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각력 - 병을 부르기도 하고, 몸을 살리기도 하는 미각의 비밀
스즈키 류이치 지음, 이서연 옮김 / 한문화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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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 그대로 ‘미각력’에 대한 책이다. 보는 능력을 ‘시력’, 듣는 능력을 ‘청력’이라 말하듯이, 미각을 인식하는 능력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것이 바로 ‘미각력’이다. 이런 미각력이 높을수록 음식을 맛나게 먹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음식이 맛없게 느껴지는 것은 음식 자체보다는 많은 경우 음식을 먹는 이의 미각력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미각을 단련시켜야 한다는 것.

 

저자는 이런 미각력을 낮추게 되는 가장 주된 요인들을 몇 가지 들고 있는데, 그런 요인들 가운데 가장 경계하는 것이 바로 정크푸드다. 왜냐하면 정크푸드는 조미료나 식품첨가물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조미료나 식품첨가물은 우선은 ‘진한 맛(저자는 진한 맛은 좋은 것이 아니라 한다. 진한 맛을 자극적인 맛이라 말할 수 있겠다)’을 냄으로 일단 입에서 맛있게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런 ‘진한 맛’에 익숙해지면 점차 엷은 맛을 맛있다고 느끼지 못하고 더 진한 맛을 찾게 되는 악순환에 빠짐으로 영양의 불균형을 가져오게 되고, 뿐 아니라 건강을 해치게 된다고 말한다. 아울러 식품첨가물은 아연의 흡수를 방해함으로 미각장애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진한 맛’보다는 ‘깊은 맛(깊은 맛이란 한 가지 맛이 아닌 여러 가지 맛의 조합을 의미한다)’을 추구할 것을 말한다. 아울러, 가장 중요한 것은 자극적이지 않은 ‘엷은 맛’에서도 맛을 느낄 수 있도록 미각력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담백한 맛을 맛있다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처럼 ‘엷은 맛’에서도 맛을 느낄 수 있는 미각력을 회복하기 위해선 적절한 운동과 휴식이 미각을 단련시켜주며, 또한 맛에 대한 기억 즉 상상으로도 미각을 단련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조금씩 엷은 맛에 길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아울러 비록 ‘엷은 맛’이라 할지라도 다양한 미각이 합쳐진 ‘깊은 맛’으로 맛을 추구할 것을 말한다.

 

또한 저자가 강조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편식하지 않고, 다양한 식경험을 쌓게 할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미각을 인식하는 능력 가운데 하나는 식경험을 통해 얻게 되기에 다양한 식경험을 쌓을 때, 미각력이 높아지게 되기 때문이란다.

 

이러한 주요한 내용 외에도, 미각에는 남녀 차이가 있고, 유전적 영향으로 맛을 다르게 느끼는 점도 있으며, 6번째 맛으로 지방맛을 이제는 고려해봐야 한다는 언급도 하고 있으며, 나이가 들수록 미각은 둔해지기도 하지만 대신 식경험이 많아지기에 한편으로는 미각의 수용성은 넓어지게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재미난 내용이 있는데, 저자는 비만을 걱정하며 칼로리가 낮은 다이어트 콜라를 지속적으로 섭취하게 되면 도리어 비만해 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이런 음료 안에는 인공 감미료가 들어있고, 이런 인공 감미료는 칼로리는 없지만 두뇌의 칼로리 측정능력을 저하시키게 됨으로, 과도하게 음식을 먹고도 먹는 것을 중단하지 않아 오히려 비만해 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을 통해, 나의 미각력은 어느 정도인지 묻게 되고, 아울러 저자가 말하는 ‘얇은 맛’을 맛있게 느낄 수 있도록 식습관을 바꿔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미각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흥미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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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괴담 명작집 - 클래식 서스펜스 걸작선
지식여행 편집부 엮음 / 지식여행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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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친구집에 친구들이 함께 모여 잠을 잘 때면, 빠지지 않는 이야깃거리가 있다. 바로 귀신 이야기나, 초자연적인 현상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마치 자신이 직접 경험한 양 신나게 이야기를 하면, 듣는 친구들 역시 몰입하여 듣다간 호들갑스럽게 놀라곤 하던 일들이 생각난다.

 

세계 괴담 명작집은 마치 그런 느낌을 되살리게 되는 책이다. 도합 8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저자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너새니얼 호손, 아서 코난 도일,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 에른스트 테오도어 아마데우스 호프만, 조지 맥도널드, 앰브로즈 그위넷 비어스, 찰스 디킨스, 기 드 모파상, 이름만 들어도 감탄이 나올 명 작가들(물론, 그 가운데는 이름이 낯선 분들도 있지만, 그분들의 작품을 알면, ~~ 고개가 끄덕여지게 된다). 어마무시한 작가들, 그들이 들려주는 괴담, 다소 엉뚱한 이야기들을 접한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흥분되는 일이며 행복한 순간이 될 것이다.

 

이성과 상식이 최선이라 여겨지던 시대에 이성으로 해석될 수 없는 현상들에 대한 이야기들에 관심을 기울인 작가들의 엉뚱함에 살며시 미소를 짓게 된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여성이지만, 알고 보면 온 몸에 독이 가득 차 접촉하는 모든 생명체를 죽일 수 있는 독인(毒人)의 등장은 왠지 무협지를 보는 느낌도 들게 한다. 아무도 없는 폐가에서 젊은 여인의 손이 나타나기도 하고, 유령을 본 남성의 회상도 있다. 거울 속에서 나타난 미녀와 사랑에 빠져 그 미녀를 거울의 저주에서 해방시켜주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선원들을 홀리는 유령 내지 여인이 등장하기도 하며, 죽은 영혼이 자신을 죽인 사내에게 나타나 노름의 절대공식을 알려주기도 한다. 터널에서 본 환영으로 인해 선로에서 사고가 일어나며 결국 같은 모습으로 본인이 죽게 되는 신호원의 이야기도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모두 결코 상식적이지 않다. 하지만, 작가들은 이런 상식적이지 않은 이야기들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 과연 세상의 모든 일들이 상식과 이성으로 설명될 수 있는가? 이성 이면의 초현실적 현상들이 없다 말할 수 있는가? 우리의 일상 속에서 거듭하여 일어나는 우연의 일치, 이를 상식적으로 접근하는 자들은 그저 아무런 의미 없는 것이라 치부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 안에 어떤 초현실적 힘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작가들은 공통되게 질문한다.

 

'괴담'이니 괴기스럽고 무서운 이야기들, 오싹한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솔직히 그리 오싹하진 않다. 괴기스럽긴 하지만, 오히려 귀엽다는 느낌이 드는 이야기들도 있고, 사랑스러운 이야기, 유머러스한 이야기도 있다. 괴기스러우면서도 그리 자극적이지 않은 이 느낌은 어쩌면 자극에 길들여진 현대인에게는 낯선 경험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얕보면 큰코다친다. 잔잔한 문체이지만, 몰입하여 읽는 가운데, 등이 오싹해지는 순간들이 있게 될 것이다. 그 순간이 작가가 오랜 세월을 초월하여 오늘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그 선물을 한여름 밤에 누려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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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 브라더
케네스 오펠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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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13살 청소년이 된 벤은 아빠의 결정에 기분이 언짢다. 행동심리학자인 아빠 리처드 톰린 박사께서는 동물도 언어를 익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실험을 계획한다. 새끼 침팬지를 가정에서 마치 가족의 일원으로 키우며 함께 생활하는 가운데, 수화를 통한 의사소통을 시도하는 것. 이런 말도 안 되는 실험에 의해 벤은 캐나다를 횡단하여 빅토리아 섬으로 유배 아닌 유배를 왔다(지금이야 빅토리아는 캐나다의 대표 관광명소이지만,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973년이다. 아마 그 당시 빅토리아는 아무 것도 볼 것 없는 섬에 불과했나 보다).

 

이렇게 벤은 잔(새끼 침팬지)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잔과 함께 하는 가운데, 벤에게 잔은 동생과 같은 존재가 되어 함께 마음을 나누게 된다. 이처럼, 이 소설은 사람과 동물간의 우정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러한 동물과의 교감 내지 우정이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소설이다.

 

하지만, 그런 감동만 남겨놓는 소설만은 아닌 듯싶다. 동물과의 교감 과정에서 과연 무엇이 바람직한 선택인가 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소설이기도 하다. 인간의 유익을 위해, 동물들을 통한 연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과연 동물권을 인정하는 것만이 옳은가? 아님, 인간에게 돌아올 과학의 혜택을 위해 동물권을 무시해야 옳은가? 동물을 가족이라 말할 때, 그 한계는 어디인가? 진정한 가족으로서 교감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허울뿐인 가족인가? 아니면, 동물 그 본능, 창조질서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옳은가? 사실 쉽게 말할 수만은 없는 질문들일게다.

 

그럼에도 이 소설을 통해, 작가가 대답하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먼저, 동물권을 인정해 줘야 한다는 것. 그렇기에 아무리 인류의 발전과 유익을 가져오는 실험이라 할지라도, 생체실험은 바람직하다 말할 수 없다.

 

아울러 동물과의 교감이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동물을 가족으로 인정하려면, 진짜 가족처럼 생각하고 대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을 이야기한다.

 

잔은 누가 나한테 줬다 뺏었다 하는 물건이 아니다. 잔은 가족의 일원이다. 내 점수가 형편없다고 해서 아빠가 내게서 잔을 떼어 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165쪽)

우리는 잔에게 우리 옷을 입히고 우리 음식을 먹이고 우리 침대에서 잠을 재웠다. 우리를 엄마, 아빠, 형이라고 부르게 했다. 잔은 우리와 함께 살았고 우리를 믿었지만, 우린 매일 잔에게 거짓말을 했다. 우릴 그의 진짜 가족으로 생각하도록 만들었고, 언제까지나 사랑하고 돌봐줄 거라고 속였다. 잔이 우릴 위해 재주를 부리게 하려고 그렇게 했다. 그런데 잔의 재주가 더 이상 쓸모없게 되니 우리는 잔을 우리에 집어넣고 치워버렸다.(331쪽)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과 동물이라는 괴리, 그 한계가 있기에 쉽지마는 않다는 것. 더 나아가 결국 인간이 될 수 없기에, 침팬지는 침팬지의 삶을 살게 해줘야 한다는 것. 침팬지에게 인간의 옷을 입히려는 행동은 결국엔 침팬지를 불행하게 만드는 행위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사실, 쉽게 어느 것이 옳다 말하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며 진리는 사랑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침팬지에게 어떤 대접을 한다 할지라도, 그 행위 안에 사랑이 담겨 있는가 이것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리라 여겨진다. 아무리 인간의 옷을 입히고, 좋은 대접을 한다 할지라도, 참 사랑이 아니라면 가짜다. 아울러, 비록 우리에서 자라게 한다 할지라도,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대하지 않고, 사랑의 마음으로 침팬지로서 살게 한다면 이것 역시 진짜다.

 

그러니, 사랑이 답이지 않을까? 아울러 소설 속에서 잔이 처음으로 행한 말(수화)이 다름 아닌 ‘포옹’이었음도 의미 있다. 진심어린 안아줌은 종을 뛰어넘어 우정을 가능케 한다. 『하프 브라더』, 그 두툼한 무게감만큼 진한 감동을 주는 좋은 소설이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가족과 함께 떠난 휴가지에서 두 딸과 함께 읽었다는데, 휴가 기간에 읽기에 딱인 감동을 전해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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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일
히라야마 유메아키 지음, 윤덕주 옮김 / 스튜디오본프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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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고약하고, 난감하며, 끔찍한 소설집을 접하게 되었다. 히라야마 유메아키의 『남의 일』이란 소설집이다. 14편의 단편소설들로 이루어진 이 소설집은 한 마디로 끔찍하다. 엽기적이다. 정말 소름끼치고, 진저리를 칠만큼 혐오스러운 내용들로 가득하다. ‘일본산 스플래터 노벨’이란 소개가 전혀 과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어쩌면 실제 삶 속에서는 절대 일어나서도 안 되는 사건들이며, 일어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일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또 한편으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이런 일들이 우리의 삶 속에서 실제로 일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더 끔찍함을 배가시킨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한 아주머니가 동네 청년들에 의해 장난처럼, 거짓말처럼 레슬링의 상대가 되어야만 하고, 그 일로 목숨을 잃어가는 그 농담 같은 사건, 말도 안 되는 사건. 정말 소설 속에서나 나올법한 비현실적 폭력이지만, 과연 이것이 비현실적일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그 비현실적 사건이 내 삶 속에서 현실적으로 사건화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하게 된다. 아울러 과연 소설 속의 두 청년과 같은 인간성을 찾아볼 수 없는 괴물들을 누가 만든 걸까? 묻게 된다. 어쩌면 이것이 작가가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리라.

 

그렇기에 단지 끔찍하고, 혐오스럽고, 엽기적이라는 말로 간단히 외면해 버릴 수만은 없는 그런 작품들이다. 정말 끔찍하고, 혐오스럽지만, 그래서 읽고 싶지 않고, 아니 읽으면 안 될 것 같은 내용들이지만, 그럼에도 도리어 눈살을 찌푸리더라도 직면하며 읽어나가야만 할 내용들이다. 우리가 결코 외면하지 않고 들여다보고 함께 고민하고, 내 삶을 돌아봄으로, 이런 말도 안 되는 내용들은 그저 작가의 상상에 불과한 것이 될 그런 세상을 우리가 꿈꾸고 함께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작가의 의도일 테니 말이다.

 

그렇기에 외면하지 말자. 혐오스럽다고 터부시하지도 말자. 때론 끔찍해하며, 때론 가슴아파하며, 때론 분노하며, 때론 진저리를 치며, 때론 구토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끝내 읽어내자. 어쩌면, 첫 번째 이야기인 「남의 일」에서처럼 그 끔찍한 현실을 남의 일이라고 접근하게 될 때, 그 사람은 피해자들에게 아무것도 실제 못된 짓을 하지 않았음에도 악마가 되어 그들을 괴롭히고 있음을 발견하자. 우리 역시 ‘남의 일’이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고민할 수 있다면 좋겠다.

 

솔직히, 대단히 끔찍한 내용들, 극히 혐오스럽고 자극적인 내용들이기에, 그런 만큼 더 눈을 뗄 수 없는 소설집이다. 어쩌면 이 소설들을 통해, 내 인간성 내지 죄성을 평가해보는 척도로 삼아보는 것은 어떨까?

 

아울러 또 한 가지 드는 생각은 이야기 속의 끔찍한 괴물들이 상당수의 경우, 원래 괴물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 의해 당한 아픔과 끔찍한 일들로 인해 괴물이 되었음도 생각해보게 된다. 끔찍한 가해자들인 그들 역시 결국엔 사회구조적 피해자일 수 있음을. 사실, 단순히 끔찍한 내용들만을 담고 있지 않다. 그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내용 안에 담긴 사회를 향한 작가의 비판적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대단히 끔찍하고 혐오스럽다. 하지만, 끝까지 읽고 생각하자. 아울러 그 끔찍함에 내 영혼이 함몰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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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수제비 퐁퐁퐁 도토리숲 동시조 모음 5
유성규 글, 김주경 그림 / 도토리숲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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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규 시인의 동시조집 『물수제비 퐁퐁퐁』은 우리의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는 마력이 있네요. 그 이유는 아마도 시인의 동시조들에는 동심의 세상이 가득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게다가 그 동심의 시대적 배경이 때론 우리 친구들의 아버지 어머니, 또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어린 시절을 연상시키는 시들도 제법 많기 때문 아닐까 싶네요. 각박하지 않은 시대, 비록 물질의 궁핍함은 있었지만 정서적으로는 풍요로움을 누리던 시대를 느끼게 하는 시를 통해서 그 시대만이 주는 포근함을 누릴 수 있지 않나 싶네요.

 

또한 어쩌면 동시와 시조가 만난 장르인 동시조라는 장르가 우리만의 특별한 문학 장르이기 때문에 또한 이러한 포근한 감성을 느끼게 하지 않나 싶기도 하네요. 우리의 생활환경, 우리의 자연환경 등을 드러내는 장르이니 말이죠.

 

여기에 더하여 김주경 작가의 그림 역시 한 몫을 하고 있고요. 그림들이 참 예쁘고 푸르거든요. 왠지 생명력이 느껴지는 그림들이 가득하답니다.

 

동심의 노래이기에 학교생활을 다룬 것들이 제법 눈에 띄네요. 그 중에 이런 시가 있네요.

선생님은 잘했다고 / 쓰다듬어 주셨어요 //

엄마는 백 점 귀신 / 구십구 점도 안 된다고요 //

엄마의 옛날 성적표 / 어디 한번 보여 줘요

< 엄마는 백 점 귀신> 전문

 

물론 어느 나라나 자녀가 공부 잘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비슷하겠죠. 하지만, 점수에 목을 매는 과한 우리만의 정서가 우리만의 문학인 동시조에 담겨 있네요. 구십구 점도 용납하지 못하는 엄마는 백 점 귀신이라는 아이의 항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엄마의 옛날 성적표 한번 보여 달라는 아이의 반격이 멋지면서도 왠지 씁쓸하네요. 우리 아이들의 동심이 성적이란 괴물, 백 점 귀신에 의해 갉아 먹히고 있진 않은지 돌아보게 되고요.

 

이런 백 점 귀신과 대비하여 어쩌면 요즘은 보기 힘든 풍경도 있네요.

 

가재 잡다 허탕치고 / 무지개를 따르다가 //

투덜투덜 한나절이 슬그머니 배고플 때 //

엄마가 부르는 소리 / 모처럼 반갑구나

< 개구쟁이의 하루 > 전문

 

요즘 이런 풍경, 너무 보기 힘들어졌죠? 아이들이 뛰어놀다 배고프기보다는 학원 투어 하다가 힘겨운 시대니까요. 가재를 잡을 개울도 없을뿐더러, 그나마 있는 놀이터에서도 아이들 찾기가 힘든 시대, 아이들의 동심은 어디에서 보상받을 수 있을까요? ‘개구쟁이의 하루’와 같은 풍경들이 이 땅에 다시 회복될 수 있다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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