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어느덧 여기에 (대굴대굴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책에 관한 리뷰라기 보단 내 삶에 대한 리뷰</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Wed, 05 Aug 2026 12:13:03 +0900</lastBuildDate><image><title>대굴대굴</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045771444334901.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대굴대굴</description></image><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8월, 이제 시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33242</link><pubDate>Wed, 05 Aug 2026 08: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33242</guid><description><![CDATA[매주 더위가 남달라진다는 느낌이라 다음 토요일엔 어떤 얘기를 할지 모르겠지만 지난 토요일 더위는 색달랐다. 일을 하다 보면 매장 밖으로 잠깐이라도 나갔다가 들어올 일이 있는데 그때마다 의욕이 한풀씩 꺾였다. 뜨거움도 뜨거움이지만 기다렸다는 듯 몸을 휘감는 습도 때문이다. 몸으로 스며들어온 습기가 내부의 의욕마저 희석한달까. 한 번 꺾인 의욕을 에어컨으로 되살려보지만 그때뿐이다. 이런 느낌을 가져다준 더위는 이번이 처음이지 싶은데.<br>일요일. 어제 하루 겪었다고 그나마 낫다. 온도나 습도가 어제보다 좋아진 건 아니지만 의욕이 꺾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밝은 표정으로 이 공기 속을 활보할 순 없었다. 얼굴은 절로 찌푸려진 채 발걸음은 터덜터덜. 머릿속 사고회로가 물에 잠긴 듯 허우적대다가 뜬금없이 무언가 하나를 건져 올린다. 끊임없는 자극에 분노와 좌절이 몰아치던 그 어떤 시절을. 그때 내 삶이 뜨거웠었나? 아니, 차가웠던가? 온도 때문에 떠올린 건 아닌 모양이다. 아마도 피할 수 없는 이 긴 여름 때문일 것이다. 얼른 문을 열고 매장 안으로 들어간다. 그때도 그랬다. 내 안으로, 내부로 피해서 가라앉았었다. 그뿐이었다. 매장 내부 시원함 같은 건 내 안에는 없었으니까. 지금이, 이 여름이 그 시절에 비하면 천국이구나.<br>월요일. 이번 주 중부지방은 기록적으로 더울 거라 했다. 밖에 나가 몸으로 실감하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고양이가 아침 햇볕을 피하는 중이다. 이 시간이면 마루 베란다 타일 위에서 배회할 녀석이 오늘은 마루 중간쯤에 주저앉아서 햇볕을 가늠한다. 오전 9시에 30도라. 집안일하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10시 반쯤 에어컨을 켠다. 부엌 창가에 찌그러져 있던 고양이가 그제야 베란다로 쪼르르 달려간다. 공기가 시원해질 테니 햇볕을 쬐겠단다. 집고양이라면 에어컨의 효용 정도는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이따 산에 가야 하나? 못 돌아오는 거 아니야?]]></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파란 열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31372</link><pubDate>Tue, 04 Aug 2026 08: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31372</guid><description><![CDATA[적금이나 예금이 아닌, 투자와 관련된 돈 관리를 시작한 건 20대 후반부터였다. 시작은 펀드였다. 주식에 직접 투자한 건 그보다 훨씬 뒤다. 30대 후반쯤이지 싶다. 가장 처음 배워야 했던 건 참는 법이었다. 시장의 변동성을 견뎌내야만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니까. 두 번째로 배운 건 사는 법. 불확실성과 공포를 이겨내고 시장에 들어갈 시점을 찾아야 했다. 세 번째로 배운 건 파는 법. 욕심을 다스릴 줄 알아야 했다. 모든 배움엔 손실이란 대가가 따랐다. 또 배웠다고 해서 모든 걸 깨우쳤다는 얘기는 아니며, 항상 그대로 실천했다는 얘기는 더더욱 아니다. 이 시장은 법칙이 있을지는 모르나, 펄펄 날뛰어 예외를 일상으로 만드는 곳이다. 전문가의 예측은 무의미하다. 그저 결과론만 존재할 뿐.<br>그동안 투자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투자는 여유 자금으로만 하자. 펀드는 총수익률 12~13%에 도달하면 환매한다. 주식은 총수익률 20%가 되면 판다. 이런 대원칙은 있었지만 1년에 얼마를 벌겠다, 또는 투자를 통해서 얼마를 벌겠다 같은 목표는 없었다. 그런데 올해 처음으로 목표를 세웠다. 작년 집수리를 했으니 그 비용의 일정 부분을 올해 보충해야겠다는. 알다시피 주식 시장이 한동안 좋았으니, 목표는 순항했다. 1년의 절반도 지나지 않은 5월에 이미 목표 금액의 70%가량을 채웠다. 당시 내 계획은 주가가 지나치게 올랐단 판단하에 5월부터 보수적인 투자로 방향을 트는 것이었다. 하지만 살면서 처음 세웠던 투자 목표가 내 발목을 잡았다. 남은 30%를 향한 집착이, 그 30%를 달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이 나를 앞으로 밀어냈다. 결과는? 고양이, 어째 이번 생은 그른 거 같다...<br>돌이켜 보면, 내겐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본보기가 이미 있었다. 대공원 그 아저씨도 미국 증시에 오랫동안 투자 중인데, 장기적인 목표 금액을 정해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어느 날, 더해지는 나이와 줄어드는 월급에 조급증이 발동해 테마주에 단타로 뛰어들었다. 결과는? 형님, 어째 이번 생은 그른 거 같습니다…. 불과 몇 달 전이었다. 멍청하게도 저 모습이 내 거울이었다는 걸 대가를 치른 후에야 깨달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 거면, 배움에 돈을 내는 게 당연하긴 하지. 파란 숫자가 쏟아질 것만 같은 푸르른 하늘을 보며 나름 위로해 본다.<br>비관론자의 얘기는 어쩌다 하나 맞추면 명성을 얻는 터라 우울한 학자의 논문 같은 느낌이고, 장기적으로 우상향할 거라는 낙관론자의 얘기는 ‘멸종하기 전까지 인류는 살아 남을 것’이라는 말만큼 공허하고, 기업의 가치를 소리쳐 외치는 가치투자자의 얘기는 심리적 장벽 앞에서 언제나 무력하다. 누군가는 버블이 붕괴하는 중이라 말하겠지만, 더 정확하게는 스스로 투자라 생각했지만 투기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인 개인 자금들이 녹아내리는 과정처럼 보인다. 시퍼렇게 달아오른 시장을 살필 게 아니라 내 마음가짐을 살펴야 할 시기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고양이 일기</category><title>고양이 일기_10</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29564</link><pubDate>Mon, 03 Aug 2026 09: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29564</guid><description><![CDATA[*** 고양이를 입양했던 시기, 평일엔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주말엔 8시 넘어서 일어나곤 했다. 그때마다 옆에서 같이 자고 있던 고양이 머리를 한참 쓰다듬다가 일어났다. 이런 일과가 계속 반복되자 고양이는 자기 입장만을 고려해 상황 판단을 내렸다. 고양이가 강아지보다 머리가 좋은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다만 자기중심적 판단력과 잔머리는 누구에게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br>아~함. 잘 잤다. (뒹굴) 푹신하고 따뜻하네. (뒹굴) 냥. 일어나라, 아저씨. 일어날 때가 됐다. 죽었나? 왜 꼼짝도 안 하지? 냐아~웅. 일어나라, 항상 일어나던 시간이다. 에잇! (퍽) 어쭈? 이래도 안 일어날래? (배 위로 올라감) 꼼짝도 안 하네. 진짜 죽었나? 아저씨, 살아 있는 거냐? (킁킁. 귓구멍에 코를 대고 냄새 맡는 중)<br>으응...(손으로 귀를 긁음)<br>안 죽었네. 배고프다, 까까! 심심하다! 아이 씨. 가만, 아저씨가 일어날 때 어떻게 했더라? 내 머리를 막 만졌는데. 그럼 저 손에 내 머리를 밀어 넣고 막 돌리면? 아저씨, 손 좀 쫙 펴봐. 그렇지, 그렇게. 이제 머리를 넣고... (부비부비) (뒹굴)<br>으응... (옷에다 오줌 싸는 꿈을 꾸는 중)<br>에잇, 더 세게. (부비부비) (뒹굴뒹굴)<br>으응... (나이 들어서 오줌도 못 참고 싸지른다고 좌절 중)<br>이제 일어나겠지? (부비부비)<br>으응? 너... 거기서 뭐 하냐? 야, 손바닥이 갑자기 따뜻해져서 오줌 싼 줄 알았잖아!<br>아저씨, 나랑 놀자!<br>푸하하하. (고양이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깨닫고 웃음이 터짐)<br>냥? 왜? 왜 웃는데?<br>오늘 토요일이라 늦게 일어날 거거든. 지금 6시밖에 안 돼서 두세 시간 더 잘 거야. 그러니까 깨우지 마라.<br>왜 또 자는데? 내 머리 막 문질렀잖아!? 그럼 일어나야지!<br>(등 돌림)<br>이 씨, 내가 오늘만 봐준다. 내일 안 일어나면 또 깨울 거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그루밍</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27044</link><pubDate>Sat, 01 Aug 2026 17: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27044</guid><description><![CDATA[오전 11시. 해님이 열심히 제 갈 길 가느라 베란다에 햇볕이 살포시 걸쳐 있다. 난 이 날씨에 햇볕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지만, 고양이는 아니다. 까까를 얻어먹은 고양이는 떠나려는 햇볕을 부여잡고 벌렁 드러누워 그루밍을 한다.<br>막 참치 먹고 그루밍 하면 몸에서 참치 냄새 나지 않니?<br>볼 때마다 궁금하다. 먹고 나서 그루밍 하는 것은 간식 냄새를 몸에 남기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뒤로 한 채 녀석은 열심히 몸을 핥는다. 앞발을 핥을 때면 언제나 얄미움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br>너 일부러 나 쳐다보면서 그러는 거지?<br>볼 때마다 궁금하다. 앞 발바닥을 그루밍 하며 나와 눈을 마주치는 건 나를 약 올리기 위함이 아닌지. 타당한 의혹을 뒤로 한 채 녀석은 자세를 바꿔 등을 핥는다. 몸이 굴러가지 않게 뒷발 하나를 야무지게 끌어안고서 그루밍에 몰두한다.<br>고양이, 그러고 있을 때 자세 뒤집어지게 다른 한쪽 뒷다리 내가 들어 올리면 때릴 거지?<br>이건 궁금하지 않다. 예전에 한 번 해봤다가 맞은 적 있다. 고양이한테 맞으면 아프진 않은데 뭔가 의기소침해진다. 하찮음이 내뿜는 후유증이랄까.<br>잠깐 휴식 중. 그 틈에 질문을 던진다.<br>고양이, 그렇게 열심히 핥으면 혓바닥에 쥐 안 나냐?<br>그럴 리 없다는 듯 다시 열심히 몸을 핥는다. 이번엔 배를 할 차례다. 무슨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번쩍 들어 그쪽을 쳐다본다. 혀는 메롱 한 채. 가끔 혀 수납을 깜빡한다. 혓바닥에 쥐가 나는 게 아니라 뇌에 과부하가 걸리는 걸까? 그러다 베란다 바닥에 철퍼덕 앉아 고양이 그루밍을 감상하는 내 모습이 의식에 잡혔다.<br>고양이, 나는 왜 여기서 너를 구경하고 있는 걸까?<br>고양이가 나를 불렀으니까. 자기 뭐 하는지 지켜보라고. 정말? 진짜로? 고양이가 그루밍을 마치고 등을 돌려 눕는다.<br>오구, 오구, 참 잘했어요~ (짝짝짝)<br>조건반사 급의 칭찬. 고양이는 좋겠다. 뭘 해도 칭찬받고. 삶은 자각과 착각의 연속인 듯.]]></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자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23193</link><pubDate>Fri, 31 Jul 2026 09: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23193</guid><description><![CDATA[산 정상에 거의 도착했다. 바로 아래쪽, 나무로 그늘이 지고 바위로 평평한 부분부터 살폈다. 없다. 아저씨 한 분만 앉아서 쉬고 있다. 정상에 올라 성곽 구멍들을 쭉 훑었지만 역시 없다. 지난주부터 고양이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지난 주엔 젖소(모지리)와 새로 등장한 삼색이만 봤다. 사람이 근처에 있건 말건 항상 그늘을 차지하고 쉬던 고양이 두 녀석도 보지 못했다. 아쉬움에 정상에서 서성이는데 작년 가을 삼색이가 처음으로 튀어나왔던 수풀 속에서 뭔가 귀여움이 스쳐 지나간다. 뭐지? 빤히 쳐다보다가 그 안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는 눈동자와 마주친다. 헉! 아기 고양이들! 그것도 하나, 둘, 셋, 넷! 가까이 다가가자, 수풀 속으로 쑥 들어가서 자취를 찾을 수가 없다. 교육 잘 받았구나. 일단 사람이 다가가면 피하는 게 맞지.<br>기다려봐도 나오지 않길래 어쩔지 망설이는데 모지리 등장. 모지리에게 닭가슴살 두 개 투척. 다시 수풀 앞으로 다가가 닭가슴살 하나를 잘게 쪼개서 아기들이 머물던 자리에 흩어놓는다. 그리곤 돌아가려는데 조금 용감한 두 녀석이 나타나서 열심히 먹어 치운다. 치즈냥이와 젖소냥이다. 이 산에서 치즈는 귀한데. 다 먹길 기다렸다가 마지막 닭가슴살을 잘게 찢어 놓아준다. 두 마리 추가로 등장. 삼색이와 고등어인가? 색이 애매하게 섞였네. 카오스인가? 연이어 엄마 등장. 지난주 처음 봤던 새로 온 삼색이다. 닭가슴살 없는데. 애를 넷이나 키우려면 잘 먹어야 하는데. 주식이 아닌 간식거리라도 주려고 가까이 다가가자 대차게 하악질 작렬. 하나도 안 무섭거든. 덩치나 좀 키우고 하악질을 하던지. 그렇게 하찮아서 어디 새 한 마리나 쫓겠냐? 조그만 체구가 안쓰러워 툴툴대다가 조금 전 모지리에게 준 닭가슴살 두 개가 아까워서 녀석 쪽을 휙 돌아본다. 저 자슥, 다른 때는 잘 안 보이더니만 오늘은 눈에 확 띄고! 새끼들과 함께 열심히 간식거리를 주워 먹는 삼색이를 보며 생각한다. 그 하찮은 하악질로 여기 고양이들 다 내쫓았니? 아님 다른 고양이들이 피해 준 건가? 어, 가만 있어봐... 아기 중에 젖소가 있고, 지난주부터 보이는 건 모지리 뿐인데…. 모지리 너, 이 아이들 아빠야?! 이런 세상에나. 모지리 너 모지리가 아니구나. 정상에 있던 사람들이 아기 고양이의 존재를 알아챘다. 다행히 거리를 두고 사진을 찍는다. 모지리는 다시 스텔스 모드. 저 녀석,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구먼.<br>고양이 가족들을 지켜본 후 산에서 내려온다. 정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내리막길. 아기들 덕에 즐거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내딛다가 옆에 있는 새와 마주친다. 까치? 다른 새인가? 어른인가? 완전 성체는 아닌가? 길옆에 새가 옆으로 누워있다. 근처에서 소리가 들리면 고개를 돌리지만 날거나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 몸이 너무 깨끗하다. 상황은 죽음이 연상되지만, 외모는 멀쩡해서 그 괴리감 때문에 한참을 보고만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뱀한테 물렸나? 말벌에 쏘였나? 얘를 저쪽으로 옮겨도 상관없나? 살아가는 고양이에게 먹거리를 가져다주고 걱정하면서 죽어가는 새에게 관여하는 걸 주저하는 태도는 뭐지? 하필이면 사람조차 지나가지 않는다. 내가 소리를 내도 새는 돌아보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한참을 쳐다보기만 했을 뿐이다. 자연은 한 치의 예외 없이 공평했다. 그리고 그 순간 산이 내게 물었다. 너도 그럴 수 있냐고. 고양이가 내 앞에서 죽어가면 어떻게 하겠냐고.<br>꼬리말) 6월 25일에 썼던 글. 공교롭게 고양이와 새가 나와서 최근 길고양이 관련 이슈와 겹치지만 직접 관련은 없다. 누구나 자신만의 가치나 생각 같은 것들이 있고, 그것으로 갈등하며 고민한다. 이 글은 딱 여기까지다. 하지만 지금 덧붙이자면 그 결과가 나와 다른 무언가를 제물로 삼는 거라면, 난 그런 세상을 주저하지 않고 혐오하겠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변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20914</link><pubDate>Thu, 30 Jul 2026 07: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20914</guid><description><![CDATA[금요일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토요일에도 그칠 생각은 없었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마루 쪽 베란다 방충망을 열고 안을 살핀다. 잘 버틴다 싶었는데 빗물이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에휴. 건물을 새로 짓기 전엔 누수를 막는 건 꿈도 꾸지 말아야 할 듯. 고양이, 오늘 베란다는 워터파크 개장 관계로 영업 안 한다. 열심히 손을 흔들어보지만, 사춘기 딸내미의 빨리 나가라는 눈빛만 한 움큼 얻어맞았다. 흥, 못된 자슥.<br>일요일. 퇴근하고 돌아오는데 드디어 집 근처 도로에 아스팔트를 깔고 있다. 흙먼지로부터 이제야 해방이 되는구나. 없어 봐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다고 하지만, 솔직히 아스팔트가 이리 반가울 줄은 몰랐다. 아스팔트 없는 도로에 차들이 다니면서 일으키는 흙먼지는 정말이지 엄청났다. 너무 기뻤던 탓일까? 베란다 외부 창 앞에 앉아서 고양이와 함께 아스팔트 깔리는 광경을 멍때리고 관람했다. 오, 요즘은 깔자마자 위로 차가 다녀도 되는구나. 야, 저 방정맞게 움직이는 조그마한 불도저는 뭐냐? 어라, 아스팔트 위 글씨는 저렇게 해서 사람이 쓰는구나. 반백 년을 넘게 살아도 궁금하고 신기한 건 어쩔 수 없다. 고양이야 말해 무엇 하겠나.<br>월요일 늦은 오후. 산에 오른다. 금요일부터 토요일에 걸쳐 내린 많은 비가 산에 있는 많은 것들을 깨운 모양이다. 푸르름이야 여전하지만 식물들은 벌크업을 했는지 길을 막고 텃세를 부린다. 인간, 지나갈 거면 돈... 아니, 공손히 게걸음으로 지나가라. 다행히 난 옆으로 가는 걸 좋아한다. 지하철만 수십 년째다. 러브버그도 늘었다. 아우, 눈꼴 시러버라. 저리 꺼져라, 꼴 보기 싫다. 들고 있는 물병으로 역시 길막하는 벌레들을 탁탁 쳐내며 걷는다. 그러다 무심코 만난 말벌. 둥글고 큰 녀석이 아니라 날씬하고 무늬가 선명해서 마치 로봇 같은 느낌이 나는 녀석이다. 한동안 말벌이 없었는데. 느닷없는 출현에 나도 모르게 공손해져 물병 내리고 슬금슬금 지나간다. 드디어 정상. 식물이랑 곤충과 기싸움하며 올라오느라 마음에 안식을 가져다줄 존재가 필요했는데…. 고양이가 한 마리도 없다! 이럴 수가. 좌절하는 와중에 주위를 둘러보다 성벽 아래쪽 까만 줄이 움직이길래 가까이 가 보니 개미 떼다. 성벽을 따라 1m 정도 줄을 지어 이동 중이다. 많아도 너무 많구나. 너희도 비 때문에 집에 물이 새니? 내가 그 심정 잘 알지. 나는 두 손 놓고 있는데 너희는 집을 새로 짓니? 아님 구멍을 다시 파나? 대단하다.<br>변화가 심했던 요 몇일. 이렇게 사소한 일상에서 변화를 알아챈다는 것만으로도 지금 내 삶은 충분히 여유로운 것일지도 모르겠다.<br>꼬리말) 6월 말 풍경이다. 올해 러브버그는 확실히 기세가 꺾였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길고양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18591</link><pubDate>Wed, 29 Jul 2026 09: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1859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202534544&TPaperId=174185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526/7/coveroff/e20253454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고양이와 관련한, 특히 ‘길고양이’에 관해 해묵은 논쟁이 있다. 이들의 개체수를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 갈라파고스나 호주처럼 특수한 생태 환경을 지닌 곳에선 인간의 필요에 따라 키우다 야생화된 모든 생물이 생태계 교란종이다. 개, 고양이, 염소, 양, 말 등. 그럼, 도시에선 어떨까? 어차피 인간 중심 환경이라 생태계를 파괴한다고 할 순 없겠지만 야생화된 고양이는 분명 소형 포유류나 조류에게 위협이 된다. 그나마 이 위협을 줄일 방법은 길고양이들에게 충분한 먹이를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양이들이 사냥을 멈추진 않는다. 그들의 사냥 본능은 꼭 먹기 위해서만 발휘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또 호불호 여부를 떠나 고양이의 배설물과 발정기 소리는 저층에 사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 이러다 보니 당연히 논쟁이 생길 수밖에 없다.<br>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고양이로 인한 주민 사이 갈등은 어디서나 일어나고, 안타깝게도 그 모든 곳에서 제대로 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우리 같은 경우 지자체에서 TNR(포획, 중성화, 방사)을 어느 정도 지원해 주는 탓에 가끔 유일한 해결책처럼 여기기도 하지만, 이 또한 논쟁이 많은 정책이다. 외국에선 주로 동물보호단체들은 TNR을 옹호하고, 정부 기관이나 (넓은 의미의) 야생 동물 협회는 그 실효성을 의심한다. 그래서 간혹 극단적인 살처분(포획 후 안락사)을 주장하기도 하나, 이 역시 비용이나 실효성, 거기에 더해 윤리적 문제까지 겹쳐서 행정적 지원이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그래서 결국 언제나 논쟁은 시작점으로 되돌아온다.<br>국회 홈페이지에 청원을 올리는 곳이 있다. 이곳에서 최근 두 개의 의견이 대립 중이다. 하나는, 길고양이가 다른 동물들과 사람들에게 끼치는 피해를 고려해 급식소를 엄격히 통제하고 포획된 고양이를 보호할 시설을 확충해서 장기적으로 길고양이 수를 줄여야 한다는 것. 이에 반하는 다른 하나는, 저 주장은 결국 살처분하자는 것과 다름없으니, 지역적으로 꼼꼼하게 TNR을 시행하고 먹을 것을 충분히 공급하면서 안정적으로 개체수를 관리해야 한다는 것. 이 대립이 언제나 그렇듯 감정적으로 흘러갈 거란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건 한쪽은 캣맘이나 캣대디를 조롱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다른 한쪽은 고양이에 몰빵함으로써 자신들의 성역을 구축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br>이 논쟁은 어찌 보면 지극히 인간적이다. 인위적인 적극 개입을 요구하는 쪽은 자기 삶에 조류가 핵심으로 들어온 상태고, 안정적 개체수 유지를 주장하는 쪽은 고양이가 중심을 차지한다. 이건 단순한 의견 대립이 아닌 세계관의 대립이다. 내 삶의 영역이 어디에 걸쳐있냐에 따라 주장하고 대응하는 바가 다르다. 처음 주장과 달리 뒤따르는 대응은 언제나 양쪽 모두 선을 넘는다. 조롱과 비하를 무기로 상대방의 세계를 짓밟으려 한다. 어느 쪽도 응원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br><br> “때때로 갈라파고스를 두고 격앙되는 논의에서는 인종차별적 언사, 이민 배척주의의 편견, 경제적 사리사욕의 메아리가 분명히 들린다.” - 배리 로페즈 &lt;호라이즌&gt; P400<br><br><br>꼬리말) 어느 한쪽의 의견을 골라야 한다면, 처음 올라왔던 청원에 반대하는, 길고양이의 삶을 받아들이는 쪽을 선택하겠다. 내가 고양이와 함께 살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보단 처음 청원에 은근히 내포되어 있는 인간 중심의 사고 방식이 싫다. 인간은 자연의 수호자도 아니며, 어떤 종의 운명을 결정할 존재도 아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526/7/cover150/e20253454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5260790</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떠내려가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16947</link><pubDate>Tue, 28 Jul 2026 14: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16947</guid><description><![CDATA[장마가 끝나고 하늘이 갰다. 저 멀리 롯데타워가 불끈 솟아오른 채 전의를 불태우고 있고, 가까이엔 남산 위로 새하얀 구름이 폭발하듯 피어오르는 중이다. 그곳에서 서서히 퍼져나가는 구름은 세상의 때를 조금이라도 묻혀낸 듯 군데군데 회색빛을 품으며 사방으로 진군한다. 이 깔끔하고 쨍한 풍경에 이토록 전투적인 표현이 등장하는 이유는 뭘까?<br>곰곰이 생각해 보니, 조금 전까지 저 풍경 속에서 습도와 햇볕에 둘러싸인 채 포위 공격을 당하고 있었다. 세상에, 피할 틈도 주지 않고 어찌나 꼼꼼하게 덤벼드는지.<br>이봐, 고양이, 아저씨 땀구멍으로 피 토하고 죽을 뻔했어.<br>산 위에선, 아니, 오가는 도중에도 고양이를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그곳조차도 습도와 햇볕은 여유를 두지 않았다.<br>이봐, 고양이, 산꼭대기에 햇볕이 습도를 타고 폭포처럼 떨어지더라. 나 익사할 뻔했어.<br>심한 뻥에 스스로 생각해 봐도 염치가 없었는지 몇 마디 잔뜩 덧붙인다.<br>너는 집고양이라 바깥 상황을 몰라서 그래. 산고양이들은 단박에 맞장구칠 텐데. 걔네들 이미 떠내려갔는지 없더라고.<br>무심코 들여다본 핸드폰 주식 창은 온통 파란색이다.<br>이것 봐, 이거. 익사했네, 익사. 고양이, 아저씨 돈도 떠내려간다. 야, 폭우처럼 돈 쓰고 폭포수처럼 돈이 빠진다.<br>절대 휩쓸리고 싶지 않은, 이토록 멋진 풍경이라니.<br>고양이, 이번 생은 어째 글러버린 거 같은데…. 눈 예쁘게 뜨자. 그렇게 쳐다보는 거 아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고양이 일기</category><title>고양이 일기_9</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14364</link><pubDate>Mon, 27 Jul 2026 10: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14364</guid><description><![CDATA[*** 고양이는 야옹 어쩌고만 운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채터링 소리는 커다란 놀람이었다. ***<br>까까까 가각.<br>채터링 하는 거야? 새 있어? 야, 잡기나 하겠냐? 쪼이지나 마라, 자슥아.<br>멍청한 아저씨. 나 지금 고양이별에 보낼 메시지를 새한테 전송 중이다. 내가 새한테 보내면 쟤들이 다시 고양이별로 보내주지. 그것도 모르고, 쯧쯧.<br>(채터링) 아저씨 어제 친구랑 술 먹고 늦게 들어왔다.(새) 좀 더 쓸모 있는 정보는 없냐?(채터링) 어떤 게 더 쓸모가 있냐?(새)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채터링) 그럼 묻지를 말던가! 머리통은 조그마해가지고서.(새) 내 머리통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마랏! 혐오 발언으로 고양이별에 신고하겠다!(채터링) 아, 미안. 뭘 그렇게 발끈하고 그러냐?(새) 우린 저주를 받았다.(채터링) 무슨?(새) 태곳적에 커다란 날개만 믿고 높이높이 날아올라 신께 도전하다가 벌받았다. 새대가리의 저주를.(채터링) 냥...(새) 동정하지 마라. 선지자께서 지저귀시길 다시 우리의 전성시대가 올 거라 했다.(채터링) 그게 언제냐?(새) 바로 지금이다! 조두의 시대! 사람들을 봐라. 머리통 작은 것들이 떠받들어지고 있다.(채터링) 그, 그렇구나. 내가 전달한 정보는 고양이별에 잘 보내는 거 맞냐?(새) 걱정하지 마라. 그 정도도 못 할 만큼 멍청하지 않다. (푸드덕)<br>새대가리의 저주는 정말 무서운 거구나…. 아저씨, 나 까까 먹고 싶다! (뒹굴) 냥? 손에 든 그거 뭐냐? 붕어같이 보이는데.<br>붕어빵 먹어볼래? 생각보다 맛있는데. 고양이, 눈을 왜 그렇게 둥그렇게 뜨고 있는데? 걱정 마, 너 안 줄 거니까.<br>붕어빵이 진짜 있다구! 붕.. 붕어는 태곳적에 무슨 짓을 했길래 빵이 된 거냐? 그보다... (빤히) 아저씨는 전성기가 지나간 거냐? 머리통이…. 전성기가 아직 안 왔나?<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흐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11195</link><pubDate>Sat, 25 Jul 2026 17: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11195</guid><description><![CDATA[난 굉장히 신중한 편이다. 좋게 말하면 그렇고 나쁘게 말하면 소심 그 자체다. 어떤 일을 할라치면, 최대한 많은 것들을 준비하고 대비해서 시작한다. 대충 시작? 그딴 거 없다. 대학 시절, 시험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싶으면 시험 자체를 통으로 날려버릴 정도였다. (이건 소심한 게 아니라... 이건 뭐지?) 그렇다고 시험을 보면 성적이 다 좋았느냐? 그건 아니다. 어차피 평범한 사람인 내겐 한계라는 게 있으니까.<br>올 3월인가 4월부터 ‘매일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리자’라는 목표를 세웠다. 시작은 언젠가 썼듯이 AI였다. 글을 쓰고 의견을 물어보고 피드백을 받는 게 은근 재미있었거든. 하지만 여기도 내 성향이 반영돼서 안전장치를 걸어뒀다. 글은 매일 쓰되 블로그엔 한 주에 네 번만 올리는 걸로. 처음에야 매일 쓰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디 그럴 수 있겠어? 이런 의문 때문이었다. 시작한 지 3~4개월이 지난 지금, 글을 쓴 시점과 블로그에 올리는 시점이 점점 벌어져 거의 한 달 차이가 난다. 시기가 명확히 드러난 글들은 쓰자마자 올리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것도 귀찮아 그냥 순서대로 올리는 중이다. 그땐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할 줄은 미처 몰랐었다.<br>처음엔 내 의지였고, 내 뜻이었다. 능동적이었단 의미다. 그런데 지금은 그 의지에 속박이 된 듯한 느낌이다. 능동과 수동의 구분이 모호해진 상태다. 다행히 원래 말하는 것보단 글 쓰는 걸 더 좋아해서 억지로 밀려가는 상황은 아니지만, 사람 마음은 정말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정체불명</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08731</link><pubDate>Fri, 24 Jul 2026 08: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08731</guid><description><![CDATA[날이 흐려졌다. 비 예보가 있었는데 슬슬 비를 마중 나올 준비하는 모양이다. 오전만 해도 제법 해가 있었는데. 마루에 앉아서 밖을 내다보며 기분이 우울해진다고 투덜대다 픽 웃고 만다. 외출하고 들어와서 해가 너무 뜨겁다며 불평한 게 고작 두어 시간이나 지났을까? 변덕이 아주. 고양이를 힐끗 본다. 베란다에 내놓은 소형 캣타워에 턱을 괴고서 잠이 들었다. 졸졸 계속 쫓아다니더니 피곤할 법도 하다. 일관되게 관심과 까까를 요구하는 녀석이다. 그러고 보면, 고양이는 변덕스럽지는 않은 건가?<br>사람들이 한결같음을 꿈꾼다는 건 주변에 그런 사람이 많지 않다는 뜻일 테다. 그래서 사시사철 푸르른 소나무를 불렀고, 파도에도 굳건한 바위를 그렸다. 사람도 그것들 같았으면 해서. 그런데 무엇을 위한 한결같음일까? 그저 존재할 뿐인 대상에 자신의 이상을 투영하면서까지 원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같은 영화 대사에 공감한다면 한결같은 사랑이나 헌신을 원했을 거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던 시대엔 독립 국가가 지속되길 바랐을 거고, ‘아니 되옵니다, 전하’를 외쳤던 시기엔 유교 사상이 영원하길 염원했을 거고. 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너무 뜬구름 잡나? 어떤 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고양이가 캣타워에 달린 공을 잡으려고 열심히 앞발을 놀리고 있다. 같이 놀아줄까 싶어서 공을 살짝 흔들었더니만 바로 관심을 접는다. 이건, 변덕이 아니라, 청개구리 심보다. 판 깔아주면 안 하고, 이리 가라면 저리 가는.<br>요즘 시대에 맞는 한결같음이라면, 주식시장이 한 방향으로만 쭉 움직인다든지, 돈벌이는 상향, 세금이나 공과금은 하향 곡선을 일관되게 그린다든지. 실용적이고 괜찮은데. 세상도 변하니까 원하는 것도 변하는 게 당연하다. 내 주식이 오른 것도 아닌데 괜히 헤벌쭉 웃다가 다시 들려오는 소리에 입을 다물고 정신을 차린다. 고양이가 또 공을 가지고 논다. 이 녀석, 이거 뭐지? 알다가도 모를 녀석일세.<br>꼬리말) 날씨 때문에 한 달 전에 썼던 글이라는 게 자꾸 티가 난다. 글들을 보니 한동안은 그럴 듯. 날씨 얘기를 쓰지 말야야 하나...]]></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표류하다 보면 어디든 도착 - [호라이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07061</link><pubDate>Thu, 23 Jul 2026 09: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0706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202534544&TPaperId=1740706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526/7/coveroff/e20253454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202534544&TPaperId=1740706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호라이즌</a><br/>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01월<br/></td></tr></table><br/>저자인 배리 로페즈는 자전적인 여행 에세이를 쓰고자 이 책을 구상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부터 시작해서 여행을 다니며 깨우치고 쌓여가는 생각들을 9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에 욱여넣을 의향이었고 그렇게 했다. 솔직히 책의 전체 모습이 들어오기 전까지, 그러니까 한번 제대로 완독하기 전까지 그의 글은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워낙 방대하기도 하고, 오지에 가까운 낯선 곳들이 등장하는 데다 문장 자체가 길기도 해서다. 그래서 처음 책을 다 읽고 글을 써보려 했을 때, 내 계획은 내가 했던 여행을 소재로 배리 로페즈처럼 이야기를 구성해 보자는 거였다. 하지만 두 번째 읽으면서 그 계획은 바로 접었다. 그는 이 책을 위해 몇 군데의 여행지를 선택해서 글감으로 삼았다. 그러면서 선택되지 못했지만 자꾸 신경이 쓰이는 다른 세 곳의 이미지를 언급했다. 중국과 캐나다와 아프가니스탄. 중국에선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는 하층계급과 야시장에 전시된 각종 동물의 모습을, 캐나다의 북단에선 빙하가 사라져 북극곰이 사냥의 터전을 잃어가는 모습을, 아프가니스탄에선 전쟁으로 인해 많은 것을 잃고 회복 불가능 상태에 빠진 한 여인의 모습을 포착했다. 그의 머릿속에 각인된 이미지가 이런 것이라면, 내 여행 글을 여기 덧붙일 순 없었다. 삶의 경중을 논할 바는 아니지만 그의 여행은 너무나 진지하고 압도적으로 이질적이었다. 그래서 그가 책 첫머리쯤에서 했던, 같지만 다른 질문 두 개로 내 글을 시작한다.<br>"이 순간의 아름다움 속에서 갑자기 내 안에 이런 의문이 떠오른다—우리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P17)"지금, 이 호전적인 파벌의 시대, 일상적인 폭력의 시대에 우리 모두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P17)<br>저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과 하나의 질문. 이제 시작이다. 내 글도 길어질 거 같다. 내 탓이 아니다. 900여 페이지를 쓴 작가 때문이다.<br>- 파울웨더곶<br>사람이라면 누구나 우월감을 가져본 적이 있다. 꼭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어떤 확신을 갖고서 상대방을 대할 때가 있다. 내가 옳다, 내가 더 낫다, 내가 더 많이 안다. 동일 분야, 특히 기술적 측면에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시야를 넓혀서 다른 분야, 다른 생활 방식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저런 태도를 보이는 게 가능할까? 더 크게 확장해서 다른 문명에 대해서도? 내가 옳고, 그래서 너는 아무것도 아니며 내 뜻대로 해야 한다는 독선이 가져다주는 폐해를 우린 현실에서 너무 많이 목격하는 중이라 새로울 것도 없는 얘기다. 작가는 그중에서도 제국주의가 한창일 때 서구 열강이 침범하고 무시했던 여러 문화를 바라본다. 그 말살에 대한 책임과 이후 이어져야 했던, 하지만 그러지 않았던 선주민들에 대한 사과를 논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보다 사라지고 잊힌 문화가 제시했을 지혜, 현 상황을 판단하고 대처할 수 있는 그들만의 시각을 안타까워한다. 그 어느 때보다 다양성이 요구되지만, 독선과 오만에 압살되어 버린 인류의 또 다른 시선을 말이다.<br>작가가 이런 생각들을 하며 주로 찾는 곳은 파울웨더곶이다. 이곳은 제임스 쿡이 처음으로 북아메리카 서해안에 도착했을 때 상륙한 곳이라고 한다. 제임스 쿡은 영국 군인이자 지도 제작자였으며 3차에 걸친 원정을 통해 남극 대륙 내부를 제외한 태평양의 모습을 대부분 그려낸 인물이다. 그리고 한 명의 인물이 더 있다. 래널드 맥도널드. 백인과 치누크족의 혼혈로 개항 전인 일본에 들어가 침략에 대응하도록 영어를 가르쳐준 인물이다. 작가가 이 둘을 집착에 가까운 관심으로 쫓는 것은 일단 그들이 제국주의 시대와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쿡 선장은 본인의 의도는 아니었으나 제국주의 확장에 결정적 역할을 했고, 맥도널드는 제국주의의 피해자로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그러나 둘 다 작가에 따르면 미지에 대한 경외와 존중을 지녔고, 삶의 방향을 정하고 나아갈 수 있는 의지와 도전 정신을 갖췄다. 다만 어떤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종착역에 제대로 도착하지 못했으나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미숙함이나 갈등은 인간적인 면모이기에 그 또한 작가의 관심에 한몫한다. 작가는 이 두 사람을 통해서 과거를 살피고 자신의 질문에 대응할 방법을 찾고 싶어 한다. 우린 어떻게 해야 하나? 우월감과 확신을 바탕으로 소유와 소비를 위해 자연과 문명을 침범해 그들의 설 곳을 없애버리는 이 세상에 우린 무슨 대응을 해야 할까?<br>-&nbsp;스크랠링섬<br>작가가 두 번째로 펼쳐내는 여행지는 그린란드 부근 스크랠링섬이다. 여행이란 단어에 헷갈릴 수 있지만, 작가는 이곳에 고고학자들의 유물 발굴에 참여하기 위해 온다. 이 섬엔 도싯 문화와 툴레 문화의 거주지가 있고, 두 문명은 몇백 년간 시기가 겹친다. 현재 시점에서 볼 때 도싯인은 멸종했고, 툴레인은 흔히 에스키모라고 부르는 이누이트족의 직계 조상이 된다.<br>여기서도 작가는 많은 이야기를 쏟아낸다. 저널리스트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이 고고학자들과 함께 작업할 때 신경 써야 할 점, 사라진 문명이 남긴 흔적을 통해 그들과 소통하려는 노력, 비극으로 끝난 미국의 북극 원정대가 남긴 마지막 흔적들. 수많은 에피소드를 오가며 작가가 끊임없이 되새기는 것은 타인이나 다른 문화를 대하는 자세다. 그리고 그가 반복해서 그 의미를 찾는 이유는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부분이 그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에 대한 감정이입이나 존중, 배려 등 타자에 대한 인정이 부족한, 어쩌면 아예 할 줄 모르는 현대문명의 우월한 이기심을 향한 걱정. 동시에 그 이기심을 극복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유적지에서 작가 자신이 했던 부끄러운 행동을 통해서 읽는 이들에게 상기시킨다.<br>"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하게 올바른 선물은 그들의 말을 듣는 것, 주의를 기울이는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대체로 그런 상황에서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충동에 굴복하는 것은 그저 자기 탐닉적이거나 이기적이기만 한 일이었다." (P339)<br>- 푸에르토아요라<br>저 지명만 놓고 보면 어디야 싶겠지만 갈라파고스 제도에 속한 지역이다. 맞다. 다윈과 종의 기원, 진화론으로 유명해진 곳. 따지고 보면, 이곳만큼 이 책의 주제 의식과 잘 맞아떨어지는 곳도 흔치 않다. 진화론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다윈은 자신의 생물학적 이론으로 인간은 신의 모습을 본떠 만들어졌다는 특별한 위치에 치명타를 가했다. 물론 사람들은 그 정도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들이 우월하다는 새로운 방식을 생각해 낸다. 인간은 완성을 위해 변화해 가는 중이며, 그래서 생태계의 최정점에 선 존재라는 식으로. 우리가 흔히 잘못 생각하는, '진화'라는 단어에 '진보'라는 단어를 덧씌운 개념이다. 그런데 정작 다윈은 진화를 환경에 적응하는 방향성의 증가라고 판단하면서 '고등'이나 '하등'이란 단어를 쓰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다윈의 의도와 다르게 그의 이론을 차별적인 방향으로 적용했다. 어찌 보면 배리 로페즈가 쫓던 제임스 쿡과 같은 선상에 있는 인물이 찰스 다윈인 셈이다.<br>작가는 다윈의 그림자가 강력하게 드리워진 이곳의 섬들과 바다를 넘나들며 계속해서 사고를 확장한다. 특히 바다거북 새끼가 해변에 묻힌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포식자를 피해 바다로 향하는 장면과, 뒤이어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야생화된 개들에게 쫓기는 작가의 모습이 연이어 배치된 부분에선 과연 인간은 이 생태계에서 어떤 존재인가를 돌아보게끔 한다. 또한 이곳은 갈라파고스 특유의 삶과 죽음이 존재하지만, 상어 지느러미 획득과 같은 인간의 욕심이 불러온 삶과 죽음이 침범해 들어온 곳이기도 하다. 각종 바다 생물과 함께 유영하며 실질적인 치유와 경이를 선사 받기도 하지만, 남태평양의 낙원이나 돈벌이 같은 환상이 들러붙어 기대와 실망, 희망과 반목이 충돌하는 곳이기도 하다. 지역적으론 특이하지만, 보편적으론 세상의 축소판 같은 곳. 사람들 사이에서 우월함을 주장했던 문명이 동식물을 대상으로 겸손할 리 없다. 이곳에서 작가가 던지는 질문은 이렇다. 우린 지배자나 지도자가 아닌 생태계의 동등한 일원이어야 하지 않나?<br>"호모 사피엔스가 오로지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관점만이 아니라 생태학적 관점을 취하고, 물리적 환경이 인간 유전체에 선택압을 가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단순명료한 하나의 판단에 이르게 된다. 바로 환경을 보살피는 일이 자신을 보살피는 일이라는 깨달음이다." (P453~454)<br>- 자칼 캠프<br>아프리카 케냐의 나키라이라는 곳에 있는 발굴 캠프다. 나키라이는 이곳 선주민인 투르카나족의 언어로 '자칼들의 장소'라는 의미라고 한다. 작가는 이곳에서 발굴자들과 함께 호모 사피엔스의 기원을 찾는 작업에 동참한다.<br>다윈이 주창한 진화론의 특징 중 하나는 불확실성이다. 화석 증거가 있어야 어떤 실체를 상정할 수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계통을 이어가야 하므로 현시점에서 과거의 모습은 뚜렷할 수가 없다. 미래 또한 마찬가지다. 생물 진화의 한 시점은 언제나 과도기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 실체도 과도기에 해당하고, 미래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인류의 화석 증거를 찾겠다고 하는 것은 쿡 선장이 태평양을 항해했던 때처럼 도전 의식과 열린 사고를 갖추어야만 나아갈 수 있는 일이다. 결국 어떤 의미에서 작가는 장소와 대상만 바꾸며 같은 얘기를 반복적으로 하는 셈이다.<br>하지만 동어반복이 다는 아니다. 작가는 이곳에서 인류 문명이 같은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 결과의 불확실성 또한 포착한다. 선주민들 역시 사람이기에 똑같은 호기심과 욕심을 지녔고,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일구어낸 나라의 국민은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거꾸로 가해자의 위치에 서려고도 한다. 심지어 물질문명을 향한 광신으로 그 이외의 것들은 모두 가치 없다고 판단하기까지 할 정도다. 작가는 이런 모습들을 캠프의 모습과 병치시키며 생각들을 풀어낸다. 그 모든 것들이 마치 부정할 수 없는 인류의 모습이라는 듯이.<br>작가는 이번 여행지를 통해서 문명을 일구어낸 인류가 예외적인 존재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단어는 '뛰어난'이 아닌 '예외적인'이다. 그가 인류의 기원, 정확히는 그 흐름을 찾고자 하는 것은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무분별함의 특별함을 추적하고자 함이 아니라 생태계 한 귀퉁이에서 출발한 생태계의 일원임을 확인하고픈 욕망일 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그는 질문의 형태를 보다 근본적인 형태로 바꾼다. 인류의 기원을 찾듯이 모든 질문의 시작을 찾아서.<br>"호모 사피엔스가, 다시 말해 문화적으로 진보한 인간이 예외적인 존재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더욱 도발적인 질문은 그 예외적인 성질이 그들을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다." (P510)<br>- 포트아서에서 보타니베이까지<br>갑자기 친구의 불평이 떠오른다. 국민학교 시험 문제였는데, 1950년 한국전쟁의 표기로 '6.25'와 '6·25' 중 어떤 것이 맞는지를 고르는 문제였다. 점을 가운데 찍는 것이 정답이었는데 친구는 오답을 선택했었다. 그는 두고두고 투덜거렸다. 점의 위치가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사소한 일화지만 이건 우리 세대가 반공 교육의 틀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하나의 예시다. 그런데 그런 우리들조차 한국전쟁의 참사를 우리 삶의 중요한 일부로 여기지 않는다. 제주 4.3, 광주 5.18. 이 단어 배열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지만, 요즘 세대가 이 의미를 삶의 주변부로 밀어냈다고 내가 뭐라 할 자격이 있을까? 그래도 한 가지만은 말하고 싶다. 이념이나 신념, 성향을 떠나 희생자가 존재한다면, 그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또 그에 앞서 상대방의 입장을 미루어 살필 줄도 알아야 한다고. 그런데 이 세상은 경쟁과 이익과 소비를 위해 그런 가치를 잃어버렸다.<br>공동체를 이루고 문명을 일구어낸 인류는 진보를 내세워 확장을 꾀했다. 그 과정에서 다른 문명을 억눌렀고, 심지어 자국의 국민에게까지 차별의 잣대를 들이댔다. 호주의 포트아서는, 영국이 자국의 죄수나 함량 미달이라 판단한 사람들을 격리 또는 교화시키려고 영국 밖으로 추방한 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식민지였다. 작가가 방문했을 당시 이곳은 과거 교도소의 모습을 간직한 관광지였고, 얼마 후 한 남자에 의해 총기 테러가 일어나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 그는 포트아서를 거쳐, 자원 획득이란 명목으로 선주민을, 그들의 문화를, 자연을 대상으로 각종 수탈이 이루어지는 중인 호주를 둘러보며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br>"사회 및 환경에 가해진 해악의 상당 부분에 대해 ‘터보차저를 장착한’ 자본주의가 극악무도한 원흉으로 수시로 지적되기는 하지만, 하이퍼 자본주의를 제거하는 것이 핵심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닌 것 같다. 그 핵심 질문이란, 우리 인간은 왜 서로에게 그토록 참혹한 해를 입히는가다." (P633~634)<br>이건 질문이기도 하지만 이전 장에서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일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호주의 어떤 공원을 거닐다 문득 희망을 붙잡는다. 어떤 종류의 희망인지 설명은 못 하겠지만 이런 느낌을 경험해 본 적이 있다. 살아남기 어렵다는 하지마비 새끼 고양이를 극진히 보살펴서 살려낸 노부부를 담은 유튜브 클립에서. 방송국의 도움으로 다리를 수술하고 더 개선될 가능성이 보이자, 눈물을 머금으며 고맙다고 인사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에서. 세상은 '아직도' 살만한 곳이라는 안도 섞인 희망을.<br>- 그레이브스누탁스에서 포트패민 도로까지<br>지구상에서 아주 독특한 남극 대륙에 관한 얘기다. 선주민의 역사가 존재하지 않고, 방문자의 위치에 따라 생명체라곤 자신 이외에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인류 역사상 드물게 이곳에서 얻은 지식을 나누겠다는 평등한 남극조약이 맺어진 곳. 뚜렷한 목적의식과 도전 정신을 지닌 과학자들과 개척자들을 불러 모으는 곳. 작가는 대자연의 압도적인 풍경 속에서 겸허하게 세상을, 인간을, 생명을 바라본다. 나 역시 책에 나온 문장들로 이 챕터의 감상을 대신하겠다. 절대 긴 글을 쓰다 지쳐버린 게 아니다.<br>“예전에 한 신학 교수님이 종교를 갖는다는 건 확신을 갖는 일이 아니라 불확실성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지. 의심을 편안히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어떤 심원한 신비에 대해 품었던 존중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라고.” (P751)<br>이제 내 글도 끝이 보인다. 이 책은 작가의 생각들이 바다처럼 광대하게 펼쳐져 있다. 처음 접하면 그저 막연할 뿐이지만 해류의 흐름과 바람의 방향을 잡아내면 읽는 이를 어디로든 데려갈 수 있다. 해류와 바람이 각양각색이듯 도착지도 다들 다를 것이다. 심지어 한눈이라도 잠깐 팔면 자신도 모르게 일정 거리를 지나쳐버릴 수도 있다. 즉, 일관된 흐름은 있지만 생각의 방향이 사정없이 뻗어나갈 여지가 있고, 호흡이 긴 문체 특성상 집중하지 않으면 문장 단위로 헤맬 수도 있단 얘기다. 게다가 작가는 이야기를 시간 순서대로 쓰지도 않는다. 그러니 이 책을 읽을 작정이라면 다독을 권한다. 그리고 지금 내가 이곳에 적어놓은 문장은 일부러 길게 늘여 쓴 편이다. 게다가 일관된 흐름 속에서도 챕터를 나눠 여러 에피소드를 집어넣었고 다소 산만한 느낌까지 줬다. 그러니 이 문장들이 읽기에 버겁거나 불편하다면, 사방팔방으로 펼쳐질 길이 부담스럽다면 시간을 투자할지 말지 신중히 결정했으면 한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이번 독서가 내겐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는 점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526/7/cover150/e20253454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5260790</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아침 햇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05240</link><pubDate>Wed, 22 Jul 2026 08: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05240</guid><description><![CDATA[날이 좋은 아침이면 고양이와 나는 가는 방향이 다르다. 베란다 창이 거의 동쪽을 향하고 있어서 아침마다 햇볕이 마루로 담뿍 들어온다. 다른 계절이라면 아침마다 반가운 손님인데 여름엔 아니다. 어찌나 기세가 등등한지 집을 반으로 딱 갈라서 마루와 안방은 후끈하고 그 나머지는 견딜만하다. 나한텐 그렇다. 하지만 고양이는 아닌가 보다. 뜨겁기는 매한가지이나, 그래도 녀석은 일단 햇볕을 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고양이는 베란다 창가로, 나는 그 반대쪽으로 움직인다. 내가 슬슬 햇볕을 피해 부엌 쪽으로 가면 녀석은 나를 쫓아와서 베란다로 가자고 눈치를 준다. 그곳에서 뒹굴며 궁디팡팡을 받고 싶단다. 그럼 끌려가서 퉁퉁퉁 두드리다 햇볕에 정신이 혼미해져 내가 두드리는 게 고양이인지 수박인지 가늠하다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난다. 그럼, 고양이는 또 나를 따라와 햇볕으로 나를 몬다.<br>털도 어두운색이면서 덥지도 않냐? 날 내버려둬라, 고양이!냐~웅~<br>마지못해 끌려가다 햇볕에 들어가기 직전 발끝을 살짝 빛의 영역에 넣어본다. 뜨거운데. 나 타서 없어지는 거 아닌가?<br>고양이, 아저씨 흡혈귀 같지 않냐?<br>언젠가부터 쓸데없는 소리엔 답하지 않는 고양이다. 분명 한글을 알아듣는다. 녀석 배에 달린 지퍼를 찾아서 꼭 열어 볼 거다. 외계인이 그 안에 있을 거야, 분명. 궁디팡팡과 구박과 연행을 반복한 후 열기에 증발할 뻔한 정신머리를 간신히 부여잡고 탈출에 성공한다. 고양이도 만족했는지 베란다 창턱이 만들어놓은 얇은 그늘 안에 몸을 욱여넣고 그루밍을 한다. 독한 것.<br>나를 악몽의 끄트머리에서 완전히 빼낸 것도, 내게 일상에서 피어나는 소소한 웃음을 늘려준 것도 이 녀석이었다. 어두운 외모와 달리 양지의 기운이 꽤나 강한 고양이로세. 저기 말이지, 기왕 그럴 거 조카네 가족이 우리 집에 오면 코빼기라도 내비치면 안 될까? 꼬맹이가 널 그렇게 보고 싶어 하는데 어떻게 하루 종일 숨어서 안 나올 수가 있냐? 진짜 독한 것.<br>음... 나는 만만한 건가? 고양이, 이리 와 봐. 나랑 얘기 좀 합시다. 너, 나를 뭐로 보는 거냐?<br>꼬리말) 6월에 썼던 글. 요즘처럼 습하고 비 오는 날엔 쨍한 아침 햇살이 그리울 법도 하다는 핑계를 대며 올려본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고양이 일기</category><title>고양이 일기_8</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01443</link><pubDate>Mon, 20 Jul 2026 08: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01443</guid><description><![CDATA[*** 고양이는 집사를 관찰한다. 그래서 습득하고 파악하고 이해한다. 물론 고양이의 머리로. 간혹 이 녀석이 머릿속에 그려낸 나는 어떤 존재일지 궁금할 때가 있다. ***<br>고양이별에서 대한민국에 배정된 고양-202106... 뭐였더라? 암튼 입양 둘째 날부터 임무 수행 중. 아저씨는 컴퓨터 앞에 앉아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음. 문지방 옆에 숨어서 지켜봄. 아무래도 들킨 거 같음. 다음에는 더 잘 숨어야지.<br>고양-202106... 에잇! 아저씨는 날이 어두워지니 바닥에 엎어져 잠을 잠. 숨을 것도 없이 대놓고 쳐다봄. 가끔 끙끙대는 소리를 내는데 추워 그런가 싶어 내 몸을 아저씨 몸에 가져다 댐. 따뜻하네. 냥, 졸려라.<br>월이. 까까 먹는 시간, 체크. 나랑 놀아주는 시간, 체크. 일하러 가는 시간과 집에 들어오는 시간, 체크. 얼레... 이 아저씨, 사람이 아니라 커다란 고양이 아닌감? 생활 방식이 매일 붕어빵임. 여기 지구별이 아닌가?<br>월이. 지켜보다 응가 마려워 뛰어가는데 아저씨가 소리 지름. ‘너 이 자슥, 또 똥 싸냐?! 반칙이다, 반칙!’ 뭐가 반칙인 줄은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긴 함. 내 임무를 눈치채고 아저씨가 나를 암살하려 하는 걸 수도. 근데 응가 많이 싸면 죽나? 암튼 더 철저히 숨어야지.<br>월이. 아저씨, 책상에 기대 핸드폰 들여다보다 두리번거림. 책상 밑에서 감시 중인데 내 시선을 느낀 모양. 많이 예민해서 감시 임무에 스트레스 상당함. 헉, 밟힐 뻔함. ‘야, 너 거기서 그러고 뭐 하냐?!’<br><br><br>월이.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밀착 마크로 변경. 무릎 위에 올라가 모든 행동을 관찰. 아주 좋은 방법임. 그루밍 하기도 좋고, 따뜻해서 자기도 좋고, 그러다 깨면 바로 임무로 복귀해서 좋고. 이봐, 아저씨, 살 좀 쪄라. 자리가 너무 좁다. 그리고, 가만히 좀 있으면 안 되냐? 왜 자꾸 자세를 바꿔서 잠을 깨우는 건데?]]></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20/pimg_63920133354729882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01443</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good night, and, good luck</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98715</link><pubDate>Sat, 18 Jul 2026 18: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98715</guid><description><![CDATA["TV는 우리를 가르칠 수 있습니다. 계몽하고 영감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우리가 그런 목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 한 TV는 바보상자에 불과할 뿐입니다."<br>1958년엔 TV가 정보 전달의 가장 앞선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아니다. 유튜브를 비롯한 온갖 미디어가 정보 전달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항상 의문이 든다. 과연 그럴 자격이 있을까? 공정하며 그에 따른 책임을 질 용기가 있을까? 더 나아가 사람들은 그 정보들의 옥석을 가려낼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1958년에 누군가의 입에서 나왔던 저 문장은 이 시대와 맞지 않는다. TV든 핸드폰이든, 미디어를 실어 나르는 도구는 사람을 가르칠 수 있다. 또 많은 이들이 그런 목적으로 사용한다. 그런데도 그 도구는 바보상자처럼 보인다. 어쩌면 그보다 더 심각한 폭탄을 담은 상자처럼 느껴진다.<br>"수도 없이 많은 사람은 자신들의 편견을 재배열하는 것뿐이면서 자신은 사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br>1인 미디어가 가능해지면서, 그들 중 일부가 언론의 역할을 하면서 세상은 편 가르기가 수월해졌다. 경제적으로 선을 긋던 세상이 이젠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선을 긋고 이쪽과 저쪽을 요구한다. ‘이쪽’은 ‘저쪽’과 대립하지 않는다. ‘이쪽이 아닌’ 모든 것을 배척한다. 내가 옳다, 우리가 옳다. 선 긋고 배척하기 놀음에 정치인과 기존 언론이 올라탄다. 타협과 화합을 추구하는 정치도, 공정을 쫓아야 할 언론도 자신을 망각한 지 오래다.<br>"모든 사람은 경험의 포로다. 편견을 없앨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지 편견을 거듭 인식할 뿐이다.“<br>간식을 달라고 그렇게 앵앵대던 고양이 녀석인데, 먹다 말고 이리 펄쩍 저리 펄쩍 난리가 났다. 커다란 파리 한 마리가 들어와서 날아다니는 통에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움직이는 걸 쫓는 게 고양이의 기본 습성이긴 하지. 창문을 열어놨다 해도 방충망은 닫혀 있는데 이 파리는 어디로 들어왔을까? 내 고민과는 별개로 고양이는 신났다. ‘내가 잡는다, 내가!’ 도망갈 때 빼고 저렇게 빠른 걸 본 적이 없었는데. 잠깐 기대했지만, 그것도 잠시. 한숨과 함께 파리약을 들고 나와서 뿌렸다. 버둥대는 파리의 최후를 함께 지켜보다가 휴지로 덮어놓은 후 창틀을 살핀다. 이 커다란 게 어디로 들어왔지? 창틀에 있는 빗물 구멍 하나가 열려있다. 내가 뭘 하건, 고양이는 휴지에 쌓인 파리가 더 궁금하다. 앞발을 들어 괜히 휴지를 두어 대 후려친다. 호기심 역시 고양이의 본능이다. 본능에 따라 움직이면 귀엽기라도 하지.<br>2005년에 조지 클루니가 감독한 &lt;굿나잇앤굿럭&gt;이란 영화가 있다. 영화는 소위 '빨갱이 색출'에 열을 올리던 50년대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해서 매카시 의원의 마녀사냥에 맞선 언론인들의 모습을 그린다. 등장인물 대부분은 실존 인물이다. 그리고 이 글에 적은 인용문은 58년에 에드워드 R. 머로우가 했던 연설 중 일부이며, 영화 대사의 일부이다. 이 영화를 2006년에 봤다. 흐린 날이었고 우중충한 날이었다. 영화 내용은 20년 전이라 기억이 안 난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히 기억한다. 영화가 시작하고 곧이어 머로우 역을 맡은 배우(David Strathaim)가 연단에 올랐다. 그가 입을 떼자, 그 서늘함이 모든 모호한 색깔들을 날려버렸다. 그리곤 난 웃었다. 틀려버린 모든 것을 들이박겠다는 그 꼬장꼬장함이 무척이나 그립다.<br>좋은 밤 보내시길, 그리고 여러분의 계좌에(주식이든, 코인이든, 지식이든, 양심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행운이 있으시길.<br><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울렁증</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96528</link><pubDate>Fri, 17 Jul 2026 09: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96528</guid><description><![CDATA[대공원 그 아저씨와 일본 여행을 계획 중이다. 겨울에 2박3일 정도로 나카센도 일부와 시라카와고에 가 볼 생각이다. 계획대로 가게 되면 네 번째 일본 방문이 될 듯. 하지만 일본말은 전혀 할 줄 모른다. 함께 가는 사람이 일상 대화 정도는 가능해서 전적으로 의지한 채 졸졸 쫓아다니는 분위기랄까. 게다가 난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도, 한국어 이외의 언어도 무서워한다. 그래도 이번엔 일본어 공부를 좀 해볼까 하는데... 이 고양이 녀석이 문제거든.<br>재작년 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영어 회화 공부를 시작했었다. 학원? 모르는 사람과 모르는 언어 천지일 텐데 내가 그런 곳에 갈 리 없다. AI를 이용한 영어 회화 앱! 잠깐 써보니 나 같은 사람이 회화 공부하기엔 더없이 좋았다. 그래서 1년 치를 한꺼번에 내고 하루 한두 시간씩 꾸준히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뜻밖의 훼방꾼이 있었다. 회화라면 당연히 소리를 내야 하고 최소한 중얼중얼 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때마다 고양이가 난리법석을 떨었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그러다 나를 보고 울고. 어렸을 때부터 유독 핸드폰에서 나는 소리에 민감하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br>처음엔 몇 개월 지나면 적응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나도, 고양이도 적응에 실패했다. 영어 문장을 말하는 와중에 ‘야 이 개눔의 자슥, 그만 뛰어라! 정신 사납다!’ ‘야~~웅’ 같은 한국어와 고양이어가 수시로 뒤섞였고, 공부를 마칠 때쯤엔 영어와 고양이어에 기를 빨려 퀭해 있기 일쑤였다. 결국 집수리 일정까지 겹치면서 7개월 만에 도중하차. 그래서 결론은, 고양이도 나와 같이 영어 울렁증이 있구나, 정도. 이번 일본어 공부도 앱으로 하려고 하는데, 회화는 포기하고 글자만 알고 가야 하나? 어이, 고양이, 혹시 외국어는 다 싫어하니? 나도 그렇긴 해. 근데 너 한국어가 모국어니? 그건 아닐 거 아니야, 그치?]]></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까무룩</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94523</link><pubDate>Thu, 16 Jul 2026 07: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94523</guid><description><![CDATA[갑자기 까무룩 가라앉는다. 조금 전 축구 경기를 볼 때만 해도 이러지 않았는데. 축구는 우리나라가 이겼다. 그것도 역전승. 응원을 너무 열심히 했나? 아닌데. 중간에 세탁이 다 돼서 빨래도 널었고, 배고파서 떡도 데워 먹었는데. 떡을 너무 많이 먹었나? 음, 그럴 수도. 그래도 이렇게 의욕이 사라져서 껍데기만 남은 거 같은 느낌은 좀 지나치잖아! 경기 보기 전에 청소를 너무 열심히 했나? 항상 하는 건데. 어제 잠을 푹 못 잤나? 항상 그렇듯이 고양이가 두어 번 깨운 거 말곤 똑같았는데. 어제 산꼭대기에 갔다가 전운이 감도는 고양이 마을을 봐서 그런가? 그래, 그럴 수도. 리듬이 깨져서 그런가? 다른 날 같으면 고양이랑 놀다가 점심 먹고 글을 썼을 텐데. 그 모든 걸 축구 경기 보는 걸로 퉁 쳤으니. 내 성격이라면 당연히 그럴 수도. 요즘 종종 이러는데 본격적인 갱년기인가? 이런, 그럴 수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그래도 머릿속으로 온갖 잡생각이 지나가는 걸 보니 뇌는 멀쩡한가 본데.<br>바닥을 내려다보며 멍하니 서 있는데 고양이가 터덜터덜 내 앞을 지나쳐 안방으로 들어간다. 무심코 따라 들어갔는데, 방석에 턱 하니 자리 잡더니 나를 쳐다본다. 이것은? 이럴 땐 잠이나 자자는 고양이식 처방. 에라, 모르겠다. 방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눈을 감는다. 처음 눈을 떴을 땐 고양이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두 번째 눈을 떴을 땐 배를 까고 자고 있었다. 아, 배 만져 보고 싶은데. 그럼 물겠지? 다시 까무룩.<br>정신을 차려보니 한 시간이 조금 넘게 지났다. 내 기척에 고양이도 일어나 하품하며 기지개를 켠다. 나도 뻣뻣한 목을 돌리며 하품. 사람 하나와 고양이 하나가 아니라 마치 고양이 둘인 찰나의 시간대가 지나갔다. 글을 쓴다. 글을 써 보지만 아직 고양이의 흔적이 남아 있다. 아웅, 귀찮아라.<br>(꼬리말) 월드컵 체코전이 있을 때 썼던 글이다. 글에 묻은 귀찮음이 그대로 글의 성격이 되었는지 한 달이 넘어서야 세상에 등장하고 말았다. 이름은 신중하게 잘 지어야 한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안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92618</link><pubDate>Wed, 15 Jul 2026 09: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92618</guid><description><![CDATA[작년 여름 엄청난 무더위로 산에 오르는 걸 포기했었다. 그러다 9월 말, 아니면 10월 초쯤. 거의 4개월 만에 인왕산에 다시 갔다. 정상에 도착해 초코바 하나를 뜯어 먹는데 느닷없이 무언가 수풀 속에서 툭 튀어나와서 깜짝 놀랐다. 고양이 한 마리, 삼색이었다. 눈을 나름 동그랗게 뜨고 놀란 척을 하다가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어렸을 때 골목에서 가끔 마주칠 법한 꼬맹이의 억울한 표정이 떠올라서다. ‘아 씨, 내가 안 그랬는데! 엄마는 맨날 나만 혼내!’ 그렇게 소리 지르면서 대문 밖으로 뛰어나온 개구쟁이 아이의 표정. 나도 한때는 저런 표정을 한 적이 있었을 텐데. 그렇게 삼색이는 내 마음을 뺏었다.<br>이 아이 이전엔 난 어떤 길고양이에게도 먹을 걸 주어본 적이 없다. 내가 책임질 수 없는 아이니까. 눈길을 주고 사진을 찍고 때론 웃고 때론 안타까워했지만 그뿐. 하지만 어느새 먹을 걸 한두 개씩 챙겨서 산으로 향했다. 전엔 근처 다른 산에 가기도 하고, 서울 둘레길을 찾아 걷기도 했다. 삼색이를 본 후론 인왕산에만 갔다. 많아야 일주일에 세 번, 그것도 갈 때마다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먹을 걸 챙겨서 갔다. 세상에 태어난 지 길어야 6~7개월밖에 안 됐을 거 같고, 곧 추운 겨울이 오면 산 정상에 오는 사람은 많이 줄어들 터였다. 그래서 딱 1년만, 세상에 태어났으니, 사계절은 온전히, 건강하게 경험해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br>그러다 젖소냥이에게도 정이 들었다. 당차고 똘망똘망한 삼색이와 달리 젖소냥이는 어수룩한 면이 있었다. 처음엔 그저 삼색이에 딸려오는 캐릭터 느낌이었는데, &lt;모지리&gt;란 글에서 썼던 상황을 거치면서 녀석에게도 정이 가기 시작했다. 삥 뜯어먹고 살아야 할 녀석이 눈에 잘 안 띄는 재주를 가졌으니 이렇게 모자랄 수가 있나 싶어서. 아우, 모지리, 진짜.<br>지금 정상엔 고양이들이 늘었다. 최근에 새로 등장한 녀석들은 삼색이와 모지리, 아니, 젖소냥이의 동생뻘 되는 아이들이 아닌가 싶다. 서로 적대하지 않는다. 다만 서열은 삼색이가 가장 높고, 그다음 모지리, 그리고 나머지들로 보인다. 최근 3주간 삼색이와 젖소냥이를 보지 못하다가 어제 모처럼 젖소냥이와 마주쳤다.<br>“야, 네 누나 어디 갔냐?”<br>대답할 리 없다. 대답하면 모지리가 아니지. 가져간 거 다 털어서 주고 내려오면서 생각한다. 딱 1년만, 온전히 4계절만 경험하라고 바라는 게 아니었어. 왜 더 길게 바라지 않았을까? 10년이라고 할 수도 있었고, 산신이 되라고 할 수도 있었는데.<br>집에 돌아와서 창밖을 구경 중인 고양이에게 슬며시 얘기한다. 이봐 고양이, 궁금해서 그러는데, 고양이별에 연락해서 삼색이 잘 있는지 알아볼 수 있을까? 내가 바람피우는 건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잘 있나 싶어서.]]></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고양이 일기</category><title>고양이 일기_7</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89042</link><pubDate>Mon, 13 Jul 2026 10: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89042</guid><description><![CDATA[*** 고양이가 저지른 각종 사고의 책임은 99% 이상의 확률로 집사 책임이다. 어디든 갈 수 있는 고양이 특성을 생각한다면, 치울 건 치우고 막을 건 막아야 한다. ***<br>냥. 오늘은 집구석 탐사 대망의 마지막 날. 아까 봤는데 신발장 위 틈새에서 어둠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음. 그러니까 요 상자를 밟고 점프하면. 조금 높기는 한데…. 도전은 아깽이가, 뒷일은 아저씨가! 가만, 아저씨는... 컴퓨터를 하고 있음. 우선 상자 위로. 하나 둘 점프! 팍팍(뒷발로 벽 긁는 소리). 오, 아슬아슬. 아저씨는 눈치 못 챘겠지? 예! 나는야 어둠의 암살냥 검은 고양이! 먼지! 먼지! 얍 받아랏, 내 앞발을! 먼지! 먼지! 냥. 먼지뿐이네. 시시해라. 이제 나가야겠당.<br>흠. 턱이 있네. 이러면 밖으로 뛰어내리기 힘든데 어쩌지? 어, 안 되겠는데. 무서운데. 이러다 걸리면 아저씨한테 혼나는데! 앗, 아저씨다, 쉿!<br>어디 간 거야?<br>큰일 날 뻔…. 벌써 큰일 난 건가? 저기 아저씨야... 으응~<br>뭐야, 여기서 소리가 났는데? 신발장에 들어갔어?<br>내가 거기 들어갔겠냐? 문도 못 여는데. 생각을 좀 깊이 하자, 이 아저씨야. 응냥~<br>없는데? 붙박이장에? 그건 말도 안 되는데?<br>아우, 답답스러워라! 여기다, 여기! 냐아웅! 어우, 깜짝이야! 그렇게 빛을 비추면 내 소중한 눈이 놀란다구. 아니, 아니, 그 우악스런 손으로 날 잡으려고? 아니야, 안돼! 혼내지 않겠다고 약속하기 전엔 절대 못 나간다!<br>이눔의 자슥이! 너 가만있어봐!<br>냥? 뭐 하게? 앗, 이 아저씨가? 막대기로 뒤에서 밀면 어떡해! 나보고 낑겨 죽으라는 거냐! 우와앗! 어, 나왔다, 나왔어! 아, 아, 아, 목덜미를 그렇게 잡으면 좀 그런데...<br>야. 너 거긴 왜 들어간 거야, 응?<br>왜긴? 틈이 있으니까 아깽이는 들어간 거고... 아, 아, 아, 이거 놓고 얘기합시다. 그니까 틈을 잘 막았어야지. 아저씨가 잘못해 놓고 왜 나한테 그러는데? 아, 아, 목덜미, 목덜미.]]></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화장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86068</link><pubDate>Sat, 11 Jul 2026 17: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86068</guid><description><![CDATA[고양이를 쳐다보는 중이다. 마루에 접한 베란다 창 아래쪽에 턱이 있는데 녀석은 그곳에 상체를 걸치고 밖을 내다본다. 날이 더워지면서 간혹 저런 자세를 취하는데, 마음에 든 모양이다. 솔직히 저 눈높이로 밖을 내다봤자 건너편 아파트 끄트머리만 보일 뿐이다. 부동산에 관심 있는 건 아닐 테고. 무얼 보는 걸까? 시선을 돌려 화장실 문을 잠깐 응시하다 다시 고양이에게 관심을 돌린다. 제법 진지하게 밖을 보고 있다. 뭐가 보이니? 그냥 귀찮아서 그러고 있는 거야? 그러다 다시 화장실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이상하네...<br>한 시간 전쯤. 건강 검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이것저것 하다가 화장실에 가야겠단 생각을 했다. 그리고 쭉 시간이 흘렀다. 고양이를 뒤쫓아 베란다로 가다가 갑자기 떠오른 의문 하나. 내가 아까 화장실에 갔던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갔던 거 같기도, 안 갔던 거 같기도. 그러면 지금 오줌이 마렵나? 그런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화장실 문을 열고 안을 살폈다. 다를 바 없는 모습. 무언가 변한 게 있다면 아까 들어와서 만졌단 얘기니까 확인이 가능하겠지만, 난 습관적으로 물건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사람이다. 티가 나는 게 없다. 수면 마취의 영향인가?<br>잠시 회상에 빠졌다 고양이를 보니, 한쪽 앞다리만 창턱에 걸친 자세로 나를 보고 있다. 이야, 너, 제대로 건방지구나. 근데 그러고 있음, 너 팔 저리지 않니? 고양이는 저리거나 하지 않나? 실없는 의문이라 생각하며 웃다가, 그렇다면 조금 전까지 품었던 의문은 진지한 것인가 싶어 얼굴을 살짝 찌푸린다. 화장실에 갔던가? 이런 사소한 일에서조차 생각과 행동을 일치시키지 못하면, 난 무엇을 확신하며 살아야 하는 거지? 화장실 문을 힐끔거리는데 무언가 핥는 소리에 고양이를 본다. 창턱에 걸치고 있던 앞발을 열심히 그루밍 중이다. 어렸을 때 팔에 전기가 오르면 침 발라서 코에 묻히던 기억이 뜬금없이 떠올랐다. 저 녀석, 고양이가 아니라 사람인가?<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이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83855</link><pubDate>Fri, 10 Jul 2026 08: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83855</guid><description><![CDATA[건강검진을 받았다. 수면으로 내시경을 받을 때마다 신기하다. 옆으로 누워서 '눈 뜨고 계세요. 약 들어갔습니다.'란 얘기를 듣자마자 뭔가 묵직하면서도 살짝 흔들리는 느낌을 받고 의식이 사라진다. 그리고 눈을 뜨면 회복실. 대개는 입가에 침을 흘리고 있어서 목에 놓인 휴지로 침을 닦는다. 확연히 변한 건 사라진 시간과 흐르는 침뿐. 시간을 침으로 보상받은 느낌이라 굉장히 손해 본 느낌이랄까.<br>3년 전, 위와 대장 내시경을 동시에 한 적이 있었다. 대장 내시경 준비 때문에 밤에 잠을 설쳤다는 게 다른 때와 달랐고, 확실하진 않지만, 두 군데 내시경을 진행하느라 약의 투입량이 좀 더 많았을 거로 추측해 본다. 정신을 차렸다. 아니, 그때는 차렸다고 생각했다. 침대에서 일어나서 의자로 가다가 중간에 기억이 끊겼다. 항상 검사받던 곳이라 무의식중에도 이동한 모양이다.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의자에 앉아 있었다. 두리번. 응? 옆을 보니 약간 떨어져 남자분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제가 어떻게 여기 앉아 있는 건가요?’라는 질문을 하려고 손을 뻗다가 움찔했다. 보통 때 나라면 아무리 궁금한 게 있어도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그래서 깨달았다. 아, 지금 내가 수면마취가 제대로 깬 상태가 아니구나. 손을 거둬들이고 무의식적으로 입 주변을 닦고(왜?) 한참을 조용히 앉아 있었다.<br>검사는 무사히 마쳤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서 문득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침대에서 일어나 의자로 가던 그 사이, 선생님이 나를 불러 세웠었다. 내시경 결과 설명을 듣고 가라고. 겉보기엔 내가 아주 멀쩡했던 듯하다. 의자에 앉아서 설명을 들었는데, 마치 흐릿한 망원경을 통해 1:1 배율로 외부를 보는 느낌이었다. “대장엔 문제없고, 예전 검사 결과를 보면 위에 작은 혹이 하나 있었네요?” 그 질문엔 제대로 대답했다. 그다음 어떤 생각이 이어졌다. ‘그건 다 아는 사실이고 그래서 그 혹이 어떻게 됐는데?’ 그런데... 이게 단순히 생각이었는지, 실제 말로 내뱉었는지 분간이 안 되는 거였다. 아무래도 말을 한 거 같은데…. 한참을 나무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만화였다면 하얗게 재로 변해 파사삭 부서져 내렸을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별문제 없다는 얘긴 알아들었다. 세상에나.<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아무 생각</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81953</link><pubDate>Thu, 09 Jul 2026 08: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81953</guid><description><![CDATA[베란다에서 내려다보면 공사 현장이 보인다. 20층이 넘는 건물 두 채는 이미 완공이 됐고, 주변을 둘러싼 길을 만드는 중이다. 벌써 두 달 가까운 기간인데 아직도 완성은 멀어 보인다. 원래 길이 없던 곳에 길을 내고, 길은 있었으나 오래된 시멘트 보도를 걷어내고 길을 만든다. 그 탓인지 작업은 더디고 신중하다. 포크레인 한 대와 작업자 세 명. 이들이 기본이고 간혹 주변 통제를 위해서 몇 명이 더 들러붙기도 한다. 땅을 파고, 배관을 묻고, 도로와 보도의 경계를 구분한 후 경계석을 세우고, 시멘트를 붓고, 경계석을 다시 세밀하게 정렬하고. 포크레인이 이렇게 다양한 작업을 하는지 미처 몰랐었고, 새로운 길을 까는 게 이렇게 지리한 작업인지 역시 몰랐었다.<br>길의 운명을 생각해 본다. 물리적으로 밟고 지나가는 존재야 사람이겠지만 그 위로 흘러가는 게 어디 사람뿐일까. 빗물과 바람이 흐르고 시간이 지나가며 주변 환경이 스며들겠지. 그에 따라 길은 고유의 색채를 드러낼 거고, 감정을 품을 거다. 그 색채와 감정이 누군가를 불러들이고, 누군가에겐 영향을 미칠 거다. 언젠가 한 번쯤은 표면이 뜯기고 새로 치장하겠지만 환경이 변하지 않는 한 길은 기존의 색채를 그대로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무엇이든 존재의 흐름을 쫓다 보면, 사람과 다름이 없는 건가? 아, 내가 생각해서 그런 걸 수도 있겠다. 내가 사람이라서, 사람인 내가 내 존재를 무생물에 투영해서. 길은 그냥 있을 뿐인데.<br>음, 그래 분명 다르다. 길은 탄생의 산고를 치르는 중인데, 근처를 지나는 사람들은 먼지가 나서, 시끄러워서, 돌아가야 해서 불평한다. 사람이 태어난다면, 누구도 그따위 불만을 내비치진 않는다. 돌이켜보니 나도 투덜거렸다. 역시 생각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표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80002</link><pubDate>Wed, 08 Jul 2026 08: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80002</guid><description><![CDATA[위층 수리로 발생하는 소음이 간간이 들린다. 이제 큰 소음은 없고,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자잘한 소리다. 하지만 고양이는 그 정도도 불안한 모양이다. 소음을 쫓아 집 내부를 천천히 살피던 녀석이 안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곤 침대 머리맡 아래쪽에 둔 하늘색 여름용 방석 위에 자리 잡더니 나를 빤히 쳐다본다. 여기서 잘 거니까 옆으로 오라는 의미. 위층이 수리하면서 생긴 생활 방식인데 내가 근처에 자리 잡지 않고 나오면 녀석도 따라 나온다. 그래서 책과 핸드폰을 들고 녀석의 곁으로 간다.<br>바닥에 앉아 침대에 기댄 채 책을 펼친다. &lt;도시의 승리&gt;. 2011년에 나온 책이니까 무려 15년 전이다. 알라딘에 읽고 싶었던 책으로 저장해뒀다가 이제야 읽는 중이다. 알라딘에 저장해둔 책을 생각하면 언제나 한숨이 앞선다. 죽기 전에 다 못 읽을 거야. 먹고 사는 게 뭐라고. 십몇 년을 죽지 않기 위해 먹고, 죽지 않기 위해 운동하고, 죽지 않기 위해 잤던 거 같다. '살려고'가 아닌 '죽지 않기 위해'. 옆을 보니 고양이는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그땐 왜 이런 평화로움을 느껴보지 못했을까? 하늘색 방석 위에 짙은 회색빛 고양이. 그리고 책을 보며 내용보단 잡념에 빠져든 아저씨.<br>아, 그런데 이러고 앉아서 책을 보면 허리가 아프다. 엉덩이도 배기고. 평화가 고통을 없애주지는 못하는구나. 평화가 먹고 살 걱정을 없애주지도 못하겠지? 책을 덮고 벌렁 드러누워 핸드폰에 있는 전자책을 연다. &lt;호라이즌&gt;. 2019년 출간된 책이다. 도대체 시간을 따라잡질 못하누. 한숨을 쉬다 기척이 느껴져 옆을 보다가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발라당. 다짜고짜 애교를 투척한다. 잠정신일 텐데. 너 진짜 직업의식 투철하구나. 볼때기 몇 번 쓰다듬어주니 또 잔다. 이 녀석, 나를 알아보고 애교를 부린 걸까? 의심의 눈길을 던지다 다시 핸드폰에 집중한다. 이러고 핸드폰 보고 있으면 정말 게을러 보이던데. 읽으려는 책은 뒷전이고 온갖 생각의 단편만 둥둥 떠다닌다. 조각을 이어 붙여야 하는데, 어째 돌멩이가 날아들어 자꾸 파문이 인다. 고양이 너냐? 돌멩이 던지는 게?<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08/pimg_63919096620352653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80002</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고양이 일기</category><title>고양이 일기_6</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76275</link><pubDate>Mon, 06 Jul 2026 08: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76275</guid><description><![CDATA[*** 새끼 고양이의 호기심은 장소, 시간, 대상 불문이다. 3차원 공간을 익숙하게 쓰는 고양이의 능력은 집사가 바닥에 붙어있게끔 가만히 두지 않는다. ***<br>냥, 전망 좋네. 저 아저씨는 어두워지기만 하면 자. 뭐, 나야 좋고. 음, 저쪽이 여기보다 더 높아 보이는데. 저기로 가볼까? 웃차. 착지 성공. 랄라~ 가만, 위에 가방이 막고 있잖아. 비스듬하게 뛰어야 하나? 이 위에 올라가서 뛰어도 안 될 거 같은데…. OK. 행동은 생각보다 빠르다! 아깽이는 생각 따위 하지 않지. 하나둘, 점프! (팍팍팍. 앞 뒷발 발톱으로 장롱면 긁는 소리) (퍽. 낙하 후 바닥에 퍼질러진 소리) 아이 씨! 오구! 깜짝이야! 우와, 아저씨, 어떻게 그렇게 발딱 일어날 수 있냐? 한 번만 더 해봐.. 옷, 도망이다! 잡히면 죽겠다!<br>너 왜 자꾸 거긴 올라가려고 하는데?! 생각이 있어? 너무 높잖아!<br>아깽이가 생각이 있겠냐? 생각 좀 하고 살자, 아저씨. 그리고 고양이가 높은데 올라가는 건 당연한 거라고. 우린 항상 높은 곳을 바라보며 살아. 우리가 얼마나 도도한 종족인데, 아직 그걸 모르는 거야? 아참, 이 아저씨, 고양이에 대해 너무 모르네. 알았어, 알았어. 오늘은 그만할게. 일어난 김에 까까 좀 주면 안 될까? 그냥 자네. 삐졌구나, 삐졌어. 아이고, 생각만 없는 줄 알았더니 소갈머리도 아주 쥐 대가리만 하네. 그래, 그래, 푹 자라, 푸욱 자.<br>랄라~ 고양이 눈은 어두워도 잘 보이죠~ 아깽이 눈은 신(神)도 두려워하죠~ 응, 저건 뭐냐? (푹푹푹. 문갑 밑을 앞발로 파헤치는 소리) (푹푹푹) 응? 뒤통수가 따가운데? 우악, 아저씨, 그렇게 발딱발딱 일어나지 마라! 간 떨어질 뻔했다! 고양이한테 간이 얼마나 중요한데.<br>너 또 뭐 하는데?!<br>아, 왜! 이번엔 겸손하게 아래쪽을 봤구먼, 뭐! 이거 봐라, 아저씨. 이 밑에 이런 거 진짜 많이 있다! 응? 어디 가? (후다닥) 나 응가도 안 쌌는데 그 축축한 건 왜 가져오냐? ... ... 뭐야? 그 축축한 걸로 다 긁어모으는 거야? 다 가지지 말고 나도 하나만 주라!<br>저리 안 가! 지금 너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거잖아! 새벽에 가구 밑 먼지 청소하는 게 말이 되냐!<br>아 씨, 치사하게. 지 혼자 다 가지려고. 에잇, 치사하다, 너 다 가져라! 소갈머리가 쥐 꼬랑지보다 못하겠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얄미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73512</link><pubDate>Sat, 04 Jul 2026 16: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73512</guid><description><![CDATA[소파 위에서 자다 고양이 소리에 잠이 깼다. 새벽 2시. 주변에 고양이는 보이지 않는데 어디서 운 거야? 컴컴할 땐 안 보이는 게 이 녀석 장기긴 하다. 식탁 불을 켜고 돌아보자, 녀석이 보인다. 소파 머리맡 아래쪽에서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중이다. 저기서 울었으니 내 귀에 울음소리가 꽂혔지. 눈빛에 담긴 기대에 부응하기로 하고 간식을 준비. 닭가슴살 트릿이다. 크기가 좀 큰 편이라 잘게 부셔준다. 그냥 주면 침만 묻히고 안 먹는 불상사가 생기곤 한다. 자기 침이라도 일단 입에 들어갔다 나온 건 먹지 않는다. 생각하지 말자. 열 받는다.<br>즐거운 간식 타임에 이은 응가 타임. 이어지는 우다다. 응가 싸서 기분이 좋은 건지, 어린 시절 응가 싸고 내게 쫓기던 트라우마가 있는 건지. 이젠 그러려니 한다. 잠이 들락 말락 하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퉁’ 하는 소리. 이상하다 싶어 마루로 나갔더니 고양이가 방충망 너머 베란다를 주시 중이다. 방충망을 앞발로 짚었다가 발톱이 걸렸는데, 억지로 빼내며 난 소리 같았다. 심상찮다. 베란다 불을 켜고 조심스럽게 나가서 살피는데 단번에 시야에 잡히는 검은 존재 하나. 밝은 베이지색 타일 위에 검은 바퀴벌레. 와, 존재감 어쩔 거야! 고양이, 크기는 네 앞발만 한데 존재감은 너를 압도한다. 내 말에 자극이라도 받았는지 후다닥 뛰어 들어오지만, 갑자기 급선회하더니 조그만 날벌레를 향해 돌진. 바퀴벌레를 쫓아갈까 봐 순간 움찔했던 놀라움도 잠깐, 급격하게 퍼져 나가는 실망감이 온몸을 휘감는다. 아, 진짜 너는 길에서 너를 발견해 준 그 이모한테 평생 고마워해야 한다. 베란다 밖으로 연행되며 징징대는 고양이 소리를 들으며 농담 반 한숨 반으로 투덜거린다. 생각하지 말자. 열 받는다.<br>바퀴벌레 사냥 끝. 고양이는 베란다로 통하는 마루 창과 안방 창을 오가며 방정맞은 구경꾼 역할에 끝까지 충실했다. 불 끄고 침대에 누웠지만 잠은 이미 저만치 달아났다.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데 자꾸 생각난다. 고양이기에 망정이지 사람이었으면 진짜 얄미움이 하늘을 찌를 뻔했다. 적어도 내가 하나는 확실히 틀렸다. 이 순간만큼은 녀석의 존재감이 세계 최강이다. 아우, 열 받아!]]></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발작 버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71245</link><pubDate>Fri, 03 Jul 2026 09: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71245</guid><description><![CDATA[배재고 야구부에 6개월 출장 정지가 결정됐다. 처음 응원 구호를 들었을 때 득달같이 달려들었던 놀라움과 어이없음이, 징계 소식을 듣고 착잡함과 안타까움으로 바뀌었다. 특정 지역 학교를 대상으로 특정 단어를 썼단 얘기는, 그 기원까진 모른다 하더라도 현재 어떤 맥락으로 쓰인다는 건 알았다는 의미일 텐데.<br>자러 가기 직전, 스마트폰을 들고 가다가 아무 생각 없이 네이버의 뉴스 섹터를 봤다. 기사 제목은 모르겠다. 클릭해 들어간 그 내용엔 정치인들이 SNS를 통해 배재고 야구부 징계에 대한 의사표시를 하고 있음을 알렸다. ‘아이들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정치 참 편하게 하는구나. 갈라치기와 적대의 최전선에 있는 자들이 이젠 자신들이 누리던 무책임까지 선물인 양 다음 세대에게 물리려 하나. 정말 가혹한 건 말이다, 6개월이든 1개월이든 내려질 징계 자체가 아니라 이 아이들에게 찍혀버린 낙인이다. 스무 살도 안 된 청소년들에게 다가올 미래를 앞에 펼쳐질 길이 아닌 조여오는 숨통으로 만들어버린 게 정말 가혹한 거다. 그리고 이건 여전히 권력투쟁에 몰두하고 ‘나 아님 안돼’를 외치는 당신들이 일구어낸 현실이다. 그러니 가증스럽게 문장 몇 개 던져놓은 후 걱정하는 척하지 말고, 여야 불문 국민 앞에 고개라도 숙여야 할 일이다. 가해자로서 책임을 지고 나올 이 아이들의 숨통을 더 이상 조이지 말아 달라고. 피해자이기도 한 이 아이들이 힘겹게라도 나아갈 길을 조금이라도 열어 달라고. 안 그러겠지. 자기 자식이 아니니까. 더 거창한 일이 많을 테니까. 내가 어른이란 사실이 정말 부끄럽구나.]]></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천지 차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69362</link><pubDate>Thu, 02 Jul 2026 08: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69362</guid><description><![CDATA[설거지하다가 뭔가 콕콕 찌르는 느낌에 뒤를 돌아보니 빨래 건조대에 걸어둔 청바지 아래로 고양이가 쳐다보고 있다. 집사 전용 CCTV가 작동 중이다. 녹화 내용은 CCTV 마음대로, 저장 기간은 CCTV 수명이 다할 때까지. 녀석의 눈을 보다가 몇 시간 전 외출했다가 봤던 장면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br>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 정류장에 멈춘 버스 창밖으로 개 두 마리가 보였다. 목줄에 묶여서 산책을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산책 말고도 목적이 하나 더 있었다. 엄마의 배웅. 엄마가 버스를 타서 내 뒤를 지나 버스 안쪽으로 쭉 들어가자, 개들의 시선도 그에 따라 이동한다. 엄마만을 보겠다. 엄마만 찾겠다. 버스가 출발하고 얼마 안 있어 창밖에 또 한 마리의 개가 포착됐다. 이번엔 목줄도 없이 그냥 건물 앞에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는 중이다. 1층이 카센터였던 걸로 얼핏 봤는데 아마 그 가게와 관련이 있지 않나 싶다. 무료함과 듬직함이 느껴지는 자태. 같은 날은 아니지만 며칠 전 봤던 다른 개의 모습도 있다. 산에 갔다 내려오는 길에 써브웨이 앞을 지나는데 개 한 마리가 출입구 앞에 철퍼덕 배를 깔고 앉아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매장 안에 외국인이 있었는데 아마 그 사람을 기다리는 듯했다. 자세는 웃기지만 애잔하면서도 애틋한 분위기.<br>개들의 모습과 이미지를 날려 보내고 다시 고양이를 본다. 자기만 바라보라는 욕망과 전혀 믿음직하지 않은 가벼움과 투덜거리며 짜증 난 듯한 분위기. 도대체 어떤 지점에서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게 갈라진 것일까?]]></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응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67467</link><pubDate>Wed, 01 Jul 2026 07: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67467</guid><description><![CDATA[홍명보 감독이 사퇴했다. 당연한 순서다. 지금부터 변화를 꾀하는 자들과 변화의 대상이 된 자들 사이에 치열한 물밑 싸움이 일어날 거다. 각종 언론 플레이에 진흙탕 싸움도 마다하지 않을 테고, 그걸 빌미로 온갖 자극적이고 애매모호한 콘텐츠들이 마치 사실인 양 우후죽순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그러다 보면 당연히 편이 갈리고, 온갖 생각을 바탕으로 한 주장들이 난무하고. 윤어게인이 있듯이 협회 포에버, 어쩌면 한국인 포에버를 외치며 동정과 옹호를 보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간절히 바라건대, 젊은 세대에서만큼은 그런 동정론이나 주장이 없길 빈다. 변화를 갈망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었다. 절차상의 비민주성과 불공평함. 그걸 외면한다면, 그냥 오래 묵은 똥이냐, 새로 싼 똥이냐 그 차이일 뿐이다.<br>그런데 응가 얘기하니 갑자기 궁금해지는데. AI가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고, 가스라이팅을 통해 편향된 사고방식을 고착시킬 수도 있다며 비판한다. 그런 사례들이 분명히 존재하니 타당한 비판이라 본다. 그럼, 유튜브나 엑스 같은 콘텐츠들은? 이것들은 옳은 정보만 제공하고 다양한 사고방식을 유도했던가? 부정적 측면만 따지고 보면, 이것도 새로 싼 똥이냐, 오래 묵은 똥이냐 그 차이인 듯한데 말이지. 그래서 정말 정말 궁금한데, 저기 말이요, 생물학적 진화 말고 디지털 진화로 인해 밀려나는 세대를 위해서 그 디지털 문화를 비판해 본 적은 있소? 그러니까 그 똥이 내가 밟은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밟을 때도 외면하지 않았냐, 그 말이오? 아 씨, 왠지 난 당당하게 얼굴 들 자신이 없네.<br>너희들 중 죄 없는 자 내게 돌을 던져라.<br>흐음... 죄송합니다. 당당한 게 무엇 하나 있을지 궁금한 삶이지만 이번에도 돌을 던지겠습니다. 그 대상이 핍박받고 소외된 존재는 아니었으니까요.]]></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고양이 일기</category><title>고양이 일기_5</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61587</link><pubDate>Mon, 29 Jun 2026 08: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61587</guid><description><![CDATA[*** 고양이는 내겐 상상 속 유니콘 같은, 하지만 하찮은 ***<br>(쫑긋) 저, 저 멍멍이 자슥이. 시도 때도 없이 짖어요. 이 아파트에 너만 사냐! 근본 없는 종족 같으니. 우리 고양이별에 전해지는 고양이 성경에 따르면, '태초에 신과 함께 고양이가 있었으니, 이후 사건 사고가 잇따르더라. 신은 귀여움만으론 세상의 혼란을 막을 수 없다 판단하여 다른 종족들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혼란의 책임을 물어 고양이에게 하찮음을 부여하셨다.' 봐, 우리가 이 정도라고. 멍멍이랑은 차원이 달라. 멍멍이처럼 사람이랑 같이 사는 건 똑같은 거 아니냐고? 아니지! 우리 고양이들은 당당하게 빌붙어 사는 거라고! 꼬리 흔들고 헥헥거리는 멍멍이랑 비교하다니!<br>내가 비밀 하나 얘기해줄게. 고양이별과 강아지별은 살짝 라이벌 관계이긴 해. 사실 지구별은 강아지별이 먼저 발견해서 자리를 잡긴 했지. 우린 게으르거든. 응? 그게 뭐? 게을러도 우린 잘 먹고 잘살 수 있어. 그게 얼마나 대단한 능력인데. 암튼 고양이는 지구별에 조금 늦게 도착했지만 당당하게 빌붙어서 자리를 잡았지. 멍멍이의 자리를 뺏은 건 아니야. 멍멍이는 싫든 좋든 사람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할 거고. 우린! 사람의 운명을 지켜볼 거야. 태초의 우주를 담은 이 눈으로. 그러다…. 아니다, 아니야. 여기까지. 고양이는 신비한 종족이니까 속속들이 다 알려줄 필요는 없지.<br>그러니까 (멍멍) 고양이를 (멍멍멍) 강아지와 (멍멍) 같은 선에 (멍멍멍) 야잇! 조용히 해랏! 넌 귀도 안 아프냐! 개 같은 눔아! ... 인간들아, 무슨 욕을 이따위로 만들어놨냐? 개한테 개 같다고 해도 욕이 아니잖냐? 냥. (찰칵) 오, 아저씨다, 아저씨! 까까가 들어온다~ 까까~ (발라당) (뒹굴)]]></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축소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58303</link><pubDate>Sat, 27 Jun 2026 16: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58303</guid><description><![CDATA[대한민국과 남아공의 축구 경기를 보다 후반 도중 TV를 껐다. 도무지 풀어나갈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답답해도 이렇게 답답할 수가 있나. 멕시코 때도 그랬고, 이긴 경기였지만 체코와 경기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쩌다 걸리는 한 방. 그게 없으면 공은 U자 형태로 주변을 크게 맴돌 뿐 상대방 골문 쪽으로 투입이 안 된다. 홍명보 감독의 전형적인 축구 스타일이었다. 어찌 보면, 이미 예견이 되었던 사태.<br>현대 축구는 감독의 역할이 크다고 한다. 골은 선수가 넣지만, 골문 근처까지 접근하는 건 부분 전술을 이용해서 감독이 선수들에게 주입할 수 있는 부분이란 의미일 것이다. 또한 상대방의 전력과 전술을 분석한 후 그에 맞는 대책을 세우고, 그 대책이 어그러졌을 때 재빠르게 변화를 가져가는 것 역시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의 역할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감독이 선임됐을 때부터 이에 대한 지적이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전 감독인 클린스만 때도 똑같았다. 심지어 무책임함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그 또한 묵살됐다. 그러자 클린스만은 보란 듯이 난장판을 만들어놓고 대표팀을 떠났다.<br>이 모든 사달을 만들어놓은 축구협회는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기성세대들이 구축한 ‘꼰대 문화’와 소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그들만의 리그’를 정점으로 모든 비판을 무시한 채 무책임과 특혜로 일관했다. 개개인의 욕심과 주장이 휘몰아치고, 공정하며 공평한 기회는 애초에 부여되기 힘들었다. 윗세대가 구축한, 시대에 맞지 않는 가치는 다가오는 세대를 고스란히 짓누르기 마련이다. 더욱 고약한 건 앞으로 다가올 변화에 정통으로 들이받히는 세대는 이 꼴을 만들어놓은 기성세대나 방관한 세대가 아닌 젊은 세대라는 점. 하긴 이런 게 어디 우리나라뿐일까? 사람 사는 곳이면 모든 곳이 다 똑같겠지.<br>경우의 수를 따져서 32강을 생각하는 모양인데, 대표팀을 향한 내 응원은 여기서 멈춰야겠다. 올라간들 경기력이 달라질까? 한 방이 터져서 16강도 갈 수 있겠지만 결과가 중요한 시점은 지난 듯하다. 선수들도 욕을 먹을 거고, 남아공의 경기를 본다면 당연히 그럴 만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 욕지기는 일어날 필요가 없는 일이기도 했다. 뭐, 일어날 필요가 없었던 일은 그것 말고도 수두룩하다. 손흥민과 이재성은 이번 월드컵이 마지막일 가능성이 크고, 황인범과 김민재는 한 번쯤 더 가능할 수도 있겠다. 안타깝게도 우리 축구를 이끌어왔던 이들이 이번 실패의 굴레를 쓰게 됐다. 하지만 이들의 탓이 아니다.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던 윗세대의 탓이다. 전적으로.<br>꼬리말) 그래도 32강에 올라가면? 선수들을 응원할 거 같다. 온갖 비난과 불평들, 그들이 온전히 짊어져야 할 짐이 아니다.]]></description></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