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 밸리
샤를로테 링크 지음, 강명순 옮김 / 밝은세상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폭스 밸리』는 한 소년이 여우를 쫓다 혼자만의 동굴을 발견하며 시작된다. 혼자만의 계곡, 혼자만의 동굴을 갖게 된 소년은 그곳을 “폭스 밸리”라 부른다.

 

22년이 지난 어느 날 사소한 일로 부부싸움을 하던 한 여인이 실종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잠시 개를 데리고 산책 간 남편 뒤에 홀로 남았던 여인은 문이 열린 차량과 그 안에 그대로 놓인 지갑 등을 뒤로 하고 사라지게 되는데.

 

이 실종사건의 범인은 다름 아닌 “폭스 밸리”의 주인. 청년이 된 소년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한 여인을 납치하여 자신만의 “폭스 밸리” 동굴 속의 나무 상자 안에 여인을 가둔다. 여인의 남편에게 몸값을 요구할 계획을 세우며... 하지만, 계획과는 다르게 며칠 전 우연히 벌인 폭행사건으로 인해 구속되고 만다. 납치한 여인을 “폭스 밸리”의 나무 상자 안에 가둔 채.

 

다시 3년가량의 시간이 지나, 모범수로 가석방 된 청년. 그 뒤로 청년 주변에서는 감추고 싶던, 잊고 싶던 옛 사건과 유사한 사건들이 벌어진다. 옛 애인의 성폭행, 소식을 끊고 살던 어머니의 실종사건. 그리고 자신이 범한 사건과 너무나도 똑같은 한 여인의 실종사건.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폭스 밸리』는 짧지 않은 분량의 소설이다. 하지만,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소설이기도 하다. 잔잔한 듯하지만, 그 안에 엄청난 긴장과 서스펜스, 스릴이 감춰져 있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원초적 본능이 감춰져 있다. 책을 읽어가는 내내 과연 범인은 누구일지, 등장인물들 하나하나를 의심케 한다.

 

『폭스 밸리』를 읽어나가며, 몇 가지 키워드를 떠올려 본다. 그 단어들은 여우, 가면, 동굴, 사랑이다.

 

아름다운 경치 가운데 위치한 『폭스 밸리』를 끔찍한 공간으로 바꿔나가는 여우는 누구인가? 눈앞에 밀어닥친 위기를 모면하려고 스스로 절망적 상황으로 도망치는 라이언인가? 라이언을 더욱 끔찍한 상황으로 몰아세우는 진짜 악당 악덕 사채업자 데몬일까? 또 다른 실종자 알렉시아를 스트레스의 절벽으로 몰아세우는 회장일까? 알렉시아의 남편 켄을 가사 지옥으로 빠뜨리는 네 아이들일까? 어쩌면, 책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저마다 누군가를 힘겹게 하며 도망치는 여우가 아닐까? 그리고 오늘 우리 역시.

 

이처럼 서로를 힘겹게 하는 여우들은 모두 각자의 가면을 쓰고 있다. 결코 성공적이지 않은 가정생활을 해나가면서도 성공적인 커리어우먼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가면을 쓰고 안간힘을 쓰는 여인. 아내와의 사랑도, 자녀들을 향한 사랑도 없지만, 희생적인 남편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남편. 열정적 사랑을 애써 가면 뒤에 감추는 남녀. 질투와 시기의 마음을 우정이라는 가면 뒤에 숨기고 있는 자들. 악의적 호기심을 연민과 관심이라는 가면에 숨기고 있는 수많은 자들. 차가운 가면 뒤에 감추고 있는 애끓는 사랑. 우리 모두 가면을 쓰고 있다. 나는 어떤 가면을 쓰고 있을까? 그 가면을 벗었을 때의 내 모습은 긍정적 모습일까? 부정적 모습일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각자의 등장인물들의 가면은 조금씩 벗겨진다. 물론, 반전은 마지막에 이루어지지만.

 

 

또 하나의 키 워드는 동굴이다. 처음 시작이 동굴의 발견, 동굴에서의 범죄, 벗어나지 못하는 “폭스 밸리”의 동굴이라면, 마지막 동굴은 또 하나의 범죄의 동굴이지만, 그곳에서 힘겹게 벗어나게 되는 동굴이다. 또 다른 등장인물인 지나가 이 동굴을 벗어나게 되는 힘의 원천은 사랑이다. 물론, 이 사랑의 설정이 조금 억지스럽긴 하다.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지나의 내면에는 어머니와의 불화에 대한 심상이 갑자기 등장한다. 결국 위기 속에서 차가운 가면 뒤에 감춰져 있던 어머니의 사랑을 발견하게 되고, 그 사랑을 통해, 지나는 동굴을 벗어나 절벽을 오르게 된다. 이 부분은 너무 억지스럽다. 첫 번째 동굴에서 희생된 바네사, 그녀의 남편, 하지만, 이제 새롭게 지나의 연인이 된 매튜와의 사랑의 힘으로 설정하였더라면 좀 더 자연스러웠을 듯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남녀의 사랑은 움직이는 사랑이라면, 부모자식의 사랑은 다른 차원임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아무튼 이처럼 스릴 넘치는 이야기의 마지막은 사랑으로 봉합된다. 지나와 어머니의 사랑, 지나와 매튜의 사랑, 라이언과 어머니의 사랑, 라이언을 향한 노라의 희생적 사랑 등. 결국 사랑의 힘이 “폭스 밸리”를 음울하고, 무거운 공간이 아닌, 아름답고 활기찬 공간으로 열어가는 힘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싶었나 보다.

 

『폭스 밸리』를 덮으며, 내 가면을 벗고, 동굴을 벗어나, 멋진 삶의 계곡을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여우가 되는 꿈을 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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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싱어의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를 읽어보고 싶네요. 아무래도 실천적 삶이 빠진 성찰은 말장난 같아서요... 싱어의 세계 빈곤에 대한 통쾌한 고발, 그리고 세계를 구하는 윤리적 실천의 길에 대해 읽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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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보약 ; 식후삼십분에 먹어야... 밥을 꼭 먹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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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 학교^^ 만약 돌아갈 수 있다면, 20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사실 후회되는 지나간 시간들 역시 내 인생의 흔적이고, 한 편으로 유익함이 없지 않기에... 그래도 10년 전으로는 돌아가고 싶네요^^ 결혼하며 유학을 포기하고 현장을 택했는데, 그 때 아내와 함께 떠났더라면... 물론 현장에서의 경험이 앞으로의 30년을 책임질 것이라 확신하며 살아갑니다...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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