 모두 가정을 꾸렸지만, 삶의 방식은 완연히 다르다. 예·적금 보단 주식을 투자 수단으로 이용하고, 인터넷을 통해 최저가를 검색해 구매하지만 쓸 건 쓰면서 사는 세대다. 그래서 가끔 충돌이 생길 때가 있다. 누나는 롤러코스터 같은 주식의 아찔함을, 쓰면서 살겠다는 소비의 쾌감을 이해하지 못한다.<br>오늘따라 산길에 파리가 많이 꼬이네. 손을 휘휘 휘저으며 다시 상념에 빠져든다. 2~30대는 또 다른 듯하다. 주식, 코인, 경매 같은 부동산 시장까지. 투자에 대해선 훨씬 적극적이다. 소비 역시 그렇다. 누나의 관점에서 본다면, 자신들은 벌이에 맞춰 삶을 꾸렸지만 요즘 세대들은 소비에 맞춰 벌이를 추구하는 양상처럼 보일 것이다. 일반화시키는 건 아니다. 예전에 비해 요즘 세대의 다양성은 확실히 풍부해 보이긴 하니까. 맞고 틀리고 그런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흐름이라 생각한다. 소비의 시대. 재테크의 시대.<br>정상에 도착했는데 고양이들이 없다. 비가 올 거 같아서 일찍 나왔더니 때를 잘못 맞춘 모양이다. 쯧. 언젠가부터 실질 수익률, 실효 수익률이란 표현이 등장했다. (같은 뜻인가?) 단순히 돈을 버는 게 문제가 아니라 물가 상승을 고려해서 벌어야 한단다. 이러면 예·적금은 투자가 아니라 소극적이고 때론 멍청한 돈 관리법이 된다. 다른 사람은 주식으로 돈을 버는데 나는 예·적금이나 하고 있어도 되는 걸까? 누군가는 코인으로 수억씩 챙겼는데 나는 주식으로 몇백 버는 게 제대로 하는 걸까? 시선은 언제나 외부로 향한다. 그저 모으고 버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나보다 더 버는 사람이 있다면 기준은 득달같이 그쪽으로 달려간다. 더 스마트해야, 더 잘해야 하는 세상.<br>내려오는 길, 발을 내딛다가 시커먼 무언가 꾸물거려서 얼른 옆으로 움직인다. 죽은 벌레에 개미들이 들러붙어 있다. 그들의 움직임을 한참 바라보다 걸음을 뗀다. 요즘 주식 시장을 AI 버블이라 한다. 좀 특이하긴 하다. 다른 때 같으면 버블의 경계선을 저만치 앞에 두고 사람들이 움직이지만, 지금은 경계선 바로 위에 서서 그 경계선을 계속 밀어 올리는 것처럼 보인다. 경계선이 갑자기 뒤로 밀리면 그 위에 서 있던 사람들은 속절없이 밑으로 떨어질 거고, 뒤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미리 겁에 질려 얼른 도망을 치겠지. 그런데 내 생각엔 기술의 버블이 아니라 욕망의 버블이다. 기술은 시대에 맞춰 제 갈 길 가지만 욕망은 시대를 앞서려 한다. 그게 가능할까?<br>날이 점점 어두워진다. 집에서 나왔을 땐 햇살이 미약하나마 있었는데 지금은 먹구름에 다 가렸다. 비가 내리기 전에 집에 들어갔으면 좋겠는데. 주식 시장은 공인된 도박장이다. 오른다, 떨어진다, 멈춘다. 단순화하면 이 세 가지에 거는 도박. 예측? 웃기는 소리다. 판도라의 상자 안에 희망이 있었다면, 주식 시장의 판도라 상자 안엔 예측이 있었을 거다. 도박이 위험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빚을 내서 도박을 한다고 하면 다들 말릴 것이다. 그런데 빚을 내서 주식을 하는 세상이다. 외부로 향한 시선은 항상 비교 대상을 찾기 마련이고 주식으로 돈 버는 사람은 항상 있으니까.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주식 시장이 활화산처럼 터져도 판단과 선택은 사람의 몫이다. 내 몫이다. 하지만 시선을 안으로 돌리지 않으면, 그 판단과 선택은 자신을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닐 테고 그에 따른 책임은 삶을 피 말리게 할 수도 있다. 더 비참한 건 그 책임마저 외부로 돌리게 될 거란 사실.]]></description></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