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어느덧 여기에 (대굴대굴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책에 관한 리뷰라기 보단 내 삶에 대한 리뷰</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Wed, 15 Jul 2026 21:43:08 +0900</lastBuildDate><image><title>대굴대굴</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045771444334901.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대굴대굴</description></image><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안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92618</link><pubDate>Wed, 15 Jul 2026 09: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92618</guid><description><![CDATA[작년 여름 엄청난 무더위로 산에 오르는 걸 포기했었다. 그러다 9월 말, 아니면 10월 초쯤. 거의 4개월 만에 인왕산에 다시 갔다. 정상에 도착해 초코바 하나를 뜯어 먹는데 느닷없이 무언가 수풀 속에서 툭 튀어나와서 깜짝 놀랐다. 고양이 한 마리, 삼색이었다. 눈을 나름 동그랗게 뜨고 놀란 척을 하다가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어렸을 때 골목에서 가끔 마주칠 법한 꼬맹이의 억울한 표정이 떠올라서다. ‘아 씨, 내가 안 그랬는데! 엄마는 맨날 나만 혼내!’ 그렇게 소리 지르면서 대문 밖으로 뛰어나온 개구쟁이 아이의 표정. 나도 한때는 저런 표정을 한 적이 있었을 텐데. 그렇게 삼색이는 내 마음을 뺏었다.<br>이 아이 이전엔 난 어떤 길고양이에게도 먹을 걸 주어본 적이 없다. 내가 책임질 수 없는 아이니까. 눈길을 주고 사진을 찍고 때론 웃고 때론 안타까워했지만 그뿐. 하지만 어느새 먹을 걸 한두 개씩 챙겨서 산으로 향했다. 전엔 근처 다른 산에 가기도 하고, 서울 둘레길을 찾아 걷기도 했다. 삼색이를 본 후론 인왕산에만 갔다. 많아야 일주일에 세 번, 그것도 갈 때마다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먹을 걸 챙겨서 갔다. 세상에 태어난 지 길어야 6~7개월밖에 안 됐을 거 같고, 곧 추운 겨울이 오면 산 정상에 오는 사람은 많이 줄어들 터였다. 그래서 딱 1년만, 세상에 태어났으니, 사계절은 온전히, 건강하게 경험해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br>그러다 젖소냥이에게도 정이 들었다. 당차고 똘망똘망한 삼색이와 달리 젖소냥이는 어수룩한 면이 있었다. 처음엔 그저 삼색이에 딸려오는 캐릭터 느낌이었는데, &lt;모지리&gt;란 글에서 썼던 상황을 거치면서 녀석에게도 정이 가기 시작했다. 삥 뜯어먹고 살아야 할 녀석이 눈에 잘 안 띄는 재주를 가졌으니 이렇게 모자랄 수가 있나 싶어서. 아우, 모지리, 진짜.<br>지금 정상엔 고양이들이 늘었다. 최근에 새로 등장한 녀석들은 삼색이와 모지리, 아니, 젖소냥이의 동생뻘 되는 아이들이 아닌가 싶다. 서로 적대하지 않는다. 다만 서열은 삼색이가 가장 높고, 그다음 모지리, 그리고 나머지들로 보인다. 최근 3주간 삼색이와 젖소냥이를 보지 못하다가 어제 모처럼 젖소냥이와 마주쳤다.<br>“야, 네 누나 어디 갔냐?”<br>대답할 리 없다. 대답하면 모지리가 아니지. 가져간 거 다 털어서 주고 내려오면서 생각한다. 딱 1년만, 온전히 4계절만 경험하라고 바라는 게 아니었어. 왜 더 길게 바라지 않았을까? 10년이라고 할 수도 있었고, 산신이 되라고 할 수도 있었는데.<br>집에 돌아와서 창밖을 구경 중인 고양이에게 슬며시 얘기한다. 이봐 고양이, 궁금해서 그러는데, 고양이별에 연락해서 삼색이 잘 있는지 알아볼 수 있을까? 내가 바람피우는 건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잘 있나 싶어서.]]></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고양이 일기</category><title>고양이 일기_7</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89042</link><pubDate>Mon, 13 Jul 2026 10: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89042</guid><description><![CDATA[*** 고양이가 저지른 각종 사고의 책임은 99% 이상의 확률로 집사 책임이다. 어디든 갈 수 있는 고양이 특성을 생각한다면, 치울 건 치우고 막을 건 막아야 한다. ***<br>냥. 오늘은 집구석 탐사 대망의 마지막 날. 아까 봤는데 신발장 위 틈새에서 어둠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음. 그러니까 요 상자를 밟고 점프하면. 조금 높기는 한데…. 도전은 아깽이가, 뒷일은 아저씨가! 가만, 아저씨는... 컴퓨터를 하고 있음. 우선 상자 위로. 하나 둘 점프! 팍팍(뒷발로 벽 긁는 소리). 오, 아슬아슬. 아저씨는 눈치 못 챘겠지? 예! 나는야 어둠의 암살냥 검은 고양이! 먼지! 먼지! 얍 받아랏, 내 앞발을! 먼지! 먼지! 냥. 먼지뿐이네. 시시해라. 이제 나가야겠당.<br>흠. 턱이 있네. 이러면 밖으로 뛰어내리기 힘든데 어쩌지? 어, 안 되겠는데. 무서운데. 이러다 걸리면 아저씨한테 혼나는데! 앗, 아저씨다, 쉿!<br>어디 간 거야?<br>큰일 날 뻔…. 벌써 큰일 난 건가? 저기 아저씨야... 으응~<br>뭐야, 여기서 소리가 났는데? 신발장에 들어갔어?<br>내가 거기 들어갔겠냐? 문도 못 여는데. 생각을 좀 깊이 하자, 이 아저씨야. 응냥~<br>없는데? 붙박이장에? 그건 말도 안 되는데?<br>아우, 답답스러워라! 여기다, 여기! 냐아웅! 어우, 깜짝이야! 그렇게 빛을 비추면 내 소중한 눈이 놀란다구. 아니, 아니, 그 우악스런 손으로 날 잡으려고? 아니야, 안돼! 혼내지 않겠다고 약속하기 전엔 절대 못 나간다!<br>이눔의 자슥이! 너 가만있어봐!<br>냥? 뭐 하게? 앗, 이 아저씨가? 막대기로 뒤에서 밀면 어떡해! 나보고 낑겨 죽으라는 거냐! 우와앗! 어, 나왔다, 나왔어! 아, 아, 아, 목덜미를 그렇게 잡으면 좀 그런데...<br>야. 너 거긴 왜 들어간 거야, 응?<br>왜긴? 틈이 있으니까 아깽이는 들어간 거고... 아, 아, 아, 이거 놓고 얘기합시다. 그니까 틈을 잘 막았어야지. 아저씨가 잘못해 놓고 왜 나한테 그러는데? 아, 아, 목덜미, 목덜미.]]></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화장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86068</link><pubDate>Sat, 11 Jul 2026 17: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86068</guid><description><![CDATA[고양이를 쳐다보는 중이다. 마루에 접한 베란다 창 아래쪽에 턱이 있는데 녀석은 그곳에 상체를 걸치고 밖을 내다본다. 날이 더워지면서 간혹 저런 자세를 취하는데, 마음에 든 모양이다. 솔직히 저 눈높이로 밖을 내다봤자 건너편 아파트 끄트머리만 보일 뿐이다. 부동산에 관심 있는 건 아닐 테고. 무얼 보는 걸까? 시선을 돌려 화장실 문을 잠깐 응시하다 다시 고양이에게 관심을 돌린다. 제법 진지하게 밖을 보고 있다. 뭐가 보이니? 그냥 귀찮아서 그러고 있는 거야? 그러다 다시 화장실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이상하네...<br>한 시간 전쯤. 건강 검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이것저것 하다가 화장실에 가야겠단 생각을 했다. 그리고 쭉 시간이 흘렀다. 고양이를 뒤쫓아 베란다로 가다가 갑자기 떠오른 의문 하나. 내가 아까 화장실에 갔던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갔던 거 같기도, 안 갔던 거 같기도. 그러면 지금 오줌이 마렵나? 그런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화장실 문을 열고 안을 살폈다. 다를 바 없는 모습. 무언가 변한 게 있다면 아까 들어와서 만졌단 얘기니까 확인이 가능하겠지만, 난 습관적으로 물건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사람이다. 티가 나는 게 없다. 수면 마취의 영향인가?<br>잠시 회상에 빠졌다 고양이를 보니, 한쪽 앞다리만 창턱에 걸친 자세로 나를 보고 있다. 이야, 너, 제대로 건방지구나. 근데 그러고 있음, 너 팔 저리지 않니? 고양이는 저리거나 하지 않나? 실없는 의문이라 생각하며 웃다가, 그렇다면 조금 전까지 품었던 의문은 진지한 것인가 싶어 얼굴을 살짝 찌푸린다. 화장실에 갔던가? 이런 사소한 일에서조차 생각과 행동을 일치시키지 못하면, 난 무엇을 확신하며 살아야 하는 거지? 화장실 문을 힐끔거리는데 무언가 핥는 소리에 고양이를 본다. 창턱에 걸치고 있던 앞발을 열심히 그루밍 중이다. 어렸을 때 팔에 전기가 오르면 침 발라서 코에 묻히던 기억이 뜬금없이 떠올랐다. 저 녀석, 고양이가 아니라 사람인가?<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이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83855</link><pubDate>Fri, 10 Jul 2026 08: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83855</guid><description><![CDATA[건강검진을 받았다. 수면으로 내시경을 받을 때마다 신기하다. 옆으로 누워서 '눈 뜨고 계세요. 약 들어갔습니다.'란 얘기를 듣자마자 뭔가 묵직하면서도 살짝 흔들리는 느낌을 받고 의식이 사라진다. 그리고 눈을 뜨면 회복실. 대개는 입가에 침을 흘리고 있어서 목에 놓인 휴지로 침을 닦는다. 확연히 변한 건 사라진 시간과 흐르는 침뿐. 시간을 침으로 보상받은 느낌이라 굉장히 손해 본 느낌이랄까.<br>3년 전, 위와 대장 내시경을 동시에 한 적이 있었다. 대장 내시경 준비 때문에 밤에 잠을 설쳤다는 게 다른 때와 달랐고, 확실하진 않지만, 두 군데 내시경을 진행하느라 약의 투입량이 좀 더 많았을 거로 추측해 본다. 정신을 차렸다. 아니, 그때는 차렸다고 생각했다. 침대에서 일어나서 의자로 가다가 중간에 기억이 끊겼다. 항상 검사받던 곳이라 무의식중에도 이동한 모양이다.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의자에 앉아 있었다. 두리번. 응? 옆을 보니 약간 떨어져 남자분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제가 어떻게 여기 앉아 있는 건가요?’라는 질문을 하려고 손을 뻗다가 움찔했다. 보통 때 나라면 아무리 궁금한 게 있어도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그래서 깨달았다. 아, 지금 내가 수면마취가 제대로 깬 상태가 아니구나. 손을 거둬들이고 무의식적으로 입 주변을 닦고(왜?) 한참을 조용히 앉아 있었다.<br>검사는 무사히 마쳤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서 문득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침대에서 일어나 의자로 가던 그 사이, 선생님이 나를 불러 세웠었다. 내시경 결과 설명을 듣고 가라고. 겉보기엔 내가 아주 멀쩡했던 듯하다. 의자에 앉아서 설명을 들었는데, 마치 흐릿한 망원경을 통해 1:1 배율로 외부를 보는 느낌이었다. “대장엔 문제없고, 예전 검사 결과를 보면 위에 작은 혹이 하나 있었네요?” 그 질문엔 제대로 대답했다. 그다음 어떤 생각이 이어졌다. ‘그건 다 아는 사실이고 그래서 그 혹이 어떻게 됐는데?’ 그런데... 이게 단순히 생각이었는지, 실제 말로 내뱉었는지 분간이 안 되는 거였다. 아무래도 말을 한 거 같은데…. 한참을 나무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만화였다면 하얗게 재로 변해 파사삭 부서져 내렸을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별문제 없다는 얘긴 알아들었다. 세상에나.<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아무 생각</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81953</link><pubDate>Thu, 09 Jul 2026 08: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81953</guid><description><![CDATA[베란다에서 내려다보면 공사 현장이 보인다. 20층이 넘는 건물 두 채는 이미 완공이 됐고, 주변을 둘러싼 길을 만드는 중이다. 벌써 두 달 가까운 기간인데 아직도 완성은 멀어 보인다. 원래 길이 없던 곳에 길을 내고, 길은 있었으나 오래된 시멘트 보도를 걷어내고 길을 만든다. 그 탓인지 작업은 더디고 신중하다. 포크레인 한 대와 작업자 세 명. 이들이 기본이고 간혹 주변 통제를 위해서 몇 명이 더 들러붙기도 한다. 땅을 파고, 배관을 묻고, 도로와 보도의 경계를 구분한 후 경계석을 세우고, 시멘트를 붓고, 경계석을 다시 세밀하게 정렬하고. 포크레인이 이렇게 다양한 작업을 하는지 미처 몰랐었고, 새로운 길을 까는 게 이렇게 지리한 작업인지 역시 몰랐었다.<br>길의 운명을 생각해 본다. 물리적으로 밟고 지나가는 존재야 사람이겠지만 그 위로 흘러가는 게 어디 사람뿐일까. 빗물과 바람이 흐르고 시간이 지나가며 주변 환경이 스며들겠지. 그에 따라 길은 고유의 색채를 드러낼 거고, 감정을 품을 거다. 그 색채와 감정이 누군가를 불러들이고, 누군가에겐 영향을 미칠 거다. 언젠가 한 번쯤은 표면이 뜯기고 새로 치장하겠지만 환경이 변하지 않는 한 길은 기존의 색채를 그대로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무엇이든 존재의 흐름을 쫓다 보면, 사람과 다름이 없는 건가? 아, 내가 생각해서 그런 걸 수도 있겠다. 내가 사람이라서, 사람인 내가 내 존재를 무생물에 투영해서. 길은 그냥 있을 뿐인데.<br>음, 그래 분명 다르다. 길은 탄생의 산고를 치르는 중인데, 근처를 지나는 사람들은 먼지가 나서, 시끄러워서, 돌아가야 해서 불평한다. 사람이 태어난다면, 누구도 그따위 불만을 내비치진 않는다. 돌이켜보니 나도 투덜거렸다. 역시 생각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표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80002</link><pubDate>Wed, 08 Jul 2026 08: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80002</guid><description><![CDATA[위층 수리로 발생하는 소음이 간간이 들린다. 이제 큰 소음은 없고,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자잘한 소리다. 하지만 고양이는 그 정도도 불안한 모양이다. 소음을 쫓아 집 내부를 천천히 살피던 녀석이 안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곤 침대 머리맡 아래쪽에 둔 하늘색 여름용 방석 위에 자리 잡더니 나를 빤히 쳐다본다. 여기서 잘 거니까 옆으로 오라는 의미. 위층이 수리하면서 생긴 생활 방식인데 내가 근처에 자리 잡지 않고 나오면 녀석도 따라 나온다. 그래서 책과 핸드폰을 들고 녀석의 곁으로 간다.<br>바닥에 앉아 침대에 기댄 채 책을 펼친다. &lt;도시의 승리&gt;. 2011년에 나온 책이니까 무려 15년 전이다. 알라딘에 읽고 싶었던 책으로 저장해뒀다가 이제야 읽는 중이다. 알라딘에 저장해둔 책을 생각하면 언제나 한숨이 앞선다. 죽기 전에 다 못 읽을 거야. 먹고 사는 게 뭐라고. 십몇 년을 죽지 않기 위해 먹고, 죽지 않기 위해 운동하고, 죽지 않기 위해 잤던 거 같다. '살려고'가 아닌 '죽지 않기 위해'. 옆을 보니 고양이는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그땐 왜 이런 평화로움을 느껴보지 못했을까? 하늘색 방석 위에 짙은 회색빛 고양이. 그리고 책을 보며 내용보단 잡념에 빠져든 아저씨.<br>아, 그런데 이러고 앉아서 책을 보면 허리가 아프다. 엉덩이도 배기고. 평화가 고통을 없애주지는 못하는구나. 평화가 먹고 살 걱정을 없애주지도 못하겠지? 책을 덮고 벌렁 드러누워 핸드폰에 있는 전자책을 연다. &lt;호라이즌&gt;. 2019년 출간된 책이다. 도대체 시간을 따라잡질 못하누. 한숨을 쉬다 기척이 느껴져 옆을 보다가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발라당. 다짜고짜 애교를 투척한다. 잠정신일 텐데. 너 진짜 직업의식 투철하구나. 볼때기 몇 번 쓰다듬어주니 또 잔다. 이 녀석, 나를 알아보고 애교를 부린 걸까? 의심의 눈길을 던지다 다시 핸드폰에 집중한다. 이러고 핸드폰 보고 있으면 정말 게을러 보이던데. 읽으려는 책은 뒷전이고 온갖 생각의 단편만 둥둥 떠다닌다. 조각을 이어 붙여야 하는데, 어째 돌멩이가 날아들어 자꾸 파문이 인다. 고양이 너냐? 돌멩이 던지는 게?<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08/pimg_63919096620352653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80002</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고양이 일기</category><title>고양이 일기_6</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76275</link><pubDate>Mon, 06 Jul 2026 08: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76275</guid><description><![CDATA[*** 새끼 고양이의 호기심은 장소, 시간, 대상 불문이다. 3차원 공간을 익숙하게 쓰는 고양이의 능력은 집사가 바닥에 붙어있게끔 가만히 두지 않는다. ***<br>냥, 전망 좋네. 저 아저씨는 어두워지기만 하면 자. 뭐, 나야 좋고. 음, 저쪽이 여기보다 더 높아 보이는데. 저기로 가볼까? 웃차. 착지 성공. 랄라~ 가만, 위에 가방이 막고 있잖아. 비스듬하게 뛰어야 하나? 이 위에 올라가서 뛰어도 안 될 거 같은데…. OK. 행동은 생각보다 빠르다! 아깽이는 생각 따위 하지 않지. 하나둘, 점프! (팍팍팍. 앞 뒷발 발톱으로 장롱면 긁는 소리) (퍽. 낙하 후 바닥에 퍼질러진 소리) 아이 씨! 오구! 깜짝이야! 우와, 아저씨, 어떻게 그렇게 발딱 일어날 수 있냐? 한 번만 더 해봐.. 옷, 도망이다! 잡히면 죽겠다!<br>너 왜 자꾸 거긴 올라가려고 하는데?! 생각이 있어? 너무 높잖아!<br>아깽이가 생각이 있겠냐? 생각 좀 하고 살자, 아저씨. 그리고 고양이가 높은데 올라가는 건 당연한 거라고. 우린 항상 높은 곳을 바라보며 살아. 우리가 얼마나 도도한 종족인데, 아직 그걸 모르는 거야? 아참, 이 아저씨, 고양이에 대해 너무 모르네. 알았어, 알았어. 오늘은 그만할게. 일어난 김에 까까 좀 주면 안 될까? 그냥 자네. 삐졌구나, 삐졌어. 아이고, 생각만 없는 줄 알았더니 소갈머리도 아주 쥐 대가리만 하네. 그래, 그래, 푹 자라, 푸욱 자.<br>랄라~ 고양이 눈은 어두워도 잘 보이죠~ 아깽이 눈은 신(神)도 두려워하죠~ 응, 저건 뭐냐? (푹푹푹. 문갑 밑을 앞발로 파헤치는 소리) (푹푹푹) 응? 뒤통수가 따가운데? 우악, 아저씨, 그렇게 발딱발딱 일어나지 마라! 간 떨어질 뻔했다! 고양이한테 간이 얼마나 중요한데.<br>너 또 뭐 하는데?!<br>아, 왜! 이번엔 겸손하게 아래쪽을 봤구먼, 뭐! 이거 봐라, 아저씨. 이 밑에 이런 거 진짜 많이 있다! 응? 어디 가? (후다닥) 나 응가도 안 쌌는데 그 축축한 건 왜 가져오냐? ... ... 뭐야? 그 축축한 걸로 다 긁어모으는 거야? 다 가지지 말고 나도 하나만 주라!<br>저리 안 가! 지금 너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거잖아! 새벽에 가구 밑 먼지 청소하는 게 말이 되냐!<br>아 씨, 치사하게. 지 혼자 다 가지려고. 에잇, 치사하다, 너 다 가져라! 소갈머리가 쥐 꼬랑지보다 못하겠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얄미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73512</link><pubDate>Sat, 04 Jul 2026 16: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73512</guid><description><![CDATA[소파 위에서 자다 고양이 소리에 잠이 깼다. 새벽 2시. 주변에 고양이는 보이지 않는데 어디서 운 거야? 컴컴할 땐 안 보이는 게 이 녀석 장기긴 하다. 식탁 불을 켜고 돌아보자, 녀석이 보인다. 소파 머리맡 아래쪽에서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중이다. 저기서 울었으니 내 귀에 울음소리가 꽂혔지. 눈빛에 담긴 기대에 부응하기로 하고 간식을 준비. 닭가슴살 트릿이다. 크기가 좀 큰 편이라 잘게 부셔준다. 그냥 주면 침만 묻히고 안 먹는 불상사가 생기곤 한다. 자기 침이라도 일단 입에 들어갔다 나온 건 먹지 않는다. 생각하지 말자. 열 받는다.<br>즐거운 간식 타임에 이은 응가 타임. 이어지는 우다다. 응가 싸서 기분이 좋은 건지, 어린 시절 응가 싸고 내게 쫓기던 트라우마가 있는 건지. 이젠 그러려니 한다. 잠이 들락 말락 하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퉁’ 하는 소리. 이상하다 싶어 마루로 나갔더니 고양이가 방충망 너머 베란다를 주시 중이다. 방충망을 앞발로 짚었다가 발톱이 걸렸는데, 억지로 빼내며 난 소리 같았다. 심상찮다. 베란다 불을 켜고 조심스럽게 나가서 살피는데 단번에 시야에 잡히는 검은 존재 하나. 밝은 베이지색 타일 위에 검은 바퀴벌레. 와, 존재감 어쩔 거야! 고양이, 크기는 네 앞발만 한데 존재감은 너를 압도한다. 내 말에 자극이라도 받았는지 후다닥 뛰어 들어오지만, 갑자기 급선회하더니 조그만 날벌레를 향해 돌진. 바퀴벌레를 쫓아갈까 봐 순간 움찔했던 놀라움도 잠깐, 급격하게 퍼져 나가는 실망감이 온몸을 휘감는다. 아, 진짜 너는 길에서 너를 발견해 준 그 이모한테 평생 고마워해야 한다. 베란다 밖으로 연행되며 징징대는 고양이 소리를 들으며 농담 반 한숨 반으로 투덜거린다. 생각하지 말자. 열 받는다.<br>바퀴벌레 사냥 끝. 고양이는 베란다로 통하는 마루 창과 안방 창을 오가며 방정맞은 구경꾼 역할에 끝까지 충실했다. 불 끄고 침대에 누웠지만 잠은 이미 저만치 달아났다.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데 자꾸 생각난다. 고양이기에 망정이지 사람이었으면 진짜 얄미움이 하늘을 찌를 뻔했다. 적어도 내가 하나는 확실히 틀렸다. 이 순간만큼은 녀석의 존재감이 세계 최강이다. 아우, 열 받아!]]></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발작 버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71245</link><pubDate>Fri, 03 Jul 2026 09: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71245</guid><description><![CDATA[배재고 야구부에 6개월 출장 정지가 결정됐다. 처음 응원 구호를 들었을 때 득달같이 달려들었던 놀라움과 어이없음이, 징계 소식을 듣고 착잡함과 안타까움으로 바뀌었다. 특정 지역 학교를 대상으로 특정 단어를 썼단 얘기는, 그 기원까진 모른다 하더라도 현재 어떤 맥락으로 쓰인다는 건 알았다는 의미일 텐데.<br>자러 가기 직전, 스마트폰을 들고 가다가 아무 생각 없이 네이버의 뉴스 섹터를 봤다. 기사 제목은 모르겠다. 클릭해 들어간 그 내용엔 정치인들이 SNS를 통해 배재고 야구부 징계에 대한 의사표시를 하고 있음을 알렸다. ‘아이들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정치 참 편하게 하는구나. 갈라치기와 적대의 최전선에 있는 자들이 이젠 자신들이 누리던 무책임까지 선물인 양 다음 세대에게 물리려 하나. 정말 가혹한 건 말이다, 6개월이든 1개월이든 내려질 징계 자체가 아니라 이 아이들에게 찍혀버린 낙인이다. 스무 살도 안 된 청소년들에게 다가올 미래를 앞에 펼쳐질 길이 아닌 조여오는 숨통으로 만들어버린 게 정말 가혹한 거다. 그리고 이건 여전히 권력투쟁에 몰두하고 ‘나 아님 안돼’를 외치는 당신들이 일구어낸 현실이다. 그러니 가증스럽게 문장 몇 개 던져놓은 후 걱정하는 척하지 말고, 여야 불문 국민 앞에 고개라도 숙여야 할 일이다. 가해자로서 책임을 지고 나올 이 아이들의 숨통을 더 이상 조이지 말아 달라고. 피해자이기도 한 이 아이들이 힘겹게라도 나아갈 길을 조금이라도 열어 달라고. 안 그러겠지. 자기 자식이 아니니까. 더 거창한 일이 많을 테니까. 내가 어른이란 사실이 정말 부끄럽구나.]]></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천지 차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69362</link><pubDate>Thu, 02 Jul 2026 08: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69362</guid><description><![CDATA[설거지하다가 뭔가 콕콕 찌르는 느낌에 뒤를 돌아보니 빨래 건조대에 걸어둔 청바지 아래로 고양이가 쳐다보고 있다. 집사 전용 CCTV가 작동 중이다. 녹화 내용은 CCTV 마음대로, 저장 기간은 CCTV 수명이 다할 때까지. 녀석의 눈을 보다가 몇 시간 전 외출했다가 봤던 장면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br>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 정류장에 멈춘 버스 창밖으로 개 두 마리가 보였다. 목줄에 묶여서 산책을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산책 말고도 목적이 하나 더 있었다. 엄마의 배웅. 엄마가 버스를 타서 내 뒤를 지나 버스 안쪽으로 쭉 들어가자, 개들의 시선도 그에 따라 이동한다. 엄마만을 보겠다. 엄마만 찾겠다. 버스가 출발하고 얼마 안 있어 창밖에 또 한 마리의 개가 포착됐다. 이번엔 목줄도 없이 그냥 건물 앞에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는 중이다. 1층이 카센터였던 걸로 얼핏 봤는데 아마 그 가게와 관련이 있지 않나 싶다. 무료함과 듬직함이 느껴지는 자태. 같은 날은 아니지만 며칠 전 봤던 다른 개의 모습도 있다. 산에 갔다 내려오는 길에 써브웨이 앞을 지나는데 개 한 마리가 출입구 앞에 철퍼덕 배를 깔고 앉아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매장 안에 외국인이 있었는데 아마 그 사람을 기다리는 듯했다. 자세는 웃기지만 애잔하면서도 애틋한 분위기.<br>개들의 모습과 이미지를 날려 보내고 다시 고양이를 본다. 자기만 바라보라는 욕망과 전혀 믿음직하지 않은 가벼움과 투덜거리며 짜증 난 듯한 분위기. 도대체 어떤 지점에서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게 갈라진 것일까?]]></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응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67467</link><pubDate>Wed, 01 Jul 2026 07: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67467</guid><description><![CDATA[홍명보 감독이 사퇴했다. 당연한 순서다. 지금부터 변화를 꾀하는 자들과 변화의 대상이 된 자들 사이에 치열한 물밑 싸움이 일어날 거다. 각종 언론 플레이에 진흙탕 싸움도 마다하지 않을 테고, 그걸 빌미로 온갖 자극적이고 애매모호한 콘텐츠들이 마치 사실인 양 우후죽순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그러다 보면 당연히 편이 갈리고, 온갖 생각을 바탕으로 한 주장들이 난무하고. 윤어게인이 있듯이 협회 포에버, 어쩌면 한국인 포에버를 외치며 동정과 옹호를 보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간절히 바라건대, 젊은 세대에서만큼은 그런 동정론이나 주장이 없길 빈다. 변화를 갈망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었다. 절차상의 비민주성과 불공평함. 그걸 외면한다면, 그냥 오래 묵은 똥이냐, 새로 싼 똥이냐 그 차이일 뿐이다.<br>그런데 응가 얘기하니 갑자기 궁금해지는데. AI가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고, 가스라이팅을 통해 편향된 사고방식을 고착시킬 수도 있다며 비판한다. 그런 사례들이 분명히 존재하니 타당한 비판이라 본다. 그럼, 유튜브나 엑스 같은 콘텐츠들은? 이것들은 옳은 정보만 제공하고 다양한 사고방식을 유도했던가? 부정적 측면만 따지고 보면, 이것도 새로 싼 똥이냐, 오래 묵은 똥이냐 그 차이인 듯한데 말이지. 그래서 정말 정말 궁금한데, 저기 말이요, 생물학적 진화 말고 디지털 진화로 인해 밀려나는 세대를 위해서 그 디지털 문화를 비판해 본 적은 있소? 그러니까 그 똥이 내가 밟은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밟을 때도 외면하지 않았냐, 그 말이오? 아 씨, 왠지 난 당당하게 얼굴 들 자신이 없네.<br>너희들 중 죄 없는 자 내게 돌을 던져라.<br>흐음... 죄송합니다. 당당한 게 무엇 하나 있을지 궁금한 삶이지만 이번에도 돌을 던지겠습니다. 그 대상이 핍박받고 소외된 존재는 아니었으니까요.]]></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고양이 일기</category><title>고양이 일기_5</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61587</link><pubDate>Mon, 29 Jun 2026 08: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61587</guid><description><![CDATA[*** 고양이는 내겐 상상 속 유니콘 같은, 하지만 하찮은 ***<br>(쫑긋) 저, 저 멍멍이 자슥이. 시도 때도 없이 짖어요. 이 아파트에 너만 사냐! 근본 없는 종족 같으니. 우리 고양이별에 전해지는 고양이 성경에 따르면, '태초에 신과 함께 고양이가 있었으니, 이후 사건 사고가 잇따르더라. 신은 귀여움만으론 세상의 혼란을 막을 수 없다 판단하여 다른 종족들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혼란의 책임을 물어 고양이에게 하찮음을 부여하셨다.' 봐, 우리가 이 정도라고. 멍멍이랑은 차원이 달라. 멍멍이처럼 사람이랑 같이 사는 건 똑같은 거 아니냐고? 아니지! 우리 고양이들은 당당하게 빌붙어 사는 거라고! 꼬리 흔들고 헥헥거리는 멍멍이랑 비교하다니!<br>내가 비밀 하나 얘기해줄게. 고양이별과 강아지별은 살짝 라이벌 관계이긴 해. 사실 지구별은 강아지별이 먼저 발견해서 자리를 잡긴 했지. 우린 게으르거든. 응? 그게 뭐? 게을러도 우린 잘 먹고 잘살 수 있어. 그게 얼마나 대단한 능력인데. 암튼 고양이는 지구별에 조금 늦게 도착했지만 당당하게 빌붙어서 자리를 잡았지. 멍멍이의 자리를 뺏은 건 아니야. 멍멍이는 싫든 좋든 사람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할 거고. 우린! 사람의 운명을 지켜볼 거야. 태초의 우주를 담은 이 눈으로. 그러다…. 아니다, 아니야. 여기까지. 고양이는 신비한 종족이니까 속속들이 다 알려줄 필요는 없지.<br>그러니까 (멍멍) 고양이를 (멍멍멍) 강아지와 (멍멍) 같은 선에 (멍멍멍) 야잇! 조용히 해랏! 넌 귀도 안 아프냐! 개 같은 눔아! ... 인간들아, 무슨 욕을 이따위로 만들어놨냐? 개한테 개 같다고 해도 욕이 아니잖냐? 냥. (찰칵) 오, 아저씨다, 아저씨! 까까가 들어온다~ 까까~ (발라당) (뒹굴)]]></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축소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58303</link><pubDate>Sat, 27 Jun 2026 16: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58303</guid><description><![CDATA[대한민국과 남아공의 축구 경기를 보다 후반 도중 TV를 껐다. 도무지 풀어나갈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답답해도 이렇게 답답할 수가 있나. 멕시코 때도 그랬고, 이긴 경기였지만 체코와 경기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쩌다 걸리는 한 방. 그게 없으면 공은 U자 형태로 주변을 크게 맴돌 뿐 상대방 골문 쪽으로 투입이 안 된다. 홍명보 감독의 전형적인 축구 스타일이었다. 어찌 보면, 이미 예견이 되었던 사태.<br>현대 축구는 감독의 역할이 크다고 한다. 골은 선수가 넣지만, 골문 근처까지 접근하는 건 부분 전술을 이용해서 감독이 선수들에게 주입할 수 있는 부분이란 의미일 것이다. 또한 상대방의 전력과 전술을 분석한 후 그에 맞는 대책을 세우고, 그 대책이 어그러졌을 때 재빠르게 변화를 가져가는 것 역시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의 역할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감독이 선임됐을 때부터 이에 대한 지적이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전 감독인 클린스만 때도 똑같았다. 심지어 무책임함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그 또한 묵살됐다. 그러자 클린스만은 보란 듯이 난장판을 만들어놓고 대표팀을 떠났다.<br>이 모든 사달을 만들어놓은 축구협회는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기성세대들이 구축한 ‘꼰대 문화’와 소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그들만의 리그’를 정점으로 모든 비판을 무시한 채 무책임과 특혜로 일관했다. 개개인의 욕심과 주장이 휘몰아치고, 공정하며 공평한 기회는 애초에 부여되기 힘들었다. 윗세대가 구축한, 시대에 맞지 않는 가치는 다가오는 세대를 고스란히 짓누르기 마련이다. 더욱 고약한 건 앞으로 다가올 변화에 정통으로 들이받히는 세대는 이 꼴을 만들어놓은 기성세대나 방관한 세대가 아닌 젊은 세대라는 점. 하긴 이런 게 어디 우리나라뿐일까? 사람 사는 곳이면 모든 곳이 다 똑같겠지.<br>경우의 수를 따져서 32강을 생각하는 모양인데, 대표팀을 향한 내 응원은 여기서 멈춰야겠다. 올라간들 경기력이 달라질까? 한 방이 터져서 16강도 갈 수 있겠지만 결과가 중요한 시점은 지난 듯하다. 선수들도 욕을 먹을 거고, 남아공의 경기를 본다면 당연히 그럴 만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 욕지기는 일어날 필요가 없는 일이기도 했다. 뭐, 일어날 필요가 없었던 일은 그것 말고도 수두룩하다. 손흥민과 이재성은 이번 월드컵이 마지막일 가능성이 크고, 황인범과 김민재는 한 번쯤 더 가능할 수도 있겠다. 안타깝게도 우리 축구를 이끌어왔던 이들이 이번 실패의 굴레를 쓰게 됐다. 하지만 이들의 탓이 아니다.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던 윗세대의 탓이다. 전적으로.<br>꼬리말) 그래도 32강에 올라가면? 선수들을 응원할 거 같다. 온갖 비난과 불평들, 그들이 온전히 짊어져야 할 짐이 아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톡</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55959</link><pubDate>Fri, 26 Jun 2026 08: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55959</guid><description><![CDATA[어제(5월20일) 하루 종일 내리던 비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비는 여지없이 샜고, 그 여파는 비가 그친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톡. 베란다 저쪽 창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떨어질 걸 알고는 있지만 띄엄띄엄 소리가 날 때마다 신경이 그쪽으로 쏠렸다 돌아온다.<br>밥 먹어라, 밥. 간식 안 돼. 간식이 수납된 싱크대 앞에서 애교 폭발 중인 고양이를 향해 일침을 놓는다. 일정 시각에 특정 간식을 주지만 고양이는 그래도 일단 떼를 써본다. 밑져야 본전이겠지. 애교에 돈 드는 것도 아니고. 아니야, 꿈도 꾸지 마! 가서 밥 먹어. 두 번째 일침. 그와 함께 갑자기 어린 시절의 내가 어디선가 툭 튀어나온다. 엄마는 맨날 밥만 먹으라 그래! 약간의 불만과 심통을 담은 어린아이의 투정. 나는 배고픔을 모르고 컸지만, 어머니는 아니었다. 무려 1930년 태생.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통과하셨던 분이다. 배고픔이 일상이었던 시절을 보내고 살만한 시기가 왔지만, 가난과 굶주림은 삶에 각인처럼 새겨졌을 터. 늦둥이 아들에게 삼시세끼도 모자라 틈만 나면 밥을 권하셨던 이유는 몸이 기억하는 굶주림의 처절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톡. 물방울 소리에 어린 시절이 흩어진다.<br>나보다 열 살이 많은 누나는 역시 배고픔을 모르고 컸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내뱉는 얘기가 달랐다. 밥상머리에 앉아서 밥을 먹는 아이들에게, 국물 떠먹어, 국물. 어느 날, 어린 조카 녀석이 엄마는 맨날 국물만 떠먹으라고 한다고 투덜대는 걸 보며 한참을 웃었다. 배고픔이 아닌 편식을 걱정하던 시대. 먹고 싶은 것만 먹으려 드는 아이들을 향해 부모들은 골고루 먹을 것을 강요했다. 밥의 양도 줄었다. 내가 어린 시절 먹던 밥그릇이 지금도 있는데 여기에 그득 담아서 먹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기억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저렇게 먹고 어떻게 숨을 쉴 수가 있었지? 톡. 응?<br>물방울 소리가 나를 현실로 잡아당긴다. 고양이와 눈이 마주치자, 녀석이 냅다 애교를 투척한다. 이얏, 받아랏! 뒹굴. 절로 미소가 새어 나온다. 졌다. 질 거라는 걸 아는 싸움이었다. 한 시간쯤 빠르긴 한데, 그래, 간식 먹자. 넌 조그마해서 살이 조금 더 쪄도 상관없을 거 같긴 하다. 지금은 살찌는 걸 걱정하는 시대인가? 톡. 아, 진짜!<br>지금은, 혼돈의 시대인가 보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개소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54087</link><pubDate>Thu, 25 Jun 2026 08: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54087</guid><description><![CDATA[편의점을 운영할 때 정말 쓸데없는 짓이라 여겼던 게 있다. 1년에 한 번씩 해야만 하는 교육 이수. 본사에서 하는 건 아니고 법률상 해야만 하는 거라 인터넷을 통해 위생교육을 수료해야 했다. 실질적인 내용이라기보단 법률적이고 이론적인 내용을. 그나마 나아진 게 예전엔 온라인 수료가 되지 않아서 직접 교육 장소를 찾아가야 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수강해야 할 일이나, 그 3~4시간 동안 방대한 내용을 이해한다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다.<br>어디 갸웃하게 만드는 게 이뿐일까? 은퇴자금을 들고 은행에 찾아가서 주식과 관련된 상품이라도 가입하려 하면 녹취를 위해 무언가를 잔뜩 듣고 대답해야 한다. 핵심은 원금이 보존되지 않는 상품이며, 이를 이해한 상태에서 본인 의사로 가입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필요한 일이겠지만 이런 식으로 장황해야 하냐는 의문을 품는다.<br>그러다 나도 비슷한 일을 해본 적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매장에 일하러 온 알바들을 교육할 때.<br>진심은 무슨. 자신한테나 가까운 사람들한테 진심을 다하면서 사니? 그러지도 못하면서 생판 모르는 사람들한테 진심을 다한다는 게 말이 돼? 그런 거 필요 없고 너희들이 서 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부터 명확히 알고, 그 자리에서 해야 할 행동을 해. 가장 중요한 건 인사. 들고 나는 손님들한테 꼭 인사할 것. 너희가 인사를 한다는 건 최소한 '난 당신들을 무시하지 않습니다'란 신호니까. 손님들이 듣든 말든, 보든 말든 상관없어.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란 인사말을 손님들 뒤통수에 들이박아. 운 좋게 귓바퀴에라도 걸리면 손님이 반응하는 거고.<br>흠. 그러니까 이 모든 것들은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닌 누군가의 책임을 조금이라도 덜어보려는 방편인 셈이다. 위생상 문제가 생겼을 때 공공기관은 할 일은 다 했다고 얘기하려고, 투자에 문제가 생겼을 때 금융기관은 고지를 충분히 했다고 얘기하려고, 손님과 충돌이 생겼을 때 우린 일반적인 대응은 하고 있었다는 핑계를 만들려고. 불편하고 비합리적이라고 남한테 손가락질만 할 일은 아니었네. 괜히 머리를 긁적여 본다.<br>고양이 너, 내 말 잘 들어. 난 사료나 간식을 살 때 휴먼 그레이드 원료를 사용하는지 확인하고서 사고, 네 녀석이 맛없다는 걸 억지로 먹이지도 않아. 왼쪽 귀는 일주일에 두 번씩 관리 중이야. 그러니 알레르기로 문제가 생기지 않게 최선을 다하는 중이라고. 알겠어?<br>고개를 휙 돌려 쳐다보는 녀석. 그럴 리 없지만, 당연히 그럴 수 없지만 귓전을 때리는 고양이의 목소리. 뭔 개소리래?<br>아우, 오늘따라 왜 이리 머리가 자주 가렵냐?<br><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고양이 마을의 지속가능성과 도시화의 위기 - [도시는 왜 불평등한가 - 도심재개발 젠트리피케이션 빈부격차]</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52222</link><pubDate>Wed, 24 Jun 2026 11: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5222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42833748&TPaperId=1735222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892/95/coveroff/k34283374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42833748&TPaperId=1735222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도시는 왜 불평등한가 - 도심재개발 젠트리피케이션 빈부격차</a><br/>리처드 플로리다 지음, 안종희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3년 07월<br/></td></tr></table><br/>전에 읽었던 &lt;도시의 승리&gt;의 저자인 에드워드 글레이저와 대척점에 있다기보단 관점이 다르다고 보는 게 더 맞을 듯하다. 이 책의 저자인 리처드 플로리다 역시 도시화에 희망을 걸고 미래가 있다고 본다. 그 점에선 두 사람이 같다. 하지만 &lt;도시의 승리&gt;는 도시의 장점에 초점을 맞춘 채 그 장점이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다고 보며,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다른 것들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와 같은 느낌으로 바라본다. 이에 반해 &lt;도시는 왜 불평등한가&gt;는 도시에 발생하는 위기, 특히 빈부에 따른 지역적, 경제적 격리와 중산층의 소멸이 자칫하다간 도시의 모든 장점을 삼켜버릴 수 있다고 여긴다. 게다가 그 위기가 바로 도시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그 힘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다고 판단한다. 책의 내용을 자세히 요약하는 건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지난번 &lt;도시의 승리&gt;는 이런 취향을 무시한 채 책의 소개에 충실했지만, 이번엔 하던 대로, 내 맘대로 써 보겠다. 아래 내용을 바탕으로 미루어 짐작하거나 아니면 직접 읽어보시길. 자, 내 갈 길 가겠다.<br>고양이 마을이 있다. 해발 300m가 넘는 산 정상. 성곽이 정상을 휘돌아 나가고 길이 잘 닦여있으며 적절한 볼거리와 서울 시내 한복판이라 접근성까지 갖춘 곳이다. 사시사철 사람들이 꾸준히 오르내리며 차나 자전거는 접근할 수 없다. 고양이 처지에선 최적의 장소다. 어린 고양이들이 자리를 잡았고, 입소문이 났는지 꼬맹이 고양이들이 계속 뒤를 이었다. 이곳의 고양이들은 등산객들에게 삥을 뜯는 것을 주요 직업으로 삼는다. 성곽 바깥쪽이나 정상 부근에서 잠을 자다 때가 되면 슬슬 본업을 위해 정상으로 출근한다. 좋은 기반 시설과 훌륭한 주변 환경과 양질의 일자리가 제공되는, 고양이 특급 마을이다.<br>귀여운 고양이를 끌어들이고 삥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이 마을의 장점이겠으나 모든 일에는 단점도 있기 마련이다. 슬슬 고양이 밀도가 올라가면서 경쟁력에 차이가 발생한다. 귀여운 고양이는 더 많이, 그렇지 않은 고양이는 더 적게 삥을 뜯어 삥의 격차가 벌어진다. 정상 부근 한정된 토지로 인해 휴식 공간 또한 차별화가 이루어진다. 힘없고 약한 고양이는 점점 정상 주변에서 밀려남으로써 삥의 기회에서 상대적으로 멀어진다. 그뿐인가? 냄새 나는 고양이 화장실 근처로 내몰리는 고양이도 생긴다. 더 있다. 소문을 듣고 어른 고양이라도 등장하면 기존 꼬맹이 고양이들은 속절없이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 다행히 어른 고양이는 이곳에 상주할 생각은 없다. 그들은 자기 영역에 사람이 드나드는 것을 싫어해서 잠깐씩 정상을 차지하다 지나칠 뿐이다. 하지만, 이 잠깐의 순간이 쌓일수록 기존 어린 고양이들의 기회는 박탈된다.<br>그렇다면 고양이 마을은 어떻게 해야 지속가능한 성장과 안정을 할 수 있을까? 재개발? 의미 없다. 고양이는 환경을 중시하지만, 사람처럼 새집이나 지대를 추구하지 않는다. 저소득 직업군을 한 차원 높은 직업군으로 업그레이드할 기회를 제공한다면? 삥의 기회를 늘려주면 상황은 개선될 수 있다. 등산로 초입에 고양이 간식을 지참하도록 푯말을 세우는 식으로 등산객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사회기반시설 투자? 재개발과 마찬가지로 이 부분에서 사람의 손길은 필요 없다. 자연 그 자체가 훌륭한 기반 시설이자 거주지다. 물론 그것은 동시에 한계이기도 하다. 한정된 정상 공간으로 인해 혜택받은 지역의 확장은 더 이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교육에 대한 투자? 교육까진 필요 없겠으나 중성화 후 방사는 고려해 볼 여지는 있다. 쉬운 일은 아니다. 산꼭대기에서 포획해서 수술 후 다시 산꼭대기에 방사해야 하니까. 자손이 계속 늘어난다면, 어미 세대에 비해 어렵게 살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으로 지역에 권한 이양? 산은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다. 특히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정상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니 중앙정부인 척, 공공의 이득인 척 행동하지 말고, 고양이의 삶은 고양이에게 맡기는 게 좋다. 여름에 화장실 근처를 지나다 냄새가 난다고, 어른 고양이가 나타나 털 날리는 추격전을 벌여 소란스럽다고 민원을 넣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다만 그 산의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살필 필요는 있겠다. 과거 일본 어느 지역에서 산에 늘어나는 고양이를 방치했다가 원 거주 동물인 삵의 개체수가 급감한 적이 있었다. 고양이한테 별 영향을 주지 않는 바이러스가 삵한테는 치명적이었던 까닭이었다.<br>재미 삼아 자주 다니는 산의 고양이들을 모델 삼아 이 책의 이론을 적용해 봤다. 저자는 주로 미국의 도시를 대상으로 연구하고 그 해법을 제시한다. 그러다 보니, 모든 도시에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해법이 아니다. 당장 저 고양이 마을도 그렇고(흠...), 대한민국 서울에 적용해도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정책이 있다. 한 예로 저임금 노동자들을 중산층으로 만들기 위해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 맞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유독 자영업자 비중이 높다. 자영업자 중에서 프랜차이즈 형태가 특히 많다. 흔히 접하는 편의점, 치킨, 카페가 그렇다. 이런 곳은 장사의 이익을 본사와 나눠야 하지만 최저임금의 상승분은 고스란히 자영업자가 부담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최저임금을 무작정 높게 책정하면, 저임금 노동자가 중산층으로 올라갈 기회를 엿보는 만큼 자영업자는 몰락할 위기로 내몰리게 될 거다. 그러니 단순히 자리바꿈을 원하는 게 아니라 전반적인 향상을 원한다면 추가적인 대책이 덧붙여져야 할 것이다.<br>빛이 있고 존재가 있으면 그림자가 있다. 그림자를 외면하고 사는 건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 그림자가 슬금슬금 커지더니 존재 자체를 에워싸려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요즘이다. 결국엔 존재를 잠식할까? 날뛰는 자본주의를 보완해서 나눔과 공존을 실행해야 할 시기지만, 그 어느 때보다 ‘공존’이란 단어가 힘을 쓰지 못하는 세상이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892/95/cover150/k34283374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8929520</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고양이 일기</category><title>고양이 일기_4</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48816</link><pubDate>Mon, 22 Jun 2026 13: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48816</guid><description><![CDATA[*** 중성화수술을 마치고 선생님이 지나가는 말처럼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껏 붕대를 이빨로 다 뜯어낸 고양이를 딱 한 번 봤었다고. 그러니까 별문제 없을 거라고. 살짝 불길했었는데 이 녀석이 두 번째 고양이였다. 같이 산 지 5년. 새벽에 불을 켜고 마주한 녀석의 표정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붕대를 찢어놓고 그루밍을 하면서 자랑스러워하던, ‘나 잘했지?’라며 칭찬해달라는 그 표정. 표정뿐이겠나? 이후 이틀은 사진처럼 뇌 속에 각인된 이미지들이 수두룩하다. 옷을 입혀 놨더니 그것도 뜯겠다고 등 쪽을 물고 바닥을 구르지 않나(서커스단에서 탈출한 고양이인 줄), 앞발 하나를 빼서 목이 들어갈 자리에 집어넣고 걸어 다니질 않나, 앞발을 옷 밖으로 꺼내질 못해서 세 발로 나타나질 않나. ***<br>어제 중성화 수술이란 걸 했다. 하늘색 옷 입은 무서운 사람이 목덜미에 뭘 찔렀는데 갑자기 정신이 뿅 사라졌다. 눈 떠 봤더니 집. 오오! 고양이별에 있을 때 미리 얘기를 들어서 그렇지 안 그랬음 바보 될 뻔했다. 그런데! 배에 둘둘 감아놓은 이 하얀 거! 너무 불편하다! 가만있어봐라. 이거, 요기를 물어뜯으면…. 에잇, 뜯어져라, 뜯어져! (뒹굴뒹굴) 아우, 어지러워라. 먹은 것도 부실했는데 힘을 썼더니만…. 이봐, 아저씨! 생각이 있는 거냐? 잠만 자지 말고 까까를 내놔라! 냥. 아니야. 일단 이것부터 벗겨내고. 배를 감고 있어서 먹다 체하겄어.<br>자, 다시 침착하게. 요렇게 요렇게. 이이잇. 냥! 뜯어졌다! 랄랄~ 이쯤은 포장 뜯긴 츄르 먹기지. 응? 아저씨, 일어났냐? 이거 봐라, 내가 다 풀어 헤쳤다, 잘했지?<br>야! 너 뭐 한 거야!<br>아우, 깜짝이야! 왜 소릴 지르고 그래? 애 떨어지게. 냥, 애는 어차피 못 가지는구나. 아니, 아니, 다시 감으면 안 되지! ... 히히, 내가 확실하게 물어뜯어 놓아서 다시 안 감길 거야.<br>아 진짜. 옷을 입혀야겠네. 붕대를 이렇게 해놓으면 어떡하냐.<br>옷? 뭐냐 이건 또? 어라, 왜 뒤로 간다니? 이거 당장 벗겨라! 몸이 고장 난 거 같다! 왜 가고 싶은 방향으로 움직여지질 않냐? 아저씨, 고양이는 이미 털코트 입고 있는 거 몰라? 이거 치워라, 답답하다! 고양이에게 자유를 달라! 아파트 주민들, 여기 보시오! 삐쩍 마른 아저씨가 고양이를 잡소! 그냥 가냐? 야, 이 아저씨야, 생각이 있는 거냐! 두고 봐라, 너. 내가 아저씨랑 다시 놀아주면 고양이가 아니다!<br>어디 보자…. 몸통을 감싼 상태에서 머리랑 발들이 구멍으로 빠져나와 있네. 그럼 앞발을 하나 끌어당겨서 안으로 넣고…. 아 씨. 아 씨. 아이 씨이! 냥. 냥. 저기, 아저씨. 앞발 하나가 안으로 들어가서 안 빠지는데 이것 좀 어떻게 해주면 안 될까? 발 세 개로 걸으려니까 고양이답지 않아서 말이지. 아니, 그렇게 째려보지만 말고. 내가 놀아달라고 한 것도 아니잖아.<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622/pimg_7045771445161516.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48816</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아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47234</link><pubDate>Sun, 21 Jun 2026 18: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47234</guid><description><![CDATA[지난 토요일(5월 16일).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집안 온도가 예사롭지 않다. 낮 기온이 30도를 넘은 건 며칠 됐지만 밤에는 선선했는데 이날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밖은 시원했는데 집안이 그렇지 않았다. 고양이도 축 처져서 한여름 자태를 내보이는 걸 보면 나만 더웠던 건 아닌 게 분명했다. 내가 취한 조치는 딱 하나뿐. 부엌 쪽 자그마한 창을 열어놓는 거였다. 그렇게 월요일(18일)까지 버텼다.<br>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부엌뿐 아니라 마루 쪽 창문까지 열면 바람이 시원하게 가로지를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상식을 가로막는 게 하나 있었다. 집 앞에 공사 현장이 있었는데, 요즘 마무리 단계로 보도와 차도를 새로 만드느라 먼지가 말도 못 하게 많았다. 그게 이유였다. 내가 마루 쪽 베란다 창을 열지 않는. 그런데 그게 불합리한 생각이라는 걸 나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머릿속에서 각종 이유를 만들어내기 시작했거든. 집수리 중인 윗집에서 난방을 확인하느라 난방을 켜놓은 게 아닐까? 윗집에 사람이 없어서 환기를 안 하니까 낮 동안 가열된 열기가 우리 집으로 내려오는 게 아닐까? 몇 가지 이유를 만들어가며 마루 베란다 창을 열지 않는 내 선택을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월요일 밤. 큰누나 집에 다녀오면서 현실을 직시했다. 선선했던 거리와 에어컨이나 선풍기 없이도 시원했던 누나 집. 내가 틀렸음을 알았다. 아니, 진작에 알고 있었다. 집에 와서 마루 베란다 창문을 살짝 열었다. 바람이 통하는 게 느껴졌다. 얼마 안 있어 집안 공기가 변했다. 그러니까 내가 바보였다.<br>쓸데없이 고집을 부릴 때가 있다. 신념이나 믿음을 위해 그러기도 하지만 자존심과 귀찮음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선 타인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그럴 때도 있다. 어떤 이유든 살면서 한 번쯤은 그래봤을 거다. 고집이라면 그나마 다행인데, 아집이라면. 아무리 잘났어도,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올바른 선택만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승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43119</link><pubDate>Fri, 19 Jun 2026 07: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43119</guid><description><![CDATA[난 한 번 선택하면 잘 바꾸지 않는다. 낯설거나 모르거나 어색한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성향 탓이 크다. 한때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 가곤 했었는데 그때마다 점심은 딱 한 군데 가던 곳에서만 먹었다. 동네 식당 가는 곳은 두 군데, 직장 근처는 그나마 세 군데. 그곳들이 사람이 많거나 하면 그냥 집에 들어와 먹는다. 배달은 피자, 치킨, 중국 음식 세 종류만. 20대 초반에 가입했던 통신사를 지금까지 쓰고 있고, 어렸을 때 다니던 은행을 여전히 이용 중이며, 얼굴에 바르는 스킨로션류는 30년 가까이 한 상품만 쓴다. 뭐가 더 있을까 생각하다 갑자기 두려운 마음에 생각을 멈춘다. 나, 정상이 아닌가? 다행이다. 얼마 전 가전 브랜드를 싹 다 바꿨는데. 집에 무려 GOLDSTAR란 상표가 찍힌 제품도 있었으니까….<br>어이, 고양이! 니가 아무리 하던 것만 하고 가던 길만 간다고 해도 나만 하겠냐? 넌 아직 멀었다 이눔아.<br>한 번은 저 녀석을 이겨보고 싶었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냥장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41260</link><pubDate>Thu, 18 Jun 2026 08: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41260</guid><description><![CDATA[산 초입부터 심상치 않다. 근처에 절이 있고 산으로 이어지는 언덕이 있다. 그 언덕배기에 고양이가 있었다. 항상 봤던 건 고등어 한 마리. 그런데 오늘은 무려 세 마리다. 고등어, 젖소, 삼색이. 질식할 거 같은 초록색 안에 팔딱거리는 고등어, 묵직한 젖소, 새침한 삼색이. 이 산은 아무래도 요 세 종류 유전자가 강세인 모양이다.<br>산 중턱. 어라, 또 세 마리다. 또 같은 조합이다. 고등어, 젖소, 삼색이. 아마도 젖소와 삼색이는 정상에 자리 잡은 고양이들보다 한 세대 앞선 형제, 자매들이거나 부모일 가능성이 크다. 체격도 크고 정상의 꼬맹이들이 나타나기 전부터 있었다. 절벽이나 등산로 가까이에 앉아서 햇볕을 쬐거나 잠을 잔다. 이 위치에선 사람들이 쉬기만 하지 먹지는 않아서 고양이들도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오진 않는 편이다. 그나저나 저 고등어. 원래 정상에 있던 그 고등어 아닌가? 체격도 그렇고, 졸린 듯한 표정도 그렇고. 너 혹시 위쪽에서 조그만 고등어에 밀려났니?<br><br><br>산꼭대기. 헉, 영어다.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영어다. 얼른 발걸음을 옮기는데, 성곽 구멍 안에 젖소가 웅크리고 있다. 너도 영어가 무섭구나? 동질감에 닭가슴살 하나 투척. 뿌듯한(?) 마음에 몸을 뒤로 돌리는데 어라! 고등어다! 거의 3주 만이다. 너, 배가 홀쭉한 거 보니 그때 불룩했던 배는 똥배였어? 반가운 마음에 닭가슴살을 건네다가 손가락 물릴 뻔했다. 지난번에 소극적이었던 건 배가 불러서였구나. 젖소가 뭐 떨어진 거 없나 다가오자, 고등어가 으르렁댄다. 이 녀석, 맹수다. 체구는 작은데 펄떡거리는 게 진정한 활어다. 고등어가 왔어요, 고등어가. 싱싱한 고등어가 왔어요! 닭가슴살을 하나씩 더 줬는데 젖소는 물고서 저만치 도망간다. 너는 덩칫값을 좀 해야 하지 않겠니? 조그만 고등어가 무섭냐? 고등어가 다시 으르렁댄다. 한 걸음, 아니 반걸음 살짝 나도 모르게 물러난다. 이 녀석, 걱정 안 해도 되겠다.<br><br><br>닭가슴살 두 개씩 먹고 휴식 시간. 고등어는 땅바닥에 철퍼덕 누웠고, 젖소냥이는 바위 쪽으로 슬금슬금 가더니 나비를 노린다. 세상에나. 그림책에서나 보던 장면을 직접 보게 되다니! 사사삭. 조심스럽고 빠르게 다가가지만, 나비는 훨훨. 첫 번째 시도 실패. 나비 다시 착지. 사삭, 사삭. 착. 앞발 공격. 나비는 또 훨훨. 바로 폴짝. 나비는 더 훨훨. 젖소는 근처 철제 가드에 충돌. 최종 실패. 소리 내어 비웃어 주고 싶었지만, 근처에 사람들이 있는 관계로 조용히 미소로 마무리. 젖소야, 넌 역시 멍... 갑자기 코에 벌레를 붙이고 못 찾는 녀석이 생각나 마지막 단어를 꿀꺽 삼킨다. 막상막하인가.<br>내려가려고 발길을 돌리는데 삼색이가 나타나 한쪽에 편하게 앉아 있다. 젖소 쟤, 네 남동생이지? 오빠일 리 없어. 쟤 좀 어떻게 해 봐라. 젖소 망신 다 시키고 있다. 냥글냥글. 평화롭게 하루가 저무는 중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618/pimg_7045771445157071.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41260</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대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39417</link><pubDate>Wed, 17 Jun 2026 08: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39417</guid><description><![CDATA[날이 참 좋은 날이었다. 하늘색 하늘과 쨍한 햇빛과 하얀 구름. 구름의 존재감이 어느 때보다 도드라지는 날씨. 남자는 베란다 창을 통해 고양이와 함께 밖을 내다보는 중이다. 그때 비둘기가 창 바로 앞을 지나 윗집 에어컨 실외기 받침대에 앉는다.<br>까각 까각 까가가각 (고양이 채터링 소리. 솔직히 그 소리를 뭐라고 적어야 할지 모르겠음)오오! (남자가 놀라는 소리)<br>고양이가 앞발로 베란다 창을 짚으며 몸을 일으킨다.<br>아서라, 고양이. 벌레도 못 잡는 게 무슨 비둘기를. 쪼인다, 쪼여.냐아웅.<br>연이어 비둘기 두 마리가 바로 앞을 지나 옥상 쪽으로 사라진다.<br>냐아옹, 냐아웅.오오! (남자가 또 놀라는 소리)<br>남자는 돈 냄새를 맡고 이때다 싶어 말을 내뱉는다.<br>너 인마, 이 정도면 돈 내고 봐야 하는 거 아니냐?... (무시)<br>고양이, 양심이 좀 있어봐라. 그럼, 나 없는 동안 바닥 청소라도 좀 해놓던가.... (또 무시)<br>너는 내 말이 들리기는 하니?... (그냥 무시)<br>남자는 생각해 본다. 아무래도 오늘 옷을 잘못 입었어. 이런 옷을 입고 고양이한테 투덜대봤자지.<br>날씨 참 좋네, 그치?<br>(옷에 프린팅된 고양이와 글씨)]]></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617/pimg_7045771445156240.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39417</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고양이 일기</category><title>고양이 일기_3</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35684</link><pubDate>Mon, 15 Jun 2026 08: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35684</guid><description><![CDATA[*** 고양이는 울 때, 정확히는 아니더라도 대략 ‘야옹’이란 발음으로 운다고 생각했었다. 그 기대는 이 녀석을 입양한 순간 무참하게 깨졌다. 녀석은 울 때 앞에 ‘응’이 붙는다. 간혹 ‘야아옹’이라고 우는데 그건 내게 불만이 있거나 원하는 게 있을 때다. 고양이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르던 초보 집사 시절이었다. ***<br>아~앙. 오~옹. 이건 아닌 거 같은데, 냥. 으~응. 역시 이게 제일 낫지? 고양이라고 꼭 ‘냐옹’, ‘야옹’이라고 딱 부러지게 울 필요는 없지 않겠어? 으~응. 그래, 그래, 이거야. 입 벌릴 필요 없이 소리도 낼 수 있고. 이게 딱이지. 아저씨도... 앗, 벌레, 벌레! 에잇, 받아랏! 킁킁. 어라, 어디 갔대? 내가 코를 들이밀 때까지만 해도 여기 있었는데. 내 눈을 피할 수 있을 거 같냐? 냥. 없네. 쩝. 그러니까... 뭘 하고 있었더라?<br>아! 아저씨가 은근 저 소리를 좋아하더라구. 까까 줄 때 나도 모르게 응응응응 소리를 내며 쫓아갔는데 그때마다 헤벌쭉한 걸 보면, 확실히 좋아해. 지난번 하수구 뒤졌을 때도 으응, 으응 몇 번 했더니 웃으면서 넘어갔거든. 어차피 사고는 계속 칠 거고. 아깽이가 사고를 안 치면 고양이 명예에 똥칠을 하는 거지, 그럼. 그니까 어떻게든 혼나지 않고 넘길 방법을 찾았다 이거야. 으~응. 응깡! 응응응응응. 자, 울음소리는 이만하면 됐고.<br>이젠 자세! 배를 보이며 오른쪽으로 뒹굴. 다시 왼쪽으로 뒹굴. 오른쪽으로 갈 거 같다가 왼쪽으로 뒹굴. 사정없이 비비 꼬고. 삐삐삐삐삑~ 오, 밥 나오는 소리닷! 밥을 먹자, 밥을 먹어, 냠냠냠. 냠냠냠. (쿵!) 아우 씨, 깜짝이야! 여긴 어떻게 된 게 사방팔방에서 소리가 들려? 자, 밥 먹었으니까 몸단장 좀 하고, 또 연습을 합시다.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와, 집고양이로 사는 게 쉽지 않네. 다 때려치울까? (찰칵, 열쇠 돌리는 소리) 어, 캔따개... 아니, 아저씨다!<br>월아, 아저씨 갔다 왔다! 집에서 뭐 하고 있었어? 아저씨 보고 싶었어?<br>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알면 깜짝 놀랄걸? 모르는 게 좋아. 그건 그렇고, 받아랏, 내 애교를! 으~응. 으~응. 뒹굴. 뒹굴. 까까 주라! 그럼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는 얘기 안 해 줄게!]]></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닭이 먼저, 달걀이 먼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32560</link><pubDate>Sat, 13 Jun 2026 17: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32560</guid><description><![CDATA[소비의 시대다. 내 부모님 세대는 살기 위해서 소비했다. 먹거리를 사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맸다. 소비는 곧 생존이었다. 그 자식 세대에게 소비는 사치이자 여유였다. 아등바등 먹고 살지만 그래도 좀 쓰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냐는 사고방식이다. 그것이 합리적 소비란 모순적인 단어 조합으로 이어지고, 현재 30대부터는 소비가 필수인 시대가 되었다. 살기 위해 소비하는 게 아닌, 소비하기 위해 돈을 벌고 살아가는, 어찌 보면 내 부모 세대보다 더 전투적인 삶의 방식. 소비하지 않으면 내 존재를 드러낼 수 없는 시대다.<br>물건만 소비하는 게 아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소비 대상이다.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 게다가 빠르고 압축된 세상의 흐름은 그 모든 소비를 짧고 강렬한 이미지로 남긴다. SNS의 사진들, 짧은 영상들, 썸네일을 통해 지식, 정보, 역사 등이 그 무겁고 가벼움을 떠나 몽땅 찰나의 순간에 액기스처럼 짓뭉개진다. 사람들은 원래 선배들(거인들)의 어깨를 밟고 서서 세상을 변화시켰다. 발밑에서 느껴지는 건 불안함과 안정감, 둘 모두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저 팔랑팔랑. 순간에 압축된 강렬함은 휘발성마저 강해서 밟고 설 어깨조차 없는 듯하다. 공중에 나부끼는 비닐봉지처럼 안정감도, 불안함조차도 없다.<br>얼마 전(벌써 한 달 전), 스타벅스로 인해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1980년 5월의 광주를 난 모른다. 국민학교도 입학하기 전, 아버지는 광주에 사는 작은 아버지와, 광주에서 1시간쯤 떨어진 곳에 사는 큰아버지를 걱정하며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셨다. 내가 기억하는 장면이라곤 그뿐이다. 다행히 내 친척들은 그 시기를 무사히 넘겼다. 그리고 스타벅스 소동이 있기 몇 주 전, 큰누나로부터 광주에 사는 작은아버지 딸이 술을 마시고서 그때의 얘기를 주정처럼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남자는 돌아다니면 다 잡혀간다면서 오빠나 동생이 아닌 자신이 밖에 나가야 했다고. 얼마나 무서웠고 얼마나 서러웠는지 아냐고. 난 그 무서움과 서러움 역시 잘 모른다. 하지만 그게 상처라면 굳이 건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쯤은 안다. 우리 주변엔 단순한 신세 한탄이 아닌, 삶을 뒤흔들 만한 상처를 받은 자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아직 50년도 지나지 않았다.<br>실수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 시대가 모든 걸 가볍게 소비하게 만드니까. 하지만 그 실수를 틈타 정치 논리를 빌미로 조롱과 혐오를 이어가는 건 뭘까? 단순히 정치와 이념이 우리 사회를 특정 방향으로 몰아간다고 봐야 할까?<br>계산대에서 인사를 한다. 누군가는 눈을 마주치면서 그 인사를 받지만, 대부분은 그냥 흘려보낸다. 물건을 고른 손님이 계산대에 상품을 올려놓는다. 멤버십 카드가 있냐고 질문을 해보지만 반응이 없다. 귀에 이어폰을 꽂아서 상대방이 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까. 그러려니 하면서 쭉 진행하고 마지막으로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를 전한다. 내 말은 여전히 목적지를 찾지 못한 채 공기를 떠돌다 소멸한다. 다음 손님을 응대하려다 앞선 분이 신용카드를 두고 간 것을 알고 불러보지만, 그 역시 들릴 리 없다. '나'만 존재하는 세상. 쿨하지만 배려가 사라지고 '내 목소리'만 듣는 세상. 정말 정치와 이념이, 시스템이 세상을 망치고 있는 걸까?<br>꼬리말) 젊었을 땐 시스템에 모든 분노를 퍼부었다. 모든 부조리와 불합리는 시스템의 탓이었고, 사람들은 그 압박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편했던 거 같다. 그러니까... 모르진 않았었단 얘기다. 지금은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다. 사람들을.]]></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간극</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30149</link><pubDate>Fri, 12 Jun 2026 08: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30149</guid><description><![CDATA[사냥놀이 중이다. 일명 쥐꼬리 잡기. 깃털이나 어떤 물체를 위에서 덮어 가리고 그 끝을 살짝살짝 내어 보이면 고양이가 그걸 잡겠다고 앞발로 툭툭 치거나 달려와 덮치는 놀이. 엉덩이를 실룩대며 점프해서 덤벼들기도 하고, 갑자기 작전상 후퇴인 건지 후다닥 안방으로 달려 들어가기도 한다. 얘기를 들어보지 않아서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르겠다만. 그러다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졌다.<br>그동안 고양이가 쌓아 올린 이미지는 이렇다. 마루 저 끝에서 지켜보다가 내가 노트북을 끄면 신나게 뛰어오거나. 최애 간식을 먹을 때면 나보다 앞서 간식 그릇이 놓일 자리로 종종종 뛰어가거나. 장롱 위로 올라가겠다고 야심 차게 점프했다가 근처에도 못 가고 떨어지거나. 그래 놓고 창피했는지 느닷없이 방 밖으로 뛰어나가거나. 코끝에 붙은 벌레를 찾지 못해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거나. 장난감에 얻어맞고 무서워서 도망 다니거나. 대략 귀엽고 하찮은 녀석. 그런데 입양 전 처음 이 녀석을 봤을 때 색깔 때문인지, 내 얕은 지식 탓인지 하필이면 검은 재규어를 떠올려버린 것.<br>시작은 그냥 실소였다. 깃털 잡다가 갑자기 귀 바짝 붙이고 낮은 자세로 후다닥 뛰어 후퇴하는 녀석을 보는데, 동물의 왕국에서 봤던 고양잇과 맹수들의 뜀박질이 떠올랐거든. 어떤 맹수들과 비교해도 너무 가당찮은 가벼움에 내 웃음마저 사뿐히 입가에 걸쳤을 뿐이었다. 그러다 떠오른 게 톰과 제리. 마루에서 미끄러지며 잔발로 달리는 게 영락없는 톰과 제리의 추격전 뜀박질 모습이었다. 미소가 커다란 웃음으로 변했다. 다시 뛰어나온 녀석이 내 웃음소리에서 놀림거리가 되었다는 걸 느꼈는지 ‘으응’ 소리를 내더니 저쪽으로 달려가 버린다.<br>미안, 미안. 널 보고 재규어를 떠올렸던 것도, 톰과 제리를 떠올렸던 것도 다 내 잘못이다. 사과는 해보지만 나 자신도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웃음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데.]]></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28279</link><pubDate>Thu, 11 Jun 2026 08: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28279</guid><description><![CDATA[고양이가 구석에서 마루 전체를 조망 중이다. 벌레를 노리는 게 아니다. 지금은 윗집 수리로 발생하는 소음 때문에 경계한다고 보면 될 듯. 타고난 천성이 조심스러운 녀석이라 불안한 심정으로 영역을 바라본다. 내가 무슨 말을 해봤자 당연히 소용없고, 그저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행동하는 수밖에 없다. 스스로 이겨내야 하겠지만 집수리란 개념은 고양이에겐 이해할 수 없는 범위니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겠지. 그래도 조금씩 적응하는 모습이라 다행이긴 하다. 첫날은 온종일 침대 밑에 숨었고, 둘째 날은 낮은 포복으로 들락날락하다 셋째 날부턴 더는 숨지는 않는다. 하늘이 무너지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깨달은 모양. (5월 초에 썼던 글)<br>얼마 전 글에서 천장에 난 틈 얘기를 적은 게 있었다. 사실 그게 끝이 아니다. 당시 난 버티곤 있었지만, 심리적으로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였다. 긴장과 불안과 두려움이 모든 생활 영역으로 스며들던 때. 그때 눈에 들어온 게 집 곳곳에 생긴 금이었다. 쩍 벌어진 금부터 미세한 실금까지. 지은 지 20년이 넘었을 테니 건물에 금이 가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내 불안은 수많은 금을 포착했고, 그 사이로 스며 들어 집안 전체를 장악했다. 길가에 자리 잡은 집이라 바로 앞 도로로 버스가 지나다녔는데, 그럴 때마다 도로변을 향한 창문이 울리곤 했었다. 그렇게 모든 현상이 모여 나를 짓눌렀다.<br>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쪽으로 계단이 있다. 계단을 오르면 왼쪽 담벼락에 선명하게 가로로 금이 가로지른다. 오른쪽으로 꺾어서 다시 계단. 왼쪽 건물 벽면에 자잘한 실금들이 내 진행 방향을 따라 퍼져 나간다. 바로 위쪽에 내 방 창문이 있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한다. 실내에 들어온다고 달라질까? 내가 들어온 곳이 균열로 둘러싸인 곳인데. 잠시 앉았다 일어나서 벽 쪽을 향한다. 벽지 뒤로 대각선 방향의 금이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손끝으로 금을 따라 벽지를 만져본다.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 일도 안 일어나.<br>지금 생각해 보면, 놀랍게도 나 자신을 집에 투영시키고 있었다. 무너질 거라는 두려움, 버텨야 한다는 절박함. 어쩌면 그게 나일 수 있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회피한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에 잠겨 있다 정신을 차려보니 고양이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여전한 소음, 여전히 구석 자리. 문득 떠오른 마법 주문을 외쳐본다. 통하려나?<br>“까까?”<br>통한다. 역시 녀석에겐 까까가 최고다.<br><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삥의 행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26509</link><pubDate>Wed, 10 Jun 2026 08: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26509</guid><description><![CDATA[산에서 보는 고양이 중에 삼색이가 있다. 삼색이는 확률상 암컷일 가능성이 90% 이상이다. 다른 두 녀석은 수컷임을 확인했다. (땅콩을 확인했음. 엣헴.) 고양이 암컷은 보통 보수적이고 까칠하며 조심성이 많다고들 한다. 영역을 확보해서 새끼를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녀석은 좀 다르다. 녀석이 등산객들에게 삥을 뜯는 방법을 보자. 서 있는 사람에겐 접근하지 않는다. 대신 앉은 사람 근처에 다가간다. 이들은 대개 정상에서 먹을 걸 꺼낸다는 걸 경험상 파악한 듯하다. 그리곤 바로 앉아서 꼼짝하지 않는다. 그러면 사람들이 귀여워서, 또는 어이없어서라도 먹을 걸 나누어준다. 대담한 건 이 과정에서 녀석은 몸을 전혀 숨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눈치도 안 본다. 물만 주는 사람, 먹을 게 없는 자에겐 되레 눈치를 준다. 꼼짝도 하지 않음으로써. 어이, 쓸만한 것 좀 내놔보슈. 다른 목표물이 생기기 전까지 움직이지 않는다. 쓸만한 게 없어? 그럼 양념으로 부담감 잔뜩 처먹고 확 체해라! 어차피 산에서 내려가면서 소화시킬 테니 문제 될 거 없다는 태도.<br>내가 산꼭대기에서 처음 만난 고양이. 내게서 가장 많이 삥 뜯은 고양이. 이제는 손가락을 내밀면 코뽀뽀 정도는 옜다 하며 갈겨주는 고양이. 닭가슴살을 3개나 챙기고서도 내 뒤를 졸졸 쫓아와 기겁하게 만든 고양이. 이 정도로 뻔뻔하고 당당하면 다음 생에 인왕산 산신으로 환생할지도 모르겠다. 호랑이 없는 세상에 고양이가 왕 노릇을 한다고 뭐 대수겠나. 그렇게 살아남는 거다. 그렇게 살아서 그 꼭대기가 네 영역임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알리면 되는 거다. 근데, 우리 집 고양이는 벌레도 못 잡는데 너는 좀 잡니?<br><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고양이 일기</category><title>고양이 일기_2</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22880</link><pubDate>Mon, 08 Jun 2026 08: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22880</guid><description><![CDATA[*** 초보 집사 시절, 모든 게 서툴다 보니 아는 것을 실전에 적용하지 못했다. 사람마다 맞지 않는 음식이 있듯이 고양이도 개체마다 맞지 않는 사료가 있다. 내가 녀석에게 준 사료가 그랬다. 머리론 알고 있었는데 막상 현실에선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서 몇 주간 고양이는 설사를 동반한 응가를 하루에 네댓 번씩 쌌다. 하지만 천하무적 아깽이 시절이다. 싼 만큼 먹고 기운차게 뛰어다녔다. 이 시기 내 머릿속은 온통 똥으로 가득 차 있었다. ***<br>아이 씨, 아 씨. 안 잡힐 거다. 오늘은 절대 안 잡힌다. 하지만. 역시 잡혔다. 뛰는 게 나보다 빠르진 않은데 몸이 커서 그런가? 어딜 가도 잡히는 결말. 냥! 내 똥꼬! 지구별 사람들은 왜 내 똥꼬에 다 집착하는 건데! 이런 건 고양이별에서 안 가르쳐줬잖아! 하늘색 옷 입은 사람들은 똥꼬에 뭘 자꾸 찔렀다 빼더만, 이 아저씨는 응가만 하고 나오면 축축한 걸로 자꾸 문질러대! 이봐, 아저씨, 그렇게 안 해도 내가 마루에 문지르면 된다고! 찝찝할 때 문지르면 얼마나 개운한데... 아우, 그만 닦으래두! 내가 싹 다 기억해 놓을 거야! 나중에 후회하지 마.<br>아니 근데, 응가는 왜 이렇게 자주 마려운 거야? 이거 정상인가? 오늘만 벌써 네 번째 싸는 건데. 내가 너무 많이 먹나? 배고픈데 먹는 건 당연하잖아. 가만, 이거 먹는 게 잘못된 건가? 냥, 거기 아저씨, 제대로 된 음식 주는 거 맞아? 나 또 응가 마렵거든! 생각 좀 해봐! 생각을 좀 깊게 해 보라구! 그래도 맛은 있더라. 생각을 다른 방향으로 깊게 해 보는 거 어때? 나 화장실 갔다 올 테니까 좀 생각해 봐. 응? 하루에 다섯 번 응가하면 반칙이라구? 뭐래? 아, 그럼 아저씨가 나 대신 싸던가! 아 씨, 기다려봐,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br>냥, 박진감 넘치는 하루였다. 여섯 번 뛰었는데 여섯 번 다 잡혔어. 독한 아저씨 같으니. 내 똥꼬를 그렇게 문질러대고 잠이 오냐? 내가 아직 좀만해서 그렇지, 조금만 더 커봐! 이 주먹 이따만하게 키워서 한 대 쥐어박을 거야. 딱 기다리고 있어! 저, 저, 퍼질러 자는 거 봐라! 에잇, 그렇게 좋으면 내 똥꼬 냄새나 맡아라! 어라, 얼굴을 돌리네? 냄새가 이상한가? 어디? 킁킁. 카, 취한다, 취해.]]></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맞는 말 같은데 찜찜한 - [도시의 승리 - 도시는 어떻게 인간을 더 풍요롭고 더 행복하게 만들었나?, 개정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20213</link><pubDate>Sat, 06 Jun 2026 16: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2021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74329X&TPaperId=173202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6194/93/coveroff/896574329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74329X&TPaperId=1732021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도시의 승리 - 도시는 어떻게 인간을 더 풍요롭고 더 행복하게 만들었나?, 개정판</a><br/>에드워드 글레이저 지음, 이진원 옮김 / 해냄 / 2021년 01월<br/></td></tr></table><br/>1970년대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때도 서울은 서울이었다. 물론 강남은 지금과 달랐지만. 십 대 초반쯤 되었으려나? 고속버스를 타고 5시간쯤 걸려서 온 가족이 큰아버지 댁에 간 적이 있었다. 재래식 화장실에 질린 누나는 그날로 서울로 복귀했고, 난 어떻게든 버텼다. 가로등 하나도 없던 동네. 자려고 불을 끄면 도시의 어둠과 차원이 다른 어둠이 주변을 감쌌다. 손을 들어 눈앞에서 흔들어봤지만 그게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 그때 기억 때문일까? 난 도시를, 서울을 떠나 살아볼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br>문명과 편리함으로 대변되던 도시는 지금도 여전히 사람을 끌어모은다. 이 책에 따르면, 그 같은 인접성은 도시의 대표적 특성 중 하나다.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지식의 전파를 쉽게 한다. 동시에 여러 아이디어가 생겨나고 퍼지면서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며 또 다른 새로운 무언가를 창출해 내기도 한다. 도시의 특성 중 하나인 혁신성이다. 이 둘은 도시를 양적, 질적으로 키우는 원동력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도시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갈 수는 없다. 인접성은 질병과 범죄의 전파 역시 쉽게 하며, 혁신성은 때론 스스로 굴레가 되어 도시를 억압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절히 개입하는 공공 부문이 필요하다. 깨끗한 물 공급과 안전한 치안, 접근성을 높이는 도로 등을 공급하는 것은 개인이 아닌 공공이 맡아야 할 역할이다. 또한 경쟁을 유도하고 교육에 투자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br>여기까지는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수긍할 만한 내용이다. 그런데 이 책은 여기에 한 가지를 추가한다. 바로 고밀도 개발, 즉 도심에 고층 건물을 지어 사람과 건물의 밀도를 높여야 한단다. 다시 말해서, 이 얘기는 도심 내 개발에 제한을 두어선 안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이렇다. 건축에 제한을 두면 민간 회사는 수지가 맞지 않아 사업을 벌이지 않을 테고, 자연스레 주거 공급이 줄어들면 집값 상승이 유발된다. 그럼으로써 경제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의 도심 접근을 막게 된다. 또한 요즘처럼 자동차가 대중화된 시대에선 도시 주변부가 확장되는 스프롤 현상이 일어나게 마련인데, 이럴수록 교외의 녹지를 침범하고 자가운전을 많이 하게 되어 더 탄소 집약적인 생활양식을 갖게 된다. 이런 양상을 줄이려면 이미 개발된 도심 내에서 제한 없이 개발해야 한다는 말이다. 전문가가 하는 말이다 보니 일리가 있다. 게다가 실제 통계까지 제시하니 신빙성도 있다.<br>설명만 하면 딱딱하니 책에 있는 몇 가지 도시 사례를 살펴보겠다. 가장 먼저 디트로이트. 한때 자동차 제국을 상징하던 도시. 포드의 제조 혁신으로 자동차를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됐고, 도시는 초대형 자동차 제국이 되었다. 하지만 동일 업종의 대형 회사 서너 군데가 도시를 독점함으로써 업종 간 아이디어 교류가 단절됐고, 포드의 혁신은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높은 교육을 요구하지 않음으로써 도시의 교육 수준을 떨어뜨렸다. 결국 일본에 밀려 자동차 제국은 무너졌고, 도시도 주저앉았다. 물론 이후 회복을 위한 꾸준한 시도가 이어졌다. 하지만 사람이 아닌 장소를 중심에 둔 방향성 탓에 디트로이트는 실패한 도시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다. 다음으론 텍사스에 있는 휴스턴. 이 도시는 개발 지향적이며 기업 친화적이다.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같았으면 건물이 들어설 수 없는 장소였겠지만 휴스턴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주거 공급이 충분히 이루어졌고, 그것은 적정한 주거비와 물가로 보상받았다. 그 덕에 중산층과 교육을 많이 받은 우수 인력들을 꾸준히 끌어들이면서 도시의 성장을 일구어내는 중이다. 다만 이곳은 대중교통보단 자가운전 중심의 도시라 냉방이나 자동차 연료에서 배출되는 탄소의 양이 많다는 단점은 있다.<br>지금까지 써놓은 글에서 살짝 드러나기도 했지만, 저자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시장 경제와 자유 경쟁을 옹호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개발 제한을 두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그렇지만 주거 공급 측면에서 공공의 역할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는 공공이 주도하는 주택 공급은 시장 가격을 왜곡함으로써 민간 기업이 사업에 뛰어드는 걸 회피하게 하고, 장기적으로 공급 부족을 초래한다고 본다. 또한 도시의 핵심 지역에 공급되는 공공 주택은 그곳에 들어와 더 많은 일자리와 혁신을 일으킬 수 있었던 기업이나 상업 시설이 들어설 기회를 영원히 박탈하게 된다. 기회비용의 문제다. 이건 오세훈 서울 시장이 서울에 적용하는 주거, 건설 정책과 맞닿아 보인다.<br>이왕 말 나온 김에 서울을 한 번 들여다보자. 고밀도 개발, 대중교통, 교육 수준. 도시를 살릴 수 있는, 저자가 제시한 세 가지 조건을 들여다보면, 서울은 완벽한 도시다. 높은 아파트와 사무용 빌딩들, 카드 하나만 들고서 어디든 갈 수 있는 교통 체계,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교육을 향한 열정. 게다가 완벽한 소비 도시이며,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사람들이 주거를 선택하는 중요한 요소를 모두 갖춘 도시이기도 하다. 하지만 밀도가 높아도 너무 높은 걸까? 취향이 너무 확고한 걸까? 밀려드는 사람에, 아파트를 향한 애정 공세에 주거 비용은 떨어질 줄을 모른다. 지나친 교육열은 지식과 배움을 뛰어넘어 무한경쟁과 차별을 고착시키는 중이다. 완벽한 하드웨어에 과열되는 소프트웨어인가? 이게 말이 되나? 서울은 말도 못 하게 놀라운 도시구나.<br>&lt;도시의 승리&gt;는 2011년에 발행된 책이다. 무려 15년 전이다. 책을 읽으면서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란 의문에 이것저것 검색해 보느라 읽는 시간이 배로 걸렸다. 또 하나, 읽는 내내 찜찜한 기분 때문에 자꾸 다른 생각을 하느라 시간이 더 걸리기도 했다. 저자도 인정했지만, 도시가 발전한다고 해서 세상을, 심지어 도시 내부조차 평준화시키지 못한다. 도시는 사람을 불러 모을 때 빈부를 가리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상호작용을 하며 기회를 제공하고 제공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서 역설적으로 도시의 빈곤은 계속해서 커진다. 저자는 성공한 사례를 들며, 도시가 아닌 시골 지역의 가난과 비교하며 더 나은 방향을 바라보지만, 더 밑으로 굴러떨어지는 더욱 많은 암담한 사례를 우리는 애써 외면해야 하는 걸까? 공공 부문은 시장 경제와 자유 경쟁에 어느 정도까지 개입해도 되는 걸까? 책을 다 읽고서도 이 찜찜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음 책은 리처드 플로리다가 지은 &lt;도시는 왜 불평등한가&gt;이다. 에드워드 글레이저처럼 도시 찬양가였다 태도를 바꾼 사람이라고 한다. 찜찜함을 좀 걷어낼 수 있으려나.]]></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6194/93/cover150/896574329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1949340</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멀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17850</link><pubDate>Fri, 05 Jun 2026 08: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17850</guid><description><![CDATA[생일이었다. 다행히 챙겨주는 사람이 많아서 전날부터 바빴다. 일단 점심 약속부터 시작. 지하철이 없는 곳이라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가야만 했다. 거리는 멀지 않아서 크게 걱정하진 않았는데, 두 번째 버스에 올라탄 순간 훅 밀고 들어오는 냄새. 대개 오래된 시외버스에서 많이 나는 냄새다. 기름 냄새 같기도 하고. 문제는 이 냄새를 맡으면 100% 멀미한다는 점. 금방 내릴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 첫 약속을 수행한 후, 큰누나 집으로 출동. 미역국을 끓여놨으니 가져가야 한다. 역시 짧게 버스 탑승. 가벼운 잽 두 방쯤은 버틸 수 있다. 과일 먹고 잠깐 수다 떨다 택시 타고 집으로. 승용차라고 다를 거 없다. 내 멀미는 앞을 보고 타는 모든 탈 것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 묵직한 스트레이트 한 방. 어질. 세 번째 약속은 늦은 저녁이라 한참 쉬었다 지하철 탑승. 지하철은 아무렇지 않다. 옆으로 가니까. 나, 전생에 게였을까? 그 후로 친구 차를 타고 두 번 이동. 원투. 스트레이트 펀치가 이어지지 않아서 KO는 면했다.<br>다음 날. 또 점심 약속. 지하철로 이동이라 괜찮다. 밥 먹고 커피 마시면서 느긋하게 얘기를 나눈다. 이런저런 대화 중에 누군가에 대한 불평이 튀어나온다. 왜 자기가 어질러 놓은 걸 치우질 않냐고요! 누구보고 치우라고?! 얘길 했더니 자기는 가르치러 왔지, 치우러 온 게 아니라나? 자유엔 책임이 뒤따르고 권리엔 의무가 함께 하지만, 어느샌가 그건 교과서에나 나올 얘기에 불과해졌다. 현실은, 돈을 많이 준다면, 책임을 생각해 보고 의무도 고려해 보겠다 정도. 장사할 때가 생각났다. 최저임금과 주휴수당, 4대 보험. 간신히 지킬 것만 지켜서 월급을 지급했었다. ‘저 내일부터 못 나와요.’ 이런 얘기를 몇 번이나 들었더라. 받아 간 그 월급이 내 월수입보다 더 많았었는데. 펀치가 날아오진 않았지만, 무언가의 현란한 움직임에 내 스텝이 꼬였다. 비틀.<br>선거가 어떻게 되어가나 궁금해서 뉴스를 보다가 선관위가 큰 사고를 친 걸 알았다. 일 참 빌어먹게도 잘하는구나. TV 화면에서 소리 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져간다. 소동들. 세상을 휩쓰는 각종 분노와 혐오들. 폭주 기관차가 되지 않으려면, 누워서 침 뱉지 않으려면 자제와 성찰이 필요하겠지만 우린 그렇게 하고 있을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생각도 멈췄다. 그런데 뜬금없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lt;다크나이트&gt;가 떠올랐다. 배트맨과 조커. 배트맨은, 사람은 조그만 희망을 품을 여지만 있다면, 앞길을 비춰줄 한 줄기 빛만 있다면 세상을 옳은 방향으로 끌어갈 수 있는 존재라 믿는다. 반면, 조커는, 사람은 기회만 되면 상대를 배신하고 죽이기도 하는 둥 얼마든지 타락할 수 있는 존재라 믿는다. 하나는 질서고, 다른 하나는 혼돈이다. 둘은 끝까지 싸울 거고, 같이 있음으로 해서 완벽해진다.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은…. 고개를 숙인 채 방심하다가 날아 들어오는 어퍼컷에 걸렸다. 휘청.<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존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16012</link><pubDate>Thu, 04 Jun 2026 07: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316012</guid><description><![CDATA[새벽 5시에 눈을 뜬다. 출근하는 날이다. 눈을 뜨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고양이 빗질. 빗을 들면 고양이 녀석은 저만치 있다가도 쪼르르 달려온다. 아직도 알 수 없는 게, 이 녀석이 빗질을 좋아하는 건지, 빗질 후 주어질 간식을 좋아하는 건지 모호하다. 빗질 후 간식을 주고 상황에 따라 궁디팡팡을 한 후 본격적인 출근 준비다. 세수하고 아침 먹고 커피 마시면서 간단한 청소 하고. 드디어 출근. 녀석은 내가 나간다는 걸 알기에 캣타워에 콕 박혀있다. 졸린 건지, 싫은 건지. 코앞까지 가서 열심히 손을 흔든다. 안녕, 아저씨 갔다 올게. 어렸을 땐 가지 말라고 문 앞까지 쫓아 나와서 배를 까뒤집고 난리였는데. 지금은... 주접 그만 떨고 빨리 가라... 딱 그 느낌. 다 컸구나. 나가서 돈이나 좀 벌어와라.<br>이 녀석이 없는 세상, 이제 상상이 안 간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언제나 내 곁에 계실 거란 생각에 그 소중함의 크기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었다. 떠남을 예상했지만 애써 외면했다고 봐야겠지. 그러다 누군가의 입을 통해 선언처럼 맞닥뜨렸을 때. 버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더라? 생각을, 했던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세상을 꽉 채우는 내 존재와 텅 비어버린 부재뿐.<br>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온다. 중문 너머에서 나를 보고 우는 녀석. 우와, 캔따개다. 까까.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번역을 애써 무시하며 반갑게 인사한다. 잘 놀고 있었어? 이제 5살. 아무리 시간이 빠른들 서로가 없는 세상을 생각하는 건 너무 이른 감이 있다. 내가 걱정을 사서 하는 편이긴 해. 그릇을 빙빙 돌려주며 간식을 맛나게 먹는 녀석을 보면서 누군가를 떠올린다.<br>‘내가 상상이나 했겠니? 너를 보면서 누군가의 즐거움과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공감하게 될 줄을.’<br><br>]]></description></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