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어느덧 여기에 (대굴대굴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책에 관한 리뷰라기 보단 내 삶에 대한 리뷰</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Fri, 30 Oct 2026 00:06:38 +0900</lastBuildDate><image><title>대굴대굴</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045771444334901.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대굴대굴</description></image><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코끼리 다리 만지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99805</link><pubDate>Thu, 29 Oct 2026 09: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99805</guid><description><![CDATA[집을 고쳐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몇 가지 있었다. 첫째, 비만 내리면 베란다로 새어 들어오는 빗물을 차단해야겠다. 그리고 그곳을 고양이가 마음껏 쓸 수 있게 하겠다. 둘째, 컴퓨터가 놓인 방에 제대로 된 난방을 깔고, 곰팡내도 잡아야겠다. 이 방은 베란다였던 공간의 벽을 터서 이미 확장이 된 상태다. 그런데 바닥에 나무판만 놓고 그 위에 장판을 깐 형태라 그 공간만큼은 난방이 되지 않았고, 나무판 아래 공간에 곰팡이가 생겨 수시로 냄새가 올라왔다. 이 외에도 몇 가지 더 있지만, 이 글에서 필요한 내용은 이 정도. 현재는 수리를 끝내고 리모델링한 집에서 1년 5개월쯤 지냈다. 몇 번 적었지만 빗물의 완전 차단은 실패했다. 이건 우리 집만 고친다고 해서 해결될 사항은 아니었다. 윗집과 건물 자체까지 한꺼번에 건드려야 할 대공사가 필요했다. 어쨌든 비가 엄청 내려 워터파크 개장이 예상될 때만 문을 닫으면 되니, 절반의 성공이랄까. 그리고 올여름을 지나면서 곰팡내 제거도 실패로 판별이 났다. 단순히 청소하고 시멘트로 덮을 게 아니라 소독까지 한 후에 시멘트를 덮어야 했나 보다. 이건 그냥 실패. 살면서 가장 적극적인 대응을 했던 거였는데 이 정도면 가성비 최악의 대응이었던 듯.<br>그러고 보니, 얼마 전 고양이 급수기가 좀 묘했더랬다. 원래 급수기 가운데 구멍에서 물이 힘차게 퐁퐁퐁 올라와야 하는데, 그날은 물이 매가리 없이 숑숑숑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뭐지 싶었지만 그냥 무시. 다음 날, 고양이가 급수기를 심각하게 들여다보고 있길래 무슨 일인가 싶어서 갔다가 나 역시 인상을 쓰며 고양이와 함께 고민에 빠졌다. 물론 고양이는 ‘이것이 왜 물을 내뱉지 않는 것인가’란 의문이고, 나는 ‘어제 고장 전조 증상이었는데 펌프를 미리 주문해야 했어’란 자책이었다.<br>적극적으로 대응해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상태가 이 모양인 것은 삶 전체를 지배하는 현상일까, 아니면 지극히 개별적인 예일 뿐일까? 당연히 후자라 얘기하고 싶지만, 내 삶이 내 마음대로 되었던 적이 있나, 생각해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은 거 같고 말이지. 오, 이렇게 허무주의로 빠져드는 건가?]]></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무감각</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97528</link><pubDate>Wed, 28 Oct 2026 08: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97528</guid><description><![CDATA[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6시 30분이라 출근 시간대는 아니었으나 강남에 도착하면 얼추 붐비기 시작할 시점이라 걸음을 서둘렀다. 공원을 가로질러 지하철역 입구에 들어서기 직전, 가드레일 바로 옆 찻길 쪽에 무언가가 있었다. 걸음을 멈추지도,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으니 아주 짧은 순간 시야를 스치듯이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내 머릿속으로 강력한 효과음 하나가 아주 명징하게 울려 퍼졌다. 빠각. 그 언젠가 바로 눈앞에서 버스 바퀴에 깔리며 비둘기가 내뱉었던 소리. 아니, 비둘기였던 존재가 자신의 실존을 형체 없는 흔적으로 변환하며 그 대가로 세상에 내놓은 파열음. 다른 때 같으면 에스컬레이터를 걸어서 내려갔겠지만, 그저 가만히 서서 그 느린 흐름에 몸을 맡겼다. 에스컬레이터가 움직일 때마다 조금씩 들려오는 덜컥덜컥하는 소리가 무언가를 재촉하는 것만 같았다.<br>지도 앱 덕에 모르는 곳도 단번에 찾아갈 수 있지만, 적어도 내겐 지하 공간에서만큼은 무용지물이다. 3차원에 약한 건가? 오르락내리락 서너 번을 반복하다 그냥 지하상가 벽에 있는 약도를 보고 나서야 약속 장소를 제대로 찾을 수 있었다. 지인과 아침을 먹고 다음으로 향할 곳은 극장. &lt;전자오락수호대&gt;라는 웹툰 원작의 애니메이션을 볼 예정이다. 지상으로 나와 길을 걷는데 옆으로 롯데월드타워가 높이 솟구쳐 있다. 목을 꺾어 빌딩을 올려다보는데 뭔가 이상했다. 빌딩 꼭대기에서 한 방향으로 희미한 선이 그어진 듯하면서 그 선을 경계로 양쪽 하늘의 색감이 미묘하게 달랐다. 뭐지? 건물 외벽 유리에 햇빛이 일정 방향으로 반사되어 그러는 건가? 공간이 어긋난 것 같은 느낌. 서울 촌놈 아니냐는 지인의 식상한 표현에 얼른 걸음을 다시 옮긴다. 오늘, 이상하다.<br>애니메이션은 집중하기 어려웠다. 언젠가부터 성우든, 배우든 더빙이 들어간 작품을 보는 게 쉽지가 않다. 외국말의 경우는 상관없는 걸 보면, 우리말 더빙이 이루어졌을 때 어떤 괴리감을 느끼지 않나 싶은데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비현실 세상 속으로 몰두해야 했지만, 이번엔 거꾸로 그 괴리감 때문에 자꾸 현실로 패대기치듯 끌려 나왔다. 현실에 서 있을 땐 비현실을 감지하고, 비현실에 몸을 맡겨야 할 땐 현실을 놓지 못하다니.<br>돌아오는 길. 아침에 들어갔던 지하철역 입구를 이번엔 거꾸로 빠져나왔다. ‘빠각’하는, 딱딱한 것이 한순간에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리진 않았다. 굳이 차도를 돌아보진 않았지만, 상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은 건 그 때문은 아니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 소리가 문제는 아니었다. 내 감각에 금을 낸 건 이번엔 청각이 아니라 시각이었으니까. 아침에 비둘기의 흔적 옆에는 하나의 존재가 더 있었다. 아주 까만, 덩치가 커다란 까마귀 한 마리. 몸을 숙였다 들었다 하는, 쪼는 듯한 몸동작과 부리 끝에 매달린 비둘기 깃털. 그 잿빛 깃털은 까마귀의 까만 몸 색깔과 대비되어 뜬금없이 하얗게 도드라져 보였었다.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상당한 거리라 아무것도 보일 리 없었다. 그런데 그곳엔 존재의 비명을 집어삼킨 무감각이 새까맣게 도사리고 있었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개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95481</link><pubDate>Tue, 27 Oct 2026 09: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95481</guid><description><![CDATA[큰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나 같으면 나중에 꼭 거기 가서 살겠다고. 진지하게 그 말씀을 듣던 어머니는 후에 삶을 정리할 시기에 다다르자 반드시 그 단체의 뜻에 따르겠다고 고집을 세우셨다. 그곳은 뭔가 분명치 않은, 사이비 같은 집단이라고 내가 아무리 만류해도 소용이 없었다. 어머니의 의지가 강할수록 어머니의 모습은 젊음을 회복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오랜만에 보는 어머니의 젊어진 모습을 한편으론 기쁜 마음으로 지켜봤다. 그러다 내 방에 들어와서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누나에게 물어봐야겠단 생각을 했다. 누나라면 내 편이 되어 주겠지 하면서. 어느덧 '에라, 모르겠다'란 심정이 되어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웠는데 책장 위에 자리 잡은 고양이가 보였다. 그런데 눈이 빨간 가짜였다. 진짜는 어디 갔냐며 내가 덤벼들었고, 가짜는 눈이 부풀어 오르더니 나를 할퀴었다. 그 사이비 단체가 벌써 힘을 발휘한다고 탄식하던 나는 가짜의 빨간 눈 한쪽을 발로 밟아 터뜨렸고, 진짜 고양이의 행방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가짜의 남은 한쪽 빨간 눈을 밟기 직전, 내 옆구리에 붙어있는 진짜 고양이를 발견하고서 모호한 감정을 담아 외쳤다. 이 자슥이!<br>눈을 떴다. 멍한 정신이 가장 먼저 낚아챈 것은 어둠 속에서 빛을 내는 시계였다. 새벽 4시가 조금 안 된 시각. 두 번째로 건져 올린 건 내가 꿈을 꿨다는 자각이었다. 그리고 현실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마루 소파에서 잠을 청했고, 고양이가 내 옆구리 자리를 차지했고, 그런 고양이한테 밀려서 하체와 상체가 따로 노는 이상한 자세로 소파에 낑겨 있다가 결국 그 불편함을 이기지 못하고 잠에서 깨어났다는, 그런 집사의 현실. 고양이를 쓰다듬다가 끙 소리를 내며 일어나 앉는다. 당연하게도 꿈의 이미지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어머니 모습인데….<br>어째서 이런 꿈일까? 과거의 장소, 과거의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그들 모두가 그 당시 실제 모습과 반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야기의 뼈대는 지금 읽는 소설에서 비롯된 걸로 보이는데 배우 캐스팅은 기존 이미지와 역으로 간 셈이다. 그 시절의 갈등 관계가 사라지고 피붙이의 질긴 인연을 깨달아서일까? 가짜 고양이와 벌이는 난투극은 며칠 전 봤던 새의 모습 때문이다. 로드킬로 형태를 잃고 바닥에 찌부러진 비둘기와 그 옆에서 얼쩡거리던 까마귀 한 마리. 그리고 까마귀 부리에 걸려있던 비둘기 깃털. 가짜 고양이의 눈이 붉게 변하면서 커질 때 그 모습은 흡사 까마귀의 모양과 비슷했다. 고양이가 사라지면 나의 밤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까 하는 의구심. 그 의구심이 고양이와 까마귀를 같은 선상에 놓고 말았다.<br>저만치 옆에 앉아서 나를 쳐다보는 고양이와 눈을 맞춘다. 그래, 개꿈인 것을. 꿈에 의미를 지나치게 부여해 내 실체를 흔드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도 없지. 소파에서 일어나는데 진짜 싸운 것처럼 허리와 등이 뻐근하다. 너무 이상한 자세로 잤다.<br>고양이, 아저씨는 다시 자러 간다.<br>침대로 가면서 문득 꿈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br>야, 그러고 보니 너는 어떻게 꿈에서도 한결같냐? 아저씨가 니 짝퉁이랑 그렇게 싸우는데 옆구리에 붙어서 구경만 하고. 실생활엔 하나도 도움이 안 돼요.<br>이 녀석이 말할 줄 알았다면, 분명 이렇게 내질렀을 것이다. 개꿈은 개한테 가서 따져라.]]></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고양이 일기</category><title>고양이 일기_22</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93399</link><pubDate>Mon, 26 Oct 2026 08: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93399</guid><description><![CDATA[*** 임시로 얻은 원룸에서 4주를 보냈다. 그 기간 중 밤에 잘 때 고양이는 내 머리 옆에서 잘 때가 많았다. 보통 다리 사이나 옆구리에 붙어서 자곤 했는데 장소가 바뀌자 불안했는지 자는 위치를 바꿨다. 집사의 체취를 가장 확실하게 맡으면서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위치가 얼굴 근처다. 덕택에 녀석이 꼬리를 흔들 때 자주 얻어맞아야만 했다. ***<br>하나. 저쪽 창보다 이쪽 창이 더 좋다. 그러니 당장 나무판을 이쪽 창틀로 옮겨라.하나. 비닐 팩에 임시로 담아온 사료는 냄새 나서 먹지 않는다. 그러니 원래 포장에 담긴 사료만 제공하라.하나. 예고 없이 영역을 옮겼으니, 까까를 다른 때보다 하루에 두 번씩 더 제공하라.하나. 밤에 잘 땐 아저씨 머리통 옆에 내 잠자리를 제공하라.<br>이게 내 요구 조건이다! 들어주지 않으면, 화장실에 처박혀서 나오지 않겠다.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사방에 모래를 흩뿌릴 거다!<br>“뭐래? 월이 너, 계속 야옹거리는 거 보니까 이제 좀 적응했나 보다?”<br>알아들어라, 이 생각 없는 아저씨야! 왜 니 말은 내가 알아듣는데 내 말은 니가 못 알아듣는 거냐? 불공평하다!<br>“아저씨 잔다. 너도 자라.”<br>이, 이 천하태평 아저씨, 무념무상 아저씨 같으니.<br>(침대 위로 점프. 아저씨 머리 바로 옆에 자리 잡음) 아 진짜,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 내가 속이 터져서... 웅얼웅얼, 꿍얼꿍얼.<br>“... 야, 꼬리 좀 가만 놔두면 안 되겠냐?”<br>뭐래? 고양이는 잔다. 아저씨도 자라. (휙휙)<br>“너, 일부러 그러는 거 같은데?”<br>고양이 꼬리는 자아가 따로 있거든. 걔가 생각이 좀 없어.]]></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인과응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90283</link><pubDate>Sat, 24 Oct 2026 16: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90283</guid><description><![CDATA[룰루랄라. 이른 아침부터 살짝 들떠있다. 아침 먹고 청소하면서 접혀있던 이동장을 슬쩍 빼내서 모양을 갖춘다. 아니나 다를까. 이동장이 펼쳐진 걸 알고는 부리나케 달려오더니 낌새를 살핀다.<br>고양이, 너 오늘 병원 간다. 광견병 백신 맞아야 해서 살짝 따끔할 거다.<br>이동장엔 관심 없는 척 마루로 나와서 다시 청소.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얄미운 고양이를 골탕 먹이려는 악동 같은 기분이다. 고양이는 다시 마루로 달려 나와 나를 동그란 눈으로 쳐다본다. 그 눈에 담긴 질문은 단 하나다. 저걸 왜 꺼내는 건데?<br>빨래까지 마친 후 드디어 병원에 갈 시간. 내가 바지를 갈아입자, 고양이는 재빨리 침대 밑으로 피신한다. 모른 체 하면서 녀석의 물그릇과 밥그릇을 가져와 씻는다. 안방으로 따라 들어가면 녀석은 절대 침대 구석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참아야 한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절반쯤 씻었는데 녀석이 쪼르르 나와서 내 옆으로 다가온다. 병원에 가지 않는다면, 지금 이 상황의 마무리는 보통 간식 급여다. 간식 그릇을 꺼내고 수건으로 손을 닦으면서 익숙한 말을 건넨다.<br>까까 먹을까?<br>함정의 완성. 나에게 바짝 다가온 고양이를 수월하게 들어 올리자, 그제야 고양이는 직감한다. 망했다냥. 두 앞발로 내 팔을 꼭 부여잡고 고개를 내 품에 파묻어보지만, 소용없다. 1년에 한 번 꼭 맞아야 할 주사고, 무엇보다 내 안의 악동이 오늘따라 기세가 등등하다. 우하하, 요 녀석, 따끔할 것이다!<br>20여 분 후. 집에 돌아와 이동장을 열자, 고양이가 튕기듯 나온다. 고양이가 그러든 말든 나는 얼른 바람막이부터 벗는다. 온몸이 땀투성이다. 20초나 됐을까? 의사 선생님 책상 위에서 도망치기 위한 고양이의 그 짧은 난동을 막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한 데다, 바람막이의 차단 기능이 그 열을 완벽하게 내부에 가두는 통에 거의 한여름 수준의 땀을 흘리고 말았다. 악동은 사라지고 퀭한 눈의 지친 중년 아저씨만 덩그러니 서 있다. 살면서 사람이 심보는 곱게 써야지. 아우, 힘들어라. 이동장을 접어서 보관하고 어디 있는지 모를 고양이를 향해 말한다.<br>까까 먹자. 진짜로.<br>다음 달에 종합 백신 맞으러 한 번 더 가야 되는데. 남은 한 달 동안 열심히 착하게 살아야겠다.&nbsp;]]></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문을 나서면, 그 문은 더 이상 내가 알던 문이 아니다, AI</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87930</link><pubDate>Fri, 23 Oct 2026 08: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87930</guid><description><![CDATA[내가 직접 장사를 하면서 겪게 된 가장 큰 변화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최진영의 &lt;일주일&gt;에 관한 글에서 언급했듯 ‘고객은 왕이다’란 고리타분한 명제를 폐기 처분했다는 거. 다른 하나는, 내가 뽑은 근무자들을 내 동료이자 내 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거. 사실, ‘나를 지옥으로 끌고 들어갈 확률이 가장 높은 존재는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는 문장을 20대 때 적어놓은 걸 보면, 이미 비슷한 개념을 깨달은 상태긴 했다. 다만 장사를 시작할 땐 그 개념을 근무자들에게 적용하지 못했을 뿐이었지.<br>그 인식을 촉발한 가장 일반적인 예는, 느닷없는 결근이나 퇴사다. 대체 또는 보완 인력이 전혀 없는 소규모 자영업 특성상 그 공백의 여파는 고스란히 나 아니면 남아 있는 근무자에게 전가된다. 다른 예라면, 성격상 문제다. 자신을 중심에 두는 사고방식 덕에 다른 근무자들과 화합이 안 되거나 상대방의 말이나 여건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 조직을 아예 와해시키는 경우다. 이럴 때마다 더 나를 가라앉게 만드는 건 내가 알면서도 그 사람을 뽑았다는 점이다. 비논리적인 얘기이지만, 다양한 사람을 자주 접하게 되면 어떤 사람을 볼 때 감이라고 해야 할까, 느낌 같은 게 있다. 이 사람은 같이 일하면 안 될 거 같은데. 그런데도 뽑을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때가 아주 많다. 일하는 사람의 공백을 육체적, 정신적으로 견뎌낼 수 없을 때가. 그런 경험을 반복하다 알게 됐다. 언젠가 감당할 수 없을 때가 도래할 텐데, 그 순간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건 경제적 문제도, 진상 손님도 아닌 내 손으로 뽑은 근무자일 거라고. 장사를 시작하고 16년쯤 지났을 때 그 일은 현실이 됐다.<br>살면서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선택을 한다. 다만, 그 선택의 대부분은 삶의 연속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마치 우리가 집안의 문을 아무 생각 없이 여닫고 지내는 것처럼. 하지만 흐름을 깨고 변화해야 할 순간이 닥치면, 우린 그 선택의 순간을 명확하게 인지한다. 바뀔 것인가, 그냥 흘러갈 것인가. 변화를 택했다면 삶은 전과 다른 방향을 잡을 테고, 똑같은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 우린 다른 시각으로 그 상황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만 더. 오래 같이 일하던 근무자들과 매장에서 수다를 떨 때가 있곤 했다.<br>“진짜 신기한 게 점장님은 어떻게 그렇게 일할 수가 있어요? 난 절대 나중에 편의점은 안 할 거야.”“너도 장사해 봐. 네 일이면 너도 이러고 있을걸?”<br>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한 녀석이,“나는 더 신기한 게 점장님 어떻게 안 죽고 살아있어요?”“... 이 자슥이!”<br>해야 할 일을 하면서 내 옆에서 자리를 지켜준 근무자들 덕에 16년이 넘게 버텨낼 수 있었다. 언제나 희망은 사람에게, 절망도 사람에게 있었다.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자각도 내 선택 중 하나였을 것이고, 지금은 딱히 일부러 인식하지도 않는다. 그저 내 삶의 일부일 뿐.<br>AI가 제시한 문장 : 문을 나서면, 그 문은 더 이상 내가 알던 문이 아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알아, 아는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85993</link><pubDate>Thu, 22 Oct 2026 09: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85993</guid><description><![CDATA[두 가지 쓸데없는 짓을 하는 중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원래 쓸데없다고 생각하던 짓을 나이 들어 시도하는 중이라고 해야겠다. ‘나이 들어’란 문구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둘 다 건강에 관련된 행위다. 첫 번째는 건강기능식품 섭취. 예전엔 선물이 들어오면 먹곤 했는데 지금은 내 돈으로 사 먹는다. 검색을 통해서 그나마 효능에 대한 검증이 조금이라도 더 이루어진 성분 중심으로 내용물을 구성했다. 당장의 효과를 보겠다는 건 피로 회복과 관련한 비타민B 정도고, 나머지는 예방 차원이다. 먹은 지 3개월쯤 됐는데, 노란색 영롱한 오줌 빛깔을 볼 때마다 돈을 입으로 넣어서 오줌으로 빼는, 착즙기가 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두 번째는 손가락 패치 부착. 오른쪽 손가락 일부가 무언가를 꽉 쥐고 힘을 줄 때마다 불편함이 느껴진다. 직업병일 가능성이 크다. 병원에 가면 어째 뻔한 얘기를 들을 것만 같다. 관절이 아프면 그 관절을 덜 쓰면 된다는 식의. 그렇다고 고양이한테 청소를 시킬 수도 없고. 로봇 청소기를 사야 하나? 어쨌든 그래서 선택한 게 원적외선 패치인데, 하루 8시간 정도 부착하면서 경과를 살피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정도로 완치된다면, 20년 가까운 내 장사 경력을 너무 무시하는 게 아닐까 하는, 뜬금없는 억울함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단 말이지. 지금 억울한 게 중요한 건 아닌데.<br>뭐, 알면서도 하고 있다. 얄팍한 희망에 기대 그래도 무언가는 해 보겠다고. 게다가 지금 이 글은 그런 나를 나름 합리화하는 과정이고. 아무것도 아닌 글이지만, 내 삶의 일면을 보여주는 글이기도 하다.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84003</link><pubDate>Wed, 21 Oct 2026 09: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84003</guid><description><![CDATA[시작은 사소했다. 고양이 장난감 중에 털로 짜서 만든 캣닢볼이 있다. 공 모양에 고양이 얼굴 크기 정도고 털실을 뭉쳐놨다고 생각하면 될 정도의 말캉함을 지녔다. 고양이와 놀아주다가 이 볼을 고양이 쪽으로 굴렸는데, 이 녀석 피할 생각 없이 멀뚱히 보고 있다가 얼굴에 정면으로 맞았다. 물컹하다고 해도 부피가 있으니, 녀석이 생각했던 것보다 충격이 있었던 모양이다. 충격보단 놀라움이 더 컸겠지만. 그 즉시 숨숨집으로 달려가더니 콕 박혀 나오지 않았다. 이런 쫄보 녀석 같으니.<br>이 사소한 일상에 평소 하던 생각이 들러붙었다. 고양이와 함께하면서 밤의 일상이 완전한 평온함으로 가라앉았다는 내 평소 생각. 세상에, 이런 쫄보 덕에? 그러니까 그 평온은 어떤 물리력이나 권위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고양이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얘기가 된다. 여기서 외로움이 끌려 나왔다. 내가 외로움을 탔던가? 그 틈을 고양이가 채워준 건가? 꼬리를 물던 의문은 어떤 의문에 도달하자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그렇다면 고양이가 부재하면, 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나?<br>새벽에 고양이에게 간식을 주려고 잠에서 깼다. 식탁 위쪽 불을 켜고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화들짝 놀랐다. 거실 쪽 베란다 창에 식탁의 모습이 너무나 선명하게 비치고 있었다. 4인용 식탁이지만 벽에 붙여놓은 관계로 2인용 식탁이 되어 버렸고, 각종 잡동사니를 올려놓아서 실제론 나 혼자 쓰기에 딱 적당한 공간만 남은 식탁. 어쩌면 내 생활을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그 후로 며칠 동안 첫날의 오싹함까진 아니지만, 창에 투영된 이 모습을 볼 때마다 꺼림직했다.<br>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어떤 날의 비슷한 시각. 부스스 일어나서 다용도실에 있는 고양이 화장실을 치우고 몸을 일으키다가 창밖의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가로등 불빛 아래 주차된 자동차 하나. 주변의 어둠으로 인해 그 존재감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처음엔 빛 때문에 차 주변이 잘 보이지도 않았고, 눈을 한참 깜빡이고 나서야 모든 공간이 시야에 들어왔다. 20년을 넘게 봐온, 별다를 것 없는 익숙한 공간. 그런데도 잠깐의 낯섦이 그 공간을 아주 이질적인 것으로 보이게 했었다. 낯섦이라. 공간은 그대로인데 빛과 어둠과 내 시력만으로 그 공간을 왜곡 해석한 것을 낯섦이라 할 수 있나?<br>마루로 나와 베란다 창을 바라봤다. 식탁은 여전히 창에 선명히 맺혀있었다. 하얀색 식탁과 파스텔톤 의자와 식탁 위에 놓인 다양한 색깔의 잡동사니들. 하지만 창에 맺힌 그것들은 모두 식탁 위 조명색인 주황색 한 가지로 뭉뚱그려진 채 현실감을 상실하고서 자리하고 있다. 게다가 저 창, 스크린 역할을 하는 저 창은 새벽에 선선해지면서 최근에야 ‘다시’ 닫기 시작했다. 그 얘기는 4~5개월 전에 이와 똑같은 장면을 분명 오랜 기간 봐왔을 거라는 의미다. 고작 4~5개월이 나에게 낯섦을 선사한 것이었던가? 그런 걸 낯섦이라고 해도 되나? 식탁 위 조명이 애초에 주황색이 아닌 하얀 형광등 불빛이었다면, 저 반사된 장면이 내게 어떤 인상이라도 남겼을까? 내 인식과 감정의 흐름이 고양이와 한밤의 평온을 거쳐 외로움으로 지나가지 않았다면, 일련의 상황이 일어나기나 했을까?<br>‘나’라는 틀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 틀이 얼마나 변덕스럽고 불명확한지를.]]></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주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82097</link><pubDate>Tue, 20 Oct 2026 09: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8209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012539396&TPaperId=175820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389/12/coveroff/e01253939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면화 농사가 여러 해 동안 흉년인데, 다행히 황해도와 평안도의 작황은 조금 나은 편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부상(富商)들이 독점해 이익을 농단하는 폐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물화의 거래는 저절로 이루어지게 놔두어야 합니다. 법을 세워 금하면 오히려 백성을 동요시켜 원근의 상인들이 소문을 듣고 모이지 않을 것이니, 이는 실로 난처한 일입니다.”<br>“물가는 억지로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근래 포도청에서 곡식을 무역하는 경강상인을 마치 도적처럼 대우합니다. 무릇 시기를 틈타 이익을 꾀하고 물가가 오를 때를 이용해 물화를 농단하는 것이 상술입니다. 이는 포도청에서 간섭할 일이 아닙니다.”<br>조선 후기, 대상인들의 독점과 횡포로 백성들의 피해가 잇따르자, 그에 대한 대책이 필요했다. 그때 일부 대신들이 했던 말이 위의 두 인용문이다. 상업을 천시했던 조선에서 마치 시장 경제의 자유 경쟁에 맡겨야 한다는 듯한 논리다. 조선은 상업에 대해서 큰 원칙 아래 나머지는 불간섭한다는 태도로 대응하긴 했다. 하지만 저 발언의 이면에는 상업의 이익이 권력의 주머니로 들어올 것이라는 현실이 숨겨져 있다. 완벽한 통제도 말이 안 되듯, 완벽한 자율도 그만큼이나 불가능하다.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말만큼 자본주의와 자율 경쟁을 완벽하게 대변하는 말은 없겠지만, 그 말은 언제나 의심하고 곱씹어 봐야 한다.<br>“근대적 인간형에 가까웠기 때문에 중세에 천대를 받았던 상인들. 그런 그들이 끝내 자신들이 속한 사회 체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그 사회의 논리에 포섭되어 버린 것이다. 그 때문에 스스로 사회의 주체로 나서지 못했고, 조선 사회를 변화시키지도 못했던 것이다.”<br>우린 이 사회를 변화시킬 주체로서 나설 수 있을까?<br>꼬리말) 모든 인용문은 &lt;민음 한국사 : 19세기, 인민의 탄생&gt;에 나온 문장들이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389/12/cover150/e01253939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3891205</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고양이 일기</category><title>고양이 일기_21</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80127</link><pubDate>Mon, 19 Oct 2026 09: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80127</guid><description><![CDATA[*** 집수리를 하려고 4주 정도 임시 거처로 옮겨야 했다. 내 짐은 백 팩 하나로 끝이지만, 고양이를 위한 짐은 캐리어와 백 팩을 동원해서 이틀 전부터 서너 번을 날랐다. 모든 세팅을 끝마치고 드디어 본체를 이동시키는 날. 반려동물 전용 택시 안에서는 ‘고양이 살려’를 목청껏 외치던 녀석이 임시 거처에 도착하자 꿀 먹은 벙어리에 망부석이 되어 이동장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br>그러니까, 그러니까, 고양이 묵시록에 따르면, 아, 뭐였더라? 맞다! 집고양이가 길고양이로 되기 전 몇 가지 전조 증상이 있다고 했어. 집사가 갑자기 먹을 걸 많이 준다거나, 아니면 귀찮은 듯 본체만체한다. 집안의 물건들을 커다란 상자에 담아서 늘여 놓거나 내다 버린다. 헉! 요 며칠간 물건들 엄청 버렸는데! 가만, 또 뭐가 있더라? 차에 싣고 가다 어딘가에 내려놓거나 박스나 비닐에 담아서 길거리에 방치한다. 음... 냥... 여기는 길거리는 아닌데? 그, 그래도 불안한데... 이 귀신 같은 아저씨, 내가 고양이별에 암살 모드로 바꿔 달라고 요구하려는 걸 알아차렸나? 아, 그래도 치사하게 이건 아니지! 어떻게 홈그라운드를 바꾸냐! 아우, 저 아저씨를 그냥! 어우, 어우, 밖으로 못 나가겠다. 냥. 그니까, 그니까 이따가 어두워지면 나가서 탐색해 봐야겠다. 지금은 여기 찌그러져 있어야지. 응? 킁킁. 까까? 에잇, 내가 바본 줄 아냐, 이 아저씨야! 독을 바른 까까를 먹을 순 없지! 이따가 컴컴해질 때까지 기다리라구! 저기, 누구 없나? 고양이 살려요. 여기 고양이 있는데, 고양이. 아 씨, 목소리도 잘 안 나오네. 고양이 좀 살려봐요.]]></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이 자슥</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77168</link><pubDate>Sat, 17 Oct 2026 16: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77168</guid><description><![CDATA[새벽 2시. 허벅지 옆에서 시작된 조그마한 온기가 몸 전체로 퍼지면, 웅얼거리는 듯한 속삭임이 귓가에 파고들면, 슬며시 눈을 뜬다. 고양이가 다리 옆에 붙어서 골골송으로 나를 깨우는 중이다. 살짝 쌀쌀한 새벽. 고양이 핫팩을 새벽마다 붙일 시기가 되었다. 다만 핫팩은 때론 말을 한다. 까까, 까까, 까까.<br>아침 9시. 반바지로 갈아입은 후 청소를 시작한다. 움직이면 몸에서 방출되는 열을 다 간직하기엔 아직은 조금 버겁다. 쓱쓱 밀대로 밀자, 고양이 털이 묻어 나온다. 슬슬 털을 찌워갈 시기라 빗질을 해봐도 예전만큼 털이 많이 빠지진 않는다. 슬쩍 고개를 돌리자, 캣타워 나무 숨숨집에 들어가 있는 고양이가 보인다. 입구를 제외하곤 막힌 곳이라 더울 땐 쓰지 않는 장소다. 고양이는 밀대를 무서워한다.<br>오후 2시. 뭐라도 끼적거리고 나오니 고양이가 따라붙는다. 까까 먹을 시각. 깨작거리던 녀석의 식욕이 폭발하는 요즘이다. 산이나 길에 사는 고양이와 달리 굶지 않을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츄르 한 사발 얻어먹고 한낮의 햇볕이 드는 창가에 누워 열심히 침을 펴 바른다. 녀석에겐 딱 기분 좋은 햇볕이다. 그러다 꾸벅 졸기도 한다.<br>저녁 7시. 저녁 먹고 TV를 보는데 시야 한쪽 구석에 까만 무언가가 등장한다. 고양이다. 애써 무시하지만 바로 내 앞까지 다가온 녀석은 철퍼덕 소리를 내며 옆으로 눕더니 갑자기 뒹굴 쇼를 펼친다. 시선 강탈. 정강이에 닿은 녀석의 체온을 통해 편안함을 나눠 갖는다.<br>나를 관찰하는 고양이의 시선은 의식적이지만, 고양이를 보는 내 시선에는 어떤 의식도, 어떤 저항도 들어있지 않다. 시공간이 고양이 중심으로 왜곡되어 그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이 집에서 고양이는 블랙홀이자 중력이고, 그리고,<br>“이 자슥이,”<br>그래, ‘이 자슥’이다.<br>“까까 없다. 먹은 지 30분도 안 됐다. 꿈도 꾸지 마라, 이 자슥아.”]]></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닫힌 문 뒤에서도 발소리는 자란다, AI</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74810</link><pubDate>Fri, 16 Oct 2026 09: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74810</guid><description><![CDATA[아오! 가위 끝이 왼손 중지 옆을 살짝 긁고 지나갔다. 끝이 뭉뚝해서 괜찮지 않을까? 유심히 지켜보고 있으니 결국 피가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날이 무뎌졌어도 가위는 가위네. 집을 나서려다 빈 페트병이 눈에 들어와 분리수거만 할 생각이었는데 피를 보고 만다. 쩝.<br>명절에 누나네 식구들과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다. 그곳에 가려면 두 시간을 가야 한다. 지금은 물리적 거리를 나타내는 수치이지만, 한때는 심리적 거리이기도 했다. 가급적 직접 마주치지 않기 위한, 불꽃이 튀지 않는 삶을 위한 거리. 시간이 흐르면서 불꽃은 사그라들었고, 그 자리엔 사소한 불평들이 들어찼다. ‘삼촌, 이쪽으로 이사 와라. 너무 멀다.’ 첫째 조카의 투정. ‘아니, 지하철을 몇 번을 갈아타야 하는 거야?’ 나의 투덜거림. ‘멀미약은 먹었니?’ 누나의 근심. ‘고양이는 잘 있나요?’ 고양이의 낯가림으로 아직 인사도 제대로 트지 못한 조카 손주의 불만 섞인 안부. 그런 사소하고 일상적이며 특별할 거 없는 말들. 그렇게 원했지만 결코 얻을 수 없었던 삶들.<br>약속 전날, 조카 손주 둘에게 줄 돈과 누나에게 줄 돈을 봉투에 나눠 담고 스티커를 붙여 마무리한다. 두께는 다르지만, 봉투 세 개가 똑같다. 누나한테 갈 돈이 애들한테 가면 어쩌나? 헷갈릴까 봐 잠시 걱정을 하지만 곧 피식 웃고 만다. 복에 겨운 걱정이다. 그 옛날의 난, 걱정에 짓눌렸던 난 헷갈림을 근심하지 않았다. 명확하게 알았지만 선택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보단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선택을 했다고 하는 게 맞겠다. 문이 닫혀 있어 건너편을 볼 수 없었지만, 그 문 앞에 서 있으면 어떤 윤곽이 그려지는 게 느껴졌다. 그걸 그리는 주체는 다름 아닌 이곳에 있는 나. 그 ‘나’는 세상에 태어난 이후로 한 켜씩 쌓아 올려 촘촘하고 조밀하게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이 문을 여는 순간, 그 촘촘함과 조밀함이 다시 조직될 수 있을까? 그래서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br>점심만 먹기로 했었지만, 먼 거리를 온 만큼 저녁까지 먹고 가기로 한다. 내가 중학생 때 태어난 첫째 조카는 갓 태어난 생명의 연약함으로 나를 압도하며 충격에 빠뜨리더니, 그것도 모자라 40대 초반이었던 나를 할아버지로 만들어 또다시 충격에 빠뜨렸다. 하고 싶은 게임을 하지 못해 훌쩍이며 울던 둘째도 어느새 아빠가 되어 내년이면 학부모가 된다. 아직도 아이 때 모습이 눈에 선한데. 이 둘을 보고 있으면, 사랑하는 감정과 미안한 감정이 항상 동시에 올라오곤 한다. 지금 이 풍경은 누나가, 내가 연 문에서 비롯된 건 아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자연스럽게 열어준 문을 우리는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너무도 당연하게 변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만약 회피하지 않고 그때 그 문을 직접 열었다면, 우린 어떤 풍경 속에 들어와 있을까?<br>돌아오는 지하철 안. 누나와 두 조카가 준 세 뭉치의 선물을 들고 낑낑댄다. 자그마한 수박만 하던 멜론까지 덥석 받았더라면 너무 무겁다고 주저앉아서 울었을지도 모른다. 피곤하지만 마음은 편하고 넉넉하다. 집에서 출발하기 직전, 피를 보며 선홍빛 이미지가 뇌리에 가득했지만, 이날은 따뜻하고 푸근한 하루였다. 사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 아니겠냐고 말할 생각은 없다. 운명론까진 아니더라도 과거와 현재가 우리의 미래를 스케치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평온한 삶이라면 그 밑그림대로 색을 칠하며 그림을 그려 나갈 것이다. 하지만 때론 어긋나게 색을 칠하거나 아예 다른 밑그림을 그려야 할 때도 있을지 모른다. 그땐, 그때는 말이다... 미안하다. 뭐라고 해 줄 말이 없다. 산다는 게 그런 거 같다.<br>AI가 제시한 문장 : 닫힌 문 뒤에서도 발소리는 자란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콩밭, 팥밭</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73013</link><pubDate>Thu, 15 Oct 2026 09: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73013</guid><description><![CDATA[보기 싫은 정치인이 있었다. 특정 지역에 기반이 있다는 것만으로 국회의원이 되고 지역의 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나는 그 지역과 아무 관련이 없으니, 내가 모르는 어떤 기여가 있겠지 싶다가도 하는 행동이나 말이 전해져 올 때마다 낯을 찌푸렸다. 뭐,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모든 정치인의 적절치 못한 언행이 트럼프의 등장으로 매운맛에서 보통 맛으로 상대적 절하가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는 점. 그래도 보기 싫은 건 보기 싫은 거지만. 지난 선거에서 그 정치인은 선택받지 못했다. 한동안은 안 보겠구나.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br>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비뚤어진 것일 수도 있겠다. 무언가 낯을 찌푸릴 대상을 반드시 하나라도 찾아내고 말겠다는, 그런 마뜩잖은 심보가 내 안에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게다가 이번엔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이 둘이 사라지면 다음번엔 셋을 찾고, 그리고 나선 넷을 찾게 될까? 예전에 썼듯이 정치라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정치인을 생각해 본다. 그들이 판단한 가장 잘 되는 장사는 조롱과 비하와 혐오와 선동. 다시 말해 그걸 소비해 줄 대상이 있단 얘기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했지 아마. 내가 낯을 찌푸리는 그 둘을 향해 나 역시 혐오를 되돌리는 거 같아 맘이 안 좋다. 이 무한 증식, 무한루프에서 발을 빼야 하는데, 세상에 관심을 유지한 채 그럴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nbsp;]]></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도어락</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70964</link><pubDate>Wed, 14 Oct 2026 05: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70964</guid><description><![CDATA[현관문이 닫히면서 도어락이 잠기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신호음이 다른 때와 좀 다른 거 같다. 제대로 잠긴 거야? 스쳐 지나가는 의문. 1년 전쯤 전자 도어락을 처음 설치한 이래로 여전히 의심을 내려놓지 못한다. 수동 자물쇠를 더 설치할까? 얼마 전 벽면에 걸쇠가 걸리는 부분이 나사가 살짝 헐거워지면서 실제로 잠기지 않는 사태가 벌어진 적도 있다. 자물쇠가 잠기지 않으면, 자물쇠의 존재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br>오늘따라 도어락의 신호음이 머리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2년쯤 됐나? 산 정상에 처음 오르던 날, 나를 불안하게 했던 건 두 가지였다. 산을 타는 행위에 익숙하지 않던 나 자신, 그리고 내가 지금도 걷고 있는 이 길. 이 길을 얼마나 걸어야 꼭대기에 도달할까? 더 궁극적으론 이 길을 따라가면 정상에 닿을 수 있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정상에 도착했다. 잠깐의 휴식. 아쉬움에 억지로 발걸음을 떼어놓는데 저만치에 모지리가 보인다. 도시락을 먹는 등산객 뒤에 앉아 상황을 살피는 중이다. 아우, 모자란 녀석, 앞에서 굴러도 모자랄 판에. 다가가서 닭가슴살 포장을 뜯자, 얼른 달려와서 허겁지겁 먹어 치운다. 지난번 봤을 땐 배불리 먹은 거 같더니 오늘은 왜 이런대? 너, 이제 여기 혼자뿐인데 아직도 스텔스 모드 걸고 다니니? 좀 당차게 삥뜯고 다녀라, 응? 자꾸 도어락의 신호음이 내 안 어딘가에서 울려 퍼진다.<br>같은 날 밤. 마룻바닥에 앉아 소파에 등을 기댄 채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인상을 쓰고 있다. 정확히는 쇼핑 앱에 찜해둔 경량 등산화를 보면서 갈등 중이다. 아직까진 일반 러닝화나 워킹화를 신고서 산에 다니는 게 큰 문제가 없다. 그런데 더 높은 산, 암반이 많이 노출된 산에 갈 거면 지금 신는 신발들은 미끄럽다. 그래서 이 등산화를 예전에 찜해둔 건데…. 문제는 그땐 고관절이 불편하지 않았고, 지금은 무리하면 아프다. 그러니까 일주일에 두 번 정상에 오르는 건 괜찮은데, 세 번 오르면 다음 날 통증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앞으로 더 높은 산을 찾아 나설까? 어디선가 도어락의 신호음이 들린 거 같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함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69096</link><pubDate>Tue, 13 Oct 2026 09: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69096</guid><description><![CDATA[집에 있을 때 점심을 먹으려고 상을 차리면, 고양이는 쪼르르 캣타워로 올라간다. 굳이 졸려 보이지 않는데도 그렇게 한다. 그럼 난 말똥말똥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시선을 느끼며 숟가락을 뜬다. 밥 먹는 시각이 딱 정해진 건 아니지만, 내가 행동을 취하면 녀석은 언제나 자신의 잠자리를 찾아 들어가고 휴식을 취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휴식을 취하려고 한다. 고양이는 경험상 내가 밥을 먹고 나면 컴퓨터 앞에 앉아 뭔가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거창하게 양보나 배려란 단어를 쓰는 게 맞나 싶지만, 어쨌든 결과만 놓고 보면 그런 셈이다.<br>밤 9시 전후. 고양이가 내게 다가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사냥놀이를 시작한다. 이 시간에 해야 제맛이다. 반이 뚝 잘려 나간 너구리 꼬리를 5년 가까이 사냥했지만, 이 시간만큼은 항상 열정이 넘친다. 궁둥이를 실룩실룩. 실전은 고요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겠으나 녀석의 사냥은 요란스럽다. 덮치면서 기합을 넣기도 하고, 저 멀리서 응응거리며 뛰어오기도 한다. 어차피 실전을 뛸 일은 없을 테니 봐준다. 귀여우니까. 하루 중 이때는 고양이의 시간이다.<br>같이 살다 보니, 서로 알아가다 보니 상대를 배려하면서 나를 맞춰가기도 한다. 하지만 간혹 이럴 때도 있다. 다섯 시간 정도 소요된 비일상적 외출 후 간식을 주고 숨을 돌리는데 녀석은 또 간식을 달라고 보챈다.<br>"조금 전에 줬잖아! 꿈도 꾸지 마라, 고양이!"그 전에 다섯 시간 동안이나 까까를 못 먹었다. 그러니까 또 줘라, 까까!"그래서 나가기 전에 미리 줬잖아!"그래도 다섯 시간 동안 밥만 먹었으니까 더 내놔라, 까까!"어림도 없다, 이 자슥아!"냐앙! 삐뚜러질 테닷!<br>저만치 뛰어가는 녀석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 집에서 사람이랑 함께 살아본 게 거의 15년 전이다. 사실 그전에도 몇 사람을 제외하곤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건 내겐 아주 불편한 일이었다. 이젠,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일이 가능하기나 할까? 이쪽으로 다시 뛰어오는 녀석을 향해 나도 마주 달려가자, 녀석이 급커브를 틀어 안방으로 뛰어든다. 이 자슥, 너 거기 안 서냐!]]></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고양이 일기</category><title>고양이 일기_20</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67298</link><pubDate>Mon, 12 Oct 2026 10: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67298</guid><description><![CDATA[*** 영역 순찰을 하는 건지 모르겠으나 나를 끌고 집안을 한 바퀴 돌곤 한다. 내가 필요한 건 닫힌 문을 여는 문손잡이 용도다. 화장실 문 열어주면 한 번 쓱 훑어보고, 이어 붙박이장 문을 하나씩 열어주면 안에 들어갔다 나온다. 그 와중에 맘에 드는 자리가 있으면 자리 잡고 앉아 꾹꾹이와 골골송에 그루밍까지 세트로 시전하고 나온다. ***<br>“너, 영역 순찰하냐? 이 집구석에 너랑 나 말고 누가 있다고 그래? 보일러랑 에어컨 언니는 내가 불러야 어쩌다가 나오는 거구.”<br>(쫄래쫄래) 아저씨, 여기 열어봐봐.<br>“붙박이장 열라고? 너 또 내 겨울 롱패딩에 들어앉으려고 그러지?”<br>(빤히) 빨랑 열기나 해봐.<br>“그래, 자, 됐냐?”<br>(점프) 내가 너 여기 있을 줄 알았다. 이 붙박이장 완전 새 건데 왜 여기 들러붙어 있는 건데?귀신 : 저 삼층장이 40년이 훨씬 지난 거라 정말 편한데 거긴 오지 말라며... 그래서... 여기 있지...저건 내 펜트하우스다. 꼭대기에 방석 있는 거 보이지? 내꺼야, 내꺼. 고양이는 내 물건을 다른 것들이랑 나누지 않아.귀신 : 내 말이... 그쪽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그건 당연한 얘기고. 내 질문은 그게 아니잖아! 왜 여기 있냐고? 너 또 아저씨 잘 때 괴롭히려고 그러지?귀신 : 아니야! 고양이가 있는 집은 안 건드려! 재수 옴 붙는다고 옛날부터 명성이 자자한데 왜 굳이...이 귀신 나부랭이가 지금 나보고 재수 없다고 한 거냐?귀신 : 아니, 아니, 소문이, 명성이 그렇다는 거지, 내가 그랬다는 게 아니고. 아, 아, 아야, 아야...너 마침 잘 걸렸다. 까까 찔끔 먹고 또 기다릴 생각에 짜증 났었는데.귀신 : 아프다고! 그렇게 누르면 내 몸에 구멍 뚫린다니까!그러니까 이 옷에도 들러붙지 말란 말이야! 이 옷이 제일 비싼 거라 내가 방석으로 쓸 거라고!귀신 : 이 옷이 뭐가 비싸! 다른 집 가 보면 이거보다 비싼 옷이 널렸다고! 아야, 아프다니까!어, 그래? 이게 제일 비싼 게 아니야? ... 너 이 자식, 지금 우리 아저씨 찌질하다고 흉보냐?귀신 : 아, 그 말이 아니잖아!<br>“어이, 월이, 너 그 옷에 빵꾸 내지 마라. 그거 찢어지면 네가 돈 벌어 와야 한다.”<br>(고양이 발톱에 무언가 긁히는 소리) 귀신, 월이 : 응?<br>“뭔데? 무슨 소린데?”<br>야, 귀신 나부랭이, 너 다른 집 가서 돈 좀 가져올 수 있냐?귀신 : ... 지금 나한테 삥 뜯는 거냐? 그래도 상도덕이 있지, 어떻게 귀신한테...너 진짜 고양이 있는 집은 안 건드린 모양이구나? 고양이는 평생 집사 삥 뜯으면서 산다고. 거기에 귀신 하나 추가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민음 한국사 : 19세기, 인민의 탄생 - [민음 한국사 : 19세기, 인민의 탄생 - 조선 5]</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64479</link><pubDate>Sat, 10 Oct 2026 18: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6447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012539396&TPaperId=1756447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389/12/coveroff/e01253939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012539396&TPaperId=1756447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민음 한국사 : 19세기, 인민의 탄생 - 조선 5</a><br/>김정인 외 지음, 강응천 엮음 / 민음사 / 2021년 11월<br/></td></tr></table><br/>● 가파른 기울기의 변화 속도<br>18세기 영·정조 때에도 이미 상업의 확장은 전국을 아우르고 있었다. 한양 중심으로 정책적 육성 대상이었던 시전 상인과, 개성상인이나 경강상인처럼 지역과 유통망을 기반으로 해서 대규모 부를 이룬 상인들, 거기에 지방 장시에서 무엇이라도 팔았던 농민들까지. 이처럼 조선은 일부 지배층부터 일반 백성까지 규모의 차이는 있으나 상업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선은 철저한 유교 국가였다. 심지어 개혁 군주라 일컬어지는 정조조차 상업의 필요성만 인정하며 배척하지 않는 수준이었다. 이런 체제 아래서 부를 쌓은 상인들이 한 선택은 개혁이 아닌, 기존 세력을 등에 업는 편입이었다. 세도가나 권력에 줄을 댄 상인들은 그들의 보호 아래 세를 늘렸고, 유통과 공급 등 물자의 흐름뿐만 아니라 생산까지 장악했다. 19세기 조선의 상인들은 상업 자본으로 가는 문을 열어젖히고 있었다.<br>하지만 돈과 권력의 결탁은 언제나 부작용이 만만치 않은 법이다. 대상인은 더 많은 이익을 남기기 위해, 세도가는 그 이익을 나누기 위해 서로를 이용했고, 그 과정에서 중소 상인이 몰락하고 빈민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국가 재정이 파탄이 날 지경인데도 상업에서 비롯되는 이익을 조세 체계에 본격적으로 끌어들이는 대신 권력의 사익을 챙기는 돈 보따리로 보았고, 그 결과 민의 근본이라던 농민들은 세금에 짓눌려 압사당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서북지방에서 홍경래의 난이, 서울에서 빈민들의 쌀 폭동이 일어나고 만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벅찬 판국인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드디어 은둔의 나라 조선에 본격적으로 이양선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서술한 내용은 유교적 측면에서 봤을 때 느껴지는 격세지감이었다. 그러나 이양선의 출몰과 그들의 통상 요구는 조선 전체에 던져진 급격한 충격파였다. 결국 1876년 강화도에서 조일수호조규(강화도 조약)를 일본과 체결하면서 조선은 강제로 개항하게 된다. 힘에서 밀린 탓에 조선에 불리한 불평등 조약이었고, 이후 다른 서구 열강들과 맺은 불평등 조약의 기초가 됐다. 하지만 더욱 어이없는 건 우리 스스로 관세를 포기했다는 점이다. 그만큼 당시의 관료들은 새로운 무역 질서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br>2026년. 세계는 AI와 전쟁의 열풍이다. 그 둘과 연관된 산업이 활활 불타오르며 경제를 이끌어가지만, 공교롭게도 그 둘 덕에 한 치 앞을 내다보기도 쉽지 않다. 산업 혁명과 인터넷 혁명에 이어 AI는 또 하나의 혁명이 될 것인지 기로에 서 있다. 활용의 가능성은 한도 끝도 없지만 그 가능성이 오히려 앞길을 막고 있고, 그 가능성을 애초에 뜬구름처럼 보는 관점도 있다.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사용하느냐의 논쟁을 넘어 SF적이고 묵시록적인 관점에 집착하다 AI는 어느새 전쟁의 도구로, 해킹의 도구로, 더욱 광범위하게는 일상에서 남을 해코지하기 위한 보조 수단으로 사용되기까지 한다. 러시아와 미국이 각각 한쪽을 차지하는 두 개의 전쟁은 그들의 명성(?)답지 않게 장기전에 돌입한 상태고, 전장에서 인명 피해는 물론 솟구치는 물가로 온 세상이 들썩거린다. 한편, 그동안 세상을 지배했던 자유무역도 미국에 의해 기세가 꺾였다. 트럼프는 자국의 이익을 위한다며 관세를 대폭 높였고, 관세를 낮추는 대가로 미국 내 직접 투자를 원했다. 외교적 결례와 돌발행동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최강국 대통령 덕에 대한민국은 또 한 번 새로운 무역 질서와 맞닥뜨렸다. 변화의 기울기가 너무 가팔라 어느 순간 아무도 모르게 임계점을 돌파해 버릴 것만 같은 요즘이다.<br>● 터져 나오는 갈등들<br>19세기 조선은 세도 정치의 시대다.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가 대표적인 외척이자 세도 가문이었고, 흥선대원군 이후론 기존의 세도 가문과 딱 들어맞진 않지만, 전주 이씨 종친들과 명성황후의 본가인 민씨 가문이 권세를 누렸다. 그들은 때론 손을 잡고 때론 견제하면서 권력을 탐했고, 이 시기의 왕들 역시 왕권 강화를 위해 때때로 이들을 이용했다. 더구나 이 시기는 일본과 청이 본격적으로 우리 내정에 간섭하던 때였다. 유학을 고수하는 유생들을 중심으로 외래 문물을 거세게 반대하는 세력이 한쪽에 있었다면, 그 반대쪽엔 고종을 중심으로 신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세력이 자리를 잡았다. 그뿐이 아니다. 정부 정책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것이냐, 아니면 현실에 등 돌린 채 학문에만 정진할 것이냐, 외래 문물을 배척하고 화이사상을 지켜낼 것이냐, 아니면 시대에 맞춰 유학도 변화를 택할 것이냐. 또는 점진적으로 개방할 것이냐, 아니면 전면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냐, 청을 모델로 삼을 것이냐, 아니면 일본을 모델로 삼을 것이냐. 척화를 주장하는 쪽도, 문호를 개방하자는 쪽도 그야말로 가지각색이었다. 심지어 권력을 탐하는 자들은 청을 등에 업었다가도 곧 일본으로 돌아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갈등은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으로 터져 나오면서 개혁의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온다.<br>2026년. 진보와 보수의 갈등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만, 지금의 양상은 다른 때와 달라 보인다.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에 매몰된 진보는 개혁에 대한 추진력을 상실한 채 실용과 원칙 사이에서 방황하고, 보수는 철저한 차별과 배제를 바탕으로 극우가 모든 것을 휩쓴다. 세대 간의 갈등도 있다. 거칠게는 대략 20년 터울로 묶여서 다른 집단과 가치관의 차이가 드러나고, 그로 인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확연히 구별된다. 경계를 뭉뚱그려 길을 터야 할 정치는 그럴 생각은커녕 경계를 더욱 확실히 새기는 중이고, 자본주의의 단물을 고르게 퍼뜨려야 할 경제 역시 구조적 모순에 허우적대며 특정 집단에게만 그 과실을 허용하고 있다. 얼핏 보면 이 모든 것들이 아주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듯하지만, 핵심엔 딱 하나, 아주 중요한 게 있다. 바로 나의 이익. 지극히 원초적인 욕구고, 지극히 원초적인 충돌이라 어쩌면 해소하고 중재하는 게 더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br>● 민(民)의 저항<br>세도 정치 아래의 조선은 그야말로 탐학의 시대였다. 조정의 대신부터 지방의 하급 관리까지, 그들이 뽑아 먹을 수 있는 건 모조리 뽑아 먹으려 들었다. 한계에 몰린 사람들은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 어쩌면 들고 일어나는 게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민란이 번졌고, 중앙 정부는 때론 힘으로, 때론 회유로 버텼다. 천주교와 동학은 사람들 사이에 평등과 존엄이란 개념을 퍼뜨렸다. 신분제를 정면으로 들이받는 이 개념을 지배 계급은 용납할 수 없었기에 박해와 탄압으로 맞섰다.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동학농민운동은 외세까지 동원된 무력에 무참히 짓밟혔지만, 그 변화의 흐름과 의지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조선은 어떤 방식으로든 바뀌어야 했다.<br>그런 분위기 속에서 1890년대, 독립협회가 만들어지고 만민공동회가 열린다. 독립협회는 초기에만 해도 보수와 개화가 모두 모인 친목 단체의 느낌이었지만, 서서히 정부를 견제하고 시대에 맞는 시스템을 만들어 내기 위한 결사체로 변모한다. 독립협회가 처음 주체했던 만민공동회는 시간이 흐를수록 일반 민중들이 주체가 되었고, 토론과 시위와 집회를 통해 정부를 압박하면서 일정 성과를 거두어냈다. 이처럼 19세기의 마지막 거대한 흐름은 유학도, 양반도 아닌, 평등과 자강을 꿈꾸는, 민중의 열망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1897년에 수립된 대한제국은 독립협회를 해산하고 만민공동회를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맞섰고, 전제군주제를 더욱 명확히 하며 19세기에 마침표를 찍는다.<br>21세기. 예전과 달리 정보의 흐름은 정말 다양해졌고, 그 속도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빨라졌다. 물론 고급 정보는 예나 지금이나 접근이 제한적이다. 그러다 보니 양만큼 질은 따라가지 못하고, 심지어 오류투성이인 정보가 사실인 양 세상에 유포된다. 사람들은 지위를 막론하고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의견을 표출하지만, 그 근거가 되는 정보가 불확실하다 보니 결과가 어디로 튈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지금까지 나타나는 경향은, 정말 못 살겠으니 우리만이라도 잘살아 보자. 현대 사회에선 민란이나 변란의 형태보단 참정권의 행사로 저항이 표출된다고 봤을 때, 바로 저 경향이 극우 정권이나 정당이 득세하고 보호주의가 되살아난 이유일 테다. 그렇다고 세상 모든 사람이 이런 건 아니다. 정보가 불확실하고 파편화되었다는 것은, 사람들 역시 이리저리 쪼개져 있다는 말과 같을 것이다. 경향성은 나타났지만 그 방향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게 현재 상황이기도 하다.<br>----------<br>그동안 누적되어 온 오류와 모순을 세상은 더 이상 억누르지 못하고 있다. ‘못 살겠으니 좀 바꿔보자’라고 외치며 사람들은 참정권을 통해 다양한 시도를 해보지만, 정치 또한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어쩌면 공교롭게도 정치 자체가 그 변화의 대상이 되어야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건 권력의 사유화에 대해선 아직 많은 사람이 한목소리로 반대를 외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아직 기회는 있을 것이다. 19세기의 조선은 무척이나 어려운 여건이었지만 그래도 움켜쥘 수 있었던 기회들을 날려버린 채 암울한 20세기의 시작을 맞이했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은 어떤 길을 가게 될까? 나만 잘 살면, 우리만 잘 살면 그만일까? 모든 게 연결된 이 세상에서 그런 일이 가능하기나 한 걸까? 수없는 싸움과 좌절을 거치며 22세기를 열 때, 아무리 못해도 우리 손에 희망 한 줌을 꼭 쥐고 있기를 바란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389/12/cover150/e01253939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3891205</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같은 문 앞에 몇 번을 서든, 여는 손은 매번 다른 손이다, AI</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62261</link><pubDate>Fri, 09 Oct 2026 09: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62261</guid><description><![CDATA[한때 난 매번 똑같은 상황에 직면한 적이 있었다. 삶이 도돌이표 같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반목과, 그때그때를 넘기는 미봉책과, 다시금 쏟아지는 불만과…. 그런 것들이 쌓여 딱딱하게 다져지면 그곳에서 분노와 두려움이 자라났다. 분노는 충돌을, 두려움은 회피를 낳았고, 돌고 도는 순환의 끝에 설 때면, 나는 항상 같은 생각과 마주쳤다. 우린 어떻게 해야 하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방법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면, 그 해결책은 누구를 위한 것이지?<br>그 답은 지금도 모른다. 시간이 질문을 묻었고, 날뛰던 감정도 바람결에 날리듯 흩어버렸다. 그 시절, 뱅뱅 돌며 떠밀리듯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생각해 보면 내 감정의 자리는 언제나 달랐다. 어리둥절함에서 연민과 당혹으로, 분노와 혐오로, 아득한 막연함으로. 자리가 바뀔 때마다 질문을 대하는 내 태도도 바뀌었다. 하지만 결론은 항상 똑같았다. 할 수 있는 게 없구나. 답을 얻지 못한 난 또다시 쳇바퀴를 돌아야만 했다. 무한히 돌 것만 같던 그 쳇바퀴도 이젠 시간에 녹슬어버렸다.<br>고양이를 뒤쫓는다. 그렇게 악착같이 쫓지는 않는다. 고양이가 멈추면 다가가고, 다시 움직이면 또 쫓는다. 그러다 보면 내 무릎도 이제 녹이 슬어간다는 걸 깨닫곤 한다. 고양이는 곧 멈출 것이다. 그럼 서너 번에 걸쳐 귓속을 닦아줄 거고. 이걸 하기 싫어서 녀석은 나를 꼬리에 붙이고 온 집안을 돌아다닌다.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방문을 닫아본 적이 없다. 화장실 문을 제외하곤 항상 열려 있어서 그냥 아무렇지 않게 들락날락한다. 이제 와 든 생각이지만, 언제나 질문에 가로막혔던 나는, 그럼에도 해결책을 알고 있었던 나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문을 이미 열어젖혔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열었다고 해서 꼭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삶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안방 문 앞에 서서 가만히 있자, 방 안에서 고양이가 무슨 일인가 싶어 빤히 쳐다본다. 그 시절, 방 안에 있던 건 고양이가 아니었다.<br>AI가 제시한 문장 :&nbsp;같은 문 앞에 몇 번을 서든, 여는 손은 매번 다른 손이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돈봉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60323</link><pubDate>Thu, 08 Oct 2026 09: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60323</guid><description><![CDATA[명절 전이었다. 조카에게 카톡으로 질문을 던졌다. 너희 엄마, 뭐 필요한 거 있어 보이든? 돌아온 답은 예상대로였다. 엄마 까다로워. 뭘 사줘도 맘에 안 들어 해. 사실이다. 예민하고 까탈스럽다. 곧이어 추가 답변. 그래서 오히려 편해. 그냥 돈으로 담아 드리면 되거든. 그래, 취향이 까다로운 사람한텐 돈을 주고 알아서 사게 하는 게 더 좋은 방법이긴 하다. 봉투에 돈을 담는다. 사실 이미 예상했던 터라 봉투도 미리 준비해 뒀었다. 그냥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br>컴퓨터를 켜지도 않았는데 책상 앞에 앉아 고민 중이다. 스마트폰 검색 내용을 살피면서 아래로 스크롤 하는데 고양이가 의자 밑으로 지나가더니 급식기 앞에 선다. 깔짝깔짝. 한입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만 나를 쳐다본다. 사료가 먹고 싶은 게 아니다. 까까를 먹고 싶어서 나를 떠보는 중이다. 녀석과 마주 보던 눈을 매몰차게 돌린다. 가서 자라, 잘 시간이다. 다시 스마트폰에 집중. 화면엔 자동 화장실과 관련된 후기들이 쭉 떠 있다. 적당한 가격대와 적은 소음과 낮은 오작동 빈도와 편리한 AS, 마지막으로 아이의 배변 행위에 걸맞은 작동 방식까지. 제품 하나를 정했고, AI에게 질문해서 비교·분석까지 했다. 사실 이미 두어 달 전에 끝냈다. 그리고 지금 또 고민 중이다.<br>고양이가 터덜터덜 문밖으로 걸어가더니 캣타워로 들어간다. 까까는 포기한 모양이다. 저 녀석한테 돈봉투를 건넬 수는 없고. 이걸 사면 저 녀석이 써 줄까? 그동안 돈 들여 샀지만, 그 제품이 담겨온 박스만큼도 사용해 주지 않은 상품들이 느닷없이 마루를 행진한다. 숨숨집, 장난감, 물그릇, 전기방석(온), 또 전기방석(냉), 입맛에 맞지 않는 간식들. 열린 베란다 창문으로 하나씩 하나씩 밑으로 떨어진다. 이번에 사는 건 무게나 비용 모두 묵직해서 타격감이 꽤 클 텐데. 내년에 맘 편히 여행 다녀오려면 이 녀석이 이 제품을 써 줘야 하는데. 걱정을 한가득 품고서 녀석을 살피니 방석에 머리 박고 잠을 청하는 모양이다. 저 얄미운 녀석. 봉투에 돈을 담아서 머리통을 한 대 갈기고 올까? 참자. 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더불어 녀석이 우리 집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날이다. 조그맣고 귀엽고 모든 걸 좋아했던 녀석. 그러고 보니, 나 사기당했네, 사기당했어.]]></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운명과 우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58528</link><pubDate>Wed, 07 Oct 2026 08: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58528</guid><description><![CDATA[이날은 유난히 미적거렸다. 산에 가야 하는데. 누가 등 떠미는 것도 아닌데 왜 가야 하는 걸까? 지난주는 고관절이 아파서 운동을 쉬었고, 지지난주는 산에 갔었는데 모지리를 못 봤다. 모지리를 꼭 봐야 하나? 그래도 잘 있는 거 보면 좋잖아. 어기적대다가 어차피 쓰레기도 버려야 해서 꾸역꾸역 길을 나섰다. 다른 때보다 늦은 시각이었다.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서니 아파트 단지 후문 앞쪽 신호등이 막 빨간불로 바뀌는 게 보였다. 후문 쪽으로 가는데 왼쪽에서 승용차 하나가 나온다. 후문은 오전 출근 시간대만 차량이 통행할 수 있어서 이 시각엔 차가 다닐 수가 없다. 그래서 이 차가 진행할 방향은 내가 걸어 나오던 길뿐이다. 먼저 지나가라고 길옆으로 물러섰는데 차도 멈춰서 움직이지 않는다. 차 안이 잘 보이지 않아서 잠깐 주저하다가 내가 먼저 차 앞을 가로질러 지나친다. 그 순간 경적 소리. 아주 짧게. 나한테 그런 건가 싶어 차 쪽을 뒤돌아 봤지만 별 반응이 없다. 햇빛이 창에 반사돼서 내부가 보이지도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다시 제 갈 길을 간다. 후문을 벗어나 건널목 앞에 섰는데 다시 짧게 빵. 내 시야에선 담에 가려 차가 완전히 보이지 않는다. 주변에 있는 누굴 부르는 건가 싶어 잠시 두리번거린다. 그 주변이 마침 그늘에 벤치들이 있는 자리라 어르신들과 아파트 주민들이 주르륵 앉아 쉬고 계시는 곳이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도 다들 두리번. 어르신들도 두리번. 뭔가 이유가 있겠지 싶어 관심 끄고 신호등을 바라본다. 모지리 보러 가야지.<br>그리고 쿵. 충돌하는 소리, 아니면 넘어지는 소리. 이어 브레이크 밟는 소리. 걸음을 옮겨 소리가 난 쪽을 봤더니 오토바이 한 대가 땅에 쓰러져 있었다. 아까 그 차는 우회전한 상태로 멈췄고, 조금 전 내가 서 있던 자리보다 조금 더 앞서 있었다. 소리가 한 번만 났던 걸로 봐서 둘이 부딪쳤다기보단 오토바이가 차를 피하다가 미끄러져 넘어진 듯하다. 다친 사람은 오토바이 운전자 한 명뿐인 거 같다. 불행 중 다행인 게 쓰러진 오토바이가 벤치 쪽을 덮치진 않았다. 많이 다치진 않았으면 좋겠구나. 몸이 재산인데.<br>길을 걸으며 생각한다. 내가 집에서 1분만, 아니 몇십 초만 늦게 나왔으면 저 상황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내가 똑같은 경로를 걸었다면, 차도, 오토바이도 나를 보고 멈췄거나 방향을 바꿨을 테니 아예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예 내가 그 사고에 포함되었을 수도 있다. 미끄러져 넘어진 오토바이가 후문을 나가려던 나를 덮쳤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애초에 난 왜 미적거렸지? 다른 때처럼 나왔다면 이 상황을 아예 몰랐을 거다. 2주간 모지리를 못 봤고, 지난 주엔 고관절이 불편해서 운동을 쉬었다. 고관절 쪽이 불편한지는 한 달 정도 되어 간다. 가까이 벌어진 현상으론 이런 것들 때문에 산에 갈지 말지 고민했었다. 그런데 따지고 들어가면, 오른쪽 고관절이 불편한 건 내 무게 중심이 오른쪽으로 쏠린 자세 탓이고, 십몇 년 동안 장사하면서 같은 자세로 서 있을 때가 많았던 탓이다. 모지리가 신경 쓰이는 건 작년 9월 이후에 봤던 고양이 중 유일하게 이 녀석만 자리를 지킨 탓이고, 더 멀리는 내가 고양이를 입양하면서 고양이에 대한 관점이 바뀐 탓이기도 하다. 내가 저 사고에 포함되었더라면, 이 모든 것들이 켜켜이 쌓여 기반을 다진 꼴이 되나? 세상에나, 줄줄이 낚여 올라오는 생각에 숨 막혀 죽겠다. 이래서 ‘운명’이란 단어가 신비하고 모호하고 매력적인 거구나. 이래서 ‘우연’이란 단어가 삶에 숨통을 틔워주는 거구나. 에라, 모르겠다. 걷자. 목표는 산 정상. 중간에 뭐가 있든 내 알 바 아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두리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56828</link><pubDate>Tue, 06 Oct 2026 09: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56828</guid><description><![CDATA[오른손을 쫙 피고 들여다본다. 올해 들어서 오른쪽 손가락 관절 일부가 통증을 호소하곤 한다. 청소하거나 무언가 무거운 물건을 나를 때처럼 일정 시간 이상 힘이 가해지면 그렇다. 그럴 때마다 손가락을 쫙 펴보지만, 축 처진 어깨처럼 금방 오그라든다. 하아, 세월 진짜. 아직 다섯 살인 고양이가 높은 곳에 올라앉아 바닥에 있는 나를 내려다본다. 언젠가 고양이도 예전 같지 않을 텐데, 그때가 되면 나처럼 무심한 세월에 투덜댈까?<br>오른손을 쥐락펴락 해본다. 움직일 때마다 감각이 느껴진다. 내 모든 감각은 나를 정의한다. 정의한다고? 그보단 인식한다는 표현이 맞겠다. 나를 인식하고, 고양이를 인식하고, 그 너머 세상을 인식한다. 세월이 흘러서 죽음과 맞닥뜨리면, 무(無)가 된다면, 대상을 인식하던 나는 증발하듯 단절되는 걸까? 누구나 몸의 퇴행을 겪으며 육체의 소멸은 당연하게 여기지만, 정신의 소멸은 그만큼 확신하지 않는다. 물질의 영역을 넘어서 종교나 철학, 또는 미지의 영역이라 그러겠지. 지금 나를 인식하고 있는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는 완전히 지워질까?<br>오른손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뒤집어본다. 이 모든 걸 인식하는 나는 태어나기 전엔 무엇이었을까? 아니, 사실 그건 별로 궁금하지 않다. 죽음 이후가, 완전한 무(無)가 된다는 게 가장 궁금하다. 그러고 보니, 이 의문에도 내 이기심이 들어가 있는 모양이다. 이전에 무엇이었든, 이후에 무엇이든, 지금의 내가 완전히 지워지듯이 사라지는 게 살짝 억울한 거 보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이전의 내가 있었을까?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후의 내가 존재할까? 생각 속에서 방향을 상실하면 언제나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또 나뿐이다. 계속 나를 쳐다보는 고양이에게 묻는다. 고양이, 너는 이 막막함과 이 또렷함이 뒤섞인 이질감을 어떻게 생각하니?<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고양이 일기</category><title>고양이 일기_19</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55044</link><pubDate>Mon, 05 Oct 2026 08: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55044</guid><description><![CDATA[*** 고양이를 입양하고 나서 가장 많이 집을 비웠던 시간이 53시간이었던 듯싶다. 2박3일 일정의 일본 여행이었지만 느낌상 1박2일 같았던 교토 구경. 내년 계획 중인 여행은 그보다 10시간 정도 더 길듯한데. 여러모로 고민이다. ***<br>아저씨가 사라진 지 삼 일째. 밤이 두 번 지나갈 동안 간식을 못 먹었다. 해가 세 번째 아침 인사를 건넸는데 아직도 변기 물이 안 내려가고 있다. 내내 켜져 있는 마루 전등불이 두 번이나 기세를 잃었는데도 사냥놀이 한 번 하지 못했다. 이, 이 형편없는 복지를 내 절대로 잊지 않으리라. 화장실을 하나 더 만들었을 때, 커다란 가방을 등에 둘러맸을 때, 두세 배나 길게 열심히 빠이빠이를 할 때, 난데없이 간식을 퍼줄 때, 알아챘어야 했다. 이 멍청한 고양이 같으니. 까까에 히죽대던 과거의 난 얼마나 바보 같았던가. 앞으론 절대 까까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고양이별에 연락해서 감시 모드를 암살 모드로 바꿀 수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돌아오기만 해 봐라. 자고 있을 때 명치를 꾹 밟고 지나갈 테다. 냥, 까까 먹고 싶다. 밥통이 무미건조하게 비명을 내지르며 밥알을 내뱉는다. 하루 세 번. 이 좁은 세상에 나를 생각하는 건 밥통뿐이구나. 미안한데, 밥통아, 밥 말고 까까를 뱉어주면 안 될까? 이런! 이런! 미안하다니! 고양이가 미안하다니!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감정을. 내가 미쳐가는 중인가? 아악, 집고양이가 어떻게 밥만 먹고 살 수가 있냐고!]]></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핑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52400</link><pubDate>Sat, 03 Oct 2026 15: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52400</guid><description><![CDATA[집안은 비교적 단조롭다. 공간은 변함없고, 가구는 굳건하다. 까만 고양이와 마른 집사가 간혹 투닥대지만, 그 역시 5년이나 지속되었던 일이라 소란스러운 고요에 가깝다. 계절의 변화도 이 안에선 다채롭지 않다. 드나드는 바람이 시원해진 이후론 더욱 그렇다. 남아 있는 여름의 흔적이라곤 내 옷차림과 여름용 홑이불과 그 이불을 덮고 잠들었다가 잠결에 저 멀리 내치는 내 행동 정도. 그걸 제외하면 가을의 영역이 폭넓게 여름의 뒤꽁무니를 뒤덮고 있다. 지루하다. 바깥보다 안을 좋아하는 나는 무덤덤함에 익숙하지만, 간혹 발작적으로 투덜댈 때가 있다. 아무 생각이 안 나!<br>컴퓨터 앞에 앉아 쓸데없이 머리만 굴리다가 고양이의 동태를 슬쩍 살핀다. 캣타워에서 방석에 머리를 기대고 자는 중이다. 이제 곧 내려와 까까 내놓으라고 보챌 시각이다. 점심 먹고 한 시간이 넘게 모니터와 눈싸움을 벌였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여름이 몽니를 부린 것일까? 잠결에 이불을 걷어차는 내 발길질에 차이기라도 했을까? 이 집구석에서 유일하게 활기찼던 내 상상력을 함께 데리고 간 모양이다. 네가 그걸 어디에 써먹으려고! 에잉, 오늘은 뜨거운 김치찌개나 끓여서 가을이나 반겨야겠다. 어이 고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여름이 손잡고 창문 틈으로 끌고 나가는 애 있으면 좀 챙겨둬라. 걔 없으면, 나 너무 심심해서 안 되거든.<br>꼬리말) 정말, 정말 여름이 간 거 같다. 이 글을 쓴 뒤로 며칠 사이에 이불과 나는 새벽녘, 떨어질 수 없는 한 몸이 됐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돌아오지 않는 길도, 걸었다는 사실만은 남는다, AI</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50139</link><pubDate>Fri, 02 Oct 2026 08: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50139</guid><description><![CDATA[내 부모님은 두 분 모두 1920년대생이다. 큰누나는 50년대, 누나는 60년대, 나는 70년대에 태어났다. 부모님과 세대 차이는 말할 것도 없고 자식끼리도 세대 차이가 있다. 큰누나는 어린 시절을 다른 곳에서 보냈지만, 누나와 나는 어머니의 극진한 보호 속에서 컸다. 과보호의 피해는 이후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돌아갔지만, 누나의 타격이 가장 컸다고 해야겠다. 나는 누나를 반면교사 삼았으나 누나는 그럴 대상조차 없어서 몸소 부딪히고 깨져야 했으니까. 큰누나는 일찍 결혼해서 출가한 탓에 그 혼돈을 직접 겪진 않았다. 그래도 웬만한 과정을 다 듣거나 지켜봤고, 일이 왜 이렇게 됐는지 충분히 판단할 수 있었다. 그러니 큰누나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었다.<br>하지만 큰누나는 어머니가 했던 것처럼 자식들에게 똑같이 집착했다. 특히 아들에게. 세부적인 사건·사고는 달랐지만, 어머니와 누나와 내가 휩쓸렸던 혼란에 큰누나 역시 휩쓸리고 말았다. 달랐던 점이라면, 내가 빠진 혼란은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마무리됐고, 큰누나의 혼란은 큰누나가 직접 선을 그으면서 정돈했다는 거. 큰누나가 한 성격 하거든. 다만 뒤에 남은 서운함은 부모 처지에서든, 자식 처지에서든 어쩔 수 없는 일.<br>우린 살면서 항상 어딘가로 향한다. 가다가 가다가 계속 갈 수도 있고, 흠칫 놀라 되돌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되돌아왔다고 해서 그 자리가 처음과 같은 자리일 리도 없다. 어떤 경험을 했다면 사람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을 받고 변했을 테니까. 그런데 이렇게 변한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까? 희한하게도 우린 같은 방향으로 다시 전진하고 또 흠칫 놀라 돌아온다. 당사자가 이 모양인데 그걸 지켜본 타인이 다 알면서도 같은 방향으로 가는 건 사실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러니까 우린 살면서 항상 어딘가로 향한다. 삶의 굵직한 방향성을 따라 어떤 대로를 따라 걷다가 벽에 부딪혀 다른 길로 되돌아와서 멈춰 선다. 잠시 망설이다 다시 비슷한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하지만 이전에 갔던 길은 아니다. 우리 발자국은 언제나 한 방향만 향한다. 삶의 모든 길은 일방통행일지도 모르겠다.<br>꼬리말) 글의 제목이 AI가 내놓은 문장이다. 듣자마자 ‘함흥차사’가 떠올랐지만 바로 고개를 저었고, 다음엔 다소 추상적인 이미지의 ‘길’을 생각해 봤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복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48411</link><pubDate>Thu, 01 Oct 2026 08: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48411</guid><description><![CDATA[대공원 그 아저씨가 하루 입원을 할 일이 있었다. 흔히 볼 수 없는 엄청난 두 자릿수 주식 수익률(단, 마이너스)에 너무나 감동한 나머지 두어 달에 걸쳐 매주 주말마다 일본 여행을 다녀오더니 평일엔 쉬지 않고 일에 매진하는, 그야말로 치열한 삶을 7월부터 살았다. 그러다 팔꿈치 쪽에 기스가 나는 불상사가 발생했고, 그는 마지못해 하루만 병원 신세를 지기로 했다.<br>6인 병실. 중국인 노인분이 유튜브를 크게 틀어놓고 병실 생활을 참아내고 있었다. 베트남 환자분은 애인이 간병을 담당하며 알콩달콩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나라 노인 한 분은 아내가 간병을 맡았는데, 환장의 티키타카로 말씀들을 쏘아 올리며 세월을 감내하는 중이었다. 대공원 그 아저씨는 꾹 참으며 조용히 밤을 기다렸다. 미안하고 조심스러운 마음 같은 건 진작에 사라졌다. 드디어 밤이 왔고, 조용히 누워 눈을 감았다. 편안한 마음으로.<br>내 경험에 따르면, 대공원 그 아저씨의 코골이는 가히 예술의 경지다. 듣는 이의 신경을 들었다 놨다 하는 스펙터클한 높낮이와, 심장을 덜컥 하게 만드는 폭풍전야 같은 무호흡과, 정신을 혼미하게 할 정도로 쉼 없이 휘몰아치는 들숨 날숨의 향연은 정말이지…. 복수의 밤이 지나갔고, 그의 모험담은 내게 전설이 됐다. 아, 좀, 적당히 좀 살자, 이 아저씨야.<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비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45104</link><pubDate>Wed, 30 Sep 2026 09: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45104</guid><description><![CDATA[새벽엔 서늘하고 낮엔 살짝 덥고. 일교차가 벌어지며 환절기 느낌의 계절로 들어서면 여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다. 나처럼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 사람이 많은 집 밖에선 아는 체도 하지 않지만, 집 안에선 철썩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조심조심 들러붙어 간질이듯 얼쩡대다가, 불현듯 존재감을 폭발시킨 후 눈물 콧물 쏙 뺄 만큼 매콤하게 내 온몸을 휘감는다. 어찌나 영악한지 먹을 때와 잘 때는 잠시 뒤로 물러난다. 먹고 자게는 해 줘야 맘껏 괴롭힐 수 있으니까.<br>알레르기 비염이 찾아왔다. 반갑지도 않은 것이 꼭 때가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덮치곤 한다. 재채기와 콧물이 상승 작용을 일으키고, 종일 시달리다 보면 어깻죽지에 머리까지 지끈거릴 정도로 아프다. 어떤 일에 집중하기도 어렵고, 코를 간질이는 재채기 전조 증상에 어쩔 줄 몰라 하면 고양이도 저만치 도망을 간다. 못된 녀석 같으니. 언제 기침만 해 봐. 그땐 나도 저만치 도망가 버릴 거야! 5일째 시달리는 중인데, 어제는 일하고 들어와서 오늘 아침까지 무려 12시간을 잤다. 쌓이는 건 신경질과 무력감과 코를 푼 휴지 무더기.<br>다행히 최악은 아니다. 최악이라면, 주어진 상황에 따라 나를 파괴하고 싶을 만큼 좌절과 분노에 사로잡힌다. 덕택에 인간의 이성이 이토록 나약한 것이었던가를 깨닫기는 했지만. 오늘은 병원에 가봐야겠다. 코를 풀 때마다, 재채기할 때마다 한 꺼풀씩 내가 사라지는 느낌이다. 그러다 날것의 내가 나타나면…. 흠, 브루스 배너도 알레르기 비염이 있었을까?]]></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42849</link><pubDate>Tue, 29 Sep 2026 09: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42849</guid><description><![CDATA[아침에 얼굴을 때리는 햇살 때문에 눈을 뜬다. 쓰다듬는단 표현을 쓰고 싶었지만, 미련이 남은 여름은 심술을 가득 담아 아직도 햇살을 휘두르는 중이다. 화끈함에 벼락같이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캣타워 해먹 안에서 나를 살피는 눈과 마주친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했던가. 오래 같이 지내다 보니 고양이의 눈도 똑같다는 걸 알게 됐다. 이제 일어날 거냐? 기대와 의문이 눈을 통해 철철 흘러나오고 있다. 그래, 일어난다. 물을 마시고 사람 화장실 갔다가 고양이 화장실로. 어느새 뒤따라온 고양이는 부지런히 앞서 달려가더니 빗이 있는 곳에 멈춘다. 이번에 눈에 담긴 감정은 조급함. 빨리 빗질하고 간식 내놔라. 고양이 너도 내 나이 되면 알겠지만, 아침에 막 일어났을 땐 온몸이 뻣뻣하거든. 좀 천천히 하자, 응?<br>아침 일과를 무사히 마쳤다. 청소를 끝내고 고양이 식기 다 닦고 간식 급여까지. 간식 먹은 침을 열심히 얼굴에 펴 바르던 녀석이 갑자기 마루 베란다 안쪽으로 자취를 감춘다. 따라가 보니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수납공간 앞에 앉아 있다. 수납공간 문을 열어보란다. 양쪽 문을 하나씩 천천히 연다. 안에 쟁여뒀던 빈 상자를 하나씩 꺼내 썼더니 지금은 제법 틈이 보인다. 녀석도 그걸 안다. 그래서 틈 너머 안쪽으로 들어가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문이 열리자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녀석. 문에 찍힌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지 두 눈엔 두려움과 호기심이 섞여 있다. 하지만 박스를 두 발로 짚고 우뚝 선 녀석의 눈엔 호기심과 의지만 한가득이다. 나 역시 사심 가득한 눈빛을 쏘아 보내며 녀석의 머리통에 뽀뽀를 날린다. 안 그러면 녀석은 점프해서 박스 너머로 들어갈 거다.<br>뱃살을 만지작거리는 내 손과 머리통을 짓누르는 내 입술에 진저리를 치며 녀석이 물러난다. 슬쩍 뒤돌아보는 녀석의 눈에 짜증과 체념이 담겨 있다. 덤벼라, 고양이. 언제든 상대해 주마. 내 눈엔 아마도 자신감과 의지가 넘쳐흐르다 못해 광기가 엿보일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교훈. 마음을 열고, 빈틈을 보이고, 어떤 의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일방적이거나 과도하다면, 관계는 실패한다. 하지만, 머리통에 갈기는 뽀뽀는 내가 참을 수가 없지. 흐흐흐.<br>꼬리말) 딱 일주일 전에 썼던 글이다. 이번 주 아침 햇살은 기세가 많이 꺾였다. 갈수록 여름의 흔적을 가을이 지워내는 중이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고양이 일기</category><title>고양이 일기_18</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40898</link><pubDate>Mon, 28 Sep 2026 10: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40898</guid><description><![CDATA[*** 사회화에 실패하고 나서 월이는 나 빼고 모든 사람을 무서워한다. 손님이 오면 어딘가 숨어서 절대 나오지 않고, 인터폰에서 벨 소리만 울려도 낮은 포복 자세로 순식간에 사라진다. 핸드폰으로 통화를 해도 도망, 관리실에서 방송이 나와도 도망, 어떤 기계에서든 목소리만 들려도 줄행랑을 쳤다. 그나마 요즘은 핸드폰이나 방송에선 실제 사람이 출현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는지 자리를 지킨다. ***<br>(초겨울 어느 날)<br>(벽에 부착된 스피커 관찰 중) 내가 말이지, 눈에 보이거나 기척이 느껴지는 귀신은 하나도 안 무서운데... 이 집구석은 어떻게 된 게 보이지도, 냄새가 나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귀신이 있단 말이지. 저 위쪽 벽에 붙어있는 네모났고 구멍 숭숭 뚫린 거! 가끔 관리사무소 어쩌고 하면서 느닷없이 뭐라고 하는데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구.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br>“이제 날이 제법 춥네. 보일러를 켜야겠다.”<br>내가 둔해졌나? 고양이 체면이 말이 아닌데...<br>(기계음) “보일러 설정이 완료됐습니다.”<br>아이, 깜짝이야! (후다닥) 뭐냐, 뭐냐? 이 여자는 또 누구냐? 어디야, 어디?<br>“야, 겨울에 한두 번씩 나오는 보일러 언니잖아? 뭐가 무섭다고 소파 밑으로 들어가냐? 아우, 쫄보 자슥.”<br>(여름 어느 날)<br>“새 에어컨이 좋긴 좋구나. 바깥에서 핸드폰으로 조작할 수도 있고, 전기요금도 덜 나오고.”<br>(뒹굴) 시원하네. 여기가 천국이네. 천국은 고양이별보다 더 좋나? 에라, 모르겠다. (뒹굴)<br>“아직 초여름이니까 밤에는 좀 끄자.”<br>(기계음) “AI 모드로 0.2kW를 절약했습니다.”<br>우와, 우와! (후다닥후다닥)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야?! 아무 기척도 없었는데...<br>“겁나 빠르네, 자슥. 침대 밑으로 갔냐? 이제 이 목소리 여름엔 매일 들을 거야. 에어컨 언니니까 너무 놀라지 마라.”<br>아니, 무슨 기척 없는 언니들이 이렇게 많아! 이러니까 아저씨가 예전에 맨날 가위눌렸지!<br>“3D로 사람이 튀어나오게 만들면, 저 녀석 제명대로 못 살겠네, 에휴. 옛날 &lt;링&gt; 영화가 무섭긴 했는데...”<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길은 걸을 때마다 다시 쓰인다, AI</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37842</link><pubDate>Sat, 26 Sep 2026 16: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37842</guid><description><![CDATA[“저것들은 맨날 져야.”<br>어머니는 프로야구 기아 타이거즈 팬이다. 화면을 슬쩍 봤더니 1:1이다. 엄마, 동점인데. 어차피 저것들은 질 거야. 내가 잘못 알고 있던 건지도 모른다. 안티 팬이었을까? 겉옷을 챙겨입고 나오자, 어머니가 묻는다. 어디 가게? 동네나 한 바퀴 돌려고요. 나도 같이 가자. 야구 안 보시구요? 어차피 져. 아무래도 안티다. 옷을 챙겨입고 나오다 얼른 돌아서더니 카네이션을 가슴에 단다. 그걸 달고 가시게요? 우리 아들이 사준 거니까 달고 가야지. 배시시 웃으시며 신발을 신는다. 이날, 어버이날이었다.<br>아파트 단지의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어머니가 묻는다.<br>“너는 결혼 안 할래?”<br>이대로가 편한데. 사람들이 그러는데 나 요즘 얼굴이 좋아졌대요. 별말씀이 없다. 어쩌면 그냥 습관적으로 하는 질문. 얼마 걷지 않았는데 숨이 차는지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무뚝뚝한 아들내미는 옆에 함께 앉았을 뿐 별말이 없다. 다시 산책 시작. 오르막을 올랐으니 이젠 내리막이다. 아파트 뒤편 한적한 곳에 계단이 있다. 어머니는 한 손으로 내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론 난간을 붙잡은 채 힘겹게 걸음을 옮긴다. 그저 타박타박. 세월에 겨워 힘겨운 발걸음 소리와 숨이 찬 호흡소리를 들으며 나란히 길을 걷는다. 그 목걸이는 항상 걸고 있어야. 엄마는 그 꽃 왜 달고 나왔는데?<br>“우리 아들이 사준 거니까.”“나도 엄마가 해준 거니까.”<br>한동안 저 길을 다시 걸을 수 없었다. 혼자가 되고 나서 저 길을 걸으면 너무 아플 거 같았다. 그러다 수년이 지난 후, 이젠 웃음으로 다른 감정들을 대신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다시 거닐었다. 오르막과 벤치와 계단과 공원을. 계단이 좀 더 길었더라면, 어머니 손을 더 오래 잡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내가 살가웠다면, 사람 없는 공원에서 어머니와 알콩달콩 이야기를 오래 나눌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일어서려는데 문득 옷깃이 무겁다. 어머니의 손길이 끝으로 머물렀던 곳.<br>시간이 아주 많이 흘렀다. 툴툴 일을 털어내고 오랜만에 아파트 단지 안을 돌아봤다. 일부러 산책길도 다시 찾았다. 아파트 뒤로 들어가는 길 초입은 비둘기 똥으로 군데군데 얼룩져 있었고, 빛이 들어오지 않아 어둑어둑했다. 계단은 무척이나, 생각보다 많이 짧았다. 공원은... 뭔가 삥뜯기 좋은... 하아. 살찐 고양이 한 마리가 슬쩍 얼굴을 내밀더니 나를 살폈다. 너구나, 여기서 삥뜯고 사는 게. 주변을 둘러보다 걸음을 옮겼는데 반대편 문이 잠겨있어 다시 되돌아 나와야만 했다. 오지 말아야 했나? 이 정도면 다시 쓰인 게 아니라 아예 다른 길인데?<br>AI가 제시한 문장 : 길은 걸을 때마다 다시 쓰인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달과 고양이 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36045</link><pubDate>Fri, 25 Sep 2026 10: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536045</guid><description><![CDATA[밤 10시쯤 침대에 누워 전자책을 읽는다. 자기 전 패턴인데 그럴 때면 고양이는 침대 바로 옆 창틀에 놓아둔 원목 받침대에 자리 잡고 바깥 구경을 하거나 나를 구경한다. 내가 고개를 돌리면 녀석과 눈높이가 딱 맞아서 간혹 눈이 마주치곤 하는데 솔직히 이 녀석 무슨 생각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날도 책을 보다 고양이 한번 보다, 창밖을 보다 나를 한번보다 그러고 있었다. 자야지 싶어 핸드폰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는데, 다른 때보다 묘하게 은은한 빛이 눈꺼풀 너머로 감지됐다. 뭐지?<br>눈을 뜨고 창밖을 보니 둥근 달이 보인다. 음력 보름이 아니니 보름달은 아닐 텐데 왜 하필 오늘 내 감각을 자극했을까? 고양이는 아직도 창틀에 있다. 나와 달리 달엔 관심도 없다. 대각선 방향에 있는 아파트 불빛 사이 움직임과, 간혹 외부 창에 들러붙는 벌레와, 배수구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시커먼 녀석, 낭만이라곤 몸 구석 어디에도 없는 모양이다. 달을 올려보다 문득 소원을 빌어본다. 우리 어둑어둑한 고양이, 착하게 건강하게 살다가 고양이별로 가게 해주세요. 고양이가 일어나서 기지개를 켜더니 나를 가로질러 자기 잠자리를 찾아간다. 야, 너도 소원 빌고 가라. 퉁, 퉁, 퉁. 발판을 순서대로 밟고서 삼층장 꼭대기로 올라간다. 발판 밟는 소리가 흥, 칫, 뿡으로 들리는 건 내 착각이었을 거다.<br>다시 달을 본다. 생각해 보니 보름달이 아니라 내가 빈 소원은 안 들어줄 거 같다. 이렇게 사람들이 바라는 소원으로 둥글게 차오르다가 완벽한 둥근 달이 될 때 그 순간 도달한 온전한 문장만이 달의 기운을 다 가져가는 건지도 모른다. 바로 그다음에 도달한 소원으로 둥근 달이 터지면서 기운을 독식한 문장이 세상에 뛰쳐나와 그 대상을 찾아가는 걸 수도. 적어도 누군가 한 명은 한 달에 한 번 소원을 이루겠네. 치사하게 정월 대보름과 추석에만 들어주려나? 흥, 칫, 뿡이다. 꿈속에서 커다란 고양이나 되어서 저 녀석이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봐야지.<br>꼬리말) 8월 31일에 쓴 글인데 최근 쓴 글들에 이래저래 밀리다 이제야 올린다. 어제는 반가운 사람들을 보느라 달을 볼 생각을 못했다. 오늘은 날이 흐려서 달이 안 보일 수도 있겠고.&nbsp;]]></description></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