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하루는 늘 너를 우연히 만납니다
김준 지음, 이혜민 그림 / 글길나루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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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이란 시인을 처음 만났다. 물론 시인은 이미 시집을 두 차례 냈던 시인이지만, 그의 3번째 시집으로 처음 그를 만났다. 시를 통해 내가 만난 시인은 사랑의 시인이다. 시인에게는 삶이 곧 사랑이다. 그렇기에 3번째 시집 『내 하루는 늘 너를 우연히 만납니다』에 수록된 모든 시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사랑을 노래하지 않는 시는 단 한편도 없다. 왜냐하면, 그에게 삶이 곧 사랑이기 때문이다.

 

삶은 사랑 그리고 사랑

<삶은 사랑 그리고 사랑> 일부

 

삶이 곧 사랑이고, 사랑이 곧 삶인 시인에게 있어, 안타깝게도 사랑은 아픔이다. 눈물이며, 슬픔이다. 온통 이별의 아픔이 가득하고, 이젠 곁에 없는 사랑하는 이를 향한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그렇기에 시인의 노래는 대부분 애가(哀歌)이다.

 

그렇다면, 시인이 노래하는 이별, 그 애끓는 사랑의 대상은 누구일까? 물론, 그 대상이 누구인지는 대부분 모호하다. 언제나 병약하게 살다 세상을 떠나신 엄마일 수 있다. 또한 군인으로 언제나 강하게 사셨던, 하지만, 이제는 곁에 없는 아버지일 수도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뜨거운 사랑을 남겨놓고 떠난 연인일 수도 있다.

 

먼저, 엄마를 향한 그리움, 그 아픈 사랑의 노래들을 몇 편 본다.

 

기차 타고 외갓집 가는 길 / 흰 서리로 앉은 할머니께서 / 속으로 참아오는 눈물 가득 표현하던 / 이젠, 네 어미는 죽었다는 말을 / 그 기차 소리에 묻혀 듣게 되었지 / 그때 하늘이란 곳에도 / 기차가 다니냐는 내 물음이 / 그렇게 슬프게 보였나 봐

<슬픈 기억> 일부

 

아들아, 알고 있었니 / 사랑한다 / 그런데 시간은 / 늘 너에게만 몹쓸 짓을 하고 / 내겐 따뜻한 말 한마디도 남길 / 그런 여유마저도 없었구나 / 아들아 / 사랑한다

<못다 한 어머니 말씀> 일부

 

소년이 말을 하네요 / 벼들이 줄을 선 그곳엔 / 아직 온기처럼 피던 / 당신의 체온이 남겨져 있다고요 // (중략) / 그 체온 깊은 사랑 앞에서라면 / 다음 생에는 울지 말아요

<다음 생에는 울지 말아요> 일부

 

갑자기 곁을 떠난 엄마, 그리고 그 엄마가 시인에게 마지막 말을 전할 수 있었다면 무슨 말이었을지, 그리고 그 엄마에게 전하는 시인의 마지막 소망의 시어들이다. 여기에 시인의 눈물과 아픔의 원형이 있다.

 

또한 시인은 아버지를 향한 사랑, 그 안타까움을 고백하기도 한다.

 

남자는 울면 안 된다고 하셨죠 / 그런데 슬플 때 / 눈물이 대신하는 시간들이 / 이 남자에게도 오고야 말았네요 // 눈가를 훔치며 거짓 웃음으로 / 당신이 떠난 자릴 지킬까요 / 슬프다는 말 대신에 / 당신이 남겨준 그리움 속에 / 그저 머물고 있다 할까요

<남겨진 기다림의 자리보다> 일부

 

남자는 울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던 아버지, 하지만, 그 아버지의 부재 앞에 시인은 눈물 흘리고 만다. 홀로 남겨진 자가 그 그리움의 자리에서 거짓 웃음을 지을 수 없기에. 또한 이런 눈물의 이면에는 한 번도 아버지에게 사랑한다 고백하지 못했던 사내들의 무뚝뚝함이 감춰져 있던 건 아닐까?

 

말하고 싶을 때 / 말하지 못하던 말들을 / 이젠 해야 할까요 / 비인 골목마다 비추던 / 슬픔으로 묻어온 불빛을 / 느끼고서야 알게 된 / 당신이란 말들을 / 이제는 해야 할까요 // (중략) // 떨리는 목소리로 / 숨막히는 가슴을 부여잡고 // 「사랑합니다」라고.

<사랑합니다> 일부

 

물론, 시인의 이 고백은 연인을 향한 고백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이 노래에서 아버지를 향한 고백을 느낀다. 나 역시 아버지에게 한 번도 “사랑합니다.” 고백한 적이 없다. 이젠 연로하신 분, 더 오랜 시간 곁에 계시길 소망하는 분, 하지만, 이별의 시간은 언젠가는 이르게 될 분. 그 분에게 “사랑합니다.” 고백해야겠다. 더 늦기 전에.

 

물론, 대부분의 사랑노래는 연인과의 이별 그 이후의 아픔에 대해 노래한다. 시인은 사랑하는 이의 떠남을 아파한다. 불가에서 말하는 생노병사 다음으로 힘겨운 고통인 애별리고(愛別離苦)이기 때문에 아프다. 슬프다. 온통 눈물 가득하다. 그리고 그리움이 함께 한다. 그렇기에 시인의 노래는 대부분 애가(哀歌)이다. 하지만, 그저 아픔에서 그치지만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비록 아플지라도 사랑만으로도 이미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인은 이런 행복을 준 연인을 미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비록 아프지만, 이것 역시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 겨울을 타고 / 얼어버린 / 이별이란 말 / 묻어 놓은 그리움이 / 계절을 타고 오지만 / 잊어도 되어요 / 잊으려도 잊을 수 없는 / 사랑한다는 그 말 / 아파도 그댈 미워하지 않아요

<아파도 그댈 미워하지 않아요> 일부

 

떠난 사랑을 미워하긴 커녕 시인은 여전히 그 사람의 그림자로 남길 소망한다.

 

그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 나는 그대 곁에 머무르고 싶다 / 그대에게 햇살이 아니라도 / 그대와 함께 한다면 / 그대 위의 그림자가 되고 싶다.

<햇살이 아닌 그림자라도> 일부

 

누군가를 이처럼 사랑할 수 있다는 건 이미 축복 아닐까? 비록 결과는 아픔과 눈물 가득할지라도. 사랑의 노래에 취하고 싶은 분에게 『내 하루는 늘 너를 우연히 만납니다』를 추천한다.

 

참 이 책은 표지가 세 가지다. 그리고 시집 안에 담겨진 그림들도 허투루 지나 보내기엔 너무 아까운 좋은 그림들이다. 그렇기에 시집이 아닌 시화집이다. 이혜민 화가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기분 좋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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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후기 시집 문예 세계 시 선집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송영택 옮김 / 문예출판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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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과 함께 독일 문학을 대표한다는 릴케, 그의 시집을 접하게 되었다. 솔직히 그토록 유명한 릴케의 시집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책 제목이 『릴케 후기 시집』이라 되어 있다. 그러니, 릴케의 작품시기를 둘로 딱 나눠 전기와 후기로 나눈다면, 바로 그 후기의 작품들을 모은 것이다(전기의 작품은 같은 출판사에서 2014년에 출간되었다).

 

처음 이 시집을 접할 때는 릴케의 유작들이 수록되어 있다는 소개글에 ‘후기’라는 단어를 ‘말기’로 이해했다. 그랬기에 릴케의 마지막 시기의 작품들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런 의미라기보다는 릴케의 작품 가운데 중기 이후의 작품들이라고 보는 것이 좋겠다.

 

이 시집에는 먼저, 릴케의 3기 시집(그의 작품세계를 4기로 나눴을 때) 『새 시집』의 작품들이 실려 있고, 그 다음으로는 < 새 시집 이후의 시 >로 여기에 실려 있는 시들은 릴케의 사망 후 발표된 작품들이다. 그러니, 릴케가 한참 활동할 때, 쓴 시들이지만, 사망 후 뒤늦게 발표된 작품들인 것이다.

 

그 다음 수록된 『두이노의 비가』, 『오르페우스에게 보내는 소네트』가 < 새 시집 이후의 시 >와 어쩌면 같은 시기의 작품들이고, 마지막 부분 < 후기의 시 >가 릴케 말년에 속하는 작품들이라 보면 되겠다.

 

과연 릴케의 시가 얼마나 대단할까 하는 기대감으로 그의 시를 접해본다. 그런데, 항상 느끼는 건데, 외국 시인들의 시를 접하면 왠지 우리 시인들의 작품과 느낌이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다. 물론, 나의 메마른 감성 탓이겠지만, 우리 시인들의 작품을 감상할 때의 그런 감흥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독자인 나의 탓이겠다). 어쩌면 이것이 정서의 탓일까? 아니면 번역시의 한계일까? 아무튼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대가의 작품을 대하는 경외감을 잃지 않고 그의 시 속으로 들어가 본다. 릴케의 시에 대해 평을 할 실력은 나에게 당연하게도(!) 없다. 그렇기에 시집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보다는 『릴케 후기 시집』 안에 담겨진 그의 시들 가운데서 ‘죽음’에 대한 그의 견해가 어땠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물론 이러한 정리 역시 나의 견해일 뿐이다. 설령 그것이 시인의 의도와 상반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이미 시는 시인의 손을 떠나 독자의 손에 있음에 그 의미를 찾는 작업은 이미 나의 것이라는 생각에 위안하며).

 

아직 실행되지 못한 것 속을 헤치며 / 무겁고 묶인 것 같은 발걸음으로 나아가는 이 고초는 / 백조가 땅 위를 걷는 어색한 걸음걸이와 흡사하다. // 그리고 죽는다는 것, / 우리가 매일 서 있는 발밑의 땅을 이제는 밟을 수 없다는 것, / 그것은 백조가 물에 들어갈 때의 그 불안감과 같다. // 그러나 물은 상냥하게 백조를 맞아들이고, / 백조의 가슴 밑으로 / 기쁘고도 덧없이 세찬 물결이 연달아 뒤로 밀려간다. / 그러나 백조는 더없이 조용히, 확실하게 / 점점 의젓하고 왕자다운 기품을 지니고 / 유유히 물 위를 미끄러져간다.

< 백조 > 전문

 

시인에게 있어 죽음은 두려움이다. 불안함이다. 마치 백조가 물에 들어갈 때에 품는 마음처럼. 그러나 물에 들어간 후의 백조는 기품 있다. 그리고 유유히, 의젓하며, 기품 있게, 그리고 조용하고 확실하게 그 물 위(죽음의 두려움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를 미끄러져간다. 이것이 시인의 죽음에 대한 견해를 잘 보여주지 않을까? 시인은 바란다. 기품 있는 죽음의 순간을 맛보길 말이다. 우리 역시 그럴 수 있길 소망해본다.

 

<백조>를 통해 알 수 있는 시인의 죽음에 대한 생각은 <죽음의 경험>이란 시에서도 거의 유사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연기를 계속한다. 불안하게 간신히 익힌 대사를 되뇌면서. / 그리고 때때로 솟구치듯이 몸짓을 크게 하면서. / 그러나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진 너의 존재가, / 우리들의 작품에서 밀려난 너의 존재가 // 때때로 우리를 엄습하리라. / 마치 저 진실의 인식이 내려앉을 때처럼. / 그런 사이에 우리는 갈채 같은 것은 생각지 않고 / 오로지 삶을 연기하는 것이다.

<죽음의 경험> 일부

 

비록 죽음이라는 떨쳐낼 수 없는 존재가 때때로 우릴 엄습할지라도, 그럼에도 여전히 나에게 주어진 삶을 연기하겠다는 시인의 고백이 마음을 울린다.

 

그렇다면, 시인의 이런 고백, 죽음에 대한 견해는 그의 말년에는 어떻게 변하였을까?

 

오라, 마지막 고통이여, 나는 너를 받아들인다, / 육체 조직 속의 엄청난 고통이여. / 정신 속에서 불탔듯이, 보라. 나는 지금 / 네 속에서 불타고 있다. 장작은 / 네가 불타오르는 불꽃에 동의하기를 오랫동안 거부하였다. / 그러나 나는 지금 너를 부양하고, 네 속에서 불타고 있다. (중략) 이 삶. 밖에 있는 것이 삶이다. / 나는 활활 타는 불꽃 속에 있다. 아무도 나를 모른다.

<오라, 마지막 고통이여> 일부

 

시인은 마지막 순간에 고백한다. 자신은 고통을, 그리고 죽음을 받아들이겠노라고. 이런 죽음에의 수용은 그의 병든 육체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수용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이 삶 밖에 있는 삶을 꿈꾼다. 이 밖에 있는 삶이 있다고. 그 삶으로 인해, 삶과 죽음의 경계는 사실 모호하다고. 물론 죽은 자들은 세상의 것으로부터 멀어짐은 사실이지만, 그 이면에 영원이 존재한다고.

 

이상한 일이다. 서로 관련되어 있던 모든 것이 풀려서 / 공간을 훨훨 날아다니는 것을 보는 것은. / 그리고 죽어 있다는 것은 고생스럽고, 보충해야 할 것이 넘칠 만큼 많은 것이다. / 그리하여 죽은 자는 차츰 약간의 영원을 느낀다. / 그러나 살아 있는 자는 모두 삶과 죽음을 너무나 단적으로 구분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두이노의 비가』중 <첫 번째 비가> 일부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는 불안함과 두려움의 존재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늘 나에게 주어진 연기에 최선을 다하며 나아가자. 아울러 죽음 이면의 삶이 존재함과 영원의 실재를 믿는다면 더욱 좋을 것이고. 백조처럼 기품있게 죽음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태어날 때는 모든 이의 웃음 속에 홀로 울고 나왔으니, 이제 마지막 순간에는 모든 이의 울음 가운데 홀로 웃으며 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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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떼어 걷기
김도연 지음 / 삶과지식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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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의 제목이 참 독특하다. 『그림자 떼어 걷기』라니, 뗄 수 없는 그림자를 왜 떼어야만 할까?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뗄 수 없기에, 떼어내려 하는 것이 아닐까? 떼어내고 싶어도 지긋지긋하게 달라붙어 힘겹게 하는 인생의 무게들을 시인은 그림자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뒤로 돌아, / 의기소침한 어깨로 뒤로 돌아, // (중략)

뒤로 돌아, / 무너진 발걸음으로 뒤로 돌아, //

뒤로 돌아, / 피곤한 뒤통수로 뒤로 돌아, //

뒤로 돌아, / 무거운 그림자를 떼어 뒤로 돌아, //

< 혼자서 > 일부

 

시인에게 그림자는 이제 그만 떼어놓고 싶은 무거운 짐이다. 의기소침한 어깨며, 무너진 발걸음이며, 피곤한 뒤통수다. 그렇기에 그림자는 인생의 무게다. 우리를 힘겹게 하는.

 

인생의 힘겨운 순간들이 모두 떼어놓고 싶은 짐, 그림자다. 이런 그림자는 때론 절망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래서 시인은 일견 허무주의를 노래하기도 한다.

 

인간이 절망에 다다랐을 때 / 차라리 유리잔이 깨어지듯 퍽 하고 깨져버리면 한다. // 절망에 온몸을 부딪쳐 버린다. 철퍽.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부서진 마음의 조각들도 / 그대로이다. // 존재를 버리지 않는 한 절망도 사라지지 않는다.

< 절망 > 일부

 

이처럼 존재를 버리지 않는 한 절망이라는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는다며 시인은 절규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럼 절망의 먹이가 되라는 이야기일까? 아니다. 삶의 무게는 여전히 힘겹다. 하지만, 그럼에도 삶의 화살은 여전히 쏘아 올려 져야 한다.

 

활시위를 당기지 않고서는 / 화살을 날릴 수는 없어. / 시간을 들여 / 숨을 고르고, / 있는 힘을 모아 당겨 / 모든 것이 부풀어 올라 / 그 최대치에 다다랐을 때, / 화살은 난다. // 방향조차 모르는 화살을 쏠 수는 없어, / 과녁을 찾기 위해 한세월을 서성여. / 드디어 찾아낸 목표에, / 손수 다듬어온 활시위를 꺼내 / ‘삶’이라는 이름의 화살을 꽂아 / 다시 한세월을 얹어 / 날아갈 한 순간!

< 화살 > 전문

 

그렇다. 삶이 힘겹다 할지라도 포기할 순 없다. 존재를 버리지 않는 한 절망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 할지라도 그럼에도 가야만 한다. 때론 인생의 방향을 바로 잡지 못해 방황한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삶의 과녁을 정하고, 다시 “‘삶’이라는 이름의 화살을” 쏘아 올려야만 한다.

 

결코 삶의 무게를 떼어놓을 수 없다면, 그 삶의 무게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다시 삶의 화살을 쏘아야 한다. 그렇기에 삶의 무게, 인생의 질고는 어쩌면 결코 떼어낼 수 없는 인생의 동반자가 된다. 이제 시인은 노래한다. 그 그림자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내야 한다고.

 

내가 발걸음으로 떼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 날 따라오는 그림자에게라도 부끄럽지 않게 가야 할 / 방향을 정해야 할 텐데. / 쉽사리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 / 남들은 그렇게도 명확한 발소리를 내며 걸어가는데. / 나에겐 왜 이 한걸음도 떼기 힘든지?

< 목적지 > 일부

 

여전히 인생은 힘겹다. 때론 목적지를 정하기도 쉽지 않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지라도 불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내 삶의 동반자인 그림자, 그림자에게라도 부끄럽지 않게 가야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림자 떼어 걷기』는 결국엔 그림자와의 동행이 된다. 이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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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왔다 - 신경림 - 다니카와 슌타로 대시집(對詩集)
신경림.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요시카와 나기 옮김 / 예담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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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아름다운 시어(詩語)로 서로 대화할 수 있다는 것, 왠지 꿈같은 일이며, 실제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장면이기도 하다. 물론 나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으니, 누군가 그런 능력을 갖춘 이들의 ‘시의 대화’에 살며시 귀를 기울여보면 어떨까?

 

여기 그러한 시의 대화를 담고 있는 책이 있다. 책 제목도 너무 아름답다. 『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왔다』 왠지 이 책을 펼쳐들면, 시인들의 그 아름다운 시상이 내 안에 별이 되어 반짝일 것 같지 않은가.

 

이 책은 한일 간의 시의 거장 신경림 시인과 다니카와 슌타로 시인, 두 분이 시를 통해 서로 대화한 결과물이다. 이를 ‘대시(對詩)’라고 부른다 한다(둘이 아닌 여러 사람 간의 시를 주고받는 것은 ‘연시(連詩 )’라 부른다). 그러니 말 그대로 ‘시의 대화’인 셈이다.

 

도합 24편의 시가 우리를 찾아온다. 항아리란 공통분모로 시작한 시의 대화는 여러 가지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이렇게 대화가 오가던 즈음 우리민족을 공황상태로 몰아갔던 ‘세월호’사건도 일어난다. 그렇기에 신경림 시인은 시대적 아픔을 노래하기도 한다. 당시 시인의 시의 대화를 들여다보자.

 

남쪽 바다에서 들려오는 비통한 소식

몇 백 명 아이들이 깊은 물 속

배에 갇혀 나오지 못한다는

온 나라가 눈물과 분노로 범벅이 되어 있는데도 나는

고작 떨어져 깔린 꽃잎들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

 

여기 시인으로서 아무것도 못하는 절망감이 담겨 있다. 하지만, 어찌 그것이 시인만의 무능이겠는가? 온 국민이 처절하게 무능을 깨달았으며, 지금도 그 무능의 여운에 힘겨워하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시인의 고백처럼 이러한 시를 통해 어떤 이들에게는 위로가 되기도 할 것이며, 또 어떤 이들에게는 각성이 되기도 하리라. 물론 어떤 이들에게는 귀찮은 소음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은 이렇게 서로가 ‘시의 대화’를 나눈 24편의 시 뿐 아니라, 두 시인이 서로의 시 가운데서 좋아하는 시를 뽑아 수록하기도 하며, 두 시인의 대담을 싣기도 한다. 마지막엔 두 시인의 에세이 몇 편을 함께 싣고 있다.

 

각자 자신의 시 가운데 좋아하는 시가 아닌, 상대의 시 가운데 좋아하는 시, 즉 상대 시의 독자 입장에서 선별한 시들 역시 참 좋다. 시인들의 시가 공허한 울림이 아니어서 좋다. 삶을 노래하기에 좋다. 때론 인생의 무게를 노래하기도 하며, 때론 시인의 삶을 노래하기도 하여 좋다. 두 시인의 시를 감상하며 왠지 배가 부른 느낌이다.

 

두 시인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며 생각해보는 건, 시의 힘이 아닐까 싶다. 우리에겐 여전히 가깝지만 먼 나라가 일본이 아닐까? 아무리 가까워진들, 여전히 그 안에서는 서로를 향한 분노와 미움을 감출 수밖에 없는 관계가 어쩌면 한일관계가 아닐까? 그렇기에 스포츠에서도 한일전은 무슨 수를 써서도 이겨야만 하고, 만약 지게 되면 나라를 잃은 것 같은 허탈감에 몸부림쳐야만 하는 웃픈 관계. 하지만, 그렇게 서로를 향해 미움이 날을 세우고 살고 있음에도 두 시인의 대화에 귀기울여보면, 우린 놀랍게도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며, 같은 아픔에 눈물 흘리며, 같은 고민에 힘겨워하며, 같은 느낌으로 같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관계임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시의 힘이 아닐까?

 

앞으로도 이러한 작업들이 이어질 수 있길 기대해본다. 그 작업에 귀 기울임은 독자에겐 행복한 시간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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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
이해인 지음 / 열림원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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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을 따스하게 만들어주는 예쁜 시집을 만났다. 바로 이해인 수녀의 시집,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이다. 이 시집은 1999년에 발표된 시집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의 개정증보판이다. 당시의 시를 그대로 실었으며(물론, 시의 배치는 완전히 바뀌었다), 여기에 신작 시 35편의 시가 새롭게 추가되었다.

 

아무래도 새롭게 실린 시들 가운데는 시인의 투병생활의 영향 때문인지, 아픈 날들에 대한 노래가 16편이나 된다. 그래서 왠지 더 뭉클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체적인 시의 분위기는 따스하고 아름답다. 이는 시집을 처음 펼쳤을 때, 만나는 시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물론 예전 시집 역시 아름다운 시구이자 이젠 유명해진 시구로 시작한다. 나무 안에 수액이 흐르듯/내 가슴 안에는/ 늘 시가 흘러요 - 시의 집 일부).

 

우리 서로 / 사랑하면 / 언제라도 봄 (중략)

몸과 마음이 / 많이 아플수록 / 봄이 그리워서 / 봄이 좋아서 //

나는 너를 / 봄이라고 불렀고 / 너는 내게 와서 / 봄이 되었다 //

우리 서로 / 사랑하면 // 살아서도 / 죽어서도 // 언제라도 봄

<봄의 연가> 일부

 

시인은 사랑을 노래한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하는 한 비록 아파도, 더 나아가 비록 죽어도 우린 봄을 누릴 수 있다고 고백한다. 아마도 시인에게 이 봄의 심상은 천국과 같은 의미가 아닌가 싶다. 이는 이 시집의 마지막 노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내가 당신을 / 깊이 / 사랑하는 순간 /

당신이 나를 / 진심으로 / 사랑하는 그 순간은 / 천국입니다.

<어느 날의 일기> 일부

 

이 두 시 모두 새롭게 실린 노래들이다. 아마도 시인은 투병생활을 통해, 사랑이야말로 봄날을 누리는 비결이며, 천국을 끌어오는 힘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지 않았나 싶다. 이 아름다운 시집을 통해, 이 봄 우리의 마음이 따스해지고, 우리의 인생이 천국을 누리는 아름다운 축복이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두 아름다운 노래들이지만, 또 하나의 노래를 적어본다.

 

꽃 이름 외우듯이 / 새봄을 시작하자 / 꽃 이름 외우듯이 /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즐거움으로 / 우리의 첫 만남을 시작하자 //

우리 서로 사랑하면 / 언제라도 봄 //

먼 데서도 날아오는 꽃향기처럼 / 봄바람 타고 /

어디든지 희망을 실어 나르는 / 향기가 되자

<꽃 이름 외우듯이> 일부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고, 서로를 사랑함으로 비록 여전히 우린 힘겨운 인생, 때론 삭막하고, 때론 척박한 인생을 살아가지만, 그 가운데서도 꽃향기처럼 희망을 실어 나르는 향기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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