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반게리온 : 파 - Evangelion 2.0: You Can (Not) Adv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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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이었다.
  영화는 명성처럼 애니매이션답게 화려한 액션과 멋진 모습으로 치장된 내용물로 관객들의 시간을 즐겁게 한다. 그러나 영화의 외피를 조금 벗어나면서 만나게 되는 영화의 진면목은 또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이전의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봤던 많은 사람들의 예상처럼 가볍지 않은 주제와 철학, 그리고 무거운 주장과 만나게 된다. 이런 것들이 내가 가장 보고 싶었던 내용이었던 것만 같다. 그것들을 기대했고 역시나 만족했다.
  영화 [에반게리온: 破]에서 본 현실은 부조리한 것들이 엉킨 시간이었다. 전통과 현대의 불편한 관계, 공동체주의와 개인주의의 불안한 동거, 그리고 현실과 로망 사이에서 방황하는 현대인, 그 어느 것도 만족스러운 결합을 이룬 것이 거의 없었다. 그 속에서 있는 인간들의 캐릭터들은 현실의 어느 집단을 상징하면서도 동시에 주체도 될 수 없고 그냥 그렇게 뒤엉킨 채로 살아가는 행복하지 못한 인간들 투성이였다. 그 곳에서의 행복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에반게리온’의 끝없는 문제제기이다.  

  영화 [에반게리온: 파]은 현실을 부정한다. 세상에 살고 있는 인류에 대한 지독한 불신이 영화 깊숙한 곳에 자리잡으면서 인류를 위해 뛰는 파일럿들조차 이런 그들의 임무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즉, 인류를 구할 책임의식을 갖고 에반게리온을 타지 않는다. 그들에겐 인류의 생존은 그리 중요한 대상도, 사랑할 대상도 되지 못했다. 그들은 파일럿이 됐을 때가 자신이 가장 편해서, 혹은 아버지의 사랑과 관심을 얻기 위해 억지로 탔거나 하는 우연한 기회가 돼서 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들이 지켜야 할 인류에 대한 애정과 사랑은 언제나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나 있었고, 영화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그들은 그냥 타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태운 소위 지도층들의 마음 속에 인류에 대한 걱정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인류의 지도층들은 비밀에 싸여서 오직 자신들만이 아는 어휘들로만 대화를 나눈다. 영화 속 캐릭터들은 물론 관객조차 소외된 채, 그들의 말은 그냥 듣게 되는 것이다. 이런 캐릭터들이 모여 있는 것이 인류가 생존하고 있는 문명이자 破의 대상이다. 
  캐릭터들 모두 상징이었다. 아버지 ‘이카리 겐도’의 모습인 부성은 현실과 사회를 상징한다면 ‘레이’로 대표되는 모성은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이자 새로운 세상을 대신할 이상향으로 제시되어 있다. 아버지와 아들 ‘신지’의 갈망이자 쉼터의 상징인 레이는 그러나 언제나 멀리 있었다. 그 누구도 가까이 할 수 없는 곳에서 미지의 대상이자 기억의 대상일 뿐 손에 쥐거나 느낄 수 없는 기묘한 대상으로 거리감만 느끼는 신비함 가득한 존재다. 이런 레이에 비해, 현재의 여성성을 의미하는 ‘아스카’는 현실적이며, 우리 주위에 있을 수 있는 매우 감각적이고 남성과 여성성 둘을 포함한 중성적 인간이다. 어쩌면 혼자만의 생존을 해야 하는 미래의 인간형일지 모르겠다. 외롭지만 외롭다는 이야기를 해선 안 되는 미래의 우리들. 아스카에겐 그런 진한 고독감과 외로움, 그래도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강인함을 가장한 그런 인간성이 느껴진다.  

  그리고, ‘신지’는 현대의 남성을 상징한다. 전통의 책임이란 굴레를 벗어나고 싶어도 그것에 얽매이고 여성에 대한 강인한 집착이 사라진, 조용히 이어폰만을 듣고 세상과의 단절을 꿈꾸는, 소심하고 고립됐으면서, 자신만의 세상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은 남성이다. 그에겐 공동체에 한 일원으로서의 책임의식을 갖지 못한다. 오직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충실할 뿐이다. 에반게리온에서 그가 강한 자극을 받았던 때는 언제나 자신이 사랑하는 누군가가 혹은 자신이 관심 있어 하는 누군가가 고통에 처해있을 때였다. 그가 살아가는 세상은 협소하기 그지 없었다. 마치 우리들의 누군가들처럼. 그가 꿈꾸는 대상은 신비롭지만 결코 다가갈 수 없는, 그리움의 대상인 레이였고 어머니와 같은 근원적인 것에만 집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만 안주해서 더 이상 밖으로 나오기를 두려워하는 어느 현대인의 모습이다.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야멸차게 이야기했던 어린애 같다는 표현은 야속하지만 그에겐 더없이 적절한 표현이다. 개인주의적이고 피터팬 신드롬에 갇혀있는 그는 어쩌면 현대인의 가장 적나라한 단면일 것이다.
  파멸, 무서운 말이다. 영화에서 보이는 세상에 대한 냉소는 영화가 진행되면서 더욱 부각된다. 현대의 모든 것들이 부정되는 것이고 그 미래 역시 부정되는 것이다. 누구의 계획 하에 진행된다 하더라도 현실을 살고 있는 대다수는 사멸해야만 한다는 주장, 그것이 이 영화의 의지이다. 영화의 대안이자 그 이상향을 의미하는 것은 바로 레이를 통해 보이는 세상이다. 레이는 영화의 주인공인 신지와 그의 아버지의 영원한 갈망의 대상으로 그려진다. 현실의 도시 문명엔 결코 얻을 수 없기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다시 시작하자는 영화의 주지가 바라보는 대상은 인간이란 생명체가 아니라 인간 속에 있는 막연해 보이기만 한 사랑과 본성이란 것이다. 마치 ‘생명파’의 시인들처럼 인체라는 한계를 극복해야만 볼 수 있는 것에 대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도전으로만 보인다. 그리고 영화 속에 들어있는 인간에 대한 지독한 불신은 사실 허구의 이상향을 기준으로 비판하기에 인류라는 생명체는 거세되어야 하는 혁명론으로 귀착되고, 그 영화에 대한 동의를 관객에게 요구한다. 

  아버지의 모습인 부성은 현실과 사회를 상징한다면 레이로 대표되는 모성은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이자 새로운 세상으로의 대체에 대한 이상향으로 제시되어 있다. 아버지와 아들 신지의 갈망이자 쉼터의 상징인 레이는 그러나 과연 현존하는 사회일지는 불분명하다. 아니 없다. 현재의 여성성을 의미하는 아스카에겐 전혀 그런 것이 보이지 않는다. 레이를 통해 확인하고 싶고 만나고 싶은 그런 인간형은 현재 더 이상 존재하는 않은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현실을 벗어나고픈 인간의 막연한 그리움을 기반으로 만든 영화다. 그러나 영화는 그 이상을 간다.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은 사랑스런 모성애를 기반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를 위해 破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갈망하는 것을 얻기 위해 현재의 우리를 破해야 한다는 이 역설에 대해 현재의 우리는 뭔가 새로운 것을 해야 하고 새로운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채찍질로 들린다. 나태와 고집으로 인해 망가뜨린 우리의 주변을 보면서 인류가 생존해 온 방식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이기적이어야만 하는지를 우린 가늠할 수 없다. 우리는 진화를 하면서도 그리워하는 대상만을 더욱 키워만 간 역설적인 상황만을 만들었다. 영화의 破에 대해서 그래서, 난 동의한다. 우리가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자성과 자책도 없이 우린 개인적인 목적에만 집착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만 같다. 그래서 에반게리온의 무서운 경고는 낯설면서도 강한 수긍을 하게 된다. 계속 이럴 것인지 현대인은 스스로 자성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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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ek 2009-12-21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반게리온... 제게는 너무 늦게 도착한 작품이 아닌가 싶어요. 차라리 『건버스터』를 보지 않았다면, 『에반게리온』에 더 빠질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인류는 우주에게 있어서 바이러스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절멸'을 당해도 괜찮다라는 논리. '인류가 살기 위해서 태양계의 행성을 파괴시킬 권리가 있'냐는 질문.. 그런 허무주의에 취해 있어서 『에반게리온』을 볼 때는 동어반복이 아닌가 싶어서 제대로 보질 않았습니다.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왜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지금와서 다시 그 허무주의에 빠져들기엔 너무 멀리 떨어진 게 아닌가 생각도 들고... 그냥 많이 아쉽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

novio 2009-12-22 14:20   좋아요 0 | URL
'허무주의에 빠져들기엔 너무 멀리 떨어진 게 아닌가 생각도 들고...' 마음에 다가오는 표현이네요. 이유는 모르지만 어딘지 공감이 많이 갑니다 그래도 시간은 언제나 공평하고 누구나 쓰라고 있는 것 같네요. 시간 있으시면 '에반게리온' 서와 파를 한 번 다 보시는 것을 권유합니다. 분명 시간은 님의 편일 것입니다.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2월 2주

  갑작스레 쿠바와 관련된 영화들이 보이네요. 어떤 이에겐 이상향을, 또 어떤 이에겐 적대국가로만 알려져 있는 쿠바는 한국사람들에겐 너무 미지의 나라일 뿐입니다. 이런 쿠바를 한국사람들에게 더욱 가깝도록 해주는 영화들은 어쩌면 쿠바를 알려주는 해외사절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즐거운 문화를 함께 즐기고 그들의 생각과 가치관을 한 번 음미하면서 한국인들이 경험하지 못한 멋진 인생관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할 것입니다. 또한 영화의 매력인 경험하지 못한 세상에 대한 간접경험을 통해 한국인들이 접해보지 못한 그들 특유의 문화를 통해 우리와 다른 이질적인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였으면 합니다.  

  예술성 위주로 만든 작품들이 많다 보니 대중성은 좀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쿠바의 예술, 특히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크게 만족할 영화들입니다. 여기서 소개될 영화는 세 편입니다. [시간의 춤], [쿠바의 연인], 그리고 [하바나 블루스]가 그것들입니다. 특히 뒤의 두 작품은 현재 진행되는 <제35회 서울독립영화제(SIFF) 2009>와 <시네마 상상마당 음악영화제 '음악, 영화를 연주하다'>의 소개작들입니다.
 

시간의 춤 

 

  최근 다큐멘터리 영화로 소개된 [시간의 춤]은 쿠바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시대적아픔의 시기였던 1905년, 멕시코로 돈 벌러 간 한국인 1000명 중 유카탄 반도에서 다시 쿠바로 밀항한 300명과 그 후손들의 삶을 담은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감독 송일권 감독의 오랜 기간동안의 체류 속에서 느낀 바를 다양한 주제를 갖고 형상화했습니다.  

  한국의 전통적인 문화를 유지하고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신들만의 세계관과 문화를 갖기 시작한 쿠바의 한국 이민자들은 역시나 자신들만의 즐거움을 창조해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영화 마지막에서의 살사 춤은 그들의 자립과 멋을 보여주는 명장면입니다. 또한 한국에서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고 있는 새로운 이웃에 대한 우리들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자문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쿠바의 연인 

 

  제35회 서울독립영화제(SIFF) 2009 작품이기도 한 이 영화는 역시나 쿠바라는 지역을 탐방하는 영화입니다. 이미지가 없어서 유감이지만 그래도 즐거운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현지인과 타인의 공존의 문제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다룬 작품입니다. [시간의 춤]이 토착화된 이민세대들에 관한 영화라면, 이것은 국적과 문화가 아직 강고하게 자리잡은, 현대를 살고 있는 어느 한국 여성과 쿠바 청년간의 경험을 위주로 제작됐습니다. 지상의 낙원으로만 여기는 쿠바로, 한국 여성이 직접 들어가 살면서 과연 쿠바란 나라가 어떤 사회인지 관찰하는 반면, 쿠바 청년은 역으로 한국에서 과연 잘 살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영화입니다. 둘 간의 사랑도 있지만 사실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이질적인 인간들이 과연 공존할 수 있는지를 진지하면서도 재미있게 형상화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 역시 쿠바를 다른 이민들로 일반화할 수 있기도 하네요. 
 

하바나 블루스 

 

  쿠바의 음악과 그들의 삶을 동시에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10회 전주국제영화제(2009)의 작품이기도 한 이 영화는 쿠바의 수도인 하바나(아바나로 발음하는 것이 정확합니다)에서의 쿠바인들의 힘든 삶을 엿보게 하는 영화입니다. 음악으로 현실적 고통을 이겨내고 있는 두 청년 루이와 티토에게 인생역전을 할 수 있는 제의가 들어옵니다. 스페인에서 온 유능한 음반 프로듀서가 그들을 스카우트, 스페인으로 가서 그들을 음악인으로 키우겠단 제의였죠. 단순한 소일거리 취미가 인생을 뒤바꿔줄 크나큰 행운으로만 보였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노래와 음반 준비를 하죠.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장밋빛은 아니었습니다. 거의 노예계약 수준이었던 계약으로 그들은 좌절하게 됩니다. 현실적 고통을 벗어나기 힘든 사회의 마이너러티들의 어두운 현실을 보게 되는 것만 같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루이와 티토는 고민에 휩싸이죠. 그러는 와중에 이별을 준비하는 마지막 콘서트를 준비합니다.
  영화의 스토리 역시 재미있지만 이 영화가 품고 있는 음악 역시 대단한 수준작들이고 다양한 쟝르를 포함하고 있어서, 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은 쿠바 식의 얼터너티브 록, 펑크, 팝, 블루스는 물론 힙합까지를 즐길 수 있습니다. 2009년 12월 18일에서 31일까지 진행될 [제 3회 시네마 상상마당 음악영화제 '음악, 영화를 연주하다']에서의 '다시 보는 2009 음악영화' 섹션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영화 속의 음악이 왜 뛰어난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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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 A Blind Ri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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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린 자와 버림받은 자, 어느 쪽도 행복할 수 없음을 너무 비극적으로 형상화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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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행 - 하얀 어둠 속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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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앞에 내동댕이쳐진 인간들의 슬픈 대응, 그리고 탐욕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명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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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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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고 좀 아쉬웠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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