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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황홀 - 우리 마음을 흔든 고은 시 100편을 다시 읽다
고은 지음, 김형수 엮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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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황홀』은 국민시인 고은의 수많은 시 가운데 엮은이가 100개의 시구(시의 전문 또는 일부를 선택)만을 골라 엮은 시집이다. 시인은 이러한 엮은이의 작업을 평가하길, 마치 자신의 많은 시들이 오랜 세월 자라 하나의 나무를 이루었다면, 엮은이는 이 나무를 잘라 나이테를 드러내며, 자른 나무로 칠현금의 악기를 만들어 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시가 무엇인지를 시인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엮은이의 표현처럼 시가 시인이 연주하며 만들어낸 악보라면, 이 악보를 가지고 또 다른 연주를 하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무모한 용기를 내어 독자의 입장에서 또 하나의 나이테를 드러내 선율을 만들어 본다. 비록 그 소리가 불협화음에 불과할지라도 말이다.

 

시인의 주옥같은 시 가운데, ‘삶’이라는 나이테를 뽑아본다.

 

시인은 말한다. 시는 오래전 신들의 희로애락이었다고. 신들의 희로애락이었던 시를 읊조린다는 것, 얼마나 큰 특권인가! 이런 특권을 누리는 고은 시인은 행복한 사람이리라! 아울러 그 특권을 엿볼 수 있는 우리 역시 행복한 사람 아닐까?

 

이렇게 주어진 특권으로 시인은 궁핍 가운데서도 시의 풍요로움과 속 깊은 축복을 누렸노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시가 허락하는 황홀경이란다. 그래서 시인은 힘겨운 가운데 시가 허락하는 황홀경을 통해, 삶을 일구어 낸다.

 

시인은 삶을 노래한다. 왜냐하면, 시인에게 있어 시란 궁핍 가운데서 풍요로움과 황홀경을 허락하는 것이기에 시는 삶을 벗어나지 않는다. 게다가 시인은 삶 속에서 살아가는 생활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인의 존재를 재미나게 보여주는 시구가 있다.

 

풀 보아 / 나무 보아 / 똥 안 누고도 / 잘 사는 / 조각달 보아

나야 죽어도 달 못 되어 똥마려워 <무제시편 103> 전문

 

생활인인 시인은 삶을 회피하려 하지 않는다. 물론 삶은 힘겹다. 하지만, 그럼에도 맞서야 하는 대상이다. 이러한 시인의 삶에 대한 자세를 잘 보여주는 시가 <두고 온 시>이다.

 

갓난아기로 돌아가 /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부터 / 다시 시작하고 싶을 때가 왜 없으리 / 삶은 저 혼자서 / 늘 다음의 파도 소리를 들어야 한다 <두고 온 시> 일부

 

그렇다. 삶이란 아무리 힘겨워도 언제나 혼자 헤쳐 나가야 할 숙제다. 그렇기에 이러한 삶 속에서 여전히 일상을 이어나가는 모습은 시인에게 있어 경외의 대상이기도 하다.

 

절하고 싶다 저녁연기 자욱한 먼 마을 <지나가며> 전문

 

그들이 항상 먼저였다 / 어둑어둑한 데서 / 거리의 쓰레기를 쓸고 있었다 / 그들이 먼저였다 / 공장으로 가는 그들이 먼저였다 / 첫차는 씽씽 달려간다 / 이때뿐이다 / 가장 좋은 때는 새벽뿐이다 / 그놈들 아직 뻗어있으니까 <새벽> 전문

 

이처럼, 힘겨운 삶 속에서도 여전히 삶을 이어나가며 새벽을 여는 사람들, 저녁밥을 짓는 아낙네들의 치열한 삶이야말로 경외의 대상이다. 나의 삶은 어떤 삶인지 돌아보게 된다. 난 어디에 속하나? 뻗어 있는 ‘그놈들’인가? 아니면 힘겨운 삶이라 할지라도 졸린 눈을 비비며 새벽을 열고, 치열한 삶을 헤쳐 나가는 ‘그들’인가? 그놈이 아닌 그들이 되길 소망할 뿐이다.

 

이처럼 시인은 힘겨운 삶, 궁핍한 삶을 벗어나려는 도구로 시를 쓰지 않는다. 오히려 시를 통해, 힘겨운 삶을 정면으로 맞으며 열어가기에 비로소 시의 황홀을 맛보게 된다. 그런 시인에게 고단한 삶마저 삶의 축복이 된다.

 

옷소매 떨어진 것을 보면 / 살아왔구나! 살아왔구나! <旅愁 158> 전문

 

떨어진 옷소매는 어쩌면 궁핍한 삶의 증거이지만, 그것이 되려 살아왔음의, 살아있음의, 살아감의 증거가 된다. 시인은 옷소매가 닳아 떨어진 것을 보며, 애처로워하거나 지난한 삶을 원망하기보다는 힘겨운 삶을 견뎌내며 살아왔음에 감사한다. 이러한 감사는 아버지라는 시에서 더욱 돋아진다.

 

아이들 입에 밥 들어가는 것 극락이구나 <아버지> 전문

 

이러한 마음을 품을 때, 우리 앞에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더 가지려는 마음, 더욱 움켜쥐려는 마음이 우릴 더욱 가난하게 만들고 있진 않을까? 자녀들이 밥 굶지 않을 수만 있다면, 설령 밥을 굶는다 할지라도 그 가운데 따스한 밥 한 공기 앞에 둘 수 있다면, 그것이 극락이요 천국이라는 고백이 우리를 얼마나 풍요롭게 만드는가! 이것이 바로 시인이 말하는 궁핍 가운데 누리는 시의 풍요로움이다. 이러한 “시의 황홀”을 맛볼 수 있음이 독자들에게는 축복이요 황홀의 시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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