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어느덧 여기에 (대굴대굴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책에 관한 리뷰라기 보단 내 삶에 대한 리뷰</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Wed, 27 May 2026 08:57:18 +0900</lastBuildDate><image><title>대굴대굴</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045771444334901.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대굴대굴</description></image><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혼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99295</link><pubDate>Wed, 27 May 2026 08: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99295</guid><description><![CDATA[드드드드드(위층 집수리 3일 차. 드릴로 무언가 부수는 소리)<br>우리 집엔 패브릭 소파가 있다. 얼마 전부터...<br>퍽퍽퍽퍽퍽(전동 기계로 문틀 같은 것들을 뜯어내는 소리)<br>우리 집엔 패브릭 소파가 있다. 얼마 전부터...<br>냐옹. 칵칵. 칵칵. (고양이 채터링 소리)<br>고양이 있는 곳을 쳐다봤다가 실외기 위에 비둘기가 있는 걸 보고 얼른 사진기(아니, 핸드폰)를 들고 돌진. 사진을 찍어보지만, 이런. 투덜대며 노트북 앞으로 돌아온다.<br>우리 집엔 패브릭 소파가 있다. 얼마 전부터...<br>우우우우웅(전동 그릴로 무언가를 가는 소리)<br>우리 집엔 패브릭 소파가 있다. 얼마 전부터...<br>후다닥. 투닥. (고양이가 갑자기 반대편으로 뛰는 소리)<br>왜, 왜, 뭐? 천장에서 벌레라도 떨어졌냐?<br>헐레벌떡 방 밖으로 나갔다가 유유히 돌아오는 고양이와 마주침. 이눔의 자슥이...<br>우리 집엔 패브릭 소파가 있다. 얼마 전부터...<br>드드드드. 퍽퍽퍽퍽. 우우우웅.<br>아이 씨, 안 해, 안 써!<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27/pimg_7045771445136020.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99295</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부관참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95677</link><pubDate>Mon, 25 May 2026 08: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95677</guid><description><![CDATA[剖(부) : 쪼갤 부棺(관) : 널 관斬(참) : 벨 참屍(시) : 주검 시<br>한자 그대로의 의미다. 관을 쪼개어 시체의 목을 베다. 조선시대에 행해진 형벌 중 하나다. 주자학의 나라였던 조선에선 신체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소중한 것이었다. 죽은 후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부관참시는 조선시대 최악의 극형이었다. 이미 죽은 자에게 벌을 내린다는 점에서 정치적 목적이 다분한 형벌이기도 했다.<br>작년 북악산에 올랐던 때가 있었다. 한양 도성길을 따라가다 보면 인왕산에서 북악산으로 들어가는 방향은 산보다 계단에 질려 버린다. 다른 곳은 계단과 산길이 어우러졌는데 유독 이곳만은 정상 턱밑까지 계단으로 일관한다. 그때 계단을 오르며 했던 생각. 조상들이 산 정상까지 성벽을 쌓았으면, 그 후손들은 정상까지 나무 계단 정도는 만들어 주는 게 맞지. 누가 봐도 그 선조에 그 후손이네.<br>요즘 몇몇 뉴스를 보다 한양 도성과 나무 계단이 떠올랐다. 그 선조에 그 후손. 유학에 파묻힌 선조들을 이해하지 못 하겠다던 후손들은 그래서인지 부관참시를 아무렇지 않게 남발한다. 주로 돈벌이를 위해서. 장담하건대, 선조들도 그 후손들을 절대 이해하지 못할 거다. 주자학의 조선인이 자본주의 조선인을 무슨 수로 이해하겠나?<br><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소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90794</link><pubDate>Fri, 22 May 2026 08: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90794</guid><description><![CDATA[5월은 종합소득세 신고 기간이다. 연말정산도 그렇지만 종합소득세 역시 홈택스에 접속해서 비교적 손쉽게 신고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시대를 뒤쫓아갈 여력이 있는 사람들에 한해서다. 70대인 큰누나는 컴퓨터라곤 사용해 본 적이 없다. 스마트폰을 쓰지만 ‘폰’에 방점이 찍힌 사용법을 고수하고, 은행 업무는 ATM을 이용한다. 매형은 누나보다 더 못해서 기계치에 가깝고. 며칠 전 매형 앞으로 종합소득세를 신고하라는 통지가 집으로 온 모양이다. 최근 몇 년 동안 환급 대상이라 ARS로 계좌번호만 입력했었는데 세금을 내라는 통지는 이번이 처음이란다. 멀리서 사는 자식들에게 보여줬지만 둘의 의견이 갈렸다. 내야 한다, 이미 냈으니 상관없다. 결판이 안 났으니, 통지서 들고 구청 세무과로 출동. 1층 민원실에서 이러이러하면 된다고 상담을 들었지만, 홈택스니, 컴퓨터니 누나가 알아들을 리 없다. 그래서 가까이 있는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노트북을 들고 누나 집으로 출동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매형 핸드폰이 누나 명의로 되어 있던 것. 홈택스 회원 가입은커녕 앱을 통해 인증서조차 발급받을 수 없었다. 2026년, 온갖 존재가 인터넷에서 활보하는 이 시점에 매형은 온라인상에서 자신의 실존을 증명할 방법이 전무했다.<br>언제였더라? 서울의 대중교통체계가 완전히 뒤바뀐 적이 있었다. 버스 번호가 전부 바뀌고, 환승을 위해서 내릴 때도 교통카드를 대고 내려야 했다. 정류장마다 노선도가 그려졌고, 안내원이 배치됐다. 처음엔 혼란스러웠지만 다들 적응했다. 하지만 당시 70이 넘으셨던 어머니는 그러지 못했다. 어머니는 이미 자식들 문제로 자신감을 많이 상실한 상태였다. 그리고 많은 것들이 예전과 달리 낯설어졌다. TV 리모컨엔 정체 모를 버튼이 늘어났고, 밥솥조차 여러 선택을 강요했다. 그런 당신 앞에 이번엔 선택의 여지없이 대중교통의 변화가 들이닥쳤다. 어머닌 결국 그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시대를 쫓아갈 수 없었다. 많은 이들에게 좋고 편리했지만, 어머니에겐 아니었다. 자기 삶이 세상을 따라가기는커녕 세상으로부터 내팽개쳐진 셈이다. 누구도 원하지 않았겠지만, 세월은 잔인했다.<br>그때로부터 시간은 10년이 넘게 흘렀다. 거의 20년이 흘렀나? 큰누나는 당시 어머니와 비슷한 나이가 됐고, 이젠 편리함의 다른 얼굴이 누나를 덮치는 중이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큰누나는 성격도 급하고 욱하는 성질이 있는 데다 참지도 않는다. 나이 든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 전부 이렇게 해 놓냐며 세상을 향해 삿대질한다. 아직은 걱정 안 해도 되겠다. 누나가 세상을 따라가긴 힘들겠지만, 기세만큼은 남부럽지 않다. 내팽개치려는 세상을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AI</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88893</link><pubDate>Thu, 21 May 2026 08: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88893</guid><description><![CDATA[요즘 거의 매일 글을 쓴다. 20년 전의 블로그 글을 읽으며 정리하다가 무심코 AI에게 감상을 물었고, 그렇게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과거의 나를 돌아봤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글에 관한 판단은 나나 AI나 크게 다르지 않더라. 어차피 정답이 있는 부분은 아니니 환각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고. 그러다 글쓰기에 대한 욕구가 다시 살아났다. 아마 내 글에 대한 의견을 손쉽게 들을 수 있다는 게 그 원인이 아닐까 싶다.<br>얼마나 오래 갈진 알 수 없다. 글은 매일 쓰지만 블로그에 올리는 건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일상에 관한 글은 소재를 찾은 후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적기 때문에 내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다행히도 AI의 피드백이 의지를 북돋우는 데 어느 정도 이바지하는 중이다. 그렇다고 그 충고를 이 글에 전적으로 반영하진 않는다. 이 카테고리 글은 어디까지나 형식이나 내용에 얽매이지 않는 방향이라 스스로 다듬었으면 그뿐이다. 충고는 다음 글을 위한, 미래의 글쓰기를 위한 방향타로 쓰면 되니까.<br>AI가 했던 조언 중에 인상 깊었던 것 하나. 책을 읽고 쓴 리뷰에서 들었던 말인데, ‘지나친 확언은 피하는 게 좋습니다.’ AI 자신에게도, 나에게도 필요한 얘기. 어쩌면 정보가 쏟아지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가 경계해야 할 얘기.]]></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자본주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86983</link><pubDate>Wed, 20 May 2026 08: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86983</guid><description><![CDATA[산에 오를 채비를 한다. 날이 더워져서 오후 4시 반쯤에야 집을 나서는 요즘이다. 오늘은 닭가슴살이 아닌 참치 등살을 챙긴다. 하나에 6천 원이 넘는 비싼 간식이건만 우리 집 녀석은 안 먹겠단다. 괜히 열받아서 한 번 째려본다. 그러건 말건 캣타워에 콕. 이 좋은 걸 안 먹다니. 삼색이한테 줄 거다, 흥!<br>휘리릭. 시간이 흘러 정상. 못 보던 고양이가 있다. 이번엔 카오스 고양이다. 완벽한 카오스는 아니고 삼색이에서 카오스로 되다만 느낌. 체구가 작다. 넌 누구니? 삼색이가 나타났지만 서로 적대하지 않는다. 아마 부모가 같거나, 어느 한쪽만 같은 경우가 아닐까 싶다. 참치 등살을 하나씩 뜯어주자, 부스러기까지 싹 긁어 먹는다. 이렇게 잘 먹어주면 얼마나 좋아. 입 짧은 어떤 녀석을 향해 산 정상에서 당당하게 욕을 한다. 개눔의 자슥.<br>정상 부근 바위에서 고양이 두 마리 당당하게 거느리고 주변을 둘러본다. 오늘 삼색이는 코뽀뽀도 해줬다. 삼색이가 따라오며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야, 너, 목소리가 꾀꼬리구나!<br>냐옹~ (아까 그거 더 내놔라)배웅까지 해주고 고맙네.냐옹~ (있는 거 다 내놓고 가라)거기 있어, 그만 따라오고.냐옹~ (아직 배고프다, 하나 더)간다, 다음에 보자~<br>자기만족에 내려오는 발길마저 가볍다. 산 중턱에 다다를 무렵 이상한 풍경에 발을 멈춘다. 단풍나무? 빨간 단풍? 벌써?<br>저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5월 중순인데 착각이 너무 심한 거 아니요?... (너한테 들을 소리는 아닌 거 같다만)거, 적당히 좀 합시다. 자아도취가 지나치시오.... (네가 할 소린 아니래도. 지나가던 고양이가 웃겠다)<br>참 성격 급하시네. 병이 든 건가?<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20/pimg_704577144512946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86983</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수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83392</link><pubDate>Mon, 18 May 2026 08: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83392</guid><description><![CDATA[우당탕, 쿵쾅, 우웅웅. 웨에앵~.<br>바로 위층이 집수리를 시작했다. 아침 8시부터 뭔가 심상찮다 생각했는데 9시가 되니 본격적인 소음이 시작된다. 우리 집 쫄보 고양이는 하늘이 무너진다고 여겼는지 침대 밑으로 들어가 코빼기도 안 보인다. 느닷없이 부여된 나만의 자유시간. 시끄러워 정신은 없다만 묘하게도 예고가 된 소음이라 거슬리진 않는다. 그에 반해 과거 윗집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와 문소리, 커다란 목소리 같은 층간 소음은 정말 신경이 쓰였었다. 사람 심리라는 게 참. 그러고 보니….<br>비슷한 경험이 있었네. 쿵쾅거리고 삐걱대는 내부의 소리를 외면하며 언제 무너질까 두려워하던 시절이. 외부가 아닌 내면이 진원이었지만 그 시절 난 신경을 잔뜩 곤두세운 채 낯을 찌푸리고 지냈다. 잠재되어 있으나 불규칙한 출현이 어찌나 삶을 위축시키던지. 그러다 폭발하면, 거슬림 따윈 없었다. 그저 분노에 몸을 맡기고서 오로지 돌진. 하지만 불사르고 난 후 풍기는 냄새는 결코 유쾌하지도, 긍정적이지도 않았다. 그런 시절을... 어떻게 지나쳐 올 수 있었을까?<br>작년, 나 역시 집수리를 했었다. 아파트는 지은 지 30년쯤 됐고, 이곳에 산 지는 20년이 넘었다. 물이 새고, 마루는 들뜨고, 천장은 내려앉고. 수리를 시작하고 4주 남짓의 기간 동안 아래층으로 연결된 화장실 배관이 새는 바람에 그 또한 급하게 고쳐야 했다. 주말이었지만 냄새가 심하게 나서 지체할 수도 없었고. 집수리를 마치고 며칠 후 비가 내렸는데 바로 베란다 천장에서 물이 샜다. 심지어 벽을 타고 물이 흘러나오기까지 했다. 우리 집 문제가 아닌 당시 위층에 살던 분들이 손을 써야 할 문제였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본인들 집으로 향한 누수만 해결했고, 아래층에 사는 내게 향한 누수는 외면했다. 그렇게 자신만을 추스르며 사는 사람들도 있다. 나 또한 그랬을까? 주변을 돌아보는 것조차 버거웠던 그 시절, 나 역시 그랬다면 그 미안함을 이제 와서 어찌해야 하나.<br>고양이가 슬쩍 나오더니 주변을 둘러본다. 겁을 먹고 경계하면서 땅바닥에 바짝 붙은 자세로 저만치 사사삭 달려간다. 그렇게 납작 엎드린다고 무너질 하늘이 널 안 덮치겠니? 이번 수리가 끝나면 베란다로 새는 빗물 문제는 자연히 해결될 거다. 수리하는 동안 다른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있다 하더라도 원만하게 수습되었으면 한다. 내가 느낀 미안함을 굳이 공유할 필요는 없지, 싶다.<br><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고등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77616</link><pubDate>Fri, 15 May 2026 08: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77616</guid><description><![CDATA[닭가슴살 4개를 품고 오늘도 산에 오른다. 벚꽃은 이미 졌다. 나무 계단을 오르면 오른쪽으로 늘어서듯이 쭉 서 있어서 한 번은 꼭 돌아보게 했는데. 꽃이 사라진 나무는 내겐 그저 모호할 뿐이다. 언젠가부터 산을 오르는 외국인들도 많아졌다. 얼마 전엔 산꼭대기에서 영어로 습격을 당해서 기겁한 적도 있었다. 다행히 알아들어서 손가락을 사용해 요래 요래 가라고 알려주긴 했지만…. 흑, 산에서 영어를 만나다니. 조만간 산에서 호랑이를 만나는 상상도 해 본다.<br>참, 그러고 보니 호랑이가 아니라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 3마리. 모두를 한꺼번에 보는 건 쉽지 않은데 운 좋게 다들 만난 적이 있었다. 거의 두 달 만이었던가? 그런데 고등어 줄무늬를 가진 한 녀석이 다른 둘보다 체격이 작았다. 원래는 비슷했었는데. 셋 중 가장 소심한 녀석이라 먹을 거를 가장 적게 얻어먹은 걸까? 그럼, 저 빵빵한 배는? 임신이라도 한 것 같은 모양새인데, 내가 알던 고등어는 분명 수컷이었거든. 배에 물이라도 찬 거라면, 이런 환경에선 결말은 뻔하다.<br>그날 본 후로, 고등어는 열흘 가까이 보지 못했다. 늦게 나타나는 바람에 닭가슴살도 반만 먹고 눈치를 보던 모습. 그 모습이 마음에 걸려 오늘도 정상 부근을 기웃거려 보지만 고등어는 안 보인다. 삼색이에게 닭가슴살 3개, 젖소에게 1개 삥 뜯기고 발길을 돌린다. 활기찬 이 두 녀석은 자신들 주변에 드리워진 그림자 따윈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다. 언제나 삶의 주변을 기웃거리는 그 무엇 따윈.<br>내려오는 길. 아쉬움에 미적대며 주위를 살피는데 특이한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나뭇잎은 가지 쪽에서 자라나야 하는데 이 나무는 어째 밑동부터 나무 전체에 걸쳐 잎이 나 있다. 이상하다 싶어 자세히 봤더니 죽은 나무를 덩굴 식물이 감고 올라간 상태더라. 아이고, 억척스러워라. 죽음마저 휘감고 피어나는 생명이라니. 그래, 그러니 잘 있을 거야. 잘 있으면 언젠가 보겠지. 사람이 적었던 어떤 겨울날, 햇살 아래 수풀 속에서 장난치던 셋의 모습을 떠올리며 다음을 기약한다.<br>꼬리말) 4월 26일에 썼던 글이다. 계절감이나 시기가 명확한 글은 바로 올리는데 이 글은 놓쳤던 모양이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그냥, 고양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75555</link><pubDate>Thu, 14 May 2026 08: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75555</guid><description><![CDATA[난 고양이를 싫어했다. 어렸을 때 경험이 한몫했다. 키우고 있던 노란 병아리를 도둑고양이가 물어 갔거든.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머리만 달랑 떼어낸 몸뚱이를 대문 위에 올려놓고 사라졌다. 그걸 하필이면 또 내가 발견했고. 피가 있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그 선명하던 노란색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br>그 거부감은 30대까지 이어졌다. 삶에 치를 떨던 시절, 길고양이들을 볼 때마다 녀석들의 눈은 나를 기겁하게 했다. 묘한 색깔을 바탕으로 해서 세로로 쭉 그어진 검은 동공. 그 눈과 마주치면 마치 내 안의 모든 것들이 낱낱이 드러나는 느낌을 받곤 했다.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진 알겠지만, 하필 왜 고양이의 눈을 통해서였는진 지금도 모르겠다. 우주의 갈라진 틈을 떠올렸던 걸까?<br>고양이에 대한 이미지가 변한 건 30대 후반부터다. 사회적으로 길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했고, 무엇보다 내 태도가 고양이의 그것과 많이 닮아있었다. 경계하고 거리를 두고 영역이 있지만, 마음을 열면 한없이 마음을 쓴다. 고양이를 기를까 생각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실천에 옮기진 못했다. 펫샵에서 사들일 생각을 할 정도로 당시 내 인식은 아주 구식이었다. 오히려 다행이었지 뭐.<br>지금은 고양이와 함께 산다. 무슨 이유인지 코로나가 한창일 때 생후 2개월의 나이에 버려진 품종묘. 버려졌다는 걸 제외하면 나머지는 추정이다. SNS를 통해, 지자체가 만들어놓은 정식 루트를 통해 주인을 찾아보려 했지만 실패했고, 결국 내게 입양됐다. 입양 첫날, 밥솥 뒤에 숨은 걸 찾지 못해서 30분을 넘게 집안을 뒤졌을 정도로 조그맣던 녀석. 에잇, 내다 버린 사람이 있다면 넘어지면서 개똥에 코나 박아 버려라!<br>아직도 여전히, 고양이의 눈은 내게 신비롭다. 우주가 담겨있고, 누군가의 양심이며, 날카로운 관찰자다. 내 마음속의 고양이다. 무겁고, 무섭고, 무시무시하게 균형 잡힌 존재. 하지만 내 곁엔 현실의 고양이도 있다. 가볍고, 가소롭고, 가당치 않게 자신감 넘치는 존재. 이 아이는 나만을 담고, 나를 비추는 거울이며, 나만 바라본다. 역시 존재란 그 무게감을 예측하는 게 너무 어렵다.<br><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무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73515</link><pubDate>Wed, 13 May 2026 09: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73515</guid><description><![CDATA[뉴스를 봤다. 행복이 비극으로 전환되는 순간. 알 수 없는 그 찰나의 순간이 이후 도래할 모든 시간을 뒤덮는다는 게... 하아. 떠난 자도 안타깝지만 남은 자들은 어찌해야 하나? 어떤 위로도 소용없고, 시간이 허용하는 한 그 순간을 돌이키며 피눈물을 삼킬 텐데. 삶이 이렇게 잔인해도 되는 건가?<br><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영조의 관점과 정조의 정치 - [민음 한국사 : 18세기, 왕의 귀환 - 조선 4]</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71608</link><pubDate>Tue, 12 May 2026 08: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7160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062539318&TPaperId=1727160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763/75/coveroff/e06253931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062539318&TPaperId=1727160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민음 한국사 : 18세기, 왕의 귀환 - 조선 4</a><br/>김백철 외 지음, 강응천.문사철 엮음 / 민음사 / 2022년 01월<br/></td></tr></table><br/>이 시리즈의 장점 중 하나는 동시대의 서양사를 짧게나마 정리해 준다는 점이다. 내가 요약해도 되겠지만 본문을 인용함으로써 18세기 세계의 흐름을 살펴보자.<br>=== 모든 인간이 자기 삶의 주인이라는 인식은 신의 이름 아래 굴종을 강요당하던 시민계급에게 모욕감을 안겨 주었고, 이는 프랑스대혁명으로 폭발했다. 시민계급을 포함한 대중은 절대왕정에서 사제와 귀족에 이은 제3신분으로 불렸다. 이 미천한 제3신분은 시에예스의 다음과 같은 부르짖음과 함께 카페에서 거리로 뛰쳐나갔다. “제3신분은 무엇인가? 전부이다. 제3신분은 지금의 정치 질서에서 무엇인가? 아무것도 아니다. 제3신분은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 무언가가 되고자 한다!” (본문 중) ===<br>=== 서유럽이 상업적 이윤을 좇아 아시아 대륙 곳곳을 식민지로 삼아 나가는 역사적 과정을 ‘서세동점’이라 한다. 18세기에 밝게 빛나고 있던 서유럽의 뒤안길에는 노예무역과 서세동점이라는 어둡고 처참한 아비규환이 있었다. 이제 지구상에서 서유럽의 발길에 유린되지 않은 지역은 오스만튀르크제국이 버틴 이슬람 세계와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세계뿐이었다. (본문 중) ===<br>=== 앞뒤 맥락 없이 18세기만 놓고 보면 국력의 크기나 문화의 성숙도에서 동아시아는 서유럽을 능가한다. 그러나 19세기에 서유럽은 시민사회와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완성하고 절정의 문학예술을 꽃피우며 전 세계의 지배자로 우뚝 선 반면, 동아시아는 이전 세기에 세계의 다른 지역이 겪었던 식민지의 길을 더 비참한 모습으로 답습한다. (본문 중) ===<br>마지막 인용은 질문이기도 하다. 조선은 왜 영조와 정조에 이르는 76년간의 개혁과 발전을 뒤로 한 채 비참하게 무너져 내렸을까?<br>책의 제목이 ‘왕의 귀환’이기도 하니, 우선 영조부터 살펴보자. 역사책이나 드라마를 통해 흔히 접하는 부분은 조선 역대 왕 중 가장 긴 재위 기간(52년), 탕평책, 균역법, 사도세자(영조의 아들) 등이다. 극적인 요소가 가장 두드러지는 게 사도세자 관련 문제겠지만 공교롭게도 영조의 정치적인 면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들이 현재의 정국을 헤쳐 나갈 만한 능력이 없다는 판단, 살려두었다간 분쟁의 씨앗이 되어 세손마저 위험하게 될 것이라는 판단, 어떤 행위를 했을 때 특정 분파의 이익에 기여할 수 있다는 판단. 이런 정치적 판단을 근거로 영조는 사도세자를 폐세자시킨 후 뒤주 속에 그냥 방치한다. 그가 자신의 위치를 얼마나 처절하게 파악하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균역법 시행 과정을 통해서 다른 면모를 살피는 것도 가능하다. 균역법은 17세기 대동법에 이어 세제 개혁을 끌어낸 주요 정책 중 하나다. 대동법 시행이 만만치 않았던 것처럼 균역법 역시 그랬다. 이해당사자인 양반이 개혁의 주체이자 대상이었던데다 중앙 재정에 막대한 지분을 가진 분야였기 때문이다. 개혁에 대한 필요성은 조선 전체가 공감했지만, 실행 여부가 난관을 거듭하자 영조는 독단적인 결단을 내린다. 양민(평민)들의 세 부담을 절반으로 줄인 후, 자신은 대개혁의 방향을 결정짓는 역할이고 그에 따라 해법을 모색하는 것은 탕평 관료의 몫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니까, ‘일 제대로 안 해? 너희만 세금 안 내겠다고 버티면 왕이고 양반이고 나발이고 다 죽는 거야!’라고 협박한 셈이다. 그 결과, 균역법이 시행되고 양반들도 세금 체계 안에 포함된다. 당시 왕권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영조란 인물이 관료들에게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졌는지를 보여주는 일면이다. 물론 독재자의 측면이 엿보이기도 하지만,<br>=== “백성을 위해 군주가 있는 것이지, 군주를 위해 백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 백성을 구제하지 못한다면 임금의 자리에 있어도 독부(獨夫)에 지나지 않는다.” (본문 중) ===<br>다행히 영조는 깨어있는 군주였다. 또한 앞서 보았지만, 말만 앞서는 군주도 아니었다. 그는 개천 바닥을 파내는 준설 작업과 주변 정비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이면서 도시 빈민들의 삶을 보살폈고, 상업 발달의 흐름을 알아채고 상인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고자 노력했다. 붕당을 억제하고 백성을 바라본 52년의 긴 재위 기간. 그것은 조선으로선 커다란 행운이었다.<br>그리고 1776년, 숱한 시련을 극복하고 드디어 정조가 왕위에 오른다.<br>=== 반면 일체의 사정을 배제하고 공의에 준거하고자 했던 정조는 의리론을 둘러싸고 각 정파의 대립과 갈등이 표출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때로는 그러한 대립과 갈등을 유도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서 공론 대결에 의해 합의에 이르는 과정을 중시한 것이다. (본문 중) ===<br>정조는 영조와 결이 다른 왕이었다.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은 같다. 규장각을 세워 젊은 학자들을 관료로 키워내고, 장용영을 만들어 무예가 뛰어난 군관들을 배출했다. 그들이 문무 관료로 자리 잡으면서 정조는 자연스럽게 정국을 장악했다. 그 장악력을 바탕으로 정조의 탕평책은 훨씬 범위가 넓어졌다. 다시 말해 사용할 수 있는 인재의 범위가 풍부해졌다. 문장으론 몇 문장에 불과하지만, 여전히 붕당이 대립하던 시기에 상당한 정치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런 일들을 정조는 재위 기간에 꾸준히 해 나간다. 최근 10여 년 우리 정치에 부족했던 점들, 즉 갈등과 충돌을 조절하지 못하고 오히려 분열을 조장한다는 것과 사람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것. 이 두 가지를 정조는 해냈다. 그것도 억압이나 권력이 아닌 정치력으로. 다른 어떤 실질적인 업적보다 정조를 돋보이게 하는 부분일 것이다.<br>이쯤에서 왕을 떠나 당시 사회 분위기를 살짝 요약해 보겠다. 책의 문장을 조금 바꿔본다면, 18세기 조선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청을 등한시하던 당대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북학’이란 이름으로 청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흐름이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천주교 신자가 증가하는 것도 이때부터다. 처음엔 교리 연구 중심이었지만 최초의 세례자가 나왔고, 양반에서 하층 계급까지 영향력이 확산한다. 상공업의 발달로 17세기부터 진행되었던 신분의 분화는 그 양상이 더욱 다양해지는 중이었다. 과거엔 양반들의 전유물이었던 문학 활동에 중인과 하층 계급까지 참여함으로써 신분 상승 욕구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광대들 역시 궁중이나 높으신 분들 앞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그들은 장터로, 바다로, 농경지로 민간의 수요가 있는 곳을 찾아 움직였으며 독자적인 영리활동을 시작했다. 이처럼 조선은 위로부터 아래까지 꿈틀대며 요동치고 있었다.<br>그렇다면 처음에 했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조선은 왜 18세기의 흐름을 살리지 못하고 다가오는 세기에 그토록 무너져 내렸을까?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정조의 죽음 때문. 정조가 죽고 즉위한 순조의 나이는 11살.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신료들을 장악하면서 정국을 이끌어가던 영조, 정조와 달리 순조는 그럴 만한 나이가 아니었다. 대리청정이 이루어졌으나 곧 권력 싸움으로 변했고 세도 정치의 시대로 넘어간다. 왕권을 강화했던 모든 조치가 되돌려졌고, 탕평은 무너졌으며, 인재들도 쫓겨났다. 개혁은 그렇게 무너졌다. 이런 이유로 ‘정조가 더 오래 살았다면?’ 이란 가정이 꾸준히 등장하는 것일 테다. 다른 이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서유럽과 미국이 19세기에 강자로 등장한 원인 중 하나는 과학 기술을 산업화에 적극적으로 적용했다는 데 있다. 하지만 조선은 달랐다. 정조는 기술을 우대했지만 어디까지나 통치 기반을 강화하는 수단으로서 접근했다. 이 방향성의 차이가 두 세계의 극명한 차이를 만들어냈다.<br>=== 정조가 가다가 멈춘 지점, 정조가 자신의 한계를 드러낸 지점에서 조선은 급속히 쇠락의 징후를 드러냈다. (본문 중) ===<br>영조와 정조는 분명 뛰어난 군주였다. 그들의 업적 뒤에는 시대와 변화를 읽어낸 두 왕의 날카로운 안목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조선이란 공간은 여전히 주자학의 공간이었다. 이질적인 것들이 자생적으로 꿈틀거리고, 외부에서도 억지로 밀고 들어왔지만 아직은 역부족이었던 시대. 조선 후기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영‧정조는 그와 같은 시대의 흐름을 간파했지만, 단 한 발짝도 앞서 나가지 못했다. 그들이 부족해서가 아닌, 그것이 인간이 갖는 한계이므로.<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763/75/cover150/e06253931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7637520</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인절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69684</link><pubDate>Mon, 11 May 2026 08: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69684</guid><description><![CDATA[해가 없다. 예전엔 안 그랬었는데 언젠가부터 햇볕이 없는 날엔 우울해진다. 20대엔 이런 날씨를 오히려 좋아했다. 난 어둠의 아이야. 그런 낯간지러운 생각도 했던 거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객기 같아서 픽 웃게 하지만, 그 객기 또한 현재의 나를 있게 한 일부분이라 무시할 수만은 없다. 이런 날은 나만 우울한 게 아니다. 햇볕을 좋아하는 고양이 역시 축 늘어지기 일쑤다. 괜히 힘이 없고 오갈 데 없어 보인다. 흑임자 인절미처럼 바닥에 촤악 퍼져 있다. 맹수라며 객기를 부리던 녀석인데 이럴 때 보면 하찮기 그지없다. 녀석이 흑임자 인절미라면 나는 뭐가 되면 좋을까? 그런데 하필 그 타이밍에 고양이의 하얀 각질이 눈에 들어온다. 건조해서 올라온, 검은 털 위에 하얀 가루 같은. 불현듯 떠오르는 한 가지. 콩고물. 인절미엔 콩고물이지. 고양이가 인절미면 집사는 콩고물이지.<br>...갑자기 더 우울해지는 건 왜일까?<br><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시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64137</link><pubDate>Fri, 08 May 2026 08: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64137</guid><description><![CDATA[가장 좋아하는 누나는 나보다 스무 살이 많다. 남편이 벌어온 돈으로 자식들 키우고 예금이나 적금이 유일한 투자 수단이었으며 느지막하게 자기 집을 마련해 삶을 꾸려왔다. 알뜰하게 아끼고 필요한 것만 지출하면서 허리띠 졸라매며 살아온 세대다. 그 자식들은 이제 40대. 모두 가정을 꾸렸지만, 삶의 방식은 완연히 다르다. 예·적금 보단 주식을 투자 수단으로 이용하고, 인터넷을 통해 최저가를 검색해 구매하지만 쓸 건 쓰면서 사는 세대다. 그래서 가끔 충돌이 생길 때가 있다. 누나는 롤러코스터 같은 주식의 아찔함을, 쓰면서 살겠다는 소비의 쾌감을 이해하지 못한다.<br>오늘따라 산길에 파리가 많이 꼬이네. 손을 휘휘 휘저으며 다시 상념에 빠져든다. 2~30대는 또 다른 듯하다. 주식, 코인, 경매 같은 부동산 시장까지. 투자에 대해선 훨씬 적극적이다. 소비 역시 그렇다. 누나의 관점에서 본다면, 자신들은 벌이에 맞춰 삶을 꾸렸지만 요즘 세대들은 소비에 맞춰 벌이를 추구하는 양상처럼 보일 것이다. 일반화시키는 건 아니다. 예전에 비해 요즘 세대의 다양성은 확실히 풍부해 보이긴 하니까. 맞고 틀리고 그런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흐름이라 생각한다. 소비의 시대. 재테크의 시대.<br>정상에 도착했는데 고양이들이 없다. 비가 올 거 같아서 일찍 나왔더니 때를 잘못 맞춘 모양이다. 쯧. 언젠가부터 실질 수익률, 실효 수익률이란 표현이 등장했다. (같은 뜻인가?) 단순히 돈을 버는 게 문제가 아니라 물가 상승을 고려해서 벌어야 한단다. 이러면 예·적금은 투자가 아니라 소극적이고 때론 멍청한 돈 관리법이 된다. 다른 사람은 주식으로 돈을 버는데 나는 예·적금이나 하고 있어도 되는 걸까? 누군가는 코인으로 수억씩 챙겼는데 나는 주식으로 몇백 버는 게 제대로 하는 걸까? 시선은 언제나 외부로 향한다. 그저 모으고 버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나보다 더 버는 사람이 있다면 기준은 득달같이 그쪽으로 달려간다. 더 스마트해야, 더 잘해야 하는 세상.<br>내려오는 길, 발을 내딛다가 시커먼 무언가 꾸물거려서 얼른 옆으로 움직인다. 죽은 벌레에 개미들이 들러붙어 있다. 그들의 움직임을 한참 바라보다 걸음을 뗀다. 요즘 주식 시장을 AI 버블이라 한다. 좀 특이하긴 하다. 다른 때 같으면 버블의 경계선을 저만치 앞에 두고 사람들이 움직이지만, 지금은 경계선 바로 위에 서서 그 경계선을 계속 밀어 올리는 것처럼 보인다. 경계선이 갑자기 뒤로 밀리면 그 위에 서 있던 사람들은 속절없이 밑으로 떨어질 거고, 뒤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미리 겁에 질려 얼른 도망을 치겠지. 그런데 내 생각엔 기술의 버블이 아니라 욕망의 버블이다. 기술은 시대에 맞춰 제 갈 길 가지만 욕망은 시대를 앞서려 한다. 그게 가능할까?<br>날이 점점 어두워진다. 집에서 나왔을 땐 햇살이 미약하나마 있었는데 지금은 먹구름에 다 가렸다. 비가 내리기 전에 집에 들어갔으면 좋겠는데. 주식 시장은 공인된 도박장이다. 오른다, 떨어진다, 멈춘다. 단순화하면 이 세 가지에 거는 도박. 예측? 웃기는 소리다. 판도라의 상자 안에 희망이 있었다면, 주식 시장의 판도라 상자 안엔 예측이 있었을 거다. 도박이 위험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빚을 내서 도박을 한다고 하면 다들 말릴 것이다. 그런데 빚을 내서 주식을 하는 세상이다. 외부로 향한 시선은 항상 비교 대상을 찾기 마련이고 주식으로 돈 버는 사람은 항상 있으니까.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주식 시장이 활화산처럼 터져도 판단과 선택은 사람의 몫이다. 내 몫이다. 하지만 시선을 안으로 돌리지 않으면, 그 판단과 선택은 자신을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닐 테고 그에 따른 책임은 삶을 피 말리게 할 수도 있다. 더 비참한 건 그 책임마저 외부로 돌리게 될 거란 사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모지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62052</link><pubDate>Thu, 07 May 2026 08: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62052</guid><description><![CDATA[오늘도 산이다. 어린이날인데 산에는 어린이가 없다. (어린이날에 썼던 글이다) 어린이날과 산은 딱히 인과관계가 없는 모양이다. 지난 설 연휴 때 무심코 산에 올랐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이미 산 아래서 위를 올려다봤을 때부터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았다. 산에서 정체가 생길 줄이야! 그래서 오늘은 아예 4시 반쯤 늦게 나왔다. 그래도, 많긴 하네. 그때만큼은 아니지만.<br>정상에 오르자 신기한 풍경이 펼쳐진다. 정상까지 이어진 한양도성 옆으로 그늘이 졌는데 그 안에 사람들이 쭉 앉아 있었다. 기차놀이인가? 그곳뿐만 아니라 정상 이곳저곳에 사람들은 많았다. 다양한 연령대에 외국인까지. 어린이는 없구나. 해발 300m 이상에선 어린이날은 없는 걸로. 그리고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고양이 한 마리가 동그마니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br>저, 저, 저 바보 자슥. 사람이 이렇게 많을 땐 나오지 말고 숨어 있어야지. 삼색이는 현명하게 코빼기도 안 보이는데. 넌 가서 삼색이한테 더 배우고 와야겠다.<br>놀라우리만치 정상의 아무도 고양이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다들 웃으며 사진 찍기에 바쁘거나 그늘에 앉아서 얘기를 나눈다. 아, 이번 고양이는 젖소냥이다. 흰 바탕에 검은 얼룩. 녀석도 무관심에 놀랐는지 어리둥절. 저기만 다른 차원인가? 아님 자기애의 끝판왕들이 이곳에 모인 건가?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다른 애들은 멍충미에 귀요미까지 갖추었는데, 너는 그냥 멍청... 흠. 아니다, 아니야. 고양이면 된 거지 뭐. 슬쩍 가서 닭가슴살 하나를 바위에 놔줬더니 얼른 입으로 문다. 하지만 도저히 그 자리에선 먹을 자신은 없었는지 먹이를 물고 수풀 속으로 달아난다. 그제야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진다. 저 녀석, 보호색인 건가? 먹고 다시 나오면 하나를 더 줄까 해서 기다렸는데 소식이 없다. 닭가슴살 하나에 모든 배짱이 사라졌나 보다. 이틀 후에 보자. 잘 지내야 한다. 나 역시 정상에서 도망친다. 어린이날인데 어린이는 왜 없는 거야?<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중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60091</link><pubDate>Wed, 06 May 2026 09: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60091</guid><description><![CDATA[얼마 전 지인을 만났을 때 자기 조카 얘기를 하면서 투덜댔다. 어린이집에서 선생님이나 다른 아이들이 무슨 말을 하면 그 상황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하는데 그저 큰소리로 자기 할 말만 했단다. 교사한테 집으로 전화가 와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단 소리를 들은 모양이다. 지인의 불만은 아이에 대한 것도 있지만 그 부모, 그러니까 동생 부부에 대한 게 더 컸다.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질 못하고 끌려만 다닌다고. 생각해 보니 내 조카 중 남자애도 그 비슷한 행동을 보인 적이 있었다. 어린이집에 갔는데 선생님께 다짜고짜 반말을 투척했지 아마. 이랬던 녀석이 지금은 아빠가 되어 있는 걸 보면 참 시간이란 신비하고 오묘하다.<br>시간 자체의 힘만은 아닐 것이다. 그 사이사이에 녹아든 교육과 의지가 아니었다면 아빠나 애나 별반 다를 게 없겠지.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나에겐 교육에 실패한 사례가 하나 있다. 일단 어렸을 때 내 무지로 인해 사회화 교육에 실패했다. 그리고 새벽에 나를 깨울 때마다 강력한 의지로 죽은 척을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새벽마다 두 번씩 간식을 바치게 됐다. 그 결과, 이 집의 핵심은 내가 아닌 녀석이 됐다. 오늘도 녀석은 외친다. 세상의 중심에서. 냐옹을. 냐아~웅.<br><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비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56488</link><pubDate>Mon, 04 May 2026 09: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56488</guid><description><![CDATA[지킬과 하이드처럼 글을 분리해서 쓴 적이 있었다. 이 글은 지킬이, 저 글은 하이드가. 완연히 달랐다. 지킬이 쓴 글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지만,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하이드가 쓴 글은 오로지 한 방향, 분노와 공포와 불안을 향해 내달렸다. 그때도 알았다. 둘 다 나임을. 하지만 현실에서 날뛰는 하이드를 마주한 뒤 난 내가 무서웠다. 받아들여야 했지만 당장은 그러지 못했고, 그래서 글에서나마 둘을 분리했다. 제대로 된 대처였는진 지금도 모르겠다. 다만 그 글들은 분출구의 역할을 했고, 나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돌아보게끔 했다. 그렇다고 외부의 문제를 해결하진 못했다. 그저 나를 추슬렀을 뿐.<br>손을 씻다 옆에 놓인 빨랫비누가 눈에 들어왔다. 기존에 쓰던 비누가 너무 작아져서 역할을 못 하면 새 비누를 꺼내고, 자그마한 조각들을 새 비누와 함께 사용하면 그 둘이 달라붙는다. 모두가 다 붙진 않는다. 어떤 것들은 붙어서 하나처럼 되고, 어떤 것들은 붙지 못하고 더 작게 바스러진다. 지킬과 하이드를 분리했던 이후의 삶이 새로운 삶은 아니겠으나, 그 이전의 흔적이 그 이후의 삶에 들러붙은 건 분명하다. 저 비누처럼. 나를 정의하고 나를 표현하고. 그렇다면 내게 들러붙지 못하고 떨궈진 무언가도 있을 법한데, 그게 무언지 아직 모르겠다. 떨어져 나간 것,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선택에 따라 버려진 것. 그 공백 또한 나를 정의하는 것이라면. 난, 모르겠다. 내가 누군지.]]></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소나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51912</link><pubDate>Fri, 01 May 2026 09: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51912</guid><description><![CDATA[오늘도 산이다. 지난주에 오르고 이번 주는 처음이지만 날짜로는 사흘밖에 안 지났다(월요일에 썼던 글이다). 그런데 상황이 완전 다르다. 푸르름의 밀도가 어마무지하다. 식물들이 조금만 뭉쳐있어도 그 너머가 보이지 않을 정도다. 봄의 생명력은 정말이지 놀랍다. 소나무의 모양새도 달라졌다. 중력을 거스르듯 위쪽으로 꼿꼿이 선 수꽃들이 머리를 잔뜩 쳐들었다. 조만간 이들이 터지면서 꽃가루를 퍼뜨리겠구나.<br><br><br>소나무 수꽃의 생김새 때문에 자연히 이 산 곳곳에 쌓아 올린 조금만 돌탑들이 떠오른다. 한 치 앞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반쯤은 진심으로, 반쯤은 재미로 돌들을 포개놓은 30cm 미만의 수많은 탑을. 산을 짓누르는 그 많은 상념을 소나무가 빨아들여 공기 중으로 날려 보내는 상상도 해본다. 훨훨 날아가라. 날아가서 그 욕망을, 그 바람을 흩뜨려서 세상의 무게를 덜어내라. 그렇게 해서 모두의 어깨가 펴졌으면, 모두가 허리를 곧추세울 수 있으면. 그럼 더 넓게, 더 멀리 바라볼 수 있을 텐데. 아니, 아니다. 이건 애초에 사람 중심 얘기구나. 그냥, 이 산에서 함께 하는 존재들을 위해, 하늘을 우러러 기원한다고 하자. 땅의 기운을 모아, 식물들의 생명력을 모아, 고양이들의 투정을 모아. 그 기원을 세상에 퍼뜨려 세상을 조금이라도 깨끗하게 하는 걸로.<br>내려오는 길. 발밑을 바라보며 걷는데 저만치서 들려오는 소리. 할머니한테 갈래? 고개를 들어보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를 데리고 산책을 나선 듯하다. 아이는 걸을 수 있지만 그래도 자기 다리보단 남의 다리를 이용하는 걸 더 좋아하는 나이로 보인다. 할아버지한테 안겨 있다 할머니의 등으로 옮겨지는 순간. 버둥대던 아이가 헤헤하면서 웃는다. 할아버지 가슴팍보단 할머니의 등판이 더 좋은 건 아이들의 공통된 취향인 거 같다. 이눔 보소, 이눔. 할머니가 투덜대지만, 그 안엔 당신만을 위한 마음 따윈 없다. 보고 싶은 얼굴을 떠올리고 말았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01/pimg_704577144511110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51912</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롱패딩</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48377</link><pubDate>Thu, 30 Apr 2026 10: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48377</guid><description><![CDATA[겨울 빨래가 마무리됐다. 이불, 베갯잇, 패딩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한 주 한 번씩 겨울 빨래들을 욱여넣었더니 이제야 끝. 게으름도 살짝 들어갔었고, 다른 일들도 했고. 밀려 밀려 롱패딩을 마지막 주자로 더 이상의 겨울 빨래는 없다. 롱패딩을 세탁기에 돌릴 때마다 드는 의문. 저게 지금 세탁이 되는 거야, 아님 물놀이를 하고 있는 거야? 그렇다고 저 덩치를 전체 손빨래할 객기는 없는데. 다행히 어두운 계통이라 매년 입고는 다닌다만….<br>내 롱패딩은 쓰임이 하나 더 있다. 겨울에 열심히 일했으니 푹 쉬라고 고이 개어 장롱에 모셔 두는데 쉬질 못한다. 이 상태의 패딩을 푹신하고 따뜻한 방석쯤으로 생각하는 녀석이 있어서. 다른 쉴 곳, 잘 곳 많은데도 장롱문을 열어달라 보채고, 못 이긴 척 열어주면 롱패딩에 몸을 맡긴다. 양복을 제외하면 내 옷 중에 제일 비싼 건데. 빨기도 힘든데. 귀여워서 차마 욕은 못 하겠고, 다 내 죄려니 하고 한쪽 문을 닫아준다.<br>이만치 걸어왔는데 안 따라 나온다. 컴컴하니까 그대로 잘 모양이다. 고양이는... 모르겠다, 흥.<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430/pimg_7045771445109972.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48377</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아닌 밤중에 고양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45452</link><pubDate>Wed, 29 Apr 2026 09: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45452</guid><description><![CDATA[어우, 야 이 씨.<br>새벽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옆에서 자던 고양이가 내 배를 밟고 지나간 탓이다. 4kg의 체중이 온전히 전해지진 않았지만 잠을 깨우기엔 충분하다. 아깽이 때 놀아달라며 자는 나를 암살 시도한 적은 있었지만 다 큰 이후론 처음이다. 아마도 실수겠지. 갑작스러운 내 목소리에 놀랐는지 녀석도 후다닥 달려 나가더니 식탁 의자 밑에서 내 동태를 살핀다. 새벽 2시쯤.<br>얼마 전, 누나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신호등이 없는 건널목이었는데 차에 치였다. 건너기 전 좌우 확인하고 절반 넘게 건넌 상황에서 좌회전 차량이 그대로 들이받은 모양이다. 다행히 뼈가 부러지진 않았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치료가 오래 걸릴 듯하다. 게다가 사고가 난 시점이 오랜만에 일을 해보려고 마음먹고 막 일자리를 구한 때였다. 하지만 사고로 그 일도 어긋나버렸다. 건널목에서 사고라 형사 사건으로 넘어갈 수 있어 담당 형사도 만났고, 상대방 변호사한테 연락도 받았단다.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경험을 하는 중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다.<br>침대에 걸터앉아 고양이를 째려본다. 다른 때 같으면 온몸을 드러내고 나를 쳐다보겠지만, 지금은 의자에 걸쳐놓은 옷자락 아래로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다. 자기가 뭔가 잘못했다는 걸 안다. 나만 조심한다고 해서, 나만 잘한다고 해서 내 삶이 흔들리지 않는 건 아니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고 해서 모든 가지를 쳐낸들, 새들이 와서 나무를 쪼고, 멧돼지가 와서 밑동을 들이받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등을 부딪쳐대는 것을 막을 순 없다. 내가 아무리 침대 위에서 조신하게 잔들, 고양이가 지그시 나를 짓밟는 걸 막을 순 없다.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고양이.<br>일어난 김에 간식이나 줘야겠다.<br>까까 먹자, 까까.<br>ㄲ 발음에 귀가 쫑긋하더니 내 발걸음을 따라 종종종 쫓아온다. 꼬리가 바짝 올라가 있다. 기분 좋단다. 나한텐 날벼락이었는데 이 녀석한텐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 꼴이다. 세상일 참.<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과거, 현재, 미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41048</link><pubDate>Mon, 27 Apr 2026 09: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41048</guid><description><![CDATA[<br><br>국민학교 1학년 때였나? 정확한 건 아닌데 아무튼 10살 되기 전이었다. 프로야구가 출범하고 인기몰이를 하자 구단들은 어린이 회원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내가 원했던 건 MBC청룡. 하지만, 이 구단은 10살 이상이란 나이 제한이 있었다. 아니, 왜? 10살 미만은 어린이가 아니라 애새끼냐? (거친 표현은 죄송. 그 당시 난 화가 무척 많이 났었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가입한 게 OB베어스. (두산 팬들에게 죄송. 꾸벅) OB 점퍼 입고 MBC 응원했던 꼬맹이 시절.<br>누나가 결혼하고 집을 나가자, 그 방은 내 차지가 됐다. 그곳엔 침대도 있었고, 전축도 있었다. 하지만 전축은 그 후로 몇 년 동안 장식품이었다. 난 음악도, 라디오도 듣지 않았었으니까. 그러다 중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였나? 엄마가 나를 데리고 동네 레코드 가게에 가서 음반을 하나 고르라고 했다. 그때 가게 주인분이 추천한 가수는 이문세와 유재하. 내가 고른 건 이문세. 이유는 기억이 안 난다. 엄마는 턴테이블 사용하는 법, 라디오를 듣는 법, LP를 관리하는 법을 가르쳐줬고, 내게 새로운 세상을 하나 추가시켜 주셨다.<br>20대 초중반이었던가? 처음으로 혼자 영화관에 들어가 영화를 본 게. 그 후 난 영화에 푹 빠져 들었다. 장르도 가리지 않았고, 시대도 가리지 않았다. 글이라면, ‘오늘은 참 재미있는 하루였습니다’ 같은 일기에서 멈춘 상태였는데, 영화를 본 후로 감상을 적기 시작했다. 30대에 들어선 DVD를 사 모았다. &lt;카우보이 비밥&gt;은 그 시절 가장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이었고, &lt;가을 소나타&gt;는 내겐 무시무시한 영화였으며, 히치콕의 영화들은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영화였다.<br>미니언즈는, 아니, 미니언즈 미니어처는 편의점 이벤트에 당첨돼서 받은 상품이다. 편의점만 20년 가까이했지 아마.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생각을 했고, 많은 감정 소모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더 단단해졌지만, 한계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br>지금은, LG를 응원하지만, 화가 날 정도로 하진 않는다. 내게 많은 세상을 열어주셨던 분은 서서히 시간에 잠식되어 내가 보호해야 할 대상이 되었고, 이젠 아릿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영화는 예전만큼 보지 않지만, 아직 이렇게 글은 쓴다. 분명 ‘오늘은 보람 있는 하루였다’ 수준은 벗어났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알바를 하러 왔던 아이들은 이제 30대 후반이 됐고, 누군가는 엄마가 돼서 자기 아이의 이름을 내게 알려줬다. 그리고, 고양이. 햇볕을 쬐던 녀석은 뭐가 궁금했는지 갑자기 창 사이로 머리를 들이민다. 벌레라도 본 건가? 이 녀석은 예측불허다.<br>멀리 창밖을 내다본다. 시간이 흐르면 이 풍경들도 바뀌겠지. 미래를 향한 문장은 짧을수록 좋겠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427/pimg_7045771445106972.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41048</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옹</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35671</link><pubDate>Fri, 24 Apr 2026 10: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35671</guid><description><![CDATA[일주일에 한 번,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날. 쓰레기를 버리고 집으로 들어와 마루 한복판에 우뚝 선다. 이런. 주변을 둘러보지만, 없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베란다로 나가서 좌우를 살핀다. 역시, 없다. 안 좋다, 안 좋아. 등줄기로 땀이 한 방울 흘러내린다.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어본다. 마루로 들어와 다시 여기저기를 탐색. 그러다 무언가를 발견한다. 고양이의 네모난 박스형 종이 스크래쳐. 고양이는 그곳에 없다. 한참을 보다 결심한다. 그래, 저거다.<br>=====<br>작년 5월 말이었다.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무척 더웠던 걸로 기억한다. 집에서 짐을 빼야 할 일이 있어서 한 달 가까이 생필품을 제외하곤 물건을 주문하지 않았다. 있던 짐마저 버리는 중이었고. 택배가 오지 않으니 당연히 상자도 생길 일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재활용 쓰레기를 일주일 동안 집안에 모아뒀다가 버려야 하는데 내 경우는 그것들을 상자에 분류해서 담아뒀던 것. 종이상자가 없으니 분류해 둘 곳도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게 고양이 스크래쳐. 박스 모양이라 무언가 담을 수 있었거든. 어차피 이 스크래쳐는 고양이가 잘 쓰지도 않았고.<br>그때의 결핍이 문제였을까? 요즘 베란다 한쪽에 쌓인 종이상자들을 볼 때마다 살짝 당황스럽다. 저렇게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나를 마주하고 있자니 여러 잡생각이 떠오른다.<br>종량제 봉투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 나중에 저 상자에 쓰레기를 담아 버릴까? 안 되겠지?<br>상자를 못 버리는 거 보면 전생에 나, 고양이였을까? 근데 저 녀석은 상자 별로 안 좋아하는데. 저 녀석이 전생에 내 집사였나?<br>쓸데없는 생각 하다 고양이와 눈이 마주치자 괜히 머쓱해진다. 이 녀석, 거의 나를 감시하는 수준이다. 내 생각까지 읽진 못할 거야. 흠. 흠흠.]]></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불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31458</link><pubDate>Wed, 22 Apr 2026 09: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31458</guid><description><![CDATA[냄새다! 날이 더워지면 양쪽 베란다 하수구에서 모락모락 냄새가 피어오른다. 그리고 날벌레! 하루살이보단 조금 탄탄해 보이는 녀석들이 하수도를 통해 슬금슬금 날아오른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 벌레를 노리고 구석에 매복 중인 새까만 녀석. 바로 방구석 호랑이인 우리 집 고양이다. 셋이 하나로 뭉쳐 삼위일체가 되면 양 끝 베란다는 뜻밖의 활력이 넘치는 공간이 된다.<br>후다닥. 빠~안히. 텁. 텁. 구석으로 달려간 고양이가 무언가를 지켜보더니 갑자기 솜방망이로 여기저기 두드린다. 벽, 싱크대 아래쪽, 바닥. 하지만 벌레는 만만찮다. 아니, 만만찮은 게 아니라 고양이가 하찮은 것인지도. 고양이 앞발에 솜방망이란 이름이 괜히 붙었겠나? 간혹 비리비리한 녀석이 솜방망이 질에 얻어맞아 추락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고양이는 냅다 코부터 들이민다. 사냥감의 냄새를 맡으려는 속셈이다. 하지만 그 순간 벌레는 갑자기 사라진다. 두리번거리는 고양이. 사라진 사냥감에 당황한 고양이는 얼른 구석으로 뛰어가 다시 경계 태세를 갖춘다. 불안하지만 날카로운 눈빛. 벌레가 다시 나타난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의지가 온몸에서 뿜어져 나온다.<br>저만치서 지켜보던 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 녀석의 얼굴을 살핀다. 역시나. 날벌레는 녀석의 촉촉한 코에 붙어있다. 잡긴 잡았다.<br>하, 이 녀석 이거 어떡하지. 진짜.]]></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보고 읽은 것들</category><title>요즘 읽고 보는 것들_1</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29727</link><pubDate>Tue, 21 Apr 2026 11: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2972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K99243449&TPaperId=1722972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507/11/coveroff/ek9924344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252635812&TPaperId=1722972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251/80/coveroff/e25263581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lt;첫번째 거짓말이 중요하다&gt; 알라딘과 함께 밀리의 서재도 이용 중인데 밀리의 서재 책장에 담아놓은 책 중 하나였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쌓이기 전에 하나씩 해결할 생각이다. 알라딘에서 읽고 싶은 책으로 저장해둔 건…. 음, 생각하지 말자. 어쨌든 이 책은, 책 소개에 따르면, 반전이 가득한 서스펜스의 정석이란다. 재미는 있더라. 다 읽고 든 생각은, 미션임파서블의 미니멀한 버전 같달까.<br><br> &lt;악의 : 죽은 자의 일기&gt; 정해연 작가의 초기작. 질질 끌지 않고 속도감이 있어서 술술 읽히는 건 여전하다. 다만 베테랑 형사의 선택이 이해가 가지 않는 터라 그 이후부턴 흥미가 조금 떨어졌다. 그리고 소설에서 사회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너무 직접 설명하려 드는 건 다소 부담스럽다. 예전엔 안 그랬었는데. 이것도 나이 들어 그런 건가?<br>'말세의 제한선이 매일같이 무너지고 있다는 거야. 주식으로 말하자면 매일같이 상한가를 치는 거지. 사람들은 그 말세 속에서 끊임없이 약해지거나 혹은 악해져.'- 본문 인용<br>딱 여기까지만 했었어야 했다.<br><br>&lt;바람의 검심&gt; 대학교 다닐 때 만화방에서 다 읽었었는데. 요즘 보는 건 23년도에 만들어져 방영된 TV 애니메이션이다. 1기, 2기가 완성됐고 3기가 제작 예정인 모양이다. 우선 1기만 다 봤는데 두 가지 부작용 때문에 고생 중이다. 우선, 실사 영화를 꽤 인상적으로 봤다는 거. 그래서 원작 만화의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자꾸 실사 캐릭터가 겹쳐 떠올라 당혹스러웠다. 그리고 역시... 너무 낯간지러워. 설명을 너무 대놓고 자세히 해서. 아, 이건 확실히 나이 탓인 듯.]]></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251/80/cover150/e25263581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2518009</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불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27547</link><pubDate>Mon, 20 Apr 2026 09: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27547</guid><description><![CDATA[냄새다. 날이 더워지면 베란다 하수구에서 냄새가 올라온다. 스멀스멀. 리모델링해도, 페인트칠해도 저 깊고 어두운 곳은 미치지 못한다. 락스를 부어도, 방향제를 두어도 소용없다. 덮개로 막을 수도 없다. 그러기엔 구조가 애매하다.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뻔히 아는데도 두 손을 놓는다.<br>베란다에 작은 크기의 캣타워를 뒀다. 고양이와 함께 창밖을 물끄러미 내다본다. 그러다 갑자기, 슬며시 냄새가 피어오른다. 야금야금. 캣타워에 있던 고양이가 느닷없이 고개를 뒤로 휙 돌린다. 내가 듣지 못하는 소리를 고양이는 듣는다. 나도 뒤를 돌아본다. 달라진 건 없다. 아니, 달라진 건... 몸을 돌려 마루로 들어간다. 캣타워 상층에 있던 고양이가 후다닥 뛰어내려 가장 아래 숨숨집으로 쏙 들어간다. 어둠 속에서 까만 고양이의 눈만 빛난다. 그 눈을 지켜보다 시선을 돌려 마루 전체를 조망한다. 그러다 고개를 옆으로 아주 살짝 기울인다.<br>===============================================<br>20년도 더 된, 오래전에 내가 쓴 글들을 다시 읽어보는 중이다. 나에 대한 두려움, 무너짐에 대한 두려움으로 꽉 차 있던 시절. 위태롭게 경계에 서서 어떻게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느껴지는 글들. 예전의 날 것 그대로의 감정들을 이젠 자연스럽게 글로 옮기지 못할 거 같다. 문장에서 불안과 두려움을 뚝뚝 떨구던 힘이 지금 내게는 없다. 지금 나는 그 시절을 거쳐 다른 글을 쓰고 있으니까. 그립거나 부럽지는 않다. 다만, 어느 덧 여기까지 왔구나, 라는 생각에 뭐라 표현하기 힘든 감정일 뿐. 어쨌든 지금 내가 쓰는 글은 딱 저 위의 글 느낌 정도.]]></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가풍</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22119</link><pubDate>Fri, 17 Apr 2026 10: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22119</guid><description><![CDATA[우리집엔 유별난 가풍이 하나 있다. 과보호. 어머니가 누나와 나를 그렇게 키웠다. 그 부작용은 한동안 온 집안을 뒤흔들었다. 우리 집에서 어렸을 때부터 지냈던 사촌 누나가 있다. 어머니한테 보고 배웠는지 나중에 자식들을 그렇게 키웠다. 그 부작용이 지금 사촌 누나의 집안을 흔드는 중이다. 우리 누나? 아이들이 어릴 때, 부작용에 휩쓸리던 중이라 과보호고 뭐고 없었다. 나? 결혼을 안 했다. 그런데...<br>이 좋은 참치 등살을 안 먹는다 이거지?<br>덩어리로 포장된 참치 등살을 가위로 자잘하게, 거의 가루처럼 자른다. 아니, 이 정도면 가위로 으깬다고 해야겠다. 우리 집 고양이는 어찌 된 영문인지 덩어리가 큰 음식은 먹질 않는다. 유난히 깔끔한 체하는 녀석이라 혀로 핥아서 딸려 오는 것들만 먹는다. 입 주변에 될 수 있으면 무언가를 묻히지 않겠다는 의지다. 그래서 가위로 참치 등살을 갈아버리는 중이다. 어디 그뿐인가? 혀로 간식 그릇을 핥다 보면 점점 한 방향으로 음식물이 쏠린다. 그럴 때마다 옆에서 그릇을 돌려준다.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가풍이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417/pimg_7045771445096883.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22119</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깜냥</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20024</link><pubDate>Thu, 16 Apr 2026 09: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20024</guid><description><![CDATA[룰루랄라. 운동할 겸 산에 간다. 하나둘 하나둘....헉헉. 씩씩. 이상하게 밖에만 나오면 걸음이 빨라진다. 앞선 사람들을 다 제치면서 산에 오른다. 누가 먼저 가나 시합하는 것도 아닌데.<br>드디어 꼭대기. 이곳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리고 고양이 세 마리가 있다. 한 살 남짓 된 녀석들. 등산객들에게 삥을 뜯으며 호랑이 행세 중이다. 나 역시 즐거운 마음으로 갈 때마다 삥을 뜯긴다. 그래, 길에서 태어났으면 이 정도 배포는 있어야 하는 거다. 산꼭대기에서 산신령 놀음 정도는 해 줘야지. 닭가슴살을 바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하산.<br><br><br>드디어 집. 이곳엔 내가 산다.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다섯 살쯤 된 녀석. 내게 삥을 뜯으며 방구석 호랑이 흉내를 낸다. 그래, 집에서 살 거면 이 정도 착각은 해야 하는 거다. 집구석에서 벌레 정도는 잡아줘야지. 간식을 마치고 즐거운 마음으로 앞담화를 나눈다.<br>고양이, 넌 벌레를 언제쯤 제대로 잡을 거냐?(멀뚱)... 그래, 그래, 벌레한테만 안 잡히면 되지 뭐.]]></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416/pimg_7045771445095632.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20024</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잊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16217</link><pubDate>Tue, 14 Apr 2026 14: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16217</guid><description><![CDATA[현재 기온이 26도라고? 바깥 기온을 살피다 깜짝 놀란다. 하지만 아는 것과 경험하는 것은 다르다. 산에 오르기 위해 밖에 나섰다가 내리쬐는 햇볕에 화들짝 놀란다. 어깨부터 등판까지 뜨뜻한 게 영락없는 여름 햇볕이다. 5월도 아니고 4월 중순에 이 무슨. 봄인데. 아직 나뭇잎들도 다 나지 않은 봄인데. 무엇인가 봄을, 계절을 잊은 듯하다.<br>산에 오르면 괜찮겠지. 사방이 뻥 뚫린 곳에 가면 바람이 땀과 열기를 식혀 줄 거야. 정상에 가기 전 그런 장소가 한 군데 있다. 겨울엔 모자를 손으로 누르고 지나가야 할 정도로 바람이 위세를 떨치는 곳. 오르고 올라 도달했건만 손은 갈 곳을 잃는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항상, 당연히 불어올 거라 여겼던 바람인데. 부는걸, 잊었다.<br>정상을 찍고 내려온다. 그곳에서도 바람은 보지 못했다. 정상 바로 아래쪽 내려가는 길목에 사람들이 조그만 돌탑들을 쌓아놓았다. 무엇을 소원했을까? 무엇을 바랐을까? 정월대보름이나 추석에 달을 향해 쏘아 올린 수많은 소원으론 부족했던 모양이다. 너무 시끄러운 나머지 달에서 방아 찧던 토끼가 도망갔다고 하던데. 이 산의 호랑이는 이 돌탑 때문에 시끄러워 사라진 것일지도. 그래서 호랑이도 잊혔다. 지금은 고양이 뿐. 돌탑을 쌓은 사람들은 그것에 갈무리한 소원을 잊지 않았을까?<br><br><br>토끼와 호랑이로 흘러가는 생각에 넋을 놓다가 정신을 차려본다. 어느새 산 중턱, 도로가 있는 곳이다. 벌써 여기까지 내려왔다고? 자주 가는 길이라 그런지 거의 무의식에 가까운 상태로 하산했다. 미쳤구나, 미쳤어. 뒤를 돌아보니 내가 내려온 계단이 저만치 위까지 이어지다 나무들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문득 궁금해진다. 난, 뭘 잊었을까?<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414/pimg_7045771445093403.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16217</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바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12297</link><pubDate>Sun, 12 Apr 2026 18: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12297</guid><description><![CDATA[벚꽃잎이 흩날린다. 비가 내리기도 했고, 예년보다 벚꽃 개화 시기가 일주일 정도 빨랐던 터라 서서히 꽃이 질 때도 됐다. 벚꽃은 꽃이 피어있을 때도 예쁘지만, 질 때는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매년 피고 지지만, 매년 똑같지만, 사람들은 그 반복을 즐거운 마음으로 반긴다.<br>집에 들어와 청소를 한다. 10년 넘게 쓴 진공청소기는 나이 먹었다고 큰 소리로 어찌나 유세를 떠는지 일 안 시킨 지 오래다. 그래서 선택한 건 돌돌이. 다른 집에선 보통 옷이나 천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떼어내는 데 쓴다. 하지만 우리 집에선 밀대에 연결해 바닥을 밀고 다닌다. 그런데 문제는 고양이. 청소할 때 가만히 있어 주면 좋겠는데 이 녀석 사방팔방 뛰어다닌다. 놀이라 생각하는 모양. 결과는? 돌돌이로 밀고 지나간 자리에 바로 고양이 털 투척. 이 짓거리를 매일 반복한다. 문득 궁금해진다. 매년 피는 꽃과 매일 반복하는 짓거리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br>뭐, 어쨌든, 난 매일 바보 같은 짓을 반복한다.<br>이눔의 자슥, 거기 가만히 안 서냐!(우다다 우다다)말을 들으면 고양이가 아니지….<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그래, 그래, 그런 거였어. - [오페라의 유령 (한글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08548</link><pubDate>Fri, 10 Apr 2026 15: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0854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932435144&TPaperId=1720854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78/64/coveroff/e93243514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932435144&TPaperId=1720854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오페라의 유령 (한글판)</a><br/>가스통 르루 지음, 베스트트랜스 옮김 / 더클래식 / 2013년 06월<br/></td></tr></table><br/>책을 읽을 때 큰 기대를 하며 첫 표지를 넘기지는 않는다. 좋아하는 작가의 글일 때 어떤 설렘 같은 건 있지만 딱 거기까지만이다. 그런데 간혹 나도 모르게 큰 기대를 품고 책을 읽기 시작할 때가 있다. 지금 이 책이 그랬다. 작가나 소설 자체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었다. 단지, 뮤지컬 &lt;오페라의 유령&gt; 원작이라는 사실, 그 한 가지가 모든 기대의 원인이었다. 그렇게 읽기 시작했다.<br>책을 다 읽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출간 당시 이 소설에 대한 반응이 어땠는지 검색해 보기. 1909년부터 1910년에 걸쳐 프랑스 일간지에 연재.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을 땐 별다른 화제가 되지 않음. 그러다 1925년에 무성영화로 개봉되어 큰 성공. 현재 명성의 가장 결정적 원인은 1986년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그래, 그렇단 말이지.<br>그래서 다음으로 한 일은, 이 소설이 다른 장르의 원작으로 선택된 이유를 생각해 보기. 일단 다채로운 시각적 이미지. 화려한 파리 오페라 하우스와 그곳에서 연기하는 배우들, 그리고 지하에 펼쳐진 어둡고 음침한, 정반대의 다른 세계. 다음으론 음악 자체가 소설의 중요한 소재. 마지막으로 미녀와 야수라는 가장 대중적이며 통속적인 사랑 이야기. 그래, 그래, 그렇단 말이지.<br>그래서 다음은, 파리 오페라 하우스 검색하기. 설계자의 이름을 따 오페라 가르니에라고도 불림. 건설 과정에서 지하에 물이 차올랐으나 빼낼 수가 없어 그대로 완공. 공연 중 샹들리에가 떨어져 관객 한 명이 사망하는 사고 발생. 소설은 이 둘을 내용에 맞게 차용. 그렇군. 그래.<br>마지막으로, 작가 가스통 르루 검색하기. 특종 기자 출신의 프랑스 장르 문학의 개척자. &lt;오페라의 유령&gt;보다 먼저 출간된 &lt;노란 방의 비밀&gt;로 명성을 얻음. 밀실 살인을 다룬 추리소설로 아서 코난 도일(셜록 홈스)과 모리스 르블랑(아르센 뤼팽)에 비견될 정도. 그래, 그랬어. 어쩐지.<br>그러니까. 현실적 배경을 바탕으로 트릭과 구조를 짜서 사건 사고를 일으키고, 그 모든 것들을 논리적으로 설명한 후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게 작가의 핵심이라는 건가? 그런데 문제는 그 설명이 내겐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거. 사랑 얘기는 흥미롭지만, 인물의 심리 변화나 특정 캐릭터들의 역할이 내겐 잘 수긍되지 않는다는 거.<br>그래서, 정말 마지막으로 한 일은, 내가 멍청한 게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 그래. 그럴 수도.<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78/64/cover150/e93243514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786436</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나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06668</link><pubDate>Thu, 09 Apr 2026 17: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06668</guid><description><![CDATA[넌, 특히나 사람 때문에 울고 웃을 거야.<br>10년도 훨씬 전에. 그러니까 장사를 하고 있을 때. 나와 함께 오래 일하던 알바들에게 고전적인 방식으로 크리스마스카드를 준 적이 있었다. 다섯 명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중 한 명에게 적어준 문장. ‘넌, 특히나 사람 때문에 울고 웃을 거야.’<br>그보다 훨씬 전. 그러니까 관계를 지옥이라 여기던 때. 딱히 결심이라고 할 순 없지만 내 삶의 방향을 설정한 적이 있었다. 지금 여기에 더 이상의 관계를, 소중한 관계를 덧붙이지 않겠다. 이 이상 아무도 무너뜨리지 않겠다. 다짐했었다.<br>지금. 비 때문에, 날리는 벚꽃잎을 볼 수 없게 되어 의기소침해진 고양이가 느닷없이 뜀박질이다. 조그마한 날벌레 하나 잡겠다고 촐랑거리는 게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벌레 따라 소파 위로 뛰어오른 녀석은 발을 헛딛고 마루로 떨어진다. 아우, 저 허당. 부끄러웠을까? 벌레는 놔두고 다시 반대 방향으로 우다다. 저거, 저거, 구조 안 됐으면 길에서 어떻게 살려고 했던 거야?<br>카드를 받았던 그 아이는 요 며칠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중이다. 그것도 3~4년 전 일로. 그때 모질지 못했던 게 지금 부메랑처럼 되돌아온 걸까? 그 시절의 나는 결국 사람이 답이란 걸 알았지만 당시 했던 다짐을 지금껏 어찌저찌 지키며 산다. 그런데 요즘, 생각이 많다. 촐랑거리는 이 고양이 녀석. 4kg이 채 못 되는 이 가벼운 녀석이 내 삶에 이렇게 무게감을 더할 줄은 몰랐다. 맞고 틀리고. 그런 문제가 아니란 걸 안다. 선택의 문제다. 오래전 내 선택은 상처를 정말 최소화할 수 있던 길이었을까?<br>간식을 그릇에 담아 몸을 돌리자, 고양이가 먼저 먹을 자리로 종종거리며 뛰어간다. 그 뒷모습을 보면 웃지 않을 수가 없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난, 삶의 뒤꽁무니만 쫓아왔다는. 그래도 웃을 수 있으니 괜찮은 거겠지. 어이, 고양이. 넌 나보다 꼭 먼저 죽어야 한다. 나보다 앞서야 해. 가뜩이나 사람 무서워하는 녀석이 어딘가에 맡겨져서 풀 죽어 있는 꼴은 도저히 용납이 안 되거든.<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409/pimg_704577144508751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206668</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세상을 살아낸다는 것 -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190301</link><pubDate>Wed, 01 Apr 2026 13: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19030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132533289&TPaperId=1719030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929/78/coveroff/e13253328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132533289&TPaperId=1719030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두 사람의 인터내셔널</a><br/>김기태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05월<br/></td></tr></table><br/>&lt;세상 모든 바다&gt;<br><br>-- 그 기모이한 오타쿠들의 열렬한 구호. 가치코이코죠. 진짜 사랑 고백. 좋아 좋아 정말 좋아 역시 좋아…… 그것도 사랑이라면, 나는 어쩐지 그 근시의 사랑이 조금 그립다. -- &lt;본문 중&gt;<br><br>정치적으로 올바른 아이돌 그룹이 있고, 그들은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을 추종하는 팬덤은 그 아이돌이 튼 물꼬를 더욱 거대한 흐름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 흐름은 세상을 바꾸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우린 때론 대중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안다. 집단 지성 또는 대중의 급격한 쏠림은 옳고 그름을 떠나 최악의 상황으로 돌진하기도 하기 때문이다.<br><br>이 단편엔 '세상 모든 바다'란 아이돌 그룹이 등장한다. 세상의 모든 바다가 연결되어 있듯이 사람들도 차별 없이 서로를 보듬어야 한다는 의미 정도. 여기까진 분명 맞다. 그런데 아무리 옳다 하더라도 모두가 하나여야 한다는, 그러니까 '모두'와 '하나'란 단어가 합쳐질 때 은연중에 휘둘러지는 불편함을 우리는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br><br>&lt;롤링 선더 러브&gt;<br><br>-- 퇴근 후에 청계천 끄트머리에서 리아를 기다렸다. 약속 시간보다 십 분 늦게 나타난 리아는 슬랩스틱코미디언처럼 우당탕 넘어지는 척을 하더니 말했다.<br><br>  “안 해요? 왜 안 해요? 와아 조맹희 개멋있어.”<br>-- &lt;본문 중&gt;<br><br>뜻대로 될 리 없지. 세상이. 삶이. 치한이나 왕자님을 대비했으나 뜬금없는 호랑이 인형과 마주치고, 짝짓기 예능에 출연해서 출연자가 아닌 PD에 꽂혀 버리는. 그런 우당탕한 어떤. 나이는 차오르는데 이룬 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거 같고. 상호작용 충만한 찐한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만 나도, 상대방도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그렇게 엇나가기만 하는. 그래도. 아무리 삽질만 한다 하더라도. 돌멩이는 이리 데굴, 저리 데굴. 여기서 차이고 저기서 밟히고. 그냥 데굴데굴. 왜 아무것도 안 하는데? 진짜 개멋있어.<br><br>&lt;전조등&gt;<br><br>-- “잠깐.”<br><br>  그가 엉거주춤 멈춰 “왜?”라고 묻자 그녀는 깜빡한 무엇을 떠올리려는 듯 그를 보다가 말했다.<br><br>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br>-- &lt;본문 중&gt;<br><br>급히 집을 나서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매장에 있는 근무자는 오늘 중요한 시험이 있다. 올해 예정된 마지막 시험. 내가 늦으면 그는 올 한 해를 날려버리는 꼴이다. 속도를 높여 걷는데 저만치서 술에 취한 듯한 걸음걸이로 노숙자 한 명이 걸어온다. 비틀비틀. 교차하는 순간 비틀대던 노숙자는 길에 넘어지고 난 찰나의 고민과 함께 그대로 앞을 향한다. 이번 지하철을 놓치면 난 지각이다. 그리고 그는 시험을 놓치게 될 것이다. 지나가던 차의 경적 소리. 하지만 무시하고 지하철역 안으로 뛰어든다. 늦은 밤, 퇴근하며 그 자리를 다시 지난다. 거꾸로. 아까 낮에 그 노숙자는 괜찮은 걸까? 샤워 후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하다 불현듯 고개를 번쩍 든다. 흠.<br>  &nbsp;  <br>베듯이 일상을 침범하는 비일상. 그리고 흉터처럼 남는 불안. 흉터는 다시 벌어질까?<br><br>&lt;두 사람의 인터내셔널&gt;<br><br>옛날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투덕거린 적이 있었다. 니가 노동의 맛을 알어? 소리치면, 다른 한쪽에서, 니가 돈맛을 알아? 맞대꾸했다. 얼굴을 붉히며 고래고래 소리치면, 퍼렇게 질려서 악다구니를 내뱉었다. 그렇게 붉으락푸르락 기싸움을 하더니만 결국 옆 동네 돈 냄새를 참지 못하고 사회주의가 먼저 무릎을 꿇었다. 형님. 이제 사회주의는 무대 뒤에서 자본주의의 뒤치다꺼리나 한다. 사람들 사이에 맥락 없이 떠도는 '기립하시오, 당신도'와 같은 이모티콘 문구가 한때나마 투톱 중 하나였던 사회주의의 영광을 드러낼 뿐이다. 물론 아무도 신경 안 쓰지만.<br>  &nbsp;  <br>노동의 맛을 외치던 사회주의가 퇴장한 탓일까? 요즘을 사는 근로자는 영혼까지 탈탈 털어 자본주의 팬덤에 빠져든다. 하지만 '좌절 금지'라는 머리띠 질끈 동여맨 우리의 주인공들은 출발점이 어디든, 현재 위치가 어디든 주저앉지 않는다. 쿨내까진 아니더라도 찌질하지 않게, 함께, 발걸음을 내디딘다. 내딛으려 한다. 평범함에 대한 이 밑도 끝도 없는, 그야말로 무데뽀 같은, 작가의 애정과 함께.<br><br>-- 미미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워 담았고 그게 도움이 안 될 때는 불확실하지만 원대한 행복을 상상했다. 보일러를 아껴 트는 겨울. 설거지를 하고 식탁을 닦는 서로의 등을 보면 봄날의 교무실이 떠올랐다. 어떤 예언은 엉뚱한 형태로 전해지고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야 실현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 &lt;본문 중&gt;<br><br><br>&lt;보편 교양&gt;<br><br>-- 곽은 은재와 함께 도서를 정리했다. 『도련님』은 우측 중단에, 『수레바퀴 아래서』는 중앙 상단에,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는 트롤리에 두고 『시민의 불복종』은 좌측 하단에, 『노인과 바다』는…… 자신의 손에서 은재의 손으로, 은재의 손에서 자신의 손으로 건네지는, 함부로 펼친 적 없는 새 책들의 반듯함. 축하의 말과 감사의 말. -- &lt;본문 중&gt;<br><br>손에서 손으로. 마음을 다한 자와 진심을 받아들인 자의 이중주. 다가올 날을 준비하고 지나갈 날에 감사할 줄 아는 자들의 평온함. 마음에서 마음으로.<br>  &nbsp;  <br>글을 쓰다 문득 고양이를 바라본다. 어이, 고양이, 아저씨가 너 좋아하는 거 알지? 뭔 소리 하나 잠깐 바라보더니 다시 햇볕에 몸을 맡기는 녀석. 이 자식이…. 까까 줄까? 'ㄲ'이 들어가는 단어의 잇따른 출현에 반색하며 달려온다. 까까로 통하는 우리네 진심. 룰루랄라 냉장고를 열다 눈에 들어온 파란색 우유갑. 파란색으로 도배되었던 주식창이 떠오르며 마음이 튀어 오른다. 아니야, 아니야, 심호흡. 후우, 후우.<br><br>&lt;로나, 우리의 별&gt;<br><br>소설을 다 읽고 생각을 하다 몇 번이나 멈췄다. 마치 학창 시절 조회 시간에 들었던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을 되씹는 기분이랄까.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 정신을 차려본다. 내가... 나이가 들었나? 이 이야기가 실현 불가능하다 생각하는 건가? 지금까지 읽은 작가의 단편 중 가장 강한 어조의 작품이었다. '우리는 가능하다.' 너무 강하면, 때론 불가능을 향한 기약 없는 희망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br>  &nbsp;  <br>그런데 나 아직 안 늙었거든! 난 아직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결과로 이어지진 않더라도.<br><br><br>&lt;태엽은 12와 1/2 바퀴&gt;<br><br>그는 지방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한다. 나이 들어가는 자신처럼 게스트 하우스도 서서히 쇠락하는 중이다. 이곳에 내일 딸인 은혜가 오기로 했다. '명절도 생일도 기일도' 아닌데. 서울에서 취업한 딸이 자주 오기엔 지나치게 먼 거리라 그런 날에만 만나는 게 자연스러웠다. 모처럼 1층 한구석에 멈춰버린 채 서 있는 괘종시계의 태엽을 감아본다. 12바퀴 하고도 반 바퀴가 더 감긴다. 원래는 12바퀴였었는데.<br>  &nbsp;  <br>일상이 깨지는 건 때론 활력이 된다. 하지만 여기선 아니다. 시작부터 죽음의 이미지를 던진 이야기는 그 어두운 분위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게 둔다. 야금야금 잠식되어 푹 잠겨 든 순간, 이야기는 모든 것을 그대로 두고서 갑자기 쑥 빠져나가 버린다. 그는 아무것도 확신하지 못한 채 자리에 서 있고, 그런 그의 모습은 바닷가의 풍경과 함께 놀러 온 서퍼들의 시야에 담긴다.<br>  &nbsp;  <br> -- "그런데 저 사람은 뭐하냐?" -- &lt;본문 중&gt;<br>  &nbsp;  <br>주체에서 배경으로 내동댕이쳐짐으로써 이제 다가올 불확실성은 오롯이 그의 몫이다. 이른 아침, 딸은 아직 출발조차 안 했을지도 모른다.<br>  &nbsp;  <br>-- 멀리 길가에 검은 봉지를 들고 서 있는 노인이 있었다. 그는 두 사람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바다를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br><br>  “몰라.”<br>-- &lt;본문 중&gt;<br><br><br>&lt;무겁고 높은&gt;<br><br>한때 탄광촌이었지만 지금은 카지노가 들어선 도시. 고3인 송희는 그곳에서 밀려나는 모든 것들을 지켜봤다. 왜 그것들은 속절없이 떨궈져야만 했을까? 송희가 역도를 선택한 건 그 무기력함에 대한 오기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들어 올리고 놓아 버린다. 내려놓는 과정은 없다. 들면 그걸로 끝이라 던지듯이, 버리듯이 떨구면 된다. 이건 나의 삶이야. 그러니 버리는 것도 내가 하겠어.<br><br>-- 송희는 단호해졌다. 아니. 이건 영광이 아니야. 이건 미래도 아니고 꿈도 희망도 아니야.<br><br>  그럼 뭐야?<br><br>젖은 머리가 물었다. 송희도 알 수 없었다. 다만 변하지 않는 것. 흥하지도 망하지도 않는, 값이 오르지도 내리지도 않는, 운이 좋아도 나빠도 그대로인 것. 어떤 비유도 아니고 상징도 아닌, 말하자면 그냥 100킬로그램의 손때 묻은 쇳덩이.<br><br>  나도 몰라. 어쨌든 들 거야.<br>-- &lt;본문 중&gt;<br><br>소설의 마지막 장면 역시 그 의지의 발현이다. '그날이 송희가 정말로 역도를 그만둔 날이었다.' 그날 송희는 목표인 100kg 바벨을 들어 올렸을까? 젖은 머리는 알겠지만, 그 애는 귀신 같은 존재다. 산 자들은 그저 살아낼 뿐이다.<br><br><br>&lt;팍스 아토미카&gt;<br><br>-- 돌아서서 침대로 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문을 떠나기 힘들었다. 한 가지 의심이 되풀이됐다.<br><br>  내가 문을 닫았나. -- &lt;본문 중&gt;<br><br>하나의 맥락은 있지만 의식의 흐름처럼 흘러가는 글. 난 이런 글의 정체를 알 듯도 하다. 예전에 분열과 경계에 몰두했던 적이 있다. 그때 내가 쓴 글은 소재에 상관없이 저 두 단어에 젖어 있었다. 아무 상관 없는 일에서조차 어떻게든 스며 나왔다. 지금 이 단편이 딱 그런 느낌이다. 이 책에 실린 모든 이야기를 정리하고 아우르면서 불확실함의 정서에 푹 잠긴 이야기. 어쩌면 정말 작가 자신의 이야기.]]></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929/78/cover150/e13253328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9297893</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