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어느덧 여기에 (대굴대굴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책에 관한 리뷰라기 보단 내 삶에 대한 리뷰</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un, 30 Aug 2026 05:11:14 +0900</lastBuildDate><image><title>대굴대굴</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045771444334901.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대굴대굴</description></image><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애정</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79099</link><pubDate>Sat, 29 Aug 2026 18: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79099</guid><description><![CDATA[책을 통해 내 얘기를 할 때가 많다. 특히 소설을 읽고 나서 그런 경우가 많은데, 등장인물의 감정이나 변화, 가치관을 바탕으로 개인적 경험을 풀어내는 방식이라 책 자체에 대한 직접적 정보 전달은 소홀해지기 쉽다. 이런 방식이 사실 하루이틀 일은 아니라서 책이나 영화 등 감상의 본체보다 글쓴이를 더 돋보이게 하는 글쓰기 방식이란 얘기도 들은 적이 있다. 칭찬 같기도 하고 비난 같기도 하고. 나 역시 인식은 하고 있던 터라 크게 기분 나쁘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것 또한 단점이 될 수 있겠구나 싶은 작은 걱정거리 정도는 남겨둔 상태였다.<br>누군가의 글을 좋아했다. 위에서 말한 단점이 해결된 글쓰기였다. 난 소설이 열어준 문을 통해 들어가 그 환경에 머리끝까지 잠긴 채 이야기를 흡수한 후 한숨을 쉬듯이 쏟아낸다. 그런데 그 사람은 두 발을 담그고서 관조하듯 이야기를 바라보며 들숨과 날숨을 통해 편안하게 뱉어낸다. 그래서 그 글들이 익숙하면서도 낯설었고, 묘하게 끌렸다. 첫 만남이 언제였는지 기억은 안 난다. 3년쯤 됐나? 그보다 더 오래 전일 수도 있고. 하지만 지금은 그때만큼 좋아하지 않는다. 아, 지금도 좋아한다. 푹 빠져드는 수준에선 벗어났지만. 무슨 일인지 그 사람의 글이 건조하게 느껴진다. 글을 쓰는 방식은 여전한데, 내부에 집중하던 시선이 외부를 의식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 발을 뒤로 물린 채 두리번거리며 거리를 조절하는 듯한 느낌.<br>며칠 전 무엇을 찾기 위해 서랍을 뒤지다 미니카 하나를 발견했다. 이거... 작년에 집수리하기 전 짐 정리하면서 안 버렸어? 어렸을 때 참 아끼던 미니카였다. 분류를 잘못해서 다시 살아남았든지, 아니면 마지막 순간에 맘이 바뀌었든지. 지금은 추억만 묻어있을 뿐 애정은 남지 않은 대상. 손에 들고 이리저리 살피다 중얼거렸다. 얘는 그대로인데 내가 변했네. 그 사람의 글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내 태도가 바뀐 걸 수도 있겠단 생각이 스친다. 동시에 한결같고 싶다는 욕망이 맘 한 귀퉁이에서 불끈 솟아오르며 미니카를 못마땅하다는 듯 쳐다본다.<br>고양이, 아저씨 집에 귀신 있나 보다. 이거 분명히 버렸는데 다시 서랍에 넣어놨어. 귀신 보거든 아저씨한테 얘기 좀 해줘라.<br>잠깐 생각해 보니, 귀신을 보면 무서울 거 같다.<br>그냥, 아저씨 물건 만지지 말라고 전해줘. 알겠지?<br>호기심에 바짝 따라왔던 고양이가 말소리에 반응한다. 알기는 개뿔.]]></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무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76640</link><pubDate>Fri, 28 Aug 2026 08: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76640</guid><description><![CDATA[몇 주, 아니면 몇 달 전일 수도 있다. 마루에 있는데 보일러가 설치된 베란다 쪽에서 ‘쩡’하는 금속성 소리가 크게 들렸다. 간혹 새들이 연통에 앉았다 날아갈 때면 비슷한 소리가 들리곤 했었는데 이번엔 좀 과하게 컸다. 가서 살펴봤지만 내 눈엔 특별히 잘못된 건 없어 보였다. 같이 들어온 고양이에게 의견을 묻듯 쳐다봤지만 녀석이라고 별다른 게 있겠나. 그저 눈만 크게 뜨고 놀란 표정만 지을 뿐. 그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됐고, 시간이 흘렀다.<br>며칠 전, 1년에 두 번 있는 도시가스 점검이 있었다. 점검하시던 분이 나를 부르더니 보일러 연통이 어긋나 있다면서 해당 부분을 가리켰다. 연통을 바로 맞추고 그 주변에 내열 실리콘을 바르셔야 할 거라고 했다. 처음엔 내가 직접 해 보려 했다. 하지만 연통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얼마 전 그 금속성 소리의 정체가 이거였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AS를 신청. 그 후 도착한 AS 기사분 말씀하시기를, 연통 자체의 어긋남도 문제지만 연통의 방향도 잘못되어 있어서 일산화탄소 유출뿐 아니라 누전의 위험까지 있단다. 특히 몇 년 전부터 시작된 국지성 집중 호우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그래서 결론은? 보일러와 연통을 새로 다시 설치했다. 보일러도 수명이 거의 다 된 상태여서 앞으로 문제가 생기면 교체하는 게 좋다는 얘기를 이미 들었던 터였다. 아우, 작년 집수리할 때 한꺼번에 할 걸. 연통 주변 창문이 열리지 않아 외부 마무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는데 그쪽으로 또 비 새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br>다음 날 아침, 비가 쏟아지는 창밖을 보다가 참 용감하게 잘도 살아왔단 생각이 들었다. 일산화탄소 유출에 누전이라. 소설 &lt;1984&gt;에 ‘무지가 힘’이란 구호가 있었는데, 딱 맞는 상황은 아니지만 그 문장이 확 다가왔다. 50년을 넘게 살면서 내가 모르고 지나쳤던 내 삶의 위험 요소는 얼마나 있었을까? 어느새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창문을 살짝 열어보니 시원함보단 눅눅함이 훅 덮쳐온다. 얼른 창문을 닫았는데 몸을 휘감았던 습기로 인해 어떤 생각이 떠올랐고, 인상을 찌푸린다. 제습기를 산다고 돈을 썼고, 내년 1월 예정인 일본 여행을 위해 비행기표를 구매했고, 어제는 보일러까지. 갑자기 흥분해서 방언이 터지듯 고양이에게 주절거린다.<br>고양이, 아저씨가 요즘 돈을 저렇게 쓰거든. 국지성 폭우가 내리듯 큰돈을 펑펑. 요 몇 달 카드 대금이 밑으로 내려갈 생각을 안 해요! 저 비야 자연이 제공하는 빵빵한 습기를 등에 업고 인정사정없이 뿌려대지만, 이 아저씨 돈은 뭐를 등에 업어야 하냐?! 고양이, 너 확신의 유튜버가 돼라! 요즘은 그게 돈벌이가 되는 모양이더라.<br>고양이가 말할 수 있었다면, 대번에 이렇게 얘기했을 것이다. 이 무지렁뱅이 아저씨야.]]></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디지털 진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74590</link><pubDate>Thu, 27 Aug 2026 08: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7459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202534544&TPaperId=1747459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526/7/coveroff/e20253454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난 지금도 제사를 지낸다. 결혼을 안 했으니, 자식이나 며느리, 사위에게 해를 끼칠 일은 없을 것이다. 제사에 대한 내 생각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지만, 내 부모님 땐 거의 절대적인 관념이라 그분들의 뜻을 따르고 있다. (언젠가 적었지만 난 늦둥이로 태어났고, 부모님 모두 1920년대 출생이다) 그 얘기는 1년에 한두 번씩 수십 년에 걸쳐 제사상을 지켜봤단 의미다. 그런데 지금도 내 상차림은 그때마다 모양새가 다르다. 음식의 위치와 방향이 있지만 잊어버린 지 오래다. 이젠 쉬이 가르쳐줄 사람도 없다. 다행히 인터넷에 정보가 넘쳐나니 그걸 찾아볼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제사의 방식이나 상차림은 집안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을 띤다. 그러니 내가 큰집 형님에게 굳이 연락해서 물어보지 않는 한, 우리 집 제사상의 모습은 앞으로도 천차만별일 예정이다.<br>정보 단절의 예로 제사를 들었지만, 사실 제사는 가치관의 변화로 인해 우리 주변에서 밀려나는 중인 행사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많다. 이것도 언젠가 적었지만, 우리 어머니는 서울의 교통체계가 현재처럼 바뀌던 순간, 흐름을 쫓아갈 자신감을 상실하셨다. 그리고 지금은 변화의 속도가, 특히 전자기기로 인한 변화의 속도가 어지러울 만큼 빨라졌다. 앞으로 어느 시점엔 어떤 기기를 다룰 수 있는지에 따라 한 세대를 구분하는 것도 가능할 거라 생각한다. 세상이 그렇지 뭐,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기엔 그 파장이 너무 클 수도 있지 않을까?<br> 더 나이 든 사람이 전자 기기를 통한 의사소통의 뉘앙스를 직접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경우 앞으로 사라지게 될 지식의 저장고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 결과다. 또한 인류 역사에서 지배적 사회가 학살이라는 방법 대신 해당 문화에 속한 연장자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어린이들을 집중적으로 개조함으로써 작은 문화를 말살한 붕괴의 과정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기도 하다. - 배리 로페즈 &lt;호라이즌&gt; P345~346<br>지역 문화와 국가의 정체성보단 디지털 문화와 디지털 정체성이 특정 세대를 하나로 묶어낼 수도 있겠다. 그렇게 되면 경제력에 따른 지역별 경계와 출생 연도에 따른 시간별 경계가 훨씬 중요해지겠구나. 이미 그런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는 건지도.]]></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526/7/cover150/e20253454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5260790</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정답, 내가 원하는 답</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72476</link><pubDate>Wed, 26 Aug 2026 08: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7247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202534544&TPaperId=1747247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526/7/coveroff/e20253454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신의 은총만을 바라던 시대는 지났다. 지극히 불손하고 신성모독에 준하는 발언 같지만, 인간의 이해타산은 그러고도 남을 만하다. 신의 모습을 본떠 인간의 모습을 만들었다는 생각은 사람에게 겸손함보다 오만함을 부여했고, 그 생각에 찬성하지 않는 자들조차 인간을 알게 모르게 생태계의 최상단에 놓았다. '만물의 영장.' 요즘은 이런 표현 잘 안 쓰지만 한때 기고만장함의 극치를 달리던 사람들이 두루 썼던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신을 밑으로 끄집어 내렸다. 바벨탑을 쌓는 건 시대착오적이니, 필요할 때만 찾던 평등을 내세워 신을 인간의 영역으로 강등시킨 셈이다. 그러니 자리를 바꾼 신도 이제 책임을 져야 했다. 세상이 힘들고 불평등하며 부조리할 때 당신이 만든 세상이니 당신도 책임을 지라고, 뭐라도 말을 해보라고 사람들은 요구했다. 신은 응답했을까?<br> 호주의 철학자 발 플럼우드는 어디선가 현재 인류의 과제는 “인간 이외 존재들을 윤리의 영역에 재배치하고 인간을 생태의 영역에 재배치하는 것”이라고 썼다. - 배리 로페즈 &lt;호라이즌&gt;, P453, 454<br>요즘 세상은 자유와 권리가 그 어떤 가치보다 우선이다. 개인에 초점을 맞춘 문명이라 그럴 것이다. 개인을 억압하고 짓누르면 그 집합체인 사회도 억압하고 짓누르는 꼴이 될 터이니 모든 것의 기반인 개인을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그 개인이 모두가 똑같을 리 없다. 우린 보편적 개인을 상정하고 그에 맞춰 어떤 원리를 적용하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쪽에 자리한 평등과 의무 또는 책임을 위한 무게추를 고려하지 않으면 저울은 급격하게 한쪽으로 기울어질 게 뻔하다. 결국 개인은 ‘나’만 존재하고, 공동체는 흔들리게 될 것이다. 어쩌면 진작에 그런 상태였을 지도 모르겠다.<br>신은 사람들의 줄기찬 질문과 힐난에 답했을까? 아마 단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단 한 순간의 쉼도 없이 외쳤을 것이다. 자유와 권리만큼,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염치는 있을 만큼만 평등과 책임을 생각해 보라고. 제발 좀 귀를 열라고. 우린 언젠가부터 원하는 답만 듣는 재주를 부린다. 그래서 우린, 너희들 꼬락서니부터 살피라는 신의 비꼼도 안중에 없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526/7/cover150/e20253454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5260790</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개별적이지만 보편적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70189</link><pubDate>Tue, 25 Aug 2026 08: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70189</guid><description><![CDATA[자영업을 하면서 깨달았던 건, 가장 큰 적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출몰한다는 점. 사실 매장을 운영하는 사장과 직원 사이에 일을 향한 인식의 차이가 발생하는 건 당연하다. 사장은 생계나 다름없는 일에 모든 것이 얽매이지만, 직원은 아니다 싶으면 떠나면 되니까. 그런데 여기서부터 파생되는 책임감이나 열정의 차이가 업주 처지에선 참으로 치명적일 때가 있다. 조금만 조심했으면, 조금만 사려 깊었으면, 조금만 참았으면 거기서 멈출 상황이었는데, 그러지 않음으로써 일이 크게 번진다. 물론 대부분은 업주 관점에서다. 직원은 그만두고 나가서 다시 안 보면 그만이다.<br>장사를 하던 십수 년 동안 내가 봤던 사달은... 쳐다봤다고 분을 못 이겨 손님과 진심으로 물건 집어 던지기 놀이를 하거나, 출근 첫날 교육 중에 아무 말없이 출입구 앞에 유니폼 벗어 던져놓고 사라지거나, 선임자의 교육을 고까워해 바로 그만두고 가 버리거나, 자신은 얼마나 잘났는지 모르지만 외국인 근로자를 대놓고 무시하거나, 친구들을 불러 모아 매장 카운터 앞 공간에 모여 앉아 친목을 다지거나. 신규로 채용했지만 연락도 없이 안 나오는 건 일상다반사였고, 퇴근 후 메시지로 내일부터 못 나간다고 통보받은 경우도 수두룩하다. 처음엔 기가 차서 연락도 해 보고 설득도 해 봤지만, 어느 순간부턴 그러려니 했다. 그 이후 내게 돌아오는 건 업무량의 폭주. 하루 3시간씩 자면서 두 달 가까이 일해보기도 했고, 명절 연휴엔 48시간을 매장에서 보낸 적도 있다. 잠이 부족해 지하철에서 서서 졸다가 무릎이 꺾여 바닥에 넘어져 보기도 했다. 창피? 일어서서 손잡이 붙들고 다시 조느라 그런 거 느낄 새도 없었다.<br>당연히 선물 같았던 좋은 근무자들도 많았다. 반대로 쓰레기 같은 업주들도 많다는 것 역시 안다. 하지만 모든 경험을 압도하는 기억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빌어먹을 기억들. 지금은 장사를 때려치우고 남의 밑에서 일하지만, 바로 그 ‘남’이 겪는 최근 상황들이 남 일 같지 않아 예전 일들을 떠올리고 말았다. 자영업자들 대부분은 미래의 건강을 현재로 끌어와서 쓴다. 그만큼 육체와 정신을 혹사하기 마련이다. 부디 현재와 미래의 균형을 잘 맞추었으면 한다. 빌어먹게 날씨도 다시 한여름으로 회귀했다. 더위와 기억이 서로 뒤엉켜 만든 진흙탕에 발이 빠진 채 머리만 긁적이는 중이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고양이 일기</category><title>고양이 일기_13</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68341</link><pubDate>Mon, 24 Aug 2026 09: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68341</guid><description><![CDATA[*** 사람 아기가 손에 쥔 모든 걸 일단 입에 넣으려 하듯이 이 녀석은 일단 입에 넣고 보는 경향이 있었다. 끈, 고무줄, 먼지, 벌레. 컴컴한 새벽,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서 녀석을 쫓아 뛰어다닌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입가에 붙은 먼지 한 움큼을 빼앗았고, 실오라기를 입에서 쭈욱 잡아 뺀 적도 있었다. ***<br>(힐끗. 뒹굴) 아함, 졸리다. (힐끗. 뒹굴) 아저씨, 나 졸린 거 같은데...(아저씨는 열심히 TV 보는 중)(슬금슬금) OK. 잘 빠져나왔음. 아까 저 방 책상 위에 뭔가 예쁜 게 있던데. (부스럭) 오, 여기 있다. 이게 뭐냐? 음, 여기선 아저씨가 보이는데. 이거 가지고 저쪽 방으로 가야겠다. 거기서 맘 놓고 살펴봐야지. 일단 입에 물고….(슬금슬금) (움찔. 슬쩍 돌아본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지만, 아저씨 다시 TV 시청) 아 씨, 깜짝이야. 조심해서... !(아저씨, 갑자기 벌떡 몸을 일으키면서 네발짐승처럼 덤벼듦) 우악, 엄마야!!(두두두) (고양이 도망, 아저씨 추격) (두두두) (고양이 반대 방향으로 도망, 아저씨 또 추격)(방구석에서 잡힘) 우와, 놀라라... 간 떨어질 뻔했다, 냥.<br>"야, 너 입에 물고 가던 거 고무줄이지? 어쨌어? 삼켰어? 벌써 먹은 거야?"아니, 아니. 아구, 심장이 다 쫄깃쫄깃하네. 저기..."어쨌냐고?! 너, 그거 먹으면 병원 가야 돼!"아니, 그거...<br>(아저씨, 고양이 버려두고 열심히 바닥 수색 중. 실패. 집안에 불 다 켜고 다시 열심히 바닥 수색 중. 또 실패.)<br>"진짜 삼킨 거야?!"...<br>(아저씨, 이번에 네 발로 기어다니며 바닥 밀착 수색 중.)<br>"어, 여기 있네?"아저씨가 네발로 뛰어오를 때 이미 놀라서 떨어뜨렸거든."바로 떨어뜨린 모양이네. 먹은 줄 알았잖아... 미안, 미안."아저씨, 네 발로 잘 다니던데 저쪽에 좀 엎드려 뻗쳐볼까? 내가 할 말이 많은데.]]></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환상</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65642</link><pubDate>Sat, 22 Aug 2026 16: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65642</guid><description><![CDATA[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빗소리에 깨서 열어둔 창문을 닫은 게 오전 6시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다시 잠들었다 8시에 일어나서 아침 일과를 마치고 기진한 채 고양이 옆에 드러눕는다. 아우, 허리야. 관절로 인한 중얼거림은 이젠 거의 자동 반사 수준이다. 고양이는 간식을 주지 않아서 살짝 새초롬한 상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줬잖아. 조금만 더 있다 먹어라.<br>천장을 보고 누워 있으니, 빗소리가 들린다. 정확히는 배수관으로 빗물이 흘러 내려가는 소리, 보일러 연통에 빗물이 투닥대는 소리. 거기에 제습기 돌아가는 소리와 냉장고 소리가 스며들고, 옆집 베란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침범한다. 고양이, 아무리 생각해도 낭만적인 느낌은 없다. 그렇지 않냐? 도시에서 낭만은, 죽기 좋은 날씨구나, 같은 살기등등한 말투에서나 찾을 수 있는 걸까? 대굴. 고양이가 아니라 내가 뒹구는 중이다.<br>고양이, 아저씨 점심 좀 차려주면 안 될까? 비가 오니까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말하고 보니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이 녀석은 비가 오든 말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녀석인데. 다시 침묵. 부엌 창을 올려다보니 비 때문에 시야가 흐릿하다. 그 와중에 산을 배경으로 뿌옇게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귀신 나오겠네. 고양이, 지옥이 꽉 차서 터져버리면 그곳에 있던 혼이 비로 내렸다 다시 증발할 때 저런 모습일까? 힐끗 쳐다보다 고개를 돌린다. 고맙게도 이름을 부를 때마다 한 번씩 쳐다봐 주기는 하는구나. 어이, 고양이. 힐끗. 장난기가 발동한다. 어이, 고양이. 힐끗. 어이, 고양이, 고양이. 빤히. 너희한텐 뭐가 들리고 뭐가 보이니? 알 수가 없네. 대굴. 이번에도 내가 구른다. 점심을 노리는 아저씨와 까까를 노리는 고양이가 대치 중이다. 이건 너무나 뻔한 승부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시즌2</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63112</link><pubDate>Fri, 21 Aug 2026 08: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63112</guid><description><![CDATA[저기요, 아저씨인지 아주머니인지 모르겠지만 거기 그러고 있는 건 좀 아니지 않소?<br>아파트 단지 옆을 지나서 산 중턱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빗물이 흘러내리는 수로가 있다. 꽤 폭이 넓고 깊이도 있어서 지나던 사람이 굳이 안으로 들어갈 일도 없다. 보통 때는 물이 흐르지 않은 탓인지 식물이 곳곳에 자리 잡아서 시멘트의 모습은 드문드문 보일 뿐이다. 이곳에 터를 잡은 고양이가 몇 마리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닥에서 대놓고 자는 중이다. 아니, 그냥 실신한 거 같다.<br>이보시오, 아직 오후 5시도 안 됐는데 낮술을 얼마나 했길래…. 정신 좀 차려보소.<br>꿈쩍도 안 한다. 이 더위에 턱시도를 그대로 입고 뻗은 걸 보면, 엄청 내달린 듯하다. 부디 살아있길 기원하며 열심히 산으로 향한다.<br>산꼭대기엔 모지리가 퍼져있다 내 인기척에 슬쩍 쳐다본다. 카오스냥이 한 마리도 바닥에 부어놓은 사료를 저만치서 먹고 있다. 요즘은 이 둘 빼곤 다른 녀석들은 거의 볼 수가 없다. 지난주에 못 와서 닭가슴살을 다섯 개 가져왔는데 모지리에게 두어 개 먼저 까준다. 카오스는 하나 물고 어딘가로 숨어 들어가 먹고 올 모양이다. 결국 모지리 혼자 4개 흡입. 다행히 군것질거리는 모지리와 카오스 둘이 나눠 먹었다. 카오스는 하나 줄 때마다 하악질이다. 전혀 무섭지 않다는 게 문제지만. 모지리는... 좋단다. 땅바닥에서 뒹굴고 난리다. 내가 이름 하나는 참 잘 지었어. 그치, 모지리? 덤으로 울음소리까지 들려준다. 그런데 울음소리가 왜 저쪽에서 들리냐? 너, 스텔스 모드에 복화술까지 할 줄 알아? 볼수록 신기한 녀석일세. 따라오지 말고 여기 있어라. 지난번에 삼색이가 울면서 따라왔었는데 그 뒤로 사라졌다. 그러니까 모지리 넌, 여기서 길고 가늘게 버텨라. 내가 이름까지 지어줬으니까 모질게 자리 지키는 거다.<br><br><br>내려가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오른쪽에서 귀여움이 감지된다. 그때 봤던 새끼 고양이들이다. 정상에서 안 보인다 했더니만 어미가 자리를 이쪽으로 옮겼나 보다. 하나, 둘, 셋, 넷. 모두 건강해 보인다. 먹을 걸 줬으면 했는데 순간 모지리 입으로 들어간 닭가슴살 4개가 떠올랐다. 저, 저 모지리 자슥이 또! 어미는 보이지 않았고, 아기들만 모여 있었는데 나랑 눈이 마주치자, 세 마리는 수풀 속으로 숨고 고등어 한 마리만 나랑 눈싸움에 들어갔다. 역광이라 사진이 제대로 찍히질 않네. 건강하면 됐다. 여긴 삼색이와 모지리와 고등어, 초기 멤버들이 겨울에 햇볕을 쬐며 장난을 치던 장소다. 아쉬움과 걱정을 뒤로 하고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될 듯하다. 그 모든 게 삶이다. 이별까지도. 어쩌면 죽음까지도.<br>꼬리말) 업데이트된 정보(내 짐작)에 따르면, 사진 속 카오스냥이가 아이들의 어미다. 그리고 어미가 모지리를 경계하지 않는 걸 보면, 모지리가 아빠가 맞지 싶다. 이 글은 7월 중순에 썼던 글이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821/pimg_63922898891481892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63112</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 [가재가 노래하는 곳]</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61117</link><pubDate>Thu, 20 Aug 2026 09: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6111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895224056&TPaperId=1746111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483/50/coveroff/e89522405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895224056&TPaperId=1746111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가재가 노래하는 곳</a><br/>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06월<br/></td></tr></table><br/>누구나 살면서 외로움이 가슴에 박히기 마련이다. 그땐 그저 가끔 혼자 있고 싶은, 사치스러운 외로움이다. 그러다 가슴에 박힌 씨앗이 자라 묘목이 되면 외로움은 스스로를 가두는 울타리로 변한다. 묘목이 자라 큰 나무가 되면 주변 다른 것들을 빨아들이고 가로막아 거대한 외로움 그 자체가 된다. 마지막으로 드디어 큰 나무가 거대한 고목이 되면 고목 주변엔 아무것도 자라지 못한 채 모든 것을 압도하는 두려움으로 변질된다.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은 외부로 손을 내밀지도 못하고, 외부의 손을 받아들일 수도 없다.<br>“난 한 번도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았어. 사람들이 날 미워했어. 사람들이 나를 놀려댔어. 사람들이 나를 떠났어. 사람들이 나를 괴롭혔어. 사람들이 나를 습격했단 말이야. 그래, 그 말은 맞아. 난 사람들 없이 사는 법을 배웠어. 오빠 없이. 엄마 없이! 아무도 없이 사는 법을 배웠다고!” - P433, 434<br>- 인간<br>인간은 크건 작건 문명을 이룬다. 아이러니한 건 기술이 발달할수록 문명은 자연과 공존하기보단 파괴하는 쪽을 선택하는 듯하다. 개발과 발전이 언제나 최우선 화두이니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 그러다 보니 인간은 자연과 선을 긋고 고립의 길을 택했고, 그렇게 많은 땅덩어리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인간은 외롭다. 하지만 인간은 그들 한가운데 파고든 외로움에 자기기만이란 돌연변이를 일으켜 자신을 스스로 자연의 수호자로 높였다. 고결하고 고독한 파수꾼.<br>- 카야<br>카야는 떠나는 엄마의 뒷모습을 봤다. 이어 큰오빠와 언니가 떠나고, 함께 있어 줄 거라 믿었던 조디 오빠마저 떠났다. 지옥 같던 아빠가 잠깐의 햇살을 비춘 후 카야의 곁을 떠나자 6살 카야는 혼자가 됐다. 도무지 상상도 되지 않는 벅찬 상황이지만 카야는 습지의 아이로, '마시 걸'이란 멸칭을 안고서 성장한다. 10대가 되고, 20대가 되어 성인이 되지만 뒤에 남겨지는 건 항상 카야였다. 꼬리표처럼 들러붙은 이별과 차별은 카야의 마음속 외로움의 씨앗을 거대한 고목으로 자라게 한다. 카야에게 평범한 삶이란 이젠 불가능하다.<br>- 인간&nbsp;자기기만의 길은 험난하다. 착취하면서도 보존하는 척해야 하고, 개발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환경 보호를 외쳐야 하고, 쓸 거 다 쓰면서도 고갈과 훼손은 기술 발달이 해결해 줄 거라 믿어야 한다. 자연은 묵묵히 견뎌내지만, 인간이 가한 압박은 변화의 속도를 조금씩 끌어 올리는 중이다. 게다가 자기기만의 돌연변이는 두려움까지 억눌렀다. 두려움이 제거된 인간은 자연이 내는 파열음을 마치 일회성인 듯 가볍게 소비한다. 인간은 어떻게 될까?<br>- 카야<br>하지만 아무리 험난한 여정이라도 그 여정을 비추는 빛이 있다. 어린 카야의 생존에 큰 몫을 담당한 점핑 아저씨와 메이블 아주머니, 그리고 첫사랑인 테이트. 이들은 카야를 비추던 커다란 등불이었다. 그리고 도망치던 어린 카야를 못 본 척하면서 미소를 던져주던 사람, 셈을 못 하는 어린 카야에게 푼돈 몇 푼이라도 더 안겨 보내주던 상점 직원까지. 일급 살인으로 기소되어 법정에 선 카야의 뒤편엔 이들이 자리를 잡는다. 카야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br>- 인간<br>자연은 차이를 두지 않는다. 자연이 재해를 일으킨다면, 자연을 옹호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나 자연을 무엇인가 꺼내 쓸 창고처럼 여기는 사람이나 똑같이 피해를 볼 것이다. 그걸 배신이라고 해야 하나? 자연은 이치에 따라 인간에게 재난을 선사하고 많은 죽음을 초래할 수 있다. 그걸 범죄라고 해야 하나? 자연이 무엇을 하든 인간이 그 행위를 이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br>- 카야<br>소설은 두 갈래로 시작해서 하나의 줄기로 합쳐진다. 하나는 시체가 발견되어 수사가 시작되는 이야기, 다른 하나는 어린 카야의 성장과 사랑 이야기다. 늪지에 대한 작가의 전문 지식이 어우러져 카야의 성장 스토리는 아찔할 정도로 읽는 사람을 빨아들인다. 다른 한 갈래의 이야기 때문에 어떤 흐름으로 갈지 예측이 되지만, 그래서 더욱 카야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단 생각을 끝날 때까지 떨칠 수 없었던 소설. 그러고 보면 요즘은 책을 읽으면서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내가 나이가 들었거나 현실이 팍팍하거나.]]></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483/50/cover150/e89522405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4835081</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딸내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59151</link><pubDate>Wed, 19 Aug 2026 08: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59151</guid><description><![CDATA[벽에 딱 붙어 자리 잡은 침대 아래쪽으로 터널 같은 긴 공간이 있다. 어두컴컴하고 그 끝은 사람 손이 절대 닿지 않을 자리. 엎드려서 그 안을 쳐다보다가 머리를 긁적이며 일어선다.<br>주말은 바빴다. 일을 마치고 오면 고양이랑 함께 있는 시간도 적을뿐더러 지친 탓에 잘 놀아주지도 못한다. 이번 주말은 특히 그랬다. 토요일은 그래도 좀 정신을 차리고 있었는데 일요일엔 축 처져서 간식만 주고 놀아주지도 못하고 일찍 잠들었다. 월요일 아침엔 늦잠을 잤다. 일어나서 간단히 아침 먹고 밀린 집안일하고 났더니 바로 12시. 간식 시간이 지나버렸다. 까까를 외치자 이를 반기는 고양이의 목청이 다른 때와 달리 높다. 반기는 게 아니라 살짝 짜증 난 거 같기도 하고. 청소하면서 어제 남은 과자를 먹었더니 점심을 먹기엔 애매하다. 아침도 늦게 먹었고. 그래서 피자 한 조각을 데워서 마루에 주저앉아 먹기 시작했다. 전방에 고양이 접근. 코는 벌름벌름. 피자에 있던 감자를 떼어 냄새를 맡게 해준다. 그 후 감자는 내 입으로. 피자에 있던 치즈를 떼어 냄새를 맡게 해준다. 다시 내 입으로. 피자 도우, 냄새, 내 입. 뭔지 모르지만 냄새, 내 입. 마지막 빈 접시와 젓가락. 고양이가 터덜터덜 안방으로 들어간다.<br>설거지하고 주변을 보는데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다. 다른 곳에도 없다. 이상한데. 그러다 아까 안방으로 들어가던 뒷모습이 떠올라 안방 침대 밑 터널을 살핀다. 있다. 정확히는 명확하게 보이는 두 눈이 있다. 고양이, 너 뭐 하냐? 묵묵부답. 한참을 저기 저러고 있었던 거 같은데 말이지. 어디 아픈가? 아니다. 아까 까까도 잘 먹었고, 심지어 사료도 먹었다. 삐졌구나, 삐졌어. 먹을 거(피자) 가지고 장난 쳤다고 삐진 게 분명하다. 간식을 또 줘야 하나? 아닌데, 조금 빠른데. 장난감을 흔들어 봐도 안 나온다. 하아, 제대로 삐졌다.<br>나와라, 고양이, 아저씨랑 놀자.<br>침대 옆 벽에 기대앉아 핸드폰으로 이 글을 쓴다. 언젠가 나오겠지.<br>나와라, 고양이,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번지수 잘못 찾은 국뽕</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57127</link><pubDate>Tue, 18 Aug 2026 08: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57127</guid><description><![CDATA[비가 그쳤다 내리기를 반복 중이다. 새도 벌레도 없는 창밖을 고양이가 무료한 듯 내다보기에 나도 따라서 바깥 풍경을 살핀다. 저 멀리 남산이 보이고 물안개가 산봉우리를 휘감으며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러다 남산타워가 안개에 완전히 가려 시야에서 사라진 걸 깨닫는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처음부터 산 위에 타워 따윈 없는 걸로 생각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지워졌다. 흐음...<br>고양이, 아저씨가 어렸을 때 말이야, 국회의사당 지붕 뚜껑이 열리면 로봇 태권V가 거기서 출동한다는 소문이 있었거든. 조종사는 아마 국회의원들이었을 거야. 신분을 위장하려고 그렇게 욕 많이 먹는 직업을 일부러 선택했겠지.<br>이름을 부르자, 힐끗 쳐다보던 고양이는 또 헛소리인가 싶었는지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다.<br>지금 보니까 저 남산타워도 어딘가로 발사된 모양이야. 로켓처럼 우주 공간으로 가기도 하고, 전망대만 따로 UFO처럼 날아다니기도 하겠지? 사진이나 찍히지 말 것이지, 무슨 일을 그렇게 허투루 하는지 몰라.<br>계속 중얼대고 있으니, 고양이가 빤히 쳐다본다. 헛소리가 너무 길었나 보다.<br>내가 느끼는 시간과 고양이 네가 느끼는 시간이 다르듯이 또 다른 시간이 어딘가에는 분명 있을 거야. 또 다른 공간도. 그새 다시 착륙했네.<br>안개가 옆으로 비켜나자, 남산타워의 모습 일부가 드러난다.<br>국내 주식시장에 상장하면 좋겠다. 스페이스X보다 더 나아 보이는데.<br>곁눈질로 슬쩍 훑어보니 고양이는 여전히 아저씨를 빤히 쳐다보는 중이다. 흠.<br><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고양이 일기</category><title>고양이 일기_12</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55277</link><pubDate>Mon, 17 Aug 2026 09: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55277</guid><description><![CDATA[*** 고양이는 보통 자기 영역을 벗어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병원에 데려갈 때마다 한바탕 난리를 치러야 한다. 게다가 이 녀석은 의사 선생님을 굉장히 무서워한다. 스스로는 부정하는 것 같지만. ***<br>(선생님) 응? 살이 쪘나요? 동글동글해졌는데? 몸무게 먼저 측정할게요....(선생님) 4kg? 지난번이랑 똑같네?얘가... 여기만 오면 앞뒤론 이만큼 줄어들고 양옆으론 이만큼 늘어나는 거 같아요. 하도 겁을 먹고 웅크려서.(선생님) 아~<br>나 겁 안 먹었다. 내가 우리 집에서 왕이다, 왕! 겁을 먹기는. 그니까... 병원 올 때 아저씨 힘들까 봐 목을 집에다 떼어놓고 와서 그런다! 토끼도 간을 빼놓고 다니잖냐? 고양이도 그 정돈 할 수 있다고. 와우... 귓구멍에 왜 그런 걸 쑤셔 넣고...<br>(선생님) 이렇게 닦아내니까 시원하지? 아이구, 착해라.<br>우웅. 우우웅. 선생님아 그만 해라, 나 진짜 화낸다.<br>(선생님) 알았어, 금방 끝낼게. 한 번만 더 하자.<br>우웅. 우우웅. 나 진짜 진짜 화낸다. 나 겁대가리 없는 고양이다, 선생님아.<br>(선생님) 어유, 다 했다. 다 했으니까, 딱 한 번만 더 닦자.<br>우웅. 우우웅. 이제 금방 화낸다. 화내면 나 진짜 무섭다!<br>(선생님) 끝났다. 이제 집에 가자.<br>(후다닥. 이동장에 스스로 뛰어 들어감) 운 좋았다, 선생님아. 한 번만 더 했으면 나 진짜 화냈을 거다. 냥. 쩝.<br>(집으로 복귀. 이동장 밖으로 뛰쳐나옴. 길이, 부피 정상 회복.)<br>냐아옹. 간식! 냐아옹. 병원 갔다 왔으니까 먹을 거 내놔라!<br>"왜? 선생님한테 그렇게 소리를 질러보지 그랬어? 밖에선 꼼짝도 못 하더니만."<br>내가 목을 집에다 떼어놓고 가서 그런 거잖아! 목만 제대로 붙어 있었으면 다 뒤집어 놨을 거라고!<br>"아, 눼눼."<br>뭐냐, 그 요상한 발음은?!]]></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52345</link><pubDate>Sat, 15 Aug 2026 17: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52345</guid><description><![CDATA[베란다 한쪽 끝에 창고처럼 쓸 수 있는 수납공간이 있다. 문을 여닫을 수 있게 해놓았고, 그 안에는 고양이 화장실 여분과 모래, 빈 상자들, 집수리할 때 쓰고 남은 벽지와 타일들이 보관돼 있다. 이 집구석 모든 곳에 대한 호기심으로 꽉 찬 고양이는 어떻게든 이 안을 탐색하고 싶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불러 문을 열어달라고 한다. 그때마다 문을 열어주지만, 문만 열릴 뿐 들어갈 수는 없다. 내가 6kg짜리 고양이 모래와 빈 상자를 이용해 대충 막아두었거든. 무엇보다 이 안까지 청소하기 귀찮아서 고양이 출입 금지 구역으로 만들어 놓은 셈이다. 하지만 고양이는 기를 쓰고 머리를 쑤셔 박아 넣고, 점프를 시도하며 미지의 영역에 도전한다. 그럴 때마다 난 녀석의 몸뚱이를 붙잡거나, 머리통에 뽀뽀를 날리는 식으로 방해하고.<br>얼마 전, 박스를 쓸 일이 있어서 하나를 꺼내다가 어설프게 쌓인 박스를 촘촘하게 정리했다. 해놓고 보니 고양이가 머리를 들이밀 틈조차 없을 정도다. 뿌듯한 마음에 고양이를 호출해서 자랑한다. 어떠냐? 들어갈 수 있겠냐? 여기저기 살피던 고양이는 상자 쪽에선 가능성을 포기하고 아래쪽 고양이 모래 상품 쪽을 노린다. 머리부터 들이밀고 어찌 해보려 하지만 6kg짜리가 스크럼을 짠 듯한 모양새라 턱도 없다. 터덜터덜. 집사 승. 이 이후로 사건이 하나 더 있었다. 다시 도전하겠다는 고양이에게 문을 열어주다가 모서리에 고양이 얼굴이 콕 찍히는 일이 있었다. 그 뒤로 고양이는 내가 문을 열어주려 하면 얼른 도망간다. 사실 콕 찍히기 전에도 이미 예전 같은 열정적 도전은 하지 않았다. 도저히 틈이 보이지 않았으니까.<br>꽁무니를 빼는 녀석과 테트리스 하듯 맞물린 상자들을 번갈아 보며 이런 생각을 해본다. 40년을 넘게 인연을 이어온 친구는 나름대로 허점이 있었다. 학교 다닐 땐 아침마다 늦잠을 자서 내가 깨워줘야 했고, 지금은 일에 치여서 만날 때마다 한탄이다. 대공원 그 아저씨는 얼추 알게 된 지 10년쯤 되어 가는데 묘하게 날이 서 있는 부분이 있어서 그게 스스로 피곤하게 만든다. 다른 오래된 인연들을 돌이켜봐도 어딘가 비어 있는 부분이 있고, 그곳에 내가 설 자리가 있다. 나 역시 상대방 처지에선 마찬가지일 듯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관계라는 게 일방적으로 이루어질 리는 없으니까.<br>상자를 좀 삐뚤빼뚤 놓을까? 뭐, 언젠가는 비뚤어져서 틈이 생기겠지. 무엇보다 녀석은 본능과 경험의 생물이라서 당분간 문콕의 경험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아쉽네. 머리통에 뽀뽀를 갈길 기회가 줄어들어서. 쩝.]]></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투덜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49990</link><pubDate>Fri, 14 Aug 2026 08: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49990</guid><description><![CDATA[산에 오른다. 지난주 낮 기온 39도를 찍은 날 산을 오를 땐 자괴감이 들었다. 혹서기 극기 훈련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흘러나오는 땀에 모든 생각이 휩쓸려서 2시간 내내 저 생각만 했다. 어쩌면 저 자괴감이 그 순간 내 생명줄이었는지도 모른다. 안 그랬으면 좀비처럼 멍하니 올라갔다가 내려왔을 테니까. 그런데 이번 주는 다르다. 34도 정도의 온도. 사실 수치만 놓고 보면 더운 날씨지만 지난주 발작에 가까운 더위가 34도쯤은 아무것도 아닌 걸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게 한결 시원해진(?) 날씨에 감사하며 산에 오른다.<br>우리나라 산엔 소나무 같은 침엽수가 많다. 잎이 좁아서 가뭄에 강하고 사시사철 푸르다. 그래서 별생각 없었는데, 군데군데 보이는 큰 나무들의, 침엽수가 아닌 나무들의 잎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게 보였다. 가뭄인가? 폭우처럼 쏟아지던 장마철이 3주 전이었나? 그거밖에 안 지났다고? 여름이 시작되던 6월은 밤엔 시원해서 창을 열어놓고 잘 수 있었다. 7월 들어 급격히 더워졌고, 곧이어 장마가 스치듯 할퀴고 지나갔으며, 그 상처를 끔찍한 무더위가 파고들었다. 변화의 진폭은 컸지만, 변화의 주기는 짧았다. 하늘을 보며 슬쩍 투덜대본다. 아니, 무슨 변덕이 우리 집 고양이 수준이래.<br>꼭대기에 도착해서 주변을 둘러본다. 모지리가 성벽 저쪽 구멍에서 고개만 쏙 내밀고 이쪽을 살피고 있다. 닭가슴살을 주자 허겁지겁 먹는다.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날이 너무 더우면 산을 찾는 사람이 준다. 야, 너 명색이 들고양인데 여기서 사냥도 하는 거 맞지? 예전에 나비 잡던 거 보면 영 미덥지 않아서. 골격이 작은 녀석이지만 더 마른 듯한 느낌이다. 올라오면서 봤던, 낙엽과 나뭇가지와 돌들이 앙증맞게 쌓여있던,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지만 위치상으로 보면 전혀 그럴 이유가 없는, 볼록한 무더기가 신경 쓰인다. 마치 조그마한 봉분 같아서. 사람들은 종종 자연환경을 모성에 빗댄다. 생명을 품는다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인간의 관점일 것이다. 자연은 공감 능력이 없다. 식물이 마르든, 동물이 죽든 알 바 아니다. 그저 철저하게 공평할 뿐이다. 다시 한번 불평하려다가 입만 한번 삐죽거리다 만다. 공평하지도 못할뿐더러 공감 능력까지 잃어가는 인간이 감히 어디에 대고 투덜댈까.&nbsp;]]></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치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47849</link><pubDate>Thu, 13 Aug 2026 06: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47849</guid><description><![CDATA[헉헉거리며 산을 오른다. 땀을 많이 흘린 탓인지 확실히 다른 때보다 힘들다. 작년 여름엔 쉬었었는데 올해도 쉴까? 게으름을 피울 생각을 해보지만, 비만 내리지 않으면 일주일에 서너 번은 오를 것이다. 왜?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고양이를 보러 가는 것도 하나의 동기 부여가 되고, 이마저도 안 하면 내 세상의 폭이 너무 좁다. 그거 조금 좁다고 뭐가 잘못되나? 잘못될 건 없지. 그래도 건강은 챙겨야지. 게으르고 싶은 욕망과 부지런해야 한다는 의지가 맞붙지만 딱히 치열하진 않다. 습도에 짓눌려 그냥 바둥대는 느낌이랄까. 바람이 부는 곳까지 가려면 아직 멀었는데. 아니, 저기 그래도 바람 좀.<br>바람이라도 찾으려고 했던 걸까? 우뚝 멈춰 서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나무에 붙어있는 허물이 눈에 들어온다. 영화에 나오는 무슨 괴생명체 같기도 하고. 멍하니 쳐다보고 있자니 갑자기 매미 소리가 귓전을 파고든다. 아, 매미 유충이 성충이 되려고 벗어놓은 외피구나. 몇 년 전, 베란다 방충망에 들러붙어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던 매미가 떠올랐다. 그 쩌렁쩌렁함에 어찌나 놀랐던지. 고양이는 쟤 누구냐며, 자기가 꼭 한 대 쥐어박아야겠다고 또 어찌나 난리를 치던지. 울음소리를 쫓아 나무를 살피지만 자취를 찾을 수가 없다. 3년이 훌쩍 넘는 땅속 유충 시기를 지나 고작 한 달 정도의 성충 시기를 보내려고 땅 위로 나온 매미다. ‘나 여기 있어요. 나 여기 있다구요.’ 이 여름에 악다구니로 존재를 증명하는 중이다.<br>몇 걸음 옮기다 말고 다시 우뚝 선다. 이번엔 왼쪽 성벽 위에 세 마리의 곤충이 있다. 벌인가? 끈으로 꽉 묶어놓은 것처럼 허리가 너무 잘록하다. 몸통이 서로 붙어있기는 한 거야? 또 하나는 메뚜기, 여치? 메뚜기라고 하자. 벌이 메뚜기 몸통을 파먹고 있다. 메뚜기 덩치가 훨씬 큰데. 이미 죽은 녀석이었거나, 아니면 벌침으로 마비를 시켰거나. 벌이 머리통을 들이밀 때마다 메뚜기 한쪽 다리가 들썩거린다. 그리고 개미 한 마리. 덩치가 벌과 비슷하다. 콩고물을 기다리는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동료들을 호출해서 메뚜기를 강탈할 작정일 수도 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리다 고개를 돌려 산 정상 쪽을 쳐다본다. 우뚝 솟은 바위와 촘촘하게 자리한 푸르름. 아이구야, 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집고양이와 아저씨</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46021</link><pubDate>Wed, 12 Aug 2026 08: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46021</guid><description><![CDATA[새벽 1시 40분.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확인한 시각이었다. 다른 때 같으면 새벽 3시쯤에 깼는데 이번 주는 너무 더운 탓에 산에 가질 않았더니 조금 빠른 시각에 눈을 뜬 모양이다. 삼층장 꼭대기에서 자던 고양이가 인기척에 고개를 쳐든다. 녀석이 쓰는 화장실을 치우고 있으면 따라 나와 간식을 달라고 조를 것이다. 어차피 이 시간에 일어나는 건 고양이 간식 때문이니까. 할 일을 다 하고 에어컨을 끈다. 종일 혹사 중인 에어컨에 아침까지 쉴 틈을 준다. 안 그랬다간 터질지도 모른다. 다시 잠을 청한다. 이번엔 소파에서 잔다. 고양이는 베란다 턱에 걸터앉아 바깥 구경 중이다. 아침에 출근하려면 잠이 빨리 들어야 하는데.<br>다시 눈을 떴다. 새벽 3시 20분. 너무 더워서 깼다. 낮 기온 39도를 사흘 정도 기록하더니 새벽에도 에어컨의 효력이 오래 가질 못한다. 마룻바닥에 내려와 큰대자로 눕는다. 바닥의 시원한 기운에 그나마 좀 낫다. 바닥에 들러붙는 선택은 나보다 고양이가 먼저였다. 에어컨 근처 바닥에 옆으로 길게 누운 검은 자태가 눈에 들어온다. 에어컨이 작동하는 동안 얼음장처럼 가장 시원해지는 장소다. 눈을 감고 있는데 녀석이 쪼르르 달려오더니 내 머리 옆 어딘가에 자리 잡는다. 자라, 아저씨 더 자야 한다.<br>자는 둥 마는 둥 하는데 고양이가 방석 밑에 들어간 빵끈을 잡겠다고 요란이다. 가지고 노는 장난감 중 하나다. 뒹굴며 오두방정을 떠는 녀석을 보며 미안한 생각이 얼핏 스친다. 나 이외엔 아무도 없는 세상을 만들어줘서. 사람에 대한 사회성은 전무하고 고양이에 대한 사회성도 신통치 않아 보인다. 다른 아이를 입양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덥다. 도저히 안 될 거 같아서 에어컨을 다시 켠다. 소파에 누워서 찬바람을 만끽하는데 녀석이 캣타워 꼭대기 아크릴 해먹에 들어간다. 한 다리만 해먹 밖으로 뻗고 잠을 잘 태세다. 에어컨이 켜지면 캣타워 주변이 시원해진다는 걸 이제는 안다. 녀석은 집고양이다.<br>잠을 잔 건지 모르겠다. 집을 나서면서 인사를 해보지만, 녀석은 뚱하다. 인사도 안 해주고. 흥이닷. 하나도 안 미안하다. 아저씨는 이제 나이가 들어가는 중이라 꽤나 변덕스럽다.<br>꼬리말) 놀랍게도 지난 주 토요일에 쓴 글이다. 이 날 밤을 시작으로 새벽 날씨는 시원한 바람이 부는 중이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세계관의 파괴 - [1984 (한글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44047</link><pubDate>Tue, 11 Aug 2026 08: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4404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352435848&TPaperId=1744404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673/4/coveroff/e35243584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352435848&TPaperId=1744404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1984 (한글판)</a><br/>조지 오웰 지음, 정영수 옮김 / 더클래식 / 2013년 05월<br/></td></tr></table><br/>미래의 디스토피아를 다룬 소설 중 대표 격인 작품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려진 이야기다. 1948년에 집필하기 시작해서 49년에 출간됐고, 가까운 미래인 1984년을 배경으로 내용을 서술한다. 영국인인 작가는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에서 경찰이란 직업을 가졌었고, 그 후론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정치 체제나 이념이 얼마나 겉과 속이 다른지 체험했고, 그 경험과 거기에서 비롯된 생각들을 소설에 그대로 녹여냈다고 보면 될 듯하다.<br>사람마다 보는 시각이 다르니, 분명 누군가는 철저한 감시와 통제를 이 소설의 핵심으로 파악할 것이다. 사실 우리에게 더 유명한 건 ‘1984’란 소설 제목보다 ‘빅 브라더’란 단어일 거고, 그 단어는 대부분 감시와 통제를 상징하는 용도로 많이 쓰인다. 게다가 요즘의 정보통신 기술은 이 소설에 나오는 감시 기술들을 애들 장난 수준으로 보이게 할 만큼 충분히 발달했다. 한 예로 AI와 결합한 거리의 CCTV는 이상 행동(담을 넘는다든지, 일정 장소를 오랜 시간 동안 배회한다든지)을 감지하면 관제 센터의 사람에게 통보하고, 지역 지구대에까지 연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개인정보와 사생활에 민감하다면, 이 소설에 내세운 감시와 통제는 끔찍할 수밖에 없다.<br>나도 예전엔 그랬던 거 같다. 그런데 이번엔 정치 체제가 구성원 개인의 정신을 파괴하고 말살하는 모습이 아프게 다가왔다. 자신들은 순교자나 아이콘을 만들지 않는다는 말, 개인 내부의 마지막 피신처까지 싹싹 드러내서 텅 비어버리게 만드는 과정. 감시와 통제는 효율적이고 비인간적이지만, 말살은 역설적으로 인간적이며 건조하고 치밀하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구속, 무지는 힘.’ 소설에 나오는 당의 표어가 갖는 모순이 말살 과정에서조차 그대로 드러난다. 그래서 더욱 아팠던 거 같다. 기술적 접근이 아닌 본질적 접근이라서. 그것이 사회 제도의 개혁이 아닌 개인 세계관의 파괴를 위한 수단이라서.<br>‘개인이 갖는 세계관의 파괴’라고 하니 요즘 우리나라에도 이와 관련된 주제가 하나 있는 거 같다. 세제 개편과 함께 시끌시끌한 부동산. 유일한 투자 수단이자 삶의 목표였던 1970, 80년대부터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부동산은 세대에 따라, 아니, 세대와도 상관없이 개인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띠며 존재해 왔다. 안타깝게도 현재 2, 30대도 돈을 끌어모을 능력이 있는 개인에 한해서는 부동산에 대한 태도가 과거 세대와 다를 바 없지 싶다. 이쯤 되면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관의 문제 아닌가? 그럼, 개혁이나 개편이 아니라 세계관을 파괴해야 한다는 얘긴데. 뭐, &lt;1984&gt;랑 직접 상관은 없는 문제다. 그래도 궁금은 하네. 윈스턴이 고가 아파트 소유주였다면 끝까지 버텨냈을 것도 같은데.]]></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673/4/cover150/e35243584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730469</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고양이 일기</category><title>고양이 일기_11</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42329</link><pubDate>Mon, 10 Aug 2026 09: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42329</guid><description><![CDATA[*** 젊었을 땐 글을 통해서 끊임없이 투덜거렸다. 나이 들어서도 그렇긴 하지만 예전만큼은 아니다. 고양이를 상대로 대놓고 투덜거리는데, 아마 그게 어느 정도 이유가 될 듯싶다. 분산 효과일까? ***<br>"야, 꼬맹이! 주먹만 한 게 어디 반백 년이나 산 아저씨 물건을. 비켜라, 그거 아저씨 의자다."난 3개월밖에 안 살았다! 그러니 이 의자는 내꺼다!<br>"이 자슥이, 니가 개냐? 땅바닥에 떨어진 건 다 주워 먹고? 그거 뱉어라!"냥, 아저씨가 잘 치웠어야지! 내가 잡히나 봐라!<br>"월이, 아저씨 일하러 가면 혼자 집에 있을 때 청소를 하든가, 니 밥그릇이라도 좀 닦아라."내가 아저씨 대신 잠을 자줄 순 있다. 그러니 아저씨가 해라, 청소.<br>"야, 너 똥 밟았냐! 고양이는 깔끔한 동물이라며? 넌 뭔데?! 이리 안 와! 그 발로 어딜 뛰어가!"아저씨한테 인사하러 나오다 그런 거잖아! 그러게 왜 갑자기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데!<br>"우악! 야 이... 자고 있는데 배로 뛰어내리면 어떡하냐!"컴컴한데 잠만 처자냐?! 나랑 놀자, 심심하다!<br>"월아, 아저씨 대신 네가 좀 씻으면 안 될까? 너무 힘들어서 움직이기도 싫다."아저씨, 전생에 개였냐? 어떻게 숨 쉬듯이 개소리를 할 수가 있냐?<br>"월아, 아저씨 밥 좀 차려주라. 너무 귀찮다."... 앞으로 내가 이 아저씨를 키워야 하나? 고양이별에서 그런 교육은 받은 적 없는데, 냥.<br><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죽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39224</link><pubDate>Sat, 08 Aug 2026 15: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39224</guid><description><![CDATA[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 늘어서 반려동물 전문 블로그가 아니더라도 고양이나 개에 관한 글을 많이 접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물들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도 종종 들을 수밖에 없다. 죽다 살아난 이야기, 이별을 앞둔 마지막 기록들, 무심결에 맞닥뜨린 아기 길냥이의 죽음 같은 것들. 그리고 그 자리에 묻어나는 기록한 자들의 감정들.<br>고양이가 내 곁에 자리 잡기 전에 죽음에 대한 관심사라면 당연히 ‘나’와 관련된 것이었다. 어떻게 해야 폐를 끼치지 않고 나 자신을 지키면서 세상을 뜰 수 있을까? 아니면 이렇게 혼자 살다 어느 날 갑자기 죽으면 어떡하지? 한때 고독사가 사회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다. 가족과 연락을 끊고 살다가, 혹은 외톨이로 남아 혼자 살다가 죽고 나서 몇 달이 지나서야 시체가 발견된 사람들에 관한 기사들이 넘쳐났다. 지금이라고 해서 그런 죽음이 갑자기 사라졌을 리 없지만, 그때만 해도 모든 언론이 시끌벅적했었다. 그때 대공원 그 아저씨와 나누었던 대화가 있다.<br>대공원 그 아저씨 : 형님, 남의 얘기가 아니에요. 형님은 그래도 조카랑 누나들이 있지만 난 완전 혼자나 다름없어요.나 : 흠...대공원 그 아저씨 : 이러다 집안에서 갑자기 쓰러지면 그대로 세상 뜨는 거잖아.나 : 틀린 말은 아닌데. 좀 달라. 당신처럼 하루 15시간 이상, 주 7일 쉬지 않고 일하다 죽는 건 ‘고독사’가 아니라 ‘과로사’야. 우리, 말은 바로 합시다. 담당하는 정부 기관도 다를 걸 아마?대공원 그 아저씨 : 진짜! 그러기에요, 형님!나 : 은근슬쩍 고독사에 발 담글 생각하지 마. 우선 일부터 줄여. 그럼 내가 진지하게 고민해 볼게.<br>어느 날, 어둑어둑한 고양이가 내 곁에 눌러앉았고, 내 관심사는 고양이에게로 향했다. 내가 집에 없을 때 급사하면 어떡하지? (고양이는 아픈 티를 안 내기 때문에 겉보기에 급사인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내가 먼저 죽으면 어떡하지? 때 이른 걱정이고, 어쩌면 지나친 걱정일 수도 있다. 그래도 간혹, 다른 블로그에 드리운 그림자와 맞닥뜨릴 때면 그런 생각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그 의문과 불안을 바로 해결해 줄 방법은 없다. 죽음은 아무것도 정해놓지 않았을 테니까.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보자 싶지만 내겐 어울리지 않는다. 나에게 맞는 건, 그저 하던 대로, 오늘도 어제처럼 온갖 감정에 휩싸인 채 살아내는 것. 그리고 농담 반, 진담 반인 듯 적절한 거리를 두며 죽음을 응시할 것. 그리고 나를 둘러싼 이 모든 삶을 치열하고 차별 없이 누릴 것.<br>그래서...베란다에서 고양이와 함께 길가에 전봇대를 뽑는 걸 구경한다. 저렇게 전봇대를 통째로 뽑아낸다고? 그렇군. 고양이를 슬쩍 보니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듯 보인다. 조심스레 옆을 빠져나오지만, 어느새 고양이도 내 뒤를 따라잡는다. 자라, 고양이. 넌 잘 때가 제일 예쁘다. 언제나 그렇듯 내 말은 개소리로 전락한다. 졸졸졸.]]></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확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36855</link><pubDate>Fri, 07 Aug 2026 08: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36855</guid><description><![CDATA[삶은 불확실하다... 고 생각했다. 내가 본 소설들과 영화들은 그 불확실성에 휘둘리는 사람들을 보여줬다. 이게 무엇인지, 저게 무엇인지 모르겠고,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으니, 이도 저도 할 수 있는 게 없고. 어쩌면 우린 너무 많은 걸 바라고 신경 쓰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행복과 가족의 평안만 추구한다 하더라도 거기 따라붙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최소한의 경제적 뒷받침과 건강한 육체와 자신들을 둘러싼 건전한 환경과 또... 그게 갖추어진다 해도 우린 멈추지 않는다. 더 좋은 경제력과 인조인간 같은 신체와... (흠, 이건 아니군.. 너무 갔다)<br>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온라인엔 온갖 확신이 넘쳐흐른다. 저기 저 세상은 내가 사는 이 세상과 다른 곳이다. 삶은 확실하다. 이거 아니면 저거. 도대체 무엇이 저들을 확신의 캐릭터로 만들었을까? 너무나 선명한 위화감에 주변을 둘러보다 둥그런 모양 바구니에 들어가 자는 중인 고양이를 발견한다. 이 녀석의 삶도 우리 집에 들어온 이후부터 나름 확실해졌다. 무엇보다 녀석이 원하는 건 관심과 까까뿐. 아저씨의 장난기와 변덕이 삶의 불확실성을 조금 높일 수 있겠으나 그 정도는 잔잔한 연못 표면을 스치는 산들바람에 불과하다. 시선을 느꼈는지 게슴츠레 눈을 뜨는 고양이.<br>어이, 고양이, 너 확신의 유튜버가 돼라. 너한테 딱 맞는 직업이다.<br>또 헛소리하는구나 싶었는지 고개를 돌리고 다시 잠을 청한다. 나에 대한 파악을 거의 100% 완료한 듯싶다. 아, 확신의 유튜버가 되면 딱 좋을 거 같은데. 원하는 건 관심과 까까뿐인데.<br>]]></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반환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35160</link><pubDate>Thu, 06 Aug 2026 08: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35160</guid><description><![CDATA[요즘은 산을 오를 때마다 땀으로 범벅이 된다. 정상에 도착하면 그 어느 때보다 지친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덥고 갈증 나고 힘들고. 그나마 다행인 건 내려갈 일만 남았다는 점. 올라오면서 살폈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다시 주변을 돌아본다. 없다. 내가 찾는 건 주로 삼색이다. 못 본 기간이 길어지면 모지리와 조그만 고등어도 찾지만, 그래도 삼색이만큼은 아닌 거 같다. 최근엔 고양이 자체가 보기 어렵다. 워낙 덥다 보니 햇볕에 노출되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인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삼색아~’ 외쳐보고 싶지만 그런다고 알아들을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사람 어른 꼴을 하고서 산 정상에서 그러고 있음 다들 무서워할 거 같아서 참는다. 세상이 세상인지라.<br>털레털레 산 중턱을 지나 동네 경계 부근 공원을 지나는데 느닷없이 들려오는 소리. ‘뭐 하는 거야?’ 약간의 놀람과 당혹함이 뒤섞인 아주머니의 목소리다. 삼색이의 실종으로 혼미하던 정신이 간신히 목표물을 포착한다. 아주머니 한 분과 할머니 한 분. 할머니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나 벤치에 앉았고, 아주머니는 그 할머니에게 다시 한번 말을 건넨다. ‘뭐 하게, 뭐 하려고?’ 터덜터덜 걸어가며 그저 멍하니 시선을 던지고 있었는데, 보이는 각도가 달라지자, 할머니의 바지가 엉덩이께로 내려와 있는 게 보였다. 아! 상황 파악과 함께 달려드는 복잡한 감정들. 아주머니는 상황을 무마하려는 듯 웃으며 말한다. ‘잠깐만 일어나봐요.’ 몇 초 간의 짧은 상황을 돌이키며 생각한다. 치매일까? 아마도.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급한들 벤치 바로 앞에서 볼일을 보려 하진 않았을 테니까. 아주머니의 만류에 배시시 웃던 할머니의 미소가 머릿속에 각인된다. 무엇인가 빠져나간 존재를 향한 안타까움과 안쓰러움과…. 그런 미소는 기억할 필요가 없는데. 그런데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포착해서 갈무리하는, 이 무의식적 작용의 원인은 바로 그리움. 쳇.<br>뒤따라오며 처음 울음소리를 들려주던 때. 먹을 거 더 내놓으라고 야옹거리며 한참을 뒤따라오다 걸음을 멈추고 쳐다보던 때. 어른 고양이를 보자, 부리나케 도망쳐 자취를 감추던 때. 그리고….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온갖 기억 속을 떠돈다. 다시 볼 수 있을 거야. 아니, 다신 못 보지. 아니, 아니, 그 사람 말고. 하, 확실히 난 반환점은 돌았어. 내가 가까이 다가가는 그 무엇인가를 어렴풋하게나마 끊임없이 의식하는 걸 보면.]]></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8월, 이제 시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33242</link><pubDate>Wed, 05 Aug 2026 08: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33242</guid><description><![CDATA[매주 더위가 남달라진다는 느낌이라 다음 토요일엔 어떤 얘기를 할지 모르겠지만 지난 토요일 더위는 색달랐다. 일을 하다 보면 매장 밖으로 잠깐이라도 나갔다가 들어올 일이 있는데 그때마다 의욕이 한풀씩 꺾였다. 뜨거움도 뜨거움이지만 기다렸다는 듯 몸을 휘감는 습도 때문이다. 몸으로 스며들어온 습기가 내부의 의욕마저 희석한달까. 한 번 꺾인 의욕을 에어컨으로 되살려보지만 그때뿐이다. 이런 느낌을 가져다준 더위는 이번이 처음이지 싶은데.<br>일요일. 어제 하루 겪었다고 그나마 낫다. 온도나 습도가 어제보다 좋아진 건 아니지만 의욕이 꺾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밝은 표정으로 이 공기 속을 활보할 순 없었다. 얼굴은 절로 찌푸려진 채 발걸음은 터덜터덜. 머릿속 사고회로가 물에 잠긴 듯 허우적대다가 뜬금없이 무언가 하나를 건져 올린다. 끊임없는 자극에 분노와 좌절이 몰아치던 그 어떤 시절을. 그때 내 삶이 뜨거웠었나? 아니, 차가웠던가? 온도 때문에 떠올린 건 아닌 모양이다. 아마도 피할 수 없는 이 긴 여름 때문일 것이다. 얼른 문을 열고 매장 안으로 들어간다. 그때도 그랬다. 내 안으로, 내부로 피해서 가라앉았었다. 그뿐이었다. 매장 내부 시원함 같은 건 내 안에는 없었으니까. 지금이, 이 여름이 그 시절에 비하면 천국이구나.<br>월요일. 이번 주 중부지방은 기록적으로 더울 거라 했다. 밖에 나가 몸으로 실감하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고양이가 아침 햇볕을 피하는 중이다. 이 시간이면 마루 베란다 타일 위에서 배회할 녀석이 오늘은 마루 중간쯤에 주저앉아서 햇볕을 가늠한다. 오전 9시에 30도라. 집안일하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10시 반쯤 에어컨을 켠다. 부엌 창가에 찌그러져 있던 고양이가 그제야 베란다로 쪼르르 달려간다. 공기가 시원해질 테니 햇볕을 쬐겠단다. 집고양이라면 에어컨의 효용 정도는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이따 산에 가야 하나? 못 돌아오는 거 아니야?]]></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파란 열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31372</link><pubDate>Tue, 04 Aug 2026 08: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31372</guid><description><![CDATA[적금이나 예금이 아닌, 투자와 관련된 돈 관리를 시작한 건 20대 후반부터였다. 시작은 펀드였다. 주식에 직접 투자한 건 그보다 훨씬 뒤다. 30대 후반쯤이지 싶다. 가장 처음 배워야 했던 건 참는 법이었다. 시장의 변동성을 견뎌내야만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니까. 두 번째로 배운 건 사는 법. 불확실성과 공포를 이겨내고 시장에 들어갈 시점을 찾아야 했다. 세 번째로 배운 건 파는 법. 욕심을 다스릴 줄 알아야 했다. 모든 배움엔 손실이란 대가가 따랐다. 또 배웠다고 해서 모든 걸 깨우쳤다는 얘기는 아니며, 항상 그대로 실천했다는 얘기는 더더욱 아니다. 이 시장은 법칙이 있을지는 모르나, 펄펄 날뛰어 예외를 일상으로 만드는 곳이다. 전문가의 예측은 무의미하다. 그저 결과론만 존재할 뿐.<br>그동안 투자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투자는 여유 자금으로만 하자. 펀드는 총수익률 12~13%에 도달하면 환매한다. 주식은 총수익률 20%가 되면 판다. 이런 대원칙은 있었지만 1년에 얼마를 벌겠다, 또는 투자를 통해서 얼마를 벌겠다 같은 목표는 없었다. 그런데 올해 처음으로 목표를 세웠다. 작년 집수리를 했으니 그 비용의 일정 부분을 올해 보충해야겠다는. 알다시피 주식 시장이 한동안 좋았으니, 목표는 순항했다. 1년의 절반도 지나지 않은 5월에 이미 목표 금액의 70%가량을 채웠다. 당시 내 계획은 주가가 지나치게 올랐단 판단하에 5월부터 보수적인 투자로 방향을 트는 것이었다. 하지만 살면서 처음 세웠던 투자 목표가 내 발목을 잡았다. 남은 30%를 향한 집착이, 그 30%를 달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이 나를 앞으로 밀어냈다. 결과는? 고양이, 어째 이번 생은 그른 거 같다...<br>돌이켜 보면, 내겐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본보기가 이미 있었다. 대공원 그 아저씨도 미국 증시에 오랫동안 투자 중인데, 장기적인 목표 금액을 정해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어느 날, 더해지는 나이와 줄어드는 월급에 조급증이 발동해 테마주에 단타로 뛰어들었다. 결과는? 형님, 어째 이번 생은 그른 거 같습니다…. 불과 몇 달 전이었다. 멍청하게도 저 모습이 내 거울이었다는 걸 대가를 치른 후에야 깨달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 거면, 배움에 돈을 내는 게 당연하긴 하지. 파란 숫자가 쏟아질 것만 같은 푸르른 하늘을 보며 나름 위로해 본다.<br>비관론자의 얘기는 어쩌다 하나 맞추면 명성을 얻는 터라 우울한 학자의 논문 같은 느낌이고, 장기적으로 우상향할 거라는 낙관론자의 얘기는 ‘멸종하기 전까지 인류는 살아 남을 것’이라는 말만큼 공허하고, 기업의 가치를 소리쳐 외치는 가치투자자의 얘기는 심리적 장벽 앞에서 언제나 무력하다. 누군가는 버블이 붕괴하는 중이라 말하겠지만, 더 정확하게는 스스로 투자라 생각했지만 투기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인 개인 자금들이 녹아내리는 과정처럼 보인다. 시퍼렇게 달아오른 시장을 살필 게 아니라 내 마음가짐을 살펴야 할 시기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고양이 일기</category><title>고양이 일기_10</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29564</link><pubDate>Mon, 03 Aug 2026 09: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29564</guid><description><![CDATA[*** 고양이를 입양했던 시기, 평일엔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주말엔 8시 넘어서 일어나곤 했다. 그때마다 옆에서 같이 자고 있던 고양이 머리를 한참 쓰다듬다가 일어났다. 이런 일과가 계속 반복되자 고양이는 자기 입장만을 고려해 상황 판단을 내렸다. 고양이가 강아지보다 머리가 좋은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다만 자기중심적 판단력과 잔머리는 누구에게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br>아~함. 잘 잤다. (뒹굴) 푹신하고 따뜻하네. (뒹굴) 냥. 일어나라, 아저씨. 일어날 때가 됐다. 죽었나? 왜 꼼짝도 안 하지? 냐아~웅. 일어나라, 항상 일어나던 시간이다. 에잇! (퍽) 어쭈? 이래도 안 일어날래? (배 위로 올라감) 꼼짝도 안 하네. 진짜 죽었나? 아저씨, 살아 있는 거냐? (킁킁. 귓구멍에 코를 대고 냄새 맡는 중)<br>으응...(손으로 귀를 긁음)<br>안 죽었네. 배고프다, 까까! 심심하다! 아이 씨. 가만, 아저씨가 일어날 때 어떻게 했더라? 내 머리를 막 만졌는데. 그럼 저 손에 내 머리를 밀어 넣고 막 돌리면? 아저씨, 손 좀 쫙 펴봐. 그렇지, 그렇게. 이제 머리를 넣고... (부비부비) (뒹굴)<br>으응... (옷에다 오줌 싸는 꿈을 꾸는 중)<br>에잇, 더 세게. (부비부비) (뒹굴뒹굴)<br>으응... (나이 들어서 오줌도 못 참고 싸지른다고 좌절 중)<br>이제 일어나겠지? (부비부비)<br>으응? 너... 거기서 뭐 하냐? 야, 손바닥이 갑자기 따뜻해져서 오줌 싼 줄 알았잖아!<br>아저씨, 나랑 놀자!<br>푸하하하. (고양이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깨닫고 웃음이 터짐)<br>냥? 왜? 왜 웃는데?<br>오늘 토요일이라 늦게 일어날 거거든. 지금 6시밖에 안 돼서 두세 시간 더 잘 거야. 그러니까 깨우지 마라.<br>왜 또 자는데? 내 머리 막 문질렀잖아!? 그럼 일어나야지!<br>(등 돌림)<br>이 씨, 내가 오늘만 봐준다. 내일 안 일어나면 또 깨울 거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그루밍</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27044</link><pubDate>Sat, 01 Aug 2026 17: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27044</guid><description><![CDATA[오전 11시. 해님이 열심히 제 갈 길 가느라 베란다에 햇볕이 살포시 걸쳐 있다. 난 이 날씨에 햇볕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지만, 고양이는 아니다. 까까를 얻어먹은 고양이는 떠나려는 햇볕을 부여잡고 벌렁 드러누워 그루밍을 한다.<br>막 참치 먹고 그루밍 하면 몸에서 참치 냄새 나지 않니?<br>볼 때마다 궁금하다. 먹고 나서 그루밍 하는 것은 간식 냄새를 몸에 남기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뒤로 한 채 녀석은 열심히 몸을 핥는다. 앞발을 핥을 때면 언제나 얄미움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br>너 일부러 나 쳐다보면서 그러는 거지?<br>볼 때마다 궁금하다. 앞 발바닥을 그루밍 하며 나와 눈을 마주치는 건 나를 약 올리기 위함이 아닌지. 타당한 의혹을 뒤로 한 채 녀석은 자세를 바꿔 등을 핥는다. 몸이 굴러가지 않게 뒷발 하나를 야무지게 끌어안고서 그루밍에 몰두한다.<br>고양이, 그러고 있을 때 자세 뒤집어지게 다른 한쪽 뒷다리 내가 들어 올리면 때릴 거지?<br>이건 궁금하지 않다. 예전에 한 번 해봤다가 맞은 적 있다. 고양이한테 맞으면 아프진 않은데 뭔가 의기소침해진다. 하찮음이 내뿜는 후유증이랄까.<br>잠깐 휴식 중. 그 틈에 질문을 던진다.<br>고양이, 그렇게 열심히 핥으면 혓바닥에 쥐 안 나냐?<br>그럴 리 없다는 듯 다시 열심히 몸을 핥는다. 이번엔 배를 할 차례다. 무슨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번쩍 들어 그쪽을 쳐다본다. 혀는 메롱 한 채. 가끔 혀 수납을 깜빡한다. 혓바닥에 쥐가 나는 게 아니라 뇌에 과부하가 걸리는 걸까? 그러다 베란다 바닥에 철퍼덕 앉아 고양이 그루밍을 감상하는 내 모습이 의식에 잡혔다.<br>고양이, 나는 왜 여기서 너를 구경하고 있는 걸까?<br>고양이가 나를 불렀으니까. 자기 뭐 하는지 지켜보라고. 정말? 진짜로? 고양이가 그루밍을 마치고 등을 돌려 눕는다.<br>오구, 오구, 참 잘했어요~ (짝짝짝)<br>조건반사 급의 칭찬. 고양이는 좋겠다. 뭘 해도 칭찬받고. 삶은 자각과 착각의 연속인 듯.]]></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자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23193</link><pubDate>Fri, 31 Jul 2026 09: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23193</guid><description><![CDATA[산 정상에 거의 도착했다. 바로 아래쪽, 나무로 그늘이 지고 바위로 평평한 부분부터 살폈다. 없다. 아저씨 한 분만 앉아서 쉬고 있다. 정상에 올라 성곽 구멍들을 쭉 훑었지만 역시 없다. 지난주부터 고양이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지난 주엔 젖소(모지리)와 새로 등장한 삼색이만 봤다. 사람이 근처에 있건 말건 항상 그늘을 차지하고 쉬던 고양이 두 녀석도 보지 못했다. 아쉬움에 정상에서 서성이는데 작년 가을 삼색이가 처음으로 튀어나왔던 수풀 속에서 뭔가 귀여움이 스쳐 지나간다. 뭐지? 빤히 쳐다보다가 그 안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는 눈동자와 마주친다. 헉! 아기 고양이들! 그것도 하나, 둘, 셋, 넷! 가까이 다가가자, 수풀 속으로 쑥 들어가서 자취를 찾을 수가 없다. 교육 잘 받았구나. 일단 사람이 다가가면 피하는 게 맞지.<br>기다려봐도 나오지 않길래 어쩔지 망설이는데 모지리 등장. 모지리에게 닭가슴살 두 개 투척. 다시 수풀 앞으로 다가가 닭가슴살 하나를 잘게 쪼개서 아기들이 머물던 자리에 흩어놓는다. 그리곤 돌아가려는데 조금 용감한 두 녀석이 나타나서 열심히 먹어 치운다. 치즈냥이와 젖소냥이다. 이 산에서 치즈는 귀한데. 다 먹길 기다렸다가 마지막 닭가슴살을 잘게 찢어 놓아준다. 두 마리 추가로 등장. 삼색이와 고등어인가? 색이 애매하게 섞였네. 카오스인가? 연이어 엄마 등장. 지난주 처음 봤던 새로 온 삼색이다. 닭가슴살 없는데. 애를 넷이나 키우려면 잘 먹어야 하는데. 주식이 아닌 간식거리라도 주려고 가까이 다가가자 대차게 하악질 작렬. 하나도 안 무섭거든. 덩치나 좀 키우고 하악질을 하던지. 그렇게 하찮아서 어디 새 한 마리나 쫓겠냐? 조그만 체구가 안쓰러워 툴툴대다가 조금 전 모지리에게 준 닭가슴살 두 개가 아까워서 녀석 쪽을 휙 돌아본다. 저 자슥, 다른 때는 잘 안 보이더니만 오늘은 눈에 확 띄고! 새끼들과 함께 열심히 간식거리를 주워 먹는 삼색이를 보며 생각한다. 그 하찮은 하악질로 여기 고양이들 다 내쫓았니? 아님 다른 고양이들이 피해 준 건가? 어, 가만 있어봐... 아기 중에 젖소가 있고, 지난주부터 보이는 건 모지리 뿐인데…. 모지리 너, 이 아이들 아빠야?! 이런 세상에나. 모지리 너 모지리가 아니구나. 정상에 있던 사람들이 아기 고양이의 존재를 알아챘다. 다행히 거리를 두고 사진을 찍는다. 모지리는 다시 스텔스 모드. 저 녀석,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구먼.<br>고양이 가족들을 지켜본 후 산에서 내려온다. 정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내리막길. 아기들 덕에 즐거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내딛다가 옆에 있는 새와 마주친다. 까치? 다른 새인가? 어른인가? 완전 성체는 아닌가? 길옆에 새가 옆으로 누워있다. 근처에서 소리가 들리면 고개를 돌리지만 날거나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 몸이 너무 깨끗하다. 상황은 죽음이 연상되지만, 외모는 멀쩡해서 그 괴리감 때문에 한참을 보고만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뱀한테 물렸나? 말벌에 쏘였나? 얘를 저쪽으로 옮겨도 상관없나? 살아가는 고양이에게 먹거리를 가져다주고 걱정하면서 죽어가는 새에게 관여하는 걸 주저하는 태도는 뭐지? 하필이면 사람조차 지나가지 않는다. 내가 소리를 내도 새는 돌아보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한참을 쳐다보기만 했을 뿐이다. 자연은 한 치의 예외 없이 공평했다. 그리고 그 순간 산이 내게 물었다. 너도 그럴 수 있냐고. 고양이가 내 앞에서 죽어가면 어떻게 하겠냐고.<br>꼬리말) 6월 25일에 썼던 글. 공교롭게 고양이와 새가 나와서 최근 길고양이 관련 이슈와 겹치지만 직접 관련은 없다. 누구나 자신만의 가치나 생각 같은 것들이 있고, 그것으로 갈등하며 고민한다. 이 글은 딱 여기까지다. 하지만 지금 덧붙이자면 그 결과가 나와 다른 무언가를 제물로 삼는 거라면, 난 그런 세상을 주저하지 않고 혐오하겠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변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20914</link><pubDate>Thu, 30 Jul 2026 07: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20914</guid><description><![CDATA[금요일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토요일에도 그칠 생각은 없었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마루 쪽 베란다 방충망을 열고 안을 살핀다. 잘 버틴다 싶었는데 빗물이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에휴. 건물을 새로 짓기 전엔 누수를 막는 건 꿈도 꾸지 말아야 할 듯. 고양이, 오늘 베란다는 워터파크 개장 관계로 영업 안 한다. 열심히 손을 흔들어보지만, 사춘기 딸내미의 빨리 나가라는 눈빛만 한 움큼 얻어맞았다. 흥, 못된 자슥.<br>일요일. 퇴근하고 돌아오는데 드디어 집 근처 도로에 아스팔트를 깔고 있다. 흙먼지로부터 이제야 해방이 되는구나. 없어 봐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다고 하지만, 솔직히 아스팔트가 이리 반가울 줄은 몰랐다. 아스팔트 없는 도로에 차들이 다니면서 일으키는 흙먼지는 정말이지 엄청났다. 너무 기뻤던 탓일까? 베란다 외부 창 앞에 앉아서 고양이와 함께 아스팔트 깔리는 광경을 멍때리고 관람했다. 오, 요즘은 깔자마자 위로 차가 다녀도 되는구나. 야, 저 방정맞게 움직이는 조그마한 불도저는 뭐냐? 어라, 아스팔트 위 글씨는 저렇게 해서 사람이 쓰는구나. 반백 년을 넘게 살아도 궁금하고 신기한 건 어쩔 수 없다. 고양이야 말해 무엇 하겠나.<br>월요일 늦은 오후. 산에 오른다. 금요일부터 토요일에 걸쳐 내린 많은 비가 산에 있는 많은 것들을 깨운 모양이다. 푸르름이야 여전하지만 식물들은 벌크업을 했는지 길을 막고 텃세를 부린다. 인간, 지나갈 거면 돈... 아니, 공손히 게걸음으로 지나가라. 다행히 난 옆으로 가는 걸 좋아한다. 지하철만 수십 년째다. 러브버그도 늘었다. 아우, 눈꼴 시러버라. 저리 꺼져라, 꼴 보기 싫다. 들고 있는 물병으로 역시 길막하는 벌레들을 탁탁 쳐내며 걷는다. 그러다 무심코 만난 말벌. 둥글고 큰 녀석이 아니라 날씬하고 무늬가 선명해서 마치 로봇 같은 느낌이 나는 녀석이다. 한동안 말벌이 없었는데. 느닷없는 출현에 나도 모르게 공손해져 물병 내리고 슬금슬금 지나간다. 드디어 정상. 식물이랑 곤충과 기싸움하며 올라오느라 마음에 안식을 가져다줄 존재가 필요했는데…. 고양이가 한 마리도 없다! 이럴 수가. 좌절하는 와중에 주위를 둘러보다 성벽 아래쪽 까만 줄이 움직이길래 가까이 가 보니 개미 떼다. 성벽을 따라 1m 정도 줄을 지어 이동 중이다. 많아도 너무 많구나. 너희도 비 때문에 집에 물이 새니? 내가 그 심정 잘 알지. 나는 두 손 놓고 있는데 너희는 집을 새로 짓니? 아님 구멍을 다시 파나? 대단하다.<br>변화가 심했던 요 몇일. 이렇게 사소한 일상에서 변화를 알아챈다는 것만으로도 지금 내 삶은 충분히 여유로운 것일지도 모르겠다.<br>꼬리말) 6월 말 풍경이다. 올해 러브버그는 확실히 기세가 꺾였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길고양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18591</link><pubDate>Wed, 29 Jul 2026 09: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1859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202534544&TPaperId=174185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526/7/coveroff/e20253454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고양이와 관련한, 특히 ‘길고양이’에 관해 해묵은 논쟁이 있다. 이들의 개체수를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 갈라파고스나 호주처럼 특수한 생태 환경을 지닌 곳에선 인간의 필요에 따라 키우다 야생화된 모든 생물이 생태계 교란종이다. 개, 고양이, 염소, 양, 말 등. 그럼, 도시에선 어떨까? 어차피 인간 중심 환경이라 생태계를 파괴한다고 할 순 없겠지만 야생화된 고양이는 분명 소형 포유류나 조류에게 위협이 된다. 그나마 이 위협을 줄일 방법은 길고양이들에게 충분한 먹이를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양이들이 사냥을 멈추진 않는다. 그들의 사냥 본능은 꼭 먹기 위해서만 발휘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또 호불호 여부를 떠나 고양이의 배설물과 발정기 소리는 저층에 사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 이러다 보니 당연히 논쟁이 생길 수밖에 없다.<br>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고양이로 인한 주민 사이 갈등은 어디서나 일어나고, 안타깝게도 그 모든 곳에서 제대로 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우리 같은 경우 지자체에서 TNR(포획, 중성화, 방사)을 어느 정도 지원해 주는 탓에 가끔 유일한 해결책처럼 여기기도 하지만, 이 또한 논쟁이 많은 정책이다. 외국에선 주로 동물보호단체들은 TNR을 옹호하고, 정부 기관이나 (넓은 의미의) 야생 동물 협회는 그 실효성을 의심한다. 그래서 간혹 극단적인 살처분(포획 후 안락사)을 주장하기도 하나, 이 역시 비용이나 실효성, 거기에 더해 윤리적 문제까지 겹쳐서 행정적 지원이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그래서 결국 언제나 논쟁은 시작점으로 되돌아온다.<br>국회 홈페이지에 청원을 올리는 곳이 있다. 이곳에서 최근 두 개의 의견이 대립 중이다. 하나는, 길고양이가 다른 동물들과 사람들에게 끼치는 피해를 고려해 급식소를 엄격히 통제하고 포획된 고양이를 보호할 시설을 확충해서 장기적으로 길고양이 수를 줄여야 한다는 것. 이에 반하는 다른 하나는, 저 주장은 결국 살처분하자는 것과 다름없으니, 지역적으로 꼼꼼하게 TNR을 시행하고 먹을 것을 충분히 공급하면서 안정적으로 개체수를 관리해야 한다는 것. 이 대립이 언제나 그렇듯 감정적으로 흘러갈 거란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건 한쪽은 캣맘이나 캣대디를 조롱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다른 한쪽은 고양이에 몰빵함으로써 자신들의 성역을 구축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br>이 논쟁은 어찌 보면 지극히 인간적이다. 인위적인 적극 개입을 요구하는 쪽은 자기 삶에 조류가 핵심으로 들어온 상태고, 안정적 개체수 유지를 주장하는 쪽은 고양이가 중심을 차지한다. 이건 단순한 의견 대립이 아닌 세계관의 대립이다. 내 삶의 영역이 어디에 걸쳐있냐에 따라 주장하고 대응하는 바가 다르다. 처음 주장과 달리 뒤따르는 대응은 언제나 양쪽 모두 선을 넘는다. 조롱과 비하를 무기로 상대방의 세계를 짓밟으려 한다. 어느 쪽도 응원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br><br> “때때로 갈라파고스를 두고 격앙되는 논의에서는 인종차별적 언사, 이민 배척주의의 편견, 경제적 사리사욕의 메아리가 분명히 들린다.” - 배리 로페즈 &lt;호라이즌&gt; P400<br><br><br>꼬리말) 어느 한쪽의 의견을 골라야 한다면, 처음 올라왔던 청원에 반대하는, 길고양이의 삶을 받아들이는 쪽을 선택하겠다. 내가 고양이와 함께 살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보단 처음 청원에 은근히 내포되어 있는 인간 중심의 사고 방식이 싫다. 인간은 자연의 수호자도 아니며, 어떤 종의 운명을 결정할 존재도 아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526/7/cover150/e20253454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5260790</link></image></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생각의 뒤꽁무니</category><title>떠내려가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16947</link><pubDate>Tue, 28 Jul 2026 14: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16947</guid><description><![CDATA[장마가 끝나고 하늘이 갰다. 저 멀리 롯데타워가 불끈 솟아오른 채 전의를 불태우고 있고, 가까이엔 남산 위로 새하얀 구름이 폭발하듯 피어오르는 중이다. 그곳에서 서서히 퍼져나가는 구름은 세상의 때를 조금이라도 묻혀낸 듯 군데군데 회색빛을 품으며 사방으로 진군한다. 이 깔끔하고 쨍한 풍경에 이토록 전투적인 표현이 등장하는 이유는 뭘까?<br>곰곰이 생각해 보니, 조금 전까지 저 풍경 속에서 습도와 햇볕에 둘러싸인 채 포위 공격을 당하고 있었다. 세상에, 피할 틈도 주지 않고 어찌나 꼼꼼하게 덤벼드는지.<br>이봐, 고양이, 아저씨 땀구멍으로 피 토하고 죽을 뻔했어.<br>산 위에선, 아니, 오가는 도중에도 고양이를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그곳조차도 습도와 햇볕은 여유를 두지 않았다.<br>이봐, 고양이, 산꼭대기에 햇볕이 습도를 타고 폭포처럼 떨어지더라. 나 익사할 뻔했어.<br>심한 뻥에 스스로 생각해 봐도 염치가 없었는지 몇 마디 잔뜩 덧붙인다.<br>너는 집고양이라 바깥 상황을 몰라서 그래. 산고양이들은 단박에 맞장구칠 텐데. 걔네들 이미 떠내려갔는지 없더라고.<br>무심코 들여다본 핸드폰 주식 창은 온통 파란색이다.<br>이것 봐, 이거. 익사했네, 익사. 고양이, 아저씨 돈도 떠내려간다. 야, 폭우처럼 돈 쓰고 폭포수처럼 돈이 빠진다.<br>절대 휩쓸리고 싶지 않은, 이토록 멋진 풍경이라니.<br>고양이, 이번 생은 어째 글러버린 거 같은데…. 눈 예쁘게 뜨자. 그렇게 쳐다보는 거 아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대굴대굴</author><category>고양이 일기</category><title>고양이 일기_9</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14364</link><pubDate>Mon, 27 Jul 2026 10: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4577144/17414364</guid><description><![CDATA[*** 고양이는 야옹 어쩌고만 운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채터링 소리는 커다란 놀람이었다. ***<br>까까까 가각.<br>채터링 하는 거야? 새 있어? 야, 잡기나 하겠냐? 쪼이지나 마라, 자슥아.<br>멍청한 아저씨. 나 지금 고양이별에 보낼 메시지를 새한테 전송 중이다. 내가 새한테 보내면 쟤들이 다시 고양이별로 보내주지. 그것도 모르고, 쯧쯧.<br>(채터링) 아저씨 어제 친구랑 술 먹고 늦게 들어왔다.(새) 좀 더 쓸모 있는 정보는 없냐?(채터링) 어떤 게 더 쓸모가 있냐?(새)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채터링) 그럼 묻지를 말던가! 머리통은 조그마해가지고서.(새) 내 머리통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마랏! 혐오 발언으로 고양이별에 신고하겠다!(채터링) 아, 미안. 뭘 그렇게 발끈하고 그러냐?(새) 우린 저주를 받았다.(채터링) 무슨?(새) 태곳적에 커다란 날개만 믿고 높이높이 날아올라 신께 도전하다가 벌받았다. 새대가리의 저주를.(채터링) 냥...(새) 동정하지 마라. 선지자께서 지저귀시길 다시 우리의 전성시대가 올 거라 했다.(채터링) 그게 언제냐?(새) 바로 지금이다! 조두의 시대! 사람들을 봐라. 머리통 작은 것들이 떠받들어지고 있다.(채터링) 그, 그렇구나. 내가 전달한 정보는 고양이별에 잘 보내는 거 맞냐?(새) 걱정하지 마라. 그 정도도 못 할 만큼 멍청하지 않다. (푸드덕)<br>새대가리의 저주는 정말 무서운 거구나…. 아저씨, 나 까까 먹고 싶다! (뒹굴) 냥? 손에 든 그거 뭐냐? 붕어같이 보이는데.<br>붕어빵 먹어볼래? 생각보다 맛있는데. 고양이, 눈을 왜 그렇게 둥그렇게 뜨고 있는데? 걱정 마, 너 안 줄 거니까.<br>붕어빵이 진짜 있다구! 붕.. 붕어는 태곳적에 무슨 짓을 했길래 빵이 된 거냐? 그보다... (빤히) 아저씨는 전성기가 지나간 거냐? 머리통이…. 전성기가 아직 안 왔나?<br><br><br>]]></description></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