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매치기 로코 푸르른 숲
데보라 홉킨슨 지음, 김수현 옮김 / 씨드북(주)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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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보라 홉킨슨이란 작가의 책을 처음 만난 것은 살아남은 여름 1854(서울: 씨드북, 2016)이었다. 영국에서 발생한 콜레라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역사추리소설이었다. 이번에 두 번째로 만난 소설 소매치기 로코역시 비슷한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역사소설이다. 살아남은 여름 1854가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소매치기 로코는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 소년 로코는 성 로코의 기념일(816)에 태어나 로코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성 로코(St. Rochus)에 대해 찾아보니, 그는 14세기에 활동한 프랑스의 은수자로 외과의사, 약사, 순례자, 여행자, 병약한 사람, 가난한 사람, 죄수들의 수호성인이라 한다.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사망 후 막대한 유산을 가난한 이웃을 위해 사용하라는 아버지의 유언대로 모든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로마로 순례 여행을 떠나, 전쟁과 페스트로 고통당하는 수많은 병자들을 돕는 일을 했다는 성 로코. 나중엔 병에 걸려 죽어갈 위기 가운데서 개의 도움으로 살아나게 되고, 뿐더러 치유의 능력을 갖게 되어 많은 사람들의 병든 몸을 치유해 줬다는 성인이다.

 

주인공의 이름이 바로 이런 성 로코의 이름을 가져왔다면, 주인공이 로코와 비슷한 역할을 하게 됨을 추측할 수 있다. 물론, 소설 속 로코는 성 로코와는 전혀 다르게 너무나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소년이지만 말이다. 로코는 이탈리아 남부 칼베로라는 마을에서 태어나 남의 나귀를 돌보는 목동 일을 하다가 동네 부자의 돈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게 되고, 결국 이 일이 빌미가 되어 어떤 사람에게 팔려 미국으로 가는 배를 타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미국 뉴욕 생활은 너무나도 처참하고 끔찍하기만 하다. 로코를 데려간 두목은 우리식으로 말하면 앵벌이를 시키는 자다. 아이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입술 주변에 같은 모양의 상처를 내는 잔혹한 두목(어느 위치에 상처가 있느냐에 따라 어떤 두목 아래 있는 소년인지를 알 수 있다.).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내 악기를 연주하게 하는데, 하루 상납금 1달러를 채우지 못하는 소년들은 어떤 일기 속에서도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고, 먹을 것도 제공하지 않는다. 입의 흉터 때문에 도망갈 수도 없는 아이들은 벌레가 득실거리는 밀짚을 깔아놓은 지하에서 집단생활을 하게 된다. 모포는커녕 의복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아이들. 신발을 신은 아이들은 그나마 행운아인 셈. 후에 로코가 보호소에 수감되었을 때, 보호소의 침대가 로코 평생 가장 깨끗한 침대라고 고백할 정도이니, 그 열악한 환경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한다. 이처럼 처참한 인권 유린의 현장에서 살아가는 아이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런 생활에 관심을 기울이는 자도, 제대로 알고 있는 자들도 없다.

 

어쩌면, 그 실상을 몰라서일 수 있다. 하지만, 또 어떤 이들은 일부러 외면하고 눈을 감고, 귀를 닫진 않았을까? 어쩜 우리 역시 그럴지도 모르겠고.

 

아무튼 이런 로코에게 검은 유혹이 뻗어오고, 로코는 어떤 망설임도 없이 소매치기가 된다. 그러다 보호소에 수감되고, 그곳을 탈옥하게 되는 로코, 로코를 기다리는 운명은 무엇일까?

    

소설의 표지 그림이 마치 time 지를 연상시킨다. 이는 이 책에 등장하는 실제 역사 속 인물들 가운데 두 사람 맥스 피첼(1863-1939), 제이콥 리스(1849-1914)를 염두에 둔 그림이 아닐까 싶다. 특히, 이 가운데 제이콥 리스는 당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던 또 다른 공간, 그 반쪽의 삶에 대해 사진을 찍어 다른 반쪽의 삶이란 책을 냈다고 한다. 소설 속에서도 제이콥 리스가 기자로 등장하는데, 로코는 제이콥 리스의 조수 노릇을 하며, 자신이 도망친 그곳 앵벌이 소년들의 참상을 사진으로 찍어 제이콥 리스에게 전해 준다. 언론의 참 역할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오늘날 권력자 앞에서 벙어리가 되어버린 이 땅의 언론, 아니 권력의 앞잡이가 되어 버린 언론이 얼마나 한심한지도 생각하게 해주고.

 

이처럼 소설은 당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몰려든 수많은 이민자들의 처참한 삶. 특히 그 가운데서도 힘없는 아이들이 어떻게 착취당하며, 인권유린을 당했는지를 고발하고 있다.

 

소설 속의 로코는 자신의 이름 그대로 행하게 된다. 마치 성 로코처럼 사회의 썩고 곪은 부분을 드러내고, 그로 인해 그곳을 도려내고 치료하게 하니 말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용기가 참 멋스럽다.

    

이 책은 인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앵벌이 소년들에 대한 인권의 문제를 생각하게 하며, 인권 뿐 아니라 동물권에 대한 고발 역시 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 수많은 말들이 열악한 근로조건에서 일하며 죽어간다. 이런 말들을 향해 소리를 내는 일명 참견쟁이 메리, 그리고 위대한 간섭꾼 헨리 버그씨(헨리 버그씨는 실존인물이다.) 등과 로코가 연결된다. 보호소에서 탈출한 로코는 바로 메리의 아버지 집에서 의탁하게 된다. 이렇게 로코는 그 이름처럼 또 하나의 수호 성인이 된다. 말들의 권리를 보호해주는 그런 역할을 말이다.

 

이처럼 소설은 착취당하는 소년들과 말들의 인권과 동물권을 위해 외치고 있다. 그 시대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났다. 과연 지금 시대, 그때보다 훨씬 더 좋아진 세상이라는 지금, 더 많은 진보를 이룩했다는 지금은 과연 어떤가 생각해본다. 오늘도 우린 여전히 사회 반쪽의 삶을 향해 모른 척 외면하고 살고 있진 않은지. 여전히 그 반쪽의 삶에는 무지한 채 축복받은 삶만을 주문처럼 읊조리고 있진 않은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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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걸스 1 -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러면 널 죽여야만 해 스파이 걸스 1
앨리 카터 지음, 민지현 옮김 / 가람어린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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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좋은 책으로 어린이 독자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가람어린이에서 또 다시 좋은 시리즈로 독자를 찾아왔다. 앨리 카터라는 작가의 스파이 걸스란 책이다(기숙학교 갤러허 아카데미의 이름을 따 갤러허 걸스 시리즈라 불리고 있다.). 그 첫 번째인 1권에는 이런 부제가 붙어 있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러면 널 죽여야만 해. ~ 무시무시한 제목이다. 과연 어떤 비밀이 있기에 이렇게 말하는 걸까?

 

이번엔 스파이 학교다. 소녀들로만 구성된 학교. 외부적으로는 상류층 딸들만이 입학할 수 있는 부유층 학교로 인식되어 있지만, 실제는 스파이를 길러내는 학교다. 수많은 나라의 언어에 능통해야 하며, 무술, 암호해독, 온갖 최첨단 기계 조작 등 일류 스파이가 되기 위한 훈련을 거쳐야만 하는 학교.

 

주인공은 캐미라는 여학생(물론, 이 학교에는 모두 여학생 뿐이다.)으로 부모님이 모두 일류 스파이 출신으로 아버지는 작전 중 돌아가셨고, 엄마는 바로 이 놀라운 학교 갤러허 아카데미의 매력적인 교장선생님이다. 그러니 캐미는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스파이의 길을 숙명으로 알고 자란 아이다. 14개 국어에 능통하고 무술도 어마무시하여 귀여운 소녀라고 얕봤다가는 큰 코 다치게 될 그런 소녀다.

 

캐미에겐 다른 친구들에겐 없는 또 하나의 능력이 있다. 바로 자신의 존재감을 지울 수 있는 능력이다. 마치 전설적 닌자나, 자객처럼 말이다. 그래서 친구들은 캐미를 카멜레온이라 부른다. 그런 캐미가 마을로 작전 실습을 나갔다. 캐미의 이런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같은 조원 절친 친구들도 캐미를 놓치곤 한다. 서로 통신을 하면서도 뛰어난 스파이 후보생들인 친구들의 시선에서도 쉽게 사라지는 캐미. 그런데, 캐미에게 말을 걸어오는 소년이 있다. 그것도 아주 평범한 소년. 카멜레온인 캐미를 눈여겨보고 말을 걸어오는 이 소년 정말 평범한 소년일까?

 

이렇게 작전 중 접촉이 있었던 의문의 소년에 대해 캐미와 절친들은 비밀 조사에 착수하게 되고. 그런 가운데 캐미와 소년(조쉬) 간에는 풋풋한 사랑의 감정이 자리 잡게 된다. 과연 둘 간의 관계 이대로 둬도 괜찮을까?

 

스파이 걸스는 최상류층 소녀들만이 다니는 기숙학교 갤러허 아카데미라는 존재가 가장 매력적이다. 마을 속에 있지만 마을과 철저하게 단절된 공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교육들. 이처럼 스파이를 양성하는 그 교육이 매력적인 소설이다.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이 학교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은 사실 달갑지 않다. 아니 어쩌면 그들만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부잣집 공주들을 향한 적개감이 가득하다. 이게 바로 외부의 시선이다. 조쉬는 당연히 외부의 시선에 속한 아이이고, 캐미는 그런 그들의 적개심의 대상에 속한 아이. 과연 이 둘의 만남이 계속 될 수 있을까? 게다가 스파이 학교 교사들의 시선도 피하며 이어가야 하는 캐미의 아슬아슬한 풋사랑이 과연 어떤 결말을 낳게 될까? 바로 이런 아슬아슬한 사랑, 그 스릴과 달달함이야말로 스파이 걸스1권의 매력이다.

 

또 하나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소녀들의 극히 평범한 우정 역시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보물이다. 물론, 평범한 소녀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위하고 챙겨주지만, 그럼에도 우정의 색깔과 농도는 같다. 이런 소녀들의 끈끈한 우정을 발견하는 것 역시 스파이 걸스가 주는 선물이다.

 

물론, 스파이를 꿈꾸며 나아가는 소녀들의 멋진 활약 역시 재미나다. 앞으로 계속될 캐미와 친구들의 활약이 기대된다. 다음편에서는 과연 또 어떤 재미난 일들이 벌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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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 어때서
왕수펀 지음, 쉬즈홍 그림, 심봉희 옮김 / 챕터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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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소설 괴물이 어때서의 작가 왕수펀은 대만작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날아라 허동구>(2006, 박규태 감독)란 영화의 원작 동화인 나는 백치다(파주: 웅진주니어, 2004)의 작가다. 왕수펀의 괴물이 어때서는 왕따 문제를 다루고 있는 성장소설이다.

 

14살 소녀 장중신은 언제나 1등만 하고 악기 연주 재능도 있는 천재소녀다. 얼굴도 예쁘고, 집안도 부유하여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장중신, 이 아이에겐 한 가지 부족한 게 있다. 바로 친구. 장중신은 예전엔 많은 친구들을 거느린 여왕벌과 같은 존재였지만, 정말 우연치 않은 사소한 사건으로 인해 친구들로부터 외면 받게 된다(물론, 그 이면에는 장중신을 의도적으로 왕따 시킨 아이가 있다.).

 

언제나 친구들에게 부러움의 대상, 선망의 대상이었던 존재에서 괴물과 같은 존재로 전락해 버린 장중신은 같은 학년 다른 반의 왕따들, 일명 괴물로 불리는 아이들을 불러 모은다. 이들과 함께 괴물 클럽을 만들고, 자신들을 괴물로 만들고 몰아세운 진짜 괴물들을 향한 복수를 꿈꾼다.

 

이렇게 장중신에 의해 함께 하게 된 친구들은 루웨이양(언제나 세상에 불만이 가득하다. 그 이면에는 독재자 아빠에 대한 반항심 때문이기도 하다.), 양카이(순수한 친구이지만, 엄마가 챙겨주지 못해 씻지 않고 다님으로 아이들에게 괴물 취급을 받게 된 아이다.). 과연 이들 괴물클럽은 자신들을 괴물로 몰아세우고 왕따 시킨 가해자(?)들을 향해 통쾌한 복수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복수가 만약 성공한다면 정말 통쾌하게 될까?

 

성장소설 괴물이 어때서은 왕따 문제를 다루고 있다. 괴물로 불리며 몰아세움을 당하는 아이들. 하지만, 이들은 괴물이 아니다. 루웨이양의 말이 큰 울림을 준다.

 

난 괴물이 아니야. 나를 괴물이라고 부르는 애들이야말로 진짜 괴물이지.”(23)

 

그렇다. 누군가를 어떤 이유에서건 괴물로 단정 짓고 몰아세우는 이들이야말로 진짜 괴물들이다. 우리 곁엔 이런 괴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이런 괴물들로 인해 괴로워하는 이들도 얼마나 많은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작가는 이처럼 누군가를 괴물로 몰아세우는 이들을 고발한다. 어떤 이유에서건 누군가를 향해 왕따의 폭력을 행하는 자들. 그들은 괴물이다. 하지만, 작가는 괴물로 몰리는 아이들에게도 문제가 없진 않다고 조심스레 언급한다. ‘괴물클럽의 세 명의 친구들, 그들이 괴물로 몰림을 받는 건 분명 잘못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각기 문제의 원인이 있다. 루웨이양은 언제나 인상을 쓰고 다닌다. 그리곤 친구들에게 함부로 말을 하여 상처를 준다. 모두를 공포의 분위기로 몰아세운다. 그러다 그들의 역습으로 괴물이 된다. 양카이는 조금만 씻으면 될 텐데, 그러지 못한다. 그래서 언제나 좋지 않은 냄새가 나기에 친구들이 멀리하게 된다. 장중신은? 장중신이 한참 인기 있을 때, 장중신과 친구가 되길 원하던 아이를 향해, 상처주고 괴물로 불렀던 실수가 있다. 그래서 이 아이가 장중신을 향해 원한을 품고, 결국 그것이 빌미로 괴물로 몰림을 받는다. 물론, 어떤 이유에서건 괴물로 몰림을 받아선 안 된다. 하지만, 작가는 괴물로 몰림을 받는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길 원하고 있다.

 

또한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고, 또 다른 희생자를 낳을 뿐임을 소설은 이야기한다. 그 단적 예가 사실 장중신이다. 그럼에도 장중신은 자신을 왕따로 몰아세운 아이를 향해 복수하게 되고. 하지만, 복수의 끝은 결코 달콤하지 않다. 이런 모습을 통해, 복수가 답이 아님을 소설은 말한다.

 

그럼, 진짜 답은 무엇일까? 물론, 주변의 아이들이 괴물로 몰리는 아이들을 품어줘야 하겠다. 그리고 괴물 클럽처럼 약자들의 연대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작가가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답은 자존감이다. 작가는 괴물로 몰린 아이들 스스로 자신에 대해 자존감을 갖아야 함을 이야기를 통해 전해준다. 그리고 자신들의 마음을 붙잡아줄 뭔가를 찾고 행할 수 있게 한다. 소설 속에서 루웨이양에겐 그것이 음악이고, 양카이에겐 음식 만들기다. 이런 것들을 통해, 자존감을 갖게 되고, 더 나아가 관계의 회복까지 이루게 된다.

 

소설 괴물이 어때서는 뭔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정서와 약간의 괴리감이 없진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왕따 문제에 대해 우리가 생각해볼 것들을 잘 전달하고 있다. 무엇보다, 난 결코 괴물이 아니라는 자존감을 이 땅의 모든 청소년들이 회복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이 바람처럼, 이땅의 모든 청소년들이 자존감을 회복하여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잘 견뎌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누군가를 괴물로 몰아세우는 진짜 괴물들이 되지 않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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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짧은 연애 이야기 크레용하우스 청소년 시집
이묘신 지음 / 크레용하우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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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동시를 좋아하여 가까이 하곤 한다. 동시를 감상하면 맑은 마음이 공급되는 느낌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런 동시는 평소 많이 접하고 가까이 하지만, ‘청소년시는 처음이다. 동시가 어른이 동심을 갖고 쓴 시라고 정의한다면, 청소년시 역시 유사하게 정의할 수 있겠다. 어른이 청소년의 마음으로 써내려간 시가 청소년시라고 할 수 있겠다.

 

작가 이묘신의 청소년 시집 내 짧은 연애 이야기는 마치 한편의 소설과 같은 시집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시집은 청소년 아이의 첫 사랑에 대한 테마 시집이다. 각각의 시가 서로 별개의 내용이 아닌,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내용이다.

 

만남 이전, 만남, 행복한 순간들, 이별, 그 이후까지. 마치 한편의 소설처럼 서사를 갖고 노래하고 있는 시집이다. 한 여자 아이가 문득 눈에 들어와 그 아이를 생각할 때마다 두근거리던 순간. 만남을 앞두고 설레던 가슴. 다가가고 싶지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망설임의 순간들. 거짓말처럼 사귐이 시작되어 한껏 부풀어 오른 행복하던 순간들. 알콩달콩 사귐의 시간들. 처음 손을 잡던 그 행복한 순간. 하지만, 공부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반대(어쩌면 공부만 해야 한다는 생각일지도.)로 인해 결국 이별을 맞게 되고. 이별 뒤의 아픔까지 시인은 노래한다.

 

시집을 읽는 내내 마치 중학생 철부지 순간으로 돌아간 느낌을 가득 받게 된다. 아울러, 이렇게 청소년들의 사랑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노래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고. 서사가 있는 시집. 무엇보다 청소년들의 마음을 오롯이 잘 표현하고 있음에 시를 통해, 청소년들의 예쁜 사랑, 그 설렘 속으로 들어가게 해준다.

 

또한 시집을 통해, 나의 학창시절도 떠올려보게 되고. 그래, 그땐 그랬지, 내 얘기 같아, 하는 회상에도 젖어보고. 아울러 그때 어른들의 반대가 그토록 밉고 싫었는데, 이젠 내가 그 어른들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깜짝 놀라게도 된다.

 

우리 아이들의 사랑을 물론 어른으로서 잘 지도해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사랑을 아무것도 아닌 것 마냥 만들어버리고 있진 않은지 하는 반성도 해보게 되고. 비록 어설프지만, 아이들이 이런 사랑도 나중엔 예쁜 추억이 되길 빌어보기도 하고.

 

아무튼 시집 내 짧은 연애 이야기는 청소년들의 사랑을 오롯이 잘 표현하고 있는 시집이다. 때론 민망하기도 하고, 때론 애틋하기도 하며, 때론 사랑의 감정에 달달하기도 하고, 때론 사랑의 아픔까지. 그 서툴지만 예쁜 사랑의 노래들을 만나보는 행복한 시간을 누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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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들 - 한 개의 섬, 두 개의 시선 다림 청소년 문학
아넬리즈 외르티에 지음, 정미애 옮김 / 다림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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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우리와 상관없는 문제라 여길 수도 있지만, 지중해 연안의 난민 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임에 분명하다. 수많은 이들이 지중해를 넘어 타국에 몸을 의탁할뿐더러 또한 수많은 이들이 지중해 깊은 바다 속에 잠겨 인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올 한 해(2016년) 지중해 연안에서 죽어간 난민들의 숫자가 4천 500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그저 남들처럼 평범한 삶이나마 살아보겠다고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한다. 어쩌면 자신들 앞에 기다리는 것이 자유가 아닌 죽음임을 알고 있을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목숨을 건 모험을 감행한다. 결코 수많은 국가들이 자신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음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렇게 많은 난민들이 자유의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그저 바다 깊은 곳에 자유를 향한 꿈을 묻게 되는 그곳 지중해에 람페두사란 섬이 있다. 몰타와 튀니스 사이에 위치한 섬으로 물이 너무 맑아 바다 위에 떠 있는 배가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아름다운 섬이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이곳은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휴양지, 천국의 섬처럼 느껴질 만하다. 하지만, 이곳 역시 난민들에게는 인생의 종착역이 되는 한낱 죽음의 섬이 되기도 한다.

 

소설 『난민들: 한 개의 섬, 두 개의 시선』은 바로 이곳 람페두사 섬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밀라는 평범한 17살 이탈리아 소녀다. 하지만, 밀라에겐 평범치 않은 삶의 스토리가 있다. 그건 바로 동생의 죽음이다. 물론, 밀라는 동생에게 그리 큰 정이 없었다. 동생은 그저 6개월 남짓 살다 죽었기에. 하지만, 동생의 죽음은 밀라 가정을 완전히 파괴해버렸다. 엄마는 자살을 시도하고, 결국 몇 년에 걸쳐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이로 인해 아빠는 사업도 뒤로 한 채 병든 엄마를 돌보고 가정을 간수해야만 했다. 이렇게 한 어린 생명의 죽음으로 인해 파괴되어진 밀라의 가정은 이제 람페두사 섬에서 4주간의 여름휴가를 보내게 된다. 아빠가 어린 시절 자랐던 곳이기도 한 섬. ‘구원의 섬’이란 의미의 섬. 그곳이 이름 그대로 밀라 가정에게 회복과 구원을 가져오는 섬이 될까?

 

소설은 밀라가 람페두사 섬에서 보내는 시간들을 그려내고 있다. 이렇게 밀라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사이사이에 여러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하나씩 ‘끼워 넣기’ 기법으로 실려 있다. 이들은 모두 에리트레아 청소년들이다. 전쟁과 독재, 강제 징집과 고문, 폭행, 강간 등이 일상이 되어버린 곳. 국민 50명 당 한 사람은 이미 난민으로 조국을 탈출한 땅. 소설은 그곳 청소년들을 한 사람씩 등장시켜 밀라 이야기 사이사이에 끼워 넣는다.

 

이들 모두 평범한 일상의 삶을 꿈꾸는 청소년들이다. 하지만, 결코 평범한 일상이 허락되지 않는 땅이기에 그들은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한다. 각자 삶의 배경이 다르지만, 이들은 소설 말미에서 함께 작은 보트에 몸을 싣고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건 모험을 시도한다. 과연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일까 비록 난민이란 지위일망정 자유일까?

 

소설이 같은 보트를 타고 탈출하게 되는 이들 청소년들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나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작가는 이들의 삶을 우리에게 소개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싶다. 우리에게 난민문제는 먼 곳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사회문제’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난민 문제는 단순히 사회문제에 머무르지 않고, 들여다보면 한 사람 한 사람 삶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들은 단지 ‘난민’이란 이름으로 규정지어지는 존재만이 아닌, 각자의 사연이 있고, 각자 꿈을 갖고 있던 청소년이었다는 것. 하지만, 그런 그들이 이젠 그저 생존의 투쟁만이 삶의 전부가 되어 버렸음을 우리에게 알려주려는 것이 아닐까.

 

아울러 난민들의 처참한 삶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한 어린 생명의 죽음으로 인해 삶이 깨치고, 상처 입게 된 밀라 가정의 모습을 통해, 그럼 난민들의 삶은 어느 정도 깨어졌을지. 얼마나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만 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뿐 아니라, 이렇게 상처 입은 밀라의 가정이 람페두사 섬에서 건강함을 찾아가며 회복되는 것처럼, 이들 난민들 역시 ‘구원의 섬’이란 뜻을 가진 람페두사 섬에서 구원을 입고, 회복을 향해 나아가길 바람이 작가의 소망이 아닐까.

 

이러한 구원, 회복을 위해선 시민의 불복종을 전제하고 있다. 왜냐하면 국가(이탈리아)는 국민들에게 난민들을 향한 바다에서의 어떤 구조 행위도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국가의 법이 그렇다 할지라도 시민의 입장에서 각자 양심에 근거하여 법에 불복종함으로 난민을 구할 때, 비로소 그곳 람페두사는 그 이름 그대로 ‘구원의 섬’이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지 않나 싶다.

 

너무나도 비참하고 끔찍한 난민들의 삶이기에 소설을 읽으며 마시는 커피 한 잔이 죄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어쩌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애써 모른 척 하고 싶은 내용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이들 삶에 대해 알고, 관심 갖고, 살펴보게 될 때, 우리의 응원은 바다를 건너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울러 더 많은 이들의 관심이야말로 그곳에 있는 이들의 불복종을 끌어내는 동력이 될 수도 있겠다. 더 나아가서는 이런 관심이 좋은 정책을 이끌어낼 수도 있을 것이고. 하나의 작은 촛불이 역사의 큰 물결을 이루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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