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꽃 초롱 - 강소천 동요시집 아동문학 보석바구니 7
강소천 지음, 김영덕 그림 / 재미마주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출판 재미마주에서 출간되고 있는 <보석바구니> 시리즈 7번째 책으로 강소천 선생님의 동요시집인 『호박꽃초롱』이 출간되었네요. 아마도 강소천 선생님의 전집이 모두 <보석바구니> 시리즈 안에서 출간되나 봅니다. 그 첫 번째 책인 『호박꽃초롱』은 강소천 선생님의 동요시집으로, 33편의 동요들과 2편의 단편동화가 실려 있네요.

 

이번에 다시 나오게 된 이 책에서 몇 가지 의미를 찾아봅니다.

 

첫째, 올해(2015)가 강소천 선생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하네요. 그러니, 강소천 탄생 100주년 사업의 일환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네요.

 

둘째, 이 시집이 처음으로 간행된 때가 1941년이라고 하네요. 이때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일제가 우리말을 말살하기 위해 온갖 짓을 서슴지 않던 때죠. 이러한 때에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가득 담긴 동요시집을 냈다는 것은 그 의미가 남다르겠네요.

 

그렇다면 오늘 우리말은 안녕한가요? 온갖 외래어가 범람하고 있고, 우리말보다는 외국어가 더욱 대접받는 시대 아닌지요. 외국어를 사용해야 지적 수준이 높게 인식되는 오늘날 역시 또 다른 의미에서 우리말이 말살되는 때가 아닐까 여겨지네요. 또한 젊은 세대들을 위주로 만연한 언어파괴 역시 우리말 말살과 다름없지 않을까요? 물론, 언어란 것은 시대에 맞게 변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급속도로 파괴되어지는 우리말을 볼 때, 씁쓸한 것은 사실이지요.

 

이러한 때이기에 일제의 우리말 말살정책 앞에서 우리의 아름다운 시어들을 가지고 발간되었던 이 책이 여전히 의미 있지 않을까 여겨지네요.

 

셋째, 처음 간행되었던 그 느낌을 그대로 살리고 있음도 좋네요. 물론, 예전의 세로표기를 가로표기로 바꾸고, 책 크기에도 변화를 주고, 맞춤법 등을 교정하였다고 하네요. 그럼에도 표지 그림은 처음 간행될 당시의 그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답니다. 이 표지 그림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자연스레 과거로의 여행이 시작된답니다. 커다란 호박꽃 안에서 노니는 두 아이들의 모습은 왠지 어린 시절 호박꽃을 따며 놀던 때를 떠올려보게 되죠. 이러한 연상 작용을 통해, 동심 가득하던 그 시절, 과거로의 여행이 시작된답니다. 그렇기에 어떤 의미로는 요즘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에게 동요를 통한 과거로의 여행, 동심을 끌어올리는 그림이 아닐까 여겨지네요.

 

물론, 그 안에 담겨진 33편의 동시들이야말로 알맹이겠죠. 참 예쁘답니다. 동시의 교과서를 접하는 느낌이랄까요? 좋은 동시를 쓰기 위해선 사물을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고 말하죠. 바로 그런 관찰을 가장 잘 보여주는 유명한 동시가 바로 이 책에 실려 있네요.

 

물 / 한 모금 / 입에 물고 //

하늘 / 한 번 / 쳐다보고 //

또 / 한 모금 / 입에 물고 //

구름 / 한 번 / 쳐다보고

< 닭 > 전문

 

그 유명한 동시가 강소천 선생님의 것이었네요. 또한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참새 때를 보며 노래한 시도 참 예쁘고 인상 깊게 다가오네요.

 

버드나무 무슨 열매 / 달리련마는 //

아침 해가 동산 위에 / 떠오를 때와 //

저녁 해가 서산 속에 / 사라질 때면 //

참새 열매 조롱조롱 / 달린답니다. //

< 버드나무 열매 > 일부

 

시인의 눈으로 바라보니, 나뭇가지에 앉은 참새도 열매가 되네요. 그 외에도 동심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동시들, 참 고맙네요. 더 나이 들어 늙더라도 동심을 잃지 않는다면 좋겠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은 언제나 남쪽이었다
이종화 지음 / 해드림출판사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인은 환갑이 지난 어느 날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시인은 자신의 시를 넋두리라고, 낙서처럼 달아본 댓글이라고 겸손하게 말한다. 하지만, 그 시들은 왠지 어렵다. 왜 그럴까? 어쩌면 시인과 나의 코드가 맞지 않아서 일수도 있겠고, 시인의 시어가 시인만의 세상에 갇혀서 일수도 있겠다. 아니, 그런 이유보다는 독자인 내가 시인의 아름다운 시어를 따라가기엔 너무나도 세속적이고, 시인의 고매한 심상을 느끼기에는 메말라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시인의 시가 나에게 어려운 이유는 아직 시인의 연륜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시인은 이미 한 갑자의 세월을 살아오지 않았나. 그렇구나. 난 아직 젊기에 한 갑자의 세월에 대한 통찰력에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한 거구나. 이리 생각하며, 난 여전히 젊다는 망상에 취해본다.

 

시인은 이젠 돌아갈 시간을 준비한다. 시인 몸담고 있는 이곳은 이미 “신들도 집이 있다면 돌아갈 시간에(<경계인> 중에서)” 이르렀다. 어느덧 봄, 여름, 가을을 지나 겨울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시인이 세월의 무게에 무릎 꿇는 것은 아니다. 겨울의 시간을 보내고 있기에 또 다른 꿈을 꾼다.

 

겨울이 오면 숲은 돌아 섭니다 / 이제 나무들은 마주보고, / 한 계절의 수고를 서로 위로 합니다 // 달이 뜬 밤에는 / 발등에 쌓인 낙엽을 내려다보며 / 어깨동무를 하고, / 밤하늘에 차가운 별도 / 몇 개씩 나눠 가져 봅니다 // 눈이 올 때도 / 살아온 만큼 각자 눈을 맞으며 / 마음을 하얗게 나눕니다 // 그래도 아침마다 찾아온 까치들은 / 언제나 반가운 친구 / 산책하는 이들의 발자국 소리 / 겨울이 뒤돌아보는, 또 / 다른 겨울의 시작입니다.

<겨울 동요> 전문

 

그렇다. 시인에게 겨울은 또 다른 시작이다. 비록 발등에 쌓인 낙엽이 쓸쓸하고, 밤하늘의 별은 차갑게 느껴지더라도, 겨울은 또 다른 시작 봄을 잉태하는 계절이다. 이러한 또 다른 시작이 어쩌면 시인에게는 시를 쓰는 것이었겠다.

 

또한 나이 듦은 서러움만이 아닌, 깊은 통찰력을 허락하기도 한다. 이런 재미난 시가 있다.

 

나이 들어 눈이 어두워지는 것, 이젠 / 일일이 다 확인 하려 들지 말라는 //

나이 들어 귀가 어두워지는 것 / 웬만한 건 못 들은 척 하라는 //

나이 들어, 입맛을 잃어 가는 것, 너무 / 맛있는 것 만 찾지 말라는 //

나이 들어 숨차고 긁히는 목소리 / 너무 떠들고 나서지 말라는 //

나이 들어, 자꾸 뭔가를 놓치는 것, 더 이상 / 손에 넣으려 하지 말라는 //

나이 들어 잠 안 오는 것, 젊어서 / 낮에 한 일들 잘 생각해 보라는 //

나이 들어, 점점 더 꽃과 새 별과 바람이, / 그대 산에 갈 때가 됐다는 / 이젠, 고마운 신호라고 해 볼까.

<신호> 전문

 

이처럼 나이 듦의 신호를 들을 수 있는 시인의 통찰력이 멋스럽다. 이젠 눈이 조금 어두워져도 좋겠다. 일일이 다 확인하는 빡빡함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이젠 귀가 좀 어두워져도 좋겠다. 날 향한 비방과 수군거림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이젠 조금 입맛을 잃어도 좋겠다. 탐식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이젠 조금 숨이 차도 좋겠다. 너무 나서지 않기 위해. 나이 들어 잠이 안 오는 건, 젊어서 한 일들을 잘 생각해 보라는 신호. 우리가 어떤 부끄러운 일들을 행하고 살아왔는지 떠올려 볼 수 있다는 건 축복이 아닐까? 이젠 조금 탐심으로부터 해방된다면 어떨까? 이처럼 멋지게 나이 든다면, 그 나이 듦은 해방과 다르지 않다.

 

이처럼 인생에 대해, 나이 듦에 대해 깊은 통찰력으로 인생 후반전을 새롭게 뛰기 시작한 시인의 앞으로의 행보가 마치 별처럼 빛나게 되길 응원해 본다.

 

작은 점 하나도 / 저리 빛날 수 있다는 것을 / 그리 크지 않아도 저렇게 높다는 것을 / 보잘 것 없이도 누군가를 보고 싶으며 / 아무리 멀어도 속삭일 수 있다는 것을

<별을 보며> 일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행 그림이 있는 동시
신형건 지음, 전영근 그림 / 미세기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동시집은 『거인들이 사는 나라』, 『엉덩이가 들썩들썩』, 『콜라 마시는 북극곰』등의 동시집을 낸 동시작가, 신형건 작가의 신작이랍니다(물론, 작가는 더 많은 동시집을 냈지만, 제가 읽은 동시집만 언급했답니다). ‘여행’에 관련된 동시들만으로 하나의 책을 이루고 있네요. 물론 예전의 동시집에 비해서는 수록하고 있는 동시의 수는 적습니다. 총 19편의 여행에 관련된 동시들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이 동시들을 읽다보면, 정말 여행을 떠난 듯 그런 마음이 드네요. 게다가 이 동시집은 “그림이 있는 동시”라는 부제를 달고 있답니다. 바로 전영근 작가의 그림들이 함께 실려 있는데, 이 역시 좋네요. 전영근 작가의 그림들 역시 모두 여행에 대한 그림들로 이루어져 있답니다. 책 뒤편에 19점의 그림들에 대한 도록도 실려 있네요. 그런데, 화가의 그림에는 모두 자동차가 나오네요. 화가에게는 자동차야말로 여행의 수단인가보네요.

 

이 동시집을 읽고 나면 왠지 짐을 챙겨 새벽공기를 가르며 자동차로 떠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답니다. 산으로, 바다로, 어디든 길이 있는 곳이라면 떠나고 싶네요.

 

여행의 설렘으로 가득한 시간은 바로 여행을 준비하며 짐을 쌀 때가 아닐까요? 첫 번째 동시인 <짐>이란 동시가 그 마음을 참 잘 표현하고 있네요.

 

아빠, 참 이상해요.

배낭 가득 짐을 꾸렸는데

하나도 안 무거워요.

구름 위에 올라탄 듯

걸음이 사뿐사뿐해요.

숙제 걱정, 학원 걱정, 시험 걱정…

무거운 마음의 짐 모두

내려놓고 와서 그런가 봐요.

내 마음의 설렘이

빵빵한 배낭 속 짐을

헬륨 가스로 만들어 버렸나 봐요.

풍선처럼 두둥실-

떠오를 것만 같아요.

< 짐 > 전문

 

왠지, 빵빵한 짐을 꾸려 여행을 떠나야 할 것 같지 않나요? 지금은 온 국민들이 메르스의 확산으로 인해 몸을 움츠리고 있지만, 이젠 그런 못된 바이러스 걱정 없이 온 국민들의 마음이 풍선처럼 두둥실 떠오를 수 있다면 좋겠네요. 우리 모두 무거운 마음의 짐 내려놓고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물론, 메르스가 진정되면 말이에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하루는 늘 너를 우연히 만납니다
김준 지음, 이혜민 그림 / 글길나루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김준이란 시인을 처음 만났다. 물론 시인은 이미 시집을 두 차례 냈던 시인이지만, 그의 3번째 시집으로 처음 그를 만났다. 시를 통해 내가 만난 시인은 사랑의 시인이다. 시인에게는 삶이 곧 사랑이다. 그렇기에 3번째 시집 『내 하루는 늘 너를 우연히 만납니다』에 수록된 모든 시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사랑을 노래하지 않는 시는 단 한편도 없다. 왜냐하면, 그에게 삶이 곧 사랑이기 때문이다.

 

삶은 사랑 그리고 사랑

<삶은 사랑 그리고 사랑> 일부

 

삶이 곧 사랑이고, 사랑이 곧 삶인 시인에게 있어, 안타깝게도 사랑은 아픔이다. 눈물이며, 슬픔이다. 온통 이별의 아픔이 가득하고, 이젠 곁에 없는 사랑하는 이를 향한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그렇기에 시인의 노래는 대부분 애가(哀歌)이다.

 

그렇다면, 시인이 노래하는 이별, 그 애끓는 사랑의 대상은 누구일까? 물론, 그 대상이 누구인지는 대부분 모호하다. 언제나 병약하게 살다 세상을 떠나신 엄마일 수 있다. 또한 군인으로 언제나 강하게 사셨던, 하지만, 이제는 곁에 없는 아버지일 수도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뜨거운 사랑을 남겨놓고 떠난 연인일 수도 있다.

 

먼저, 엄마를 향한 그리움, 그 아픈 사랑의 노래들을 몇 편 본다.

 

기차 타고 외갓집 가는 길 / 흰 서리로 앉은 할머니께서 / 속으로 참아오는 눈물 가득 표현하던 / 이젠, 네 어미는 죽었다는 말을 / 그 기차 소리에 묻혀 듣게 되었지 / 그때 하늘이란 곳에도 / 기차가 다니냐는 내 물음이 / 그렇게 슬프게 보였나 봐

<슬픈 기억> 일부

 

아들아, 알고 있었니 / 사랑한다 / 그런데 시간은 / 늘 너에게만 몹쓸 짓을 하고 / 내겐 따뜻한 말 한마디도 남길 / 그런 여유마저도 없었구나 / 아들아 / 사랑한다

<못다 한 어머니 말씀> 일부

 

소년이 말을 하네요 / 벼들이 줄을 선 그곳엔 / 아직 온기처럼 피던 / 당신의 체온이 남겨져 있다고요 // (중략) / 그 체온 깊은 사랑 앞에서라면 / 다음 생에는 울지 말아요

<다음 생에는 울지 말아요> 일부

 

갑자기 곁을 떠난 엄마, 그리고 그 엄마가 시인에게 마지막 말을 전할 수 있었다면 무슨 말이었을지, 그리고 그 엄마에게 전하는 시인의 마지막 소망의 시어들이다. 여기에 시인의 눈물과 아픔의 원형이 있다.

 

또한 시인은 아버지를 향한 사랑, 그 안타까움을 고백하기도 한다.

 

남자는 울면 안 된다고 하셨죠 / 그런데 슬플 때 / 눈물이 대신하는 시간들이 / 이 남자에게도 오고야 말았네요 // 눈가를 훔치며 거짓 웃음으로 / 당신이 떠난 자릴 지킬까요 / 슬프다는 말 대신에 / 당신이 남겨준 그리움 속에 / 그저 머물고 있다 할까요

<남겨진 기다림의 자리보다> 일부

 

남자는 울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던 아버지, 하지만, 그 아버지의 부재 앞에 시인은 눈물 흘리고 만다. 홀로 남겨진 자가 그 그리움의 자리에서 거짓 웃음을 지을 수 없기에. 또한 이런 눈물의 이면에는 한 번도 아버지에게 사랑한다 고백하지 못했던 사내들의 무뚝뚝함이 감춰져 있던 건 아닐까?

 

말하고 싶을 때 / 말하지 못하던 말들을 / 이젠 해야 할까요 / 비인 골목마다 비추던 / 슬픔으로 묻어온 불빛을 / 느끼고서야 알게 된 / 당신이란 말들을 / 이제는 해야 할까요 // (중략) // 떨리는 목소리로 / 숨막히는 가슴을 부여잡고 // 「사랑합니다」라고.

<사랑합니다> 일부

 

물론, 시인의 이 고백은 연인을 향한 고백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이 노래에서 아버지를 향한 고백을 느낀다. 나 역시 아버지에게 한 번도 “사랑합니다.” 고백한 적이 없다. 이젠 연로하신 분, 더 오랜 시간 곁에 계시길 소망하는 분, 하지만, 이별의 시간은 언젠가는 이르게 될 분. 그 분에게 “사랑합니다.” 고백해야겠다. 더 늦기 전에.

 

물론, 대부분의 사랑노래는 연인과의 이별 그 이후의 아픔에 대해 노래한다. 시인은 사랑하는 이의 떠남을 아파한다. 불가에서 말하는 생노병사 다음으로 힘겨운 고통인 애별리고(愛別離苦)이기 때문에 아프다. 슬프다. 온통 눈물 가득하다. 그리고 그리움이 함께 한다. 그렇기에 시인의 노래는 대부분 애가(哀歌)이다. 하지만, 그저 아픔에서 그치지만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비록 아플지라도 사랑만으로도 이미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인은 이런 행복을 준 연인을 미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비록 아프지만, 이것 역시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 겨울을 타고 / 얼어버린 / 이별이란 말 / 묻어 놓은 그리움이 / 계절을 타고 오지만 / 잊어도 되어요 / 잊으려도 잊을 수 없는 / 사랑한다는 그 말 / 아파도 그댈 미워하지 않아요

<아파도 그댈 미워하지 않아요> 일부

 

떠난 사랑을 미워하긴 커녕 시인은 여전히 그 사람의 그림자로 남길 소망한다.

 

그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 나는 그대 곁에 머무르고 싶다 / 그대에게 햇살이 아니라도 / 그대와 함께 한다면 / 그대 위의 그림자가 되고 싶다.

<햇살이 아닌 그림자라도> 일부

 

누군가를 이처럼 사랑할 수 있다는 건 이미 축복 아닐까? 비록 결과는 아픔과 눈물 가득할지라도. 사랑의 노래에 취하고 싶은 분에게 『내 하루는 늘 너를 우연히 만납니다』를 추천한다.

 

참 이 책은 표지가 세 가지다. 그리고 시집 안에 담겨진 그림들도 허투루 지나 보내기엔 너무 아까운 좋은 그림들이다. 그렇기에 시집이 아닌 시화집이다. 이혜민 화가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기분 좋은 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릴케 후기 시집 문예 세계 시 선집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송영택 옮김 / 문예출판사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토마스 만과 함께 독일 문학을 대표한다는 릴케, 그의 시집을 접하게 되었다. 솔직히 그토록 유명한 릴케의 시집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책 제목이 『릴케 후기 시집』이라 되어 있다. 그러니, 릴케의 작품시기를 둘로 딱 나눠 전기와 후기로 나눈다면, 바로 그 후기의 작품들을 모은 것이다(전기의 작품은 같은 출판사에서 2014년에 출간되었다).

 

처음 이 시집을 접할 때는 릴케의 유작들이 수록되어 있다는 소개글에 ‘후기’라는 단어를 ‘말기’로 이해했다. 그랬기에 릴케의 마지막 시기의 작품들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런 의미라기보다는 릴케의 작품 가운데 중기 이후의 작품들이라고 보는 것이 좋겠다.

 

이 시집에는 먼저, 릴케의 3기 시집(그의 작품세계를 4기로 나눴을 때) 『새 시집』의 작품들이 실려 있고, 그 다음으로는 < 새 시집 이후의 시 >로 여기에 실려 있는 시들은 릴케의 사망 후 발표된 작품들이다. 그러니, 릴케가 한참 활동할 때, 쓴 시들이지만, 사망 후 뒤늦게 발표된 작품들인 것이다.

 

그 다음 수록된 『두이노의 비가』, 『오르페우스에게 보내는 소네트』가 < 새 시집 이후의 시 >와 어쩌면 같은 시기의 작품들이고, 마지막 부분 < 후기의 시 >가 릴케 말년에 속하는 작품들이라 보면 되겠다.

 

과연 릴케의 시가 얼마나 대단할까 하는 기대감으로 그의 시를 접해본다. 그런데, 항상 느끼는 건데, 외국 시인들의 시를 접하면 왠지 우리 시인들의 작품과 느낌이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다. 물론, 나의 메마른 감성 탓이겠지만, 우리 시인들의 작품을 감상할 때의 그런 감흥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독자인 나의 탓이겠다). 어쩌면 이것이 정서의 탓일까? 아니면 번역시의 한계일까? 아무튼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대가의 작품을 대하는 경외감을 잃지 않고 그의 시 속으로 들어가 본다. 릴케의 시에 대해 평을 할 실력은 나에게 당연하게도(!) 없다. 그렇기에 시집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보다는 『릴케 후기 시집』 안에 담겨진 그의 시들 가운데서 ‘죽음’에 대한 그의 견해가 어땠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물론 이러한 정리 역시 나의 견해일 뿐이다. 설령 그것이 시인의 의도와 상반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이미 시는 시인의 손을 떠나 독자의 손에 있음에 그 의미를 찾는 작업은 이미 나의 것이라는 생각에 위안하며).

 

아직 실행되지 못한 것 속을 헤치며 / 무겁고 묶인 것 같은 발걸음으로 나아가는 이 고초는 / 백조가 땅 위를 걷는 어색한 걸음걸이와 흡사하다. // 그리고 죽는다는 것, / 우리가 매일 서 있는 발밑의 땅을 이제는 밟을 수 없다는 것, / 그것은 백조가 물에 들어갈 때의 그 불안감과 같다. // 그러나 물은 상냥하게 백조를 맞아들이고, / 백조의 가슴 밑으로 / 기쁘고도 덧없이 세찬 물결이 연달아 뒤로 밀려간다. / 그러나 백조는 더없이 조용히, 확실하게 / 점점 의젓하고 왕자다운 기품을 지니고 / 유유히 물 위를 미끄러져간다.

< 백조 > 전문

 

시인에게 있어 죽음은 두려움이다. 불안함이다. 마치 백조가 물에 들어갈 때에 품는 마음처럼. 그러나 물에 들어간 후의 백조는 기품 있다. 그리고 유유히, 의젓하며, 기품 있게, 그리고 조용하고 확실하게 그 물 위(죽음의 두려움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를 미끄러져간다. 이것이 시인의 죽음에 대한 견해를 잘 보여주지 않을까? 시인은 바란다. 기품 있는 죽음의 순간을 맛보길 말이다. 우리 역시 그럴 수 있길 소망해본다.

 

<백조>를 통해 알 수 있는 시인의 죽음에 대한 생각은 <죽음의 경험>이란 시에서도 거의 유사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연기를 계속한다. 불안하게 간신히 익힌 대사를 되뇌면서. / 그리고 때때로 솟구치듯이 몸짓을 크게 하면서. / 그러나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진 너의 존재가, / 우리들의 작품에서 밀려난 너의 존재가 // 때때로 우리를 엄습하리라. / 마치 저 진실의 인식이 내려앉을 때처럼. / 그런 사이에 우리는 갈채 같은 것은 생각지 않고 / 오로지 삶을 연기하는 것이다.

<죽음의 경험> 일부

 

비록 죽음이라는 떨쳐낼 수 없는 존재가 때때로 우릴 엄습할지라도, 그럼에도 여전히 나에게 주어진 삶을 연기하겠다는 시인의 고백이 마음을 울린다.

 

그렇다면, 시인의 이런 고백, 죽음에 대한 견해는 그의 말년에는 어떻게 변하였을까?

 

오라, 마지막 고통이여, 나는 너를 받아들인다, / 육체 조직 속의 엄청난 고통이여. / 정신 속에서 불탔듯이, 보라. 나는 지금 / 네 속에서 불타고 있다. 장작은 / 네가 불타오르는 불꽃에 동의하기를 오랫동안 거부하였다. / 그러나 나는 지금 너를 부양하고, 네 속에서 불타고 있다. (중략) 이 삶. 밖에 있는 것이 삶이다. / 나는 활활 타는 불꽃 속에 있다. 아무도 나를 모른다.

<오라, 마지막 고통이여> 일부

 

시인은 마지막 순간에 고백한다. 자신은 고통을, 그리고 죽음을 받아들이겠노라고. 이런 죽음에의 수용은 그의 병든 육체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수용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이 삶 밖에 있는 삶을 꿈꾼다. 이 밖에 있는 삶이 있다고. 그 삶으로 인해, 삶과 죽음의 경계는 사실 모호하다고. 물론 죽은 자들은 세상의 것으로부터 멀어짐은 사실이지만, 그 이면에 영원이 존재한다고.

 

이상한 일이다. 서로 관련되어 있던 모든 것이 풀려서 / 공간을 훨훨 날아다니는 것을 보는 것은. / 그리고 죽어 있다는 것은 고생스럽고, 보충해야 할 것이 넘칠 만큼 많은 것이다. / 그리하여 죽은 자는 차츰 약간의 영원을 느낀다. / 그러나 살아 있는 자는 모두 삶과 죽음을 너무나 단적으로 구분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두이노의 비가』중 <첫 번째 비가> 일부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는 불안함과 두려움의 존재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늘 나에게 주어진 연기에 최선을 다하며 나아가자. 아울러 죽음 이면의 삶이 존재함과 영원의 실재를 믿는다면 더욱 좋을 것이고. 백조처럼 기품있게 죽음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태어날 때는 모든 이의 웃음 속에 홀로 울고 나왔으니, 이제 마지막 순간에는 모든 이의 울음 가운데 홀로 웃으며 갈 수 있다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