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우리말 백과사전
이재운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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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아버지의 서재는 괜히 금지구역처럼 느껴져 아버지가 계시지 않을 때면 더욱 찾게 되는 공간이었다. 그곳에 들어가 4면을 감싸고 있는 책장 가운데 어린 우리 형제들이 볼만한 책은 한정되어 있었다. 바로 그림이 많은 백과사전. 이 가운데 난 뱀 사진이 잔뜩 나오는 권을 좋아했더랬다. 언제나 그 책을 펴고 멋진 컬러 사진의 다양한 뱀을 보며 좋아하곤 했다(지금은 뱀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얼마나 뱀 사진을 좋아했던지, 요즘도 명절에 형제가 모이면 간혹 그때 이야기를 하곤 한다.).

 

백과사전이란 말은 나에겐 그 당시 그림만 쓱쓱 살피던 때를 떠올린다. 그런 나에게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우리말 백과사전』이란 책은 먼저,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해준다. 추억의 한 자락을 떠올려 보며, 책을 든다. 결코 두껍지 않은 아담한 크기의 예쁜 책 디자인이 먼저 색다르게 느껴진다. 백과사전이라고 하면 무지 두껍고 클뿐더러 외형 디자인은 칙칙함을 자랑하며, 게다가 여러 권이라는 선입견이 작용한 게다. 이렇게 예쁜 백과사전이라니 싶어 이채롭다.

 

여기에 더하여 그동안 역사소설로 많이 만났던 이재운 작가가 써낸 백과사전이란 점 역시 특별함으로 다가온다(이재운 작가는 벌써 이런 작업물을 여러 권 내놓았는데, 난 소설만 여러 권 읽었을 뿐 이런 작업물은 처음 만났다.). 이처럼 다양한 감정을 버무려 책장을 펼쳐본다.

 

책을 읽는 가운데 또 하나의 색다른 느낌에 빠져든다. 백과사전이라면 그 내용이 따분할 것이라 여겨졌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그동안 모호하게 여겼던 많은 내용들을 마치 개그코너 <애정남>에서 명확하게 가르마를 타주는 것 마냥 알려주고 있어 신나게 끝까지 읽게 된다. 정독하는 백과사전이라니, 세상에 이런 일이...^^ 마치 일반 상식에 관한 여러 정보들을 전해주는 것 같아 재미나게 읽게 된다. 게다가 금세 읽힌다(물론 몇몇 개념들은 조금 딱딱한 감이 없진 않지만, 이런 내용들 역시 명확하게 짚어주기에 유익하다.).

 

물론 모든 어휘, 개념을 명확하게 가르마를 타주는 것만은 아니다. 어떤 정의는 여전히 명확하게 정의 내릴 수 없는 것들도 있다. 그렇기에 책제목에 ‘상대적이며’란 단어가 들어가는 것 같다. 그럼에도 이견이 없는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개념들, 어휘들이 있어, 정확하고 절대적인 정의를 내려주기에, ‘절대적인’이란 단어 역시 책제목에 들어간다.

 

여기에 책 제목을 또 하나 살펴보면, ‘우리말 백과사전’이다. 그럼, 여기 사전은 사전(事典)일까, 사전(辭典)일까? 저자는 들어가는 말에서 이 책에 대해 설명하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말 어휘를 더 바르고 정확하게 정의한 사전이다.” 그러니, 어휘에 대해 정의를 내리는 사전(辭典)의 의미가 있겠다. 하지만, 실제 많은 내용들은 단순히 어휘에 대한 정의보다는 어떤 사물에 대한 정의 개념이 더 많다. 예를 든다면, 과일과 채소를 나누는 기준은? 찌개와 전골의 차이? 나비와 나방의 차이? ‘벚꽃이 피었다’고 말하기 위해선 얼마나 피어야 하나? 등 사전(事典)으로서의 내용들이 훨씬 더 많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덧붙이고 있지 않나 싶다. “아울러 우리말 어휘에 생명과 힘을 부여한 성과물이다.”라고 말이다.

 

이 책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우리말 백과사전』을 통해, 그동안 궁금했던 많은 내용들에 대해 정확한 정의를 알게 된 것들이 참 많다. 작은 책이지만, 많은 지식은 단번에 습득한 마냥 배부르다. 이제 이런 내용들을 바탕으로 실생활 속에서 우리말을 보다 더 바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애써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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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 나라의 앨리스
존 켄드릭 뱅스 지음, 윤경미 옮김 / 책읽는귀족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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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켄드릭 뱅스(1862-1922)란 작가를 알게 된 것은 『내가 만난 유령』(고양: 책읽는 귀족, 2016)을 통해서였다. 아마도 이 책이 그의 저작이 국내에 소개된 첫 번째 책이었을 게다. 『내가 만난 유령』을 읽으며, 독특한 유머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분이구나 싶었다. 소설 아닌 듯 소설이면서도 인문학 서적인 듯싶으면서도 아닌 듯 느껴지는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제 그의 책을 두 번째 만나게 되었다. 『엉망진창 나라의 앨리스』란 책이다.

 

어째 이 책은 첫 번째 만남보다 더 독특한 만남이 될 것이란 예감이 든다. 아닌 게 아니라 책은 온통 풍자와 해학으로 가득하다. 게다가 책이 패러디하고 있는 작품인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 나라의 앨리스』 마냥 언어유희가 가득하다. 언어유희 역시 풍자적이다. 물론 이 언어유희로 인해 책의 가독성은 다소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언어유희 단어에 대한 각주를 읽어야 하니 말이다.

 

이 책 『엉망진창 나라의 앨리스』는 이미 110년 전의 책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오늘 우리의 세태를 향한 풍자가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세월은 흘러 세상이 긍정적 방향으로 발전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여전히 권력을 가진 자들의 세태는 달라지지 않아서는 아닐까? 특히, 오늘의 세태, 오늘의 대한민국이야말로 ‘엉망진창 나라’라고 부를 만하지 않은가? 오늘 우리들 역시 앨리스처럼 환상의 나라에 들어와 있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깨어나면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현실임에 오늘 우리의 아픔이 있고, 답답함이 있겠다. 그럼에도 『엉망진창 나라의 앨리스』를 통해 오늘 우리의 진면목을 발견하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 되겠다.

 

먼저, 작가가 이런 풍자를 하게 된 것은 공산주의의 시작과 맞물려 있다. 공산주의가 세상을 구원할 것 같지만, 그럴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이유는 사상에 있다기보다는 그 안에 있는 사람에게 있다. 아무리 좋은 이상을 가지고 시작할지라도 그 이념 안에 담겨진 사람들의 탐욕 앞에 공산주의는 더욱 엉망진창의 모습을 연출하게 될 테니 말이다. 작가는 바로 이런 점을 통찰력을 가지고 예언하듯 쓴 글이 본 서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예언은 결과로 드러났다. 공산주의건 민주주의건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겨진 사람이다. 특히, 권력을 가진 지도자들이 어떤 모습이냐에 따라 엉망진창 나라가 될 수도 있고, 파라다이스가 될 수도 있다.

 

그럼, 책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보자. ‘이상한 나라’와 ‘거울 나라’를 모두 여행하고 돌아온 앨리스는 또 다시 새로운 나라로의 여행을 하게 된다. 그곳은 바로 ‘엉망진창 나라’다.

 

정말 그곳은 엉망진창 나라다. 모든 것을 개인 소유가 아닌 시가 소유한다면서 심지어 사람들의 이빨마저 시가 소유한다. 이가 튼튼한 사람도, 부실한 사람도, 모두 평등한 혜택을 누려야 한다며 말이다. 시 뿐 아니다. 아이들도 시가 소유하고, 문학 예술 역시 모두 시가 소유한다. 사회적 평등주의에 대한 풍자가 가득 담겨 있다.

 

앨리스는 그곳에서 커다란 철도를 만나게 된다. 시 전체를 휘두르고 있는 기다란 철도,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 철도다. 이 철도가 움직이지 않고 고정되어 있는 이유는 나름 타당하다(물론, 시장인 모자 장수의 입장에서 타당한 이유지만.). 이렇게 열차가 움직이지 않으니, 사고의 위험성이 사라졌다. 항상 서 있으니 열차를 놓치는 사람도 없다. 열차가 덜컹거릴 걱정도 없다. 그러니 가장 좋은 결과란다. 어쩐지 이런 엉망진창 나라를 보며, 파울로 코엘료의 말이 생각난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배는 항구에 머물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왜 이들 나라가 엉망진창 나라일 수밖에 없는지 알게 된다. 그뿐 아니다. 가스공장에서 가스의 냄새가 난다고, 가스를 향수로 바꿔버렸다. 이제 가스의 악취가 나지 않고, 가스폭발의 염려마저 사라졌다고 자랑하는 모자 장수의 모습은 정말 어이없을 뿐이다.

 

시의 모든 아이들은 시가 소유하여 시 당국이 기르게 된다. 그런데, 그 책임자는 다름 아닌 공작부인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아기가 운다고 때리고 버렸던 그 공작부인이 시의 모든 아이들을 맡아 기르는 책임자요, 엄마가 된다. 인재기용 능력이 참 대단하다. 그러니 엉망진창나라일 수밖에.

 

(詩)를 관장하는 부서가 있어, 시를 마치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찍어낸다. 그러면서 그 시스템이 얼마나 유익한지 떠벌리는 모자 장수라니.

 

그 외에도 말할 수 없을 만큼 온통 엉망진창인 나라. 그곳의 앨리스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어쩌면 앨리스의 기분을 알 것 같다. 왜냐하면, 오늘 대한민국의 대다수 국민들이 느끼는 기분이 바로 ‘엉망진창 나라’ 속의 앨리스가 느끼는 기분이기에 말이다.

 

모자 장수가 낯설지 않은 것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알고 있어서만은 아닐 게다. 그나마 소설 속에서 존재하는 그들은 위험하지 않다. 소설 속에만 존재하기에. 하지만, 현실 속에 존재하는 이 시대의 모자 장수들의 전횡은 어찌해야 할까? 110년 전에 썼던 『엉망진창 나라의 앨리스』가 오늘 현실에도 여전하다는 것, 너무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다. 하지만, 어쩌랴! 이것이 현실인 것을. 결국엔 이 꿈같은 현실을 벗어나야 한다. 아니 현실을 변혁시켜나가야 한다. ‘엉망진창 나라’에서 말이다.

 

『엉망진창 나라의 앨리스』, 오늘 우리 시대를 풍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촌철살인 같은 풍자와 해학이 가득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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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 하늘로 보내는 마지막 인사
김서윤 지음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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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윤의 『그대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란 책은 제목만 보면, 왠지 달달한 사랑 내용이 가득한 책일 거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런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사랑 내용인 것은 맞다. 하지만, 달달하진 않다. 이 책은 로맨스를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달달하기보다는 애틋하고, 먹먹한 사랑을 담고 있다. 바로 죽은 이를 향한 남은 자들의 글들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내용들은 모두 조선시대의 죽은 이를 향해 쓴 제문, 애사, 묘비명, 행장 등을 모은 것들이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장. 부모의 가슴에 묻다 -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애끓는 아픔을 이야기.

2장. 형제, 절반의 상실 - 몸의 절반을 떼어내는 것과 같은 형제의 죽음을 이야기.

3장.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부모의 죽음을 이야기.

4장. 나의 반쪽이여! - 배우자의 죽음을 이야기.

5장. 줄이 끊어지다 - 친구의 죽음을 이야기.

6장. 가는 세월을 어찌 막으랴 -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이야기. 스스로 쓰는 묘비명.

 

사실 어느 죽음인들 아프지 않은 죽음은 없다. 모든 죽음은 무겁다. 그럼에도 몇몇은 너무나도 안타까워 심금을 울리는 사연들이 있었다. 예를 든다면, 강정일당이란 여자 선비가 쓴 막내딸의 묘비명이 그렇다. 이 여인은 자식을 아홉 낳았다. 그런데, 한 번도 아이들에게서 ‘엄마’란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극심한 가난 탓인지 모두 돌이 되기 전에 죽었기 때문이다. 아홉째인 막내딸만은 건강하게 길러보길 원했지만, 결국 막내딸마저 돌이 되기 전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어미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어찌 이런 인생도 있을까 싶다.

 

세상을 다 가진 왕이라 할지라도 사랑하는 딸이 죽어갈 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애끓는 심정을 토하기도 하고. 조금만 더 고생하면 집안 사정이 나아지기에 부모님 호강시켜드리고 효도하겠다 생각했건만 부모님의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렇게 보낸 부모님으로 인해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사연들도 만나게 된다.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내기도 하고, 스승을 먼저 보내기도 하며, 마음에 맞는 친구를 떠나보내기도 한다. 이처럼 수많은 죽음으로 인한 이별을 책은 이야기한다.

 

혼인식보다는 장례식을 가라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왜? 기쁨을 함께 나누지 않더라도 슬픔은 반드시 나누고 위로하라는 의미로?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장례식에 다녀오면, 나의 마음가짐이 달라지기 때문이리라. 죽음의 무게 앞에 자신을 돌아보게 될 것이기에 말이다. 다시말해 장례식은 남은 자들에게 유익함이 있다는 말이다.

 

이 책, 『그대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가 그렇다. 수많은 죽음, 그 죽음을 애통하며 남긴 글들을 보며, 무엇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더 많이 사랑하고, 더 잘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내 곁에 계심으로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시는 부모님 역시 결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부모님을 향한 자세가 달라지리라. 자녀를 향해서도, 사랑하는 가족들을 향해서도, 친구들을 향해서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이 책을 읽는 것은 많은 유익을 선물할 것이다.

 

아울러 자신의 묘비명을 써보는 것 역시 그러하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는 모두 웃는 가운데 홀로 울며 태어난다. 하지만, 죽을 때는 어떤가? 그 반대가 되어야 마땅하다. 모두가 울되 죽어가는 당사자는 웃으며 갈 수 있는 인생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반대라면 어떨까? 난 죽어도 못 죽겠다고(?) 버티는데, 누군가는 그 사람의 죽음을 속 시원해 한다면 말이다. 역시 죽음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바로 이 책, 『그대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가 그렇다.

 

아울러 조선시대의 죽은 이를 향한 애도를 모아 놓은 서적이란 점에서 좋은 자료가 된다. 이 점 역시 이 책의 유익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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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의 역사 - 매일 5억 명의 직장인이 일하러 가면서 겪는 일들
이언 게이틀리 지음, 박중서 옮김 / 책세상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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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흥미로운 책을 만났다. 금번 책세상 출판사에서 출간된 이언 게이틀리의 『출퇴근의 역사』란 책이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출퇴근이란 것이 어떻게 시작이 되었으며, 어떻게 변화되고, 또한 앞으로 어떻게 변하게 될 전망 등을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한마디로 출퇴근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고 있는 책이다.

 

‘출퇴근’이라는 하나의 테마로 이렇게 사회를 바라보며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흥미로웠다. 아울러 출퇴근이 거주지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었고. 또한 출퇴근이 어떻게 가능해졌으며, 출퇴근으로 인해 달라진 사회상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일터와 거주지의 분리는 운송수단의 발달로 가능해진다. 무엇보다 철도의 발명과 발전을 통해 출퇴근이라는 것 자체가 가능해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일로 인해 일터와 거주지를 분리함으로 보다 건강한 곳에서 살면서 또 한편으로는 수익이 가장 많은 곳에서 일하려는 열망이 출퇴근을 통해 현실화 되었다고 말한다.

 

흥미로웠던 내용 중에 하나는 철도의 발명과 실용화를 통해, 출퇴근이 가능해졌을 뿐 아니라, 이런 출퇴근의 과정으로 인해 시간에 대한 인식이 변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쉽게 생각해보면 출퇴근하는 일에 있어 시간엄수의 개념은 제시간 안에 출근하기 위하여 시작되었다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출근하기 위한 수단인 열차를 타기 위하여 시간엄수의 개념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참 재미나다. 그전에는 굳이 시간을 엄수하여 출근해야 한다는 개념이 없었단다. 그런데, 출근을 위해 열차를 타기 위해선 시간을 맞춰야 가능하다. 그러니 출근 때문이 아니라, 열차를 타기 위해 시간을 맞추다 보니 점차 시간에 대한 사고방식이 변하게 되었다는 것. 어째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기에 더욱 흥미롭다.

 

아울러 이렇게 열차 시간을 맞춰야 하기에, 시계의 정확성이 중요해지고, 시계의 필요성이 더욱 요구되었으며, 아울러 표준 시간이 요구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니, 출퇴근이라는 행위는 그저 거기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대한 인류의 인식을 바꾸었을 뿐더러, 시계기술의 발전을 가져왔고, 표준시간이란 문화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뿐 아니라, 이렇게 열차 시간을 맞춰야 하는 그런 강박관념이 문학에 드러난 흔적이 다름 아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란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시작하는 바로 그 장면, 토끼가 회중시계를 들여다보며, 자꾸 늦었다고 외쳐대며 뛰어가는 그 모습. 이것이 바로 출퇴근이 시작되며 생겨난 모습이란다. 이렇게 출퇴근에 대해 살펴보니, 얼마나 흥미롭고 재미 난지 모른다.

 

뿐인가. 이런 출퇴근 문화가 책이나 신문 잡지 등의 문자 이용 능력의 급증을 야기한 요인이었다는 것도 흥미롭다. 예나 지금이나 옆 사람과 말하지 않고 옆 사람을 상관치 않고 출퇴근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뭔가를 열심히 들여다보는 것이었나 보다. 그런데, 이런 필요가 문자 이용 능력을 키우게 되는 순작용을 했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이처럼 책은 출퇴근의 역사를 통해 당시 사회의 여러 가지 모습들을 읽어낸다. 출퇴근이라는 주제를 통해 이렇게 세상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 참 흥미로울뿐더러 경외감마저 인다. 많은 분들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 출판사를 중요시한다. 이 책 『출퇴근의 역사』를 읽으며, 역시 책세상 책들은 믿고 볼 수 있지 싶다. 잔잔한 가운데 새롭고 흥미로운 내용들로 가득한 『출퇴근의 역사』, 출퇴근의 행위를 통해 세상을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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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혁명 2030
박영숙.벤 고르첼 지음, 엄성수 옮김 / 더블북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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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란 말들이 참 많이 하고 있고, 그런 말들을 듣곤 하지만, 정작 실제 인공지능의 수준이 어느 정도까지 이르렀는지는 알지도 못할뿐더러, 굳이 관심을 갖지도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금번 『인공지능 혁명 2030』이란 책을 통해, 인공지능이 어느 수준까지 이르렀으며, 아울러 인공지능의 전망이 어떠한지를 알게 되었을 뿐더러, 인공지능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솔직히 이 책을 읽으면서도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없진 않았다. 특히, 기술적 부분들에 있어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음은 나의 부족한 과학적 지식 탓일 게다. 그럼에도 이런 부분들은 그냥 가볍게 건너뛰며,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큰 틀 안에서 이해하며 읽어나가면 좋겠단 생각이다.

 

이 책은 한 마디로 인공지능의 활용 범위가 단순히 금융계나 의학계 뿐 아니라 의사결정을 감당할 수 있는 영역에까지 이르게 된다고 말한다. 일명 ‘로바마 AI 엔진’으로서 이 로바마의 수준이 목표하는 바까지 이르게 될 경우, 국가의 정책을 결정함에 있어 ‘로바마 AI’에게 맡겨두면 가장 빠르고 효율적이며 최상의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국가 최고지도자가 자신의 의사결정을 하지 못해 누군가의 지시를 받는 실정이라면 이처럼 인간의 7대 죄악(음욕, 욕심, 과욕, 나태, 분노, 시기, 교만 등)을 배제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로바마에게 의사결정을 맡길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자연스레 하게 된다. 그럼 더 나은 의사결정으로 국가를 이끌어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책은 말한다. 부패하기 쉽고 어려운 정치나 정부운영을 (부패한 정권에 맡기지 말고) 인공지능에게 맡기고 인간은 더 재미있는 일을 찾으면 된다고 말이다. 게다가 인간은 선택 피로증을 앓고 있단다. 누구나 자신의 의사결정을 대신해 줄 뭔가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왕 이처럼 우리가 의사결정에 힘겨움을 느낀다면, 최선의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인공지능에게 의사선택을 맡기자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 이런 일이 실현될 수준으로 과학은 점차 다가가고 있다 말한다.

 

책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로바마 AI 엔진의 도움을 받게 된다면 국가의 다양한 정책 결정에 있어 오류를 최대한 줄이며 가장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게 될 것임에 분명하다. 그럼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그런 부조리, 부패와 비리를 줄일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품게 된다.

 

그럼에도 끝내 염려스러운 점은 아무리 인공지능을 거의 완벽수준으로 끌어올린다 할지라도 분명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인간이야 더욱 많은 오류투성이지만 말이다. 게다가 인공지능 로바마 AI를 누군가 악의적으로 이용한다면, 그래서 바른 결정이 아닌 결정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하느냐 하는 점에 있어 경계심을 풀 수 없다.

 

예를 든다면,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와 같은 상황,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펼쳐질 때, 이런 의사결정에 대해 누가 이의를 제기하겠느냐는 것이다(물론, 로바마 AI가 한 점 오류 없이 완벽하다면 최순실 게이트와 같은 일은 아예 일어나지 않겠다. 하지만, 단 한 점 오류라도 발생하여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떡하느냐 하는 말이다.). 책은 거듭해서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의사결정과 같은 것, 부패하기 쉽고 어려운 정치나 정부운영은 인공지능에게 맡기고 인간은 더 재미있는 일을 찾으란다. 아울러 우리가 잘 모르고 할 수 없는 복잡한 결정들 역시 로바마 AI에게 맡기고, 인간은 일상생활에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에만 집중하면 모두가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이 된단다. 한 마디로 골치 아픈 의사결정은 인공지능에게 맡겨놓고 우리 인간들은 자유로운 삶을 마치 베짱이처럼 살아가면 된단다.

 

어쩌면 꿈같은 일이다. 그럼에도 실제 이렇게 된다면, 인간은 배부른 돼지로 사육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낼 수 없다. 의사결정도 할 수 없는 인간, 이제 의사결정의 권한을 떠나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인간이 된다면, 만약 그 사회가 바르게 굴러가지 않을 때, 어떤 제동을 걸 수 있을까? 인공지능이 더욱 발전함으로 결국 인간의 품성을 닮아 부정을 저지르거나, 혹은 국가의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인공지능이 누군가 극소수의 권력자들에 의해 조작된다면, 그런 상황에서 일반 시민들에게는 촛불시위와 같은 일은 이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되지 않을까? 의사결정을 포기하여 의사결정 능력을 상실한 시민이니 말이다.

 

분명, 로마바 AI와 같은 인공지능이 유용하게 사용되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엔 인간의 의사결정은 인간이 해야 하지 않을까. 불완전하다고 하여 의사결정을 기계에게 맡길 때, 인간은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 아무런 생각이 없는 배부른 돼지가 될 테니 말이다. 비록 불완전하더라도, 오늘날처럼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진다 할지라도 우리가 의사결정을 할 수 있기에, 하나하나의 촛불을 들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런 개인적 노파심을 제외한다면, 인공지능의 지평의 범위가 어느 정도까지 이르게 될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책이다. 아울러 잘 알지 못했던 인공지능의 현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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